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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한국은 이제 망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이런 이야기 하기 싫지만현재 한국은 망했다.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조낸 더 망할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면서헬조선, 헬반도, 이민.. 이런 암울한 단어들이 유행하다가 문재인 정권때 잠깐국격, G8,눈떠보니 선진국, 이런 국뽕 단어들이 유행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특별한 수식어도 사치일만큼, 무속이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 국가가 되버렸다. 문재인땐 잘하면 통일,잘못되도 금강산 여행이나 이산가족 상봉,개성공단 재개를 통한 남한 제조업 부흥..같은 실질적 희망들을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 수장이 온갖 국익을 팔아먹고 있고,야당은 정치적 핍박으로 방어하는데도 정신이 없다. 이러는 사이생활물가는 무섭게 올라가고 있고,보수정권이 야당 공격할 때 사용하던베네수엘라꼴이 되고 있는데,국민들은 퍼주는 복지혜택 전혀없이 망하고 있다. 언론은 기레기로 조롱받아도 전혀 개의치 않는 철면피 나팔수가 되었고, 정규직vs비정규간 양극화는 이제 손쓸수 없을만큼 아득한 격차로 벌어져 버렸다. 다음정권 혹 민주당이 정권을 차지한다고 해도기본소득, 기본시리즈 할 수 도 없을만큼국가 재정은 파탄나 있을 것이고, 외교적으로 신냉전이 심화되다 보니남북한 평화 분위기도 조성하기 힘들것이다. 문제는 한번 급하게 올라간 물가는 절대 떨어트릴 수 없다는 것이다.기본 국밥이 1만원이 되었고, 짜장면이 7~8천원이 되었다. 문재인 5년동안 최저시급 몇백원, 몇천원 올린걸로국가 망한다고 공포감과 자영업 몰락을 걱정하던지식인, 전경련 단체들이최저시급 동결에 수입원자재 가격이 안정화 되었음에도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 생활물가에 대해선 전부 아닥들 하고 있다. 이제 택시요금은 무조건 5천원에서 시작하는 것이고,아무리 정권이 바껴도 전기, 가스요금, 각종 4대보험등등숨만 셔도 나가는 모든 요금들이지금 떡상가격+a가 기본값인 것이다. 한번 라이프스타일 물가가 세팅되면, 빠꾸가 불가하다. 여기에 항변을 하면이성적 팩트에 기반한 대화가 아닌문재인때 안올린 요금때문에 현정권이 도리어 비판받는거라며,만약 돈이 부담스러우면 공부잘해 좋은 직장들어가지 그랬냐는 일베급 조롱들을 상대해야 하는 피로도가 생겨버렸다. 기득권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갈라치기 프레임속에 야금야금 민영화는 진행중이며,냄비 속 개구리처럼 죽을때까지 서민들끼리 싸우는지옥이 만들어졌다. 현정권이 친일 욕망의 빗장을 열어줘 버렸고,이명박때 종편 방송사를 열어준 후폭풍을 다들 기억할텐데,친일을 대놓고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이제 일본에 호의적인 20대들의 갬성을 자극해명예 일본인들이 광장에서 설치는악의 씨앗을 흔하게 보게 될 것이다. 전세계적 대혼란기국가가, 정치가 국민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함께 노력해서 어려움을 타개하는 긍정적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매일 보도되는 뉴스는 내전 상태에 가까운 절망적 소식만 가득하다. 이러다 보니미래에 희망을 빼앗긴 세대들은 자살을 하거나약물에 취하거나, 노빠꾸로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며자신의 분노감정을 폭발시킨다.반면 이런 불황기에도 유흥산업과엔터산업만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으니사람들은 사소한 빌미에도 특정 연예인을 공격하는사이버 불링이 심각하다. 이런 판국에 지방소멸, 저출산 극복이딴 신선놀음(?) 고민은 아무도 관심이 없고,소음처럼 취급할 뿐이다. 한반도 골든타임의 순간,검찰권력의 패악질은 단순 자리나눠먹기, 내식구 감싸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연대의식을 끊고,각종 전문직들에 대한 반감과정치적 적대관계가 심화되어 이웃을 죽여버리고 싶을만큼 분노게이지가 가득찼다. 다음정권 민주당이 운좋게 집권해도높아진 생활물가와 재정부담은 이전상태 안정기로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 어떻게든 실질 월급을 올려 가정경제를 지원하고 싶어해도이젠 정말로 인건비를 올려줄 수 없을만큼, 국민 모두가 거지가 된 나라가 될 것이다. 당연히 거대 재벌들은이를 근거로 로봇 ai 산업을 주력산업으로 키워대기업 정규직 생산직까지 정리해고 할 게 뻔하기에, 정말 국민 전체가 거지꼴이 날 것이다. 어떻게든 민주당이 이걸 막아보려 할테지만, 외부엔 일본이 대놓고 침략할 것이고,내부엔 재벌에 기생하는 언론, 보수 세력들이 자신들 똥치우는 민주당을 적반하장으로 공격할게 뻔하다. 이런 지옥불반도에 환멸감 느낀 국민들은 탈출구가 있다면 먼저 떠나거나없다면 현실과 손절하는 선택들을 대거 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망한것이다. 5년 꽉채우면 진짜 망한다.
레딛고작성일
2023-04-1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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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난 윤석열이 고맙다.
제목만 보고 사람들은 뭐 이런놈이 있나? 하며 들어왔을 것이다. 맞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끈 것이다. 최악의 경제성과와 외교참사, 그리고 한일 굴종외교까지윤석열 정권의 지난 1년 성과는 성적표를 메길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다들 알고 있을 사항이니 각론은 추가로 언급하지 않겠다. 난 대통령 윤석열은 인정하지 않지만,인간 윤석열에겐 고맙게 생각한다. 이명박, 박근혜 시절을 겪으며,보수당의 2연속 대통령과 그들이 정권을 해먹는 모습을 보며국민들은 많은 좌절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극도의 스트레스 기간도국민들은 수백만명이 모인 촛불집회를 통해역사상 처음있는 평화적 탄핵을 이끌어 냈고, 박근혜와 그녀의 부역자 세력들 대부분도 콩밥을먹는해피엔딩을 우린 경험하게 되었다. 문정권 시절, 잘은 몰라도국민들이 국경을 걱정하고,해외 나간 대통령이 사고치는 걱정없이생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던 기간도 없었고, 잘하면 금강산으로 가족여행도 갈 수 있겠구나하는 지금은 망상에 가까운 원대한 꿈도 잠시나마 우린 꿨었다. 그러다.. 약간의 소란이 있었고,윤석열이란 재미있는 캐릭터가 단시간에 대통령이 된다. 젊은 남자들은 여자들 인권신장이 거슬린다며 보수당에 표를 주었고,늙은 세대들은 한국이 적화통일 되선 안된다는 공포에 보수당에 몰표를 줬었다.그외 코인, 주식 몰빵족, 부동산 영끌족들 역시브레이크없는 금융지원을 꿈꾸며 또한 보수당에 묻지마 몰표를 줬었다.하지만, 피터파커의 삼촌도 말했지만,큰힘에는 큰책임이 따르는 법인데도.. 검증과정을 생략한최고통수권자 자리에 낙하산으로 대통령을 꽂게 된 후폭풍으로 한국은 현대사 최악의 어이없는 뵹신같은 위기에 직면해 있겠다. 난 누굴 책망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현재 부동산 빚에 허덕이는 사람이 있다면, 원희룡이 당신을 도와줄 것이고,현재 자영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면, 과학방역의 결과가 당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현재 생활물가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면, 요소수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저주를 퍼붓던 언론사들이당신의 아픔에 공감해줄 것을 난 믿는다. 그럼에도 윤석열에게 내가 고마운 것 한가지..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점령군들의 광란의 축제가 밤이 깊어도 여전히 요란하게 승리뽕에 취한 순수한 모습을 거리낌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걸 보고 국격무너졌다고 혀를 찰 것이며,누군가는 혐오스럽다고 외면들 할 테지만, 난 흥미롭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원래, 무협지나 고전 복수극을 보더라도원수한테 바로 칼을 드리댔다간그들의 호위무사들에게 쉽게 발각되어 복수하려다 도리어 일찍 죽는 수치스런 장면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그렇기에 영리한 자객들은점령군들이 양민들을 능욕하는 그 순간의 분노를 와신상담 이겨내며,그들이 밤늦게까지 술과 고기를 뜯게 냅두다가 다들 고꾸라지는 새벽녘에 그들의 숨통을 노린다. 그 시간이 가장 무방비 상태이기도 하겠지만,그 시간이 가장 적군들이 누구인지 정체가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결정적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사회 기득권 엘리트 계층으로국민적 견제를 전혀 받지 않았던 사법 카르텔 세력들과 거기에 부역하며 기생하던 기레기 언론들그리고, 국민들이 혼란스러울때 마다학자적 양심을 기대했던 이미 변절한 어용지식인들과 이때다.. 빌붙는 사이비 종교인무리들까지, 친일 DNA을 앞다퉈 커밍아웃하는 정치인들은 거론할 필요가 없이싹다 빤스 벗고 광란의 점령군 파티를 즐기던 윤서방파 식구들인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한국사회 가식과 위선의 장막 뒤에서국민들을 속이며, 기득권을 몰래 강화해 왔던 것인데, 하지만, 윤석열 통치 스타일상무대위에서 같이 빤스벗고 흔들지 않으면,떡고물을 챙겨주지 않기 때문에보는 우리들은 극혐스럽지만,쥐새끼들이 알아서 인증을 해주며, 쥐덫속으로 같이 들어가는 장면을 우린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윤석열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김학의 별장 성접대 영상은 스샷으로만 국민들이 봤기때문에 분노게이지가 오르다 말았지만,4K화면으로윤서방파 식구들이 적나라하게 해처먹고, 나라팔아먹는 모습을국민들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니이 얼마나 일망타진 하기 좋은 물증자료란 말인가. 거기다 박근혜 대통령 덕분에라도 거부감없이 탄핵절차를 또다시 밟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경험 풍부한 민주주의 국민성이란 말인가. 이 자리를 빌어 마지막까지 추하게 안버티고 깔끔하게 물러났던 박근혜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 역시도 윤서방파의 적나라한 똥꼬쇼 덕분에다소 모자랐지만 사악하진 않았다는 반전매력으로 재평가가 시급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이미 경험한 이들에겐 복습의 시간이이제 처음인 이들에겐 성숙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기에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더욱 무르익기 위해선 지금의 윤서방파의 두려움 없는 코메디쇼, 가짢은 수준의 촉법소년같은 국정운영 시간을우린 필연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윤석열이 몸빵이 되어 국민 교보재가 되주는 점에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다소 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치욕스럽고 안타까운 희생들이 있겠으나.. 이를 통해 한방에친일부역세력 전체와 조중동, 검찰청 해체와 같은남한사회 100년의 적폐들을 한방에 소탕할 수만 있다면, 나름 가성비 좋은 추진력을 응축하는 시간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윤서방파 세력들의 다음 정모는용와대가 아닌단체 파란색 교복에 숫자 이름표를 붙혀성대하게 열어주기 위해서라도지금의 시기를 마냥 고통이 아닌 미소를 잃지 않는역사의 골든크로스로 생각해야 하겠다.뭐든 크게 치고 나가기 위해선 뒤로 살짝 물러났다 튀어 오르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레딛고작성일
2023-03-2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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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 3.1절 기념사 전문
노무현 대통령 86주년 3.1절 기념사 전문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70083762 김대중 대통령 81주년 3.1절 기념사 전문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새천년에 들어서서 처음 맞이하는 뜻깊은 3.1절을 여러분과 다 함께 축하해 마지않습니다.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거룩한 목숨을 바치고 희생하신 모든 선열들에 대해 깊이 머리 숙여 감사하고 그분들의 위대한 뜻을 같이 기리고자 하는 바입니다.3.1운동은 남북한 전역에서 전 국민이 일어선 민족독립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세계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제가 을사국치 이래 40년 동안 이 나라를 강점(强占)할 때 국내에서 혹은 국외의 시베리아, 만주, 중국대륙에서 하루도 멈추지 않고 무장투쟁을 한 점입니다. 이는 세계 어느 식민지 독립투쟁에도 없는 일입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1919년 3.1운동에 따라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이래 해방되어 귀국할 때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法統)과 간판을 지키며 상해로부터 중경까지 전전하면서도 끝내 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3.1운동은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불과 10년 후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다시 왕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민국(民國)이란 민주공화국을 말하는 것입니다.이처럼 위대한 3.1운동은 중국, 인도 등 세계의 많은 식민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2차대전 말기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결정할 때에도 3.1운동과 선열들의 계속된 투쟁이 결정적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것입니다. 3.1정신은 바로 민주주의 정신이고 민족의 번영을 추구하는 정신이며 모든 국민에게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정신입니다. 이는 3.1 독립선언서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국민의 정부는 이러한 뜻과 일치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생산적 복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3.1운동 정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 받들고 있는 것입니다.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이제부터 국민의 정부의 지난 2년을 회고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첫째, 지난 2년 동안 이 나라 민주주의, 특히 인권의 신장이 괄목할 만큼 실현되었습니다. 합법적이고 평화적이면 어떠한 시위나 집회, 파업도 이제는 원천봉쇄 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 거리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사라졌습니다. 언론자유는 언론인 자신들과 국민들이 각종 여론조사를 통하여 인정하듯이 역대 어느 정권보다 보장되고 있습니다.시민운동은 놀랄 만큼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지금 목격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자유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민주노총이나 교원 노조가 합법화되었고, 노동자들의 정치참여와 정치자금 모금도 허용되고 있습니다. 군과 경찰, 기타 공무원들도 이제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여성차별 금지와 성폭력 금지를 법으로 제정하는 등 여성의 권리가 계속 향상되고 있습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비례대표의 30%를 여성이 차지하게 됩니다. 노인과 장애인의 권익향상을 위해서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편성하였습니다.그러나 아직도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정치의 혼란이 국정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치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국민 앞에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반드시 정치가 안정되어야 하겠습니다. 정치가 안정되어야 미래를 위한 개혁을 할 수 있습니다. 개혁을 중단하면 우리는 삼류국가로 전락하고 맙니다.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우리의 경제개혁 성과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금융, 기업, 공공, 노동부문의 개혁을 통해서 우리는 파탄 직전에 있던 국운을 되살리고 6.25전쟁 이래 최대의 국난을 극복했습니다. 98년 마이너스 5.8%의 성장으로 추락했던 우리나라 경제가 작년에는 10.2%의 성장을 했습니다. 세계가 놀라고 있습니다. 물가는 사상 최저로 내려갔습니다. 금리도 한자리 숫자입니다. 환율도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0대 선까지 내려갔던 주가도 크게 올라 이제 900선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무역흑자도 건전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금년에도 120억 달러의 무역흑자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봅니다. 외환보유고는 저의 대통령 당선 당시 불과 39억 달러에서 이제 800억 달러가 되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선진 29개국 중 일본 다음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7대 채권국가 중에 한국이 들어 있습니다. 2년 전에는 꿈도 못 꾸었던 변화를 이룩한 것입니다.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는 2월 28일자에서 "한국을 보면 영화 타이타닉호의 비디오를 거꾸로 감상하는 것 같다. 대양 한가운데서 거대한 타이타닉호가 다시 떠올라 더욱 행복한 미래를 향해 항해하는 것 같다." 고 보도했습니다. 그러한 평가처럼 이제 우리가 IMF(국제통화기금)의 위기는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여러분께 보고드리는 바입니다.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안심해도 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겨우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 뿐입니다. 21세기의 무한경쟁시대, 그리고 전혀 새로운 패턴의 새천년의 경제여건에 적응하려면 참으로 혁명적인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20세기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 즉 자본, 노동, 토지 같은 하드웨어가 경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 즉, 지식, 정보, 문화창조력이 경제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적응해 나가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조상들의 덕으로 세계에서 가장 교육기반이 튼튼한 민족이고 또 문화적 창조력이 강한 민족입니다.우리 조상들은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 해동불교로 발전시켰고 유교를 받아들이면 조선유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만주족은 청나라를 세워서 270년을 통치하고도 중국문화를 자기 것으로 재창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부 중국인으로 동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7천만이 넘는 대민족이 엄연히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3, 1운동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다음에는 국민적 관심의 초점 중 하나인 빈부격차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모든 기업이 도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중산층과 서민의 희생이 컸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줄기찬 노력의 덕택으로 우리는 다시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회복했습니다.IMF 사태 이후 2만3천개가 문을 닫았던 중소기업은 작년 말에 다시 3만개가 창업되었고 지금 매월 3천개 이상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 별로 없었던 벤처기업이 지난 2년 동안에 4천8백개가 늘어나고 금년 말까지는 1만개에 이를 전망입니다. 중산층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봉급생활자들에 대해 근로소득세를 감면하고, 전자제품과 음료수 등 생필품에 대한 특소세도 감면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특히 중산층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IMF 이후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서 아랫목에서 중앙까지는 온기가 있지만, 윗목에는 아직도 냉기가 돌고 있습니다. 하위 20%의 국민들의 소득이 국내 총생산의 9%선에 불과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설에 재래시장을 찾아보니 너무도 썰렁하여 오히려 찾아간 것이 민망할 정도였습니다.우리는 이러한 서민들의 생활을 보장하고 중산층을 튼튼히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회가 안정이 됩니다. 또한 그들의 소득이 늘어나야 구매력이 생겨서 경제도 더욱 좋아집니다. 따라서 정부는 금년에 10조원을 들여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산적 복지를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생산적 복지에 따라 정부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는 월 약 100만원까지 그 수입을 보장하여 생계와 의료, 교육을 뒷받침 해줄 것입니다. 약 40만명의 중, 고등학생에 대해서 등록금을 정부가 대납해 주고 있습니다. 30만명의 대학생에 대해서는 장기 저리융자를 하고 정부가 그 이자의 반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교의 교실과 마을회관 등에서 컴퓨터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50만명의 가난한 초, 중, 고등학생에 대해서는 컴퓨터 교육비를 면제해 줍니다. 100만명의 주부에 대해서도 아주 저렴한 강습료로 컴퓨터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지금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자가 약 1천만명인데 금년 중에 다시 1천만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저의 임기 중에 전 국민이 컴퓨터를 갖고 인터넷을 이용하도록 할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신들린 사람처럼 정보화시대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머지 않아 지식정보 10대 강국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창창하다는 것을 저는 여러분에게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립니다.이와 함께 정부는 재래산업에 대해서도 지식정보산업 못지 않게 중시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재래산업은 우리 경제의 한 축이기 때문입니다.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제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해서 반드시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상황은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지역주의를 악용해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 하고 있습니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이러한 일은 결단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3,1정신을 거역한, 민족에 대한 죄악으로서 우리는 이를 단호히 심판해야 합니다.자유당, 민주당 때까지도 그러한 일이 없었습니다. 전라도 출신이 경상도 지방에 가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경상도 사람도 전라도에 와서 당선되었습니다. 전국 도처에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인물을 뽑은 것이 우리 선거 역사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5, 16 군사정부 이래 이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지금은 세계화 시대입니다. 남북한조차 화해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남북분단도 통탄스러운데 같은 대한민국 안에서 지역을 가르다니 이러고서 우리가 어찌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 선열들을 대할 면목이 있겠습니까.3, 1 운동이 어떠한 운동입니까. 전 국민이 함경도에서 전라도까지, 평안도에서 경상도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투쟁한 민족독립운동이 아닙니까. 그래서 전 민족이 하나같이 그 뜻을 기리고 교훈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3, 1운동을 진심으로 기념하는 길은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라고 저는 강조해 마지 않습니다.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북한에 대해서 확고한 안보의 기반 위에 화해 협력을 추진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햇볕정책을 통하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냉전상태를 종식시키는 것이 여러분과 저의 최대의 소원일 것입니다.햇볕정책에 대해서는 미, 일과의 합의 아래 긴밀히 공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대한민국이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의 나라들과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모두가 지지합니다. 북한과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 몽골, 베트남, 이집트까지도 정상회담을 통해서 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외교정책이 이처럼 전 세계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햇볕정책은 북한에 대해서 그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회복을 도와주며 국제적 진출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북한은 대남 무력도발을 포기하고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야망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 가운데서 양쪽이 다같이 이익을 얻는 소위 말하는 '윈-윈 정책'을 우리는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햇볕정책이라 해서 결코 안보를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연평해전이 그 좋은 예입니다.저는 연평해전이 일어났을 때 국방장관에게 네 가지 사항을 지시했습니다. 그 내용은 '북방한계선은 꼭 지키시오, 우리가 먼저 발포하지 마시오, 북한이 발포하면 이를 단호히 분쇄하시오, 그러나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유의하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군은 군의 최고 사령관인 대통령의 지시를 효과적이고도 충실하게 이행해서 혁혁한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거꾸로 우리가 만일 승리하지 못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나는 자랑스러운 승리를 우리에게 가져다준 국군에게 국민 여러분과 함께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자 하는 바입니다.국민 여러분!지난 1년 동안 북한은 의미있는 두 가지 변화를 보였습니다. 하나는 금창리 지하 핵의혹 시설에 대한 사찰을 수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사일 제2차 발사를 중지한 것입니다. 이로써 전쟁의 위협이 크게 감소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금강산 관광을 위시한 남북간의 문화, 스포츠교류는 물론, 경제교류가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100개가 넘는 한국의 중소기업이 북한에 진출해 있고, 대기업들도 본격적인 투자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작년 1년 동안 남북간의 교역은 3억3천만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였습니다.우리가 인내와 일관성과 성의를 가지고 노력하면 저의 임기 중에 냉전종식이라는 목표는 반드시 달성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해 마지않습니다. 지금은 통일을 추구할 단계가 못됩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그러한 힘이 없고, 또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더라도 남북간에 전쟁을 하고 50년 이상 무장대결을 한 처지에서 정신적 갈등을 쉽게 극복할 수 없습니다. 독일이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결코 통일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1300년 동안 통일국가를 이룩해온 이 민족이 어찌하여 50년 분단 때문에 통일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3, 1정신을 가슴에 되새기며 때가 오면 반드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결의를 다같이 굳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지금 우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19세기에 우리 조상들이 범했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됩니다. 당시 우리가 일본과 똑같이 개국하고 근대화를 했던들 우리는 일제침략을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조상들의 한 때 잘못으로 후손들은 일제통치, 국토분단, 한국전쟁, 냉전대결 등 100년 이상 앙화(殃禍)를 입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 잘못하면 또다시 후손들에게 그러한 죄 많은 유산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여러분과 같이 이미 말한 5대 과업, 즉 민주국가의 완성, 지식정보국가의 건설, 생산적 복지의 실현, 국민적 대화합, 한반도 냉전의 종식을 반드시 실현하여 새천년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여러분과 함께 만들고야 말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우리 모두 힘을 합쳐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만듭시다. 그것을 기반으로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시킵시다. 7천만 민족이 얼싸 안고 자유와 번영과 정의를 구가하는 그 날을 이룩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 전체의 행복을 실현시키고 후손에게 3.1선열과 같은 자랑스러운 조상이 됩시다.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안녕한 하루를 위하여 윤석열 기념사는 별도로 올리지 않겠습니다.이틀전 두 전직대통령의 기념사중 일부를 발췌해서 전체 의미를 호도하는 게시글에 시간이 허락하여 전문을 게시해 봅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님의 말미의 의미가 친일일까요? 전 전혀 그렇지 않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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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한국사 제대로 밝혀라" - 허성도 교수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 2010년 6월 17일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왜?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한자) 쓰는 사람만 다냐, 글(한자)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그럼 와서 북을 쳐라’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 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擊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擊)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구나’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거대하고)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거대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거대한)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양을 보냈습니다.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보지 마시옵소서.’‘왜, 그런가.’‘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마마, 보지 마시옵소서.’‘왜, 그런가.’‘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 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관찰사가 못 보는데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조선시대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세종이 말을 합니다.‘왜 이런 일이 나는가?’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그)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갑지(甲地)와 을지(乙地)는 동일한 자오진선(子午眞線)에 있다.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자오선(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자오진선(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갑지(甲地)와 을지(乙地)는 동일한 자오선상(子午線上)에 있다.갑지(甲地)는 북극출지(北極出地), 북극출지(北極出地)는 위도(緯度)라는 뜻입니다. 갑지(甲地)는 위도(緯度) 37도에 있고 을지(乙地)는 위도(緯度) 36도 30분에 있다. 갑지(甲地)에서 을지(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 : 북소리)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 종소리)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리수(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라)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명산과입니다. 밝을 명(明)자, 계산할 산(算)자, 과(科).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서울대학교 |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snu.ac.kr)
비타민D작성일
2022-05-2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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