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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박정희의 행적 증언
박정희(일본장교)독립군토벌 행적증언 ▲ 중국정부가 선정한 ‘항일전쟁 유공 장군 70인’에 뽑힌 김형석 옹이 지난 16일 북경에서 동판에 손도장을 찍었다. 이손도장은 ‘중국독립운동명예전당’에 전시된다. 독립운동가 김형석 옹(92.북경대 동양역사학 고문 교수)이 중국 정부가 선정한 항일전쟁 중국 유공자 장군 70인 중 한명에 선정됐다. 중국 정부는 일본 패망 60주년인 2005년 9월1일을 맞아 항일 운동에 공로가 큰 장군들을 선정해 심사를 벌여 김 옹을 포함시켰다. 한국인 중 중국 정부에 의해 항일전쟁 장군으로 선정된 것은 김 옹이 유일하다. 중국 정부는 지난 16일 베이징에서 김 옹에게 항일 운동의 뜻을 기리는 기념패를 전달했고, 김 옹의 손도장이 찍힌 동판을 내년 9월1일 개관할 독립운동 명예 전당에 전시키로 했다. 중국 정부에 의해 김 옹이 한국인 최초로 항일독립운동가로 선정되는 장면은 중국의 CCTV와 <인민일보>에 보도됐다.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베이징에서 귀국한 김 옹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일간스포츠(IS)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한국인 중 최초로 항일전쟁 영웅으로 선정된 것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김 옹은 "중국은 항일 전쟁 독립운동가들을 새롭게 조명하는데, 한국 정부는 여전히 독립운동가들을 푸대접하고 있다"며 서운해 했다. 김 옹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제주에서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더 이상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반드시 매듭짓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면서 "일본이 과거사에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한.일간의 미래는 더욱 불행해진다"고 밝혔다. 김 옹은 이어 "중국 정부 관료가 이같은 말을 했다면 그는 국민적 저항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친일 행적 주장 박정희는 과거에 "중국·조선 독립군 토벌" 김 옹은 "박 전 대통령은 친일파가 맞다"고 주장했다. 김 옹은 "1940년대 만주 일대 전투에 수없이 참가했는데 그 때 한국인 중 일본인 장교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고 그 중 박 전대통령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옹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중국과 조선 독립군을 토벌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 옹은 "지난 1977년 박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 건국 포장을 추서하려 하자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김 옹은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운동 건국 포장을 추서받는 것이 내키지 않아 거부했는데 훗날 정부 측 인사가 집에 두고 갔다"고 말했다. 김형석 옹은 누구? 7세때 중국행…장개석 총통 작전 참모 활약 1912년 평북 철산에서 출생한 김형석 옹은 7세 때 부친을 따라 중국에 간 후 그 때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김 옹은 이후 항일 전쟁에 수백번 참여해 전과를 올렸고, 일본 패망 직전인 1945년 중국 정부는 김 옹을 독립군 장군에 임명했다. 김 옹은 당시 독립운동을 하면서 장개석 총통의 작전참모로도 활약했으며, 조선 독립군과 중국 독립군간의 가교 역할을 했었고, 그 때 만났던 사람이 김구 선생이었다. 김 옹은 아시아 일대를 돌며 독립운동을 한 관계로 영어, 일어, 중국어, 말레이어 등 8개국어를 구사한다. 특히 김 옹은 올초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에 분노해 중국, 대만, 홍콩 등지를 돌며 일본 규탄 아시아 투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북경대 역사박물관장을 역임한 김 옹은 현재 동양 역사를 새롭게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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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미국의 조단위 방사능 소송에 난리난 일본
주일미군 장병들이 동일본대지진 당시 지원활동을 벌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방사능 테러'를 당해 도쿄전력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과 관련,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17일 캘리포니아주 남부 칼즈배드에서 주일미군 장병들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일본을 위해 전력을 다해 도와준 사람들이 중병을 앓고 있다. 간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15~17일 방사능 피폭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주일미군 장병 10명과 면담했다. 기자회견에서 "지금도 환자가 늘어나고 있고 병세가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일본의) 원전 반대론자도, 추진론자도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원고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도모다치 작전'으로 산리쿠 앞바다에 파견된 미국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호' 승조원들. 2012년 제소했다. 도쿄전력으로부터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능 유출의 위험 정보를 사전에 정확히 전달받지 못해 안전하리라 믿고 지원 활동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원고 중 한 명인 다니엘 헤어 씨는 "세상이, 특히 일본이 이 문제에 진지하게 마주해줬다고 처음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원고는 현재 약 400명으로 늘어났다. 변호사에 따르면 원고 가운데 7명이 백혈병 등으로 사망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복구에 투입됐던 미군 100여 명이 도쿄전력을 상대로 1조원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미국 <데모크라시 나우>라는 언론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정상치의 30배 이상 방사선에 노출된 미군들이 도쿄전력을 상대로 소송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데모크라시 나우에 따르면 로널드레이건호에 승선했던 병사들은 2011년 3월 12일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160km 떨어진 해상에서 구호작업을 시행했습니다. 로널드레이건호에 승선했던 미 해군과 해병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구호물품을 전달하기도 했으며, 방사능물질 제거 작업 등을 했습니다.로널드레이건호에 탑승했던 병사들은 도쿄전력이 방사선 노출 수치가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병사들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물질에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병사들은 원자로 냉각을 위해 쏟아져 나온 방사능물질 오염수를 그대로 담수화하여 물을 사용했습니다. 방사능물질이 포함된 물로 목욕과 양치는 물론이고 음식도 섭취했고, 보호장비 없이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로널드레이건호에서 측정한 방사선 수치는 정상치의 30배였습니다.데모크라시 나우가 당시 병사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들은 '갑상생암','고환암','뇌종양','자궁출혈','백혈병'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해군 병사의 부인은 뇌-척추암 진단을 받은 아기를 출산했으며, 어떤 병사는 시력을 잃기도 했습니다. 스티브 시몬스 중위는 트럭을 운전하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고, 현재는 다리가 마비돼 휠체어에 의존하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로널드레이건호에 탑승했던 장교들은 방사선 수치가 도쿄전력의 발표와 다르게 훨씬 높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숨겼고, 병사들은 귀국 후부터 질병에 시달리다가, 미국 샌디에이고 연방법원에 도쿄전력을 상대로 10억달러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ㅊㅊ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member_translation&wr_id=329799https://jp.reuters.com/article/tepco-idJPKCN1B40NP일본반응"토모다치" 작전의 미군 157명이 도쿄전력 제소. 소송금액은 50억달러+알파ID : NE0NN2go0미국의 개가 지불ID : BgkTu + ao0오래 살 것 같다ID : EGx62z8F0세상은 돈이야 돈친구라면 당연ID : g3owKJHo0GE에 말해라 미국놈아ID : lbc7VbFC0이것들이 군인 맞아?ID : KiSsx7R90문제 해결을 위해 도쿄 전력이 일본인의 세금에 의존하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네요ID : 5a / 0QaSc0아베 신조가 지불해라그 대신 오스프리 100대 구입(웃음)정말 아베 신조가 일본을 파괴하고 있는걸 알 수 있어요이런 뉴스가 끊이지 않는걸 보면요ID : sQs6bP1 + 0우익 안면 창백ID : wf9ErarH0전국의 전기요금이 얼마나 오를까ID : YiSIut5z0원폭의 답례다ID : iA5ggqjo0우리 계속 친구잖아!(지갑에서 돈을 빼가며)ID : jgwfv3H20어짜피 50억 달러의 배상금도 국가의 돈ID : oA2BfRG30카빈총으로 헤드샷당한 할아버지의 유언"미국놈을 믿지 마라"ID : sZ + Eptpv0친구를 고소했다는건가ID : vpelM1S + 0미국인들이 조선인이 되었구나!ID : p8slVnyY0미국 법원이면 고액 배상이고일본 끝났어ID : GqoFf9jg0수도권과 이바라키 사람들도 집단 소송 해라 ㅋㅋㅋㅋㅋID : g3owKJHo0깍쟁이 미국의 진면목ID : T7xzEAjC0도쿄전력에 청구하는건 이야기가 이상하네출동 명령을 내린건 미군 사령관이고ID : WHOXo7bG0우익이 지불해라ID : zI + aEJqS0타국에서 고생하지 말고제발 일본에서 나가세요ID : BqMNNEH50미군 : 야, 도쿄전력, 뛰어봐!ID : cO7VhKSm0악의가 있네오바마 대통령때 고소 안하고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서야 고소하는거 보면ID : ncWuzpnb0미군이 도와주러 올때, 방사능의 위험성 숨기고 있어서 그렇잖아ID : wjMNGfwM0뭐가 친구란거야!ID : 7EcYgZom0근데, 도쿄의 백성들은 언제 죽어?ID : RRsD + GHG0157명중 조선계가 있는거지..??ID : jfjI5dL60코리아 끔찍하네ID : bAo8C3zy0친구 아니었어ID : NWkoAeE70 이건 미국 이외에도 파급력이 있다당시 일본에 왔었던 외국인이 다 고소하면일본 사망 확정ID : wjMNGfwM0센카쿠 방어해준다거나 말했지만,이제와서 보니 다 거짓말인걸 이해하겠구나ID : OC02elYk0변호사는 한국인이나 중국인ID : JFEZF7SK0토모다치 사업이네 ㅋ한국인의 위안부 문제와 공동투쟁하면 어떨까?ID : bGYJ4v0b0얼마나 많은 피해?히로시마의 1억분의 1?ID : 6h7ooEb + 0한국전쟁에서도 저런 소리 했잖아역시 자력방어하는게 좋다ID : islLET / G0 애완견 아베 "너희들 일본 국민은 증세야 ㅋ"ID : kcvE4Fo701명이 34억엔?돈이 썩어나냐?ID : JrPlPvUr0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30만명 사망5000억엔/157X300000을 지불하라고 말해 봐라, 넷우익ID : Nzw9Ot + Q0원폭으로 먼저 죽인 일본인에게 배상한다면 OKID : r6JQ9Cig0어짜피 조선계 미국인 아냐?ID : hxIctyic0 죽어라 조선인ID : 80 / sXyvJ0한국계 변호사에게 바람든거지"일본에서 돈 따먹어야지 ㅋㅋ" 같은거야ID : LHTisqpu0당시 우익은 환호했었는데또 패배 ㅋㅋID : / OWDPVxe0넷우익이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언제나 세계가 움직인다ID : mx7c4LJ + 0불량 원전 강매한 미국의 책임ID : 2iQ5Fwgs0일본은 세계의 지갑ID : RiecvHgv0한국계가 주도니다ID : fJsgmOIu0조선계 미군ID : l7B + 4PDc050억엔도 비싼데, 50억달러?!ID : vop9NSM50이건 설사 아베가 엎드려서 지불하겠구나ID : bnld6Bkt0미군은 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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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대학교 강/간 몰카는 일본에선 애들 장난 수준
<슈퍼프리 사건>1982년 와세다대학에서 만들어진 친목 동아리,이 공인 서클은 와세다 뿐만 아니라 게이오, 메이지등 여러 명문생들도 참여한 서클하지만 실제 동아리의 목적은 친목을 위장한 집단 강간 동아리 였으며 피해자 수만 400명에 달한다고 밝혀졌다.슈퍼프리에는 '갤즈'라 불렸던 50여명의 여성멤버들도 있었는데 이들 역시 대학생들이다.이들은 남자직원들이 티켓 판매하는 것을 돕고 지인을 행사에 초대해슈퍼프리 간부에게 강간 대상으로 바치고 윤간의 과정을 돕는 역할을 했다.(갤즈 명단 중에는 연예계 인사나 현 아나운서도 포함되어 있다.ex 아나운서 타케무라 유우카, 후지무라 이세, 모델 히가시 사치코) 실제 언론에 실린 강간사진(사진속의 남자는 '사쿠라이 카츠노리' -와세다 대학 공학부 응용물리학과) 실제 홍보영상만 보면 건전한 학생들의 친목동아리 같지만(https://www.youtube.com/watch?v=MfcsX0zN0RI)현실은 개막장이였다. 슈퍼프리의 홍보물(맴버 모두가 명문대생임을 알 수 있다) 실제 밝혀진 슈퍼프리에서 윤간이 벌어지는 과정은 1. 게임을 하면서 벌칙으로 약을 탄 독한 술을 마시게 한다. 술을 거부하면 대신 약을 탄 주스를 준다.(술을 마시고 의식을 잃은 경우 3으로)↓2. 안심하고 마시는 주스에 분말로 한 수면제와 각종 약물이 혼합 되어있다.(여성멤버가 건내주기도 한다. 같은 여성이 주면 안심하고 마시게 되기 때문에)↓3. 약에 취하면 동성의 친구(여자) 가 휴게실로 가자며 밀실로 유인해 남자들에게 차례로 윤간 당한다.(자신을 행사에 데려온 친구가 강간 측의 협력자인 경우도 적지 않다. 여성멤버는 윤간 중에 사진,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한다.)↓4. 윤간이 끝난 뒤 여성멤버가 위로하면서 신고하면 다른사람에게 알려지게 되니 신고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신고를 방지하기 위해 사진, 동영상을 촬영해 둔다.) 이런 방식으로 당한 피해자만 400여명이 넘고, 자살한 피해자도 있었다. 하지만 2003년 만취상태로 윤간을 당한 여대생이 이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이 서클이 들어났고 일본사회를 충격으로 빠트렸다.(이후 일본 형법에서는 집단 성폭행을 처벌하는 조항이 추가되었고 2003년 7월 31일 약 1,000페이지 가량의 '제1차 보고서' 가 작성되었을 정도였다.) 이후 슈퍼프리는 없어지고 사건이 일단락 되는 줄 알았으나.... 2014년 메이지대 도쿄 여대생 집단 실신 사건이 발생하였다. 메이지대 동아리 학생들이 미성년자를 포함한 수십명의 여학생에게 회식자리에서 약을 탔으나,양 조절에 실패해 10명이 넘는 여학생들이 속옷차림으로 길가에 쓰러진 사건이 일어난 것 이는 과거 슈퍼프리의 방식과 동일하여 다시금 일본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더욱이 초기 경찰이 길거리에 여성들이 쓰러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범죄와 연관이 없다고 하여 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실제 메이지대는 슈퍼프리 동아리의 포함된 학교여서 아직까지도 이러한 문화가 이어져 왔는지 이야기가 나오는 중 P.S. 1.슈퍼프리 사건 당시 한 언론사가 고이즈미 총리(게이오대)도 재학시절 여후배를 강간한 전력이 있다고 보도하였고 고이즈미는 이를 부인하였다. P.S.2. 윤간사진에 나온 '카츠노리'는 원래 메이지 대학의 친목서클에도 참가하고 있었는데그곳에서 이미 윤간을 하고 있었다고 와다 신이치로(슈퍼프리의 리더)에게 슈퍼프리에서도 윤간을 하자고 제안했다.이것이 슈퍼프리 윤간의 시작이었다고 밝혔다. 사건이 알려지기 전에 탈퇴했기 때문에 체포를 면했다. P.S.3 이러한 사건이 밝혀지고 일본사회가 충격을 받았다는 증거로 기동전사 건담 SEED DESTINY에서키라 야마토의 신형 건담의 본래 이름은 '슈퍼 프리덤'이었으나이 사건의 동아리 이름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스트라이크 프리덤'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실제 자료들> 슈퍼프리 사건 당시 한국에서 보도된 기사(사진들이 충격적이다): http://ilyo.co.kr/?ac=print&entry_id=23877 2014년 도쿄 여대생 집단 실신 사건 보도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5&aid=0000668932 이 사건을 정리한 일본 홈페이지: http://www.geocities.ws/deeppinkpigment/ 이 사건이 등장하는 일본 번역도서: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中(우에노 치즈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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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일본의 전쟁사죄 발언 목록
1970 년대 1972 년 9 월 29 일 - 다나카 가쿠 에이 총리.
"일본 측은 과거에 일본이 전쟁을 통해 중국 국민에게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반성한다. 또한 일본
측은 중국 정부가 제기 한 '復交 삼 원칙 "을 충분히 이해하는 입장에 서서 국교 정상화의 실현을 도모한다는 견해를 재확인한다.
중국측은이를 환영 할 것이다." [1] 1980 년대 1982 년 8 월 24 일 - 스즈키 젠코 총리. "과거의 전쟁을 통해 심각한 손해를 끼친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있다"며 " '침략'이라는 비판도 있다는 것을 인식 할 필요가있다" [2] 1982 년 8 월 26 일 - 미야자와 기 이치 내각 관방 장관.
"한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은 과거 우리나라의 행위가 한국 ·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국민에게 다 대한 고통과 손해를 끼친
것을 깊이 자각하고 이런 일을 다시 반복 는 안된다는 반성과 결의에 서서 평화 국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일본은 한국은 쇼와
사십 년 한일 공동 성명서 속에서 "과거의 관계는 유감이며 깊이 반성하고있다 "라는 인식을 중국은 중일 공동 성명에서"과거 일본이
전쟁을 통해 중국 국민에게 중대한 손해를 준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반성한다 "고 인식 말했지만, 이것도 위의 우리나라의 반성과
결의를 확인했다 것이며, 현재에도이 인식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두 이러한 한일 공동 성명서 낮 공동 성명의 정신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 교과서 검정에 있어서도 당연히 존중되어야 것이지만 오늘날, 한국, 중국 등보다 이러한 점에 관한 우리나라 교과서
기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있다. 일본은, 아시아 이웃 나라와의 우호 친선을 추진함에있어 이러한 비판에 충분히 귀를 기울여 정부의
책임 시정한다. 셋, 따라서 향후 교과서 검정시에는 교과용 도서 검정 조사 심의회의 회의를 거쳐 검정 기준을 개정, 상기의
취지가 충분히 실현하도록 배려한다. 이미 검증이 이뤄졌다는 향후 신속하게 같은 취지가 실현되도록 조치하지만, 그 동안의 조치 로
문교부 장관이 소견을 밝히고, 상기 2의 취지를 교육의 장에서 충분히 반영시키고 자한다. 네, 일본은 앞으로도 있으며 국민과의
상호 이해 증진과 우호 협력의 발전에 노력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생각이다. " [3] 1984 년 9 월 6 일 - 쇼와 천황 . "금세기의 한시기에 양국 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 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며,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4] 1984 년 9 월 7 일 -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귀국과 귀 국민에 큰 어려움을 가져왔다" "깊은 유감의 뜻을 기억" [5] 1990 년대 1990 년 4 월 18 일 - 나카야마 타로 외무 대신.
"자신의 의사가없이 당시 일본 정부의 의사에 의해 사할린에 강제 이주를 당하고 취업당한 분들이 전쟁의 종결과 함께 옛 조국에
돌아갈 않고 그대로 현지에 머물러 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하나의 비극은 참이 분들에 대해서 일본도 진심으로 미안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6] 1990 년 5 월 24 일 - 천황 . "우리나라에서 가져온이 불행한시기에 귀국 사람들이 맛보 인 고통을 생각 나는痛惜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7] 1990 년 5 월 25 일 - 아마노 토 시키 총리. "나는 대통령 각하를 모신 이번 기회에 과거 한때 한반도 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경험 한 것에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고 솔직하게 사죄의 마음을 말씀 드려 고 생각합니다. " [8] 1992 년 1 월 16 일 - 미야자와 기 이치 총리.
"우리 일본 국민은 무엇보다도 과거 한때 귀국 국민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경험 한 사실을 상기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해야합니다. 나는 총리로 다시 귀국 국민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말씀 드려 싶습니다. " [9] 1992 년 1 월 17 일 - 미야자와 기 이치 총리.
"우리나라와 귀국과의 관계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수천 년에 걸친 교류 속에서 역사의 한시기에 일본이 가해자이며, 귀국가 그
피해자 였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는 그동안 한반도 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경험 한 것에 대해 여기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반성의 뜻과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최근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 이 거론되고 있지만, 나는 이런 것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며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10] 1992 년 7 월 6 일 - 가토 고이치 관방 장관.
"정부는 국적, 출신지 여하를 막론하고 이른바 종군 위안부로 형언 할 수 싱크를 깔보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충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드린다. 또한이 같은 실수를 결코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깊은 반성과 결의 아래에 서서 평화 국가로서의 입장을 견지
함과 동시에 미래를 향해 새로운 한일 관계 및 기타 아시아 국가, 지역과의 관계를 구축 하고자 노력하고 싶다. " [11] 1993 년 8 월 4 일 - 고노 요헤이 관방 장관.
"어쨌든도 본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게 손상시킨 문제이다. 정부는이 기회에 다시 한번 그
출신지의 여하를 불문하고 이른바 종군 위안부로서 수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받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드린다. "( 위안부 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 관방 장관 담화 이른바 고노 담화) [12] [13] 1993 년 8 월 23 일 - 호소카와 모리 히로 총리.
"그 때 마흔 여덟 년을 거쳐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번영과 평화를 누리는 나라가 될 수있었습니다. 그것은 앞의 대전에서
たとい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며, 선배 세대 여러분의 공적의 선물 이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이 기회에
세계를 향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결의를 명확히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이 자리를 빌어 과거 일본의 침략
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가져온 것을 재차 깊은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申し述べる" [14] 1993 년 9 월 24 일 - 호소카와 모리 히로 총리.
"내가 침략 전쟁 침략 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은 과거 우리나라의 행위가 많은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가져
왔다고 동일한 인식을 솔직하게 말한 것 것이어서 다시 한번 깊은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명 한 것이 있습니다. " [15] 1994 년 8 월 31 일 - 무라야마 도미 이치 총리.
"일본이 과거의 한시기에 행한 행위는 국민에게 많은 희생을 초래했을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이웃 나라 등의 사람들에게 지금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습니다. 나는 일본의 침략 행위 과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참을 고통과 슬픔을 가져온 데
대해 깊은 반성의 마음에 서서 부전의 결의에 따라 세계 평화의 창조를 향해 힘을 다할 수 앞으로 일본이 걸어 가야 할 진로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의 역사를 직시해야합니다. 일본 국민과 근린 국민이 손 잡고 아시아 태평양 미래를
열려면 서로의 아픔을 극복 해 구축되는 상호 이해와 상호 신뢰라는 부동의 토대가 필수적입니다 ...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게 손상시킨 문제이며, 나는이 기회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깊은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드리고자합니다.
일본은이 같은 문제를 포함하여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고 제대로이를 후세에 전하는 동시에 관계 제국 등과의 상호 이해를 더욱 증진에
노력하는 것이 일본의 사죄와 반성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본 계획은 이런 기분을 감안한 것입니다. " [16] 1995 년 6 월 9 일 - 중의원 결의. "또한 세계 근대사의 수많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 행위에 마음을 기울이고 일본이 과거에 행한 이러한 행위 및 기타 국가 특히 아시아 제 국민에게 준 고통을 인식하고 깊은 반성의 뜻을 표명 한다. "(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에 대한 결의를 새롭게하는 결의 이른바 전후 50 년 중의원 결의) [17] 1995 년 7 월 - 무라야마 도미 이치 총리.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도 그 중 하나입니다.이 문제는 구 일본군이 관여하고 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게 손상시킨 것이며,
도저히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종군 위안부로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받은 모든 분들에게 깊이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 [18] 1995 년 8 월 15 일 - 무라야마 도미 이치 총리.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시기 국책을 잘못 전쟁의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리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나는 미래에 실수가 적지 し 국수하지만 그러므로 의심
위해도없는이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재차 통절 한 반성의 뜻을 진심으로 사과 의 마음을 표명하며,이 역사가
가져온 내외 모든 희생자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바칩니다. 패전의 날로부터 50 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나라는 깊은 반성에 서서
독선적 인 내셔널리즘을 배제하고 책임있는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 협조를 촉진하고이를 통해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와를 押し?め
나가야합니다. 동시에 일본은 유일한 피폭 국으로서 경험을 바탕으로 핵무기의 궁극적 인 폐기를 목표로 핵 비확산 체제의 강화 등
국제적인 군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있습니다. 이것 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속죄가되어, 희생 마라 한 분들의
영을 진압 까닭이되면, 나는 믿습니다. "( 무라야마 총리 담화 '전후 50 주년의 종전 기념일에 즈음 "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 [19] 1996 년 6 월 23 일 -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예를 들어 창씨 개명 등 수 우리가 전혀 학교 교육에서 알 수 없었던 것이 었으며, 그러한 것이 얼마나 많은 나라를 분들의
마음을 아프게했는지는 상상에 너무있는 것이 있습니다 ... 또한 지금 종군 위안부 문제에 언급했지만,이 문제만큼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손상시킨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말을 말씀 드리고 생각합니다. " [20] 1996 년 10 월 8 일 - 천황. "한때 일본이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초래 한 시대가있었습니다. 그 것에 대한 슬픔은 항상 내 기억에 세울 수 있습니다." [21] 1997 년 8 월 28 일 -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나는 우리나라가 역사의 교훈을 바로"전 사건을 잊지 않고 누룩의 계명한다 "는 관점이 널리 국민에 정착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도 재작년 무라야마 전 총리가 발표 한 총리 담화, 즉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했다"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재차 통절 한 반성의 뜻을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 "그러자 생각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총리 담화를 결정했을 때, 나도 내각의 일원이었습니다. 일본의 일부 중국측의 감정을 자극 할 수도있는 발언이 있었다고해도 일본이라는 나라가 미래 군사 대국이되지 않고 평화 국가로서의 길을 계속 결의 인 것은 우리 일본인 에게는 자명 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명백한 일이 있어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불신이 생겨 않도록 노력은 끊임 아니라 계속해야합니다.
작년 이래 우리나라 안보의 근간 인 미일 안전 보장 체제에 대해서도 중국 측에서 다양한 형태로 견해가 표명되고있는 것입니다
만,이 문제 역시 대화를 거듭하여 중국 측의 우려를 풀어가는 노력이 필수적이며 있으며, 현재 추진중인 「지침」검토 작업도 계속
투명성을 잊지 않도록 해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일 안보 공동 선언에서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듯이, 미일 양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에있어 중국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 협회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심화시켜 나가야합니다. " [22] 1997 년 9 월 6 일 -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일본 정부는 제 2 차 세계 대전 패전의 날로부터 50 주년 인 1995 년 총리 담화의 형태를 취하고있어서, 우리나라로 과거
일본의 행위가 중국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참을 슬픔과 고통을 주었고, 이에 대해 깊은 반성의 마음에 서서 사과를 드리며,
평화를 위해 힘을 다하려고 결의를 발표했다. 나 자신이 그 담론의 생성에 관여 각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태도, 입장임을 반복 드리고자합니다. 그리고이 것은 정상 간 논의 중에서도 중국 측에 나도 솔직히 말씀 드려 리펑 총리도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 그렇게 말해 주셨습니다. " [23] 1998 년 7 월 15 일 -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일본 정부는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도의적 인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적인 속죄의 마음을 표현하기위한 사업을 실시하고있는 '여성을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과 협력 하면서이 문제에 성실하게 대응 해오고 있습니다.
나는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아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게 손상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수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 을지지 한 모든 위안부 분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품고
있는지 귀 총리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무게에서도 미래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도 도망 여유가 가지 않습니다. 일본은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고 제대로이를 후세에 전하며, 2000 년에는 교류 400 주년을 맞이 귀국과의 우호 관계를 더욱 증진하기로
다짐 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24] 1998 년 10 월 8 일 - 오부치 게이조 총리.
"두 정상은 한일 양국이 21 세기의 확고한 선린 우호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반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오부치 총리 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 관계를 회고
일본이 과거 한때 한국 국민에게 식민지 지배에 의해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 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 우호 협력에 기초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임을 표명했다. "( 한일 공동 선언 ) [25] 1998 년 11 월 26 일 - 오부치 게이조 총리.
"양측은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바르게 인식 할 중일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기초라고 생각한다. 일본 측은 1972 년 중일
공동 성명과 1995 년 8 월 15 일의 내각 총리 담화를 준수하고 과거 한때 중국의 침략으로 중국 국민들에게 엄청난 재앙과
손해를 끼친 책임을 통감하고 이에 대해 깊은 반성을 표명했다. 중국측은 일본 측이 역사의 교훈 배우고 평화 발전의 길을
견지하고자한다. 양측은이 기초 위에 오랜 우호 관계를 발전시킨다. " [26] 2000 년대 2000 년 8 월 17 일 - 야마자키隆一? 외무 보도관.
"본 문서에서는 일본이 제 2 차 대전 중의 행위에 대해 중국에 대해 한 번도 사과를하지라고 쓰여져 있지만, 실제로 일본은 전쟁
중 행위에 대해 반복 사죄를 표명 해오고 있다. 특히, 1995 년 8 월 무라야마 총리 (당시)이 공식 담화를 발표하고 일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며"통절 한 반성의 뜻
'과'진심으로 사죄의 마음 "을 표명하며 1998 년 오부치 총리 (당시)이 일본을 공식 방문한 장쩌민 주석에 대해 무라야마
담화를 재확인하고있다. " [27] 2000 년 8 월 30 일 - 고노 요헤이 외무 장관.
"나는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전후 50 주년에 각의 결정을 거쳐 발표되었다 무라야마 총리 담화에서 일본의 생각은 분명하다
생각합니다. 나도 각료의 한 사람으로서이 담화의 생성에 관여 되었지만,이 후의 역대 내각에 인계되어 지금은 많은 일본인의
상식이며, 공통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8] 2001 년 4 월 3 일 - 후쿠다 야스오 (福田康夫) 내각 관방 장관.
"덧붙여서 일본 정부의 역사에 관한 기본 인식은 전후 50 주년의 1995 년 8 월 15 일에 발표되었다 총리 담화에있는대로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와 침략 에 의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통절 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이 후의
역대 내각에 인계되어 왔으며, 현 내각에서도이 점에 어떠한 변화 없다. " [29] 2001 년 9 월 8 일 - 다나카 마키코 외무 장관.
"일본은 앞의 대전에서 많은 국가의 사람들에게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것을 결코 잊지는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귀중한
생명을 잃거나 상처를했습니다 했다. 또한 전 전쟁 포로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 들여 1995 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의 통절 한 반성의 뜻과 마음에서 사죄의 마음을 여기에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 [30] 2001 년 10 월 15 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한국 국민에게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것에 진심으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가졌다." [31] 2001 년 -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아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게 손상 문제였습니다. 나는 일본의 총리로
다시 이른바 종군 위안부로 수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받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무게에서도 미래에 대한 책임도 도망 것 에는 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로서는, 도의적 인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바탕으로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고 제대로이를 후세에 전하는 동시에 알려져없는 것 폭력 등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관한 여러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임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 [32] 2002 년 9 월 17 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일본 측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의해 조선의 사람들에게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 들여 통절 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마음을 표명했다." [33] 2003 년 8 월 15 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또한 앞의 대전에서 일본은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국민을 대표하여 여기에 깊은 반성의 뜻을 새롭게하고 희생 이 분들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 [34] 2005 년 4 월 22 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일본은 일찍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 들여 통절 더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마음을 항상 마음에 새겨하면서 우리나라는 제 2 차 세계 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 대국이 되어도 군사 대국이되지 않고 어떠한 문제도 무력이 아닌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 " [35] 2005 년 8 월 15 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또한 우리나라는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 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 들여 다시 한번 통절 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하는 동시에 앞의 대전에서 내외의 모든
희생자에 삼가 애도의 뜻을 나타냅니다. ...... 우리나라의 전후 역사는 진정으로 전쟁에 대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준 평화의
육십 년이고 있습니다. ...... 특히 일의 대수 사이에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국과는 함께 손을 잡고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고 발전을 목표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아시아 각국과의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미래 지향적 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36] 2007 년 4 월 28 일 - 아베 신조 총리.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제 의회에서도 이야기를했다. 자신은 신산을 핥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인간으로서 또 총리로서 진심으로
동정하고, 그러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 대해 미안한 기분으로 가득하다 20 세기는 인권 침해가 많았던 세기이며, 21
세기가 인권 침해가없는 훌륭한 세기가되도록 일본으로서도 공헌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얘기를 오늘 부시
대통령도 말했다. "(미일 정상 회담 후 기자 회견에서) [37] 2010 년 8 월 10 일 - 간 나오토 총리.
"저는 역사에 대해 성실하게 마주 싶습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겸허 함을 갖고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게 솔직 싶습니다. 고통을주고 쪽은 잊지 쉽고, 주어진 측은이를 쉽게 잊을 수없는 것입니다.이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 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여기에 다시 한번 통절 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마음 를 표명합니다. " [38] : [ 도움말 ] ^ " 일본 정부와 중화 인민 공화국 정부의 공동 성명 "외무성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다하라, 소이치로 (2000). "교과서 문제로 기자 회견"일본의 전쟁. 도쿄 : 쇼우 갓칸. pp. 161. ^ " "역사 교과서 '에 관한 담론 "외무성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대한민국 전두환 대통령 환영 궁중 만찬의 말씀 "나카노 문고 2006 년 4 월 5 일보기. ^ 다하라, 소이치로 (2000). "환영 오찬"일본의 전쟁. 도쿄 : 쇼우 갓칸. pp. 161. ^ " 제 118 회 국회 중의원 외무위원회 회의록 3 호 헤이 세이 02 년 04 월 18 일 "국회 회의록 검색 시스템.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궁중 만찬에서 노태우 대통령 환영 칙어 "나카노 문고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 각하 내외분 환영 만찬에서 인사말 "데이터베이스"세계와 일본」(아마노 연설 집 pp. 326-328).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 각하 내외분 주최 만찬 연설 "데이터베이스"세계와 일본」(미야자와 연설 집 pp. 89-91).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미야자와 기 이치 총리의 대한민국 방문에서 정책 연설 (아시아 속 세계 속의 한일 관계) "데이터베이스"세계와 일본」(외교 청서 36 호, 383-388).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한반도 출신의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발표 "외무성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위안부 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담화 "외무성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이시하라 노부오 내각 관방 부장관은 고노 담화 직후 "한국과의 외교에서의 거래의 결과"라고 주장 - 공식 기록은 없음. ^ " 제 127 회 국회 (특별위원회) 호소카와護熙총리 소신 표명 연설 "데이터베이스"세계와 일본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제 128 회 국회 "국회 회의록 검색 시스템.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평화 우호 교류 계획 '에 관한 담론 "외무성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에 대한 결의를 새롭게하는 결의 "데이터베이스"세계와 일본」(일중 관계 기본 자료집 p. 817).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여성을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 '출범 인사 "외무성 홈페이지 2008 년 5 월 14 일 볼. ^ " "전후 50 주년의 종전 기념일에 즈음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 "외무성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한일 공동 기자 회견 (하시모토 총리 · 김영삼 대통령 공동 기자 회견) "수상 관저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궁중 만찬에서今上천황의 김대중 대통령 환영 칙어 "나카노 문고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새로운 대중 외교 목표로 - 요미우리 국제 경제 간담회에서 연설 - "수상 관저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총리 내외 기자 회견 기록 "외무성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요리사 총리 앞으로 서한 요지 "외무성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오부치 게이조 총리, 한일 공동 선언, 21 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외무성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평화와 발전을위한 우호 협력 파트너십 구축에 관한 중일 공동 선언 "외무성 홈페이지 2006 년 4 월 5 일보기. ^ " 외무 대변인 담화 2000 년 8 월 7 일자 뉴욕 타임즈 기사에 대한 반론 기사 " 외무성 홈페이지 (헤세이 12 년 8 월 17 일 뉴욕 타임스) . 2006 년 4 월 5 일 보기. ^ " 외무 장관 연설 진정한 우호 협력 파트너십을 추구 " 외무성 홈페이지 . 2006 년 4 월 5 일 보기. ^ " 2002 년부터 사용되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대해 " 외무성 홈페이지 . 2006 년 4 월 5 일 보기. ^ "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서명 50 주년 기념식에서 연설 " 외무성 홈페이지 . 2006 년 4 월 5 일 보기. ^ " 미래 지향적 인 연계 확인을 한일 정상이 회담 " Kyodo news . 2006 년 4 월 5 일 보기. ^ " 위안부 분들에 대한 고이즈미 총리의 편지 " 외무성 홈페이지 . 2006 년 4 월 5 일 보기. ^ " 북일 평양 선언 " 외무성 홈페이지 . 2006 년 4 월 5 일 보기. ^ " 전국 전몰자 추도식 총리式? " 수상 관저 홈페이지 . 2006 년 4 월 5 일 보기. ^ " 아시아 - 아프리카 정상 회의에서 연설 " 외무성 홈페이지 . 2006 년 4 월 5 일 보기. ^ " 총리 담화 " 수상 관저 홈페이지 . 2006 년 4 월 5 일 보기. ^ "2007 년 4 월 27 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아베 총리와 부시 대통령의 공동 프레스 행사 (개요)" (보도 자료), 수상 관저 ( 2007 년 4 월 27 일 ) 2014 년 9 월 19 일 검색. ^ " 총리 담화 " 수상 관저 홈페이지 . 2010 년 8 월 10 일 볼. 관련 항목 워 금테 · 정보 프로그램 태평양 전쟁 역사 眞相 살 것이다 일본의 전쟁 사과 일본의 전쟁 범죄 일본의 전후 보상 조약 목록 대동아 전쟁 A 급 전범 전쟁 범죄 극동 국제 군사 재판 역사 교과서 문제 태평양 전쟁 남경 사건 남경 대학살 논쟁 위안부 외부 링크 앞의 대전을 둘러싼 제 문제 (외무성 정리) 위키백과 번역돌림. http://translate.google.com/translate?hl=ko&sl=auto&tl=ko&u=https%3A%2F%2Fja.wikipedia.org%2Fwiki%2F%25E6%2597%25A5%25E6%259C%25AC%25E3%2581%25AE%25E6%2588%25A6%25E4%25BA%2589%25E8%25AC%259D%25E7%25BD%25AA%25E7%2599%25BA%25E8%25A8%2580%25E4%25B8%2580%25E8%25A6%25A7 위 내용으로 네이놈에 검색해보면 사실임을 알 수 있음.(뉴스 검색 후 오래된 순으로 보기 클릭) 음... 일단 사과는 쭉했다고 함.
황제네로작성일
2015-06-2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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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오키나와, 선택하지 못한 삶의 비극
출처- 오늘의 유머 V12님의 게시물. 본 내용은 XSFM의 팟 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106b. ハイサイおじさん외신분석 단어만 다른 우리 이야기; 일본 밖의 일본- 오키나와 간략사를 요약 정리한 내용이며 해당 팟캐스트는 http://xsfm.co.kr/wp/?p=188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출연. UMC/UW, 이용, 오키나와환타(=홍콩환타=인도환타) 너 시간 있어? 오키, 나와. pc방가게 0. 오키나와의 음식 현재는 일본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먼 오키나와. 일본을 지배하는 불교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에 이 곳은 돼지고기가 발달하였다. 이는 오랜시간 일본이 아니었던 오키나와를 대변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오키나와 열도의 간략한 지도(구글 지도를 이용하여 만들어 보았습니다.) 1. 오키나와의 위치 일본 본토의 최남단인 가고시마 530km, 타이완 본토까지는 111km. 지리적으로 보면 대만과 훨씬 가까운 섬인 오키나와. 때문에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서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곤 한다. 이 애매한 위치 덕분에 많은 나라의 오지랖의 범위안에 있다. 1-1. 우리나라와 오키나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홍길동의 율도국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오키나와의 예전 이름이 류쿠이기 때문일까. 또한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패한 시기와 쿠스코(성城)이 들어선 시기가 묘하게 맞아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나라 삼별초가 이곳에서 (어떤 식으로든)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는 이 주장이 발전하여 오키나와가 우리의 동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승만 대통령(흠좀무).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와 함께 오키나와가 우리나라의 영토라고 주장하였고, 그게 안되자 오키나와 독립 촉구 성명을 3번이나 발표하기도 하였다고. 1-2. 중국과 오키나와 조어도(=센카쿠 열도, 다오위다오)에 대한 영위권을 주장하는 중국은 조어도가 속해있는 오키나와 전체가 중국의 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암초 하나에 140만 명의 일본인이 사는 섬을 자기꺼라고 말하는 대륙의 스케일이란. 그 주장의 바탕은 중국의 푸젠성과 오키나와의 인종이 같다는 것. 1-3. 일본과 오키나와 하지만 상식적으로 오키나와는 현재 일본에 속해있는 곳이다. 3만 5천 년 전의 인골이 오키나와 남부 이시가키 섬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는 일본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골로 일본의 사학계와 고고학계가 큰 의미를 두고 있다.(일본에서는 3만 년 이상의 유물이 발견된 적이 없다. 후지모라 신이치라는 걸출한 사기꾼을 배출된 배경이기도 하다.1) 2. 오키나와의 역사 2-1. 일본 편입 전의 역사 오키나와가 부족 국가의 구색이라고 갖춘 것은 12세기 무렵으로, 삼산(오키나와의 삼국시대)이라고 해서 오키나와 본토가 3개로 쪼개져 있었다. 1429년 삼산이 통합되어 류쿠 왕국이 건립된다. 이 삼산은 각각 북산, 중산, 남산.이면 슬램덩크의 북산고가 오키나와의 북산고라고 하더라는 개드립이 존재했다고 카더라. 이 류쿠국은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율도국으로 오해되기도 하며, 1609년 사스마 번에 의해서 점령되기 전까지 200여 년간 중국, 조선, 일본, 인도네시아까지 커버하는 중계무역으로 번영을 누린다. 이 때 일본은 전국시대로 지들끼리 싸우기 바빳고, 일본 남부는 왜구로 변해서(왜말리아) 조선, 명나라를 털기에 바빴다. 때문에 명나라는 일본과의 조공무역을 막거나 풀렸을 때도 10년 1사였다. (오키나와는 1년 2사, 우리나라의 경우, 1년 3~4번) 그래서 일본은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조선이나 오키나와를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의 교역이 막힌 단점은 역으로 서양의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게 하는 장점이 되기도 하였다. 여튼 일본의 전국시대가 마무리되고 마무리 전쟁으로 임진왜란을 기획하던 도요토미 히데오시는 출병 전 류쿠에 사람을 보내어 쌀과 군대를 지원하라고 압박했다. 그러자 류쿠는 명나라에 고자질. 조선에도 고자질. 일본은 임진왜란의 패배로 고자짓이 되어버렸다. 일본이 쌀과 군대를 보내달라고 하는게 무슨 뜻일까요?(순진한 표정) 일본은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 파와 이시다 미츠나리 파의 세키가하라 전투로 정리전쟁을 하고 이 전투는 이에야스파의 승리로 하루만에 끝이 난다. 이 싸움에서 마츠나리 파에 가담했던 사쓰마 번은 비록 패배하여 영지는 몰수 당했지만, 굉장히 잘 싸워서 병력은 보존받는다. 이 상황을 요약하자면 먹을 것은 없는데 거친 아저씨들만 드글드글한 상황. 그런데 고개를 드니 어라? 저번에 우릴 고자질 한 그놈이 보인다. 거친 아저씨들은 530km를 배를 타고 가서 왕국하나를 털어버린다. 2-2. 일본 편입 - 비극의 시작. 사쓰마 번이 오키나와를 털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조공무역의 권리를 강탈하는 것이다. 사쓰마 번은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나서도 왕과 왕실을 내버려둔다. 중국에게 오키나와가 털린 사실을 들키면 오키나와가 1년에 두 번 조공무역을 했던 권리를 박탈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위에서 언급했지만 일본은 기껏해야 10년 1사였고, 오키나와는 1년 2사였다.) 때문에 조선과 중국이 모르도록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로써 오키나와 비극의 고리가 완성된다. 일본 정부는 사쓰마 번을 삥뜯고, 사쓰마 번은 오키나와 왕을 삥뜨고, 오키나와 왕은 백성과 특히 본섬이 아닌 주변 섬을 삥뜯는. 수탈의 제곱의 제곱의 제곱의 제곱. 사쓰마 번은 용이한 점령을 위하여 오키나와 왕실 일부 경비대만을 제외하고 모든 무기를 빼앗는다. 게다가 오키나와는 철광산이 없기 때문에 수입이 아니고선 철 무기를 만들지도 못한다. 때문에 오키나와에서는 맨몸 무술인 고유 가라데가 시작한다.2 또한, 최소의 철을 이용한 무기인 쌍절곤이 발달한다. 두 번째 이유는 사탕수수의 독점을 위해서이다. 과거 동아시아에서 사탕수수가 났던 유일한 지역이 바로 오키나와이다. 사쓰마 번은 이걸 털어서 독점하여 엄청난 이득을 취한다. 음식 사학자들이 이야기하길 사쓰마 번이 오키나와를 점령하기 전까지 일본의 음식에 단맛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오키나와는 지형이 화산섬이기 때문에 물을 저장할 수가 없기 때문에 논농사를 할 수가 없다. 이를 이용하여 사쓰마 번은 오키나와에서 사탕수수만을 재배하게 하여 헐값을 가져가고, 쌀은 오키나와에 비싸게 파는 식으로 이익을 취했다. 전형적인 플랜테이션. 이렇게 사쓰마 번에 탈탈 털리다보니 오키나와 왕국은 내부차별을 시작한다. 오키나와 본섬에는 안 걷는 인두세를 만들어 주변 열도 사람에게 징수하고, 노동력의 등급을 4개로 나누어 징수한다. 문제는 아이와 노인같은 노동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인두세를 걷었다는 것이다. 사실 오키나와는 상업거으로는 몰라도 농업적으로는 좋지 않은 지역이다. 미나코 섬 같은 경우에는 지대가 낮기 때문에 쓰나미로 인하여 섬 전체가 쓸려나가 전멸한 기록이 있을 정도.3 이런 상황에서 인두세까지 걷으니 상황은 악화일로일 수 밖에. 이들은 살기 위해서 죽기 시작한다. 즉, 인위적인 인구조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미야코 섬의 예: 1.마을 촌주가 사람을 모은 후, 시간을 놓친 사람을 죽인다. 2. 마을의 임산부를 모두 모은 후 절벽에서 떨어트려 죽인다. 애가 태어나면 세금을 더 내야하기 때문에. 이렇게 300년을 털리고, 이 과정에서 사쓰마 번은 엄청난 부를 이룩한다. 이 부를 바탕으로 에도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유신의 기치를 세우게 되는 것.4 어찌보면 메이지 유신은 오키나와의 사탕수수가 만들었다고 해도 될 정도. 이런 가혹한 통치하에서 발전되는 오키나와의 음식문화도 씁쓸한 맛을 더하게 된다. 먼저 사탕수수를 끓여서 굳힌 덩어리인 흑당. 오키나와 북부의 아마미 열도는 사쓰마 번의 직영지로써 사탕수수 전매제를 실시했는데 오키나와 사람이 사탕수수에 손을 대면 손목을 잘랐다. 이들에게 설탕이라는 것은 끔찍한 기억일 수밖에 없지만 현재는 오키나와의 가장 유명한 특산품이 되었다. 두 번째. 해초요리. 배를 타고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배를 다 압수한다. 섬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잡아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섬사람인데! 때문에 배를 타지 않고도 채집할 수 있는 해초, 뻘의 문어, 맹그로브 숲의 게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세 번째. 고구마 요리. 구황작물이다. (나중 일이지만 미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스팸을 넣어 만든 요리가 발전했다고 한다. 의정부의 부대찌개처럼) 일본 해군의 뿌리인 사쓰마 번의 조선 통치가 그렇게 가혹했던 이유는 오키나와에서 트레이닝이 되었기 떄문이 아닐까. 2-2. 류큐왕국의 멸망. 일본으로의 완전 편입. 메이지 유신의 폐번치현(번을 폐하고 현으로 치환함, 지방정부를 중앙정부가 통치하도록 부와 현으로 행정구역을 나눔)으로 인하여 오키나와는 완전히 일본의 영토에 속하게 된다. 1872년, 오키나와는 명목적인 독립 상태마저도 박탈당하고 오키나와의 마지막 왕은 일본에 끌려가서 자작의 작위를 받는다. 이를 류쿠처분이라고 부르는데 이 당시 기록을 보면 30명의 수행원, 순사 160명, 보명 400명이 가서 나라의 문을 닫는다. (이후 조선 병합은 38년 만에 이루어진다.) 이 당시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만 아에야마 열도와 미야코 열도 등 주변 섬에서는 이에 대해서 묘하게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최소한 인두세는 없어질테니까. 하지만 인두세는 20년 정도 존속되었다고 한다. 2-3. 태평양 전쟁 당시의 오키나와 승승장구를 하던 일본은 미국의 참전 이후에 점차 밀리게 된다. 44년, 연합국측에서는 일본 본토에 대한 상륙 작전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일본은 이에 따라 본토 방어 작전을 수립하게 된다. 이 때 일본에서 세웠던 방법은 본토에 점령하기 전에 섬을 요새화하고, 우리의 피해는 생각하지 않고 적을 최대한 소모하게 하는 것이었다. 당시 연합군은 승기를 잡은 상태였고, 방어 작전 전의 일본은 착검 돌격, 일명 반자이 어택이라는 전략적으로는 아무 쓸모없는 방식을 채택중이었기 때문에 오키나와에서 태풍길을 따라 바로 본토에 상륙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전쟁의 핵심에 오키나와가 위치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오키나와로 모든 병력이 집중하게 되어 오키나와 주변섬에서는 전쟁이 일찍 끝나게 된다. 문제는 오키나와 본섬. 44년 8월에 일본군은 오키나와 섬 전체에 수천 개 요새를 파고, 해군 사령부 같은 경우도 텔레토비 집같이? 호빗 집같은 모양으로 언덕에 구멍을 뚫고 참호를 만들었다.5 연합군은 오키나와 남부에 가네다라는 곳으로 상륙하여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진하기 시작했다. 2300개의 요새를 모두 깨야만 전진이 가능한 것이다. 미국는 전진을 매일 50m씩 밖에 할 수 없었다. 3개월 동안에 치뤄진 이 전투에서 271만 6000발의 포탄(총알 아님)이 떨어졌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 전투를 '철의 폭풍'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해안선이 바뀐 지역이 10km에 달한다고. 전쟁이 최종 결과로 일본쪽이 18만 명이 죽고(군인은 11만 명이었다.), 미군은 1만 2000명이 죽는다. 이 전투가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투이기도 하고, 각 국의 최고 사령관이 죽는다. 미국쪽은 중장이 시찰나갔다가 포격으로 죽고, 일본 최고 사령관은 자결한다. 미국의 가장 높은 계급이 죽은 전투이기도 하다. 이용 상임수석은 퍼시픽이라는 미드를 추천했다. 문제는 군인간의 공방이 아닌 민간인들의 희생이었다. 전투 전(前)에 일본군은 전투 전부터 불령선인을 솎아낸다는 명목하에 일본말을 못하는 사람을 미국의 스파이로 몰아서 죽였다. 이때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일본어 못하는 조선인들이었다. 이오지마 섬의 예: 성실하고 착한 조선인이 살고 있었다. 이웃사람이 일본군인이 온다고 하여 담을 넘어 도망가려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이 예가 의미하는 것은 이 과정에서 어떤 재판 과정이나 심문도 없이 조선인이기 때문에 바로 죽였다는 것이다. 또한, 유언비어도 퍼뜨렸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미군에게 잡히면 남자는 탱크에 깔아 죽이고 여자는 집단 강간 후에 찢어서 죽인다는 유언비어였다. 일본군이 포로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 말이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유언비어의 발전형이 바로 옥쇄(玉碎)정책이다. 옥처럼 부숴저라는 뜻으로 적에게 항복하는 치욕을 당하느니 아름답게 자결하라는 말하자면 할복문화의 집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예1: 종군기자 출신의 어머니가 주사기에 독을 넣어 아이들에게 주입하여 죽이고, 자신도 죽음 예2: 아버지가 낫을 들어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죽임. 예3: 미군을 피해 숨어있는 상황에서 애가 울기 시작하자, 일본군이 이 애로 인하여 다 죽게 생겼다고 함. 아이의 아버지는 애기 울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았고, 아이는 더 심하게 울고, 아버지는 더 세게 입을 틀어막다가 결국 아이는 질식사하게 되고, 아버지는 미쳐버림. 중요한 것은 일본 종특이라는 조사가 이 오키나와 섬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 집단 자결 역시 강요가 아니라 의기로운 자결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오키나와 전투에서 죽은 사람이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1,000명이다. 더 기가 막힌 점은 새역모(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6)에서는 이를 애국적인 행동으로 포장한고 있다는 것이다. 2-4. 2차 세계대전 이후 오키나와 세계 제2차 대전, 태평양 전쟁에서 오키나와의 관점은 일본군과 같은 편의 가해자의 관점이 아닌 피해자의 관점이다. 때문에 오키나와 전투의 기록을 가진 평화기념관에는 일본군의 만행이 소상하게 모아져 있다. 그중에서 오키나와 환타님이 인상깊게 봤다는 영상의 내용은 이렇다. 오키나와는 해안에 절벽이 있기 때문에 자살을 대부분 절벽에서 투신으로 한다고 한다. 그 영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해안 절벽가에 자살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를 하고 있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사람 씩 절벽에서 투신하는데 절벽으로 가는 과정에서 그 어떤 망설임도 보이지 않고 토끼처럼 성큼성큼 가서 뛰어내린다고 한다. 밥을 먹고, 빨래를 하듯 자살이 일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든 삶이어도 삶의 마지막 순간인데도 그 어떤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삶이 얼마나 지옥같은 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오키나와환타님은 생명체로서의 마지막 부분까지 무시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고 표현했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결국 일본의 의도대로 전선을 3개월이나 끌었다. 이 전투로 인하여 일본군은 연합군이 질려서 더이상 전투를 하지 않도록 하는 목적을 이룬 것이다. 질린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본토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오키나와 전투처럼 하루에 50m씩 전진하게 되면 30~50만의 미군의 희생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미군이 원폭 투하를 결정한 한 요소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협상에서 오키나와는 미국에 넘어가게 되었다. 이 상황은 오키나와에게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들이 관련되어있지도 않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주민의 1/3이 죽었는데, 그 전투의 결과로 자신들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동아시아의 어떤 나라의 역사와 비슷하다.) 지들끼리 자신을 넘기고 넘겨받는 상황. 오키나와는 그래도 일본보다는 미국이 나을 것이라고 기대를 했지만 한국전쟁이 터지고 오키나와는 미군의 중요한 군사기지가 되어 예전과 똑같이 요새화되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오키나와는 동아시아의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하지만 이게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무슨 상관이야.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 전투가 끝나고 간신히 다시 개간한 밭을 다시 미군 기지로 넘겨야만 했다. 한국 전쟁 후 베트남 전쟁이 터지면서 오키나와는 더욱 미군의 군사기지화가 가속되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에 포격하던 b-52을 악마의 비행기라고 불렀고, 그 비행기가 날아오는 오키나와를 악마의 섬(악귀도惡鬼島7)라고 부르며 저주했다고 한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을 수 밖에. 베트남 전 당시 오키나와의 반전 구호는 "우리는 악마가 되고 싶지 않다." 였다고 한다. 출처- http://kcanari.egloos.com/4011043730 표지판 1972년 5월 15일, 오키나와는 독립되지 못하고 미국에서 일본으로 반환이 된다. 7월 30일, 하루아침에 자동차 통행이 좌측통행이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다. 오키나와의 730표지판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미국 통치에서 일본 통치로 완전히 변환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당시 협상 테이블에 미국과 일본 사람들은 있었지만 당사자인 오키나와 인들은 없었다. 일본의 통치를 다시 받게 된 오키나와는 다시 기대를 한다. 미군 기지 문제를 해결해주겠지? 하지만 이 역시 오키나와 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력으로 빼앗은 땅을 평화적으로 이양하는, 전 세계의 모범적인 사례를 남겼다. 이 수사에 오키나와 인들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고, 미군기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3. 오키나와인의 현재 오키나와 인들에게 물어봤다. 당신은 오키나와인인가 일본인인가. 오키나와인을 오키나와어로 하면 우치난츄라고 한다. 당신은 우치난츄인가 일본인인가. 일본이 오키나와에 2차 세계대전 당시 행한 폭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인이다. 28.8%. -> 자국 군인들에 의하여 학살당한 슬픔 일본인이면서 우치난츄다. 41.8% 우치난츄다 21.5% -> 침략자에 의하여 학살당한 분노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은 군인들에 의하여 학살당한 기억은 오키나와인들 의식 전체에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다. 오키나와 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어떤 군대도 자신을 지켜주진 않는다. 군대의 소속이 어디든 군대는 일본군이든, 미군이든 류쿠군이든 이들을 지켜주기보다는 수탈해왔다는 슬픈 역사를 대변하는 말이다. 이 트라우마는 쉽게 잊혀질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2010년에 1945년 오키나와 전투를 경험한 사람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40%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고 대답했다.8 헨자니 로꼬라는 할머니는 아직도 미군 전투기의 습격을 받는 꿈을 꾼다고 한다. 헨자니 로꼬의 예 : 방공호에서 숨어있는 상태였다. 미군은 방공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화염방사기를 사용했는데 다행히 반대쪽에 문이 있어서 4살배기 동생을 업고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동생의 손이 풀려서 스르륵 떨어져 잡을려고 했는데 결국 동생이 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 도망을 왔다. 그 뒤 엄마를 만났는데 동생의 피로 인하여 자신의 몸이 새빨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점은 이들에게 외상후 스트레스를 치료할 시간이 없었고,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 지도를 보면, 오키나와 안의 미군기지(빨간색)9 오키나와의 매우 많은 지역이 미군기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에 주둔한 미국 해병대의 거의 전부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다. 1950~60년 대 본토에서 일어난 미군기지 반대 운동으로 인하여 본토 내에 미군기지가 1/4까지 줄었는데 그 만큼 오키나와로 옮겨간 것이다. 섬 자체도 크지 않기 때문에 오키나와 어디든 비행기가 뜨면 그 소리가 전역에 다 들릴 정도이고, 미군의 비행기가 시도 때도 없이 이륙하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태에서 어떻게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잊을 수가 있을까. 끔찍했던 그 장면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재생되고 있는데. 자기 합리화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4. 선택하지 못한 삶의 비극 오키나와 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의 역사에 그들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은 때로는 임산부를 절벽에서 밀기도 하고,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죽이기도 하고, 일상적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리게도 하고, 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비극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여전히 미군 기지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역사를 보면 오키나와 인들이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해서 궁금함이 생길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고통에 저항하면서, 적응하면서 꿋꿋히 살아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THMf7GdhQE 하이사이 오지상ハイサイおじさん오키나와 어로 하이사이는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직역하자면 안녕하세요, 아저씨. 이 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라면 노래를 들을 3분 정도의 여유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노래는 키나 쇼오키치라는 오키나와 싱어송 라이터가 쓴 곡으로 들으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신나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오키나와 인들의 비극이 숨어 있다. 이 가수가 9살일 때, 옆집에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의 충격으로 미쳐버린 아줌마가 살고 있었다. 정신착란에 빠진 아줌마는 자신의 딸을 죽여 목을 잘라서 냄비에 요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장면을 본 아저씨도 미쳐버리고 말았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 미쳐버린 아저씨와 옆집에 살던 어린 키나 쇼오키치의 대화이다. 이 노래는 고시엔(일본 고교야구)에서 오키나와 출신의 고등학교가 경기할 때 응원곡으로 쓰인다고 한다. 비극 속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의 거의 모두는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106b.ハイサイおじさん 를 단순 요약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그 외에 참고한 곳은 엔하위키 미러의 '오키나와'항목입니다.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0/021015000200011150334041.html [본문으로]오키나와 환타님의 토막상식: 남방계는 옷을 가볍게 입기 때문에 타격계 무술이 발달하고, 북방계는 옷을 두텁게 입기 때문에 맞아도 안 아프고 집어 던질 수 있기 때문에 관절계 무술이 발달한다. [본문으로]오키나와는 독사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나코 섬은 뱀이 없기로 유명하다... 좋은 건가... [본문으로]메이지 유신은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이 주도한 일로, 조슈 번은 현대 일본의 육군 뿌리를, 사쓰마 번은 현대 일본의 해군 뿌리를 담당한다. 또한 조슈 파벌 대표는 현재 아베 신조이며 사쓰마 파벌의 대표 인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있다. [본문으로]전쟁 끝나고 이곳에서만 시신이 2400개가 나왔다고 한다. [본문으로]황당할 정도로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를 만드는 일본 우익 집단 [본문으로]악귀도라는 이름 자체는 삼국지 수서전에서도 나온다고 한다. 오키나와를 음독하면 악귀도 [본문으로]오키나와 대학 조사 [본문으로]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8/US_military_bases_in_Okinawa.svg/639px-US_military_bases_in_Okinawa.svg.png [본문으로]여기까지 다 읽으신 분들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시 읽기도 싫을만큼 길어서...그럼에도 불구하도 읽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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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전문 (국민일보 출처)
[쿠키 정치] 2007년 10월 3일 오전 9시34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에 마주 앉았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북한의 김 위원장이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노 대통령은 경제교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주로 폈다. 서해 평화 문제가 주로 논의된 오전 회의에 이어, 오후에도 2시간에 걸쳐 회담이 이뤄졌다. 회의 내용은 당시 수행원이 녹음했으나,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국가정보원에 녹취를 맡겼다고 한다. 국정원은 24일 이 정상회담의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다. 초유의 사태다. 주한미군과 북한 핵, 대북 제재, 일본과 북한의 수교 문제 등 한반도 안팎의 민감한 사항에 관한 남북한 정권의 입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개 절차와 내용을 둘러싼 국내에서의 논란은 물론, 외교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본보는 국정원의 발췌록 전문을 최초 공개한데 이어 이날 회의 내용을 녹취한 내용 전체도 공개한다. 당시 청와대 상황실장이었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가 제공한 녹음 파일을 녹취해서 대화록을 만들었고,그것을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한 부를 더 만들어 가지고 있는것”이라며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이 아닌 것으로 다루는 행위에 대해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원본이 대통령 기록물로 돼 있는데, 국정원이 자체 보관했던 사본을 임으로 공개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6년전 남북정상회담 내용이 현시점에서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으로 판단하는 가운데, 오히려 회담 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한 국론분열이 심화되고 국가안보에 심각한 악영향이 초래됨을 깊이 우려했다”고 공개 이유를 밝혔다.
[1차 회의]
일시 : 2007.10.3(목) 09:34~11:45
장소 : 백화원이 영빈관
배석자
- 南 :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백종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조명균 안보정책비서관(기록)
- 北 :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정일 :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하늘길을 열었고, 노 대통령께서는 육로로 온 것이 뜻 깊다고 생각합니다. 수해 때문에 도로 정비가 잘 안되서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 :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변 경관이 좋아서 편하게 왔습니다. 군사 분계선을 도보로 넘으면서 제 스스로 감동을 느꼈습니다. 평양 시민들께서 성대하게 맞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위원장께서 직접 마중 나와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김정일 : 남쪽에서 대통령이 오시는데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상 녹음 청취 불가로 기록 내용을 정리)
대통령 :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정말 걱정을 많이 하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매우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오면서 보니까 그래도 흔적이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땀 흘려서 잘 복구하게 된 것을 매우...
김정일 : 내 어제 상임위원장 동지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만나시게 되면 수해 피해 때 많이 위문해준 데 대해서 감사를 드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대통령 :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김정일 : 감사합니다. 많이 도움이 됐고, 혈육의 정을, 우리부터도 감사하게 됐고, 느낀 바가 많습니다.
대통령 : 다소 도움이 되었으면 우리도 기쁜 일입니다.
김정일 : 먼저 대통령께서 말씀하십시오.
대통령 : 예. 나로서는 5년 동안 기다렸던 만남이고요, 다음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여러가지 고민도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것보다 국민들이나 전문가, 나아가 국제 사회까지도 이런저런 주문이 참 많았습니다. 그때 그때 의제가 될 때마다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만 미리 준비를 해놓은 것이 있어서 준비된 것을 가지고 또박또박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김정일 :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듣겠습니다.
대통령 : 여러가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의 외교적 절차 아니냐 생각했는데...막상 와보니까 통역도 필요없고 잠자리도 서울의 잠자리와 너무 비슷하고 음식도 똑같고 해서 정말 마음 편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음식도 입에 맞게 잘해주어서 일행 모두가 기뻤습니다.
그리고 또 아주 백화원 여기 뜰도 아주 아름답거니와 시설도 훌륭해서 모두가 마음이 편안하고 또 우리도 이런 것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부러움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없습니다.
김정일 : 이 건물이? 그 이야기 들었습니다. 서울이 더 역사야...비슷하잖습니까? 건설이랑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 : 오늘 아리랑 공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나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고, 위원장님과 함께 볼 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오늘 아리랑 공연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김양건 : 장군님께서 일정이 바쁘시기 때문에...
김정일 : 일없어, 일없어. 진지하게. 오전에 다른 일정이 없으면 몰라도...
대통령 : 내가 상당히 긴장한 모양입니다. 내가 서류를 바꾸어 가지고...(웃음) 옛날에 우리 변호사가 다른 사건 서류를 가지고 나와서 변론을 하다가 실수를 하는 걸 봤는데 내가 오늘 바꿔 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동안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반목과 대결에서 벗어나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을 했습니다. 지난해 남북을 왕래한 인원이 10만2000명 정도 됩니다. 이 숫자는 2000년에 비해서 13배 정도 되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쌍방간 교역액을 보면 작년도가 13억5000만달러 정도인데 이것은 역시 2000년에 비해 3.1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획기적인 사건은 없었지만 큰 진전이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7년의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성과는 남북 간에 신뢰가 많이 증진된 것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그 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속도를 높여서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행동이 보이지 않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김 위원장과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북측에서 볼 때는 많은 한계도 보였을 것입니다. 핵 문제가 불거졌고, 정치적 화해와 군사적 신뢰 구축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진전이 아주 미흡했습니다.
아울러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과거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새롭게 제기되어서 새로운 진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지난 7년간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한 남북 관계에 걸맞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단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간에 신뢰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전향적 조치들에 대해서 논의를 본격화하고 남북경협도 큰 틀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 진전은 역사 발전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상회담도 어느 순간에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 분단과 함께 시작된 통일의 노력이 축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상회담에 부여한 시대적 요청은 앞으로 어떠한 정세 변화에도 흔들림이 없도록 남북관계를 확고한 반석 위에 올려놓으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힘을 합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지 못하면 백년 전의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남을 통해서 무엇을 합의하고 또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이고 또 단순한 만남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를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첫 번째는 평화 정착, 두번째는 경제 협력의 확대, 세번째로는 통일과 화해하는 세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회담에서 내가 김정일 위원장과 해야 할 일은 앞으로 남북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고 책임자들이 협의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는 큰 테두리를 그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필요한 협력방안들을 합의하고 이행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남북의 공동번영을 앞당기기 위해서 남북간 경협의 장애요인을 해소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주며, 남북간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서 큰 틀에 있어서 실무자들과 국민들에게 밝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의 공동 번영, 남북의 화해와 통일 이 세가지 의제 문제를 놓고 차례대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통일 이전에 한반도에 평화가 공고하게 정착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토대위에서 교류협력을 통해서 신뢰를 쌓아가다가 보면 통일은 점차적으로 저절로 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확고한 평화의 토대위에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며, 통일을 위해서 평화를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주도하에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여 이를 위해서 북미 관계 정상화와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한 냉전체제 종식과 핵문제 해결이라는 두 가지 큰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핵문제는 관련 각 측의 노력으로 해결의 방향을 잡았으며, 이는 김 위원장께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도력을 발휘해 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55년간 지속되는 현 상황은 청산되어야 하며 이런 면에서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김 위원장께서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문만 열어놓는다면 미국이 이에 상응한 관계개선 조치를 속도를 내서 취하도록 계속 재촉할 것입니다. 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함께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남과 북이 주도해서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을 전세계에 공표하게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을 출발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협상 개시에 도움이 된다면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방식대로 3국 정상이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사 분야의 협력도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여타 분야의 교류협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미진한 군사 분야의 협력에서도 좀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대부분 명시되어 있습니다. 11월 중 2차 국방 장관 회담을 개최해서 상호 합의 이행이 용이한 사안부터 실천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다음은 남북간에 공동번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남북간에 경제적 연계를 강화해나가는 것이 시급합니다. 특히 경제는 체제·제도의 차이에 관계없이 협력이 가능한 영역으로 동북 아시아 새로운 질서의 중심도 경제가 될 것입니다.
남북 경협은 남북 모두가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장기적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그동안 남북 관계를 이끌어온 중심축입니다. 지난 7년간 3대 경협이 중심이 되어서 남북관계 진전을 견인해왔습니다.
앞으로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철도·도로 개통, 금강산 관광 특구 확대 등을 우선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공단 이외의 지역은 통행, 통신 및 군사적 보장 등 여러 장애 요인으로 인해서 경협 확대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개성공단의 성공을 발판으로 남북이 함께하는 경제특구를 추가로 개발해나가는 것이 장애요인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안일 것입니다. 특히 해주 지역에 기계·중화학 공업 위주의 서해 남북 공동경제 특구를 설치하게 되면 개성·해주·인천을 잇는 세계적인 공단, 나아가서는 경제지역으로 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아울러 서해의 평화적 이용과도 연결이 돼서 남북 공동번영과 평화정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울러 남북간에 이미 합의한 농업·임업 분야 협력과 보건의료분야 협력, 지하자원 개발협력을 추진해나가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체계적으로 추진해나가기 위해서는 남북이 함께 공동 번영을 위한 경제발전 구상을 협의하고 우선 가능한 사업부터 하나씩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남북 간에 이러한 제반 경제협력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또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상시적 협의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남북의 화해와 통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평화는 신뢰에 바탕한 화해에서 출발합니다. 그 첫 단계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미래를 언제까지나 과거의 굴레에 가두어둘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산가족 문제는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해결자체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최소한 생사확인과 서신교환만큼은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과거 전쟁시기와 그 이후에 소식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불행한 과거를 마무리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기회에 큰 틀에서 해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원장의 결단을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이와 함께 남북간 화해를 제도화하기 위해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적어도 연 1회 정도는 남북이 정상간에 만남을 만들어야 하며, 당국간 상설 협의기구도 기구로서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상호개설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통일문제는 6·15 공동선언을 통해서 정리가 잘 되었다고 봅니다. 서로의 통일 방안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우선 평화를 정착시키고 점진적·단계적으로 통일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또한 그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한반도 평화,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남북화애의 세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고 남북 정상이 자주 만나다보면 결국 통일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몇가지 추가 의제로서 남북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보다 높은 단계의 포괄적인 경제협력 강화 합의서를 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경협이 확대되었을 때 국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남북 경협이 확대되면, 국제시장에서는 WTO 규정을 들어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거기에 대한 대비가 앞으로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것은 앞으로 논의를 해봐야 될 문제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기로 관광협력의 확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우리측이 보기엔 큰 성공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는 개성과 백두산 등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이 큰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경제시찰단을 상호교환하는 문제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경제시찰단의 상호교환이 있었습니다만, 여러 사정으로 중단되어 있는데, 이것은 경제협력을 위해서 준비단계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한국 전쟁시 사망한 쌍방 군인들의 유해 발굴 송환 같은 것도 우리가 한번 대화를 시작해봐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구요. 그 다음에 우리는 북측이 IMF라든지 그 밖에 세계은행 또는 ADB 이런 국제기구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여러가지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상회담과 정부 당국자간 회담도 매우 중요하지만, 앞으로 국회간의 회담, 여러가지 제도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국회 간에 교류와 회담이 있는 것이 남북간에 교류협력을 좀 장애가 되고 있는 법적·제도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을 부린다면 이미 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북경 올림픽에 남북단일팀 참가를 성사하기 위해 정상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가지 큰 주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나머지 문제는 앞으로 추가적인 의제로 말씀을 드린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좀 딱딱하게 말씀드렸습니다만...
김정일: 감사합니다. 어제 회담에서 이야기 다...
김양건: 기본적으로 다 되었습니다. 어제 상임위원장 동지가 구체적으로 말씀드렸기 때문에 또 그대로 보고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
김정일: 밤에 보고 받다보니까 잘...
김양건: 다 아시는 것이고, 다 우리 충분히 논의된 문제입니다.
김정일: 감사합니다. 대통령께서 많은 걸 생각하시고 당면하게 풀어야 할 문제와 전반적으로 이제 국제정세 흐름에 따라서 또 국내 정세에 따라서 약간은 단계가 설정될 수 있겠습니다만, 하여간 좋은 의견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한것은 다른건 크게 없고... 내가 원래 생각하고 있던 문제를 메모했습니다. 반복을 피하기 위해 체계를 잡아가지고 얘기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최근에 와서 정상회담에 대해서 많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최근에 와서 그 무슨 다른 어떤 충격적인 계기가 있어서 이렇게 된것도 아니고 6.15선언 나올 당시부터 김대중 대통령께서 모처럼 찾아와주셔서 훌륭한 민족끼리라는 정신을 해서 6.15 선언이 아주 훌륭한 기치다운 선언이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서 이렇게 했는데...
우리 민족이란건 북과 남이 100년 전에 보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주 비할바 없이 강해져 있는데, 북과 남이 갈라져 있는것이 한 개 큰 약점으로 세계 면전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나라가 갈라져 있으면 민족에서 비극이지만, 주변에서는 갈라져 있는 것이 항상 슬퍼도 같이 슬퍼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속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갈라져 있는걸로 해서 그 주변에서 어부지리를 추구해서... 우리는 민족이 손해를 보건 이득을 보든지간에 자기네가 국제정세 문제에 이해관계가 있는것 많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사실상 어부지리를 얻어서 자기배를 불리우는 자기 잇속을 채우는...
이렇게 된다고 보고 주변정세 나라를 봐도 그렇고... 우리민족만이 손해를 보는데, 이걸 앞으로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단계,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사업을 하나하나 착실히 해나가면 이제 주변 정세에도 어울릴뿐만 아니라 세계정세에도 어울리고... 또 우리민족 문제를 우리 자주적으로 우리 정상들끼리 조선민족끼리 해결한다고 하는 이런 좋은 모범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상징적인 첫단계가 북과 남이 힘을 합친다는 것 자체가 두 정상이 만나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의견 교환하고 여기서 선후차를 가리게 되고 정의와 부정에 대한 것은 똑똑히 판독해서 어느 것부터 먼저해야 우리민족이 부흥, 촉진시키겠는가 이런 문제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하신 부분들은 대부분 앞으로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지금 당장은 너무 크다고 그랬나? 조급하고. 말하자면 허황하지는 않지만, 실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빈 구호가 되지 않겠는가하는 이런 주변국들의 생각이나 주변의 어부지리를 챙기는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우리 민족 자체는 6.15공동선언 나온 이후에 정세의 흐름에 파동이 너무 심하니까 또 노대통령께서 오시게 되면 무슨 선언이 나오겠는가하는 주변의 말도 돌아가는데. 이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김대중 대통령께도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얘기했습니다. 자꾸 선언을 내자고 제기하길래. 7.4 공동선언 때 우리민족이 대단히 화해에 넘쳐나서 그걸 크게 기대를 걸었는데, 이런 저런 정권의 교체와 정세변화로 해서 빈종이짝이 되고 말았다. 근데 대통령께서 제기하는 모든 문제 또 우리가 합의본 이 문제를 놓고 다시 문서화해서 내면 이게 또 빈종이짝이 되지 않겠는가.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절대 그럴수 없다고 좋은거 하나 내자고 자꾸 독촉을 해서 그래서 6.15 공동선언, 쌍방이 힘들게 완성을 시켜서, 난 6.15 공동선언이 아주 훌륭한 문건이라고 생각... 6.15공동선언 5년 동안의 역사 시간을 보면 그저 상징화된 빈구호가 되고, 빈 종이, 빈 선전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그기간 많은 발전이 있는것만은 사실인데, 앞으로 모든 문제를 고찰해보면 내 솔직한 심정인데... 우리민족이 자주성 결여로 지금 대국들의 장단에 맞추는... 정치문제도 그렇고...
이 자주성 문제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6·15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그 기치 밑에서 앞으로 단계적으로 발전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제시됐다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선언은 난 개인 생각으로는 뭐 필요하겠는가. 그저 정부라고 하면 문민정부와 참여정부 이 두 정권이 왔다갔다 한 것밖에 없는데 자꾸 문서화되고. 앞으로 어느 정권이 들어서면 그 다음에 또 새로운 선언이 나오자 하고…. 빈말이 될 바에는 어느것 하나를 기준으로 해서 그 기치를 들고 나가면 좋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오늘 노 대통령게서 찾아와 주셔서 전세계 만방에 민족적 자주성을 확립한다는 자체를 시위한 걸로 된다고 생각하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해 나간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보여주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화보장 문제입니다. 평화보장 문제는 북남관계를 전진시키고 통일을 실현시키는 데 점차적으로 나서는 문제라고 보고 아주 대통령께서도 좋은 말씀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견해는 무엇보다도 북남사이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북남 간의 평화보장 문제에서는 기본, 그것도 빈 구호가 되지 말고 실천적인 문제에서 평화가 보장되자고 하면은, 군사적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남 사이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해소한다는 것은 신뢰조성하고 평화보장에 필수적인 선결조건으로 이렇게 딱 문제를 걸어놓고 문제를 봐야하는데….
지금 모든 문제, 이때까지 지나간 5년 동안 보면 군사적 문제와 정치, 군사를 떠난 정치는 있을 수가 없는데, 지금 많은 문제가 군사적으로 신뢰가 조성되지 않고서는 이게 해결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지만, 국방장관회의를 하자고 제기했는데, 그것도 우리가 안하자 한 것도 아니고?. 정세의 흐름 속에서 지금 자주성들이 결여되다 보니까 지금 지체되면 지체되고 연기되면 연기됐지.
김양건: 저번에도 그래서 중단됐습니다. 제주도?.
김정일: 그럼. 대통령께서도 제기한 바와 같이 한달 이내로도 총리급 회담과 동시에 국방장관 회담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역시 선언적인 이런 문건이 암만 좋은 거 나가건 안나가든지 간에 집행을 하자고 하면, 경협문제 같은 것도 총리급에서 논의돼야되지 정상수준에서 암만 합의봤다 해도 집행단계는 총리급에서 해야되기 때문에 총리급 회담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지금 상급회담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 정세에 따라서 했다 말았다 하기 때문에 난 바로 그 문제 생각했습니다. 남쪽 사람들이 자주성이 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자꾸 비위 맞추고 다니는 데가 너무 많다, 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주성 있게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면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로 국한시켜서 하자 이렇게 하면 되겠는데 조금 자주성보다도, 자주성이 없다고 하면 너무 인격모욕하는 것 같은데 좀 이렇게 눈치보는 데가 많지 않은가. 좋게 말하면 눈치 보는 데가 많고, 우리 입장에서 보면 자기 주견대로 말을 못하는가 이렇게 내가 생각했습니다.
얼마전에 부시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할때 종전선언 문제를 언급했다는 말이 지금 돌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종전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지만 그것이 하나의 시작으로는 될 수 있다고 보면 어떻겠는가 나는 생각합니다.
조선전쟁에 관련있는 3자나 4자들이 개성이나 금강산 같은데서 분계선 가까운 곳에서 모여 전쟁이 끝나는 것을 공동으로 선포한다면 평화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관심이 있다면 부시대통령하고 미국 사람들과 사업해서 좀 성사시켜 보는것도 나쁘지 않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그런 조건이 될 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완전히 바꾸는게 어떻겠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생각은 이번에 모처럼 마련된 수뇌회담에서 조금 희망을 주고, 적대관계를 완전히 종식시킬데 대한 공동의 의지가 있다 보인다 하는 것을 하나 보여주자 하니까 서해 군사경계선 문제, 이 문제를 하나 던져 놓을 수 있지 않는가 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의견은 앞으로 국방장관급에서 논의되겠지만 내 생각 같아서는 군사경계,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 이 문제만 해도 많이 완화되고 또 적대관계를 종식시키자는 공동의 의사가 나타났다 하는걸 보여주는 것임.
그것가지고 자꾸 쌈질하지 말고, 이걸 하자고 하는 조건에서 어떤 조건이 구비되야 되갔다. 우리군대는 지금까지 주장해온 군사경계선에서 남측이 북방한계선까지 물러선다. 물러선 조건에서 공동수역으로 한다. 공동수역 안에서 공동어로 한다. 이걸 이번 국방장관회담때 내가 인민무력부장에게 바로 이 무?뉨? 연구하고 토론하고 성사시켜 보라. 그렇지 않고는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한다 해서는 해결 안된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제일 흔한 방법의 하난데 북방한계선까지 우리가 철수하라. 이건 앞으로, 경계선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법적으로. 어느 쪽의 기본 틀걸이에 맞추겠는가. 북방한계선이냐? 군사경계선이냐?
이 문제는 앞으로 해결한다 치고, 당장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수역내에, 그 수역의 범위를 넓히자 하니까 우리 북방 한계선까지 군대는 해군은 물러서고 그담에 그안에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이렇게 평화수역을 하면 인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겠는가. 일단계. 그건 앞으로 흥미있건 없건 간에 의견으로서 안건으로 제기해봐라. 남쪽에다가. 이렇게 내가 결론했었는데, 토론해보라는 과업을 준 걸 오늘 노무현대통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이야기 했던 겁니다.
지금은 생억지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에 종이장 그려논 지도와 같이 선도 북방한계선은 뭐고 군사경계선은 뭐고, 침범했다, 침범하지 않았다, 그저 물위에 무슨 흔적이 남습니까. 그저 생억지, 앙탈질하는 게 체질화되다 노니까 50년 동안, 자기 주의·주장만 강조하고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전번에 서해사건때도, 실제로 흔적남은에 뭐냐? 흔적남은게 뭐야? 흔적남은게 뭐 있는가? 대동강에 배 지나간 자리고, 한가에 배 지나간 자리밖에 없다. 배 지나간 자리도 일시 무사 일어나고 없다. 흔적이 없는데.
그래서 내가 자꾸 앙탈진다 생각하지 말고 공동수역 만들면 되지 않나, 앞으로 법하는데 가서는 이론적으로 서로 역사적인 고찰로부터 시작해서 법률적으로 앞으로 해결하자, 쌍방이, 전쟁의산물이니까 좌우간. 이건 앞으로 평화협정 체결할때도 문제가 안건이 서야 할 거고 앞으로 법률적으로 한계선을 통일의 견지에서 볼때는 한계선도 좁히던가 넓히던가 이렇게 돼야지 유물로 남겨놓을 순 없다. 내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당면하게는 쌍방이 앞으로 해결한다는 전제하에 북방한계선과 우리 군사경계선 안에 있는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선포한다. 그리고 공동어로 한다. 분배 몫은 어떻게 되든지간에 공동어로, 군대가 그걸 보호해준다. 그럼 분쟁점이 하나 가셔지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가...
대통령 : 예, 아주 나도 관심이 많은...
김정일 : 그래서 그거로 가야지요. 그래서 내 생각은 경제일꾼이라던가 아마 부총리급에서 이야기되겠지만 장관급에서 이야기되겠지만 아마 분배 몫 가지고 또 이야기될 것 같단 말이지
김양건 : 아무래도 잡아놓으면 분배 몫이 논의될 것 같습니다.
김정일 : 그건 경제일꾼들끼리 논의해야, 토론하라 하고 원칙적 선에서는 쌍방이 이해를 가지고...
대통령 : 말씀중이어서 중간에 내가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문제가 많이 말씀이 되셔서, 사실 중국배가 잡아가는 것만 남북이 협력해서 잡으면 양쪽이 다 남습니다. 분배를 어떻게 해도 남습니다.
김정일 : 그것도 중국사람들도... 우리가 배 지나간 자리라고 얘기하고... 흔적없는, 중국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게 니네 바다냐? 문제가 이렇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토론되야 되겠는데, 앞으로 이런걸 포함해서 문제들 토론하겠다. 이걸 공동의지를 천명하는 게 어떻겠는가? 내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국방장관급 회담은 2000년 9월에 제주도에서 한 이후엔 질질 끌고 왔는데, 이번엔 평양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한다 해도 좋고, 앞으로 실무적 토론을 거쳐서, 군사당국자 회담에서 안건은 서해 군사경계선 문제를 비롯해서 북남경제협력을 군사적으로 어떻게 보호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토론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6자회담에 대해서도 어제 밤에 보고받았습니다. 좋은 문건이 하나 채택된 걸로 내가 알고 있습니다. 원래 오늘 오후에 보고받게 돼있는데...
이번에 어떤 문건이 나왔는가 하는건 아마 남쪽에서도 흥미있게 생각할 수 있고, 또 우리도 우리 주장이 어떻게 관철됐는가 이런거 내가 흥미있어서 6자회담에 참가했던 우리 단장을 불러놨습니다. 그래서 흥미 계시면 어떤 문건이 됐는가 하는, 물론 귀측에서도 6자회담 대표단장에게 보고를 받았으리라 생각하는데 반대 없으시면 같이 들어보는게 어떤가 생각합니다. 어떤 문건이 나왔는가?
김양건:우리 참가했던 단장이 여기 대기하고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다면 불러서 들어보시죠.
대통령: 예, 위원장 뜻대로 하시면 좋겠습니다.
김정일:나도 아직 전문으로만 봤지. 그분이 어저께 왔어요. 계관동무 오라 그러라우.
대통령:이번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받았는데. 위원장께서 이번에 확실히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시고 많은 양보를 하신 것으로 그렇게 보고 받았고, 그렇게 이해가 됐습니다. 어서오십시오.
(김계관 입장)
김계관: 외무성 부상 김계관입니다.
김정일:어제 왔던가?
김계관:어제 왔습니다.
대통령 : 아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김정일 : 좋은 문건이 나왔는데 문건 나온 걸 개괄적으로 설명해 드리라우.
김계관 : 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김정일 : 앉아서 얘기하라우.
김계관 : 말씀 올리겠습니다.
김정일 : 어떤 문건이 좋은 거, 미국 사람들이랑 좋은 문건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서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걸….
김계관 : 예, 이번 회담은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진행됐습니다. 이 기간에 전체회의, 단장회의, 쌍무측 형식을 가지고. 이번 목표는 초기단계 임무가 수행된 상황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다음단계 목표, 각측의 의무사항, 이행순서를 합의하는 이게 기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조선반도 비핵화가 위대한 수령님의 의지고 우리 과업의 최종목표인 만큼 그에 맞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자는 게 기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기간 BDA 문제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을 봉창하고 9·19 공동성명 이행을 좀더 빨리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자고, 이를 위해서 우리가 9월 초와 지난 8월 13일에 미국측하고 쌍무접촉을 했습니다.
그래서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다 합의를 했습니다. 합의된 사항을 이번 전체회의에서 공동의 인식으로 하고 5자 공동 문건을 만들어 내는 걸로 했습니다. 중국측이 초안을 내놨는데 일부 균형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고, 특히 어느 문제에서 우리의 의무는 구체적이고 미국측 의무는 두루뭉술하고, 그래서 우리가 미국측하고 바로 회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것은 무엇인가? 2007년 12월 31일까지 연내에 신고와 무력화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기 할 건, 우리는 구체적으로 날짜 줄 용의 있다. 그렇게 12월 31일까지 다 하겠다. 그 대신에 미국도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문건 해제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를 적으로 규정한 제도적인 법률적인 장치들을 해제하라. 이걸 시한부는 같다. 그래서 둘이 붙어서 실갱이를 좀 하다가 말대 말도 못하갔다 하면 행동대 행동은 언제 하갔나. 이거야 말대 말인데 다 합의한 건데?. 제네바에서 합의한 거 그거 이행하자고 손을 뗐지 않은가.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건 명백하고, 그래서 그렇게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 양해해 준다면 지난 기간에 너희가 이런 거 이런 거 하겠다고 한 거 상기하고 2·13 합의문이 있기 때문에 상기하면서 우리가 행동하는 데 병행하여 제네바에서 합의한 선에서 한다. 이렇게 우리가 조금 아량을 신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문건 조미가 합의해 가지고 합의한 거다. 이렇게 하면 된다. 그렇게 해가지고 합의문을 만들었는데. 만들고서 조금 특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30일날 다 모여서 폐막회의를 하는데 다 문건에 의문이 있는가? 다 없다. 좋다. 통과시켰는데 힐이 워싱턴에 갔다와야 되겠다. 가서 라이스 국무장관하고 부시 대통령한테 보고하고 승인을 받고 오겠다. 오지 못하면 연락을 하겠다. 미국대표단 남은 성원들을 인질로 여기 놓고 갔다 오갔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 해줬습니다.
가서 그날 밤에 전화가 왔는데 라이스 장관을 만났다. 그날이 일요일이니까 일요일 오후에 끝나서 월요일날 오전에 라이스를 만났고 저녁에 부시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그것까지 만나야 최종이 나온다. 다시 연락이 왔는데 한 자만 고치자. 우리는 동의할 때 한 자도 고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서 동의했는데. 고칠라면은 수습 못한다. 그렇게 했는데. 한 자만 고치자. 뭔가 하면 우리 신고 관련된 부분에 시한부가 내용에 들어가 있고 겉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2007년 12월 31일까지 신고한다. 이렇게 고치자는 내용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대책을 세우자고 합니다. 그래서 내용적으로 볼 때 신고에서는 우리가 핵계획, 핵물질, 핵시설 다 신고합니다. 그러나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한다?. 그 다음 핵계획과 관련해서는 모든 핵계획인데 농축 우라늄 문제가 해명되는 차제로 한다. 그래서 해명할 수 있는 걸 쌍방이 해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무력화는 이번에 우리가 미국하고 러시아, 중국, 핵무기 보유국들이 무력화 문제를 다루는 게 국제적으로 관계가 돼있기 때문에 미국이 주무가 되고, 팀장이 되고 거기에 러시아, 중국 전문가들 초청해서 영번에 가서 그뒤 요구된 오갔다는 거 다 보여주고, 사진 다 찍게 하고, 설계도면까지 다 보여줘서 연내 가능한 대상이 어딘가 범위가 어떻게 되겠는가를 다 논의하였고 그거에 따라서 합의를 하였습니다.
전문가들 모여서, 그리고 그걸 눌렀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을 어떤 방법으로 하는가. 방법은 못쓰게 만들지도 안하며, 해외 나가지도 않는다. 우리 땅에 보관하고 있겠다. 왜냐하면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신뢰가 아직도 거기까지 못갔다. 당신네 하겠다고 하다 안 하면, 다시 그걸 지렛대로 돌리며 배짱으로 쓰겠다. 그것도 동의했습니다.
전체 회의에서 다 확인하고. 단 하나 주목되는 것은 국제원자력기구는 여기 개입시키지 않는다. 국제원자력기구와 우리와의 관계는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적대적이라고 하면 적대적이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을 갔다 보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초기 단계는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에 우리가 부득불 성의조치로서 원자력기구 인원들을 초청해왔습니다. 빨리 들여와야겠는데 그거 논의할 때 한 달 걸릴지 두 달 걸릴지 모르니까. 그래서 데려다가. 하지만 무력화 단계는 안됩니다. 그래서 누가 하는가. 미국이 책임지고 하며, 돈도 미국이 낸다. 그렇게 하는 걸로 이번에 합의를 했는데. 오늘 내일 보도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김정일: 남쪽에서도 서울에 돌아갔다며?
김계관: 네, 천영우 단장선생하고도 협력을 잘했고, 이번에 어떻게나 결과물이 나오게 해서. 미국이 보도문제랑 자꾸 저러는 거는 첫째는 일본을 배려해라 하는 것입니다. 후꾸다가 올라 앉았는데... 그거 하나 있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 대통령 각하 방문과도 조금 연결시켜서 지금 보도를 살살 늦추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건 아주 허황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다 6자가 합의하고 9월 30일부로 합의해있는데 발표가 늦어질 뿐이지. 내용이야 다 돼 있는데. 이젠 그대로 집행해나가면 돼있습니다.
김계관: 요행수 봐라. 미국 사람들 아직도 그러면서. 문건을 다 좋게 만들어놓고도. 노대통령이... 다른 요행수적으로 다른 변화의 징조를 보이겠는가.
대통령: 그건 아닐 겁니다. 기대할 수가 없는데.
김정일: 큰나라 사람들의 의심과 주관주의는 우리 작은나라 사람들보다 더하니깐.
김계관: 우린 지렛대를 명백히 물려논 거는 안 되면 원점으로 돌아간다.
대통령: 수고하셨습니다. 현명하게 하셨고, 잘하셨구요. 뭐 미국이 이 회담 바라고 그러진 않을 것입니다. 나는 공개적으로 핵문제는 6자회담에서 서로 협력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6자회담 바깥에서 핵문제가 풀릴 일은, 따로 다뤄질 일은 없습니다. 단지 남북간에 비핵화 합의 원칙만 한번 더 확인하고, 실질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은 6자회담에서 같이 풀어나가자 이렇게 갈거니까요.
그런 원칙은 이미 다 얘기했으니까요. 한나라당은 뭐라뭐라 뭐 핵얘기를 좀 많이 쓰라고 그걸 가지고 인제 시비를 자꾸 걸라고 벼르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합의는 그대로 남북간 합의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풀어나가는 과정은 한꺼번에 일괄적으로 6자회담에서 풀어나가자 이거니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그렇게 아시구요. 수고 많이 하셨구요.
김정일: 그렇게 그럼 저 이 회담하고 관계없어. 설명이 될란가 모르겠어. 대략 어떤 건가 하는 게.
김계관: 설명해 드린 김에 하나만 더 말씀 올리겠습니다. 지금 우리 하고 미국과 차이점이 뭐가 하면. 우리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에 생긴 거니까 적대시 정책을 바꿔라 이겁니다. 그런데 그 문제에서 아직도 행동은 안 하고 말로만 바꾼다. 바꾼다. 좋은 말 하다가 어떤 때 뒤집어서 거친 말 또 했다 말았다. 이게 첫째 문제점이고.
둘째는 우리는 전 조선반도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반부 비핵화, 우리한테서 핵무기 빼앗아 내면 비핵화 다 됐다고 생각하는 게 차이점입니다.
세번째는 우리는 평화적 핵활동은 해야되겠다는 거고 미국은 핵이라고 불은 건 다 안 된다는 겁니다. 이걸 조정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꺾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어떤 태도변화가 있는가를 예의주시하면서 대응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6자 틀걸이 내에서 풀며, 6자 틀걸이가 아주 좋다. 이런 데서는 점점 일맥상통하는 점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 예,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정일: 북남경제협력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앞으로 총리급 회담이나 상급회담에서 실무적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돼서 성숙시켜서 해결하고 발전 단계로 나가자고 합니다. 북남경제협력이라는 건 민족공동의 이익 하고 번영을 위한 중요한 사업으로 된다는 데 대해서는 나도 동감합니다. 북남경제협력사업은 단순히 경제거래가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통일, 번영에 이바지하는 아주 숭고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기초해서 풀어나가야 하는데 나는 오늘 대통령께서 제안하신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하나 즉석에서 생각한 것은 새로운 공단들을 내오자고 하는 문제는 아직도 우리나라가 중국땅이라던가 러시아 원동땅도 아니고 조그만 땅인데 거기서 다 뜯어 공단들만 하려고 하면 우리가 이때까지 이룩한 민족자주경제는 다 파괴되고, 시장경제에 말려들어가고, 주체공학이 없어지고 하는 이런 정신적인 재난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시기... 왜냐하면 개성공단에 대해서 초기 정몽헌 선생이 와서 제기해서 내가 동의해준 문젠데. 그때 정몽헌 선생이 나하고 단둘이서 담화하고 단둘이서 밥먹으면서 앞으로 민족으로서 상징이 될 수 있는, 그 몽헌 선생이 구상력이 대단한데, 그대로 안 됐구. 내가 보기엔 개성공단이 더 빠른 길로 나갈 수도 있는데. 또 남측에서 의지가 있었으면 더 빨리 나가는데, 거기 정치가 관여됐고, 주변 나라들이 관여됐고, 내 의견은 그게 번영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는가. 솔직히 생활을 통해서 많이 느꼈습니다.
실례를 들어서 재봉집 하나도 개성공단에 들어올 게 따로 있고 허용되는 게 따로 있고, 일반 경제사회에 나갈 게 따로 있고. 그래서 지금 그런 희생물이 될 바에는 좀더 개성부터 완성시켜 두 측이 노력을 기울여서 완성을 시킨 다음에 하나의 모범을 창조한 다음에 해야지.
지금 빈손으로 나가면 선언에 보도문에 보도되면 우리 인민들은 아마 개성걸 크게 기대를 안 가지고 있었다고 사람들이, 남쪽 사람들에게 땅만 빌려준 거 아니야 이런 말도 하고. 그저 정치적인 대화에 말빨감이나 만들어준 게 아니야 우리 인민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활성화되지 못한 조건에서 새로운 공단만 세운다는 것은 허황된 소리고, 내 체면으로서도 더 요구한다고 말할 수... 공동으로는 안 되고 남측의 의향이면 의향이고, 남측에서 구상이라면 남측의 구상으로만 보도된다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공단하는 건 찬성할 수 없습니다. 개서잉 뚜렷하게 만방에 시위했으면 모르겠는데. 난 좀...
김양건: 상품 자체도 아직 인정을 안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새로운 공단이라는 건 남조선 기업인들에게 새로운 일감과 새로운 시장을 넓혀주는 데 동둠이 되는 놀음을 하면 했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아직까지는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그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 따이 서해 해주 또 하겠다 하는데. 내가 보건데. 앞으로 토론해보면, 총리급이나 상급에서 경제 다루는 분들이 또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아직도.... 개성 할 수 있다면야 신의주, 신의주도 내가 몽헌 선생한테 이야기했습니다. 신의주 해보라. 원래 신의주야. 근데 뭐 몽헌 선생이 신의주 까다롭고 힘들다 그러고 그러면 당신 말 들어주겠는데 어디야, 짚으라, 그래서 두 번째 안 내가 꼽은 게 해주였습니다.
그 전기랑 뭐 곤란하고, 원자력발전소, 핵발전소 아니면 큰 중유발전소, 배가 와서 발전 일으키는 해상 발전소나 하나 가져와야지 그거 아보다 배꼽이 큰데 그거 힘들다. 몽헌 선생이 반대했습니다. 어디야. 당신네 어디가 좋은가. 개성.... 그래서 내가 세 번째로 승인한 게 개성이야. 근데 이제 와서 해주 소리가 나왔는데. 우리는 생각도 못해봤고, 내가 아는 건 신의주만 생각해봤는데.
대통령: 예, 위원장께서 이번에 승낙하지 않으셔도 우리가 기다리겠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를 놓고 우리가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이유라도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 그런 대화가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그건 우리 입장이 그렇습니다. 그건 난... 우리가...
대통령: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신 나중에 인제..
김정일: 그리고 군사적인 측면으로 오늘 대통령님께 솔직히 말하는데... 개성도 군사적으로 많이 양보한 거고.. 개성은 평화의 상징이라 해가지고 그건 많이 양보했는데 해주는 솔직히 내가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말합니다. 해주는 군사력이 개미도 들어가 배길 수 없을 정도로 군사력이 집중된 데인데 그래서 제 얘기는 거걸 만약 하자고 하면 앞으로 개성에서 어떤 모범을 보이고 실제 그만한 걸 희생시키면서라도 공단 차려가지고 어떻게 민족 번영에 이바지하겠는가 하는 게 우리가 납득이 될 때 그땐 우리 개성 아니 해주 달라면 그땐 줘야지요...
그러니까 지금은 군대가 우선 반대할 테고... 지금 개성 당연히 무슨 내각에다가 경제 행위꾼들에게 아마 아직 개성에서 맛도 못본 주제에 무슨 뭐 때문에 해주를 또 내라고... 우리 그럼 자연히 군대는 다 물러 돌아서는 거나 같은 건데... 아마 안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중요한 문제 말씀을 다 하신 것 같기 때문에 조금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서 내가 해명드릴 것 몇 가지... 해명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장하고 뭐 반론하고 토론할 생각은 없구요... 해명할 만한 것을 좀 말씀을 드리구요... 또 인제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특구 이런 것이 또 못 받아들이겠다 하시면 그렇게 우리도 알겠습니다.
그러나 다만, 특구를 받는다 안 받는다는 그런 작은 문제를 넘어서서 크게 앞으로 남북경제를 공동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상호 간에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될 것이냐에 대해서 위원장 말씀도 좀 충분히 듣고 싶고 나도 또 우리 구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몽헌씨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러나 우리 정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협의하면서 만든 구상보다 더 앞서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그래서 내 희망은 지금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을 것 같은데… 위원장께서 말씀하신 데 대해서 주요 쟁점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오후에 시간을 따로 좀 주시면 앞으로 우리가 이런저런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서로 어떤 구상이 필요한가 하는 데 대해서 구체적인 접근들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양건: 오후에는 참관이랑 있습니다. 식수가 있고…
대통령: 참관은 잠시 가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원장께서만 시간을 허락해주시면…
김정일: 이 회담을 그대로 연장하자는 겁니까?
대통령: 예?
김양건: 이 회담을 그대로 연장하는 것입니까?
대통령: 뭐 그렇게 하시던 위원장님 따로 만나도 좋습니다. 지금 내가 말씀을 드릴 것이고…. 아무래도 남은 시간이 더 많은 말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아서 오후 일정을 좀 잡아주십사 하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김양건: 오후 일정은 식수 있고 그다음에 3대혁명 전시관 중공업관 참관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저녁에 집단체조하고…
대통령: 일단 그렇게 말씀드리고…
김정일: 3대혁명 전시관 참관은 특별수행원들이나 하는 거...대통령께서 3대혁명 뭐 보셔도 되고…(웃음)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더 실무적인 문제에 우리가 많이 들어갈 필요가 없고 실제 이렇다면 앞으로 상급회담이나 총리급 회담을 하나 새로 설정해가지고 거기서 모든 걸 토론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김양건: 경제문제라면 앞으로 총리회담이랑 어차피 한번 해야 되니까...
대통령: 거 뭐 무슨 의제의 문제라기 보다… 여기까지 와서 위원장하고 달랑 두 시간 만나 대화하고 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됩니까? (웃음) 충분히 잡담을 하더라도 위원장하고 시간을 더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배경이라든지 그동안에 우리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오는 과정에서 우리 나름대로 겪은 고충도 있고 또 미래에 대한 비전도 있고 하지 않겠습니까. 회담의 의제 딱딱한 의제로 다 소화할 수 없는 얘기들은 좀 나누고 싶습니다.
김정일: 그래서 남쪽... 나 개인 생각은… 내 그저 짧은 생각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경제문제에 한해서는 앞으로 내가 총리보고도 이야기 했어요... 남쪽사람들한테 앞으로 문제가 토론되면 무슨 삼성이요 현대요 대우요... 이렇게 하지 마라... 재벌 단위로 하면 내가 알고 있는 대로는 그렇다…. 그것이 아버지가 그 창업자가 있을 때는 우리가 정몽헌 아니...정주영 선생하고 창업자로 내가 아주 많이 기대를 가지고 사업을 했는데…
창업자인 정주영 선생도 역시 실질적으로 자기가 모범을 보이고 한번 해보자고 했는데 역시… 내가 경제일꾼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남쪽은 경제체제가 우리하고 다르니까...어떻해든지 뭐든 의견을 내놔서 합의가 되면은 남쪽 정부가 나서서 하는 걸로 돼야지… 그 기업단위로 했다가는...이번 그 보세요 우리가 현대 하나 해보다가...창업자가 돌아가고 그다음에 그 창업자의 의도를 따르자고 하던 사람들이 또 돌아가고...지금 현정은 여사가 하나 있는데...그저 금강산 하나 경우 유지하는데...숱한 계획했던 게 다 무너지고..
그러니까 남조선의 재력을 다 모아서 남조선 당국적인 이런 투자가 되야지..투자면 투자..협력이면 협력..우리가 많이 쓴맛을 봤단 말입니다. 우리 사람들 다 기업단위로 하자고 하는데 기업단위로 하면 각명하게 그들에게 시간제공하고 그들에게 노력 제공하고..일감주는 것밖에 없고.. 실제 우리 크게 소득, 이득 본 게 없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기업 말하자면 현대가 일을 이렇게 맡아 하는 이런 방식에 대해서는 남측 정부도 그것이 타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렇게 합의를 하셨고 됐으니까 남쪽 정부는 뒷받침을 해줄 뿐이지 우리가 그런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시고요.. 여러 가지 그 말하자면 뭐가 되고 안되는지를 우리도 알아야 계획을 좀 세워볼 텐데 오늘...
김정일: 앞으로 그런 문제가 상정되면 총리급 회담을 하던가 해야지요. 우리가...난 경제는 그저 하자고 하는...활성시키자는 욕망 뿐이지...군대 칼은 쥐고 있지...경제 돈은 못 가지고 있어..그저 그렇게 알면 되겠어요...
대통령: 어쨌든 위원장께서 말씀하신 데 대해서 내가 몇 가지 답변을 좀 하고 싶습니다.
김정일: 예 말씀하세요.
대통령: 자주의 문제를 많이 제기하시는데...영국의 토니 블레어의 말하자면 자문을 하는...그 양반 이름이 누구지..예, 기든스라는 사람의 책을 보니까 영국이 미국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좀 자주적으로 가라..그리고 유럽을 중시하라.. 이렇게 조언을 해 놓은 것을 봤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영국도 보기에 따라 자주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은 그 수준으로 올려버리면 세상에 자주적인 나라가 북측에 공화국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덜 자주적인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친미국가입니다. 사실...객관적 사실입니다. 그것이 해방될 때.. 그리고 분단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리고 한국전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어서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점진적 자주로 가자... 지금까지는 적어도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서시기 전까지는 점진적 자주에 대한 의지도 없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실제로 자주란 말씀을 자주 하진 않으셨지마는 6.15 회담부터 자주적인 행보...일부입니다. 그 때...
김정일: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라는 구호가 나오지 않았소?
대통령: 그랬습니다. 그분 뭐 핵무기도 만들려고 하셨고...했는데...
김정일: 자조...자조지요 뭐..자조..
대통령: 근데 그것으로 말하자면 실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그래서 이제..어쨌든 자주...자주국방이라는 말을 이제 우리 군대가 비로소 쓰기 시작합니다. 주적 용어 없애 버렸습니다. 그다음에.. 균형외교라는 말을 우리 정부에서 와서 쓰고 있지 않습니까..공공연하게 쓰고 있지 않습니까..공식 균형외교라는 말을 쓰고 있죠...
작전통수권 환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2사단 후방배치를 미국이... 또 이런저런 전략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건 후보 때부터 얘기하던 나의 방침이기도 합니다. 왜 미국 군대가 거기 가 있냐.. 인계 철선 얘기하는데 미국이 인계철선이 디면 우린 자주권을 가질 수가 없는 것 아니냐... 국방을 거기다 맡겨놓고 어떻게 우리가 자주를 얘기할 수 있느냐..그래서 2사단 철수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마침 미국도 재배치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일치해서 용산기지를 이전하는 데 우리가 60억 달러라는 돈이 듭니다.
그런데 60억 달러가 들어도 100억 달러가 들어도 대한민국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보냈지 않았습니까...보냈고...나갑니다. 2011년 되면... 그래서 자꾸 의제 너희들 뭐하냐.. 이렇게만 보지 마시구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략적 유연성..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북아시아에서 군대를 움직일 때에는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된다.. 합의했지 않았습니까..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가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개념계획이란 수준으로 타협을 해가지고 있는데 이제 그거 없어진 겁니다. 그렇게 없어지고.. 우리는 전쟁사실 자체를.. 전쟁상황 자체를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뭐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12년 되면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단독으로 행사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어제 엊그제 국군의 날 행사 때 우리 국군의.. 우리 안보 개념은 대북 안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내다본 안보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일관되게 여러가지 이야기 했습니다. 했고..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균형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뭐 내가 결의가 단호해서 그렇거나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것이 남쪽의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로서 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이 가는 기운은 강력하게 굳혀 나가는 것..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굳혀나가는 것은 남북관계에 성과 있는 진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첫 번째가 평화에 대한 어떤 의지 표현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런 것입니다. 난 그렇게 우선 자주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점진적 시간적 개념으로 보고...
그다음에 이제 내가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성공단을 조금 더 속도를 내자 아니면 조금 늦추자 뭐 이런 것이 하는 동안에 우리가 우리끼리 결단을 내고 속도를 빨리 내자.. 그것이 미국하고 사실은 조율을 어느 정도 합니다. 왜 그러냐.. 지금 공단에 반입하는 물건 하나하나에 대한 승인을 미국이 하고 있거든요.. 그럼 승인 안 받고 하면 어떻게 되는냐 소위 고급 컴퓨터 이런 것입니다.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승인 안 받고 하면 안되냐.. 했더니.. 그렇게 미국하고 감정을 많이 상해놓으면 승인이 어려워.. 승인을 안 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국제무대에서 소위 미국과 관계되는 모든 거래에 있어서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물건을 안 팔라고 한단 말이죠.. 지난번에 BDA때...BDA는 뭐.. 그건 미국의 실책입니다. 분명히 얘기를 하는데.. 실책인데.. 그러나 어쨌든 미국의 실책임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돈을 받으라하니까 어는 은행도 안 받겠다 하는 것 아닙니까..
미측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힘이고 그 돈 받았다가 은행 거래가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하면 은행을 못 해먹을 판이 되니까 전부다 중국도.. 발빼고 다 발 빼고.. 심지어 미국을 거친 것조차도 미국 중앙은행을 거친 돈조차도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이 경제에서의 현실이거든요..
그래소 우리도 그런 점에서 자주하고 싶어도 자주하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고요.. 원자로.. 경수로 그것 좀 중국에 하고 인도 뭐 이런데 좀 팔아먹을라고 하고 있는데 미국이 오케이하지 않으면 기술은 다 가지고 있는데 마지막 권리증을 그쪽이 가지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 이제 권리증이 웨스팅하우스로 넘어와 가지고 이제 그쪽하고 협의를 해야 되는 것이죠.
이제 다른 종속이 아니고 기술종속에 의해서 기술의 격차에 의해서 도리없는 종속이 발생하는 것이죠.
지난번에 경수로 못한다? 그 이종석씨 잘 아실 겁니다. 기존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 미국 제끼고? 몇 번 말로 하니까 안되다 그래서 그럼 안 되는 이유를 보고서로 글로 써내라? 분석보고서를 써내라.. 한번 올라왔는데 뭐 좀 자세하지 않아서 한 번 더 이거 이거 이거 다시 보고서를 내보라 지적해서 다시 보고서를 받았는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끼리 아무리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현실들이? 우리 소위 남측의 경제가 확 주름이 잡힌다든지 기업들이 곤란을 겪는 일들을 정부가 결정해야 된다는 것이.. 되지도 않으면서 고립을 자초하는..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이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역사를 봐도 활발한 교역에 앞장선 국가들이 세계 패권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패권을 꿈꿀 수는 없겠지만, 한반도가 7천만 경제권을 가지고, 그래서 동북아시아에 실제 중심을 잡는 이런 위치에 가자면 경제에 있어서 앞서가야 되고 경제를 유지하자면 교역권 활발하게 안 할 수 없는 이런 애로가 있다는 점을 이해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지만은 이와 같은 세계 경제의 현식속에 북측도 함께 발을 들여야? 시장에는 발을 디뎌야지 안디디고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 그런 해명을 좀 말씀드리고요.. 그래서 비위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이유가 사대주의 정신보다는 먹고사는 현실 때문에 그렇게 되고 있다는 점을 잘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시 대통령 종전선언 이 문제에 있어서 정말 한번 성사시켜 보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 좀 시간을 두고 위원장님하고 뭐 하나 말씀을 나누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무조건 가가지고 부시대통령한테 하자.. 이것은 아니니까 남북 간에 여기까지 갔으니까, 이제 또 이걸 부시대통령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걸 디디고 와서 내가 위원장님께 우리 이런 거 한번 합시다 말씀드릴 수 있었듯이?
김정일: 당면하게 이제 부시대통령도 시간없지요 뭐 이제?
김양건: 예, 그렇습니다.
대통령: 하여튼 뭐 이런 상징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면 더 좋고.. 아니라 할지라도 뭔가 진전할 수 있는 뭘 토대를 하나.. 디딤돌을 하나 또 위원장께서 이 기회에 만들어주시면 그 디딤돌 가지고 다음 단계로 또 나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해 군사분계선의 문제 있습니다. 이 문제는 위원장하고 나하고 관계에서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해야 됩니다. 우리 남측 군인들 내보내놨더니요.. 갔다와서 그렇게 하지말고.. 지금은 아닙니다만.. 지금은 우리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NLL 타협해라? 대선국면이 아니었거든요.. 그 당시는? 대선 국면이 아니고..
NLL 문제 의제로 넣어라.. 넣어서 타협해야될 것 아니냐..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그러나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북측 인민으로서도 아마 자존심이 걸린 것이고..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혼동이라는 것을 풀어가면서 풀어야 되는 것인데...이 풀자는 의지를 군사회담 넣어놓으니까 싸움질만 하고요.. 풀자는 의지를...두 가지.. 의지가 부족하고 자기들 안보만 생각했지 풀자는 의지가 부족하고.. 뭐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자꾸 딴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거 안됩니다 하고.. 그 다음에 이런 여러가지 위원장께서 제기하신 서해 공동어로 평화의 바다..내가 봐도 숨통이 막히는데 그거 남쪽에다 그냥 확 해서 해결해버리면 좋겠는데..
이어 놓으면은 군사적으로 이거 뭐 안보 위협이 생기고.. 이렇게 내부에서 보고하는 사람들부터 이러니까... 이 문제는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일이지만은 말하자면 최고위급에서 이 문제를 말하자면 가야된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뭐 한나라당이 저렇게 하지 않으면 지난 번 내 군사회담에다 이건 다루라고 했거든요.. 했는데 지금은 인제 내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있어서 그 얘기를 바로 꺼내긴 어렵지만은 ...그래서 이제 의제는 그렇습니다.
그렇고 이걸 풀어나가는데 좀더 현명한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거기 말하자면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그건 옛날 기본합의에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에는 커다란 어떤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큰 틀의 뭔가 우리가 지혜를 한번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해주 아이디어는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정몽헌씨가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을 처음 들었는데.. 해주는 군사적으로 민감해서 잘 안 주실 것이라고 들었는데 오히려 나는 거꾸로 생각했습니다.
개성보다 더 해주가 민감한 것으로 들었는데...그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어떻든 해주 발상이라는 것은 그런 큰 틀 속에 들어있는 것인데.. 그냥 배경설명입니다. 그렇게만 들어주시면 좋겠구요... 그래서 공동어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것은 적어도 뭐 총리급 수준에서도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결정권을 가진 위원장과 내가 한번 얘기를 좀더 깊게 해봤으면 좋겠다... 위원장이 지금 구상하신 공동어로 수역을 이렇게 군사 서로 철수하고 공동어로하고 평화수역이 말씀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단지 딱가서 NLL 말만 나오면 전부다 막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 위원장하고 나하고 이 문제를 깊이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게 아니냐...
그리고 국방회담이라든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전향적으로 말씀해주신데 대해서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6자회담에 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주문이 많죠.. 근데 그것은 나는 되도록이면 가서 판 깨고.. 판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국민들이 또 그게 중요하다고 그래요...중요한 일입니다. 중요한 일인데...
그러나 문제는 6자회담에서 이미 풀려가고 있고 그 틀이 근본적인...문제해결이 가능한 틀이기 때문에 거기서 풀자.. 그런 것들을 내가 계속 주장해왔고..했습니다. 했는데 우리 국민들에게 안심시키기 위해서 핵문제는 이렇게 풀어간다는 수준의 그런 확인을 한번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안그러면 가가지고 인제 뭐 내가 해명을 많이 해야되죠...한 줄 들어있으면은 가서 뭐 이렇게 간다...이렇게 될 것 같구요..
경제협력은 좋습니다. 위원장이 지금 때가 아니다라고 보시면 그렇게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다음에라도 뭔가 총리급에 하더라도 뭔가 위임과 지시가 없으면 앞으로 못나갑니다. 남측도 마찬가지입니다. 총리에게 이런 방향으로 푸시오라고 방향을 주어야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점에 있어서 오늘 무슨 결론을 내고 선언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위원장하고 나하고 사이에 경제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가야 되는 지에 대해서 서로간의 의견을...위원장께서 갖고 있는 한계를 분명하게 모르고 우린 우리끼리 막 그림을 그야말로.. 허황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러나 남측에서 볼때 이 그림은 허황된 것이 아니고 정말 이게 돈되는 것인데..앞으로 우리가 일류국가로 가자면 이거 해야되는 것인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또 이 설명을 충분히 한번 드리고.. 또 우리도 위원장의 한계가 뭐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져가면 또 그 아래서 우리가 계획을 다시 만들어서 또 제안을드리고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또 좀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점은 나도 아프게 생각합니다. 남쪽 사람들이 개성공단을 가지고 이것이 개방의 미끼인 것처럼 자연히 뭐 개성공단처럼 하면은 북측이 개방하고 개혁할 것이라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나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건 뭐 여러가지 생각이 있으니까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나는 그런 견해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고 진정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경제확산, 기술확산 이거 해야되는 것인데..특구를 얘기하는 것은 공화국 전체의 법 체제를 한국기업이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바꾼다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신의주도 좋습니다. 신의주라도 그건 뭐...좋고 나진 선봉 다 좋습니다.
문제는 이게 서로 거래방법, 기업운영방법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 특구가 아니고는 투자할 기업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금 전체 투자 중에 92년...93년부터 투자가 시작됐고.. 94년부터 투자가 시작됐지만은 다 거의 실패하고요..성공한 것은 개성공단, 금강산 두 군데 뿐입니다. 지금 남측의 대북투자의 80%가 전부 특구 투자이고요...그 건수로는 80% 정도이고 금액으로는 88%가 특구입니다.
지금 26개 시범사업 하고 있는데 이번에 이제 1단계 분양이 돼서 230개 들어옵니다. 들어오는데 그동안 이걸 1년 정도는 내가 더 당길 수 있었는데 사실은 나도 그 결단을 혼자 할 수 없어서..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은 그런 이유로 좀 지체가 된 것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고려해서 우리가 특구를 말씀드린 것이지 특구를 가지고 장난치자고 하는 생각은 절대 아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일단 드리고요...
그래서 이제 공부를 그동안에 보고서를 이 사람들한테 내가 이만큼 받아놨습니다. 세세하게 위원장께서 좀 아셔야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지금 기업경영에 있어서 무엇이 애로에 걸려 어렵고... 이런 것들을 다 일일이 안하더라도 큰 틀에 있어서.
김정일: 법률적인 제도적인 제한턱들은 너무 앞으로 더 어떻게 하든지 간에 앞으로 남조선 경제를 일임하는.. 돈받자고 해도..법률적인 제도적인 조정사업이 아마 있어야 된다고 본인은 생각을 합니다.
김양건: 예, 그런 문제들은 제기됩니다. 일정한 문제들은 제기됩니다.
대통령: 위원장께서 혁명적 결단을 하셔야 됩니다. 특구를 하시든 특구 이외의 것을 하시든요, 우리도 바라건데 혁명적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개성공단이 2000년에 합의가 된 것인데요. 기업 입주한 것이 2004년 아닙니까, 이제 2007년에 와서 230개가 들어온 것입니다. 이게 되게 느린 것입니다.
남측에서도 공단 하나 계획해서 시작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공단 하나 들어서는데 10년이 걸리는데요. 우리가 인천특구, 말하자면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지금 만드는데 아직 황량한 벌판입니다. 2002년에 기획해 가지고 넘겨준 것인데 5년 동안 죽을 둥 살 둥 해도 아직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자유구역답게 되려면 앞으로 5년, 10년은 더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경수로 하나 하는 것도요,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렇겠지만, 94년에 합의 되가지고 98년에 첫 삽 뜨고 2003년 초에 중단이 됐는데, 그 중단될 때까지 35% 공정 밖에 안 됐습니다. 그 투자한 돈 13억달러 안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경수로 꼭 지어야 합니다.
아까 김계관 부상이 그랬습니다. 적대시정책 철회하고, 비핵화는 전 조선반도에 한다. 이거 좋습니다. 이미 합의된 거니까. 지금은 6자회담 주제에 남북 문제가 안 들어있으니까 그렇지. 이것은 남북간에도 충분히 합의하고, 이미 합의가 있는 거니까 지켜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적 이용권,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말하자면 미국이 안 줄려고 하면 6자회담은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시간적으로 신뢰를 확보해가는 과정 아니겠습니까.
신뢰를 누구를 기준으로 하느냐, 국제사회에서 사실 그렇습니다. BDA문제는 미국이 잘못한 것인데, 북측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확보해야 됩니다.
그래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워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가 행동하면서, 미국하고 딱 끊고 당신 잘못했다고 하지 못한 것은 미국이 회담장을 박차고 떠나 버리면, 북측도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 남측으로 봐서도 좋지 않습니다.
남측은 평화가 흔들린다고 하면 주가가 땅에 떨어집니다. 해외에서 빌려오는 돈의 이자가 올라갑니다. 우리는 위원장하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6.15때 악수 한번 했는데, 그게 우리 남쪽 경제에 수 조원, 수 십 조원 번 거 거든요. 어제 사진도, 어제 내가 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 조원 벌었습니다. 뭐 장기적으로, 상징적으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6자회담 깨지면 안되니까, 미국 붙들고 같이 가야, 북측도 못나가게 해야, 그래서 6자회담 가면 아마 북측하고 가장 긴밀하게 얘기하는 쪽이 우리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정일 : 우리가 민족이긴 민족이죠, 한 민족이죠. 의사소통은 그래도 일본사람들 보다 낫습니다. 일본은 우리하고 상종하고 해도, 밤낮 싸우고, 그래도 속심있는 이야기는 다 북남하고 합니다.
대통령 : 우리가 선진강국이 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하고 적대관계, 관계정상화 풀어야 되고요. 일본하고도 아니꼬와도 문제를 풀고 가야 합니다. 남북이 말하자면 완전한 협력관계에 들어서고 북측이 국제관계에 들어서고 나면 쫓아내지 못하거든요. 지금은 세게 하면 고립이 되지만, 자리를 잡고 난 뒤에 세게 하면 자주가 되거든요. 자주가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김정일 : 옳습니다. 노 대통령님의 견해를 충분히 알았습니다.
대통령 : 말씀 드릴게 더 남았습니다. 아니면 위원장 말씀 그냥 한 시간 두 시간 듣는 것만이라도, 들어야 하니까요. 연일 줄여서 말씀하시니까...
김정일 : 양건 동무한테 얘기들었는데, 우리 상임위원장이 너무 오래 설명했다고 그러더군요.
대통령 : 위원장 질문이나 말씀을 안 하시면, 내가 이것저것 질문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요. 오후 시간이나 잡아 주십시오.
김정일 : 오후에 일정이 괜찮겠어요?
김만복 : 아리랑 공연과 만찬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을 하고, 그 이전 행사는 우리가 유연성을 가지겠습니다. 그래서 두 분 정상이 이렇게 좋은 얘기를 하고 계시는데 좀 더...
김정일 : 뭘 더 얘기하지요? 기본적 이야기는 다 되지 않았어요?
대통령 : 올라올 때 오전에 확대 정상회담, 단독 정상회담 그렇게 알고 올라 왔거든요. 아침에 얘기 다 했으니까, 오후에 보지 말고 가라 이러면요...
김정일 : 아직 보실 게 많잖아요. 아까도 말씀한 거...
대통령 : 오후에 만남이 없으면요...
김정일 : 정례회담이라고 하는 거, 내가 스쳐 지나갈 수 있기 때문에 얘기하는데, 양 국가가 아닌 이상에는 한 민족끼리니까 정례다, 정례 합시다, 이런 것은 내가 꼭 아버지 집에 설날, 음력 설에 찾아가는 거는 도덕이죠. 간다, 가야 된다, 딱 밝힐 필요 없죠.
대통령 : 수시로 보자고만 해주십시오.
김정일 : 수시로? 문제가 있으면 그저 상호 일이 있으면, 호상 방문 하는 거고...
대통령 : 일이 있으면...일 없으면 볼 일 없다 이렇게 느껴지니까. 그러지 마시고...
김정일 : 그 대신에 격식과 모든 것 다...
대통령 : 좋습니다.
김정일 : 그저 우리 중국 사람들 보고 얘기합니다. 당신네 하고 밤낮 외교하라 그러는데, 옆집에 국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친척집에 다니는 것처럼 하는 거지, 뭐하러 밤낮 외교 보자기를 씌워 가지고 사람이 할 말도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게끔 만드는가. 딱딱하게 공식적인 말만 하게...그렇게 하지 말자. 내가 니네 집에 가는데 뭐 전보 하나면 되죠. 삼촌네 집에 갈 때도 급하게 가면...
대통령 : 예. 좋습니다. 동의하겠습니다. 격식과 형식과 절차에 구애 되지 아니하고 수시 만나 민족대사를 우리가 서로...
김정일 : 수시로 협의한다. 정례화라고 하면 우리사람 다 이해 안됩니다.
대통령 : 그렇게 해 주시고요. 그러면 남측 방문은 언제 해 주실랍니까?
김정일 : 그건 원래 김대중 대통령하고 얘기했는데, 앞으로 가는 경우에는 김영남 위원장이 수반으로서 갈 수 있다. 군사적 문제가 이야기 될 때는 내가 갈수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가 돼 있습니다.
대통령 : 아 그렇게, 우리는 전부 김정일 위원장께서 방문하시기로 약속한 것으로, 우리 국민들은 전부 그렇게 알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정일 : 미사일 문제요 핵문제요, 지금 가자고 해도 전 세계가 놀래서 와락와락 할 때 내가 뭐하러 가겠어요. 그래서...
대통령 : 그래서 재촉을 안했습니다.
김정일 : 그래서 정세가 있고 분위기가 있고 또 남측도 정서가 있는 것인데 지금 한나라 사람들이랑 너무 그렇게 나오는데, 우리가 뭐하러...호박 쓰고 어디 들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그렇게 하려고 하겠습니까?
대통령 :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김정일 : 앞으로 모든게 정상적으로 좋게 발전돼 나가면, 앞으로 못갈 조건이 없지 않습니까. 앞으로 또 정세와...
대통령 : 오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일 : 남쪽 사람들의 정서도 보아야 합니다. 정서를 봐야 되겠고...
대통령 : 이번에 이 많은 공부를 해 왔는데, 위원장께서 그...
김정일 : 이번에 보니까 총 몇 시간 걸립니까? 서울서 분계선까지 오는데 몇 시간입니까?
백종천 : 평양까지 2시간 반 밖에 안 걸렸습니다.
이재정 : 개성에서 평양까지 2시간 반이고요. 서울에서 개성까지 한 50분 걸립니다.
김정일 : 50분. 비행기 이용하는 거 보다 낫습죠?
이재정 : 훨씬 좋습니다. 정말 위원장님께서 앞으로 철길도 열어주시고 땅 길도 열고, 하늘도 이젠 정기항로를 좀 만들어서 우리 시민들, 국민들이 다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정일 : 그걸 위해서 우리가 일 하자는 거 아닙니까. 그건 꼭 실현시켜야 됩니다. 도로, 철길도 앞으로 2차 현대화 해야 돼요. 아직도 우리는 일본 잔재, 과거의 일본 잔재가 남이 있는 게 철길입니다. 일본사람들은 신의주하고 저...경의선만 복선 지었고요 다른 데는 복선이란 게 원래 없습니다. 전쟁 이후에 파괴된 이후에는 우리가 복구도 안했고, 일본 사람들이 남긴 식민지 잔재가... 앞으로 개통한다 하면,김대중 대통령께서 철길 물동수송, 물류수송 하는데 크게 의미부여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동참했습니다. 중량대로에 중량차들이 다녀야 하니까, 내가 상징적으로 연결만 했다. 내가 항상 일꾼들에게 얘기하는데, 실제 열자면 너네 할 일이 많지 않느냐. 부산에서부터 중국, 유럽으로 가는 거 속도 어떻게 보장하느냐...
이재정 : 위원장님, 우선 지금 개성까지만이라도 열면, 개성에서 생산하는 양이 한 달에 1500만불 정도인데, 만약에 이게 내년 말까지 가면 한 달에 1억불이 넘게 생산이 됩니다. 이것이 약 25%가 해외로 수출되고, 나머지 75%가 국내에서 내수로 쓰이고 있는데요. 이 물동량만 기차로 수용한다면 물류비용을 40% 줄일 수 있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하면서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나머지 철도의 현대화, 이건 또 별도의 투자방법으로 해서 해 나가면, 아마 앞으로 국민들의 희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정일 : 그건 반대 없어요. 반대 없어. 아까 경협 문제 얘기했을 때 철도 현대화도 돼야지. 현재는 그냥 했다고 하는 상징적인 것이고, 정상 운영하자고 하면 문제가 복잡합니다. 앞으로 중량화 해야지, 두번째는 한 선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니까 경의선에 한해 복선 문제가 있고... 제가 러시아 사람들에게 얘기했습니다. 경원선 연장은 복선 못한다. 한 선으로 해야 한다. 우리나라 지형이 좀... 지도 봤죠? 어떻게 생겼는가. 남쪽이 좀 유리하지요. 평평하니까.
김양건 : 남쪽도 지금 연결은 못하고... 동해안 쪽으로는 연결이 안됐어요.
김정일 : 그러니까 그것도 지금 했다고만 돼 있지, 실제 운영하자고 달려들면... 앞으로 글쎄요. 올림픽 후에도... 베이징 올림픽도 남측에서 요구한다고 하는데, 그 기차선 이용해서... 시간이 비행기로 가는 것보다 늦지요?
이재정 : 그러나 의미로는 아마 대단히 큽니다.
김정일 : 의미는 무슨, 인기나 끌어서 뭐하게...
이재정 : 아닙니다. 남북이 함께 응원하기 위해서 같은 기차를 타고 간다는데 대단히 큰 의미가 있고, 위원장님의 결단에 따라서는 세계의 평화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절대적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 그것도 이번에 두 정상이 합의했다 하지요 뭐. 응원단은 그 기차를 한번 써 봐라 하지요.
이재정 :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대통령 : 예, 아주 좋습니다. 그것이 북측의 이미지가 아주 좋아집니다. 공동, 이거 하면 사람들이 북측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투자라든지, 어쨌든 국제적인 모든 관계에서 응대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죠.
김정일 : 응원단은 가는 것만 상징적으로 한번 하고, 돌아갈 땐 비행기로 돌아오라 하지요. 그래야 되지 뭐...
김양건 : 예, 상징적으로 갈 때 그저...
이재정 : 위원장님, 이번 기회에 개성공단까지는 한번 열어 주시면 개성공단 발전에도 대단한 기여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현대화 작업도 우리 대통령님 재임 중에 한번 계획을 세워서 일단 착수를 할 수 있다. 그러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정일 : 개성공단까지라고 하면, 서울에서 개성공단까지 온다는 거지요?
이재정 : 그렇습니다.
대통령 : 앞으로 개성공단의 제일 큰 애로는 물류애로 발생입니다. 왜냐하면 원자재 들어가야죠, 제품 나가야죠, 물류 애로가 지금 곧 발생할 것이고요. 그 다음 애로가 사람이 모자랍니다.
김정일 : 개성이 공단 때문에 도로 닦지 않았습니까. 그것 갖고 안 되겠어요?
대통령 : 지금 현실이 쌀 40만톤 6월말까지 시작했는데, 11월 20일이 돼야 다 끝나갑니다. 배로 하니까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요, 우리 생각으로는 어떻게든 개성까지만이라도 물류를 할 수 있게 되고 현대화 작업을 한다면, 개성공단 발전에 기여할 것이고요. 도로 문제도 만일 허락해 주신다면 한강하구에 공동개발을 하면 한강 하구에 있는 공동 모래의 부존량만 해도 10억 입방 미터가 넘습니다. 이걸 돈으로 환산하면 28억불이 됩니다.
김정일 : 골재 생산하는데 돈이 된다면 그건 하십시오.
이재정 : 그건 이번에 위원장님께서 확답을 해 주시면 남북에 굉장한 이득이 되고요. 그걸 통해서 개성-평양 간에 고속도로 사업도 할 수 있을 것이고요.
김정일 : (김양건에게) 좀 쉬고 이야기 할까?
대통령 : 북측이 골재 얘기가 나오고, 조금 전에 NLL 말씀하셨으니까...
김정일 : 한 15분 휴식하고 마저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 : 지금 15분 쉬면 12신데...
이재정 : 오후에 시간 좀 주시죠.
대통령 : 그리고 우리 국민들도 두 번, 세 번, 네 번,만나고 오라고 나한테 짐을 지워 보냈는데, 한번 만나고 가면 노무현 쫓겨왔다 쓸텐데, 위원장께서 날 그렇게 할 겁니까?
김정일 : 요새 기자들은, 특히 남측 기자와 일본 기자들은 아주 영리스럽고, 시류에 민감하고 취재활동에서는 정말 만민을 쥐었다 놨다 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이제 기자가 아니고 작가입니다. 기자들이 모든 이야기를 다 꾸며내고, 저 사람들 보면 지금 기사야 작품이야 하고 내가 그러고 마는데요. 허위...
대통령 : 북측 기자들은 그런 기자들 없죠?
김정일:우린 사실대로 그저...좋으면 좋고, 나쁘다면 나쁘고. 거기서는 자꾸...돈 벌이 하느라고...
대통령:오후 시간 내주시는 게 그렇게 어려우시면 나도 내려갈랍니다.
김정일:그럼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했으니까, 자주 안건이 생기면 오시면 되지 않습니까.
대통령:자주는 다음 일이고 이번 걸음에 차비를 뽑아가야지요,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고 실제로요, 서해문제는 깊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원장님 말씀도 듣고요.
김정일:‘서해문제도 군사회담에서 꼭 상정되고 긍정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양건:아무래도 군사분야는 군 사이에 많이 논의되어야 하니까
김정일:남측의 서해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요구는 무엇입니까?
대통령:남측의 요구라기보다는, 나는 그 부분이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 남아있는 마지막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에 뭔가 문제를 풀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말하자면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고동경제구역도 만들어서 통항도 맘대로 하게 하고, 그렇게 되면, 그 통항을 위해서 말하자면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하거든요. 여기는 자유통항구역이고, 여기는 공동어로구역이고, 그럼 거기에는 군대를 못 들어가게 하고. 양측이 경찰이 관리를 하는 평화지대를 하나 만드는, 그런 개념들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지요.
그래서 해주특구라는 것은 그것 때문에 들어가는 것이지 실제로 한국경제가 지금 더 바쁘게 중요한 것은 조선입니다. 이 조선 부분이 파급효과가 크거든요. 조선 하나 하려면 각종 부품공업이 먼저 일어나야 하는데, 그 부품공급이 해당공단에서도 만들어져야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몇 년 하고 나면 독자적으로 공단 안에서 밖에서 북측 인민들이 창업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작은 공장들 창업하고, 그렇게 해 나가면서 파급효과가 굉장히 큽니다.
우리도 지금 점차 중국에서 푸대접을 받기 시작하거든요, 조선 부품이라든지, 부분조립하는 소위 블럭공장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어서 우리도 중국 아닌 다른 쪽으로 가야 됩니다. 그래서 일부는 필리핀으로 가고, 다른 데로 가야 되는데, 한국 조선공업하는 사람들은 북측에서 이것만 열어주면 그야말로 북측 경제에 획기적인, 기술이전이라든지 효과가 굉장히 크거든요.
그거 하자면 발전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조선단지를 위해서 발전소 하나 지으면 기왕이면 크게 짓고, 수리하고 키우고 해서 주변 문제, 전력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이지, 결코 특구 가지고 그것만 파먹고 도망가는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개성에서 지금 우리가 10만㎾ 쓰고 있는데, 40만㎾까지 송전이 가능합니다. 해주까지 뻗어서 갈 수 있고, 개성의 인력문제가 앞으로, 지금 1차 완공되면 그 인력은 괜찮은데, 2차로 3백만평 들어가면 인력이 부족하거든요. 그 사람들 주택을 다 지어야 하는데, 주택지을 계획도 우리가 없고, 주택문제, 출퇴근 문제 등 북측 인민들이 개성으로 이사를 와야 되느냐, 아니면 상당부분 해주 같은데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느냐, 이런 문제들이 우리가 걱정입니다.
김정일:그거 오후에 하지요 뭐. 오후 1시간 정도. 1시간 반 정도 예견해서... 오침 계시지요?
대통령:아무 때도 좋습니다. 위원장께서 편리한 때에...
김정일:오침 하십니까?
대통령: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김정일:나는 40년 동안 오침이라는 법을 모릅니다.
이재정:대단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김정일:조금 잠들면 그것도 설치고, 많이 자면 골 아프고....
대통령:다른 날은 오침이 되도, 오늘은 안될 것 같습니다.
김정일:(김양건에게) 2시? 2시 반?
대통령:2시 반 좋습니다. 2시도 좋습니다.
김정일:2시 반 시작해서 4시 끝나면...(김양건 부장에게) 내 회의도 저녁시간으로 다 돌려라. 오늘 외무성 사람들 몽땅 모여서 방향을 얘기하려는데... 노 대통령님의 끈질긴 제의에 내가 양보해서 2시 반에 하는 걸로...
대통령:얘기할 거리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김정일:그리고 보도진에다 얘기하십시오. 토의문제가 대단히 많고 심도있는 말들 많이...우리도 작가 노릇 해 봅시다. 그래서 오후에 더 한다. 그렇게 합시다.
대통령:감사합니다.
김정일:고맙습니다.
ㅇ일시: 10.3(木) 14:30-16:25(115분)
ㅇ장소:백화원 영빈관
ㅇ배석자
-南: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백종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조명균 안보정책비서관(기록)
-北: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초반부 녹음 안됨)...
김정일:(청취불가)...내일 내가 떠나시기에 앞서 오찬을 하고자 하는데 이야기가 많아서...오늘 일정을 내일로 미루시고, 내일 오찬을 좀...일정을 좀 늦추는 걸로 제의합니다. 오늘 회의를 내일로 하시고...
대통령:아, 돌아가는 거요?
김정일:모레 아침에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늘 오후 일정을...
김양건:예.(청취불가)...
김정일:대통령께서 결심 못하십니까?
대통령: 큰 것은 내가 결심을 하고, 일부 작은 것은 의전, 경호실과 상의해야 합니다.
김양건: (청취불가)
김정일: (청취불가)
대통령: (청취불가)? 위원장 각별한 배려로 생각하고?
김정일: 아니 뭐, 내가 아니고 우리 계획을 말씀드려? 멋있게 모셔야죠.
김양건: 오후에 열뢰식 있고 그 다음에? 그것은 안 하셔도 뭐?
백종천: (김양건 부장에게)? 김부장님, 실무자끼리 얘기하시죠.
김정일: 그럼 회담을 그저 오늘로 끝내고, 모든 일정을 끝내겠다고 하면 원래 계획대로 하셔도 되고?
김양건: 내일 오전에 평화자동차하고 서해 갑문에 가십니다.
김정일: 보도대로?
김만복: 오늘 비 때문에 아리랑공연이 어떻게 되시겠습니까?
김정일: 그것 때문에 그래요? 안해도 뭐 일 없습니다. 안 보시겠다면?
대통령: 충분히 말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먼저 말씀 드릴까요,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관해서 마음으로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저항감도 가지고 있고 새로운 기회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미국이 군사력을 가지고 개입하고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가지고 정치적 원력을 행사한다. 말하자면 미운나라에 대해서는 경제제재를 한다든지 미국의 국내법만 가지고도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음에는 과학기술의 일종인 기술적인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 패권이라는 것은 시간이 좀 지나면 상호적인 관계로 변화를 형성하고?
군사적인 문제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보아서 아프리카라할지라도 타격이라든지 일시적인 침략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배는 불가능한 시대로 간다고 보기 때문에 과거 제국주의 시대 같은 그런 침략과 지배, 이것을 자위력으로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라크에서도 그런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고 경제·시장규제를 가지고 정치적원력을 행사하는 것도 과연 어느 시기까지 갈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 20년, 변화를 내다보면서 곧 한계에 봉착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본다면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 그와같은 경제권력을 행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일 것입니다.
물론 그러나 개별기업들이 아직까지 국내법을 가지고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황이 변해가고 있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한민족이 슬기롭게 서로 단결하고 또 자주의 문제도 시간을 갖고 서서히 풀어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남측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해봤는데, 제일 미운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중에 미국이 상당숫자 나옵니다.
또 동북아시아에서 앞으로 평화를 해롭게 할 국가가 어디냐,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가 어니댜 했을 때 미국이 일번으로 나오고 제일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지목하고, 그 다음은 일본을 지목하고 다음을 북측을 지목했습니다.
남측에서는 이 변화라는 것도 10년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민족이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환경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또 남측의 지도자로서 그런한 환경의 변화를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전에 내가 말씀드렸듯이 여러가지 노력을 통해 자주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점에 대해서는 의논을 드리고 싶고 그러한 전망을 가지고 풀어나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평화의 문제는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경제문제는 나는 참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이 거의 공개적으로 100억달러로서 북·일 관계에 있어서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직간접적으로 비추어서 많은 사람들이 북·일관계가 정상화되었을 때, 얼마 얼마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100억달러면 10조가 안되는 돈입니다.
내년도 남북협력기금 예산을 1조 3천억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세수가 199조원입니다. 세수의 1%이면 199조원이니까 2조 정도 되는 돈입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에 금액으로만 따지면 일본이 얘기하는 100억불이라는 돈은 5년안이라고 마련할 수 있고,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는 문제는 쌍방이 협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에 대해한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는 과정이 오늘 김 위원장과의 대화입니다. 그 다음에?돈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김정일: 괜찮습니다.
대통령: 베트남과 중국에 우리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연간 약 20조 가까운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남측 경제를 위한 것입니다. 잘 살자고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남측 기업하는 사람들 중에서 중소기업하는 사람 모두가 아깝게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이것을 중국에 투자하는가, 베트남에 왜 투자해야하는가. 먼저 북측에 투자하고 그 다음에 남으면 중국, 베트남을 가야지 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투자하고 베트남에 투자하는 10분의1만 가지고도 200억달러를 연간 투자할 수 있는데?
그런 문제뿐만 아니라 공기업들이 남측에서 도로를 닦고 있는데 도로공사에서 도로를 닦습니다. 도로공사가 닦을 만큼 닦아서 해외로 나갑니다. 알제리, 아르바이잔에 나가고 토지공사도 마찬가지로 알제리, 아제르바이잔에 나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사업을, 말하자면 모두 정부지원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기채를 합니다. 국내에서도 기채를 하고 국제시장에서도 기채를 합니다. 투자하고 투자한 수익으로 이제 갚아 나가는데?
정부가 당장 국민의 세금으로 대북협력자금을 조성, 1년만에 못한다고 할지라도 공기업이 일을 하게하고 공기업이 부담하는 이자와 실제 생기는 이자 사이에 발생하는 차액같은 것을 정부가 뒷받침하면서 그렇게해서 투자를 민간투자를 땡겨가지고 정부가 주도해서 집행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남측에서 주택,?임대주택 건설에 이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민자를 동원해서 집을 지어서, 임대를 놓고 그 임대료를 갚는데 그것이 금리장사보다는 못하니까 그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이렇게 해서 앞으로 10년간 들어갈 돈을 초기에 땡겨가지고 쓰고 10년 15년짜리도 있고 20년 짜리도 있습니다.
땡겨서 먼저 선투자하고 정부가 감당해나가는 이러한 방식으로도 하기 때문에, 그런 해외로 나가는 이 여력을 남북간의 경제에 투자를 하게됐을 때 북측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고 남북경제가 한꺼번에 성장하게 되고 이렇게해서 동북아시아에 말하자면 우리가 선진 강국을 남북이 함께 만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남북이 열리면, 철도 그전에 말씀하셨습니다만, 대중국 물류사업을 할 수 있고, 러시아, 광궤라든가 있지만, 우선 나진, 선봉, 핫산 그쪽에서 항만건설하고 해서 물류 시작해서 이것을 경원선으로? 또는 동해선은 실제로 물량이 없습니다. 그쪽에서는 물량이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러시아로 가는 이 철도를 하게 되었을 때 사업성이 있다고 봅니다.
동북아시아 에너지 협력기구 같은 것을 북측이 결심만 해서 공동사업을 하자고만 하면, 우리는 사할린쪽에 있는 에너지 파이프라인으로? 파이프라인으로? 저기 이르쿠츠크? 중국으로 지난번에 우리가 파이프를 했는데, 이것을 중국으로 해서 서해바다로 해서 해저로 땡겨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북측을 통과하면 훨씬 빠른 시일안에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근데 인제 이게 되자면 또 북측경제가 함께 발전해 가야되는데, 농업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이 중요한데, 농업부분에 있어서는 기업적인 면보다는 민간에서 자발적, 한민족끼리 돕자는 자발적 기여와 정부가 주도해 나가는? 농업부문에 있어서는 그렇습니다. 보건·의료 부문도 기업적 수익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남북 당국간에 협력을 해야 되고, 당국간 부담이 주로 농업이나 보건·의료쪽에 가고? 그 다음에 인프라 구축이 있는네 철도,도로, 통신, 항만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거 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역시 이 부분은 우선 순위를 먼저 생각해서 지역을 집중적으로 먼저 발달시키고 점차 다른 곳으로 확산되어가는 속도에 맞춰서 그 인프라 구축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특구를 이야기하는 것이 북측을 개혁·개방으로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청취불가)으로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합자법과 합영법에 근거한 경제협력이 너무 어렵고 성공이 되질 않아서, 그래서 성공이 안되는데 반해 특구에서도 빠른 속도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개성공단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고 있지만, 조금 가면 지금 인제 1단계 1차분 사업에서는 여러 종류의 기업이 참여하고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술인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들어오면 어떤 기업이든 협력 업체가 생기고 납품 하청 이런 거래들이 생기고 여기서 지금 이미 개성공단의 26개 시범 사업 중에서도 공장장을 북측 사람이 맡아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기술력이 확보되면 곧 이사람들이 여기서 월급받고 있는 것보다는 나가서 개성시내에 가서 공단밖에서 공단안에서도 할 수도 있고 시내가서도 할 수 있고 곧 스스로의 기업들을 창업하게 되는 과정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같은 기업을 창업할 수도 있고 또 거기에 납품하고 부속거래를 하는 이런 거래를 하는 기업들도 확신될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기술이전, 전수라는 것이죠. 연구소의 기술수준은 북측의 기술수준이 높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업적 시장에서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연구소 수준을 생산현장에 적응시키는 기술은 저희가 높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근데 지금 개성공단의 일부 기업들은 이미 중국에서도 높은 수요를 내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생산력이 보다 높단 말이죠. 불량률도 훨씬 낮구요. 아주 큰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성공단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것이죠. 그 씨앗들이 뿌려지고 있잖습니까?
단지 그 오늘 내 점심 먹으면서 남측 수행원들 보고 우리가 말을 조심하자, 우리식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 사실 불신을 야기하고 오히려 우리에게 방해가 된다, 개혁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경제의 성과를 생각하는 것이죠.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중국 사람들을 만나면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상대였습니다. 지금 남측의 어떤 사람도 중국의 체제에 대해서 일언반구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베트남 체제에 대해서 그 체제가 좋다 나쁘다 일체 말하는 사람이 없고 가서 남측 체제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 없구요.
이번에 중국에서 중국어 시험을 봤는데 미국의 마치 토플 토익시험 같은 시험을 봤는데, 16만명이 시험봤는데 11만명이 우리 남측 사람? 체제에 대해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린 북측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 약속일뿐만 아니라, 도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
독일식의 급작스런 통일은 독일이 엄청난 비용을 부담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능력도 없고 독일은 유럽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이지만 우리는 그렇지도 않고?
때문에 거기에 따른 비용과 혼란을 감당할 수 없고 그럴리도, 있을 리도 없겠지만 어느 것이 이익이냐고 가정했을때 우리는 북측이 굳건하게 체제를 유지하고 안정을 유지한 토대 위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자는 말씀드리고 싶고 오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조선공업 같은 것은 우리 남측을 위해 돌파구를 열어 주셔야 됩니다. 난 솔직히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북측의 입장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남측의 이익만을 얘기를 하더라도 북측이 해로울 것이 없잖습니까. 지금 이제 우리가 자주문제와 눈치를 보는 문제? 이런 문제도 조금만 참아주시고요.
NLL 문제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나는 제일 큰 문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장관급 회담을 여느냐 안 여느냐 했을 때, 장성급회담을 열어서 서해평화문제 얘기 진전이 안 되면 우리는 장관급 회담도 안할란다 이렇게 한 적도 있습니다. 서해에서 1차적으로 상호 교신하고 상호 알려주고 했는데, 이행은 좀 잘 안 되고 있지만, 문제는 인제 북측에서 NLL이란 본질적인 문제를 장성급회담에 들고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제로 다뤄라 지시를 했는데? 반대를 합니다. 우선 회담에 나갈 장소부터 만들어야죠. 단호하게 다뤄라 했는데 그 뒤에 그러한 기회가 무시되고 말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큰 그림을 하나 그려놓고, 어로협력 공동으로 하고 한강하구 공동개발하고, 또 자유로운 동산? 특히 인제 대충 지역이 개발이 되면 해주를 비켜서라도 개성공단 연장선상에 계획이 서고? 되면 그 길을 위한 통로, 통로를 좁게 만들게 아니라 전체를 평화체제로 만들어 쌍방의 경찰들만이 관리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그쪽이 서쪽은 공동어로구역을 만든다, 오른쪽에는 비무장지대에 있어서의 문제와? 많은 제안을 해왔습니다만, 평화생태공원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중무기 있는 부문들이라도 우선 철수하고 점차적으로 GP도 철수하고, 그렇게 해서 자연자원도 보호하면서 남북이 협력하는 것이 큰 수입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힘을 모아 협력하는 것이 상징적인 시대를 만드는? 그렇게 하는데? 참 해주는 원체 완강하게 말씀하셔서 어렵습니다만?
김정일: 해주문제는 내가 오늘 점심에 가서? 정몽헌 선생하고 정주영 선생이 부탁해서 정몽헌 선생하고 토론할 때 이야기드렸습니다. 해주는 그 내가 이런 입장을 그때도 취했으니까. 정몽헌 선생이 뭘 제기했냐 하면 해주는 해주시를 다 하자는 것이 아니고 해주항만 이용권 달라. 이용권 달라면 자기가 항을 유지하면서 개성을 염두에 두고 연결시키는 안 하면 개성 아마 철길도 문제가 안 설테도 육로도로도 없을 때고 하니까 그 중앙분계선, 판문점 이외에는 일체 거래가 안되니까 그때 당시 요구가 1999년도(김양건, 연도 상기에 도움)에 제기해서 항만 갖고 어떻게 하려고 하냐 하니깐 항만 경영권 가지면 자기가 거기서 배로 들이대서 개성하고 군사분계선 아닌 새 통로를, 경제통로를 만들어서 개성에다 땅 만들면 자기가 하겠다.
대통령 : 지금도 해운통로는 필요합니다. 개성공단만 해두요. 지금도 해운통로는 필요한데..
김정일 : 그래서 오후에 가서 점심식사하고 군 장성들 좀 오라. 와서 해주 그때 99년도 그때 그 결심을 되살릴 때면 어떤 문제가 있겠냐 하니까, 답이 문제 없겠습니다.
그러면 노 대통령님하고 만나는데 항을 당장 개방하는 걸 내가 결심하라는가, 그건 문제 없겠습니다. 군에서 그렇게 나오고..해서 아직 내가 해주를 준다는 게 없고 그때 해주항을 해상으로서 물동량을 개성에다 지원하겠다 그렇게 합의를 보자고 하는데 정몽헌 선생이 2000년도 6월달에 와서는 그럴바엔 뭐.. 그분이 좀 막내가 됐는지 그 집안에서 떼를 많이 써요.
계속 앉아서 그렇게 선심쓸 바엔 그 좀 해주근방에 뭘 좀 줘야 되지, 그저 김만 쐬서 뭘 하겠는가. 약주 좀 들어가니까 그것도 떼를 쓰더구만요.
대통령 : 나도 막내입니다.
대통령/김정일 : (웃음)
김정일 : 그러면 해주. 그.. 개성을 확고히 하는 조건이면 해주항을 주겠다. 주는 것도 당시, 인제 와서.. 땅을 좀 내라 하니까 줄 수 있다. 해주 옆에 강령군이라고 있습니다. 강령군 땅을 앞으로 개성이 잘 되면 공업단지 해보라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 : 예 그래서 그...
김정일 : 그래서 그거는. 그런데 조건이 하나있는 거는, 군부에서 내가 결심하겠다하니까 결심하시는 그 근저에는 담보가 하나 있어야 한다. 뭐야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 시대 51년도에 북방한계선 있지 않습니까?
그때 원래 선 긋는 38선을 위주로 해가지구. 그거 역사적 그건데, 그걸다 양측이 포기하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하는 첫단계 기초단계로서는 서해를 남측에서 구상하는 또 우리가 동조하는 경우에는 제 일차적으로 서해 북방 군사분계선 경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하는 법률적인 이런거 하면 해상에서는 군대는 다 철수하고 그담에 경찰이 하자고 하는 경찰 순시...
대통령 : 평화협력체제, 앞으로 평화협력지대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해야 합니다.
김정일 : 그거 해야 합니다.
대통령 : 그것이 기존의 모든 경계선이라든지 질서를 우선하는 것으로 그렇게 한번 정리할 수 있지 않은가..
김정일 : 해주문제 같은 것은 그런 원칙에서 앞으로 협상하기로 했다, 앞으로 그런 문제는 군사를 포함해서, 평화지대를...
대통령 : 군사문제 이 모든 것들을 군사적 질서, 그렇죠. 평화...
김정일 : 그래서 내가 다시 한번 지도를 봤는데 그때 그 양반이 생각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해주항에서 강령군 쪽으로 오게 되면 개성하고 연결되는 철교가 있습니다. 그 철길만 조금 손질하면 그저 개성에서부터도 해주로 기차로 오고, 해주항에서 기차로 개성으로 가고.
대통령 : 이것이 중요한 거이 평화문제와...
김정일 : 그 양반이 그걸 많이 생각했는데 그 때는 이런 법률적인 문제가 많이 구속받을 때니까, 그 때는 그저 자꾸 결심해 달라 결심하 달라 부탁을 했는데, 지금 서해문제가 복잡하게 제기되어 있는 이상에는 양측이 용단을 내려서 그 옛날 선들 다 포기한다.
평화지대를 선포, 선언한다 그러고 해주까지 포함되고 서해까지 포함된 육지는 제외하고, 육지는 내놓고, 이렇게 하게되면 이건 우리 구상이고 어디까지나, 이걸 해당 관계부처들에서 연구하고 협상하기로 한다.
대통령 :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평화 문제, 공동번영의 문제를 다 일거에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거기 필요한 실무 협의 계속해 나가면 내가 임기 동안에 NLL문제는 다 치유가 됩니다.
김정일 : 그건...
대통령 : NLL보다 더 강력한 것입니다.
김정일 : 이걸로 결정된 게 아니라 구상이라서 가까운 시일내 협의하기로 한다. 그러면 남쪽 사람들은 좋아할 것 같습니까?
대통령 : 그건 뭐 그런 평화협력지대가 만들어 지면 그 부분은 다 좋아할 것입니다. 또 뭐 시끄러우면 우리가 설명해서 평화문제와 경제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포괄적 해결을 일괄 타결하는 포괄적 해결 방식인데 얼마나 이게 좋은 것입니까? 나는 뭐 자신감을 갖습니다. 헌법문제라고 자꾸 나오고 있는 헌법문제 절대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더 큰 비전이 있는데 큰 비전이 없으면 작은 시련을 못이겨 내지만 큰 비전을 가지고 하면 나갈 수 있습니다. 아주 내가 가장 핵심적으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문제를 위원장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거죠
김정일 : 평화지대로 하는 건 반대 없습니다. 난 반대없고..
대통령 : 평화협력지대로...
김정일 : 협력지대로 평화협력지대로 하니까 서부지대인데 서부지대는 바다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 바다문제까지 포함해서 그카면 이제 실무적인 협상에 들어가서는 쌍방이 다 법을 포기한다, 과거에 정해져 있는 것, 그것은 그때가서 할 문제이고 그러나 이 구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발표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 : 예 좋습니다. 실제로 한강하구에 골재 채취문제도 다 포함된 것입니다. 이 양측의 골재량이 전체적으로 약 28억불 정도가 되는데, 이 골재를 치우면 임진강 수위가 1?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수방효과로 굉장히 좋은 효과가 있고 또 뭐 운반선이 왔다 갔다 하고 이렇게 되면 이 일대가 그러면 나중에 인천서 개성공단으로, 남측에서는 해주얘기가 없을 때 인천서 개성공단으로 고속도로를 설치하는 것을 생각했는데 또 해주가 열리면 새롭게 구상해 봐야겠습니다.
남측에서 해주쪽도 가깝고 개성쪽도 가까운 이런 큰 길을 내서 인천 국제공항을 잘 활용하고 남쪽에 비즈니스 지대하고 북측의 생산지대 이것을 엮어 놓으면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중국, 베트남이 뭐 매년 7~8%의 성장을 계속해나가는데 북측의 노동자들이 자세만 딱 바꾸고 하면 그 사람들 보다 훨씬 우수하죠. 훨씬 우수한데, 뭐 더 뒤처져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그 신뢰를 가지고 가고, 인프라 문제인데요, 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하는 데에는 보건 의료 이쪽이 중요하고 농업 중요하고요 궁극적으로는 경수로문제 뭐 그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해주가 되면은 전력문제 도로문제 항만문제 그 지역에 관한한 얘기가 되도록..
되면 주변지역으로, 또 우리가 인제 북측에 도로를 해결해야 되는데, 철도든 도로든. 그런데 산업도 없고 사람도 없고 왕래가 많이 않은데다가 투자한다고 하면 과연 국민들이 그 도로 투자해서 나중에 아무런 수익도 안 생기는데, 왜 투자하느냐 그런데 이제 예를 들면 조선특구가 만들어 졌다. 그러면 특구와 특구사이에 물류가 많이 생기는데 투자한 사람들이 거기에 남측기업들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중국기업들도 들어올 수 있고, 또 어디 다른 기업들도 들어올 수 있고, 유럽의 기업들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데 와서 물류가 막혀있는데 이거 해결해야 되지 않느냐.
우리도 지금 남측의 도로의 절반 정도가 유료도로입니다. 유료도로라는 것은 몇년뒤에 본전이 뽑히고 나면 국가로 기부채남하고 나면 무료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경제가 성장하기까지는 유료도로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데 대해서는 남측정부가 거기서 수익의 차이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참여해가지고 전적으로 그것을 하기는 어렵지만 할 수 있고, 그래서 남측에서 학자들이 도로 닦는데 90조가 들어가느니 하는데 다 헛소리라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남측은 도로 닦는데 비용이 90%, 서울같은 데는 95% 이상이 보상이 필요한데, 북측은 국유 토지이기 때문에 보상이 안 들어가니까 남측에 건설하는 도로의 10분의 1정도면 건설할 수 있거든요. 이런 문제도 우리가 이제 연구를 하고 해나가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력문제도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단천에 광업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있는데 많은 전력이 필요합니다. 수력 개발을 위원장님께서 지시를 하셨습니다만, 수력 개발이 아무리 많이 해도 400만kWe를 넘어갈수 없는데 남측이 지금쓰고 있는게 6,000만kWe를 쓰고 있는데, 결국은 전력을 해야 합니다, 하는데. 그런 문제에 있어서도 우선은 답사를 해나가고 점차 점차 원전으로 바꾸어 나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전력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단천에서 우리가 광물을 공동개발해 나가게 되면 경공업 원자재들을, 우리가 이미 일부됐습니다만은 차관인데 나중에...
김정일 : 예.. 그게 8,000만불 정도
경제인들이 아마 어제 내가 조선소 주는 경우에 동해쪽으로 주는 경우에 군사적으로 피해보지 않는 데가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우리 군대 국방위원회 동무들 의견은 그저 원산을 원래 꼽았는데 원산은 내가 그 반대하는 이유가 원산이 그 휴양지고 만이고, 원산만 만안에다가 과거 일제시대 그 건설했던게 있는데 배수니 차수니 있는데 그거 전후에 복구하자고 하니까 편하게 해먹자고 그자리에 했는데
그 오물이 만안으로 자꾸 들어가니까 그 다른데서 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 뭐야 뒤에는 마식령이 병풍처럼 있으니까 그 도무지 그 정제, 정화할 수 없으니까 그 잘못하면 모두 다 몽땅 바다에다 밀어넣기 때문에 그것은 안된다.
송정호에 와서 자꾸 오염이 되고 그거 안된다. 그래서 앞으로 점차로 원산 시내에 있는 철도공장하고 조선소 다 처례해라. 앞으로 철폐할 계획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대통령 : 뭐 정해주신 대로 할 수 있을 겁니다.
김정일 : 통천에 금강산 개발이다 뭐 다 통천에 있으니까. 그 수송량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 조선소 물동량들이 100% 해상으로 해야 된다는 소리인데 ?
대통령 : 바지선으로 끌고 갑니다. 바지선으로 다 끌고 갑니다.
김정일 : 동쪽은 거기가 우리가 승인할 수 있고 서해라 한다면 그 남포조선소, 그건 저 경제인들이 타산돼야 하겠으니까.
김만복 : 예 남포조선소도 필요한 것이 거기는 수리업을 그쪽에서 하는게 좋다고, 지금도 기히 좀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 지금 그 마산 앞바다 진해만이 이 청정지역인데요, 옥포 조선소 거제 옥포 조선소가 있는데 바다에 전혀 오염이 없습니다. 우선 조선은 오염이 안나오고, 인제 폐선 해체만 아니다면 신조선 한다면 오염이 없습니다.
김정일 : 정주영씨가 그거 폐선업하면서 원산 와보고 거기다 우선 1차적으로 해보자, 한두번 해보다가 수지 안맞ㅂ으니까 그 다음에 통천으로 하겠다. 그곳은 자기 고향이니까 거기에다 한번 차려보겠다 했는데 그러다 말았습니다.
김정일 : 정주영씨가 그거 폐선업하면서 원산 와보고 거기다 우선 1차적으로 해보자. 한 두번 해보다가 수지 않맞으니까 그 다음에 통천으로 하겠다 그곳은 자기 고향이니까 거기에댜 한번 차려보겠다 했느데 그러고 말았습니다.
대통령 : 지금은 남측의 조선업이 전체적으로 위기로 가고 있습니다. 중국이 세계 치고 올라온다고 보니까요. 우리의 LNG탱크선 이라든지 이런 고급기술을 갖고 왕신있기 때문에 금액 쪽으로는 중국에서 따라올지 모르겠지만은? 물량으ㅜ로서는 중국이 앞서 있지요. 우리가 이제 고급화해 가지고,? 북측과 협력을 해가진다고, 한 블록을 중국에서 만들어가지고.. 그런 것들이 얼마든지
김정일: 그건 경제인들에게 앞으로 총리급회담에서라든가 상급회담에서...동의합니다. 조선업에 대한..
대통령: 조선단지.. 뭐.. 이런 정도로만.. 표현, 말씀해 주시면..나머지 문제는 구체적으로 우리들이..
이재정: 중국에 투자하는 섟만 해도 한 17억불이 넘거든요.. 그래서 같이 우리가 전세계 조선업계 10대 회사 가운데 7개가.. 그겄때문에 북의 기술·인력도 양성하고 조선업공에 들어가는 인력이 건설, 용접 다 들어갑니다. 기술인력을 중심으로 16~8 양성할 수 있는 협력사업이 돼서 확실 우리에게 아주 굉장히 좋은 미래가 열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 조선업은 앞으로 기계공업이라든지.. 지금 우리 한국 조선업이 처해있는 또하나의 고민이 철강 부족. 철강 부족 때무에 중국 이 철강을 다 빨아가는 바람에..
내 생각에 그런 부분은 말씀드렸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북측에서 뭐.. 예를 들어 나진·선봉에 대해서도 할 일이 많아요...
김정일: 나진·선봉은.. 내가 모스크바에서 푸틴대통령하고 약속하기를 그 사람들이 그 나진 선봉항을 그 왜.. 과거 소련시기때부터, 소련 군대 현재 지금 러시아 군대, 그 다음에 러시아 정부, 원동정부를 비롯해서 그게 지금 울라지스토크(블라디보스톡)가 제일 유일한 자기네 물류 항구로써, 그게 지금 그쪽으로 달라 할라고 하는데, 그게 그사람들은 겨우내 항이 업니다. 나진 선봉은 얼지 않으니까.
소련측에서는 소련 군대들이 태평양 함대들이 먼먼 바다에 나가 일하다가도 들어올 때는 울라지스토크 가기 전에 나진 선봉에서 다 배를 정비하고 그 다음에 자기 기지.. 울라지스토크 글어가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이 그 후예들이니까 그 후예들도 역시 미련을 가지고 아직 나진·선봉지구하고 울라지스토크와 자매항으로 해달라..
내가 모스크바 갔을 때도.. 그 사람들이 하자.. 당연히 하라.. 원유 가공시설 공장에 유일하게 나진·선봉지역에 있으니까. 지금 그 사람들이 노력헤서 가 시작되고 그 사람들이 철길 높이 쌓아가지고 원동과 나산까지 자기 특수.. 랩을 달아가지고 원유가공설비, 원유가공때문에 그 기차를 이용하고.. 앞으로 그 사람들 설계가, 부산서부터 서부철도 있지 않습니까? 서부 철도로 해서 동해선으로 넘어가는 것도 그사람이 구상하기 때문에 나선은 거의 다 러시아 사람들이 가지겠다. 나선문제도 지금 복잡합니다. 중국, 몽고 해상을 끼고 나갈라니까.. 흑룡강성 같은 거는 바다 끼고 나갈라니까.
김양건: 길림성도 같습니다.
김정일 : 지금 그건데, 러시아 사람들이 다..
대통령: 그게 동해 경제권이라고, 환동해 경제권이라는.. 우리 한반도가 환황해 경제권, 환동해 경제권이라고 그림을 그려놓고 생각해보면..나진, 원산, 부산,. 다 아주 중요한 거점이 되거든요.. 일본 사람들이 물류회사를 일본 자국내에 만들어놓지 안혹 부산으로 가지고 옵니다.
자기들이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을 부산으로 갖다놓고 부산에서 다시 서쪽 영역으로 이렇게 중요한 물건들이 전부 거기 모여서 중국도 나가고 러시아도 가고 똑 그렇게 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앞으로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가 최대한?
김정일: 그건 앞으로 해 가면서.. 남측 기업도 필요하고 필요할 경우 검토돼서 열수도 있고.
대통령: 신의주 같은 곳도 상의해주시면? 어떤 방향으로 가시고자 하는지? 그쪽에도 내가? 설득을?
김정일: 신의주는? 지금 중국 사람들이 자꾸? 한동안 나? 몰랐는데? 누구지? 양빈이?
김양건: 예 양빈입니다.
김정일: 그 사람들 문제가 복잡해 가지고.
김양건:원래 하다가?
김정일: 자꾸 한동안 알고 보니까 중국 사람들 자체가 자기의 뜻과 어긋난다고 그러는데?
대통령: 중국의 이해도 반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서로 좋은 방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이 지금 한국 저기 인천국제공항이 운영 시스템에 효율성 가지고 세계 1위를 2년 했고 올해도 아마 1위를 할 것입니다. 부동의 1위를 할 것인데 그건 뭐냐 하면 같은 시간에 손님과 물건을 가장 빠르게 가장 편하게 하는 운영하는 노하우거든요? 그걸 맡아 있는 사람도 안목이 좋고 외국 기업에도 많이 근무하면서 안목이 좋고 해서 그런 사람이 와서 아이디어를 내 보라고 하면?우리 정부에서 우리가 해온 우리 정부에서 소위 한반도 물류 사업에 대해서 전부 구상을 짜 가지고 내놓으라고 해서 전국 그래서 중국의 예를 들면 저희가 원전 진출이라든지.. 또 고속철도 진출이라는 것이라든지 쩡칭홍 부총리와 저와 협의를 해 가지고 전부 들어가도록 서로간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원전기술을 가지고 오는데 미국한테 의존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캐나다, 프랑스, 한국이 네 번째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찬성해 가지고 이미 작년에 발주한 것, 금년에 발주한 거에 주기기를 우리가 공급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요번에 제가 3주전에 갔다왔는데 저쪽 얘기가 주기기 공급에 대해서 더 나가가지고 원전 운영까지 와서 해 줘야겠다. 우리한테 뭘 배우려고 그러느냐 하면은 빠른 시간 내에 전체에 설계기술 건설 기술 운영 기술을, 우리가 국산화를 했거든요. 그것을 배우겠다. 고속 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빠른 시간 내에 한 거에 대해서 우리 것을 배우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현재 협력이 굉장히 잘 됩니다. 그렇게 레벨을 올려주시면은.. 걸려 있는 거 다 해결해 나가면서 얼마든지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 좋습니다. 반대 없습니다. 앞으로 좌우간 이런문제, 집행문제 가지고 아마 총리급을 아마.. 상급회담을 너어서서 총리급을.. 시기적으로 어떻게 작전할 것인가 지니하게 전문가들끼리 토의해 나가고.. 노 대통령께서 제기한 대로 조선소를 건설하겠다. 투자하겠다.. 해주 공단으로 보나, 뭐라 그러겠습니까.
대통령 : 특구로 보십시다. 그래서 전체를 서해 평화협력지대로 선포를 하고, 그 안에 한강하고 개발. 해주공단.. 공단이라고 해도 좋고 특구라도 해도 좋고.. 다 좋습니다. 그 안에 공동어로구역 만들고, 북쪽에 생태평화공원까지 되면..
김정일 : 그건 아니.. 정전협정 문제가 우선.. 그게 풀어진 조건에서.. 평화협정을.. 중간에 시범적으로 하고.. 그렇게 되야지 지금은 아마.. 아직 그 전단계로서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두 부장이 문서화 하십시오..
김만복 : 예, 알겠습니다.
김정일 : 남측의 반응은 어떻게 예상됩니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대통령 : 없습니다.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만든다는 데에서 아무도 없습니다. 반대를 하면 하루아침에 인터넷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바보되는 겁니다. 실제로.. 뭐가 달라졌나 하면은 이전하고 달라진 것이 이제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북측에 대해서.. 반대에 앞장서 왔습니다. 이제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북측과 같이 손잡고 가야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일본·중국..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이건 뭐.. 혹시 오해될까 싶어 조심스러운데요.. 어쨌든 북측이 경제발전해 봐야 하니까. 인민의 생활도 중요하고, 경제교류나 협력사업이 중국쪽과 많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남측과는 불신 때문에 막혀있고.. 자꾸 일어나다 보면은 전 인민의 생활과 산업이나 경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 경제권이 되어 버릴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 걱정도 하거니와 실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속에 이야기 되는 것은 중국에 사는 조선상을 통해서도 많이 얘기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의 경제전략이 영토나..제도나... 경제분야에서는 동북3성이 아니라 북을 염두에 두고 동북 4성으로 생각합니다. 경제면에서는 우리 인민들이 좋아합니다.
대통령 : 한민족 정체성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남측에서 가장 걱정하는 문젭니다.
김정일 : 경제적 측면에서 동북 4성이다. 중국사람들은 좋은 의미 말하면서 교통문제를 풀자면서 얘기되는데, 단동~평양, 자기네 식. 자기네 규격과 같은 고속도로를 1년 반 2년내 자기들이 만들고, 압록강 다리를 철교와 동시에 고속도로 다리를 놓겠다. 우리나라에게 부담이 안되게 자기네들이 하겠다. 좋은 의견입니다. 우리를 도와주고 하자는데 좋고...그러나 동북에 있는 조선사람들은 중국사람들에게 4성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 정치인들보다도 인민들이 더 신경이 더 예민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대통령 : 동북 5성으로 만들어 가지고 남측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부르라고 하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동북 3성과 연해주 이젠 뭐 연해주쪽에 있어서 남북협력도 장차로 구상해 볼 수 있어...
김정일 : (웃음) 좋은 일을 하자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럴싸하게 비치는 말들이 많고, 실제 이간시켜서 모든일이 잘 안되게끔 하자는 것도 있고 선의에 대해서 찬물 던지는 그런게 있습니다.
이재정 : 대통령께서 이제 서해안 경제협력·평화지대 이런 말씀을 쭉 해주셔서 좋은 제안으로 위원장께서도 받아주셨는데, 우리가 개성공단 해보니까요. 어려운 점이 딱 하나입니다. 중국의 심천지구가 특구로 성장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통행의 자유... 근데 여기 개성공단에는 실지로 통행의 자유가 없습니다. 거기 기업하는 사람들도 저녁 5시면 CIQ로 나와야 하고 들어가려면 3일전에 신청해야 되고, 그래서 제일 필요한 문제가 통행과 통신.. 이 두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개성공단이 경쟁력을 가지고 빨리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돼야... 여러가지에 대한 기업인들의 기대가 있으리라 생각이 돼서.. 위원장께서 이 두 가지 문제는 꼭 해결해 주시면..
대통령 : 말씀을 한번 드릴려고 했는데요. 총리급 회담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내가 그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 개성공단 할 바에는 똑똑히 해주어야... 국방위원회 원래 생각도 그렇고... 민족경제협력위원회 거기서도 역시 통신이라든가 모든 게 개성지구가.. 단말이 돼야 합니다. 이게 북반부와 연결이 안돼야.. 단말이 되는 것이 기술적으로 담보되면 개성지구 통행, 통신 개방시키고 활성화시켜 나가겠다. 저번에 시멘트도 부려 봤지요. 우리가 부려봤습니다. 거기까지 기차가 마음대로 왔다갔다 합니다. 실무적으로 토론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재정 : 개성 근로자들 통근을 위해서라면 개성역까지는 아마 이걸 해야 통근에 도움이 될겁니다. 사람이 많으니까요. 지금 버스로 실어 나르는데요. 이 버스가..
김양건 : 여기 열차다니는건 또 별개 문제입니다. 화물이니까요. 화물은 봉동역...
김정일 : 여기에는 별도로 또 만들라 하지..
대통령 : 항상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할라구 합니다.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되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평화협력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군부라는 것은 항상... 북측에서도 우리가 얘기 듣기로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김정일 : 완고한 2급 보수라 할까요?(웃음)
대통령 : 사업에 적극 참여하셔서 군부가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해서 그래서 군비를 강화하는 필요있는 곳을 강화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해가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제일 중요한 것은 군사적 보장... 합의가 되면 군사적 보장이 따라와 주어야 하는데..
김정일 : 그건 얘기를 하면 길어질까봐 다음 기회에 얘기를 할 수도 있고 기본, 서두에서도 얘기했지만, 미국과의 문제가 우선 기초적으로 안정이 되면 국내적으로 쌍방이 대치하고 있는 분계선은 앞으로 점차 전환되지 않겠는가. 전환되는 걸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 군부가 아마 그래서 법석을 떠는 게 아닐까. 모든게 정황이 주변 정세가 안정이 되고 이렇게 되면 당연히 군부가 있을 자리가 없죠.
이재정 : 위원장님 제가 통일부 장관이라.. 관심가지고 있는 부분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위원장님께서 늘 생각하시는 이산가족 문제입니다. 금강산 면회소가 거의 완공.. 금년 12월에 사무국에 지원을 받고 내년부터 상시 면회가 될 수 있도록 위원장님께서 해 주시고..
김정일 : 그야 모..
김양건 : 그것은 지금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김정일 : 지금 텔레비로 모 한다구만..
김양건 : 화상상봉도 하고 편지...
이재정 : 화상상봉 해보니까요. 이게 속만 타고.. 손도 못잡아보니까요. 사실은 더 안타깝더라고요.
김양건 : 그런거 있습니다. 다 연로하기 때문에. 저 멀리 지방에 있는 늙은이들 한번 여기 데려오고..
대통령 : 화상상봉은 병행하고 면회소 상봉은 상시적으로 해주십시오. 욕심을 좀 더 부리면 생사확인이 중요합니다.
김양건 : 흩어진 가족들 확인하는 과정에 생사확인을 많이들 하고 있습니다. 한번 하고자 하면 수백명씩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재정 : 우리쪽에 기다리는 이산가족이 9만3천명입니다. 이분들이 일년에 3천-4천명이 연로해서 가시니 이 사업을 빨리 성과있게 해서.. 서둘러 주십시오.
김정일 : 실무적으로 생사확인이라는 것은..
김양건 : 명단을 보내오면 전국을 다 조사해서 확인 합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김만복 : 통일부 장관은 자기 소관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소관은 아닙니다만 두 가지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자연재해 공동방지를 위한 농업협력과 보건의료 협력도 다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 일반적으로 농업협력을 해야하고, 자연재해 공동방지 부분에서도...
김만복 : 지금 농림부장관이 와 있습니다.
김양건 : 그거 어차피 농업·보건은 내각에서 하는 일이니까 부총리급에서 이제 새로운 협상기구를 내놓으면 거기서 포괄적으로 하는 게 합리적인 걸로 봅니다.
대통령 : 한줄에다 이거 하나로 묶어서...
김정일 : 묶어서 한줄로...
이재정 : 대표단에 보건·농림부장관도 같이 이 문제를 위원장께서 깊은 관심을 가지셔서 총리·부총리급 회담에서 아주 성과있게 일을 진행할 수...
백종천 : 이산가족들 간단한 편지 왕래는 할 수 있도록 요청드립니다.
김정일 : 우리 이번에 총리급 회담이라는게 원래 제기된 게 없지?
김양건 : 예 없습니다.
김정일 : 한두번 총리급 회담 하는 척 하다가 흐지부지 해지는 게 북남 관계의 표준이 아닌가. 제 세계에 맞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만들어 내야지 과거에 하던 제도가 미국 사람들한테도 그랬습니다. 올브라이트한테.. 과거 50년 전쟁이 과거 조상들이 만들어낸 허물을 왜 현실의 인간들이 와서 변명하고 책임져야 하고 구실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올브라이트도 공감했습니다...
북남관계도 그렇습니다. 과거 조상들 거를... 모든 게 시작과 맺음이 있어야 되는데... 계속 그렇게... 그게 내 그랬어. 봉건이 심한 조선에서만 이게 있을 수 있다.
유산은 그저 계속 끌고나가는데 지금. 나쁠 땐 나쁜 것 어떻게 그 청산하면 되겠는데... 그래서 내가 앞으로 이런 면에선 모든 망념에서 우리가 새롭게 갱신시킬 것은 갱신시키면서 내 도덕관에서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조상들이 그렇게 하는데 왜 우리라고 이렇게 하겠나? 이 시대는 이미 지났단 말입니다. 20세기는 20세기의 모든 일이 다 20세기에서 시작됐고 20세기에서 끝났고 20세기 중도에서 끝난 것도 있고... 새 세기 아닙니까? 새 세긴데... 세계 누구도 지금 20세기 것... 왜 19세기 것 소리를 하냔 말이야... 그 못된 일 한 것들만 자꾸 상기시켜 가지고 이렇게 하는가?
내가 저 미국사람들 보고도 이야기 했습니다. 올브라이트한테도. 그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왜 그 조상들... 지금의 정치인들이 50년 전쟁에 관여한 사람이 있나? 그 사람들이 다...
대통령: 위원장 뜻을 잘 알겠습니다.
김정일: 그리고 새로운 관리법, 관계법, 윤리법. 도덕법 만들어야죠. 확립하고, 새 세긴데... 기술 분야는 다 지금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다 넘어왔는데 지금... 아날로그를 찾으려고 해도 아날로그로 갈 수가 없는데 지금은 디지털이 막아놔서... 공연히 안된단 말입니다. 아날로그하고...
그런데 이것 우리 역사들이 관해서는... 우리 지금 앞으로 셔먼호 사건부터 계산하거나 3.1운동사건부터 이런 것 계산하면 미국하고도 영원히 만날 수 없고... 3.1운동 보면 영원히 뭐 상대하고 상종 안 하게 돼 있고...
광주 사건도 그렇지 광주사건도 광주의 여인들이 민족적 그 수치와 모욕당한 것 가지고 광주사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일본사람들하고 모두다 편안하죠? 그런데 이 무슨 문서 놀음하게 되면 서로... 깔아부술려고 하고...
대통령 : 참 일본 문제는 어떻게 하실랍니까?
김정일 : 일본은 아베 요 바로... 조 위치에 아베가 왔댔습니다. 고이즈미가 오고... 아베한테 당신네 조상들을 봐서... 조상들이 아주 그 자기 조국을 위해 헌신한 분이란 것을 알고 있는데 당신도 앞으로 우리들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앞으로... 그런데... 부장관이지?
김양건 : 예
김정일 : 관방부장관이 돼서 왔었드랬습니다. 후꾸다가 거기(관방장관) 있었고... 그런데 집권하자마자 그냥 우리한테 뭐 악착스럽게 돌변해 가지고 이렇게 됐는데...
대통령 : 만나보니까 두 분이 아주 다릅디다. 후꾸다 수상하고 아베 수상하고 완전히 다르고요. 아베 수상은 뭐 납치문제를 가지고 정권을 잡은 사람이고 초강경이구요. 후꾸다 수상은 아베수상 되기 전부터 만나서 얘기 해봤는데... 그 양반 상당히 유연합니다. 다른 사람하고... 한국 그... 한반도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존중하고 잘해가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쪽도 민심의 부담을 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긴 하지만 어떻든 좀 유연할 것입니다.
김정일 :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금방 직위에 올라섰는데 그저... 아베꺼하고는 선을 갈라보고 똑똑히 지켜보라... 다르게 보고... 우리 내부에서는 그저 관망하는 단계입니다.
대통령 : 지난번에 일본 대사가 이임하면서 찾아왔길래... 당신들 요구가 뭐냐 물었더니, 사람 돌려달라. 다 돌아갔쟎냐 했더니, 더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증거가 있냐 이랬더니. 하여튼 못 믿겠다 이런 얘기만 하는 겁니다.
김정일 : 없습니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내가 없다고...
대통령 : 그렇기는 한데... 하여튼 미일관계는 풀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납치문제가 있어 구체적으로 내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없고 나도 일본 측의 주장을 들어봤지만 잘 못 알아듣겠고요.
이상하다 그것만... 호주 사람이 쓴 아주 잘 분석된 책을 봐도 일본이 생트집 잡고 있다고 써놓은 책도 있고 한데... 내가 그런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어쨌든 간에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 차제에 미일관계 다 풀어버리고 통상 세계에서 한번 적극적으로 진출해서.. 새로운 전기를 한번 마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 주치의가 국제회의 갔다 와서 학술회의 하는데 다 오는데 북측 사람만 안 오는 회의가 많고.. 그 외에도 관세청장 회의, 국정원 정보기관 회의 있는데..... 얘네들이 뭐하냐 하면 서로들 정보교환하고 노하우들 교환하는 것인데....
이 교류의 장에서 같이 교류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고립이 되고 좋은 정보들을 다 활용을 못 하기 때문에...어쨌든 이번에는 어디에서 국제회의에서 남북의 지도자가 같이 나란히 앉아서 일본이 무슨 말할 때 말도 좀 같이 하고... 의논도 좀 하고 그러는 것이... 지도자급은 아니라도.... 지도자급은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라도 실무급이 나가서 교류하고
세계 통상질서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어야 이제 말하자면 21세기 한반도가 선진국대열에 들어갈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남측사람들이 왜 특구 특구 하냐..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특구가 되면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깔아서 편리하고, 두 번째로 사람들이 마음대로 다녀갈 수 있는... 그외의 지역은 인프라가 불편하고 사람들이 마음대로 가고 오고 할 수 없고... 만나서 상시적으로 토론하고 이런 것이 안되니까.... 이러니 기업하는 사람들이 안 하려는 것이죠.
그래서 특구 말씀 드리고 위원장께서 폭넓게 수용해주시고 그랬습니다만, 앞으로는 전체적으로 이 부분을 좀... 사람들이 통행왕래는 확 열고... 특히 기업하는 사람들은 연수 이게 중요합니다. 계속 작업하고 연수하고 또 외부 프로들을 데려와서... 기술자들을 데리고 와서.... 교육하고... 계속 연수하거든요. 학업 연수 이걸 계속하는데... 그런데 그게 자유롭지 않으니까... 지금 잘하고 있는 곳이 엘칸토가 잘하고 있고... 나머지는 그 점에 애로를 느끼고... 그 부분에 대해.... 국제사회하고의 관계는 이번에 완전히.... 6자회담 이제 털어버립시다..
김정일 : 예. 이번에 뭐 선언문이라고 보도하나?
김양건 : 원래는 선언문을 좀 토론했는데.... 합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저 공동보도문으로 각기 표기하고 보도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 선언으로 해주십시오.
김만복 : 7천만 국민들이 다 기다리고 있고 두 분 정상분을 쳐다보고 계십니다.
김정일 : 6.15 선언과 대등한 선언이라는 뜻인지요?
대통령 : 그렇지 않습니다. 후속 선언이죠.
이재정 : 6.15 선언에 기초해서 발전되는...
대통령 : 선언 많이 합니다. 중소 간에도 선언했고 한중간에도 선언하고
이재정 : 두 분 정상께서 처음 만나셔 가지고 이렇게 많은 합의를 하셨는데 그것을 선언으로... 하셔서 6.15 선언의...
대통령 : 한걸음 앞서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무적인 회담은 아니니까요.
김정일 : 선언하는데... 그저 오늘 합의된 것... 그것 다 조항에 다 넣으시오.
김만복 : 예 그러겠습니다. 김(양건)부장하고 협의해서 넣겠습니다.
김양건 : 이번에 저희들이 선언을 기본 큰 선에서 선언문 제기했더랬는데...
김정일 : 조금 실무적인 문제들이 들어가겠구만.
김양건 : 이제 제기된 문제들... 합의한 문제들을...
김정일 : 합의한 문제를 무게있는 문장을 잘 만들어서 희망을 주고...
대통령 : 안되면 또 부속서를 만들어 가십시다.
김정일 : 희망도 주고 신심도 주고... 그렇게 하려면... 이 방북길이...
대통령 : 어떻습니까? 위원장께서 나를 좀 더 보시겠다고 하면 뮈 하루도 좋고 이틀로 좋구요. 아니면 위원장께서 저희쪽에 하실 말씀이 계시면...
김정일 : 내일 내가 국방위원회 일정이... 내민 과업들 때문에 내일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대통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대통령 내외분이 평양방문을 마감 장식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저 한번 대통령 하고 같이 식사를 같이 해야겠다. 그래서 일명 오찬에... 그랬는데 우리 서기진들에게서 “아니 그 오찬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많이 오고 가고 하겠는데 어떻게 1시간만에...” 아니 오후에 당장 떠나는데 뭐 한시간반도 좋으니까. 건배만 할 수 있는 시간만... 건배 한 5분이면 된다. 그러고 말았는데... 오늘 비는 멎었나?
김양건 :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5㎜정도 비가 계속 온다고 했는데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집단체조 공연이 힘듭니다.
김정일 : 날씨 어드래?
전희정 : 지금 비가 계속 내립니다.(전희정이 중간에 들어와 답변후 퇴장)
김정일 : 지금 오오? 밤에 온다는 것이 아니고?
전희정 : 지금 계속 내립니다. 내일 오후에 비가 그치겠다고 합니다.
김정일 : 대통령 일정을 침범하지는 말자 말이오. 일국의.. 그 기다리는 분들도 많을테고... 그러니까 일정대로 그냥 하는데, 오늘 비오면 집단체조 그만두고... 100% 하고 왔다는 것보다 오늘 선언만... 합의해서 선언만 좋은 것 내면 되지 뭐. 봤다고 하는 것 까지도... 어디까지나 계획이야...
대통령 : 위원장께 청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내가 이제 뭐 임기전에 또 올 일이 있으면 와야 겠습니다만. 이제 다음 대통령 곧 뽑힐 것이니까 제대로 못할 것 같고... 임기 마치고 난 다음에 위원장께 꼭 와서 뵙자는 소리는 못하겠습니다만,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 할 수 있게 좀...
김정일 : 대통령께서 오시겠다고 하면 우리야 언제든지 문열고 놓고 있고... 언제든지 침구는 항상 준비해놓고 있겠습니다.
대통령 : 특별한 대접은 안받아도...
김정일 : 대통령께서 시간되시면 앞으로 금강산에도 아무때나 오시고... 그리고 평양에도 아무때나 오시고...
대통령 : 백두산도 안쪽으로 해서... 중국으로 돌아오는데...
김정일 : 현정은 여사 요번에 오셨나?
김양건 : 예 왔습니다
김정일 : 현정은 여사하고 요전에 약속한 것 정세때문에 길이 끊겼는데... 백두산 관광 자꾸 해달라고... 금강산처럼 해달라 해서... 정몽헌 선생이 있을 때 정몽헌 선생보고 당신이 한번 가보라. 그래서 그분이 가보고, 야 조선땅에도 이런 무공해 지대가... 이것 최곤데... 이것 자기 달라 그래서...
대통령 : 관광사업이든 무슨 사업이든 정부하고 합의를 해 주십시오. 그러면...
김정일 : 그런데 여사께서 자꾸 뭐 남편께서 받은 것을 하겠다고... 그렇게...
대통령 :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김정일 : 그렇게 하는데도 정부가 개입해야죠.
대통령 : 그런데, 관광공사가 들면 좀 훨씬 잘할 수 있습니다.
이재정 : 협력해서 하면...
대통령 : 어쨌든 어떤 쪽에서든 선택하시는 대로 협력하겠습니다만, 정부 단위로 하면 자꾸만 말이죠. 흔들기를...
김정일 : 내가 말하는 것은 중국이 지금 본격적으로 최근에 백두산에 남쪽 관광객을 끌어 들이고...
김양건 : 거기로 많이 옵니다.
대통령 : 해마다 10만명씩 가는데... 우선 나부터 좀...
김정일 : 그래서 비행장 문제가 섰죠. 비행장만 되면 남측 사람들이 뭐하러 평양에서 왔다 다시 또 평양에서 비행기 타고 갈 필요가 있는가? 서울에서 직항으로 백두산으로 가면 되지 않나? 그렇게 해야지 많은 돈을 왜 중국에다 갖다 뿌리야겠나? 비행기 타는 바람에...
이재정 : 위원장님 아주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김정일 : 서울서 오면 거기와서 그저 숙식비만 내면 되는데... 비싸게 중국갔다... 아마 서울항공이 중국에서 가 내리지 않고 백두산에는 못가죠?
이재정 : 못갑니다.
김정일 : 그것이 아마 중국사람들이 자기 이해관계 때문에 그렇게 안 줄겁니다.
이재정 : 사실 매년 10만명이 엄청난 돈을 중국에다 뿌리고... 쓸데없이 자고... 그러고 하거든요. 인천에서 백두산까지 직항로로 해서 딱 가서 관광하고 돌아오게 하면 정말 얼마나 좋겠습니까?
김정일 : 글쎄 그렇게 하자구요. 현정은 여사보고 정부당국하고도 토론해서 나중에 직항하라.
이재정 : 그렇게 확실하게 좀 해주시죠.
김정일 : 백두산 관광도 합의서에 넣으십시오.
김만복 : 예. 넣겠습니다.
김정일 : 그럼 중국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안하겠는데… (웃음) 자기들 거기다 기지 다 빼고 했는데….
김양건 : 지금 장백현에다 비행장 건설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 삼지연 비행장이 작년도 그래가지고. 그게 아마 비행장 건설 때문에 남측에서 피치랑 많이 받았죠?
이재정 : 저희가 지원했습니다.
김정일 : 항공사정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이재정 : 저희 생각으로는 앞으로 협력을 해가지고 백두산에 좋은 호텔도 좀 짓고요. 그래서 좀 더 활발하게 정말 좋은 지역에 우리 민족은 백두산을 영산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김정일 : 제주도는 백두산보다 앞질러서 다 잘해놨다고…. 국제적으로 관광지를 만들어놨는데… 백두산은 그렇게 안해놨습니다.
이재정 : 그런 점에서 앞으로 좀…. 뒤에 만들면 더 잘 만들 수 있으니까요.
김정일 : 그래서 백두산 관광도 허용했다는 것을 한 줄 어떻게….
김만복 : 예.
김정일 : 그러면 노 대통령님께서 이번에 와서 그저….
김만복 : 한 보따리(웃음)
대통령 : 국민들이 아주 좋아할 겁니다.
김정일 : 어떡하시겠습니까? 오늘 구애받지 마시고…. 전 내일 오찬에 초대하겠습니다.
대통령 : 나는 기다리는 사람도 많고 해서….
김만복 : 수표는 내일 점심때 하실 수 있도록 저희들이 준비를 좀…. 그 전에라도 가져가실 수 있게….
김정일 : 오찬 들어가기 전에 오찬 여기서 하자구. 불편하게 왔다갔다 하지 말고….
김양건 : 예 알겠습니다.
김정일 : 여기서 하는데…. 오찬 직전에 여기서 수표하고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요.
김만복 : 예,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김정일 : 여기 우리 합의한 것에 대해 의문점은 우리는 뭐….
대통령 : 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김정일 :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6.15 선언, 큰 선언을 하나 만드시고 돌아가셨는데…. 이번 노대통령께서는 실무적으로 선언보다 선언도 중요하지만 보다 해야될 짐을 많이 지고 가는 것이 됐습니다.
대통령 : 내가 원하는 것은 시간을 늦추지 말자는 것이고? 또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 뒷걸음 치지 않게… 쐐기를 좀 박아 놓자?
김정일 :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오늘 만남이 대단히 유익하고 좋은 결실을 맺었다고 나는 이렇게 대만족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 다음 여행권까지 따 놨으니까…(모두 웃음)
김정일 : 여행권인데 하나 보충하겠습니다. 무료 여행권입니다.(모두 웃음) 미리 약속합시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 그리고 참…. 내가 말씀드리려고 한 것 중에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내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김양건 : 예 저한테 주십시오.
이재정 : 위원장님 어떻게 좀 적당히 좋을 때 한 번 이산가족 고향방문 하도록 허락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이산가족들이 참 아주 애달프게….
대통령 : 이제 다음에 합시다. 오늘은 보따리가 넘쳐서 안돼요.(모두 웃음)
김정일 : 오늘 아주 수고 많았습니다. 정열적으로 많이 이야기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임동원 선생 건강하지요?
김만복 : 예 건강합니다.
2008년 1월 3일 최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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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일본 아베정권의 우경화, 그리고 대북한 접근
일본 아베정권의 우경화, 그리고 대북한 접근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정치
Ⅱ. 평화헌법 개정에 집중하는 아베정권
Ⅲ. 아베가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노리는 이유
Ⅳ. 일본의 대북외교카드 전망
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정치
일본정치가 빠른 속도로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다. 속도와 수준에서 이전 상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냉전종결과 사회당의 몰락이후 일본정치의 보수와 진보간 균형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우익정치가들이 거침없는 역사왜곡과 망언 남발을 거듭하는 상황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정치의 우경화는 정당분포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지난 2012년 12월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압승을, 민주당은 참패를 맛보았다. 거대여당 자민당은 전체의석 480석 가운데 무려 295석을 차지하였다. 이에 비하여 민주당은 단지 57석에 불과하다. 우익정당 일본유신회도 54석으로 거의 민주당에 필적할 정도이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를 합치면 전체 349석으로 비율만 73%에 이른다. 헌법개정에 필요한 2/3선인 320석을 무려 30석 가까이 훌쩍 뛰어넘는다. 사민당, 공산당 등은 그저 존재조차 희미한 소수당에 불과하다.
일본은 예전 일본이 아니다. 오랫동안의 헌법개정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경화, 보수화, 개헌, 집단적 자위권 등은 그저 정치적 주장에 지나지 않았다. 주장은 주장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우파 정치가들은 내셔널리즘을 선동하거나, 한국이나 중국을 비난하는 구호 수준에 머물렀다. 분명한 이론 체계와 명확한 미래 비전이 없었다. 냉전이후 국가방향을 상실한 일본인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고함지르기에 불과했다.
1990년대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자신감을 상실하기 시작했을 때, 누적국채 비율이 세계최고 수준에 달하여 국가신뢰도가 하락하고 2005년에는 중국의 세계2위 경제력에 일본이 밀려났을 때, 변질된 중국산 식품과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문제로 국내 불안이 높아져갈 때, 3.11 동일본대지진을 통하여 이들 모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을 때, 센카쿠열도와 독도 영토분쟁이 국민 상호간 감정대립으로 치달았을 때, 역사왜곡과 군국주의 망언은 그런불안과 초조함, 불만과 스트레스를 발산시키는 정치적 주장들에 지나지 않았다.
Ⅱ. 평화헌법 개정에 집중하는 아베정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7월 예정된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할 경우, 아베수상의 개헌주장은 현실미를 띠게 된다. 65%에 이르는 내각지지율과 참의원 승리 가능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엔저정책, 규제완화, 성장전략으로 조합된 아베노믹스는 분명한 경제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닛케이 평균주가가 15,000을 회복하였고 주요 백화점의 동월 판매량도 작년대비 4,300억 엔이 증가하였다. 동시에,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하고, 전후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를 변경하려는 우익정치가들의 망언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과연 일본이 문명국가인가 의심할 정도이다.
아베 수상은 일본 내 수많은 우파 정치가 모임의 핵심이었다. “침략의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다,” “야스쿠니신사와 알링턴묘지가 다른 것이 뭐냐”는 궤변은 지금까지 행적을 볼 때 새삼스럽지도 않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도쿄재판의 결과를 수용하였다. 침략국임을 자인하고 겨우 국제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에 불과하다.
무라야마 수상의 반박처럼 무력을 가지고 다른 국가에 들어가면 그것이 침략인 것이다. 수천만 명의 아시아인을 살상시킨 전범을 강제로 모신 사립 종교시설인 야스쿠니와 남북전쟁 내전의 희생자가 잠든, 개인선택을 존중해 전체 전사자의 10%도 안 되는 알링턴 국립묘지와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 A급 전범을 외할아버지로 모신 우익정치가의 발언이라는 것 외에 해석할 길이 없다.
2007년 교육기본법을 제정하여 왜곡된 내셔널리즘을 주입시키려는 아베수상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헌법개정으로 집중되고 있다. 헌법을 개정하여 자위대를 국군으로 변경하고, 영국이나 독일처럼 미군과 세계 어디서나 공동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북한 핵기지를 선제공격할 수 있는,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개조하려는 것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9조는 분쟁의 해결수단으로서 무력을 영구히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개정되면 일본은 군사력증강, 해외파병, 더 나아가 핵무장도 가능해진다.
Ⅲ. 아베가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노리는 이유
일본 평화헌법 96조에 따르면, 중의원과 참의원 내 재적 2/3이상 찬성을 얻고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개정이 가능하다. 아베수상은 경성헌법의 높은 허들을 1/2로 낮추어서 연성헌법으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자민당, 일본유신회는 개헌에 찬성한다. 반면, 민주당과 공명당은 반대하고 있다. 헌법절차가 아닌 개정할 내용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개정하더라도, 침략부인과 영구평화의 정신을 유지하거나, 환경권과 인권 등의 조항을 추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베수상의 개헌 의도는 헌법구조상 쉽사리 달성될 수 없다. 중의원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자민당도 참의원의석은 민주당보다 적은 야당이다. 일단, 참의원에서 압승하여 다수파를 확보하여야 한다. 일본선거에는 무려 11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다. 지역구에서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을 가져온다. 따라서 선거연립이 불가피하다. 일본유신회나 공명당과 선거연합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동시에, 같은 우파로 지지표가 겹치는 일본유신회와 차별화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일본유신회는 더욱 필사적이다. 중의원 54석으로 제3당인 일본유신회는 참의원 의석은 단 3석에 불과하다. 참의원선거에서 약진하지 않으면 정당의 존재감마저 사라진다. 보수표를 결집시키고자 이시하라 신타로 공동대표,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 제명당한 니시무라 신고 의원까지 망언을 서슴지 않은 이유이다.
개헌을 위해서는 참의원 242석 가운데 160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새로 선출하는 121석 가운데 80석 이상을 얻으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소 50석 이상을 획득할 경우, 일본유신회, 모두의 당과 개헌논의가 가능해진다. 침략을 부정하는 망언으로 보수표를 결집하고, 아베노믹스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하나의 필승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카드가 바로 그것이다. 영토문제와 야스쿠니, 망언 속출로 일본은 한국과 중국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자국통화를 내리깎아 일본 혼자만 살겠다는 아베노믹스는 아시아 각국의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당분간 한일, 중일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
주변국과의 갈등이 이어지면 일본외교는 고립될 것이다.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 back)”고 강조하였지만, 미국 민주당의 심기를 건드리는 침략부정 발언과 역겨운 위안부 강제동원 거부 발언은 국제여론의 비난을 사고 있다. 외교적 고립과 폐색상태를 벗어날 탈출구를 찾게 된다. 북한에 남아있는 일본인 납치자를 귀국시키거나,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염두에 두고 교류를 추진하는 것이다.
2002년, 2004년 두 차례 방북으로 일본인 납치자를 귀국시켜 떨어진 인기를 단번에 만회했던 고이즈미 전수상은 아베의 외교모델이다. 비밀리에 북일교섭의 전문가 이지마 특별보좌관을 평양에 보냈다. 그는 평양에 3박4일 머무르는 동안 북한 제2인자인 김영남을 만나서 납치문제에 대한 의견교환, 전후보상과 국교정상화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개시와 개성공단 폐쇄 등의 강경자세, 북한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과 유엔연합의 대북 비난과 제재 강화, 시진핑 이후 더욱 중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열세에 빠진 북한은 한미일 대북공조를 흩뜨리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이지마의 방북사실을 열을 올려 공개하였다
Ⅳ. 일본의 대북외교카드 전망
일본의 대북 외교카드는 성공할까. 우선 한국과 미국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사전통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대북공조를 깨트린 것이다. 갓 출발한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도 적잖은 상처를 주고 있다. 미국은 너무 앞서나가는 일본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아베정권에 대한 미국의 불신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쉽사리 대화 테이블에 마주해 줄 것인가. 그리고 정상회담, 더 나아가 국교정상화까지 갈 것인가. 그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납치 문제로 처절한 외교적 실패를 맛본 북한이다. 일본정부와 국민은 납치사실을 솔직히 인정한 북한과 김정일 위원장을 ‘악의 제국’으로 몰아부쳤다. 일본의 대북불신은 절정에 달했고,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일본과 입장이 뒤바뀌면서 전전 과거사의 피해자였던 북한은 돌연 가해자로 몰렸다. 북일교섭에서 오히려 북한이 신중할 것이다.
아베정권의 개헌 전략, 한국이나 중국과의 관계 개선, 북일 교섭과 그 향방은 7월 21일 일본의 참의원 선거에 크게 좌우된다. 선거결과의 귀추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한국은 어찌할 것인가. 대일, 대북 강경자세를 견지해 온 박근혜정부의 선택지가 마땅하지 않다. 당분간 한반도 신뢰외교를 그대로 추진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신뢰는 상호 교류와 현실적인 성과가 수반되어야 한다. 교류도 성과도 없다면 현실미를 상실하게 된다. 오히려 신뢰가 아닌 불신만 가중된다. 조만간 신뢰외교 전략 그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
(201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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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일본 정치인에게 성폭행이란..
일본의 전직 장관이자 현 국회의원이 공개석상에서 집단강Gan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27일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자민당 소속 중의원 오타 세이치 행정개혁추진본부장(전 총무처 장관)이 26일 가고시마(鹿兒島)시에서 열린 공개토론회에서 와세다(早稻田)대 동아리 강Gan사건과 관련, “집단강Gan하는 사람은 아직 기운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 정상에 가까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집단 성폭행한 사람은 아직 건강하기 때문에 괜찮다. 정상에 가깝지 않은가? 요즘은 프로포즈 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 많아져서 문제다.”이 말을 한 사람은 오타 세이치 자민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그러자 유명 정치평론가인 다하라 소이치가 물었다.“그럼 포로포즈가 안돼서 집단 성폭행을 한단 말인가?”“그건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다. 건강하다는 것은 좋은 일아닌가? 이런 말 하면 화내겠지만.”허나 정작 화를 낸 것 다하라 소이치가 아니라 일본 국민들이었다.지난 6월 26일, 가고시마 시내에서 열린 공개토론회. 전 총무청 장관이자 자민당의 간판 급 정치인인 오타 세이치 의원이, 성폭행 행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것도 8천여 명의 전국사립유아원 연합회 회원들이 모인 자리였다.오타 의원이 이 같은 망언을 하게 된 동기는, 최근 청소년들의 잔학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도중 나온 얘기였다.이 이야기는 당장 이튿날 일간지를 통해 일제히 보도됐다. 고이즈미 수상까지도 혀를 끌끌 찼다.“비판 받는 것은 당연하다. 집단 성폭행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야비한 행위이다. 그런데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오후 들어서는 일본 국회가 들썩거렸다. 야당의원들이 일제히 비난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야마사키 다쿠 자민당 간사장이 국회에서 오타 의원을 만나 사태 수습에 나섰다.“당신의 그 발언은 정말 경솔했다. 비난을 면할 수 없는 발언으로 당장 대국민 사과를 하라.”정당 차원에서 엄중경고를 한 것이었다. 이에 오타 의원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야마자키 간사장의 주의대로 즉시 국회출입기자들을 불러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을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헌데 파문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그것은 야마사키 간사장 때문이었다. 언론을 통해 야마사키 간사장이 오타 의원에게 엄중주의를 주었다고 보도되자 국민들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야마사키 간사장이 그런 충고를 할 자격이 있느냐고 모두들 비아냥댄 것.야마사키 간사장은 지난 1년여 동안 일본 시사주간지 기자들을 가장 바쁘게 만들었던 장본인. 부인이 아닌 애인과 수년 동안 온갖 변태적인 섹스행각을 벌여, 1년 내내 세인의 입방에 오르내린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오타의원에게 충고를 했으니 국민들이 기가 막혀 할 수밖에.때문에 일본국민들은 각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오타 의원은 물론 야마사키 간사장은 당장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거센 항의를 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어떤 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역효과라고 생각했음인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한편 오타 의원이 지칭한 집단 성폭행 행위를 한 젊은이들은, 지난 5월 16일 명문대로 유명한 와세다 대학생 3명, 니혼대 1명, 각슈인 대 1명 등 총 5명이, 만취한 여대생을 돌봐준다는 핑계로 유흥업소 건물 계단으로 끌고 나가 차례로 집단 성폭행 한 사건.특히 이들은 시즌 별로 전국을 돌며 대학생들을 상대로 이벤트 성 파티를 열어 집단 강Gan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헌데 이 사건을 취재한 사회부 기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정작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여대생들은 오히려 아쉬워한다는 것. 일본 대학생들이라면 한번쯤 이 파티에 참가하고 싶어하고, 경찰에 잡힌 5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스탭 대학생들은 괜찮다고 오히려 사회문제화 된 것을 아쉬워하는 여대생들이 많아, 취재하는 기자들이 너무 어이가 없어 맥이 풀렸다는 후일담이다.
일본에서 강Gan 범죄율이 낮은 이유가 있음. 피해자라는 여자들이 더 좋아하기 때문에 범죄성립이 안됨..
바켄뢰더작성일
2012-12-03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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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강남을 부정선거 의혹 김종훈 당선자?의 멘붕~!!!!
강남을 부정선거 의혹 김종훈 당선자?의 멘붕~!!!! [나너그리고우리님 글]
"4년전 일을 어떻게 기억하나
정부에 물어야지 나에게 묻는게 옳은가"
2008년 5월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협상 주역이였던
새누리당 강남을 부정선거의혹 김종훈 당선자?가 서울신문과의
통화해서 내 뱉은 말입니다.
이런 김종훈이가 한미FTA를 어케 했을까요..안봐도 비됴죠.
저런 개섹휘가 있을까요???
20개월 미만 뼈없는 소고기 수입하는 일본은 전수검사.
수입전면중단한 인도네시아
1명이 3%검사하던걸 6명이 10%? 포장지 뜯는걸로 검역강화?한다는 한국
소의 월령이 중요한 것은 사료를 통해 내장에서 변형프리온축적이 되는
임계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20개월 미만의 뼈없는 소고기를 일본이 고집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0개월이 지나면 그 위험도가 급속하게 증가됩니다.(어느 트위터리안)
노통 때는 살코기에 뼛조각 나왔다고 수입 중단 외친 새누리당! [이종수님 편집글]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나왔을 때
새누리당은
즉각 적인 수입 중단을 외쳤었습니다.
새누리당은
2007년 당시 미국산 쇠고기에 광우병 위험 있는데..
살코기에 뼜조각이 나온 것은..
대한민국을 우습게 보는 것이며..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몰고 갔었습니다.
노통은
연령 제한 있는 살코기만을 수입 하고자 했고..
그 살코기에서 뼛조각이 나오니..
국민 우습게 본다면서 새누리당은 즉각 수입 중단을 외치며..
발광을 떨었드랬죠~ㅋㅋㅋㅋㅋ
이명박이 집권했습니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6개월 만에 입장을 바꿉니다
뼈든 뇌든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니 그냥 다 쳐먹으라고 합니다.
(조중동도 마찬 가지입니다.)
자!
새누리당이 어떤 반응을 보일거냐구요?ㅋㅋ
새누리당이 국민 생각하는 거 봤소이까?
ㅋㄴㅋ
정권을 위해서는
국민 건강 안중에도 없이...
단 6개월 만에 입장을 바꾸는 것들이..
지금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할거 같나요?ㅋㅋ
아!! 국가 부도 낸건 신한국당이니..
한나라당과 상관 없다고 발광떤 집단이니..
새누리당으로 이름 바꾸었다고 상관없다고 할 건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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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링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56&aid=0000002888
미국산 수입 쇠고기, 금수조치 내려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조치 취해야 [한나라뉴스]
| 기사입력 2007-08-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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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미국산 수입 쇠고기 검역과정에서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인 SRM 등 뼈조각이 검출된것은 한국시장을 가볍게 보는 미국업계의 안일함과 우리 당국의 무성의가 빚어낸 결과라고 지적하며, 미국에 시정요구 등 금수조치를 내려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국민건강과 직결된 사안인데다가 한미 FTA비준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측의 수입확대를 요구해온만큼 매우 민감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라며,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농림부는 빗발치는 언론의 사실확인 요청에 대해서 모르쇠로 일관해 빈축을 사고 있다”고 꼬집었다.이어 “검역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을 비롯해서 농림부의 담당라인인 축산국장과 가축방역과장은 휴대폰을 받지 않거나 아예 꺼둔 상태였고, 차관 등 고위급 간부들도 지방출장 등의 이유를 대면서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며, “한미FTA 비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청와대의 눈밖에 날까 농림부가 몸을 사렸던 것이 아닌지 의문이며,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농림부로서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또 이 정책위의장은 “아무리 한미FTA가 중요하다고 해도 국민들의 생명이 걸려있는 문제를 볼모로 해서 무작정 한미FTA를 체결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과거 이 문제와 관련, 일본 고이즈미 정권이 미국산 쇠고기에서 SRM이 발견되자 곧바로 금수조치를 내린 것은 그만큼 자국민의 식탁과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내리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라고 덧붙였다.이 정책의장은 “미국산 쇠고기에서 SRM 등 뼈조각이 발견된 것은 한국시장을 가볍게 보는 미국업계의 안일함과 우리 당국의 무성의가 빚어낸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농림부는 더 이상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말고 문제가 있으면 미국에 시정요구를 하고 필요하면 검역중단 등의 미온적인 조치가 아닌 금수 조치를 바로 내리는 등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박순자 여성위원장도 “유통 중인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한심한 발언 때문에 국민들은 더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며, “국민의 안전이 보장되어야할 식탁이 위협받고 있다." 면서 조속한 대책을 촉구했다.
2007. 8. 3
한나라당 인터넷뉴스팀
새누리당은 역시 대한함..
ㅋㅋㅋㅋㅋㅋㅋ
가자서작성일
2012-04-2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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