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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국조 청문회, 보석같이 빛난 양심 권은희
국조 청문회, 보석같이 빛난 ‘양심’ 권은희
[오주르디님 글]
국정원 직원과 경찰 분석관 등 대부분
증인들은 한결같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실을 부정했다. 심지어는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증거조차 “대답 할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아니다” “말 할 수 없다” “모른다” “기억할 수 없다” 등이 증인 답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정조사 파행, 청문회 증인 모르쇠... ‘컨틴전시 플랜’의
일환?
저들의 함구 또한 여권이 지난 대선
때 가동했다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12월 10일 권영세 새누리당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이 ‘NLL
자료’와 관련해 ‘컨틴전시 플랜’을 언급했고 그 다음날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이 발생한다.
12월 13일 원세훈 국정원장은
권영세 실장과 NLL 회의록 공개여부를 상의했고, 14일 김무성 박근혜 대선캠프 선대본부장이 NLL 회의록을 인용한 발언을 한다. 15일 김용판
서울청장은 청와대 주변에서 ‘의혹의 점심식사’를 가졌고, 16일 오전 김무성 본부장은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증거 없다”고
주장한다.
16일 오후 박원동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은 김용판 서울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왜 댓글 수사결과 발표하지 않느냐”고 다그쳤고, 16일 밤 11시 경찰은 “댓글 흔적 없다”는
허위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다.
이후 NLL 회의록 공개로 국정원
사건 물타기를 시도했다. 종합해 보면 '국정원 댓글녀' 사건(12월 11일)이 터지자마자 여권이 부랴부랴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한 것이 확실해
진다.
증인들 사실 전면 부인... 국정조사 '최종
물타기'
그리고 마침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들 대부분이 사전에 입을 맞춘 듯 국정원 대선개입 사실을 전면 부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검찰이 “혐의 있다”고 인정한 부분까지 깡그리
부정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최종 물타기’를 시도했다.
'국정원녀'로 통하는 김하영,
직속상관인 최형탁 팀장, 박원동 전 국장, 민병주 전 단장 등은 가림막 속에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앉아 유의미한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하고,
불리한 정황이 나오면 “기억하지 못한다”며 피해갔다. 이들의 답변 내용을 대략 정리해 보았다.
“(권영세와 통화 여부에) 통화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박원동)
“(서상기와 통화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기억을
못하겠다.” (박원동)
“(김용판 청장에게 수사발표 다그쳤냐고 묻자)
사건과 관련해 고생하고 있어 인사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했다.” (박원동)
“(댓글 지시 받았느냐는 질문에) 그런 지시 받은
적 없다.” (김하영)
“(댓글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종북세력의
선전선동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김하영)
“(심리전단 댓글 활동 경찰 진술에 대해) 답변하기
곤란하다.” (김하영)
“(야당 의원이 대답하라고 추궁하자) 재정신청
중이어서 답변할 수 없다.” (김하영)
“(경찰 진술 내용 확인해 달라고 하자) 답변
드리기 곤란하다.” (김하영)
“(오피스텔 대치상황에 대해) 3일째 감금당한
상황...무서웠다고 기억한다.” (김하영)
“(수사 축소 의혹 질문을 받자) 동의할 수 없다.
정치적 고려 없었다” (사이버 분석관)
“대선개입 아니다. 종북 심리전을 펼친 것이다.”
(민병주)
“대선 개입 의혹 받을 만한 활동 전혀 하지
않았다.” (이종명)
<가림막에
숨은 증인들(위) / 황급히 회의장 빠져나가는 '국정원녀'(아래)>
썩은 오물통 같았던
증인석
새누리당의 비호 아래 대부분 증인들이
사실을 부정하더 그 때, 또박또박 당시 상황을 증언해준 사람이 있었다. 썩은 ‘오물통’ 같은 증인석에서 하나의 보석이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당시 경찰 수사팀을 이끌었던 권은희 수사과장이 바로 그다.
조금도 주저함 없이 ‘김용판의 증언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김 전 청장은 지난 16일 청문회에 나와 수사 당시 권 과장에게 전화한 게 “격려전화를 한 것일 뿐”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권 과장은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한 때 상관이었던 사람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 거짓이라고 폭로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감동의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권은희
과장>
권은희
과장의 ‘양심’ 보석처럼 빛나다
권은희 과장. 그의 양심과 정의감은
청문회 내내 보석처럼 빛났다. ‘권은희 청문회’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가 청문회장 전체를 압도했다. 새누리당은 권 과장의
입을 막으려했고, 야당은 그의 입에서 한톨의 진실이라도 더 얻어내려 애썼다. 권 과장의 입에서 나온 ‘양심의
소리’다.
“(김용판의 ‘격려전화’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이다.”
“수사 내내 서울청에서 지속적으로 부당한 개입이
이뤄졌다.”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대선에 영향을 주려는 목적이었다.”
“수사 내내 어려움과 고통 느꼈다.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을 막는 부당한 지시에 기인한 경우가 많았다.”
“김 청장(김용판)이 직접 전화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12월 15일 서울청이 수서서에 전화해 ‘키워드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키워드 축소’는 곧 수사 축소를 의미한다.”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대선에 영향 미치기
위한 부정한 목적으로 한 것이 분명하다.”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당시 나온 자료는
객관적이지 않았다. 더구나 공직선거법 관련 자료는 은폐·축소해 발표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감금당했다는 김하영의 주장에 대해) 감금으로
보기 어렵다. 당시 저와 (김하영과) 통화가 진행 중이었고 (김하영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 도곡지구대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김하영에게) 통로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양심의 소리’에 정신줄 놓은 새누리당
위원들
권 과장의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게
무척 거북했는지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은 일제히 그녀를 공격했다. 그중 ‘백미’는 탈북자 출신 조명철 의원이었다. 조 의원은 “권 과장이 생각하는
수사기법, 생각, 감정과 타인의 그것이 불일치 될 수 있겠다”며 “권 과장은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라고 물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해서라도
권 과장의 ‘양심의 소리’에 흠집을 내보려는 수작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권 과장이 애당초 민주당을 도울 목적으로 수사에 임했다”는 억지
주장과 “(권 과장의) 수사 능력이나 증거판단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인신공격성 발언도 등장했다.
권은희 과장. 그녀는 유능한
수사경찰이다. 사법시험(43회)에 합격해 청주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던 중 2005년 여성 경정 특채 1호로 경찰에 투신했다. 2007년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과장에 부임해 서울청 첫 여성수사과장의 탄생을 알린 후 지금까지 줄곧 일선서 수사과장을 맡고
있다.
여성 경정 특채 1호, 변호사 출신
수사과장
경찰에 투신한 2005년부터 지금까지
그의 소신을 지켜오고 있다. 2005년 4월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권 과장이 한 말이다. 수사경찰로서의 자부심과 경찰이 지켜야할 양심과 덕목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수사의
기본은 사실관계를 입증할 법률적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는 일이죠. 오히려 법률가 출신 수사과장이 기록물을 통해 공판을 유리하게 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경찰이
외부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고 내부적으로 자긍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보석 같은 ‘양심’이 민주주의
지켜낸다
그렇다. 권 과장은 지금 경찰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그대로 행동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상관도, 그녀의 부하도 죄다 엄연한 사실과 증거에 고개
돌리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림 없이 ‘양심의 소리’를 내고 있다.
권 과장
같은 ‘양심’이 있기에 희망이 있는 거다. 허약한 민주주의를 굳세게 떠받치고 있는 ‘양심’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한 이 땅의 민주주의는
강하고 힘차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가자서작성일
2013-08-2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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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국조 증인 채택에서 권영세, 김무성은 빠진다고 함.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80715053162028&nvr=Y
증인 명단 29명▶원세훈, 이종명, 박원동, 민병주, 최영탁, 김하영,▶김용판, 최현락, 이병하, 김병찬, 이광석, 권은희, 박정재, 장병덕, 김보규, 김하철, 임판준, 한동섭, 김수미, 박진호, 최동희, 장기식, ▶강기정, 정기성, 김상욱, 백종철, 유대영, 조재현, 선승진.2. 참고인 명단 6명김유식, 김흥광, 구동렬, 표창원, 안병진, 박주민3. 미합의된 증인에 대해서 계속 협의한다.4. 원세훈, 김용판 증인은 8월에 소환하고 나머지 증인은 8월 19일에 소환한다. 미합의 또는 미출석한 증인에 대해서는 8월 21일에 재소환한다.--------------------------------
그냥 그렇대요..
따라라라작성일
2013-08-0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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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대한민국 민주화의 과정에서....
대한민국 4,5,6월은 참으로 고단한 역사를 품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6.25전쟁,4.3제주도사건,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 87년6월 민주화운동 그속에서 독재정권과 싸우다 혹은 절망스런 사회현실에 좌절해서.. 혹은 누군가에 끌려가서죽음에 이른 이들이 이렇게나 많네요..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5월 6월입니다..철없는 친구들이 웃으며 민주화 민주화..하는걸 지켜보며 개탄스럽기도 하고요..------------------------------------------------------------------------------------------------1. 1950년대 이승만 정권과 4?19민중혁명19597. 31 조봉암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 당함.19604. 11 김주열 시신 발견. 4.19혁명 촉발 2. 1960년대 군사독재 정권기 자본주의의 성장과 전태일 분신196112. 21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사형 당함19697. 10 통혁당 관련 김종태 사형집행11. 4 소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권재혁 사형 당함11. 4 통혁당 사건으로 이문규 사형 당함11. 28 통혁당 사건으로 윤상수 사형 당함19706. 9 4.19 민주화운동 등 사회 운동에 헌신한 이상배 옥고를 치루고 고문후유증으로 운명 11. 13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근로조건개선 요구 분신자살, 이후 학생들의 민주화투쟁 확대 3. 1970년대 유신체제와 민중운동의 발전19714. 27 3선 개헌에 반대활동하며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 선거운동 중 양상석 의문사 당함 5. 17 한영섬유 노동자 김진수, 구사대에게 피습 폭행당하여 치료 중 5월 17일 운명6. 25 김창수, 5월 25일 부정선거관련 조사받으러 연행되어 상경하던 중 김제역 부근에서 죽음을 당함.7. 15 통혁당 사건으로 김질락 사형 당함10. 18. 이강복,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복역중 병으로 대전교도소에서 운명19737. 6. 강무갑, 한글학회에서 활동 투옥. 사회대중당 후보 출마, 1차 인혁당 및 김배영사건으로 투옥. 고문 후유증으로 오랜 투병 중 운명10. 19 서울대 법대 교수 최종길, 중앙정보부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던 중 간첩 자백 강요를 거부하다 고문치사 당함19744. 4 감옥에서 행해진 사상전향공작 과정에서 최석기 무차별 폭행으로 운명.7. 20 사상전향공작 고문에 항의 전향 강요말라는 혈서를 남기고 박융서 운명19754. 9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등 8명이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뒤 불과 20시간만에 사형집행(민청학련 9명은 무기징역)4. 11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 양심선언 후 할복자살8. 17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장준하 선생, 등산 도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10. 15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서대문구치소에서 복역하던 장석구 선생 옥사 19764. 1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단식중 강제급식으로 손윤규 운명11. 14 심오석, 경북대생 유신반대 투쟁 중 기관원에 의해 임의동행된 후 행방불명됨11. 현승효, 경북대생 유신반대 투쟁 중 강제 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771. 19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해직 된 조민기 동아투위 활동 중 지병으로 운명19787. 8 청주신학대생 정법영, 노동자들과 투쟁 중 중앙정보부의 극심한 감시와 탄압을 받던 중 죽음을 당함 19796. 14.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던 노동자 이경심, 헌신적 활동 속에 병이 악화되어 운명.8. 11 YH무역노동자 신민당 점거농성중 노동자 강제 해산과정에서 김경숙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맞서다 운명 4. 광주민중항쟁과 신군부 정권의 등장19802. 29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 후 해고 동아투위 활동중 안종필 간암으로 운명5. 30 서강대생 김의기, 광주의 참상을 알리려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투신자결 6. 9 노동자 김종태, 노동 3권 보장과 광주학살 관련 전단을 배포하고 분신 자결 7. 11 사회안전법 보호감호 폐지 요구하며 단식중이던 김용성 강제급식 과정에서 죽임 당함7.11 사회안전법 보호감호 폐지 요구하며 단식중이던 변형만 강제급식 과정에서 죽임 당함7. 26 임기윤 목사, 민주화운동을 하다 보안사에 연행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811. 2 서울대 학생운동 참여 군입대 이틀만에 이진래 목멘상태로 의문사 당함5. 27 서울대생 김태훈,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친 뒤 투신 자결6. 20 전정배,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후 보호감호생 집단난동 사건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9. 1 부산대생 최종철, 부마항쟁에 참가하여 쿠데타 구속된 뒤 후유증으로 사망 11. 22 이재문, 남민전 사건으로 검거된 후 옥중에서 광주학살에 항의단식,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19824. 20 서울대생 노진수, 학생운동을 하던 중 연행된 후 행방불명됨7. 23 연세대생 정성희, 강제징집 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함 8. 22 진아교통 노동자 문영수 경찰 폭행에 항의 하다 구타로 운명 10. 8 신향식 선생,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사형집행 10. 12 광주항쟁과 관련 구속 기소된 박관현 전 전남대학생회장, 옥중에서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 운명 19835. 3 성균관대생 이윤성, 강제징집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6. 18 고려대생 김두황, 강제징집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7. 2 한양대생 한영현, 강제징집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8. 14 동국대생 최온순, 강제징집된 뒤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11. 16 서울대생 황정하, 도서관 6층 난간에서 시위 중 추락하여 사망 12. 11 서울대생 한희철, 군입대 후 보안사의 녹화사업 과정에서 죽음을 당함 12. 15 시민단체 활동 중 간첩혐의로 조사 받은 정은복 누군가를 만나러 나간 후 행방불명19844. 2 부산 수산대생 허원근, 군복무 중 3발의 총상을 입고 의문의 죽음을 당함 10. 14 박영두, 삼청교육대에서 청송교도소로 이입된 후 고문과 구타를 당해 사망11. 2 연세대생 임용준, 학생운동을 하던 중 군에 입대하였으나 의문의 죽음을 당함11. 30 민경교통 택시운전사 박종만, 노조탄압에 항의 분신자살19851. 16 전남대생 기혁, 독재정권의 교육정책 반대투쟁 중 운명8. 15 건설노동자 홍기일,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라는 전단을 살포한 후 분신 자결 9. 12. 성대 학생운동 후 인천지역 노동현장 활동하던 정상윤, 해고자들과 수련회 도중 운명9. 17 경원대생 송광영, “학원안정법 반대와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분신(10. 21 사망)10. 11 서울대생 우종원, 민추위 사건으로 대공과의 수배를 받아오다 경부선 철로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해 발견 19863. 10 아산군 영농후계자 회장 오한섭, 무책임한 영농정책에 분개 음독(3.13 사망) 3. 16. 장이기, 예비군훈련 중 군사독재정권과 광주학살에 대해 발언 후 고문당해 사망3. 17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노동3권 보장하라 며 경찰과 구사대에 맞서 분신 자결4. 28 서울대생 김세진, 전방부대 입소거부 시위 도중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 5월 5일 운명 4. 28 서울대생 이재호, 전방부대 입소거부 시위 도중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 5월 26일 운명4. 30 삼환택시 노동자 변형진, 회사측의 부당해고에 항의 분신, 5월 1일 운명5. 7 전재권 선생, 소위 인혁당재건위 사건 복역 후유증으로 운명 5. 20 서울대생 이동수, 문익환 목사의 강연회 도중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등을 외치며 분신자살5. 21 서울대생 박혜정, 조국의 현실에 분노하며 한강에 투신 자결5. 26 노동자 김상원, 경찰의 불심검문에 항의하다 폭행으로 식물인간이 된 뒤 사망 6. 5 이경환, 청량리 맘모스 호텔 옥상에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투신 자결6. 11 노동자 신호수, 서울 서부서 대공과에 연행, 6월 19일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 6. 18 서울대생 김성수, 기관원에 유인되어 실종, 6월 20일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죽음을 당한 채 발견됨6. 26 강상철, 목포사회운동청년연합 활동 “민주화운동 탄압중지와 5.18진상규명, 직선제 개헌 단행을 촉구하는 양심선언”을 하고 분신11. 5 경성대생 진성일, “건대 농성사건 해명, 독재 타도, 미제 축출” 요구 분신 자결 19871. 3 이순덕, 충청지역의 교육민주화 활동에 앞장서다 운명1. 14 서울대생 박종철,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던 중 고문으로 운명(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2. 6. 김문심, 4월 혁명 시 초대 교원노조위원장 지냄. 민주화운동 중 운명 2. 20 서울대생 김용권, 군입대 후 프락치 행위를 강요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2. 20. 서울교대생 박선영, 비민주적 학사운영과 매판세력의 지배를 받는 조국의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 3. 1 노철승, 수도방위사에 근무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3. 3 부산대생 이승삼, 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3. 6 호남대 자퇴 후 노동현장활동하던 표정두, 슐츠 방한을 앞두고 ‘내각제 개헌반대, 장기집권음모분쇄, 광주사태 책임지라’외치며 미대사관 앞에서 분신, 3월 8일 운명3. 19 부산대생 박필호, 육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3. 27 부산대생 장재완, 방위병 근무 중 중요문건이 보안대에 넘겨지자 조직보위 위해 자결 5. 11 박상구, 군의 비리와 비인간적인 행태에 불만을 갖고 있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 5. 17 노동자 황보영국,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분신, 5월 25일 운명.6. 8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노동자 정경식, 노조활동을 하던 중 실종됨. 88년 3월 2일 창원 볼모산에서 시신으로 발견6. 9 이한열, 6·10총궐기를 위한 결의대회 중 직격최루탄에 피습. 7월 5일 운명 6. 15 전남대생 이이동, 군에서 학생시위 옹호발언을 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 6. 18 태광고무 노동자 이태춘, 대회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해 추락 사고.6월24일 운명6. 25 외국어대 학생 이재용, 경찰의 학내침탈 소식을 듣고 피하다 사고로 운명7. 12 채광석, 시인으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장 활동 중 사고로 운명 8. 1 인천기노련 소속 노동자 김현욱, 이대용, 박용선, 유인식,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운명 8. 22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평화시위 중 직격 최루탄에 맞아 운명9. 2 조흥택시 노동자 이석구, 노조 활동을 하다 회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9월19일 운명.9. 8 서울대생 최우혁, 사회과학서적을 읽다 보안대 적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10. 16 고려화학 노동조합 사무장 김수배, 회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 자결 11. 3 노동자 김성애, “산재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며 산재중앙병원에서 투신 자결 11. 26 박태조, 광주항쟁으로 4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81년 특별사면으로 출소 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12. 4 정연관, 대통령선거 군부재자 투표에서 야당을 찍었다고 부대에서 구타 당해 운명 12. 5 노동자 박응수, “후보단일화하라”고 절규하며 대전역 앞에서 분신 자결 12. 10 목포대생 박태영, “거국중립내각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 자결 12. 16 심재환,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등 학생운동. 인천 삼화실업에서 노조결성 등 노동운동을 하던 중 자신의 자취방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19881. 6 우성택시 노동자 이대건, 단체협약 위반에 항의하여 분신, 1월 8일 운명3. 1 인천 경기교통 노동조합위원장 김장수, 부당해고 반대 요구하며 분신, 3월 9일 운명 3. 10 대원전기 노동자 오범근, 파업농성에 대한 구사대 폭력 등에 항의하며 사장실에서 음독자살3. 25 농민운동가 김길호, 87년 부정선거 규탄투쟁 중 경찰에게 집단구타 당해 후유증으로 운명 3. 25 고려대생 유병진, 87년 대선 당시 공정선거 감시단 활동 중 화재에 의한 후유증으로 운명 4. 10 한신대생 곽현정, 86년 건국대 애학투련 항쟁 으로 구속된 뒤 자결 4. 25 고려피혁 노조위원장 최윤범,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분신, 4월 30일 운명5. 5 유진곤,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옥고 후유증으로 운명5. 9 신영일, 전남민청련 창설과 5·3인천투쟁을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하다 운명5. 13 고정희, 민애청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다 연행. 정신병원에 강제수용된 뒤 투신 자살5. 15 서울대생 조성만, 명동성당에서 “양심수 즉각석방” 등 구호를 외치며 할복 투신자살5. 18 단국대생 최덕수, “광주를 잊지말자”며 분신, 5월 26일 운명5. 24 순천 현대교통 택시노동자 장용훈, 부당해고와 노조탄압에 항의하여 분신, 5월 30일 사망5. 26 서울대생 안치웅, 대우어패럴 농성 사건으로 1년 복역, 출소 후 학교 마치고 외출하였으나 행방불명됨6. 4 숭실대생 박래전,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분신, 6월 6일 운명 6. 9 광무택시 노동자 문용섭, 회사비리를 밝히려다 구사대의 폭행에 의해 죽음을 당함 6. 20 성균관대생 우인수, 군입대 후 의문의 사고를 당함. 6월 24일 운명 6. 23 한신대생 박인순, 대학원 원우회 회장으로 학생운동 활동 중 기숙사에서 죽음으로발견됨6. 29 강원 태백탄광 노동자 성완희, 동료의 복직을 요구하며 분신, 7월 8일 운명7. 2 협성계공 노동자 문송면, 15세 어린 나이로 수은중독 되었으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운명 7. 15 세창물산 노조 사무장 송철순, 파업 중 추락, 7월 17일 운명8. 1 박종근, 방위 근무 중 상관의 보약상납 요구 거부한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8. 14 정성규, 청주민청 간부로 활동 중 운명 9. 12 현대엔진 노동자 이상남, 구사대 봉고차에 깔려 중상, 89년 5월 16일 운명 10. 10 부산대생 양영진, 군입대한 뒤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투신 자결 11. 6 대원여객 노동자 이문철, 부당 해고에 항의하여 분신 자결 11. 14 금성사 노동자 배중손, 노조 민주화와 임금 인상 투쟁에 앞장서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 19892. 4 함석헌 선생, 평생을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운명2. 18 철거민 정상율, 돈암동 세입자 대책위 활동하다 가옥주의 칼에 찔려 운명3. 31 경희대생으로 야학활동 등 참여, 모임 후 귀가 중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 운명 4. 3 덕진양행 노조위원장 김윤기, 국민대를 다니다 노동운동에 투신, 공장 이전 항의 파업중 분신 자결4. 7 서울교대생 남태현,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교대인이여 깨어나라”며 분신, 4월 8일 운명 4. 9 노동자 최완용, 인천 흥업사 근무 중 산재를 당하고 치료를 거부당한 뒤 분신 자결5. 3 국가보안법으로 수배중이던 조선대생 이철규, 불심검문 받고 도주 후 행방불명, 5월 10일 의문사 당한 채 발견.5. 4 노동자 김종수, 무노동 무임금 철폐, 민주노조 사수 외치며 분신 자결5. 24 노동운동가 조정식, 반제동맹사건으로 복역 후 영전기계에 입사하여 노동운동하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 5. 29 대우조선 노동자 박진석, 회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의 분신, 6월 4일 운명 5. 29 대우조선 노동자 이상모, 박진석 동지 분신 후 민주노조 사수를 외치며 분신 자결 7. 3 기아자동차 노조 대의원 이종대, 해고반대 투쟁과정에서 분신, 7월 17일 운명 8. 2 남성흥진 노동자 최성조, 파업 중 구사대 폭력으로 실신, 8월 5일 운명 8. 15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이내창, 안기부 기관원에 의해 거문도로 유인된 후 거문도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함9. 2 노동자 김병구, 제13대 대선과 총선 부정을 폭로하며 자결 9. 4 경동산업 노동자 강현중·김종하, 회사의 부당징계 조치에 항의 분신(강현중 9. 9 운명, 김종하 9. 15 운명)10. 16 노점상 이재식, 노태우정권의 무자비한 노점상 철거에 항의하여 분신, 12월 11일 운명 10. 29 인천 협신사 노동자 이재호, 노동조합 재건 활동을 하던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함11. 30 임태남, 광주항쟁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특별사면으로 출소 후 대광교통에서 노조활동을 하던 중 죽음을 당함.19902. 19 배주영, 봉화여고 선생님으로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3. 28 동우전문대 총학생회장 김용갑, 학원자주화 투쟁을 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함4. 4 노동운동가 강민호, 한신대를 다니다 노동운동에 투신 활동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 5. 3 통일중공업 노동자 이영일, 경찰과 회사측의 지속적인 탄압에 항의 분신 자결5. 17 철거민 이원기, 철거투쟁 중 “무책임한 철거를 막아달라”며 목매 자결5. 18 대유공전생 신장호, 전대협 출범식 참가 중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다 사망 5. 24 박성은, 군대 내 비인간적인 행태를 고발하는 문건 작성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함 6. 4 한일고생 정성묵, 교육방법의 개선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 6. 5 경화여고생 김수경, 전교조 가입교사에 대한 징계반대 활동을 하다 투신 자결 6. 6 복학생협의회 활동을 통해 학생운동에 헌신하던 김학수 집회 참여 후 후유증으로 운명7. 14 경북 청도 노동자 최태욱, 부당한 해고에 항의하여 분신 자결 7. 14 전두환 물러가라 외침 정신이상으로 몰려 김진홍 의병제대. 사찰 관리 중 의문사8. 7 노동운동가 최 동, “미제와 적들의 탄압을 고발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결 8. 30 금강공업 노조부위원장 박성호, 후생복지부장 원태조, 공권력 투입에 반대하며 분신, 박성호 9월 11일 사망, 원태조 9월 18일 사망 9. 12 오원석, 교육민주화활동에 헌신하다 운명 9. 8 충주고생 심광보, “전교조여, 참교육의 함성을!” 등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결 9. 15 서원대생 김기훈, 총학생회 등 헌신적 활동으로 몸을 돌보지 못하다 병악화로 사망11. 8 한양대생 최응현, 민주화투쟁에 제대로 복무하지 못함을 자책하여 투신 자결 12. 6 김병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출소 후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운명 12. 12 전태일 평전 의 저자인 인권운동가 조영래, 민변 창립 등 활발한 운동을 하다 운명 12. 17 자민투활동. 옥중 처우개선을 위해 단식. 출소 후 사회운동 중 박인기 운명19911. 5 원진레이온 노동자 김봉환, 아황산가스에 산재치료 받지 못하고 사망2. 3 한국외국어대생 남현진, 군대에서 통일과 외세 문제에 대해 얘기한 뒤 죽음을 당함 2. 20 서울대생 송종호, 군 입대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함 2. 22 김공림, 서울대 재학 후 노동운동. 성동지역 동부노동상담소 활동 중 위암으로 운명3. 9 신용길, 구덕교 교사로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4. 26 명지대생 강경대, 백골단에게 쇠파이프로 집단 구타를 당해 운명4. 27 김영환, 한겨레 사회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중 자취방에서 변사체로 발견 4. 28 분단희생자 김광길. 교도소 생활 중 얻은 간암으로 함평군 산골에서 운명 4. 29 전남대생 박승희, “노태우정권 타도하고 미국놈들 몰아내자”라고 외치며 분신, 5월19일 운명5. 1 안동대생 김영균, “노태우정권 타도, 공안통치 분쇄”를 외치며 분신, 5월2일 운명 5. 3 경원대생 천세용,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 운명5. 4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 구속 수감 중 의문의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 치료 중 5월 6일 의문사 당함 5. 8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사망5. 10 성남피혁 노동자 윤용하, 노태우정권 타도, 노동해방을 외치며 분신(5.12 사망)5. 18 이정순, 연세대 정문앞 철교에서 “공안통치 종식, 노태우 퇴진”을 외치며 분신 자결5. 22 정상순, 전남대 병원 영안실에서 “노태우 물러가라” 며 분신, 5월 29일 운명 5. 25 성균관대생 김귀정, 경찰의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에 짓밟혀 살해당함 6. 1 보성고생 김철수,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 자결 6. 8 인천 삼미기공 노동자 이진희,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에 항의하여 분신, 6월 15일 운명6. 15 인천 공성교통 노동자 석광수, 차량시위 도중 지도부 연행에 항의 분신, 6월 24일 운명 6. 27 노동운동가 유재관,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에서 활동 중 경찰의 침탈소식을 듣고 피하다 운명 8. 3 신구전문대 총학생회 간부 고재욱, 수련회 중 익사로 운명8. 3 류정하, 신구전문대 총학생회 간부로 수련회 중 익사로 운명 8. 18 대구대생 손석용, 입대 후 민족을 향해 총을 겨누는 것에 고민하다 분신, 8월 19일 운명8. 22 합동물산 노동조합 위원장 김처칠, 언론에 호소 하며 파업 중 한강에 투신 운명 11. 7 양용찬, 서귀포 나라사랑청년회 회원으로 제주도개발특별법 저지 요구하며 분신 자결11. 21 30년 복역 고문과 감옥생활로 인한 병으로 최인정 운명12. 6 대봉 노동자 권미경, 미싱공으로 근무하던 중 노동통제 강화에 항의 투신 자결12. 10 창원대생 탁은주, 참교육연구회 회장 역임 등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가하다 행방불명된 후 의문사 당한 채 발견19921. 18 통일운동가 24년 옥고 치른 후 출소 지병 악화로 박판수 운명1. 21 현대자동차 노동자 서영호, 노동조합 활동 중 경찰 침투대비 저지선 순찰을 하다 사고당한 후 93. 7. 1.사망 2. 15 원진레이온 노동자 강희수, 산재 치료를 거부당한 뒤 운명3. 11 노동운동가 박복실, 전북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사망3. 21 최성묵, 부산민주화운동의 지주로서 헌신적 활동을 하다 지병으로 운명4. 12 숭실대생 이상렬, 야간강좌 부총학생회장으로 과로로 운명 4. 24 국민대생 정도준, 부대 야외 훈련기간 중 부대내부에서 의문사 함.4. 28 숭실대생 박현민, 총학생회 집행부로 활동하다 등록금 투쟁 중 과로로 운명5. 30 김기옥, 인천 영진운수노조 활동 총파업으로 구속, 해고. 복직 후 활동 중 폭행으로 운명 8. 29 한신대생 박태순, 부천에서 노동운동, 기무사의 추적을 받던 중 구로역 인근에서 행방불명된 후 시흥 전철역 부근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9. 11 오원진, 충남지역 청년운동을 선도하다 운명 10. 10 윤재영, 충남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한 뒤 노동운동, 청년운동에 헌신하다 병으로 운명11. 2 전남대생 문승필, 학생운동을 하던 중 경찰의 협박 전화를 받아오다 철로변에서 의문사한채 발견.11. 3 철거민 김선호, 부산 장리동 철거반대 투쟁 중 용역깡패의 집단폭행으로 운명. 11. 4 임희진, 전교조 분회결성 주도로 해직된 뒤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12. 13 최성근, 전교조 대의원 사립지회 활동 중 지병으로 운명12. 22 이광웅,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된 이후에도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2. 김영삼 정권19931. 14 권두영,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안기부에 연행되어 구속, 수감 재판을 받던 중 구치소에서 목매 자살1. 20 황인철, 인권변호사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해오다 운명1. 25 삼미특수강 노동자 정운갑, 노조집행부 활동 중 운명 2. 20 인천 남일금속 노동자 채희돈, 노동조합 활동 중 과로로 운명3. 12 지학순, 천주교원주교구 신부님으로 독재에 항거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운명4. 14 정영상, 교사로 해직된 후 안동지역에서 전교조 활동을 하다 운명 5. 13 정영부, 89년 해직당한 이후 참교육 실현을 위해 활동하다 운명 5. 19 한양합판 해고노동자 조경천, 복직투쟁을 전개하다 운명 5. 21 원진레이온 노동자 고정자, 산재판정 받았으나 치료받지 못해 자결 6. 26 박미경,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후 교육민주화를 위해 애쓰다 운명8. 8 노동운동가 김주리, 이화여대 졸업 후 노동현장에서 헌신하다 화재로 운명 8. 15 성순희, 전교조 교사가족회 등에서 활동하다 수배생활 과정에서 운명 9. 8 광주교대생 이경동, “주한미군 철수와 김영삼정권 반대” 등을 요구하며 분신, 9월 9일 운명 9. 9 노동운동가 임혜란, 인천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운명 9. 11 농민운동가 김영자, 자주·자립적 농업의 건설과 진정한 농민해방을 염원하다 운명 9. 26 전교조 결성 참여 후 해직되어 활동하던 길옥화, 전교조 탈퇴를 전제로 한 복직에 항의 자결10. 26 노동운동가 최웅, 경동산업 해고노동자로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 11. 10 광주교대생 한상용, 교대교육 정상화를 위한 투쟁 중 분신 자결 12. 27 과학기술원 유전공학연구소 노조위원장 박성호, 노조 활동 중 교통사고로 운명 19941. 18 문익환 목사, 평생을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1. 24 김성윤, 상호운수노동조합 활동 중 “김영삼 대통령에게 드리는 탄원서” 작성 후 자결1. 26 이오순, 송광영 동지의 어머니로 이땅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 1. 27 전북산업대생 이창환, 농활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 2. 1 농민운동가 김순복·손구용, 농민대회에 참여 도중 사고로 운명 2. 13 김남주, 남민전 사건으로 석방된 뒤 투병중 운명 2. 19 노동운동가 김상옥,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운명 3. 11 성호여객 노동자 최성묵, 회사측의 부당 노동행위에 항거 분신 자결 4. 17 한국통신 노동자 김낙성, 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운명 5. 2 숭실대생 신건수,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 8. 12 청년운동가 이범영,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헌신하다 운명9. 18 통일중공업 노동자 임종호, 구속된 이후 독방생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운명 19952. 24 분단 희생자, 윤기남 29년 복역 후 출소하여 통일을 염원하다 운명3. 8 노점상 최정환, 중증장애인으로 정권의 반민중적 빈민정책에 항의 분신, 3월 21일 운명 3. 17 경기대생 오원택, 사학비리 학교당국에 대항하다 군 입대 후 운명 5. 12 현대자동차 노동자 양봉수, “나는 3만 조합원을 사랑합니다”라고 절규하며 분신, 6월 13일 운명 6. 3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 수세거부투쟁 등 기독농민회 활동 중 운명 6. 21 대우조선 노동자 박삼훈,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승리하자”며 분신 자결 7. 3 이민호, 서울인쇄노조 쟁의부장 등 노동운동을 하던 중 삼영화학 청주공장에서 사고로 운명8. 16 박현채, 민중경제학자로 군사독재의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으며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운명 9. 4 철도 노동자 서전근, 철도민주화 투쟁 중 오지로 전출에 항의 분신 자결 9. 30 동래여전 졸업후 부산지역 전문대 운동의 일꾼으로 헌신하던, 육지희 지병으로 운명11. 25 노점상 이덕인, 장애인으로 노점 단속 중단 골리앗 농성 중 실종된 후 11월 28일 아암도 앞바다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 12. 14 경원대생 장현구, 파행적 학원운영 중지 요구하며 분신 자결 12. 15 대우정밀 병역특례해고노동자 조수원, 병특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민주당사 농성 중 자결 19961. 13 한일병원 노조 위원장 김시자, 부당징계 철회와 어용노조 퇴진 요구 분신 자결2. 5 철거민 신연숙, 수지2 택지개발사업지구 철거 과정에서 철거깡패들의 골리앗에 자행된 방화로 운명 3. 23 한국통신 제주고산전화국 노조지부장 김왕찬, 노조민주화에 앞장서다 운명 3. 29 연세대생 노수석, 경찰의 토끼몰이식 시위진압으로 살해됨 4. 6 경원대생 진철원, 학원 자주화투쟁 과정에서 분신 자결 4. 7 성신여대생 권희정, 학원 자주화 단식투쟁 후유증으로 운명 4. 16 성균관대생 황혜인, “김영삼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 자결4. 18 문한영 통일운동에 힘쓰다 운명4. 19 여수수산대생 오영권, “김영삼 타도, 미제축출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고 자결 5. 2 노동운동가 유구영,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살다 운명 5. 6 대구공전생 박동학, 학생자치권 보장을 요구하던 중 학생과 사무실에서 분신, 5월 8일 운명 6. 6 연세대생 정인택 대통령 선거 공명선거 감시단 활동 후 귀가중 의문사6. 18 한국통신 노동자 오용철, 개봉전화국에서 민주노조 활동으로 구속되었다 석방된 뒤 운명 9. 9 영남대생 김하영, 96년 7차 범민족대회 참가 중 지병으로 운명9. 18 경원대생 이상희 집회 중 경찰 연행 후 정신질환을 앓다 자결10. 3 노동운동가 김말룡,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초지일관 싸우다 운명11. 10 박문곤, 노동법 개정투쟁과 전교조 합법화 노동자 대회 참석 후 불의의 사고로 운명 12. 26 ‘녹슬은 해방구’작가 권운상, 유신철폐, 미스유니버스대회장 폭파음모사건 구속 등 민주화운동 참여 후 병으로 운명19972. 10 용인대생 한상근, 학교당국의 일방적인 학사운영에 항의하며 분신, 2월 13일 운명 2. 2 그림으로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 만행을 폭로 한 강덕경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활동 중 지병으로 운명2. 15 철거민 민병일, 구갈 철거민 대책위원회 활동 중 경찰의 집단폭행으로 운명 2. 25 농민운동에 투신하여 영광군농민회 활동하던 지용진, 모임 후 귀가 중 교통사고로 운명3. 18 22년 수감 생활 후 병 악화로 권양섭 운명3. 20 조선대생 류재을, 시위 도중 경찰의 강경진압에 의해 운명 4. 2 통일운동가 옥고 휴유증으로 고생하다 패혈증으로 진태윤 운명5. 31 국민캡 노동자 홍장길,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회사 분할매각에 항거 음독 7. 25 철거민 박순덕, 서울 전농3동 철탑망루 농성에서 철거깡패들의 방화에 의해 운명 9. 16 광주대생 김준배,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수배 중 보안수사대의 프락치 활동을 통한 과잉 검거 과정에서 운명 9. 21 군산대생 이형관, 전국대학생기자연합에서 대학언론운동을 하다 과로로 운명 12. 16 위안부 피해 처음 고발했던 김학순, 공개증언으로 문제해결운동에 참여 지병으로 운명 3. 김대중 정권19981. 7 대전지역 학생운동, 민주청년회 활동 중 강연석 교통사고로 운명1. 21 범민족대회 참가 중 백혈병 증세 발견 투병생활 하던 최신애 운명 2. 13 대우조선 노동자 최대림,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 입법화 반대”를 요구하며 분신 자결 2. 24 노동운동가 최명아, 민주노총 조직1부장으로 활동하던 중 과로로 운명5. 9 신길수, 동아엔지니어링 노조위원장 공익노련 부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운명6. 13 범민련 부의장 등 평생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하던 주명순 운명7. 19 구로지역에서 미조직 노동자 조직 현장활동하던 양순녀, 철원 통일수련회 도중 사고로 운명8. 4 사월혁명에 경북학생운동 대표로 참여했던 정만진 사월 혁명회 활동 중 운명 12. 7 경희대 학생운동 참여 학림사건으로 내사 고문후유증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던 이길상 투신12. 28 조현식, 경기도 광주지역 건설일용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사무실에서 화재 발생으로 운명19991. 30 정성범, 민주노총 충남서부지역 조사통계부장으로 활동 중 운명3. 14 계훈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고문 등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3. 31 김윤수, 대림자동차 노조활동 중 국가보안법으로 구속 출소 후 해고복직 투쟁 중 운명5. 17 배동복, 영창악기 풍물패 ‘어울림’ 창단, 불의의 사고로 운명5. 28 4월혁명에 서울지역 대학생연맹 활동을 통해 참여했던 심재택 사월혁명회 활동 중 운명6. 22 이상관, 창원 대우중공업 입사 근무중 산재당함, 근로복지공단에 의해 강제 퇴원 조치후 자결7. 10 윤창녕, 1급 장애인이라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전역 지하상가에서 어려운 노점생활을 하다가 구청의 노점상 단속에 항의해 분신7. 23 장애인 인권 및 생존권 증진을 위한 활동 중 박흥수 지병으로 운명8. 24 최경철, 현대자동차 조직부장으로 임단투 승리를 위한 노조신문 차량배포 중 사고로 운명8. 25 스타TX의 박용순 동지 “사납금제 및 업무상 사고처리비 노동자 부담 철폐”를 외치며 분신 사망 8. 27 김종배, 공공연맹 정책국장·대외협력국장·교육국장 역임, 불의의 사고로 운명12. 11 해방 후 청진교원대학 지리학 교수를 역임한 최남규, 57년 구속되어 29년 투옥 후 통일을 염원하다 운명12. 14 군포 대우중공업노조 위원장 및 경기 지역 진보운동에 참여 하던 임동국, 위암으로 운명20001. 26 범민련 부의장 김양무 선생님, 직장암으로 투병 중 운명 2. 29 노동자 정치세력화 및 안산지역에서 활동하던 김명한 운명6. 20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수감이 되풀이하던 김현순, 고문과 오랜 옥고 후유증으로 운명8. 12 재능교육교사노조 활동 하던 유희수, 적극참여 중 수련회에서 익사사고로 운명 8. 26 사회보험노조의 최진욱 동지 공안탄압분쇄를 위한 민주노총 집회 참석 중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운명 20012. 23 이옥순, 70년대 원풍모방 노동운동 통일을 여는 여성모임 ‘금강초롱’ 전국연합 대외협력위원장으로 활동하다 폐암으로 운명3. 해방전후 지역 청년동맹 활동, 25년 복역 후 대전지역 진보운동에 참여하던 안상운 중풍으로 운명4. 23 전농 경남도연맹 정책실장 등 농민운동으로 헌신한 김성원 운명5. 16 한승훈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517일 투쟁 참여 후 과로로 운명5. 18 안산지역 노동자 김순조. 노동자통일운동 참여, 창흥정밀노조 사무장으로 임단협을 준비하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7. 19 예덕실고 음악교사 전교조 활동으로 구속 파면 복직, 활동중 남광균 암으로 운명9. 5 전국건설운송노조 사무처장 안동근, 레미콘노동자 상경투쟁 조직 등 과로로 인한 병으로 투병하다 운명9. 12 경성대 재학 후 노동현장 활동 하던 강희완, 화물연맹 부두노동자들의 민주 노조의 틀을 잡기위해 노력하다 운명11. 14 이동현, 공무원노동조합 건설과 노동3권 쟁취를 위한 활동중 과로누적 등의 원인으로 운명20021. 18 여주지역에서 민중정치 활동하던 김남준, 민예총 여주지부 사무국장, 이천노동상담소 활동 중 운명3. 3 서울장애인연맹 정태수, ‘제1기 장애인청년학교’ 수료식 도중 과로로 운명3. 8 이천전기 노동자 유순조 세차례 옥고 치루고 IMF시 정리해고 반대투쟁 등 노동운동 중 대장암으로 운명3. 21 금강회 사건으로 제적 공주지역 사회운동 중 최연진 위암으로 운명3. 26 최옥란,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등 활동 중 심장마비로 운명4. 2 대우중공업노동자 김기욱, 인천지역 노동문화운동에 전념하던 중 간암으로 운명5. 21 부천시협 의장 한경석,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백혈병으로 운명7. 8 참교육 실현을 위해 활동하던 김종삼, 전교조 부산지역 활동 중 운명8. 3 민청학련사건 구속 대전지역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강구철 간암으로 운명8. 23 박봉규, 노점상연합 활동중 노점생존권탄압에 항의하며 구청장실에서 분신, 9월6일 운명8. 25 문재룡, 범민련서울시연합 부의장 등 평생을 조국의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폐암으로 운명11. 22 인천지역택시노동자 천덕명, 택시제도개선 파업 참여로, 사측의 집중탄압을 받던 중 월급제 사수와 인간다운 삶을 외치며 분신 운명 4. 노무현 정권20031. 9 배달호, 두산중공업의 부당해고와 징계에 맞서 투쟁하며 노조탄압에 대한 울분이 담긴 유서를 남긴 채 분신 운명1. 25 임영덕, 진해시 공무원 직장협의회 초대지부장으로 취임해 02년 11월 연가투쟁을 벌이다 건강악화로 운명1. 28 이성경, 87년 섬유노동운동 시작, 전국노운협 사무국장 등 활동하다 대장암 투병중 운명2. 11 고문피해자 강남근, 삼선개헌 반대투쟁과 야당 지지등으로 간첩으로 몰려 고문후유증으로 고통받다 운명2. 22 경기서부건설노조 및 안산지역 문예운동 참여한 권오복 교통사고로 운명4. 12 최전권, 전북도청에서 5.18 진상규명.군사독재 반대를 외치며 할복자살 기도 후유증으로 고통 받다 운명 4. 13 강희철, 전국연합 정치위원장 등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을 위해 헌신하다 뇌출혈로 운명4. 19 이성도,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장 등 헌신적 활동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4. 28 화물연대 노동자 박상준, 파업투쟁 중 “화물연대투쟁 반드시 승리하라”는 말을 남기고 음독자살5. 7 최복남, 화물연대 부산지부 김해지회장 역임, 파업투쟁 중 선전전을 벌이다 교통사고로 운명5. 15 김정훈, 97년 한총련 기획국장 활동 전국연합 정보통신부장, ‘사람들넷’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다 투병 중 운명6. 4 공무원노조 서울지역 김병진, 공직사회 개혁과 공무원 노동3권 쟁취를 위해 불철주야 투쟁하다 지병으로 운명8. 4 국민에게 기여하는 올바른 국민연금 관리가 되기를 바라며 송석찬 자결 8. 26 02. 8. 16일 노사교섭 결렬 후 파업기간중 회사의 구사대에 의해 두개골 함몰되었던 세원테크 노동자 이현중 운명 9. 2 카톨릭 신부로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김승훈 신부 운명9. 8 카톨릭학생회 활동을 거쳐 부산지하철 노조 현장활동 한던 최종만 운명 9. 10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자주농업을 사수를 주장하며 농민 이경해 자결10. 17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 크레인 고공 농성 129일째, 한진중공업 파업 88일째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정부와 사측의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밧줄에 목을 매 자결10. 23 세원테크 노조위원장 이해남, 고 이현중 열사 투쟁 관련하여 업무방해, 명예훼손,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배 투쟁중 분신, 11월 17일 운명10. 26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동조합 광주본부장 이용석,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철폐”를 외치며 분신, 10월 31일 운명10. 27 30년 복역 출소 후 통일운동에 헌신하다 장광명 운명10. 29 공무원노조 전남지역 활동한던 최주홍 공직사회 개혁을 위한 공무원노조활동에 헌신적 하다 간암으로 운명.10. 30 한진중공업 노동자 곽재규, 김주익 열사 투쟁 중 도크에 투신 자살11. 20 미군 장갑차여중생고신효순심미선살인사건범대위 상황부실장 제종철, 의정부일반노조 활동 중 의정부 철로에서 열차사고로 운명12. 7 전방입소반대 등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던 성기득, 교육현장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자결20041. 4 권종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초대의장 활동, 전국연합 통일연대 고문 및 지도위원으로 활동, 암으로 투병하다 운명2. 13 의료보험노조 서울본부 사무국장 등 역임하였던 박동진 수배생활 중 암진단, 병원치료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운명2. 14 민교협 공동의장 민중중심의 사회이론정립에 전념하던 김진균, 후진양성과 진보 사회단체 활동 중 직장암으로 운명2. 14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하청노동자 처우개선 및 근로조건 개선 투쟁 중 “비정규직차별철폐” 을 외치며 분신2. 21 전북지역 농촌운동 투신한 김윤 전국여성농민회 활동 중 심장병으로 운명 4. 1 정순덕, 50년 9월 23년간 옥고를 치루고 1985년 8월 출소. 2차 송환을 애타게 기다리시다 심장마비로 운명5. 26 민주버스노조 장흥교통 노동자 정상국, 임금체불과 장흥교통 비리 진상규명 촉구투쟁 관련 징계에 항의 자결5. 28 전국여성노조 및 부산지역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이경희 운명6. 8 강지연, 민중병원에서 노동운동 시작하여, 구로지역에서 문화 및 통일운동을 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8. 3 이영기, 대구지역 청년운동, 민중연대 활동을 통해 통일운동과 현안투쟁에 앞장서 던 중 간암으로 운명9. 3 마산 창원지역운동 및 여성운동에 헌신하던 이경숙 운명 11. 15 종교인 조용술 목사, 오랜기간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운명12. 21 4월 혁명 당시 경북대학생으로 참가 했던 이재형. 사월혁명회 활동 중 운명12. 27 코리아타코마 김춘봉, 희망퇴직당한 후 촉탁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비정규직 철폐 유서를 남기고 목맴12. 30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 박상윤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던 중 자결20051. 7 김남식, 해방 후 진보진영에서 자주적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 현대사와 통일 관련 연구활동을 통해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저서를 남김2. 10 정종태, 한양대 구학련 활동 99년 재능교육에 입사 쟁의부장을 맡아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운동에 앞장서다 위암으로 운명3. 5 신창균, 3.1운동 참가 등 독립운동. 48년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 이후 진보당사건으로 투옥. 평생을 반독재와 통일운동의 길을 걷던 중 운명4. 1 류낙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 선고 19년간 옥고를 치루고 94년 구국전위 사건으로 재검거. 99년 광복절에 가석방된 후 건강악화로 운명 4. 29. 엄성준 숭실대 학생운동 참여 농민운동에 투신 진천군농민회 활동 중 농활학생들과 답사중 교통사고로 운명6. 14. 한국노총충주지부장 김태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증진을 위해 헌신하던 중 레미콘노조 파업 지원투쟁에 참여 경찰 공권력에 의한 사고로 운명9. 3.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 류기혁, 비정규직노조 활동 중 사측의 탄압에 항의 목메 자결9. 10. 화물연대부산지부 조합원 김동윤, 화물운송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운명9. 21 김병권, 1921년 대구에서 태어나 30대 후반부터 50여년 동안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11. 11. 농민 정용품 농민의 날 무책임한 살농정책과 정치권의 무책임한 농정을 규탄하며 자결 함.11. 17. 경북성주농민회 문화부장 오추옥, 쌀개방을 반대하며 음독 자결 함.11. 24. 전용철 11월 15일 여의도 '쌀 비준협상 무효 농민대회' 과정에서 경찰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함. 12. 18. 홍덕표 11월 15일 여의도 '쌀 비준협상 무효 농민대회' 과정에서 경찰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함.12. 3선개헌 반대로 고문 당한 이기택, 후유증을 안고 전민상련과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활동 중 운명20062. 9.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위원장 역임한 조문익, 비정규직 조직활동 헌신. 지역공동체 활동을 준비하다 교통사고로 운명 5. 11 시인 박영근, 인천 5.3 운동 참여, 작가회의 및 민예총 활동 중 병으로 운명 7. 19.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활동 농성중 주민칠, 투신한 여성을 태화강에 뛰어들어 구한 뒤 급한 물살에 휘말려 운명.8. 1. 포항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 하중근, 파업투쟁 집회 중 경찰 폭력에 의해 운명.8. 19. 청구성심병원 위원장 이정미 만삭의 몸으로 노동법 개악투쟁 참여, 병원노동자들의 투쟁에 항상 함께 하던 중 위암으로 운명.8. 31. 부산민청활동 한청 지도위원과 6.15 남측위원회부산본부 집행위원장 역임한 박장홍, 민중연대 정책연구원 준비기획단 활동 중 과로로 운명9. 1 남문수, 현대자동차노조 대의원 활동. 사측의 부당 노무관리에 항의 자결 9. 6. 영천군 농민 이주영, 경북대 졸업후 농민운동에 헌신 영천군농민회 사무국장 등 역임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 11. 30 전교조 인천 교사신문, 중등남부지회 활동하던 김형선, 교통사고로 운명20071. 23 인천지역 택시노조 파업에 앞장서 참여 했던 전응재,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항거 2. 20 시인 조영관, 노동문학 활동 중 간암으로 운명 3. 26 김미영, 전국여성노조 인천지부 부위원장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조직 활동 모임 중 운명4. 15 허세욱, 택시노동자로 온몸으로 아는만큼 실천하다 한미 FTA 협상에 반대하며 분신 운명 5. 12 강제전향 공작을 받고, 가석방 출옥 후 울산지역운동 활동하던 김재헌, 운명 6. 22 김주연, 양산지역 농민회 활동. FTA 총궐기 대회 차량선전전 진행 중 운명 7. 22 반공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루고 통일운동에 헌신하던 최상원, 범민련 활동 중 건강 악화로 운명 9. 9 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민족문학 작가로 활동하던 표문태 운명 10. 11 고양시에서 노점상을 하던 이근재, 폭력적인 노점 단속에 항의 민중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자결 10. 23 진주 신일교통 버스 노동자 정태봉, 체불임금, 자주관리기업 쟁취투쟁과정 중 자결 10. 27 전기원 노조 노동자 정해진, 파업과정에서 건설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분신 11. 16 권중희, 김구선생 암살배후 진상규명 활동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운동에 전념하다 운명 12. 10 청주산업선교회 목사 정진동, 청주지역 노동운동 및 민중운동에 참여하다 운명. 5. 이명박정권20086. 9 전주지역 공공 일반노조 조합원 이병렬,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와 공공부문 사유화저지를 요구하며 분신 7. 26 미주지역 청년회 및 통일운동 참여 하던 정유미, 전민특위 사무총장 활동중 위암으로 운명 10. 4 공무원노조 초대위원장 차봉천, 공무원 노동자의 단결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 해고와 투옥 당함 암으로 운명11. 28 박윤정, 외국어대 학생운동 및 한총련 활동 후 노동운동에 투신 민주노총 상근활동중 병으로 운명12. 1 곽태영, 4월혁명에 참여 박정희기념 반대 및 민족정기 정립을 위해 헌신하다 운명.20091. 15 4월혁명에 참여했던 도강호, 범민련 등 평생 통일운동을 하다 운명1. 20 용산4지역세입자대책위 이상림,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용산4지역세입자대책위 활동하던 양회성,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수원 신동지역세입자대책위 조직부장 한대성,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수지 심봉지역세입자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성수,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1. 20 순화동세입자대책위원회 위원장 윤용헌, 대책 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철거민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다 공권력에 의해 운명.4. 10 기아자동차노동자 정형기, 현장조직활동 및 노동자통일운동에 참여하다 자결4. 30 대한통운 노동자 박종태 학생운동 후 노동운동 참여, 화물노동자 권리증진을 요구하며 자결 6. 6 목사 강희남, 평생을 민주주의 발전과 통일운동에 바치다 이명박을 내치자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아직도 진행형이라는게 우울하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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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천안함이 수상한 아홉 가지 이유, 진실은?
[분석] 정부ㆍ합동조사단의 엉터리 '천안함 논리학'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 흡착 물질에 관한 데이터에 치명적 허점이 있다는 이승헌 교수, 양판석 박사 등 과학자의 의혹 제기가 가라앉지 않았고, 스크루 변형 시뮬레이션이 현재 상태의 변형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의 실토가 나왔지만 묵묵부답이다.그 사이 해난 사고 전문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13일 금속 부식 실험을 통해서 어뢰 추진체의 부식 상태가 실제 부식과 크게 다르다는 걸 밝혀냈다. 그간의 과학 논쟁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과학 잡지 <네이처> 인터넷 판에 이어 15일 발행된 오프라인 잡지(466호)에도 게재됐다.합동조사단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북한의 관련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서 파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합동조사단이 내놓은 허점이 많은 데이터와 미심쩍은 증거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젓는 것도 이 때문이다.더 큰 문제는 합동조사단과 정부가 내놓는 논리의 허점이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심증'을 전제한 이런 논리는, 천안함 침몰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대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보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제 합동조사단과 정부가 내놓은 엉터리 '천안함 논리학'을 뜯어보자.
▲ 지난 15일 발행된 <네이처>(466호)에 실린 천안함을 둘러싼 과학 논쟁 기사. ⓒ프레시안■ 북한산 어뢰의 '1번' 한글 표기합동조사단은 5월 20일 발표 당시 사고 수역에서 인양된 어뢰 추진체가 북한산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뒷부분 안쪽에 '1번'이라는 한글 표기는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 표기 방법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놓고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교수와 이승헌 버지니아 대학교 교수는 이렇게 논파했다."논리의 오류다. '1번'이라는 한글 표기는 북한산 어뢰의 표기 방법과 일치할 뿐 아니라 한국의 무수한 다른 표기 방법과도 일치한다. 합동조사단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자면 어뢰에서 발견된 '1번'과 대한민국 국방부 문건에서 발견된 '1번' 표기 방법이 일치하므로 어뢰 추진체는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해도 하등의 문제가 없다."■ 북한산 어뢰를 소개하는 카탈로그어뢰 추진체가 북한산이라는 또 다른 근거로 합동조사단은 북한산 어뢰를 소개하는 카탈로그에 그 어뢰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음을 강조했다. 또 이들은 해당 어뢰의 설계도가 북한산 어뢰를 소개하는 CD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들었다. 이를 놓고도 서재정·이승헌 교수의 논박이 나왔다."합동조사단은 어뢰가 북한산이라고 직접 주장하는 대신 카탈로그와 CD가 북한산이고 여기에 있는 정보와 설계도면이 어뢰 추진체와 일치하므로 어뢰가 북한산이라는 간접증명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카탈로그와 CD 자체가 북한산이라는 것이 검증되지 않는 한 이런 방식은 '그냥 믿어 달라'는 말밖에 안 된다."이런 반박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보안을 핑계로 카탈로그와 CD가 북한산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같은 물질 나온 게 어뢰 폭발 증거?합동조사단은 또 천안함 선체와 어뢰에서 채취한 흡착 물질의 구성 원자와 결정 구조가 같은 것이 어뢰 피격의 근거라고 말한다. 이들은 어뢰 안의 알루미늄이 폭발 상황에서 산소와 반응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되어 선체와 어뢰에 흡착됐다고 주장한다. 서재정·이승헌 교수는 이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었다."합동조사단의 주장대로라면 굳이 '1번 어뢰'가 아니더라도 알루미늄이 포함된 폭약의 폭발이 있었다면 흡착 물질과 같은 물질이 형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천안함에서 발견된 흡착 물질이 '1번 어뢰'의 폭발 탓인지, 아니면 다른 폭발 탓에 만들어진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합동조사단은 '외부 폭발=1번 어뢰 폭발'을 입증할 다른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서재정 교수는 지난 6월 22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런 합동조사단의 논리의 허점을 놓고, "A가 먹는 밥과 B가 먹는 밥의 구성 원자도 같고 결정 구조도 같으므로 두 밥이 같은 밥통에서 만든 것이라는 논리와 같다"고 따져 물었다. 서로 다른 밥통(폭발)에서 나온 밥(흡착 물질)이라도 구성 원자와 결정 구조는 같기 때문이다.■ 냄비에서 누룽지 생기면 밥통에선 누룽지가 안 생긴다?천안함 선체와 어뢰의 흡착 물질에 대한 엑스선 회절 분석(XRD) 데이터는 합동조사단이 자체 실시한 수중 폭발 실험에서 나온 물질의 데이터와 달랐다. 이를 놓고 합동조사단은 '수중 폭발 실험은 어뢰 폭발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물질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것이야말로 천안함 침몰이 어뢰 폭발에 의한 것임을 입증한다'는 설명을 내놓았다.서재정·이승헌 교수는 6월 3일 <한겨레> 기고에서 "실험 조건이 (어뢰 폭발과) 달라서 결과가 다르게 나왔으면, 그 결과를 비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합동조사단의 주장대로 "천안함과 어뢰에서 발견된 흡착 물질이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 폭발 실험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서재정 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합동조사단의 주장은) 냄비(실험 폭발)에다 밥을 해보았더니 누룽지(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가 생기므로 이것은 밥통(어뢰 폭발)에다 밥을 하면 누룽지가 생기지 않는다(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는 증거라고 강변하는 것"이라고 합동조사단의 논리를 꼬집었다.■ 결론이 가정을 입증한다?
ⓒ프레시안(김하영)
합동조사단은 또 천안함 침몰이 외부 폭발에 의한 것임을 입증하고자 외부 폭발을 전제로 천안함의 절단 과정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시뮬레이션으로 드러난 천안함 파괴 과정이 어뢰 폭발 상황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외부 폭발 증거가 될 수 없다.서재정·이승헌 교수는 "시뮬레이션은 250킬로그램의 고성능 폭약이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미터, 수심 6~9미터 정도에서 폭발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출발했다"며 "이러한 전제가 성립한다는 가정 하에 천안함에 어떠한 손상이 가해질 수 있을까를 알아보는 시뮬레이션이 그 전제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고 말했다.스크루 변형 시뮬레이션도 마찬가지다. 스크루가 어뢰 폭발로 급정지해 관성력으로 휜다는 것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은 그 가정을 입증할 수 없다. 합동조사단의 한 민간위원이 "현재의 시뮬레이션으로 현 상태의 스크루 변형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털어 놓은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아니니까 북한?한국이나 미국의 오폭이 아니고 중국과 러시아가 쐈을 리도 없기 때문에 결국 북한이라는 추론은 합동조사단이 내놓은 논리는 아니지만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유포됐다. 언뜻 보면 반박할 구석이 없는 것 같은 이 논리는 그러나 천안함의 경우 성립되지 않는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주사위를 던지고 나서 안 보이는 면을 예상하기는 쉽다. 1이 보이면 안 보이는 면이 1일 가능성을 배제하고, 2가 보이면 2일 가능성을 배제하면 되니까. 그러나 이런 '배제에 의한 논리 추론'이 가능하려면 주사위처럼 경우의 수(여섯 가지)가 확실하고, 1이 보이면 안 보이는 면이 1일 확률이 제로(0)가 되듯 하나의 경우를 완벽히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그러나 천안함 사고 원인은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대다. 좌초든 어뢰든 기뢰든 어느 하나가 아닐 확률이 낮다고 할 수 있어도 제로는 아니다. 또 어뢰가 분명하더라도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가 쐈을 가능성 역시 제로는 아니다. 천안함 사고 원인을 배제에 의한 추론 방식으로 찾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지진파가 폭발의 '결정적 증거'?많은 이들은 천안함 침몰 당시 백령도에서 규모 1.5의 지진파가 관측된 사실을 놓고, 이것이야말로 천안함이 어뢰 폭발에 의해서 침몰한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결정적인 증거'로 보이는 지진파를 합동조사단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왜일까? 그것은 지진파가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말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우선 지진파의 정체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 지진파는 백령도에서만 관측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히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이것이 폭발 탓에 발생한 인공 지진인지, 아니면 백령도 인근에서 빈발하는 자연 지진인지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지진파의 성격상 인공 지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뿐이다.이 지진파가 폭발에 의한 것으로 확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양판석 박사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천안함 침몰 원인을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지진파는 폭발 추정 시간과 폭발 규모 외에는 말해주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합동조사단이 지진파를 결정적인 증거로 내세우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더구나 합동조사단은 지진파를 독자적으로 검증하지도 않은 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보고서만을 근거로 어뢰 피격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지진파가 폭발과 같은 원인 탓에 생긴 것일 수 있다"는 얘기만 해놓고, 현재까지 지진파 원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오컴의 면도날'같은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이른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원리도 자주 거론되는 이야기다. 북한이 어뢰를 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 이런 '간단한' 설명을 왜 부정하느냐, 이런 지적이다. 그러나 북한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이 과연 '간단한' 설명일까?"① 3월 26일 당시에는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진행 중이었다. ② 천안함은 하필이면 그 당시에 백령도 인근에 있었다. ③ 북한의 잠수정은 백령도 외해를 'ㄷ' 자로 거쳐서 천안함이 있는 곳까지 침투했다. (혹은 한국 해군의 방어 체계를 뚫고 직선으로 침투했다.) ④ 그 잠수정은 전 세계에서 실전에 한 번도 배치된 적이 없는 최신식 어뢰로 천안함을 격파했다.⑤ 천안함을 격파하고 나서 그 잠수정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 ⑥ 놀랍게도 잠수정의 침투, 어뢰 공격, 도피의 전 과정에서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도 이 잠수정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⑦ 이런 엄청난 적의 공격이 있었음에도 합참의장은 상황 조치를 하고 나서 수면을 취하는 태평한 모습을 보였다."자, 이게 과연 간단한 설명인가?■ 입증 책임은 정부에 있다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정부와 합동조사단은 공통적으로 "증거를 대라"고 반박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반응이다. 천안함이 어떻게 침몰했는지를 밝혀야 할 이들은 바로 정부와 합동조사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러 가지 문제제기에 대해서 자신의 애초 주장(북한이 쏜 어뢰 폭발로 천안함이 침몰했다)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엉뚱하게 북한에 입증 책임을 미루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북한이 아무런 증거도 대지 않고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소행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우긴다. 물론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면, 그들은 증거를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절대로 증거를 댈 수 없다.이제 정부와 합동조사단이 입을 열 때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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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쳐에도 천안함 문제가 실리는군요
쫌 창피합니다.
한국이나 미국의 오폭이 아니고 중국과 러시아가 쐈을 리도 없기 때문에 결국 북한이라는 추론
....
...이게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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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유시민·송영길·한명숙 北 도발? 일단 군법회의부터
20일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 내려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대해 민주진보진영 야당들은 발표 내용의 진실 여부를
떠나 공식 선거기간이 개시되는 날 발표한 것에 대해 다분히 '북풍'을 노린 정략적인 의도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특히 '안보
무능론'에 이어 '안보 책임론'을 내세우며 역풍으로의 반전을 노리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출정식 직후 서울 명동 인근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합조단 조사결과 발표
에 민주당은 충격을 금치 못한다"면서 "이는 국가안보의 실패, 한반도 평화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정 대표는 "대통령은 국민에게 즉각 사죄해야 하고, 내각은 총사퇴해야 하며 군 책임자는 군사법원에 회부해야 한
다"고 요구했다. 정 대표는 더불어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6.2지방선거 야권 수도권 광역후보인 민주당 송영길 인천시장 후보(왼쪽부터), 국민참여당 유시민 경기도지사후보, 민주당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2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천안함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병장' 출신 유시민 "치욕스러운 패배"수도권 야4당 단일 후보인 한명숙(서울), 송영길(인천), 유시민(경기) 후보는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 대응하
며 '북풍'을 '역풍'으로 돌리고자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발표가 사실이라면 당시 우리 군은 한미 군사작전 중 삼엄한 경계태세에 북한군이 우리 영해를 잠
입해 들어오는 것도, 초계함을 격침하는 것도, 도주하는 것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이라면서 "안보범죄를 저지르고도 사죄는
커녕 다가오는 6.2 지방선거에 이를 이용하려는 저의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또 "이 정권의 병역 기피 인사들이 이름뿐인 안보대책회의에서 탁상공론만 일삼는 동안 국가의 안보시스템이 총체적
으로 무너졌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사죄하고 국방장관, 합참의장 및 차장, 합참 합동작전
본부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국방정보본부장, 해군 참모총장, 해군 작전사령관, 제2함대 사령관, 해병대 사령관, 기무사령
관 등 치욕적인 패전의 책임자 전원을 군 형법에 따라 즉각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밖에 "정부의 발표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TOD 동영상 비공개 의혹 등 베일에 가려진 천안함 관련 자료를 국회진
상특위에 모두 공개해, 지금이라도 국제사회와 국민의 의구심을 불식시킬 수 있는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
다.
자신을 '육군 출신'이라고 강조한 유시민 후보는 "적의 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너무나 치욕적인 일이고, 우
리 해군이 그렇게 무능하다고 보지 않아 정말 믿기 어려웠다"면서 "첫 째 군 격언인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
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 받을 수 없다'는 원칙의 군 형법에 따라 이 사건이 얼마나 엄중한 안보범죄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
다.
유 후보는 "해군이든 육군이든 공군이든, 군 복무를 마친 대한민국 남자로서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울분"이라고 거듭 강조
했다.
"노무현 정부 때였으면 정권 내놓으라 난리 났을 것"
송영길 후보는 "처절한 패배를 당하고도 46명 희생자에 대한 영웅적 칭송만 늘어놨지 아무도 책임지겠다는 최소한의 도의적
의사표시도 하지 않고 있다"며 "북한 잠수정이 귀신처럼 들어와 한 방에 초계함을 격파시키고 도망가면서 흔적도 남기지 않
는 상황인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겁도 없이 현장을 방문했다"고 지적했다.
송 후보는 "만약 이런 사건이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때 발생했다면 보수단체들은 정부를 맹공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민주
당 우상호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 때였으면 정권을 내놓으라고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정략적 북풍 유도 발표', '안보 책임론'을 적극 제기하면서도 일단 조사 결과의 신뢰성 문제 등은 국회 천안함 특위
등을 통해 신중하게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정 대표는 선거용 '북풍' 논란에 대해 "지방선거에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분명하다"며 "정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유
치한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정 대표는 이어 "국민 여러분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거라 확신한다"며 "과거에는 북풍을 활용해 성과를 거뒀지만, 지금의 국민
들은 그 때의 국민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이미 천안함 발 북풍은 보수층 결집에 충분히 반영이 돼 있어 판세를 뒤집을 충격파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며 "이명박 정권 중간 심판을 위한 수만은 이슈들이 저들의 의도대로 천안함과 함께 침몰할 수 있기 때문에 이용당할 이
유가 없다. 눈 뜨고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영 기자
새터데이작성일
2010-05-2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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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100%리얼 막장 드라마 MB의유혹
'워낭소리'에 대한 MB정부의 동문서답
[기자의 눈]'되는 놈'만 밀어주겠다는 MB정부
2년 전 임업(林業)에 대한 기획취재를 구상했었다. 우리나라의 가구와 건축자재용 목재의 수입 비중이 높은 것을 보고 '국토의 70%가 산'이라는데 도대체 그 산들은 왜 '놀고' 있느냐라는 다소 발칙한 '돈벌이' 관점의 문제의식이었다.사전취재를 하면서 전문가들에게 물어본 결과 대답은 한 가지였다. 나무를 심어 키우기 위해서는 간벌을 하고 쓸 만한 나무를 심는 수종 개량이 필수적인데, 수익을 내기 위해 짧게는 20~50년을 봐야 하는 사업이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국유림도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투기' 목적으로 땅 팔 생각만 가득한 민간에서 30년 앞을 내다본 투자가 이뤄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되는 놈만 밀어주겠다"고?<워낭소리>가 화제다. 이명박 대통령도 극장에서 관람했다. 영화를 보기 전 감독에게 "관객이 얼마나 들었냐", "(제작기간) 3년을 했는데 그렇게 돈이 적게 들었냐"고 물었다고 한다.이 풍경을 접하니 몇 가지 따져야겠다. 우선 독립영화계의 공분을 샀던 '다양성 영화 마케팅 지원 사업' 예산이 올해 삭감됐다는 것이다. 제작비가 1억 원인 <워낭소리>는 이 사업을 통해 4000만 원을 지원 받아 비로소 관객들에게 선을 보일 수 있었다.지난 12일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독립영화 감독들과의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달래기에 나섰다. <워낭소리>의 흥행이 정부 비판 여론으로 흐를 것을 염려했던 듯하다.그런데 이 자리에서 나온 얘기들을 살펴보면, 독립영화 감독들의 정부에 대한 비판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유 장관은 "일단 제작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일부 지원해 주고 발전 상황을 봐서 될 만한 영화는 확실히 지원하고 아니면 중단하는 인큐베이팅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1년에 40명에게 개봉 지원을 해주는데 이것을 20명에게 확실히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될 놈만 밀어주겠다'는 것이다.<워낭소리>의 제작기간은 3년이었다고 한다. 과연 <워낭소리>가 '된다'고 예측을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특급 스타도 이름 있는 감독도 없어 외면 받는 독립영화계다. 특히나 '속도전'을 강조하는 이 정부에서 '어느 시골의 노인네와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할 소가 주인공'인 영화를 된다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수개월 앞의 경기전망도 틀려 계속 수정하는 정부가?"동네 극장 걸게 해달라"는데 "전용관 짓겠다"는 정부'독립영화'의 정신에 대해서는 잘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유 장관의 발상이라 더 난처하다. 그는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정부가 독립영화의 정신을 훼손할 만큼 너무 개입해도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맞다. 독립영화는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치는 것이다.다만 이들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영화는 내가 찍어 볼 테니, 극장에 걸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성 영화 마케팅 지원 사업'이 이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걸 이해 못 하고 '될 놈만 지원 하겠다'고 한다. 이 정부가 경제나 교육 현장에 강요해오던 '승자독식'의 논리를 문화계에도 확산시킬 모양인가보다.유 장관은 이 대통령이 영화를 관람하던 날 "독립영화 관객이 50만 명이면 일반 영화 500만 명 수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에는 독립영화는 '50만만 봐도 성공이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내거는 극장의 입장에서는 <워낭소리>가 5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아도 개봉 첫 주말에만 43만5000명을 불러 모으는 <마린보이>에 더 눈길이 가는 법이다.한 가지 더. 이 대통령이 "만화영화와 독립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전용관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고 언급, 독립영화 전용관을 추진할 모양이다. 유 장관도 "현재 25개로 흩어져 있는 독립영화 상영관을 한 곳에 집중해 '어디에 가면 독립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그런데 지금도 독립영화를 보고 싶은 열혈 관객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아가 볼 수 있다. 인터넷이 발달해 '어디에 가면…'이라는 것 없이도 검색을 통해 어디에서 언제 상영하는지, 그 극장에는 어떻게 가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이다.오히려 <워낭소리>는 동네 멀티플렉스까지 스크린 수를 넓히며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중요한 흥행 포인트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많은 극장에 개봉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는 없애버리고서는 독립영화를 극소수의 '전용관'에만 몰아넣겠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여론 잠재우기 반짝 관심'은 아니기를<워낭소리>가 흥행의 순풍을 타고 영화 속의 느린 걸음과 '신뢰'가 화제가 되며 이명박 정부와 빗대는 소리들이 늘어갔다. 더불어 정부의 독립영화 지원책 변경을 비판하는 독립영화 감독과 제작자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붙기 시작했다. 고영재 PD는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워낭소리>가 '다양성 영화 마케팅 지원 사업'의 마지막 수혜작이고, 앞으로는 좋은 독립영화들이 개봉도 못하고 사라질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감독들이 지난 11일 기자회견 다음날인 12일 유인촌 장관이 감독들과 간담회를 갖고, 15일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관람을 했다. 비교적 신속한 대응이다. <워낭소리>의 흥행에 부담을 느낀 '여론 잠재우기'라는 의심이 지워지지 않는다.문화의 근간은 창조정신과 자율성이다. 이 관심이 일회적 반짝 관심이 아니라,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우리나라 독립영화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또 정부의 철학을 강요하기 전에 현장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어떤 인사는 "이명박 정부는 아이가 울면 똥을 쌌는지, 어디가 아픈지 알아보지도 않고 공갈 젖꼭지만 물리고 본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있는 제도 없애고 엉뚱한 소리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봐 걱정이다.
/김하영 기자
한나라 '김연아 마케팅' 눈총
'무단도용' 논란도…"사전 허락 받은적 없다"
한나라당이 '경제도 김연아처럼'이라는 새 홍보 문구와 아이콘을 당사 회의실에 설치한데 대해 김연아 선수 측과 사전 협의가 없어 '무단 도용' 논란이 일고 있다.새 홍보물은 "경제도 김연아처럼"이라는 문구로 한나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 바탕 위에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이미지화 한 하얀색 실루엣 아이콘을 넣은 것이다.
▲ '경제도 김연아처럼' ⓒ연합뉴스조윤선 대변인은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 꿈을 이루고 있는 김연아 선수처럼 국민 모두가 꿈을 갖고 경제위기를 이겨내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김연아 선수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IB스포츠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보통 김 선수와 관련된 홍보의 경우 조그마한 것도 우리쪽에 문의하는데 사전 협의가 없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김 선수 초상권과 관련해 엄격하게 제한을 두고 있어 이를 모르고 진행한 일부 소규모 업체에는 바로바로 시정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한나라당 홍보국 관계자도 "사전에 허락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 슬로건이 아니라 회의실 백보드를 바꾼 것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지만, 당사 회의실 백보드는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홍보 효과가 매우 크다.김 선수 소속사 측은 한나라당의 무단도용에 대한 법적 대응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박세열 기자
출처 : 프레시안
이 대통령의 <워낭소리> 관람이 못마땅한 이유
[取중眞담] 너무나 '독재시절스러웠던' 이 대통령의 영화 관람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대학로에서 <워낭소리>를 봤다. 지리산을 보면서 "개발이 덜 됐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내뱉는 감수성의 소유자인 이 대통령의 영화 선택치고는 의외다.
아시다시피 <워낭소리>는 제작비 1억 남짓의 저예산 독립다큐멘터리다. 이명박 대통령의 '코드'로 이 영화를 분석해 본다면, <워낭소리>는 만들어 봐야 수익은커녕 적자를 면치 못하는 제품을 그것도 '꾸준히' 생산하는 '마이너 인생'들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마이너 인생들은 관객이 많아야 1000명이 넘을까 말까한 '비효율적'인 제품을 만들어 놓고도 살아남아보겠다고 '적반하장'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또 영화에 출연하는 노부부의 삶도 비효율의 극치다. 농약을 쓰면 적은 노동으로 최대의 산출을 뽑아낼 수 있을 텐데 소에게 그깟 꼴을 먹이겠다며 힘든 노동에 비해 적은 수확을 감수한다. 그리고 소는 살이 쪄야 '근수'가 많이 나가 비싸게 팔릴 텐데 할아버지는 소를 살찌게 만드는 사료는 절대 먹이지 않는다. 이 또한 경쟁에서 낙오하기에 딱 알맞은 삶의 방식이다.
내 상상을 뛰어넘은 이 대통령의 '놀라운' 영화 해석
이 대통령이 <워낭소리>를 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영화에 공감이나 할 수 있었을까 걱정이 드는 한편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했을까 궁금했던 건 이런 지독한 '코드의 불일치'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 관람이 끝난 후 청와대가 공개한 내용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본 후 이 대통령은 주인공인 최원균 할아버지를 언급하면서 "자녀 9명을 농사지어 공부시키고 키운 게 우리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는가"라며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 했던 것이 우리의 저력이 됐고 외국인도 이에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워낭소리> 안에서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찾아내는 예리한(?) 눈썰미를 과시한 것이다. 놀라운 <워낭소리>의 재해석이자 그야말로 '이명박스러운' 영화 해석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와 노부부의 느린 걸음'에 내재한 본질적 가치에 공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기대를 했던 내가 못마땅했던 건 그래서였다. 강에 시멘트를 바르고 인공 조명을 켜놓아야만 발전이라고 믿는 그에게는 처음부터 무리한 기대였다.
그리고 못마땅했던 게 또 있다. 지난 10년 동안 지속돼온 독립영화 지원 정책을 축소하거나 폐지한 이들이 이날 이벤트를 "대통령으로서는 첫 독립영화 관람"이라고 강조하면서 '독립영화의 지킴이'처럼 행세한 것이다.
오른손으로는 뺨 때리고 왼손으로는 약 주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부터 독립영화의 홍보마케팅을 지원하는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을 폐지했다. '독립영화'라는 표현 또한 '다양성 영화'로 바꿨다. 이제 모든 영화는 상업영화 아니면 비상업영화로 분류되게 생겼다. 게다가 예술영화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 운영 주체도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 독립영화계의 숙원이었던 독립영화복합 상영관 건립이 예산 삭감으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독립영화인들은 "현 정부의 독립영화 정책이 지속되는 한 제2의 <워낭소리> 탄생은 불가능하다"고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자기가 오른손으로 한 일을 부정하고는 "만화영화와 독립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전용관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 학교 학생들도 이런 영화를 많이 보며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단다.
"역시 작품이 좋으면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강조한 이 대통령의 인식도 걱정이다. 성공 기준이 독립영화의 핵심인 다양성이 아니라 관객 수라고 한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멀티플렉스의 독과점으로 인해 일부 상업영화는 물론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의 경우 작품이 아무리 좋아도 자본의 논리에 밀려 개봉관을 잡기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 좋으면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알아야 할 사실은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관객을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이 수두룩한 것이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충렬 감독이 이 대통령의 영화 관람에 동석한 것도 못마땅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 이날 이 감독은 '독재시절스러운' 예술인 대우에 굴욕을 당했다. 감독을 직접 대통령 옆에 앉혀 언론에 이미 다 보도된 내용들을 직접 브리핑하게 만든 '촌스러운' 영화 관람 방식도 문제지만 더 심한 건 따로 있다.
<워낭소리> 감독의 굴욕... 뭐하러 대통령 만났나
이날 현장을 보도한 <머니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워낭소리 제작) 3년 했던데 그렇게 돈이 적게 들었나, 노력이 많이 들어갔겠지"라고 질문하자 불쑥 유인촌 장관이 이 감독에게 "대통령께 어렵다고 말씀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이에 이 감독은 머쓱해 하며 "배가 많이 고픕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이라는 자는 어렵지만 자신의 영화를 만든다는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 영화인들을 구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 감독은 어쩔 수 없이 그에 호응해 버렸다.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현실이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서 낯뜨겁다.
사석에서 밝힌 대로 이충렬 감독이 이날 행사에 동석해달라는 요청이 달갑지만은 않았다면 가지 않고 자존심을 지켰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을 때 임순례 감독은 현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영화 홍보는 물론 한국 영화를 위해 스크린쿼터를 지켜내달라는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동석할 만도 했지만 임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독립영화계의 현안 해결은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을 지킬 때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이 대통령의 <워낭소리> 관람이 못마땅한 이유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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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종신 대통령’ 개헌안 통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종신집권’ 길이 열리게 됐다. 15일 실시된 베네수엘라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연임철폐를 골자로 한 개헌안이 통과됐다고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가 밝혔다. 지난 1998년 집권한 차베스는 이에 따라 2012년 12월에 본인이 원할 경우 출마가 가능하게 됐다. ◆되살아난 차베스 정치 생명 = AP,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투표에는 총 유권자 1600만명 중 94%가 참여했으며 이중 54%가 선출직 공직의 연임 제한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헌에 찬성했다. 앞서 차베스는 이날 수도 카라카스 서부 지역에서 투표를 한 후 “국민투표 결과가 나의 정치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중요한 것이 많이 있지만 나의 정치적 운명이 오늘 투표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한 인간으로서, 또 이 전투에 참여한 한 군인으로서 국민투표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어떠하든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은 수도 카라카스 시내 곳곳에서 동이 트기 전부터 요란한 폭죽을 터뜨리는 등 1600만명 유권자들의 투표 참가를 독려했다. 야권의 중요 지도자로 꼽히는 안토니오 레데스만 카라카스 시장은 투표 후 “국민은 평화를 원한다. 그들은 더 이상 대결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야권은 대학생들과 합세해 개헌반대 운동을 펴면서 지난 2007년 국민투표를 통해 차베스의 종신집권 야욕을 담은 개헌안을 부결시킨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14만명의 군인이 배치되는 등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졌다. ◆유권자 10% 주요 변수로 작용 = 교육, 의료, 토지 개혁 등을 통한 서민층과 빈곤층 지원 확대로 국민전체의 수준을 향상시켰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1998년 이후 차베스 정권 10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국가권력을 독점하고 포퓰리즘을 자신의 권력 유지에 이용함으로써 오히려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국제 유가가 40달러 선에 머물러 경제 파탄 우려가 제기되면서 차베스에 평가는 더욱 냉혹해지고 있다. 군부와 친위집단에 의존하면서 정당정치를 왜곡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이날 투표 결과는 차베스의 지지기반인 빈곤층과 서민층이 얼마나 투표장으로 나왔으냐에 따라 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투표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5~7% 포인트의 우위를 보였다. 투표 전까지 마음을 정하지 않은 유권자도 10%나 돼 이들의 투표 결과가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가 마감됐지만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승패를 주장할 수 없을 정도의 박빙”이라고 말했다. 차베스는 2007년 12월에도 대통령직 연임 제한을 없애는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했으나 부결됐다. 지난해에 치른 지방선거에서도 차베스가 이끄는 여당은 인구가 많은 3개주와 수도 카라카스에서 패배했다. 이현미기자
출처 : 네이버뉴스
아바렌쟈작성일
2009-02-17추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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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이명박이 사과 못하는 이유? 그건 바로!"
"이렇게 야당 국회의원과 시민단체가 자리를 준비해주고 많은 분들이 와 준 것은 너무나 고맙다. 그래서 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철거민들이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려 온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경찰에 호소했지만 다들 용역 편만 들었다. 우리가 먹고 자고 장사하던 곳에서 보상금 못받고 쫓겨날 때 우리 처지 이해해준 분들 없다.지금 야당 의원이 여당 의원일 때도 무엇을 해줬나 생각하면 알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야 대책을 세운다, 법을 만든다고 호들갑을 떠나. 일이 생기기 전에 조금만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줬다면 오늘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용산 철거민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고 윤용현 씨의 부인 유영숙 씨는 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폭력 살인 진압 규탄 및 'MB 악법' 저지 국민 대회'에서 무대에 올라 작심한 듯 원망스러운 속내를 토로했다. 격앙된 그의 목소리에 5000여 명이 모인 광장은 더욱 숙연해졌다.유 씨는 이어서 "언론도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왜 철거민들이 당한 일은 보도하지 않고 철거민들이 폭력 시위를 했다고 말하느냐"며 "우리가 재개발 지역에서 사람 취급 못 받고 두들겨 맞을 때는 아무도 관심 없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힘없는 철거민끼리 모일 수밖에 없었다. 힘없는 게 죄라면 다 잡아가라"고 따졌다.그는 "우리 가족도 전국철거민연합이다. 힘없고 돈없어 모인 것이 죄라면, 그래서 쫓겨다니며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감옥에 가는게 낫겠다.차라리 잡아가라"면서 "그동안 우리 철거민들 너무 힘들고 외로웠다. 그날도 이렇게 외롭게 싸우다가 다섯 명이나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일의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 받을 때까지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 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폭력 살인 진압 규탄 및 MB 악법 저지 국민 대회'에는 50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프레시안"정치권이 제대로 역할 못해서 이런 일 생겼다"이날 국민대회에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회의원·당 대표자 등과 민생민주연대회의 미디어행동 등 시민·사회단체가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서민은 살려내고 악법은 물러가라", "살인진압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명박 정권을 규탄했다.이날 국민대회 무대 바로 앞에는 야4당 국회의원들과 각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유족들과 함게 모여 있었다. 이들은 유 씨의 매서운 질타에 사과하면서 2일부터 시작될 임시국회에서 소위 'MB 악법'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결의했다.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앞서 유족께서 지금까지 무엇을 햇느냐고 할때 가슴이 뜨끔했다"며 "철거 문제, 재개발 문제, 뉴타운 문제에 민주당도 부족했던 점을 반성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철거 문제와 뉴타운 문제, 재개발 문제 관련 법과 제도를 고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정치권에서 제대로 역할을 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서 "이런 엄청난 죄악이 저질러졌음에도 이 정권은 단 한마디 사과도, 처벌도 하지 않는 만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국회가 식물 국회가 되어 있어 공당의 대표이자 입법부의 한 기관으로서 참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 이날 국민대회에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4당 국회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프레시안"20년이나 지나 추모 자리에서 이 노래 하게 될 줄이야"국민대회 내내 간간이 눈물을 흘리던 유족들은 가수 안치환 씨가 무대에 올라 1987년 6월 항쟁에서부터 불리워진 '마른 잎 다시 살아나'라는 노래를 부르자 들고 있던 영정을 안고 오열했다.안 씨도 무거운 목소리로 "추모 자리는 노래하기엔 너무 가슴이 무거워 서고 싶지 않다"며 "1987년 이후에 간간이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20년이나 지나 이 자리에서 부르게 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그는 "이제는 민주화 열망에 대한 폭압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를 경찰 권력이 짓밟는 시대가 됐다"며 "저는 개인적으로 진보를 위한 역사의 길은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수레바퀴가 멈추고 거꾸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안타까워했다.그는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깨어있는 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고 싶다. 외람되지만 권력의 하수인으로서 희생된 그 젊은 청춘의 넋을 위로하는 데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 가수 안치환 씨가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를 부르는 동안 유족들이 영정을 안고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
▲ 가수 안치환 씨가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부르고 있다. ⓒ프레시안"김석기가 퇴진하지 않는 것 자체가 진상 규명에 방해"이날 국민대회에 참석해 무대에 오른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원세훈 국정원장 내정자,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등의 처벌과 즉각 사퇴 등을 촉구했다.용산철거민 참사 진상규명 조사단장을 맡고 있는 장주영 변호사는 "경찰의 과잉 진압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희생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그는 "김석기 내정자가 현직에 남아있는 한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서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하 모든 일을 할 것"이라며 "그가 현직에 있는 것 자체가 진상규명에 방해가 되고 있다. 이번 과잉 진압으로 인한 경찰의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했다.
▲ "서민을 살려내라 악법은 물러가라" ⓒ프레시안정세균 대표도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러나 아무 말도 없다. 행자부 장관은 외면하고 있고 그 참사를 직접 지휘한 사람은 청장의 자리에 버티고 앉아서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이 정권의 후안무치함을 규탄하고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해 책임을 규명할 것"이라고 했다..진보신당 심상정 대표도 "김석기, 원세훈 등 책임자를 사법처리하기 위한 국정조사, 특검이 실시돼야 한다"면서 "국민의 다수인 철거민, 비주택자, 비정규직을 위해 주거권과 생존권 일자리를 만드는 경제 살리기, 특단의 민생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정광훈 한국진보연대 의장은 "인류사에 있을 수 없는 사태가 터졌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전철연이 조종했는지 모른다는 소리나 한다"면서 "모를 수밖에 없다. 원흉은 바로 너다"라고 강조해 시민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그는 "뉴타운인지, 올드타운인지를 하다가 불이 난 것 아니냐"며 "원흉은 이명박이다. 이명박만 빼면 된다. 안 빠지면 우리가 빼보자"면서 "다운다운 이명박"을 외쳤다.
/프렌시아 채은하 기자,김하영 기자
가자서작성일
2009-02-0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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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전설의섬 '명박도'를 아십니까? .... 프레시안
"전설의 섬 '명박도'를 아십니까?"…블로그 화제
"이 블로거도 정부 비판했으니 공익을 해친 건가?"
기사입력 2009-01-30 오후 5:16:45
한 블로거가 쓴 '전설의 섬 명박도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이 30일 인터넷에서 화제다. 이 글은 아이디 'MP4/14'가 지난 28일 작성한 글로 미지의 섬을 '명박도'라고 가정하고 섬의 두 봉우리를 '줄파산'과 '줄도산'이라 부르고, 섬에서 나오는 식수를 '어청수'와 '한승수'라고 부르는 식이다."주로 '어청수'가 인기가 좋고 '한승수'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어청수'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어청수'가 나오는 발원지 주변에는 음식점과 술집도 눈에 띄는데 여름에 워낙에 시원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폿집인 '물대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다."고 기술하는 등 촌철살인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의 온갖 실정을 촌철살인으로 정리해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며 "이제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블로거에 대해서도 정부를 비판했으니 공익을 해치고 있다고 할 것인가?"라고 '미네르바 구속' 사건을 빗대 비꼬았다.김 대변인은 "정부와 여당은 이 블로거의 글을 곰곰이 되짚어 읽어보고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고 말했다.
▲ ⓒ프레시안다음은 '전설의 섬 명박도를 아십니까?' 전문이다. (블로그 원문보기)
우리나라에는 정말로 많은 섬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아직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섬들도 상당히 있는데, 최근에 그동안 신비에 싸여 있던 한 섬이 드디어 베일을 벗으면서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 섬의 이름은 바로 명박도!명박도의 자연과 지리먼저 명박도에는 높이 솟아 있는 두 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이 봉우리는 각각 '줄파산'과 '줄도산'으로 명박도의 명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식수가 필요하게 마련인데, 명박도의 두 봉우리에서는 각각 마르지 않는 식수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두 식수의 이름은 각각 '어청수'와 '한승수'인데, 주로 '어청수'가 인기가 좋고 '한승수'는 있는 지 없는 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청수'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어청수'가 나오는 발원지 주변에는 음식점과 술집도 눈에 뜨입니다. 여름에 워낙에 시원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폿집인 '물대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입니다.그런데 명박도에는 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 물의 이름은 '강만수'인데, 워낙에 수질이 나빠서 사람은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 물이 마셔도 문제가 없다면서 끼고 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이 물에서 물고기가 살고 있다면서 이 물고기를 잡아서 뜬 회인 '소망교회'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강만수'를 잘도 마시고 사는 이 종족은 'F족'이라고 부르는데, 늘 자신을 일컬어 'I am F'라고 부르는 버릇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이 종족이 세력을 넓히고 있어서 명박도 주민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F족'은 최근 들어서 신형총탄인 '경제파탄'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서 더욱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F족'에게는 또다른 별명이 있는데 키가 아주 작고 장난을 좋아하는 개구쟁이라서 '개구쟁이 스와프'라고도 부릅니다.하지만 전설에 따르면 명박도에는 이런 물보다 훨씬 질이 좋은 물이 흐르는 강인 '주가 3천'이라는 강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저 말로만 존재할 뿐, 정말 '주가 3천'이 있는지는 도통 찾을 수가 없어서 역사학계에서는 아무래도 뻥인 것 같다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일설에는 수질이 영 나빠서 물고기도 살지 않는 강인 '비핵개방 3천'하고 헷갈리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습니다.한편 명박도에는 천연자원도 상당히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금의 일종인 '쌀직불금'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보물찾기 열풍을 불러 일으키면서 공무원이고 부자들이고 마지막 한 알까지 모조리 쓸어가 버렸다고 할 정도로 값비싼 귀금속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옥의 일종인 '전여옥'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이 '전여옥'으로 구슬을 만들어서 은쟁반에 굴려 보면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는 커녕 육식동물 풀 뜯어먹는 듣기 싫은 소리만 나서 별 인기가 없습니다.명박도의 농업명박도에는 '유인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명마의 주산지로 유명해서 특산물인 '찍지마'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보통 말들은 '이랴' 하고 외쳐야 뛰지만 이 '찍지마'는 '씨바'라고 외쳐야 성질이 뻗쳐서 뛰는 특이한 습성으로도 유명합니다.명박도에서는 목축업이 발달해서 고품질의 달걀이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알이 큼직큼직하기로 소문난 '취업대란'이 요즘 들어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양봉업도 상당히 발달해서 명박도의 자랑거리인 '재벌'이 만들어내는 꿀은 주요 특산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재벌'은 조금 독특한 식습관이 있습니다. 평소에서는 꽃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꿀을 채집하지만 꽃이 시들어서 상황이 나쁠 때에는 물고기도 즐겨 먹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재벌'이 좋아하는 물고기는 '휠체어'로서 '재벌'들이 '휠체어' 위에 올라타서 살점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명박도의 식생활명박도에서 유명한 요리라고 하면 후라이드 치킨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명박도 명물 'BBK'는 상당히 높은 인기를 누려서 왕족들도 즐겼고, 심지어는 자신이 명박도에 'BBK' 체인점을 차렸다고 주장하는 왕족도 있었습니다만 뭐가 틀어졌는지 왕족의 미움을 받아서 결국 최근 문을 닫았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습니다. 또한 명박도에서 한때 인기가 높았던 빙과였던 하드 '미네르바' 역시도 명박도 왕족의 미움을 받는 바람에 판매 금지되었습니다. 당시 판매 금지 이유로 든 것은 '정부가 미네르바 가격 인상을 지시하는 공문을 보냈는데 실제로는 요청만 했지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는' 조금 석연치 않은 내용이어서 많은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명박도의 역사명박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최근 고고학자들에 의해 금속 도구를 사용하기 이전 돌을 이용한 도구를 만들어 쓰던 '김석기'시대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특히 명박도의 야트막한 산인 '용산'에서는 이 '김석기'시대의 여러 가지 도구들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으며 특히 대형 컨테이너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로 '김석기'시대의 생활상을 연구하기 위해 고고학으로 유명한 대학인 '경찰특공대'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비슷한 시대에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운 '명박산성'이라는 성 유적이 발굴되어서 역사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물론 명박도의 각종 역사를 기록한 역사책이나 소설도 전해져 내려 옵니다. 특히 중국의 '삼국지'에 필적한다는 '어륀지'는 명박도 최고의 역사 소설로 그 이름을 드높이고 있으며 먼 옛날 동이족의 상고사까지 다루고 있는 역사책인 '한단고기'를 능가한다는 '미국쇠고기'도 역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명박도의 문화명박도는 상당한 수준의 문화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먼저 명박도 사람들이 널리 믿고 있던 종교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기독교라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놀랍게도 명박도의 종교는 불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특히 명박도의 불교를 중흥시켰던 주역에 대한 전설이 최근 밝혀졌는데, 그는 스스로 '스님'이라는 존칭을 거부하고 '중'이라는 이름을 쓰기를 자청했던 고승 '최시중'이었다고 합니다. '최시중'은 특히 음악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서 명박도의 고유한 음악 장르인 '방송장악'을 제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말하기가 좀 거시기합니다만 생식기 주변의 털을 필요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명박도에서는 '방송장악 음모'라는 악기가 발굴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비록 '방송장악'이 명박도의 전통 음악이긴 하지만 역시 젊은층에게는 락 음악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명박도에서 유행하고 있는 락 음악인 '주가폭락'은 폭발적인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명박도의 젊은이들은 인기 차종인 '사이드카' 안에다가 '주가폭락'을 엄청나게 큰 볼륨으로 틀어대면서 과속 질주를 하는 게 유행이라서 이러한 고성방가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아직까지 명박도는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는 신비의 섬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서 명박도에 대한 더 많은 사실들이 밝혀질 것이라 믿으면서,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연구를 바랍니다.
/김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상당히 노골적인데 참 재미난 섬이라는 생각이 드내요..
삼사무작성일
2009-01-3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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