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희 "위키피디아에 있는 'PD수첩' 비판 글 찾았다"
지난 26일 오전에 열린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회의. 검찰 수사발표 이후 한나라당은 <PD수첩> 공격을 단골 메뉴로 삼고 있는데, 이 날은 진수희 의원이 나섰다. 진 의원은 여의도연구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진 의원은 출력해 온 문건을 내보이더니 "세계적인 <위키피디아> 사이트에 MBC <PD수첩>의 비윤리적 보도행태가 올라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여의도연구소에서 하나 찾아낸 문건이 있는데 세계적인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PD수첩>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글이 게재가 된 것을 찾았다. 원문의 제목은 'PD Notebook and allegations of unethical journalism'이 타이틀인데, '방송내용에는 나중에 과장되거나 명백하게 즉흥적으로 조작된 근거없는 날조로 밝혀진 주장이 허다했다'. 또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한국에서 3개월에 걸친 항의시위를 유발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이 시위는 한국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하였다'고 게재가 되어 있다.
저는 MBC <PD수첩> 제작진에 충고한다. 또 제안한다. <위키피디아>에 반론권을 청구하셔라. 그래서 본인들이 제작한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서 그렇게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위키피디아>에 당당하다는 내용과 이유를 밝히시라. 지금 세계적인 네티즌이 참여하고 있는 위키피디아에 <PD수첩>의 비윤리적인 보도행태가 문제로 올라와있다. 지금 세계 네티즌이 주목하고 있다. 당당하게 위키피디아에 <PD수첩>을 옹호하는 글을 올려서 세계 네티즌의 심판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
순간 놀랐다. 전 세계 누리꾼들이 실시간으로 편집할 수 있는 열린 공간 <위키피디아>를 인용하는 사례도 처음 보거니와 진 의원의 "<위키피디아>에 게재됐다" "<위키피디아>에 반론을 청구해 세계 네티즌의 심판을 받아 보라"는 주장은 더더욱 생뚱맞았기 때문이었다.
얼핏 들으면 진 의원 주장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가 '세계적 인터넷 백과사전'인 사실도 맞고, 그의 주장처럼 해당 내용이 영문판에 올라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진 의원의 주장은 그야말로 '전 세계 누리꾼들에게 큰 웃음을 줄만한' 억지성 아전인수이자 왜곡이다.
우선 '인터넷에 대한 몰이해'다. 진 의원 말대로 <위키피디아>는 세계적인 사이트다. <위키피디아>의 전신은 <뉴피디아>라는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이었는데, 이 사이트는 전문 편집자들이 내용을 검토해 최종적 '구현'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다가 2001년 1월 어떤 누리꾼이든 편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위키피디아>가 탄생한다.
파격적이었다. '집단지성을 이용한 정보와 지식의 확장'을 모토로 한 이 사이트, 이 때부터 전 세계 누리꾼 누구나 참여하고 편집할 수 있게 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런 '파격' 때문에 늘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바로 '정확성과 신뢰도' 문제다. 검증 시스템 부재에 따른 정보의 부정확성, 일방성에 대한 논란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얼마든지 첨삭할 수 있는 공간 '위키피디아'
즉, <위키피디아>에 특정이슈에 대한 설명이 올라있다고 해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세계 최고 권위의 백과사전'인 양 '말포장'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론보도를 청구하라"는 주장에까지 이르면, 정말 다른 나라 누리꾼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까 창피할 지경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키피디아> 내용은 얼마든지 첨삭될 수 있다. 순식간에 야당이 "<위키피디아>에 <PD수첩> 보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올라와 있다"며 문건을 흔들 수도 있는 것이고(물론 마찬가지로 비웃음을 사겠지만), 지금보다 더 독하게 <PD수첩>을 몰아치는 내용이 올라갈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는 그런 공간이다.
더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이미 언급한대로 <위키피디아>는 언제든지 그 내용을 첨삭할 수 있다. '집단지성에 의한 정보의 확장'작업이 아닌 한 개인에 의한 '전횡'이 이뤄질 경우 사실이 왜곡될 수 있고 편향될 수도 있다. 그래서 <위키피디아>는 나름의 장치를 만들어놨다.
자, 지금부터 <위키피디아>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진 의원과 여의도 연구소 연구위원들이 어떤 함정에 빠졌는지 살펴보자. 어렵지 않다.
진 의원의 주장처럼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에 들어가 검색창에 'pd notebook'을 쳐 보자. MBC와 함께 언급되어 있는 부분을 클릭하면 세 번째 단락에 'PD Notebook and allegations of unethical journalism'이라는 소제목이 나온다. 진 의원이 내보인 문건이 바로 이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MBC는 KBS와 함께 10년간 진보적 정부의 통제 결과 좌편향적인 보도행태로 오랫동안 논란을 불러 일으켜왔다"로 시작하는 이 글, 이미 진 의원측이 번역해 제시했지만 "피디수첩과 MBC는 또 다시 대대적인 논란에 직면했는데 이번엔 시청자를 기만해서 서울에서 3개월간에 걸친 대대적인 항의 시위를 유발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등 내용이 대부분 <PD수첩> 공격 일변도다.
'jayz****'란 아이디 쓰는 누리꾼의 '원맨쇼'
여의도 연구소 관계자는 이 글을 보고 "한 건 잡았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누리꾼은 이렇게 단어사용이 극단적이거나 편향적일 때는 해당 내용 윗부분에 있는 'history' 단추를 클릭한다.
그동안 이 내용(article)이 어떻게 변경되어 왔는지, 어떤 누리꾼이 언제 어떤 내용(article)을 어떻게 첨삭했는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내용의 '내력'과도 같은 것으로, 누리꾼들은 'compare revisions' 단추를 통해 이전 글과 새 글의 바뀐 부분까지 쉽게 살펴볼 수 있다.
'history' 단추를 누르면 한 누리꾼의 '활약'이 유독 눈에 띈다. 'jayz****'란 아이디를 쓰는 이 누리꾼은 2009년 5월 12일 오전 7시 39분 <위키피디아> 해당글 편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누리꾼의 관심대상은 주로 <PD수첩>이었다. 처음엔 'PD Notebook and mad cow controversy'(PD수첩과 광우병 논란) 단락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편집'하기 시작했다. 주로 <조선일보> 기사 URL 등 <PD수첩>을 비판하는 의견 등을 붙이는 등 MBC와 <PD수첩>을 비판하는 내용의 편집을 했다. 이 누리꾼은 이후 12번이나 광우병 논란 글을 편집했다.
2009년 5월 21일에는 'PD Notebook and allegation of unethical journalism'이란 새 단락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진 의원이 언급했던 바로 그 단락이다.
여러 '편집'을 통해 본인의 성향을 잘 드러낸 'jay****'는, 진 의원이 제시한 문건의 맨 첫 구절 "MBC는 KBS와 함께 10년간 진보 정부의 통계 결과 좌편향적 보도행태로 오랫동안 논란을 불러 일으켜왔다"는 문장을 2009년 5월 21일 0시 36분에 새로 끼워넣었으며 같은달 12일에도 유사한 문장을 추가했다. 이 누리꾼은 이후에도 자신이 고친 부분을 다시 고치고 형용사, 부사, 새 문장 등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PD수첩>과 관련해 거의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보인다.
'jay****'의 흔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검색창에 'Lee Myung bak'을 검색하고 역시 'history'를 클릭해 보면 같은 아이디가 또 발견된다. 그는 2009년 6월 9일 이명박 대통령 관련 내용중 'US Beef Import'단락에 언급된 <PD수첩>앞에 'unethical journalism'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다. <위키피디아>에 'US beef imports in South Korea'라고 검색해 보면 그는 2009년 5월 12일 이후 60여 건이나 해당 글을 첨삭했다. '편집'에 있어 거의 '편집증적인 집착'을 보였다. 내용은 물론 <PD수첩>을 비판하는 내용들이다.
한 누리꾼의 주장에 전적으로 기댄 것에 불과
얼추 정리가 된다. 진 의원이 주장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PD Notebook and allegations of unethical journalism'이 타이틀인데, '방송내용에는 나중에 과장되거나 명백하게 즉흥적으로 조작된 근거없는 날조로 밝혀진 주장이 허다했다'. 또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한국에서 3개월에 걸친 항의시위를 유발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이 시위는 한국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하였다'고 게재가 되어 있다."
하지만 살펴본 바 위의 내용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백과사전 사이트가 게재된 것'이 아니라 '<PD수첩> 제작진에 비판적인 한 누리꾼의 주장'에 전적으로 기댄 것에 불과하다. 결국 진 의원과 여의도연구소는 한 누리꾼이 이리 고치고 저리 뜯어내며 펼친 주장을 마치 검증되고 공인된 백과사전에 게재된 식으로 호도한 것이다.
물론 누리꾼 'jay****'을 비판할 이유는 없다. 그의 '원맨쇼'가 다분히 의도적이긴 해도 어느 누구보다 부지런히 <위키피디아>의 맹점을 이용한 누리꾼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금만 살펴봐도 한 누리꾼의 '전횡'임을 알 수 있는 자료를 뽑아다가 "반론 청구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등 한 편의 코미디를 연출한 진 의원과 여의도연구소의 과문함이다.
진 의원과 여의도연구소 연구원들이 참고할 만한 사이트가 있다. 다름아닌 위키피디아 한국판(http://ko.wikipedia.org)이다. 이 사이트에 접속해 <PD수첩>을 검색해 보시라. 영문판보다 훨씬 '균형잡힌' 여러 정보들이 여러 누리꾼의 참여와 편집을 통해 올라와 있다. 마찬가지로 'history'를 클릭해 보면 '집단지성에 따른 정보의 확장'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잘 구현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토론'도 후끈하다.
몰랐나, 알고도 모른 척 했나?
이쯤되면 궁금하다. 진 의원과 여의도 연구소 연구원들은 이런 사실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한 것일까. 인터넷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사이버모욕죄까지 언급하는 거대 여당에서 <위키피디아>의 기본 운영 방식과 철학조차 모르고 있었다면, 하물며 당내 싱크탱크라는 여의도연구소가 찾아냈다는 문건이 이 정도면, 이거 정말 곤란한 거다.
그럼 알고서도 '질렀다면?' <PD수첩>사태에 대해 당이 내놓을 새 논리가 더이상 없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PD수첩>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인 거짓 왜곡선전을 펼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진 의원은 <PD수첩>을 망신주려다가 되레 세계적 망신을 자초하고 말았다. '탄력'을 받았는지, 진 의원은 오는 7월 3일 오전 10시에 의원회관에서 'PD수첩을 통해 드러난 PD저널리즘의 폐해,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토론회는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는 연사들의 주장으로 가득차겠지만 적어도 <위키피디아> 문건을 다시 한번 흔들면서 "세계적 망신이다", "위키피디아에 반론을 청구하라"는 주장은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라건대, 한나라당은 제발 인터넷과 좀 친해져라. 그러려면 먼저 공부 좀 하자.
출처 : <위키피디아>에 반론 청구? 인터넷 공부부터 하세요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