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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끔찍하고 기괴한 풍습
사티 (???) 의식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라 (Live Together, Die Together!)본래 '정숙한 아내'라는 의미로, 남편이 죽으면 산 채로 부인을 화장시키는 풍습입니다.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펀자브 지방에서 성행되었으며,과부의 재혼 금지 풍습때문에 점차 확산되어갔으나 1829년에 사회운동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금지되었습니다. Norse Funeral 스칸디나비아 3국(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에서 행해지던 풍습이었으며 '바이킹 장례'라고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족장이 죽으면 사회적 지위에 따라 그의 재산과 노예들을 배에 태워 불을 지릅니다.고대 북유럽에서는 그렇게 해야 천당 발할라로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의 경우 술을 먹여 취하게 한다음 마을 모든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게 합니다.그 후 밧줄로 메달아놓고 창을 찔러 죽입니다.그들의 시체는 배에 싣고 족장과 같이 화장합니다. 손가락 절단 의식 뉴 기니의 대니(Dani) 족에서 거행되는 의식으로, 죽은 자에게 신체 부위를 제공하는 형태입니다.고인과 관계된 모든 여성과 아이들은 애도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육체의 고통을 견뎌야만 합니다.죽은 친척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절단할 손가락은 끈으로 단단히 묶은 후 도끼로 내려찍어 잘라냅니다.잘라낸 부분은 건조시키고, 태우며, 재는 특별한 곳에 보관합니다. 파마디하나 (Famadihana) 가장 소름끼치는 죽음관련 의식 중 하나이며 마다가스카르에서 행해집니다.죽은자들을 모두 땅위로 꺼내어 새 옷을 입힙니다.산 사람들은 춤솜씨를 뽐내며, 술로 파티는 점점 무르익어갑니다.7년마다 행해지며 죽은 사람들의 영면은 매우 방해받는 것 같아보입니다.이푸가오 의식 (Ifugao Ritual) 죽은자의 팔과 다리를 의자에 묶여 앉아있는 자세를 취하게 한 뒤 집으로 가져갑니다. 엄청난 악취를 풍기는 시체는 8일동안 보관되며, 사람들은 시체 주변에서 애도를 표합니다.몇일 후에 장례식장은 음주 파티로 변합니다. 장례식에서는 천으로 시체의 눈을 가립니다. 라마교 (티베트 불교) 조장 수도승들은 시체를 산 꼭대기로 가져와 깔끔하게 전신을 토막을 낸 뒤 독수리들에게 던져줍니다.남은 뼈는 다시 가져와 가루를 낸 뒤 다른 새들에게 먹여줍니다.그들은 몸이 영혼을 위한 그릇일뿐이라고 믿습니다. Endocannibalism 죽은자의 살점을 먹는 행위입니다.전세계 여러 지역에서 행해집니다. 인도 북부 아고리스 지역에서는 갠지스강물 위를 떠다니는 살점을 먹습니다. 페루의 Amahuaca 인디언들은 화장터에서 뼈를 주워다가 옥수수와 함께 빻은 뒤에 마십니다. 또한 야노마미 인디언들은 애도의 행위로 뼈와 재를 갈아넣고 과일에 믹스해서 먹습니다. Sokushinbutsu (소쿠신부츠, 셀프 미라화) 1800년대 일본의 승려들이 행하던 의식으로써,미라가 되기 까지 2000일 정도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보통 죽음의 징후를 포착했을 때, 작은 소나무 관에 들어가 긴 명상을 시작합니다. 그 후 죽기전까지 솔잎, 나무껍질, 견과류만 섭취하며 온 몸의 지방을 제거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들의 몸에서 박테리아와 수분이 사라지며 부패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승려들은 이로써 깨달음을 얻고, 부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영안실 토템기둥 이것은 주로 상류층들에게 행해지던 의식이었습니다.하층민들은 주로 새들에게 던져주었습니다.시체를 펄프밑에 깔아서 나무상자에 넣고 상자는 집 앞에 있는 토템 기둥 꼭대기에 올려놓습니다.기둥은 고인의 저승 여행의 동반자로 여겨졌습니다. 우주 매장 (Space Burial) 돈은 힘입니다. 어디에 묻히고 싶으신가요? 달? 아니면 다른 행성 또는 깊은 우주?가격은 700달러에서부터 6만달러까지 다양합니다.Celestis라는 민간 회사가 이 프로젝트를 연구중입니다.
LoMi작성일
2017-10-1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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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누가 김구를 죽였나?
1996년 10월23일 오전 11시 30분경 박기서는 당시 인천시 중구 신흥동에 살고 있던 안두희를 찾아가 '정의봉(正義棒)'으로 현장에서 처단하였습니다. "국부(國父)를 시해한 죄인이 천수를 다하는 것을 지켜 볼 수 없다." 는 게 그의 지론이였습니다. 그럼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안두희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경. 인천의 한 아파트에 몽둥이를 든 중년 남성이 들이닥쳤다. 몽둥이에는 '정의봉'(正義棒)'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경기도 부천에서 버스기사로 일하는 박기서라는 평범한 가장으로, 평소에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이 천수를 다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안두희를 처단하기로 결심한 후 부천시장의 그릇가게에 가서 홍두깨 비슷한 몽둥이(40Cm 크기)를 4천원 주고 사서 안두희 집으로 달려간 것이다. 박기서는 누워 있는 안두희에게 장난감 권총을 겨누며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권총이 불을 뿜는다"고 고함을 쳤다. 이어 준비해간 나일롱 끈으로 두 손을 뒤로 묶고 '정의봉'으로 사정없이 구타했다. 숨이 차면 냉장고에서 찬 물을 꺼내 마시면서 계속 두들겨 팼다. 이윽고 안두희는 욕된 인생을 마감했다. 박기서 씨는 안두희 씨가 숨진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택시를 타고 신곡본동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한 후 경찰에 자수했다. 고해성사를 들은 이준희 신부는 이렇게 회고했다. "박기서 씨는 김구 선생을 죽인 안두희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데 역사가 그 일을 하지 않으니 자신이 사명감을 갖고 죽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두희의 장례와 그 영혼에 대해 걱정하면서 성당에서 안두희 장례를 치르는데 도움을 줄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박기서 씨가 구속 기소되자, 사회 각계 인사들이 '백범 암살범 안두희 처단 박기서 의사 석방대책위원회'를 구성해 9,200명의 명의로 인천지방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박기서 씨는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3.1절 특사로 1년 4개월만에 풀려났다. 백범 김구선생 서거 소식을 듣고 경교장 앞뜰에 몰려와 애도하는 시민들 치밀한 각본에 의한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인 안두희, 특별한 보호를 받다 "탕~탕~탕~탕"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1년도 안된 1949년 6월 26일 낮 12시 45분. 초여름의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는 경교장(현재의 강북삼성병원) 2층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집무실에서 총성이 잇따라 울렸다. 아래층 응접실에 있던 비서 선우진, 이풍식, 이국태 등과 경비경찰 두 명이 뛰어 올라갔을 때는 백범은 이미 운명한 후였다. 총을 발사한 포병 소위 안두희는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 권총을 내던졌다. 비서진이 안두희를 구타하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서대문 경찰서 경비주임에게 신병을 넘기려는 순간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경교장에 들어선 이들은 헌병대 소속 김병삼 대위 등 현역 헌병들로, 사건 발생을 미리 알고 인근에서 대기한 것으로 보였다. 이들은 완력으로 비서진과 경찰관을 밀치고 타고 온 스리쿼터에 안두희를 싣고 헌병사령부로 데려갔다. 헌병사령부에는 성묘를 간 장흥 사령관 대신 전봉덕 부사령관이 대기하고 있었다.백범 김구선생 암살 사건 현장 지휘한 전봉덕 당시 헌병사령부 부사령관 전봉덕은 범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의식을 되찾는대로 그 배후를 엄중 조사하겠으나 단독 범행인 것 같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이나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 등도 '단독 범행', '군과 무관', '한독당 내분' 등을 들먹이며 화살을 돌리는 데 급급했다. 다음 날 안두희가 특무대로 이송되자 기다리고 있던 김창룡 특무대장은 커피를 제공하고 경어를 쓰는 등 극진히 대접했다. 여기서 안두희는 김창룡이 숙직실을 호텔 수준으로 개조한 '특별감방'에서 VIP고객처럼 안락하게 지냈다. 군법회의를 기다리는 동안 임시정부 계통인 장흥 헌병사령관은 경질되고 그 자리에 친일경찰 출신으로 이승만의 총애를 받던 전봉덕이 임명됐다. 안두희는 1949년 8월 7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서울 이태원 육군형무소에 수감됐다. 여기서도 특별대우를 받으며 특별감방에서 유유자적하게 수형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이 해 11월에 15년으로, 다음해 3월에는 다시 10년형으로 감형됐다. 유례 없는 특혜였다. 신사복 차림의 안두희 6.25전쟁 통에 풀려난 안두희…잔형도 면제받고, 군대로 복직하고, 사업도 승승장구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승만이 제일 먼저 도망쳤다. 그런데 이 혼란의 와중에 안두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채병덕이나김창룡의 도움으로 감옥을 나온 그는 육군 특무대 문관이라는 완장까지 찼다. 다시 군대로 들어간 그는 1년도 안돼 중위, 대위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이어1951년 2월 15일에는 신성모 국방장관의 지시로 잔형을 면제받았다. 이에 따라안두희는 범행 1년 7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정말 대단한 빽이다. 그러나 부산 임시국회에서 무소속 김이환 의원이 안두희가 풀려나 군에서 고속 승진한 사실을 폭로하자, 서둘러 소령으로 진급시킨 후 예편시켰다. 사회로 나온 안두희는 사업에 손을 댔다. 군 상층부의 비호 속에 강원도 양구에서 군부대에 두부. 콩나물. 된장. 소고기. 돼지고기. 김치 등을 납품하며 돈다발에 파묻혔다. 하지만 승승장구 하는 그에게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었다. 이승만이 미국으로 도망가자 쫒기는 안두희 이승만의 폭정이 드디어 4.19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그해 6월 독립투사 김창숙 선생을 위원장으로 하는 '백범 김구 선생 11주기 추도식이 효창원 공원에서 열렸다. 암살된 후 처음으로 열린 공식 추도식이었다. 이 자리에서 '백범선생 살해 진상규명투쟁위원회'가 발족해 활동에 들어갔다. 중요한 제보가 잇따라 나왔다. 4.19혁명 후 사회혁신당 대표였던 고정훈 씨는 "김구 암살은 이승만의 지령으로 측근 임병직 전 외무장관과. 신성모 전 국방장관이 모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고정훈은 해방 후 미 24사단 정보처 장교와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을 지낸 정보통이다. 제헌의회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돈은 미국 보스톤에서 김구 암살 당시 주한 미대사관 부영사를 지낸 그레고리 헨더슨으로부터 중요한 얘기를 들었다. 채병덕 육군참모총장 연설을 듣는 미국 정보장교 짐 하우스만 소령 "핸더슨이 내게 왜 이승만이 서둘러 하와이로 망명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자기가 알기로는 김구 암살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만이 쫓겨나자 잠적한 안두희에 대한 추적작업도 시작됐다. 먼저 광복군 3지대 간부 출신인 김용희가 종로 2가에서 안두희를 발견하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 끝에 붙잡아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일사부재리 원칙과 공소시효 1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김제 출신의 열혈청년 곽태영이 나섰다. 그는 1965년 12월 22일 강원도 양구군 중리에서 안두희를 찾아내 잭나이프로 목을 찌르고 돌로 머리를 쳐 중상을 입혔다.세번째 응징자는 권중희였다. 그는 1992년 4월 12일 인천의 아파트에 숨어 사는 안두희를 찾아내 정의봉으로 두들겨 패며 '배후'를 밝히라고 요구했다정의봉에 두들겨 맞은 암살범 안두희와 권중희 얽히고 설킨 사건의 배후…'이승만이 시키고 군부가 실행한 것'이 가장 유력 오랜 기간 백범 김구 암살사건을 추적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이 책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추적자들과 연구가들에 의해 드러나기 시작한 암살 배후는 김창룡과 신성모를 비롯한 군부세력, 해방 후 친일파 척결을 주장해온 김구에게 위협을 느낀 친일세력, 그리고 단독정부 추진세력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바라는 김구의 정치노선을 비판해온 미 정보기관의 개입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의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할 때 이승만의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승인' 또는 '암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 사진12. 2009년 백범 김구선생 60주기를 맞아 묘소에 어린이들이 절 ] 이승만은 대통령 자리에 올라갔고, 김구는 암살되었다. 현실에서 이승만은 승리자고, 김구는 패배자다. 하지만 두 사람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정반대다. 현실의 승자 이승만은 국민이 권좌에서 끌어내린 독재자가 되었고, 김구는 민족의 분단을 막기 위해 자기를 희생한 순교자이며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이것이 역사의 반전이다.이승만 개색히근데 미국도 왠지 김구 암살에 관여했을 거 같은데이승만이 다루기 쉬웠고 민족지도자인 김구는 다루기 힘들어 죽였다는 말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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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간편 종합뉴스?
4월 17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1. 검찰이 오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줄곧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먼저 재판에 넘겨진 공모자들은 대부분 ‘모든 것은 VIP가 시켰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시킨 사람은 없는데 다 알아서 했다는 거야? 그런 거야?
2. KSOI의 조사에 의하면 문재인vs안철수 양강 구도가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오차범위를 벗어난 10% 포인트 이상 앞섰습니다. 이번 조사는 1차 방송토론과 대선후보 등록 이후 첫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5:1로 붙어도 별루던데 1:1 맞장 토론은 뭔 용기로 그런데? 그냥 궁금해서~
3. 극우 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이번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 홍준표 자유당 후보의 선거 연대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명분은 지역구도 타파라고 주장하지만, 목적은 문재인 집권 저지가 분명해 보입니다.
오죽하면 조갑제가 저럴까? 하긴 선거라는 게 차선을 선택하는 거라긴 하더라만...
4.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현철 씨와 함께 상도동계 좌장으로 꼽히는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뭐 지지야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지만, 별루 도움이 안 될 거 같은데... 어쩌나~
5. 홍준표 자유당 대선 후보는 16일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안산 분향소에서 열리는 기억식에 5당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불참했습니다. 이에 대해 홍 후보는 ‘세월호 갖고 3년 해 먹었으면 됐지,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말하는 뽐새하고는... 아무래도 세탁기가 아니라 분쇄기가 필요할 거 같아~
6. 바른정당 내부에서 유승민 대선후보 사퇴를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유 후보는 완주 의지를 강력히 시사했지만, 바른정당은 대선 투표용지 인쇄 전에 의원총회를 열어 사퇴를 포함한 당의 대선 방향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쭈욱 가는 게 이후를 위해서도 좋지 않겠어? 그렇다고~
7.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가 '최고의 록밴드'라는 수식어를 내한 공연에서 증명했습니다. 결성 19년 만에 처음 한국 무대에 오른 콜드플레이는 세월호 3주기를 애도하는 ‘픽스 유’를 부르는 등 노래를 통해 더 큰 위로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노란색만 봐도 경기한다는 그분의 독방 앞에서 하루 죙일 불렀으면 좋겠다...
8. 독일 현지의 독일 학생들이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추모곡을 보내왔습니다. 참여연대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독일 요하네스 네포묵 고등학교 소녀합창단이 ’세월호 3주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슬픔을 위로합니다‘라며 합창 영상을 전했습니다.
이방인도 애도를 전하는데, 3년 우려먹는다는 인간 머릿속엔 뭐가 들었을까?
9. 국정원이 ‘알파팀’이라는 민간 여론조작 조직을 운영했다는 조직원의 폭로가 나왔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직후 결성되어 국정원이 '나라 위해 여론 바꾸는 일 해 달라며 한 달에 50만~60만 원을 지급해 활동했다고 합니다.
이런 짓이나 하고 있으니... 국정원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해체해야 한다고 봐~
10. 미국 백악관 관계자는 사드 배치 완료와 실제 운용은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펜스 부통령의 황교안 대행 면담을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사드 배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여겨집니다.
마냥 밀어붙이든 우리 정부는 뭐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거야?
11. 최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가짜뉴스가 전단지 형태로 제작돼서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단지를 만든 인물이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해서 법적 처벌까지 받았던 '지만원'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인간을 어쩌면 좋니 그래~ 아직 뜨거운 맛을 못 본 거지?
12. 군 입대를 피하려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척 '연기'를 하는 등 병역기피 수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신질환을 위장한 이들이 가장 많았고, 체중을 조작하거나 문신을 한 젊은이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드러기로 면제받아 대통령 권한대행도 하는 세상인데 뭐... 그 정도는 애교지~
13. 가계를 짓누르는 교육비와 주거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교육비와 주거비에 대한 부담으로 연금·보험 가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등 가계가 노후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사교육 폐지 공약한 남경필이 어디 갔나? 갑자기 마이 아쉽네~
14. ‘교육방송’ EBS ‘까칠남녀’가 국내 최초 젠더토크쇼를 표방하고 겨드랑이 털, 피임, 결혼, 졸혼(결혼졸업), ‘김치녀’ 등의 남녀차별에 관한 주제를 선정해 화제입니다. 교육방송이라 더욱 화제를 모으며 실시간 반응도 쏟아지게 하고 있습니다.
‘남녀차별’ 성 평등에 관한 얘기는 당근 교육적 문제 아닌가? 긍까 EBS가 맞지~
15.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흑인 특유의 '아프로 헤어'(둥근 곱슬머리)를 한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곱슬머리로 되돌아간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머리 펴느라 힘들었어요’라는 글을 SNS에 올렸습니다.
거기는 퇴임 후에도 꾸준하게 머리 관리해주는 올림머리 자매가 없는 모양이지?
16. 한강공원 등에서 낚시로 잡은 잉어 등의 민물고기는 먹어도 될까요? 환경부와 서울시는 ‘한강 어류 중금속 오염도가 기준치 이하’라고 밝혔지만, 환경 전문가들은 ‘녹조가 발생하는 한강에서 잡힌 물고기는 유해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손맛만 보세요. 괜히 몸보신 하려다 수명만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요~
17. 화장품이나 유아용품 등에 합성원료를 사용하고도 100% 천연성분이라고 과장해 판매하거나 친환경 인증 마크를 도용한 업체들이 대거 적발됐습니다. 정부는 이번 점검을 토대로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제도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손수 내가 집에서 만들지 않고서야 100% 천연성분이라는 게 있나 싶어...
18. ‘인형뽑기방’에서 인형을 싹쓸이해 화제를 모은 20대 남성 두 명에 대해 경찰이 ‘절도범이 아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경찰은 이들의 뽑기 실력이 '개인 기술'이라는 점을 일부 인정하고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종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친구들 ‘인형뽑기 전문학원’이라도 차리는 건 아닌지... 한 수 배우고 싶네~
@역대 최다 후보, 투표용지 30cm. 헐~
@안산 세월호 '기억식'에 2만 명 운집. ㅠㅜ
@홍준표, ‘예수님 부활하듯 자유당 부활’. 풉~
@토트넘, 손흥민과 재계약 추진. 격세지감.
당신이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당신이 있지 않은 곳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
- 찰리 존스 -
현재의 위치에서 충실하고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이번 주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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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간편 종합뉴스?
3월 31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1.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영장심사를 받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오명과 함께 8시간 40분이라는 '역대 최장시간 영장심사' 기록을 남기게 됐습니다. 영장심사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은 검찰청에서 대기하던 중 오늘 새벽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SNS에 도는 얘기를 보자면 이래도 18, 저래도 18이던데... 18년 형을 받을라나?
2. 전두환이 10·26사태 직후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을 전방 군부대에 격리 조치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두환은 ‘최태민이 박정희 대통령 유족의 주변을 맴돌며 비행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격리를 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범죄자는 범죄자를 딱 알아보는 거지... 동종 업자끼리 한눈에 말이야...
3. 우병우 전 수석의 '인사 전횡'과 관련해 외교부 인사국장을 지낸 간부급 A 외교관이 최근 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A 씨는 청와대의 하명에 따라 영사국장 등의 좌천성 인사 경위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 김수남 청장에게 전화하려나? (뚜 뚜 뚜...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4. 자유당이 당 소속 김현아 의원 섭외를 문제 삼으며 MBC '무한도전'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오는 4월 1일 방송 예정인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과 관련해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입니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비고 있구만... 자유당의 끝없는 무한도전일세~
5. 자유당이 대통령선거 전략으로 구상하는 '후보 단일화' 공식을 놓고 당내에서 설이 분분합니다. 애초 바른정당과 손을 잡고 국민의당과 단일화를 모색하지 않겠냐는 관측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의당과의 연대론이 부쩍 잦아졌습니다.
아무리 정권을 잡는 게 정당의 목적이라지만, 설마 국민의당이~ 불안하다...
6. 해양경찰청을 부활해 해양 안전을 강화하는 차기 정부 조직개편안이 제시됐습니다. 이르면 오는 6월부터 시행한다는 내용으로 민주당 대선 공약에 반영될 수 있어 관가가 술렁일 전망입니다.
이러면 정권 다 잡은 것처럼 군다고 트집잡힐 텐데... 괜찮겠어?
7. 세월호 선체에 대한 기초조사를 위해 직접 현장을 찾은 선체조사위원들은 곳곳이 녹슬고 훼손된 세월호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김창준 위원장은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 ‘아이들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라면 이런 심정이 맞지... 세월호가 금기어라는 인간들이 사람이냐고~
8.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4년 방한 중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의미로 단원고에 전달한 목련이 꽃망울을 맺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목련은 아름다움을 뜻하고 봄마다 새로 피어나는 부활을 의미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목련처럼 밝고 환한 아이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오늘 오는 비는 그래서인가...
9. 법원이 고 최혜정 씨 등 단원고 교사 4명의 유족이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거부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보훈처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보훈처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하기로 했습니다.
보훈처 니네 왜 그러는데? 거기도 노란색만 보면 경기하고 막 그래?
10. 서울시립대가 ‘병신 같은 X. 빨갱이’ 등의 막말과 체벌을 하고 출산계획을 반복적으로 질문한 교수에게 ‘실명 공개경고’라는 서면경고 처분을 내려 논란입니다. 학생들은 ‘징계위원회도 열지 않고 내린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수 영입 전에 정신감정부터 받게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이거야 원~
11.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홍역을 치른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채무조정을 놓고 얼어붙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의 최대 투자자인 국민연금은 채무조정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정치적 해석이 꼬리표로 붙으며 비난에 휩싸일 판입니다.
양치기 소년이 되었으니 누가 믿어주겠냐고... 이게 다 자업자득인 게야~
12. 군에 무장다운 장군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권의 입맛대로 인사를 하다 보니 계급이 높아질수록 대가 세고 무인의 풍모가 넘치는 장군 보다는 말 잘 듣는 유약한 서생적 장군이 판을 친다는 얘기가 군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전시 작전권도 없는 나라에서 장군이 필요하긴 한 거야? 아닌 거 같은데~
13. 지난 1월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임금총액이 1년 전에 비해 15.6% 증가했습니다. 임시·일용직의 경우 4.7% 증가에 그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평균 433만 원 vs 157만 원으로 더 벌어져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같은 보수를... 비정규직 철폐하라~~
14. 자영업자 2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4명이 최근 신규 대출이나 만기 연장 거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소득이 줄고 은행권 대출이 막히자 고금리 시장으로 밀려나고 있는 형국입니다.
10명 중 4명이 아니라 담보가 없으면 10명 중 10명이겠지~ 니들 얄짤없자나~
15. 아베 총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리토모학원 국유지 헐값 매입 논란이 결국 검찰 손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최근 아베 지지율이 하락하는 등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아베의 부인인 아키에의 연루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잘 나가던 아베도 한 방에 훅 가는 거지... 근데 왜케 기분이 좋냐 그래...
16. 관람객 30만 명을 돌파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집트 보물전'이 전시 기획 상품을 애초 가격의 2배가 넘게 판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7만 원짜리 ‘람세스 2세 벽화공예품’의 포장을 벗겨보니 3만 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귀신에 홀린 게 아니라 이집트 미라에게 홀렸나 보네... 여긴 최저가 보상 없어?
17. 만 1세의 어린 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20대 아버지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제주동부경찰서는 30일 새벽 14개월 된 어린 딸이 울고 보채자 손과 발 등으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딸아이의 아버지를 긴급 체포했습니다.
애를 안 낳아서도 문제, 저런 인간들 때문에 낳아도 문제라니까... 짜증 나~
18. 강원 정선군에서 40대 남녀가 열흘 넘게 소주 60병을 함께 마시다 여성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들은 알콜중독센터에서 만나 정선으로 여행을 왔으며, ‘죽을 때까지 술을 마시자’며 열흘 동안 소주 60병 이상을 마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할 말이 없네~
@경찰, 신연희 구청장 휴대전화 압수. 따봉~
@세월호, 오늘 마지막 항해 떠난다. 어여 와~
@BBK 김경준, ‘적폐청산에 MB정부도 포함’. 긍까~
@메가박스, 만우절 청소년이라 말하면 누구나 할인. 흐~
3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오전은 미세먼지로 공기가 다소 탁하겠고, 오후에는 전국에 비 소식이 있습니다.
기왕에 오는 비가 더러운 공기를 말끔히 씻어주었으면 좋겠네요.
출근길 우산 꼭 챙기시고 3월의 마지막 날을 기분 좋게 보내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눈부시도록 환한 4월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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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후진국, 선진국에 따른 다른 반응 다르게 보기
(글이 좀 깁니다. 나름대로 밑에 세 줄 요약은 해놨습니다.) 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전체를 보자는 의도는 좋으나 좀 다른 측면으로 볼 수도있는 것 같습니다. 유독 프랑스를 더 애도하는 전세계적인 현상은 사람들이 단순히 시류에 편승하고 있거나, 후진국, 선진국을 차별하는 것만이 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부분도 분명 있다고 보지만 그게 주는 아닌 것 같다는 거죠. 약간 사람 심리를 파헤치는 쪽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요? 사람은 상대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고, 접하고, 공유할수록 자기와 상대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가족, 연인, 친구, 이웃 등이 그렇죠. 반면 정보가 부족하거나 자주 접하지 않으면 그 만큼 낯설고 심리적 거리도 멀어지죠.이는 상대에게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슬퍼하는 정도와 직결되겠죠.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난민 100명의 죽음보다 내 옆집에서 10년 동안 알고 지내고 자주 보던 이웃의 죽음이 더 슬프고 충격적이지 않나요? 단원고 아이들의 죽음도너무 슬프지만 내 자식 한 명의 죽음이 더 큰 심리적 타격을 주지 않을까요? 단원고아이들의 죽음 때문에 서울에 있던 한 부부의 삶이 자기 자식들을 재껴두고 슬픔으로 짓눌려 피폐해진 경우가 있을까요? 심지어 이번 프랑스테러로 죽은 사람들에 대한 슬픔보다 내 자식처럼 키운 평생 반려견의 죽음이 심리적인 충격을 더 크게 가져오지 않을까요? 이런 건 언뜻 생각하면 뭔가 미안한 듯 찔리는 것 같지만 잘 따져보면 인지상정이지 않나 싶습니다. 공자님도 유독 아끼던 제자가 있었고, 그의 죽음을특히나 더 슬퍼하셨더랬죠. 예수님도 베드로를 특히나 더 좋아하셨죠.상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심리적 거리에 따른 슬픔의 강도의 차이는 일반 중생이나 성인이나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포함해 전세계인은 프랑스에 대해 심리적 거리를 시리아, 이라크 등에 비해월등히 가까이 두어 왔다고 봅니다. 당장 우리만 봐도 그렇죠. 시리아어, 이라크어로 인사할 줄 아는 분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하지만 프랑스어로 봉쥬르 모르는 사람은요? 거리만 나가도 에펠탑 로고는 심심찮게 볼 수 있죠. 우리는 무의식중에도 프랑스의 정보를 많이 접합니다. 그 만큼 무의식중에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처럼 느끼게 되죠. 서점, 영화, 광고 등에서 끊임없이 프랑스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심지어 프랑스에대한 막연한 낭만 같은 것을 갖기도 하죠. 당연히 프랑스와의 심리적 거리는 그 정보를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이라크나 시리아에 비해 많이 좁혀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이 후진국과 선진국을 차별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시류에편승하기 때문에 프사를 바꾸는 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시리아나 이라크에 대한 정보가 프랑스만큼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노출됐다면 어땠을까요? 우리가 이라크어로 인사도 할 줄 알고 시리아어로 회화를 하면 왠지 근사하다고 느꼈다면 어땠을까요? 더 많은 이들이 두나라의 슬픔에 함께 애도했을 거라고봅니다. 따라서 지금 프랑스에 애도를 표하는 페북 프사를 저렇게 비꼬는 것은 그런 사람의 심리를 미처 따져보지 못한데서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형님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3 문장 요약1. 프랑스를 애도하는 프사는 생각 없는 시류 편승이나 비인도적인 국가차별이라기보단 일종의 심리적인 문제인 것 같음.2. 더 자주 과련 정보를 접하는 상대일수록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며, 그 상대의 슬픔이 더 큰 심리적 영향을 끼친다고 봄.(예:아프리카 난민 100명의 사망뉴스보다 잘 알고 지내는 옆집 이웃 한 명의 죽음이 더 큰 심리적 충격을 줌) 3. 프랑스에 대한 정보는 시리아, 이라크에 대한 정보보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더 많이, 자주 접하는 정보임.(예: 봉 쥬르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라크어로 인사할 줄 아는 사람은? 서점, 영화, 광고 등도 한 몫 함)결론 시리아, 이라크에 대한 정보도 프랑스만큼 많이 접했다면, 또 이미지가 좋았다면 사람들이 비슷하게 애도했을 가능성이 큼. 그런데 마치 사람들이 비인도적이거나 선진국과 후진국을 대놓고 차별하기 때문에, 그리고 시류에 편승하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는 듯한 저 그림은 그다지 적절하진 않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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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터] [세월호가 잊혀질 때 쯔음] 트라이앵글 사건/ 혜민스님
혜민스님
백 년 전만 해도 미국은 하루 평균 100여 명의 사람이 직장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광산이 무너지거나 배가 뒤집히거나 기차가 충돌하거나 공장이 불타는 사고가 아주 흔한 일상처럼 벌어졌다고 한다. 미국 경제는
19세기 후반부터 철강과 철도산업을 선두로 기계를 이용하는 제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영국이나 독일 경제를 능가하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유럽에서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이민자들 덕분에 값싼 노동력이 풍부했으며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사업가들은 미국 북동부 지역에 많은 공장을
짓고 그 노동력을 활용했다. 하루에 평균 백 명씩 죽어나가는 상황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안전, 근로환경 등에 관심을 가지는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11년 3월 25일, 뉴욕 맨해튼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고가 사람들의 생각을 대대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Triangle Shirtwaist)라는 대형 봉제 공장에서 난 큰 불이었다. 이 불은 여타 다른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와는 다르게
미국 사람들 안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만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사망한 희생자의 수가 146명으로 엄청났고, 대부분의 피해자가 10대와
20대의 꿈 많은 어린 여공들이었다. 더욱 기가 막혔던 것은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 주된 원인이 계단으로 연결되는 비상구의 문을 공장
측에서 열쇠로 잠가놓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열쇠를 가지고 있던 공장 측 간부는 불이 나자 나 몰라라 먼저 도망을
갔다. 안타깝게도 소방차가 뿜어내는 물줄기는 불이 난 9층까지는 닿지 못했다. 잠겨 있던 비상구 문을 필사적으로 두들기고 또
두들기다가 여공들은 연기에 질식하거나 불에 타 숨졌다. 또 어떤 이들은 9층 창문을 통해 거리로 뛰어내렸다. 길에 떨어진 그 여공들의 참담한
시신은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 한가운데를 피로 물들이면서 외면하려야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크나큰 사건이 되었다. 불탄 주검으로 돌아온 딸의
모습을 확인하는 가족들의 오열하는 모습이 신문을 통해 전해졌고, 시민들의 분노는 인명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비상구 문을
밖에서 잠가놓은 봉제 공장 사주를 향했다. 그와 동시에 젊은 날에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뉴욕 시민들의 검은
옷의 물결은 맨해튼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 사고는 그동안 관행처럼 무시해왔던 안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을 통째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먼저 일반 시민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각종 노동단체들이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머리를 모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공공안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위원회를 중심으로 안전에 관한 새로운 규제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화재가 발생한 후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총 64가지
법안이 만들어져 그 가운데 60가지가 뉴욕주에서 통과되었다. 새로운 규제 조항 가운데에는 근무 시간 동안 비상구 문을 잠그는 것을 금지하고,
소화전과 화재경보기·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건물 자체에 방화시설을 갖춰야 하며, 만약 스프링클러 시설이 없을 시 화재 예방 훈련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식당과 화장실의 시설을 현대화하도록 했으며, 여성과 아이들의 공장 내 근무 시간을 줄이는
규정을 만들었다. 백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놀랍게도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 화재는 많은 미국인의 뇌리에 아직도 박혀
있다. 2008년에 그 화재를 추모하는 동맹 단체를 조직했는데 무려 200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했고, 2011년 3월 25일에는 화재가
시작되었던 오후 4시45분에 미국 전역의 많은 교회와 학교, 소방서에서 추모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수많은 영화와 소설, 음악이 아직도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 화재를 담아내고 있으며, 미술가들은 희생자들이 백 년 전에 살았던 집 문 앞으로 가서 그들의 이름을 적고 꽃이나
삼각형의 트라이앵글 모양을 그려서 그들을 해마다 추모한다.
백 년 전에나 일어났을 법한 일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났다. 이번 사고는 그동안 안전보다는 성장을 더 중시해온 배금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번 다시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이 땅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의 분노와 슬픔, 비난과 책임 추궁을 넘어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구체적이면서도 이성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월이 지나 망각의 바다로 그들을 보내기엔 이번
상처가 너무도 크고 깊다.
레포맨작성일
2014-07-0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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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김문수 曰 여기는 경기도 아닙니다.
'뉴스타파' 김문수 "여기는 경기도가 아니라서…" 발언 여론 '뭇매'(서울=뉴스1) 온라인팀입력 2014.04.18 13:44:15뉴스타파 영상 캡처 ? News1(서울=뉴스1) 온라인팀 =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을 방문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발언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가 18일 보도한 진도 사고 현장 스케치 영상에서 김문수 지사는 한 실종자 가족의 항의에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실종된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는 김문수 지사에게 "경기도 지사님은 지금 책임질 수 있는 발언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 뉴스에는 0시 40분에 수색을 재개하고 있다는데, 실제로 가 보면 안 되고 있습니다. 언론플레이는 다 하면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절규했다.이에 김문수 지사는 "저는 경기도지사지만 경기도 안에서는 좀 영향력이 있는데 여기는 지금 경기도가 아닙니다"라며 "그래서 여러가지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단 해수부 장관이 여기에 오면 (현장 지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뉴스타파 속 김문수 지사의 발언에 대해 누리꾼들은 "뉴스타파 김문수 발언, 이해가 안가", "뉴스타파 김문수 발언, 가서 뭐하는 거지", "뉴스타파 김문수 발언, 실종자 가족들이 위해 봉사활동이라도 하던가", "뉴스타파 김문수 발언, 실종자 가족이 그런 대답 원했겠냐?", "뉴스타파 김문수 발언, 정말 무책임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한편, 김문수 경기지사는 지난 1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애도하는 자작시를 올려 논란이 됐다.김 지사는 시를 통해 이번 사고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하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누리꾼들은 '사고 당사자나 가족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처사'라고 지적했다.출처 - http://news1.kr/articles/1639559====================================================이 냥반 도지사하고나서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듯....경기도지사가 정말 재미진 자리였나보다.맨날 도지사, 도지사 입에 달고 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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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그림속에 숨겨진 이야기들
1. 밀레의 《만종》
우선 첫번째로 소개해드리는 유명한 밀레의 만종입니다.
딱 처음 봤을때 이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인데요~ 대게 사람들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그렇게 배웠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있는 농민 부부의 바구니를 잘 살펴보십시요.
바구니 안에는 뭐가 보이나요?
감자와 밭일 도구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저 기도하고 있는 부부의 아기의 시체 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배고픔으로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아기도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아기를 바라보며 애도하는 그림이죠.
그렇습니다. 원래 초에는 바구니가 아닌 아이의 시체였습니다.
관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바구니안에 아이 시체라는 말도 있는데 어느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
큰 흉년이 들었던 해, 농부 가족은 굶주림에 시달리며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서 따뜻한 새봄이 오면 씨감자를 심어 배고픔에서 벗어 나리라 한가닥 희망을 가슴에 품은채,
춥고 긴 겨울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근데 새봄이 오기도 전에 사랑하는 어린 아이가 배고픔에 지쳐 그만 죽어 버리고 말았다.
너무 가난했기에 관을 살 돈조차 없었나보다.
감자가 담겨 있는 바구니에 죽은 아이의 시체를 담고 부부는 땅에 묻에 주려고 나온 것이다.
원래 그림에는 감자 바구니에 아이의 시체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근데 밀레의 친구가 그림을 보고는 너무 잔인하다고 충고했고, 밀레는 아기 위에 감자를 덧칠해 그렸다고 한다.
x-ray사진을 찍어 보면 바구니속엔 죽은 아기의 시체그림이 실제로 나타난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이를 공동 묘지에 조차 묻을 수 없어, 밭 귀퉁이에 아이를 묻어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서양 사람들은 죽을 때는 목사님을 불러다가 시체를 묻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인데, 왜 그림엔 목사님이 안보이는걸까?
아마 그 부부는 최하층 천민에, 끔찍한 가난을 겪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마 밭도 그 농부 부부의 소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어두워 지기를 기다려, 남의 밭 한귀퉁이에 밭주인 몰래 아이를 묻으려 하고 있다.
〃
살바도로 달리는 이 그림을 보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그 불안감이 얼마나 집요하게 그의 뇌리에 들러붙었는지 달리는 오랫동안 그 까닭을 알아내려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까지 했다고 하는군요.
2. 영국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 초상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담아내려고 했던 윌리엄호가스.
당시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 2남 2녀가 그림속에 있는데,위의 그림을 보면 수줍은듯 웃고있는 두 자매,
의자에 앉아 새장 속의 새를 올려다보며 음악상자를 연주하던 장남유모차에 앉아 있는 막내 등 4명의 아이들이 보입니다.
한가지 사실은, 왼쪽아이는 드레스를 입고 있어 여자아이 같이 보이겠지만 사실은 사내 아이입니다.
〃
당시 유럽에서는 남자 아이들도 여자 아이 옷을 입혀 키웠다.
그 이유로는 "남아 사망률 > 여아 사망률"남자 아이를 여자 아이로 보이게 하면 죽음을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였다.
하지만 저 그림중의 가장 어린 막내 토마스는 이 그림이 완성되고 몇일 후 사망했다.
〃
그리고 그림분석가는 이 그림을 보고 그림속에 죽음이 예견 되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몇가지 증거로는,
(동그라미가 표시된 곳을 보세요~)
1. 커다란 낫을 들고 있는 천사 상 : 사투르누스의 지물이자 죽음의 도구 낫(죽음을 상징)2. 두 눈을 번뜩이며 새장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 : 마치 새장 속의 새를 노리는 눈빛
3. 새장속의 새 : 고양이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낀 듯 날개를 파닥거리는 새4. 토머스가 앉아 있는 유모차 : 유난히 눈에 띄는 새 장식(날개를 파닥거리는 새는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가는걸 의미)
윌리엄 호가스는 죽음을 예견했던 것일까??
3.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 《무대 위의 무용수》
에투알(etoile) : 프랑스어로 별(Star) 의미. 발레에서는 스타 무용수를 가리키는 말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뒷모습에는 당시 어두웠던 사회상이 숨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
발레에 대한 평가가 낮았던 19세기 후반...
긴 드레스로 다리를 가리고 다녔던 당시 여인들은,
다리를 드러내놓고 춤을 추는 무용수들을 경박한 존재로 취급했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무용수들은 생계 위협을 느껴후원자들의 경제적인 지원에 의존 할 수 밖에 없었다.
〃
검은 양복 차람의 한 남자가 보이죠? 발레리나의 후원자라고 하네요.
여기서 후원자란 요즘말로 하면 일종의 스폰인 셈이죠~
돈주고 사람을 사는..
4. 네덜란드 농민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the Elder) - 《교수대 위의 까치》
1568년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담은 그림 완성.
위 그림을 보시면 교수대 밑에서 사람들이 춤을추고, 왼쪽에는 변을 보고, 뒤에 사람들이 줄이어 올라오는
그저 평범한 평화로운 그림입니다.
그.러.나 교수대 위의 까치 한 마리가 거슬리지 않습니까?
당시 그 시대의 까치는 남을 중상모략하는 밀고자에 비유되었다고 합니다.이 그림의 탄생 배경에는 실제적인 사건 존재하고 있었던..알고 보면 슬픈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실은
밀고자를 의미하는 까치가 지켜보고 있는 한 가운데처형 장소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이시죠?함께 춤추지 않으면 밀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역설적인 방법으로 표현한거라고 합니다.
〃
1567년 네덜란드 새 총독으로 부임한 알바 공작은 가혹한 탄압 정치를 하기로 소문났다.1568년 네덜란드 두 귀족을 공개 처형했는데,
처형된 이유로는 알바 공작을 음해하려했다는 누군가의 밀고 떄문.하지만 처형하기로 된 그들에게는 음해 계획이 전혀 없었다.
알바공작이 공포 정치 강화를 위해 밀고를 조작 했던것 이다.
밀고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먼저 밀고를 했던 당시 풍토...이때, 처형 장면 목격 후 분노에 휩싸인 피터르 브뤼헐은
밀고를 조장하는 알바 공작을 꼬집기 위한 그림 제작하였다.
〃
5.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 - 《메두사 호의 뗏목》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뗏목..!! 그 뗏목 위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바다를 표류하는 자들을 그린 그림 같다구요?
사실 이 그림은 무서운 실제사건 배경으로 탄생한 그림입니다.
(1816년 여름 메두사 호 출항 관련 기사와 당시의 메두사 호 그림이 서프라이즈에 나왔지만
인터넷상에 사진을 못찾아서 이건 생략했습니다^^;)
〃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루이 18세는, 메두사 호의 함장 자리를 원했던 쇼마레를 메두사 호 함장으로 임명.
항해 시작 2주 후 아프리카 연안에서 좌초된 메두사 호..
귀족등 상류층 사람들과 쇼마레는 메두사 호를 버리고 구명정을 타고 도망쳤다.
탈출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뗏목으로 탈출했는데,
'폭 9m, 길이 20m'의 뗏목에 147명이 승선했다.무더운 날씨 속에 13일 동안 표류가 되었고, 구조 당시 생종자는 겨우 10여 명밖에 되질 않았다.
뗏목 곳곳에 남아 있던 핏자국, 돛대에 매달려 있던 인육 조각..
과연 13일 동안 메두사 호 뗏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익사, 살인, 자살, 아사 등으로 뗏목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사망하였고,
남은 생존자들은 결국 인육을 먹기에 이르었다.
도망쳤던 쇼마레는 국법회의에 회부했지만, 함장 지위 박탈과 금고 3년 형이 떨어졌고,이 사실을 다 알면서도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사건을 무마하기 바빴던 프랑스 정부.
이에 분노를 산 테오도르 제리코는 메두사 호 뗏목 사건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그림 작업을 시작한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뗏목 모형 제작, 죽어가는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죽어가는 환자를 스케치 하였고8개월 동안의 작업 사건발생. 3년후 1819년 그림이 완성되었다.그러나 정부의 타락과 실책을 비판하는 메두사호의 뗏목 출품에 불쾌해 했던 루이 18세. (찔린거죠..본인이)비평가들을 매수해 그림 마구 혹평하였지만, 시민들에게는 큰 인기를 얻은 그림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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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근데 위에 설명되있는,
"뗏목 곳곳에 남아 있던 핏자국, 돛대에 매달려 있던 인육 조각.."
숨겨진 그림속의 진실...믿거나 말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