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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대물특집, 역사에 남은 거대한 사나이들

사케마스 작성일 13.12.24 14: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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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 - 역사에 남은 거대한(?) 사내들


대물(大物).

한자의 의미만 보자면 '커다란 물건'이지만,

통상적으로는 평균 이상으로 커다란 남자의 거시기를 지칭합니다.

커다란 가슴이 여자들에게 자부심이 되는 경우가 많듯이,

남자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거시기의 크기가 자존심과 관련된 일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마치 수컷 하마들이 서로의 입크기로 우위를 결정하려 하는 것 처럼 남자들은 목욕탕이나 탈의실에서는 은근히 서로의

물건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크기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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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거시기가)커다란 남자 세 명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타자는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왕, 지증왕(智證王).

역사에 대해 깊이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독도는 우리땅]에서


「지증왕 13년 섬나라 우산국 ~」

하는 구절은 다들 들어 보셨겠지요. 사실 지증왕은 신라 최초로 왕의 칭호를 쓰고 시호를 받으며 국호를 통일하고 관등을

정비하는 등, 고대 국가로서의 기초를 다지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왕이지만...

그러한 모든 사항을 거대한 거시기가 묻어버린 감이 없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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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신하 중 한명이 모량부에 도착하여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커다란 개 두마리가 북 

사이즈의 커다란 똥(...)을 물고 서로 싸우는 장면을 목격. 대체 저 커다란 똥덩어리를 배출한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나

저게 여자의 똥이라면?

마을로 내려가 똥의 임자(?)를 찾아보니 모량부 상공의 딸이었습니다. 그 키가 자그만치 7자 5치(2.25m).

신하가 기뻐하며 지증왕에게 보고하자 그는 바로 수레를 보내어 왕비로서 맞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이즈적으로) 천생연분이었던 두 사람은 잘 먹고 잘 살았으며 자식도 잘 낳아 신라는 더욱 융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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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타 전설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은유가 섞여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지증왕의 커다란 물건은 강력한 왕권을, 처녀의 북만한 똥덩어리는 막강한 생산력을.

어쨌거나 우리나라 역사속에서 지증왕은 임팩트있는 사이즈로 후손인 우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습니다.


 

두 번째는 전국시대 말기의 노애(??. 개콘 코너가 아닙니다).

'내가 고자라니!'의 아픔을 딛고 후세에 이름을 남긴 역사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에서 여불위는 진시황의

생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무녀 조희와 눈이 맞아 그녀를 임신시킨 여불위였으나, 조나라에 인질로 와있던 진나라 공자 자초가 조희에게 홀딱 빠져

그녀를 달라고 했지요. 고심하던 여불위는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조희가 자신의 자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숨기고 자초의 

아내로 주었습니다.

그 뒤에 태어난 아들이 정(政). 여불위는 자신의 자식이 왕이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손을 썼고 결국 왕권에서 멀리 떨어진 

인질 신세의 자초를 장양왕으로 만들었습니다. 장양왕이 요절한 뒤에 정이 뒤이어 왕이 되었고, 어린 정을 대신하여 

여불위가 상국이 되어 권력자로 등장. 여불위의 인생은 탄탄대로 처럼 보였지요.

하지만 음탕한 조태후(조희)는 욕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여불위를 유혹하여 간통을 했습니다. 왕의 어머니와의 위험한

간통... 여불위로서는 심장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그러던 여불위에게 커다란 물건을 가졌다는 희대의 대물 노애의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크고 꼿꼿한 노애의 거시기는 많은 여자들이 하룻밤만이라도 같이 자봤으면 하고 줄을 설 정도였고 그런 여자들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것으로 풍족하게 먹고 산다는 얘기였지요.

기회다 싶었던 여불위는 노애를 하인으로 삼아 저잣거리에서 오동나무로 만든 수레바퀴를 거시기에 매달아 돌리게 

하였습니다. 일반인이라면 끼우자마자 줄기가 똑 뿌러질터인데 한참을 돌려도 수그러들줄 모르는 노애의 대물...!

그 엄청난 정력은 곳곳에 소문이 퍼져서 조태후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소문을 듣고 몸이 달아오른 조태후가 노애를 원하자, 여불위는 노애의 수염을 뽑아 환관으로 위장하여 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조태후의 곁에 들어간 노애는 조태후와 질펀하고 음탕한 생활을 보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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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크면 거시기도 크다는 속설이 있는데, 어쩐지 이 분을 보면 설득력이 급등합니다.>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риго?рий Ефи?мович Распу?тин)은 본래 떠돌이 수도사에 

불과했습니다.

'라스푸트'는 러시아어로 방탕이라는 의미. 부모님이 선견지명이 있으셨나 아주 이름 하나 기똥차게 잘 지으셨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이름대로 소싯적에 수많은 여자를 후리고 다니며 방탕하게 살았는데 그 원동력은 커다란 거시기가 

아니었나 싶지요.

왜 갑자기 출가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은 15년간 떠돌아다니며 수도승으로서 지냈는데, 1903년 제정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혈우병으로 괴로워하던 알렉세이 황태자를 기도 요법으로 고쳐서 황제인 니콜라이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권력자들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노애와 겹쳐보이게 되지요? 라스푸틴 역시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종교인이므로 종교에 대한 발언권은 당연하고 그 외에도 외교와 내정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러시아의 신돈이라고도 부르더군요. ^^;

일개 수도승이 이렇게 권력을 휘드르게 되니 황족들과 귀족들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겠지요.

그의 커다란 물건을 트집잡아 방탕하고 난교를 일삼는 개망나니라고 매도하였는데, 그러던 와중에 애먼 공주와 황후까지

라스푸틴과 붙어먹었다는 소문이 퍼져 곤욕을 치루었습니다(실제로 어떠하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요).

1916년 12월에 반대파 황족들이 그에게는 비밀로 궐석재판을 실시, 멋대로 사형을 선고하고 열흘 뒤.

그들은 라스푸틴을 파티에 불러내어

청산가리가 든 케이크와 술을 먹였지만 > 2시간 넘도록 죽지 않았고

총으로 쏘았는데 > 죽기는 커녕 목을 조르겠다고 덤벼들었으며

달아나길래 곤봉과 쇠사슬로 린치하여 말에 묶고 끌고가 얼어붙은 강의 얼음 밑으로 던진 후에야

겨우 죽었다고 합니다.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얼음 밑에 손톱으로 긁은 흔적이 있다고도 하고요.

이렇게 힘겹게 죽였지만 그가 생전에 남겼던 예언대로 제정 러시아의 황가 일족은 싸그리 몰살을 당하고 25년간 러시아는

내부 분열로 피에 젖은 뒤 독소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그가 그렇게 죽은 뒤에 그의 거시기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근처의 여성이라고도 하고 병사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잘려나갔고, 현재까지 러시아 내에 보관중입니다. 포르말린에 잘 잠겨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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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세계 남근의 성지, 아이슬란드 음경박물관 포스팅에 잠깐 등장했던 이 것이 라스푸틴의 대물.

이것은 모조품이며 원본은 KGB 가 보관중이라고도 합니다만 이 크기가 맞다는 건 사실인 듯 합니다.

발기도 하지 않았는데 이 크기라니... 과연 러시아의 괴승...!

그는 죽어서 이름과 대물을 남기게 되었군요.

어쩐지 소개한 세 인물 중 두 명이 기구한 운명을 맞이한 것을 보면 거시기의 크기와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사실 거기의 크기가 5cm만 되어도 성교를 통해 쾌감을 얻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뿐더러, 여성들도 너무 큰 대물은

부담스러워 싫어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남자들의 대물에 대한 동경과 집착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크기보다는 서로간의 사랑과 눈짓, 손짓 등의 테크닉 등이 성생활의 만족도를 올려주는 것이겠지요.

 

출처: http://s.coop/1tt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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