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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대한민국 민주화의 과정에서....
대한민국 4,5,6월은 참으로 고단한 역사를 품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6.25전쟁,4.3제주도사건,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 87년6월 민주화운동 그속에서 독재정권과 싸우다 혹은 절망스런 사회현실에 좌절해서.. 혹은 누군가에 끌려가서죽음에 이른 이들이 이렇게나 많네요..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5월 6월입니다..철없는 친구들이 웃으며 민주화 민주화..하는걸 지켜보며 개탄스럽기도 하고요..------------------------------------------------------------------------------------------------1. 1950년대 이승만 정권과 4?19민중혁명19597. 31 조봉암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 당함.19604. 11 김주열 시신 발견. 4.19혁명 촉발 2. 1960년대 군사독재 정권기 자본주의의 성장과 전태일 분신196112. 21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사형 당함19697. 10 통혁당 관련 김종태 사형집행11. 4 소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권재혁 사형 당함11. 4 통혁당 사건으로 이문규 사형 당함11. 28 통혁당 사건으로 윤상수 사형 당함19706. 9 4.19 민주화운동 등 사회 운동에 헌신한 이상배 옥고를 치루고 고문후유증으로 운명 11. 13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근로조건개선 요구 분신자살, 이후 학생들의 민주화투쟁 확대 3. 1970년대 유신체제와 민중운동의 발전19714. 27 3선 개헌에 반대활동하며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 선거운동 중 양상석 의문사 당함 5. 17 한영섬유 노동자 김진수, 구사대에게 피습 폭행당하여 치료 중 5월 17일 운명6. 25 김창수, 5월 25일 부정선거관련 조사받으러 연행되어 상경하던 중 김제역 부근에서 죽음을 당함.7. 15 통혁당 사건으로 김질락 사형 당함10. 18. 이강복,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복역중 병으로 대전교도소에서 운명19737. 6. 강무갑, 한글학회에서 활동 투옥. 사회대중당 후보 출마, 1차 인혁당 및 김배영사건으로 투옥. 고문 후유증으로 오랜 투병 중 운명10. 19 서울대 법대 교수 최종길, 중앙정보부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던 중 간첩 자백 강요를 거부하다 고문치사 당함19744. 4 감옥에서 행해진 사상전향공작 과정에서 최석기 무차별 폭행으로 운명.7. 20 사상전향공작 고문에 항의 전향 강요말라는 혈서를 남기고 박융서 운명19754. 9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등 8명이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뒤 불과 20시간만에 사형집행(민청학련 9명은 무기징역)4. 11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 양심선언 후 할복자살8. 17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장준하 선생, 등산 도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10. 15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서대문구치소에서 복역하던 장석구 선생 옥사 19764. 1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단식중 강제급식으로 손윤규 운명11. 14 심오석, 경북대생 유신반대 투쟁 중 기관원에 의해 임의동행된 후 행방불명됨11. 현승효, 경북대생 유신반대 투쟁 중 강제 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771. 19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해직 된 조민기 동아투위 활동 중 지병으로 운명19787. 8 청주신학대생 정법영, 노동자들과 투쟁 중 중앙정보부의 극심한 감시와 탄압을 받던 중 죽음을 당함 19796. 14.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던 노동자 이경심, 헌신적 활동 속에 병이 악화되어 운명.8. 11 YH무역노동자 신민당 점거농성중 노동자 강제 해산과정에서 김경숙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맞서다 운명 4. 광주민중항쟁과 신군부 정권의 등장19802. 29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 후 해고 동아투위 활동중 안종필 간암으로 운명5. 30 서강대생 김의기, 광주의 참상을 알리려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투신자결 6. 9 노동자 김종태, 노동 3권 보장과 광주학살 관련 전단을 배포하고 분신 자결 7. 11 사회안전법 보호감호 폐지 요구하며 단식중이던 김용성 강제급식 과정에서 죽임 당함7.11 사회안전법 보호감호 폐지 요구하며 단식중이던 변형만 강제급식 과정에서 죽임 당함7. 26 임기윤 목사, 민주화운동을 하다 보안사에 연행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811. 2 서울대 학생운동 참여 군입대 이틀만에 이진래 목멘상태로 의문사 당함5. 27 서울대생 김태훈,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친 뒤 투신 자결6. 20 전정배,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후 보호감호생 집단난동 사건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9. 1 부산대생 최종철, 부마항쟁에 참가하여 쿠데타 구속된 뒤 후유증으로 사망 11. 22 이재문, 남민전 사건으로 검거된 후 옥중에서 광주학살에 항의단식,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19824. 20 서울대생 노진수, 학생운동을 하던 중 연행된 후 행방불명됨7. 23 연세대생 정성희, 강제징집 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함 8. 22 진아교통 노동자 문영수 경찰 폭행에 항의 하다 구타로 운명 10. 8 신향식 선생,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사형집행 10. 12 광주항쟁과 관련 구속 기소된 박관현 전 전남대학생회장, 옥중에서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 운명 19835. 3 성균관대생 이윤성, 강제징집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6. 18 고려대생 김두황, 강제징집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7. 2 한양대생 한영현, 강제징집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8. 14 동국대생 최온순, 강제징집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11. 16 서울대생 황정하, 도서관 6층 난간에서 시위 중 추락하여 사망 12. 11 서울대생 한희철, 군입대 후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12. 15 시민단체 활동 중 간첩혐의로 조사 받은 정은복 누군가를 만나러 나간 후 행방불명19844. 2 부산 수산대생 허원근, 군복무 중 3발의 총상을 입고 의문의 죽음을 당함 10. 14 박영두, 삼청교육대에서 청송교도소로 이입된 후 고문과 구타를 당해 사망11. 2 연세대생 임용준, 학생운동을 하던 중 군에 입대하였으나 의문의 죽음을 당함11. 30 민경교통 택시운전사 박종만, 노조탄압에 항의 분신자살19851. 16 전남대생 기혁, 독재정권의 교육정책 반대투쟁 중 운명8. 15 건설노동자 홍기일,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라는 전단을 살포한 후 분신 자결 9. 12. 성대 학생운동 후 인천지역 노동현장 활동하던 정상윤, 해고자들과 수련회 도중 운명9. 17 경원대생 송광영, “학원안정법 반대와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분신(10. 21 사망)10. 11 서울대생 우종원, 민추위 사건으로 대공과의 수배를 받아오다 경부선 철로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해 발견 19863. 10 아산군 영농후계자 회장 오한섭, 무책임한 영농정책에 분개 음독(3.13 사망) 3. 16. 장이기, 예비군훈련 중 군사독재정권과 광주학살에 대해 발언 후 고문당해 사망3. 17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노동3권 보장하라 며 경찰과 구사대에 맞서 분신 자결4. 28 서울대생 김세진, 전방부대 입소거부 시위 도중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 5월 5일 운명 4. 28 서울대생 이재호, 전방부대 입소거부 시위 도중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 5월 26일 운명4. 30 삼환택시 노동자 변형진, 회사측의 부당해고에 항의 분신, 5월 1일 운명5. 7 전재권 선생, 소위 인혁당재건위 사건 복역 후유증으로 운명 5. 20 서울대생 이동수, 문익환 목사의 강연회 도중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등을 외치며 분신자살5. 21 서울대생 박혜정, 조국의 현실에 분노하며 한강에 투신 자결5. 26 노동자 김상원, 경찰의 불심검문에 항의하다 폭행으로 식물인간이 된 뒤 사망 6. 5 이경환, 청량리 맘모스 호텔 옥상에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투신 자결6. 11 노동자 신호수, 서울 서부서 대공과에 연행, 6월 19일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 6. 18 서울대생 김성수, 기관원에 유인되어 실종, 6월 20일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죽음을 당한 채 발견됨6. 26 강상철, 목포사회운동청년연합 활동 “민주화운동 탄압중지와 5.18진상규명, 직선제 개헌 단행을 촉구하는 양심선언”을 하고 분신11. 5 경성대생 진성일, “건대 농성사건 해명, 독재 타도, 미제 축출” 요구 분신 자결 19871. 3 이순덕, 충청지역의 교육민주화 활동에 앞장서다 운명1. 14 서울대생 박종철,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던 중 고문으로 운명(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2. 6. 김문심, 4월 혁명 시 초대 교원노조위원장 지냄. 민주화운동 중 운명 2. 20 서울대생 김용권, 군입대 후 프락치 행위를 강요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2. 20. 서울교대생 박선영, 비민주적 학사운영과 매판세력의 지배를 받는 조국의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 3. 1 노철승, 수도방위사에 근무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3. 3 부산대생 이승삼, 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3. 6 호남대 자퇴 후 노동현장활동하던 표정두, 슐츠 방한을 앞두고 ‘내각제 개헌반대, 장기집권음모분쇄, 광주사태 책임지라’외치며 미대사관 앞에서 분신, 3월 8일 운명3. 19 부산대생 박필호, 육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3. 27 부산대생 장재완, 방위병 근무 중 중요문건이 보안대에 넘겨지자 조직보위 위해 자결 5. 11 박상구, 군의 비리와 비인간적인 행태에 불만을 갖고 있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5. 17 노동자 황보영국,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분신, 5월 25일 운명.6. 8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정경식, 노조활동을 하던 중 실종됨. 88년 3월 2일 창원 볼모산에서 시신으로 발견6. 9 이한열, 6·10총궐기를 위한 결의대회 중 직격최루탄에 피습. 7월 5일 운명 6. 15 전남대생 이이동, 군에서 학생시위 옹호발언을 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 6. 18 태광고무 노동자 이태춘, 대회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해 추락 사고.6월24일 운명6. 25 외국어대 학생 이재용, 경찰의 학내침탈 소식을 듣고 피하다 사고로 운명7. 12 채광석, 시인으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장 활동 중 사고로 운명 8. 1 인천기노련 소속 노동자 김현욱, 이대용, 박용선, 유인식,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운명 8. 22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평화시위 중 직격 최루탄에 맞아 운명9. 2 조흥택시 노동자 이석구, 노조 활동을 하다 회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9월19일 운명.9. 8 서울대생 최우혁, 사회과학서적을 읽다 보안대 적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10. 16 고려화학 노동조합 사무장 김수배, 회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 자결 11. 3 노동자 김성애, “산재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며 산재중앙병원에서 투신 자결 11. 26 박태조, 광주항쟁으로 4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81년 특별사면으로 출소 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12. 4 정연관, 대통령선거 군부재자 투표에서 야당을 찍었다고 부대에서 구타 당해 운명 12. 5 노동자 박응수, “후보단일화하라”고 절규하며 대전역 앞에서 분신 자결 12. 10 목포대생 박태영, “거국중립내각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 자결 12. 16 심재환,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등 학생운동. 인천 삼화실업에서 노조결성 등 노동운동을 하던 중 자신의 자취방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19881. 6 우성택시 노동자 이대건, 단체협약 위반에 항의하여 분신, 1월 8일 운명3. 1 인천 경기교통 노동조합위원장 김장수, 부당해고 반대 요구하며 분신, 3월 9일 운명 3. 10 대원전기 노동자 오범근, 파업농성에 대한 구사대 폭력 등에 항의하며 사장실에서 음독자살3. 25 농민운동가 김길호, 87년 부정선거 규탄투쟁 중 경찰에게 집단구타 당해 후유증으로 운명 3. 25 고려대생 유병진, 87년 대선 당시 공정선거 감시단 활동 중 화재에 의한 후유증으로 운명 4. 10 한신대생 곽현정, 86년 건국대 애학투련 항쟁 으로 구속된 뒤 자결 4. 25 고려피혁 노조위원장 최윤범,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분신, 4월 30일 운명5. 5 유진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옥고 후유증으로 운명5. 9 신영일, 전남민청련 창설과 5·3인천투쟁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하다 운명5. 13 고정희, 민애청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다 연행. 정신병원에 강제수용된 뒤 투신 자살5. 15 서울대생 조성만, 명동성당에서 “양심수 즉각석방” 등 구호를 외치며 할복 투신자살5. 18 단국대생 최덕수, “광주를 잊지말자”며 분신, 5월 26일 운명5. 24 순천 현대교통 택시노동자 장용훈, 부당해고와 노조탄압에 항의하여 분신, 5월 30일 사망5. 26 서울대생 안치웅, 대우어패럴 농성 사건으로 1년 복역, 출소 후 학교 마치고 외출하였으나 행방불명됨6. 4 숭실대생 박래전,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분신, 6월 6일 운명 6. 9 광무택시 노동자 문용섭, 회사비리를 밝히려다 구사대의 폭행에 의해 죽음을 당함 6. 20 성균관대생 우인수, 군입대 후 의문의 사고를 당함. 6월 24일 운명 6. 23 한신대생 박인순, 대학원 원우회 회장으로 학생운동 활동 중 기숙사에서 죽음으로발견됨6. 29 강원 태백탄광 노동자 성완희, 동료의 복직을 요구하며 분신, 7월 8일 운명7. 2 협성계공 노동자 문송면, 15세 어린 나이로 수은중독 되었으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운명 7. 15 세창물산 노조 사무장 송철순, 파업 중 추락, 7월 17일 운명8. 1 박종근, 방위 근무 중 상관의 보약상납 요구 거부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8. 14 정성규, 청주민청 간부로 활동 중 운명 9. 12 현대엔진 노동자 이상남, 구사대 봉고차에 깔려 중상, 89년 5월 16일 운명 10. 10 부산대생 양영진, 군입대한 뒤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투신 자결 11. 6 대원여객 노동자 이문철, 부당 해고에 항의하여 분신 자결 11. 14 금성사 노동자 배중손, 노조 민주화와 임금 인상 투쟁에 앞장서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892. 4 함석헌 선생, 평생을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운명2. 18 철거민 정상율, 돈암동 세입자 대책위 활동하다 가옥주의 칼에 찔려 운명3. 31 경희대생으로 야학활동 등 참여, 모임 후 귀가 중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 운명 4. 3 덕진양행 노조위원장 김윤기, 국민대를 다니다 노동운동에 투신, 공장 이전 항의 파업중 분신 자결4. 7 서울교대생 남태현,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교대인이여 깨어나라”며 분신, 4월 8일 운명 4. 9 노동자 최완용, 인천 흥업사 근무 중 산재를 당하고 치료를 거부당한 뒤 분신 자결5. 3 국가보안법으로 수배중이던 조선대생 이철규, 불심검문 받고 도주 후 행방불명, 5월 10일 의문사 당한 채 발견.5. 4 노동자 김종수, 무노동 무임금 철폐, 민주노조 사수 외치며 분신 자결5. 24 노동운동가 조정식, 반제동맹사건으로 복역 후 영전기계에 입사하여 노동운동하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 5. 29 대우조선 노동자 박진석, 회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 6월 4일 운명 5. 29 대우조선 노동자 이상모, 박진석 동지 분신 후 민주노조 사수를 외치며 분신 자결 7. 3 기아자동차 노조 대의원 이종대, 해고반대 투쟁과정에서 분신, 7월 17일 운명 8. 2 남성흥진 노동자 최성조, 파업 중 구사대 폭력으로 실신, 8월 5일 운명 8. 15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이내창, 안기부 기관원에 의해 거문도로 유인된 후 거문도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함9. 2 노동자 김병구, 제13대 대선과 총선 부정을 폭로하며 자결 9. 4 경동산업 노동자 강현중·김종하, 회사의 부당징계 조치에 항의 분신(강현중 9. 9 운명, 김종하 9. 15 운명)10. 16 노점상 이재식, 노태우정권의 무자비한 노점상 철거에 항의하여 분신, 12월 11일 운명 10. 29 인천 협신사 노동자 이재호, 노동조합 재건 활동을 하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11. 30 임태남, 광주항쟁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특별사면으로 출소 후 대광교통에서 노조활동을 하던 중 죽음을 당함.19902. 19 배주영, 봉화여고 선생님으로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3. 28 동우전문대 총학생회장 김용갑, 학원자주화 투쟁을 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4. 4 노동운동가 강민호, 한신대를 다니다 노동운동에 투신 활동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 5. 3 통일중공업 노동자 이영일, 경찰과 회사측의 지속적인 탄압에 항의 분신 자결5. 17 철거민 이원기, 철거투쟁 중 “무책임한 철거를 막아달라”며 목매 자결5. 18 대유공전생 신장호, 전대협 출범식 참가 중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다 사망 5. 24 박성은, 군대 내 비인간적인 행태를 고발하는 문건 작성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 6. 4 한일고생 정성묵, 교육방법의 개선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 6. 5 경화여고생 김수경, 전교조 가입교사에 대한 징계반대 활동을 하다 투신 자결 6. 6 복학생협의회 활동을 통해 학생운동에 헌신하던 김학수 집회 참여 후 후유증으로 운명7. 14 경북 청도 노동자 최태욱,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여 분신 자결 7. 14 전두환 물러가라 외침 정신이상으로 몰려 김진홍 의병제대. 사찰 관리 중 의문사8. 7 노동운동가 최 동, “미제와 적들의 탄압을 고발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결 8. 30 금강공업 노조부위원장 박성호, 후생복지부장 원태조, 공권력 투입에 반대하며 분신, 박성호 9월 11일 사망, 원태조 9월 18일 사망 9. 12 오원석, 교육민주화활동에 헌신하다 운명 9. 8 충주고생 심광보, “전교조여, 참교육의 함성을!” 등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결 9. 15 서원대생 김기훈, 총학생회 등 헌신적 활동으로 몸을 돌보지 못하다 병악화로 사망11. 8 한양대생 최응현, 민주화투쟁에 제대로 복무하지 못함을 자책하여 투신 자결 12. 6 김병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출소 후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운명 12. 12 전태일 평전 의 저자인 인권운동가 조영래, 민변 창립 등 활발한 운동을 하다 운명 12. 17 자민투활동. 옥중 처우개선을 위해 단식. 출소 후 사회운동 중 박인기 운명19911. 5 원진레이온 노동자 김봉환, 아황산가스에 산재치료 받지 못하고 사망2. 3 한국외국어대생 남현진, 군대에서 통일과 외세 문제에 대해 얘기한 뒤 죽음을 당함 2. 20 서울대생 송종호, 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2. 22 김공림, 서울대 재학 후 노동운동. 성동지역 동부노동상담소 활동 중 위암으로 운명3. 9 신용길, 구덕교 교사로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4. 26 명지대생 강경대, 백골단에게 쇠파이프로 집단 구타를 당해 운명4. 27 김영환, 한겨레 사회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중 자취방에서 변사체로 발견 4. 28 분단희생자 김광길. 교도소 생활 중 얻은 간암으로 함평군 산골에서 운명 4. 29 전남대생 박승희, “노태우정권 타도하고 미국놈들 몰아내자”라고 외치며 분신, 5월19일 운명5. 1 안동대생 김영균, “노태우정권 타도, 공안통치 분쇄”를 외치며 분신, 5월2일 운명 5. 3 경원대생 천세용,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 운명5. 4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 구속 수감 중 의문의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 치료 중 5월 6일 의문사 당함 5. 8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사망5. 10 성남피혁 노동자 윤용하, 노태우정권 타도, 노동해방을 외치며 분신(5.12 사망)5. 18 이정순, 연세대 정문앞 철교에서 “공안통치 종식,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분신 자결5. 22 정상순, 전남대 병원 영안실에서 “노태우 물러가라” 며 분신, 5월 29일 운명 5. 25 성균관대생 김귀정, 경찰의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에 짓밟혀 살해당함 6. 1 보성고생 김철수,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 자결 6. 8 인천 삼미기공 노동자 이진희,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에 항의하여 분신, 6월 15일 운명6. 15 인천 공성교통 노동자 석광수, 차량시위 도중 지도부 연행에 항의 분신, 6월 24일 운명 6. 27 노동운동가 유재관,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에서 활동 중 경찰의 침탈소식을 듣고 피하다 운명 8. 3 신구전문대 총학생회 간부 고재욱, 수련회 중 익사로 운명8. 3 류정하, 신구전문대 총학생회 간부로 수련회 중 익사로 운명 8. 18 대구대생 손석용, 입대 후 민족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에 고민하다 분신, 8월 19일 운명8. 22 합동물산 노동조합 위원장 김처칠, 언론에 호소 하며 파업 중 한강에 투신 운명 11. 7 양용찬, 서귀포 나라사랑청년회 회원으로 제주도개발특별법 저지 요구하며 분신 자결11. 21 30년 복역 고문과 감옥생활로 인한 병으로 최인정 운명12. 6 대봉 노동자 권미경, 미싱공으로 근무하던 중 노동통제 강화에 항의 투신 자결12. 10 창원대생 탁은주, 참교육연구회 회장 역임 등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가하다 행방불명된 후 의문사 당한 채 발견19921. 18 통일운동가 24년 옥고 치른 후 출소 지병 악화로 박판수 운명1. 21 현대자동차 노동자 서영호, 노동조합 활동 중 경찰 침투대비 저지선 순찰을 하다 사고당한 후 93. 7. 1.사망 2. 15 원진레이온 노동자 강희수, 산재 치료를 거부당한 뒤 운명3. 11 노동운동가 박복실, 전북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사망3. 21 최성묵, 부산민주화운동의 지주로서 헌신적 활동을 하다 지병으로 운명4. 12 숭실대생 이상렬, 야간강좌 부총학생회장으로 과로로 운명 4. 24 국민대생 정도준, 부대 야외 훈련기간 중 부대내부에서 의문사 함.4. 28 숭실대생 박현민, 총학생회 집행부로 활동하다 등록금 투쟁 중 과로로 운명5. 30 김기옥, 인천 영진운수노조 활동 총파업으로 구속, 해고. 복직 후 활동 중 폭행으로 운명 8. 29 한신대생 박태순, 부천에서 노동운동, 기무사의 추적을 받던 중 구로역 인근에서 행방불명된 후 시흥 전철역 부근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9. 11 오원진, 충남지역 청년운동을 선도하다 운명 10. 10 윤재영, 충남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한 뒤 노동운동, 청년운동에 헌신하다 병으로 운명11. 2 전남대생 문승필, 학생운동을 하던 중 경찰의 협박 전화를 받아오다 철로변에서 의문사한채 발견.11. 3 철거민 김선호, 부산 장리동 철거반대 투쟁 중 용역깡패의 집단폭행으로 운명. 11. 4 임희진, 전교조 분회결성 주도로 해직된 뒤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12. 13 최성근, 전교조 대의원 사립지회 활동 중 지병으로 운명12. 22 이광웅,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된 이후에도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2. 김영삼 정권19931. 14 권두영,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안기부에 연행되어 구속, 수감 재판을 받던 중 구치소에서 목매 자살1. 20 황인철, 인권변호사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해오다 운명1. 25 삼미특수강 노동자 정운갑, 노조집행부 활동 중 운명 2. 20 인천 남일금속 노동자 채희돈, 노동조합 활동 중 과로로 운명3. 12 지학순, 천주교원주교구 신부님으로 독재에 항거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운명4. 14 정영상, 교사로 해직된 후 안동지역에서 전교조 활동을 하다 운명 5. 13 정영부, 89년 해직당한 이후 참교육 실현을 위해 활동하다 운명 5. 19 한양합판 해고노동자 조경천, 복직투쟁을 전개하다 운명 5. 21 원진레이온 노동자 고정자, 산재판정 받았으나 치료받지 못해 자결 6. 26 박미경,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후 교육민주화를 위해 애쓰다 운명8. 8 노동운동가 김주리, 이화여대 졸업 후 노동현장에서 헌신하다 화재로 운명 8. 15 성순희, 전교조 교사가족회 등에서 활동하다 수배생활 과정에서 운명 9. 8 광주교대생 이경동, “주한미군 철수와 김영삼정권 반대” 등을 요구하며 분신, 9월 9일 운명 9. 9 노동운동가 임혜란, 인천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운명 9. 11 농민운동가 김영자, 자주·자립적 농업의 건설과 진정한 농민해방을 염원하다 운명 9. 26 전교조 결성 참여 후 해직되어 활동하던 길옥화, 전교조 탈퇴를 전제로 한 복직에 항의 자결10. 26 노동운동가 최웅, 경동산업 해고노동자로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 11. 10 광주교대생 한상용, 교대교육 정상화를 위한 투쟁 중 분신 자결 12. 27 과학기술원 유전공학연구소 노조위원장 박성호, 노조 활동 중 교통사고로 운명 19941. 18 문익환 목사, 평생을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1. 24 김성윤, 상호운수노동조합 활동 중 “김영삼 대통령에게 드리는 탄원서” 작성 후 자결1. 26 이오순, 송광영 동지의 어머니로 이땅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1. 27 전북산업대생 이창환, 농활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 2. 1 농민운동가 김순복·손구용, 농민대회에 참여 도중 사고로 운명 2. 13 김남주, 남민전 사건으로 석방된 뒤 투병중 운명 2. 19 노동운동가 김상옥,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운명 3. 11 성호여객 노동자 최성묵, 회사측의 부당 노동행위에 항거 분신 자결 4. 17 한국통신 노동자 김낙성, 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운명 5. 2 숭실대생 신건수,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 8. 12 청년운동가 이범영,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헌신하다 운명9. 18 통일중공업 노동자 임종호, 구속된 이후 독방생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운명 19952. 24 분단 희생자, 윤기남 29년 복역 후 출소하여 통일을 염원하다 운명3. 8 노점상 최정환, 중증장애인으로 정권의 반민중적 빈민정책에 항의 분신, 3월 21일 운명 3. 17 경기대생 오원택, 사학비리 학교당국에 대항하다 군 입대 후 운명 5. 12 현대자동차 노동자 양봉수, “나는 3만 조합원을 사랑합니다”라고 절규하며 분신, 6월 13일 운명 6. 3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 수세거부투쟁 등 기독농민회 활동 중 운명 6. 21 대우조선 노동자 박삼훈,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승리하자”며 분신 자결 7. 3 이민호, 서울인쇄노조 쟁의부장 등 노동운동을 하던 중 삼영화학 청주공장에서 사고로 운명8. 16 박현채, 민중경제학자로 군사독재의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으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운명 9. 4 철도 노동자 서전근, 철도민주화 투쟁 중 오지로 전출에 항의 분신 자결 9. 30 동래여전 졸업후 부산지역 전문대 운동의 일꾼으로 헌신하던, 육지희 지병으로 운명11. 25 노점상 이덕인, 장애인으로 노점 단속 중단 골리앗 농성 중 실종된 후 11월 28일 아암도 앞바다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 12. 14 경원대생 장현구, 파행적 학원운영 중지 요구하며 분신 자결 12. 15 대우정밀 병역특례해고노동자 조수원, 병특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민주당사 농성 중 자결 19961. 13 한일병원 노조 위원장 김시자, 부당징계 철회와 어용노조 퇴진 요구 분신 자결2. 5 철거민 신연숙, 수지2 택지개발사업지구 철거 과정에서 철거깡패들의 골리앗에 자행된 방화로 운명 3. 23 한국통신 제주고산전화국 노조지부장 김왕찬, 노조민주화에 앞장서다 운명 3. 29 연세대생 노수석, 경찰의 토끼몰이식 시위진압으로 살해됨 4. 6 경원대생 진철원, 학원 자주화투쟁 과정에서 분신 자결 4. 7 성신여대생 권희정, 학원 자주화 단식투쟁 후유증으로 운명 4. 16 성균관대생 황혜인, “김영삼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 자결4. 18 문한영 통일운동에 힘쓰다 운명4. 19 여수수산대생 오영권, “김영삼 타도, 미제축출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고 자결 5. 2 노동운동가 유구영,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살다 운명 5. 6 대구공전생 박동학, 학생자치권 보장을 요구하던 중 학생과 사무실에서 분신, 5월 8일 운명 6. 6 연세대생 정인택 대통령 선거 공명선거 감시단 활동 후 귀가중 의문사6. 18 한국통신 노동자 오용철, 개봉전화국에서 민주노조 활동으로 구속되었다 석방된 뒤 운명 9. 9 영남대생 김하영, 96년 7차 범민족대회 참가 중 지병으로 운명9. 18 경원대생 이상희 집회 중 경찰 연행 후 정신질환을 앓다 자결10. 3 노동운동가 김말룡,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초지일관 싸우다 운명11. 10 박문곤, 노동법 개정투쟁과 전교조 합법화 노동자 대회 참석 후 불의의 사고로 운명 12. 26 ‘녹슬은 해방구’작가 권운상, 유신철폐, 미스유니버스대회장 폭파음모사건 구속 등 민주화운동 참여 후 병으로 운명19972. 10 용인대생 한상근, 학교당국의 일방적인 학사운영에 항의하며 분신, 2월 13일 운명 2. 2 그림으로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 만행을 폭로 한 강덕경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활동 중 지병으로 운명2. 15 철거민 민병일, 구갈 철거민 대책위원회 활동 중 경찰의 집단폭행으로 운명 2. 25 농민운동에 투신하여 영광군농민회 활동하던 지용진, 모임 후 귀가 중 교통사고로 운명3. 18 22년 수감 생활 후 병 악화로 권양섭 운명3. 20 조선대생 류재을, 시위 도중 경찰의 강경진압에 의해 운명 4. 2 통일운동가 옥고 휴유증으로 고생하다 패혈증으로 진태윤 운명5. 31 국민캡 노동자 홍장길,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회사 분할매각에 항거 음독 7. 25 철거민 박순덕, 서울 전농3동 철탑망루 농성에서 철거깡패들의 방화에 의해 운명 9. 16 광주대생 김준배,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수배 중 보안수사대의 프락치 활동을 통한 과잉 검거 과정에서 운명 9. 21 군산대생 이형관, 전국대학생기자연합에서 대학언론운동을 하다 과로로 운명 12. 16 위안부 피해 처음 고발했던 김학순, 공개증언으로 문제해결운동에 참여 지병으로 운명 3. 김대중 정권19981. 7 대전지역 학생운동, 민주청년회 활동 중 강연석 교통사고로 운명1. 21 범민족대회 참가 중 백혈병 증세 발견 투병생활 하던 최신애 운명 2. 13 대우조선 노동자 최대림,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 입법화 반대”를 요구하며 분신 자결 2. 24 노동운동가 최명아, 민주노총 조직1부장으로 활동하던 중 과로로 운명5. 9 신길수, 동아엔지니어링 노조위원장 공익노련 부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운명6. 13 범민련 부의장 등 평생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하던 주명순 운명7. 19 구로지역에서 미조직 노동자 조직 현장활동하던 양순녀, 철원 통일수련회 도중 사고로 운명8. 4 사월혁명에 경북학생운동 대표로 참여했던 정만진 사월 혁명회 활동 중 운명 12. 7 경희대 학생운동 참여 학림사건으로 내사 고문후유증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던 이길상 투신12. 28 조현식, 경기도 광주지역 건설일용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사무실에서 화재 발생으로 운명19991. 30 정성범, 민주노총 충남서부지역 조사통계부장으로 활동 중 운명3. 14 계훈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고문 등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3. 31 김윤수, 대림자동차 노조활동 중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출소 후 해고복직 투쟁 중 운명5. 17 배동복, 영창악기 풍물패 ‘어울림’ 창단, 불의의 사고로 운명5. 28 4월혁명에 서울지역 대학생연맹 활동을 통해 참여했던 심재택 사월혁명회 활동 중 운명6. 22 이상관, 창원 대우중공업 입사 근무중 산재당함, 근로복지공단에 의해 강제 퇴원 조치후 자결7. 10 윤창녕, 1급 장애인이라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전역 지하상가에서 어려운 노점생활을 하다가 구청의 노점상 단속에 항의해 분신7. 23 장애인 인권 및 생존권 증진을 위한 활동 중 박흥수 지병으로 운명8. 24 최경철, 현대자동차 조직부장으로 임단투 승리를 위한 노조신문 차량배포 중 사고로 운명8. 25 스타TX의 박용순 동지 “사납금제 및 업무상 사고처리비 노동자 부담 철폐”를 외치며 분신 사망 8. 27 김종배, 공공연맹 정책국장·대외협력국장·교육국장 역임, 불의의 사고로 운명12. 11 해방 후 청진교원대학 지리학 교수를 역임한 최남규, 57년 구속되어 29년 투옥 후 통일을 염원하다 운명12. 14 군포 대우중공업노조 위원장 및 경기 지역 진보운동에 참여 하던 임동국, 위암으로 운명20001. 26 범민련 부의장 김양무 선생님, 직장암으로 투병 중 운명 2. 29 노동자 정치세력화 및 안산지역에서 활동하던 김명한 운명6. 20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수감이 되풀이하던 김현순, 고문과 오랜 옥고 후유증으로 운명8. 12 재능교육교사노조 활동 하던 유희수, 적극참여 중 수련회에서 익사사고로 운명 8. 26 사회보험노조의 최진욱 동지 공안탄압분쇄를 위한 민주노총 집회 참석 중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운명 20012. 23 이옥순, 70년대 원풍모방 노동운동 통일을 여는 여성모임 ‘금강초롱’ 전국연합 대외협력위원장으로 활동하다 폐암으로 운명3. 해방전후 지역 청년동맹 활동, 25년 복역 후 대전지역 진보운동에 참여하던 안상운 중풍으로 운명4. 23 전농 경남도연맹 정책실장 등 농민운동으로 헌신한 김성원 운명5. 16 한승훈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517일 투쟁 참여 후 과로로 운명5. 18 안산지역 노동자 김순조. 노동자통일운동 참여, 창흥정밀노조 사무장으로 임단협을 준비하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7. 19 예덕실고 음악교사 전교조 활동으로 구속 파면 복직, 활동중 남광균 암으로 운명9. 5 전국건설운송노조 사무처장 안동근, 레미콘노동자 상경투쟁 조직 등 과로로 인한 병으로 투병하다 운명9. 12 경성대 재학 후 노동현장 활동 하던 강희완, 화물연맹 부두노동자들의 민주 노조의 틀을 잡기위해 노력하다 운명11. 14 이동현, 공무원노동조합 건설과 노동3권 쟁취를 위한 활동중 과로누적 등의 원인으로 운명20021. 18 여주지역에서 민중정치 활동하던 김남준, 민예총 여주지부 사무국장, 이천노동상담소 활동 중 운명3. 3 서울장애인연맹 정태수, ‘제1기 장애인청년학교’ 수료식 도중 과로로 운명3. 8 이천전기 노동자 유순조 세차례 옥고 치루고 IMF시 정리해고 반대투쟁 등 노동운동 중 대장암으로 운명3. 21 금강회 사건으로 제적 공주지역 사회운동 중 최연진 위암으로 운명3. 26 최옥란,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등 활동 중 심장마비로 운명4. 2 대우중공업노동자 김기욱, 인천지역 노동문화운동에 전념하던 중 간암으로 운명5. 21 부천시협 의장 한경석,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백혈병으로 운명7. 8 참교육 실현을 위해 활동하던 김종삼, 전교조 부산지역 활동 중 운명8. 3 민청학련사건 구속 대전지역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강구철 간암으로 운명8. 23 박봉규, 노점상연합 활동중 노점생존권탄압에 항의하며 구청장실에서 분신, 9월6일 운명8. 25 문재룡, 범민련서울시연합 부의장 등 평생을 조국의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폐암으로 운명11. 22 인천지역택시노동자 천덕명, 택시제도개선 파업 참여로, 사측의 집중탄압을 받던 중 월급제 사수와 인간다운 삶을 외치며 분신 운명 4. 노무현 정권20031. 9 배달호, 두산중공업의 부당해고와 징계에 맞서 투쟁하며 노조탄압에 대한 울분이 담긴 유서를 남긴 채 분신 운명1. 25 임영덕, 진해시 공무원 직장협의회 초대지부장으로 취임해 02년 11월 연가투쟁을 벌이다 건강악화로 운명1. 28 이성경, 87년 섬유노동운동 시작, 전국노운협 사무국장 등 활동하다 대장암 투병중 운명2. 11 고문피해자 강남근, 삼선개헌 반대투쟁과 야당 지지등으로 간첩으로 몰려 고문후유증으로 고통받다 운명2. 22 경기서부건설노조 및 안산지역 문예운동 참여한 권오복 교통사고로 운명4. 12 최전권, 전북도청에서 5.18 진상규명.군사독재 반대를 외치며 할복자살 기도 후유증으로 고통 받다 운명 4. 13 강희철, 전국연합 정치위원장 등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을 위해 헌신하다 뇌출혈로 운명4. 19 이성도,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장 등 헌신적 활동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4. 28 화물연대 노동자 박상준, 파업투쟁 중 “화물연대투쟁 반드시 승리하라”는 말을 남기고 음독자살5. 7 최복남, 화물연대 부산지부 김해지회장 역임, 파업투쟁 중 선전전을 벌이다 교통사고로 운명5. 15 김정훈, 97년 한총련 기획국장 활동 전국연합 정보통신부장, ‘사람들넷’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다 투병 중 운명6. 4 공무원노조 서울지역 김병진, 공직사회 개혁과 공무원 노동3권 쟁취를 위해 불철주야 투쟁하다 지병으로 운명8. 4 국민에게 기여하는 올바른 국민연금 관리가 되기를 바라며 송석찬 자결 8. 26 02. 8. 16일 노사교섭 결렬 후 파업기간중 회사의 구사대에 의해 두개골 함몰되었던 세원테크 노동자 이현중 운명 9. 2 카톨릭 신부로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김승훈 신부 운명9. 8 카톨릭학생회 활동을 거쳐 부산지하철 노조 현장활동 한던 최종만 운명 9. 10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자주농업을 사수를 주장하며 농민 이경해 자결10. 17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 크레인 고공 농성 129일째, 한진중공업 파업 88일째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정부와 사측의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밧줄에 목을 매 자결10. 23 세원테크 노조위원장 이해남, 고 이현중 열사 투쟁 관련하여 업무방해, 명예훼손,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배 투쟁중 분신, 11월 17일 운명10. 26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동조합 광주본부장 이용석,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철폐”를 외치며 분신, 10월 31일 운명10. 27 30년 복역 출소 후 통일운동에 헌신하다 장광명 운명10. 29 공무원노조 전남지역 활동한던 최주홍 공직사회 개혁을 위한 공무원노조활동에 헌신적 하다 간암으로 운명.10. 30 한진중공업 노동자 곽재규, 김주익 열사 투쟁 중 도크에 투신 자살11. 20 미군 장갑차여중생고신효순심미선살인사건범대위 상황부실장 제종철, 의정부일반노조 활동 중 의정부 철로에서 열차사고로 운명12. 7 전방입소반대 등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던 성기득, 교육현장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자결20041. 4 권종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초대의장 활동, 전국연합 통일연대 고문 및 지도위원으로 활동, 암으로 투병하다 운명2. 13 의료보험노조 서울본부 사무국장 등 역임하였던 박동진 수배생활 중 암진단, 병원치료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운명2. 14 민교협 공동의장 민중중심의 사회이론정립에 전념하던 김진균, 후진양성과 진보 사회단체 활동 중 직장암으로 운명2. 14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하청노동자 처우개선 및 근로조건 개선 투쟁 중 “비정규직차별철폐” 을 외치며 분신2. 21 전북지역 농촌운동 투신한 김윤 전국여성농민회 활동 중 심장병으로 운명 4. 1 정순덕, 50년 9월 23년간 옥고를 치루고 1985년 8월 출소. 2차 송환을 애타게 기다리시다 심장마비로 운명5. 26 민주버스노조 장흥교통 노동자 정상국, 임금체불과 장흥교통 비리 진상규명 촉구투쟁 관련 징계에 항의 자결5. 28 전국여성노조 및 부산지역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이경희 운명6. 8 강지연, 민중병원에서 노동운동 시작하여, 구로지역에서 문화 및 통일운동을 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8. 3 이영기, 대구지역 청년운동, 민중연대 활동을 통해 통일운동과 현안투쟁에 앞장서 던 중 간암으로 운명9. 3 마산 창원지역운동 및 여성운동에 헌신하던 이경숙 운명 11. 15 종교인 조용술 목사, 오랜기간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운명12. 21 4월 혁명 당시 경북대학생으로 참가 했던 이재형. 사월혁명회 활동 중 운명12. 27 코리아타코마 김춘봉, 희망퇴직당한 후 촉탁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비정규직 철폐 유서를 남기고 목맴12. 30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 박상윤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던 중 자결20051. 7 김남식, 해방 후 진보진영에서 자주적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 현대사와 통일 관련 연구활동을 통해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저서를 남김2. 10 정종태, 한양대 구학련 활동 99년 재능교육에 입사 쟁의부장을 맡아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운동에 앞장서다 위암으로 운명3. 5 신창균, 3.1운동 참가 등 독립운동. 48년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 이후 진보당사건으로 투옥. 평생을 반독재와 통일운동의 길을 걷던 중 운명4. 1 류낙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 선고 19년간 옥고를 치루고 94년 구국전위 사건으로 재검거. 99년 광복절에 가석방된 후 건강악화로 운명 4. 29. 엄성준 숭실대 학생운동 참여 농민운동에 투신 진천군농민회 활동 중 농활학생들과 답사중 교통사고로 운명6. 14. 한국노총충주지부장 김태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증진을 위해 헌신하던 중 레미콘노조 파업 지원투쟁에 참여 경찰 공권력에 의한 사고로 운명9. 3.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 류기혁, 비정규직노조 활동 중 사측의 탄압에 항의 목메 자결9. 10. 화물연대부산지부 조합원 김동윤, 화물운송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운명9. 21 김병권, 1921년 대구에서 태어나 30대 후반부터 50여년 동안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11. 11. 농민 정용품 농민의 날 무책임한 살농정책과 정치권의 무책임한 농정을 규탄하며 자결 함.11. 17. 경북성주농민회 문화부장 오추옥, 쌀개방을 반대하며 음독 자결 함.11. 24. 전용철 11월 15일 여의도 '쌀 비준협상 무효 농민대회' 과정에서 경찰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함. 12. 18. 홍덕표 11월 15일 여의도 '쌀 비준협상 무효 농민대회' 과정에서 경찰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함.12. 3선개헌 반대로 고문 당한 이기택, 후유증을 안고 전민상련과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활동 중 운명20062. 9.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위원장 역임한 조문익, 비정규직 조직활동 헌신. 지역공동체 활동을 준비하다 교통사고로 운명 5. 11 시인 박영근, 인천 5.3 운동 참여, 작가회의 및 민예총 활동 중 병으로 운명 7. 19.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활동 농성중 주민칠, 투신한 여성을 태화강에 뛰어들어 구한 뒤 급한 물살에 휘말려 운명.8. 1. 포항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 하중근, 파업투쟁 집회 중 경찰 폭력에 의해 운명.8. 19. 청구성심병원 위원장 이정미 만삭의 몸으로 노동법 개악투쟁 참여, 병원노동자들의 투쟁에 항상 함께 하던 중 위암으로 운명.8. 31. 부산민청활동 한청 지도위원과 6.15 남측위원회부산본부 집행위원장 역임한 박장홍, 민중연대 정책연구원 준비기획단 활동 중 과로로 운명9. 1 남문수, 현대자동차노조 대의원 활동. 사측의 부당 노무관리에 항의 자결 9. 6. 영천군 농민 이주영, 경북대 졸업후 농민운동에 헌신 영천군농민회 사무국장 등 역임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 11. 30 전교조 인천 교사신문, 중등남부지회 활동하던 김형선, 교통사고로 운명20071. 23 인천지역 택시노조 파업에 앞장서 참여 했던 전응재,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항거 2. 20 시인 조영관, 노동문학 활동 중 간암으로 운명 3. 26 김미영, 전국여성노조 인천지부 부위원장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조직 활동 모임 중 운명4. 15 허세욱, 택시노동자로 온몸으로 아는만큼 실천하다 한미 FTA 협상에 반대하며 분신 운명 5. 12 강제전향 공작을 받고, 가석방 출옥 후 울산지역운동 활동하던 김재헌, 운명 6. 22 김주연, 양산지역 농민회 활동. FTA 총궐기 대회 차량선전전 진행 중 운명 7. 22 반공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루고 통일운동에 헌신하던 최상원, 범민련 활동 중 건강 악화로 운명 9. 9 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민족문학 작가로 활동하던 표문태 운명 10. 11 고양시에서 노점상을 하던 이근재, 폭력적인 노점 단속에 항의 민중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자결 10. 23 진주 신일교통 버스 노동자 정태봉, 체불임금, 자주관리기업 쟁취투쟁과정 중 자결 10. 27 전기원 노조 노동자 정해진, 파업과정에서 건설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분신 11. 16 권중희, 김구선생 암살배후 진상규명 활동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운동에 전념하다 운명 12. 10 청주산업선교회 목사 정진동, 청주지역 노동운동 및 민중운동에 참여하다 운명. 5. 이명박정권20086. 9 전주지역 공공 일반노조 조합원 이병렬,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와 공공부문 사유화저지를 요구하며 분신 7. 26 미주지역 청년회 및 통일운동 참여 하던 정유미, 전민특위 사무총장 활동중 위암으로 운명 10. 4 공무원노조 초대위원장 차봉천, 공무원 노동자의 단결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 해고와 투옥 당함 암으로 운명11. 28 박윤정, 외국어대 학생운동 및 한총련 활동 후 노동운동에 투신 민주노총 상근활동중 병으로 운명12. 1 곽태영, 4월혁명에 참여 박정희기념 반대 및 민족정기 정립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20091. 15 4월혁명에 참여했던 도강호, 범민련 등 평생 통일운동을 하다 운명1. 20 용산4지역세입자대책위 이상림,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용산4지역세입자대책위 활동하던 양회성,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수원 신동지역세입자대책위 조직부장 한대성,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수지 심봉지역세입자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성수,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순화동세입자대책위원회 위원장 윤용헌,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4. 10 기아자동차노동자 정형기, 현장조직활동 및 노동자통일운동에 참여하다 자결4. 30 대한통운 노동자 박종태 학생운동 후 노동운동 참여, 화물노동자 권리증진을 요구하며 자결 6. 6 목사 강희남, 평생을 민주주의 발전과 통일운동에 바치다 이명박을 내치자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아직도 진행형이라는게 우울하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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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먹방] [부산/부산대앞] 더 프라이팬 - 여성위주의 메뉴구성과 ..
부산대앞에 언젠가부터 이골목에
오꾸닭, 서래, 똥꼬 등등 한 골목에 빼곡히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더 프라이팬이라는 프렌차이져는
경성대앞에 지나갈때 몇번 봤었는데
상호와 맞는 프라이팬 모양의 아웃테리어와 빨간 컬러사용등으로 보아
분명 20대 여성을 타겟으로 잡은것이 확실했습니다
역시나 손님중 80%이상이 여학생들인걸로보아 그런컨셉은 먹힌듯 하구요
메뉴 또한 입간판으로 보았을때 무슨 감자칩같은걸 내줘서
여성들이 딱 좋아하게 생겼더군요
마침 갈일이 생겨서 한번 방문해봅니다
실내구조는 매우 간단했습니다
길다란 직사각형 구조에 양쪽으로 테이블,
감자칩이 7,000원
보통 통닭에 맥주를 많이 드시죠
세트메뉴에 안심후라이드 + 샐러드 이런류들을보니
19,800원으로 장난쳤지만 2만원돈입니다
3명이라 곱배기는 시켜야겠죠, 샐러드 포함이 27,500원입니다
이쪽 메뉴를 보니 샐러드를 제외하고 22,200원이네요
샐러드가 5,300원 이라는 꼴이군요
오른쪽 아래에 소스 보이시죠
두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추가시 500원이 추가됩니다
참... 그 조그만 소스를 500원씩이나 받는 업장들,,
안받으면 안되나요?
고객은 당연히 이맛저맛을 보고싶어하는데
그걸 돈으로 제한해버리니,
이것도 자체적으로 개발하면 무료나 몇백원으로 가능하지만
이게다- 프렌차이져를 거치다보니 이렇게 받아버립니다
음료수는 2,000원입니다
캔과 얼음컵. 웬만한 비싼곳들 이 가격에 이렇게 나오죠
맥주 400(2,500), 700(3,800) 잔입니다
개인 취향에따라 고를수 있겠네요
그러나!!!
여기엔 다른곳엔 다 있는 1700, 3000이 없습니다
그 이유를 우츄해보자면
개개인의 잔이 개별이라 왠지 깔끔해 보이지만
피쳐도 개인잔이 있습니다 큰통에 맥주가 담겨져 나오고 따라먹죠-
단가 계산을 해보자면
400cc - 2,500 ->100cc당 625원
700cc - 3,800 -> 100cc당 542원
정도 됩니다
400cc보다는 700cc단가가 80원정도 낮네요
700cc 단가로 1700cc 가격을 계산해보면
9228원이 됩니다
요즘 1,700cc가 8,000 ~ 9,000원하는거보면 크게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1700cc짜리 주문하면 500cc잔을 내 주는데
여기서 700cc짜리 맥주를 먹으면 큰 잔을 계속 사용해야해서
팔이 좀 아프겠네요
나왔습니다~
많이 봐왔던 비쥬얼대로 바닥엔 감자칩이, 위엔 닭튀김이 올려져 있습니다
안심살과 다리살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쌓아올리면 보기는 좋아보이나
아래쪽에 있는것들이 눅눅해집니다
그리고 하나 찍다보면 눌려져서 쌓아져있던것이 잘 흐트러집니다
바삭함이 포인트라면 원형 접시에 가운데에 감자칩을 쌓아놓고
가장자리에 치킨을 올리는게 좋아보이네요
밑에 깔린 감자는 막 뒤틀려있고 왠지 신기해보이고 호기심을 자극하게 생겼습니다
하나 먹어보니,
생각했던 감자칩과는 거리가 먼 맛입니다
살짝 소금간도 되어있고 한입 물었을때
바삭하면서 감자 특유의 고소함이 따뜻~하게 올라와야 하는게 정상인데
여긴 감자칩은 거의 無맛 입니다
모양을 변형시키기위해 침수해뒀나봅니다
감자속에 전분들이 빠져나가면서 세포막이 틀어지고 전체적인 모양도 저렇게 됩니다
굳이, 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감자는 갈변현상(상온에 오래두면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
을 막기위해 물에 담궈 놓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감자 특유의 맛이 다 빠져나가서
플라스틱을 씹는 식감입니다
닭안심살은 닭 가슴살이라고 보시면됩니다
다리살과 거의 반반 섞여있습니다
감자가 바삭~해서 치킨도 그런식감으로 기대했는데
그냥 보통... 정도의 바삭함,, 이라 말하기도 좀 그런..
가게마다 쓰는 튀김옷, 베이스, 비율이 다 다른데
여긴 살짝 눅눅한 그런 식감이라 보면 되겠네요
3명이서 먹으니
35,000원 정도 나왔네요
치킨집에서 먹은것치곤 꽤 높은 편이죠
아무래도 이미지때문에 많이 찾는듯 합니다
아니면 저런 스타일 음식이 맞는 분도 계시겠죠
여성분들끼리 가셨을땐
나름 깔끔하게보여서 좋아하실지 모르겠으나
특히 남성분들은 절대로 가지않은 가게 순위권에 들겠습니다
출처http://club.cyworld.com/52333784189/147097404
킥오프넘작성일
2011-05-2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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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신경무 화백이 그린 노대통령과 2mb의 차이
<조선만평> 신경무는 '노 대통령 스토커'?
2003년 12월에 내가 쓴 기사 제목이다. 당시 <한나라당> '차떼기'사건과 이라크 파병 논란의 와중에도 <조선일보> 화백 신경무의 만평 열 한 편 중 여덟 편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분석 기사였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차떼기'사건을 그리면서도 노 대통령을 등장시킨다는 것을 지적했었다.
▲ 2007년 6월 한 달 동안 <조선만평>의 비판 대상이 되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 조폭 아니면 교주의 모습이다.
ⓒ 이봉렬
노무현
비슷한 맥락으로 지난 5월 16일, 신병률 경성대 교수가 참여정부 기간 <조선만평>을 분석한 논문을 내놓은 게 있다. 논문에 따르면 <조선만평>은 3일에 1번 꼴(전체 1401개 가운데 467개, 약 33%)로 노 전 대통령을 소재로 다뤘으며, "대통령 측근들, 총리를 포함한 장관들, 검찰,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 김정일 등이 풍자의 주된 대상인데도 노 전 대통령을 등장시켜 싸잡아 비판한 만평이 전체의 14.6%(467개 가운데 68개)였다"고 한다.
등장도 잦지만 그려지는 모습 또한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빈도가 97.9%(457개)였으며, 긍정적으로 묘사된 경우는 없었고, 중립적이거나 모호하게 묘사된 경우가 2.1%(10개)였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했고,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이명박이다.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조선만평>의 주 비판 대상이 노 전 대통령에서 이 대통령으로 넘어 갔으리라는 생각에 지난 6월 한 달 동안의 <조선만평>을 분석했다. 일단 만평에 그려진 모습만으로 기계적으로 계산하자면 이 대통령의 등장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비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중립적이거나 옹호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횟수가 잦았다는 데 중요한 차이가 있다.
▲ 2009년 6월 한 달 동안 <조선만평>의 비판 대상이 된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
ⓒ 이봉렬
김정일
비판의 대상으로 등장한 횟수만 따지만 1위는 단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모두 여섯 번이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김 위원장의 모습은 나오지 않지만 북한을 등장시킨 것 두 번을 포함하면 모두 여덟 번으로 독보적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맞짱을 뜨고, 이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총을 난사하기도 한다. 김 위원장 옆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등장시켜 싸잡아 비판하기도 한다.
반면에 모두 열 번 등장한 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비판하는 만평에 얼굴만 잠깐 비추거나, 검찰총장과 국세청장을 임명할 때 중립적인 감독의 모습으로 서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독재자라 부를 때는 대통령을 쥐로 비유하는 세태를 빗대 그를 옹호하기도 한다. 중립 또는 옹호의 대상이 된 만평이 전체 열 편 중 다섯 편이다.
▲ 2009년 6월 한달 동안 <조선만평>에 등장(비판의 대상이 아님을 주의)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 위 노 전 대통령의 모습과 비교 해 보시길.
ⓒ 이봉렬
이명박
<조선만평>이 이 대통령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경우는 모두 다섯 번인데, 그 마저도 비판인지, 홍보인지 애매하게 표현했다. 이 대통령의 '중도' 발언을 두고 '득도의 경지'에 올랐다고 표현하거나, 사교육 시장을 때려 잡는 모습, '민생투어' 하는 이 대통령의 모습 등이 대표적인 예다. 확연하게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라 여길 수 있는 건 '임기중 대운하 포기' 발언과 관련하여, 국민들을 내세워 '잇진 않겠대'라며 비꼰 만평 하나가 유일하다.
사흘에 한번씩, 그 중에서도 97.9%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채웠던 <조선만평>이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찌 이리도 무디게 변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횟수와 내용을 떠나, 노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캐릭터만 비교해 봐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조폭을 닮은 날카로운 모습으로, 이 대통령은 부드럽고 정제된 모습이다.
다시 2003년 12월에 쓴 "<조선만평> 신경무는 '노 대통령 스토커'?" 기사로 돌아가자. 당시 기사에는 물음표(?)가 붙어 있다. 혹시 스토커가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조선만평>의 현재 모습으로 확인이 되었다. 이젠 물음표 대신 느낌표(!)를 붙인다.
<조선만평> 신경무는 노 대통령 스토커였다!
출처 : <조선만평> 신경무는 '노무현 스토커' 맞았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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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오늘날당황하게했던일.. - 사진有
안녕하세요 , 부산에 서식하고있는 19.9살의 상큼이입니다. (상큼은 얼어죽을..)
맨날 읽기만하다가 첨으로 써보네요.
저는 경성대부근에있는 모 피자집에서 1년 4개월째 알바를하고있어요.(아무도안궁금해할껄..?)
오늘 인원이부족해서 주방직원인전 배달을 나가게되었죠.(글쎄 안궁금해할거래두..;?)
주섬주섬 피자와 갖가지것을 챙겨서 배달을 나섰죠.
상큼한 바닷바람이 절 맞아주더군요.
룰루랄라 씽씽 달려서 고객님댁으로 도착을했어요~
벨을 누르고 평소와같이 청아한목소리로
"xxxx입니다~" 하니 "네~ " 하시며 문을열어주시고 전 들어갔죠,
파우치에서 피자를 꺼내놓으면서 자꾸 피자를 놔둘곳 옆에있는 비닐봉투에 눈이가더군요,
피자를 다 꺼내드리곤 계산을 하려고하니,
(금액은 26260원이었어요~)
아까 저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섹시한 비닐봉투를 내미시며
"이거 전부 동전인데, 확인해보시고 모자라시면 ㅎㅎㅎㅎ"(이웃음의의미는 멍미..)
"이거 전부 동전인데, 확인해보시고 모자라시면 ㅎㅎㅎㅎ"미..)
"이거 전부 동전인데, 확인해보시고 모자라시면 ㅎㅎㅎㅎ"
네, 웃으시며 주시길레, 전 당연히 맞을거란 생각에
평소처럼 "감사합니다, 맛있게드세요~" 라고 하고 내려왔습니다.
아마도 오늘 돼지한마리 잡으셨나봅니다.
빠져나와선. 가벼운마음으로 다시 매장으로 돌아왔죠,
같이일하는사람도 다들 웃더군요,ㅋㅋㅋ
한숨쉬면서, 전 동전을 들이붓고 확인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부지런히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동전을 세어보았더니..
네, 500원짜리로 12000원 100원짜리로 14100원 50원짜리 50원 10원짜리로 20원
어어...라..? 네, 90원이빕니다.
........... 순간 멍해지면서, 이걸 받으러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네 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결국 전 쿨하게 90원 포기했죠, 다시가는데 기름이 더들테니까.ㅠㅠ
나름 오랫동안 일을했지만.
500원짜리 20개주던 외국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당황했었어요전.ㅠ.ㅠ
사진쩍어둔거 올려용.ㅠ
재미없지만 읽어주신분들은 감사드려요,
다들 추운날씨에 감기조심들하시구요,
크리스마스....잘...보내시길..........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에도 전 죽도록 일해야한답니다...제길..
올 크리스마스엔 장대비나 주룩주룩 내리게해주세요!!!!!!!!!!!!!!!!
전남대작성일
2008-12-2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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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이병도 그는 누구인가??
이병도, 이완용 후손 현대사/독도/북간도
과연 병도는 어떤 인물인가? 일제식민지 시대에 우리나라 역사 왜곡의 주역이었던 병도(1896-1989)는 노론(老論) 유력 가문인 우봉(牛峰) 이씨이다. 열두 살인 1907년에 서울로 올라온 후 일인이 경영하는 불교고등학교를 찾아가 일어(日語)를 배웠다. 나라를 빼앗겨 대한독립을 위하여 수많은 청년 학도들이 목숨을 바쳤으나 병도의 뇌리에는 애초부터 항일 의지 따위는 없었다. 매국노 완용의 후손 병도는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의 장기적 계략에 포섭되어 일본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1919년에 졸업했다. 이때 일인 학자 요시다(吉田東伍)가 이미 한국의 역사를 변조하여 저술한 일한고사단(日韓古史斷)을 독파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역사왜곡의 주역 일인 학자 동경제국대학의 이케노우치(池內宏)와 와세다대학의 강사 츠다(津田左右吉)로부터 문헌고증학, 즉 실증사학의 기초를 다지며 한국역사 왜곡에 대한 개인적인 세뇌 지도 교육을 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던 해 귀국한 병도는 이케노우치의 추천을 받아 1925년에 설치된 『조선 반도사』 편수회의 핵심위원으로 들어갔다. 이병도는 촉탁이기 때문에 무보수로 일했다고 변명하면서 이 시절 규장각 도서를 열람할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의 학문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합리화하곤 했다. 이 시절 그는 조선사편수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등에 한4군(漢四郡)의 강역을 한반도 내의 존재 설을 강력히 주장하고 고?척?풍수도참(風水圖讖) 사상, 그리고 조선시대 유학사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당연히(?) 일어(日語)로 쓴 것들이었다. 이때 쓴 논문들은 문헌고증학의 관점에서는 꽤 수준이 높은 것이었으나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단제 신채호의 민족주의사학과는 서로 배치되는 논리들이었다. 1920년대 연희전문.보성전문.이화여전 등이 민립대학 건설 운동을 일으키자 일본은 경성제대의 문을 열어 이 운동을 좌절시켰는데, 경성제대는 이런 불순한 목적의 대학답게 식민사학을 맹렬히 전파하여 『조선 반도사』를 합리화 시켰다. 이외에도 호소이(細井肇)를 비롯해 아오야나기(靑柳南冥) 같은 일본 국수주의 국학자들도 조선사편수회와 경성제국대학과 함께 식민사학을 쏟아내어 조선국은 고대로부터 반도국가로서 미개한 민족이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일황의 칙령에 의하여 『조선 반도사』편찬에 착수한 일제는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반도국가로 왜곡시킨 우리역사를 합리화하고 세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어용 학술단체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1922년의 조선사편찬위원회와 1925년의 조선사편수회였다. 『조선 반도사』편찬의 고문에는 일인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포함되었는데, 일본측은 경성대 교수인 로이타(黑板勝美).미우라(三浦周行) 같은 학자들인 반면 한국 측은 역사학자가 아니고 친일 정객 완용.영효.윤용, 중현 같은 역적으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이 단체의 고문으로 있었다. 당시 초대조선총독은 취조국이 관장하던 업무를 1915년 중추원으로 이관하고, 『조선 반도사』"편찬과"를 설치하고 우리민족의 대 역적인 완용과 중현 등 역적들을 고문으로 앉히고 1916년 1월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참의와 부참의 15명에게 『조선 반도사』 편집 업무를 맡기고, 일본 동경제국대학 구로이다 가쓰미(黑板勝美) 박사와 일본 경도제국대학 미우라(三浦周行) 교수, 경도제대 이마니시(今西龍) 등 3인에게 지도, 감독을 의뢰하였다. 1922년 12월 일황 훈령(訓令) 제64호를 공포하여 『조선 반도사』편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위원장으로 한 15명의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완용, (권)중현 등 역적들과 일본인 어용학자들이 합작하여 한국인 학자들의 외면으로 『조선 반도사』 편찬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조선총독부 총독 사이토는 "『조선 반도사』편찬위원회"를 “ 조선사편수회 ”로 명칭을 바꾸고, 일황(日皇)의 칙령으로 설치근거의 격을 높이고 확대 개편하였다. 1925년 6월에는 "일황칙령" 제218호로 "조선사편수회" 관제를 제정 공포하고 조선총독부 총독이 직접 관할하는 "독립관청"으로 승격시켰다. 독립관청으로 승격된 총독부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는 『조선 반도사』편수회는 막대한 인적.물적 역량을 동원해 삼한과 삼국은 고대부터 한반도 중부이남 지역에 위치한 부족국가로서 중국에서 설치한 한사군(漢四郡 : 낙랑군(樂浪郡).임둔군(臨屯郡). 현도군(玄菟郡).진번군(眞番郡)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고대부터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는 이론을 수없이 쏟아내 조선의 식민지화를 정당화시켰다. 참고 : 한사군' 일본이 왜곡·날조해놓은 역사1926년 문을 연 경성제국대학도 식민사학을 전파한 또 다른 기관을 만들었다. 1930년 5월 경성제대 교수와 조선사편수회원, 그리고 조선총독부 관리들이 총동원되어 청구학회(靑丘學會)라는 어용 학술단체를 조직하는데 이들 역시 조선총독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일제의 한반도 및 대륙침략 의도에 발맞춰 조선과 만주를 중심으로 한 극동문화 연구와 보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어용 단체는 저술 출판.강연 등의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 단체의 회무감독은 경성제대 교수인 일인 쇼우다(小田省吾)였고, 서기는 조선사편수회 서기인 마에다(前田耕造)였는데, 병도는 신석호와 함께 이 단체의 핵심위원이었다. 또한 병도는 이나바(稻葉岩吉)쇼우다 등의 일본인 및 손진태. 홍 희.유홍렬 등 한국인들과 함께 이 어용 학술단체의 기관지인 청구학총(靑丘學叢)의 주요 필자이며 또 다른 식민사학의 학술지인 조선사학의 주요필자 였다. 당시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1933년 불교전문학교 강사 시절이었다. 일본인 학자들과 함께한 청구학총이 어용단체로 밝혀지자 이를 두려워한 일제와 병도는 일인을 배제하고 순수 민간 학술단체로 위장하여 1934년 5월에 진단학회(震檀學會)를 설립하였다. 즉 일인을 배제하고 순수 민간 학술단체로 위장하여 국내 및 주변 지역에 대한 역사.언어.문학 등 인문학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국 학자의 힘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국어로 발표하려는 의도 하에 창립되었다. 초대 편집 겸 발행인 병도(丙燾)는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출강하면서 기관지인 진단학보(震檀學報)를 발행하고 일제강점기 1941년 6월 제14호로 종간하고 해산됐다. 그 후 1945년 8.15광복 후 다시 진단학회가 발족된다. 일제가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유포시킨 식민사학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 인데, 그 하나는 사대성이론이며 다른 하나는 정체성이론이다. 한국 역사는 고대부터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역사이자, 고대 이래로 발전하지 못한 정체된 사회라는 것이 두 이론의 논리였다. 따라서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역사의 퇴보가 아니라 진보라는 것이 이들의 식민지 지배논리였다. 『조선 반도사』 편찬 실무자 스에마쓰(末松保和) 등 20여명의 일인 학자들과 한민족의 반역자 이완용의 후손 두계(斗溪) 병도(李丙燾).신석호(申奭鎬).홍희(洪憙) 같은 한인학자들이 참여하여 드디어 24,409쪽에 달하는 반도 조선사 34권이 완간 했던 것이다. 민족반역자 병도는 1922년 12월 일황의 칙령에 따라"조선사편찬위원회" 설치 때부터 1938년 3월까지 만 16년 동안 24,409쪽에 달하는 .반도 조선사. 34권을 완간하였다. 일본의 계략대로 우리 역사를 왜곡한 병도는 일본의 제 1등 공신으로 인정받아 일본천왕으로부터 거액의 포상 금과 금시계를 받았다. 1945년의 8.15 해방을 맞아 진단학회의 자진해산 후에도 조선사편수회에는 꾸준히 나가던 병도는 해방 후 경성대학과 그 뒤를 이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로 취임하고 곧이어 서울대학 대학원장에 취임했다. 그때 김상기.이상백.이인영.유홍렬.손진태 등 사학자들과 조윤제.이숭녕 등 국문학자들이 서울대 교수로 취임해 진단학회는 친일 학자들이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나 병도의 해방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해방 다음날 경제사학 계열의 백남운을 중심으로 조선학술원이 결성되고, 같은 날 진단학회도 재건되었으나 진단학회가 곧 “ 친일파 제명운동 ”에 들어간 것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조윤제가 주도한 이 운동의 제명 범주에 병도가 들어간 사실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병도는 재건된 진단학회를 주도할 수 없었고 송석하와 조윤제가 위원장과 총무를 맡고, 송석하가 사망하자 1948년 8월 이상백이 그 뒤를 이었다. 병도의 일제시대 행보는 떳떳할 수 없는 경력이었다. 그러나 친일파 식민사학자 병도가 남한 학계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1950년 6.25전쟁이었다. 6.25전쟁은 많은 민족주의 인사들이 납북됨으로써 남한 학계를 가짜 실증사학의 병도 독무대로 만들었던 것이다. 남북휴전 다음해인 1954년에 병도가 진단학회의 이사장으로 취임 할 수 있었다. 6.25전쟁을 계기로 병도는 친일파 청산 제 1호에서 벗어나 국사학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해 병도는 식민사학을 유포하던 경성제대의 후신인 서울대학교 대학원장과 학술원 부원장을 맡아 역사학계의 최고 원로로 부상했다. 병도는 1960년 문교부장관에 등용되고 같은 해 학술원 회장에 선임됐다. 1962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65년 동구학원(東丘學園) 이사장, 1966년 성균관대학교 교수 겸 대동문화연구원장에 취임했으며 1969년 국토통일원 고문에 추대됐다. 1976년 동도학원(東都學院) 이사장에 선임됐고 1980년 85세의 고령으로 국정자문위원(國政諮問委員)에 위촉됐다. 그 동안 문화훈장 대한민국장, 학술원 공로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5.16민족상 등을 수상했다. 1986년 10월 9일(목)자 조선일보에 단군은 신화가 아니고 우리나라 국조이며 "역대왕조의 단군제사는 일제 때 끊겼다" 라는 제목으로 특별기고 하여 우리나라 고대역사 왜곡의 사실을 발표하고 1989년에 죽었다. 또한 병도의 저서에 《한국사대관, 한국사(고대편, 중세편) 《고?척?연구》등이 있다./ 박선협
드헤작성일
2008-01-0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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