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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이지아 서태지와 이혼소송중
[특종] 톱스타 서태지, 배우 이지아와 이혼소송 충격
▲ 이혼 소송 중인 서태지 / 사진=스포츠서울 DB
톱스타 서태지(39·본명 정현철)와 배우 이지아(33·본명 김지아)가 법적으로 부부였으며, 현재 이혼 소송 중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미혼의 두 스타가 온세상을 감쪽같이 속인 채 결혼한 사이였다는 것도 놀랍지만, 두 사람이 사생활 노출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것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두 사람의 이혼소송 사실은 지난 18일 서울가정법원에서 있었던 2차 공판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조심스럽게 퍼지게 됐다. 이지아는 지난 1월 서태지를 상대로 위자료 및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양측은 법정대리인을 통해 지난 3월과 4월 두차례 공판을 마친 상태다. 양측에 각각 4명, 3명의 변호사가 배당된, 가정법원 소송으로는 이례적인 대형 소송이다.
온 세상이 알만한 두 톱스타의 이혼 소송이 이토록 철저히 베일에 묻힐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이 모두 개인신상정보를 철저히 비밀로 한채 조심스럽게 재판을 진행해왔기 때문. 특히 이지아는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의 신상정보와 개인정보가 전혀 달라 쉽게 눈치챌 수가 없었다. 비밀 결혼생활을 해온 두 사람이 이혼소송에 이르게 된 것은 최근 불거진 이지아의 열애가 결정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지아는 지난 3월초 SBS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에 함께 출연했던 정우성과 열애 중임을 공표한 바 있다. 이지아 측에서 합의이혼을 요구했으나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이혼소송까지 간 것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배우 이지아 / 사진=김도훈 기자
한편 서태지와 이지아, 두 사람이 언제 결혼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고 있다. 1992년 '난 알아요'를 통해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서태지는 총 4장의 앨범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지만, 1996년 1월 돌연 은퇴 후 미국 LA로 떠나 2000년 공식귀국 전까지 작곡활동을 하며 현지에 머물렀다. 서태지가 어디에서 생활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과 일본, 한국 등을 조심스럽게 오간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지아 역시 미국과 일본 등에서 상당 기간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있어,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시점은 해외 체류 기간 중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관계를 둘러싼 묘한 분위기는 이전에도 감지된 바 있다. 이지아는 2년전인 2009년3월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서태지 웜홀 콘서트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헐;; 이여자 정체가 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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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영상] 뜨지못한 별 한국 최고의 골잡이 ..
수상내역
수상연도
수상내역
2005
프로축구 골든볼 골든슈 시상식 - 월간(7, 8월) 골든볼
2005
삼성 하우젠 K-리그 대상 공로상, 앙드레김 특별상
2004
제18회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인기선수
2003
K리그 득점왕
2003
K리그 MVP
2001
올해의 키카골
2000
K리그 골든슈
김도훈
생년월일: 1970년 7월 21일
출생지: 경남 통영시
체격: 183cm 80kg
별명: 갈색폭격기
취미: 골프
가족사항: 3남중 장남, 부인 김민정씨(2004년 8월 15일 결혼)
학교: 유영초-통영중-학성고-연세대
소속: 상무-전북현대-빗셀고베-전북현대-성남일화
포지션: 포워드(FW), 스트라이커
대표데뷔: 94년 9월 13일 우크라이나 친선졍기(오버헤드킥 데뷔골)
대표경력: A매치 71경기 30골
K리그경력: 257게임 114골 41도움(통산 최다골)
상세프로필
1989년 대학선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비멤버 선발
1993년 상무 입대, 유니버시아드 대표 선발
1994년 A매치 데뷔, 데뷔골( VS 우크라이나, 서울 동대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대표
1995년 전북현대 입단, 코리아컵 대표
1996년 아시안컵 대표 출전 2골(인도네시아, 이란)
1997년 프랑스월드컵 지역예선 출전 3골(우즈벡, UAE)
1998년 프랑스월드컵 대표 2경기 출전, J리그 빗셀고베 2년 임대
J리그 빗셀고베 17골(득점8위, 팀내득점1위)
1999년 친선경기 브라질전 결승골(1-0)
J리그 빗셀고베 10골(2년연속 팀내득점1위)
2000년 전북현대와 K리그 최고연봉 계약( 2억7천만원)
K리그 득점왕(27경기출전 15골), 골든슈
시드니 올림픽 대표 출전, 한중-한일전 대표
2001년 K리그 2년연속 최고연봉 계약(3억3500만원)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표 출전
2002년 k리그 3년연속 최고연봉 계약(3억5천5백만원)
제6회 북중미 골드컵 대표 출전
2003년 성남일화 이적, 동아시아 대표 출전
K리그 MVP, 득점왕(28골), 베스트11
2004년 제18회 올해의 프로축구 인기선수상
2005년 K리그 최다골 기록 경신(9월1일, 113골)
푸마 ‘스투’ 프로축구 베스트 공격수 부문 수상
스포츠토토 한국축구대상 특별상
9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김도훈, 그는 학성고 시절 청소년대표로
활약했으며, 연세대에 재학한후에는 89대학선발과 92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에 몸담기도 한 엘리트과정을 거친 선수이나 그때까지 김도훈이라는 선수의 존재
가치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93년 상무에 입대했고, 그해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선발되어서 득점왕을 수상하고,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가대표
로 선발되어 데뷔경기인 우크라이나전에서 멋진 오버헤드킥을 성공시키면서 스타탄생
을 예고했다. 그해 94년 춘계실업축구 득점왕을 차지했고, 95년 전북현대에 입단한
김도훈은 그해 코리아컵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그해 9골을 넣으며 성공적인 K리그
데뷔시즌을 보내게 된다. 96아시안컵에 참가하여 조별예선 인도네시아전에서 골을
기록하였고, 8강전 이란전에서 역시 골을 넣었으며 한국대표팀의 2:6 참패를 지켜
봐야 했다. 96애틀랜타 올림픽과 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통해 국민
적인 스타로 떠오른 최용수에 의해 빛을 보지 못했으나 98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 1골, 마지막경기인 UAE전에서 2골을 성공시키며 대회 3골을
기록, 김도훈이라는 선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98년 J리그 빗셀고베로
임대된 김도훈 선수는 98프랑스월드컵 대표로 출전하여 멕시코전과 네덜란드
전에서 활약, 특히 멕시코전에서 원톱으로 출전하며 팀은 1:3 참패를 당했으나
김도훈은 피파보고서로부터 좋은 평가를 듣게 되었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 출전
하면서도 그해 17골을 기록, J리그 득점8위의 영광에 오르게 된다. 99년 친선전
에서 세계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한국이 세계최강 브라질 축구를
꺾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그해 J리그에서 10골을기록, 98년에 이어 2년연속
팀내 득점랭킹1위를 차지한다. 김도훈의 이같은 활약으로 빗셀고베는 J리그에
잔류할수 있게 되었다. 2000년 전북현대로 복귀한 김도훈은 K리그 최고연봉인
2억7천만원에 계약한다. 그해 k리그에서 27게임 15골로 득점왕을 수상하며,
골든슈를 거머쥔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했으나, 팀이 2승1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지켜봐야했다. 2001년 3억3천500
만원의 2년연속 k리그 최고연봉을 차지한 김도훈은 2001년 올해의 가장 멋진골
을 넣은 선수인 2001 올해의 키카골을 수상하게 된다. 2001컨페더레이션스컵
대표로 출전하는 김도훈은 이듬해 2002년 3억5천5백만원의 3년연속 K리그
최고연봉을 기록하게 된다. 그해 북중미 골드컵에 출전한 김도훈은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 승선에는 정말 아쉽게도 실패하고 만다. 대표팀 탈락의
아픔을 겪은 김도훈은 2003년 성남일화로 이적, 그해 40게임 28골 13도움
을 기록하며 K리그 한시즌 최다골 수립과 더불어 10-10 클럽 가입,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면서 K리그 MVP, K리그 득점왕, K리그 베스트11의 3관왕
을 수상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내게 된다. 그해 IFFHS 선정 클럽골게터
랭킹 세계13위에 랭크되었고, 동아시아 대표로도 활약한다. 2004년 8월 15일
미술학도인 김민정씨와 결혼한 김도훈은 그해 프로축구 인기선수상을 수상한다.
2005년 9월1일 인천전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K리그 통산 최다골인 113골을
기록한 김도훈 선수는 그해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K리그에서는
통산 257게임 114골 41도움을 기록하였고, A매치에서는 71게임 30골을 기록하며
한국프로축구와 한국대표팀에서 족적을 남긴 김도훈, 보통 A매치에 전념하면 국내
프로리그 활약이 미미하고, 국내프로리그에 전념하면 국가대표 활약이 미미한 법인데
김도훈 선수는 K리그와 A매치에서 모두 족적을 남긴 선수가 되었다.
K리그 통산 최다골 기록 보유자이자 40-40 클럽의 사나이, 90년대 중반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스트라이커 김도훈, 그도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임에 틀림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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