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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엽기영상] 문재인 대통령 시정연설 풀영상
전문은 여기서 가져왔습니다http://fun.jjang0u.com/articles/view?db=352&no=71741 다음은 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전문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정세균 국회의장님과 의원 여러분.19대 국회 때 바로 이 자리에서 당대표 연설을 했습니다.20대 국회에서 인사드리는 것은 처음이지만,19대 국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분들이 많아서친근한 동료의식을 갖고 있습니다.지난 5월 10일, 저는 국회에서엄숙한 마음으로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습니다.오늘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한 이유와 주요 내용을직접 설명드리고 의원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역대 가장 빠른 시기의 시정연설이자사상 최초의 추경시정연설이라고 들었습니다.국회와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치하고자하는 저의 노력으로 받아들여주십시오.그러나 그 보다 더 주목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은일자리 추경의 절박성과 시급성입니다.한 청년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했고, 입시보다 몇 배 더 노력하며 취업을 준비했습니다.그런데 청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면접이라도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그 청년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수많은 아들딸들이 이력서 백장은 기본이라고,이제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하고 있습니다.실직과 카드빚으로 근심하던 한 청년은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에 이렇게 썼습니다."다음 생에는 공부를 잘할게요."그 보도를 보며 가슴이 먹먹했던 것은모든 의원님들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부상당한 소방관은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동료들에게 폐가 될까 미안해 병가도 가지 못합니다.며칠 전에는 새벽에 출근한 우체국 집배원이과로사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일일이 말씀드리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이렇게 국민들의 고달픈 하루가 매일매일 계속되고 있습니다.우리 정치의 책임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이 분명한 사실을 직시하고 제대로 맞서는 것이 국민들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의원 여러분!국민의 삶이 고단한 근본원인은 바로 일자리입니다.누구나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우리의 고용상황이 너무나 심각합니다.그래서 지난 대선 때 우리 모두는,방법론에는 차이가 있었지만,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기가 우리 경제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이미 통계청에서 발표하여 보도된 내용이지만,우리의 고용상황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실업률은 2000년 이후 최고치, 실업자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특히 청년 실업은 고용절벽이란 말이 사용될 정도로매우 심각합니다.연간 청년실업률은 2013년 이후 4년간 급격하게 높아졌고,지난 4월 기준 청년실업률은통계작성 이후 최고치인 11.2%를 기록했습니다.체감 실업률은 최근 3개월간 24% 안팎,청년 4명 가운데 1명이 실업자입니다.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에코붐 세대가 주취업연령대에 진입한 반면에청년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좋은 일자리는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이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으면에코붐세대의 주취업연령대 진입이 계속되는 동안청년실업은 국가재난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고,우리는 한 세대 청년들의 인생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저출산 고령화 대책도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하더라도,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했듯이,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입니다.소득분배 악화 상황도 심각합니다.소득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계층의 소득이2016년에 무려 5.6%나 줄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상위 20% 계층의 소득은 2.1% 늘었습니다.이러한 추세는 금년 1/4분기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제일 잘사는 계층과 못사는 계층 간에 소득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특히 주목할 것은 1분위 계층의 소득감소가 5분기 동안,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지표는 좋아지고 있는데,시장 상인이나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은외환위기 때 보다 경기가 더 나쁘다고 호소합니다.실제로 도소매, 음식숙박업 같은 서비스업은지난 1/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국민들의 지갑이 얇아지니 쓰는 돈이 줄어들었습니다.시장이며 식당은 장사가 안 되니 종업원을 고용할 수 없습니다.그러니 주로 저소득층이 종사하던 일자리가 줄어듭니다.앞서 말씀드린, 1분위 계층의 소득이 감소하게 된 이유입니다.극심한 내수불황 속에서제일 어려운 계층이 벼랑 끝으로 몰렸습니다.우리나라의 경제불평등 정도는 이미 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준입니다.상위 10%가 전체 소득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50%, 절반에 육박합니다.통계상으로는 OECD국가 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입니다.과세에서 누락되는 고소득자들의 소득이 많은 실정을 감안하면,우리의 소득불평등 정도가 미국보다 더 심할지도 모릅니다.그런터에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잘 살게 되고못 사는 사람들은 더 못살게 되는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은참으로 우려해야 할 일입니다.이런 흐름을 바로잡지 않으면대다수 국민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성장도 어렵습니다.통합된 사회로 갈 수도 없습니다.민주주의도 실질이나 내용과는 거리가 먼 형식에 그치게 됩니다.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대의민주주의에 만족하지 못하고거리로 나서게 되는 근본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해법은 딱 하나입니다.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입니다.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성장의 결과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일자리를 늘려 성장을 이루는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국민 여러분, 의원 여러분경제는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현재의 실업대란을 이대로 방치하면국가재난수준의 경제위기로 다가올 우려가 있습니다.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할지도 모릅니다.거듭 말씀 드리지만, 문제의 중심에 일자리가 있습니다.물론 단번에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합니다.추경을 편성해서라도 고용을 개선하고, 소득격차가 더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다행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수실적이 좋아증세나 국채발행 없이도 추경예산 편성이 가능합니다.이렇게 대응할 여력이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다면,정부의 직무유기이고,나아가서는 우리 정치의 직무유기가 될 것입니다.이에 정부는 올해 예상 세수 증가분 8조8000억원과 세계잉여금 1조 1000억원,기금 여유자금 1조3000억원을 활용하여총 11조2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중심 추경예산안을 편성했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의원 여러분,이번 추경 예산은 재난에 가까운 실업과 분배악화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긴급처방일 뿐입니다.근본적인 일자리 정책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 추진해야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그러나 빠른 효과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국민에게 필요한 일은 하는 정부'입니다.그것이 책임 있는 정부입니다.일자리 대책, 이번 하반기부터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의원님들께서 협력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우선 시급한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마중물이 되어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 노력이 촉진되기를 특별히 기대하고 요청합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의원 여러분,이제, 추경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 보고 드리겠습니다.추경 목적에 맞게 일자리와 서민생활 안정에 집중하였습니다.항구적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대규모 SOC사업은 배제했습니다.대신 육아휴직급여,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등 지난 대선에서 각 당이 내놓은 공통공약을 최대한 반영했습니다.추경예산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 드리면,첫째,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에게 최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거나, 취업과 창업을 돕는 예산입니다.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일자리는 두 가지를 고려했습니다. 안전 ·복지 ·교육 등 국민 모두를 위한 민생서비스 향상에 기여하면서동시에 충원이 꼭 필요했던 현장 중심의 인력으로 한정했습니다.먼저 소방관입니다. 2교대에서 3교대로 전환 되었지만그에 따른 인원 증원이 없었습니다.법정인원에 비해 턱없이 수가 부족해 소방차와 119 구조차량이 탑승 인력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로 인해, 지난해 태풍 때 구조대원이 부족해 대체 투입되었던 구급대원이 순직한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다음은 복지 공무원입니다. 올해 초, 한 달 간격으로 세 명의 복지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을 정도로 살인적인 업무량과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근로감독관도 부족합니다. 감독관 1명이 근로자 1만2000여명, 사업장 1500여 개를 담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최저임금 위반이나 아르바이트비 체불 등은단속할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그밖에도 경찰관, 부사관, 군무원, 집배원, 가축방역관 등까지 합쳐국민 안전과 민생 현장에서 일할 중앙과 지방 공무원 1만 2천명을 충원해 민생서비스를 개선하겠습니다.보육교사, 노인돌봄서비스, 치매관리서비스, 아동안전지킴이 등민간이 고용하는 공공부문 일자리도 지원하고자 합니다. 추경이 통과되면,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을 위해 필요한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2만4000개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습니다.이상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사실상 청년 일자리입니다.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인 동시에민생수요에 비해 수가 부족했던 현장인력을 확충하는 것인 만큼청년실업 해소와 민생사회서비스 향상의 일석이조 효과가 기대됩니다.이번 추경으로 민간부문에서도 청년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돕고자 합니다.중소기업 청년고용지원제도를 신설해중소기업의 청년취업문을 넓히겠습니다.중소기업이 청년 두 명을 채용하면, 추가로 한 명을 더 채용할 수 있게끔추가 고용 한 명의 임금을 국가가 3년간 지원하겠습니다.이번 추경으로 5천명의 추가채용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줄여주는 예산도 편성했습니다. 내일채움공제의 적립금과 대상인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청년들도 목돈을 마련할 수 있고,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보다 많은 청년들이 과감하게 창업에 도전할 수 있게 돕겠습니다.청년창업지원펀드 확대 등으로 청년 창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겠습니다. 또한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3천억 원 규모의 '재기지원펀드' 신설도 포함시켰습니다.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구직활동을 하는청년들의 고단함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습니다.청년구직촉진수당을 신설해서 구직활동을 하는 3개월간 월 30만원씩 우선 지원하고자 합니다.내년도 예산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실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청년들의 거주난도 도울 수 있습니다.청년들이 적은 비용으로 출퇴근에 용이한 역세권에 거주할 수 있도록 다가구 임대주택을 추가로 공급하는 것입니다.이번 추경에는 2700호분 공급예산을 배정했습니다.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지금의 청년세대를 두고'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청년들에게만 속 상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자식들만은 우리보다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부모들에게도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입니다.청년 일자리는 자식들의 문제이자 부모들의 문제입니다.정부와 국회가 함께 팔 걷어 부치고 나서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둘째, 여성들에게 일할 기회를 늘려주고 가정의 행복을 돕는 예산입니다. 육아 휴직을 해도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출산 첫 3개월의 육아휴직 급여를 최대 두 배까지 늘리도록 했습니다. 육아휴직은 끝났는데, 당장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여성경력단절은 여성과 가정, 국가에 모두 손실입니다.국공립 어린이집을 올해 예정한 지원규모보다 두 배 늘려360개를 신규 설치함으로써부모들의 육아부담을 덜어드리겠습니다.민간 어린이집이 없는 지역에 신설하거나 운영이 어려운 민간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방법 등으로 민간과 상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어린이집 보조교사, 대체교사를 늘리면일자리도 늘고, 교사들도 법정 근로시간을 지킬 수 있습니다.아이들도 더 많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습니다.5천명을 충원하는 예산을 배정했습니다.다시 일하고 싶은 여성들이 보다 쉽게 일자리를 찾도록 돕는 예산도 있습니다.새일센터에 창업매니저와 취업설계사를 새로 배치하고, 직업교육 과정을 확대하는 예산을 배정했습니다.미세먼지는 아이 키우는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됐습니다.전국 모든 초등학교에 미세먼지 측정 장치를 설치할 수 있도록예산을 배정했습니다.미세먼지가 심할 경우, 학교장이 즉시 대응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셋째, 어르신들의 일자리와 건강을 위한 예산입니다.어르신들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할 수 있어야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습니다.노인 빈곤률과 자살률이 OECD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불명예와 불효,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우선 노인 공공일자리를 3만개 늘리고일자리 수당을 월 22만원에서 월 27만원으로 인상하는 예산을 반영했습니다.은퇴자의 기술과 경험이 청년 창업자들과 만나면어르신 일자리도 늘리고 청년 창업도 도울 수 있습니다. 청년 창업자와 공동창업으로어르신들의 지혜와 경륜을 살리는 일자리를 만들도록 했습니다.치매는 국민 모두의 공포입니다.어르신들도, 가족들도 그 고통을 혼자 감당해서는 안 됩니다.치매국가책임제,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전국 통틀어 47개소에 불과한 치매안심센터를252개로 늘리는 예산을 배정했습니다.전국 모든 시군구에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되면치매 상담은 물론 조기 검진을 통해 치매를 예방하고,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줄여드릴 것입니다.넷째, 지역에 밀착한 일자리를 만들고, 취약한 민생과 국민안전을 강화하는 예산입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 하수관거 정비 등낙후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예산을 배정했습니다.지역에서 일자리를 늘리면서 주민들 삶의 질을 개선하는 사업입니다.특히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도시경쟁력을 강화시켜 지역경제를 살리고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과가 기대됩니다.기초생활보장제는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한 제도입니다.불합리한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하여제도 수혜자를 4만 1천 가구 늘리고자 합니다.구의역 사고 같은 비극은 다시, 없어야 합니다.스크린도어 안전 보호벽을 개선하는 예산을 배정했습니다.국민안전을 강화하는 동시에 관련 업종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입니다.마지막으로, 이번 추경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총 3조 5천억 원이 지원됩니다.지방정부들도 이번 추경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지원 예산을 일자리 정책과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는 민생 관련 사업에 중점 사용해 줄 것을 특별히 당부 드립니다.존경하는 국회의원 여러분,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약 11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서민들의 생활이 조금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응급처방이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일자리는 국민들에게 생명이며, 삶 그 자체입니다.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국민 기본권입니다.국민들은 버틸 힘조차 없는데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국민이 힘들면 지체 없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국민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그게 정부고, 그게 국가라는 판단으로 편성한 예산입니다.국회가 함께 해주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국회는 올해 초 환경미화원을 직접 고용했습니다.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선도적인 노력을 국회가 먼저 시작했습니다.저도 단단히 마음먹고 있습니다.단 1원의 예산도 일자리와 연결되게 만들겠다는 각오입니다.정부의 모든 정책역량을 일자리에 집중할 것입니다.국회와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야당과 여당이 함께 힘을 합해야 합니다.공공과 민간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함께 합시다. 마음 놓고 일하고 싶다는 국민들의 절박한 호소에 응답합시다.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통을 껴안읍시다.일자리에서부터 국회와 정부가 협력하고, 야당과 여당이 협력하는 정치를 한다면국민들께도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이번 추경이 빠른 시일 내에 통과되어 기대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합니다. 정부는 국회가 추경을 확정하는 대로 바로 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전 준비에 만전을 다하겠습니다.정부는 비상시국에 인수위 없이 출범한 상황에서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조속히 국정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국회의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저와 정부도 국회를 존중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협의해나가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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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문재인 국회 시정연설 전문
다음은 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전문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정세균 국회의장님과 의원 여러분.19대 국회 때 바로 이 자리에서 당대표 연설을 했습니다.20대 국회에서 인사드리는 것은 처음이지만,19대 국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분들이 많아서친근한 동료의식을 갖고 있습니다.지난 5월 10일, 저는 국회에서엄숙한 마음으로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습니다.오늘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한 이유와 주요 내용을직접 설명드리고 의원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역대 가장 빠른 시기의 시정연설이자사상 최초의 추경시정연설이라고 들었습니다.국회와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치하고자하는 저의 노력으로 받아들여주십시오.그러나 그 보다 더 주목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은일자리 추경의 절박성과 시급성입니다.한 청년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했고, 입시보다 몇 배 더 노력하며 취업을 준비했습니다.그런데 청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면접이라도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그 청년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수많은 아들딸들이 이력서 백장은 기본이라고,이제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하고 있습니다.실직과 카드빚으로 근심하던 한 청년은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에 이렇게 썼습니다."다음 생에는 공부를 잘할게요."그 보도를 보며 가슴이 먹먹했던 것은모든 의원님들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부상당한 소방관은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동료들에게 폐가 될까 미안해 병가도 가지 못합니다.며칠 전에는 새벽에 출근한 우체국 집배원이과로사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일일이 말씀드리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이렇게 국민들의 고달픈 하루가 매일매일 계속되고 있습니다.우리 정치의 책임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이 분명한 사실을 직시하고 제대로 맞서는 것이 국민들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의원 여러분!국민의 삶이 고단한 근본원인은 바로 일자리입니다.누구나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우리의 고용상황이 너무나 심각합니다.그래서 지난 대선 때 우리 모두는,방법론에는 차이가 있었지만,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기가 우리 경제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이미 통계청에서 발표하여 보도된 내용이지만,우리의 고용상황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실업률은 2000년 이후 최고치, 실업자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특히 청년 실업은 고용절벽이란 말이 사용될 정도로매우 심각합니다.연간 청년실업률은 2013년 이후 4년간 급격하게 높아졌고,지난 4월 기준 청년실업률은통계작성 이후 최고치인 11.2%를 기록했습니다.체감 실업률은 최근 3개월간 24% 안팎,청년 4명 가운데 1명이 실업자입니다.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에코붐 세대가 주취업연령대에 진입한 반면에청년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좋은 일자리는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이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으면에코붐세대의 주취업연령대 진입이 계속되는 동안청년실업은 국가재난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고,우리는 한 세대 청년들의 인생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저출산 고령화 대책도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하더라도,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했듯이,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입니다.소득분배 악화 상황도 심각합니다.소득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계층의 소득이2016년에 무려 5.6%나 줄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상위 20% 계층의 소득은 2.1% 늘었습니다.이러한 추세는 금년 1/4분기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제일 잘사는 계층과 못사는 계층 간에 소득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특히 주목할 것은 1분위 계층의 소득감소가 5분기 동안,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지표는 좋아지고 있는데,시장 상인이나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은외환위기 때 보다 경기가 더 나쁘다고 호소합니다.실제로 도소매, 음식숙박업 같은 서비스업은지난 1/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국민들의 지갑이 얇아지니 쓰는 돈이 줄어들었습니다.시장이며 식당은 장사가 안 되니 종업원을 고용할 수 없습니다.그러니 주로 저소득층이 종사하던 일자리가 줄어듭니다.앞서 말씀드린, 1분위 계층의 소득이 감소하게 된 이유입니다.극심한 내수불황 속에서제일 어려운 계층이 벼랑 끝으로 몰렸습니다.우리나라의 경제불평등 정도는 이미 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준입니다.상위 10%가 전체 소득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50%, 절반에 육박합니다.통계상으로는 OECD국가 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입니다.과세에서 누락되는 고소득자들의 소득이 많은 실정을 감안하면,우리의 소득불평등 정도가 미국보다 더 심할지도 모릅니다.그런터에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잘 살게 되고못 사는 사람들은 더 못살게 되는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은참으로 우려해야 할 일입니다.이런 흐름을 바로잡지 않으면대다수 국민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성장도 어렵습니다.통합된 사회로 갈 수도 없습니다.민주주의도 실질이나 내용과는 거리가 먼 형식에 그치게 됩니다.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대의민주주의에 만족하지 못하고거리로 나서게 되는 근본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해법은 딱 하나입니다.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입니다.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성장의 결과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일자리를 늘려 성장을 이루는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국민 여러분, 의원 여러분경제는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현재의 실업대란을 이대로 방치하면국가재난수준의 경제위기로 다가올 우려가 있습니다.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할지도 모릅니다.거듭 말씀 드리지만, 문제의 중심에 일자리가 있습니다.물론 단번에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합니다.추경을 편성해서라도 고용을 개선하고, 소득격차가 더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다행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수실적이 좋아증세나 국채발행 없이도 추경예산 편성이 가능합니다.이렇게 대응할 여력이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다면,정부의 직무유기이고,나아가서는 우리 정치의 직무유기가 될 것입니다.이에 정부는 올해 예상 세수 증가분 8조8000억원과 세계잉여금 1조 1000억원,기금 여유자금 1조3000억원을 활용하여총 11조2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중심 추경예산안을 편성했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의원 여러분,이번 추경 예산은 재난에 가까운 실업과 분배악화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긴급처방일 뿐입니다.근본적인 일자리 정책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 추진해야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그러나 빠른 효과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국민에게 필요한 일은 하는 정부'입니다.그것이 책임 있는 정부입니다.일자리 대책, 이번 하반기부터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의원님들께서 협력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우선 시급한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마중물이 되어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 노력이 촉진되기를 특별히 기대하고 요청합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의원 여러분,이제, 추경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 보고 드리겠습니다.추경 목적에 맞게 일자리와 서민생활 안정에 집중하였습니다.항구적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대규모 SOC사업은 배제했습니다.대신 육아휴직급여,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등 지난 대선에서 각 당이 내놓은 공통공약을 최대한 반영했습니다.추경예산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 드리면,첫째, 우리의 미래인 청년들에게 최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거나, 취업과 창업을 돕는 예산입니다.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일자리는 두 가지를 고려했습니다. 안전 ·복지 ·교육 등 국민 모두를 위한 민생서비스 향상에 기여하면서동시에 충원이 꼭 필요했던 현장 중심의 인력으로 한정했습니다.먼저 소방관입니다. 2교대에서 3교대로 전환 되었지만그에 따른 인원 증원이 없었습니다.법정인원에 비해 턱없이 수가 부족해 소방차와 119 구조차량이 탑승 인력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로 인해, 지난해 태풍 때 구조대원이 부족해 대체 투입되었던 구급대원이 순직한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다음은 복지 공무원입니다. 올해 초, 한 달 간격으로 세 명의 복지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을 정도로 살인적인 업무량과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근로감독관도 부족합니다. 감독관 1명이 근로자 1만2000여명, 사업장 1500여 개를 담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최저임금 위반이나 아르바이트비 체불 등은단속할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그밖에도 경찰관, 부사관, 군무원, 집배원, 가축방역관 등까지 합쳐국민 안전과 민생 현장에서 일할 중앙과 지방 공무원 1만 2천명을 충원해 민생서비스를 개선하겠습니다.보육교사, 노인돌봄서비스, 치매관리서비스, 아동안전지킴이 등민간이 고용하는 공공부문 일자리도 지원하고자 합니다. 추경이 통과되면,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을 위해 필요한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2만4000개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습니다.이상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사실상 청년 일자리입니다.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인 동시에민생수요에 비해 수가 부족했던 현장인력을 확충하는 것인 만큼청년실업 해소와 민생사회서비스 향상의 일석이조 효과가 기대됩니다.이번 추경으로 민간부문에서도 청년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돕고자 합니다.중소기업 청년고용지원제도를 신설해중소기업의 청년취업문을 넓히겠습니다.중소기업이 청년 두 명을 채용하면, 추가로 한 명을 더 채용할 수 있게끔추가 고용 한 명의 임금을 국가가 3년간 지원하겠습니다.이번 추경으로 5천명의 추가채용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줄여주는 예산도 편성했습니다. 내일채움공제의 적립금과 대상인원을 대폭 확대하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청년들도 목돈을 마련할 수 있고,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보다 많은 청년들이 과감하게 창업에 도전할 수 있게 돕겠습니다.청년창업지원펀드 확대 등으로 청년 창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겠습니다. 또한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3천억 원 규모의 '재기지원펀드' 신설도 포함시켰습니다.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구직활동을 하는청년들의 고단함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습니다.청년구직촉진수당을 신설해서 구직활동을 하는 3개월간 월 30만원씩 우선 지원하고자 합니다.내년도 예산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실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청년들의 거주난도 도울 수 있습니다.청년들이 적은 비용으로 출퇴근에 용이한 역세권에 거주할 수 있도록 다가구 임대주택을 추가로 공급하는 것입니다.이번 추경에는 2700호분 공급예산을 배정했습니다.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지금의 청년세대를 두고'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청년들에게만 속 상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자식들만은 우리보다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부모들에게도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입니다.청년 일자리는 자식들의 문제이자 부모들의 문제입니다.정부와 국회가 함께 팔 걷어 부치고 나서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둘째, 여성들에게 일할 기회를 늘려주고 가정의 행복을 돕는 예산입니다. 육아 휴직을 해도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출산 첫 3개월의 육아휴직 급여를 최대 두 배까지 늘리도록 했습니다. 육아휴직은 끝났는데, 당장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여성경력단절은 여성과 가정, 국가에 모두 손실입니다.국공립 어린이집을 올해 예정한 지원규모보다 두 배 늘려360개를 신규 설치함으로써부모들의 육아부담을 덜어드리겠습니다.민간 어린이집이 없는 지역에 신설하거나 운영이 어려운 민간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방법 등으로 민간과 상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어린이집 보조교사, 대체교사를 늘리면일자리도 늘고, 교사들도 법정 근로시간을 지킬 수 있습니다.아이들도 더 많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습니다.5천명을 충원하는 예산을 배정했습니다.다시 일하고 싶은 여성들이 보다 쉽게 일자리를 찾도록 돕는 예산도 있습니다.새일센터에 창업매니저와 취업설계사를 새로 배치하고, 직업교육 과정을 확대하는 예산을 배정했습니다.미세먼지는 아이 키우는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됐습니다.전국 모든 초등학교에 미세먼지 측정 장치를 설치할 수 있도록예산을 배정했습니다.미세먼지가 심할 경우, 학교장이 즉시 대응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셋째, 어르신들의 일자리와 건강을 위한 예산입니다.어르신들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할 수 있어야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습니다.노인 빈곤률과 자살률이 OECD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불명예와 불효,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우선 노인 공공일자리를 3만개 늘리고일자리 수당을 월 22만원에서 월 27만원으로 인상하는 예산을 반영했습니다.은퇴자의 기술과 경험이 청년 창업자들과 만나면어르신 일자리도 늘리고 청년 창업도 도울 수 있습니다. 청년 창업자와 공동창업으로어르신들의 지혜와 경륜을 살리는 일자리를 만들도록 했습니다.치매는 국민 모두의 공포입니다.어르신들도, 가족들도 그 고통을 혼자 감당해서는 안 됩니다.치매국가책임제,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전국 통틀어 47개소에 불과한 치매안심센터를252개로 늘리는 예산을 배정했습니다.전국 모든 시군구에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되면치매 상담은 물론 조기 검진을 통해 치매를 예방하고,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줄여드릴 것입니다.넷째, 지역에 밀착한 일자리를 만들고, 취약한 민생과 국민안전을 강화하는 예산입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 하수관거 정비 등낙후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예산을 배정했습니다.지역에서 일자리를 늘리면서 주민들 삶의 질을 개선하는 사업입니다.특히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도시경쟁력을 강화시켜 지역경제를 살리고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과가 기대됩니다.기초생활보장제는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한 제도입니다.불합리한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하여제도 수혜자를 4만 1천 가구 늘리고자 합니다.구의역 사고 같은 비극은 다시, 없어야 합니다.스크린도어 안전 보호벽을 개선하는 예산을 배정했습니다.국민안전을 강화하는 동시에 관련 업종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입니다.마지막으로, 이번 추경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총 3조 5천억 원이 지원됩니다.지방정부들도 이번 추경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지원 예산을 일자리 정책과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는 민생 관련 사업에 중점 사용해 줄 것을 특별히 당부 드립니다.존경하는 국회의원 여러분,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약 11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서민들의 생활이 조금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응급처방이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일자리는 국민들에게 생명이며, 삶 그 자체입니다.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국민 기본권입니다.국민들은 버틸 힘조차 없는데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국민이 힘들면 지체 없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국민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그게 정부고, 그게 국가라는 판단으로 편성한 예산입니다.국회가 함께 해주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국회는 올해 초 환경미화원을 직접 고용했습니다.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선도적인 노력을 국회가 먼저 시작했습니다.저도 단단히 마음먹고 있습니다.단 1원의 예산도 일자리와 연결되게 만들겠다는 각오입니다.정부의 모든 정책역량을 일자리에 집중할 것입니다.국회와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야당과 여당이 함께 힘을 합해야 합니다.공공과 민간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함께 합시다. 마음 놓고 일하고 싶다는 국민들의 절박한 호소에 응답합시다.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통을 껴안읍시다.일자리에서부터 국회와 정부가 협력하고, 야당과 여당이 협력하는 정치를 한다면국민들께도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이번 추경이 빠른 시일 내에 통과되어 기대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합니다. 정부는 국회가 추경을 확정하는 대로 바로 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전 준비에 만전을 다하겠습니다.정부는 비상시국에 인수위 없이 출범한 상황에서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조속히 국정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국회의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저와 정부도 국회를 존중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협의해나가겠습니다.감사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277&aid=0004012436&viewType=pc ---------------------------------------------------------------------------------------------------------누가 연설문 작성에 힘을 보탰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잘 썼네요.깔끔하면서도 깊은 호소가 느껴집니다. 많은 부분 중 특히, 이번 추경 예산은 재난에 가까운 실업과 분배악화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긴급처방일 뿐입니다.근본적인 일자리 정책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 추진해야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그러나 빠른 효과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부분이 제일 맘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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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안희정 동네서점 인터뷰
안: 우리가 1948년 헌법 만들고 나서 70년이 다 돼갑니다. 그 사이 민주주의 나라를 운영하는 데 참 많은 죽음이 있었습니다. 가장 첫 번째 죽음이 어디서 나오냐 하면 권력 잡은 사람이 권력을 총칼로 잡으려고 막 해버리고. 자기가 옳다 이러면서. 나를 따라라 이러면서. 내가 잡아야만 나라가 안정이 된다 이러면서. 헌법을 무시하고 자기가, 집권의 정통성을 결여한 정부들. 막 부정선거를 동원해가지고 자기가 계속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이걸 독재자라 그러죠. 이 독재자랑 싸우는데 우리가 87년까지, 얼마가 걸린거야 48년부터 40년 걸린 거에요 40년. 40년 동안 얼마나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지 아세요. 4.19혁명 때도 한 200명, 518 때도 한 200명. 중간에 감옥으로 구속되고 했던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고요, 수십만 명이고. 수십만 명이 감옥에 가고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체포되거나 구금되거나 두드려 맞고, 부정선거 한다고 데모하다가 사람이 총 맞아 죽고. 이 40년의 기간을 거쳐서 겨우 우리가 얻어낸 것이 87년, 주권재민이니까 국민이 투표해서 대통령 뽑는 거야 이놈들아. 이제 까불지들 말어. 이거 확립하는데 40년 걸린 거에요. 이것도 빠르게 정착됐다고 세계에서 민주화를 이룬 놀라운 산업 개발국이라고 얘길 하잖아요. 근데 문제는 선거하는 선거제도만 하나 확립하면 민주주의가 확립되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그것보다도 더 넓은 우리의 원리고 우리 시민 생활의 질서이고, 우리의 경제 활동의 기초 베이스죠. 컴퓨터로 치면 오퍼레이팅 시스템이에요. 도스 환경이냐 윈도우 환경이냐, 아니면 ios냐 안드로이드냐. 이 오퍼레이팅 시스템이 있어야 우리가 앱을 쓰든 뭘하든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오퍼레이팅 시스템의 능력만큼 모바일이든 컴퓨터든 그 능력이 결정되지 않습니까? 그거랑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는 오퍼레이팅 시스템이에요. 우리가 모두 살아가는 경제활동과 시민사회활동의 기본 베이직이 되는 오퍼레이팅 시스템이죠. 때문에 이 민주주의는 좀 더 버전업 되어야 해요. 버전업 되는 것. 나는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386 학생운동 출신입니다. 16살 때부터 난 혁명을 하려고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전두환이 그때 광주에서 사람 죽이고 자기가 대통령 됐던 시절이니까. 그 깡패랑 같이 어떻게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있겠어요. 그래서 죽자고 붙자 했던 것이 젊은 날 혁명을 하겠다는 것이었죠. 전두환이나 박정희는 군대를 동원해서 정부를 장악했다면, 나는 시민의 힘으로 좋은 정부를 만들겠다. 이게 혁명이죠. 근데 시민들이 혁명하자 그랬더니 다 안 한대. 87년 6.10항쟁 때 직선제 헌법을 만드는 것으로 혁명의 시대는 끝났어요. 그 뒤에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런 사람들이 민주화 공로는 알겠는데,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 이러면서 자기 같은 사람 뽑아야 경제도 좋아지고 부자 된다는 거에요. 부-자 만들어 줄게요. 이래가지고 대통령을 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뭘 주장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9년을 지내보니까 어떻게 됐어요? 지금 또 거덜나 버렸어요. 사실은 김영삼 대통령 때 IMF 맞아가지고 어려워졌죠. 근데 이 문제의 원인이 뭐냐. 우리 국가사, 우리 국가를 움직이는 흐름의 가장 베이직이 되는 민주주의가 작동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가의 주인은 나야. 박근혜 너 대통령 아니라니까, 광화문에서 했잖아요. 이 원리가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의 국가 운영과 사회 운영의 원리가 돼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고 있는 거에요. 예컨대 오늘 이재용 씨, 특검에 나가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금 보내고 있을 텐데… 나도 다 가봤던 데에요. 2003년에 나 특감도 나가고 특검에도 나갔었고 헌법재판소에도 나갔어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증인으로. 헌법재판소도 가고… 옛날의 기억이 나서 내 마음이 아려요. 김: 괴로우셨나요 그때? 안: 어휴 얼마나 겁나고 두려워요. 헌법재판소 증인으로 가는데 내가 말을 잘해야지, 내가 말 잘못해서 대통령이 탄핵 돼버리면 어쩌나. 그 전날부터 얼마나 잠을 못 자고 고통스러웠는지 몰라요. 어찌 됐든… 옛날 얘기 묻지마. 갑자기 슬퍼지네. 어쨌든 민주주의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민주주의 외에 다른 방법 없습니다. 힘으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못 때려요. 정의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사적 재산권, 정의라는 이름으로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천부의 인권을 우리는 유린할 수 없습니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아무리 친일파 후손이라도. 그래서 민주주의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 친일도 청산하는 길이고 우리의 굴욕적인 과거를 청산하는 길. 그게 우리가 민주주의를 잘하는 일인데. 민주주의는 크게 보면, 우리 젊은 분들이니까 그냥 개념으로만 설명할게요. 민주주의는 크게 보면 좋은 사람의 지도력, 좋은 법과 제도, 그리고 좋은 시민 사회의 협동 정신. 그리고 하나의 영역이 더 있는데, 개인과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자율 영역이에요. 이 자율 영역이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가 잘 돼요. 예를 들면 여기 골목길에 지금 차 많죠. 이거를 구청 직원이 와서 교통 단속을 하는 게 빠르겠어요, 여기 상가 연합회가 와서 자기들이 약속을 정해서 주차 문제에 대해 합의를 하는 게 빠르겠어요. 당연히 여기 자치협회에서 주민들이 합의하는 게 제일 빠른 길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자치적 협의를 안 하고 구청 직원이 여기 와서 주차 단속을 해주기만을 바라고 민원 전화만 넣어요. 이런 시스템으로는 민주주의가 작동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까 자율과 자치영역이 넓은 나라일수록 민주주의는 왕성하게 작동을 해요. 거의 5G, 6G 정도 되는 속도로 움직이게 돼요. 근데 이게 안되고 앞에 인치와 법치만 가지고 움직이게 되면 2G폰 정도 될 거에요, 3G나. 여기에 협치를 하게 되면 4G 정도는 가요, 시민들의 협력 정신이 더 높은. 여기에 자치 영역이 튼튼하면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광대역 빛의 속도로 작동을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자유, 권리, 인권, 정의, 번영을 약속합니다. 그게 우리 인류 역사 5000년의 발명품 민주주의가 가져오는 선물입니다. 그 민주주의를 잘하는 것, 직업 정신이자 대한민국 386 민주화 운동 민주주의자였던 저의 궁극의 목표입니다. 끝. 김: 작금의 우리나라 민주주의 자체도 사실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겪으면서 5G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되었다고 저희는 믿고, 퇴행을 안 하리라 생각했었는데 현시점 돌아보면 그렇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게 5G로 갔다가도 또 어느 순간 2G로 가고, 또 어느 순간은 4G로 갔다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하면 현재 시점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는지는 이제 지사님의 의견을 여쭙거나 본인들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한번 가져볼까 하거든요. 의견이 있으신 분? A 씨: 그런 식으로 작은 단위에서 마을이나 개인 간에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동네의 가장 작은 일을 보면… 가령 비밀번호를 (쓰는 대신) 카드를 사서 하는 걸로 하게 됐다. 그러면 비밀번호로 그냥 쓰겠다는 거를 사인을 하러 다니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그 작은 단위에서도 휘두른다 그럴까, 권력을? 회장 입장에서는 이 사람을 내리고 자기가 하기 위해서 뭔가 하고 다닌다는 그런 시선. 그리고 다들 머릿속에서 ‘회장은 원래 그렇게 하는 자리인데, 왜 결정을 한 것에 반발을 해.’ 라는 그런 것들. 일상에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부터 독재가 일상적인 게 문제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 부패는 어쩔 수 없지 내가 바쁜데 어떻게 거기까지 신경을 써. 그건 그 사람들이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너무 만연해 있다는게 가장 전 큰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부분을 어떻게 바꾸실 지에 대해서.. 안: 한 시대가 바뀌는 것은 유행과도 같은 것 같아요, 사람의 의식의 변화는. 요즘 제가 양복 입는데, 제 양복 패션에 대해 은근 저한테 안티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아, 좀 핏감 좀 살려서 입어라. 아저씨처럼 펑퍼짐하게 입고 다니냐. 그런데, 왠지 또 그렇게 핏감 있는 옷이 유행하면요. 옛날 옷이 이상해 보이잖아요. 그런 거랑 마찬가지로 정치, 사회, 문화의식이라는 것은 시즌처럼 바뀌는데, 이 바뀌는 것을 선도하는 것, 이게 정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A 씨: 어떻게 선도를 하실 건지… 안: 대통령의 리더십이 상징을 합니다. 예를 들어 노태우 대통령 때 자기가 가방 들고 다니는 것이 큰 기사였습니다. 아니 대통령이 자기 가방을 자기가 들고 다니네. 참 얼마나 상상하지 못할 시대를 지나왔죠. 그죠? 그 사회 공간에서 우리는 그 권위, 권위에 복종해야 된다는 것, 그 깡패 같은 권위에 복종해야 된다는 것. 이것의 상징이 국가라는 권력입니다. 그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 대통령이고 지도자들입니다. 이 사람이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전혀 다른 시대의 패턴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지도력의 변화를 통해서 이 사회를 우리는 엄청나게 바꿔낼 수 있다. 지금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의 불행은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생겨난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법 위에 존재하는 대통령을 법 아래 존재하는 대통령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법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 짓을 하려다가 국민한테 혼나고 있는 겁니다. 앞에 후퇴하셨다고 하셨는데 후퇴한 게 아니라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덜떨어진 짓을 하다가 국민한테 완전히 그냥 망가진 사례로 봐야 합니다. 절대로 역사는 후진 안 한다. 강물은, 흐르는 것은 절대로 후진 안 합니다. 곡선이 이렇게 지그재그로 보이지만 그게 바다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지그재그로 가는 것이지 그것이 후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도 보면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서 최순실 씨의 공이 가장 크다. 영남 패권, 친일 문제, 뭐 한 방에 다 날려버렸습니다. 세상에 어떤 혁명 세력이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을 저렇게 한 번에 깨버리겠습니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두 분의 힘 정도가 되니까 깨지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를 우리가 좀 낙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진보주의자들과 청년들에게 제안합니다. 미래는 낙관적으로 보자. 왜. 그것이 진실입니다. 그런 말씀 드리고, 민주주의를 통해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구체적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바뀌었으면 합니다. 저는 조금 더 대통령이 좀 젊어졌으면 합니다. 길거리 농구 배틀 정도는 좀 하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김: 농구 좀 하시나요? 안: 아 나도 한 농구 해요.(feat.눈빛 자신감) 앞선 선배님들한테 갑자기 에이지즘으로 내가 안티를 하거나 공격할 의도는 없는데, 근데 뭔가 좀 활력이 있어야 된다, 대한민국은. 너무 정체돼 있습니다, 곳곳이. 제가 충남 도지사... 2010년에, 7년 전에 세는 나이로 47에 했는데 만 45세때 했어요. 그러니까 지역에 어떤 일이 벌어진 줄 알아요? 웬만한 기업 사장들이 다 아들들한테 다 물려줬어요. 아 내가 이제 물러날 때가 됐는갑다. 그러고선 아들한테 사장 자리 물려주고 자기는 명예고문이나 회장으로 다 뒤로 빠지시더라구. 우리 사회에 정말로 좀 세대교체가 돼야 합니다. 저의 도전은 민주주의를 더 전진시키지만, 이번 대선후보로서 제 도전이 가져오는 보너스. 대한민국의 세대교체라는 효과가 생길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좀 더 많은 젊은 도전과 활력이 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아이고 열정은 좋은데 경륜이 부족해서…이렇게 한단 말이에요. 근데 그것 때문에 대부분 젊은 지도자들이 성장을 못 합니다. 조선시대 때 조광조도 역사 평가에 보면 혁명과 개혁에 대한 열정은 좋았는데 젊어서 미숙했다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까? 역사적으로 늘 젊은 도전은 그 미숙함 때문에 무너집니다. 근데 저는 30년 동안 이미 정당생활을 해왔고, 아마 현재 후보들 중에서는 아마 제가 가장 많은 구력을 가지고 있는 정당인일 겁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참여정부를 경험해봤고, 또한 가장 보수적인 지방에서, 충청남도에서 도지사를 연임하고 있고, 심지어 연임을 했는데도 17개 시도 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도지사가 됐습니다. 경륜가지고 저한테 시비를 못 걸 겁니다. 그래서 하여튼 저는 이제 쉰… 세는 나이로 쉰 네 살 먹은 사람이 젊다고 하니까 좀 미안해요. 여러분들한테 솔직히 미안해요. 30대 CEO도 나오고 막 이러는 판에 쉰 네 살 먹은 제가 젊은 도전이라고 하니까 정말 미안합니다. 근데 그나마라도 제가 제일 막내고 제일 젊은 도전이라고 하니 제가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우리가 큰 변화와 활력을 만드는 것이 사회에 좀 필요하다, 문화적으로. 그 외에 민주주의적으로 우리가 정의를 실현시켜야 될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될 일들이 많습니다. 상속법이라든지 공정거래위원회라든지 기업의 생태계라든지. 대기업과 하청기업간의 임금의 격차문제라든지. 이 임금의 격차가 민주주의입니다. 이해되십니까? 나는 죽어라고 스펙 쌓고 실력을 쌓았어. 근데 왜 A라는 회사에 가면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 100만 원을 받아야 되고,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 B라는 회사에 가면 왜 50만 원 받아야 되느냐구요. 똑같은 파카야. 똑같은 파카인데, 오리털이든 거위털이든 질도 똑같아. 근데 왜 똑같은 윈도우에 걸어놓고 하나는 100만 원 받고 하나는 50만 원 받아야 되느냐구요. 그런 상품과 그런 브랜드가 버티겠어요? 시장에서는 그걸 못 버텨요. 그런데 왜 노동력을 파는 이 노동시장에서는 이 관행이 고착화되고 있느냐는 거에요. 이것은 민주주의가 작동을 안 하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작동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푸는 일입니다. 그런 걸 통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자기의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나라. 그래서 내 실력, 액면가로… 예를 들면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구한다, 그러면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능력을 봐야지, 왜 내 졸업장을 봐. 그건 아니죠. 그러니까 우리의 액면가, 자기 실력대로 살 수 있는 나라로 우리는 빨리 가자. B 씨: 민주주의자라고 항상 말씀을 하시고,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제도가 아니다라고 말씀을 하시고, 다수결로서의 민주주의는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라고 말씀하시잖아요. 그런데 전 지구적으로 볼 때 한국이 그런 상황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은 브렉시트가 일어나고, 극우가 득세를 하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 시점에서 과연 민주주의는, 어떤 사람은 극단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는 이제 expire되는 시기가 아니냐라고도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가 궁금했거든요. 안: 현재로서는 아까 말한 대로 강물이 지그재그로 가듯이, 트럼프든 브렉시트든 EU연합이나 세계 시장 내에서 한 국가 내의 양극화 문제에 대한, 갈등과 불만이 크니까.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개방과 세계화와 연합체제에서 뭔가 손해를 보고 있다라는 주장에 입각해서 고립주의를 선택하는 정치인들이 선택되고 있어요. B 씨: 대중은 그들을 선택하고. 안: 예. 선택하고 있어요.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우리가 또 실험을 봐야 돼요. 근데 그렇다고 고립주의를 선택하는 사람이 반민주적이냐. 당장 그렇게 얘기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현재 우리가 먹고 살아 가고 있는, 모든 기반이… 미국의 평범한 시민도 중국의 노동자한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어요.한 일국가 단위로 완결된 자립경제를 펼 수 있는 나라는 없어 보여요. 물론 미국과 중국은 가능하지 않겠냐. 시진핑도 뉴노멀, 신창타이에서 지금 그걸 추구하는 것 같아요. 나는 대륙이기 때문에 아니 뭐 까이꺼 내가 기본적으로 하고, 필요한 놈은 나한테 거래하러 와. 미국 트럼프도 이 틀 내에서 우리는 가능해 그러지만 현재 미국 경제는 실리콘 밸리에 모여드는 전 세계의 인적자원들이 떠받들고 있는 겁니다. 미국의 현재 번영은 전 세계 인적자원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가하고 있는 전 세계적 차원의 이 위기는, 세계적 차원의 민주주의가 더 확산되어야 할 것을 요구 받고 있는 것이지, 일 국가로 고립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는 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분간 각각의 정치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각각의 고립주의를 선택하거나 일국주의를 선택할 것은 분명하지만, 한 국가 단위의 고립된 틀 가지고는 현재의 번영과 풍요를 누리기 어렵다는 것은 저는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역사는 21세기에 좀 진행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C 씨: 저는 최근에 경제적 이유로 비혼을 선언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말하면 사회적 소수자가 된 상태인데요. 민주주의 헌법, 우리나라 헌법을 보면 비혼자들, 혹은 소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그런 헌법 조항은 없더라구요. 민주주의 구조 내에서 소수자가 되기를 선택하거나 소수자인 경우에는, 자기 의견을 대변할만한 선출직 공무원을 뽑아야 되거나 혹은 그걸 대변해줄 조직을 구성할 만큼 많지가 않아요. 이럴 때 민주주의는 소수자의 의견을 다뤄낼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안: 저는 작년에 충청남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성 평등 정책을 기본으로, 1년 동안 모든 도의 예산과 정책을 들여다봤습니다.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님을 위원장으로 모시고 우리 지방정부 차원에서 하는 모든 정책을 젠더 마인드로 봤을 때 이 정책이 얼마나 뒤틀렸는지는 점검하는 1년을 보냈습니다. 그걸 하면서 젠더나 성 평등 문제가 예전에 내가 학생운동 때 봤던 남성에 대립되는 여성해방 운동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류해방의 문제입니다. 제가 왜 소수자 문제를 이렇게 접근하냐면,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은 차별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차별을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일체의 차별을 거부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차별 때문에 민족, 부족 전쟁, 종교 전쟁, 국가전쟁이 생겨났습니다. 그러고 지난 20세기까지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 계급의 계급전쟁이었습니다. 이 4개의 폭력을 우리는 극복했습니다. 인류 5천 년 모든 전쟁은 이걸로 기록될 겁니다. 여기서 동력을 얻어서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고, 강간하고. 그런 역사입니다. 혈족이 다르면 차별하고, 종교가 다르면 차별하고. 인간으로 안 보는 겁니다. 내 부족만 사람이고 적은 인간이 아닌 겁니다. 죽여버리고 별 짓을 해도 양심에 가책을 안 느끼고 살아왔습니다. 차별의 가장 극단적 표현은 폭력이고 전쟁입니다. 20세기 우리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하는 좋은 민주주의는 일체의 차별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다른 기호, 다른 개성, 다른 성격,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을 사회적 조건과 제도적 조건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 좋은 민주주의 정부로 저는 화답을 한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시민들의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몇 해 전인가 미국 친구한테 이력서 어떻게 쓰냐 물어봤습니다. 이력서 쓰는 데 사진 붙여 안 붙여? 했더니, 사진을 붙이던가 안 붙이던가, 안 붙였던 거 같은데. (그래서 제가) 이력서에 사진도 안 붙이냐 그랬죠. 나이 써 안 써, 했더니 나이 안 쓴대. 그리고 또 뭐 안 써? (그랬더니) 성별도 안 써요. 그걸 회사 입사 원서에 요구하면 각각의 차별주의에 걸린다고 해서 신고당한다고, 처벌받는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에 살아왔던 내 입장에서는 도대체 뭘 가지고 그 사람을 뽑아야 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근데 곰곰이 더 생각을 해보니까 이게 우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차별을 근거로 사람을 줄 세우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어요. 종교도 물어보죠, 아버지 재산도 물어보죠. 나이도 기본인 데다가, 사진을 뽀샵 안 하면 안 되죠. 별놈의 짓거리를 우리가 다 하고 있는 거에요. 이 차별이 민주주의 적입니다. 이래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못 삽니다. 사람이 사는 게 아닙니다. 그건. 스펙이 사는 거고, 빽이 사는 거고. 이것 말고 니들은 뭘로 보는데 물으니, 업종에 관련된 커리어와 레코드만 내면 돼. 가서 그 레코드 증명만 하면 능력이 좋으면 쓰는 거고 말고 하는 거지 뭐. 이러더라고. 야 정말 너무 멋지더라고요. 그러면 한 인간으로서 너무 자유롭게 살 거 같아.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왜 물어봐 지들이. 무슨 일이 필요해서 사람을 구하면, 그 일 잘하는지 못하는지만 물어보면 되지, 지가 나랑 사귈겨?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살고 있는지가 보이더라고요. 우리 그런 나라 만듭시다. D 씨: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저는 한때 새누리당을 지지했었고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가, 지금은 물론 지지하지 않지만, 저는 시민이긴 한데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어요. 그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에 의구심이 들었던 게 아니라, 제대로 토론회나 과거의 행적들, 정책 관련해서 제가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지지를 했었거든요. 단순히 안보적인 부분으로만 지지를 했었고. 때문에 저는 저 자신이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 부역자들이나 최순실이나 박근혜를 비난하기 전에 자신이 많이 부끄럽더라고요. 내 자신이 진짜 민주주의 시민의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나 자신이 만약 최순실이라면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조종할 수 있고 사유화할 수 있는 상황에 됐을 때 제가 과연 최순실처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는 티끌만큼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을 자신이 없더라고요. 단순히 지도자들에게 묻기보다 시민이 시민 스스로가 성숙한 시민인지 묻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초이자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최순실의 상황이 됐을 때, 최순실처럼 되지 않을 시민들이 최순실처럼 될 사람보다 더 많았을 때 민주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 저도 잠깐만 첨언을 하면, 아까 말씀하신 대로 민주주의라는 것이 민주적인 지도자, 공정한 절차를 가진 제도, 시민들의 뛰어난 민주정신, 민주주의 의식 이것이 다 합쳐져야 완성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지사님께서는 지금 민주적인 지도자로서 도전을 하고 계신 상황에서 일반 시민들의 민주의식을 어떤 식으로 고취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식으로 공론화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시민들이 이렇게 여쭤 본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안: 봄이 되니까 봄꽃이 피는 거 아닐까요. 제가 선택돼서 대통령이 된다면 시대가 그 역량이 되니까 제가 피는 겁니다. 제가 봄꽃이면서 갑자기 펴보겠다고 겨울 들판에 가서 용쓰지는 않을랍니다. 인생을 꽃으로 비유한다면 저에게도 철이 있을 겁니다. 그 철은 좀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시민의식과 함께 어울릴 때야만 피는 꽃입니다. 저는 그런 시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김: 봄이 왔다? 안: 충분히 됐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문제는 박근혜 최순실이 문제이지, 그것을 선택했던 주권자를 욕할 이유가 하등 없어요.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얘기를 종교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직업윤리는… 그 직업적 소명의식을 갖다 보면 거의 종교적 신념이 됩니다. 패셔니스트든 쉐프든 음악가든. 그 경지에 이르려면 아주 근본적인 내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저는 특정 종교활동을 안 합니다만, 이미 종교적 수준의 깊이까지 제 직업의식을 파고들어 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거 칭찬받아야 될 일이지, 욕먹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했던 그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뭐냐면, 국민들의 선택은 선악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서 역사이고 그걸로 정당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던 국민들의 마음은 제가 볼 땐 굉장히 착한 마음입니다. 지난 선거 때, 다 큰 애가 에미 애비가 없다고 불쌍타고 찍어주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거기는 뭐 엄청난 재산까지 물러받았는데. 근데 저에게 국민의 선택은 신의 선택, 신의 결정입니다. 역사와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면서요. 그러면 그 정치의 직업윤리는 뭡니까. 그 국민이 신이고 국민이 임금님입니다. 그 결정을 왜 했을까 저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박정희를 63년도에 대통령으로 뽑았고, 노태우를 87년도에 뽑았고, 2007년도, 2012년도에 이명박, 박근혜를 뽑았을까. 그건 내가 받들어야 될 현실일 뿐입니다. 그것은 하늘이시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원망하기보다는, 그 뜻에 제가 순종할 때 답이 나옵니다.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던 그 마음에 이면을 들여다 보면 착한 마음입니다. 그래, 지난 시대에 지 에미 애비가 다 나라 일구다가 죽었는데, 그 자식들한테 기회 한 번 주고 우리도 갚자라는 국민적 정서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겁니다. 그 마음은 참 좋은 마음이지, 그걸 욕할 일이 뭐 있습니까. 다만 민주주의 주권자로서 좀 더 현명하게 국가의 CEO를 뽑을 일이지, 왜 능력 검증을 안 하고 뽑으셨습니까 할 수는 있습니다. 그건 박근혜를 탓할 문제입니다. 왜 능력도 안 되는데 대통령 하려고 했는지. 임기도 못 채우고 저 망신을 당하게 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저는 이 탄핵 국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던 그 국민들마저도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지지했던 그 마음들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 여러분은 지금 종교 모임에 와있는 게 아니고, 안희정 지사와 함께 하는 민주주의 대화모임에 와있습니다. E 씨: 저도 민주주의라는 게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라고 믿고 있는데요. 저는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데, 저희집 밑에는 폐지를 수거하는 (성동)자원이라는 집이 있어요. 매일 아침에 노인분들이 수거하는 분들이 모이시는. 그리고 기사에서 여학생들이 생리대가 없어서 신발 깔창으로 생리대를 쓴다라는 이야기를 봤어요. 몇몇 학생들은 교복값이 없어서 교복을 입지 못해서 고통받는 학생들도 있어요. 자신이 원하는 진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의 진로를 포기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이 우리 국가의 주인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고, 이들이 조명받고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받는 사회가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기본 가치이다라고 믿고 있는데요. 이런 분들이 국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가 궁금하고, 개인적으로 이 사람들이 정말로 민주주의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저는 우리나라에 기본소득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안: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내 자신의 가장 기본 바탕이 뭘까. 저는 혁명의 시대가 끝날 때쯤에 정말로 인생을 살기가 싫었습니다. 16살 때부터 혁명하려 했는데 10년 만에 모든 것이 꽝 돼버리고 혁명의 시대도 끝났다고. 같이 운동했던 사람들은 죄다 고시 보겠다고 하고, 김영삼 쫒아가지고 출세해보겠다고 다 가고. 모든 것들이 나한테는 끝장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건 뭘까. 생명, 살아있는 것은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 인생을 즐겁고 보람있게 살아야 될 의무만 있는 것이지, 그 생명에 대한 선택권은 나에게 주어져 있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죽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죽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가 있든 간에 너무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그 슬퍼하는 마지막에도 나는 한 생명으로서 살아야 될 권리가 있고, 나는 생명으로서 내 인생을 즐기면서 살 거야 라는 바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기본입니다. 난 90년 초반에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인생 사는 거 자체가. 하루하루가 모욕이었고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몇 년을 그것을 겪고, 출판사 영업부장 하고 다녔을 때였습니다. 살자, 오케이, 살자. 어차피 생명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살자. 근데 어떻게 살 거냐 하는 문제가 나와요. 근데 어떻게 살거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이 조건이면 살아갑니다. 나의 노력과 나의 근면함과 나의 성실함과 우리가 말하는, 양심으로 배워왔던 근면, 성실, 노력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나의 노력이, 억울함으로 꺾이지 않는 환경이면 됩니다. 내가 성실하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근데 내 성실한 노력이 내가 어쩌지 못하는 불공정한 구조에서 꺾일 때 우리는 좌절하는 겁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갑자기 일자리 만들어 냅니까? 안 그렇습니다. 5000만 명의 살려고 하는 바둥거림과 노력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대한민국 대통령이 와서 만들어 내는 거 아닙니다. 근면 성실한 보통 사람들의 땀방울 때문에 역사가 유지됐던 것이지, 나라 이끄는 사람은 그 사람들한테 덜 뜯어 먹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던 역사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기본이 뭡니까. 내 노력으로 성실하게 살고자 했던 그가 불공정한 구조 내에서, 어쩌지 못하는 차별과 구조 내에서 좌절당하지 않게만 해줘라. 난 이게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기본소득제에 대해서는 저는 좀 유보적입니다. 제도적으로 복잡할 게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내 노력으로 내가 살아가는 겁니다. 근데 문제는 정당한 나의 노력으로 노력을 하더라도, 아까 말한 대로 여성이라서, 지방대 출신이라서, 뭐라서. 이런 칸칸이 때문에 내 실력과 노력이 번번이 좌절당하기 때문에 지금 못 살겠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헬조선이라고 얘기하는 거고. 사실은 그러한 사람들의 실력과 노력이 새로운 진화를 만들어내고,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새로운 영역과 에어리어를 개척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그 어둠의 골짜기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어떻게 맵이 완성됩니까. (웃음) 어찌됐든 새로운 일자리와 새로운 우리의 부의 창출은 배신당하지 않을 거라는 도전과 실력으로, 정정당당한 이 승부가 불공정한 경쟁으로 배신당하지 않을 거라는 그 희망이 우리의 번영을 약속합니다. 그게 인류 역사의 본질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기본소득제를 주고 뭘 주고 하는 문제는, 조금 제고해봐야 될 것입니다. 단 여기서 우리는 내가 근로 능력을 원천적으로 잃어버리거나 장애를 입거나, 나이가 들거나,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아기이거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의 힘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우리는, 성실한 나의 노력이 배신당하지만 않게 배신당하지만 않게 해줘. 이게 좋은 사회입니다. 저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그 정도 답을 드리겠습니다. 충분히 전달 됐죠? 김: 지금 더 얘기를 하면 좋겠는데요. 저희가 시간이 워낙 짧아서. 그보다 한 분씩 한 분씩 사진도 찍고 인사도 나누고 하는 시간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좀 일찍 끝내고요. 지사님 하고 사진 찍어서 SNS 올리면 팔로워 많이 느니까요. 한 분씩 사진 찍어 주실 거죠? 안: 물론. 김: 마무리 말씀 짧게 듣고 오늘 자리는 얘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사님 마지막으로 인사 말씀 나누시죠. 안: 예. 지난 2012년 선거 때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께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울림이 왜 있었을까를 저에게 몇 해 동안 곱씹어 보고 물어봤습니다. 그 저녁이 있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무엇일까. 저녁이 있는 삶이 내 마음을 뭔가를 땡기는 내 마음의 흐름이 뭐였을까. 각자 다양한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슬로건을, '철학이 있는 삶'으로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각자 자기 인생에 개성을 하나하나씩 갖는 것이 철학입니다. 우리 사회는 누가 더 예뻐, 누가 더 미워, 누가 봉급을 얼마 받는데, 누가 더 잘해 못해, 이 비교에 의해서 각자의 인성과 개성을 밟아 왔습니다. 근데 우리는 다 예쁘고, 다 멋진 인생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될 권리가 있고,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저는 노력할 겁니다. 그 노력은 국민소득을 갑자기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올린다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우리의 지성과 철학이 들어가야 합니다. 가치를 묻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개성을 가지고서 설 수 있습니다. 돈으로 환산해 버리면, 한 달 얼마짜리, 연봉 얼마짜리에 인간이 돼버리지만, 가치와 철학으로 물어보면 하나하나가 다 우주이고... 아 우주란 단어 쓰면 안 되는...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단어가 너무 많이 오염되는..(웃음). 칼 세이건이 말하는 우주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과 가치를 묻는 시대로 가자. 그것은 바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묻는 시대가 될 거다. 그런 말씀을 여러분께 올리고, 그런 마음으로 젊은 세대들이 대한민국을 확 크게 변화시켜 봅시다. 기죽지 말고. 가장 중요한 건 젊은 도전입니다. 새로운 도전이 반드시 극복해야 되는 것은 기죽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죽으면 안 됩니다. 제가 2010년도에 충청남도 도지사로 도전할 때, 제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우리 논산에 주먹 제일 잘 쓰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70이 되신 그 아저씨가 아직도 소주를 고뿌로(올바른 표현은 컵입니다-편집자 주) 드시는, 하루에 푸시업을 3000개씩 하는, 지역에서 노인회장을 아직도 하고 계시는. 그 아저씨가 저한테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희정이, 일자무식인 무학자가 내가 뭔 얘기를 해줄 수 있겠나. 평생 싸움 판만 왔다 갔다 한 사람인데. 근데 딱 이말 한 마디만 해주고 싶어. 어떤 놈을 만나든 깜봐야돼.(깜보다: 깔보다의 충청도 말-편집자 주) 저거 대단한 놈이다 생각하는 순간에 그 싸움은 져버리더라고. 저놈 한 방에 날릴 수 있어라고 깜 봐야만 싸움이 되는 거지. 그러니까 앞으로 도지사를 도전하더라도 어떤 후보가 나오더라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고 깜봐 버리라고.” 제가 봤던 그 어떠한 교훈보다도, 평생 싸움터에 있었던 일자무식이라고 스스로 얘기했던 그 아저씨의 말이 나한테는 엄청난 지혜를 줬습니다. 그것은 교만에 빠지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인생을 믿고, 그 무엇과 비교되거나 차별되어서 스스로를 스스로가 밟지 말라는 것입니다. 김제동 씨가 토크쇼에서 맨날 거울 보고 얘기하라고 그러죠. 제동아 너도 잘 생겼어. 너 얼마나 예쁘니. 하긴 김제동이 좀 못 생기긴 했는데, 근데 김제동도 거울 보면서 그렇게 우리 모두를 위로하자고 얘기하잖아요. 아 김제동이 못생겼다는 얘기는 취소. 김제동 씨 좋아해요. 김제동 씨 제일 잘 생겼어요. 하여튼 그렇게 자기를 위로하자는 말, 2010년도 나한테 도지사 선거를 할 때 평생 싸움만 했다는 초로의 동네 아저씨가 누구를 만나든 기죽지 말고 상대를 깜보라고 했던 말은, 자기 자부심을 가지라는 얘기 아닐까요. 우리가 자부심을 가지고 멋진 시민들로 살아가는 나라, 그 나라가 스파르타, 무적 300부대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나라 한 번 만듭시다. 고맙습니다. http://www.ddanzi.com/ddanziNews/156865298
드니드니작성일
2017-01-1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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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스압有) 따님을 주십시오.- 2ch
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08:34.74 ID:4QDc0c6v0 나 있잖아, 오늘 밤에, 여자 친구 어머니한테 "따님 주세요"라고 말하러 갈거야ㅋ드디어??드디어라는 거지그래서 지금 진짜로 긴장하고 있어그러니깐, 잠깐만 지금까지의 일을 쓰려고 생각해.들어줄거지, 그치? ㅋ 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09:21.78 ID:4QDc0c6v0 나 올해 28이 되는 아저씨.대학 졸업해서 취직했지만 금방 그만두고 잠시동안 백수.드디어 찾은 직장에서 안정되서 초봄에 여자친구한테 프로포즈했어.여자친구는 21이 되는 보통 여자 (가명 : 유우)특별한 외모라든지, 귀여움이라든지, 스타일이 좋다든지,성격이 좋다든지가 아니지만.하지만 딱 한 가지, 보통 사람하고 달라. 그녀는 고도의 난청자.사람 목소리는 거의 안 들립니다.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10:35.00 ID:4QDc0c6v0 만난 건 꽤나 전의 얘기.그러니깐 얘기가 재미없어질지도 모르지만 그건??미안.난 대학에 입학해서는 후쿠시마에서 상경해서 자취하게 됐어.돈도 보내주셨지만 어쨋거나 돈은 그 이상으로 필요하게 되지.부모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는 효심도 있었어.그래서 알바. 근처의 개별과외 선생님. 솔직히 귀찮았지만돈을 위해서라고 주 3회 정도의 페이스로 했어.학원 선생해본 적 있는 사람은 꽤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처음에는 연수 비슷한 형태로 선배 선생님하고 같이 수업했어.거기서는 1대2의 학원으로 초등학생에서 중학생까지 가르쳤어.그리고 알바 첫 날.결원이 생겨 맨투맨 수업. 진짜로 후회했어.『보통』학생을 수업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깐.원장 선생님이 "오늘 만날 학생??난청 학생이라. 일단 말은 할 수 있지만 잘 안 들리니깐 가능한 써서 해주세요"라고 했다.뭐야 그거ㅋ 라고 생각하면서 교실로.책상 위에 교과서와 필기도구를 꺼내고 멍하게 앉아 있는 여자애.그게 유우하고의 만남였습니다. 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11:02.94 ID:PN+5hUmxO 계속해1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12:12.83 ID:4QDc0c6v0 다가갔지만 왠지 나를 알아차리지 못 했다."처음 뵈요ㅋ"귀가 안 들린다는 걸 까먹고 그런 말을 하고 말았다ㅋ목소리가 아니라 기철을 알아차렸는지 가볍게 인사를 해왔다.봤을 때는 정말 판단 못 하겠다.흰색 카츄샤를 한 그 애는 동그란 눈동자를 나한테 향했다.정말로 봤을 때는 평범한 여자애. 흰 원피스를 입고 있던 걸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첫 인상은 예쁜 머리였다.어깨까지 내려온 검정 머리.지금도 옛날도 머리스타일은 안 바궜다. 스트레이트 흑발.그 머리카락 사이로 쳐다보는 난청자. 아아, 그러고 보니이 애는 귀가 안 들린다고 했었지.그래서, 무신경한 것도 정도가 있지 싶지만난 내 귀를 가리키며 "안 들렸던가?" 같은 말을 했다.그것도 그녀한테는 안 들렸을텐데ㅋ그리고 유우는 "네"라고 말했다.아마 동작으로 이해한 거겠지.의외로 또박또박한 말투였던 거에도 놀랐었지.난 조금 두근거리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그리고 동시에 유우는 노트와 교과서를 폈다."여키부터 여키까지카 슉제에효"응?"슉제에효"아, 숙제인가.역시 왠지 발음이 이상하다. 이게 난청자인가.지금은 『난청』에 대해 자세해졌지만, 그 때는 정말로 당황했다ㅋ유치원생, 아니 그 이하의 애가 말할 것 같은 말투를 가끔 하니깐.그리고 목소리가 조금 크다. 1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13:10.74 ID:4QDc0c6v0 난청자도 여러가지 있다.일반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음성언어 (말하기)를 취득하기 전에 귀가 안 들리게 된 사람을『귀머거리(ろう者)』, 취득 후에 안 들리게 된 사람을 『난청자』, 『중도실청자』라고 부른다.그리고 유우는『고도』의 난청자로서 장애인증도 가지고 있다.고도라는 건 70데시벨~90데시벨 이하가 안 들리는 난청자다.그녀의 귀에는 크게 소리친 목소리조차도 안 닿는다.귀에 대고 큰 소리(꽤 큰 소리)를 내야 겨우 겨우 들린다.100디세빌 이상이라도 안 들리는 사람은『귀머거리』로 인정되지만.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행기 소리라든지 지하철 소리지.그래서 유우는 5살 때 두부의 강타와 큰 스트레스가 이유로 실청했다.요하자면 음성언어를 취득하는 도중에 귀가 안 들리게 됐다.그 때문에『언어장애』도 가지게 됐다.유우의 언어장애는『청각성 구음 장애』라고 불린다.혀가 짧은 사람 있잖아? 우 발음이 약하다든지 하는 사람들.간단히 말하자면 그거지.그녀는『ㄱ발음』이 특히 약하다. 완전히 작대기를 하나 더 긋게 된다.그거랑 말을 짧게 말한다(단어에 따르지만) 학교를『학쿄』, 선생님을『선생니』까지 말하게 되는 거지.중학교 때부터 난청자학교에 다니기 시작해서 훈련은 해서인지이 때랑 지금 발음 비교해보면, 발성은 정말 좋아졌다.하지만 ㄱ발음은 어떻게 하더라도 약하지만짧게 말하는 버릇은 없어졌다.2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15:40.07 ID:4QDc0c6v0 미안??얘기가 삼포로 빠졌네.과제를 푼 노트를 보니 다른 선생님의 문자가 써져있었다.빨강 글씨로 써져있는 선생님의 말에 그녀는 또 펜으로 대답한다.이야~, 이런 걸로 수업이 되는 거냐 라고 생각했지만ㅋ아아아??나도 이런 수업해야되나??라며 솔직히 나른했다.그리고 도중에 알아차린다. 소수의 계산?어?초등학교 6학년이네?? 그녀는 4학년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것도 정답 반 오답 반."그으~??어디를 모르겠어?" 또 음성 발언.서둘러 노트에 질문을 적었다.그녀는 애매한 반응.난 수업 요령조차 몰랐었고, 선배 선생도 어딘가 가버렸고?? 일단 틀린 곳을 보고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를 체크했다.2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17:07.63 ID:4QDc0c6v0 요는 기본을 이해 못 했을 뿐이다.어떻게든 대충 이해시키고 넘어간 모양였다.난 처음부터 가르쳤다. 다음 단원이라든지 상관 안 하고.그녀도 처음에는 무표정으로 담담히 내 설명을 보고 풀었다.틀릴 일이 있으면 정중히 해설했다.그녀도 차례대로 이해해 도전 문제도 풀 수 있게 됐다.흠, 이해력은 좋네.스스로 만든 조금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어버렸다.왠지 열 받았다ㅋ "그렇게 쉽게 풀지마~ㅋ"라고 노트에 적었더니 처음으로 웃었다.웃었다기보다는 수줍어했다는 느낌였다.후반이 되자 서로 익숙해져서인지 약간의 잡담.음, 초등학생과 대학생이 하는 잡담이니깐 화제가 좁혀지지만.영화 얘기로 고조됐었다. 초등학교 6학년생 치고는 엄청 아네ㅋ나도 영화는 꽤 좋아했으니 수업보다 그 쪽 얘기로 고조됐다ㅋ초등학생하고 얘기가 통하는 것도 그렇지만.유우는 첫 인상과 달리 잘 웃는 아이였어.마지막으로「선생니」라고 하면서 뭔가를 줬다.그녀가 지금도 정말 좋아하는 린츠의 린돌 화이트."하나 줄케"난 단걸 안 좋아지만 미소로 받았다.그리고 출구까지 바래다줬다.쵸코를 먹으면서 그녀는 돌아갔다.3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18:52.61 ID:4QDc0c6v0 "주세요!"는 안 되려나?? 진짜로 긴장하고 있어ㅋ지금 이거 쓰면서 조금 풀고 있어ㅋ길어질거라고 생각하니까 봐줘?? 3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20:31.10 ID:4QDc0c6v0 수업 후에 원장이 "수업 어땠어?"라고 물었다."이야~ㅋ 힘들었어요ㅋ""그래도 다행이네""무슨 뜻입니까?""저 애, 다른 선생하고 태도가 전혀 달랐어""아아??""나쁜 애는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 전혀 반응 안 하거든"그런 학생을 신인한테 돌리지마ㅋ 라고 생각만 했을 뿐."그녀가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봤어""그런 가요?ㅋ""앞으로도 부탁해""하아??"그 때부터 유우의 담당은 내가 됐다.4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25:08.40 ID:4QDc0c6v0 주에 한 번 다닌 그녀의 스케쥴과 내 고정 시프트가 우연히 맞았던 것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다른 선생님이 그녀를 수업하기 싫었던 것도 있었겠지. 일일이 적어야된다. 반응을 별로 안 한다. 그런 게 이유였겠지.애초에 알바 선생은 적당히 가르치면 되잖아 라는 생각의사람이 많다고 생각해.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그랬지.그러니깐, 나른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처음에는그녀하고의 수업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하지만, 그러는 중에 필담(筆談)에도 익숙해져,다른 초등학생들보다 배우는게 빨라서할 생각이 있는 그 애를 보는게 즐거워졌던 거지ㅋ그녀는 숙제도 주어진 이상으로 해와서7월에 들어가기 전에는 6학년 교과서에 돌입했다.처음하고 비교해보면 할 마음이 생겼다.그러니깐 제 3자가 곁에서 보면 난청자의 수업따위 귀찮을 거라고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엄청 즐거웠다.뭣보다 수업 끝난 뒤에 이은 영화 얘기가 즐거웠다.나보다 자세히 알고 있을 때는 진심으로 풀이 죽었지만ㅋ하지만 즐겁게 노트에 영화 내용을 적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사랑스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사랑스럽다는 말은 로리콘의 뜻이 아닙니다)5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29:09.57 ID:4QDc0c6v0 한 동안 그녀의 수업을 담당하던 선배 선생님이"잘도 안 그만두고 돌봐주네ㅋ" 하며 동정했다.알바라고는 해도 서비스?접객업에 가까운 학원 선생을 하는데도머리는 물들였고 복장은 상스럽고 향수는 냄새가 강하고?? "아니, 즐거워요ㅋ"너 같은 녀석한테 배우는 학생이 불쌍하다ㅋ라고 생각하면서 그 자리를 피했다.가끔, 선생님들 사이에 나오는 유우의 이야기. 바보 취급한그 대화에 구토가 나올 뻔했다.이런 공기 안 좋은 알바 때려치자 라고도 생각했다.하지만 그 생각을 멈추게 해준 것은 유우였다.5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31:52.99 ID:4QDc0c6v0 포기할까 고민하다 들어선 여름 방학.하기 보충 수업도 있지만 그녀는 정상 수업만 참가.나도 서클이다 뭐다해서 바빠서 여름 동안에는 한 번도 못 만났다.그 동안에도 다른 알바를 서클 내의 사람한테 소개 받거나 했다.관두고 더 급료 좋은 알바로 해야지라고도 생각했다.그러다 여름 방학 초.수업이 끝나 "학교가 바빠 관두겠습니다" 라고 원장한테 말하려고정하고 있었다.담당표를 확인. 그 곳에는 한 사람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오랜만이다 싶어 그녀의 앞으로."오랜만이네ㅋ"라며 노트에 적자 유우는 서둘러 그거의 답장을 펜으로 쓴다."선생님 수업 기뻐요 ^ ^ "라고 적고 그걸 가리킨다.그리고 말로 "말했다" 라고 말했다.그리고 또 린츠의 쵸콜렛을 줬다.난 알바 규칙 따위 상관 없이 그 자리에서 입에 넣었다.5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32:36.84 ID:BpAVZi0D0 >>딱 한 가지, 보통 사람하고 달라.너한테는 보통이라는 건 뭐야?그녀는 그녀지만니가 "차별"해서 어쩌자는 거야그녀에게는 그게 "보통" 만약 내가 부모라면 너 같은 녀석한테 딸을 시집 보내고 싶지는 않아망상소설이라면 계속해도 OK>>55 차별이 아니라『다르다』지.5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32:37.26 ID:4QDc0c6v0 "쉿?" 나는 집게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유우도 천천히 따라하더니 "쉿?"하며 같은 동작을 하고 웃었다.바다인지 어디 갔었는지 조금 피부가 그을린 그녀가 한 순간귀엽다고 생각하고 말았다.물론 로리는 관심은 없었다.그런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의식과잉일지도 모르겠지만,내가 조금이라도 누군가한테 필요로 해준다는게 기뻤던 거지.정말 엄청 기쁜 듯이 웃으니깐.중?고등학교는 공학였는데도 불구하고 재밌는 일은 일절 없었고대학 데뷔!라고 해도 서클에서도 눈에 뛰는 존재는 아니였고.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주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왠지 무의식적으로 기뻤다.물론 관두자는 생각도 즉시 사라졌다.6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38:13.28 ID:4QDc0c6v0 그로부터 반 년 간 계속 유우의 수업을 봐줬다.성적은 좋은 편.겨울 쯤에는 학교 수업을 제쳐, 응용도 할 수 있게 됐다.나도 나대로 수업에 상관 없는 계산 퍼즐 같은 것을 들고 가서 풀게 했다.그녀도 고민하면서도 즐거운 듯이 풀었었어.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우와의 필담, 대화할 기회도 늘었다.원장한테도 들었지만 나 외의 선생하고는 거의 필담조차 안 하는데나한테는 마음을 열어주고 있다고.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적었지만 그녀가 내 대학 얘기를자주 물어봤었지.그리고, 여전히 영화 얘기도 했지.그리고 3월.평소대로 수업이지만 그녀한테는 마지막 수업였다.사전에 원장한테 통보 받아 나는 약간의 외로움도 있었지만새로운 출발을 비는 마음이 더 컸었다.6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39:09.06 ID:4QDc0c6v0 마지막 수업은 중학교 준비반 정도였다.문자나 식 정리를 얼른 끝내버리고 평소의 잡담."선생니, 저, 오늘로 핰원 크만둬요"신기하게도 말을 했다."알고 있어. 중학교에서도 잘 지내고 힘내"나는 평소대로 노트에 쓴다."선생니은 여키 있을커야?""있을거야. 가끔은 보러와"또 노트에"선생니!"왠지 목소리가 커졌다. 7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41:16.54 ID:4QDc0c6v0 나도 당황해 "왜 그래?"라고 말로 물었다."지큼, 말하코 있어"아아, 그렇군.그녀가 독순술을 조금 배웠다는 걸 알고 있었다.나는 입을 크게 열어 천천히 대화했다."미안해""선생니, 제 슈업 힘들었죠?""전혀""폐를 끼쳐서 죄송해요""바보ㅋ 왜 ○○짱이 사과하는 거야"엉뚱한 말을 하니 나도 빠르게 말해버렸다.(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빠르게 말하면 당연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구별하는 것도 안 좋다. 입을 크게 열고, 가능한 짧은 문장으로 말하는게 좋다)7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42:24.39 ID:4QDc0c6v0 그녀의 표정은 ???가 되어 있었다."사과 안 해도 돼""응"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출구에서 그녀가 입을 연다."선생니, 책상 안에 봐"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평소에도 그랬지만, 그녀의 독특한 말투는 다른 학생,선생님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게 된다.이 쪽 보지말고 수업 집중해!라고 매 번 매 번 생각이 들었다."뭐 잊어버렸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나는 OK 싸인을 하고 그녀를 보내줬다.그 날은 그녀의 수업이 마지막여서 책상 청소를 하면서서랍 안을 꺼내본다.그 곳에는 두 번 접힌 종이가 들어있었다.7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43:59.60 ID:4QDc0c6v0 ">>1선생님~, ○○짱이 불러요"원장한테 불렸다.난 종이를 주머니에 놓고 출구에 가니 그녀가 서있었다.그 뒤로는 그녀의 어머니도 서있었다.모친한테 인사를 하고 그녀의 얼굴을 본다."왜 그래?""사진"요즘에는 전혀 만져볼 일이 없는 1회용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응?""같이 찍자"얼굴을 붉히면서 말하는 그녀. 조숙하긴 라고 생각하면서도 승낙.원장이 투샷을 찍어줬다.7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45:32.34 ID:4QDc0c6v0 "딸이 신세를 졌습니다"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친."아뇨아뇨, 저도 즐거웠습니다""감사합니다"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그녀를 데리고 돌아갔다.그녀가 차에 타, 안 보일 때까지 나는 손을 흔들었다.그리고 귀가.집에 돌아가 양복을 옷걸이에 걸었을 때 그 종이가 떠올랐다.주머니를 뒤져 꺼낸다.펴보니 그녀의 예쁜 글씨로『1년간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수업 너무 즐거웠어요』 라고 써져있었다.귀여운 그림도 그렸다.그녀는 그림을 잘 그렸다. 자주 노트에도 그렸었어.나는 그 종이를 접어 지갑에 넣었다.그리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그 날의 맥주는 조금 짯던 느낌이 들어ㅋ7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46:50.65 ID:4QDc0c6v0 2학년이 되니 서클이 바빠졌다.알바비도 쌓였고, 그 때부터 시작한 파칭코도 운이 좋아서알바를 안 들어가게 됐다.오랜만에 학원에 가니 원장님이"이 전에 ○○짱 (그녀) 가 자네 만나러 왔었어요"5월 중순였지."그런 가요? 무슨 일였나요?""이거 두고 갔어요"봉투 같은 걸 꺼냈다.안을 보니 마지막 날에 찍은 사진였다.내 얼굴 토나와ㅋ 지금도 스캔해놨지만 진짜로 토나오ㅋ그리고 종이 한 장.『핸드폰 샀으니 메일해요』 라며 주소를 적어놨다.8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49:10.71 ID:4QDc0c6v0 뭐야 그거ㅋ 라고 생각하면서도 봉투를 닫고 그 날 수업을 했다.귀가 후 떠올라서 그녀한테 받은 종이를 폈다.그리고 핸드폰을 꺼냈다.주소를 치고.내용 입력.하지만 보내기 버튼을 안 눌렀다.왠지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냐 라는 충동에 사로 잡힌 거지.중학생한테 메일이라니 라고 생각했다.만약에 범죄틱한 전개가 되면 어쩌려고 라고 생각해결국 메일은 안 보냈다.그리고 그 이후로 그녀가 학원에 오는 일은 없었다.물론 주소를 적은 정이도 어딘가로 사라졌다.8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52:17.07 ID:4QDc0c6v0 시간은 흘러 4학년.단위도 나머지 4학점, 그리고 취직도 무사히 정해져 나른하게 보냈다.그 쯤, 서클의 1학년 후배하고 사귀고 있었다.누가 고백했다든지, 계기가 뭐였는지도 지금은 떠올리지못 할 정도로 흐릿한 교제.하지만 나에게는 첫 여자친구이다.첫 데이트이고, 첫 키스이기도 하고, 첫 섹스였다.솔직히 기대 이하였지 라고 생각해.왠지 있잖아.이대로 아무 일이 없다면 이 애랑 결혼하겠지 라든지,만약 차인다면 평생 독신일 수도 라든지.당시에는 그런 느낌으로 초조감에 빠져있었다.그 쯤이 되니 알바도 재개.결국 학원 선생 알바 말고는 안 했네, 라고.왠지 무미건조한 대학생활였구나 라고 생각했었어.그런 느낌으로 대학생활은 끝났어. 8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54:04.04 ID:4QDc0c6v0 사회인 1년차. 꽤 익숙해졌을 (사무적으로는, 하지만 관두고 싶었다)무렵, 여름 날.회사 동료와 상하고 마시고 집에 가는 길.평소의 열차 홈에서 술을 깨려고 생수를 마시고 있었다.왠지 상사의 푸념, 설교가 많은 술자리여서내 기분은 안 좋고 집에 가도 혼자라 그냥 그 곳에 있었다.지금은 그 상사한테 감사하고 있다.그 때, 그 곳에 없었다면 그녀와 재회할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르니깐.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선생니"돌아보니 학생이 한 명.바로 그녀라는 건 몰랐다."키억해요?"느긋한 말투. 드디어 알아차린다. 여전히 수수한 애였지만 3년이라는 세월이 그녀를 어른으로 만들었다.교복에서도 신선함을 느꼈다.생각해보니 고등학생 나이게 된 건가.초등학생였던 그 애가??완전히 아저씨였다ㅋ9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4:58:47.28 ID:4QDc0c6v0 "○○짱이야?"그녀는 웃으며 끄덕였다.그리고 노트를 꺼내 "어두우니깐 필담으로"라고 썼다.이봐이봐, 지금은 냅둬달라고 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냅두지 않았다?? "일하고 가는 길이에요?"여전히 예쁜 글씨를 쓰는구나 라며 내심 칭찬하고 있을 때"술 냄새 나"라고 적었다.그렇게 냄새나나 하면서 나도 내 펜을 꺼내 노트에 적는다."사회에 나오면 알거야""몸은 소중히 해야죠""그런 말하게 됐네"오랜만의 필담였다.키보드 자판만 치고 있었으니 문자를 쓰는 것도 오랜만였다.9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00:43.31 ID:4QDc0c6v0 "그렇다고 해도 오랜만이네""그러게요""하지만 고등학생이 이렇게 늦게까지 다녀도 되는 거냐""늦다니 아직 9시인데""충분히 늦어""친구랑 놀았어요""밤놀이도 적당히 해""엄해, 선생님""그래도 잘 지내는 것 같아 뭣보다 다행이야""아니에요""어째서?""선생님이 계속 메일을 안 보내줬으니깐"그녀의 얼굴을 본다. 익살스럽게 웃고 있었다.9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01:28.03 ID:4QDc0c6v0 아아, 그 때 얘기인가?? "그 종이 잃어버렸어"서투른 거짓말. 문자도 흔들리고 있었다."그럼, 오늘은 알려주세요"그렇게 적더니 그녀는 핸드폰을 꺼냈다. 나는 어쩔 수 없네 라고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서로 교환한다.당시에는 주소장에 사귀던 여자친구 이름을 넣어놨는데,그녀가 그거에 대해 물었다."여자친구분 이름?""그렇지""선생님 인기 많네""어디가ㅋ""난 남자친구 한 명도 없어요""의외로 귀여운데"나도 장난스럽게 말해본다.9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02:33.97 ID:4QDc0c6v0 "그럼 선생님이 차이면 여자친구 해줘"어? 나도 모르게 그녀를 본다.그녀는 펜으로 뭔가를 적는다."농담이에요""놀리는 건 그만해ㅋ"그리고 그녀는 노트를 덮고 핸드폰을 가리킨다버튼을 누르는 흉내."알고 있어"난 벤치에서 일어나 그녀랑 같이 개찰구를 나왔다.그녀는 갑자기 서서 가방을 뒤지더니 그리운 린츠 쵸코를 꺼냈다.얼마나 좋아하는 거야ㅋ라고 생각하면서도 고맙게 받았다.입 안에서 녹이면서 먹은 쵸코는입 안에 남은 알콜 맛과 섞였다.9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03:23.30 ID:4QDc0c6v0 로터리를 지나자 그녀의 모친이 기다리고 있었다.우와ㅋ 이런 주정뱅이 모습 보이기 싫어ㅋ 라고 생각하면서도 인사.말은 나누지 않고 나는 귀가했다.그리고 그 때는 그녀한테 메일을 보냈다.『공부도 힘내라』라는 느낌으로 보냈던 것 같애.『선생님도 일 힘내요』라고 돌아왔다.지금은 선생님 아니지만ㅋ그로부터 그녀와의 메일을 주고 받는게 조금씩 시작된겁니다.10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04:44.72 ID:4QDc0c6v0 매일이 평범한 루프인 사회인 2년차.대학에서 생긴 여자친구하고는 아직도 사귀고 있었다.하지만 그녀가 좋은 곳으로 취직해 나는 약간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만나는 기회도 한 달에 1, 2번. 사귀는 거냐 라는 느낌였다ㅋ그런 지루한 생활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유우였다.몇 달만의 메일. 아무렇지 않게 열어보고 놀랬다. 『이 전 전국 난청학교주최 그림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 호오~호오~. 대단하네.10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08:15.54 ID:4QDc0c6v0 『축하해』 『상 주세요』 점점 건방진 꼬맹이가 되가주고는ㅋㅋ라고 생각했다.『비싼 건 안 사준다~』 『데이트해줘』 바보냐ㅋ 라고 생각했다.『농담하지마~』 『농담 아니야. 진심이야』 『여자친구 있다니깐?』 솔직히 그건 도망치기 위한 변명였다.사귀던 여자친구를 위해서 한 말이 아니다?? 10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09:05.80 ID:4QDc0c6v0 『그랬죠. 바쁜데 죄송해요. 또 메일할게요』 라고 돌아왔다.나도 한심한 남자지. 조금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 OK라고 답장을 보냈다.『기뻐요』 플래그 라든지 그런 걸 당시의 나한테는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그냥 예전 학생하고 놀러갈 정도의 감각. 『어디 갈래?』 『영화관에 갈래』 미안하지만 귀가 안 들리는데 괜찮냐 라는 의문을 당연히 품었다.하지만 그녀가 가고 싶다고 하고 있는 거다.내가 그걸 태클 걸 필요는 없지.『그래』 날짜와 장소를 정해 그 날의 메일은 끝났다.10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09:17.75 ID:LfaYybBD0 두근두근10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11:51.10 ID:4QDc0c6v0 그 날은 쾌청했다.오랜만의 휴일이라 계속 자고 싶지만 약속을 깰 수는 없다.얼른 갈아입고 정해둔 곳으로 향했다.그녀는 나보다 먼저 도착했었다. "선생니!"유우가 손을 흔들었다. 그건 그야말로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자친구의 모습였다."기다렸지"유우는 고개를 저었다.나는 손가락으로 "갈까?" 라는 신호를 보낸다.유우는 끄덕인다.역 근처의 영화관.뭘 볼지는 안 물어봤지만당시 히트했던 영화 『버터플라이 이펙트』였던 걸 기억한다.지금도 좋아하는 영화 10편 안에는 들어가는 명작이라고 생각해.11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13:30.28 ID:4QDc0c6v0 하지만 당시에 봤을 때는 그녀가 신경 쓰여 영화가 문제가 아녔다ㅋ안 들리는데도 이해할 수 있는 거냐 라고.그리고 보청기도 안 했고.뭐든 큰 소리가 되면 보청기가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고 말아서반대르 불쾌하다고 했다.보충하자면, 나 정도면 보청기의 의미가 거의 없다, 라고 최근에 알았다.하지만 열심히 영화를 봤다.끝난 뒤에도 "재밌었어"라며 만족했었다.자막만으로도 알 수 있지 하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중에 소리를 끄고 집에서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솔직히 재미 없었다ㅋ들리는 사람한테는 어려운 작업일지도 모르겠다ㅋ11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14:58.65 ID:+LKYTCjz0 >>113 바보! 유우한테는 그게 영화인거야!12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18:17.16 ID:lwB4tcuTO 응원하고 있어12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18:39.48 ID:4QDc0c6v0 데이트 ? 중에는 말 뿐만이 아니라 동작도 섞어서『대화』를 했다.주변의 시선이 처음에는 신경 쓰였지만 금방 익숙해졌다.지금도 그렇지만 나랑 그녀 사이에 수화는 별로 안 쓴다.그건 그녀가 다니는 학교가『청각 구어법』을 채용하고 있으니깐,일방적인 수화법이 아니라 정도 높은 보청기를 사용해 말을 듣고,그리고 말로 전하는 방법 등.난청 사회에서는 지금도 찬반양립이지만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는수화를 하면서 얘기한다 (토털 커뮤니케이션) 는 것은 안 했다.암튼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써의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는 거다.12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20:35.33 ID:4QDc0c6v0 지금은『인구내이(人口?耳)』라고 편리한 것도 있지??수술로 낄 수 있지만, 유우가 실청한 시절에는일본에서도 그다지 도입하지 않았고고액이기도 해서 그녀는 그 수술을 못 받았다.어렸을 때일 수록 그 수술을 받으면 효과가 크다고 한다.지금은 정말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고 유우는 말한다.그런 느낌으로『대화』를 하는 유우에 대해 처음에는이해할 수 없었지만ㅋ지금은 그런 수고 없이도 대화할 수 있다.하지만 싸울 때는 왠지 재밌기도 하다ㅋ등을 돌리고 있어도 그녀의 말은 나한테 들리는데내 말은 전해지지 않는다ㅋ그러니깐 아무 효과도 없다ㅋ그걸 알고 있어서 싸우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는,그녀는 내 얼굴을 안 본다.수화도 안 본다ㅋ테라 못 됐어ㅋ12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22:33.07 ID:4QDc0c6v0 그건 일단 두고.유우하고의 데이트에는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랑있을 때보다 즐거웠다.신선함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지만,이렇게 그냥 손을 잡고 적당한 대화를 하고, 적당한 곳에서 놀고?? 라는 것보다 확실히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자기가 전하고 싶은 것을몸동작 손동작 입모양을 사용해서 대화하는게 좋은 피곤함과 함께만족감을 가질 수 있었다ㅋ단조로운 생활에서 그 날만은 즐겁게 됐다.그리고 나는 7시 지나 유우랑 헤어졌다."선생니, 오늘은 놀아줘서 코마워"고등학생이 되서 예의도 배운거냐ㅋ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돌아갔다.그리고 한 가지 더,학원에 있었을 때 수업이 끝나면"코맙습니다"라고 말했었어."고마워"라고 말 못 했어.마지막의 "ㅓ"발음을 본인이 말했지만 소리가 안 나서"코마우" 라는 느낌이라고 해야되나.그게 그 때는 제대로 "고마워"라고 말했었다.성장했구나???라며 왠지 씁쓸해졌다.좋겠다??학생은.난 지루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누군가가 말했었지? ㅋ 향상심 없는 녀석은 바보라고ㅋ그야말로 그 말 대로.엄청 내가 하는게 다 나른해졌다.나는 안 된다고 갑자기 우울해졌다.이런 상태라는 건 갑자기 오는 거지.13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24:12.23 ID:4QDc0c6v0 결코 유우의 탓이 아니다.내가 약했던 거지.그녀와의 데이트 후, 한 동안 나는 일을 무단결근하는 일이 많아졌다.금방 회사에서 잘렸다.그야 그렇지. 별로 상관 없고??라고 물러터진 사고를 했다.적금은 꽤 모았다그걸 깨서 전락된 생활.파칭코, 슬롯, 경마에, 경륜?? 안 피던 담배도 피게 됐다. 한 순간에 방이 노랗게 변했다.13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26:33.22 ID:4QDc0c6v0 그리고 사귀던 여자친구한테는 일을 관뒀다고는 말 안 했다.만날 때는 양복을 입고 갔다.의외로 안 들켰다ㅋ랄까 내가 본성을 안 보여준 거지ㅋ하지만 유우한테는 들켰다. 아니 보고말았다.유우랑 놀고 반 년 정도 지났을 때였나.끈적거리는 머리에 스웨터 차림으로 파칭코에서 나오니누군가가 어깨를 쳤다.그 날은 파칭코에서 다 잃어서 기분이 안 좋아 "아아?"라고목소리를 낮게 깔고는 돌아봤다.그러자 조금 겁을 먹은 유우가 있었다.아마 내 표정이 너무 심했던 거였겠지."선생님, 휴가?" 신경 꺼라고 생각했지만, 그 날 논 뒤 만날 일도 연락할 일도 없던유우한테 매몰차게 굴 수는 없었다.13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30:58.72 ID:4QDc0c6v0 "휴가""그런 모습 하나도 안 멋져"열받았다. 애한테 설교당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깐.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유우를 보니 담배 피는 제스쳐를 한다.그것도 놀라움과 의문의 표정으로."안 돼냐"유우랑 얘기할 때의 버릇으로 입을 크게 열고 말았다.연기가 그녀한테 간다."미, 미안??"유우는 곤란해하면서 고개를 젓는다."선생니, 일??"뭔가를 말하고 싶은 모양였다."평일, 자주 보여""어?""일 콴뒀어?"나는 유우의 얼굴을 안 보고 담배를 폈다.아무말도 할 수 없다.이렇게 한심한 남자한테 공부를 배웠다고환멸하고 있겠지 싶어 유우를 볼 수 없었다.나 치킨.13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32:16.65 ID:4QDc0c6v0 "선생니"담배 불을 샌달 뒤로 끄고 그녀를 본다"콩부" (소문자 뒤의 모성발음은 지금도 힘든 모양ㅋ)"어?""알려줘"나는 손을 옆으로 흔들었다. 싫어."영어""어?""영어 알려줘"그녀는 가방에서 프린트를 꺼냈다. 영어 텍스트였다.13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35:12.50 ID:4QDc0c6v0 나는 종이를 받아 내용을 읽었다..그립네??대학 수험기간을 떠올린다."안 퇘?"안 퇘? 아아??안 돼? 라고 묻고 있는 건가. 왠지 유우의 발음이 귀여워졌다.바보 취급하는게 아니라, 왠지 유우랑 있으면 재밌어ㅋ나는 집게손가락만을 세워서 "한 번만"이라고 말했다.유우는 끄덕였다.그리고 몇 일 뒤, 나는 처음으로 유우의 집에 가게 됐다.14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36:10.33 ID:4QDc0c6v0 딱히 여자친구의 집에 가는 것도 아닌데 오랜만에 머리를 자르고유우의 집으로 향했다.같은 구지만 역을 놓고 반대측에 위치하는 나랑 유우의 집.그 방면으로 가본 건 몇 번 밖에 안 된다.도착한 곳은 4층 건물 아파트였다.내가 살고 있는 쓰레기 아파트보다 꽤 좋았지만그래도 오래됐다는 느낌였다.유우의 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울린다.나온 것은 모친였다."안녕하세요""바쁘신데 죄송하네요"여전히 겸손하신 어머니.나는 안으로 안내받았다.집 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쓸데 없는 게 없다.내 고향 집하고는 꽤 다르다.유우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위화감이 들었다. TV? 들려?화면을 보니 영어자막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대단해~ㅋ 하며 놀랬다.14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36:52.89 ID:GuuuJ6JXO 유우씨를 주세요. 저한테14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40:29.96 ID:4QDc0c6v0 내 방문을 알아차리자"선생니"하고 말하고 정지 버튼을 누르고 일어섰다."이 쪽"나는 유우한테 팔을 붙잡혀 그녀의 방으로 끌려갔다.바로 유우의 모친이 차를 갖다주시고, 나가셨다.여자애 방에 들어가는 건 처음였다.그 것도 여고생의. 왠지 진정되지 않는다.방도 또 깨끗했다.영화 포스터가 두 장 붙어있었다.특이한 의미로 센스가 좋다ㅋㅋ"트레인 스폿팅"의 포스터였다ㅋ그리고 옆에는 "버팔로 66"의 포스터ㅋㅋ정말로 여고생이냐ㅋ 라고 생각했다.그 포스터에 대해 안 건 정말 최근."좋아하니깐 어쩔 수 없잖아" 라고ㅋ좋아하는 데 이유는 필요 없다 인건가ㅋ15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44:35.38 ID:4QDc0c6v0 또 탈선했다?? 영어를 가르쳐준다고 해도 그녀한테 가르쳐줄 건 거의 없었다.왜냐면 거의 만점에 가까웠으니깐.학교 과제를 그냥 같이 풀고는 맞춰볼 뿐.내가 더 틀린 것도 있을 정도.내가 있는 의미 있어? ㅋ라고.그리고 그 날은 끝났다. 2시간으로 1만엔이나 받았다.그냥 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안 들어주셨다.그걸 받는다.돌아가는 길에 현관에서 유우가"선생니, 매주, 가르쳐줘"라고 말했다.틀림 없이 그 말할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가르쳐주는』건 안 싫어하고.유우랑 지내는 시간도 싫지 않다.나는 "그래그래"라는 느낌으로 OK를 알렸다.15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46:28.52 ID:4QDc0c6v0 여전히 유우의 집에 가는 일요일말고는 방에 박혀 지냈다.하지만 취직사이트도 보게끔 됐다. 보기만...그리고 몇 번 째인지의 과외 날.2월 였나.나는 유우의 모친과 얘기할 기회도 가지게 됐다.평소대로 유우한테는 텍스트 문제를 풀게 했다.교과서 제일 뒤에 모의시험 문제에 도전해 시간을 재고 하고 있었다.나는 "화장실 갔다올게"라고 말하고 방을 나온다. 다른 사람의 집이라 안 내켰지만 참을 수 없어서 갔다왔다.그 때 알아차렸는데 화장실에는 종이가 붙어있었다.영화의 대사인 걸 알 수 있었다.한 문장이 써져있고 그 밑에는 영화 제목.영화를 상당히 좋아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나왔다.그러자 거실에서 세탁물을 개고 있는 모친과 눈이 마주쳤다.">>1씨, 잠깐 괜찮을까요"모친이 부르셨다.16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50:01.86 ID:4QDc0c6v0 "네??"뭐야 클레임이냐? 난 일절 손 안 댔는데?? 그런 불안감에 휩쌓인 채로 다가가니 의자에 앉으라고 하셨다."실례합니다""유우는 어떤가요?""가정교사는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ㅋ"아하하하 하고 웃는 건 나만였다. 어라? 말실수했나?"유우는 말이죠, 정말로 >>1씨를 좋아합니다""네?""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초등학생 시절, 저한테도 보여준 적 없는 미소로 유우는 학원에서 나왔습니다""하아??" "학원이 즐겁다면서, 그 날 처음으로 그 말을 말했습니다 『즐거워』는 처음 들었습니다""딱히 특별했던 일은 안 했는데요ㅋ""그거입니다""네?""저 조차 처음에는 딸하고 잘 지내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1씨는 평범하게 대해줬습니다. 유우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아??하지만 저도 보청기를 보고, 『안 들린다고 했나?』같은 말 을 하고 말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점 때문에 유우도 불신했겠지만 >>1씨의 수업, 대화가 정말로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확실히, 그 이후로 그녀의 난청에 대해 이 때까지일부러 꺼내지는 않았다. "유우는 5살였을 때??" 거기서 모친은 입을 닫았다."죄송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고 말아서??"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유우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솔직하게 생각했었다.모친은 떠올리듯이 얘기해줬다.16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51:22.86 ID:4QDc0c6v0 이하는 유우의 과거를 쓸거야.왜 남의 과거를 쓰는 거야? 미쳤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 이야기로 한 가지계기가 됐어. 그러니깐 유우하고의 일을 쓴다면 이 얘기는필요불가결이야. 알아주세요?? 16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54:18.93 ID:4QDc0c6v0 나는 당시 유우는 태어나면서부터 귀가 안 들리는 줄 알았다.랄까 귀가 안 들리는 사람한테 대한 의식이 그랬다.하지만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유우는 5살일 때 청각을 잃었다.유우의 부모는 이혼했다.이혼한 것은 유우가 실청한 뒤, 바로, 였나보다.부치는 이른바 쓰레기 아버지.결혼해서 알게된 엄청난 빚.일도 여기저기 옮겨다닌 모양.특히 딸인 유우한테 때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그리고 X 데이.일상다반사인 부부싸움 도중, 부친은 유우를 밀었다.그 반동으로 유우는 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혔다.괜찮아? 라고 다가간 모친 품에서 유우는 "야?!!!야?!!!야?!!"하면서 울었다고 한다.걱정된 이웃주민이 초인종을 울 정도로 큰 소리였다고 한다.16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5:55:47.34 ID:4QDc0c6v0 그리고 급히 눈을 감아 울기를 그쳤다. 흔들어도 안 일어난다.최악의 사태가 일어났다고 생각해 모친은 구급차를 불러병원에 데려갔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해서 안심하자, 모친은이혼서를 내밀었다고 한다. 물론 양육비 청구도 동시에. 부친은당초에는 거절했지만 재판 얘기가 되자 바로 승낙했다고 한 듯.외상은 딱히 없어서 유우는 바로 유치원에 복귀. 하지만 한 동안있으니 주변에서 이변을 느꼈다고 한다. 원래 말이 적은 애였지만,말을 걸어도 무시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유우가 실청했다는 걸알기에는 시간이 꽤 걸린 모양였다. 모친은 바로 병원에데려갔다.17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02:49.15 ID:4QDc0c6v0 여러가지 검사에 이은 진단.두부의 강타, 또는 고도의 스트레스로부터?? 근본적인 원인은 알 수 없었다.후자라면『돌발적 실청』이라고 해서,요즘이라면 가수 浜崎あゆみ가 그렇게 됐지.보통은 한쪽 귀만 가끔은 양쪽 귀에 나타날 때도 있다.사람에 따라서는 이 돌발형은 확실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안 들리게 됐는지를, 알 수 있는게 명확하지만, 5살인 유우한테그런 판단은 물가능하다.봤을 때는 전혀 바뀌지 않은 딸이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졌다니.심하게 풀이 죽어 자기를 탓했다고 한다.맞벌이여서 자주 딸하고 놀아주지 못 했다든지 등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것까지 탓했다고 한다.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면 좋을지?? 최악의 행동도 하려고 했지만그걸 멈추게 해준게 유우 본인였다고.18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04:28.81 ID:4QDc0c6v0 적금과 헤어진 부친한테서의 양육비.그리고 모친의 벌이로 생활은 가능했지만정신적으로는 한계였다.딸한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반응 안 해준다.모처럼 둘이서의 생활이 시작했는데도?? 일이 없는 날에는 멍하니 영화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모친이 고등학생였을 때 있었던 영화 연구회.사회인, 그리고 주부가 되서는 볼 기회도 적어진 영화.의기양양하게 보는게 아니라 그것말고는 할 생각이 안 들었다고 한다.어느 날, 호러 영화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내용은 머리에 전혀 안 들어왔다. 그냥 멍하니 쳐다볼 뿐.그러자 갑자기 팔에 무거움을 느꼈다고 한다.고개를 돌아보니 유우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18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07:26.14 ID:4QDc0c6v0 겁을 먹었다??하지만 시선은 TV 화면."유우? 왜 그래?"당연 말을 걸어도 대답은 없다. 그런데도"무서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유치원생이 보기에는 무서운 장면이 흐르고 있었다.겁을 먹는데 당연하다.영화관에서 커플 (훗)이 호러를 보다 여자친구가 남자친구팔에 안기는, 그런 뻔한 장면 그야말로 그 상태무서우니깐 누군가를 기대고 싶다.유우가 기댄 것은??모친였다.모친은 유우를 울면서 힘껏 안았다고 한다.이 애한테는 나밖에 없다.그런 당연한 걸 당연하게 못 했던 자기가 한심하다는 생각과딸을 사랑하는 마음.그게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그로부터는 영화를 볼 때마다 유우는 천천히 다가와모친 옆에서 봤다고 한다.이해하는지는 안 중요했다고 모친은 말한다.그리고 쉬는 날에는 꼭 같이 영화를 보게 됐다고 한다.뮤트해서, 자막만을 둘이서 쳐다본다.딸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그리고 더 대단한 것은, 모친은 유우의 영화에 관한이해 유무에 상관 없이 딸과 보기 전에 한 번 비디오를 보고자막만을 전부 받아 적었다고 한다.지금도 영화를 좋아하는 건 엄마한테서 이어받은거지ㅋ19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14:07.56 ID:4QDc0c6v0 초등학교에는 보통 학교에 입학했다.장애인데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장래에는 "귀머거리"와 위치하게 될지 "난청자"와 위치하게될지는 초등학교에 다녔냐에 따라 분류된다고 한다.이건 모친의 의향이 컸다고 한다.초등학교에 입학.저학년 1~3년까지는 학교의 대응도 있어서 유우도 순조로웠다.대학 수업처럼 받아적을 필요는 없었으니 칠판에 쓰여진 문자,그리고 교과서를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하지만 4학년이 되자 공부의 복잡화에 반에 못 따라가게 되고가벼운 이지메가 일어났다.언젠가는 일어날 사태여서 모친은 거기까지 당황하지 않았다.이지메도 심하지는 않고 담임한테서 주의를 주는 정도였다.하지만 공부가 안 됐다. 담임도 잘 돌봐주는 사람였지만 한계가 있다.그리고 5학년에 올라가면서 동시에 나보다 1년 먼저 그 학원에다니기 시작했다.20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21:22.93 ID:4QDc0c6v0 하지만 전혀 성적이 좋아지지 않았다.면담할 때 나눠주는 학습 플랜 표에는 "잘 했습니다" "GOOD"같은 게 써져있지만 전혀 납득이 안 간다.음, 심각한 거지.적당히 했으니깐, 그 학원.하지만 유우의 모친은 소심하신지, 장기간을 봐서였는지,유우 자신도 가고 싶다고는 말 안 하니깐 학원을 계속 보냈다.그리고 1년이 지나??아직도 4학년의 범위가 안 끝난다.역시 모친은 포기하려고 생각했다고 한다.6학년이 되서 4월분의 수업료를 내고 말았으니 5월부터는그만둬야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그 때 내가 등장했다는 거지. "학원 재밌어"그 한 마디로 모친은 만족했다고 한다.그리고 자주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딸의 모습에 감동해쓰러질 것 같았다고 한다ㅋ학원에서 돌아올 때마다 내 얘기를 했다고.듣고 있으니 솔직히 부끄러웠다ㅋ중학교도 가능하다면 공립에 보내고 싶었지만.장애에 대한 시련을 중시해야된다 싶어 난청자 학교에 보냈다.그리고 지금에 도달한다.20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23:06.88 ID:4QDc0c6v0 난 약 한 시간동안 얘기를 들었다.다른 사람 얘기를 듣는 건 안 좋아하는 편인데도 들었다.더 자세히 듣고 싶을 정도이기도 했지만"유우는 괜찮나요?" 라는 모친의 한 마디에내가 뭐하러 여기에 왔는지를 떠올렸다."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유우의 방으로 돌아갔다."끝났어?"책상 위에 유우가 머리를 엎드리고 있었다.다가가도 아무 기척이 없다.옆에서 쳐다봤다. "스~??스~??"하며 작은 숨소리를 내고 있다.이런??자버린거냐ㅋ라고 생각하며 텍스트를 주웠다.거의 만점.내가 가르쳐주지 않은 범위의 문제도 거의 만점.문법이나, 지식적인 부분은 제외하고.20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27:54.82 ID:4QDc0c6v0 이 때 나는 알아차렸다.생각해보면 영어를 가르치다니 이상한 이야기라는 거지.영화를 영어 자막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고꽤 어려운 영어 교과서도 그냥 풀었고.가정교사는 나하고 만날 구실이다, 아마도. (자의식과잉이라 지송ㅋ)유우는 호의 이상의 것을 나한테 품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동시에 무리라고 생각했다.나이가 너무 떨어졌다. 그건 표면상의 변명.정말은, 난 이 애를 지탱해줄 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을.장애를 이해하는 거랑은 또 별개의 얘기다한 동안 있으니 유우가 눈을 떴다.책상에 기대고 있던 볼이 빨개져 있었다.21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32:12.34 ID:4QDc0c6v0 나는 대놓고 웃고 말았다."잤어?""응"나는 교과서를 그녀한테 돌려줬다."선생니이 안 오니깐~""미안"나는 그녀한테 돌아간다고 얘기했다.평소처럼 현관까지 배웅해줬다.평소에는 얘기를 하고 돌아갔지만 나는 무언였다.한 번만 뒤를 돌아봤다.유우의 모습은 없다. 하지만 바로 뭔가를 안고 돌아왔다."선생니, 이거"그 날은 발렌타인데이 몇 일 전.흰색으로 포장된 쵸코였다."고마워"평소 이상으로 입을 또박또박 벌려 유우한테 감사를 전했다.태어나서 발렌타이 쵸코를 받은 기억이 거의 없는 나한테는여기서 텐션 맥스ㅋㅋ가 됐겠지만.하지만 이 때는 무거웠다. 아무리 그게 의리 쵸코라고 하더라도.유우는 내 말에 수줍어하며 웃는다."선생니, 오늘도 코마워""응" 평소라면 손을 흔들며 돌아갈텐데그 이상으로는 아무말도 안 하고 현관을 나섰던 걸 기억한다.21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33:40.44 ID:4QDc0c6v0 집으로 돌아가 포장을 풀었다.『린츠한테는 지지만??』라는 작은 메모가.확실히ㅋ조금 쓴 맛였다. 그래도 맛있다. 안 달고.하지만 왠지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생각해봤자 쓸데 없으니 그 날은 자기로 했다.22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36:14.54 ID:4QDc0c6v0 나는 다음 일요일부터 가정교사 알바를 쉬게됐다.『일자리를 알아보느라 바빠졌어』라고 유우한테는 말했다.유우랑 만날 수가 없었다. 기분 상.사실, 일자리를 찾아보려고도 해봤다.슬슬 적금이 바닥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놓고 역시 찾기만 하고서류를 보내지는 않고 방 안에 쳐박히는 일이 많았다.여전히 사귀던 여자친구랑 몇 번 만날 뿐.만나도 서로의 미소도 줄어있었다.성욕도 별로 없어서 만나서 밥만 먹고 돌아갈 뿐."일은 순조로워?"라고 하더라도 "그냥 그래"라고 대답할 뿐.그런 느낌으로 구질구질하게 보내 해도 바뀌어 벚꽃도 핀 5월.유우가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메일을 보냈다.나는 가볍게 승낙했다.옆 근처 찻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22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40:34.45 ID:4QDc0c6v0 "선생니"유우는 항상 나보다 먼저 도착해있다."무슨 일이야?""진로때문에 상담하려코"유우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이우리들을 보는 걸 알 수 있었다."대학에, 갈거야?""4년제는 힘들어""왜?""얼른 취직해서 엄마를 편하게"취직??가슴이 아파왔다.그 이상으로 신경 쓰인 것은 주변의 시선.상관 안 하고 계속했다.22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41:16.48 ID:4QDc0c6v0 "전문대?"유우는 끄덕인다."어떤 일하고 싶어?""영어""영어?""해외 그림책 번역가??"난 유우의 얘기를 끝까지 안 듣고 일어섰다.내 정면에 앉은 커플들이 소곤소곤거리며 이 쪽을보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놀란 유우의 손을 잡고 커플한테 향했다."쳐다보지 말라고! 바보 커플 ! !"나는 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나왔다.열 받는다.가슴이 아팠다.유우는 보라고 있는게 아니라고.22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42:21.28 ID:4QDc0c6v0 "선생니?""우리 집에서 얘기하자"그 가게는 우리 집 근처에 있었으니깐.딱히 속마음이 있어서 부른게 아니라고ㅋ난 분노때문에 아무말도 안 하고 걸어갔다.유우의 팔을 잡고 있던 것도 까먹고.알아차렸을 때는 유우의 손이 내 손을 잡았을 때였다.작고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하지만 나도 모르게 뿌리치고 말았다??"아니, 그??"난 동요했따??역시 지금 태도는 이상하지??"헤헤"유우는 부끄러우면서도,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지금도 그 날 일은 사과 안 했다.정말로 잘 못 했다고 생각한다.23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45:55.37 ID:4QDc0c6v0 집에 들여보내주자 유우는 놀란 표정을 보였다."더러워"이봐이봐??조금은 염려한 말을 하지 라고 생각했다.말할 만큼 더럽다고도 생각 안 하지만ㅋ난 테이블 위에 올려둔 노트북을 키고『그림책 번역가』를 구글했다.그 동안의 유우의 행동이 이상하다.힐끔힐끔하며 방을 둘러보고 있다."왜 그래?"라고 물어본다.24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49:59.27 ID:4QDc0c6v0 "청소 안 해?""있잖아??"귀찮으니깐 필담으로 바꿨다."자취하면 이런 법이야"유우도 얼른 펜으로 적는다."식사라든지 챙기고 있어?""챙기고 있어"이건 말로."여자친구분을 집에 부르거나 안 해?""안 불러""선생님 칠칠치 못 해""시끄러. 잠깐 조용히 있어 ! !"정곡이라 열 받다니ㅋ 쓰레기입니다ㅋ유우는 아무말도 안 하고 옆에 정좌했다.왠 정좌ㅋ라고 생각했지만 반성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니 냅둔다.나는 상관 안 하고 알아봤다.24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51:25.44 ID:4QDc0c6v0 아무래도 전문대 영어과를 졸업해 번역가 (그림책은 아니지만)가된 사람은 있는 모양. 그리고 그림책 번역가는 전자화의 영향으로그림책 자체가 적어졌기 때문에 상당히 되기가 힘든 직업??담담히 메모를 하고 있을 때 어깨를 두드렸다."왜?"유우는 펜을 들어 이렇게 썼다."청소해도 돼?"???부디! 라고 즉답하고 싶었지만 아까 화냈던게 남아있어서"맘대로 해" 라고 적었다.유우는 얼른 일어나 청소를 시작했다."버려도 돼?" "이건 어디?"라고 물어보면서 후다닥 청소하는 유우를 보고 있으니좋은 신부가 되겠네??라고 생각했다.고작 몇 십분만에 착각할 정도로 깨끗해진 내 방.땀을 닦는 유우한테 "고마워"라고 메모해서 보여준다."선생니, 코마워" 유우도 인사를 했다.25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55:10.09 ID:4QDc0c6v0 "선생니, 대단해""인터넷하면, 할 수 있어"노트북을 가리킨다.고개를 젓는 유우."나, 선생니 존켱해""응?"내가 ? ? ? 같은 얼굴을 짓자 종이에 적는다."尊敬"그리고 나를 가리킨다.존경이라??대체 어디에 그럴 요소가 있는 거야ㅋ"선생님은 나를 보통 애로 봐줘""왜냐면, 보통이잖아""고마워"난 "응"이라고 말하고, 계속해서 오늘은 이제 돌아가라고유우한테 말하자 바로 돌아갔다.돌아간 뒤에 『여러가지 고민해보고 갈 길을 고르세요』라고백수인 나는 잘난듯이 메일을 보냈다.『선생님도 힘내』라고 돌아왔다.나는 다시 컴터에 향한다.그녀의 마음에 대답하는건 무리다.하지만 그녀가 나한테 품고 있는 너무 깨끗한 환상을 지켜주는 건가능하지 않을까.우선은 일을 찾자.제대로 사람이 되자 라고 생각했다.25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56:34.52 ID:m9cKDyA/0 씁쓸하다25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57:15.42 ID:KwMfFz3C0 씩씩하네… 25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57:46.35 ID:GNkNWrlC0 그러게, 그것도 >>1 상대니깐 괜히 더 그런 거겠지26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59:14.30 ID:HYFrKToaO 순수는 잔혹한건가26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6:59:52.30 ID:4QDc0c6v0 여름이 지나, 슬슬 시즌인데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못 구했다.유명한 대학 졸업해 유명한 기업에 들어간 난 승리조ㅋ그러니깐 일자리도 어느 정도 좋은 데가 아니면ㅋㅋ라고 자만하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면접까지 간 곳은 겨우 1군데. 그것도 떨어졌다.그 동안에도 유우하고 메일로 연락을 가끔 (한 달에 한 번) 했다.아무래도 진로는 전문대학의 영문학 영문과로 할 모양였다.그녀의 영어 실력이라면 전문대보다 더 노릴 수 있을텐데??그런 느낌으로 지나가는 나날??그리고 그 날이 왔다.26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01:05.24 ID:4QDc0c6v0 2월.오랜만의 면접.낮에 일정이 잡혔지만 아침부터 일어났다.유우의 합격 발표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더블 두근두근. 심장에 안 좋다ㅋ10시 지나 메일이 왔다."선생님, 합격했어요"왔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난 바로 답장을 보낸다."축하해. 4월부터 청청한 대학생이네"초등학생였던 유우가 벌써 대학생??감격이 깊었다.하지만 너무 들떠있을 때가 아니다.나도 착실히 해야지 해서 양복으로 갈아입었다.오늘은 가능해! 라고 확신했다.나도 4월부터 사회인 복귀라고.하지만 그렇게 잘 될리가 없지ㅋ27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03:57.72 ID:lYx8Dxa+O >>1 시간 괜찮아?몇 시에 갈거야?27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04:18.44 ID:gQtTEool0 >>1오늘 밤 몇 시에 갈거야? 그러다 늦는다27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04:38.06 ID:4QDc0c6v0 면접은 처참했어.공백 기간의 질문공세에, 내 인간성도 부정당해??압박면접이랄까, 그냥 깔보는 것 뿐.오랜만에 풀이 죽었다. 자기혐오도 플러스 됐고.왠지 누군가랑 같이 있고 싶었다.유우한테 연락할까??설마ㅋ난 여자친구한테 전화했다.하지만 안 받는다. 이상하네??오늘은 쉬는 날일텐데.몇 번이나 걸어도 안 받는다.어쩔 수 없이 메일을 보냈다.『오늘 못 만나?』 그러자 메일이 돌아왔다.『지금 바빠서 전화 못 받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야? 라고 하길래 나는 숨기고 있던 사실을 얘기하자 싶었다.이제 숨겨도 의미가 없다.이럴 때 여자친구한테 기대지 않으면 언제 기대.이런 사고방식이 내 머릿속에 퍼져갔다.『실은, 나 꽤 전에 일 관뒀어. 지금은 일을 찾고 있는 단계. 그래서 오늘 면접였는데 처참했으니 ○○ 얼굴이 보고 싶어져서』 지금 생각해보면 저질인 메일였지ㅋ27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05:56.28 ID:GPdo5KO20 늦는다든지, 도중에 가기는 없기다28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09:00.02 ID:4QDc0c6v0 시간 걱정해주는 사람들 고마워.유우 어머니가 오늘 늦을거니깐 8시정도라고 생각해.유우한테서 연락이 올거니깐.(계속) 한 동안 있으니 메일이 돌아왔다.『그럴 줄 알았어. 랄까 뭐야 너. 다시는 연락하지마』 매몰찼다. 아니 예측한 대답였으니나는 전화를 걸었다.안 받는다. 한 번 더??"끈질기네"남자 목소리였다."어라?""지금 ○○랑 데이트 중이야, 죽는다""잠깐??"전화는 바로 끊겼다.몇 분 멍하니 있었다.제정신이 들어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뚜~ 뚜~하고 울린다.통화중?아니 착신 거부다.메일은?『보내실 주소를 확인해주세요』 끝났다??뭐든 다 끝났다??28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11:50.04 ID:4QDc0c6v0 면접 본 회사 근처 벤치에서 혼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여자친구를 잃은 쇼크와 면접에서 프라이드가 걸레짝이 됐으니깐.2, 3시간은 그랬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패배자.그리고 한 통의 메일. 유우였다.『합격 통지!』 사진을 첨부했다.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왔다.존경한다고 해준 유우가 더 열심히 하고 있엇다.난청이라는 핸디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자기 길을 걷고 있구나. 부러워. 그리고 눈부셔.나는 무의식 중에 유우한테 『전화』를 걸고 있었다.28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12:37.99 ID:4QDc0c6v0 처음 걸어보는 전화."선생니?"목소리가 들렸다."전화로는 몰라""축하해. 정말로 축하해"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텐데 수화기 너머로 말했다."선생니? 왜 그래?"유우한테는 무언 전화였겠지."선생니? 선생니?"그 선생니가 갑자기 나를 복받치게 했다.얼굴 마주보지 않으면 말 못 하냐?까불지마.왜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거야!!!! "선생니 어디에 있어?""시끄러어어어어어어!!!!!!!!!"너무나도 심한 억지.그리고 난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그대로 전차에 몸을 던져 죽을까 했다.정말로.하지만 그런 용기도 없다.힘 없이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29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13:48.57 ID:4QDc0c6v0 도중에 파칭코에 들렸다.이럴 때에 한해서 딴다니깐ㅋ본전까지 포함해 5만엔.풍속업소에라도 갈까 했지만 늦었으니 집에 갈래.전차를 타 역에 도착.집에 가서 온라인게임이라도 해야지.적당히 알바하고 적당히 지내야지.이제 여자친구도 없고??평생 그런 느낌으로도 괜찮겠지 뭐라고 생각했다.개찰구를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간다.??? ???있잖아.어째서야??어째서 거기에 있는 거야? ㅋ얼마나 기다린거야? ㅋ지금 몇 시야ㅋ"선생니"미소를 띈 유우가 그곳에 있었다.29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13:58.62 ID:FYKxOUeCP 억지야??? 억지지만???(;ω;) 29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14:58.80 ID:VneAmMgQ0 왤케 착한 애야30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18:56.89 ID:4QDc0c6v0 "언제부터?""우연히"뻔한 거짓말."늦었으니깐, 집에 가""선생니, 기운 없어?""시끄러"일부러 고개를 가까이 가져가 말했다."안 시끄러워, 컥정이야"애한테 걱정 받을 정도로 약하지 않다.나는 무시하고 걸어가려고 했다.하지만 유우가 팔을 잡았다.뿌리치려고 해도 뿌리치려고 해도 안 놨다.짜증나."놔!""선생니은 아무것도 얘키 안 해주잖아!""얘기해도 안 들리잖아 ! !"이 때 제일 목소리 높여 말했다.31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22:02.42 ID:4QDc0c6v0 "알겠어? 난 니가 상상하는 사람이 아니야. 이른바 허물이야. 니가 더 훨씬 멋져. 귀가 안 들려도 들리는 사람하고 마찬가지. 아니 그 이상으로 눈부신 인생을 보내고 있어! 뭐야? 깔보고 있는 거야? 바보 취급하는 거야? 아아? 까불지마!"안 들린다는 걸 알면서도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될걸 입에 담았다.곤란해 하는 유우.알리가 없지. 이렇게 화내봤자 유우한테는 안 닿는다."바~보 ! 멍~청~이 ! 둔~팅~이! ! !"초등학생처럼 한 글자 한 글자 늘려서 말했다.나는 전봇대에 머리를 댔다.정말 최악이야. 최악??그 날은 내 눈물샘도 느슨했던 거지.3번째 자기혐오에 눈물이 났다.32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25:35.37 ID:4QDc0c6v0 "선생니, 못 됐어"놀랬다? 설마 들린거냐?동시에 내 등에 그녀의 손이 닿았다.등에 안기더니 안 비킨다."표정으로 알 수 있어"유우는 말을 계속했다."선생니은 좋은 냄새. 옛날부터 이 냄새 좋아"냄새? 담배 냄새겠지."선생니, 좋아. 정말 좋아"유우의 몸이 내 등에 밀착해왔다.33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27:22.28 ID:4QDc0c6v0 나는 돌아봤다.놀란 표정을 보였지만 다시 표정을 바꾼 유우"미안해요"왜 사과하는 거야.난 핸드폰을 꺼내 이렇게 쳤다.『좋아라니 어떤 의미야?』 말하자면 러브냐 라이크 어떤 거냐는 거지.유우도 핸드폰을 꺼내 친다.『선생님한테 여자친구가 있는 건 알아. 그래도 마음은 전해도 되잖아?』 『마음이라니?』 『선생님을 쭈욱 좋아했다고』 나는 유우를 봤다.유우는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겠다는 모습."미안해요"내 얼굴이 무서웠는지 또 사과했다.그게 엄청 귀여웠지.더 이상 무리였다.나도 유우를 무의식적으로 좋아했던 걸지도 모르겠다.그건 지금도 몰겠지만.나는 유우를 안았다.유우는 몸을 한 순간 떨었지만 유우의 손도 천천히내 등을 감았다."바보네, 유우짱은. 이런 허물을 좋아하게 되다니"안 들리다는 걸 알고 있으니"선생니"유우가 세게 나를 안았다."정말 좋아"나도 강하게 안았다.34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29:50.21 ID:4QDc0c6v0 유우도 대학생이 되서 4월 5월 시간이 흘렀다.하지만 작년처럼 구질구질하게 보내지 않았다.일단 일을찾으려고 했다.방도 깨끗하게 했다.담배나 도박도 끊었다.유우가 있었으니깐.그녀는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번역가에 대해서도 공부했다.항상 열심이고 긍정적인 그녀를 보고 있으니 나도착실히 하지 않으면이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됐다.조금 탈선하겠지만 실은 지금도 번역가는 못 됐어.요하자면, 역시 장애인이라 어렵다는 거지.하지만 난 응원하고 있어.특기인 그림을 살려 그림작가가 되면? 이라고도 추천하고 있어.암튼 지금도 유우는 긍정적, 포지티브야.35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31:49.61 ID:4QDc0c6v0 그리고 7월.1년에 몇 번 오는 부모님한테서의 전화.난 그 때 유우에 대해 얘기했다."이번에 갈 때 여자친구 데려가도 될까?""어머~ㅋ 물론이지ㅋ 어떤 애이려나~ㅋ""평범한 애야""회사 사람?"두근했지만 냉정을 가장한다."아니""사진 정도는 보내ㅋ"엄마는 나이와 달리 핸드폰을 잘 쓰셔서 자주 사진을 첨부한다ㅋ"나중에, 그리고 한 가지 알았으면 하는게 있어""뭔데?ㅋ""그녀는 귀가 안 들려""어?"한 순간에 텐션이 낮아지는 엄마.36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34:31.01 ID:4QDc0c6v0 "그렇다는 거야""병이야?""음""장애자라는 거야?""그 말 쓰지마""데려오지마""어?""엄마는 인정 못 해. 하필이면 장애자 같은 거랑??""잠깐, 말이 지나치잖아""암튼 집에는 데려오지마"내 귀를 의심했다.친엄마가 그런 말을 핟다니.물론 유우한테는 얘기 안 했다."다음에 부모님집에 안 갈래?"라고 물어봤을 때 기뻐했으니깐.36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37:07.46 ID:QvCrJmFG0 뭐야 한 고비 넘어 또 고비라니, 소설 같은 전개네. 37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37:49.38 ID:VCYzqKmS0 데려오지마 라니 부모가 할 말이야?너무 심하잖아??? 37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39:03.76 ID:1T7g+a7CO >>371 자식을 걱정하면 그리 이상하지 않은 대사이긴 하지.37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39:05.88 ID:strTKhqnO 왤케 드라마틱한 전개37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39:21.44 ID:4QDc0c6v0 그리고 8월 말??난 렌트카를 빌려 부모님 집에 가기로 했다.물론 유우를 데리고.일도 면접이 잘 되서 연락을 기다리게 됐다.그 흐름에 몸을 맡겨 그 날까지 몇 번이나 엄마를 설득했다.하지만 메일은 안 돌아온다.유우와의 사진도 보냈지만 답장이 없다.이대로 집에 가도 쫓겨날 뿐이겠지만 상관 없다.그 때는 직접 만나서 한 마디 해주마 라고 생각했다.유우하고의 약속이 우선이다.그리고 첫 드라이브라 유우도 만족했으니깐모든 것이 OK였다.하지만 부모님 집에 가까이 갈 때마다 긴장.마지막 휴게소에서 집에 전화해봤다.아빠가 받았다.38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0:39.40 ID:4QDc0c6v0 "엄마는?""있어""금방 그 쪽에 도착할거니깐""어? 그런 거 못 들었는데""말에 간다고 했잖아""그런가, (수화기를 잠시 두고)야~, >>1이 돌아온다는데~"누군가랑 얘기하고 있다."혼자야?""아니, 여자친구랑""여자친구랑 온다는데~"시끄러, 아빠ㅋ"그럼 조심해서 와"그러더니 끊겼다.그리고 집에 도착.초인종을 눌렀다.나온 것은 동생였다.38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2:19.26 ID:VneAmMgQ0 아빠가 구원의 손길이 되는거겠지39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3:10.92 ID:4QDc0c6v0 "여~""뭐야 여자친구 데려왔어ㅋ?"동생한테 유우는 인사했다."시끄러. 얼른 들여보내""알았으~"그리고 현관에 들어가니 아빠가 나타났다."오오, 집에 젊은 여자가 올 줄은 ! !"아빠 너무 들떴어ㅋ유우는 또 인사를 한다.구석에 엄마가 보고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여보 ! ! 여보 ! !"아빠가 엄마를 부른다.천천히 나오는 엄마."다녀왔습니다"엄마는 무표정인채로 아무말도 안 한다."여자친구인 유우짱입니다"현관에 서있는 가족한테 소개를 했다.39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4:39.75 ID:wLSPypbd0 그래도, 음 원래 시어머니랑 며느리는 잘 안 되는 법이니ㅋ처음부터 미움 받아도 살아갈 수는 있으니.39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5:23.28 ID:VneAmMgQ0 아빠 좋네39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5:54.52 ID:4QDc0c6v0 "처음 뵙겠습니다. 유우라고 합니다"계속 차 안에서 연습한 대사. "제대로 말했어?" 라고 몇 번이나 물었다.발음따위 신경 쓸 필요 없는데ㅋ"처음 뵙겠습니다. >>1의 아비입니다"왠지 번쩍!한 아빠ㅋ자중해라ㅋ그리고 "차 춘비할테니깐 들어와 들어와"라며 아빠랑 동생은거실에 들어간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 서있다.40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7:02.37 ID:GNkNWrlC0 아빠ㅋㅋㅋㅋㅋㅋㅋㅋ40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8:01.82 ID:ucRu+qAx0 아빠ㅋㅋㅋㅋㅋㅋ하지만 인상은 좋네ㅋㅋㅋㅋㅋㅋ40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8:41.01 ID:DzZ3krKh0 40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8:16.19 ID:54mko7teO 1 준비 안 해도 괜찮아?40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49:10.67 ID:4QDc0c6v0 자전거로 10분 거리니깐 괜찮아.쓰면서도 준비는 하고 있어ㅋ고마워.41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51:23.99 ID:4QDc0c6v0 "뭐냐고"나랑 엄마 사이의 분의기를 파악했는지 유우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그러자 엄마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수화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걸 수화로 말했다.좀.....난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 때만큼 엄마한테 사랑이 담긴 분노를 느낀 적은 없었다.유우의 표정도 만면의 미소였다.평소 내 앞에서는 정말 안 쓰는 수화를 엄마한테 보여줬다.『처음 뵙겠습니다. 유우라고 합니다. 실례합니다』 라고.신발을 벗고 올라간다."연습했어?"엄마한테 물어본다."알고 있었을 뿐"츤데레를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지났잖아ㅋ하지만 이런 엄마가 제일 좋다.42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52:37.29 ID:8ZVjQBoT0 엄마의 츤데레에 모에했어??? 부모가 좋은 사람이네42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52:38.59 ID:VneAmMgQ0 엄마, 브라보43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53:06.36 ID:56qdsGZX0 >>416 엄마(;∀;) 44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56:00.93 ID:u/Yt9AV50 하지만 엄마는 자식이 너무 힘들지 않게행복해졌으면 싶어서 그런 태도를취했던 거겠지44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56:00.92 ID:o5gp7EuV0 엄마 험담하던 녀석들 나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44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56:46.96 ID:KlNNrxdqi 첫 통화는 그래도 본심였겠지44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56:46.07 ID:cCq6StOgO 엄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당신이 날 울리잖아!44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55:58.67 ID:4QDc0c6v0 아빠도 동생도 처음에는 놀랬지만 금방 익숙해졌다.동생은 분위기를 파악 안 하고 "수화 가르쳐줘ㅋ"라고 하길래가르쳐줬다. 유우도 유우대로 간단한 수화를 가르쳐줬다.저녁을 먹고나니 동생은 방에 들어가고 아빠는 맥주를 마시면서TV를 보면서 자고 있었다.유우는 목욕하러 갔다."유우짱, 착한 애네""아아 당연하지""미안""신경쓰지마. 누구든 같은 반응하지""결혼 생각하고 있어?""갑자기 무슨 소리야ㅋ""너도 30 가깝잖아"이 때는 아직 20대 후반 돌입하자마자인데도ㅋ 45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7:58:37.03 ID:4QDc0c6v0 "지금은 30 지나서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많잖아""지탱해줄 수 있겠어?"사람 얘기 들으라고. 난 맥주캔을 테이블 위에 둔다."모르겠어??"그 때 목욕하고 나온 유우가 나타났다.엄마가 빌려준 잠옷을 입고 머리에 바스타올로 닦고 있다.목욕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나는 손짓으로 유우를 옆에 불렀다.그리고 옆에 앉는 유우바스타올 위로 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엄마, 전언철회야. 뭐가 어떻게 되든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엄마는 한 번 끄덕이더니 "목욕"이라고 하더니 사라졌다.유우는 ? 라는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내 얼굴을 본다."아무것도 아니야""응""좋았어?""기분 좋았어"이 미소를 잃기 싫다는 거지ㅋ46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00:37.74 ID:4QDc0c6v0 다음 날에 돌아가기로 했다.아직 대학생인 유우가 몇 일이나 쉬는게 신경 쓰였다.낮에는 나와 살짝 관광을 하고 돌아갔다.돌아가는 길은 지루하다.하지만 옆에 유우만 있다면 질릴 것도 없지."선생니, 행복하네"나는 운전하고 있으니 앞을 보고 있어야한다.그러니깐 가능한 크게 입을 열어 얘기했다.48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03:41.08 ID:4QDc0c6v0 "어째서?""멋진 가족""그런가?""응""유우의 엄마도 좋은 사람이잖아?""응"조금 무신경했다.아버지가 없는 유우. 형제가 없는 유우.『가족』이 부러웠던 거겠지."유우랑 만난 것도 행복 중 한 가지야"일부러 안 보이게 말했다."뭐라고?"대답하지 않고 나는 유우 머리를 쓰다듬었다.한손 운전였지만 상관 없다. 막히지도 않았고.아무말도 안 하고 쓰다듬었다.유우도 그 이상 아무말도 안 했다.한 동안 있으니 유우의 고개가 살짝 낮아진다.잠이 든 모양이다.나는 손을 치워 앞을 향했다.난 이 애를 행복하게 한다.반드시.49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09:17.27 ID:4QDc0c6v0 일은 멋지게 붙어 진정됐다.그리고 올해 3월 말.유우는 취직 못 하고 번역가의 길을 노리게 됐다.현실의 차가움을 느끼고 풀이 죽은 모양였지만 유우를데리고 산책하면서 꽃을 보고 있었다.맑고 화창한 날였다.그리고 유우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벤치에.활짝 핀 벚꽃이 이쁜 곳였다."선생니, 맛있어?""맛있어"무언으로 먹는다."자"오오, 꼭 등장하는 린츠ㅋ"고마워"포장을 뜯어 입에 넣는다.52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14:28.44 ID:4QDc0c6v0 "선생니, 벚꽃 이쁘네""그러게""선생니, 벚꽃 좋아해?""좋아해""나도"진지하게 벚꽃을 보는 유우의 옆모습.초등학생 시절하고 전혀 안 바뀐 그 사랑스러운 미소.봤을 때는 정말로 난청자로는 안 보인다.하지만 귀가 안 들릴뿐 이 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거지.작은 한 사람의 학생였던 애가 이렇게까지 성인으로 성장했다.나이때문인가ㅋ그녀의 옆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샘이 느슨해졌다.52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15:48.09 ID:4QDc0c6v0 "선생니?"유우가 내 눈물에 반응했다."선생니, 괜찮아?""미안, 미안"유우가 손수건을 내밀었다.눈물을 닦고 돌려준다.손수건을 받는 작은 손, 그 손을 잡았다."선생니?""결혼하자""네?""결혼하자"놀란 표정을 짓더니, 유우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처음 보는 유우의 눈물."유우?"설마 플래그 꺾였다 ? 라고 생각했다.우와, 너무 성급했나 라고.하지만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유우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53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17:19.41 ID:4QDc0c6v0 "선생니, 나 귀가 안 들리는데?"바보냐 라고 생각했다.이제와서 뭐냐고."상관 없어""선생니한테 폐 끼칠거야"갑자기 과거를 떠오른다.학원에서 마지막 수업"폐였죠?" 라고 말했던 걸 떠올린다."안 끼쳤어. 끼친 적 같은 건, 없어 ! !"나는 어미를 강조해 말했다."선생니, 괜찮겠어?"난 린츠의 포장을 꺼내 작게 말았다.그리고 유우의 손가락에 껴준다."반지"유우의 눈에서 또 눈물이 흐른다."결혼해주세요""응??앗"유우는 고개를 저었다."네"청개구리냐ㅋ벚꽃나무 밑에서 나는 그녀에게 프로포즈했다.54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19:16.90 ID:4QDc0c6v0 길어져서 죄송했습니다.이런 거 쓰면서도 엄청 긴장하고 있습니다.아직 연락이 안 와서 몇 시에 갈지는 모르겠지만.제대로 제 마음을 전하고자고 생각합니다.54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20:45.39 ID:wLSPypbd0 왠지 >>1은 아직 손을 안 댄 기분이 드는데ㅋㅋㅋ 54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21:03.95 ID:ctUWO4wgO 힘내라!얼굴도 모르는 친구의 행복을 빌어줄게!52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 :2009/06/04(木) 18:15:19.79 ID:wGkCOI0p0 지금도 유우는 >>1을 "선생니"라고 부르고 있어?슬슬 바꾸는 편이 좋지 않을까?56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23:56.15 ID:4QDc0c6v0 지금도 "선생니"라고 부르지ㅋ사람 앞이라면 부끄럽지만 오래동안 그렇게 불렀고,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 안 해ㅋ그리고 >>547처럼 아직??이야.1년 반 사귀면서도 부끄러운 이야기ㅋ그러니깐 이제 자식은 바지 안에 넣어둬ㅋ56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24:14.78 ID:HXR0dh21O 괜찮아 너라면.누구보다 그녀를 생각하는 너라면56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24:45.39 ID:54mko7teO 힘내!!! 응원할게57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25:53.52 ID:u/Yt9AV50 >>566 반대로 호감이 드는데소중히 해라!57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26:24.48 ID:4w4Y4tHHO >>566 보고 뒤에도 스레 세울거지?결과야 알고 있지만57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25:13.56 ID:Uk7T/UV+0 솔직히 "선생니"가 더 두근거리겠지만, 애 태어나면 바꾸는 편이 좋을 지도ㅋ58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27:09.33 ID:4QDc0c6v0 쓰면서도 긴장 푸려고 하고 있지만??안 돼 안 돼 안 돼?? >>570 그치ㅋ60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30:29.26 ID:KwMfFz3C0 >>1은 반드시 OK 받을 거야! 행복해져라63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36:59.82 ID:4QDc0c6v0 7시군.갑자기군, 이봐.갔다올게.심호흡?? 64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37:37.99 ID:k5Jwtlun0 >>636 힘내주세요꼭 행복하게 되주세요64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18:38:22.33 ID:1rOf0Xz+0 >>636 행운을 빈다!5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3:39.61 ID:4QDc0c6v0 다녀왔습니다.10시 지나서 돌아왔지만 조금 정리하느라 늦어졌어.보고합니다.5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4:06.80 ID:6yJQlsQw0 >>51 왔다~5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4:13.89 ID:XsLSS+9y0 >>51 어서와5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4:14.22 ID:yW2azvO20 >>1 어서와!5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4:19.12 ID:z9DI4CH/O 어서와! 6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4:54.67 ID:4QDc0c6v0 자전거가 펑크난걸 까먹고 있었어.엄청 당황해서 달렸어.도착한 건 7시 15분 쯤.아파트 앞에서 유우가 기다리고 있었어."선생니"난 양손을 합장해서 사과한다.유우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가자"그렇게 듣고 집으로 들어갔다.거실 테이블에는 이미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유우는 내가 오늘 뭘 위해 여기에 올지 엄마한테 말했겠지.그런 의문을 기다리면서 식사했다.상상할 수 있겠지만 식사 중은 조용.대화하면서 먹는다는 건 꽤 어렵다.음, 가끔 말을 하긴 했지만.그것보다 긴장이 장난 아녔다.언제 말하지. 지금인가? 아니야??지금인가? 아직 아니잖아.의 반복.그러다가 식사가 끝났다.7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6:41.66 ID:4QDc0c6v0 정리는 같이 했다.">>1씨는 앉아 있어"라고 했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인다.좋은 인상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갖게 하지 않으면복잡해질 것 같았다ㅋ 정리한 테이블에 홍차와 유리그릇에린츠가 가득ㅋ 모녀가 좋아하는 모양입니다ㅋ유우는 그 중에서도 화이트만 먹는다.이게 디폴트. 좋아, 귀여워.그리고 침묵.유우가 힐끔힐끔하며 나를 본다.지금 아니면 없지 라고 생각했다."어머니"어머니는 ? 표정을 지으며 나를 봤다.난 의자에서 내려 정좌를 했다.그러자 부르지도 않았는데 유우도 내 옆에 정좌했다."할 말이 있습니다"유우의 어머니도 간파했는지 컵을 내리시더니 우리들 앞에 정좌했다.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쿨한 광경.하지만 그 때는 긴장 MAX.7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7:43.41 ID:4QDc0c6v0 "유우씨와 교제를 허락받아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도 지금 일을 순조롭게 지내고 있습니다."더듬지 말고??더듬지 말자??라고 마음을 진정시킨다."지금의 저라면 유우씨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니깐, 유우씨를 앞으로도 제일 소중하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저한테 유우씨를 주세요"주세라요 라고 말해버렸다??라고 생각하면서 바닥에 고개를 붙였다.유우도 또 마찬가지로 바닥에 고개를 댄다.내 말은 몰라도 동작으로 판단했겠지.몇 초간의 침묵.">>1씨, 고개를 들어주세요"난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들어올린다.어째서인지 흐릿한 표정.그리고 한숨을 쉬시고 이렇게 말했다."저는 후회하고 있습니다??"7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8:20.59 ID:lPyfqd1h0 어???? 8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8:35.73 ID:8ZVjQBoT0 어? 후회?8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39:08.54 ID:4QDc0c6v0 피가 식는 소리가 들렸다.이봐이봐?? 99퍼센트 즉답 OK라고 생각했다고.자만하면 안 되는 군??역시.엄마는 말을 계속하셨다."저는 후회하고 있습니다. >>1씨 같은 분의 동반자가 제 딸이라는 것을""네?""더 멋진 여성이 있습니다. 딸은 장애자. 그리고 계속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고도 그녀의 입으로 들었습니다"어머니 입에서 "장애자" 라 고 ?귀를 의심했지만 조용히 듣는다.8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0:22.51 ID:4QDc0c6v0 "자신을 얽누르고 있지 않으십니까? 무슨 이상한 사명감에 빠져 딸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건 아닙니까?"이런 어머니였나?"그렇다고 하면 저는 후회해도 어쩔 수 없군요. 당신의 인생을 망쳐버렸다고"무슨 소릴하는 거야?나는 조금 화가 나기 시작했다."어떻습니까?"나는 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 옆의 유우를 봤다.안 들려서 유우는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렇지 않아.걱정하지마.난 마음으로부터 유우랑 결혼하고 싶어.8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0:57.45 ID:J8EV4klZ0 나도 유우랑 결혼하고 싶어.9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1:18.26 ID:ClwqUQNYP 엄마??(;ω;) 9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1:19.92 ID:4QDc0c6v0 "어머니, 당신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전부 피해망상입니다. 제 마음에 거짓 하나 일절 없습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여기서 어머니가 거절하셔더 몇 번이나 부탁하러 오겠습니다"난 어머니의 눈을 보고 말했다."저한테 있어서 유우씨는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여성입니다. 이렇게도 멋진 여자로 기르신 어머니를 저는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후회하지 말아주세요"그러자 어머니는 눈을 돌리더니 고개를 돌리셨다.몸이 떨리고 계셨다.유우가 바로 어머니 곁에 다가간다."괜찮아"라고 유우한테 말하고 나를 보셨다."미안해요"어머니는 자세를 고치셨다."제 딸을 장애자라니 처음으로 말해버렸습니다??""???"">>1씨의 본성을 듣고 싶어서. 죄송합니다??"그런 건가.9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2:31.51 ID:4QDc0c6v0 안심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굳었던 내 표정을 풀 수가 있었다."어머니, 전 몹쓸 인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유우씨만은 행복하게 하겠습니다. 어떻게든 지켜봐주세요"어머니는 눈물때문에 목소리 조차 안 나와 끄덕이셨다.유우가 곤란한 미소를 보여주면서 다시 내 옆에 앉았다."엄마"어머니가 유우를 향한다.9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3:31.54 ID:4QDc0c6v0 "나를 낳아줘서 고마워. 나를 키워주셔서 고마워. 앞으로도 자주 고마워를 말하게 해주세요"유우는 내 손을 잡았다."앞으로는 ○○씨랑 같이 인사 드리러 올게요"내 이름이 유우 입에서 나오는 건 오랜만였다.나도 강하게 손을 잡았다."어머니, 부탁입니다"바닥에 소리가 날 정도로 머리를 바닥에 댔다."유우를 부탁합니다"울고 계신 어머니의 목소리에나도 울 것 같았다.10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4:55.74 ID:FMb8c8yh0 지금, 내 눈물샘이 완전히 붕괴했어일단 >>1 어서와10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5:35.41 ID:4QDc0c6v0 귀가.유우는 1층까지 배웅해줬다."선생니, 오늘은 고마워""나야말로"그럼이라고 말하고 가려고 했을 때였다.그러자 "잠깐만"이라는 소리가"선생니, 기억나?"유우는 청바지 안에서 사진을 꺼냈다.조금은 색이 바랬지만 학원에서 찍었던 거다.사진 속의 두 사람은 "어렸다""보물이야"유우가 웃는다.난 유우를 안았다.그녀랑 만나 긴 시간이 지났다.바뀐건 나이인가.정도나 종류는 다르지만 그녀를 사랑스럽다고여긴 마음은 학원 때부터 변하지 않았다.난 유우가 정말 좋습니다.절대로 울리거나 하지 않겠습니다.VIP의 모두들??긴 시간 감사합니다.10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5:37.47 ID:fzZ3LXewO 가족 앞에서 울고 있는 내가 있다11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6:04.28 ID:/nkhiFMpO (´;ω;`)눈물이 안 멈춰11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6:07.49 ID:Bv33q0TBi ,r=''""???li, _,?r=====??,,_ ,r!' ...::;il! ,r!'??´ `'?;?, ..::::;r!'? ,i{??'_,,_ :l}..::;r!? . ,r!'?´ ´-???==?;;;:.... :;l!:;r? ,r?? `~''=;;:;il!::'li . ill? .... .:;ll:::: ?li ..il' ' ' '??===?;;;;;;;:.... .;;il!:: ,il! ..ll `"?''l{::: ,,;r'? ..'l! . . . . . . ::l}::;rll(, 'i, ' ' -=====??《:::il::??;? ?i? ::li:il:: ?'\. ?li? ..........,,ノ;i!:.... `' ? ¶ `'=?:::::;;?:?===''シ??'==-??,,,__ ` '('A`) 굿잡 `~''''===''"?´ ~`'' ?==l ? 11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6:21.80 ID:BEx+7DhB0 계속 조용히 보고 있었지만 안 되겠다, 눈물샘붕괴11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6:56.96 ID:wNXbfPj40 오랜만에 울었어.축하해, 그리고 행복하길!12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7:04.02 ID:H+uz2vbaO 예쁜 웨딩드레스 입혀야된다12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7:11.08 ID:QsG3fqStO 행복하게 해줘야된다!!123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7:11.32 ID:504bCKRT0 좋은 얘기였어절대로 소중히 해라!!! 126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7:23.81 ID:QIfx9e1S0 >>108 두 사람의 미래에 행복이 있기를!! 12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7:24.81 ID:4FiAHEc/O 화면이 흐려졌어;ω;) 128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7:29.75 ID:2TXWfLg9O 전차 안에서 울고 있는 나 토나와ㅋㅋㅋㅋㅋㅋㅋㅋㅋ129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7:37.91 ID:ClwqUQNYP >>108 행복하길!130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7:42.29 ID:2GBIeGwAO 이런 좋은 스레를 핀거에 감사하면서 >>1 축하해131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47:43.69 ID:J8EV4klZ0 / ̄ ̄ ̄フ\ _ ?^) // ̄フ / \ .//\ ./ / // ∠/ ___\___ __// \ / (___ // ̄ ̄ ̄フ /_ .//_ //_ / \./ (_(__) // ̄フ / ̄//////////// | (_(__) /∠_/./ ./∠///∠///∠// ∧ ∧ /) (_(__) ∠___,,,__/ .∠__/∠__/∠__/ (´?` ( ( (_(___) \ \ \/ ̄ ̄ ̄フ\ \ \_ \ _ /⌒ `´ 人___ソ \ \ \フ / ̄\ \ .//\ //\ / 人 l ?? \ \ _ \//___\/∠_ // < Y ? ? (. \ //\///_ //_ /// 人├'" ? ̄ ̄ ̄ ̄ ̄ // //.////////∠/ ?-i ?__ ? /∠_//./∠///∠// .\\ `?? ? |\ ? ∠____/.∠__/∠__/∠フ\.\\ c;_,;....? ???__? 197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2:57:18.04 ID:4QDc0c6v0 다들 고마워.정말은 전 스레에 다 쓰고 싶었지만 의외로 시간이 흘러서.정말로 마음이 시원해.마음만ㅋㅋ252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3:10:20.74 ID:4QDc0c6v0 제 리스는 이걸로 끝입니다.난청자라는 것도 여러가지 있는 건 사실이야.발음이 가능한 유우는 나은 편인거지.그래도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위화감,그 이상으로 불쾌감을 보인 사람도 있어.하지만 뭔가를 전하자는 마음은 아무나 갖고 있어.입이 아니라면 눈, 손, 몸??어떤 거로도 전할 수 있어.방법이 아니라 뭘 전하냐 라는 걸 유우랑 만나 깨달았어.이 vip라는 것도 그런 거야.여러가지 생각이 있다는 거지.라고 잘난 척을 여기서도ㅋ정리 사이트나 영화화라든지 말하지만난 아무말 안 할거야.vip에 기재한 시점에서 아무말도 할 수 없지.음, 만일에 영화화 되면 몰래 보러 가겠지만ㅋ하지만 절대로 유우를『장애자』로 가리키지 말아줘.유우는 유우야.그럼, 정말로 안녕. ノシ 254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3:10:52.27 ID:kJ3VV36+0 행복하길285 :이하, 무명을 대신해 VIP가 보내드립니다[]:2009/06/04(木) 23:17:36.70 ID:5wS0ifGC0 축하해. 둘 다, 행복하길----------------------------------------------------------------------------그리고 이 내용을 그린 네이버 신작웹툰 HO.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38994&no=2&weekday=sun
여을멸작성일
2014-11-0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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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아시안게임 메달 순위, 한국 일본에 금메달 6개 앞서~
한국, 일본에 금메달 6개 앞서 현재 2위 질주!구본길, 김정환, 오은석, 원우영 24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회동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이란을 꺾고 우승 -!여자 펜싱 플뢰레 단체팀 역시 이 부문에서 금메달 획득하며 아시안게임 5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또한, 남자 사격 25m 속사권총 단체전과 개인전, 여자사격 50m 소총 복사 단체전 등 사격에서만 금메달 3개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럼 오늘 경기 어떤것이 있을지 알아볼까요? ◆25일(수)△양궁= 컴파운드 남자 단체 16강·8강전(9시30분) 컴파운드 여자 팀 16강·8강전 (9시30분) 컴파운드 남녀 개인 32∼8강전(10시40분·이상 계양아시아드 양궁경기장)△야구= 조별예선 한국-홍콩(18시30분·목동야구장)△배드민턴= 남녀 개인전(9시30분·계양체육관)△농구= 남자 본선 한국-요르단(18시30분·삼산월드체육관)△비치발리볼= 남녀 16강전(9시·송도글로벌대학 비치발리볼장) △볼링= 남자 2인조 스쿼드 A(9시) 남자 2인조 스쿼드 B(14시30분·이상 안양호계체육관)△사이클= 남자 경륜(10시) 여자 옴니엄 500m 타임트라이얼(10시24분) 여자 스프린트 4강·결승전(16시) 여자 옴니엄 플라잉랩 250m 타임트라이얼(16시6분) 여자 옴니엄 25km 포인트 레이스(16시57분·이상 인천국제벨로드롬)△승마= 종합마술 개인전 크로스컨트리(9시) 종합마술 단체전 크로스컨트리(9시·이상 드림파크승마장)△축구= 남자 16강전 한국-홍콩(20시·고양종합운동장)△펜싱= 여자 에뻬 단체전(9시) 남자 플러레 단체전(12시30분·이상 고양체육관)△체조= 남녀 개인전 결승(19시·남동체육관)△골프= 남녀 개인전 라운드(7시20분) 남녀 단체전 라운드(7시20분·이상 드림파크컨트리클럽)△핸드볼= 남자 본선 한국-이란(16시·선학핸드볼경기장)△하키= 남자 예선 한국-말레이시아(19시·선학하키경기장)△조정= 남녀 개인전 결승(10시·충주 탄금호 조정경기장)△요트= 남자 딩기420레이스 레이저레이스 미스트랄레이스 RS:X레이스 옵티미스트레이스(11시·왕산 요트경기장) 여자 딩기420레이스 29er RS:One레이스 RS:X레이스 옵티미스트레이스 레이저레이디얼(11시·왕산 요트경기장) 오픈 호비-16레이스(11시·왕산 요트경기장)△세팍타크로= 남자 단체 예선 한국-인도(9시) 여자 단체 예선 한국-인도(14시30분·이상 부천체육관)△사격= 남자 50m 소총복사 본선(9시) 남자 단체 50m 소총복사 결승(9시) 남자 25m 스탠다드 권총(9시) 남자 단체 25m 스탠다드 권총 결승(9시) 남자 10m 러닝타겟 본선(9시) 남자 단체 10m 러닝타겟 결승(9시) 남자 50m 소총복사 결승(11시30분) 남자 10m 러닝타겟 준결승·결승(14시30분·이상 옥련국제사격장) 남자 더블트랩 본선(9시) 남자 단체 더블트랩 결승(9시) 여자 더블 트랩 결승(9시) 여자 단체 더블 트랩 결승(9시) 남자 더블트랩 준결승·결승(14시30분·이상 경기도 종합사격장) △스쿼시= 예선 A조 경기(10시·열우물스쿼시장)△수영= 남자 접영50m·자유형100m·배영200m 예선, 여자 평영50m·자유형800m 슬로우 히트·혼계영 4X100 예선(9시) 남자 접영50m·자유형100m·배영200m 결승, 여자 평영50m·자유형 800m 패스트 히트·혼계영 4X100 결승(19시·문학박태환수영장)△테니스= 남녀 단·복식, 혼합복식(10시30분·열우물테니스경기장)△트라이애슬론= 여자 결승(10시) 남자 결승(14시·이상 송도센트럴공원트라이애슬론장)△배구= 여자 예선 한국-일본(19시30분·안산상록수체육관)△역도= 여자 75㎏ A그룹(16시) 남자 94㎏ A그룹(19시·송도 23호 근린공원)△수구= 남자 예선 한국-카자흐스탄(19시·드림파크수영장)야구야구!!! 직접 가서 보고싶다 ㅠㅠ다그닥 다그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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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2CH] 하루미의 말로 (펌)
헤헤헤, 안녕하세요. 역시나 여러분은 무서운 이야기를 찾고 있으시군요. 오늘은 공교롭게도 날씨가 안 좋군요. 그 때도 딱 오늘처럼 흐린 날이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제 이야기를 꺼내 놔서. 네? 듣고 싶어요? 그런 말 아무도 안 했다구요? 하하, 미안합니다, 실은 저도 매일 괴로워서. 솔직히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든 털어 놓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요. 그러면, 잠깐 시간 때우기로라도 좋으니 읽어 주세요. 헤헤헤... 이제 벌써 10년 정도 전 일이군요. 당시 나는 어떤 지방의 다 망해가는 나이트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가게 점원인 여자아이 한 명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습니다. 뭐, 흔한 이야기죠, 헤헤헤. 아파트에서 동거하게 되었어요. 나이트 마담도, 다른 종업원들도 다들 그러려니 했었죠. 아무튼 다른 사람 신경 쓸 것 없이 맘 편히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 일단 하루미라고 해 둘까요. 하루미는 꽤 도박광이었습니다. 파칭코, 경마, 경정, 경륜, 포커, 마작, 뭐든 환영이었죠. 이게 이기는 쪽이면 좋은 일이겠지만, 허구한날 졌습니다. 도박에도 재능은 따로 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금새 빚쟁이가 되어 버렸죠.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일을 하며 조금씩 갚아가고 있었어요. 네? 저는 어쨌냐구요? 저는 도박 따윈 하지 않아요. 그렇게 이길지 질지 모를 일에 큰 돈을 턱턱 갖다 댈 수 있을리가요. 의외로 견실하답니다, 헤헤헤. ...이야기를 계속 해 볼까요. 동거하기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날 무렵이었을까요. 드디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말았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진 하루미는, 빌려서는 안 되는 돈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뭐, 야쿠자라는 놈들이죠. 어느밤 아파트에 둘이서 있는데, 왠 남자 둘이 찾아왔습니다. 보기만 해도 딱 야쿠자였어요. 그 다음 일은 다들 아시겠지요? TV나 영화에서 자주 본 것과 똑같아요. 우스울 정도로 똑같다니까요. [돈을 못 갚으면 몸 팔아서라도 때우셔야지.] 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하지만 하루미는 [1주일만, 한 달만 기다려주세요.] 라고 질질 미루면서 계속 일했습니다. 네? 저요? 저는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야쿠자라구요. 말려드는 것은 딱 질색입니다. 네? 동거를 할 정도면서 그런 정도 없냐구요? 하하,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정작 저같은 꼴에 놓이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어느밤, 평소처럼 아파트에 똘마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어째 뭔가 좀 달랐어요. 간부라고 하나요? 으리으리한 분이 찾아오셔서 말이죠. 잠깐 하루미와 이야기를 하더니, 성큼성큼 제 쪽으로 다가와서 [네가 저 녀석의 남자냐?] 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아닙니다.] 라고 대답할 수는 없잖아요. 맞다고 인정하자, [넌 저 녀석의 빚을 대신 내 줄 수 있냐?] 라고 묻습니다. 그럴리 없죠. 그 무렵에는 이미 빚이 천만엔 가까이 불어나 있었기에, 당연히 무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아, 지금 생각해 보니 키타무라 카즈키를 닮은 꽤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아, 헤헤헤, 죄송합니다. 이야기를 계속할게요. 그 남자가 [그럼 이 여자는 우리가 데려간다.] 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이미 체념한 후였습니다. 나에게 해만 없으면 부디 마음대로 하라고 했죠. 네? 악마 같은 쓰레기 새끼라구요? 하하, 지당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물장사라는 건 감정을 없애지 않고는 해 나갈 수 없는 일입니다. 하루미에게 잔뜩 반해 있을 무렵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 즈음에는 몸 빼고는 흥미가 없었으니까요. 네? 역시 쓰레기라구요? 하하, 뭐 어쩌겠습니까. 그러는 와중에, 남자가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자에 관해 앞으로 어떤 소리도 안 할 맹세를 할 수 있으면, 이 돈을 받아.] 그렇게 말하며 내게 두툼한 갈색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딱 백만엔 들어 있었어요. 그렇지만 기분 나쁘지 않습니까, 야쿠자에게 돈을 받다니. 혹여나 나중에 백만엔에 이자까지 붙여 받아먹는 건 아닐까 싶어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간부의 일행 중 똘마니 하나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나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간부가 [이 돈 안 받으면 죽여버린다.] 라고 말합니다. 왜 내가 이런 꼴이 됐나 싶어 하면서, 마지못해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만약 나중에라도 오늘 일을 입 밖에 낸 게 알려지면, 네가 세상 어디 있던 찾아 죽여 버릴 거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나는 막연하게나마, 하루미는 그냥 홍등가가 아니라 다른 곳에 끌려가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더 잔혹한 곳에요. 하루미는 옷 약간과 이것저것들을 챙겨 여행가방에 넣고, 그대로 끌려갔습니다. 이별할 때도 제 쪽은 보지 않고 총총 가버렸어요. 상당히 다부진 여자랍니다. 혼자 남겨진 아파트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내일이라도 나이트는 그만 두고 어딘가에 이사 갈 생각이었어요. 기분 나쁘잖아요. 야쿠자에게 알려진 아파트라니. 문득 하루미가 쓰던 화장대에 눈이 갔습니다. 그 위에는 리본이 달린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열어보니 이전부터 내가 갖고 싶어했던 시계였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다음날은 내 생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이런 나래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하루미에게 반해 있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네? 그래서 야쿠자 사무실에 하루미를 찾으러 갔냐구요? 하하하, 영화가 아니에요, 이건. 현실의, 보잘 것 없는 남자인 제 이야기라구요. 다음날 바로 나이트를 그만둔 나는, 백만엔을 이사 자금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가능한 한 멀리 가고 싶었기에, 당시 내가 살고 있던 명란젓이 유명한 도시에서 눈축제로 유명한 도시까지 이동했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으니까요. 살 곳도 정해졌으니, 다음은 취직이 문제입니다. 이제 물장사는 지긋지긋해서 뭐 할 만한 일 없나 찾고 있자니, 저녁형 인간인 나한테 딱 맞는 야간 경비 일이 있었습니다 면접을 보고 채용이 되서, 나는 거기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10년. 싫증을 잘 내는 나에겐 드물게도, 같은 직장에서 계속 일했습니다. 네? 하루미에 관한 거요? 가끔씩은 생각했습니다. 그 시계는 계속 차고 있었어요. 북쪽으로 온 뒤 새 여자가 생기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면서, 그 나름대로 즐겁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평범하게 살았어요. 저, 이렇게 보여도 가끔씩은 카와사키 마요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구요. 네? 아무도 안 물어봤다구요? 캬바레 아가씨가 아첨한 거라구요? 하하, 실례, 실례. 아무튼 한 달 정도 전 일입니다. 동료인 M이 [굉장한 비디오가 있어.] 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어차피 불법 야동이나 뭐 그런 비슷한 것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녀석에게 몇 번 비슷한 걸 빌려 본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M은 [스너프 비디오라고 알고 있냐?] 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꽤 인터넷에서 빈둥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 일 없을 때는 종종 둘러보곤 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지식 정도는 있었습니다. 해외 사이트 같은 곳은 대단하죠? 실제 사고 영상이라던가, 시체를 찍은 영상 같은 거 말이에요. 그러더니 M은 [어느 선에서 손이 닿아서, 오늘 받아왔어. 같이 안 볼래?] 라고 물었습니다. 새벽 3시쯤 된 휴식 시간이었으니까요. 아무튼 시간 때우기 정도는 될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그것을 보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페이크일 것이라는 생각이었으니까요. 비디오를 덱에 넣고, M이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젊은 전라의 여성이, 넓은 우리 안에 가로로 눕혀져 있었습니다. 머리카락도 음모도, 모두 반들반들하게 깎여 있었습니다. 약 같은 것을 써서 움직일 수 없는지, 끊임없이 눈알만 격렬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하루미였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움직일 수 없었어요. 이윽고 우리 안에 거대한 아나콘다가 넣어졌습니다. 무언가 굵은 튜브 같은 걸 통해 내려왔습니다. 거짓말 안 보태고 10m 이상은 되지 않나 싶었어요. 그것은 천천히 하루미에게 다가갑니다. M은 [대단하지?] 라며 자랑스러운 듯 제 얼굴을 슬쩍슬쩍 곁눈질로 바라봅니다. 뱀은 서서히 큰 몸뚱아리를 펼쳐, 하루미의 몸에 감기 시작했습니다. 성대나 혀마저 무슨 수를 썼는지, 하루미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습니다. 우두둑 우두둑하고, 야채 줄기를 2개 한 번에 꺾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하루미의 몸이 흐물흐물하게, 마치 연체동물처럼 변해갑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요. 그것은 큰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미의 반들반들한 머리를 삼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부터가 엄청 길더라구.] 라며 M은 빨리 감기를 눌렀습니다. 뱀은 하루미의 머리 부분을 삼키더니, 입을 더욱 벌려 이번에는 어깨를 삼키기 시작했습니다. 몸통에 다다르자 테이프가 끝났습니다. [이 뒤로 테이프가 2개 더 있어.] 라고 M이 말했습니다. [이제 됐어.] 라고 말한 뒤, 나는 도망치듯 빌딩을 순찰하러 나갔습니다. 그 후로는 언제나 같은 꿈을 꿉니다. 하루미의 얼굴을 한 큰 뱀이 나를 휘감고, 단단히 조여 옵니다. 그리고 온 몸의 뼈가 부스러진 뒤, 머리부터 하루미에게 삼켜집니다. 굉장한 격통이 온 몸에 가득하지만, 외려 이것이 왠지 말할 수 없는 쾌감이 됩니다. 하루미의 배 안에서 천천히 녹아들면서, 나는 마치 어머니의 뱃속으로 돌아온 것 같은 안도감마저 느껴요. 네? 그 비디오는 어떻게 했냐구요? M에게서 내가 사 들였습니다 그야말로 몇달치 월급 수준의 거금을 몽땅 털어넣어서요. 3개 모두 보고 조금 운 뒤, 나는 모든 비디오를 깨부셨습니다. 그 후로 심야에 일을 하고 있으면, 하루미를 느끼게 됩니다. 빌딩 안을 혼자 순찰하고 있잖아요? 그러며 뒤에서 철벅철벅 발소리가 들려와요. 되돌아 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걷기 시작하면, 다시 젖은 걸레가 바닥에 달라붙듯 철벅철벅. 하루미인가 싶지만,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요. 느껴지는 것은 낌새와 발소리 뿐. 그런 일이 며칠째 계속 되다보니, 역시 정신적으로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휴가를 내서 쉬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3일 전이었습니다. 드디어 하루미가 나타났어요. 한밤 중에 집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흰 연기 같은 게 눈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담배 연기인가 싶었는데,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연기가 흔들흔들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미였습니다. 이미 녹아내리고, 뼈가 부서진 몸을 마리오네트처럼 흔들며, 아직 남아 있는 한 쪽 눈알로 나를 바라봤습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지만, 혀가 없는 것인지, 성대가 망가진 것인지, 소리 없이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요. 어느새 하루미는 사라진 후였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실금과 탈분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더러운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 다음날 밤도 하루미는 찾아왔습니다. 어느새 나는 말이죠, 하루미에게 저주 받아 살해당해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싶어졌었어요. 그래서 하루미가 다시 나타나는 걸 내심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역시 그 날도 하루미는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달려갔습니다. [뭘 말하고 싶니? 나는 어떻게 하면 될까? 시계, 시계, 시계 고마워, 그 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시계는 소중히 가지고 있어, 시계는, 시계는.] 반쯤 정신을 놓고, 나는 계속 외쳤습니다. 그러자 하루미는 접힌 목을 갸륵하게도 제 쪽에 내밀더니 말했습니다. 끊기고 끊긴 희미한 목소리 속에서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었어.] 오늘도 밤이 옵니다. ---------------------------------------------------------------------------------------------------------------------공게에는 게시물을 처음 올려봅니다.
야미가드작성일
2014-09-1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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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현대조선)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나의 마지막 꿈은 바다 밑에 공원묘지 만드는 것”
“김정일은 기분 좋게 해주고 뭘 달라는데, 여기서는 시원찮은 것들(국회의원)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4주기가 지났다. 나는 정 명예회장을 2001년 작고할 때까지 10여 차례나 만났다. 방송작품 집필 때문에 회고가 필요하다면 그는 최대한 시간을 내줬다. 이렇게 해서 총 10시간 분량의 테이프가 현재 남아 있다. 이를 요약해 정리해 본다.
정 명예회장은 1998년 북한을 다녀온 뒤 인터뷰를 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있었던 일화를 공개하면서 두 시간이 넘도록 아랫배가 아플 정도로 웃겼다. 정 명예회장의 성음(聲音)은 상당히 독특하다. 목소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에도 흉내 내기가 고생스러울 정도로 특이한 리듬이 있다. 대화를 스스로 풀어주는 부사인 ‘일테면’은 특허처럼 들어간다. 아마 ‘거… 저… 일테면…’하면서 더듬거릴 때면 정 명예회장은 뭔가를 번개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김 위원장이) 나보고 정주영 ‘회장선생님’이라고 하면서 회장 밑에 선생님이라는 쟁반 하나 더 받쳐서 불러줬거든. 기념사진 찍을 때도 연장자라고 내가 가운데 서야 한다고 말이야. 그래놓고는 나한테 발전소를 지어주고, 중유 좀 달래, 하하항. 그래도 뭐 여기서는 ‘5공 청문회’할 때 시원찮은 것들(국회의원들을 지칭)이 막 그냥 증인 어쩌고 하면서 손가락질까지 하며 대들고 그랬는데.
북한에선 나를 기분 좋게 해줘 놓고 발전소를 지어달라 하고 기름을 좀 달래니까 밉지는 않잖아! 그러고는 나한테 ‘회장선생님은 어째 그리 정력적이시냐고’하며 아주 부러워하는 거야. 그래서 그랬지. 나는 손만 잡아도 아기가 생길 정도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김 위원장이 ‘백두산 정기가 몽땅 회장선생님한테 다 갔구먼 기래요!’ 이러는 거야 하하항. 자기(김 위원장)는 시원찮대 요즘. 하하항.”
정 명예회장은 인터뷰 도중에 유언과도 같은 말을 종종 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절대 화장을 못 하게 할 거야”라고 말했다. 자신이 평생 하지 않았던 사업과 앞으로 국가를 위해 꼭 해야 될 사업 등을 말했다. 자신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면서 평생 주례를 서지 않은 이유도 말했다.
이런 말들은 이제 모두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는 평생토록 하지 않았던 사업이 세 가지 있다고 밝혔다.
첫째, 목축업이었다. 현대그룹 내부에서도 한때 목축업을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목축업 사업계획서를 받아보고는 휙 던져 버렸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생리적으로 살생을 거부한다고 했다.
소를 키우다가 팔게 되면 도살장으로 보내는 셈이 되니까 결국 살생을 하는 사업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정 명예회장에겐 서산목장이 있었다. 하지만 결코 사업적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는 소를 길러 식용으로 판 적이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둘째, 농민에게 고통을 주거나 걱정을 끼치는 사업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것은 비료공장이었다. 그래서 현대그룹은 비료공장을 갖지 않았다. 그는 “건국 후 지금까지 오르기만 했지 한 번도 내린 적이 없었던 비료 값을 생각하면서 비료공장 건설 추진 자체를 막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솔직하게 “비료공장을 짓고도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경쟁하기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원가에 비료를 공급하게 될 테니 기존 사업자들과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였다. 그는 “내가 그 사업을 하면 결국 도산하는 업체가 나올 것이 뻔해 비료공장 생각을 접었다”고 했다.
정 명예회장은 가족사를 얘기할 때 항상 부탁하는 말이 있었다. 부친에 대해서는 ‘일등 농사꾼’으로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언제나 부친을 자랑하는 걸 잊지 않았다.
한번은 인터뷰 중 서산농장 이야기를 했다.
“서산농장이 완전하게 조성되면 조그맣게 아버지 동상을 세우려고 해요. 일등 농사꾼이셨던 아버지에게 헌납식을 하려고 그래요. 평생 농사만 지으셨죠. 그 많은 논과 밭을 일구시면서 한 번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농사를 지어 동생들과 자식들을 다 키우셨지요. 그래서 서산농장을 하늘에서도 풍족하게 바라보시면서 지내시라고 아버지께 헌납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마지막 셋째는 장의차를 만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그는 특별히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우리는 안 만들어요”라고 했다.
특히 정 명예회장은 인터뷰 때마다 국가를 위해서도 꼭 해야겠다며 마지막까지 집념을 보였던 사업이 있었다. 바로 거대한 ‘해저(海底) 가족공원묘지’ 건설이었다.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을 위해서는 해금강에 해저 공원묘지를 건설하는 방안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 사업은 즉흥적으로 구상한 게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고 했다. 그는 “세계 각국의 해저 시설을 살피고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많은 자문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유훈이 됐다. 다음은 정 명예회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회장님은 사후에 화장(火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떤 철학에서 나온 생각이십니까?
“회장 다음은 화장인가? 하하항…. 물론 나는 화장을 원하지 않지요. 일테면 인간은 자연에서 나왔으니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화장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없애는 거다 해서 난 좋아하지 않아요.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화장해 처리하는 것은 좋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땅에 묻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살과 뼈는 전부 흙이 되어버리니까 말이지요.”(그렇다면 해저 가족공원묘지 건설 구상과는 다르지 않으냐고 했더니 ‘사람에 따라 화장을 원하는 사람이 있지 않으냐’는 말로 일축했다.)
며느리를 볼 때 특별한 합격 기준이 있었나요.
“그런 것 없어요. 나는 회사 일이든 뭐든 치밀하게 관여하는데, 아들들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를 안 합니다. 왜냐하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결혼이거든요. 따라서 부모가 선정해 줘서 피차 의견이 잘 안 맞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부모의 책임이 너무 크지 않겠어요? 그래서 ‘부부가 만나는 것은 운명이니까 너희 운명은 너희가 정하는 게 좋다.’ 나는 자식들한테 늘 그렇게 얘기해 왔습니다.
나는 ‘인생의 세 가지는 운명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첫째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거, 이건 본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입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어떤 집안, 어떤 가정을 마음대로 선택해 태어나는 게 아니라 이미 운명적으로 정해진다는 거지요. 어린애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고 운명으로 되는 거다 그거지요.
둘째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운명입니다. 그 나라 그 사회에 수많은 결혼 적령기 남녀가 있는데 어떻게 거기에서 딱 하나를 골라 결혼하게 되는지, 그게 다 만남의 운명이지요. 특히 운명이라는 것이 시간 아닙니까? 그 시간에 그 배우자가 나타나서, 일테면 서로 좋아서 결혼하게 된다는 게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겁니까?
그래서 좋은 부부는 절대 인간의 힘으로 만나지는 게 아니라고 나는 말합니다. 그러니 너희가 정해 가지고 아버지는 인생 경험이 많으니까 아버지한테 이러저러한 여자인데 제가 결혼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는 양해만 구해라. 그러면 내가 참고할 얘기는 해주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 아들들은 전부 자기들이 찾아서 결혼했지 부모가 여자를 찾아서 결혼시킨 적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세 가지 중 마지막은 죽어가는 거라고 생각하지요. 죽어가는 것은 자기 노력으로 못하는 거 아닙니까. 물론 자신이나 주변 사람의 노력으로 죽음을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영원히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이겁니다. 지금 집사람(변중석 여사)이 병석에 누워 있는데 말도 없이 저렇게… 있는 걸 보면 내 마음이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되고. 어디 구경 가고 싶으냐 해도 말이 없고…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아 화 좀 내보라 해도 그냥 표정이 없고… 자기 친구가 부탁한다고 24평짜리 현대아파트 하나만 당첨되게 해달라고 할 때 왜 화를 내고 그걸 못해줬는지…
생각하면 참으로 내 자신이 원망스럽고 미안하고… 내가 아무리 도움이 되어 주고 싶어도 예전처럼 건강하게 해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쩌다 병에 걸려 죽고, 좋지 않은 암에 걸린다거나 또는 자동차 사고로 죽는다거나, 어떤 모양으로 죽든 그건 운명이니까 슬퍼하지 말자고 합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자식의 죽음을 몇 번 봤습니다. 자식의 죽음을 보는 아비의 가슴보다 더 아픈 일은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건 아비도 막을 수 없는 자식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이고 인명은 재천이다. 모든 게 운명이니까 어떤 죽음이 선택되더라도 슬퍼하지 말자’ 그렇게 말하고 또 내 자신이 그렇게 소화해 왔습니다.” (여기서 정 명예회장은 잠시 눈빛을 내리고 소파의 팔걸이를 자꾸 만지작거렸다.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마도 솟구치는 회한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들들이 여자를 선택해 오면 회장님께서는 꼭 말씀을 해주신다던데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 여자의 학벌이나 가문은 보지 않아요.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더 사귀어 보라고 합니다. 피차 장단점을 깊이 알고 나서 결혼해야 한다는 걸 강조합니다. 후회 없도록 하기 위해 더 사귀어 보라고 하는 거지요. 그래서 몇 달 사귀고 나서 결혼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더 사귀어 봐라’고 해서 우리 아이들은 거의 다 1년 이상이나 끌었지요. 서로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해서 다 결혼했는데, 아직 우리 집안 애들은 파경이 하나도 없습니다. 본인들이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또 부모가 신중을 기하라고 권한 것이 옳았다고 생각하지요. 부모 말 잘 들어 손해 보는 자식 없어요. 그렇게 하고 내 말을 안 들으면 안 도와주는 거지 뭐, 지가 무슨 수로 큰 회사 회장이 돼요. 하하항….”
깊이 사귀어 보라고 하는 동안에 여자가 바뀐 경우도 있습니까?
“있죠. 좋다고 결혼하겠다는 걸 안 된다, 잘 사귀어 보라고 하는 동안에 (바뀐 경우가) 한 두번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부가 되지 않은 여자는 그 여자도 불행을 막은 셈이지요.”
그 여자는 재벌가 며느리가 안 된 것이 오히려 불행하다고 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철없는 여자라면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몇째가 그랬습니까.
“녹음기 끄면 내가 얘기하지요 하하하. (끄겠다고 했더니 ‘우리 ○○ 회장이 알면 괴로워할 거 아니야. 며느리도 괜히 좋은 마음 안 생기고. 그래서 과거는 아무 쓸모가 없어’라고 했다. 그러곤 약속을 했다.) 인연이 안 되려니까. 나는 괜찮아 보이는데 성사가 안 된 적도 있지요. 다 운명이지요.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여자를 선택한 뒤 장단점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더 사귀라는 것이니까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는 마음이 여려서 그런지 애들이 여자를 데리고 오면 손도 잡아주고 등도 토닥거려 주고 해서 내가 어떨 땐 한소리 하지요. 그렇게 하면 그 여자애가 며느리가 되는 줄 알고 혼동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나만 인기 떨어지고, 하하하.”
안 된다고 하신 것은 관상적으로나 회장님께서 보시기에 마땅치 않아서였습니까.
“나는 관상 같은 거 볼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엉덩이가 크면 좋다고 그래요, 하하하. 사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지요. 엉덩이가 커야 자식을 수월하게 낳을 수 있다고. 엉덩이가 작으면 듬직해 보이지 않지요. 남자가 큰일을 하는데 집안을 꾸려야 하는 여자가 가볍게 쏘다니면 안 되잖아요. 엉덩이가 가벼우면 발딱발딱 일어날 거 아니에요, 하하항. 사고 내서 신문에도 나고 대통령한테 불려가서 혼이 난 회장, 높은 양반들을 보면 다 부인들이 엉덩이가 작더래, 하하하항!”
세 가지 운명론은 새로 인생을 출발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될 수 있겠는데. 주례를 서본 일이 있으십니까?
“결혼식 주례는 평생 한 번도 안 섰습니다. 나는 거짓말과 위선을 제일 싫어합니다. 나는 30대에 내 아내 아닌 다른 여자도 좋다고 생각해본 일이 있기 때문에 주례를 선다는 것은 위선이다,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평생) 주례를 한 번도 안 섰습니다. 자기가 표본이 될 만해 가지고 주례를 서야지, 과거 30대에 탈선했던 사람이 무슨 주례를 서느냐 싶어 자책감 때문에 주례를 안 섭니다. 그건 위선이고 전도양양한 젊은 사람 앞에서 주례는 안 되지요. 주례는 성직자나 아주 고결한 스승이나 그런 사람이 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중요하고 신성한 결혼식에, 더구나 많은 하객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바탕으로 교훈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사회적으로 이름이 좀 있다고 해서, 아니면 직위가 좀 높다고 해서 젊은 사람 앞에 위선이나 거짓을 해선 절대 안 되는 거 아닙니까.”
회장님의 근검절약은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부지런하거나 근면해야 한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몸에 밴 거지요. 우리 집 가난을 쫓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부지런히 일해 수입을 도와야 했고, 또 수입이 있다고 해서 헤프게 다 쓰면 열심히 일해 얻은 보람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말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어렵고 힘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소년 시절을 지내다 보니까 근면하고 검소해야 한다는 게 생활이 됐고 내 철학처럼 된 거지요. 그래서 나도 근검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밴 거죠.
나는 어떤 것이든 사람들의 일생을 통해 몸에 배고 자기화(自己化)되는 것은 생활의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생활 습관이 아주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지요. 내가 부지런하고 근면하고 근검하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그 일념으로 생활해 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누구를 막론하고 어려운 사람은 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첫째로 근면하고 둘째로 절약하는 생활이 제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2>…“대통령들이 나한테 자기 집 고쳐 달라고 했어요”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신문에서 많은 걸 배워 학력에다 ‘신문대학’나왔다고 한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시간 넘는 육성 테이프는 내용이 많아 한 주 더 소개하기로 한다. 그는 경제인이지만 ‘한국 정치가 썩어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다’며 직접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따라서 인터뷰 중 역대 대통령에 대한 소회도 빼놓지 않았다.
“내가 대통령을 여러 명 경험해 봤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자신의 집을 고쳐야 되겠다는 말을 안 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한 분뿐이었습니다. 전부 다 집이 좁다, 오래됐다, 퇴임 후가 어쩌고 하면서 집 얘기를 다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물론 대통령 앞이니까 심각하게 물을 수는 없지요. 농담처럼 물어보는 거지요. ‘집이 좁다고 하시는데 식구가 늘어났습니까, 세간이 늘어났습니까?’ 그랬더니 ‘경호 문제도 있고…’ 그렇게 얘기해요.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았지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게 뭡니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기 집 좁은 거 걱정하고 있어요 그래? 나라를 부강시키고 어떡하든 국민이 잘살게 하면 물러나서 집 걱정을 왜 합니까? 설령 집이 좁아 누울 자리가 못되면 나부터라도 달려가 큰 집 지어 드려요. 에이 참….”
정 명예회장은 인터뷰 도중 문득 박 전 대통령과의 추억이 떠오른 듯 재미있는 한마디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제일 고민했던 게 뭔지 알아요? 영식인 지만군이 외롭다는 거예요. 그건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는 말씀 아니겠어요? 박 전 대통령 세대에서 아들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자꾸 지만군 주위가 허전하게 보이시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청와대 무도관 준공식 때나 크고 작은 공사를 끝내고 테이프 커팅을 할 때 보면 지만군을 자주 대동하시거든? 진해 가실 때도 보면 꼭 데려가시고. 근데 하루는 코를 찡긋하시면서, 거 왜 박 전 대통령 보면 말수도 적으시고 참 순진한 면이 있으시잖아요? 어색하거나 누구 좀 도와주라고 하실 때 보면 참… 머뭇머뭇하시고 그런 어른이지요.
근데 하루는 ‘정 회장, 정 회장은 어떤 재주가 있어서 아들이 그리 많고 다복해요?’ 그러시잖아요. 지만군을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뭐 다른 말씀을 드릴 수 있어요? 나도 각하 심정이 되는데. 잠시 있다가 그랬지. ‘각하, 새벽에 하십시오’ 하하항. ‘나는 새벽에 아들을 다 만들었습니다’ 그 얘기지, 하하항. (회장실 앞 응접실이 흔들릴 정도로 웃었다고나 할까) 허전해 하시는데 무슨 얘기를 드리겠어요. 그랬더니 그 어른이 박장대소를 하시면서도 ‘자기 피알(PR) 되게 하네. 새벽까지 일한다 그 말이구먼’ 이러시는 거예요. 박 전 대통령은 그런 분이에요. 다른 기업가한테는 모르겠어요.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많이 뵈었을 텐데 나는 그 어른을 아주 존경해요. 단 한번도 뭐, 추한 말씀이 없으셨지요.”
대통령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만 더 여쭤 보겠습니다. 정치자금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말을 대통령이 직접 (회장들한테) 합니까?
“그런 소리를 나한테 하지 않은 대통령도 박 전 대통령밖에 없어요. (다들) 직접 하지요. 근데 그런 소리 하기 전에 꼭 묻는 말이 있단 말이야. ‘기업이 참 어렵지요?’ 이래 놓고는 돈 달라니 말이지, 하하하. 그리고 제일 난감한 게 있어요. 방위성금이니 새마을성금이니 평화의 댐이니 해서 청와대에 가져가면 많이 낸 회장부터 순서대로 대통령 옆자리에 앉도록 하는 거예요. 이를테면 ‘이건 평화의 댐에 쓰라고 가지고 온 거지요?’ 이러거든. 아주 난감하지요. ‘성금만 가져왔느냐’ 이런 소리거든. 나 참…. ‘기업이 참 어렵지요?’하는 소리나 하지 말든가 말이지, 하하하.”
회장님을 일컬어 대한민국 제1의 재벌이라고 하는데. 회장님댁은 왜 해변의 여인숙처럼 허름한 겁니까?
“하하, 그렇습니다. 그래도 내가 지내는 데 불편하지 않습니다. 사는 집이 불편하지 않으면 되는 거지 지나치게 화려할 이유가 없지요. 우리 집을 봤으니까 알겠지만 마당이 좀 넓고 잔디를 잘 가꾸어 놓은 것은 우리 식솔들이 그거 안 하면 밥 먹을 이유가 없어서 자기들이 그렇게 가꾸는 거예요. 우리가 오늘날 큰 사업을 해서 다소 부유해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누리고 싶은 대로 호화 생활을 하게 되면 그야말로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내가 한국 제1의 재산가다, 신문들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현대가 제1 재산가지 정주영이가 제1 재산가는 아닙니다. 그래서 식구들까지 분수없이 살게 되면 사회가 사치해지고 마지막에는 국가를 멸망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 집안 애들 교육을 위해서도 나는 항상 부족한 듯 모자라게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애들이 부족한 걸 모르고 성장하면 절대 창의력이 없고 미래가 없는 법이에요. 나는 정치 지도자들도 절약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정치 지도자들이 권위의식을 가지고 화려하게 사는 것이 마치 권위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국민은 다 압니다. 국민이 웃지요.”
머리는 어렸을 때부터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
“나쁘면 기업을 어떻게 해요, 하하하. 사실 나는 송전보통학교 다닐 때 실컷 놀았어요. 비록 1등은 못했지만 쭉 2등을 했어요. 1등은 왜 못했는가 하면, 그때 습자라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붓글씨죠. 붓글씨는 글자를 천천히 힘을 넣어 써야 하잖아요? 그런데 성격이 급해서 글씨를 못 써요. 그때 1등을 했던 애는 글씨도 잘 쓰고 창가도 잘했어요. 옛날에는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해야지 순사 시험이나 형무소 간수 시험을 치르는데 그 애가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원산형무소 간수가 된 애예요. 그 녀석이 그 후 서울에 와서 죽었지만. 그 녀석 때문에 나는 1등을 한번도 못했죠.”
어릴 적을 회고하는 정 명예회장의 입가에는 연방 웃음이 맴돌았다. 그런데 그는 송전보통학교 졸업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특히 해외에서 자신의 학력에 대해 자꾸 묻는데 그때마다 자신은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신문을 통해 많은 것을 알고 배우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소년 시절부터 아버님은 회장님에게 동생들을 도와야 한다는 걸 가르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죠. 그걸 내가 어려서부터 느낄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내가 맏아들이고 또 동생이 많으니까 당신처럼 똑같이 그렇게 하라고 하신 거죠. 뭐 말씀을 그렇게 하신 건 아니지만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랐으니까요.
아버지는 그처럼 고생스럽게 논을 만들고 소를 팔고 하면서 재산을 모았는데, 아버지의 동생들이 살림을 낼 때는 아낌없이 그걸 나눠 주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 자식들이 커 가니까 되도록 동생 분들한테는 조금만 주고 당신 아들들한테는 많이 주려고 하실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아낌없이 주고 또 만들고, 또 주고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오늘날 사업을 하지만 나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정신을 본받은 것 같아요. 내가 생산 공장으로는 맨 처음 단양에 시멘트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셋째(순영)한테 아낌없이 주었지요. 그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회사를 만들면 동생들한테 전부 하나씩 줬습니다. 내가 그렇게 줄 수 있었던 것이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정신을 본받아서 한 거죠. 만약에 그러지 않았으면 동생들을 하나씩 독립시켜 큰 사업가로 만들 수 없었죠. 물론 내 동생들도 잘하고 능력이 있으니까 번창하겠지만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지 않았으면 내가 그렇게 못하지요. 그래서 동생들을 독립시킨 것이나 근면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결국 아버지가 주신 거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큰 사업을 할 때나 큰 공사를 수주할 때는 꼭 아버지 꿈을 꿉니다. 10억 달러나 되는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할 때도 누구나 전부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된다고 확신했어요. 이런 얘기 처음 하는데 그때 아버지 꿈을 꾼 거예요. 그래서 바로 밑 동생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회사가 망한다고까지 했는데도 나는 된다고 밀어붙인 거예요. 1970년대 그때 10억 달러 공사면 어마어마했지요. 그러니 실패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소리도 나올 만했지만 나는 반드시 성공해 우리 현대가 확 일어난다고 확신했어요. 그게 아버지 꿈을 꾸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이를테면 아버지는 나를 지켜주시는 신이지요. 그래서 아버지 동상을 서산농장에 세우려고 하는 거예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치적으로 올림픽 유치를 꼽고 있는데, 그때 대통령이 회장님에게 특별히 당부한 내용이 있었습니까?
“전 전 대통령의 치적? 허헝. 원래 올림픽 유치는 박 전 대통령 때부터 해보려고 애썼지만 국가 형편이 안 돼서 못했고요. 그래서 박종규씨가 나서서 세계사격대회를 유치한 게 전부예요. 전통(전 전 대통령)의 당부? 당부고 뭐고 그런 건 전연 없었고요. 이규호 전 문교부 장관이… 그때는 체육부가 문교부 안에 있었죠? 이 장관이 힘을 써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고. 우리 정부에서는 당시 남덕우씨가 총리였는데 총리가 올림픽 유치를 반대했습니다. 나한테 분명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바덴바덴으로 떠난다고 해도 전통한테서 전화 한 통 없었고요.
‘총리가 올림픽을 하게 되면 나라가 망한다, 나라 재정이 바닥나서 나라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서울시장도 남덕우 총리 감독 하에 있었잖아요? 그래서 시장도 올림픽을 하면 나라가 망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아주 어렵게 출발한 거예요. 그런데 유치하려면 그곳에 선전관을 차리고 선전 영화를 만들어야 돼요. 그래야 서울을 알리고 표를 모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총리한테 그 돈 달라니까 돈 없다 이거지요. 이건 뭐 완전히 돌아앉은 거예요. 말은 예산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추가경정예산에서 쓰면 되지 않느냐고 그랬어요. 그것도 안 된대. 그러니 할 수 있어요? 그럼 내가 입체(立替·일시적으로 대신 지급함)해 줄 테니까 내년 예산에서 달라고 했죠.”
그땐 뭐라고 대답이 왔습니까.
“대답이 뭐 있어요?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수고하시오, 그것뿐이지. 그렇게 돼서 내가 일체 모든 걸 다 만든 거예요. 내 돈을 가지고. (선전관만 당시 금액으로 약 40만 달러가 든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올림픽 끝나고 나니까 도장 가지고 오래요. 돈을 주려고 하나 보다 하고 갔지요. 가니까 내가 쓴 돈을 몽땅 정부에 기부채납하라지 뭐야. 어이가 없어서 나 참… 했지요 뭐.”
정 전 명예회장이 남긴 일화는 무수히 많다. 재계뿐 아니라 정계도 마찬가지다. 그는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정계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며 14대 국회 때는 30명이 넘는 의원을 당선시켰으니 오죽 많은 일화가 있겠는가. 여기에서 대선 때 참여했던 윤하정 전 외무부 차관이 전하는 내용도 정 전 명예회장의 간접 증언 형태가 될 것 같다. 다음은 윤 전 차관의 녹취록이다.
윤 전 차관께서는 정 전 명예회장의 대선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영(永)자 항렬 동생들이 청운동 집에 다 모였죠. 정 전 명예회장은 동생들에게 대선 얘기라면 꺼내지도 말라고 하면서 ‘불알 두 쪽만 차고 (서울로) 내려와서 이만큼 했는데 망해도 불알 두 쪽은 남을 거 아니냐’고 단단히 각오하라는 뜻만 전했습니다.
“나는 김동조 장관(전 외무부 장관)이 부탁해서 갔지요. 김 전 장관이 정 전 명예회장 사돈 아닙니까. 자기 사위(정몽준)도 있고 하니 (정주영이)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도와 달라고 해서 갔어요. 정 전 회장이 소련도 가고 중국도 가고 했지만 외교 문제에 관해 참모가 필요한가 싶어서 만났는데, 대뜸 그럽디다.
‘내가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 또 정계에 엄청나게 바쳤다. 노태우한테만 200억원을 바쳤다. 국회의원들한테는 얼마가 갔는지 기억에 담아 두지도 않았다. 근데 이 자식들이 한 일이 뭐냐. 이래 가지고는 나라가 안 된다. 나는 돈 안 먹고 깨끗한 정치를 해서 이 나라를 확 고치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 자신이 있다. 이번에 총선(14대 국회) 출마한 사람들한테 어디 가서 손 내밀지 말라고 전부 2억6000(만원)씩 줬다. 내 돈 줬다.’ 사실 그랬어요. 정 전 명예회장이 자기 돈을 썼어요. 그런 얘기를 하면서 기업을 못할 정도로 썩어서 출마를 결심했다는 겁니다.”
후보로 내보낸 사람들에게 그렇게 줬다는 겁니까?
“그렇지요. 공천한 후보들은 무조건 2억6000만원씩 줬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그거 갖고 잘했죠. 26명이나 당선되고 전국구를 합해 30명 되지 않았어요? 세계 정치사상 그런 유례가 없었대요. 창당해서 4개월 만에 선거를 했는데 그 정도나 당선시킨 것이 말이지요.”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상당히 실망했던 모양이군요. 그렇지만 정 전 명예회장이 깨끗한 정치를 외쳤으면서도 막상 자신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2000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는 얘기가 있지 않았습니까.
“선거자금을 손 벌려서 받은 게 아니라 자기 돈을 쓴 거니까 선거법에 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깨끗한 정치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구상하는 것 하고 자기 돈 쓴 거는 이전과는 다르지요. 정 전 명예회장이 대선에서는 공천 후보들한테 준 것보다 천배 넘게, 2600억원 정도 썼다고 직접 그럽디다.”
박태준씨는 왜 정 전 명예회장 때문에 김영삼(YS) 전 대통령한테 정치보복을 더 심하게 당했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겁니까? 정 전 명예회장과 박태준 전 회장 사이에 정치적 물밑 거래가 있었습니까?
“그 사람이 보통 말할 때는 거침이 없어요. 유식한 말은 아니지만 ‘메이크센스’, 센스가 있는 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인기가 막 올라갔지. 그런데 인기가 오르니까 연설문 중에 없는 말도 막 하는데. 그중에 박태준씨를 총리 시키겠다, 이런 말을 하더군요.
박태준씨는 YS가 삼고초려할 정도로 공을 들이면서 자기 캠프에 끌어들이려 했지만 거절했던 사람 아닙니까? 그랬는데 거절한 이유가 정치를 안 하겠다고 딱 잘랐는데 정 전 명예회장이 막 불어대니까 YS로서는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정 전 명예회장이 정치에 미숙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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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①
우리나라 조선업은 몇 년째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전 국민이 세 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 산업기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조선소를 만들겠다는 과욕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강력한 리더십과 개척자 정신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심에 산업 발전에 사활을 걸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이라는 걸출한 사업가가 있었다. 두 사람의 불타는 의지가 울산 앞바다를 한국 경제의 전진기지로 만들었고, 지금 세계 조선업 1위의 기초를 쌓은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호부터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기를 연재한다. 그의 불굴의 투지가 CEO들과 독자에게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부동의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가 2006년 9월 15일 세 번째 생일을 맞았다. 세계 최강 조선국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도 변변한 기념일이 없었는데, 2004년 국내 조선업 수주가 1000만GT를 달성한 9월 15일을 기념해 ‘조선의 날’을 제정하고 제3회 기념식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업의 위용이 어떤가. 세계적인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영국의 클랙슨이 발표한 세계 조선소 순위에서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이 1위에서 5위까지 독식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 대표’ 산업으로 조선은 전자와 함께 굴절 없는 성장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200억 달러 수출 고지를 돌파하고 동시에 수주액도 400억 달러를 달성하는 등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실적을 기록했다.
“배 건조가 토끼 임신보다 빨라”
한국의 조선업이 양적인 성장만을 해온 것은 아니다. 기술에 있어서도 세계 조선업계를 긴장시킨 지 오래됐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 조선업계가 꿈꾸어오던 무(無)도크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무도크 건조 현장이 세계 최초로 공개된 것이 2004년 10월.
현대중공업이 러시아 노보십에서 수주한 10만5000t급 원유 운반선을 육상에서 건조해 진수하는 데 성공하면서 도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인식을 일거에 가능한 현실로 증명해보인 것.
한국 조선업의 기술적 향상은 특수선 제작에서도 만족하지 않았다. 어느새 ‘꿈의 상선’으로 불리는 1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시대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1만TEU급(1TEU는 길이 20피트 컨테이너)이라면 통상적으로 컨테이너 박스 1만 개를 적재할 수 있는 선박이다. 갑판 면적이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2배가 넘는 초대형으로 추측하면 된다.
세계 최초라는 말을 하도 여러 번 써서 이젠 싱겁다고 할 정도가 됐지만 또 한번 이 기록을 경신하는 초유의 사건을 현대중공업이 저질러버렸다. 1만2000TEU급 컨테이너선 개발을 어느새 끝냈다고 발표했다. 기술적 성장세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누구도 예단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세계적인 선주들이 남긴 말이 있다.
“현대중공업 제1야드에서 제2야드를 다 돌아보기도 전에 벌써 세계 기록이 경신되는 것 같다. 배를 건조하는 게 토끼가 임신을 시키는 것보다 빠르고 번갯불로 찍어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선업계는 여기서 멈추려 하지 않는다. 그동안 황무지처럼 내버려두었던 요트 건조에 뛰어든 것이다. 막강한 조선 기술에다 정보기술(IT)을 결합한 고부가 제품을 만들어 요트 분야까지 석권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얘기다.
요트는 레저·경기용 딩기(Dinghy: 6m 이하) 급과 연안·대양 항해용 크루저(Cruiser) 급으로 나뉜다. 현재 세계 요트 시장은 미국(2만여 척)과 프랑스(8000여 척)·영국(3000여 척)이 주도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자료에 의하면 요트 시장이 2004년에 151억 달러(약 14조원) 정도였지만 2010년에 이르면 210억 달러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 엄청난 시장을 우리 조선업계가 냄새를 맡고 있지 않았을 리 없다.
이런 한국의 조선 산업 성과는 분명 우연히 다가온 것이 아니다. 어쩌면 ‘두 사람’의 야심 찬 의기투합에서 그 질주의 시동이 걸리게 됐다고 해도 무리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이 나라 조선 산업을 부흥시킨 주역이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고 할 때 부인할 수 있는 자료가 있을까? 기자가 조선소와 관련해 정주영 회장을 만나 취재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조선 산업의 태동기부터 듣고 싶어서였다. 인터뷰는 86년부터 92년까지 몇 차례에 걸쳐 이뤄진 것이다.
조선 大國 만든 두 사람
지금은 비교도 안 되는 규모지만 세계에서 7개국밖에 소유하지 못하고 있던 50만t급 조선소 건설을 우리 정부에서 계획했던 것이 1972년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한국의 산업 형태를 중화학공업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미래의 산업 중흥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조선소 건설 아니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에요, 하하하.”당시 정부는 조선소가 완공되면 연간 2억5000만 달러의 외화 획득이 가능해진다는 전망을 했고, 그 시점에 우리나라 수출 총액이 11억73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던 점에 비춰볼 때 엄청난 금액인데, 과연 조선 산업이 될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겠습니다. 그 중차대한 사업을 박정희 대통령이 회장님에게 추진하라고 할 때는 각별히 당부한 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당부고 뭐고 도망치려고 하다가 잽힌 거지요. 못 피우는 담배까지 대통령 앞에서 뻑뻑 피워대면서 버티기도 했고 말이지요. 담배는 대통령이 피우라고 주시니까 피할 수 없어서 피웠지만. (웃음 속에서 잠시 회상하다가) 사실은 조선 산업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게 아니에요. 그 얘기하면 내용이 많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고 있는데, 처음에 박 대통령이 고민을 무척 하셨습니다. 1, 2차 경제개발을 추진하면서 수출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가지고 16년 동안이나 끌어왔던 무역 및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 가입도 하지 않았어요? 근데 수출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사력을 다해보았지만 GATT에 가입했어도 한계가 있었어요. 그 당시 경공업 중심의 노동집약 산업으로는 수출도 어렵고 경제 성장의 한계가 있었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돌파구는 중화학공업을 추진해야 된다, 그렇게 판단하신 거예요. 그래서 3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되기 전까지 중화학공업을 가시적으로 역동시킬 수 있도록 해야겠는데 그러자면 우선 필수적으로 육성해야 되는 게 뭐냐, 그게 조선이니까 1단계로 조선 산업을 선택한 겁니다. 그런 배경을 알아야 해요. 조선 산업을 하게 되면 물론 초기는 단순한 조선 공업 수준이 된다 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미래가 있는 거거든? 거대한 조선소를 만들고 초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만 있게 된다면 일시에 기계·철강·전기·전자·해운 등 수많은 연관 산업을 급성장시킬 수 있잖아요. 그걸 내다보신 거지요. 대단한 양반이셨지요.”
박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정부로부터 조선 산업에 대한 구상이나 정책에 대한 사전 정보를 들으신 게 있었습니까?
“그런 건 없었구요, 그냥 정부가 처음에는 4대 핵공장(4大 核工場)을 한다고 그랬어요. 4대 핵공장이라는 건 핵폭탄을 만드는 공장이 에이구요, 1968년에 박 대통령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동안에 제철·종합기계·석유화학·조선을 4대 국책 사업으로 설정하고 최대한 정부가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잖아요? 그게 4대 핵공장이지요. 그래가지고 조선소 얘기도 나온 건데, 첨에는 김학렬(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씨가 운을 뗐어요. 나는 솔직히 회의적이었지요.”
“도망치려다 잽힌 것”
왜 회의적으로 생각하셨습니까?
“조선소가 그냥 됩니까? 사람들이 울산에 현대조선소를 보러 와서는 얼마나 어렵게 건설했는지도 모르고 본래부터 조선소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해서 그냥 웃었지만, 조선소 얘기가 나온 그때만 해도 부산에 ‘대한조선공사’가 있었어요. 거기서 대충 1만여t급 배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게 창업 이래 계속 적자를 봤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파산하고, 파산 후에는 한진으로 넘어갔는데 생각해 보세요. 대한조선공사가 한번도 흑자를 보지 못하고 파산했을 정도니까 우리나라 조선업이라는 게 말처럼 쉽겠어요? 결코 쉬운 게 아니지요. 물론 조선기술자라는 것도 없었고 말이지요.”
그런 정도의 국내 여건에서 조선소를 건설한다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말씀입니까?“ (회고해 보니 기막힌 시작이었기 때문인지) 허허헝, 도박도 돈을 거는 도박이 에이고 명(命)을 거는 도박이에요.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고비가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에요. 하여간 정부의 강력한 의지도 있었지만 내가 반대를 하니까 하루는 김학렬씨가 대통령께서 찾는다는 겁니다. 그럴 땐 판단이 빨라야 해요. 아이고, 도망이다 하구선 도망갔다가 잽혔지요, 하하항. 근데 대통령의 의지가 여간 강하신 게 아니에요.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첨에는 자신이 없다고 했지만 워낙 눈빛부터 무서우니까 그러면 제가 한번 해보겠다고 나섰지요. 그런데 조선소를 하려면 뭣보다 차관을 얻어야 해요. 우리도 그만한 돈이 없고 정부도 돈이 없으니까. 그러니 차관을 얻으려고 이웃부터 다녔어요. 미국이 우리하고 가깝지 않습니까? 일본하고 미국을 열심히 찾아대녔습니다.”
반응이 냉담했을 것 같은데요.
“일본이나 미국이, 너희는 후진국이고 그런 배를 만들 능력이 없다, 그렇게 나와요. 한번 시작해보겠다 했는데 그렇게 나오니까 영 맥이 풀려서 발길이 안 떨어져요. 그렇지만 한두 번 거절당했다고 멈출 수 있어요? 다시 여러 사람 찾아대녔는데 결국 다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도리가 없지 않겠어요? 다시 대통령을 만나서 여기저기 다녔던 얘기를 하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랬더니 ‘도망가지 마시오! 절대 해야 돼!’ 이러시면서 호통을 치시잖아요.”<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정 회장 사업 일절 거절하시오”
조선업 못하겠다 하자 박 대통령 진노…“그렇게 혼나 본 건 처음”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②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일제 치하였던 1929년의 ‘방어진 철공소’가 효시였다. 그 후 1937년, 대한조선공사의 전신인 조선중공업주식회사가 1만t급 건조 능력을 갖추고 태동했다. 그러나 조선중공업은 20년 가까이 지나도록 큰 발전을 하지 못한 채 자유당 정부를 거쳐 5·16 군사정부까지 이어갔다.
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제1차 5개년 스케줄에도 경공업 우선정책에 밀려 조선 공업은 주요 육성산업 부문에서 제외됐다. 그러다가 67년 국내 조선을 진흥시킨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서 ‘조선공업진흥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그나마도 60년대 말까지 소형 강선만 제작할 수 있었을 뿐 자금과 기술력 부족으로 대형 선박 건조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60년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70년대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정부는 제3차 5개년 계획에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경제 부흥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조선 공업을 주요 육성 산업으로 지정하면서 ‘조선공업진흥기본계획’이라는 긴 정책안을 마련하는데, 물론 기본계획의 주요 골자는 청와대 비서실이 작성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각에서 조선 공업이 부정적이라는 보고가 올라오자 대통령이 장예준 당시 건설부 장관을 불러 질책하면서 ‘이래도 안 된다는 거냐’고 보여준 것이 그 문건이었다.
“무조건 해보란 말이오!”
“국무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지는 않고 경제 수준이 함량 미달이라는 반론에 밀려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다면 누가 이 나라 경제를 부흥시킨단 말이오! 1단계로 조선소를 만들어 초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게 되면 자연히 기계·철강·전기·전자·해운 같은 연관 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조성된다는데 왜 전부 안 된다고만 하느냔 말이오! 해보란 말이오! 해보지도 않고 왜 전부 부정적이야!”
금속성 고성을 내지르면서 대통령이 던지듯이 내놓은 계획안에는 정부의 종합국토개발 계획과 임해공업단지개발 계획에 맞춰 조선소 부지를 정하되 생산 규모는 1차 20만t 2척, 15만t 2척, 도크는 20만t급을 건조할 수 있는 규모와 수리선 도크도 같은 규모로 건설한다고 돼 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정 회장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읽고 차관부터 얻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통령이 느끼는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회장께서 보기에도 조선 산업이 사양 산업이었습니까?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 했어요! 그때는요, 사양 산업이고 성장 산업이고가 어딨어요? 수출도 못하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 형편에 맞춰야지 자급자족에 겨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때를 지났는데 돈만 되면 다 하는 거지 우리가 선진국이야? 강대국이에요?”
정 회장은 “찬밥 더운 밥 가려서 먹을 형편이 아니다”며 “사양 산업이라고 하는 건 선진국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우리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거예요!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느냐 하면 차관 때문에 나갔다가 빈손으로 오니까 그때 대통령 경제자문 교수단이라고 있었어요. 그이들이 김학렬 부총리하고 얘기하다가 ‘것 보라고, 사양 사업이라서 돈 꾸어 줄 나라가 없을 거라고 하지 않더냐고.’ 이러잖아요. 지들이 돈 꾸러 나가봤어? 바깥에서 사양이라든 말든 왜 그걸 우리 형편에 견주느냔 말이에요. 비록 바깥에선 그런 소리 하더라도 우리나라 안에서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지! 빈손으로 왔는데 염장 지르고 있잖아. 그럼 내가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유람 다니다가 왔다는 거야? 그 당시엔 나룻배도 돈이 되면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교수들이 생각 없이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회장님이 놀러다니다 왔다고 생각해서 그랬겠습니까?“나도 잔뜩 긴장하고 내 돈 써가면서 스타일 다 구기고 돌아왔는데 말이지. 몰라서 그렇지 박 대통령 앞에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말을 해야 될 입장이 돼 봐요. 백묵만 만지는 교수들은 상상도 못해요! 그럭하고 우리 같은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비교우위를 지니는 산업으로 분석이 됐잖아요. 특히 기계·철강·전기·해운 같은 연관 산업에 굉장한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는 산업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더구나 한국은 3면이 바다라는 입지 조건도 좋으니까 서양 사람들이 평가하는 건 맞지가 않다고 대통령도 그러셨단 말예요.”
도망가려다 부총리에게 잡혀
정 회장은 많이 서운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였는지 조선소가 완공될 때까지 청와대 자문 교수들이 당시만 해도 제법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울산에 내려온다고 해도 일절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경제는 이론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정주영주의’가 그때부터 생겼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정 회장은 겁이 나서 곧바로 박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고 실토하며 웃었다. 그 때문에 김학렬 부총리에게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차관을 안 주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얘기를 남기고 또 도망갈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 부총리가 먼저 눈치채고 딱 잡으면서 굳어버린 경상도 사투리까지 섞어가며 오히려 ‘누구 자빠지는 거 볼라고 그캅니까? 나는 정 회장 말을 이해할 수 있지만 내가 대통령한테 할 수는 없어요. 대통령께서는 꼭 되는 줄 알고 계세요. 4대 핵 공장이 다른 건 안 되더라도 정 회장이 맡아서 하는 건 꼭 된다, 그렇게 믿고 계시고 나도 그래 보고를 드렸는데 인제 와서 못 하겠습니다? 나는 못 합니다. 내가 대통령한테 시간을 얻을 테이까 나랑 같이 들어가서 직접 보고하세요.’ 이러더라는 거였다.
차관은 그 시점에서 얼마나 빌려야 가능했던 겁니까?
“제일 우선적으로 만들어야 되는 게 조선소 아니에요? 그때 우선 조선소를 건설하려면 부지 값은 빼놓고 처음 계획한 규모가 정부는 20만t이라고 했는데 내가 조사를 해보니 50만t급이라야 장래가 보이고 되는 거예요. 그러면 50만t급을 만들 수 있는 드라이 도크하고 900m의 의장 암벽에다가 여러 가지 중장비가 있어야 해요. 돈이 있어요? 그게 내·외자를 합쳐서 그 당시에 6300만 달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어요. 국가가 나서서 벌어들이는 돈이 몽땅 11억7000만 달러밖에 안 되는데 말이지, 하하항. 간이 부었지. 그걸로 끝나나? 배를 건조하려면 외국에서 기계를 또 사와야 해요. 기계를 사는 데만 약 8000만 달러가 있어야 했어요. 우리나라가 선박 건조에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그래서 별짓 다 하면서 돈 꾸어달라고 해봤던 거예요.”
김 부총리는 대통령의 의지를 알고 있으니까 금방 시간을 얻어낼 수 있었겠지요. 회장님은 겁이 났는데도 같이 들어가신 겁니까?
“하하항, 들어갔지. 도망친 전과가 있어서 벌써 부총리가 눈치챘어. 내가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부총리가 아이고, 나도 참았는데 잘 됐습니다, 이래요. 같이 가자 이거지, 하하항.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까 내가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죄다 말씀드리고 분명하게 해외의 시각들이 이렇더라고 보고를 드리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대통령께서도 생각을 바꾸시든지 대책을 세우시지 않겠어요? 그래가지고 들어갔지요. 부총리는 내 앞에 앉고 대통령은 탁자 가운데 앉으시고. 그래서 아까 얘기한 대로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일본 사업가나 미국 사업가가 상대를 안 합니다. 초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무슨 큰 조선업을 하겠다고 하느냐, 당신 나라에서 어떻게 몇십만t 배를 만든다고 감히 넘보느냐, 그런 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그러니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그랬지요.”
박 대통령이 호통칠 때는 어떤 스타일입니까?
“아주 무섭지요. 대통령 만나봤나요? (혼이 날 일이야 없었다고 하자) 눈에서 불이 튀어요. 경제인들 얘기 들어보면 애정이 없는 자리 같으면 그냥 뭐 조용히 웃고 대충 그러느냐고, 그런 정도로 하시는 모양인데 아주 뭐 그때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 회장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느냐고! 못하겠다는 말을 하려고 나한테 왔느냐고!’ 아, 이러시는데 등에서 땀이 날 정도예요. 그런 어른이지요.”
실컷 혼내고 담뱃불 붙여줘
더 이상은 설명이 안 될 정도였습니까?
“부총리도 찍소리 못하고 나도 죽은 듯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요. 진심으로 실망을 하시는 거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외국의 반응이 어떨 거다 하는 건 이미 예상을 하신 것 같아. 그랬기 때문에 그걸 돌파하지 못하고 왔다는 걸 화내시지? 내 평생 그렇게 혼이 나 본 건 첨이에요. 그러시더니 부총리 보고 소리를 질러요. 앞으로는 정 회장이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해도 일절 다 거절하시오, 정부가 일절 상대도 하지 마라! 아, 이러시면서 앉았던 의자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는 앞만 딱 쳐다보고 일절 말씀이 없는 거야. 부총리도 대답을 못하는 거지요. 햐, 화가 나니까 정면만 딱 쳐다보면서 꼼짝도 않고 그러고 계시는데, 이건 내가 완전히 고문당하는 것보다 더 무서워요. 그러니 나도 뭐 계속 허공만 쳐다보면서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거지요. 버티는 건 내가 대통령보다 경험이 더 많거든. 하하항.”
그리고 침묵이 계속됐는데 박 대통령이 담배를 꺼내 정 회장에게 권하며 라이터불까지 켜주더라고 했다.
박 대통령도 애연가였다.
“사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지만 처음에도 그랬는데 대통령께서 권하니까 안 피운다는 말은 못하고 뻐끔뻐끔 빨고 앉아 있는 거지요. 그러면서도 한참 동안은 말씀이 없어요. 그게 박 대통령 성품이야. 참 생각이 깊은 분이야. 대통령이 담뱃불을 끄면서 하는 말씀이 그때부터가 그분의 모든 정신이 나오는 거예요. 내가 돌아와서 대통령의 그 말씀을 적어두기도 했는데, ‘정 회장, 그래 한 나라 대통령하고 경제 총수인 부총리가 도와주겠다는데 그걸 못 하겠다고 체념을 해? 언제는 그 일이 쉽다 생각하고 나섰어? 어렵겠다는 각오를 하고 결심이 서서 나섰으면 끝까지 어떻게 하든 그걸 해야지 못 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돼? 우리가 모든 국력을 기울여서 성원을 할 테니까 다시 나가봐요. 이번에는 구라파로 나가봐요. 구라파를 가서 차관을 주겠다는 나라를 찾아다녀. 사업가도 찾아다니고 말이야! 언제는 그 일이 그렇게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 쉬웠으면 벌써 했지. 한 번 나가서 안 되니까 손을 든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야. 빨리 뛰어나가라고!’ 이러시니 그때는 또 들어갈 때하고는 마음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못 하겠다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 그러면 나가서 한번 더 열심히 쫓아다녀 보겠습니다. 이러고선 냉큼 나왔지 어떡해요. 김학렬씨는 누렇게 됐고. 하하항.”<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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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③
정주영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당부를 거절하지 못하고 청와대를 물러나왔지만 사실은 이미 일본 미쓰비시 측과 조선소 건설을 합작으로 해보자고 협의를 가졌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정부가 중화학공업 추진을 발표하기 전이었다.
동생이었던 고 정인영(전 한라그룹 회장) 부사장과 함께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왜 실현되지 않았을까. 그때 내용이 향후 조선소 건설의 내막을 이해할 수 있는 관심의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미쓰비시에 가야키 조선소가 있잖아요. 거기서 100만t 규모의 도크를 증설할 작정으로 덤비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한번 해보자, 왜냐하면 일본도 그랬지만 우리 한국에 제철소가 만들어지면 반드시 경공업이 아니라 중공업으로 간다, 박 대통령이 어떤 양반이냐, 고속도로 만든다고 밀어붙일 때 봤지 않느냐, 이건 분명히 일본처럼 제철소 다음에는 중공업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중공업 정책으로 갈 것이고, 대표적으로 추진할 게 조선소다, 그렇게 판단한 거지요. 미쓰비시 측과 접촉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신통치 않아요. 그러니 다시 가와사키중공업에 가서 하세가와 본부장하고 우메다 사장을 만나 똑같이 한국의 장래에 대해 설명하고 합작하자 했더니 좋다고 말이야, (손바닥을 탁 치며) 맞다, 그거야. 손바닥까지 때리면서 잘 봤다고 말이야, 하하항.”
日 미쓰비시와 합작 시도
그런데 왜 추진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운이라는 거고 타이밍이라는 거예요. 뭐냐 하면, 사실 미쓰비시 측이나 가와사키에서 합작을 추진하겠다는 내부 결심은 서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일본이 그 당시 중국하고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던 도중인데 중국에서 ‘주4원칙’을 내놓았어요. 저우언라이(周恩來) 4원칙이라고 하지요? 그때가 70년 4월인데, 그걸 발표해서 일본이 눈치를 보게 됐거든?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내놓은 4원칙이라는 게 내용상으로 보면 한국이나 대만하고 경제협력을 맺고 있거나 투자하는 회사와는 무역을 안 하겠다는 거지요.”
일본의 투자에 브레이크가 걸렸네요.
“그렇게 되니까 일본 통산성이 제동을 걸고 나온다는 거지요. 그러니 별수 있어요? 결렬되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조선소 건설을 추진할 때도 사실은 차관 도입이 주4원칙 영향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한 거예요.”
그 전에 캐나다 쪽하고도 접촉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합작이나 차관 때문이 아니고 조선소에 대한 전반적인 시장조사를 의뢰했던 거지요. 캐나다의 엑커스라는 기술회사에 시장성 조사를 의뢰했더니 조사를 한다면서 몇몇 회사하고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일이 생긴 거예요. 하루는 우리 정부에 정보가 들어왔는데 메리도라고, 이스라엘 해운회사 팬마리타임 대표고 국회의원 출신이에요. 그이가 한국으로 찾아온다는 거지요. 나중에 나도 부총리한테 들었지만 우리나라가 차관을 도입할 때 중간에서 커미션을 크게 먹고 중개했던 아이젠버그라고, 유대인이 있어요. 메리도가 그이하고 같이 다니던 거상인데 조선소 때문에 온다는 거예요.”
아이젠버그라는 인물은 국내에도 알려져 있습니다만 메리도라는 사람이 조선소 건설 문제를 어떻게 알고 방문을 한다는 겁니까?
“캐나다 엑커스 측에서는 우리 의뢰를 받았으니까 이스라엘의 팬마리타임 회사하고 노르웨이의 조선회사인 아커그룹과 접촉했다는 건데 팬마리타임이나 아커 측에서 생각할 때 아, 한국에서 지금 조선 산업을 추진하고 있구나,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 돈 냄새를 맡는 데는 귀신들이니까 팬마리타임 대표라는 메리도가 되지도 않을 조건을 잔뜩 들고 와서는 부총리한테 붙은 거지요. 좌우간 조건이 황당하고 50대 50 비율로 조선소 건설을 제의하다가 나중에는 조선소 운영권까지 자기들이 갖겠다고 나와요. 딴 데 가서 알아보라 했지 뭐. 그랬더니 부총리는 아이고, 놓치지 말라고 투덜거리고, 하하항. 하여간 별일이 다 있었어요.”
“왜 유독 현대에게 맡기느냐?”
당시 우선순위 첫 번째는 종합제철소 건설이었다. 종합제철소 건설도 수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자금 조달 때문에 박 대통령이 직접 재일교포 사회에서 관서의 사카모토, 관동의 시게미쓰로 불리던 대표적인 실업가 서갑호씨와 신격호씨, 그리고 철공왕으로 군림하던 손달원씨한테까지 투자를 부탁했을 만큼 자금 때문에 전력투구했는데 조선소 건설을 미끼로 국제적인 로비스트들이 준동한 것도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말이지요, 경제 건설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대통령까지 정말 권위고 체면이고 다 던지셨어요. 나보고 구라파로 다시 나가보라고 하실 적에 이런 말씀을 하는 거예요. 장관이 전부 안 된다, 그간에 다양하게 다 조사를 해봤고, 가능한 방법을 죄다 찾아봤지만 당장 현실적으로 조선소 건설을 해본 경험 있는 회사가 없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느냐, 도저히 조선소는 안 될 것 같다고, 전부가 그렇게 보고하더라는 거지요.
그래서 대통령께서 이순신 장군도 만나봤느냐고 소리를 질렀대요. 화가 나서 재떨이까지 집어던지면서 이순신 장군도 만나봤느냐고, 충무공이 거북선 만들 때도 경험 있는 건설회사가 있어서 가능했는지 물어봤어야 될 거 아니냐고, 막 호통을 치면서 나하고 같이 죽을 각오가 돼 있지 않은 장관들은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얼마나 질책을 하셨는지 나중에 보니까 와이셔츠 단추가 두 개나 풀어져 있더라는 거지요.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어떡하든 해야 한다는 집념 외에 권위를 생각했겠어요, 체면을 생각했겠어요? 그런 얘기를 듣고 내가 못하겠다는 소리를 더 이상 할 수가 없고 조선소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정말 대단한 어른이셨지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70년대 초, 그 무렵만 해도 현대건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잖습니까. 외형으로 보면 더 큰 기업들도 있었는데 왜 회장님한테 조선소 건설을 맡겼습니까?
“하하항, 그건 나한테 물어볼 게 아니고 박 대통령한테 물어봐야지요.”
정부는 왜 유독 현대에 조선소 건설을 당부했을까. 현대가 아니면 다른 기업에도 부탁했던 것인가. 조사된 자료에는 다른 기업에 요청했다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지금 같으면 삼성·대우·한진 등 여러 기업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70년대가 시작되는 그 시점에서 삼성은 설탕 장사, 옷감 장사 수준을 넘지 않았고 대우는 이름 없는 와이셔츠 장사에 불과했다.
베트남전으로 돈을 번 한진이 물망에 오를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해운 쪽이지 선박 건조는 아니었다. 결국 추정해본다면 대부분의 기업이 몸을 움츠렸지만 현대가 공격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고속도로 건설을 수주하면서 박 대통령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 같다.
훗날 현대조선소가 현대중공업으로 독립하고 조금 뒤에 입사했지만 정몽준 전 현대중공업 회장(현 국회의원)이 중역들과 담소하던 중에 나름대로 풀이했다는 내용은 이렇게 전해진다.
“박 대통령도 처음에는 조선에 대한 충분한 지식 없이 조금 단순히 생각하셨던 게 아닌가, 우리가 건설을 해왔기 때문에 인부들을 동원하는 데는 자신이 있을 거고, 거기다가 철골 구조? 땅 파서 도크 만드는 거? 그런 건 눈 감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거기다가 조선이라는 것도 영어로 십빌딩(shipbuilding)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작업장도 공장이라고 안 하고 십야드(shipyard)라 하고, 더구나 배는 제조가 아니고 건조다, 우리가 얘기를 할 때도 선박을 제조한다 하지 않고 건조한다고 그런다, 선박 건조. 그러니 땅만 있으면 회장님은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지 않아요? 하하.”
어쨌든 정주영 회장은 참모 둘을 데리고 구라파 쪽으로 다시 자금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그런데 정 회장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두 가지 지시사항이 이때에 있었다. 하나는 차관 문제가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인 사업 계획서를 만들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조선소를 건설할 부지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현대건설 안에 별도의 조선사업부까지 만들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에 대한 도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는 의미였다.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이었던 김영주 한국프랜지 명예회장 회고가 들을 만했다.
“그게 안 되면 회장의 권위도 떨어지지만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하게 되든 직원들한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선언하기도 어렵고 더구나 부지까지 마련하라는 말씀은 굉장한 리스크가 되는 겁니다. 근데 그 당시가 어땠느냐, 자금 확보도 기술 제휴사도 결정 안 된 상태 아니에요? 명예회장(정주영) 명령은 떨어졌지, 현대건설에 해양대 출신이나 조선학과 출신들을 전부 조선팀으로 옮겨놓고 일을 벌이는 겁니다. 나중에 다 사장, 회장 했지만 백충기·황병주·김형벽·이정일·이정상 그런 사람들이 무조건 와야 해. 그런데 기능공이 있나? 전국에서 안 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고, 그런 사람들까지 전부 긁어모으고 말이지, 엉망이었지 엉망.”
자금 한푼 없는데 “부지 마련하라”
정 회장을 수행해 차관 구입에 앞장섰던 백충기 전 현대건설 사장도 조선소 건설은 기막힌 상황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나부터도 건설에서 차출이 되고 보니까 조선사업부가 건설회산지 중공업회산지 구분이 안 됐어요. 그러니까 뿌리는 전부 건설쟁이들이지요. 그리고 내가 회장님 모시고 첨에 뉴욕하고 텔아비브에 갔을 때 처음 거대한 조선소를 봤는데 조선소 주변이 하나의 거대한 도시고, 그 주변에 사는 기능공들이 이미 엔지니어급 수준이라서 대접부터가 달라요. 그러니 저 정도는 돼야 수주도 하고 경쟁력이 있을 텐데 우리가 인적 자원도 없는데 저런 조선소를 만들 수 있겠나 싶고 말이지요. 눈앞이 깜깜해지는 거지요.”
어쨌든 참모를 데리고 나가셨는데, 대통령이 회장님한테 유럽 쪽에도 나가보라고 하실 때는 가능성을 내다보고 그러셨을까요?
“전혀 아니지요. 대통령이나 나나 답답한 심정은 똑같은데 일본하고 미국에서 차관을 못 준다고 하니까 구라파도 나가보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찾아나선 곳이 영국이에요. 그때 우리가 영국 런던에 현대건설 지점을 설치해놓고 정희영 상무가 지점장인데 백충기 부장인가? 같이 데리고 갔을 거예요. 그런데 우린 차관이 급하잖아요. 영국에 도착했지만 무작정 어딜 두드리겠어요? 그때 아이디어를 준 사람이 평소 알고 있었던 데이비스라는 미국인 국제금융 브로커예요. 브로커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적인데 세계시장에서는 그렇지가 않지요. 그 사람이 한국전에도 참전했던 공군 조종사 출신인데 ‘우선 조선소를 만들면 기자재를 어디서 구입할 거냐. 그걸 공급하는 회사부터 정하고 그 회사가 거래하는 은행을 움직이게 해라.’ 이거예요. 정말 그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발한 방법이잖아요? 그 사람들의 주거래 은행을 소개받아라 이거지요.”<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함정이니 정부는 만나지 말라”
서독 조선업체 이중 플레이 때문에 김학렬 부총리와 대판 싸움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④
데이비스라는 국제 금융 브로커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조선 기자재를 팔아먹기 위해서도 컨설팅 회사들이 은행을 움직일 거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소개받은 곳이 영국의 애플도어(A&P Appledore)하고 스콧 리스고(Scott Lithgow)라는 선박회사였다.
정주영 회장이 유럽에서 1차로 접촉했던 서독의 아게베세 조선소하고는 내용상으로 이미 급수가 달랐다. 현대가 1971년 9월에 정식으로 기술과 판매협정 본계약을 체결하게 되지만 영국의 애플도어사는 실내 도크를 갖추고 특수 선박을 주로 건조하는 유명한 조선기술 회사였고, 스콧 리스고는 소형 특수 선박이지만 1만5000t급 선박을 매월 한 척씩 건조해 판매할 정도로 조선업계가 인정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1급 조선소였던 것이다.
“우리가 우물 안에서만 생각을 해왔다 이거예요. 구라파로 나와서 보니까 눈이 확 트이고 말이지. 애플도어라는 회사를 만나 정보를 듣다 보니 서독에서 만난 아게베세 조선소가 우리를 얼마나 봉으로 여겼는지, 얼마나 터무니없는 기술료를 요구하면서 흥정을 했었는지, 그런 걸 다 알게 되고 말이에요.”
“우릴 봉으로 알잖습니까”
아게베세 조선소가 언급됐지만 이 조선소는 정 회장만 상대한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는 정 회장을 만나고 뒤로는 재빠르게 선을 넣어 부총리에게 자기들이 조선소를 건설해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며 흥정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김학렬 부총리와 정 회장이 부닥친 것도 사실이었다.
“아게베세 조선소에서 제시한 조건의 핵심이 상당히 호조건이고 내가 생각할 때는 구미가 확 당겨요. 정 회장께서 오케이만 한다면 조선소 설계도면과 용역비로 580만 달러를 요구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거기다가 선박을 건조하는 기술협력을 해주고 판매할 때마다 판매 수수료로 선박 가격의 5%만 달라는 것이고. 이런 조건이 어디 또 있겠어요? 결국은 580만 달러로 조선소를 지어주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하하하.”(김학렬)
“사람을 바깥에 내보내 놓고 정부에서 자꾸 뒤로 만나시면 협상을 어떻게 합니까? 메리도라는 친구도 앞에서는 우릴 만나고 뒤로 부총리님을 찾아갔지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서 깨지지 않았습니까? 580만 달러만 가지면 조선소가 다 되고 그게 또 훌륭한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정부에서 580만 달러 투자해서 조선소를 맨들지 뭣 때문에 이 고생을 시키십니까?”(정주영)
“아니, 좋은 조건이라면 열 번이라도 만나야 되는 것이고 정 회장이 모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정보를 주는 건데 무슨 말을 그래 해요!”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시니까 그러지 않습니까?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면 정부에 580만 달러가 없어서 못하십니까? 그 돈으로 될 일이라면 차관을 할 필요도 없고 지금이라도 저희가 빌려드리겠습니다.”“정 회장!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요. 정부에서 모르고 있는 내용이 있으면 설명을 해주어야지 무슨 말을 그래하고 있어요!”
“함정이 있거나 봉으로 알고 그러는 거니까 답답하시더래도 제가 결론을 볼 때까지 정부에서 자꾸 만나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어쨌든 1차 목표는 차관이었다. 설계나 용역이 급하지 않았다. 돈줄을 잡는 것이 절실해 애플도어사를 만났어도 기자재 상담은 뒷전이고 마음은 돈줄이었다. 그런데 국제 금융 브로커의 말이 정확했던 것이다. 상담했던 애플도어사의 롱바톰(Longbattom) 회장이 영국의 버클레이 은행을 움직일 정도가 된다지 않는가? 정 회장으로서는 귀가 번쩍할 수밖에.
“즉각 우리가 가지고 갔던 보따리를 다 풀었지요. 보따리라는 건 우리 계획서지요. 그러면서 조선소도 만들고 선박도 건조해야 되겠으니 어떡하든 차관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애플도어하고 기술협약도 하고 용역도 의뢰하겠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부탁을 했어요. 그랬더니 롱바톰 회장이 우리 계획서를 좍 보더니 좋다고,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오케이를 해요. 그러면서 버클레이 은행에다 차관 신청을 해보자, 그렇게 됐어요. 그러니까 롱바톰 회장은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버클레이 은행에다 차관 신청을 하는 거지요.” 며칠 시간을 달라 한 건 그 사이에 현대에 대해 알아본 것 아닙니까?
“하하항, 그것도 얘기가 긴데 그런 셈이지요. 그런데 가만 보니까 롱바톰 회장이 그동안 거래를 많이 하고 신용이 좋았던지 은행에서 대접하는 게 달라요. 당시만 해도 우리는 외국은행에 큰 차관을 요청하는 것도 첨이고 모든 게 어리둥절하고 긴장을 했을 거 아니에요? 그걸 알았는지 은행에 가니까 아주 친절하게 계획서를 두고 가라고, 충분히 검토해서 연락을 하겠다고, 그러면서 현관까지 나와요. 그걸 보면서 역시 선진국은 은행이 존재하는 목적이 다르구나 싶었어요. 우리나라는 어디 그래요? 계획서를 제출해보는 것조차 어렵고 낸다고 해도 전부 턱으로 가리키며 거기 앉으슈, 거기 두슈, 보고 연락할 테니 가서 연락하거든 오슈, 이러잖아요.”
“정부와 기업 마인드 안 맞아”
계획서를 낼 때 특별한 질문은 없었습니까?
“일단 계획서를 봐야 질문을 하는 거겠지요. 다만 차 한잔 주면서 지나가는 말로, 조선소를 만들고 배를 건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 소리는 해요. 근데 나는 또 그게 면접하는 건 줄 알고 얼른 대답을 했지요, 하하항. 그만큼 얼어있었던 거예요.”
어떤 대답을 하셨는데요?
“늘 내가 주장하던 소리였지요. 좌우간 조선소라는 게 별거냐? 도크라는 건 목욕탕 욕조를 크게 만드는 것하고 똑같은 거다 생각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고, 선박 건조는 커다란 철 그릇 속에다가 철로 만든 구조물 빌딩을 하나 세우는 거다 생각하면 되는 건데 그게 뭐 어렵겠느냐고, 우리가 빌딩 한두 채 지어본 게 아니라고 말이야. 설계는 아직 못하지만 영국에서 설계하고 시방서만 주면 못 만들 게 없다고 말이지. 그랬더니 막 웃으면서 재미있는 말씀이라고 그랬는데 옆에서 통역하는 눔이 쿡쿡 찌르면서 그만하셔도 된다고 그러잖아.”
사업계획서에는 조선소 규모나 건조할 수 있는 목표 물량까지 넣어두고 있었습니까?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일을 해보니까 참 장애가 많아요. 우선 정부하고 기업이 서로 마인드가 맞지 않아.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가 차관을 얻으려고 여러 나라를 교섭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영국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각국의 대사관에 상무관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한국의 조선산업 실태를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상무관들이 어디를 통해서 실태를 조사하겠어요? 당연히 우리 정부의 관련 부처에 자료를 요청할 거 아닙니까? 그걸 알고 박 대통령은 워낙 빠른 어른이니까 즉각 외무장관을 불러 각국의 상무관들한테 오히려 브리핑을 해주라고 지시를 했어요. 그게 신뢰감도 주고 조금 부풀려도 정부 자료니까 믿을 거 아니겠어요. 근데, 그렇게 했으면 빨리 우리한테 연락해서 계획서하고 입을 맞춰야 되는 거 아니에요? 성사시키는 게 목적이잖으냐 말이야. 그런데 뭐? 정부의 3차 5개년 계획의 목표는 15만t 규모다, 이게 될 소리예요, 이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니 보고서가 어떻게 날아가겠어요. 차암 대가리 쓰는 거 보면 아직 한참 멀었다 싶은 거야.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조선소를 못하게 막는 거나 뭐가 달라요? 작성한 보고서를 하나 봤더니 한국이 그때까지 최대 규모로 건조한 게 1만7000t급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밝힌 3차 5개년 계획의 목표는 15만t 규모다, 그러니 25만t급 이상의 대형 유조선을 만들 경우 한국에는 기술 인력이 없을뿐더러 건조 경험을 가진 중간관리자도 없는 실정이므로 사업계획서 내용은 타당성이 없다, 이렇게 돼있는 거야. 누가 차관을 해주겠어요!”
회장님이 제출한 계획서에는 그런 규모가 아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갑갑하다는 거지요! 내가 가지고 나간 사업계획서에는 부지 17만5000평, 건물 3만7611평, 건조 목표는 최대선박 50만t에 연간 25만9000t급 5척으로 되어 있고, 길이 500m, 폭 80m, 깊이 12m의 드라이 도크를 1차로 건설한다, 그럭하고 450t급 골리앗 크레인 2기를 확보하는 것이 기본 골자다, 이거거든? 근데 정부에서 목표가 15만t이라고 했으니 말이야, 이건 똥 싸놓고 매화 타령하는 꼴이지, 일을 되게끔 하자는 소리예요 이게? 더구나 그건 해명하기도 쉽지가 않아, 정부 발표니까. 해명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거짓말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정부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버클레이 은행에서는 시간을 끌지 않고 곧바로 검토 결과를 알려왔습니까?
“아, 역시 일 처리가 빨랐어요. 우리는 은행이 그걸 전부 심사할 동안에 턱을 괴고 기다리고 있어야 될 노릇이지 별다른 방법이 없는 거 아니에요? 우리나라 은행 같았으면 니들이 영국에서 왔건 소련에서 왔건 알 바 아니니 심사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라고 했을 거야. 근데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배려했는지 다음날인가? 바로 연락이 왔어요. 언제 들어오라고 말이지. 그러고 말하는 걸 들어보니 유머도 있어요. 대체 어떤 사람인데 이렇게 큰 사업을 한다고 돈을 달라는 건지 통을 좀 들여다봐야겠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한번 면접 시험을 하겠다는 거지요, 하하하.”
그래도 적극적으로 검토를 해주고 희망을 보여준 건 버클레이 은행이 처음 아니었습니까?
“그랬지요. 아주 고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들어오라는 날이 마침 월요일이야. 그래서 기다리고 있을 때가 일요일이기 때문에 긴장할 것 없이 시내 구경이나 나가자 했어요. 우리가 그동안 영국에 와서 차관에 전력하느라고 호텔 문밖을 하루도 나가보질 못했거든? 그러니 나하고 동행하는 직원은 항상 죽을 지경이지, 하하항. 기분 전환도 시킬겸 템스강 상류에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데 거기에 구경을 갔어요. ”
워낙 바쁘신 분인데 원님 덕이 아니라 버클레이 덕에 관광까지 하셨군요.
“그런 셈이지요. 점심을 먹고 돌아오다 런던 교회에 있는 윈저성도 보고 석양도 구경 했으니까요. 내가 해외를 수없이 나가지만 한번도 관광이라고는 제대로 못했어요. 정말 한번도 그럴 기회를 가지지 못했어. 그런데 그때는 생전 첨으로 여러 가지 공부를 한 셈이 됐어요.
하여간 그렇게 하고 그 이튿날 점심시간인데 12시가 돼서 버클레이 은행 부총재가 만나자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부총재가 직접 나왔는데 이상하게 점심시간에 부르는 거예요. 그런 게 우리하고는 문화의 차이랄까, 의식의 차이 같은데, 우리는 점심시간에 만나자고 하면 이거 밥을 사라는 얘기로구나,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야, 커피와 토스트 하나 딱 들고 먹어가면서 얘기야. 그러니 괜히 지갑만 만지작거렸지. 하하항.”<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우린 16세기에 철갑선 만들었소”
英 은행, “큰 배 보기나 했나”에 거북선 그려진 500원 지폐 보여줘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⑤
정주영 회장이 차관을 얻기 위해 접촉한 영국 버클레이은행 중역은 여러모로 정 회장을 자극시켰던 것 같다. 그들이 기업을 대할 때 어떤 자세였던가 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보여주고 있는 기본자세하고는 판이했던 것이다.
그 사이 현대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습니까?
“아, 나중에 알았지만 철저히 조사를 했어요. 첨에는 롱바톰 회장이 한국까지 와서 직접 우리 현대가 했던 발전소, 정유공장, 해외건설, 고속도로, 그런 공사들을 전부 체크하고 갔지요. 거기다가 조선소를 지을 부지까지 봤는데 거긴 내가 토목공사를 시키고 있었거든? 내가 그럴 줄 알고 전갑원이를 시켰더니 그눔이 암반이 안 나온다고 투덜거리다가 나한테 혼났지. 하하항. 하여간 그런 걸 전부 보고서 버클레이은행에 추천서를 써줬는데도 버클레이은행에서는 그보다 더 철저하게 조사를 했어요. 각종 플랜트사업에서부터 교량 건설까지 부실이 없었는지도 조사하고 그룹의 대차대조표까지 뒤지고 말이지. 심지어 한국에 질 좋은 노동력이 있느냐 하는 것까지 알아봤다니까 그냥 만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걸 보면 우리 금융기관들은 멀었지요.”
대단하군요. 만나시니까 어떤 내용을 궁금해 합니까?
“앉기가 바쁘게 이 양반이 얘기를 하는데 그게 면접이에요. 토스트를 먹어가며 얘기를 하는데 아주 예리해. 그렇지만 나는 대충 어떤 얘기를 할 거다 하는 걸 예상하고 나갔거든? 근데 우리가 25만t급 배를 만들겠다고 했으니까 대뜸 한국에서 25만t급 배를 보기나 했냐고 묻잖아. 난감하대…, 그냥 봤다는 대답만 해서는 대화가 끊어지잖아요. 그럴 때 순발력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게 500원짜리 지폐야. 그 당시 500원짜리에 거북선이 있었거든? 근데 내 지갑에 500원짜리가 없으면 큰일이잖아요. 근데 덜덜 떨면서 지갑을 꺼내 보니까 마침 있잖아! 하하항. 이거다 하고선 탁 내놓고 그랬지. 부총재는 16세기에 철갑선을 봤느냐고 말이야, 이게 16세기에 만든 대한민국 거북선이다, 대한민국 거북선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지폐에 새긴 거니까 대한민국 국민이 건조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이 철갑선을 봤느냐고, 이게 지금으로 보면 유조선은 게임이 안 되는 함정이라고, 하하항. 그랬더니 부총재 눈이 팽 돌아가는 거야. 저들은 19세기에 처음으로 강선을 만들었거든? 더구나 해양대국이라는 영국인데 말이야, 그러니 눈이 안 돌아가고 배겨? 하하항.”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 주더라”
(웃으며)만약에 500원짜리 지폐가 마침 없었으면 어떡하시려고 그랬습니까? 회장님 지갑에 500원짜리도 넣고 다니세요?
“그러니까 지갑에 손이 갈 때 덜덜 떨었지, 하하항. 내 지갑에 만원짜리는 하나도 없어, 다 잔돈이지. 그러고 내 얼굴이 돈인데 뭐, 하하항. 근데 부총재가 참 인상적인 사람이에요. 거북선을 보더니 아주 진지해져요. 자기네가 해양대국이기 때문에 강선은 세계 최초인 줄 알았다면서 3세기나 뒤늦게 강선을 만들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더구나 한국한테 뒤졌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역사적 사실은 우기지 않고 인정을 해요. 그게 신사의 나라 사람들이에요.”
그것으로 인터뷰는 끝나는 셈이었습니까?
“아니지요. 그 다음 질문이 의외예요. 내가 예상한 건 하나도 안 물어. 정 회장은 대학 전공이 이공학입니까, 경영학입니까? 이렇게 물어요. 이거 또 난감하두만. 내가 비록 대학은 안 나왔지만 모든 사회 경험을 대학 나온 사람 이상으로 경륜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얘기는 구질구질하게 하기 싫잖아요? 그래서 내가 그 부총재를 바라보고 웃으면서 오히려 반문을 했지요. 부총재께서 우리 조선 사업 계획을 보셨느냐고. 부총재가 봤을 리 없죠. 금융맨이고 봐야 알 턱이 없고 다만 융자를 검토하는 단계니까 밑에서 심사한 얘기를 들었을 테지요. 근데 이 사람이 능청스럽게 봤다고 그러잖아요. 그렇다면 잘 됐다 싶어서 나도 능청스럽게 시침을 뚝 떼고 그랬지요. 내가 버클레이은행에 낸 사업계획서를 옥스퍼드대학에 먼저 내봤다. 어제가 일요일인데도 그걸 제출하니까 대번 박사학위를 주더라. 그래서 내가 옥스퍼드대학 경영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이러면서 막 웃었어요. 그러니 뭐 부총재도 막 웃고 그랬는데 그 부총재가 더 재치 있어요. 역시 옥스퍼드대학이 권위 있는 대학이라고, 왜냐하면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한 박사도 사실 이런 계획서를 못 만들 거라고, 그런데 정 회장 같은 사람을 골라내는 거 보니 역시 옥스퍼드대학이 유명하지 않으냐고, 이러면서 웃는 거예요.”
결국 승인을 했습니까?
“그렇죠. 여러 가지 환담을 하면서 몇 가지를 더 알아보더니 버클레이은행에서는 차관을 결정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영국에서는 차관 시스템이 은행 결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은행이 결정을 하면 최종적으로 ECGD(Export Credit Guarantee Department)라고, 수출신용보증국이라는 곳에서 승인을 해야만 하는 겁니다.”
사실상 ECGD의 승인이 관건이었다. 영국에서는 차관을 해간 나라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영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은행에 보상을 해주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ECGD의 기준은 손톱이 들어갈 허점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이 사업성 평가에서 만족스럽다는 결과를 통보해도 신용보증국에서는 별도의 조사를 했고, 차관 도입국가의 신용도와 경제적 성장성까지 체크를 할 정도였다. 그러니 서류가 보증국으로 넘어가면 현대만 장래성이 있어서 될 일도 아닌 셈이었고 정부의 신용도까지 검토가 된다는 얘기였다.
“한국 빅맨이 체어맨 정 맞나”
신용보증국의 승인은 낙관 하셨습니까?
“어떻게 낙관을 해요? 우리 현대의 신용이나 장래성은 솔직히 자신이 있었지만 그 당시 우리 정부의 이미지가 엉망이었단 말이에요. 어느 나라나 노사분규 일어나면 완전히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예요. 그 회사에 대해 먹칠을 하는 게 아니고 국가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지요. 근데 그 당시 평화시장 전태일 분신사건이 일어나 거리가 시위대로 혼란스러웠지요?”
아주 난감하셨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떡해요. 어렵게 은행을 통과했는데 한국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 있어요? 수출 보증국에 승인신청서를 내고 또 기다리는 수밖에요. 근데 참 희한해요. ECGD에서는 그때까지 개인기업주를 직접 인터뷰한 예가 거의 없고 대부분 정부관료를 불러 조목조목 심사를 하는데 우리 정희영 상무가 노력도 했겠지만 존 코긴스라는 ECGD 국장이 직접 나를 만나보겠다면서 연락이 왔어요. 거기 국장은 다른 부처하고 달라서 완전히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장관급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결정을 하다시피 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만나자고 하니 일단 한국의 불안한 정국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검토를 해보겠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말이야, 만사를 제쳐놓고 냉큼 만났지요. 하하항.”
그러나 여기에도 비화가 있었다. 정희영 당시 런던지점장이 ‘콧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몸살을 앓아가면서’ ECGD 국장과 친밀한 사람을 찾아 온갖 노력을 다 했겠지만 ECGD 자체적으로 어느새 현대의 공사 능력과 국가의 성장 잠재력에 대해 이미 조사할 수 있는 자료는 전부 빼냈더라는 것이다. 인맥으로 대부분 융자를 해결하는 한국의 금융 시스템하고는 질적으로 달랐다는 얘기였다.
ECGD의 심사는 은행하고 차이가 있었습니까?
“아주 합리적이었어요. 일단 은행에서 심사한 내용을 중복 심사하는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구요, 신뢰를 하고서 자기들 의견을 얘기하는 거예요. 탁 만나니까 뭐라고 하는고 하니, 첫마디가 ‘한국의 빅맨이 체어맨 정이냐’고 그래요. 근데 이건 통역을 안 해도 내가 알아듣거든? 이런 거까지 통역하면 분위기가 깨진단 말이야. 그래서 비켜 임마, 그래놓고는 웃으면서 벌써 조사를 했냐고, 빅맨이 아니라 정주영이 자체가 자이언트라고, 그랬더니 막 웃으면서 역시 은행에서 얘기한 그대로라고 하잖아요. 하하항. 분위기가 아주 좋아진 거지요.”
정 회장의 영어 실력은 2000단어를 구사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 웬만한 영어는 직접 메모를 하고 머리가 비상해서 중요한 협상 내용은 마치 속기를 하듯 자신만 알고 있는 특수한 부호로 적어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니까 나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적을 하면서 논리가 아주 정연해요. 계획서는 잘 봤다, 애플도어라는 영국의 일류 기술 회사가 현대 기술자들을 영국에 데려와서 훈련 시키고, 스콧 리스고에서 도면을 받아 그대로 만들고, 그렇게 해서 현대가 인력을 잘 관리하면 건조를 할 수는 있을 거다, 그거야 영국의 최대 기술 회사가 참여하는 거니까 자기네가 인정을 하겠다 이거죠. 그러면서 그래요. 배만 주문해서 만들면 수지가 맞으니까 원금과 이자는 갚을 수 있겠다 하는 것도 버클레이은행 쪽에서 얘기를 하고 있으니 그것도 역시 그렇게 믿겠다, 다 믿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자기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이거예요.”
“누가 한국에 배 주문 하겠나?”
ECGD 측에서 의문이 있다고 하면 중요한 포인트가 됐을 것 같습니다만….
“그게 핵심이었어요. 뭔고 하니, 세계 선진국에는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여러 조선소가 있다, 그런데 한국이 영국에서 돈을 빌려 50만~60만t급 큰 도크를 만들어 30만t급, 50만t급 등 세계 최대의 배를 만들고 그걸 팔아 원리금을 갚겠다고 했는데, 내가 선주라면 한국에 주문 하지 않겠다, 누가 후진국 조선소에 그 엄청난 배를 주문하겠느냐, 한국이 지금까지 그런 큰 배를 한번도 만들어보지 못했고 경험도 없는 그런 나라 아니냐, 그런데 정 회장 같으면 주문을 하겠느냐? 내가 선주라면 주문을 안 하겠다, 이렇게 나온 거예요. 야…아찔한 겁니다. 그 순간 숨이 탁 막혀요. 그러니까 배라는 것은 다른 상품처럼 미리 만들어놓고 파는 것이 아니고 주문에 따라 제작해 파는 거니까 선주가 주문을 안 하면 만들 수도 없는 거고, 배를 만들어 팔지 못하면 돈은 갚을 수 없지 않으냐, 그런 얘기 아니에요?”
결정적인 관문이라고 할 수 있었겠군요.
“배를 주문하는 선주가 있어야 되겠다, 말하자면 배가 팔린다는 증명을 가지고 오든지 배를 주문하겠다는 선주의 계약서를 가지고 오라는 소리지요. 사실 그 얘기가 이치에 맞고 아주 사리에 맞는 얘기예요. 그러니 정말 결정적으로 탁 막히는 거지요. 그건 내가 답변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선박을 발주할 선주가 할 수 있는 대답이란 말이에요. 눈앞이 노랗더라는 말을 그때 내가 실감했어요. 근데 우리 정부에서는 내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가도 모르고 부총리가 밤만 되면 잘돼가지요? 이러면서 전화야, 미치겠어. 하하항.”
해결책을 찾아야 했을 것 아닙니까?
“당장 방법이 없잖아요. 국장한테는 선주를 찾아보겠다 하고선 맥없이 물러나오는 거지요.”<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몽준은 연애 못해 중공업 맡겨”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데…연애 못하니까 ‘항구’가져야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⑥
아무튼 수출신용보증국(ECGD) 국장을 만나고 나온 정주영 회장은 낙담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다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야 했다. 이 시점에서 정 회장이 흥정할 수 있는 자산이라고는 세 가지뿐이었다.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백사장 부지를 찍은 사진 한 장, 그곳을 측정할 수 있는 5만분의 1 지도 한 장, 스콧 리스고에서 만들어준 26만t짜리 유조선 도면 한 장이었다. 그러니 있지도 않은 조선소에다가 만들지도 않은 배 그림만 들고 선주를 찾겠다고 했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완전히 ‘봉이 정선달’이더라는 것이다.
“내가 강원도 통천에서 내려와 가지고 광화문만 한 집을 짓고 살 테니 두고 보라고 했던 것부터 남들이 들으면 봉이 정선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가 않았지 뭘 그래, 하하항. 그런 기분으로 덤벼들고 있었던 거예요.”
롱바톰 회장도 ECGD 국장이 선주 없이 차관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자기도 그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는 거지요. 나도 미처 선주가 있어야 한다는 예상은 못했으니까요. 그분한테 얘기를 죽 하니까 무릎을 탁 치면서 뒤늦게 국장 말이 맞다는 거예요. 근데 롱바톰 회장이 나중에 자세히 알고 보니까 애플도어에서 단순히 회장만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국 총리 밑에서 하원의원으로 있었는데 쟁쟁한 분이었어요. 사실 능력 있는 사람은 절대 자신의 과거 얘기는 안 하거든?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미래가 없는 사람이 자기가 왕년에 뭘 했고 하면서 잔뜩 과거 얘기만 늘어놓잖아요. 롱바톰 회장은 과거를 얘기 안 하니 몰랐는데 좌우간 그렇게 됐다면 선주를 찾아보자는 거예요.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을 총동원해서라도 그리스 선주를 찾아봐야겠다고 말이지.”
“말뚝이라도 박아놨어야지”
왜 하필 그리스 선주입니까?
“아, 그분의 처가가 그리스였어요. 그 당시 세계 해운업계의 흐름이 그리스가 잡느냐,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잡느냐 하는 경쟁 분위기였거든. 그러니까 과거 수백 년간 세계 해운업계를 주도했던 나라가 그리스였는데 그리스 해운사들이 가지고 있는 주력선들이 아주 낡고 노후해서 비틀거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 판국인데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해운사들이 그 무렵 막 추격을 해온 거지요. 그러니 그리스에서는 새로운 선박들을 구입해야 경쟁력을 복원할 거 아니에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전략이었지요. 그래놓고 선주를 찾는 동안 일단 나는 서울로 잠시 들어왔어요.”
국내가 불안해서였다. 운이 좋아서 이내 선주를 찾는다고 할 경우 그들이 조선소 부지라도 보자고 한다면 즉시 안내를 해야 하는데 전갑원(전 현대건설 부사장)에게 맡겨놓은 일이 어찌 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닦달하듯 궁금해 하는 부총리도 만나봐야 했다. 그동안의 협상 내용도 보고해야 했지만 선주를 찾아서 차관이 된다면 정부 보증이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울산 현장은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토목 공사쯤은 마쳤을 것으로 믿고 있었던 조선소 부지가 아직도 확정 되지 않은 상태로 줄곧 파일만 박아보는 처지였다. 난리였다. 정 회장의 성격에 초상집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여태 함마링(해머링·Hammering)도 안 하고 뭣 하고 자빠져 있는 게야! 전갑원이 어디 있어!” 전갑원 차장은 또박또박 이유를 내세웠다. 부사장을 끝으로 현대를 떠났으나 당시에 부장급만 됐어도 겁에 질려 찍소리 못했을 텐데 겁없는 차장급이라 현장 상황을 곧이곧대로 내세웠다.
“회장님께서 사진 찍어서 나가셨던 부지부터 사실은 암반 조사를 해보니까 암반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곳을 다시 실사했는데도 역시 아니고….”(전갑원)
“임마! 너는 계속 아니라는 소리만 하고 다시 찾은 곳도 또 아니라는 소리 아니야! 롱바톰 회장이 현장도 와보고 사진까지 찍어서 보여주고 왔는데 거기가 아니면 어쩌자는 거야?”(정주영)
“두 번째 부지도 아닌데 어떡합니까? 아무리 박아도 암반이 나오지 않습니다.”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찾아서 말뚝이라도 박아놨어야지! 내일 당장 선주가 온다고 하면 어쩔 작정이야?”“제 마음대로 박습니까?”“박아 임마! 박는 건 네 책임이라고 했잖아! 박았는데 안 나오는 것도 네놈 책임이야!”훗날 주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를 위해 정인영 사장과 담판을 짓기도 하는 전갑원이라는 인물은 해외 건설 경험이 당시로서는 가장 많았고 토목 공사에서는 베테랑이었다. 게다가 그는 캐나다로 조선소 견학을 다녀온 입장이어서 그의 시각으로 부적합한 부지라고 할 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봐야 했다. 물론 그 이유가 뒤에 드러났지만 지반과 지형이 조선소 부지로는 부적합했다는 것이다.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최종 선정한 장소가 지금의 현대중공업이 들어선 미포만 일대다. 태초에 잡았던 자리는 지금 현대자동차 공장이 세워져 있다. 김학렬 부총리는 그때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을 것 아닙니까?
“서울로 돌아왔다고 연락을 하니까, 자기 방에서 만나지 말고 당장 대통령 앞에서 만나자는 거예요. 된다는 소리만 듣겠다 이거지, 하하항. 그래도 뭐 설명을 안 할 수 없고, 우선 선박을 발주할 선주를 찾는 게 시급하다고, 그게 된다고 해도 정부 보증이 있어야 차관을 해준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죽 했어요. 근데 뭐 다른 얘기는 들을 생각도 안 해. 아이고 잘 됐다고, 정부 보증은 차관만 되면 열 장이라도 끊어줄 테니 됐고, 차관으로 조선소 건설 자금을 해결했다는 그런 소문만 나버리면 선박 주문이야 얼마든지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아 이러면서 당장 각하한테 보고 드리러 가자는 거예요. 완전히 거꾸로 해석을 해버리면서 너스레를 떠니 미치겠는 거라, 하하항.”당초 조선소 부지엔 현대차가 대통령한테 갔습니까?
“가긴 어떻게 가요. 지금은 반반이다, 그러니 선주를 찾는다는 전제를 하고 부총리가 경제부총리니까 확실히 보증을 보장해줄 수 있겠느냐고, 그걸 다짐해 달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되레 큰소리야. 열 장이라도 끊어준다고 하지 않느냐고 말이야! 하하항. 근데 그 양반도 보통이 넘는 사람이에요. 뭐라고 하는고 하니, 정 회장, 건설 사업은 앞으로 별 볼일 없다, 날 샜다, 조선 사업 같은 중공업이 대안이니까 이걸 꼭 잡으라고 말이야, 아 이러네? 어떡하든 조선소를 하겠다는 정부 야심 때문에 저런 소리를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내 주력 사업이 건설인데, 경제부총리가 날 샜다고 하니 얼마나 흔들리겠어. 다시 물었지. 앞으로 별 볼일 없고 날 샜다면 그게 정부 정책이라서 그러냐고. 그랬더니 이 양반이 어찌나 빠른지 얼른 정 회장 같이 다방면에 유능한 사람은 제외하고! 이러잖아, 하하항. 그러니까 조선소밖에 생각하는 게 없었던 거야.” 사실 정 회장도 조선 산업이 하나의 대안이라는 것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건설업은 공사를 수주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기업은 활력이 넘쳐나지만 공사가 끝나면 썰물 빠지듯 흩어지고 만다. 새로운 공법과 아이템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단순 건설로는 기업의 장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60년대 말 전체 외화수입의 20% 넘게 차지했던 월남 특수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정부의 중화학공업 정책에 편승하고 연관 산업도 내다보면서 새로운 사업의 돌파구를 열 수 있다면 역시 조선 산업이었다. 더구나 풍부한 노동시장이 있고 그동안의 건설 경험까지 살려 도전해본다면 해외의 조선 물량도 넘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정 회장이 살아생전 재산분배를 할 때 유학을 시킨 정몽준(현 국회의원)에게 “바다는 네가 먹는다 생각하고 공부를 해보란 말이야”라고 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조선하고는 조금 다른 얘깁니다만 몽준 회장이 조선에 관심이 많았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뭘 맡겨도 다 잘하게끔 돼있어. 내 피를 물려받았고 내 유전자(DNA)를 가지고 있는데 2등 기업을 하겠어? 하하항. 근데 몽준 의원은 연애를 잘하지 못해서 중공업을 맡긴 거예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데 연애를 못하니까 항구를 가져야 할 거 아니야. 중공업이 미포항 일대를 다 먹은 거 아니겠어? 하하항.”몽준에게 “바다는 네가 먹는다”
그 후에 다시 런던으로 가시지 않았습니까? 선주는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까?
“쉽게 되는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요. 온갖 정보를 다 수집하고 별별 사람 다 만나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결국은 찾았는데 그게 선박왕이라는 오나시스의 처남인 리바노스라는 선주였어요.”리바노스를 만나게 되는 배경이 있었다. 롱바톰 회장의 친구인 선박 브로커가 리바노스를 소개하기도 했지만 때마침 리바노스는 싼값에 발주할 수 있는 조선회사를 찾고 있었다. 그는 국제 해운업계를 주름잡고 있던 그리스 선단의 대표급 집안으로 1세기 이상 해운업을 해온 그리스에서도 몇 안 되는 선주였다. 그러나 당시는 저물어가는 그리스 해운업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동안 일본에서 값싼 배를 몇 번 구입해 재미를 톡톡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 신생 조선국에서 선주를 찾고 있다는 정보를 듣자 현대가 싸게 해준다면 협상해 볼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이다. 훗날 두 척을 발주해놓고 달러가가 상승하자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한 척은 인수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도 싼값 흥정의 맛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정 회장이 만난 리바노스는 ‘스타브러스 리바노스’가 사망하고 뒤를 이어 가문을 이끌고 있던 ‘요르거스 리바노스’였다. 그 사람도 그리스의 대표적인 선주인데 신생 조선회사에 선뜻 발주를 하겠다고 응했습니까?
“장난감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응하겠어요? 우리가 가지고 간 울산 백사장 찍은 사진하고 스콧 리스고에서 만들어준 26만t짜리 유조선 도면을 꺼내놓고 잔뜩 설명을 하는 거지요. 그러고 뭣보다 애플도어 회장이 권했고 조건도 좋으니까 유조선 두 척을 발주하겠다고 ‘일단은 오케이’를 했어요. 근데 오케이면 오케이지 일단은 뭐냐고 했지. 그랬더니 영국에서 상담을 하고 계약을 하면 자기가 배를 인수해 와도 세금이 왕창 붙게 돼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세금이 안 붙게 자기 별장이 있는 스위스 중립국으로 가자고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자기네 자가용 비행기를 영국으로 불러요. 그땐 나도 자가용이 없는데 되게 건방지대, 하하항.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의 리바노스 별장으로 갔지요. 몽블랑 산모리츠 소재의 그 별장이 또 스위스에서 유명한 스키장이래요. 돈 꾸러 나가서 별 곳 다 댕긴 거지요, 하하항.”<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500만 달러는 술값으로 하겠다`
그리스 선주가 `16% 깎자`…한국 정부선 `차관 보증 못해준다` 돌변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⑦
조선소를 건설하기 위한 정주영 회장의 행보는 사실 눈물겨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모든 일이 성공한 다음의 회고는 웃음이 묻어나게 마련이지만 가난한 한국의 일개 건설업자에 불과했던 사람이 유럽의 중심부를 파고들며 차관을 하고 26만t에 달하는 유조선을 발주해달라고 선주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누가 봐도 미쳤다고 할 만큼 어려운 고행이었다. 전 현대중공업 사장이었던 유관홍 성동조선 회장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무렵은 가발 팔러 다니고 그럴 때 아닙니까? 가발 한 컨테이너 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당시 우리나라 전체 수출 물량이 12억 달러가 안 되던 때고 지금 생각하면 (2006년 12월, 세계 11번째 3000억 달러 달성) 정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인데, 조선업을 누가 하겠다고 했겠습니까? 조선소를 봤다고 하는 기업인도 몇이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엄청난 조선산업은 엄두조차 내는 사람이 없었을 거라고요.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보면 조선산업이 어떤 거다 하는 걸 짐작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덩치를 그 당시로 가져가서 생각한다고 해보세요. 나설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지금에 와서 현대가 시작 안 했으면 누군가는 했겠지, 그렇게 가상적으로 말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자꾸 누군가는 했을 거라고 (정 명예회장을) 평가절하한다면 그건 당장 반문을 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정 회장의 회고는 계속됐다. 워낙 기억력이 비상한 인물이라 몇 줄의 메모만 앞에 놓고 있었을 뿐 시종 기억으로 당시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분위기를 상당히 찾는 편인데 눈 덮인 별장에서는 순순히 계약을 했습니까?“그게 참 애간장을 다 태우는 거야. 계약을 하게 될 테니까 백충기 하고 황병주, 통역하는 김준식이까지 데리고 근사한 별장에 도착을 했는데 첨에는 고급술을 좍 차려놓고 한잔 마시면서 금방 서명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아요. 자기가 본 것처럼 현대 칭찬도 막 늘어놓으면서 말이지. 그러니 런던에서 일단 좋다고 했으니까 나도 사인만 하면 된다고 믿었죠. 근데 설계도면을 다시 보자면서 펼치더니 대뜸 16%나 깎자고 그러잖아. 술이 확 깨잖아요.”“다음에 날짜 잡아서 의논하자”가격이 얼마인데 16%나 깎는다는 말입니까?“그때 25만9000t 선가(船價)를 척당 3600만 달러로 해서 유조선 2척에 7200만 달러를 제시했는데 그렇게 나오니 말이야. 척당 근 500만 달러를 깎고 배도 2년 6개월 만에 건조해야 한다는 거라. 그런 조건을 이행 못하면 원리금 전액을 변상하기로 그렇게 계약하자는 거지요. 그러니 스위스까지 와가지고 다 됐구나 했는데 그렇게 배를 내미니 말이지, 환장하겠어. 정말 고민하는 거예요. 공기는 얼마든지 맞출 자신이 있는데 16%나 깎자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야.”그러나 정 회장은 원가 계산에 집착해 단안을 주저하는 법이 한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손해 보는 장사는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65년도에 태국에서 고속도로 공사할 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이때에도 조선소 건설 공기를 단축하고 선박 건조를 조기에 달성하면 16% 정도는 만회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행했던 팀들이 처음부터 너무 양보했다고 버틸 것을 주문했다. 어떻게 결론을 내리셨습니까?“술이 확 깨는데 술을 한잔 더 먹고 하자 했지요. 그러면서 확 마셨어. 그랬더니 리바노스 이 친구가 첨에는 술도 부어주면서 웃고 그랬는데 점점 못마땅한 얼굴로 변해. 근데 느닷없이 리바노스가 자기가 선가를 좀 더 알아보고 다음에 날을 잡아서 다시 의논하자고, 이렇게 나오네.”계약을 미루겠다는 것 아닙니까?“리바노스도 버티는 거지요. 다음이 어디 있어? 별장까지 자기 비행기 보내 불러들였는데 다음에 하자는 생각이겠어? 자기 요구대로 할 거냐 안 할 거냐 그거야. 그리스 국민성이 또 개인적 성향이 아주 강하고 그리스·로마 시대만 해도 그리스어(헬라어)가 지금의 영어처럼 세계 공용어였잖아요. 그러니까 자존심도 강해.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한테 그리스인이라고 하면 아주 싫어해. 원래 ‘그리스’가 ‘노예’라는 뜻이거든. 좌우간 다시 날 잡자는데 미치겠어. 그게 1~2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사실 피가 마르는 거예요. 그렇지만 일어나면 끝이야. 어떡해, 내가 그냥 오케이 할 수는 없고 그랬지. 좋다고, 깎아주는 건 오늘 마신 술값으로 하자고, 우리는 동방예의지국 국민이라 남의 별장에 초대받으면 빈손으로 못 오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양보하겠다고, 그렇게 나간 거야. 그랬더니 이 친구 눈이 금방 황소만 해져. 500만 달러를 술값으로 하겠다고 했으니 말이야, 하하항.”회장님 그릇이 보통 아니라고 생각했겠네요. “어차피 양보하는 거 우리 국민성이라도 느끼게 해줘야겠다고 한 거지,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는데. 하하항. 근데 사실 그때는 16%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우리 현대가 신생 조선소 아니에요. 그러면 무엇보다 첫 수주가 제일 중요해요. 그게 말하자면 조선소의 이력서가 되는 거거든. 누구로부터 몇 t급을 수주했느냐, 이걸 가지고 국제금융의 여신과 보증할 때 참고가 되고 다음 선박을 수주하는 데도 절대적 효력을 미치는 거란 말이지. 그래서 좋다고, 같이 갔던 직원들이 내 옆구리를 계속 찌르면서 좀 더 버티자고 했지만 찬스라는 게 있는 거거든.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우리 돈으로 환산해 14억원을 수표로 받았는데 냉큼 우리 한국은행에 입금을 시켰죠. 그게 1971년 12월 5일이에요. 내 생일은 잊어버리는데 그날은 못 잊어, 하하항.”일본 언론, 우리 조선산업 매도 그야말로 대한민국에 대형 조선소가 태어날 수 있도록 잉태시킨 날이 됐군요. “그렇지요. 지체할 시간이 있어요? 그때부터 시간 싸움이고 카운트가 시작되는 거거든. 관광이 어딨어, 입금시킨 서류하고 계약서를 들고 즉각 영국으로 나와서 ECGD 국장한테 그 서류를 턱 내놓으니까 그 사람이 진짠가 해서 눈이 커지는데, 그걸 쳐다보는 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말아야, 하하항. 군소리 없이 결재를 해줘서 차관이 성립됐지요. 참 기가 막힌 과정이지만 어떻게 보면 리바노스가 우리 조선소의 한 은인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돼요. 지금도.”훗날 드러났지만 이 당시부터 이미 일본은 조선 시장에서 한국은 절대 대형 선박을 건조할 능력이 없다고 루머를 퍼뜨리고 있었다. 상무관을 동원해 선주들에게 한국의 조선업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겨우 5만t급밖에 만들지 못하니 도와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비열한 방해공작까지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시장을 먹기 위해 어떤 면에서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언론 플레이라는 분위기를 느끼게도 했지만 일본의 대형 일간신문이 한국의 조선산업을 형편없이 부정적으로 들여다보는 기획기사를 쓰기도 했던 것이다. 그게 지난 88년 7월이었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연재한 기획기사 일부는 이렇게 파들어가고 있었다. “부산시 근해 46㎞에 떠있는 거제도. 비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가운데 한국 제2위의 조선회사. 대우조선공업의 문을 들어서면 거대한 크레인이 우뚝 솟아있다. 높이 110m, 끌어올리는 능력은 세계 최대. 미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로켓 발사대를 매입해 겨우 설치한 것이다. 발 아래에는 13만5000t 중량의 유조선 등 5척이 있었고, 근처 도크에서는 25만t의 대형 탱커(VLCC)가 건조 중이었다. 텅 빈 선대(船臺)나 도크가 일본의 조선소와는 큰 차이다. 대우는 조선업에 진출해 8년. 그동안 한번도 흑자 시기가 없었다. 영업의 신(神)으로 불리는 김우중 회장은 톱 세일즈에 착수해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장미 선적 화물선 3척을 수주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거액의 적자는 쉽게 줄 것 같지 않다. 부산에서 북동쪽으로 약 60㎞, 세계 최대의 조선소로 성장한 울산의 현대중공업을 찾아가면 방대한 조선소의 9기(基) 도크나 선대에 13척의 탱커(VLCC)가 위용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익 없는 번영이었다. 한국조선공업협회 조사에 의하면 가맹 12개사의 지지난해 적자는 총 886억원에 이른다. 한국 조선이 왜 이러한 적자를 보게 된 것일까. 관계자가 일치되게 지적하는 원인은 네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1년 반 동안 원화가 18% 절상되면서도 여전히 상승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지난해 ‘6·29 민주화 선언’ 후 노사분규로 임금인상 투쟁이 일어나 2년 동안 37% 상승한 것. 셋째로 철강재나 기기, 자재값이 1년에 50% 이상 오른 것, 넷째는 30~40%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수출 선박용의 기기와 자재가 엔고(円高)로 고가(高價)가 된 것이다.”보증서 받기까지 애 먹기도그러나 지금의 상황도 일본은 이렇게 부정적이기만 할까? 일본의 거대 언론들은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한국의 조선산업 발전을 보며 경악에 가까운 신음을 토해내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ECGD에서 승인을 했고 버클레이 은행에서도 차관을 결정하게 된 것 아닙니까? 그 절차는 수월했습니까?“영국에서는 완전히 오케이를 했는데 그때부터는 우리 정부하고 마찰이에요. 이건 얘기 안 하려고 했지만 당초에 부총리가 차관만 얻어내라고 말이야, 대통령께서도 직접 뭐든지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버클레이은행에서 차관을 해주려면 한국 정부가 보증을 서줘야 하는데 그 무렵 우리 정부가 수출하는 기업들한테 보증을 해줘서 부도가 나고 아주 엉망이 된 일이 있었거든? 거기에 놀라가지고 정부에서 이젠 보증 못 한다고, 현대만 왜 도와줘야 되느냐고 말이야, 아 이러고 나오니 말이지.”보증을 해주겠다는 약속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내 말이 그 말이야. 보증도 보증 나름이지, 이건 국가적인 사업 아니에요. 근데 뭐 변소 갈 때 급하지 나오면 그만이라는 거 하고 똑같애, 빌어먹을 것들이 말이야. 어찌나 속이 뒤집어지는지 집어치울 생각까지 했어. 그런데 뒤에 알았지만 대통령께서는 그걸 모르고 계신 거야. 그래가지고 김학렬 부총리한테 이제 어떡할 거냐고, 확실히 보증을 보장해줄 수 있겠느냐고 다짐을 받을 때 열 장이라도 끊어준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이야, 정부 보증서 없이는 글렀으니까 집어치우자고, 그랬더니 어? 이 양반은 도리어 태평이야. 걱정 말래요. 아니, 상공부에서 못한다고 그러는데 무슨 소리냐고 그랬지요.”경제부총리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나도 나중에 알았는데 그걸 ‘그림자 보고’라고 한다는 거야. 부총리가 총리 안 거치고 직접 대통령한테 보고해서 재가를 받아버리는 거래요. 나중에는 다 알게 되지만 재가받기 전까진 뭔가 보이기는 보이는데 정확히 모른다는 거지, 하하항. 그래가지고 얼른 보증서 보내서 차관이 성립됐지요.”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정 회장 시작이 아니라, 끝이 반이야!`
`다 됐다` 보고에 박 대통령 진노…부지 매입하다 투기꾼으로 몰리기도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⑧
1971년 12월, 정부의 보증서가 날아가자 영국의 버클레이은행을 중심으로 스페인·프랑스·독일(옛 서독)의 은행들이 참여하는 국제 차관단이 구성됐다. 곧이어 스웨덴까지 합류해 마침내 72년 4월, 근 2년을 고생하며 추진했던 차관은 당초 현대가 계획했던 금액보다 많은 5057만 달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이 얌전하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국내 문제였다. 사실 정부는 파격적인 특혜를 현대에 제공한 셈이었다. 민간 차관에 정부가 보증을 하겠다고 한 것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5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보증한 예는 처음이었다. 다른 기업에서 볼 때는 그것이 비록 정부의 강력한 4대 핵 공장 건설의 하나에 투입된다 하더라도 웬만한 곳은 보증신청도 받아주지 않으면서 현대만 엄청난 보증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는 것이었다. 더욱이 71년 무렵은 정부가 차관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었다. 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 원칙 없는 민간 상업차관 도입으로 광범위한 부실기업을 낳게 되자 정부는 69년에 이미 부실 차관기업 중 85개 회사를 은행관리로 넘겼고 123개사가 경영부실에 빠져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까지 소란했다. 71년 6월이었다. 임시국회가 열리자 정해영 의원이 국무위원석을 향해 질타한 것이 시작이었다. 정 의원은 국회 부의장을 지내게 되지만 기업가 출신이기도 했다. “총리 이하 전 국무위원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정부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준다면 기업 못할 사람 어디 있겠어요. 69년 정초부터 터져 나온 부실기업 문제는 기업이 부실을 만든 게 아니라 정부가 자초한 것이오. 두고 보시오. 부실기업 문제는 반드시 온갖 물의를 일으키다가 결국은 보증을 맡은 금융권마저 흔들어 놓을 거요. 이미 차관 업체, 직접투자 업체, 이런 외자기업들이 물건을 전부 수출한다는 조건으로 설립을 해놓고 국제경쟁력이 없게 되니 결국은 내수시장으로 눈을 돌려 71년 상반기만 해도 벌써 120여 개의 중소기업을 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지 않으냐 말입니다. 이래 가지고 나중에는 어쩔 작정이오? 국민한테 빚을 전가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내놓을 작정인가요.”차관 문제로 국회서 특혜 논란무서운 경고였다.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을 반추해볼 수 있는 내용들이 함축된 질타였지만 그만큼 차관 문제가 경제계를 덮고 있는 암운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현대는 6월 국회를 피해 12월에 보증을 받았다. 운이 좋다고 했지만 시선이 고울 리는 없었다. 아무리 정부 정책에 동행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개인 기업이 건설하는 조선소 건설자금을 정부가 보증해 준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정 회장도 그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결과적으로 성공했으니까 보증에 대한 남다른 평가를 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 상황에서는 정부의 보증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었다. “경제를 부흥시켜야겠다는 박 대통령의 집념이 대단했던 거예요. 그런 집념이 없었으면 정부 보증도 없었겠지. 보증은 부자지간도 안 서는 거라고 하는데 그걸 정부가 나서서 서주고 할 때는 얼마나 많은 검토를 했겠어요. 무조건 빚보증을 기업한테 해줬다,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 얘기예요. 꼭 필요한 것만 위험을 각오하고 선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국민소득 250달러 언저리밖에 안 되던 시절에 정부가 보증을 안 하면 외국에서 차관을 절대 안 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던 시절인데 어떡할 거예요? 앉아서 굶어 죽어?”71년 1인당 국민소득이 250달러 정도밖에 안됐습니까?“1000달러를 겨우 턱걸이했던 게 1978년이에요. 그래서 박 대통령을 평가하는 거야. 내가 역대 대통령 다 겪어봤어. 박 대통령이 안 했어도 누군가는 했을 거라고 그러는데 대통령 바뀔 때마다 그 시대가 다르고 여건이 다르고 경제 환경이 다 달랐는데, 그러면 그때마다 특별한 성장이 있었어야 할 거 아니에요. 어느 대통령이 그렇게 했어? 어느 대통령 때 해놓은 걸 가지고 지금 우리가 먹고 사느냔 말이야. 박 대통령 보증 선 거 가지고 탓하는 건 아주 나쁜 거야. 박 대통령이 있는 동안에 우리나라 모든 경제가 근대화하지 않았어요? 그건 보통사람 같으면 절대 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 생각을 해보세요. 아무리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이지만 아무 경험이 없는 사람한테 사업계획서만 믿고 정부에서 보증을 해주기가 쉬워요? 그 당시엔 보증을 해서 그 사업이 계획서대로 안 되고 부도가 나면 형무소에 집어넣었어. 실제로 여러 사람이 형무소에도 들어갔고. 그런 생각하면 박 대통령이 모든 규율도 추상 같았고 또 의지도 대단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가로서 이만큼 되지 않았겠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그러나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학자들의 견해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소 건설이라는 특정 사안만을 놓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점의 정책이 거대한 정부 조직은 손발을 쉬게 해놓고 모든 가능성을 기업의 협상 결과에만 매달리고 있었다는 것이 결국은 정경유착을 초래하는 근원이 됐다는 것이다. 학계에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 초기에는 실패였다고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는 얘기였다. 사업계획서 2년간이나 보관불모지나 다름없던 조선업에 도전한다는 것이 짧은 회고로서 모두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다. 드라이도크 하나를 완공하기 위해 십수 명의 스파이를 일본에 밀파해야 했던 일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추억담이다. 그리고 배를 건조한다는 것은 차라리 생명을 거는 도전이었다고 말하는 참모도 있었다. 역동했던 건설 과정은 참모들의 대화 속에 나올 것이지만 정 회장은 계속했다. 어쨌든 대통령을 만나셨을 거 아닙니까?“만났죠. 귀국해서 방금 얘기한 대로 우선 김학렬 부총리 만나서 보증 문제를 풀었는데 첨에는 대뜸 내 목이 붙어 있게 되느냐, 날아가게 되느냐 그것부터 답하라는 거야, 하하항. 그만큼 초조하게 기다리기도 했지만 명을 걸다시피 한 거예요. 그래서 염려 마시라고, 목에 깁스를 하셔도 될 거라고 했더니 막 웃고 좋아해요. 그러고선 당장 각하한테 보고를 드리겠다고 그러더니 정말 즉각 보고를 올린 모양이야. 사무실에 와있으니까 금방 대통령한테 들어가라고 연락이 왔어요. 대통령께서도 궁금해 하시니까 지체할 시간 없이 청와대로 들어가 경과보고를 드렸지요.”대통령의 반응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십니까?“박 대통령은 배를 주문받아야 차관이 된다는 그런 절차를 모르시잖아요. 그래서 조선 자금만 얻은 게 아니라 배 두 척까지 주문을 받아왔다고, 계약서 보시라고, 그랬더니 뭐 어디 비할 수 없이 좋아하셨죠. 파안대소하시는 거야. 그러면서 정부가 전적으로 도와줄 테니 기공식부터 곧 하라고 말이지. 하하항. 그런데 내가 깜짝 놀랐지만 대통령께서 탁자 서랍을 열더니 사업계획서를 꺼내시네? 우리가 처음에 대통령한테 보고한 사업계획서가 있었잖아요.”아니, 그걸 2년 가까이나 가지고 있더란 말입니까?“그걸 대통령이 보고 계셨던 거야. 선생 출신이라서 그런지 꼼꼼하게 하나도 안 버리고 가지고 계시는 거예요. 나는 다 버리고 내용도 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러니 거기에 보면 향후 20년까지 내다 본 최대 건조 능력·장비·기자재·부지 매입·건조 인력·건조 기술, 뭐 잔뜩 들어있거든? 식은땀이 나는 거야. 그걸 보고 계시니 어떤 내용을 하문하실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아니나 달라? ‘정 회장, 차관도 됐고 배도 수주했고 부지도 마련이 됐다 했고, 그럼 남은 문제는 뭐요?’ 이러시네? 부지는 물색만 했지 매입은 아직 한 게 아니란 말이야. 건조기술이니 인력이니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당시에 기술자가 어딨어요? 26만t 배는 봤다는 사람도 없는데. 그렇지만 원래 사업계획서는 말 그대로 계획서니까 뻥이 좀 들어가잖아, 하하항. 좌우간 대통령 앞에서 우물거릴 수도 없고 계획서 내용은 생각 안 나고 죽겠는 거야.”뻥을 좀 넣었다고 그러시지 그랬습니까?“2년씩이나 갖고 계셨는데 그게 될 소리야? 더구나 좋아하시는 양반한테 실망시켜 드릴 수 있어? 우선 하문은 피해가야 되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시작이 반이라는데 수주까지 해왔으니 반도 더 나간 셈이라고 큰소리쳤지. 그렇게 해서 대충 넘어가야지 어떡해. 아, 그랬더니 이 어른이 안색이 달라져요. 계획서를 덮고는 정색을 하시면서 ‘정 회장, 이 사업이 처음이고, 반드시 성공해야 되는데 시작이 반이라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런 속담 때문에 우리 제품들이 엉망이라고, 우리는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일본에는 그런 속담이 없다고, 일본에는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아예 없고 끝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고, 다 해놓고도 반밖에 못했다는 자세로 다시 살피고 검토를 하고 최선을 다해서 조선소 짓고 건조를 해야지, 그렇게 들떠서 되냐고’. 아이구…. 웃음이 싹 사라지는 거예요. 나중에 일본에 알아보라 했더니 진짜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없어. 무조건 알겠습니다 하고선 일어섰지 어떡해. 그러니 그때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조선소를 짓는 거예요, 하하항. 그 말을 잊지 못해. 아주 혼났어.”차관은 해결됐고, 그러면 조선소 건설을 본격화했을 것 아닙니까? 대통령은 부지 매입이 다 된 걸로 알고있는데 현장을 보겠다고 오시면 어떡하실 생각이셨습니까?“그래가지고 사실은 차관 얻어온 걸로 땅을 샀어요. 땅을 부랴부랴 샀는데 그때에 땅이 참 쌌죠. 전부 평당 몇천원씩 했으니까. 만약에 땅주인들이 대통령께서 현대가 부지를 확보한 걸로 알고 계신다, 그런 정보를 알았으면 땅값을 막 올렸을 거야. 땅을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상황이니까 붙잡고 더 내라면 별수 있어요? 하하항. 근데 그걸 모르니까 그쪽에서 달라는 대로 다 주고 막 샀지. 그랬더니 난데없이 땅투기 한다고 난리 났어. 남의 속도 모르고 땅투기가 뭐야? 내 평생에 땅투기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 100만 평이 넘는 땅이라야 된다 싶어가지고 막 사들인 건데 그게 될 소리예요? 근데 진짜 대통령이 내려오신다고 연락이 오잖아요.”벌판에서 기공식… 박 대통령 참석기공식이라야 도크도 없이 하는 거니까 벌판에 중장비 쭉 세워놓고 주민들 모아서 하는 것 아닙니까?“그러니깐 광활한 벌판으로 만드는 거예요. 천지개벽을 시키는 거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해놓고 거기다가 어머어마한 태극기 하나 만들어서 아주 높다랗게 꽂아놓고 이쪽에서 보탕(버튼) 딱 누르면 저 끝에서 펑하면서 오색 먼지가 치솟고, 그게 기공식이거든? 그러자니 눈에 걸리는 게 있으면 안 되잖아요. 막 미는 거지, 하하항. 그렇게 해서 대통령을 맞이했는데, 이 어른이 얼마나 흐뭇해 하시는지 기공식에서 연설 원고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하하항.”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⑨ 도크도 없이 배 엉덩이부터 만들어일본 전문가들도 놀라 - 거꾸로 공법으로 세계 기록 세워1972년 3월 23일. 울산 미포만 백사장에서 거행된 울산 현대조선소(현 현대중공업)의 기공식은 한마디로 대한민국 중공업의 기공식이었다. 박 대통령은 조선 산업에 거는 기대도 남달랐겠지만 이른바 4대 핵공장 건설이 시사하는 경제적 의미를 눈으로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지 국무위원들은 물론 서울에 상주하고 있는 각국 대사들까지 기공식 현장으로 초대했다.
울산이 생긴 이래 가장 큰 행사였다. 5000여 명이 행사장에 집결하자 식당 하나 변변하게 없던 울산에 ‘좌판식당’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저녁이 되자 밤늦도록 카바이드 가스불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행사장 입구에 내건 ‘50만t급 초대형 울산현대조선소 기공식’ 간판에 붙었던 수백 개의 풍선들도 막걸리에 취한 듯 멋대로 흔들리며 흥을 돋우었다.
연설 원고에도 없는 즉흥 연설을 할 정도로 박 대통령 기분이 좋았다면 조선소를 건설할 현장이 마음에 드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아주 흡족해 하셨지요. 기공식이 끝나고 그 많은 내빈이 단상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현장을 떠나시지 않는 거야, 하하항. 그러면서 일일이 손으로 가리키며 저기가 도크를 팔 위치냐, 저기 수심은 얼마나 된다고 그래? 이러면서 관심을 보이시는데, 내가 물속에 들어가 봤어야지? 그냥 충분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이러는 거지요, 하하항.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암행까지 시키셨더라구.”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도 몰랐지. 대통령께서 내려오셨을 때 인사를 드리니까 ‘수고가 많았다면서’ 이러시거든? 그 말씀이 나중에 알고 보니 암행을 시켰다는 암시였어. 원래 울산에 공업도시를 세우자고 건의했던 사람이…앞머리가 좀 훤하게 넓은 그 사람, (기억이 가물한 듯) 아이구…그 왜 있잖아요, 대통령이 두목이라고 불렀던 사람, 몰라? 대통령이 약주만 드시면 허벅지 자꾸 찌르면서 좋은 거 불러오라고 해서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고 했던 사람, 하하항. 입에서 뱅뱅 도는데, 나중에 장관까지 했지만 대전 사람. (김용태 장관이라고 하자) 그래! 그때는 국회의원 했는데 그 사람을 내려 보내가지고 샅샅이 보고를 받으신 거야. 공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전부 알아보라고 말이야. 그래가지고 김 장관은 민심탐방까지 했다는 거예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철거시키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는 놈들, 하루 2만 평 이상 밀지 못한 놈들, 막 조지고 그랬거든? 그것까지 다 알고 계시는 거야. 하하항. 그래도 뭐 수고했다는 거 보니까 좋게 보고를 받으신 모양이지?”
대통령에 혼쭐 난 태완선 부총리
원고에도 없는 연설을 할 때는 어떤 내용을 강조하셨습니까?“그때 김학렬씨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건설부 장관을 하던 태완선씨, 경상도 사람인데 그 사람이 부총리로서 따라왔어요. 김학렬씨가 아주 머리도 좋았지만 열정을 가지고 마음 고생을 무척 하셨는데 참 마음이 아프고 안 됐어. 부총리 석에 앉아서 진심으로 축하해줄 양반인데 말이지. 근데 재미있는 건 태완선 부총리가 대통령이 원고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니까 처음에는 가만 있더니 연설문을 자꾸 앞으로 넘겼다가 뒤로 넘겼다가 찾느라고, 하하항. 말씀의 요지는 그거야, 참 꾸밈이 없고 현실적인 얘기예요. 모든 주민들하고 어민들한테 협조하라고, 여러분 자제들은 바다에 나가 어렵게 고기를 잡다가 풍랑을 만나 불행도 겪고 하는데, 앞으로는 조선소에서 일하게 될 것이고, 고기 잡는 것보다 몇 배의 월급봉투를 집으로 가져가게 될 거라고, 그러면 바다에 잃어버리고 눈물을 보이는 가정도 없어질 것이고, 학교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자제들은 조선소로 보내 기술도 배울 수 있고, 공부시킨 자제들은 출세도 할 수 있다고, 울산에 일자리가 많다는 소문이 나게 되면 지방에서 몰려드는 인구도 늘어나고 그러면 장사하는 사람들도 얼굴이 펴질 게 아니냐, 모든 것이 다 좋은 일을 맞을 수 있으니까 현지 주민이나 모든 어민이 협조를 해주시오, 그런 말씀을 해요. 그만큼 조선소 건설에 기대와 집착이 크셨던 거지만 전부 현실적인 말씀 아니에요?”
그 당시 태완선 부총리가 조선소 건설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해서 논란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그날이야. 그것도 나중에 알았는데, 대통령이 화를 내셨다고 해서 대체 무슨 일인가 했더니 부총리 때문에 그랬다는 거지요.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가 바닷가 황무지에 천막 하나 쳐놓고 기공식을 했었으니까 거기는 대통령께서 식사할 데가 없어요. 그렇다고 식사를 따로 주문하는 것도 대통령께서는 그러지 말라 하고. 미리 비서실에 의견을 구하니까 절대 준비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렇게 되니깐 대통령께서 기공식 끝내고 대구로 올라가서 국회의원 몇몇 하고 수행한 장관들, 대사들, 관구사령관들, 그렇게 여럿이 저녁을 하셨어요. 그때 대구 관구사령관이 채명신 장군이었을 거예요. 문제는 거기서 있었던 거야. 나는 현장에 있어야 되니까 수행을 못 하고 나중에 얘기만 들은 건데, 그때가 저녁이니까 식사를 끝내고 술을 한잔씩 할 거 아니에요?”
“도크야 큰 수영장 하나 파는 것”
부총리 발언은 은연 중에라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사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깐 본의 아니게 일을 어렵게 만든다고 하신 거예요. 부총리도 그렇지, 부총리 된 지 얼마 안 됐다 해도 그 어른이 조선소 때문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는 알 거 아니에요. 4대 핵공장이라고까지 했는데 말이야. 그러니 그런 것만 봐도 박 대통령이 아니면 조선소가 될 수 없었지요. 이런 얘기는 나중에 채 장군이 내 방에 일부러 찾아와서 해준 거예요. 대통령의 집념이 대단하시더라, 부총리가 한마디 했다가 대통령한테 호통을 당했다고. 하하항. 호통을 당해도 싸지, 조선소 건설이 어디 개인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더구나 기공식 현장인데도 대통령이 직접 내려오셨는데.”
영국에 가셨을 때도 조선소 도크를 목욕탕 욕조 만들 줄 알면 만들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말을 중단시키며) 아니, 그건 말이지, 일테면 이런 거예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쪽으로 발상을 해야 한다는 뜻이야. 도크가 절대 간단치 않아요. 그거 만들면서 희생자까지 생겼어. 태어나서 구경도 못한 사람이 태반인데 어떻게 간단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뭐든지 일을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지. 지금이야 조선소가 세계적인 규모고 수주량도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니까 조선소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몰라요. 요즘 근로자들이나 일반 사람들한테 그런 얘기 해봤자 모른다구. 원래부터 있던 거 아니냐고 하는 판국에 이해를 하겠어요? 그런데 그때는 뭐든지 어려울 때고 규모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막연하게나마 엄청나다는 건 아니까 겁부터 먹고 있단 말예요. 그러니 나까지 어렵게 생각해서 되겠어요? 그래서 도크야 뭐 큰 수영장 하나 파는 거라고 했던 거지. 하하항.”
정 회장도 신이 나면 시차를 초월해 얘기할 경우가 있다. 회고 중에 ‘우리가 원자력발전소를 세울 때 배보다 몇 배 두꺼운 강판을 용접하고 모든 것을 새지 않도록 용접했는데 배는 거기에다 대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도 했다. 현대조선소가 도크를 완공하고 1호 선박을 진수시킨 것이 1974년 6월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발전 시대의 문을 열었던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상업운전이 78년 4월이니까 그 전에 본공사에 참여했다고 해도 시점상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 회장이 보여주는 발상의 전환인 것이다.
그는 불모지에서 거대한 조선 왕국 건설을 실현시킨 힘이 어디에서 나왔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것이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였다.
자금 문제를 어렵게 해결했습니다만 리바노스의 배를 공기 안에 건조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지 않습니까?
“우리 조선소는 도크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 배를 짓는 것도 그렇고 모두 세계 기록을 세웠어요. 자료 찾아보세요, 세계 조선사에 남아 있는 기록이에요. 72년 3월에 맨땅에다가 빔을 박기 시작해서 74년 6월에 첫배를 진수시켰으니 말이야. 그것도 26만 t이나 되는 거대한 배를 말이지. 2년 만에 도크 만들고 건조까지 한다는 건 상상을 못하는 일이지요. 그럼 그걸 어떻게 해냈느냐, 그것도 생각을 바꾸는 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배를 거꾸로 만드는 거야. 도크도 없지, 철판 자르는 공장도 없지, 그렇다고 도크를 완공할 때까지 기다리면 세월 다 가는데 언제 배를 만들어? 원래는 도크부터 만들고 선수(船首)와 선미(船尾)를 설계대로 조립해나가는데 그게 돼? 그러니깐 배 엉덩이부터 들이밀어가지고 도크가 만들어지는 진도를 맞춰서 선수를 조립하고, 배 몸체를 들여놓고 그런 식으로 해나간 거예요. 마구 밀어붙이는 식이지만 기다려서도 안 되고 더 나가서도 안 되니까 아주 치밀하게 진도를 맞추는 거고 도크를 만들면서 배를 짓기 땜에 절대로 치밀하지 않으면 죽어! 그런 식으로 거꾸로 배를 지었기 때문에 세계 신기록을 세운 거야, 하하항.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절대 리바노스의 배를 제 공기에 맞출 수가 없었어요.”
그 당시에도 그런 공법이 있었습니까? “있긴 뭘 있어, 다른 조선소에서는 상상도 못한 거지. 그러니깐 한번은 가와사키하고 미쓰비시에서 현대가 조선소를 만든다고 하니 격려를 해준다고 왔어요. 겉은 격려고 속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지 구경이나 하겠다는 심보로 온 거야. 그 친구들은 아직 도크도 완공이 안 됐으니까 건조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한 거지. 근데 현장을 보더니 눈이 왕방울만해져서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거예요. 갑자기 땅이 꺼졌나 근처에 다른 조선소가 있었나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거지, 하하항. 도크는 도크대로 파고 있고 한쪽에선 엉덩이부터 밀어 넣고 막 용접을 하고 있거든? 이게 뭐냐 이거야. 뭐긴 뭐야, 정주영 건조법이다 그랬지. 하하항.”
그렇게까지 하자면 조선 기술이 있어야 했을 텐데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우리나라에 조선 기술자가 있기나 했나? 우린 더구나 건설회사에서 출발했잖아요. 김영주 회장(정 회장의 매제·당시 상무)이 여기 있는 친구 저리 빼고 저기 있는 친구 이리 빼내고 하면서 배를 구경만 했어도 다 끌어다가 훈련시키고 부려대느라고 완전히 십장 노릇 했지만 그것 가지고 돼요? 어림도 없지. 정말 막막하고 힘들었어요. 그때 영이(김영주 회장을 영이라고 불렀다)가 반쯤 죽었을 거야, 하하항.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전국 엿장수 죄다 울산에 왔어”
철판 잘못 잘라 고물상 좋은 일만…일본 기술 배우려 몰래 ‘눈 사진’ 찍기도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⑩
조선소 건설의 최대 장벽은 기술 문제였다.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은 첫 장벽을 넘는 것이었다. 내 주머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 주머니에서 빼오는 것이라 차관 도입이 가장 넘기 어려운 장벽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차례에 걸쳐 조선 기술자들을 모집했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전국에서 구름처럼 지원자들이 몰려왔지만 조선소가 원하는 기술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형편에서 26만t급 선박을 건조해야 했으니 당시 형편을 들으면 누구라도 비웃을 일이었다. 이정일 전 미포조선 회장의 회고도 함께 들어보았다.
“현대가 1972년 3월에 기공식을 하고 그해 연말까지도 내 기억으로는 엔지니어들을 영국하고 일본으로 교육을 보냈어요. 영국도 몇십 명이 갔지만 일본으로 많이 보냈어요. 그래 가지고 일찍 교육 갔다왔던 사람들이 배를 건조할 기능사원들을 교육하고 그랬거든요? 선박 공장도 그때 막 기초가 올라가고 완성이 안 됐고 도크도 안 돼있었으니까 기능 인력들을 그냥 놀릴 수 없어 교육을 했는데 이게 교육이 제대로 됩니까? 요즘 기능공들에 비해 순수한 면에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성이 착했지만 심성만 가지고는 안 되잖아요.”
맞는 말이다. 70년대 초반의 일이다. 뜨내기 인생을 사는 쟁기 쥔 농사꾼에게 용접봉을 들려줬으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그 당시라면 어디 가서 배울 곳도 없었을 것이고, 생활 환경도 열악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현대가 자체적으로 처음부터 막 교육을 하는 겁니다. 정말 기초부터 시켰어요. 그런데 기능공들은 나이가 천차만별이고 교육 시키는 사람은 젊잖아요? 과장, 차장급들이 시켰으니까. 그러다 보니 아무리 가르쳐도 손이 굳어버린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리 해서 ‘등신같이 이것도 못하느냐’고 했다가 파업이 일어나기도 하고, 하하항. 그래도 배우겠다는 열성은 대단해서 마찰이 생겨도 금방 풀어져요.”
기술 가져오는 게 당연히 힘들었을 것 같네요. “기술을 가져야 먹고 사는데 다른 곳에서 돈도 주고 기술 가르쳐 주는 데가 있나요? 그러니 열심히 배우는 거지요. 그런 속에서 다들 성장을 했는데, 그때 조선소 앞으로는 포장이 안 돼 가지고 시내에서부터 버스가 하루에 6회 왕복밖에 안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산동네에 방을 얻은 친구들은 아침마다 마라톤이야, 늦어서. 하하항. 그러다가 조선팀이 정반 작업에 들어가면서부터 회사 주변에 간이주점, 간이식당, 여인숙, 이런 것들이 많이 생겨 그나마 조금 나아졌죠. 그때는 현대조선 식권이 현찰하고 같았어요. 식권 가져가면 밥도 주지만 담배, 술, 심지어 택시도 받아요. 식권 따먹기 화투도 많이 하고. 하하항. 배를 당장 만드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
현대중공업 식권 따먹기 교육은 어떤 걸 주로 시켰습니까?“그때는 두 가지예요. 자질이 좀 우수하고 경력이 많은 사람은 해외 기능 연수도 보냈어요. 그 외는 전부 기초에서부터 실습을 겸해 정반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현재 플랜트 사업본부가 있는 자리쯤 되는데, 제일 먼저 지은 게 선박 공장이거든요? 그러니까 선박 공장 밑에다 까는 격자 정반이라고, 배 몸체를 만들려면 땅바닥에다 놓고 만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철판으로 격자를 깔고 그 위에서 만들어야 되는데, 그 정반 만드는 실습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아까운 걸 몰라요. 멀쩡한 철판이 얼마나 날아가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회장님한테 혼났지, 하하항. ”
그래도 필요한 인력은 초기부터 채워서 시작을 한 셈이군요.
“원래 우리나라 조선업이라는 게 체계적으로 돼 있지 않았으니까. 처음에는 주로 신문 광고를 통해 모집을 했지요. 그러니까 전국에서 모여든 겁니다. 그런데 규모가 작더라도 조선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우대를 해 많이 뽑았구요, 나머지는 전부 뽑은 다음에 훈련을 시켜 보충했어요. 그래서 72년 말, 그때쯤 보니까 1500명쯤 됐다가 우리가 73년 3월인가? 블록(Block)을 만들기 시작했거든요? 블록은 배의 몸체를 말하는 거죠. 그러니까 선박 공장이 채 완성되기 전부터 블록을 만들었는데 그땐 기능인력이 대폭적으로 늘어났죠. 금방 1만 명이 훌쩍 넘었으니까요. ”
이런 환경에서 거대 선박을 건조하겠다고 덤벼들었으니 정주영 회장의 배짱이 아니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정 회장은 일을 해보겠다고 응모한 사람들은 거의 받아들이도록 지시했다면서 기능공들도 우수했지만 조선에 대한 기초교육만 받은 직원이라면 ‘한 놈도 버릴 게 없었다’고 할 정도로 그들을 모두 감싸며 끌고 갔다.
해외에 내보내 6개월 정도 교육 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선소 건설이 가능했다는 말씀입니까?
“내가 지금껏 이런 소리 별로 하지 않았는데,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 젊은이만큼 두뇌가 우수하고 적응력이 빠른 친구들을 보지 못했어요. 거기다가 거의 비슷하게 골고루 우수해. 눈도장 찍는다는 말 들어봤어요? 그거 아무나 못하거든? 현장을 한번만 보면 설계도면 못지않게 그대로 뽑아내. 아주 우수해요. 그건 기본이 돼 있다는 소리 아니야? 몇 번 만났다고 했던 전갑원(전 현대건설 부사장)이, 그 친구를 데리고 내가 가와사키 조선소하고 미쓰비시 가야키 조선소를 갔어요. 구경만 하기로 하고 간 거야. 사진 한장 못 찍게 하니까. 정말 구경만 하고 나왔어. 근데 숙소에 돌아오더니 전갑원이, 이 친구가 뭘 하는지 알아요? 금방 도크 규모를 그려내고 바닥 콘크리트 밑으로 수압을 밀어 올리는 유공관식이 어쩌고 하면서 드라이 도크 스케치를 해내는 거예요. 하하항. 그래서 ‘도크 규모를 어떻게 알고 그린 거야?’ 했더니 그날 전갑원이가 도크 주위를 구경하는 척하면서 한 바퀴 돌았거든? 그때 발걸음으로 재면서 걸었다는 거야. 하하항. 그럴 정도예요. 그런데도 아주 정확해. 나중에 미쓰비시 애들이 와서 보고는 뒤로 나자빠져요. 정말이야. 그러니 전갑원이가 그때 과장인가 그랬는데 전갑원이만 그런 게 아니에요. 김형벽(전 현대중공업 회장)이니 이정상(전 현대중공업 전무)이니, 백충기(전 미포조선 사장)니, 그중에 김형벽이는 아주 뛰어난 눔이고, 하여간 스콧리스고에 갖다 풀어놓으니까 이눔들이 걸어 다니는 사진기고 걸어 다니는 컴퓨터야, 그러고 단숨에 배워. 하하항. ”
“김형벽은 걸어다니는 사진기” 대단하군요. “진직(진작)부터 우리 국민이 우수하다는 건 알았지만 절망이 없다는 건 그런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확신했어. 자신감이 생기는 거예요. 그네들이 무슨 고관대작들 아들이야? 특출하게 배우고 성장한 친구들이 아니잖아. 일반적인 보통 가정에서 자랐고 배운 사람들이니까 우리나라 평균 수준이라고 보면 되는데 조선소를 건설하지 않으면 니들도 죽을 각오하고 나도 같이 죽을 준비가 돼있다고 했더니 눈에서 불을 켜고 덤벼드는데, 그렇게 믿음을 줄 수가 없고 그렇게 이쁠 수가 없어요. 물론 교대로 60명씩 갔으니까 여러 엔지니어들이 스콧리스고에서 교육을 받았고 또 일본 사카이데 조선소에도 기술연수를 보내고 그랬지만 그네들이 제 역할을 200%, 300% 다 해냈어. 가령 김형벽이 보고 ‘기자재 구입해 와. ’ 이 소리만 하면 단 한 가지도 버릴 거 없이 싹 해왔어요. 지가 언제 대형 조선소를 보기나 했어, 25만t이 넘는 선박을 만들어보기나 했어? 그런데도 어떻게 조사를 하고 어디서 알아냈는지 그때 황 머시기라고 삼성으로 간 눔이 있는데 그눔하고 같이 구라파 각국을 다니면서 조선소를 짓는 데 필요한 크레인, 프레스, 커팅머신, 이런 기자재들을 전부 계약해서 수입해 오는 거야. 크레인만 해도 종류가 한두 가지야? 귀신들이야. 그래서 내가 그걸 보고 우리나라는 절대 안 꺼진다, 그 생각을 한 거예요, 하하항. ”
여담입니다만 건설쟁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자제분 중에 누가 가장 회장님을 많이 닮았습니까?
“나도 여담인데, 밖에서는 누구라고 그래요?(웃으며, 이건 녹음하지 말라면서) 사실 자식은 아홉을 배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거든? 사람의 몸이 아홉 구멍이 있단 말이야. 이건 조물주의 뜻인 것 같거든? 근데 구멍이 모양도 틀리고 역할도 다 틀리잖아. 그러니 누가 가장 닮았다고 할 수 있어? 지 역할이 다 있는데. 하하항! (한참 웃다가)맹자가 그랬지? 천하의 우환 가운데 하지 말아야 될 세 가지만 지키면 대대손손 우환이 없다고 말이야. 그중에 하나가 애비가 자식들을 비교해 욕하지 않는 거래요. 누가 가장 닮았는가 얘기하면 나머지는 평생 나를 서운하게 생각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나도 모른다구 해야지. 하하항. ”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웃음). 모든 여건이 부족했지만 극복해 나가셨는데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아닙니까?
“그때 전국에 있는 엿장수하고 고물 장수들은 죄다 울산에 왔을 거야, 하하항. 기술자들이 6개월 훈련하고 돌아오는 건데, 그 사이에 공장을 짓고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지어져서 철판을 자르는 교육을 받고 그랬을 거 아니에요? 근데 이눔들이 철판을 자르는 게 미숙하니까 그걸 현장에서는 ‘기리빠시’라고 그러는데 일본 말이죠, 아주 쉬운 도면부터 앞에 놓고 자르는데도 멀쩡한 철판을 전부 조각조각 내서 기리빠시로 만들어 버리고 말이야. 그걸 또 혼날까봐 저 암벽 있는 쪽에다가 버리고. 그러니 고물장수, 엿장수들만 좋은 일 시키는 거야. 엿이라도 바꿔 먹지, 엿 먹다 들키면 들통날까봐 그 짓도 못하고 말이지, 하하항. 참 순진했던 거지요. 그러니 돈도 수없이 처넣고 시행착오도 엄청 경험했지만 그렇게 조선소를 만들어 나간 거예요. ”
정 회장의 회고에는 부정적 시각이 없다. 지나간 일들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왕과 신하 사이에도 정은 끊을 수 있지만 무지를 탓하지는 않는다고 했듯이 그들을 비난했으면 몸을 던져 일할 사람들이 곁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홉 구멍과 아홉 자식
얘기를 들어 보니 건설 자재들도 착오가 많았다면서요.
“그건 부지기수예요. 국내에서 오륙십만t급 도크를 짓는다는 것부터가 건국 후 처음이니까 전부 모르는 것뿐이고 겁이 나잖아요. 그런데 의욕은 대단하니까 처음부터 최고로 만들어야 된다 해서 엉뚱한 짓을 많이 했지요. 지나고 보면 엉뚱한 짓이에요. 그런 일이 숱하게 많았어요. 일테면 자갈까지 외국에다 주문을 했어. 그래서 나중에 자갈을 갖고 왔는데 보니까 그나마 강도가 약해서 못 쓰는 거야. 그러니 그걸 전부 버리고 우리 한국 자갈을 썼어. 그렇게 서툴렀다는 거지요. ”
그런 여건에서도 기록적인 조선소 건설을 하셨으니까 해외 조선사들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배 엉덩이부터 들이밀어서 건조를 하고 아주 치밀하게 진도를 맞추고 그렇게 해나가는데 미쓰비시에서 말로는 격려를 해준다고 왔지만 조롱하려고 들여다보고는 나자빠진 거 아니에요. 그니깐 조선소 하나만 짓는데도 다른 나라 같으면 최소한 3년은 걸려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3년이 안 돼서 큰 조선소도 완공시켰고 조선소 완공과 동시에 배까지 건조해서 양도를 했으니까 말이지요. 이건 세계 조선사 어디에도 없지요. 그래서 세계 조선 역사에 많은 신기록을 낸 거예요, 현대 조선소가. 하하항. ”<계속>
`멍청한 것들 만날 시행착오야`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⑪
주문 많이 해 물자 태산같이 남아…그래도 후회한 적 한 번도 없어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⑪
전 세계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와 건조 실적을 매년 발표해 온 일본의 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가 공식적으로 선박 수주와 건조 물량에서 한국의 현대중공업(조선 부문)이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조선 부문 세계 1위로 선정됐다고 처음으로 발표한 것이 1985년이었다. 그 후 현재까지 몇 번의 순위다툼은 있었으나 세계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현대중공업이지만 세계 1위라는 위업을 달성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13년이었다.
허허벌판에서 기공식을 한 후 13살의 나이에 세계 조선업계를 석권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적 통계를 보면 별도의 조선소 건설 기간도 없이 지난해(2006년) 말 집계로 전 세계 45개국 229개 선주로부터 1230여 척을 수주해 현대그룹 계열사가 운항하고 있는 단 1척을 제외하고 모두 성공적으로 인도했고, 여기에 선박 종류까지 살피면 만들지 않는 것은 있어도 만들지 못하는 선박은 없다고 할 정도가 된다. 이러한 저력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을까? 힘의 밑거름이 됐던 과거사를 정주영 회장은 육성으로 남기고 있다.
“스코트리스고 측에서는 선박 기술을 자문하는 거지요. 토목공사는 우리가 스코트리스고보다 나은데 자기들이 뭘 참여해요, 하하항. 입지는 언젠가 내가 얘기해 주지 않았나? 남궁연씨라고 있어요. 옥포조선소라는 것을 하다가 본인은 실패하고 대우로 넘어갔지요. 나도 얘길 나중에 들었는데, 그 양반이 아주 귀한 정보자료를 가지고 있었대요. 일제 때 일본애들이 우리나라 해안, 수심, 조류, 이런 모든 걸 조사한 자료를 입수해 가지고 있다가 혁명 나고 김용태 최고위원한테 줬다는 거예요. 기공식도 하기 전에 암행을 왔다는 사람 말이에요. 그 양반이 사실상 전경련도 만들었으니까 혁명 나고 기업인들을 많이 접촉했을 거야. 김용태씨가 박정희 의장한테 건의해 울산공업단지를 구상하게 됐는데, 그때 그 자료에 보면 미포만이 최고라고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일본에서 우리나라 해안 정보는 다 가지고 있었던 거고, 그거 얘기 다 하자면 길어요.”
日, 가지마건설이 설계 맡아
일본에서 조선소는 가지마건설이 도맡아서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쿠라마 소장이 자문을 하면서 한국말을 배워가지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이 남겼다는데 회장님도 들으셨습니까?
“하하항, 가지마건설을 된발음으로 하면 카지마가 돼요. 우리 직원들도 카지마, 카지마, 그랬어. 그런데 울산 사람들이 경상도니까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그카지마, 그카지마, 그러거든? 근데 그때 조선소 밖에 찻집이 하나 생겼던 모양이야. 연구소장이 점잖은 사람인데 어쩌다 거기 레지 손을 한번 잡으니까 그 아가씨가 ‘그카지 마요 그카지 마요’ 그랬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소장이 ‘응, 나야, 응, 나야’ 그랬다는 거야, 하하항. 그카지 마요 하니까 자기가 그 카지마 맞다 그거지. 그래가지고 사이가 좋아져서 우리 직원들이 엄청 자료를 얻었대. 나도 얼마나 웃었는지 말이야. 하하항. 별일 다 있었지.”미쓰비시조선소도 가지마에서 짓지 않았습니까? “맞아. 미쓰비시와 가와사키 조선소도 건설은 가지마건설이 맡았어요. 우리가 처음부터 가와사키 규모 이상으로 조선소를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에 가지마의 자문을 받은 거지요. 그런데 규모나 공장 레이아웃은 스코트리스고에서 자문을 했으니까 기본 도면은 영국에서 가져왔고, 건조에 필요한 상세도면이 없었는데 그것은 가와사키에서 얻었어요. 젠지 우메다 회장하고 아주 가까워서 그걸 얻은 거예요. 배를 건조하자면 반드시 있어야 되는 상세도면인데 그걸 아무나 주나? 사실 그분 덕분에 첫 배를 완성시켰어요. 상세도면에 대해 지도도 해 주고. 도면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거든. 도면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가와사키가 전적으로 잘 도와주지 않았으면 첫 번 배를 제 날짜에 만족스럽게 만들어서 인도하기가 힘들었을 거예요.”당시 건조 현장에서 뒹굴었던 엔지니어들의 기억은 가와사키가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섬세한 설계를 제시해 과연 그대로 해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이 많았다고 했다. 현장의 건조팀들은 가와사키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잡아먹게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정일 전 미포조선 회장도 그랬던 기억을 풀어놓았다. “우리가 6호선까지는 일본 가와사키(KHI)조선소의 설계로 제작을 했고, 7호선부터 현대도 설계에 참여해 8호선부터는 현대가 독자적으로 기본 설계를 했는데 초창기 때는 가와사키도 감독을 했지만 유럽 쪽에서 감독이 많이 왔었어요. 선박 건조를 우리가 잘 모르니까요. 그럴 때 도면상으로 요구한 것이 정밀기계 허용오차 정도로 아주 정확하게 만들라고 돼 있었단 말입니다. 그건 실제로 시간만 낭비하는 건데, 포항제철에서도 산소공장의 기초 같은 것을 할 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기계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너무 정밀하게, 예를 들면 10배 이상으로 정밀하게 표시하는 일도 가끔 있었어요. 물론 왜 그렇게까지 요구하는 도면을 줬을까에 대해서는 여러 시각이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골탕을 먹이고 시간을 끌게 하자는 속셈이 아니냐 하는 소리까지 나왔지만 결국은 당시 우리 엔지니어들이 너무 정밀하다 싶어서 일반적인 기준으로 해버렸거든요? 그랬더니 통과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엔지니어들의 판단이 맞은 거지요.”설계도는 배를 발주하는 선주 측에서 가져오지 않습니까? “리바노스도 그랬지만 배를 수주할 당시에 선주들은 주로 중요 재원만 얘기를 하지요. 이러이러한 배다, 배기량은 얼마고, 짐은 얼마를 싣고, 엔진은 대략 어떠어떠한 것을 써라, 상세설계까지 선주가 해오는 경우도 극히 드물게 있긴 했지만 대부분 재원만 정해서 오면 그때부터 우리가 상세설계에 들어가는 거예요. 물론 처음에는 우리한테 설계를 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가와사키에서 완성돼 있는 설계를 가지고 와서 시작을 했지요. 그걸 일명 생산설계라고도 하는데 좌우간 시행착오라는 착오는 다 겪어가면서 한 거야.”자체적으로 설계 능력이 안 되면서 시작을 했으니 오죽 시행착오가 많았겠습니까?“발주자가 보내오는 1차 설계는 사실 설계도도 아니고 그냥 그림이거든? 자기들이야 머릿속에 들어있으니까 알지만 그걸 가지고 생산부에서 배를 만들 수는 없지요. 그래서 상세설계에 들어가는데 그때부터는 필요한 자재가 도면에 나오니까 즉시 자재 발주를 해야 되거든? 자재가 오늘 발주해서 내일 들어오는 게 아니고 구매 기간이 필요한 거니까. 철판만 해도 지금은 대부분 포항제철에서 들어오는데 그 당시는 일본에서 들어오는 게 많아서 시간이 걸리지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자재 구매에서부터 시행착오야 멍청한 것들이 말이야, 하하항. 그래도 뭐 기업은 시행착오가 투자이기 때문에 후회는 한 적이 없지만 하여간 가와사키의 도움이 컸고 조선소 입지도 가와사키 회장이 직접 와서 나하고 같이 둘러봤던 기억이 나요.”조선소 입지는 적합성을 검토하는 일이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입지 선정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피를 말리는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현대가 제2제철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사실은 남궁연 사장이 입수했다는 일본의 군사자료를 참고해 가로림 지역까지 조사했지만 그 많은 것을 일본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새롭게 알려진 사실이다. 여하튼 건설은 시작됐고, 공사 때마다 부닥치게 되는 기술적인 문제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해결하지 않으면 진척이 될 수 없는 고민거리였다. 가와사키 측이 자문을 해준다고 해도 상대는 회사가 아니라 기술자 개개인들이다. 회사의 원칙은 도와주라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기술을 쥐고 있는 엔지니어가 ‘꼬장’을 부리면 속에서 천불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또 연수받으러 간 기술자들마다 재주가 있어서 기막히게 뽑아냈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처음에는 설계도면도 볼 줄 모르고 설계도가 없기도 해서 일본 것을 훔쳐오기도 하고, 열성들이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훔쳐오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훔쳐왔다고 혼낸 적도 한 번도 없고. 하하항. 일본에서 저네들끼리 술 한잔 하면서 얻어온 정보는 있을지 모르지만 훔쳐온 것은 없고, 가와사키가 협조를 잘 해주었으니까요. 다만 방금도 얘기했지만 뭣보다도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그때 수량을 뽑는 것도 보면 전부 잘못 뽑아가지고, 이를테면 철판을 주문하는데 배 6척 만들 만큼만 하면 되는데 얼마나 주문했는지 12척을 만들어도 물자가 태산같이 남았어. 그렇게 서툴렀다는 얘기예요. 당시에는 설계부장이라든가 그런 사람들이 전부 미국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거든? 그런데 그 모양이었어. 시행착오지요.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나중에 현대에서 배를 하나 만든 경험이 있다 해서 삼성에서 데려갔지요. 배를 한 척도 안 지어보고 어떻게 박사가 됐는지 몰라, 하하항. 그게 다 미경험에서 오는 거예요. 지금 미포만에 가보면 당시에는 해변에 소나무 몇 개 있고 어촌이 몇 개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미포조선소 주변에만 약 20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사니까 그 정도로 옛날 얘기다 그거지요.”실제로 초창기 시절을 들어보면 그 시행착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정일 전 미포조선 회장은 아예 철판도 버리기 위해 자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만큼 엉성했다는 것이다. “철판이 들어오면 우선 배에 필요한 모양대로 잘라가지고 용접을 하게 돼요. 과거에는 리벳(Rivet)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용접을 하지요. 그런데 이게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이, 철판 자르는 것을 부재라고 하는데, 그 부재가 수만 개가 됩니다. 그 수만 개가 각기 번호가 있고, 번호를 찾아서 맞춰주는 걸 배재(配材)라고 하는데, 이걸 끼워넣지 못하면 건조도 안 되고 엉망진창이 되거든요? 문제는 여기서 생기는 거예요. 그게 초창기고 경험이 없다 보니까 그랬는데 배재를 제대로 못 해요. 말하자면 잘라놓기는 잘라놨다고 하는데 후공 조이는 팀에서는 재료가 없다, 있어도 맞지가 않는다고 소리쳐요. 그러면 선공팀에서는 분명히 정상적으로 잘라서 줬는데 왜 없느냐고 노상 싸워요. 그러니 시간은 급하죠, 부재 없다는 소리만 나오면 얼른 새 철판 갖다가 잘라요. 그래놓고 나중에 보면 잘라서 줬다는 게 다른 데 가서 처박혀 있고. 하하하. 철판 값이 오죽 비쌉니까? 회장님한테 혼나는 거지 뭐. 하하.”“이병철 회장도 조선소에 모셔와”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소들은 정부에서 지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그게 방금 얘기한 옥포조선소야. 남궁연씨가 하다가 대우로 넘어갔는데 한때 대우도 시련을 겪고 있어서 정부가 지원을 해주고 그랬지. 근데 정부가 지원을 해주는 건 미국에서 볼 때 덤핑이라는 거야. 하여간 남의 회사 얘기할 건 없고, 삼성중공업도 나중에 조선소를 만들지 않았어요? 그게 다 우리가 조선소를 만든 다음에 일어난 일들이지만 이병철 회장을 우리 조선소에 모셨더니 ‘바로 이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이야, 아주 칭찬을 하면서 도와달라고, 그래서 흔쾌히 좋다 했더니 시작한 거예요. 하하항.”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삼성도 내가 권해서 조선소 했지”
현대서 회장 되면 이병철 회장에 신고…이명박 사장은 인사 가서 특강도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⑫
정주영 회장은 삼성이 조선 사업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연방 흡족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후일담이지만 정 회장은 이병철 삼성 회장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고 한다. 하나는 기술자를 원하면 보내주겠다, 그리고 현대 계열사의 신임 회장들은 삼성에 인사를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더구나 사고무인(四顧無人·화려해도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의 재계에선 신선한 얘기였다. 실제로 현대 계열사 회장 대부분이 삼성에 인사를 갔고, 정세영 회장이 그룹 회장이 됐을 때는 제일 먼저 이 회장에게 인사를 가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건설에서 사장이 됐을 때 인사 갔다가 특강을 하라고 했던 일화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정 회장은 이 회장에게 애정을 보였던 것이다. 물론 이 회장도 답례 차원에서 현대에 전자를 해보라고 권유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오늘날의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다. 삼성에 “맘껏 인력 뽑아가라”삼성에 조선소 사업을 권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로 들립니다. “그게 모두 현대조선소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선 다음이에요. 그것도 남한테 권해서만 되는 게 아니고 내가 직접 보여줘야 되거든? 그게 뭐든지 사업을 권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이고 예의예요. 우리 둘째가 인천조선소(한라중공업의 전신으로 1977년 1월 설립)를 맨든 것도 내가 해보니까 자신감이 생겨 시작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 조선업이 인제 와서 겨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건데,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적자에 허덕이든 수지를 맞추든 그건 두 번째야. 중요한 건 어떤 업종이든 자꾸 부흥을 시켜야 한다는 거지요. 우리 현대조선소에서 육성된 사람 상당수가 대우조선에 흘러가고, 삼성중공업에도 갔어요. 이걸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거든. 선발 업체에서는 항상 후발 업체들에 인력을 넘겨주게 마련이지만 그만큼 현대조선소는 한국 조선업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 왔다는 사실에 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삼성이 조선 사업에 뛰어든 이후 회장님이 직접 현장을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내가 현장엘 가면 이 회장이 속병이 생길 것 같아 안 갔어, 하하항. 나는 내가 생각하는 거 하고 다르면 막 혼을 내고,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현장 책임자를 막 조질 테니까. 그러면 이 회장이 옆에서 보다 속에서 불이 날 거 아니야, 그래서 안 갔어. 하하항. 여러 번 자문에는 응해줬지요. ”그런데 이병철 회장님은 뭐든지 일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 아닙니까. “맞아! 그런데 속마음을 풀어내는 방법이, 가만, 누구하고 비교를 하면 될까? 아, 타계했지만 동아건설 최준문 회장하고 견줘보면 아주 달라요. 하하항. 무슨 얘기냐 하면, 최 회장은 경쟁입찰을 해서 낙찰을 못 받으면 갑자기 아이구, 아이구 하면서 혈압이 올라 금방 쓰러진다고 엄살을 막 부리거든? 그러면 입찰했던 우리가 ‘알았어, 알았어 당신 줄게’ 그러면 ‘정말이지?’ 이러면서 금방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야, 하하항. 그런 정도로 속상하면 재미있게 드러내놓고 떼를 쓰는데 이 회장은 전혀 그런 게 없는 양반이었어요. ”재계 회장단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농담이 별로 없는 모양이지요?“농담은 가끔 하지만 다른 사람하고 비교해 스타일이 다르다 그거지. 일이 안 풀려도 표정이 별로 없는 양반인데, 한번은 상의할 게 있대서 만나니까 그때가 조선소 시작하고서 2~3년쯤 됐을 거야. 77년 초쯤이니까. 조선소 가용 면적이 50만~60만 평도 안 되고 그랬을 땐데, 지금은 100만 평 가까이 될 거예요. 만나자 하고선 자꾸 딴소리를 해. 세계에서 제일 큰 도크를 지어야겠다, 도크 회전율이 어쩐다 하면서 말이야. 겨우 시작해놓고 아직 건조도 한 척 안 했는데 말이지, 하하항. 그래서 뭐가 문젠데 그러냐 했더니 우리 현대조선소를 가보고 자기네 거제조선소를 보니까 우선 규모가 작아서 되겠느냐고, 거제도를 몽땅 조선소로 만들고 싶은데 그런 얘기를 자신은 못하겠고 나보고 박정희 대통령한테 바람 좀 넣어달라는 거예요, 하하항. 그런 양반이야. ”양에 차지 않는다는 걸 직접 표현하거나 잘 나서지를 않는 분이군요. “욕심이 있어도 최 회장처럼 넉살을 피울 줄 몰라, 하하항. 그러니까 일등은 해야겠는데 우선 규모에서 밀리니까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이거지. 그래 가지고 내가 막 웃으면서 조선소 경쟁력은 땅바닥 경쟁력이 아니니까 수주부터 왕창 하라고 말이야, 그러면 내가 바람을 안 넣어도 대통령이 거제도보다 더 큰 땅도 구입할 수 있게 지원하실 거라고 말이지, 내가 이 회장 속을 알고 있거든? 그랬더니 그때서야 영업 잘하는 친구 2년만 빌려 달래, 하하항. 참 의욕적으로 했어.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조선 산업이 이만큼 온 거예요. 우리도 아낌없이 도와주겠다 했지만. ” 조선 산업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했다. 현대조선소가 첫 삽을 뜬 지 13년 만에 세계적인 조선사들을 물리치고 정상을 차지했지만 정 회장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늘날 삼성중공업·대우조선·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등이 1위에서 5위까지 차지할 수 있도록 씨앗을 나누고 최대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사들의 ‘중국 이전’은 우울하게 들린다. 최근 STX그룹이 중국에서 석유제품 운반선과 자동차 운반선 등 11억 달러에 달하는 선박 건조에 나서기로 했고, 그것이 2009년이면 중국 다롄 현지 조선소에서 선주들에게 인도되기 시작한다고 알려졌는데, 정 회장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심정이 될까 하는 것은 기자만의 착잡함이 아닐 것 같다. 조선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잊지 못할 사고가 있었습니까?“큰 공사를 하면서 사고야 없을 수 없지만 그것도 70년대니까 일어난 거지 지금 같으면 그런 사고는 있을 수 없지요. 도크를 만들 때 참 충격이 컸던 사고가 있었지만 결국 해결했고 그 과정에서 지금 후랜지(한국프랜지) 하고 있는 김영주 회장이 고생을 많이 했지. ”김영주 회장이라면 회장님 매제가 되지 않습니까?“밖에서는 자꾸 집안 관계를 가지고 다들 얘기를 하는데 기업이 크면 그런 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그래서 내가 공석이든 사석이든 직책을 부르라고 불호령을 내려둔 거예요. 기업을 핏줄이 성장시키나? 김영주 회장은 내가 아도써비스(자동차 수리공장) 할 때 단골손님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기계에 관해서는 고치지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신통력을 보였거든? 직원들도 아주 희한하다구 그래요. 고장 나 멈춰있던 장비도 ‘영이’(김영주 회장을 가끔 그렇게 불렀다)가 다가가기만 하면 움직이더라는 거야, 하하항. 그렇다고 영주 회장이 학문에 기초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거든? 학문이라는 건 항상 현장 기술보다 뒤떨어지는 건 틀림없지만 좌우간 원리나 구조를 귀신같이 짚어내는 신통력이 있어요. 경험도 많고. 그래서 도크 공사 때 사고도 영주 회장이 해결을 본 셈인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한번 들어봐요. 재미있는 내용을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거야. ”김영주 회장(한국프랜지 명예회장)이 장비만 잘 다루는 게 아니었다. 건설 현장에서도 그의 능력은 탁월하게 돋보였다. 건설 기술자로는 국내 최고를 자부한다는 서울시 건설국장이 공사 현장에서 김 회장을 만나면 소문 없이 없어진다는 것도 그의 능력 때문에 나온 소리였다. 더욱이 그는 건설 현장에 서면 무서운 존재였다. 창업주의 매제라는 점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으나 그런 관계가 아니더라도 현장에서는 ‘호랑이’였다. 그런가 하면 공사 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나면 언제나 송장 옆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 그였고, 어려움을 당한 직원을 보고 아무도 모르게 자신이 보증을 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김 회장이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언제나 ‘왕 상무’였다. 왕 회장은 있어도 왕 상무는 어느 조직에서도 없는 것인데 유독 그에게만 그런 칭호가 따라다녔다는 것이다. 김영주 회장의 회고도 들었다. “조선소 건설할 때를 얘기한다면 이건 전쟁입니다, 전쟁…. 무기나 제대로 있나? 맨손으로 싸우는 전쟁이었다고 하면 말 다한 거지요. 배를 건조하는 것도 그렇고 도크를 파는 것도 그렇고, 기술자도 없고 경험도 없고, 그러니 회장님은 만날 복통이 터져 미치겠다고 그러셨지요. 그렇지만 착오가 있을 것이다 하는 건 예상했기 때문에 문책은 안 하셨는데, 그게 회장님의 큰 그릇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많은 블록들이 쌓이고 버려지고 하는데 그 돈이 얼마요? 더구나 차관을 들여와 하고 있는데 말이지.”정 회장님은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있을 때 회장님(김영주)이 수습을 많이 하고 해결도 봤다고 하시던데요. “그게 한두 번이라야지, 하하. 내가 맨 첨에 내려온 동기가 도크 때문에 왔어요. 고속도로를 끝내고 문산 쪽에 1차 공사를 마쳤는데 회장님이 불러요. ‘니가 내려가야겠다 ’. 회장님은 딱 그 말씀밖에 안 하는 분입니다. 그러면 나도 이유 같은 거 일절 묻지 않고 무조건 ‘알겠습니다’, 이 한마디뿐이에요. 근데 그날은 ‘일본 가지마건설이 전 세계 도크 건설을 한 70% 정도 하는 회사인데 거기서는 하루 물량을 3000㎥ 처리했다고 하더라. 우리는 체면상 2000㎥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러시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쓰는 장비를 다 주신다면 저도 3000㎥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때 재정이나 모든 면에서 가지마에 있는 그런 장비를 수입해 올 형편이 됩니까? 고속도로에서 쓰던 헌 장비를 끌어내서 전부 수선해 그걸로 도크를 팠어요. 그런데 가지마 겐조시 회장과 우리 회장님이 친하게 지내시니까 시공 조언을 해준다고 부장급 두 사람이 왔는데 한 달 반 만에 갔습니다. 왜 갔느냐, 저들은 그 좋은 장비 가지고 24시간 작업해서 3000㎥ 했는데 나는 4500㎥를 했어요. 그 구식 장비 가지고. 그러니 자문을 할 게 뭐 있어요? 누구든지 이런 얘기하면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 피로가 몰려오질 못해요. 하루 2, 3시간씩밖에 못 자고 한 거예요. ”석 달 걸릴 일 16일 만에 해치워그러면 사고는 도크가 완공된 다음에 일어난 겁니까? “건설을 다 해서 배를 집어넣고 한참 건조하고 있을 땐데, 도크에 물이 올라와 난리가 났어요. 갑자기 작업하던 사람이 둥둥 뜨고 어떤 친구는 두꺼운 옷을 입고 용접 장비까지 들었으니 물속에 처박혀 나오지도 못하고 죽느니 사느니, 하하하. 회장님은 열이 나서 막 고함치시고, 하하하. 그래서 딱 사고 난 그 시점에 지프 한 대 갖다놓고 거기서 자고 밥먹어 가면서 16일 만에 끝냈어요. 일본 사람들이 빨라야 석 달 걸린다는 걸 16일 만에 끝냈는데, 지금까지 안전하니까요. 그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 진짜 1초도 빈 틈을 안 주고 다음은 이걸 보수하니까 뭐 갖다 놔라, 2시간 후에는 무슨 장비가 필요하니까 무조건 대기시켜라, 3시간 후에는 무슨 장비다, 이게 착착 맞아떨어지도록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작업을 지시하니까 그 엄청난 위기를 해결하게 된 겁니다.” <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왕 회장 같은 인물 결코 못 나와요”
논리적으로 성립 안 되는 일 해내…잘 몰라서 엄청난 일에 도전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⑬
‘왕상무’ 김영주 회장은 16일 만에 도크 보수를 끝냈다. 일본의 전문가들도 3개월이 걸린다는 일이었다. 누구도 믿지 않았겠지만 그 가능성은 초긴장 상태를 유지한 정신력에서 나왔다. 단 1초의 빈틈도 주지 않는 긴장 속에서 작업을 지시했기 때문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현실화시켰다는 얘기다. 그러나 모든 작업이 정신력만으로 진행될 수는 없었다. 백지 상태에서 대형 조선소를 건설했고 동시에 대형 선박을 건조하다 보니 무사고의 욕심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안전시설이 갖추어지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1973년 한 해만 해도 1800건이 넘는 산재 사고가 났고 34명의 근로자가 숨졌다. 담당자들 모두 사표내고 도망“그런 여건에서 사고가 안 났다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요. 작업 조건도 나빴고 정신들이 해이해져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모든 안전사고는 안전시설이 미비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정신 상태가 어떤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닙니까? 김영주 회장님 얘기도 하셨는데 그게 전설적인 얘기처럼 남아있지만 사실이거든요. 정신 상태가 그만큼 중요했단 말입니다.”이정일 전 현대미포조선 회장의 회고를 들었지만 잊히지 않는 대형 사고는 어떤 경우에 일어났는지도 물어보았다. “(웃으며)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오는데 아찔한 사고였어요. 물론 첫 배를 건조할 때니까 경험도 없었지만 하여간 26만t급 선박이면 폭이 한 52m 되고 길이가 320m 정도 됩니다. 여기에다 높이가 26m나 되는데 탑재할 때 사고가 있었거든요? 그때가 어떻게 됐는고 하니, 배 기관실의 경사진 부분을 탑재해 놨어요. 그런데 그걸 올려놓기만 하고, 가접이라고 해야 할까? 대충 용접을 하고 와이어 같은 걸로 기관실 블록을 떨어지지 않게 묶어놓는 겁니다. 그렇게 해놓고 나중에 본체를 끼워 넣을 때 정확한 위치를 잡거든요? 그래서 위치가 딱 맞으면 그때 본격적인 용접을 하는 거지요. 그런데 용접도 하기 전에 와이어가 풀어지면서 떨어져 버린 겁니다.”기관실 블록이라면 그 무게만 해도 엄청날 텐데요?“굉장했지요. 집으로 말하면 골격 공사가 올라가고 콘크리트 칠 때 전기 케이블, 전화선, 파이프 같은 걸 전부 미리 다 집어넣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기관실 블록도 완벽하게 해놓은 상태니까 중량만 해도 몇 백t은 넘었을 건데 그게 그 높은 곳에서 내리꽂히듯 떨어졌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정신 상태가 문제였어요. 어떻게 와이어가 풀어지도록 묶어놓습니까? 좌우간 그 어마어마한 탑재물이 10m 높이에서 떨어졌으니까 얼마나 큰 사고였겠어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중량물이 10m 이상에서 떨어진 사고라면 그게 기록일 거예요.”놀라셨겠네요.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았고 사람들은 놀라고 하여간 난리가 났어요. 워낙 큰 사고니까 재산상의 손실도 크지만 그걸 다시 만들어 시작하려면 공기도 굉장히 지연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당시에 담당자들이 전부 사표를 써놓고 도망쳤어요. 하하하.”이때 사고에 대해 정주영 회장은 오히려 웃고 있었다. “그때는 반장만 돼도 살림들을 여기서(울산)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사고 내고 뛰어봐야 울산 바닥이에요. 그래서 틀림없이 눈치를 보고 있을 테니까 전부 잡아오라고 그랬지. 아니나 달라? 몽땅 반나절도 안돼서 잽혀왔어, 하하항. 그런데, 사실 그때 도망간 친구들이 진짜 역군들이야. 정말 겁도 나고 허탈하기도 하고 그래서 사표 던지고 숨었겠지만 의욕적으로 뭔가 일을 해보겠다고 덤비다가 그렇게 된 거거든? 일을 하지 않는 친구들은 사고도 내지 않는 거야. 그때는 한번 해보자, 우리 손으로도 건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긍심도 대단했고 열심히 달라붙었단 말이야. 그런데 깜빡 실수한 것 때문에 그게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전부 수포로 돌아가고 하니까 지들이 감당할 수 없는 심정이 됐을 거 아니에요. 그런 심정들을 내가 알지. 그렇지만 그놈들을 데리고 다시 일을 하자니 무너진 건 눈앞에 보이고, 그때는 막 쥐어박고 싶더구만, 하하항.”다시 시작할 때 회장님이 하셨던 말씀은 기억하십니까?“그때 전부 모아놓고 그랬어요. 사람이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실수는 하는데 중요한 건 실수했다고 포기하면 끝난다, 포기하는 게 더 큰 손실이다 이 말이야. 값비싼 희생을 치른 것으로 생각하고 빨리 정상 복귀되도록 하고 다른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했지. 그랬더니 엉엉 우는 녀석도 있었어. 장난치다 사고 낸 놈들 같으면 눈물이 나오겠어? 그 다음부터는 그런 사고가 한 건도 없었어요.”기관실 블록이 떨어지는 사고는 다시 없었지만 부서마다 한 번씩은 모두 경험했다고 할 정도로 시행착오로 빚어지는 사고는 다반사였다. 국가 전체적으로 산업기반이 취약한 탓도 원인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이 태부족의 고급 인력이었다. 특히 조선소는 고급 인력이나 현장 기술직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기관실 블록 낙하 사고도 경험 있는 현장 인력만 많았어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리바노스가 주문한 1호선을 건조할 때 처음 투입 인원을 6000명으로 책정했고, 그중에 50% 이상은 해당 직종의 유경험자로 채용한다고 돼 있었다. 그러나 10%도 필요 요원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작업에 들어갔다. 인력의 열악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백충기 전 미포조선 사장의 회고다. “당시 하루 16시간 정도 작업을 했어요. 사무실에는 밤 늦게까지 전등이 꺼지지 않았고 아침이 훤하게 밝아야 소등을 했으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직원들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중에 신입사원 한 사람이 도장 분야를 담당했는데 어느 날 역부족을 느끼고 책임감을 통감한다면서 유서를 써놓고 자살했어요. 정말 능력 있는 사원이었는데 전 직원들이 비장한 심정이 됐지요. 그럴 정도로 열악한 조건에서도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현대중공업이 있는 겁니다.”장비 구매는 김형벽 전 현대중공업 회장의 역할이었다. 그는 알려진 그대로 알래스카에 설치한 ‘허리케인 브리지’를 설계하고 제작과 설치 감독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지금도 세계 4대 브리지에 든다고 할 만큼 고속도로상의 협곡을 가로지르는 허리케인 브리지가 명성을 얻고 있는데 그걸 설계하고 설치했다면 시쳇말로 ‘알아준다’는 것이다. “토목은 현대건설이 맡아서 했지만 다리 자체는 철판을 가지고 재단을 해 용접을 하는 건데, 아주 정밀합니다. 그건 포인트와 포인트 사이가 504피트나 떨어진 곳에 아치형으로 다리를 건설하고 칼럼을 세워 그 위에 가다를 놓는 아주 복잡한 구조지만 외형은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그걸 무사히 완성시켰더니 명예회장님(정주영)이 인상 깊게 보셨던지 ‘너 조선소로 와’ 하시는 겁니다. 스콧리스고에 가서 한 달간 훈련받고 귀국 길에 가와사키에 가서 2주간 조선소 견학을 잘하고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하하하.”견학을 ‘잘하라’는 건 세밀히 살피라는 뜻이었다. 김 전 회장은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들었다. “그땐 군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찍히고 ‘소용없는 직원’으로 떨어지던 시댑니다. 하여간 군말 없이 세밀히 살피고 오니까 ‘잘 살펴보고 왔지? 울산 현장에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니까 바로 내려가’ 하시는 겁니다. 쉬는 게 어딨어요. 아무 소리 못하고 그날로 현장에 내려가니까 현대조선 초대 생산부장으로 임명을 하시는 겁니다. 그때부터 기계, 설비 같은 건 죄다 저보고 구매를 하라고 명령이 떨어져요.”이 부분은 정 회장도 사실로 확인을 해주었다. “중장비와 설비들이 그때 우리나라에 뭐가 있었어요? 우리가 들여오면 그게 전부 ‘생전 처음 보는 장비’예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같지만 중장비를 도입하면 항구에서부터 마치 외국에서 국빈이나 온 것 마냥 경찰이 앞에서 사이렌을 울리고 에스코트를 했어, 하하항. 그럴 정도였는데 그걸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지요. 생각해보면 참, 기막힌 대역사를 건설한 거야, 하하항.”생산 현장이 원시적이었고 가끔은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는데 장비 부족이 원인이 되기도 했을 것 아닙니까. 어떤 장비부터 구매했습니까. “(김형벽) 얘기를 다 하자면 한이 없을 겁니다. 불모지에서 시작했는데 부족한 게 하나 둘이어야지요. 그중에 조선소의 상징이라는 골리앗 크레인부터 직접 설치하고 감독을 했어요. 골리앗 크레인은 독일 PHB-JUCHO사에서 만든 걸 구입해온 건데, 그걸 설치하는 데만 8개월이 걸릴 정도로 고도의 기술을 요합니다. 통째로 갖다놓는 게 절대 아니지요. 높이가 82m 아닙니까? 엘리베이터로 꼭대기까지 1분 만에 올라갈 수 있게 설치해야 할 정도예요. 골리앗 크레인을 좌우간 왜 설치하고 감독했느냐, 기막힌 얘긴데, 할 일이 없어서 했던 겁니다. 생산부장이 할 일이 없어서 크레인을 설치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물론 꼭 필요한 거지만 정말 일이 없어서 덤빈 거예요. 그만큼 벌판이었고 아무 것도 없었다는 얘깁니다. 그런 형편에서 시작을 했어요. 그 후에 공장 안에 들어가는 크레인들도 직접 제작하고 감독했지만 어떻게 보면 무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도 되는 거지요. 참 대한민국 조선사를 들여다보면 눈물나는 기록들이 많습니다.”무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크레인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선박 공장에서 건조 일을 시작했잖습니까. 크레인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으면 시작을 못 한 겁니다. 무지했기 때문에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얘기예요. 이런 걸 보면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명예회장님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없다는 거지요. 교과서적으로는 도저히 성립이 안 되는 논린데 해냈거든요.”크레인 설치에만 8개월 걸려김 전 회장의 회고는 이어진다. “당시에 제가 생산부장으로서 선박을 건조했는데요, 예를 하나 들지요. 도크에 블록을 하나씩 집어넣는 작업을 골리앗 크레인으로 하는데 그 당시에 그런 크레인이 없었어요. 아시겠지만 블록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큰 철판 덩어리 아닙니까? 그게 200~300t 나갑니다. 그걸 도크 밑에다 깔아놔야 하는데 깔 길이 있습니까?”트레일러로 그 엄청난 블록을 옮겼다는 겁니까?“김영주 회장님이 오시더니 당장 트레일러를 가져오라는 거예요. 트레일러를 갖다놓고는 이 블록을 유압 작키(Jack)로 들어올리게 했어요. 그러고는 거기에다가 트레일러를 밀어 넣어서 겨우겨우 트레일러에 싣는 겁니다. 그러면서 도크가 여기 있으면 흙을 갖다 부어요. ‘비탈길’을 만드는 거죠. 그래가지고 내려가는데 그나마도 트레일러로 내려가다 보면 속도가 붙어서 막 굴러가다 처박힐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뒤에서 제일 큰 불도저를 연결하고 불도저가 뒤로 땡기면서 내려가는 겁니다, 하하하. 결국은 그렇게 해서 됐어요.”그러나 더 리얼한 얘기는 따로 있다. <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박 대통령 앞에서 깜빡 졸았지” [조인스]
정신 들어 깨보니 지켜보던 대통령 “정 사장, 내가 미안하구만”정주영의 조선업 도전⑭
현대중공업은 1974년 1호선 명명식을 가진 후 10년 만인 84년에 231척인 1000만t을 인도하고 88년에 2000만t, 91년에 3000만t, 2005년에 1억t의 선박을 인도했다. 세계 조선 사상 최단 기간 내 최대 건조 실적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한 것이 결코 행운만 따라준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주영 회장의 표현대로 “모든 게 부족했지만 새벽에 현장에 내려오면 밤 10시 서울로 올라갔다가 다시 새벽에 내려오고 하면서 막 후려대고 철저하게 바탕을 다져오지 않았으면 될 수가 없는 거”였다. 체력이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밤 10시에 서울로 올라가셨다가 다음날 또 새벽에 내려오면 잠은 언제 주무시고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셨습니까?“죽으면 매일 잠만 잘 텐데 눈 떠있을 때 일을 해야지요. 하하항. 일이 재미있으면 말이지, 잠자야지 하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 농담이 아니고 경부고속도로 할 적에, 박정희 대통령하고 얘기 도중 깜빡 존 적이 있어요. 처음 듣지요? 박 대통령이란 분이 얼마나 무섭고 위엄있는 분입니까. 근데 그런 어른 앞에서 졸았어. 아마 내가 태어나 엿새 동안 양말을 못 갈아 신은 것이 그때가 첨일 거예요. 그럴 정도로 현장에서 날밤을 새고 그랬어요. ”당시 정 회장을 비롯해 김영주 회장, 양봉웅 회장(전 고려산업개발 회장) 등 경부고속도로 멤버들은 전부 양말을 벗겨보면 발가락 사이가 붙었을 정도였다. 정 회장은 “작업화를 벗어놓고 자 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여간 그렇게 현장에서 살다가 박 대통령이 호출해서 만났으니 나도 모르게 깜박 존 거지요. 근데 그게 2~3분? 길어야 4분이 안 될 거야. 각하 말씀 듣다가 졸았으니 얼마나 됐겠어요. 근데 어찌나 맛있게 잤던지 나중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그렇게 자고 또 현장에서 밤을 새는 거예요. 잠이라는 건 그런 거야. 물론 울산을 오가면서 차 안에서 잘 때도 있지만 그렇게 일을 했으니까 나는 특별히 남한테 건강관리를 이렇게 한다 소개할 것도 없고, 오히려 일에 미치다 보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유지가 되는 것 같았어. 일을 안 하거나 마음속에 증오심을 넣고 있으면 그건 그때부터 환자예요. ”“시행착오는 위대한 유산이야”새로운 말씀을 듣게 됐습니다. “졸고 나니까 말이야, 참 박 대통령을 잊지 못하는 얘긴데, 소응접실 탁자가 요만해요(울산 영빈관 응접실 탁자를 가리켰는데 그다지 크지 않다). 이런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말씀을 하시는데 바로 앞에서 졸았으니 말이야, 졸고 나서 내가 아주 당황했거든? 대통령께서도 말씀을 하시다 내가 졸고 있으니 기가 막혔을 거 아니야? 하던 얘기도 중단하셨을 거고 말이지. 그러니 이건 뭐 어쩔 줄을 모르겠어.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못하는 거야. 그런데 웬만한 사람 같으면 내가 졸고 있을 때 자리를 떴거나 언짢은 얼굴을 했을 거야. 놀래가지고 정신이 번쩍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그 자리에 그대로 계셨던 대통령께서 내 손을 꾹 잡으시더니 ‘정 사장, 내가 미안하구만. ’ 이러시는 거예요. 참….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그때를 잊지 못하겠어. (분위기 바꾸며)그래서 나도 말이지, 지금 저기 내려다보이는 골리앗 크레인, 그 앞쪽이 초창기에는 밀다가 둔 산이었는데, 작업하다 저기 와서 조는 친구들이 있거든? 그러면 순시하다가 보고서도 그냥 두고 한 바퀴 돌고 와요. 그때까지도 자고 있으면 그땐 발로 툭 깨워. 기절초풍을 하고 일어서거든? 그러면 그러지. ‘내가 미안하구만.’ 하하항, 나도 감동받은 건 써먹어야 되잖아. 그 친구들도 감격했을 거야, 하하항. ”골리앗 크레인이 없어 트레일러로 블록을 옮겼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참 대단한 도전을 했다는 생각을 하실 때가 없습니까?“몇 번 죽을 고비도 넘겼어요. 무슨 얘기냐면, 장비가 부족했다, 인력이 부족했다, 다들 그런 얘기를 하는데 초창기에 있었던 직원들이 내 앞에서는 고생했다는 소리 한마디도 안 하면서 꼭 나 모르게 인터뷰만 하면 지들이 고생 다한 것처럼 그래, 하하항. 사실 우리 현대조선소에서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각오를 하고 나섰던 거니까 새삼스럽게 용맹을 떨친 것처럼 얘기할 건 없지요. 물론 대단한 도전을 했고 무수한 고생을 했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역사를 다시 쓰는데, 죽다 살아나기도 했는데, 고생했고 부족했다는 게 뭐 내세울 건가 그 말이야. 전부 몰라서 시행착오를 해놓고 말이야, 하하항. 그러고 방금 츄렐라[트레일러(trailer)의 현장 발음]를 썼다는 얘길 했는데,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요?”초창기 때 현장을 누볐던 사람들은 모두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 기억하고 있던데요?“엉터리 같은 놈들 말이야, 하하항. 얘기를 들었겠지만 그건 아주 초창기 때 얘긴데 그게 어떻게 된 건고 하니, 도크를 만들면 건조를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근데 진전이 없는 거야. 내가 서울로 갈 때는 내가 내려올 때까지 몇 입방을 치고, 공장은 어떻게 하고, 일일이 지시를 해놓고 가요. 근데 진전이 없어. 그래 가지고 여기(울산) 내려와 보니까 블록을 못 옮겨 전쟁이야 전쟁. 영이(김영주 회장)한테 내려가서 좀 다그치라고 했더니 그나마 츄렐라를 동원해서 난리를 치고 있는데 그것도 영주 회장 아이디어라는 거야, 하하항. 그때 골리앗 크레인을 빨리 들여오라 했더니 김형벽이 그눔이 들여와 놓고는 조립을 다 못해 애먹고 있는 거지. 나도 크레인을 몰아봤지만 그것만 있으면 간단히 되는 일을 츄렐라를 갖구 용을 쓰고 있는 거거든?”회장님이 골리앗 크레인도 운전하셨단 말씀입니까?“했지. 조선소에 들어서면 첫눈에 우뚝 솟아있는 게 골리앗 크레인 아니에요. 근데 주인이 운전을 못 하면 어떡해. 방금 얘기한 저거거든(창밖으로 보이고 있었다). TV에서 파업하는 거 찍으면 저기 올라가서 난리치는 거 찍고. 누가 그래, 하나님한테 파업 상의하러 올라간다구, 하하항. 사실 골리앗 크레인은 주로 블록 옮길 때 썼는데 도장 공장에서 전부 다 쇠를 깎아 페인트칠하면 그 블록을 도크 쪽으로 옮기거든? 그때 힘을 쓰는 게 골리앗이에요. 골리앗은 힘이 세다 해서 붙인 거고 원래 이름은 ‘컨트리 크레인’이야. 근데 골리앗 하나가 450t을 들어 올리잖아요? 그런데 블록을 하나씩 도크로 옮겨야 배가 만들어질 거 아니에요. 옮길 재간이 있나? 그게 100t, 200t씩 되는 데 말이야. 그래서 츄렐라를 동원해 가지고 용을 쓰고 있었는데, 요는 그것도 전부 모르고 서툴고 하다 보니까 난리를 치게 됐다는 거예요. 그게 시행착오야. 그래서 내가 시행착오는 위대한 유산이라고 그러는데, 전국에 있는 작키(jack)를 다 동원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그게 무슨 말씀입니까?“하하항, 하여간 와서 보니까 쇼를 해, 쇼를. 지금은 트랜스 포터라고 해서 좋은 걸 쓰는데 그 당시에는 블록을 운반해 도크에다 갖다놓는 장비도 없었단 말이야. 그래서 츄렐라를 갖다놓고 용을 쓰는데 가만 보니까 기가 막히는 거예요. 츄렐라만 갖다 놓으면 뭐하느냐 이거야. 그 엄청난 블록을 츄렐라에 들어올려야 옮길 거 아니에요. 그래 가지고 그 미련한 것들이 작키라는 작키를 다 갖다 놨어, 하하항.”현장에서는 잭을 보통 작키라고 했다. 일본식 발음이 전염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동원했다는 잭도 문제가 있었다. 바깥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잭을 조선소에서 사용하겠다고 들고 온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최선책이었겠지만 코미디였다. “그걸 보니까 또 웃음이 나오고 말이야. 물론 그 당시에는 작키가 많지도 않았지만 갖다놓은 걸 보니 전부 5t, 10t짜리야. 자동차 빵꾸(펑크) 났을 때 들어 올리는 작키를 갖다놓은 거야, 하하항. 조선소가 자동차 빵꾸 막는 곳이야? 그만큼 어설프고 모든 게 서투른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것들을 좀 깨닫게 해줄려고 내일 아침까지 대한민국에 있는 작키를 몽땅 갖고 오라고 소리를 질렀어. 그랬더니 어디서 긁어왔는지 하여간 수천 개가 들어오는 거야, 하하항. 장관이야 장관, 조선소 광장이 난데없이 작키 전시장이 된 거지. 그래 가지고 전부 갖고 온 걸로 들어 올려보라고, 뭐든지 직접 해보는 게 젤이지 백 번 말로 해봐야 소용 있어? 빨리 들어올리지 못하고 뭣 하느냐고, 막 후려대는데 지들이 용빼는 재주 있어요? 어떻게 그걸로 돼. 그중에 용케 서너 개가 쓸 만하고 1%도 못 써요, 하하항. 배 만드는 데 쓸래면 최소 20t에서 200t짜리래야 되거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게 없었죠. ”그래서 트레일러 작업을 계속한 겁니까?“문제는 블록 아니에요? 작키도 이젠 마땅한 게 없다는 걸 알았을 거구. 그래서 우리가 이런 여건에서 하고 있다는 걸 철저하게 인식하도록 해야 하거든? 그래 가지고 이제는 작키고 뭐고 블록을 전부 손으로 들어올리라고 그랬지. 전부 기절초풍하는 거야. 하하항. 옆에서 지켜보던 영주 회장도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블록 하나가 100t이 넘고 손으로 잡을 곳이 없는데 어떻게 손으로 들어올리냐고 중얼거려. 그럼 더 호통을 치는 거야. 등신 같은 넘들 말이야, 수천 명이나 모여서 100t짜리 철판 하나를 못 드느냐고. 몸뚱아리가 전부 몇 킬로(㎏)야? 블록이 100t이면 10만㎏밖에 더 돼? 한 눔이 평균 70㎏만 돼도 1430명이면 남아돌지 않느냐고, 그러면서 빨리 들어올리라고 막 조지는 거지. 블록이 선술집 과부라고 생각하면 서로 먼저 들고 튈려고 할 거 아니냐고 말이야, 하하항! 참 별일 다 있었고 결국 해냈지만 지나고 보면 그렇게 하면서 배우고 알게끔 한 거예요. ”“블록을 선술집 과부라고 생각해” 실제로 도크를 만들고 블록을 옮긴다는 것도 중요한 작업의 하나였지만 배를 건조하기 전에 첫 블록을 깐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를 킬렝(keellaying) 작업이라고 하는데 흔히 ‘배에 용골(龍骨)을 깐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집지을 때 용머리를 잘 올려야 하듯이 배는 머리를 올리는 게 아니라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맨 밑바닥에 1번으로 블록을 까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뜻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이 비록 미신이라 하더라도 선박 건조에서는 그 어떤 영적인 세계가 분명 있다고 믿는다. 물론 블록으로 용골만 까는 것이 아니라 소금도 깔지만 어쨌든 그런 의미 때문에도 첫 블록을 옮길 때 트레일러까지 동원하면서 온갖 지혜를 다 동원했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트레일러로 용골을 깔았군요. “근데 영주 회장 머리가 비상해요. 츄렐라에 실어도 도크로 옮겨야 할 거 아니겠어? 그걸 영주 회장 아이디어로 한 건데, 도크 맨 밑바닥에서부터 땅 높이까지 비스듬하게 길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거야. 그 방법밖에 없다는 거지. 도크 깊이가 13.2m야. 그러니까 도크를 만들고 있는 전갑원이 그놈이 지옥에서 천당까지 도로를 만들라구 하는 게 낫지, 길을 어떻게 만드냐고 투덜거리는데, 그래도 영이가(김영주) 잔소리 말고 당장 덤프트럭을 총집결시키고 흙을 덮으라구 호령하고 말이야, 완전히 전쟁터고 그런 난리 북새통이 없었어, 하하항. 그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이 전부 박사가 된 거예요. 그게 중요해요. 자기가 맡은 공정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바탕부터 알고 있어야 모든 작업이 이해가 되는 거거든. ”<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인간은 회장이나 말단이나 같아” [조인스]
폼 잡는 얘기 많이 하는 전경련은 나랑 안 맞아…진수식 땐 가슴 타 들어가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⑮
정주영 회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모든 공사를 1973년 12월까지 마쳐야 한다는 완공 시점을 정해 놓고 시간을 역산해 돌파해 나가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군사작전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택하지 않는 이른바 ‘공기 역산 돌관 공사’였다. 자연히 희생자도 적지 않게 냈고 잔인했다는 평가도 피할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사람씩 퍽퍽 쓰러져나갔다. 그런데도 해야만 했다. 토목공사를 전담했던 전갑원 부사장(당시 부장)의 회고는 그때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아예 현장에 사무실 차려놓고, 디테일 디자인이 어떻게 나온지 압니까? 내일 시공할 거 오늘 나오고, 그런 식으로 일을 했어요. 피가 마르고 죽는 겁니다. 요즘 같으면 전부 다 도망가요. 눈에 불을 켠다는 소리 하지 않습니까? 정말 눈에서 불이 펄펄 납니다.”시설도 열악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만 있어도 감지덕지, 일주일씩 머리 못 감는 건 다반사였다. 현장 일은 울산에 있는 김영주 회장이 전체적인 총괄을 맡았다. 토목공사 쪽은 전갑원 부사장이, 건축공사는 박재면 부사장(당시 부장)이 맡았다.“우리 명예회장님 성격 잘 아시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전체 점검, 그러고 초창기 땐 거의 예고 없이 매일 내려오다시피 하셨거든요. 저희는 현장에서 먹고 자는데. 그래가지고 아침마다 회사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회의하고 협의했어요.”주로 어떤 내용의 협의를 합니까?“회장님이 반드시 다음주 언제까지 뭘 해 놓아라, 뭘 갖춰라, 그래놓고 올라가시는데…. 일하다 보면 무슨 차질이 나거든요. 장비나 자재도 늦게 들어오고. 그걸 보고할 수 있어요? 그게 회장님한테는 통하지가 않는단 말입니다.”일주일 머리 못 감는 일은 보통 직접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광경이다. 그렇다 보니 무리한 공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리바노스 선주로부터 주문받은 두 척을 거의 동시에 완공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도크 사고도 그래서 돌관 공사가 원인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제2도크 사고는 치명적이었다. 그 때문에 기술 지원차 파견됐던 가지마건설의 선박담당 하야시 차장이 은밀하게 정부에 호출되기도 했다. 비자 때문에 외무부에서 호출하는 것처럼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조선소 건설과 유조선 건조가 과연 동시에 성공적으로 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제2도크 사고 때는 전부 조선소 공사가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 정도로 충격도 컸고 희생자도 많이 났지요.”전갑원 전 부사장은 당시 정 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대형 수첩에 메모해 두었다고 한다. 다음은 사고 당시 상황을 그가 정리한 내용이다. “도대체 원인이 뭣이야!”(정주영)“바닥과 외벽에, 그러니까 도크 바닥 바깥쪽과 벽 뒤편에 균열이 생긴 게 원인인 것 같습니다.”(전갑원)“균열이 생겼으니까 도크가 불룩 떠오르지! 균열이 생긴 원인이 뭐이냔 말이야!”“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과정에서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공법상으로는 잘못된 게 없습니다. 나가사키조선소 도크하고 동일하고 우리 설계하고 똑같이 그대로 했는데 지금도 나가사키조선소 도크는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까.”“(나직이)그 공법, 완벽하게 훔쳐서 가져온 것 맞아?”“자신 있습니다! 눈 감고도 도크만큼은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가져왔습니다.”“(확)그런데 왜 사고야! 하나라도 작업을 못하게 되면 차관 4300만 달러는 고사하고 우리 정부 신용 날아가고 현대 자존심까지 전부 물속에 수장된단 말이야! 그걸 알고나 있어? 당장 방법을 찾아!”도크 밑바닥과 벽면 일부가 부력과 수압에 견디지 못해 붕괴 직전에 놓였던 사고 아니었습니까? 벽이 터지거나 바닥이 떠오르게 되면 삽시간에 도크 정도는 거대한 파도에 흔적도 없이 쓸려나갈 그런 정도였다고 하던데…. “내가 더 놀란 건 사고보다 명예회장님이었어요. 상황이 그렇게 되니까 작업하다가 도망쳐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터지면 삽시간에 물이 차오르고 전부 가는 걸? 박재면 부사장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니까 도크 안에 있는 연장과 기자재들을 전부 끌어내라고 소리를 쳤어요. 하여간 아수라장이 되고 모조리 정신이 없는 거예요. 근데 명예회장님이 장비나 기자재에 손도 대지 말라고, 막 고함을 치시는 겁니다. 보수를 못하면 죽는 거지 그거 꺼내서 뭣 하느냐고 말이지, 이러면서 도크로 내려가시는 거라. 전부 도망쳐 나오는데 말이야. 하이구, 정말 죽겠더라구요 내가.”도크 건설은 경험이 없었는데 가와사키에서 인용했다는 설계도에는 정말 문제가 없었습니까?“제1도크는 정상적으로 건조작업이 되고 있었잖아요. 공법은 똑같아요. 명예회장님이 가와사키 회장님하고 친분이 두터운 덕분에 제가 거기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그때 자료를 엄청 뺐다고요. 어떤 건 기억을 해뒀다가 스케치해서 계속 모았는데 그 분량이 울산조선소를 제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그래가지고 2도크가 가와사키조선소 100만t 도크하고 거의 같습니다. 중간에 게이트 있는 것까지. 그러니 설계도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지요.”그런데 왜 사고가 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도 나는 돌관 공사를 하면서 콘크리트 타설할 때 하자가 있었다고 봐요. 공법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현대맨들은 이렇게 사력을 다하면서 매달렸다. 완공시점을 정해 놓고 돌관 공사를 해나갈 정도의 상황에서는 사고도 없어야 하지만 직원들의 각오도 중요했다. 그것을 정 회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던진 위력의 한 마디가 ‘나를 믿어라!’는 것이었다. 평범한 한 마디 같지만 직원들에게는 최대의 위력이었다. 온몸을 던져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할 때에 ‘당신들 뒤에 내가 있다’는 이 말보다 더 든든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정 회장도 심리적으로 안정이 필요했던 상황이라고 했다. “반드시 조선소 공사 때만 그런 것이 아니지요. 지금은 계열사마다 다들 회장들이 있으니까 내가 나설 필요가 없이 잘하지만 무슨 일이든 (현장 사람들이)믿는 것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거기서 모든 정신력이 나오는 거야. 현장 직원들이 처자식 걱정은 안 하게 해줘야 명을 걸어도 걸지. 그걸 회사가 보장 안 해주고 내가 안 해주면 누가 그 엄청난 현장에서 명을 걸어요. 또 반드시 보상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어야 힘이 솟는 거예요. 언젠가 내가 전경련 모임에서 그런 얘기 했더니 너무 세속적인 얘기 아니냐구 그러던데, 참 폼 잡는 소리들 너무 좋아해서 나하고는 안 맞아. 인간은 회장이나 말단이나 같은 건데 사는 것이 좀 차이가 나서 그렇지 다들 욕구가 비슷한 걸 근사하게 포장해서 말한다구 그게 달라지나?”물 차오르는데 “나를 따르라”나를 믿으라는 말씀을 듣고 근로자들이 큰 의지가 됐겠습니다. “내가 직원들하고 씨름도 하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막걸리도 같이 마시고 그러는 건 당신들을 사랑한다는 소리거든? 그렇게 하는 걸 내가 좋아했고. 그게 내 몸에 배어 있어. 내가 격식이나 따지고 한다면 고급스러운 자리만 나가지. 믿음을 주지 않으면 절대 큰일을 못하는 거예요. 우리 직원들도 그걸 알았을 거야. 내가 이름은 잊었는데 우리 직원 때문에 항만청장하고 대판 싸운 적도 한 번 있어요.”관료들하고도 싸우십니까?“뒤틀리면 싸우는 거지, 총리하고도 싸웠는데. 일이라는 건 되자고 하는 거지 폼 잡자고 하나? 현장은 하나도 모르면서 시찰 나와 가지고 폼만 잡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 각료들이 더러 있었어. 아주 불쾌한 거야. 좌우간 항만청장하고 싸운 건 1호선 진수식을 할 때야. 1호선이라 날짜도 잊지 않고 있는데 그날이 74년 2월 15일이에요. 배를 건조하면 진수식을 먼저 하고 명명식은 기계별로 시험을 다 끝내고 해요. 그래가지고 6월 28일인가 명명식 해서 배를 인도했는데, 그 다음에 첫 진수식 할 때는 가슴이 다 탔던 것 같애.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 눈 감고도 할 테니까, 하하항.”진수식은 배를 건조해 처음으로 바다에 내보내는 행사 아닙니까?“바로 그거지. 말 그대로 진수식은 배가 도크에서 물로 나가는 거거든? 그래서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첫 진수식을 하는데, 생각을 해봐요.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26만t 배를 최초로 건조했는데, 이게 제대로 물에 뜰 것인지, 자빠지지는 않을지, 어마어마한 쇳덩어리나 다름없는데 과연 뜨겠느냐, 떠올라도 똑바로 균형을 잡고 뜰 것인지?”정말 긴장되는 순간이었네요. “이건 표현을 다 할 수 없어요. 도크에 물을 채우면서도 뜬다, 뜬다 하면서 누구 할 것 없이 전부 합창을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거야. 그래가지고 떠오르니까 함성을 지르고 말이야, 하하항. 좌우간 이제 수문을 열고 진수식을 하는데 그땐 국내에 26만t을 운전해 본 선장이 없어서 외국서 수입했다구, 사람을 수입했어, 하하항. 참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지. 근데 진수식을 할래니까 진수식을 못한다는 거야.”항해규칙 위반으로 고발 위협어디서 진수식을 못하게 했다는 겁니까?“우리 직원이 싸우다 말고 흥분이 돼서 쫓아왔어. 항만청에서 엔진 시동을 걸기 전에 배를 움직이는 건 항해규칙 위반이기 때문에 배를 내보낼 수 없다는 거야. 만약 내보내면 책임자를 고발하겠다고 말이야. 그러면서 자기는 통고를 했으니까 직원 이름까지 적더래. 아니, 배를 건조하면 인도하기 전에 반드시 진수식을 해서 최종 문제점을 체크하는 건 당연한 건데, 뭐? 고발을 하고 이름까지 적어? 얼마나 분이 나고 피가 끓어오르는지 말이야. 눈앞에 있었으면 물에 처넣었을 거야. 그래가지고 무조건 하라고, 위반도 아니거든. 왜냐, 배는 명명식을 하기 전에는 배로서 인정을 하지 않아요. 명명식을 하고 선주한테 인도하는 그 순간부터 배로 인정하는 게 세계적인 규정이야. 근데 명명식이 왜 항해규칙 위반이야? 쥐뿔도 모르면서 관에 있다구 이름이나 적고 말이야.”진수식은 무사히 했습니까?“그것도 첨이라서 별 해프닝이 다 있고 아슬아슬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항만청 규칙 무시하고 했는데 멋지게 했어요. 그래놓고 나중에 청장을 만나러 간 거야. 그땐 솔직히 대통령한테 얘기할까도 했어요. 그런 정신 빠진 인간들이 어디 있어? 위반도 아니지만 설령 위반을 했다구 해도 진수식을 막을 일이에요? 국운을 걸고 조선소를 건설했는데? 청장을 만나서 당장 울산에 나와 있는 항만청 직원을 바꾸든지 잘라야 하겠다고 했어. 그랬더니 자기도 보고를 받았는지 법대로 한 거래. 하여간 대판 붙어서 결국 교체시켰어요. 그땐 나도 팔팔했지, 하하항. 우리 직원도 기분이 아주 좋았을 거야. 사소하고 작은 일 같지만 그런 뒷받침을 해주지 않으면 큰일을 시킬 수가 없지요.”<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16)
“내가 바다에 빠져 죽다 살아났지”
생산 야드 150만 평, 종업원 2만5000여 명, 2007년 예상 매출 15조2000억원, 수주 목표 181억 달러. 이것이 외형상 나타난 현대중공업의 현주소다. 여기에 9개의 대형 드라이 도크와 6기의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을 가동하면 세계 각국에서 주문하는 어떤 종류의 선박도 건조할 수 있다. 지금은 고부가가치 선으로 각광받고 있는 선박들만 선별해 수주할 정도로 콧대도 높아졌다.
실제로 향후 3년 동안 건조할 물량도 부가가치가 높은 LNG 운반선과 초대형 LPG 운반선이다. 그것이 무려 20척에 이른다고 했다. 이런 놀라운 성장의 이면에는 초창기 멤버들의 희생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이른바 ‘캔두(can do)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진수식을 하기 전에 국내에서는 26만t급 선박을 시운전해본 사람이 없어 수입했을 정도라면 현대조선소 초대 사장은 누가 했습니까? 외국인이었습니까?
“그랬지. 스코(J W Schou)라고 덴마크 사람인데 덴마크가 원래 농업국가지만 우리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오덴세 조선소’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어요. 거기 기술이사로 있던 스코를 사장으로 영입했어요. 그렇지만 기술사가 항해사는 아니기 때문에 그이도 진수식을 할 때는 벌벌 떨어, 하하항. 근데 스코가 고생을 많이 했어. 리바노스 측에서 파견한 감독관이 자꾸 트집을 잡으니까 노상 다투고 말이야. 선주 쪽에서 나온 녀석이라 사장 말을 잘 안 듣는 거지. 더러워서 참. 하여간 그래도 1, 2호선을 제때 진수시킬 수 있었던 건 스코 사장 노력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요.”
모두가 한마음이 됐기 때문에 열악한 조건들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김형벽 전 회장은 근무 환경도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는 말로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세상이 변했으니 여건도 변하고 의식도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그때는 비교할 곳이 없으니까 자연히 불평도 나올 수 없었고 무엇보다 열심히만 하면 회사가 뒤에 있다는 그런 믿음이 아주 든든하게 있었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랬을 겁니다. 내 경우에 우선 출퇴근을 회사 차로 했어요. 집도 회사 사택에서 지냈습니다. 당시에는 부장이라는 게 4, 5명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중역만 해도 중공업에서만 몇십 명 될 겁니다. 그러니 부장들도 차가 다 있고 운전사도 붙여주고 그랬지요. 그렇지만 가정은 희생시켰습니다. 가족이 모두 서울에 있으니까 한 달에 한 번, 1박2일로 가족 보러 갔다 오는 게 낙이었어요. 선박 건조가 시작됐을 때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그래도 불만들이 없었습니다.”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
하루 일과는 어떻게 짜였습니까?
“조선소에서 건조가 시작되고부터는 일요일이 없었지요. 금요일 다음은 토요일이 아니고 월요일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이 7일인데 요일은 금요일까지밖에 없다고 얘기했어요. 월화수목금금금…. 하하하. 언젠가 코미디 프로에서 그런 소리 하는 걸 봤는데 ‘월화수목금금금’은 대한민국에서 우리 현대 직원들이 제일 먼저 썼을 겁니다. 그러고 지금 같으면 사람 잡는다고 할 겁니다만 그때는 오전 5시에 회의가 시작됩니다. 아침을 먹어가면서 공구별로 보고도 하고 지시도 받고 그러는 거지요. 지시는 주로 김영주 회장님이 했습니다만 시작하는 시간은 있는데 끝나는 시간이 없었어요. 이것 한 가지만 가지고도 하루 일과가 다 설명되는 거 아닙니까? 밤 10시에도 끝나고 11시에도 끝나고. 끝나면 근처에 큰 술집은 아니지만 거기서 피로도 풀 겸 가족 생각도 할 겸 1시, 2시까지 마시다가 다시 5시에 또 회의하러 나오고. 그래도 불만이 없었고 가족들한테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탈선했다는 얘기는 전혀 없었습니다. 가끔 짜증이 날 때는 있었겠지요. 그때는 ‘거지발싸개 같은 현대에 들어가서 아빠만 빼앗겼다’고 투정 몇 마디 한답니다. 하하하. 모두가 그렇게 지내온 겁니다.”
진수식은 성공적이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 그랬습니까.
“누가 그런 소릴 합디까? (정 회장님이 그러시더라고 하자)에고, 회장님이야 그렇게 말씀하시겠지요, 하하하. 말도 마십시오. 결과는 성공적이었지만 진수식을 하는 과정은 쇼도 그런 쇼가 없었습니다. 진수식도 큰 행사 중에 하나거든요? 그때만 해도 처음으로 대형 유조선을 건조했고 조선 입국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게 국가적인 큰 행사였다고요. 명명식 때는 박정희 대통령까지 오시게 돼 있으니까 사실상 진수식이 예행 연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근데 진수식을 한다고 하면서 검사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해버린 거 아세요? 하하하. 원래 진수식은 모든 게 거의 완벽해야 하는 거거든요. 당장 운항을 해도 문제가 없다고 할 정도가 돼야 한다고요. 그런데 검사도 끝나지 않고 진수를 했으니 해프닝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우리가 배를 인도하고 그동안 시행착오에 대해 통계를 내니까 무려 104가지예요, 하하하.”
그 정도면 배를 다시 만든다고 했겠습니다. 검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진수식을 했다는 말씀은 없었는데?
“(웃으며)그게 현대 아닙니까. 날짜부터 잡아놓고 준비를 했으니 뭐.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 명예회장님이지요. 가만 보니까 그냥 놔둬서는 한도 끝도 없고, 더구나 선주 쪽에서 파견한 감독관이 자꾸 트집을 잡으니 검사를 다 받고 하자면 2, 3개월이 더 걸려도 진수가 안 될 것 같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진수부터 시키라고 고함을 치시는 겁니다. 스코 사장은 안 된다고 매달리고, 검사관도 나를 잡아먹으라면서 배 앞에 드러눕겠다고 아우성이고, 하하하.”
굴뚝도 없이 새벽에 선체 진수
진수식은 선주가 정하는 게 아니라 제작사에서 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옳은 얘기죠. 근데 우리는 사실 그때까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회장님은 알고 계셨더라고요. 뭔가 하면, 진수를 언제 하느냐 하는 건 순전히 조선소 측에서 결정하기 나름이라는 겁니다. 왜냐, 진수를 해도 배에 이상이 있으면 뜨지 않을 것이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건 결국 조선소만 손해거든요. 그러니까 검사를 다 받고 하건 안 받고 하건 진수는 야드가 판단할 일이다 그겁니다. 그걸 회장님은 벌써 알고 계셨는데 우린 바짝 쫄아서 검사관 달래느라고 절절매고 말이죠, 하하하.”
쇼도 그런 쇼가 없었다는 건 또 시행착오를 했다는 얘깁니까?
“지금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데, 진수를 생전 처음 해보는 거니까 시행착오도 한두 가지가 아니고 엉망일 거 아닙니까. 거기다가 진수식을 하게 되면 별의별 소리가 다 나와요. 특히 일본 애들한테서 험담이 거칠게 나옵니다. ‘만용을 부려서 건조를 한답시고 용접을 하긴 했는데 배가 뜨나 보자.’ 이런 식의 악담이 막 나와요. 평소에는 점잖았던 사람들도 이상하게 진수식만 하면 그럽디다. 좌우간 진수를 하기로 하고 그때가 새벽 1시쯤 됐어요. 도크에 물을 넣으라고 명령이 떨어졌어요. 새벽 시간을 택한 건 일기예보를 보고 바다로 보냈을 때 물결이 최대한 잔잔한 시간을 택하니까 그래요. 그러니 천지가 조용하고 주변은 암흑이고 도크 주변만 불을 밝혀놓은 겁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전부 거대한 선채만 보고 거기에 압도당해서 진수 직전까지 굴뚝이 탑재가 안 됐다는 걸 몰랐어요. 난리가 났지요, 난리가. 하하하.”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웃음)그게 경험 미숙인데 회장님 눈빛이 독수리가 되고 이건 뭐 순식간에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었을 거예요. 욕에다가 고함에다가 전부 혼비백산할 지경이 된 거예요. 더구나 굴뚝이 매우 큽니다. 굴뚝 자체만 해도 25t, 30t 이상 나가요. 그걸 탑재 안 했다니 말이 됩니까?”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러니 뭐 크레인을 동원하고 전원이 달라붙어서 굴뚝을 크레인에 매달고서 대기를 했지요. 물이 다 찰 때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까 굴뚝 높이를 정확히 측정해서 대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낭패가 있나, 이번에는 또 배가 뜬다는 걸 잊어버렸어요. 배를 뜨도록 만드는 게 조선소인데 배가 뜬다는 걸 잊어버렸으니 말이지요, 하하하. 수문을 열면 도크 바닥에서 이만큼(10m정도) 배가 올라오지 않습니까? 고것을 생각 못한 거지요. 그러니까 배가 앉아 있는 상태에서 높이를 측정해 대기했는데 배가 뜬 다음에 탑재를 하려니 높이가 맞습니까? 하하하. 그러니 정신 빠진 놈들이라고 회장님한테 욕먹고. 그런 정도로 경험이 없었던 거예요, 하하하. 그런데도 회장님은 멋지게 진수를 했다고 그러십디까? 다행이네요.”
그러나 시행착오는 다시 하면 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 회장이 바다에 빠져 그야말로 ‘염라대왕 면담 직전까지 갔었다’는 회고담은 압권 중에 압권이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국운이 있었다는 느낌도 받게 됩니다만 회장님이 바다에 빠진 적이 있으십니까?
“하하항, 누가 그래? 내가 죽다 살아난 건 세 사람밖에 모를 텐데. (셋 중에 한 사람한테 들었다고 하자)
그러면 이정일이가 얘기했구만. 그 친구가 그날 당직이었어, 하하항. 그게 어떻게 된 건고 하니, 내가 여기 내려오면 여기서만(조선소 내) 내가 직접 몰고 다니면서 타는 캐딜락이 있어요. 번호판도 없고 조그마한 차야. 그걸 몰고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잘못되고 있는 게 없는지, 잘되고 있는 건 뭔지, 꼭 새벽 4시면 일어나서 살펴요. 근데 그날은 비가 좀 왔어. 그래도 뭐 내 눈으로 직접 살피고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이니까 둘러보러 나갔는데, 그때 이정일이가 부장인가 그랬을 거야. 돌아보다가 중간에 그 친구한테 뭔가 지시하다가 시간이 더 지체됐어. 탓을 하자면 그눔 때문에 빠진 걸 거야, 하하항. 좌우간 야드를 전부 돌아보는데 그날따라 비가 와서 그런지 라이트를 켰는데도 앞이 잘 안 보여. 그래가지고 차에 탄 채로 바다에 빠졌지 뭐. 하하항.”
정 회장은 간단히 회고했지만 당직이었던 이정일 전 미포조선 회장은 잊을 수가 없다면서 그날 있었던 일을 눈앞에서 보듯이 얘기했다. 다만 기억의 착오로 시점이 정 회장의 회고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명예회장님이 그런 말씀도 하십디까? 하하하. 회장님이 바다에 빠진 것이 1974년 봄인가, 그랬을 겁니다. 하필이면 그날이 내가 당직사령이어서 아주 죽는 줄 알았는데, 회장님이 바다에 빠졌으니 이건 뭐 내가 잘못한 것 같고 내가 끝까지 모셨으면 괜찮았을 거 아니냐 싶고 말이죠. 비상을 걸어도 중역들이 나타날 때까지는 안절부절못하고 죽을 지경이었죠. 근데 그날도 이상하게 마음이 찜찜하더라고요.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비가 많이 왔습니까?
“그때가 초봄이었던 것 같은데 그날따라 비가 아주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오늘은 순시를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면서도 늘 해오시던 회장님이니까 감히 말씀도 못 드리는 거지요. 원래 회장님이 조선소에 오시면 어김없이 새벽 4시에 현장 시찰을 하세요. 한 2시간씩 혼자 현장을 샅샅이 뒤져보고 한 5분 정도 혈압 체크하고 6시부터 회의를 하십니다. 그런데 당직을 서면 당연히 회장님 동태를 살필 거 아닙니까? 말하자면 회장님 가는 코스를 지키고 있는 거죠. 비가 아무리 와도 회장님은 틀림없이 현장 시찰을 하시니까요. 그래가지고 도크 옆에 건조부라고 있는데 거기서 나는 회장님 동태를 살피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회장님이 그쪽으로 오시더니 차에 타라는 거예요. 비는 억수같이 오는 새벽인데.”<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회장님은 왕발, 신발 구하기 힘들어”
바닷물서 나오자 “내 신발 말려와”…애지중지 물 빼서 영빈관으로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17)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한국의 조선 역사를 다시 썼다. 하지만 조선 산업을 부흥시킨 자신에 대한 역사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꿈이 있는 사람은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꿈을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인지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다. 정 회장이 만들어낸 ‘정주영 어록’과 무수한 국내외 공사 현장에서 발휘한 ‘정주영 공법’은 많은 화제를 뿌렸고 지금도 현장에서, 또는 대학 강의실에서 회자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정리해 놓은 것은 없었다.어쨌든 그는 조선소를 바닥부터 다졌다. 광활한 필드를 지휘하며 직접 암벽을 쳐내기도 하면서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조선소 내부에 훤했다. 정 회장이 바로 그 현장에서 끝없이 내려가는 바다 속으로 빠졌다는 얘기는 섬뜩하면서도 여간 흥미 있게 들리는 에피소드가 아니다. 역시 그날도 회장님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순찰을 도신 겁니까?“(이정일 부장) 어떨 땐 기사가 차를 몰 때도 있지만 대부분 회장님이 직접 차를 몰고 순시를 하시는 거죠. 그래서 저는 회장님 옆에 앉아 사실 바짝 긴장하고 야드를 돌았어요. 회장님 옆에 앉으면 누구나 다 떨 거 아닙니까, 하하. 근데 그날은 비가 오는데도 야드에서는 골리앗 크레인으로 물건을 탑재하느라 분주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는 우리가 이미 26만t 유조선 외에도 몇 척을 더 수주해서 기초 작업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그렇다면 74년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 무렵은 리바노스한테 인도할 유조선 때문에 전사적으로 매달릴 때 아닙니까?“아니에요, 전적으로 매달리면서도 수주 활동은 계속했지요. 작업 파트가 전부 다르니까 기초 작업은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착착 진행이 되는 거지요. 하여간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는데 내 기억은 74년 봄인 것 같아요. 봄비치고는 너무 많이 온다고 했으니까요. 근데 회장님이 작업하는 야드를 보시더니 핸들을 돌려 다시 크레인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가시더라고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당직실까지 가지도 않고 그냥 내려놓는 겁니까?“그런 거지요 뭐. 당직 잘 서고 있다는 눈도장만 찍혔으면 됐지 비가 문젭니까. 나는 얼른 내리는 게 더 좋죠, 하하. 하여간 그러고 얼마 안 됐을 겁니다. 당직실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경비실에서 다급히 전화가 왔어요. 초소 근무자지요. 회장님하고 헤어진 게 아마 4시40분, 그 정도 됐을 텐데 5시가 채 못돼서 전화가 온 거예요. 이거 큰일났다는 겁니다. 회장님이 바다에 빠지셨다고.”‘무슨 얘기요! 내가 수행하다가 조금 전에 더 둘러보신다고 가셨는데!’‘회장님이 바다에 빠지셨다니깨요!’초소 경비가 숨이 꼴깍 넘어갈 듯이 외쳐대는 겁니다. ‘어느 바다요!’제2안벽이다 이거예요. 제2안벽이 제1도크 앞이에요. 거기가 아주 깊습니다. 그런데 지나간 얘기니까 웃지만 내용을 알면 기가 막히는 겁니다, 하하하.”제1도크 앞이면 바로 절벽일 텐데요?“그렇죠. 수심이 수십m 나올 겁니다. 거긴 야낚꾼(밤이 되면 숨어서 몰래 낚시하는 사람들)도 접근을 안 할 정도거든요. 정신없이 쫓아갔지요. 가서 보니까 회장님은 이미 영빈관으로 가셨고, 경비는 그때까지도 혼이 나가고 사색이 돼서 말을 못해요.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인데 기겁을 했을 거 아닙니까.”갑자기 없어진 회장님 자동차 어쩌다가 빠졌다는 겁니까?“나도 그게 젤 궁금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자초지종을 물었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정말 넋이 나갔어요. 담배만 뻑뻑 빨면서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데 헛소리까지 해요. ‘돌아가셨으면 내가 무슨 원망을 듣고 가슴에 못이 백혀 우째 살아가겠노…’하면서 계속 중얼거리기만 하는 겁니다.”쇼크가 컸던 모양이군요.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입장이 바뀌어도 그랬을 것 같더라고요. 자기가 근무 서고 있는 눈앞에서 회장님이 돌아가셨다고 해봐요, 견딜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마음은 급한데 경비 안심시키고 그럴 여유가 있습니까? 빨리 냉수 마시고 정신 차리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는데 진짜 옆에 보니까 찌그러진 주전자에 냉수가 있더라고요, 하하하. 하여간 이건 경비한테 들은 얘긴데, 그 시간에는 이상하게 비가 더 억수로 퍼부어댔대요. 거기가 또 해안에서 맞바람이 치는 곳이라서 바람도 굉장합니다. 막아주는 건물이 없어요. 그런데 초소에서 보니까 저쪽에서 차가 한 대 오더라는 겁니다. 그러니 경비 생각에 그 시간에 라이트 켜고 오는 차는 회장님 차 말고는 없거든요? 더구나 새벽 4, 5시에 허가없이 공장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건 큰일난다고요.”원칙적으로 못 다니게 돼있습니까?“그럼요. 보안상으로도 통제를 했지만 작업차량이 겁나게 다닐 때가 있거든요. 차에 경광등을 달고 다니는 것도 그래섭니다. 하여간 경비들도 사실 졸다가 4시 넘으면 회장님이 순시 다니시니까 전부 비상근무를 하는데 이 사람도 헤드라이트를 보고 회장님이구나 직감하고 초소 밖으로 나갔을 것 아닙니까? 회장님을 맞이하려고 복장 단정히 해서 나갔겠지요. 그런데 막상 나와서 보니까 불빛이 없더래요.”‘이상허네….’방금 불빛을 봤는데 없어졌다 이거죠. 그래서 경비는 회장님이 플랜트 쪽으로 가셨나 하다가 그게 1, 2초 사이인데, 금방 보였다가 금방 옆길로 싹 빠져나갔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하더라는 겁니다. 그러니 도깨비에 홀렸나 하면서 슬슬 더 나와 본 거예요. 원래 바닷가 거기에 도깨비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어요, 하하하. 하여간 차는 분명 봤는데 금방 없어졌으니까 이상하다 하면서 주위를 좀 더 살폈다는 거지요. 그래도 회장님 차가 없으니까 잘못 봤나 하고선 다시 초소로 들어갔다는 겁니다.”아니, 그 다급한 상황에서요?“회장님은 다급하셨겠지만 경비야 그걸 압니까. 그런데 초소에 들어가서도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이번엔 으스스하기도 해서 몽둥이 하나 불끈 쥐고 다시 나왔대요. 그때서야 어디서 사람 소리 같은 게 들리더라는 겁니다. 그것도 회장님은 누구 없느냐고 소리를 질렀는데 비바람 치니까 작게 들렸나 봐요. 그 사이에 시간은 좀 지나간 거죠. 아마 그때까지는 회장님이 차를 탄 채로 바다에 빠졌으니까 차 안에서 빠져나오느라고 애를 쓰신 것 같아요. 하여간 사람 소리가 나니까 경비가 소름은 싹 돋고 귀신인가 싶기도 하고 별생각이 다 나서 살살 다가갔대요. 그러고는 소리가 바다 쪽에서 들리니까 목을 빼고 내려다봤을 거 아닙니까? 바로 수직으로 그 밑이 바다니까요. 거기는 절벽 옆에 콘크리트 길이 있고 그 밑이 바로 바다잖아요. 해수면까지가 10m는 넘을 겁니다. 그런데 바다를 막을 때는 파일을 박고 콘크리트를 치잖아요. 그러면 목재 틀이 울퉁불퉁 튀어나오게 됩니다. 바로 그 목재 틀이 회장님을 살린 셈인데, 경비가 내려다보니까 주위는 어두운데 저 밑에서 누가 그걸 꼭 잡고 매달린 채 있더라는 거지요.”(웃음)이젠 살았네요. “살긴요. 그게 회장님인데 경비가 볼 때는 물에 빠졌으니 머리도 짝 붙고 옷도 짝 붙어서 완전히 미라 같지 않았겠어요? 더구나 밤이고. 거기다가 이 노인네가 귀신도 생각나고 겁도 나고 하니까 회장님 생각은 깜빡 잊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자기 딴에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확인한다고, ‘누구요?’‘나야! 로프 가져와!’‘나가 누구요?’‘나야 이 자식아! 빨리 밧줄 가지고 오란 말이야!’‘아고 회장님이십니까! 회장님이 왜 거기 계신대요!’그때부터 이 노인네가 당황한 거죠, 하하하. 그런데 로프를 가져오라는 소리도 파도소리가 있으니까 무슨 소리인지 듣지도 못하고 당황만 하고 어쩔 줄을 모르니까, ‘야 인마! 빨리 가서 로프 가져오라는데 뭣 하고 있어!’제정신이 아니죠. 그래서 로프를 던지려고 하니까 그때 또 회장님이, ‘야 인마! 어디 갔다 왔어!’‘로프 찾으러 갔다 왔는데요?’‘빨리 안 내리고 뭘 쳐다봐 인마!’하하하, 그 판국에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묻긴 왜 묻습니까. 그러니 워낙 어려운 회장님인데 물으니까 대답하느라고 또 던지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거죠. 하여간 그래서 로프로 올라오셨어요. 그러더니 냅다 쥐어박더라는 거예요.”초소 근무자를요? 생명의 은인인데 쥐어박아요?“회장님은 화가 나신 거죠. 거기 매달려 있느라고 얼마나 힘을 썼겠습니까. 그러니 은인이고 뭐고 성질대로 하신 거지요, 하하. 그래놓고는 그러시더래요. ‘야 인마, 사람이 빠졌으면 건져놓고 볼 일이지 누구냐고 묻긴 왜 물어!’하하하. 그런데 보니까 신발이 젖었을 거 아닙니까? 옷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니 신발을 벗어던지면서 경비한테 화풀이를 하시더래요. ‘신발 물 싹 빼가지고 와!’하하하. 얼마나 웃었던지 말이죠. 그 바람에 연락받고 달려간 제가 신발 물을 다 빼가지고 영빈관으로 들고 갔지 않았겠습니까.”아니, 신발이 뭐 그리 대단했던 겁니까? “(웃으며) 그게 아니고요, 회장님 발이 워낙 커서 시중에서 찾기가 힘들어요. 그거 한 켤레 사자면 울산을 다 뒤져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목숨 구해준 근무자에 청소 대행 맡겨뒤늦게 확인된 것이지만 정 회장을 살려내고도 한 방 얻어맞은 초소 경비는 하필 같은 정씨였다. 그리고 비록 쥐어박았지만 정 회장은 은혜를 입었다면서 그를 따로 불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나 특별한 기술이 없는 정씨였고, 사정을 파악한 정 회장은 현대중공업은 물론, 계열회사 건물을 청소하는 청소 대행사를 차리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필드를 잘 아는 회장님인데, 왜 떨어졌는지 원인은 나왔습니까?“나도 이상하다 했지만, 회장님이 거기 떨어지신 건 이유가 있었어요. 비가 오니까 칠흑같이 어두운데 그 길이 그때나 지금이나 넓거든요. 그리고 회장님이 낮에 작업을 독려하면서 다니실 때는 그 길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랬는데 하필이면 회장님실로 들어가신 후에 거기다가 철근을 잔뜩 쌓아뒀지 뭡니까. 그러니까 회장님은 새벽에 그쪽으로 가시다가 철근이 쌓여 있는 걸 보시고 순간적으로 길이 다른 쪽으로 있다고 생각을 하신 거예요. 분명히 낮에 다니실 때는 철근이 없었던 길인데 철근이 잔뜩 쌓여 있으니까 길을 잘못 들었다고 판단하신 거죠. 그래가지고 핸들을 옆으로 돌리다가 순식간에 빠진 거지요.”거기에는 조명등도 없었습니까?“작업하는 야드에만 있지 거기까지는 없었지요. 더구나 아주 캄캄한 새벽이니까 라이트만 켜고 가면 콘크리트 길은 안 보입니다. 바다하고 똑같죠. 그러니 어! 하는 순간에 그대로 빠지신 거예요.”<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박 대통령 배 안쪽 보다 깜짝 놀라
첫 선박 2척 명명식 앞두고 공기 못 맞춰 쩔쩔매기도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18)
그 어두운 밤에, 더욱이 차 안에 앉은 채 빠졌으니 경황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 순간을 극복하고 차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상상만 해도 여간 아찔한 일이 아니다. 그 상황에 대해 정작 정 회장은 ‘살려니까 안 죽은 거지’라면서 태연스럽게 그 당시를 설명했다.“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 거예요. 이건 과장이 아니라, ‘아차’ 하는 순간이 곧바로 물속이 되는 건데, 나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조금도 안 했어요. 차가 푹 빠져 들어가니까 이게 동시에 약간 붕 떠요. 비가 쏟아지고 날씨가 조금 추워서 창문을 다 닫고 운전을 했었거든? 그래서 그랬는지 자동차가 곧바로 내리꽂히는 게 아니라 붕 떴다가 꼬르륵 들어가는데, 물도 바로 들어오지는 않아요. 그러니 그때까지는 차 안이 공간이고 운전석보다는 뒤쪽이 더 넓으니까 움직이는 건 뒤가 낫겠다 생각하고 뒤쪽으로 재빨리 움직이면서 그 짧은 순간에 생각을 하는 거야. 나가야 되겠는데 만약 문을 열면 순식간에 물이 확 들어올 거 아니에요? 그러면 문도 다 못 열고 죽는단 말이야. 수압 때문에 안 열려요. 그러고 물이 들어오니 질식해서 죽고. 그래가지고 어떻게 판단을 했느냐, 일단 사력을 다해 내 등으로 차문을 밀어보고 수압보다 내 등판 힘이 더 세면 확 밀고 나간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젊었을 때 쌀가마니도 두 개, 세 개씩 졌으니까, 하하항.”그러면 등판으로 문을 밀쳐내고 나오신 겁니까?“차문에 등을 착 대니까 아니야. 대번에 어림없다는 걸 알겠어. 벌써 감각이 달라요. 씨름할 때 딱 잡아보면 나보다 센지 약한지 해보지 않아도 알거든? 똑같아요. 그래가지고 재빨리 그 다음에 생각한 게 창문이야. 근데 문을 등으로 밀어보려고 건드렸기 때문에 이미 발밑으로는 물이 조금씩 들어오는 거야. 그런데 내가 그때 느낀 게 있어. 이게 참 양면성이다 이거지. 수압이라는 게 밖에서 차문을 같이 미는 셈이니까 결국은 수압이 차문을 더 닫아주고 있는 거야. 그러니 물이 한꺼번에 밀려들지 않는단 말이야. 이 세상 모든 적이 상황에 따라 내 편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느끼는 거야. 적이라고 함부로 없앨 게 아니다, 수압이 나를 죽이게 돼있는데 그게 문을 압박해서 나를 살려주고 있으니 말이야, 하하항. 좌우간 얼마나 민첩하게 움직였는지 몰라. 창문을 요렇게(빈틈이 생기도록) 해서 물이 조금씩 들어오게 내렸어요. 한꺼번에 확 들어오면 감당을 못하겠고 위험하니까. 그래가지고 물이 목까지 차는 순간 차 안에도 물이 꽉 찼으니까 동시에 창문을 확 내리고 바로 싹 빠져나왔지요. 그게 성공한 거야, 하하항.”“그때만큼 술 많이 마신 적 없어요”이정일 전 회장은 그 후 정 회장의 모습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그래가지고 저는 당직사령이니까 돌아와서 중역들한테 전부 전화를 해야 되잖아요. 그때 김영국 사장님한테도 전화를 하고 김영주 회장님한테도 전화하고 쭉 전화해서 비상을 걸어놓고 영빈관으로 다시 갔지요. 가서 보니까 회장님은 그 사이에 물을 빼느라고 신발을 엎어놨더라고요, 하하하. 그러니 나중에 놀라서 달려오신 중역들이 물에 빠지셨다는 걸 실감이나 하겠습니까? 그런 데다가 회장님까지, ‘아직 회의시간도 안 됐는데 왜들 왔어?’ 하하하. 그때 제가 회장님을 또 한 번 다시 본 건, 회장님이 그 당시에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셨는데 그 무렵에 5000원짜리 새 지폐가 막 나왔을 땐가 그렇습니다. 새 돈인데 그 걸 침대 위에 주욱 널어놓고 말리고 계시는 겁니다. 수표나 만원짜리는 한 장도 없고 천원짜리 몇 장하고. 하하하.”어쨌든 그런 사고가 있은 후에도 정 회장의 새벽 순시는 매번 계속됐다고 했다.“그런 일이 있었다고 중단하면 앞으로 수주를 어떻게 하고 건조를 어떻게 할 수 있어. 회장이 죽다 살았는데도 또 돌아다닌다, 정 아무개는 물에 빠져도 물귀신이 안 된다, 그렇게 소문이 돌아야 전 직원들이 명을 걸고 덤벼들 거 아니야? 내가 월급을 많이 받아간다 적게 받아간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어려운 여건이지만 마음만 합치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 그런 공감대가 아주 중요했어요. 아마 내가 그때만큼 막걸리를 많이 마신 시절이 없었을 거야. 난 원래 술을 못하는 편이거든? 그래도 기분이 나쁘거나 일이 잘 안 되고 꼬이면 내 입으로 ‘노가다’라고 얘기해가면서 회식자리 만들라고 했어. 그래가지고 그때는 술을 조금 마시는 사람은 남자치고 못난 사람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종지 그릇 같은 건 다 치우고 사발로 마시고 말이야, 하하항. ”마침내 현대조선소가 공식적으로 조선소로 공인을 받게 되는 명명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를 건조하지 않은 조선소는 조선소가 아니다. 그래서 현대조선도 사실 이때까지 준공식을 하지 않았다. 정 회장만의 유별난 고집이 있어서가 아니라 배를 건조하지 않고는 조선소로 명함을 박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물론 국내 최대의 그룹으로 성장했던 지난날의 현대그룹 계열사 중에 기공식은 있었어도 준공식을 했던 회사는 현대조선을 제외하고는 없었다고 할 정도로 특이한 전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그룹의 한쪽 기둥인 현대자동차도 그랬고 현대건설도 준공식은 없었다.“명명식 땐 울산 전체가 축제야”“준공식? 나는 안 해. 사장하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자축연을 열고 준공식을 했으면 모를까 나는 안 했어. 현대중공업(현대조선)도 1호선 명명식을 하고 진수식을 해야 조선회사로 공인을 받는다구 하기 땜에 6월 28일 그날 준공식이 된 거예요. 이런 얘기 처음 듣지? 하하항. 기공식만 하면 됐지 준공식이 왜 필요해? 회사 사옥을 짓는 거라면 모르지만 나는 기공식을 하는 그날부터 이미 본 사업에 들어갔어. 공장 다 지어놓고 사업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니 준공식이 필요할 게 뭐야, 하하항.”명명식이 거행돼야 현대조선소가 비로소 세계 선박협회에 이름이 오르고 사실상 행세를 할 수 있었다고 하니 명명식 행사는 대단했겠습니다.“그건 말로 다 할 수 없지. 대통령 내외분이 다 내려오시고 장관들은 물론이고 외교사절들하고 선주까지 참석하는 행사니까 말이 명명식이지 울산 전체가 축제야. 요란했어. 그러고 우리나라에서 1개 회사가 훈장하고 대통령 표창을 그렇게 많이 받은 건 유례가 없어요. 무려 55명이 받았어, 하하항. 그러니 명명식 행사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아요? 전국에 TV로 중계방송이 되고 말이야. 그때 명명식 행사는 김형벽 사장이 잘 알거야. 행사 준비를 했으니까. 만나서 직접 들어봐요. 그눔 자식들이 대통령을 놀라게 해가지고 잽혀가기도 하고 별일 다 있었으니까.”행사를 하면서 잡혀갔다는 말씀입니까?“행사를 코앞에 두고서 그랬지만 시원찮은 것들이 낭패를 당하게 했지 뭐야. 김영주 회장이나 이정일 사장도 알 거야. 만나봐요.”김형벽 전 회장은 당시 부장으로 명명식 행사를 지휘했지만 정 회장이 얘기한 것처럼 축제라고 느낄 만큼 여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본인은 공기에 쫓겨 자살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그때가 74년도 6월 28일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행사를 진두지휘 했는데 1호선은 좀 일찍 만들어졌지만 2호선 때문에 굉장히 공기에 쫓겼습니다. 아시다시피 행사 날짜는 박 대통령이 참석하시기 때문에 미리 정해놓고 초청장을 보내지 않습니까. 선주들한테도 미리 알리고요. 그런데 2호선이 사실 완공이 덜 됐단 말입니다. 그러니 명명식 날짜는 받아놨고, 대통령께서 직접 오셔서 명명식을 한다고는 그러지, 짐작이 되겠지만 소위 건설 현장에서 용접하던 사람, 배선하던 사람, 뭐 그런 사람들 끌어 모아서 배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숙련이 돼야 얼마나 됐겠어요. 솔직히 급해지니까 블록 하나 붙이는 것도 제대로 손발이 안 맞아요. 정말 죽겠더라고. 만약에 2호선이 제대로 진수가 안 되면 나는 자살이라도 하고 없어져야 되겠다, 그런 비장한 각오가 되는 겁니다.”스틸 커팅을 자동화로 한 것도 아닐 테고, 회장님은 진척 정도를 모르고 계셨습니까?“회장님한테 일일이 보고를 못 드리지요. 언제까지 해! 이걸로 끝이니까요. 누가 나서도 2호선은 도저히 진수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거기다가 스코 사장이 절대 안 된다 이겁니다. 원칙적인 사람이니까 공정으로 봐서는 절대 진수식이 안 되는데 왜 그렇게 억지로 고집이냐 이거죠. 그렇다고 대통령이 오시는데 사장 말대로 접을 수 있습니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통령이 온다고요!’ 만날 이러면서 싸우는 겁니다. 어차피 스코 사장은 2척이 완공되면 떠날 사람이고 회장님이나 우리는 명명식 못하면 그땐 어찌 되겠어요. 그래서 검수를 할 때 설계상으로 크게 문제가 없는 건 작업에서 좀 뺐다가 진수식 끝나고 보완하면 되겠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시간 때문에 도저히 안 되니까요. 그런데 또 스코 사장이 제동을 걸어요. 그래가지고 박재면 부장, 전갑원 부장까지 나서서 싸우는 거예요. 심지어 전 부장이 김영주 회장님한테 그랬다고요.‘바다가 무덤이다’는 각오로 일해‘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김 회장님도 방법이 있다니까 전 부장을 믿고 쳐다보시는 겁니다.‘강행군을 하든지 스코 사장을 돌려보내 버리든가 둘 중에 하납니다.’이럴 정도로 긴박하고 피가 마르는 상황이었어요.”결론은 어떻게 내려졌습니까.“김 회장님도 상황을 아시니까 행사에 차질이 없는 방향으로 하라고 그러셨지요. 그러면서 어떤 얘기까지 나왔느냐 하면, 만약 스코 사장이 끝까지 진수식을 못한다고 막으면 ‘내가 점잖게 은밀한 곳으로 유인하지’ 이랬을 정도예요. 감금이라도 하시겠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분이 굉장히 유순한 성품인데 그런 정도까지 생각하셨으면 정말 그때 상황은 절박했다는 거죠.”그러면 스코 사장 없이 명명식 행사를 한 겁니까?“김 회장님이 직접 설득을 하셨는지 보고를 받은 명예회장님이 잔소리 말라고 하셨는지 스코 사장이 수용을 했어요. 정말 억지로 진수를 시켰고 예정대로 박 대통령 내외분 모시고 명명식을 가까스로 했지요. 그날 김영주 회장님을 비롯해 백충기, 전갑원, 박재면씨, 그리고 저까지 5명이 석탑산업훈장을 받았고 박 대통령께서 직접 달아주시는 그런 영광을 누렸습니다만, 하여간 진수식이 언제다, 공기가 언제까지다 하면 죽어도 거기에 맞추는 겁니다. 사실 바다가 내 무덤이다 하는 각오를 매일 했습니다.”행사를 코앞에 두고 대통령을 놀라게 해서 홍역을 치렀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일 것이다. 이정일 전 미포조선 회장이 아이디어도 냈고 현장에도 있었으니까 이 회장이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이정일)잊혀지지 않는 일이지요. (웃으며)그때가 명명식 하는 날은 아니었을 거예요. 진수식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는 건 맞는데. 박 대통령이 관심도 많으셨지만 초유의 26만t급 유조선을 진수시킨다고 하니까 걱정도 되고 궁금하셨던지 예고 없이 내려오셨어요. 그래가지고 대통령께서 배 안쪽 밑바닥을 한번 보시겠다는 겁니다. 사실 큰 배 밑바닥은 어떻게 생겼는지 누구나 궁금해 합니다. 근데 대통령이 배 안에 들어가면 경호 절차가 아주 철저하고 복잡해져요. 작업자들 전부 체크하고 조사하고. 그래서 작업자들은 아예 배 안에 들어가면 못 나오게 해놓고 중역들은 바깥에서 도열해 있고 회장님만 수행을 하시는 거죠. 그런데 사건이 생긴 겁니다.”<계속>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육영수 여사가 첫 배 이름 지어
‘애틀랜틱 배런’으로 명명…오대양 누비고 인류에 기여하라 송축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19)
현대중공업의 전신인 현대조선소가 정식으로 이름을 세계 조선시장에 내놓게 될 26만t급 유조선 진수식을 앞두고, 홍역을 치렀던 에피소드를 공개하고 있지만 대통령의 관심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었던가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워낙 철저하니까 뭔가 들은 얘기가 있어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그건 모르지요. 나중에 들은 얘깁니다만 일본 사람들이 하도 험담을 하고 트집을 잡아서 회장님도 불려가셨다고는 했어요. 하여간 배 밑바닥이 말이죠, 밖에서 볼 때는 삼각형이라서 좁은 줄로 아는데, 배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밑바닥이 아주 넓고 평평합니다. 운동장이에요. 폭이 50m나 되고 길이가 300m니까 대단히 넓은 거지요. 문제는 그때 발생한 겁니다. 기술자들이 뭘 생각했는가 하면, 박 대통령이 오셨는데 너무 조용하면 안 되니까 뭔가 일하는 표시를 내야 하지 않느냐, 그래가지고 조용히 용접하는 것만으로는 일하는 표시가 안 나니까 유일하게 나타내는 방법은 망치 소리를 내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대통령이 배 밑으로 들어가자마자 일시에 수백 명이 갑판 위에서 망치질을 한 거예요. 하하하.”명명식 TV로 전국에 생중계-그건 기술자들 스스로가 할 수 없는 행동인데요? 사전에 약속도 없이 어떻게 수백 명이 일제히 두드립니까. 누군가 지시를 했거나 신호를 보냈겠지요. “하하하, 그건 누구라고 말할 수 없어요. 좌우간 그렇게 두드리니까 배 밑에서 들으면 꼭 기관총 소리 같고 큰 망치로 때릴 땐 대포 쏘는 소리로 들려요. 순간적이죠. 난리가 났어요. 경호실장부터 놀라가지고 뛰쳐나오고 경호원들은 총까지 빼들고 소리치고 중역들도 당황해서 작업 중지다 뭐다 했지만 일은 벌어졌고 금방 중단이 됩니까? 더구나 중지하라고 소리치는 동안에도 서로 떨어져 있으니까 계속 두드려요. 그러니 박 대통령이 들어가서 나오실 때까지 난리가 났던 겁니다.”-회장님이 사색이 되셨겠어요. 현장에서 보셨을 텐데 대통령 표정은 어땠습니까. “배 밑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역시 박 대통령은 다르더라고요. 오히려 회장님이 화가 나서 독수리 눈이 되셨지 박 대통령은 의젓하게 나오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질문도 하고 농담도 하고 그러셨어요.‘철판이 몇t 들어갔어요?’(박 대통령)‘3만2000t 들어갔습니다.’‘우리나라 철판은 정 회장이 다 먹는구먼요.’‘아닙니다. 아직 먹어야 될 게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하항.’대통령도 웃고 기분 좋다고 하시면서 올라가셨어요. 여기까지는 좋았죠. 회장님이 어떤 놈 지시인지 색출하라고 불호령이 떨어지고 다음날부터는 책임자들이 전부 경호실에 불려가는 겁니다. 기술자들이 일하는 걸 좀 보여드린다는 것이 경호가 뭔지도 모르고 그렇게 됐다고 사과했지만 그게 통합니까? 악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대통령께서 들어가시니까 수백 명이 망치질을 하는 건 이상하다 이거죠. 좌우간 경호실에 불려다니면서 혼쭐났습니다. 회장님은 따로 사과드리고, 하하하.”마침내 1974년 6월 28일 오전 11시 정각.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현대조선소 준공식을 겸한 26만t급 유조선에 대한 명명식과 진수식이 거행됐다. 장쾌한 군악 연주가 울려 퍼지고 수천 개의 크고 작은 풍선이 하늘을 덮고 있는 가운데 국기가 게양되는 동안 임직원들이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은 결코 여느 행사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벅차고 뭔가 해냈다는 환희의 눈물이 담겨 있었다. 박 대통령도 눈시울이 젖었고 그 모습을 전 국민이 봤다. 이날 정주영 회장은 짧은 개식사를 했지만 그 한마디 짧은 문장을 쓰기 위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내외분과 선주이신 리바노스 사장님, 그리고 국내외 귀빈 여러분을 모시고 새로운 조선산업의 역동을 알리는 진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수문을 열겠습니다!” 수문을 치장하며 내걸린 오색 테이프가 밀려드는 거센 물살에 터지면서 장관을 연출하고 힘차게 밀어닥친 바닷물이 도크에 채워지기 시작하자 드디어 거대한 운동장이 일어서듯 서서히 26만t급 유조선 2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조선소의 탄생은 사실상 1호선을 명명하면서부터 고고한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데 그 역사적인 선명(船名) 선포는 누가 했습니까?“1호선에 대한 명명식의 주인공은 영부인께서 맡으셨지. 얼마나 흐뭇해 하시는지 말이야, 하하항.”한복차림의 육영수 여사는 73년도에 용골을 앉힌 첫 번째 선박이라는 뜻으로 현대가 붙였던 ‘7301호선’을 대서양의 남작이라고 풀이하는 ‘애틀랜틱 배런’(Atlantic Baron)으로 명명하면서 오대양을 누비고 세계 인류에 크게 기여하라고 송축했다. 그리고 7302호선은 용선 회사인 셸 석유회사의 맥파젠 회장의 딸에 의해 대서양의 남작부인이라고 하는 애틀랜틱 배러니스(Atlantic Baroness)로 명명됐다. 선박의 명명식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해왔고 항구를 떠나는 선박을 미인이 위로하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행사는 절정에 달했다. 현대조선소의 발전을 기원하는 수천 마리의 비둘기와 풍선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고 선장의 안내로 정주영 회장과 박 대통령은 애틀랜틱 배런호 조타실로 이동했다. 대통령은 감흥에 젖었다. “조타실의 이 조그마한 키 하나로 이 거대한 유조선을 움직이고 저 끝없는 바다를 마음대로 누빈다는 것이야?”(박 대통령)“각하, 오대양이 이 손안에 있습니다.”유조선 위에서 두 제독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또 하나의 신화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물론 26만t급 초대형 유조선이 진수된 것이 현대조선소만의 행사로 그 의미를 축소할 수는 없었다. 일본 정부가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의 이목이 쏠릴 때 조선과 해운의 연계육성 정책을 발표했듯이, 한국 정부는 대형 유조선 건조를 전 세계에 알리는 시점에서 조선과 해운의 연계육성을 위한 종합육성방안을 발표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천 세부 계획 마련으로 76년부터 본격화되지만 조선소 건설은 해운산업의 기틀까지 마련하는 동기를 부여하면서 한국 경제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정 회장, 갑자기 신이 내렸어?”-미포조선도 그 무렵에 설립을 추진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언저리에서 했지요. 그땐 26만t 명명식을 하기 전이었는데, 그때 얘기가 재미있어. 나는 사실 1, 2호선 명명식도 중요했지만 미포조선소 허가 때문에 아주 분주하게 지냈어요. 그 당시에 3000만 달러 차관 교섭은 이미 끝냈고 정부에 외자도입 승인을 신청해 놓고 있었거든? 근데 이건 외자도입이니까 대통령 재가가 나야 한단 말이에요. 그래가지고 대통령을 만나긴 해야겠는데 꺼리가 있어야지? 하하항. 그래서 명명식 날짜를 잡아가지고 만나면 되겠다 싶어서 그렇게 할 판이야. 대통령께서도 숙원이 조선소였으니까 당연히 참석하실 테니 잘됐다 싶은 거지요. 그래가지고 물론 미포만 일대를 이렇게 저렇게 밀어서 부지도 확보한다는 설계도를 들고 청와대로 들어갔어요.” -미포조선소도 차관으로 설립을 하시겠다고 했으면 수리 조선소가 아니고 정식으로 배를 건조하는 신조(新造)회사로 구상을 하신 겁니까?“수리만 하는 조선소를 조선소라고 할 수 있어요? 수리를 전문으로 하더라도 일단 조선소는 맨들어야 할 거 아니에요. 물론 초창기에는 수주를 하지 못해서 수리만 하는 조선소로 알려졌는데 욕심은 그게 아니었지. 좌우간 명명식 날짜를 잡았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아주 흡족해 하시면서 대대적으로 행사를 하라고,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크게 알리라고 말이야,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즉석에서 재가를 하셨는데 문제는 보증 때문에 대통령을 만나놓고 또 정부 보증을 서달라고 할래니까 입이 떨어져야지? 처음에 차관한 건 배를 다 지었으니 곧 갚겠지만 어쨌든 아직은 빚이 있으니까 입이 안 떨어져. 그래가지고 조선 산업이 부흥하자면 대형 조선사가 많을수록 좋다고, 그 소리만 자꾸 했어. 재가받을 생각으로 말이지, 하하항.”1975년 4월, 현대는 ‘현대미포조선소’를 설립했다. 미포조선소의 자본금 12억원은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이 출자한 25%가 포함된 금액이었다. 日 조선업계의 험악한 음모현대는 사업계획서에서 밝힌 대로 도크 확장 공사를 계속해 1975년 5월이 되자 3도크(건조능력 100만 t, 길이 640m, 폭 92m, 깊이 13.4m)를 완공할 정도로 속도를 냈고 단일 도크로는 세계 최대 건조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1977년 3월에 4, 5도크, 1978년 1월에 6도크, 1979년 8월에 7도크를 완공할 만큼 사세를 확장해 거기에서 국내 최초로 2만6000t급 컨테이너선을 건조했고 1980년 5월에는 자동차 운반선을 역시 국내 처음 건조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해오면서 현재는 9개의 도크를 가진 세계 최대 조선소로 성장했는데, 그러나 성장이 있으면 반드시 시기와 질투와 험악한 음모가 있었다. -처음으로 26만t급 선박을 진수했을 때 일본 조선업계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사실상 선박 수주 경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보여집니다만. “(김형벽)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1, 2호선을 진수하고 뉴스가 막 타전되니까 세계가 주목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의 시기는 야비할 정도였습니다. 내가 직접 경험을 했는데요, 1974년도 11월이에요. 지금도 합니다만 그때도 수출 포상이 있었습니다. 수출의 날로 기억합니다. 내가 생산부장으로 일할 때지요. 서울로 갔더니 명예회장님께서 나를 불러놓고 사뭇 걱정스런 표정이세요. ‘이봐 김 부장, 청와대에서 자꾸 나오는 소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3, 4호선 배가 한 1m 정도는 휘었다고 그러는데 그게 사실이야?’느닷없는 말씀에 처음에는 무슨 얘긴지 몰랐어요. 배가 어떻게 휘어집니까? 그래서 그랬죠. ‘배가 휘었다는 말씀은 처음 듣습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엔지니어들만 모여서 만들었다면 경험이 미천해서 혹시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로이드 선급협회에서 나온 수퍼바이저들이 하나하나 체크해서 오케이가 안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또 일본 놈들이 모략을 했구만.’나중에 알고 보니 회장님이 정확히 보신 거예요. 일본 측에서 우리 야드에 와서 보고는 생동감이 돌고 물량도 확보가 돼 있고 하니까 듣던 것 하고는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이대로 나가면 선박 시장을 잠식당하게 될 것 같단 말입니다. 그때부터 정말 온갖 말을 다 만들어내면서 선박시장에 악성루머를 퍼뜨린 겁니다. 방해 공작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20)
“꿈에 아버지 보이면 무조건 따냈다”
훗날 기록이 보여주고 있듯이 현대의 급성장은 모두 위기를 극복하고 도전으로 얻은 성취였다. 태국·베트남 진출에서도 그랬지만 조선 사업에 뛰어든 후 중동으로 진출할 때는 그야말로 위기와 맞선 최대의 결단이었다.
“내 평생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직접 사주팔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본 적이 없어. 집사람이나 여동생이 재미삼아 물어보고 얘기해준 적은 있어도 말이지. 나는 큰 입찰을 하거나 큰 공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 아버지가 꿈에 보여. 그것밖에 없어. 하하항.”
자격미달 딛고 10억 달러 공사 따내
-당시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메인 공사만 1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적인 공사였지요. 그때도 입찰할 때 아버님이 꿈에 보였습니까?
“물론 주베일 산업항 때도 아버지 꿈을 꾸고 이건 우리가 먹을 수 있다고 덤빈 거예요. 1974년, 75년도에 10억 달러 공사라고 하면 세계에서 제일 큰 단일공사고 난공사예요. 공사를 발주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그렇고 세계적인 건설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거야. 과연 어떤 회사가 이 공사를 수주할 거냐 해서 말이지. 그런데 우리는 그때만 해도 입찰자격조차 안 되는 거야. 세계 10위권 건설사에 못 들었으니까. 그때는 사우디에서 우리 정부도 불신해 정부 보증서도 인정을 하지 않았어.”
-그런 정도로 대단한 공사였습니까?
“공사도 대단했고 세계 10위권에 드는 건설사 중에서 발주하겠다니까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회사다 하면 그 회사가 속해 있는 나라도 알 만하다 이거지. 건설회사의 힘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그러니 입찰 자격은 고사하고 입찰 보증서부터 대한민국 가지고는 안 돼. 신용도가 높은 국가 보증이거나 은행 보증서를 가져가야 귀동냥이라도 하는데, 방법이 있어? 16㎜ 필름에다 시멘트 공장, 자동차 공장, 조선소 같은 걸 죄다 찍어 은행마다 찾아다니며 보증서를 끊어달라고 통사정을 했지.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꿈에 보이는 거예요. 나는 인생의 한고비를 넘길 때마다 아버지 꿈을 꾸는데 그날 보이더란 말이야. 그러더니 다음날 은행에 가니까 2000만 달러 지급 보증서를 주잖아요. 결국 엄청난 경쟁을 했지만 10억 달러 주베일 공사를 따낸 거예요. 우리가 거기서 벌어들인 달러로 그 당시 국가의 외환 부도를 막은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
두 척의 대형 유조선을 진수시키면서 그동안의 모든 우려도 함께 실어 보내고 현대조선을 지켜온 스코 초대 사장도 76년 4월, 임기를 마치고 울산을 떠났다. 그가 떠날 때 정 회장은 그에게 “현대조선이 보고 싶어 오겠다고 한다면 언제라도 항공권을 포함해 모든 편리를 제공하고 환영하겠다”며 치하했다. 물론 현대조선의 발전을 자신 있게 보여주겠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스코 사장이 떠나면서 비로소 현대맨으로 체제를 새롭게 정비했다. 사실상 이때까지는 이름만 한국의 현대조선소였지 끌고 가는 선장이 외국인이라 마치 혼혈아를 키우듯 조선소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음을 숨길 수 없었다.
76년 8월, 정 회장은 늘 ‘왕상무’로 불렀던 김영주 부사장을 총괄사장으로 임명하고 신규 사업 담당 사장에는 정문도 부사장을 선임했다. 건설에서부터 한솥밥으로 배를 채웠던 현대맨들로 틀이 구성되면서 활력이 넘쳤다. 게다가 창업주의 매제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뒷받침돼서인지 ‘김영주 체제’는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회장님이 사실상 현대조선소 첫 사장이 되신 것 아닙니까.
“결국 구조적인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실전에서 뛰어본 팀들이 ‘단순히 배를 건조하는 실력만 가지고는 어렵다’고 보고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엔진·전기·기계 등 모든 것이 우리 기술 능력으로 맞설 정도가 안 되면 경쟁이 어렵다는 거예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야.”
정 회장은 김영주 사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78년 2월, 현대조선을 현대중공업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중공업 체제 정착을 시도한다. 이때부터 현대중공업은 새로운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그동안 경영을 맡아 온 김영주 사장을 현대엔진 사장으로 보내고 78년 10월 이춘림 사장(전 현대중공업 회장) 체제를 출범시켰다.
“신군부에 1, 2등 회사만 희생”
이 사장은 현대가(家)의 사람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현대가와 동거우락(同居憂樂)해온 인물이었다. 실제로 친동생들과 같이 뒹굴고 닭싸움도 했던 그런 사이였다. 그에 대한 신임이 얼마나 두터웠던지 정 회장은 그에 대해 “이 회장은 전공이 없어. 뭐든지 맡기면 다 잘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 사장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력이 무서운 게 아니라 고객에 대한 신용을 지키라고 강조하는 것이 해고를 시키는 것보다 무서웠다고 했다.
“조선 산업은 해외 의존도가 80% 이상이기 때문에 신용을 잃으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 아닙니까. 우리 고객은 선주인데, 납기를 준수하면서 단 하루라도 공기를 단축해주고, 거기다가 품질까지 만족스럽게 해주면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어요. 만족이 곧 신용이거든. 우리 직원들이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 막 조졌거든. 하하하.”(이춘림)
그러나 79년부터 몰아닥친 2차 오일 쇼크는 또다시 최악의 위기를 몰고 왔다. 정 회장도 그 무렵은 악몽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터지면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다. 일부 선주가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짐작이 됩니다. 그러고서도 또 신군부 때문에 몹시 고초를 겪지 않았습니까.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산업을 그때 그 인간들이 여러 개 조져놨어! 어떻게 해서 일궈놓은 산업인데. 정치물이 들어간 군인들이 뭘 안다고 통폐합이니 중화학 투자 조정이니, 가소로워서 말이지. (확)나는 평생을 현장에서 살아온 사람이야! 평생 산업 현장을 하루도 떠나본 적이 없어! 통폐합당하고 기업을 빼앗긴 사주들 중에 어느 누가 저들보다 못한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 누가 누구를 치는 거야? 그동안 전부 잘해온 사람, 전부 1, 2등 하고 죄다 기업을 성공시킨 사람들만 골라서 친 거 아니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부도내고 쓰러질 기업을 조정하고 없애고 했다면 모르겠어, 잘하고 있는 기업을 그렇게 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어. 더구나 그렇게 치면, 당하는 기업들은 평생 고생해 놓고 국가에 해악을 끼친 몹쓸 기업처럼 인식되는 거 아니야? 정말 그런 취급 받아야 할 기업들이야? 어떤 기업인, 어떤 기업들이 당했는지 보란 말이야. 통폐합으로 희생된 건 전부 1, 2등짜리야! 에이, 부아가 치밀어서 더 얘기 못하겠어.”
위기는 계속됐다. 현대중공업은 78년부터 사업본부를 축소하고 기관차와 엔진, 중전기를 별도법인으로 독립시켰다. 79년에는 조선사업본부·플랜트사업본부·관리본부만 남기면서 나름대로 체질 강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요인이 됐다.
70% 이상이 조선사업본부의 실적에 좌우되는 구조에서 경기 변동에 대한 적응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면 취약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수 기반이 없는데 해외 조선시장이 얼어붙으면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기가 어렵게 돼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도 현대는 끈기와 저력이 있었다. 모두가 1등급 인재들이라고 할 만큼 유능했던 박재면·박영욱·김형벽·이정일·정태구·이현태·구영회·최병권·지주현씨 등 중간 간부들과 작업반장들까지 모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9년여 동안 중공업을 이끈 이춘림 사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다 발휘했다. 결과는 만족이었다. 81년 결산이 608억원이나 흑자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선박 수주액도 9억8000만 달러를 올려 비로소 차관을 쓰지 않고 10억 달러 수주를 달성하는 원년을 기록한 것이다.
“참 운이 따라줬어요. 세계 1등이다, 2등이다 하는 게 영원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설립 10여 년 만에 잠깐이라도 세계 1위 조선회사로 부상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게 83년인데, 그때 선가(船價)가 바닥을 쳤다고 판단한 선주들이 비록 3만~4만t 소형 화물선이지만 대량으로 발주를 했거든? 말하자면 투기성 발주지요. 선가가 틀림없이 오른다고 본 거지. 그해에 무려 125척 440만t을 발주했으니 그런 유례가 없었지요. 세계 조선시장이 흥분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운이 참 좋았다는 것이, 그때까지는 발주가 나오면 거의 일본 조선사들이 독식하다시피 했어요. 근데 한꺼번에 물량이 쏟아져 나오니까 일본 조선사들 도크가 부족한 겁니다. 수주를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전부 우리한테 몰리는 거예요.”(이춘림)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였다. 6·29 선언 후 87년부터 불어닥친 노사분규는 급기야 선가 상승을 가져왔고 원화 절상마저 겹쳐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그해 현대중공업은 7월부터 9월까지 두 달 동안이나 혹독한 노사분규를 겪었다. 이런 변화는 급기야 새로운 환경에 맞는 경영과 혁신적인 체제로 재정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정몽준 회장이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노사분규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그해 8월에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고 ‘지긋지긋했다’는 밤샘 협상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11월, 회장에 취임했다.
몽준 회장의 취임은 두 가지 면에서 시험대에 오른 셈이었다. 변화에 대한 순발력이 있느냐, 또 하나는 불황이 장기화되는 암울한 조선시장에서 새로운 시대에 대비해 선사들 간의 출혈경쟁을 잠재우고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조선과 해양·플랜트 등 중공업 전반의 불황 국면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해법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몽준 회장의 과감한 투자 결정
결과는 이상할 정도로 운이 따라주었고, 사업본부별 체계도 일원화시켜 순발력을 확산하는 시스템 구축도 성공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몽준 회장이 배운 것은 정 회장의 미래를 보는 안목이었다. 조선업계가 불황이었던 75년에 미포조선 설립을 밀어붙여 일본으로 갈 물량을 대거 흡수했듯이 훗날이지만 몽준 회장은 중역들이 모두 반대하는 중에도 8도크와 9도크 건설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그것이 미래를 보는 안목이었다.
더구나 정 회장이 대선 출마 실패로 좌절에 빠져있었음을 감안하면 몽준 회장의 오기에 가까운 집념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창업주 정 회장의 안목과 불황을 염두에 두지 않은 과감한 투자 결정은 현대중공업이 세계 1위의 조선소로 급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94년 이전까지만 해도 1조6000억원에 불과했던 조선사업본부의 매출이 9도크까지 완공된 96년부터는 2조원이 넘는 성과를 냈고 올해는 5조7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을 만큼 끝없이 성장해 가고 있다.
갈매기만 찾아들던 황무지를 세계의 부호들이 찾아오는 최대의 조선소로 바꾸어 놓은 정 회장이 새삼 그리워지는 시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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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결혼·육아] 여성심리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고찰
[연애심리] 여자의 심리에 대한 진화 심리학적 고찰 종교가 기독교이기 때문에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과 무관하게 진화심리학은 현생인류의 행태에 대해 굉장히 설득적인 통찰을 제시하고 있으니,"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거 같습니다. 편의를 위해 문체는 반말로 하겠습니다. =============================================================== 고삐리 때 전체 회장, 대학교 새내기 엠티 때 과대, 동아리 회장 등 소규모의 모임이라도 '장'자리 맡고 있는 남자치고 옆에 여자없는 사람 찾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 더 많은 여자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된다는건 삼척동자도 알 만한 얘긴데...도대체 리더는 왜 여자들에게 매력적일까?<부족시대의 환경을 알아보자>기본적으로 선사시대엔 부족/씨족 생활을 했다. 무리에서 가장 용맹이 뛰어나거나, 경험이 많아 지혜롭다고 인정받는 남자가 무리의 리더가 되어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는 식의 체계였다. 부족장의 지휘 아래 날 밝을 때 남자들은 사냥을 하러 가고, 그 사이에 여자들은 동굴 안에서 육아/가사를 공동분담하며 남자들이 사냥감 가지고 들어오기 기다리는게 그네들의 일상이었다. 여자들끼리는 많은 대화를 하면서 부족내의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고, 서로 몸치장을 해주고, 친분이 강한 사람들끼리 더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패거리를 이루기도 했을거다. 요컨대, 남자들이 사냥감을 가지고 용맹의 경쟁을 했다면 반대로 여자들은 동굴안에서 말과 친분으로 정치적 경쟁을, 미모를 무기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여자는 사냥을 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이것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는데, 본질적인 여성의 '의존성'이 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부족 내에서 지위가 공고한 남자로부터 호감을 얻어내지 못하면 스스로 사냥을 못하는 여자는 보통은 굶어 죽는 수 밖에 없다. 사냥에 큰 공을 세웠거나, 부족 내에서 권위가 높은 남자부터 순서대로 먹을 것을 배당받았을테니 쩌리 취급당하는 남자들이나 쩌리남자와 짝을 이룬 여자는 늘 간당간당 했을 거라는 얘기다. 그래서 여자끼리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지독히 치열했을) 생존을 보장해 줄만한 남성을 얻기 위한 짝찾기 경쟁을 하게 된다. 자신의 생존 뿐만이 아니라 자식을 낳았을때 자식의 생존까지도 보장해 줄 수 있는 능력있는 남자. 즉 리더(or 장래에 리더가 될만한 떡잎바른 사내)에 대한 여성들의 호감은 여기서 기인한다. 흔히 궁금해 할만한 잡다한 질문중에서 진화심리학적으로 훌륭하게 설명이 가능한 것들을 몇개 추려봤다. 보시라. 1. 남자는 헤픈 여자를 못참지만 여자는 바람둥이를 보통 잘 받아주는 편이다. 왜 그럴까?-> 부족장은 동시에 여러 여자를 거느렸을 가능성이 높다. 여자 입장에서 훌륭한 개체(부족장)의 유전자를 나눠 가지고 그결과로 첩이 되는 것이 찌질한 남자(가령 서열 30위 )의 본처가 되는 것 보다 생존과 번식에는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DNA를 받을 수 있고, 비록 남자의 애정을 독점하진 못해도 자신과 자식의 생존이 보장된다는데, 언제 도태될지도 모르는 위협을 안은 채 쩌리남과 짝을 이루는 것보다야 훨씬 남는 장사 아닌가? 동시에 이미 다른 여자에 의해 남자로 선택받았다는 점은 그 자체로 검증된 수컷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애인이 이미 있거나 부인이 있는 남자는 여성에게 모종의 안정감/신뢰감을 주는 측면이 있다. (젊은 남자들 구애 다 물리치고, 유부남인 회사 상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젊은 여직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게다) 위와 반대로 남자를 이미 차지하고 있는 정실부인 혹은 여친 입장에서는 외도를 하는 남친이나 남편은 정말 끔찍히 싫다. 인간적인 배신감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다른 여자에 푹 빠져서 그쪽에 남자가 마음을 쏟기 시작하면, 보통은 불륜녀에 대한 물질적인 투자가 뒤따르고, 이것은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한 물질적 부가 유출된다는 얘기이므로 여성입장에서는 목에 칼이 들어온 상황과 비슷한거다. 그래서 남자가 여성에게 "내 아이를 낳았느냐"라고 정절을 묻는 이상으로 여성에게 중요한 것은 "나에게만 투자하고 있느냐"라는 애정의 독점권이다. 남자가 어디에서 몰래 자식을 낳았느냐는 여자에게는 부차적인 문제다.(그래서 보통 남자의 육체적 외도 자체에는 비교적 관대하다. 그렇다고 바람 피울 생각들은 꿈에도 하지 말길) 2. 왜 남자는 경쟁적이고 여자는 협동적인가? -> 남자의 부족생활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치열한 서열다툼의 게임이다. "누가 사냥/전투에 가장 큰 공을 세웠느냐"가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 척도가 되었을 것이고, 높은 쪽으로 올라갈수록 여자/자식/음식 등을 얻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남성들의 경쟁적 성향(승부욕)은 부족생활에 대한 오랜 적응의 정신적 산물이라고 봐야한다.(물론 현대사회도 이런 경쟁적 속성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와 반대로 여자가 주로 담당하는 부족의 살림을 꾸리는 일은 본질적으로 협업이다. "살림살이에 누가 최고의 공을 세웠느냐"는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고, 다만 서열이 높은 수컷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한 번식경쟁은 여자들 사이에서도 박터지는 수준이었을 거라고 짐작 가능하다. 3. 예쁜 여자에게 말을 걸면 왜 긴장감이 생기는가? -> 인구가 많지 않은 부족 내에서 짝을 이뤄도 될만한 젊은 남녀의 수는 전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 얼마 안되는 여자들에게 호감을 표시했다가 거절을 당하면 부족내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문이 났을거고, "거절당한(그래서 가치가 없을 거 같은) 남자"로 낙인이 찍혀버리면 향후의 짝짓기에도 큰 악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남자의 여자를 건드렸다간 명령을 받고 출동한 우가우가 5명한테 돌로 쳐맞고 즉사했을 것이니 여자에게 접근을 한다는 행위는 부족시대 남성에게는 굉장히 위험부담이 큰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의 미모가 뛰어나서 다른 남자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을거 같은 여성이라면 더욱 위험부담이 큰 상대였을테니 공포심이 생길만도 하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여성에 대한 접근공포는 오랜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의 몸은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마음은 부족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4. 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끝없는 관심...여자는 왜 외모에 집착할까?-> 서열이 높은 수컷을 유혹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여성의 전략은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화장은 물론이고, 제례 행사 등의 기회에서 춤을 멋지게 춘다던지 하는 식의 성적 매력 어필의 경쟁이 이들에겐 생존 경쟁 그 자체였다. 경쟁의 대상은 서열높은 남성이었겠지만, 경쟁의 상대는 또래의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성끼리는 서로를 의식하고 견제하고, 질투하는 기질이 더욱 강해지는 쪽으로 진화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결과 여성들은 백, 화장품, 성형, 옷차림 등에 대해 거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집착을 하게 됐는데, 이것은 다른 암컷에 대해 경쟁우위를 갖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의 정신적 상흔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여성의 노출심리 역시 위와 연장선상에서 설명 가능하다. 나이트에서 옷벗고 춤추는 여자들, 혹은 다소 과할 정도로 노출을 하면서 "이건 자기만족이니 신경쓰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여자들은 왜 그런건가? 과한 노출은 자칫 헤픈여자로 찍혀서 정절의 가치를 낮출 수 있는 위험한 전략이지만, 반대로 자신의 성적매력을 불특정 다수에게 어필해서 남자의 관심을 끌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남자의 선택지를 늘려준다는 점에는 해볼만한 도박이다. high risk, high return이랄까. 하여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은근히 노출을 하고 그 시선을 즐기는 피관음적 성향을 갖게 됐다. 혹시 옷은 야하게 입어놓고, 막상 말을 섞으면 청순녀 코스쁘레를 하는 여자들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이건 '성적매력어필'과 '정절의 가치'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잡고 싶어하는 욕심많은 여성의 번식전략이다. 생각할수록 재밌다. ㅎㅎ 5. 나이먹은 남자 좋아하는 여자는 뭐냐?-> 서열이 높은 남자들은 대개 강건한 육체와 사냥기술을 가졌었겠지만, 그렇다고 부족장이 꼭 젊고 힘센 남자는 아니었을거다. 부족을 이끌어가는데에는 젊음과 용맹보다는 경험, 지혜, 경륜, 통찰, 판단력, 지도력 등 나이가 좀 더 많은 남성이 갖췄을 법한 특성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자의 경우 나이가 많아지면 출산 능력이 감소하면서 급격하게 번식적 가치가 하락하는 데에 반해, 남자는 나이가 많아도 여전히 번식능력이 있으며 지위가 높다면 여성에게 안정적인 번식/생존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이가 변식가치와는 별 상관이 없다. 고령의 할리웃 배우들이 딸 뻘의 여자들을 쉽게 만나는 거나, 적잖은 연세의 윤창중 대변인이 인턴의 허리를 "가볍게 툭"치고서 당당해 하는 부분을 보면 남자는 나이먹어도 잘 나가기만 하면 여자가 많이 꼬인다는 걸 알 수 있다. - 출처 : new훈애정음
해송월작성일
2013-08-0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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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노통의 국기 게양 문제!?
??행자부, 현충일 '조기 게양 말라' 공문"노대통령 방일 경축에 방해된다" 공문 띄워2003.06.07 (토) 21:53:10 최천균 (eye2580@ewincom.com) 행자부 김두관 장관이 노대통령 방일전 대한민국의 모든 자치단체장들에게 현충일 '조기 게양금지' 공문을 띄운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행자부 공문의 영향 탓인 듯, 노대통령이 방일하는 현충일 날에는 제정이후 처음으로 조기를 거리에서 볼 수 없었다.현충일인 6일 7만여 명이 몰린 대전국립묘지는 하루종일 참배객으로 붐볐다.(연합뉴스 6.6)이번 현충일 날에는 길거리에서는 현충일 제정이후 처음으로 조기를 볼 수 없었다. 행자부가 의정문서 12630-508호(행자부 5월16일자) 공문을 전국 지자체에 띄워 '조기게양을 하자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안양 항일애국지사우해기념사업회 이형진 회장은 이에 대해 행자부가 현충일에 가로기와 차량 기를 게양하지 않도록 한 이유는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현충일에 경축의 의미를 뜻하는 가로기를 게양하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이지 대통령의 일본방문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공문을 없앤 후 변명했다고 전했다.그러나 애국단등 독립유공자들의 반론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독립유공자 후손인 애국단 등은 이에 대해 "현충일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수백만의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국가행사다"면서 "현충일을 무시한다면 3.1절, 6.25, 8.15광복절, 8.29 구치일, 11월17일 순국 선열의 날 등으로 추모하고 있는 모든 영혼들을 무시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자체를 무시하는 행정이다"고 비판했다.애국단은 또 "지금까지의 모든 대통령이 설사 권위적인 행동으로 일관하였다 하더라도 노 대통령만은 국민의 정서를 어루만져야 했다"면서 "대로변의 조기로 게양된 태극기를 보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굳은 결의를 다짐하며 일본으로 담판을 지으러 갔어야 했다"면서 "노대통령이 방미에 이어 방일에서도 어떠한 성과도 거두지 못한 것은 나라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무시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안양 항일애국지사우해기념사업회 회장이며, 비 장애시민 모임 상임대표인 이형진씨도 "노대통령의 방일 날짜가 대한민국을 존속케 하고 한민족의 정신적 지주이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추모하는 거룩한 날인 현충일에 이루어졌다"면서 "이 땅에 있을 수도 있어서도 상상할 수도 없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짓밟고 방일한 결과"라고 지적했다.이어 이회장은 "정부 출범 48년만에 이 정부 들어와서 장관 명의로 공문을 보내 '조기 게양 금지'라는 용어를 써가며 지방자치 단체에 공문을 하달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국민적 행사로 전국거리에 조기로 게양돼 왔던 태극기를 현정부가 공문으로 조기 게양을 금지시켜 전국의 거리에서 추모의 태극기를 볼 수 없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하는 6일 환송행사가 열리는 서울공항 주변 도로에 조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이회장은 이에 대해 "정부가 관례를 깬 것은 6일이 현충일이어서 조기(弔旗)를 걸어야 하는데, 대통령의 외국방문을 축하하는 뜻에서 거는 태극기를 조기로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는 환송행사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 의정담당관실 관계자와 직접 통화를 했고, 청와대와 외교부로부터 현충일은 일본의 우리나라 침탈보다 한국전쟁과 관계가 많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이회장은 또 "안양시에 확인 결과 경기도지사 명의로 2003년 5월28일자로 가로기(대로변의 태극기)와 차량에 부착함을 금지한다라는 공문이 접수되어 현충일이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조기를 거리에서 볼 수 없었다. 백방으로 이유를 수소문한 결과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데 조기를 게양 할 수 없다라는 충견들의 과잉 충성이 그 이유였다. 청와대에서의 비공식 답변은 대통령이 비행장으로 가는 길에 만이라도 조기를 걸지 않았으면 하여 상의 해본 적이 있다는 답변이었다. 또한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냈다는 말을 얻어냈다"며 확인된 사실임을 강변했다.이회장은 이어 "현충일 하루만 국민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 하면 아무 탈 없이 지나갈 것이라는 매국적 사고가 빗은 참여정부의 경륜 없는 단순 무식한 강아지들의 미친 짓이었다"고 강하게 비판한 뒤, "온 몸에 흐르는 피눈물과 분노에 선열과 호국영령을 뵈올 수가 없다. 현충일 조기 말살사건의 범인을 색출하여 형사처벌 해야 한다"면서 "조기 말살사건의 주범 색출을 통한 형사 처벌과 공개 사죄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사실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과 정부는 지난 방미기간 첫날부터 경호팀과 홍보팀의 옥신각신 부분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었다. 지난 5월11일 청와대 경호팀과 홍보팀간에는 방미 도착지인 미 앤드루 공군기지에 도착하여 옥신각신 했고, 미국 경호측과 '시비'가 벌어진 여파로 경호팀은 노 대통령 도착장면을 취재하려는 보도진을 제지하려 했고 홍보팀은 이 장면을 놓칠 수는 없다는 논리로 맞섰던 적이 있다. 그러나 방미 후 청와대는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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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벙어리 장관후보들
‘5·16’ 앞에만 서면 ‘벙어리’ 되는 장관후보들유정복·황교안 내정자, 5·16 쿠데타 평가 공식 입장 유보… 유신헌법 평가도 다소 유보적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 내정자에 이어, 황교안 법무부 장관 내정자도 5·16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황 내정자는 인사청문회를 이틀 앞둔 26일 법사위 청문위원들의 서면 질의서에 답변한 서류에서 '현재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신분으로서 5·16 혁명이라는 당시의 견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의에 "역사적, 정치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진행 중이므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신분에서 그에 대하여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다"고 밝혔다.다만, 황 내정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5·16 혁명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5·16에 평가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집시법)법률 제정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집회에 관한 임시조치법(법률 제713호, 1961. 9. 9. 제정)' 제정이유에서 사용된 용어를 인용하여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황 내정자는 유신헌법에 대해서도 "유신헌법은 그 일부 조항이 권력분립 등 헌법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 내정자 역시 '5·16이 쿠데타인지 혁명인지'에 대한 서면질의에 답변하지 못해 논란이 예상된다.민주통합당 김현 의원은 26일 서면질의를 통해 "후보자는 5·16을 쿠데타로 생각하는가, 혁명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에 대해 유정복 후보자는 답변서를 통해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 입장에서 이에 대하여 답변 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 해달라"고 밝혔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내정자(왼쪽)와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 내정자. 반면 정홍원 국무총리는 인사 청문회에서 5·16에 대해 "교과서에 군사정변으로 기술돼 있고, 이에 저도 찬성한다"고 밝혔고, 유신 헌법에 대해서는 "헌법가치를 파손시킨 반민주적인 조치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토론 과정에서 김태호 당시 경선 후보가 같은 질문을 던지자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박 대통령은 이후에도 5·16에 대해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말해왔다. 박 대통령은 논란이 커지자 9월 기자회견을 열고 "5·16과 유신, 인혁당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사과했다.한편, 황 내정자는 지난 2011년 8월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치고 로펌행을 택한 이후 13억 9천여 만원에서 2013년 2월 26억원으로 증가해 전관예우를 받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후보자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 모두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소득과 후보자의 퇴직금 등을 모두 합산하여 자산이 증가했다"고 해명했다.황 내정자는 "공직 퇴임 이후이더라도 퇴임 공직자의 전문성과 경륜을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경우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그 과정에서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공무수행의 공정성에 오해를 일으킬 만한 활동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황 내정자는 노회찬 전 국회의원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한 것에 대해서는 "고교 동기동창인 노회찬 당시 국회의원의 후원회에 친구지간의 정의로 후원금 10만원을 낸 것"이라면서 "정치적 목적 없이 법정 절차에 따라 국회의원 후원회에 후원금을 내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최근 노회찬 전 의원은 대법원의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는데 관련된 해당 사건인 '안기부 X파일' 사건을 총괄지휘했던 사람이 황 내정자라는 점에서 둘의 관계가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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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우리나라 직업별 평균 연봉순위
7 변호사 6919 만원8 금융관련관리자 6543 만원9 자연계열교수 6440 만원10 프로경륜선수 6412 만원11 안과의사 6383 만원12 이비인후과의사 6303 만원13 정신과의사 6300 만원14 의약계열교수 6274 만원15 국회의원 6095 만원16 경영컨설턴트 6053 만원17 연예프로그램진행자 6000 만원18 소아과의사 5985 만원19 예체능계열교수 5984 만원20 산부인과 전문의사 5979 만원21 법무사 5935 만원22 변리사 5933 만원23 교육계열교수 5930 만원24 헬기조종사 5888 만원25 세무사 5874 만원26 사회계열교수 5802 만원27 프로농구선수 5775 만원28 피부과의사 5765 만원29 성우 5685 만원30 외환딜러 5674 만원31 한의사 5649 만원32 방송제작관리자 5634 만원33 프로경주선수 5604 만원34 감정평가사 5590 만원35 공학계열교수 5574 만원36 가정의학과의사 5545 만원37 발전설비공학기술자 5530 만원38 철학연구원 5529 만원39 언어학연구원 5464 만원40 신용분석가 5442 만원41 정보통신관련 관리자 5407 만원42 정보시스템감리사 5342 만원43 행정부고위공무원 5317 만원44 물리학연구원 5288 만원45 비뇨기과의사 5271 만원46 사회과학연구원 5222 만원47 경제학연구원 5215 만원48 지질학연구원 5194 만원49 광고제작감독 5191 만원50 마취병리과의사 5154 만원51 내과의사 5127 만원52 판사 5126 만원53 초등학교 교장,교감 5107 만원54 인문계열교수 5100 만원55 중고등학교 교장,교감 5054 만원56 지리학연구원 4989 만원57 무대디자이너 4988 만원58 촬영기자 4974 만원59 아나운서 4973 만원60 법학연구원 4957 만원61 정치학연구원 4941 만원62 연극,영화 및 방송기술감독4932 만원63 금융자산운용가 4929 만원64 화학연구원 4883 만원65 장학사 4837 만원66 운동경기감독 및 코치 4791 만원67 방송연출가(프로듀서) 4750 만원68 방사선과의사 4733 만원69 광고 및 홍보전문가 4703 만원70 투자분석가(애널리스트) 4694 만원71 재무 및 회계관리자 4692 만원72 역사학연구원 4656 만원73 사회학연구원 4644 만원74 해양공학 기술자(엔지니어) 4639 만원75 영화배우, 탤런트4632 만원76 방송기자 4610 만원77 교육학연구원 4579 만원78 회계사 4571 만원79 산업공학 기술자(엔지니어) 4517 만원80 철도 및 지하철 기관사 4509 만원81 보험모집인 4500 만원82 박물관장 4494 만원83 폐기물 환경공학기술자 4465 만원84 신문제작 관리자 4455 만원85 지적 및 측량기술자 4407 만원86 발전장치조작원 4400 만원87 경기심판 4392 만원88 열관리(냉난방) 기계공학기술자4384 만원89 미술관장 4354 만원90 외과의사 4344 만원91 수학 및 통계연구원 4322 만원92 인공위성개발원 4321 만원93 관세사 4293 만원94 영상.녹화 및 편집기사 4252 만원95 에너지공학 기술자(엔지니어) 4237 만원96 프로축구선수 4220 만원97 증권 중개인 4207 만원98 외교관 4170 만원99 부동산투자신탁운용가4156 만원100 신문기자 4153 만원101 토목구조기술자 4148 만원102 보험계리인 4097 만원103 담배제조관련 조작원 4093 만원104 노무사 4086 만원105 방송장비운영원 4077 만원106 전력전기공학기술자 4077 만원107 방송장비 설치 및 수리원 4055 만원108 자동차공학 기술자 4036 만원109 프로경마선수 4024 만원110 인적자원전문가 4021 만원111 건설 및 광업 관련 관리자 4019 만원112 통신망설계운영기술자(엔지니어) 4000 만원113 금속가공 관련 제어장치조작원 3999 만원114 소음 진동 환경공학기술자 3980 만원115 철도운송 사무원 3965 만원116 메카트로닉스공학기술자 3964 만원117 비행기승무원 3962 만원118 기계조립 및 검사원 3949 만원119 생물학연구원 3937 만원120 손해사정인 3921 만원121 약사 및 한약사 3899 만원122 교육행정사무원 3870 만원123 IT컨설턴트 3868 만원124 카피라이터 3862 만원125 천문,기상학연구원3855 만원126 프로야구선수 3852 만원127 항공기정비원 3847 만원128 음반기획자 3845 만원129 헤드헌터 3842 만원130 펄프,종이제조 관련 조작원3837 만원131 검사 3835 만원132 편집기자 3813 만원133 투자인수심사원(투자언더라이터) 3810 만원134 평론가 3808 만원135 교도관 3807 만원136 도서관장 3800 만원137 전기안전기술자 3788 만원138 촬영기사 3771 만원139 토목공학기술자 3754 만원140 대기 환경공학기술자 3751 만원141 석유화학공학기술자 3750 만원142 철도기관차 및 전동차 정비원 3745 만원143 호텔관리자 3745 만원144 상하수 처리 관련 조작원 3732 만원145 토질 및 기초기술자 3721 만원146 수의사 3707 만원147 쇼핑호스트 3704 만원148 건축시공기술자 3686 만원149 조선공학 기술자 3683 만원150 통역가 3681 만원151 항공공학 기술자 3676 만원152 축산학연구원 3670 만원153 시스템컨설턴트 3665 만원154 농림어업관련 기술자 3659 만원155 위험물관리원 3648 만원156 해외영업원 3645 만원157 인사관리자 3631 만원158 작곡가 3625 만원159 비디오자키(VJ) 3624 만원160 금융대출사무원 3623 만원161 반도체설계기술자 3613 만원162 운동선수 3605 만원163 재료공학기술자(엔지니어) 3597 만원164 수산학연구원 3593 만원165 항공 교통관제사 3592 만원166 환경 및 보건위생검사원 3590 만원167 소방관 3588 만원168 통신장비운영원 3579 만원169 사진작가 3571 만원170 지휘자 3570 만원171 약학연구원 3552 만원172 자동차영업원 3543 만원173 무용가 3533 만원174 통신케이블 설치 및 수리원 3521 만원175 금속가공 관련 검사원 3521 만원176 마케팅 전문가 3507 만원177 농림학연구원 3505 만원178 토목시공기술자 3489 만원179 품질관리원 3488 만원180 신호원 및 수송원 3480 만원181 특수학교 교사 3480 만원182 방문판매원 3476 만원183 전기제어기술자 3471 만원184 GIS전문가 3465 만원185 육군장교 3457 만원186 국어교사 3448 만원187 영화감독 3448 만원188 보험대리인 및 중개인 3446 만원189 실업교사 3446 만원190 ERP전문가 3444 만원191 도료.농약품화학공학기술자 3441 만원192 환경공학 기술자(엔지니어) 3440 만원193 기록물관리사 3435 만원194 음성처리전문가 3416 만원195 프로바둑기사 3409 만원196 의학연구원 3400 만원197 CRM전문가 3396 만원198 수학교사 3395 만원199 사회교사 3387 만원200 금속공학기술자(엔지니어) 3386 만원201 성악가 3372 만원202 광원,채석원 및 석재가공원3360 만원203 의료코디네이터 3349 만원204 냉난방 관련 설비 조작원 3347 만원205 인사사무원 3330 만원206 보건교사 3326 만원207 엔진 및 기관 기계공학기술자 3324 만원208 자동차 조립 및 검사원 3320 만원209 항공운송 사무원 3293 만원210 음식료품 화학공학기술자 3284 만원211 도시계획가 3281 만원212 디지털영상처리전문가 3272 만원213 화학원료 제조관련 조작원 3255 만원214 스포츠에이전트 3254 만원215 마케팅사무원 3254 만원216 금형원 3248 만원217 우편사무원 3245 만원218 열차승무원 3242 만원219 선물중개인 3236 만원220 전자제품개발,설계기술자 3235 만원221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 설치 및 정비원 3233 만원222 가구제조,수리원(가구목공) 3230 만원223 정보통신공학 기술자(엔지니어) 3227 만원224 교통공학기술자 3224 만원225 예체능교사 3219 만원226 입법 공무원 3211 만원227 외국어교사 3190 만원228 전기공사기술자 3186 만원229 과학교사 3183 만원230 전기제품 제조관련 조작원 3178 만원231 의료장비기사 3173 만원232 기자 3172 만원233 구매인(바이어) 3165 만원234 음향 및 녹음기사 3161 만원235 건설기계공학기술자 3159 만원236 소각로 관련 장치 조작원 3153 만원237 자동차조립라인 및 산업용 로봇조작원 3150 만원238 조경기술자 3143 만원239 의약품화학공학기술자 3137 만원240 목재,펄프,종이 가공 관련 등급원 및 검사원3126 만원241 가축사육자(수렵종사자 포함) 3120 만원242 정보통신 기술영업원 3116 만원243 건설자재시험원(건설공사품질관리원) 3114 만원244 공작기계설치 및 정비원 3112 만원245 양식원 3111 만원246 전통건축원 3100 만원247 프로게이머 3098 만원248 행정학연구원 3097 만원249 냉동,냉장 공조기 설치 및 정비원3093 만원250 문화재 감정평가사 3092 만원251 위생사 3089 만원252 소품원 3089 만원253 레크레이션진행자 3086 만원254 건물전기설비 조작원 3085 만원255 화학제품제조 관련 조작원 3080 만원256 고무및플라스틱화학공학기술자 3080 만원257 학예사(큐레이터) 3080 만원258 국악인 3076 만원259 건축구조기술자 3069 만원260 통신장비 설치 및 수리원 3067 만원261 시스템관리자 3060 만원262 석유,가스 및 화학물제조 관련 제어장치조작원3054 만원263 코디네이터 3052 만원264 프로골프선수 3051 만원265 개그맨3050 만원266 통신기기장비기술자(엔지니어) 3046 만원267 네트워크관리자 3043 만원268 사진기자 3027 만원269 시스템SW(소프트웨어)엔지니어 3025 만원270 정보보호전문가 3023 만원271 기술영업원 3022 만원272 생산관리사무원 3021 만원273 지방의회의원 3021 만원274 산업안전관리원 3009 만원275 행사 기획자 3008 만원276 비누.화장품화학공학기술자 3008 만원277 전자상거래전문가 2998 만원278 건설견적원(적산원) 2988 만원279 초등학교교사 2985 만원280 건축공학 기술자 2978 만원281 크레인 및 호이스트 운전원 2974 만원282 응용SW(소프트웨어)엔지니어 2968 만원283 상품중개인(경매인 포함) 2967 만원284 조명기사 2967 만원285 홍보사무원 2962 만원286 점토제품제조 관련 조작원 2959 만원287 해군장교 2954 만원288 해양경찰관 2954 만원289 인테리어디자이너 2946 만원290 식품학연구원 2944 만원291 수질 환경공학기술자 2943 만원292 일반공무원 2939 만원293 철도선로설치 및 보수원 2937 만원294 의무기록사 2917 만원295 분양 및 임대사무원 2912 만원296 웹 프로듀서(웹 기획) 2900 만원297 인쇄,광고영업원2898 만원298 사무용 기계공학기술자 2894 만원299 선장 및 항해사 2887 만원300 과수작물재배자 2871 만원301 음식료 감정사2870 만원302 우편물집배원 2856 만원303 고무제품 제조관련 조작원 2847 만원304 전자제어계측기술자 2844 만원305 양식 조리사 2839 만원306 건설기계운전원 2838 만원307 컴퓨터프로그래머 2833 만원308 콘크리트공 2831 만원309 기술지원전문가 2827 만원310 공작기계조작원 2824 만원311 KMS전문가 2819 만원312 전자장비 기술영업원 2813 만원313 경찰관 2810 만원314 부동산중개인 2808 만원315 자연과학 관련 시험원 2808 만원316 육.어류 가공 및 낙농제품제조 관련 조작원 2805 만원317 사서 2798 만원318 의료장비 및 의료용품 기술영업원 2794 만원319 의약영업원 2788 만원320 안경사 2784 만원321 구급요원 2779 만원322 제품디자이너 2776 만원323 육군부사관 2768 만원324 컬러리스트 2746 만원325 시각디자이너 2743 만원326 시장 및 여론조사 전문가 2743 만원327 영업 및 판매관리자 2739 만원328 방수원 2738 만원329 생산관리원 2738 만원330 주택관리사 2737 만원331 무역사무원 2733 만원332 교구 교재개발원2731 만원333 비금속광물 가공 관련 제어장치 조작원 2730 만원334 비금속광물가공 관련 조작원 2727 만원335 물류관리전문가 2726 만원336 영화제작자 2725 만원337 패턴사(옷본제작원) 2718 만원338 건설 및 광업기계 정비원 2716 만원339 전문비서 2715 만원340 항공기.선박 조립 및 검사원 2710 만원341 방송대본작가 2707 만원342 플라스틱 제조관련 조작원 2703 만원343 가상현실전문가 2688 만원344 금융출납창구사무원 2684 만원345 연극연출가 2675 만원346 분장사 2672 만원347 애니메이션기획자 2670 만원348 식품검사원 및 등급원 2669 만원349 생물과학 관련 시험원 2665 만원350 보험사무원 2652 만원351 웹방송전문가 2648 만원352 네트워크엔지니어 2645 만원353 연주가 2643 만원354 기계공학기술자 2642 만원355 외선전공 2641 만원356 선박기관사 2641 만원357 자가용운전기사 2636 만원358 선박기관원 2624 만원359 소방설비기술자 2621 만원360 음료 및 기타 식품제조 관련 조작원 2619 만원361 조각가 2609 만원362 인쇄기조작원 2607 만원363 섬유공학기술자(엔지니어) 2605 만원364 가구조립 및 검사원 2604 만원365 악기 수리원 및 조율사 2604 만원366 채권관리원 2603 만원367 문화재보존원 2603 만원368 공군장교 2600 만원369 산업용 기계장비 기술영업원 2598 만원370 측량사 2597 만원371 물리치료사 2596 만원372 호텔 콘도접객원2596 만원373 점화 발파 및 화약관리원2586 만원374 떡 제조원 2582 만원375 번역사 2581 만원376 목공 2579 만원377 지게차 운전원 2579 만원378 임상심리사(심리치료사) 2574 만원379 목재가공 관련 조작원 2567 만원380 종이제품 제조 관련 조작원 2567 만원381 수상운송 사무원 2567 만원382 조경사.원예사 2563 만원383 일식 조리사 2563 만원384 웹엔지니어 2562 만원385 공구제조원(차공구 포함) 2559 만원386 제빵 및 제과원 2558 만원387 용접원 2553 만원388 석공 2545 만원389 보일러 설치 및 수리원 2544 만원390 컴퓨터HW(하드웨어)엔지니어 2538 만원391 게임시나리오작가 2537 만원392 건물도장원 2537 만원393 가수 2535 만원394 공연제작관리자 2530 만원395 일반영업원 2528 만원396 캐디 2528 만원397 건축설계기술자 2525 만원398 시스템엔지니어 2520 만원399 미장원 2518 만원400 안무가 2517 만원401 중식 조리사 2517 만원402 목사 2515 만원403 웹 디자이너 2514 만원404 도금,금속분무 및 관련 조작원2507 만원405 스포츠 트레이너 2504 만원406 동물사육사 2502 만원407 시나리오 작가 2500 만원408 게임 기획자 2481 만원409 식품영업원 2481 만원410 제관원 2478 만원411 메이크업아티스트 및 분장사 2478 만원412 판금원 2472 만원413 제조관련 도장기 조작원(금속분무 제외) 2471 만원414 내선전공 2467 만원415 시멘트, 석회 및 콘크리트 제조 관련 조작원2464 만원416 해군부사관 2464 만원417 특수차 운전기사 2460 만원418 치과기공사 2459 만원419 유치원 원장2459 만원420 인명구조원 2454 만원421 사무용 응용SW엔지니어 2452 만원422 데이터베이스관리자 2450 만원423 직업능력개발 훈련교사 2447 만원424 섬유제조원(방적,방사기조작원)2444 만원425 운송 및 운반관련 노무자 2443 만원426 기획사무원 2443 만원427 회계사무원 2438 만원428 게임프로그래머 2438 만원429 정보제공자 2424 만원430 제분 및 도정관련 조작원 2418 만원431 과실.채소 및 설탕가공 관련 조작원 2417 만원432 선박승무원 2414 만원433 채소.특용작물재배자 2403 만원434 방사선사 2402 만원435 육묘,화훼작물재배자2400 만원436 외국어학원강사 2375 만원437 주조원 2373 만원438 가전제품수리원 2370 만원439 학습지방문교사 2365 만원440 선박정비원 2364 만원441 운송 및 선적 사무원 2362 만원442 바텐더(조주사) 2359 만원443 회의기획자 2348 만원444 경호원 2345 만원445 귀금속 및 보석 세공원 2345 만원446 운송 관련 관리자 2342 만원447 간판제작원 2341 만원448 포장원 2337 만원449 혼례종사원 2336 만원450 비파괴검사원 2332 만원451 경기기록원 2326 만원452 디스크자키(DJ) 2325 만원453 연예인매니저 2319 만원454 법률행정사무원 2319 만원455 선박갑판원 2316 만원456 보석 감정사 2316 만원457 화가 2315 만원458 사무기기 설치 및 수리원 2311 만원459 리포터 2298 만원460 금속가공 관련 조작원 2293 만원461 시장 및 여론조사 관련 사무원 2285 만원462 서예가 2285 만원463 여행안내원 2279 만원464 문리학원강사 2272 만원465 단조원 2269 만원466 표백,염색 및 마무리관련 조작원2267 만원467 가죽제품제조원 2267 만원468 상점판매원 2262 만원469 조적원(벽돌공) 2249 만원470 언어치료사 2229 만원471 여행상품 개발원 및 여행관련사무원 2228 만원472 한복사 2228 만원473 한식 조리사 2227 만원474 영양사 2225 만원475 석제품제조관련 조작원 2225 만원476 직조기 및 편직기 조작원 2224 만원477 플로리스트 2219 만원478 공군부사관 2217 만원479 교육과학용 응용SW엔지니어 2214 만원480 기술,기능계학원강사2213 만원481 상품대여원 2208 만원482 웹프로그래머 2206 만원483 전자제품 제조관련 조작원 2205 만원484 사진인화 및 현상 관련 조작원 2197 만원485 모델 2192 만원486 제도사(캐드원) 2192 만원487 자동차정비원 2176 만원488 도로운송 사무원 2176 만원489 유리 및 유리제품가공 관련 조작원 2165 만원490 바닥재시공원(마루설치원,타일부착원)2165 만원491 건물시설관리원 2164 만원492 전기.전자 제품 및 부품 조립 및 검사원 2162 만원493 구매및자재사무원 2162 만원494 작업치료사 2158 만원495 만화가 2152 만원496 출판 및 자료편집 사무원 2149 만원497 비서 2148 만원498 경리 2147 만원499 소형트럭운전기사 2123 만원500 속기사 2123 만원501 재봉기 조작원 2121 만원502 건축자재영업원 2120 만원503 게임 디자이너 2120 만원504 마술사(곡예사 포함) 2119 만원505 임상병리사 2112 만원506 패션디자이너 2111 만원507 영사기사 2108 만원508 유리부착원 2107 만원509 세탁원 2103 만원510 IT강사 2096 만원511 배관원 2095 만원512 작사가 2086 만원513 치과위생사 2070 만원514 구두 및 가죽제품제조원 2070 만원515 무인경비원 2056 만원516 대형트럭운전기사 2048 만원517 컴퓨터 애니메이터 2048 만원518 철근공 2031 만원519 곡식 제품 제조원 2016 만원520 목욕관리사 2016 만원521 버스운전사 2014 만원522 섬유관련 등급원 및 검사원 2010 만원523 도배원 2008 만원524 샷시원 2007 만원525 상담전문가(심리상담사) 1989 만원526 캐릭터디자이너 1987 만원527 출판물기획원 1981 만원528 고객상담원 1965 만원529 단열원(보온공) 1957 만원530 사회복지사 1927 만원531 사회복지시설종사원 1914 만원532 카지딜러 1903 만원533 간호사 1902 만원534 양장,양복사1900 만원535 철골공(강구조물 건립원) 1892 만원536 민속종교종사자(점술가, 무당등)1889 만원537 택배원 1854 만원538 홍보판촉원(모델도우미포함) 1854 만원539 청원경찰 1850 만원540 직업상담 및 취업알선원 1849 만원541 미용사 1837 만원542 구두미화원 1829 만원543 디자인학원강사 1822 만원544 사회단체활동가 1816 만원545 자동차운전학원강사 1815 만원546 스포츠강사 1804 만원547 공예원 1794 만원548 소설가 1787 만원549 조림.영림 및 벌목원 1782 만원550 동물미용사 1781 만원551 재단기 조작원 1773 만원552 경량철골공 1762 만원553 연극배우 1750 만원554 플라스틱제품조립 및 검사원 1747 만원555 교무(원불교) 1711 만원556 예능계학원강사 1700 만원557 피부관리사 1694 만원558 컴퓨터 설치및 수리원 1688 만원559 결혼상담원 1685 만원560 웨이터 및 웨이트리스 1685 만원561 의복제품검사원 1678 만원562 연근해 어부 및 해녀 1675 만원563 장의사 1640 만원564 안마사(스포츠마사지사) 1631 만원565 이미용학원강사 1625 만원566 이발사 1619 만원567 요리학원강사 1597 만원568 네일아티스트 1555 만원569 전도사 1552 만원570 보육교사 및 보육사 1550 만원571 계산원 및 매표원 1550 만원572 농작물재배자 1545 만원573 노점 및 이동판매원 1519 만원574 놀이시설종사원 1500 만원575 의복수선원 1492 만원576 대중무용수(백댄서) 1484 만원577 수녀 1479 만원578 유치원교사 1470 만원579 자료입력원 1460 만원580 매장정리원 1441 만원581 택시운전사(택시운송업) 1435 만원582 안내,접수원1431 만원583 전화통신판매원(텔레마케터) 1404 만원584 간호조무사 1397 만원585 주차관리원 1383 만원586 주유원 1347 만원587 파출부 1315 만원588 사무보조원 1298 만원589 치어리더 1298 만원590 청소원 1182 만원591 신부 1179 만원592 계기검침원 1170 만원593 승려 1154 만원594 간병인 1100 만원595 경비원 1067 만원
출처-이종격투기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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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이명박의 정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9년 2월 4일 지식경제부 과천청사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무역정책관으로부터 수출입 현황을 보고받다가"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초등학생들이 많이 가지고 있고 한 명이 사면 따라 산다고 하더라. 이런 것들을 개발해 볼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후 정부 정책은 다 죽은 국산 '게임포터블 디바이스' 개발 지원에 나섰다.정말 죽은 자식 불알만지기격이자, 대통령 한마디에 죽은 시장에 국가 예산으로 심폐소생술을 하는 꼴이 돼 버렸다. 그간의 게임시장의 변화와 현실을 잘 알고 있는 네티즌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비현실적 군부독재식 훈화에 이른바 '명텐도'를 비롯한 수많은 패러디물이 쏟아졌다.그러나 '명텐도'가 정부 정책에서 사라진지는 오래고,기반 자체가 무너진 상황에서 언발에 오줌누는 지원은 도리어 그나마 남아있는 가능성 마저 얼려버린 꼴이 됐다. 또한 정부 정책은 도리어 '게임에 대한 규제 일변도'로 변해 버린다. '명텐도' 발언이 있은지 꼭 3년. 2012년 2월 3일 무역 2조 달러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논의하고 중소ㆍ중견기업들을 격려하는 간담회 자리에서이명박 대통령은 "게임산업이 유망하고 경쟁력이 높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에 대해 작심한듯 게임을 맹비난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부게임은 '공해'라는 표현까지 썼으면, 밤새 폭력적인 컴퓨터게임을 하다가 길거리로 나와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고 이유 없이 길 가전 사람을 찌르는 사건을 언급. 게임이 아무리 수출 유망사업이라고 해도 정신적 파탄에 이르게까지 하면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없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것. 최근 게임에 대한 정부정책의 방향이 그대로 묻어난 발언이다. 선택적 셧다운제를 시작으로 다양한 규제정책이 논의되고 진행중에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명텐도'발언과 '게임에 대한 공해' 발언을 떠나 살펴보고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어떤 산업이든 부작용이 없는 산업은 없다. 가령 정부가 직접 수익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경마, 경륜, 경정은 어떤가?담배 산업은 어떠하고, 술에 대한 과세 수입은 어떠게 봐야하는가? 또한 게임에 대해서 과도하고 지나친 규제를 한다고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문제도 고민해봐야 한다. 도리어 지나치고 과도한 규제는 '부작용'만 촉발할 수있다는 이른바 '풍선효과'에 대해서도 봐야한다.바다이야기 사태이후 정부는 합법 아케이드 게임시장을 완전히 죽였고,결과는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로 이어져 정부 추산 50~70조 시장규모의 불법 도박시장이 발생하고 있다는게 결과다. 경마, 경륜을 정부 사업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사실상 같은이유다.이걸 완전히 불법화 시키면 모든 것이 음성적으로 변해 버린다. 정부가 도저히 손쓸수 없는 시장이 음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는 것이다. 경마, 경륜 등 합법으로 뒀을 때 마련하는 재원으로 도박에 대한 부작용을 치류하는 사회적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청소년의 모든 게임 이용을 사실상 막아놓으면,게임회사에서는 성인을 타겟으로한 게임을 양산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청소년들의 주민등록번호 도용-성인 계정구매는 확대되 갈 것이다. 이건 누구나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러면 음성화를 최대한 줄여가면서, 합법적인 게임으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을 줄여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술과 담배의 사회적 부작용을 법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법보다는 사회 캠페인과 더불어 명확하게 선을 나눠놓는 것이 좋다. 청소년 게임에 대한 중독성과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 게임회사의 자정적 노력과 더불어,가족과 사회가 게임에 대해 조금 더 이해를 높힐 필요가 있다. 모르고 무작정 규제하는 것처럼 무식한 것은 없다. 알아야 개선의 길이 보이는 것이다.지금 MB정권의 '명텐도'부터 갖가지 규제논의를 보면, "게임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이정부는 일관성이 없어 그냥 지들 하고싶은데로 해
탱가작성일
2013-01-1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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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다시 주목 받는 안철수 후보 출마선언문
다시 주목 받는 안철수 후보 출마선언문
[출처=진심캠프 페이스북]
안 후보의 '대선 출마 선언문'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안 후보(@cheolsoo0919)는 16일 오전 '문재인 후보와 국민께 드리는 글'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 후보는 "어제 다시 출마선언문을 꺼내 읽었다"고 말했는데요.
안철수 진심캠프 페이스북(☞바로가기)도 '출마 선언문을 다시 읽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후보는 요즘 출마선언문을 다시 읽는다고 한다. 여러분도 함께 읽어주시겠습니까"라며 출마선언문 전문을 올렸습니다.
<대선 출마 선언문>
안녕하십니까. 안철수입니다.
저는 지난 7월말에 말씀 드린 대로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동안 저는 재미있는 별명도 얻었고. 또 최근에는 저를 소재로 한 유머도 유행하더군요.
그동안 제 답을 기다려오신 여러 분들의 애정이라고 생각하고 그 또한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기업인과 교수의 삶을 살아온 저로서는 국가경영의 막중한 책임을 지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춘천에서 만난 어르신, 명예퇴직을 앞둔 중년의 가장, 30대의 쌍둥이 엄마와 같은 많은 이웃들을 만나 뵈었고, 각 분야에서 경륜과 전문성을 가진 분들도 만났습니다. 가능하면 조용하게 경청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느 한분 힘들지 않은 분들이 없었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이 너무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고 고단한 삶의 과정에서도 그 분들은 끊임없이 희망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나 자신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희망을 드린 것이 아니라 제가 오히려 그분들께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제게는 스승입니다. 그 분들이 저를 한걸음 더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 분들이 제게 한결 같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했다" 하셨습니다.
또 한 번도 정치에 발 딛지 않은 제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많은 분들이 왜 제게 지지를 보내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제 좀 정치를 다르게 해보자, 새롭게 출발해보자"는 뜻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제 역량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국가의 리더라는 자리는 절대 한 개인이 영광으로 탐할 자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당선여부보다는 잘 해낼 수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통해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답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
저는 먼저 정치개혁은 선거과정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입니다. 선거과정에서 부당하고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를 계속하면, 서로를 증오하고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며, 나아가서는 국민을 분열시킵니다. 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에서 이겨도 국민의 절반 밖에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된다면 다음 5년도 분열과 증오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합과 사회문제 해결은 요원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부터 선거과정에서의 쇄신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선거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있더라도 흑색선전과 같은 낡은 정치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저를 지지하는 분들이 그 결과를 존중하고 같이 축하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께 제안합니다. 모두 한자리에 모여, 국민들을 증인으로 선의의 정책 경쟁을 할 것을 약속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선거후에도 승리한 사람은 다른 후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패배한 사람은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여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협력할 것도 같이 약속하면 어떨까요?
그래야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당선 되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서로 도울 수 있고 또 함께 할 수 있는 통합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정책 대결 속에서 제가 만약 당선된다면 다른 후보들의 더 나은 정책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또 경청할 겁니다. 이것이 바로 국민들이 원하는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정치 경험도 없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정치라는 험한 곳에 들어가 괜히 만신창이가 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는 정치경험뿐 아니라 조직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것도 없습니다. 정치경험 대신 국민들께 들은 이야기를 소중하게 가지고 가겠습니다. 조직과 세력 대신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빚진 게 없는 대신, 공직을 전리품으로 배분하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5년 만에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현명한 국민들과 많은 전문가들이 요소요소에서 각자가 역할을 하는 커다란 시스템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속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낡은 체제와 미래가치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제 낡은 물줄기를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바꿔야 합니다.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시스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 계층 간의 이동이 차단된 사회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구조, 지식산업시대에 역행하는 옛날 방식의 의사결정구조, 이와 같은 것들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됩니다. 국민들은 이제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앞으로 5년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매우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입니다. 국내의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세계적인 장기불황까지 겹쳐 한꺼번에 위기적 상황이 닥쳐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제가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하고 실수도 하고 결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명한 국민들과 전문가들 속에서 답을 구하고, 지혜를 모으면 그래도 최소한 물줄기는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힘을 합쳐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가 들어서야 민생경제 중심 경제가 들어섭니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합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동력과 결합하는 경제혁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평화체제는 역시 안보와 균형을 맞출 때 실현가능합니다.제 정책비전과 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선거과정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 과정부터 국민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는 첫걸음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의 정치를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은 두렵지 않습니다. 극복하겠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싸울 것입니다.
사람의 선의가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여러분과 함께 증명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리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여러분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 그래야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변화의 열쇠는 바로 국민 여러분께 있습니다.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가자서작성일
2012-11-1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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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안철수 다운 계약서 단상.
안철수 다운 계약서 단상. [윤상원님 글]
안철수 다운 계약서 단상.
2001년도 문정동 훼밀리 아파트 살 당시는 “국토부 실거래가” 자체가 없었어.
2006년에 가서야. 국민은행이 회원 떡방 호가 지수를 공시하기 시작했고
그 후 국토부에서 “국토부 실거래가” 지수 사이트를 만들었단다.
고리짝 2001년 도에는 그냥 기준 시가로만 신고하게 되어 있었단다.
물론 실거래가를 그대로 신고할 수도 있었지만. 근디 실거래가 신고하려면 자기가 직접 복잡다단한. 세무 서류를 작성해서 국세청에 직접 신고 해야 되는 데...
그만한 실력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국토부 실거래가 존재 자체가 없었던 시절인데 무슨 기준으로 신고 한단 말이냐?
글고 실거래가 기준 자체가 없었던 시절에는. 그렇게 하려면, 입증을 위해 매도자 인감이 별도로 필요한데... 어쩌란 말이냐.
그냥 법무사에 맡겨, 법무사 조차도 법대로, 기준시가로 신고 할 밖에.
그런데 뭘 가지고 안철수님을 씹는 게야. 씹는 근거가 뭔지 근거를 대란 말이 쥐.
아무 잘못 없는 안철수님은 서민 심정권을 헤아려 즉각 국민에게 사과했고.
봐라. 닥그네는 연희동 대궐 같은 집을 전두환이 한테 증여 받고도 증여세 한 푼도 안 냈단다. 우기지 마라. 그 당시 분명히 부동산 세법에 “증여세 조항” 은 있었다.
물론 10조 원 장물은 “ 장물품은 닥” 하면 그걸로 끝이고.
쌩으로 증여세 말아먹은 닥그네는 지금까지 쌩까고 있자나.... 비교할 걸 비교해야 쥐.
* 임태희 "다운계약서, 안철수 검증받기 시작한 것"
* 박근혜측 "안철수 부인 다운계약서, 투명성과 거리 멀어“
좌우지간. 똥통에 나 튕기는 놈들이, 검증 + 투명성을 따지고 있단다.
글고 알밥들이 이헌재를 물어 제끼고 있는데...
이헌재 자신도 돈좀비 들에게, 칼 막 휘둘러, 악역을 하도 많이 해 네거티브 공세를 받을 줄 알고 안철수 캠프에 참가할 때 “다만 지혜만 빌려 줄 뿐.”
“자기는 절대 관료가 되지 않겠다” 는 전제를 걸었단다.
봐라 선출된 권력이 통치 하는 게야. 관료는 단지 선출된 권력의 의지를 실천할 뿐.
안철수 참모들 면면을 보면 47명중 47명이 모조리 개혁성향 40代 로 채워져 있단다. 이들에게는 경륜이 부족하니까.
내년에 있을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구조조정 전문가 이헌재의 경륜과 지혜를 빌리려고 하는 것뿐이야. 뭐가 잘못 됐는데?
만일에 이헌재가 없다면, 칼 막 휘둘러 정도가 아니고 빚쟁이들한테 총기난사 한다니 까는? 그래도 알밥 + 공굴 빚쟁이들은 이헌재 씹을래? 총기 난사 당해도 존니?
무차별 총기 난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경륜있는 이헌재의 지혜가 필요한 게야.
설령 이헌재가 경제 수장을 먹었다고 손 치자.
그래도, 환율조작을 위해 " 원없이 돈 써봤다"고 씨부려 국민 염장질 하는 강만수 보다야 백번 낫다.
봐라 안랩을 외국에서 2조 원씩이나 줄게 팔아라 하는 걸 거부하고
한국 IT 산업을 위해 백신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하는 결단을 내린. 안철수도 검증 해야 지... 안그래?
안철수부부의 다운계약서에 대한 진실 [호린님 글]
저 사건이 발생할 당시에 공인중개사사무실을 운영해본 경험을 말씀드릴께요.
부동산 매매에 대한 매도자와 매수자의 의견이 일치(매매금액, 인수도조건 등이 확정)되면, 계약서작성 일자를 정하게 됩니다. 그자리에서 바로 작성해도 되겠지만 주로 하루 지나서 하게 되죠. 저 당시만해도 인터넷 뱅킹보다는 현금을 들고 계약했기에 목돈 찾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 이후에 공인중개사가 단골 법무사에게 전화하여 계약서 작성일시를 통보하면 법무사는 약정된 시간에 실장이라고 불리우는 직원을 보내줍니다.
공인중개사사무실에서는 두개의 계약서가 작성되죠.
첫째는 공인중개사가 작성하는 부동산매매계약서로, 향후 법적 다툼을 예방하기 위하여 정확하게 매매조건을 기재한 계약서이며, 쌍방은 이를 자세히 읽어보고 계약서에 날인하고 대금을 지급합니다. 실질적인 부동산매매계약이 진행되는 거죠.
공인중개사가 주도하는 실제 매매계약서가 작성되고 나면 법무사 실장은 아무 것도 기재되지 않은 매매계약서와 위임장 등을 꺼내놓고 매도자와 매수자의 인감과 인감증명서를 요구합니다. 그리고는 백지 계약서와 위임장 위 필요한 곳에 양측 인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날인합니다. 즉, 백지 계약서에 법무사 실장이 날인하는 세무서 신고용 매매계약서죠.
신고용 매매계약서에는 매매대상물의 주소나 매매금액이나 조건도 없습니다. 매도자가 누군지 매수자가 누군지도 표기되어 있지 않죠. 나중에 사무실에 가서 작성할 것이니까요.
그래서, 매수자와 매도자는 각자 다른 의문을 가집니다.
매도자는 "양도세가 얼마나 나올 것인가?"를 묻게 되고, 매수자는 "취등록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가?"를 묻게 되죠. 여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양도세가 몇십만원 정도 나오게 매매금액을 조정해서 신고할께요. 그 금액이 확정되는 대로 취등록비용을 산출해서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매도자나 매수자나 그러려니하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법이 그것을 허용하고 있었기에 매도자가 부담하게 되는 양도세에 대한 고려가 우선이었고, 행정기관이 고시한 표준매매가격이 있어서 그 금액만 넘어가게 신고하여 형식적인 양도취득세만 내면 되었으니까요.
달리 말해서, 매수자는 그냥 취등록세를 보내달라는 대로 보내주었을 뿐 특별히 매매신고금액을 협의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법지식이 없어서 법무사직원이나 공인중개사가 이렇게 하는게 맞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안전하고 신속한 소유권 이전만을 부탁하면서요.
간혹 매수자 중에 실거래가로 신고하자고 우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매매대금으로 양도세 내고 나면 남는게 별로 없으니 매도자가 응하지 않기에 거래가 성립되지 않거나 결국 매수자가 양보하게 됩니다.
안철수부부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지지하거나 비판했으면 하는 생각에 경험담을 적어봅니다.
가자서작성일
2012-09-2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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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안철수 출마선언에 눈물 흐른 이유"
"안철수 출마선언에 눈물 흐른 이유"
이 글은 안철수연구소(현 안랩)에서 10년 동안 커뮤니케이션 팀장 직을 수행한 박근우 현 박근우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tamjingang)가 안철수 전 원장의 대선출마 선언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소감입니다. 이 글은 박 대표의 동의를 얻어 올린 겁니다. <편집자 주>
어제(19일) 오후 3시, 안철수 박사의 기자회견을 생방송으로 지켜봤습니다. 현장 모습을 보니 묘한 긴장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작년 9월, 세종문화회관 건물 수피아홀에서 진행했던 '아름다운 양보' 기자회견 당시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당시가 어제의 일처럼 남아있습니다.
그 당시 50%가 넘는 지지율을 달리던 안철수 박사가 5%의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아무 조건없이 후보직을 양보했습니다. 기존 고정관념이나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한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어떻게 20분 정도의 대화를 나누고 양보를 할 수 있는지 놀라워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러나 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철수 박사와 박원순 시장은 이미 10년 전부터 함께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을 통해 '나눔'이라는 공통적 관심사로 이심전심이 형성돼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안철수 박사는 권력에 욕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리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언제나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선조들과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돌려주는 삶이었습니다.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안철수 박사의 진심은 곧 국민의 마음에 신선항 충격으로 다가섰겠지요.
국민들은 안철수 박사를 대통령으로 곧장 밀어올렸습니다. 안철수 박사의 고민은 계속 될 수 밖에 없겠지요.
안철수 박사는 작년 9월 6일 아름다운 양보를 한 후 마음이 한결 홀가분했을 것입니다. 이제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원 학교 일에만 매진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그러나 국민들은 다시 안철수를 대통령 후보로 불러냈습니다.
안철수 박사는 정치권이 국민이 바라는 변화와 쇄신을 하면 자신이 정치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정치권은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혼비백산해 변화의 쇄신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은 시늉만 했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4월 총선 전을 생각하면 야당은 충분히 국회 과반수 이상의 승리가 예상됐습니다. 정치권을 비롯
언론 등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야당은 참패를 당했습니다. 제대로 변화도 없이 오만했던 것이지요.
안철수 현상이 야당을 살린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차려준 밥상도 차버린 꼴이었지요. 여당도 총선 승리 후
다시 공천 뇌물 범죄 등 구시대 구태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정치판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국민에게 잠시 눈속임 했을 뿐이지요.
안철수 박사가 국민과 시대의 부름에 고민했던 이유
제가 보기에 안철수 박사는 총선 전에 학교 일에만 매진하며 정치에 나설 생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총선 후 국민들은 다시 안철수 박사를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낡고 썩어빠진 정치판을 꺠끗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겠지요.
다시 안철수 박사의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안철수 박사는 원하지 않았지만 국민과 시대의 부름을 받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스스로 잘 할 수 있을지 자문하고 조용히 낮은 곳으로 임해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과정은 고민의 산물일 것입니다.
어제(19일) 구세군 아트홀에서 열린 안철수 박사의 기자회견은 그러한 고민의 결과를 국민들에게 보고하고 국민의 열망에 답하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라는 안철수 박사의 말이 나오자 TV 생방송을 보고있던 아내가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습니다.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당초 안철수 박사가 존경받는 지성인으로 남았으면 했습니다. 평생 바르게 살아온 분이 추악한 정치판에서 상처를 입을까 우려됐기 떄문이지요. 그러나 총선 후 저도 안철수 박사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국민들과 시대가 요청하는 만큼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 국민이 열망하는 변화를 이끌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안철수 박사도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번뇌했을 겁니다.
그러하면 어제 안철수 박사의 대통령 출마 선언 당시 연설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철수입니다.
저는 지난 7월말에 말씀 드린 대로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동안 저는 재미있는 별명도 얻었고.
또 최근에는 저를 소재로 한 유머도 유행하더군요.
그동안 제 답을 기다려오신 여러 분들의 애정이라고 생각하고
그 또한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기업인과 교수의 삶을 살아온 저로서는,
국가경영의 막중한 책임을 지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춘천에서 만난 어르신, 명예퇴직을 앞둔 중년의 가장,
30대의 쌍둥이 엄마와 같은 많은 이웃들을 만나 뵈었고,
각 분야에서 경륜과 전문성을 가진 분들도 만났습니다.
가능하면 조용하게 경청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느 한분 힘들지 않은 분들이 없었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이 너무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고 고단한 삶의 과정에서도
그분들은 끊임없이 희망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나 자신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희망을 드린 것이 아니라 제가 오히려 그분들께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제게는 스승입니다.
그 분들이 저를 한걸음 더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 분들이 제게 한결 같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했다" 하셨습니다.
또 한 번도 정치에 발 딛지 않은 제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많은 분들이 왜 제게 지지를 보내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제 좀 정치를 다르게 해보자, 새롭게 출발해보자"는 뜻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제 역량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국가의 리더라는 자리는 절대 한 개인이 영광으로 탐할 자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당선여부보다는 잘 해낼 수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통해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답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
저는 먼저 정치개혁은 선거과정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입니다.
선거과정에서 부당하고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를 계속하면,
서로를 증오하고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며, 나아가서는 국민을 분열시킵니다.
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에서 이겨도 국민의 절반 밖에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된다면 다음 5년도
분열과 증오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합과 사회문제 해결은 요원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부터 선거과정에서의 쇄신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선거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있더라도
흑색선전과 같은 낡은 정치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저를 지지하는 분들이 그 결과를 존중하고 같이 축하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께 제안합니다.
모두 한자리에 모여,
국민들을 증인으로 선의의 정책 경쟁을 할 것을 약속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선거후에도 승리한 사람은 다른 후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패배한 사람은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여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협력할 것도 같이 약속하면 어떨까요?
그래야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당선 되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서로 도울 수 있고 또 함께 할 수 있는
통합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정책 대결 속에서 제가 만약 당선된다면
다른 후보들의 더 나은 정책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또 경청할 겁니다.
이것이 바로 국민들이 원하는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정치 경험도 없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정치라는 험한 곳에 들어가 괜히 만신창이가 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는 정치경험뿐 아니라 조직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것도 없습니다.
정치경험 대신 국민들께 들은 이야기를 소중하게 가지고 가겠습니다.
조직과 세력 대신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빚진 게 없는 대신, 공직을 전리품으로 배분하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5년 만에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현명한 국민들과 많은 전문가들이
요소요소에서 각자가 역할을 하는 커다란 시스템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속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낡은 체제와 미래가치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제 낡은 물줄기를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바꿔야 합니다.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시스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
계층 간의 이동이 차단된 사회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구조,
지식산업시대에 역행하는 옛날 방식의 의사결정구조,
이와 같은 것들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됩니다.
국민들은 이제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앞으로 5년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매우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입니다.
국내의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세계적인 장기불황까지 겹쳐 한꺼번에
위기적 상황이 닥쳐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제가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하고 실수도 하고 결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명한 국민들과 전문가들 속에서 답을 구하고, 지혜를 모으면
그래도 최소한 물줄기는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위기의 시대에 힘을 합쳐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가 들어서야 민생경제 중심 경제가 들어섭니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합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동력과 결합하는 경제혁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평화체제는 역시 안보와 균형을 맞출 때 실현가능합니다.
제 정책비전과 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선거과정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 과정부터
국민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는 첫걸음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의 정치를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은 두렵지 않습니다. 극복하겠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싸울 것입니다.
사람의 선의가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여러분과 함께 증명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리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여러분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
그래야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변화의 열쇠는 바로 국민 여러분께 있습니다.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하나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연설이었습니다. 안철수 박사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중에도 그리고 끝난 후에도 감동의 물결이 흘렀습니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도 안철수가 하루 종일 나오더군요. 진심은 통하는 법입니다.
안철수 박사의 진심어린 말에 국민들은 감동하고 눈물까지 흘리기도 했습니다.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희망을 봤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그러한 사람들을 힐링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안철수 박사는 그러한 사람들이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안철수 박사는 "나 자신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희망을 드린 것이 아니라 제가 오히려 그분들께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안철수 대선 후보 훈련소 시절 모습]
저는 안철수 박사의 진정성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박사가 살아온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평생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살아온 삶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한 삶의 진정성이 그의 말 한 마디에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지요. 여타 정치인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위선과 가식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안철수 박사의 말에는 감동하며 눈물흘리는 이유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방송에 나가는 것에 좋아하지 않아 몇번 안나갔지만 사람들은 자주 나온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무릎팍 도사, 힐링캠프 등에 몇개의 방송만으로 시청자들이 감동했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진정성의 힘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겠지요.
안철수 박사는 흑색선전을 최악의 구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거 과정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정책대결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안철수 박사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거 과정에서 깨끗한 대결을 하고 선거 후에도 승복해야 앞으로 대통령이 누가 되든 통합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정치판의 구시대 구태가 없어질지 의문이기는 합니다.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인신공격, 흑색선전 등을 일삼는 정치모리배들이 들끓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국민들을 원한다면 더럽고 비열한 흑색선전을 하지 말아야 할텐데요.
정치공학에 얽매인 기자들의 단일화 질문 세례 황당했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 질문 중에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가 여러번 나왔습니다. 저는 방송을 보면서 똑같은 질문을 여러 기자가 하는 것을 보고 눈살이 찌푸러졌습니다. 기자들은 안철수 박사가 답변한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이다보니 구태의연한 정치공학 논리에 사로잡혀 있기 떄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직 결과만을 바라는 정치판에 길들여진 탓일지도 모릅니다. 안철수 박사의 선의의 정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들이 한편으로는 측은해 보였습니다.
안철수 박사는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입니다. 선거과정에서 부당하고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를 계속하면 서로를 증오하고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며, 나아가서는 국민을 분열시킵니다. 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에서 이겨도 국민의 절반 밖에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결과만을 위한 단일화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녹아있는 셈이지요. 선거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도중요하다는 안철수 박사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겠지요. 더욱이 이제 후보 출마 선언한 자리인데요.
안철수 박사의 단일화 전제조건으로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있어야,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정치권은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국민이 원하는 수준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부 기자들은 그런 말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언제 어떻게 단일화할 것인지 질문만 되풀이 했습니다.
기자들이 무지한 것인지 무례한 것인지 황당하더군요. 안철수 박사는 정치공학이 아니라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치를 하려는 것입니다. 기존 정치공학 고정관념으로 재단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박원순 후보와의 단일화 당시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지요.
그것은 바로 진심의 정치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조직도 정당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빚도 없기에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고 가면 됩니다. 왜냐하면 안철수 박사에게는 국민이 바로 가장 강력한 조직이고 당원이기 떄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박사의 연설문 한 대목을 다시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사람의 선의가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여러분과 함께 증명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리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여러분,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 그래야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변화의 열쇠는 바로 국민 여러분께 있습니다.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가자서작성일
2012-09-2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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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안철수 대선 출마 연설문!
▲안녕하십니까안철수입니다.저는 지난 7월말에 말씀 드린 대로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그 동안 저는 재미있는 별명도 얻었고. 또 최근에는 저를 소재로 한 유머도 유행하더군요. 그동안 제 답을 기다려오신 여러 분들의 애정이라고 생각하고 그 또한 무겁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기업인과 교수의 삶을 살아온 저로서는,국가경영의 막중한 책임을 지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춘천에서 만난 어르신, 명예퇴직을 앞둔 중년의 가장, 30대의 쌍둥이 엄마와 같은 많은 이웃들을 만나 뵈었고, 각 분야에서 경륜과 전문성을 가진 분들도 만났습니다.가능하면 조용하게 경청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어느 한분 힘들지 않은 분들이 없었습니다.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이 너무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하지만 그렇게 힘들고 고단한 삶의 과정에서도 그분들은 끊임없이 희망을 만들고 계셨습니다.나 자신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디고 희생하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희망을 드린 것이 아니라 제가 오히려 그분들께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여러분이 제게는 스승입니다.그 분들이 저를 한걸음 더 나아가게 했습니다.그 분들이 제게 한결 같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했다" 하셨습니다. 또 한 번도 정치에 발 딛지 않은 제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많은 분들이 왜 제게 지지를 보내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이제 좀 정치를 다르게 해보자, 새롭게 출발해보자"는 뜻이라는 겁니다.하지만 저는 제 역량에 대해 고민했습니다.국가의 리더라는 자리는 절대 한 개인이 영광으로 탐할 자리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저에게는 당선여부보다는 잘 해낼 수 있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통해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저는 이제 제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답을 내어놓으려 합니다.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저는 먼저 정치개혁은 선거과정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입니다. 선거과정에서 부당하고 저급한 흑색선전과 이전투구를 계속하면, 서로를 증오하고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며, 나아가서는 국민을 분열시킵니다.그렇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에서 이겨도 국민의 절반 밖에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된다면 다음 5년도 분열과 증오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합과 사회문제 해결은 요원한 일일 것입니다.그래서 저는 저부터 선거과정에서의 쇄신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선거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있더라도 흑색선전과 같은 낡은 정치는 하지 않겠습니다.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저를 지지하는 분들이 그 결과를 존중하고 같이 축하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께 제안합니다.모두 한자리에 모여, 국민들을 증인으로 선의의 정책 경쟁을 할 것을 약속하면 어떻겠습니까?그리고 선거후에도 승리한 사람은 다른 후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패배한 사람은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여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협력할 것도 같이 약속하면 어떨까요? 그래야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우리의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겁니다.누가 당선 되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서로 도울 수 있고 또 함께 할 수 있는 통합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한 정책 대결 속에서 제가 만약 당선된다면 다른 후보들의 더 나은 정책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또 경청할 겁니다.이것이 바로 국민들이 원하는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많은 분들이 정치 경험도 없는데 막상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을 하셨습니다.정치라는 험한 곳에 들어가 괜히 만신창이가 되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지금 이 자리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는 정치경험뿐 아니라 조직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것도 없습니다.정치경험 대신 국민들께 들은 이야기를 소중하게 가지고 가겠습니다.조직과 세력 대신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아가겠습니다.빚진 게 없는 대신, 공직을 전리품으로 배분하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대통령 한 사람의 힘으로 5년 만에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는 없습니다.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현명한 국민들과 많은 전문가들이 요소요소에서 각자가 역할을 하는 커다란 시스템을 이루고 있습니다.그 속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낡은 체제와 미래가치가 충돌하고 있습니다.이제 낡은 물줄기를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바꿔야 합니다.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시스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계층 간의 이동이 차단된 사회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구조,지식산업시대에 역행하는 옛날 방식의 의사결정구조, 이와 같은 것들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습니다.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됩니다.국민들은 이제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앞으로 5년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매우 힘든 상황이 전개될 것입니다.국내의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세계적인 장기불황까지 겹쳐 한꺼번에 위기적 상황이 닥쳐올 가능성이 많습니다.이러한 상황 하에서 제가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저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하고 실수도 하고 결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하지만, 현명한 국민들과 전문가들 속에서 답을 구하고, 지혜를 모으면 그래도 최소한 물줄기는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위기의 시대에 힘을 합쳐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새로운 정치가 들어서야 민생경제 중심 경제가 들어섭니다.대한민국은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합니다.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동력과 결합하는 경제혁신을 만들어야 합니다.평화체제는 역시 안보와 균형을 맞출 때 실현가능합니다.제 정책비전과 구상의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선거과정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저는 이번 선거 과정부터 국민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는 첫걸음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이번 선거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면 좋겠습니다.저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진심의 정치를 하겠습니다.그 과정에서 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은 두렵지 않습니다. 극복하겠습니다.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싸울 것입니다.사람의 선의가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여러분과 함께 증명하려고 합니다.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리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여러분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그래야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변화의 열쇠는 바로 국민 여러분께 있습니다.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하나 소개하고 싶습니다."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그렇습니다.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다.고맙습니다.---------------------------------------------------------------------------새 시대의 새로운 희망이길 빌며... 당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