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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평범했던 일상(자작)

하고리 작성일 25.05.12 17: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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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비비빅

 

"흐어어어억!"

 

김도현은 갑자기 들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며 소리쳤다.

 

"뭐였지? 분명 무언가 꿈을 꾸었는데?"

 

심장은 요동치고, 등은 땀에 젖어 있었고 꿈을 꾼거 같았지만 내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뼛속까지 파고드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만이 남았다.

 

“악몽이었나…”

 

작게 중얼거리다 '목요일 6: 50'이라는 시간을 보여주며 울리는 알람 시계를 껐다.

잠시 꿈의 내용이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나 여전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김도현은 어두운 방안을 잠시 바라보는데 어쩐지 데자뷰를 느낀 듯하였으나 생각나지 않는 꿈에서 겪었겠거니 하고 고개를 흔들며 출근을 위해 일어났다.

 

그렇게 출근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타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8시 55분.

 

"김대리 오늘은 늦었네?"

 

김도현한테 말을 건 사람은 10년차 과장을 맡고 있는 박성은과장이었다.

 

"평소에는 꼬박 꼬박 8시 40분에 도착하더만 오늘은 뭔 일 있어?"

"아... 제가 오늘 악몽을 꿔서요. 그래서 좀 늦게 나왔습니다."

"그래? 무슨 악몽이길래 시간 약속이 철저한 김대리가 늦었을까?"

 

김도현은 다시 자신이 꿈을 꾼게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그게... 무슨 내용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니지?"

"네. 아무 일 없습니다."

"그래. 항상 40분에 미리 회사에 왔었는데 안보여서 살짝 걱정했어. 그래도 별일 없다고 하니 다행이네. 업무 시작하라고"

"예 감사합니다."

 

김도현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출근은 9시까지 이지만 자신이 정해놓은 40분에 도착하지 못한것에 대해 아쉬움이 들었다.

 

그는 시간을 지키는걸 좋아했다.

어릴적 보았던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기억에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필리어스 포그'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주변 사람들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주인공을 보며 몇시인지 알수 있다고 하는 장면이다.

물론 자라면서 해당 책에 나온 주인공처럼 정확한 시간대로 살수는 없지만 그래도 스스로 정한 시간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을 했었다.

그렇게 6시 50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설때는 7시 20분에 나오고 지하철을 타며 회사에 도착하면 8시 40분이 되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악몽을 꿔서 좀 늦게 출근 준비를 하니 원래 정했던 시간에서 늦춰지며 8시 55분에 도착하게 된것이다.

 

늦지 않게 출근했으니 아쉬운 맘과 꿈은 잊어버리고 PC를 키며 오늘 일정을 확인하며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김도현은 자리에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손목시계를 슬쩍 확인했다.

11시 59분.

점심은 항상 12시 정각에 나가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옆자리 신입인 박미정사원이 말했다.

“대리님, 같이 가시죠?”

“응. 시간 됐으니까 가자.”

 

5년동안 늘 가던 구내식당에 도착했다. 오늘은 메뉴가 뭐가 나왔을까?

 

"구내식당 볼때마다 느끼는 건데 여기 맛은 괜찮은거 같아요."

 

김도현은 박미정사원의 말에 '역시 얼마 되지 않으니 저렇게 이야기 하지'라고 속으로 중얼 거렸다.

엄청 맛있는 음식이라도 그것만 먹으면 질리듯이 매번 바뀌는 메뉴라도 5년동안 먹게 되면 질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김도현은 똑같은 메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리듬과 반응은 늘 같았다.

“그런가요?”

김도현은 짧게 웃으며 식판을 들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그 말 바뀔지도 몰라요. 다른 분들은 다 지겹다고 했거든.”

박미정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오늘은 제 입맛엔 딱 맞는 것 같은데요?”.

 

김도현은 식판을 받아 음식을 담고 식당 의자에 앉았고 박미정 사원은 옆에 앉아 같이 밥을 먹었다.

밥을 뜨고, 반찬을 올리고, 국을 한 국자 뜨는 순서도 늘 같았다.

밥을 먹은 뒤에는 혼자서 산책을 20분간 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넣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12시 55분. 김도현은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 정리된 문서를 다시 한번 훑어봤다.

오늘 오후엔 신입사원 박미정과 함께 진행할 보고서 수정 작업이 예정돼 있었다.

잠시 후, 박미정사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김대리님, 보고서 관련해서 말씀하신 부분 정리해봤습니다.”

김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앉아봐요. 같이 봅시다.”

박미정사원이 내민 출력물을 넘겨받아 훑어보던 김도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형식은 맞췄지만, 데이터 배열이 어딘가 어설펐다.

숫자 정렬도 들쭉날쭉했고, 항목별 기준이 일관되지 않았다.

“여기, 이거. 표기 방식이 제각각이야. 예를 들어 여기선 ‘백만 원’이라 쓰고, 바로 옆에선 ‘1,000,000원’이잖아. 보는 사람이 헷갈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맞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좀 급하게…”

김도현은 말을 끊지 않았다. 무심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지적을 이어갔다.

“그리고 여기도. 이 수치는 아침에 팀장님이 바꿔서 메일로 보내셨던 거잖아. 아직 반영 안 됐네?”

박미정사원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김도현은 잠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업무의 기본이야. 나도 신입 때 비슷한 실수 많이 했어.

하지만 보고서라는 건 보는 사람 기준에서 정확해야 하고, 무엇보다 신뢰를 줘야 해.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 인상을 무너뜨릴 수 있어.”

박미정사원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다시 수정해서 가져오겠습니다.”

“30분 안에 보내줘요. 내가 최종 정리해서 팀장님한테 넘겨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박미정사원이 자리를 떠나자 김도현은 시계를 봤다. 1시 48분.

원래는 1시 45분까지 1차 초안을 마무리하자고 생각했었지만, 예상보다 3분 늦었다.

 

‘이런일이 별로 없었는데....’

악몽 때문에 그런지 오늘은 아침서부터 작은 어긋남이 조금씩 생겨났다.

 

다시 자신만의 루틴을 맞춰야만 했다.

그래서 김도현은 손끝에 긴장을 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박미정사원이 수정한 보고서를 1시 59분에 이메일로 보내왔고, 그는 단숨에 검토하고 몇 줄을 정리한 뒤 팀장에게 넘겼다.

2시 10분. 자신이 정해둔 마감선보다 5분 앞선 시간이었다.

'좋아, 다시 맞춰졌다.'

그는 호흡을 길게 들이쉬고, 오늘 남은 일정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캔했다.

업무는 큰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오후 내내 자잘한 일들이 있었지만 김도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조용히 집중했다.

오후 6시. 퇴근 시간.

사무실을 나서며 그는 평소처럼 지하철을 통해 동네로 돌아왔고 집 근처 순댓국밥 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정해진 루틴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셔츠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TV를 켰다.

뉴스를 틀어 적막함을 없애고, 무심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교통사고, 정치 다툼, 갑작스런 기온 변화—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재난들과 논쟁들 속에서 김도현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세상이 여전히 똑같이 돌아간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오히려 정상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악몽으로 인해 무언가 일이 생길까도 생각해 봤지만 어떻게든 루틴을 찾으려고 노력해서 인지 하루가 끝나가는 동안 별일은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별일 없었는데... 괜히 예민했나.’

 

여전히 악몽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저 지나갈 일상 중에 하나일 것이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목요일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삐비비빅

 

‘금요일 6: 50’을 나타내며 울리는 알림소리에 김도현은 잠에서 깼다.

악몽없이 일어난 그는 어제와는 다른, 그러나 이전의 일상과 같은 루틴을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알림을 끄고 출근 준비를 위해 씻고 7시 20분에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0분

 

"김대리 오늘은 안 늦었네?"

 

박성은과장은 김도현이 도착하자 마자 말을 걸었다.

 

"오늘은 꿈도 꾸지 않아서 평소대로 도착했습니다."

"하하. 그래. 평소대로 돌아왔구만."

 

김도현은 자리에 앉아 자신이 정한 루틴대로 준비를 하며 9시에 업무를 시작하였다.

회의 일정은 오전 10시였고, 김도현은 9시 45분부터 자료를 다시 한 번 정리했다.

프로젝터 연결, 발표 순서 점검, 팀장에게 전달할 요약 문서 출력까지.

모든 게 정확했다. 마치 어제의 어긋남이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듯이.

 

회의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김대리, 늘 준비가 잘 돼 있네.”

 

“감사합니다. 어제 말씀하신 수치도 반영해놨습니다.”

 

김도현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게 원래대로의 흐름이다.

이것이 자신이 원하는 하루의 형태였다.

 

회의가 끝난 뒤, 자리에 돌아온 김도현은 시계를 보았다.

11시 57분.

잠시 후, 박미정 사원이 옆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대리님, 점심 가실까요?”

“좋아요. 시간 딱 맞췄네요.”

 

두 사람은 사무실을 나섰고,

늘 가던 구내식당, 익숙한 계단, 변함없는 식판과 줄.

오늘의 메뉴는 된장찌개였다.

예상대로 무난한 조합.

 

“대리님, 오늘은 뭔가 더 평화로운 느낌이에요.”

박미정이 말했다.

 

김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아무 일도 없는 날이 제일 좋은 날이죠.”

 

숟가락을 들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제야 원래대로 돌아온 듯했다.

 

“대리님. 근데요 혹시 데자뷰 겪어 보신적 있어요?”

“데자뷰? 갑자기 왜?”

“최근에 이상한 사람이 ‘데자뷰는 이세상이 반복하고 있다는 증거다?’ 대충 이런 소리를 하더라고요.”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군.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이 많은거 같아.”

 

김도현은 그말을 듣고 어제 아침에 느꼈던 느낌이 생각났었지만 별거 아니듯이 넘어갔다.

밥을 먹은 뒤에는 원래 루틴대로 혼자서 산책을 20분간 했다. 산책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12시 55분.  오후도 이렇게 계획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오후 6시. 퇴근 시간.

 

김도현은 책상 위를 정리하고 가방을 들었다.

오늘도 정확히 6시에 퇴근한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서류는 제자리에, 책상엔 먼지 하나 없었다.

 

사무실을 나서며 박성은 과장이 등을 툭 쳤다.

 

“오늘은 진짜 김대리답네. 아주 모범적이야.”

 

“원래대로 돌아온 거죠. 어제가 예외였던 겁니다.”

 

지하철역까지 걷는 시간,

기차를 타고 앉은 자리,

창밖으로 지나가는 익숙한 풍경들.

김도현은 오늘 하루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고 느꼈다.

 

저녁은 미리 생각해둔 치킨.

 

지하철에서 시간을 체크하며 앱으로 주문을 넣어둔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순살 양념치킨 한 마리와 콜라를 포장해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김도현은 셔츠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

간단히 손을 씻은 후 TV를 켰다.

 

이번엔 뉴스를 켜지 않았다. 대신 웃음을 유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었다.

자막이 화면 위로 빠르게 지나가고, 출연진들의 웃음소리에 따라 그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치킨을 한 조각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아… 행복하다.”

 

짧은 한마디가 나왔다.

오늘 하루는 아주 잘 흘러갔다.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할 수 있다면, ‘모범적인 하루’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남은 콜라를 다 마시고 텅 빈 치킨 박스와 함께 휴지통으로 치웠다.

익숙한 피로. 고요한 기분.

 

그렇게 내일이 주말이라는 생각에 행복한 하루로 마무리 하였다.

 

 

삐비비빅

 

‘토요일 6:50’을 나타내는 알람 소리에 김도현은 눈을 떴다.

주말이지만 습관처럼 바로 일어났다. 이젠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 같았다.

 

평소와 같은 시간, 평소와 같은 습관.

하지만 오늘은 평일과는 조금 다른 일정이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속으로 오늘 계획을 되짚었다.

 

“8시 30분까지 운동하고, 백화점은 10시 전에 도착.”

 

주말 아침, 짧은 운동을 루틴처럼 지켜오고 있었다.

기분 전환도 되고, 계획에 맞춰 움직이는 데도 도움이 됐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한 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물 한 병을 챙긴 뒤 7시 20분에 집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늘 7시 20분에 나서야 한다고 정해둔 그 시간이 아닌 7시 30분이었다.

 

‘뭐지… 조금 늦었네.’

 

별일 아니라고 넘기려 했지만, 아침부터 정해둔 시간을 넘기지 짜증이 좀 났다.

헬스장까지는 도보로 10분.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거리는 조용했다.

 

헬스장에 도착한 시간은 7시 40분.

가볍게 러닝머신으로 몸을 풀고, 상체 위주로 짧고 강도 높게 운동했다.

평소처럼 1시간이 지나서 8시 40분에 마무리.

 

원래는 30분에 마무리를 해야 했지만 10분 늦은게 운동 마무리 시간에도 나타났다.

 

샤워실로 향하며 김도현은 속으로 시간을 계산했다.

“지금 씻고 나가면, 그래도 백화점 오픈 전에 딱 맞겠네.”

 

그는 옷을 갈아입고 지하철로 향했다.

김도현은 지하철역까지 평소보다 빠르게 걸었지만, 플랫폼에 도착했을 땐, 전광판이 정지해 있었다.

 

[운행 지연 안내 : 신호 이상으로 전동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거의 없었는데.’

 

김도현은 주말이지만 지연된 전동차로 인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잡고 같이 기다렸다.

몇 분이면 오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1분이 5분 같았고, 5분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지하철은 예정된 시간보다 15분 늦게 도착했다.

 

게다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정차되는 시간이 평소보다 좀더 길게 대기를 하였다.

평소 같으면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을 시간이지만 김도현은 아직 지하철 안에서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계획이 꼬이기 시작하네.’

 

김도현은 백화점에 도착하면 빨리 구매할수 있게 머플러 포장을 어떻게 할지, 어떤 색이 좋을지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백화점에 도착한 건 10시 56분.

예정대로라면 오픈과 동시에 입장해 사람들 붐비기 전에 쇼핑을 마쳤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은 마가 낀것인지 오픈시간 보다 늦게 오니,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안으로 몰려들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엔 대기 줄이 생겼고,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길도 사람들이 많아 줄을 서며 김도현은 3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별거 아니다. 그냥 작은 변수일 뿐이다.’

 

그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 했다.

하루가 처음부터 어긋났다는 사실을 잊으려고.

 

그러나 그 순간—

웅—

 

미세한 진동이 발바닥 너머로 전해졌다.

천장이 아닌, 어딘가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김도현은 잠깐 정지했다.

눈을 들어 주변을 바라보았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다니고 있었다.

 

‘기분 탓인가…’

 

그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 한참 동안 구경하던 중에 자신이 생각했던 회색과 와인빛이 섞여 차분한 색감을 가지고 있는 고급스러운 머플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아버지도 자주 쓰시겠지.”

 

김도현은 머플러를 들고 점원에게 결제대 앞에 섰다. 점원이 계산을 마치고 요구한대로 포장된 종이백을 내밀었다.

 

그 순간—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마치 지반이 꺼지는 듯한 굉음.천장이 미세하게 진동하더니, 사람들의 비명이 뒤엉켰다.김도현은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아래로,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천장이 갈라지고, 조명이 떨어지며 비명이 터졌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깨어났을 때, 김도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뜬 건지 감은건지로 모르겠다. 눈을 깜빡깜빡 해도 어둠만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느낌에 의해 어떤 상황인지는 인지하게 되었다.

모래같은 것이 머리 위로 떨어졌고, 몸은 바닥과 벽 사이에 낀 채 고정되었다.

숨은 쉬어지고,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크게 다친건 없게 느껴졌다.

다만 자세는 불편했다.

엎드려 있는 자세로 팔과 다리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고, 몸은 벽과 바닥 사이에 비틀린 채 고정되어 있었다.

자세를 바꾸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김도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소리쳤다.

 

“여기 사람 있어요! 제발… 누구 없나요!”

 

그 외침에, 어둠 속 여기저기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으으으…”

“여기요… 사람 있어요…”

 

어딘가엔 신음소리도 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크게 다쳤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김도현은 그 소리들에서 위안을 느꼈다.

이 어둠 속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를 안심시켰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는건... 건물 전체가 무너진건 아닐거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조만간 구조대가 올 거라 믿었지만, 문제는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계속 이대로 있어야 한다는 게 무섭게 다가왔다.

몸은 뒤틀린 채 끼어 있었고, 어깨와 옆구리가 이미 저려오고 있었다.

움직여보려 했지만, 주변 구조물이 단단히 눌러오는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혹시 움직일 수 있는 분 계세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다시 소리쳤지만, 그저 조용한 신음 소리만 들려왔다.

대신 신음 소리 끝에,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곧… 구조대가 올 겁니다. 조금만 버티면, 우리… 살 수 있어요.”

 

그 한마디가 김도현에게 큰 힘이 되었다.

누군가 자신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위안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래… 아직 살아 있고, 구조대가 분명 오겠지. 이렇게 큰 사고인데… 그냥 두진 않을 거야.’

 

어둠 속에서 그는 그렇게 희망과 공포 사이를 오가며,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자세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천천히 가늠해보려 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잠든 건지, 기절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빛조차 보이지 않기에 시간 감각이 무너지고 있었다.

 

귀에 들려오던 소리도 희미해졌다.

처음엔 여기저기서 들리던 신음과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용했다.

아주 조용해서, 오히려 귀가 먹먹했다.

 

“거기… 계세요?”

김도현은 힘겹게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깨와 옆구리는 이미 감각이 무뎌졌고, 팔끝엔 저릿한 감각 대신 무거운 돌덩이 같은 압박감만 남아 있었다.

피가 제대로 돌지 않는 건가 싶었다.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그저 쿵쿵 진동처럼 울렸다.

 

‘왜 안 오는 거야… 왜 아무도 안 와…’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답답함, 분노, 그리고 두려움이 섞인 감정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었다.

갈비뼈 쪽에서 뭔가 찌릿하게 통증이 번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제발… 이딴 데서… 죽기 싫단 말이야!, 사람살려! 살려달란 말이야!!!”

 

그는 필사적으로 꿈틀거리며 구조물에 박힌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매번, 단단한 쇳덩이 같은 무게에 막혀 헛된 몸부림으로 끝났다.

숨이 거칠어지고, 고통과 절망속에서 눈물이 흘렀다.

몇 번이나 시도했는지 모른다.

결국 그는 털썩 고개를 떨궜다.

 

숨소리만이 어둠 속에서 메아리쳤다.

다른 사람의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떠났다는 뜻일까, 아니면… 침묵 속에 스러졌다는 뜻일까.

 

“…혼자 남았나…?”

 

그는 중얼이며 멍하니 위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눈을 떴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도현은 점점 의심하게 되었다.

구조대가 정말 올까?

과연… 살아나갈 수 있을까?

 

희망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갔고,

남은 건 고통과 무력감뿐이었다.

 

이렇게죽는건가…?왜?내가대체뭘잘못한거지?평소와다르게움직였던게문제였나?왜나한테이런일이생긴거야?아니야죽지않을거야.하지만주변에아무소리도들리지않는데그러면주변사람들은다죽었다는거아냐?구조된거아닐까?그럼난왜구조되지않았지?내가잠깐졸아서?잠깐기절했다고날구조안했다고?왜나만구조안해주는거야.죽고싶지않아.정말,죽고싶지않아.왜아무도없는거야.

 

김도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그 어떤 질문에도 답은 없었다.

시간이 무의미해지고, 시력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그 박동이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그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기계적 작용 같았다.

 

머릿속은 뿌옇게 흐려졌고,

''내가 누구였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게 뭐가 중요하지'라는 무력한 체념으로 바뀌었다.

 

어둠 속에 있었다.

눈을 감았는지 뜨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공간.

소리는 사라졌고, 촉각도, 온기도, 심지어 고통조차도 흩어져 갔다.

세상이 천천히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천천히 지워지고 있는 듯한 기분.

 

그는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다.

아버지의 생신, 머플러, 회사 동료가 웃으며 던진 말투, 치킨, 예능 소리…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기억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고,

김도현은 더는 그 기억을 움켜쥐지 못했다.

 

그 순간—

모든 감각이, 모든 생각이 멎었다.

 

그리고—

 

 

 

 

삐비비빅

 

"흐어어어억!"

 

김도현은 갑자기 들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며 소리쳤다.

 

"뭐였지? 분명 무언가 꿈을 꾸었는데?"

 

심장은 요동치고, 등은 땀에 젖어 있었고 꿈을 꾼거 같았지만 내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김도현은 그저 뼛속까지 파고드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만이 남았다.

 

'목요일 6: 50'이라는 시간을 보여 주는 알람 시계, 그리고 어둠속에서 보는 자신의 방은 데자뷰처럼 느껴졌다.

 

“악몽이었나…”

 

작게 중얼거리다 '목요일 6: 50'이라는 시간을 보여주며 울리는 알람 시계를 껐다.

 

그렇게 다시, 그토록 평범했던 일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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