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강릉 무장공비 사건이 터진 후
극심한 허기와 갈증에
먹을 것을 찾으러 나선 이광수는
한 부부의 재치로 출동한 경찰에 생포된다.
생포된 후 안기부 조사에서
요원들과 기싸움을 하며 이래저래 말을 돌리던
이광수는 광어회가 먹고싶다고 요구한다.
이걸 두고 당시 사람들이
일종의 암호나 신호가 아니냐,
거짓말이 아니냐 말이 많았다고 한다.
자기 딴엔 광어회를 요구하면서 한국의 사정과
조사관들을 떠보려는 의도였던 것 같으나
- 공비들에게 뿌려진 안전보장증 -
금방 배달 된 광어회를 먹고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이후 조사에 순순히 응했다고 한다.
이후 전향한 이광수는
- 왼쪽 이광수, 오른쪽엔 그를 생포했던 최우영 경감 -
대간첩작전에서 사살된 동료들과 달리
한국 사회에 정착해 석사 학위도 수여받고
잘 살고 있다.
당시 자신을 생포한 경찰분들을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여기며 돈독한
관계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