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와 독립통고서에 서명한 33명의 열사님들
그리고 대한독립을 외친 수많은 독립투사분들 감사합니다
33인 명단
손병희 : 천도교측 수장. 1921년 사망. 딸 다섯 중 셋째 딸 손용화는 소파 방정환의 아내.
이승훈 : 기독교측 수장이자 교육자. 1906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었음. 30년 작고. 33인중 가장 늦게 풀려남.
한용운 : 불교 대표. 공약 삼장 작성. 말년 가난과 중풍에 시달리며 몇 푼 안되는 원고료로 연명하다 광복을 불과 1년 앞둔 1944년 사망.
권동진 : 1882년 일본 망명 후 1905년경(?) 천도교 입문. 3.1 운동후 신간회 부회장으로 광주 학생운동 참여. 증손 권혁방씨는 33인 유족회 회장.
권병덕 : 1894년 손병희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참가, 천도교 입문. 3.1 운동 후 천도교 감사원장, 선도사 등을 역임. 1947년 타계.
길선주 : 한국 최초의 목사. 3.1운동 때 서울에 늦게 도착. 총감부에 자수하였으나 무죄로 풀려남. 독립유공자에서 제외됐었으나 2009년 건국훈장 수여.
김병조 : 33인 중 유일하게 체포되지 않았음. 상해에서 임시정부 상임이사, 사료편찬위원 등을 역임. 독립혈사 간행. 북에 머물렀단 이유로 유공자 포상이 안되다 1990년 3.1절이 되어서야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김완규 : 한일 합방 후 천도교 입문. 3.1 운동후 도사직을 맡고, 민중 계몽운동. 1949년 타계.
김창준 : 기독교측 대표. 함경북도 만세 운동 주도. 해방 후 사회주의 기독교 운동. 남북연석회의가 열린 1948년경 월북. 독립유공자에서 제외.
나용환 : 23세 때 동학 입문. 3.1 운동 후 천도교 포교 사업. 1936년 병사.
나인협 : 19세 때 동학 입문. 3.1 운동 후 천도교 교사 활동. 1951년 병사.
박동완 : 기독교측으로 3.1운동 경기지방의 시위 주도. 신간회 상임이사. 1923년 하와이로 망명. 41년 병사.
백용성 : 불교 대표. 법명은 용성진종대사. 16세 때 출가하여 해인사 스님들의 봉기 주도. 불교 정화 및 대중화에 힘써 서울시내에 최초로 포교당 세움. 대각사 창건후 60여종의 불경어록과 저술을 남겼다.
박준승 : 29세 때 천도교 입문. 3.1 운동 때 임실, 남원, 장성 등 호남지방 민중 봉기 주도. 1921년 옥사.
신석구 : 기독교 대표. 3.1 운동 후 '38년 신사 참배 거부. '45년 전승 기원 예배 거부로 옥중에서 해방을 맞았다. 1949년 감리교 북한 지역 총 책임자로 기독교 민주당 결성. 같은 해 진남포 4.19 사건으로 북한 당국에 검거되어 50년에 처형.
신홍식 : 기독교 대표. 평양 남산현 교회 목사로 있다 3.1 운동 참가. 신사 참배 거부. 1937년 사망.
양전백 : 평양 신학교 졸업. 목사로 있다 3.1 운동참여. 목회사업에 전념. 105인 사건에 연루.
양한묵 : 1898년 일본에서 손병희를 만나 동학에 입문. 1905년 헌정동지회를 만들고 구국운동. 19년 10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순국.
오세창 : 개화론자 오경석의 아들이자 천도교 신자. 한성순보 기자. 만세보, 대한민보 등의 사장. 해방후 매일신보, 서울신문 사장. 53년 사망.
오화영 : 감리교 목사. 6.25 전쟁 때 서울에서 납북되어 1962년 병사. 북한의 평양 애국 열사릉에 안치. 89년 3.1절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96년 11월 위패만 국립묘지에 안치.
유여대 : 모사로 3.1운동 당시 의주에서 독립선언서를 뿌리다 오후 늦게 서울도착. 일경에 붙들렸다. 1937년 사망.
이갑성 : 기독교 신자. 세브란스 병원에 근무. 31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신간회 운동, 흥업구락부 사건 주도 등에 일제와 타협하지 않은 인물 중 한 사람이었지만, 1980년대에 변절했다는 주장 뿐 아니라 일제의 밀정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2005년 삼일절 특집 SBS 뉴스추적에서 심층취재한 결과 오히려 요시찰인 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매일신문에서 2010년에 이 떡밥에 낚여 친일파 언급했다가 정정기사를 냈다. 매일신문은 역사속의 인물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고도 친일파로 매도된 억울한 '희생자'였다고 평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이명룡 : 기독교 대표. 105인 사건 연루. 3.1 운동 후 미국으로 망명. 1956년 병사.
이종일 : 천도교 대표. 보성사 인쇄소 사장으로 선언서 인쇄. 1925년 작고.
이종훈 : 천도교 대표. 1931년 만주에서 병사.
이필주 : YMCA 초대 체육 교사로 일하다 목사가 되었음. 1942년 작고.
임예환 : 동학혁명에 동참, 3.1 운동에 가담.
최성모 : 감리교 목사. 이필주를 만나 3.1 운동에 가담. 황해도 시위 주도.
홍기조 : 22세 때 천도교 입문, 손병희와 평안도 천도교 독립운동 주도. 3.1 운동 후 평안도 용강에서 독립운동. 1938년 병사.
홍병기 : 천도교 대표. 고려 혁명위원회 조직.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신의주에서 체포. 1949년 작고.
이분들이 진짜 지금같은 나라만드려고 독립운동하신게 아닐텐데 안타깝고 죄송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