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4,347);
-
[TV·연예] 황찬성·고경표·박진영·노정의·정건주 ‘디 어워즈’ 2차 시상자 라인업
[스포츠동아 = 허민녕 기자] ‘시상식의 아이콘’ 고경표, 채널A 야심작 ‘마녀’의 박진영-노정의 콤비도 디 어워즈에 출격한다. ‘제1회 디 어워즈(D Awards)’의 2차 프리젠터(시상자) 라인업이 공개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11일 ‘디 어워즈’는 가수 겸 작곡가 박선주와 2PM 황찬성을 비롯, 배우 고경표와 방민아, 가수 겸 방송인 강남, 배우 노정의와 박진영, 이학주와 조이현, 정건주, 서범준이 2차 프리젠터로 시상식 출연을 확정 지었다고 밝혔다. ‘시상식의 아이콘’ 고경표가 ‘디 어워즈’ 무대에 선다. 드라마는 물론 TV 예능을 통해 대표 K엔터테이너로 우뚝 선 그는 tvN 새 예능 ‘식스센스:시티투어’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배우로 맹활약 중인 2PM 황찬성도 ‘디 어워즈’ 프리젠터로 출격, 후배 아티스트를 힘껏 응원한다. ‘원조 짐승돌’ 황찬성의 등장에 글로벌 팬들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15일부터 시청자들과 만나는 채널A 드라마 ‘마녀’의 주역 갓세븐 박진영과 노정의가 ‘디 어워즈’ 프리젠터로 함께 무대에 선다. 9일 종영된 채널A ‘체크인 한양’ 히어로 정건주도 디 어워즈 프리젠터로 멋진 수트 핏을 드러낸다. 3월 첫 방송되는 tvN 드라마 ‘감자연구소’ 이학주의 출연도 확정됐다. 화제의 뮤지컬 ‘틱틱붐’의 걸스데이 방민아도 ‘디 어워즈’ 프리젠터로 나선다. 안방극장 가장 빛나는 신성(新星)으로 꼽히는 조이현의 등장 또한 ‘디 어워즈’의 또다른 관전 포인트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100만 유튜버로 활약 중인 가수 겸 방송인 강남과 ‘미스터 트롯’에서 촌철살인 심사평으로 화제를 모은 가수 겸 작곡가 박선주도 ‘디 어워즈’ 시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KBS와 SBS ‘연기대상’ 신인 연기상 2관왕을 거머쥔 라이징 스타 서범준도 데뷔 첫 시상식 나들이에 나선다. 22일 오후 6시 시상식에 앞서 오후 3시 30분부터 진행될 식전 세리머니의 진행자도 확정됐다. ‘디 어워즈’ 프리(Pre) 오프닝 이벤트 MC는 K팝 아티스트들의 ‘최애 진행자’로 꼽히는 유재필이 낙점됐다. 앞서 ‘디 어워즈’는 차승원, 안은진과 채널A ‘체크인 한양’의 배인혁, 김지은 콤비 그리고 미미미누(김민우)를 1차 프리젠터(시상자) 라인업으로 발표했다. ‘디 어워즈의 얼굴’ 메인 진행은 배우 고민시와 이종원이 맡는다. ‘제1회 디 어워즈’를 빛낼 퍼포먼스 라인업엔 엔플라잉(N.Flying)과 피원하모니(P1Harmony), ENHYPEN(엔하이픈), 피프티피프티(FIFTY FIFTY), 트리플에스(tripleS), ZEROBASEONE(제로베이스원), 라이즈(RIIZE), 82메이저(82MAJOR), 영파씨(YOUNG POSSE), QWER(큐더블유이알), 투어스(TWS), NCT WISH(엔시티 위시), 유니스(UNIS), 킥플립(KickFlip)이 올랐다.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382/0001177278
-
-
[TV·연예] BTS·샤이니·영탁·임영웅·이찬원…KM차트 1월 선호도 조사 진행
[스타뉴스 | 김수진 기자] 새해 K-MUSIC을 빛낸 첫 주역은 누가 차지하게 될까.글로벌 스탠더드 K팝 차트 'KM차트(케이엠차트)'는 오는 28일까지 2025년 1월 선호도 조사(6부문)를 실시한다. 부문별 후보에는 방탄소년단의 진·뷔, 샤이니 온유·키, 갓세븐, 영탁, 임영웅, 이찬원 등 인기 아티스트들이 대거 올라 치열한 투표 경쟁을 예고했다.K-MUSIC(음원) 부문에는 진(방탄소년단)의 'I'll be there(아일 비 데어)'·'Running Wild(러닝 와일드)'를 비롯해 샤이니 온유의 'Winner(위너)', 샤이니 키의 'Pleasure Shop(플레저 숍)', 임영웅의 '온기', 재쓰비의 '너와의 모든 지금',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Over the moon(오버 더 문)' 등 총 50곡이 노미네이트됐다. 다채로운 장르의 곡들이 골고루 포진해 열띤 접전을 예상케 했다.K-MUSIC ARTIST(아티스트) 부문 후보 역시 면면이 화려하다. 오랜만에 돌아온 갓세븐을 비롯해 뷔(방탄소년단), 영탁, 이찬원, 플레이브, 스트레이 키즈, 에이티즈, 엔하이픈, 지드래곤 등 총 30명(팀)의 인기 아티스트가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HOT CHOICE(인기) 남성 부문에서는 강다니엘, 몬스타엑스, 비투비, 스트레이 키즈, 에이티즈 등 30명(팀), 여성 부문에서는 권은비, 드림캐쳐, 민니((여자)아이들), 시크릿넘버, 있지, 쯔위(트와이스) 등 30명(팀)이 경합한다.올해 첫 번째 '최고 신인' 타이틀을 차지할 후보 라인업도 막강하다. ROOKIE(신인) 남성 부문에서는 XLOV(엑스러브), 넥스지(NEXZ), 엔싸인(n.SSign), 킥플립(KickFlip), 투어스(TWS) 등 10명(팀), 여성 부문에서는 비비업(VVUP), 베이비몬스터(BABYMONSTER), 블랙스완(BLACKSWAN), 빌리(Billlie), 오드유스(ODD YOUTH) 등 10명(팀)이 후보에 올랐다.
-
[영화] 1906~2016 무료 공개 작품들 ft. 계춘할망
* 혹시 몰라 연령 제한 영상이 아닌 전체 공개 영상 중 다이렉트로 감상 가능한 작품들 위주로 찾아봤습니다만 호러 장르인 작품 등 일부 작품들은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주의 부탁 드립니다. * 합법적으로 무료 공개되는 대신 기간 한정일 수도 있는 작품들도 포함된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작품 소개에 스포일러로 느껴질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니 불안하신 분들은 본편 영상을 먼저 확인해주시길 권장드립니다. '드림 오브 레어빗 핀드' 실사판 Dream of a Rarebit Fiend (1906) 이전에 소개한 1904년 신문 만화 '드림 오브 레어빗 핀드'(이후 이 작품에서 스핀오프로 1905년부터 '리틀 네모'를 연재)를 원작으로 삼은 단편 영화로 원작 만화와 마찬가지로 환상을 보는 내용을 특수효과도 동원해 실사화했으며, 훗날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보존할 작품들 중 하나로 선정됐으며, 퍼블릭 도메인 작품이라 위키피디아 공용 영상을 포함 여러 곳에서 무료로 공개 중입니다. '더 배틀 오브 더 솜' The Battle of the Somme (1916) 동일 년도의 실제 전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작품으로 내용은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 및 프랑스군이 독일 제국군에 맞서싸우는 참호전을 벌여 쌍방 모두 큰 희생자가 발생한 '솜 전투'를 다루었으며, 전쟁 당시 영국 및 다른 국가들 민간인들에게도 상영되어, 윤리적 문화에 대한 지적을 받은 한편으로 민간인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연합군에 대한 인식 형성에 큰 역할을 하여 영화라는 존재에 대해 정당성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극찬도 받았고(훗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 퍼블릭 도메인 작품이라 위키피디아 공용 영상을 포함 여러 곳에서 무료로 공개 중입니다.(컬러 복원판도 존재) 이 작품은 유네스코 한국어 홈페이지에서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으니 아래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솜 전투」 필름 https://heritage.unesco.or.kr/%E3%80%8C%EC%86%9C-%EC%A0%84%ED%88%AC%E3%80%8D-%ED%95%84%EB%A6%84/ '제너럴' 실사판 The General (1926) * KMDB에선 '장군'으로 표기 도쿄에선 1926년, 미국에선 1927년에 개봉한 작품으로 1862년에 있던 실화 및 이를 소개한 북부 군인 '윌리엄 피텐거'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삼아 코미디 영화로 대폭 각색했으며(아이러니하게도 명예 훈장을 받은 북부 군인의 회고록을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남부를 미화하는 걸로 해석될 수 있는 장면이 들어가기도) 개봉 당시에는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도쿄에서 먼저 개봉하는 등 타 국가 개봉으로 추가 수익을 얻고, 후대에도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로서 좋게 보는 평론가들도 여럿 나와 평론적으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퍼블릭 도메인 작품들 중 하나로 웹 상에서도 한국어 번역판 및 컬러 복원판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했습니다. 제너럴호 열차의 기관사인 조니에게는 앤나벨이라는 애인이 있다. 남북전쟁이 격화되면서 앤나벨의 아버지와 오빠가 남군으로 자원 입대하자 앤나벨은 조니에게도 군 입대를 권한다. 그러나 모병관은 조니가 열차 기관사로서 일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입대를 거절한다. 조니는 앤나벨이 군복을 입을 때까지는 만나지 않겠다고 하자 크게 실망한다. 북군의 첩자들이 조니의 기관차인 제너럴호에 앤나벨을 태운 체 훔쳐서 타고 달아나자 조니는 단신으로 다른 기관차를 타고 이를 추적하면서 온갖 해프닝을 벌인다. 적진에 들어간 조니는 북군의 작전을 알아내고 앤나벨을 구하여 다시 기관차를 타고 탈출한다. 조니를 추적하던 북군의 열차는 강으로 추락하고 조니의 해프닝성 무운에 힘입어 남군이 승리한다. 영웅이 된 조니. '미몽(죽음의 자장가) Sweet Dream (Lullaby of Death) (Mimong) 1936년 표면 상으로는 갈등을 겪은 후 집을 떠난 인물에게 벌어지는 내용을 다룬 신파극 작품입니다만, 제작 당시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상명하복 정신으로 항상 순종적으로 굴며 절대복종하는 것만이 진리로 여기던 일제가 '신여성'을 불편하게 여겨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악마화하고, 극단적으로 응징하는 내용을 만들도록 조장한 것으로 분석된 작품으로, 때문에 일제로 인해 비하 대상이 된 캐릭터 '애순'이 긍정적으로 재평가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과 관련해선 아래 분석 및 기사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한국영화걸작선]미몽 양주남, 1936 https://www.kmdb.or.kr/story/10/1797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신파극 '미몽'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40/0000042164?sid=004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했으며, 관련 칼럼들 및 서적도 올라와 있으니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애순(문예봉)은 여염집의 부인으로 허영이 심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 참다못한 남편(이금룡)은 애순을 내쫓고, 애순은 남편과 딸 정희(유선옥)를 버려둔 채 정부 창건(김인규)과 함께 호텔에서 지낸다. 어느 날 애순은 창건이 돈 많은 유지가 아니라 가난한 하숙생이자 범죄자임을 알게 된다. 창건 일당은 호텔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고, 이를 눈치챈 애순은 창건을 경찰에 신고한다. 공연에서 본 무용가(조택원)에게 관심을 보였던 애순은 그를 쫓아 택시를 타고 떠난다. 무용가가 탄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순이 탄 택시는 과속을 하고, 때마침 길을 건너던 딸 정희를 친다. 병원에 간 정희는 무사히 깨어나지만 애순은 죄책감에 약을 먹고 자살한다. 등급정보(1) 상영시간 47분 개봉일자 1936-11-06내용정보_개봉극장우미관노트■ 문화재청 제342호 문화재 등재 필름 (2007.9.17)■“1930년대 영화문법과 일제강점기 시대의 신여성 및 근대성에 대한 담론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영화”2006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중국에서 발굴한 영화로 2006년 기준 필름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영화였다. 양주남 감독의 첫 작품이자 경성촬영소의 여섯 번째 발성영화로 1930년대 당시 영화문법과 기술적 진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영화이다. 설득력 없는 평면적인 캐릭터나 갑작스러운 극의 전개, 어색한 카메라 앵글과 편집 등 안정적인 영화문법이 구축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사운드 몽타주, 새장의 인서트 쇼트, 애란이 남편에게 화가 나자 남편이 비친 화장대 거울을 흔들어 버리는 쇼트 등의 몇몇 장치들은 감독이 영화 형식에 대하여 기본적인 자의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이미 헨리 입센의 <인형의 집>이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도 초연되었고 ‘신여성’에 대한 담론이 팽배했을 무렵에 나온 이 영화는 당시 신여성에 대한 대중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데파트(백화점)’에서 무조건 비싼 것을 사려는 애란의 설득력 없는 행동과 모성을 강조하기 위한 애란에 대해 갑작스럽게 처벌하는 등의 설정은 당대 뜨거운 감자였던 신여성을 ‘풍기문란’, ‘허영’, ‘비도덕적 태도’ 등으로 몰아 처리하기 위해 서사의 진행 과정에 다소간의 무리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그 밖에 이 영화에서는 당시 서울의 도시 풍경이 눈요기거리로 등장하며, 일제강점기 시대 최고의 인기배우이자 북한 최고인민배우였던 문예봉의 데뷔시절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제작후일담- 이 영화는 2005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중국 전영자료관으로부터 필름을 입수한 3편 중의 1편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004년 중국 전영자료관으로부터 <군용열차>, <집없는 천사>, <어화>, <지원병> 4편을 입수한데 이어 2005년에는 <미몽>, <반도의 봄>, <조선해협>을 입수하였다. 2005년 입수작 3편은 중국 전영자료관의 협조를 받아 새롭게 프린트를 복사하였고, 2005년 말 한국영상자료원에 입고되었다. 이 영화 3편은 2006년 3월에 일반에 공개되었다.- 자동차가 얼마 없던 시기 교통사고에 대해 계몽적 의식을 의도적으로 불어 넣기 위해, 정희의 학교에서 교사가 교통사고에 대한 위험을 교육시키는 장면을 넣었다고 한다.■ 근대화 물결 속 1930년대 도시 경성, 봉건적 현모양처 역할로부터 자유로운 욕망을 추구하는 애순의 탈주와 처벌이 멜로드라마 내러티브 양식으로 펼쳐진다. ‘인형의 집’을 벗어나고픈 애순의 욕망을 대변하는 새장 속 새, 권위적 가부장 남편과 애순의 부부싸움을 담아내는 흔들리는 화장대 거울, 당대 최고의 춤사위로 화제를 모았던 조택원의 무용극을 담아낸 미장센과 이미지 수사학은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기능과 더불어 젠더 관점에서 근대화와 함께 등장한 ‘모던걸’(신여성)에 관한 인식 체계를 드러내준다. (유지나 영화평론가,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121 '셜록 홈즈: 공포의 밤' Terror by Night (1946) 인기 소설 시리즈 '셜록 홈즈' 작품들 중 '네 개의 서명' (1890), '푸른 카벙클' (1892), '빈 집의 모험' (1903), '프랜시스 카팍스 여사의 실종' (1911)에 나온 요소들 + 영화 오리지널 내용을 조합해 제작한 작품으로 평론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무비콘의 한국어 자막판, 그리고 화질 보강 + 컬러 복원판도 공개 중입니다. 아래 내용은 '구글 플레이'에서 인용했습니다. 로데지아의 별 400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싣고 달리는 고속열차,서서히 드러나는 살인의 그림자!!"공포의 밤"에서 셜록 홈즈는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를 싣고 달리는 고속 열차로 관객들을 초대한다.다름 아닌 400 캐럿의 다이아몬드, '로데지아의 별'의 운송 책임을 맡은 것.그러나 다이아몬드는 흔적을 감추고 이때부터 끔찍한 살인사건이 시작된다.괴이하고 미심쩍은 승객들 가운데 누가 진짜 범인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오로지 셜록홈즈의 추리~!!!!! '자유부인' 실사판 Madame Freedom (Ja-yubu-in) 1956년 1954년부터 신문에 연재한 인기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실사화한 작품으로 원작 소설 당시부터 여러 필화 사건에 휘말렸으나(영화는 이로 인해 순화하는 식으로 각색했으나 이 순화된 내용 역시 당시에는 문제되기도), 영화판 역시 인기를 얻어 이후에도 여러차례 파생작이 나왔고, 작품에 대해선 음란물 혹은 결국 시대의 한계를 못 벗어난 작품 혹은 당시로선 희망을 주는 작품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도 했으며 이와 관련해선 아래 언론 기사들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11) 정비석의 ‘자유부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2750652?sid=110 "「자유부인」, 50년대 국가주의 반영" https://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1796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했으며, 관련글 및 관련 사료도 정리되어 있으니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대학교수 장태윤(박암)과 오선영(김정림)은 아들 경수와 함께 살고 있다. 오선영은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양품점에서 일을 시작한다. 선영은 우연히 길에서 동창 최윤주(노경희)를 만나 같이 어울리면서 댄스파티에 가게 된다. 윤주는 친구들의 곗돈을 모아 밀수품 사업에 손을 대고, 선영은 옆집 청년 신춘호(이민)에게 흥미를 느껴 그에게 춤을 배운다. 장 교수는 한글을 가르쳐주면서 만난 타이피스트 미스 박(양미희)에게 이끌리지만,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녀와 그만 만나기로 한다. 한편 양품점의 한태석 사장(김동원)은 선영에게 흑심을 품고 다가오고, 한 사장의 부인은 장 교수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 선영의 타락을 폭로한다. 저명인사의 부인인 윤주는 애인 백광진(주선태)의 사기 혐의로 경찰서에 입건되면서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그동안의 행각이 낱낱이 파헤쳐지자 자살하고 만다. 선영은 한 사장과 호텔에서 포옹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한 사장 부인에게 뺨을 맞고 거리로 뛰쳐나온다. 선영은 잘못을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장 교수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 경수의 부탁으로 빗장이 열리고 경수는 집 앞에 서 있는 선영에게 뛰어가 안긴다. 그녀는 다 자신의 잘못이라며 흐느끼며 반성한다. 등급정보(1) 상영시간 124분 개봉일자 1956-06-09내용정보_개봉극장수도노트■ 문화재청 제347호 문화재 등재 필름 (2007.9.17)■ "최고급을 주세요", "최고급입니까?", "네, 최고급입니다" 전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계바람', '땐스바람', '사치바람'을 소설화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완성도 있는 대중영화로 평가할 수 있다.■ 키스나 러브씬 등의 장면에 있어서의 표현수위의 문제와 대학교수 부인이 젊은 남자와 춤바람이 난다는 내용을 두고 1950년대 한국사회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현대 연구자들에 의해 이 작품은 1950년대 한국 사회분위기 속에서 예외적으로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정비석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을 영화화■ 수도극장에서 개봉, 10만 8천명을 동원하여 1956년 흥행에서 1위를 차지한 작품■ 김정림(여우) 데뷔작■ 정비석의 동명 신문 연재소설을 각색한 영화 <자유부인>은 원작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수도극장에서 개봉한 이후 놀라운 흥행 성적을 거두었고, ‘국산영화계의 새로운 에폭을 지어놓은 작품’이라는 비평계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는 전후 무분별한 사치와 부패가 판치는 세태 풍조를 고발하지만, 한편으로 주인공 오선영을 통해 서구화가 불러온 새로운 윤리의식과 여성의 욕망에 대한 양가적 시선을 드러낸다. 또한 광복 이후 최초로 시도된 크레인과 달리의 유려한 움직임 덕분에 <자유부인>은 근대 도시의 생동감을 전달하면서 현대 감각을 표현하는 본격적인 ‘영화다운 국산영화’로 평가되었다.(이길성 중앙대 강사, 영화천국 61호)■ 제작후일담원작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21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하여 초유의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작품으로, 연재 당시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며 중공군 50만 명과 맞먹는 국가의 적이다”라는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단행본 『자유부인』(정음사간)도 7만부나 팔렸으며 연재기간 동안 서울신문의 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오선영이 엘리트층의 부인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일탈은 남성 지식인들의 분노를 더욱 불러일으켰다. 원작자 정비석은 이 소설이 영화화되는데 내심 불안감을 가졌으나 결과물을 보고 한형모 감독의 솜씨에 놀랐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수도극장에서 개봉, 10만 8천명을 동원하여 1956년 흥행에서 1위를 차지했다.“무든지 최고급품으로 주십시오, 최고급입니까?”라는 주선태의 대사는 시중에 “최고급”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다.키스나 러브씬 등의 장면에 있어서의 표현수위의 문제와 대학교수 부인이 젊은 남자와 춤바람이 난다는 내용을 두고 1950년대 한국사회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오선영과 대학생 춘호의 키스 장면, 그녀와 한사장과의 포옹장면 등이 문제가 되어 상영 전날까지 검열에 통과하지 못했고, 결국 문교부 검열실에 의해 네 군데 백 피트 가량을 잘라낸 다음 상영 허가를 받았다. 한형모 감독은 영화 안에 관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를 넣고 있다. 가수 백설희가 동창회의 일원으로 등장해 명사의 부인들 앞에서 “아벡크 토요일”을 부르고, 선영이 춘호와 함께 처음 간 댄스홀 시퀀스에서 댄서 나복희가 맘보 음악에 맞춰 관능적인 춤을 추는 장면을 과도한 길이로 보여 준다. 이들은 당시 유명한 연예인들이었으며, 댄스홀에서 매번 등장한 ‘박주근과 그의 악단’도 당시 가장 실력있는 밴드 중의 한 팀이었다고 한다.<자유부인>은 이후 여러 편의 속편과 리메이크가 제작되었다. 김화랑 감독에 의해 <자유부인(속)>(1957)이 만들어졌고, 1969년 강대진 감독에 의한 리메이크되었다. 1980년대 들어와 박호태 감독에 의해 <자유부인>(1981), <자유부인2>(1986)이 만들어졌으며, 1990년도에 박재호 감독에 의해 <1990 자유부인>이 제작되었다.이러한 주제적 측면 이외에 <자유부인>은 한국영화기술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대로 된 크레인과 이동차를 처음으로 사용한 영화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삼성영화사 동업자 중의 한 사람이 청계천에서 기계를 만들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카메라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를 하기 위해 청계천에 드나들던 한형모 감독은 영화제작에 관심을 보이는 기계 제작자를 끌어들였는데, 한형모 감독이 직접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이 제작자가 일주일 만에 이동차와 크레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동차를 만들기 위해 미군 부대에서 불하받은 헬리콥터 바퀴4개를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297 '워커힐에서 만납시다' Let's Meet at Walkerhill ( Wokeohileseo Mannapsida ) 1966년 표면 상으로는 시골 사람이 서울로 상경해 돌아다니다 외국인을 주 고객으로 모시는 고급 시설인 워커힐에도 가게 되는 내용의 작품입니다만, 실질적으로는 등장인물들이 음악 공연 등 쇼를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는 컨셉 틀을 잡아놓고 당시 여러 인기 가수들의 다양한 장르의 노래 공연을 극 영화 형식으로 제작한 작품으로(대사를 노래 부르듯 말하는 뮤지컬 영화와 달리 작 중 설정 상으로도 등장인물이 음악 공연을 구경하는 구성) 후대의 평론에서도 당시의 문화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했으며 관련 글 및 관련 사료도 정리되어 있으니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대훈은 한국전쟁때 잃은 딸을 찾기 위해 서울로 가던 중, 기차에서 우연히 삼룡이란 사람을 알게 된다. 서울이 초행길인 대훈은 삼룡에게 길안내를 부탁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딸 미라를 찾아 다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워커힐에 갔다가 그곳에서 인기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딸을 만나 감격의 해후를 한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1414 '그리즐리' 1편 Grizzly (1976) 한국에선 '그리즈리', '공포의 회색곰', '공포의 계곡' 등의 제목으로도 알려진 호러 영화 작품으로 당시 1974년 소설 '죠스' 및 1975년 실사판의 대성공에 영향을 받은 아류작들 중 하나였습니다만, 죠스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초저예산으로 제작해 제작비 대비 수십배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올리는 초대박 성공을 기록해서 후술할 후속편 기획도 잡혔으며(다만 작품 외적 사정으로 촬영만 한 뒤 한동안 연기),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더 아카이브 TV' 계열 채널에서 무료 공개 중입니다. 아래 내용은 TMDB에서 인용했습니다. 북미 국립공원 숲속에서 야영하던 여성 둘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곰에게 습격당하는데 일행 하나는 눈앞에서 곰의 공격으로 처참하게 찢겨지고 다른 여성은 달아나 산속 빈 창고로 숨어 문을 잠그지만, 이게 오히려 자충수가 되어 쫓아온 곰이 문을 가볍게 부수고 그 여성도 공격으로 죽게된다. 다음 날, 곰이 먹다 남긴 여자들의 시체가 발견되어 산림 감시원이 식인 곰이 나타난 걸로 파악하고 시장에게 공원을 폐쇄하고 곰부터 잡자고 건의하지만 마침, 시기가 산악관광객이 많이 오는 시기라 그건 안된 다고 거부당한다. 하지만 그러다 여성 산림감시원도 죽고 다른 남성 감시원은 산림 망루에서 감시하다가 곰이 갑자기 나타나 망루를 부숴댈 때 다급하게 무전으로 도움 요청하며 총을 쏘았지만 무너지는 망루와 같이 추락해 즉사한다. 무전을 듣고 주인공과 사냥꾼들이 서둘러 왔을 때는, 곰은 흔적도 없었고 죽은 감시원 시체나 확인했을 뿐. 그럼에도 여전히 관광객이 넘치게 오던 이 산악공원에 사람이 많은 야영장까지 밤중에 나타나서는 텐트에 있는 또 한 여성을 습격하게 된다. 비명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여자는 처참하게 공격을 당하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충격 속에 달아난다. 그제 서야 방송 취재진이 몰려들면서 안전 문제를 성토하고 시장이 자칫하면 시장자리에서 물러나 위기에 처하자 비로소 시장은 사냥꾼들을 고용하고 산림감시원 대장인 주인공이 곰 사냥꾼 및 곰 관련 동물학자와 같이 곰을 잡고자 나서는데...... https://watch.plex.tv/watch/movie/grizzly-ii-revenge '그리즐리 2: 리벤지' Grizzly II: Revenge (2020 *) '그리즐리 2: 더 프레데터' 혹은 '그리즐리 2: 더 콘서트' 등의 부제로도 알려진 작품으로 밀렵꾼에게 자식을 잃은 곰이 복수에 나서며 벌어지는 내용을 다룬 호러 영화 작품으로, 위에서 소개한 1편이 대성공을 거둔 뒤 제작된 속편입니다만(젊은 시절 조지 클루니, 로라 던, 찰리 쉰, 티머시 스폴도 출연) 안타깝게도 1편 주역 배우가 사망하고, 프로듀서 중 한명인 '조셉 포드 프록터'(Joseph Ford Proctor)의 잠적, 그로 인한 제작비 조달 난항, 다른 프로듀서인 '수잔느 C. 내기'(Suzanne C. Nagy)가 간신히 수습해 헝가리에서 1983년에 촬영했으나, 앞서 잠적한 프로듀서가 감옥에 가는 등 여러 난항을 겪으며 미완성된 상태로 잊혀졌으나, 미완성 초기판인 워크프린트가 인터넷에 올라오며 다시 알려지고, 이후 마무리 작업을 한 뒤 2020년에 정식으로 공개됐으며, 이 글을 올린 시점으로 Plex에서 영어 자막 지원 기능과 함께 무료 공개 중입니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PzPAzNd8WIL-avYd2LtLsx3FLtP6SvZK '개구쟁이 데니스'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Dennis the Menace (1986) 이전에 소개한 바 있듯 미국에서 1951년부터 연재한 원작 만화가 사고뭉치 악동이 말썽을 부리는 내용으로 인기를 끌며 실사판 TV 시리즈, 애니판 TV 시리즈, 실사판 영화, 비디오 게임판 등 여러 각색작들도 나왔는데 이 중 1986년 애니판은 '와일드브레인' 계열 채널에서 무료 공개 중입니다. https://www.gog.com/en/game/war_wind https://store.steampowered.com/app/1741140/War_Wind/ '워 윈드' 1편 War Wind (1996) 한국에서도 정식 수입된 바 있는 실시간 전략 장르의 PC 게임 작품으로 야본 행성에 존재하는 4가지 종족의 탐험과 대립을 다루었으며 평론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나름의 인기를 끌어 바로 다음 년도에 속편도 발매됐으며(2편 역시 한국에서 수입) 시리즈 중 1편은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GOG, 스팀에서 무료로 공개 중입니다. '서버비아' SubUrbia 영화판 (1996) 1994년 연극을 원작으로 삼아 영화화한 코미디 드라마 장르의 작품으로 미래가 불안한 젊은이들이 나오는 내용을 다뤄 평론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워너' 영화사 계열 채널에서 무료 공개 중입니다. 이 작품과 관련해선 아래 기사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팝비평>영화‘서버비아’의 사운드트랙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090419000301 https://programs.sbs.co.kr/drama/yeongaesomun/vods/53770 '연개소문' TV판 Yeon Gaesomun (2006) SBS에서 대하 역사소설 '연개소문'의 판권을 계약한 이후 제작한 작품으로, 제목처럼 한국 역사의 유명 실존 인물을 다룬 사극 장르의 100부작 TV 시리즈 작품이라 본편 자체는 살벌하고 무겁게 진행되는 분량이 많았으나, 당시 자연 재해로 인해 제작 일정이 꼬여 급조한 장면도 나와 인터넷 상에서 합판, 뮤탈리스크, 수나라 시트콤 등 밈 소재로 유명해지고, SBS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자체적으로 개그 패러디 영상을 올리기도 했으며,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SBS 홈페이지에서 무료 공개 중입니다. 아래 내용은 SBS 홈페이지에서 인용했습니다. 기획의도고구려 후기부터 고구려의 멸망까지 연개소문의 생애를 그린 드라마 '갓 오브 이집트' Gods of Egypt (2016) 제목처럼 이집트 신호를 소재로 삼은 작품입니다만 제작비는 여러 2000년대 작품들보다 적은 1억4000만 달러 정도였고, 이집트가 배경인데 백인 배우들 위주로 캐스팅한 화이트워싱 문제가 발생해 개봉 전부터 부정적 인식이 대대적으로 퍼지는 악재가 생겼으며, 결과적으로 평론적으로는 일부의 호응을 얻는 정도였으며, 극장 흥행은 제작비보다 살짝 많은 정도에 그쳤으나, 이후로도 부가 수익을 얻기 위해 여러 창구가 동원됐는데, 이 작품을 계약한 업체들 중 하나인 스밍스에서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무료 공개 중입니다. 이와 관련해선 아래의 언론 기사들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방승언의 삐-급 문화 쪼개기] '손오공'이 백인?..헐리우드 '화이트워싱'의 역사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081/0002758010 [음악여행,쉼표] 오늘의 방송내용 https://radio.ytn.co.kr/program/?f=2&id=50490&page=35&s_mcd=0300&s_hcd=01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했습니다. 어둠의 신 vs 태양의 신세계 역사를 뒤바꿀 불멸의 대결!신과 인간이 공존하던 시절, 태양의 신 ‘호루스’의 통치 아래 번영을 일구던 이집트 제국은 어둠의 신 ‘세트’가 왕위를 강탈하면서 혼란 속에 급락한다. 독재 통치에 반기를 든 영웅 ‘백’은 모든 것을 훔치는 전설의 도둑답게 세트가 빼앗은 호루스의 한 쪽 눈을 훔쳐 반란을 계획한다. 백과 호루스는 세트에게 대항할 군대를 조직해 지옥과 천국의 세계를 넘나드는 험난한 여정과 신들의 관문을 지나 마침내 최종 대결을 앞두게 되는데… (출처 : 보도자료) 계춘할망 Canola (gye-chun-hal-mang) 2016년 '창' 감독(본명은 윤홍승)이 연출을 맡은 드라마 장르의 영화 작품으로 인터뷰에서 연출가의 어머니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으며(구체적인 것은 아래 언론 기사 링크 참고), 故 '정훈' 작가님의 만화, 서울노인영화제 작품으로 패러디되기도 했고,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스밍스에서 무료 공개 중입니다. [씨네인터뷰] 가족 안에서 사랑이 계승되는 이야기 - <계춘할망> 창감독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40/0000030468?sid=004 [정훈이 만화] <계춘할망> 손녀를 위해서라면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140/0000030436 돌아보는 서울노인영화제 25번째 이야기 http://sisff.seoulnoin.or.kr/review/12692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했습니다. 12년만에 잃어버린 손녀를 기적적으로 찾은 해녀 계춘손녀 혜지와 예전처럼 단둘이 제주도 집에서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적응해간다.그러나, 아침부터 밤까지 오로지 손녀 생각만 가득한 계춘과 달리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다 커버린 손녀 혜지.어딘가 수상한 혜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의심이 커져가는 가운데혜지는 서울로 미술경연대회를 갔다가 사라진다.12년만에 혜지가 할망을 찾아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할머니와 떨어져있던 시간 동안 혜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출처 : KOFIC)
콩라인박작성일
2025-01-19추천
1
-
-
[영화] 1952년 소설 '에덴의 동쪽' 실사판 (1955) 무료 공개 중
* 작품 소개에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주의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에덴의 동쪽'은 19세기 두 가문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룬 1952년 소설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이 자신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책이라 표현했던 작품이며, 평론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얼마 안 되어 워너 브라더스에서 각색한 실사판 영화도 1955년에 개봉해 평론적으로 호평을 받아 아카데미, 골든글러브, 칸 영화제 수상작이 됐으며, 1981년 TV 미니시리즈가 제작되고, 넷플릭스 스트리밍 시리즈도 제작되고 있으며, 이 작품의 제목을 인용하거나 실사판 주연 배우 '제임스 딘'의 일화를 소개하는 등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여럿 있었습니다.(이 중 1955년 실사판은 무비콘에서 한국어 자막과 함께 무료 공개 중) 아래 내용은 교보문고에서 인용한 원작 소설 작품 소개입니다.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인간 앞에 던져진 모든 문제,그 대답은 언제나 인간의 의지에 있다『에덴의 동쪽』의 배경이 된 살리나스 계곡은 작가 자신의 고향이며, 주인공 새뮤얼 해밀턴은 실제로 그의 외조부를 바탕으로 한 인물로, 존 스타인벡 자신이 어린아이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창세기에서 영감을 받아 『에덴의 동쪽』을 썼으며, 인간의 원죄라는 주제에 천착하여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 나아가 구원에 이르려는 끈질긴 노력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그가 “내 평생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들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책들은 이 책을 쓰기 위한 준비였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19세기, 새뮤얼 해밀턴은 아내와 함께 아일랜드에서 미국 서부 살리나스 계곡으로 이주한다. 이들은 빈손으로 시작하여 척박한 땅을 일구고 이웃을 도우면서, 아홉 남매를 낳아 훌륭하게 키우며 살아간다. 새뮤얼은 비참한 상황에서도 좌절하는 법 없이, 언제나 긍정적인 사람이다. 자식들이 성장하여 하나 둘 외지로 나갈 무렵, 동부에서 애덤 트래스크가 임신한 아내 캐시와 이주해 온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읜 애덤은 모든 면에서 자신과 대조적인 이복동생 동생 찰스와 성장하다가 아버지의 강요로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저곳을 방랑한다. 그 후 애덤은 고향에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지만, 찰스와는 달리 캐시와 결혼하여 서부로 간다. 그는 살리나스 계곡 부근에서 가장 좋은 땅을 사들이고, 새뮤얼의 도움을 받아 아내를 위해 그곳을 마치 에덴동산처럼 꾸미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냉담한 반응으로 보이던 캐시는 쌍둥이를 출산한 지 이 주가 지나자 만류하는 애덤의 어깨를 총으로 쏘고 떠나 버린다. 애덤은 실의에 빠져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쌍둥이는 중국인 요리사인 리의 손에 맡겨진다. 한편 캐시는 도시 살리나스로 나가 유곽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그곳 주인을 독살한 후 그곳을 운영해 간다. 쌍둥이 아론과 칼렙이 자라자 애덤은 살리나스로 이사하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벌인다. 유순하고 선한 아론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칼렙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유명한 유곽의 마담이라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한다. 그러다 직접 그녀를 찾아가서 자신이 그녀의 아들임을 밝히지만, 놀랍게도 그 후에 칼렙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느끼며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그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이 소설의 주제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팀셸(timshel)’이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히브리어로 어떤 가능성을 나타내는(Thou mayest(You may) 이 단어는 모든 것이 인간의 의지, 혹은 선택에 달려 있다는 주제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카인에게 얘기하는 원죄에 대한 내용은 성서마다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 혹은 “너는 죄를 다스려라”라고 달리 번역되어 있다. 전자는 인간이 죄를 극복하게 해 준다는 약속을, 후자는 극복하라는 명령을 의미한다. 그러나 원래 히브리어 ‘팀셸’은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로 해석해야 한다고 이 소설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의 인간 개인의 선택이자 의지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애덤은 용서를 구하는 칼렙에게 이 ‘팀셸’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한 1955년 실사판 영화 작품 소개입니다. 1917년 캘리포니아 사리나스 농장을 경영하는 아담 트라스크(레이몬든 머시)에게는 모범적인 첫째 아들 아론(리차드 다바로스)과 반항적인 둘째 아들 칼(James Dean)이 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 칼이 자신을 떠나 버린 부인을 닮은 것 같아 못마땅하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칼은 어느날 어머니가 몬트레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술집의 마담이 된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온 칼은 형의 애인인 에이브라(줄리 해리스)와 점점 가까워진다. 아버지의 배추 농장은 크게 망하고,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참전을 위한 징집위원으로 활동한다. 반전주의자인 큰형은 아버지와 사이가 점점 나빠지고, 칼은 아버지를 돕기 위해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 땅에 콩을 심는다. 큰돈을 벌어 아버지에게 선물하지만 아버지는 거부하고, 칼과 에이브라가 점점 가까워지자 아론은 질투를 한다. 아버지와 형에 대한 반항심으로 형을 어머니에게 데려가, 죽었다고 알고 있었던 어머니에 대한 모든 사실을 알려준다. 큰 충격을 받은 큰형은 군대에 자원하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이 모습을 본 아버지도 쓰러지고 만다. 칼은 아버지께 용서를 구한다. (출처 : 김승경(영화사연구자)) 이 영화는 미국의 저명한 작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22번째 소설 『에덴의 동쪽』(1952)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 영화는 할아버지부터 손자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소설 중 마지막 손자 대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었다. 스타인벡은 이 소설을 구상하는데 무려 11년의 시간이 걸렸고, 집필하는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고 밝힌 바 있다.엘리야 카잔은 2.55:1 시네마스코프 칼라영화로 이 영화를 촬영하였으며, 소설의 배경이 되는 캘리포니아 사라나스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하였다. 제임스 딘이 열차지붕에 올라타고 가는 유명한 장면은 남태평양철도회사의 후원을 얻어 실제 1917년 사라나스 지역을 운행했던 기차를 제공받아 촬영하였다. 이 영화는 성경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가 원형으로 영화에서 형 아론은 아벨, 동생 칼은 카인, 아론의 애인 에이브라는 금단을 열매를 먹고 이전의 순결한 삶을 거부한 이브를 은유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957년 첫 수입 상영된 것을 시작으로 1965년 3월 중앙극장에서 재개봉되었고 1976년 TBC를 시작으로 TV에서도 수차례 방영되었다. - 김승경(영화사연구자) KMDB에선 이 작품과 관련된 자료들로 12 페이지 전단지, 국제영화 1956년 9월호, 스크린 1957년 9월호, 국제영화 1957년 10월호, 영화예술 1965년 5월호 등도 PDF 형식으로 무료 공개 중이니 아래 링크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F/00284/extend/story
콩라인박작성일
2025-01-06추천
0
-
-
-
-
-
-
-
-
-
-
-
-
-

[밀리터리] 조종사가 권총쏘는 이야기
현대의 모든 군인들은 무장을 휴대하고 전투에 임하고 전투기 조종사라도 예외는 아님. 전투기는 그 자체로도 매우 강력한 무기체계지만 격추되면 알루미늄 관짝이 된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어서 이를 대비해 조종사들도 개인무장을 휴대함 조종사들이 본격적으로 총기를 휴대하기 시작한 것은 비행기가 전쟁에 본격적으로 투입된 1차 세계대전부터인데, 1머전 극초기에 비행기는 폭격이나 제공권 장악이 아니라 단순한 포병 관측과 정찰을 위해 투입되었기 때문에 권총의 휴대 여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음. 그냥 들고나가고 싶은 사람만 휴대하고 나가는 정도? 하지만 비행기의 임무가 단순 정찰에서 CAS같은 근접항공지원이나 폭격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곧 지상군에게 비행기란 존재는 반드시 격추시켜야 하는 중요목표가 되었고, 이 성가신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는 저격수와 함께 사살 1순위가 되었음. 따라서 각국은 소총이나 야포, 그리고 대공포를 이용해 상대방의 비행기를 격추시키려고 했음. 이에 따라 격추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거나-혹은 자살하기 위한 권총이 조종사의 필수품이 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조종사가 권총을 휴대하고 출격하기 시작했음. 조종사들이 휴대한 권총은 각국이 운용하던 제식 권총부터 조종사 개개인이 군에 입대하면서 가지고 온 사제 권총까지 다양했는데, 당장 조종사들이 입는 옷부터 통일되지 않았던 시기였어서 그럼. 사실 이당시의 권총은 생존용이라기보단 자살용에 가까웠음. 왜냐하면 1머전 초중기의 비행기는 너무나도 조약한 수준이라서 현대 기준에서 보면 모든 부분이 종이비행기 수준으로 형편없었음 방어력뿐 아니라 엔진 출력도 병신이라 전쟁 막바지인 1917년에야 100마력이 넘는 엔진을 장착한 비행기들이 등장했을 정도. 당시의 낙하산은 20kg가 넘었고, 조종사들은 20kg짜리 ‘짐덩이’ 대신 20kg어치의 탄약을 싣거나 기동성을 위해 낙하산을 내다버렸음 게다가 쌍팔년도를 아득히 뛰어넘는 ‘낭만의 시대’였던 특성상 낙하산을 가지고 비행하는 조종사는 비겁하거나 자신감이 없는 씹게이새끼로 여겨졌음.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의 높으신 분들이 ‘유능한 조종사는 낙하산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각국의 공군사령부는 조종사를 현재처럼 신경 쓰지 않았음. 아 물론 애초에 낙하산 자체를 조종사들한테 지급하지 않은 나라도 있었고 비겁하든 뭐든 조종사 살리는게 먼저라고 봤던 나라도 있었음 아무튼 간에 중요한건 당시의 항공기술은 매우 뒤떨어졌고, 이는 비행기의 생존성이 극히 떨어졌단걸 의미했음. 당시에 방염이란 개념이 존재할리가 없었기에 추락해서 찌그러진 비행기에 갇혀 산 채로 불타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으며, 그런 상황에 처한 조종사 중 많은 이들은 편리한 해결책을 위해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음.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1머전 종전 이후 항공기술력이 발전하며 조종사들의 복장과 항공기의 무장도 크게 달라졌음. 하지만 여전히 조종사를 포함한 군용기 승무원들의 개인무장은 권총 뿐이었음. 아 사실 권총 말고 다른걸 휴대하신 분들도 있었는데 일본제국의 비행기 조종사들은 권총과 함께 일본도도 패용했음 격추당한 뒤에 반자이돌격이라도 하려했던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종사의 개인무장이 권총으로 제한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조종사에게 지급되는 권총은 적지에서 마주친 적과의 교전용이라기보다는 야생에서의 생존수단, 즉 유사시 동물을 사냥하거나, 적 민간인을 위협해서 삥뜯는데 사용하라고 지급되는 측면이 강했기에 굳이 좁은 항공기 내부에 거추장스러운 볼트액션식 소총이나 기관단총을 쑤셔박을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맞닥뜨렸던 전장은 2차 세계대전이었고, 그나마 ‘신사적이었던’ 서부전선이 아닌, 독일과 소련이 맞붙었던 동부전선이나 야만 그자체였던 태평양 전선에서는 적진에 낙하한 조종사를 잔인하게 사살하거나, 포로로 붙잡은 후에 고문하고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음. 이렇게 되자, 조종사들은 동물들 사냥하라고 지급된 권총으로 최후의 교전을 벌이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몇몇은 이렇게 M1911을 전자동으로 개조해서 들고다니기도 했음 하지만 권총을 쏴본 군붕이들이라면 알겠지만 권총은 더럽게 안맞고 사정거리도 너무 짧으며 화력도 약함. 따라서 각국은 조종사만을 위한 생존용 총기 (Survival Rifle)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게 나치 독일의 M30 삼렬총과 미국의 M-4 서바이벌 라이플, 그리고 M-6 ASW임 우선 M30 삼렬총의 경우, 사냥광이었던 괴링의 입김 때문에 독일 공군에 채택되었음. 이렇게 알루미늄 상자에 분해된 채로 비행기 내에 보관되어 있었고 주로 북아프리카 전선의 독일군 조종사들에게 지급되었음. 여기에는 청소 키트, 12게이지 슬러그탄 20발과 12게이지 버드샷 20발, 그리고 9.3x74mmR 소프트 포인트 소총탄 20발이 동봉되어 있었는데, 소프트 포인트 탄환이 지급된 이유는 조종사가 사람을 향해 총을 쏘면 당시 국제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정규군에 제대로 된 보급을 하기도 빠듯한 독일이 이런 고급 사냥총을 모든 항공기에 탑재하기에는 무리가 컸으며, 작동 구조가 매우 복잡한데다 나치 독일의 난잡한 생산체계 덕분에 단가가 매우 비싸졌음. 따라서 이 독특한 삼렬총은 1941년부터 1942년까지 단 2,456정만이 생산되었음. 생산된 총의 대부분은 공군 장교들이 사냥용으로 쓰거나, 사냥 매니아였던 헤르만 괴링이 자신과 함께 사냥을 즐기러 찾아온 인사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사용했다고 함… 다음으로 M-4 서바이벌 라이플은 제 2차 세계대전중 개발이 시작되어 1949년부터 미 공군에 납품되었던 22구경 볼트액션 소총이었음. 주 목적은 적과의 교전이 아닌 야생에서 동물을 사냥하거나 개인 호신용으로 쓰기 위한 용도였기에 상대적으로 저위력이고 반동도 약한 22.lr탄을 사용했고, 비용 절감을 위해서 M265 22구경 사냥용 볼트액션 소총을 개조, 접철식 개머리판을 장착하고 무게절감을 위해서 목재 부품을 모두 제거했음. 따라서 소총치고는 가벼운 1.8kg의 무게를 가지게 되었음 성능에 만족한 미군은 1950년까지 약 29,000정의 M-4 소총을 생산해서 배치했음 M4 서바이벌 라이플은 분명히 좋은 무기였지만 몇 가지 단점이 드러났음. 우선, 22.lr의 성능이 호신용이 아닌 사냥용으로써는 생각보다 그닥이라는 불만이 있었고, 또 총기 자체의 내구도가 너무 약했음. 따라서 1950년, 미 공군은 Ithaca Gun Company에 새로운 조종사용 소총 제작을 요구했음. T39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시작된 이 소총은 M-6 Aircrew Survival Weapon이라는 이름으로 미군에 납품됨. 접히는 개머리판에는 9발의 22구경 탄환과 4발의 .410 산탄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조종사는 발사핀 선택기를 사용하여 총탄을 발사할 총열을 선택해 발사할 수 있었다고함. 또한 M-6은 주로 B-52, B-1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보급되었는데, 이들은 냉전 기간 동안 북극과 알레스카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방아쇠는 장갑을 착용하고도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되었음. 최대 사거리는 22구경 호넷탄을 사용할 경우 100m, .410 bore의 산탄을 사용할 경우 25m였음. 채택한 지 몇 년 후, 미국 조종사들은 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M-6 ASW를 실제로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임. 베트남군은 충분히 강했고, 결과적으로 미 공군은 큰 손실을 입었음. 조종사들은 때때로 낙하산을 타고 도망쳐야만 했고, 파라레스큐가 그들을 구출하거나-혹은 베트남군에게 붙잡힐때까지 그들 중 일부는 이 ‘서바이벌 라이플’을 사용해야만 했음 미군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M-6 ASW는 훌륭한 총기와는 거리가 멀었음. .410산탄은 실제로 다양한 사냥감을 사냥하는 데 편리한 수단이었고, 곤경에 처한 조종사는 신선한 고기를 요리할 수 있었으나 베트남에서의 주요 위협은 굶주림과는 거리가 멀었다는게 문제였음. 조종사는 적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었고, 적과의 대치 상황에서 M-6은 거의 쓸모가 없었음. 여분의 탄약 없이는 겨우 몇 발만 쏠 수 있었으며, 베트콩과의 교전에서 .22구경의 위력은 크게 부족했음. 결국 70년대에 이 총은 민간에 불하되거나 폐기되었고, 의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함. 이후에도 XB-70을 위해 개발되다 사업 자체가 망하고 M-6을 대체하지 못한채로 시제품 12정만 생산된 아말라이트 AR-5라든가 AR-5를 개량한 AR-7(이건 항공기 조종사용보단 민수용과 특수부대용으로 더 많이 팔렸음) 등이 등장했지만 정작 미군은 도입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공군이 도입해서 써먹었다고 함. 하지만 ‘조종사용 생존 총기’라는 마이너한 총기 특성상 모든 파일럿들에게 이러한 총기가 보급되지는 않았고, 대다수의 조종사들은 그냥 권총을 들고 작전에 나갔음. 아래는 관련 조종사들의 증언임. ….(전략)….적대국가(여기서는 베트남)의 영토를 비행할 때는 그랬습니다. 해군은 저에게 스넙노즈 .38(길이가 3인치 미만인, 휴대하기 간편한 리볼버)또는 45구경 M1911을 지급받을지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니면 원한다면 다른 권총을 사서 휴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친구이자 동료가 9mm 자동권총을 직접 구매했습니다. (A-1 스카이레이더에 톱질한 산탄총을 휴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38을 선택했습니다. 여러 개의 AK-47이 저를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체포에 대비해 최후의 저항을 하기 위해 권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직 미 해군 조종사, 베트남전 참전용사 홀스터에 넣은 .38 리볼버는 비행할 때마다 확인하고 복귀할 때 반납했습니다. 저는 항상 신호탄을 장전했는데, 주된 용도가 신호 보내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의 영토에서 하고 싶은 마지막 일은 권총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전직 F-111 조종사 공군 조종사에게는 5발이 든 38구경 리볼버가 지급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똑똑하다면 AK-47과 맞서지 않기 위해서 즉시 내다버렸을 겁니다. -전직 F-4/KC-135 조종사 알래스카에서 비행할 때는 권총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22구경이었 는데, 토끼와 뇌조를 잡아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베트남에 있을 때, 저는 38 스페셜 리볼버를 휴대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지급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웃으며 아시아에서 육탄전을 하고싶진 않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무기라기보다는 장신구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를 더 안정되게 만들었습니다. -전직 F-86, F-100, F106 조종사, 한국전쟁, 베트남전 참전용사 예전에는" S&W .38구경 리볼버를 휴대했습니다. 조끼에 맞는 다른 물건도 휴대할 수 있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저는 알레스카에서 복무했습니다). 저는 보급계원한테 제 9mm 브라우닝 하이파워용 홀스터를 제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6발보다 14발을 쏘는 것이 더 나았고, 6발을 개별적으로 장전하는 것보다 탄창에 장전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입니다). 비행/탈출중에 스스로를 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총은 장전하지 않고 총알은 G-Suit의 주머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저는 그 무기를 어떤 종류의 자기 방어용으로도 고려한 적이 없고, 오히려 사출 후 하루나 이틀 동안 밖에 있어야 할 경우 먹을 작은 동물을 쏘는 용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다지 웃기지 않는 농담은 북극곰을 만났을 때를 대비해 마지막 한 방은 자살용으로 놔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극곰은 인간과 친하지 않으며, 권총으로 곰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전직 미 공군 조종사 저는 1970-71년 다낭에서 VMFA 115의 RIO(무장관제사) 였습니다. 우리는 S&W 38을 지급받았습니다. 우리는 어깨용 또는 벨트용 홀스터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깨용 홀스터를 선택했는데, G 슈트가 벨트 홀스터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별로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몇 이들은 조종석에 M16이나 소드오프 산탄총을 몰래 넣었습니다. 탈출시 어떻게 가져갈 계획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비행대의 한 조종사는 거대한 대검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그가 탈출하게 된다면 다리가 잘리거나 더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농담하곤 했습니다. -전직 미 해병항공대 장교, 베트남전 참전용사 베트남 출신은 아니지만, 원래 브루클린 출신인 매우 괴짜이지만 성 격 좋은 이스라엘 전투기 조종사를 알고 있는데, 그는 더 이상 전투기를 탈 수 없을 때까지 F-4 팬텀을 몰았고, 아랍 상공에서 격추될 경우를 대비해 항상 맞춤형 진주 손잡이가 달린 2인치 콜트 파이썬 357 매그넘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전직 미 공군 정비사. 저는 베트남에서 총을 휴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모든 생존 키트를 대기실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고 모두 반환할 수 있었습니다. 총을 잃어버리면 FBI 수사를 받아야 하므로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투기 조종사와 다른 사람들은 종종 권총을 휴대합니다. (공군은 짧은 M4 카빈총을 사출 좌석에 쑤셔넣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막의 폭풍 동안 해군항공대의 두 친구는 개인용 개틀을 가지고 갔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걱정하는 친구나 친척이 총을 사거나 선물로 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명은 새 9mm 베레타를 선물받았고, .380 리볼버를 선물받은 이도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 많은 항공 승무원은 수류탄을 포함한 다양한 무기를 휴대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분의 무게를 여분의 생존용 식량이나 무전기 배터리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베트남 민병대나 북베트남군과의 총격전은 패배로 끝났지만 한 RA-5C 조종사는 .25 hideout을 꺼내 헬기가 들어오는 동안 자신을 잡았다고 생각한 두 명의 NVA를 쏘았고, 그는 구출되었습니다. -전직 미 해군항공대 장교 저는 1970년 첫 임무로 태국에서 B-52를 조종했고, USAF의 제식 권총인 .38구경 S&W 리볼버를 받았습니다. 100m에서 6번 중 6번은 표적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저는 육군 예비역 동료들에게 제 첫 사격이 M1 Garand였다고 놀리곤 했습니다. 그들은 믿기 어려워했는데, 육군이 최소 1950년대 중반에 이 무기를 없앴기 때문입니다. 제가 1965년에 공군사관학교에서 훈련받을때까지 공군은 이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공군사관학교에 가기 전에, 저는 고등학교 때 권총으로 유타와 네바다에서 토끼를 사냥하곤 했는데, .357매그넘 리볼버와 .44구경 리볼버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38구경 리볼버를 다루는 것은 저에게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전투 임무중에 저는 USAF에서 보급한 .38구경 S&W 리볼버를 비공식적으로 테스트했고 근거리에서 텔레비전 화면과 같은 얇은 표적을 관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서 USAF가 여전히 사용 중인 오래되고 약한 리볼버를 보완하기 위해 .38의 작약량을 낮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군이 알루미늄 실린더가 달린 .38 초경량 “에어크루” 리볼버를 1,000개 이상 구매했기 때문에 이 탄약 [약장탄을 말하는듯?]을 구매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리볼버는 표준 .38 스페셜 탄약을 사용하면 폭발하는 성가신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쉽게 두개골이나 뼈에 튕겨져 화가 난 채로 피흘리는 적을 남겼습니다. 첫 번째 파병 동안 B-52에 있을 때는 약한 .38이 괜찮았는데, 대부분 적 지대공 미사일의 사거리를 넘어서 날았고 격추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52가 홍강 계곡과 하노이/하이퐁 지역으로 이동한 후, 지대공 미사일과 MiG에 큰 손실을 입었지만, 그것은 2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파병을 준비하기 위해 더 나은 총을 가지고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에는 B-52가 아닌 팬텀이었습니다. 저는 약 2개월 동안 비행기와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은 부대에 갔습니다. (1972년 부활절 공세 직후, 미 공군이 다시 북쪽으로 진군했을 때). 그래서 호신용 무기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저는 .44 Automag 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44구경 자동권총은 F-4용 G-Suit와 함께 착용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단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상자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저는 9mm 브라우닝 하이파워를 가지고 다낭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항상 권총을 편안하게 사용했고 항상 100m 근처에서 맞닥뜨린 적을 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비행한 세 가지 다른 유형의 지역에 대한 철학/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베트남의 홍강 계곡과 같은 거주 지역에서 격추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입니다) 논에서 저를 구출하러 오는 민병대와 북베트남 군인들에게 항복해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도망치거나 숨을 수 없다면 그게 해야 할 일이었고,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살아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심하게 구타당하긴 하겠지만-일단 살아는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라오스의 호치민 루트에서 격추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북베트남 군인들이 그 지역을 통제했으며, 평화 협정에 사용할 “포로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저는 하노이의 감옥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치민 루트 밖에서 라오스에서 격추되었다면, 그것은 더 미묘했습니다. 주된 목표는 구조대가 헬리콥터와 A-1 또는 A-7로 나를 발견할 때까지 숨는 것이었습니다. 나쁜 놈들에게 발견되면, 총을 쏘고 도망가서, 당신과 그들 사이에 최대한 거리를 둔 다음, 다시 숨어들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100m 밖으로 따돌리고 엄폐할 수 있다면, 저는 대다수가 AK로 그 사정거리에서 저를 맞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저는 “비교적” 안전했습니다. 캄보디아—잊으세요. 우리는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또는 아무 이유 없이 자국민을 학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크메르 루즈의 손에 사라진 모든 서양인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 선택은 숨는 것이었지만, 불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총을 쏴댈 생각이었습니다. 남베트남은 라오스와 비슷했습니다. 대부분의 적의 통제 지역은 NVA(북베트남군)가 운영했습니다(베트콩 게릴라와는 대조적으로, 일반적으로 그들의 지역에는 포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서 잡힐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상황은 상황에 따라 달랐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모든 옵션에 대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저는 제 9mm 하이파워에 탄창 1개를 넣고 베트남 전역에서 150회 이상의 임무를 수행했고, 착용한 GI 웹 벨트 앞쪽에 여분의 탄창 6개를 장착했습니다. 위험한 임무에 투입될 경우, 추적탄이나 플레어탄을 섞어서 약 60발이 든 .38을 장착했습니다. 38구경 탄약은 무료로 제공되었기 때문에 연습하고 휴대할 수 있는 탄약이 많았지만, 9mm는 구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저는 또한 CIA 요원을 통해서 9mm ‘Swedish K’ 기관단총 (칼 구스타프 M/45) 2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낭에서 자주 공격을 받았고, 라오스 국경에 가까운 태국 북부의 기지에서도 두 번 더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보호를 위해 “후치 건”(무슨 총을 말하는지 모르겠음)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종석에 M/45 기관단총을 한두 번 실었지만 .44 AutoMag처럼 항상 방해가 되었습니다. 지휘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무전망에서 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오스에서 비행하는 FAC(전선통제관)인 USAF 소령이 추락했고 Pathet Lao(라오스의 좌파-친베트남 무장단체)가 그를 쫓아와 총을 쏘았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그를 살아서 데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1시간 이상 적과 싸웠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에게 그가 입은 모든 상처와 그를 사냥하던 소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는데 성공했는지를 보고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파라레스큐를 보내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그는 이미 몇 발을 맞은 상태였다고 했고, 다음날 무전으로 그가 죽었음이 확인되었으며, 사령관은 그를 살려내려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책을 들었습니다. 한가지 기괴한 이야기는 Pathet Lao에 의해 포로로 잡혀서 파리 협정 당시 살아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USAF와 NAF 승무원(350명 이상—다른 이야기입니다)은 결국 단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소령은 CAR-15(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짧은 M-16)와 일종의 반자동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던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태국 북부에 있는 제 F-4 비행대의 다른 이들은 .45구경 M1911과 .357 리볼버를 가지고 다녔고, 와이오밍 출신의 친구 한 명은 7인치 총열을 가진 Colt .45 싱글액션 리볼버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제가 본 가장 특이하고 부러웠던 총은 베트남에 가기 전에 만났던 한 지휘관이 가지고 다닌 것인데, 바로 일체형 소음기가 장착된 .22 Ruger 반자동 권총이었습니다. 그가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받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중략)…….. 테러 지역을 비행하는 모든 항공 승무원은 조종석에 가장 크고 최고의 무기를 휴대하고 사용할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현재 우리의 적들은 제네바 협약을 존중하지 않으며 체포되는 일은 드뭅니다. 체포되면 다음에 일어날 일은 총격을 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 것입니다. -전직 B-52, F-4 조종사, 걸프전-베트남전 참전용사 보면 알겠지만 거의 모든 조종사들이 단순하게 권총만 휴대하고 다녔단걸 알 수 있음. 이후에도 대다수의 조종사들은 특수한 서바이벌 라이플보단 그냥 권총을 들고 작전에 나갔던것 같음. 하지만 2010년대에 상황이 다시 변하게 되는데 이새끼들 때문임 전세계가 위아더월드로 ISIS를 공습하는 와중에 격추된 조종사가 제대로 된 포로대우를 받을리가 없었고 이는 곧 붙잡힌 요르단군 조종사가 끔찍하게 화형당하며 현실이 됨 이에 기겁한 네덜란드 공군은 공습에 참여하는 자국군 조종사들한테 MP9 기관단총을 홀스터에 넣어 휴대하게끔 했고 시리아 반군과 ISIS에게 자국군 조종사가 맞아죽는걸 본 러시아군도 조종사에게 20발짜리 스테츠킨 기관권총과 다량의 탄약을 휴대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AK-74S같은 기관단총을 쥐어줬음. 근데 걍 권총 하나만 심플하게 휴대하는 경우도 있는거 봐선 여기도 조종사마다 케바케인듯 미 공군의 경우에는 3점사형 M-4에 착탈식 총열, 접이식 권총손잡이 장착 등의 개량을 거친 GAU-5 ASDW (Aircrew Self Defense Weapon) 를 2018년부터 도입했는데, ACES II 사출좌석 내부 공간에 이렇게 접어서 수납한다고 하며 현재까지 약 3천정 정도가 A-10, B-1, B-2, B-52, F-15C/D/E, F-16, F22 파일럿들한테 지급되었다고 함. 참고로 F-35는 US16E라는 새로운 사출좌석을 장착해서 GAU-5의 수납이 불가능하기에 권총을 지급한다고 여담으로 헬리콥터 조종사들의 경우 전투기보단 상대적으로 공간이 넉넉하고 추락했을때 적 보병과 맞닥뜨리기 쉬웠던 탓에 XM177같은 카빈을 가지고 타거나 아예 M-16같은 소총을 휴대하기도 했으며 아니면 그냥 권총만 가지고 다니기도 했음. 러시아군의 경우도 AKS-74U같은 기관단총을 휴대하거나 현재도 미국이나 영국의 헬기 조종사들은 M-4나 SA-80을 조종석 옆에 부착해놓음. 한국 공군과 육항대의 경우에는 K-5 권총과 S&W 38구경 리볼버를 조종사 개인무장으로 지급하고 있음.
하메스작성일
2024-11-19추천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