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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정글의법칙 pd 해명
정글의 법칙 나미비아편, 바누아투편, 마다가스카르편, 뉴질랜드편을 연출한 이지원PD입니다. 먼저, 정글의 법칙을 사랑하고 믿어주시는 시청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마음 속 깊이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뉴질랜드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제작과정에 많은 의문이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속히 돌아가서 속시원히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이제야 귀국하여 말씀드리게 된 점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재작년 처음 정글의 법칙 시즌1을 시작했을 때 저희의 기획의도는 도시의 삶에 익숙한 출연자들이 대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며 병만족이라는 하나의 가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고자 한다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이 살아갈 장소가 필요했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원시부족이나 비밀의 장소를 발견하는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세운 제작원칙은 단순했습니다. 첫째, 안전이 최우선. 둘째, 미션 수행 시 기본적으로 자급자족. 셋째, 그곳의 자연과 문화에 대한 존중. 이 세 가지의 원칙을 지켜가기 위한 고민을 지금껏 단 한 번도 멈춰본 적이 없습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만족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일부 과장된 표현이 있었음을 겸허하게 인정합니다. 저희가 현장에서 실제로 겪는 감정들을 더 피부에 와 닿게 전달하려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또한, 시즌이 계속되고 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계속 진화해야하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게 되면서 세간의 높아진 관심에 대한 압박이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또 제작자로서의 욕심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치열하고 리얼하게 생존해야함과 동시에 출연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모순된 현실은 늘 제작진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송을 위한 촬영이다 보니 때로는 안전을 위해서, 때로는 예능적 재미를 위해서 어쩔 수없이 연출진이 나서서 최소한의 교통정리를 해야 할 상황도 존재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정글의 법칙을 믿고 사랑해주신 시청자와 목숨을 걸고 생존해온 출연자 여러분께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키게 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인터넷 상에 떠도는 논란들에 대해 알고 있는 그대로 설명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촬영했던 편들에 대해 성심껏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미비아편 - 힘바족이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진. 일본 AV에 동일한 부족이 출연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답변: 힘바족이라는 부족은 아프리카 나미비아 북부의 카오코랜드라는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부족으로서 그 총수는 약 2만 명에서 5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우리도 도시사람이 있고 오지마을 사람도 있듯이 그들도 접근이 어려운 오지산간에서 그들만의 마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부터 아예 도시로 이주해 관광객에게 전통 공예품을 팔거나 사진 모델이 되어주며 돈을 버는 사람들까지 아주 다양한 집단이 존재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진은 그런 사람들의 사진입니다. 실제 저희 촬영 중에도 그런 도시의 힘바족을 만났었지만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와 달라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대로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을 수차례 답사 끝에 어렵게 찾았습니다. 물론 그곳에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만 그 모습 역시 숨김없이 방송으로 보여드렸습니다. 병만족과 힘바족이 각자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고 공존해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저희의 의도였기 때문입니다. 일본 성인비디오물에 출연했다는 힘바족 마을은 저희도 나중에 알고 확인한 결과 저희가 촬영한 장소와 전혀 상관이 없는 마을입니다. 마을로 진입할 때의 주위 나무들이나 마을의 크기, 출연한 부족원들의 얼굴 또한 비슷해 보이지만 일일이 확인하면 다른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바누아투편1. 말말족 마을이 관광마을이라는 의혹. “마을이 생긴 이래 외부인 처음”이라는 인터뷰가 조작되었다는 의혹에 대해서.- 답변: 바누아투는 80여 개가 넘는 섬에 서로 다른 수많은 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전답사과정에서 다양한 섬의 수많은 부족을 접촉하였고 그중 가장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스스로 외부로부터 고립된 산꼭대기로 올라가 귀농을 선택했다는 말말가족을 소개받아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현지에서 오랫동안 신뢰관계를 쌓아 오신 한국인 선교사분이 통역을 도와주셨고 해당 자막은 비슬라마어로 인터뷰한 후 제작진에게 한국어로 번역해주신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저희가 의심할 여지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촬영원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작진: “오늘 6명의 식구들(병만족)과 만났는데 첫인상은 어땠는지?” 통역: 비슬라마어로 질문 말말가족아빠: 비슬라마어로 답변 통역: “자기 마을을 방문해서 고맙고요. 자기 마을 생긴 이래로 처음 외부인이 들어왔고 마을을 위해서 여러 가지 만들어줬는데 그걸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정글의법칙 촬영 후(2012년 3월) 바누아투 관광청은 여수엑스포에 참여하는 등 정글의법칙을 이용한 적극적인 자국홍보에 나섰으며 촬영이 끝난 방송촬영지가 새로운 관광코스화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현지 관계자를 통해 사후에 확인한 바 있습니다. 혹시 다른 사안이 확인되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2. 바누아투 지역신문에 정글의법칙 기사가 떴다는 사실과 김병만이 감사패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답변: 모든 프로그램들이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관련국의 해당기관으로부터 사전허가와 정확한 정보 확인을 받는 일입니다. 사전답사 과정에서 바누아투 관광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고 한국과는 교류가 많지 않은 나라이기에 촬영자체가 큰 사건이라 신문기사가 난 것 같습니다. 저희팀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촬영종료 다음날에도 저희 몰래 깜짝 만찬을 준비하시고 그 자리에서 김병만씨에게 감사패를 수여하셨으며 이에 김병만씨가 즉석에서 바누아투의 여수엑스포 참가를 축하하는 멘트 촬영으로 보답했던 상황입니다.3. 20분이면 충분히 올라가는 야수르 화산을 4시간 넘게 걸리고 해발고도를 총 400m 안 되는 산인데 중간지점에서 400m라고 조작했다는 의혹- 답변: 해발 361m로 알려진 야수르 화산은 분화구 직전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있고 그 후에 정상 분화구까지 도보로 20분 정도의 트렉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적하신 것으로 보입니다.저희가 촬영을 할 때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방송에서도 선발대가 차로 정상에 먼저 당도하여 출연자들과 연락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갔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기획의도대로 병만족 스스로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올라갈 길을 찾아 찻길이 아닌 반대쪽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능선의 가장 밑에서부터 시작하여 전 구간을 도보로 등정하도록 출연진의 동의하에 미션을 주었습니다. 트렉이 없는 루트였기 때문에 낙석의 위험이 증가하였고 등정시간도 예상보다 훨씬 많이 소요되어 캄캄한 밤에 길을 잃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리키씨가 정상 가까이에서 고도가 표시되는 본인의 시계를 보며 400m라고 말한 것은 리키씨 입장에서 실제로 시계에 표시된 것을 말한 것입니다. 시계에 표시되는 고도는 기압의 변동을 이용해 측정하는 것으로 날씨 등의 변수에 따라 오차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4. 블루홀과 밀레니엄 케이브가 굳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 그렇게 방송됐다는 의혹. 누구나 갈 수 있는 쉬운 코스인데 위험한 구간으로 표현했다는 의혹.- 답변: 촬영팀의 출발지점에서 블루홀과 밀레니엄케이브를 통과하여 말말족 마을로 들어가는 루트는 돌아가는 길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사전답사를 통해 이미 확인하였고 말말가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상황을 보여드리기 위해 제작진이 일부러 돌아가는 미션을 주었습니다. 그 점을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다만 돌아가는 과정에서 실제로 숲길로 3시간 이상을 걸어서 이동하며 촬영을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정글의 동식물들을 보여드리는 시간으로 활용했습니다. 밀레니엄 케이브는 2000년에 발견되어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진 장소라는 점을 방송에서 자막으로 소개했습니다. 실제로 물이 많지 않은 건기에는 일반인들도 지나갈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현장을 답사했던 2월과 촬영당시였던 3월은 비가 많았던 때로 촬영 직전까지도 동굴을 통과하는 지하수의 양과 속도가 급속히 불어나서 촬영을 포기할 것을 고려할 정도로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조건에서의 동굴 통과의 어려움을 다소 과장하여 표현했던 자막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예능적인 느낌을 강조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점들을 더욱 주의하겠습니다.■ 마다가스카르 편1. 사칼라바족 마을에서 리키, 진운, 정철이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나갔다가 조난이 된 상황에서 베이스 캠프와의 거리가 방송상으로 <약 10km>로 표현이 되었는데 사실은 <4.68km>라는 의혹.(첨부파일1)- 답변: 네티즌이 올려주신 CG(마다가스카르 10회 58:00경)보다 약 10분 전 방송 내용을 보시면 (마다가스카르 10회 48:23) 실제 이동했던 물길을 곡선으로 표현한 또 다른 CG 장면 (첨부파일2)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 루트를 따라 실제 이동거리를 구글 어스로 확인하면 베이스캠프와의 거리가 8.73km(첨부파일3)로 나옵니다. 통상적인 관례에 따라 표현하다가 1.27km의 과장이 있었던 점을 사과드립니다. ■ 뉴질랜드 편 정글의 법칙의 한 에피소드는 통상적으로 병만족이 자신들만의 생존공간에서 생존하는 전반부와 그 나라의 전통적인 부족을 만나 공존하는 후반부로 이루어집니다.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오래전부터 현대화되어 전통방식 그대로 살고 있는 부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따라서 3월부터 방송될 뉴질랜드 편은 기획단계에서부터 마오리족의 현실을 그대로 알려드리고 그들을 교관 삼아 전통적인 사냥노하우만 배우는 일종의 생존캠프로 촬영하였습니다. 방송을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정글의 법칙을 제작하면서 선배 한분이 하루 동안 정글에서 실종이 되어 회사 전체에 비상이 걸렸던 적도 있었고 저 스스로도 바다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정글에서 버라이어티를 만든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작업인지를 시작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저희 정글의 법칙 팀은 오히려 일치단결하여 실제로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려가며 자기 몸처럼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습니다. 저를 믿고 오늘까지 따라와 준 출연진과 스태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이 모든 일에 저를 탓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글의 법칙을 사랑하기에 시청자 여러분의 어떤 채찍질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저희를 믿어주시는 분들을 위해 더욱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고 체크하겠습니다. 자칫 진정성을 가릴 수 있는 과장된 편집과 자막을 지양하겠습니다. 카메라 밖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장상황에 대한 설명도 친절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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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정글의 법칙' 제작진 "과장된 표현 인정...사과한다"
다음은 이지원 PD가 < 정글의 법칙 >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 전문이다.
정글의 법칙 나미비아편, 바누아투편, 마다가스카르편, 뉴질랜드편을 연출한 이지원PD입니다.먼저, 정글의 법칙을 사랑하고 믿어주시는 시청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마음 속 깊이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뉴질랜드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제작과정에 많은 의문이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속히 돌아가서 속시원히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이제야 귀국하여 말씀드리게 된 점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재작년 처음 정글의 법칙 시즌1을 시작했을 때 저희의 기획의도는 도시의 삶에 익숙한 출연자들이 대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며 병만족이라는 하나의 가족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고자 한다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이 살아갈 장소가 필요했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원시부족이나 비밀의 장소를 발견하는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세운 제작원칙은 단순했습니다. 첫째, 안전이 최우선. 둘째, 미션 수행 시 기본적으로 자급자족. 셋째, 그곳의 자연과 문화에 대한 존중. 이 세 가지의 원칙을 지켜가기 위한 고민을 지금껏 단 한 번도 멈춰본 적이 없습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만족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일부 과장된 표현이 있었음을 겸허하게 인정합니다. 저희가 현장에서 실제로 겪는 감정들을 더 피부에 와 닿게 전달하려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또한, 시즌이 계속되고 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계속 진화해야하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게 되면서 세간의 높아진 관심에 대한 압박이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또 제작자로서의 욕심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치열하고 리얼하게 생존해야함과 동시에 출연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모순된 현실은 늘 제작진의 고민이었습니다.그리고 방송을 위한 촬영이다 보니 때로는 안전을 위해서, 때로는 예능적 재미를 위해서 어쩔 수없이 연출진이 나서서 최소한의 교통정리를 해야 할 상황도 존재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정글의 법칙을 믿고 사랑해주신 시청자와 목숨을 걸고 생존해온 출연자 여러분께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키게 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인터넷 상에 떠도는 논란들에 대해 알고 있는 그대로 설명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촬영했던 편들에 대해 성심껏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미비아편- 힘바족이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진. 일본 AV에 동일한 부족이 출연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답변: 힘바족이라는 부족은 아프리카 나미비아 북부의 카오코랜드라는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부족으로서 그 총수는 약 2만 명에서 5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우리도 도시사람이 있고 오지마을 사람도 있듯이 그들도 접근이 어려운 오지산간에서 그들만의 마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부터 아예 도시로 이주해 관광객에게 전통 공예품을 팔거나 사진 모델이 되어주며 돈을 버는 사람들까지 아주 다양한 집단이 존재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진은 그런 사람들의 사진입니다. 실제 저희 촬영 중에도 그런 도시의 힘바족을 만났었지만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와 달라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대로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을 수차례 답사 끝에 어렵게 찾았습니다. 물론 그곳에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만 그 모습 역시 숨김없이 방송으로 보여드렸습니다. 병만족과 힘바족이 각자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고 공존해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저희의 의도였기 때문입니다.일본 성인비디오물에 출연했다는 힘바족 마을은 저희도 나중에 알고 확인한 결과 저희가 촬영한 장소와 전혀 상관이 없는 마을입니다. 마을로 진입할 때의 주위 나무들이나 마을의 크기, 출연한 부족원들의 얼굴 또한 비슷해 보이지만 일일이 확인하면 다른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누아투편1. 말말족 마을이 관광마을이라는 의혹. "마을이 생긴 이래 외부인 처음"이라는 인터뷰가 조작되었다는 의혹에 대해서- 답변: 바누아투는 80여 개가 넘는 섬에 서로 다른 수많은 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전답사과정에서 다양한 섬의 수많은 부족을 접촉하였고 그중 가장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스스로 외부로부터 고립된 산꼭대기로 올라가 귀농을 선택했다는 말말가족을 소개받아 최종 선정하였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현지에서 오랫동안 신뢰관계를 쌓아 오신 한국인 선교사분이 통역을 도와주셨고 해당 자막은 비슬라마어로 인터뷰한 후 제작진에게 한국어로 번역해주신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저희가 의심할 여지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촬영원본은 다음과 같습니다.제작진: "오늘 6명의 식구들(병만족)과 만났는데 첫인상은 어땠는지?"통역: 비슬라마어로 질문말말가족아빠: 비슬라마어로 답변통역: "자기 마을을 방문해서 고맙고요. 자기 마을 생긴 이래로 처음 외부인이 들어왔고마을을 위해서 여러 가지 만들어줬는데 그걸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정글의법칙 촬영 후(2012년 3월) 바누아투 관광청은 여수엑스포에 참여하는 등 정글의법칙을 이용한 적극적인 자국홍보에 나섰으며 촬영이 끝난 방송촬영지가 새로운 관광코스화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현지 관계자를 통해 사후에 확인한 바 있습니다. 혹시 다른 사안이 확인되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2. 바누아투 지역신문에 정글의 법칙 기사가 떴다는 사실과 김병만이 감사패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답변: 모든 프로그램들이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관련국의 해당기관으로부터 사전허가와 정확한 정보 확인을 받는 일입니다. 사전답사 과정에서 바누아투 관광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고 한국과는 교류가 많지 않은 나라이기에 촬영자체가 큰 사건이라 신문기사가 난 것 같습니다. 저희팀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촬영종료 다음날에도 저희 몰래 깜짝 만찬을 준비하시고 그 자리에서 김병만씨에게 감사패를 수여하셨으며 이에 김병만씨가 즉석에서 바누아투의 여수엑스포 참가를 축하하는 멘트 촬영으로 보답했던 상황입니다.3. 20분이면 충분히 올라가는 야수르 화산을 4시간 넘게 걸리고 해발고도를 총 400m 안 되는 산인데 중간지점에서 400m라고 조작했다는 의혹- 답변: 해발 361m로 알려진 야수르 화산은 분화구 직전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있고 그 후에 정상 분화구까지 도보로 20분 정도의 트렉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적하신 것으로 보입니다.저희가 촬영을 할 때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방송에서도 선발대가 차로 정상에 먼저 당도하여 출연자들과 연락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갔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기획의도대로 병만족 스스로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올라갈 길을 찾아 찻길이 아닌 반대쪽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능선의 가장 밑에서부터 시작하여 전 구간을 도보로 등정하도록 출연진의 동의하에 미션을 주었습니다. 트렉이 없는 루트였기 때문에 낙석의 위험이 증가하였고 등정시간도 예상보다 훨씬 많이 소요되어 캄캄한 밤에 길을 잃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리키씨가 정상 가까이에서 고도가 표시되는 본인의 시계를 보며 400m라고 말한 것은 리키씨 입장에서 실제로 시계에 표시된 것을 말한 것입니다. 시계에 표시되는 고도는 기압의 변동을 이용해 측정하는 것으로 날씨 등의 변수에 따라 오차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4. 블루홀과 밀레니엄 케이브가 굳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 그렇게 방송됐다는 의혹, 누구나 갈 수 있는 쉬운 코스인데 위험한 구간으로 표현했다는 의혹- 답변: 촬영팀의 출발지점에서 블루홀과 밀레니엄케이브를 통과하여 말말족 마을로 들어가는 루트는 돌아가는 길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사전답사를 통해 이미 확인하였고 말말가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상황을 보여드리기 위해 제작진이 일부러 돌아가는 미션을 주었습니다. 그 점을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다만 돌아가는 과정에서 실제로 숲길로 3시간 이상을 걸어서 이동하며 촬영을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정글의 동식물들을 보여드리는 시간으로 활용했습니다.밀레니엄 케이브는 2000년에 발견되어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진 장소라는 점을 방송에서 자막으로 소개했습니다. 실제로 물이 많지 않은 건기에는 일반인들도 지나갈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현장을 답사했던 2월과 촬영당시였던 3월은 비가 많았던 때로 촬영 직전까지도 동굴을 통과하는 지하수의 양과 속도가 급속히 불어나서 촬영을 포기할 것을 고려할 정도로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조건에서의 동굴 통과의 어려움을 다소 과장하여 표현했던 자막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예능적인 느낌을 강조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점들을 더욱 주의하겠습니다.■ 마다가스카르 편1. 사칼라바족 마을에서 리키, 진운, 정철이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나갔다가 조난이 된 상황에서 베이스 캠프와의 거리가 방송상으로 < 약 10km > 로 표현이 되었는데 사실은 < 4.68km > 라는 의혹.- 답변: 네티즌이 올려주신 CG(마다가스카르 10회 58:00경)보다 약 10분 전 방송 내용을 보시면 (마다가스카르 10회 48:23) 실제 이동했던 물길을 곡선으로 표현한 또 다른 CG 장면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 루트를 따라 실제 이동거리를 구글 어스로 확인하면 베이스캠프와의 거리가 8.73km로 나옵니다. 통상적인 관례에 따라 표현하다가 1.27km의 과장이 있었던 점을 사과드립니다.■ 뉴질랜드 편정글의 법칙의 한 에피소드는 통상적으로 병만족이 자신들만의 생존공간에서 생존하는 전반부와 그 나라의 전통적인 부족을 만나 공존하는 후반부로 이루어집니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오래전부터 현대화되어 전통방식 그대로 살고 있는 부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따라서 3월부터 방송될 뉴질랜드 편은 기획단계에서부터 마오리족의 현실을 그대로 알려드리고 그들을 교관 삼아 전통적인 사냥노하우만 배우는 일종의 생존캠프로 촬영하였습니다. 방송을 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정글의 법칙을 제작하면서 선배 한분이 하루 동안 정글에서 실종이 되어 회사 전체에 비상이 걸렸던 적도 있었고 저 스스로도 바다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정글에서 버라이어티를 만든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작업인지를 시작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저희 정글의 법칙 팀은 오히려 일치단결하여 실제로 피와 눈물과 땀을 흘려가며 자기 몸처럼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습니다. 저를 믿고 오늘까지 따라와 준 출연진과 스태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이 모든 일에 저를 탓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글의 법칙을 사랑하기에 시청자 여러분의 어떤 채찍질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저희를 믿어주시는 분들을 위해 더욱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고 체크하겠습니다. 자칫 진정성을 가릴 수 있는 과장된 편집과 자막을 지양하겠습니다. 카메라 밖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장상황에 대한 설명도 친절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준대작성일
2013-02-13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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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동물과 대화하는 아이 티피
야생 동물을 전문으로 찍는 프랑스 사진가의 딸로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태어난 티피는 부모와 함께 일정한 거주지 없이 나미비아와 보츠나와의 거대한 동물보호구역에서 십 년을 살았다. 티피가 성장한 세계는 특별하다. 티피의 세계는 카멜레온 레옹과, 코끼리 아부, 표범 J&B, 뱀, 비비원숭이, 사자, 타조 들로 이루어져 있다.코끼리 아부는 그녀의 동생이고 카멜레온 레옹은 가장 오랜 친구이며 위험한 동물인 표범 J&B는 그녀의 놀이동무였다.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티피의 아주 별난 재능 덕에 가능해진 일이다. 티피는 정글북의 모글리처럼 야생 동물과 함께 성장하며 형제나 학교 친구 대신에 사자, 코끼리, 가젤영양, 얼룩말, 비비원숭이 들과 놀며 대화를 나눴다.새끼 사자 곁에서 낮잠을 자고 뱀과 다정히 살을 맞대며 “나는 한 번도 동물이 두려웠던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티피는 부모님이 기막히게 사진으로 포착한 이 자기 세계의 비밀들을 순박하면서도 놀랄 만큼 성숙한 언어로 우리에게 털어놓는다.
한번은 티피와 같이 자란 표범이 담장을 뛰어넘어 사람을 공격하자, 티피가 달려가 표범의 뺨을 때리며 꾸짖어 흥분한 표범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나는 머리나 눈으로, 아니면 마음이나 영혼으로 동물에게 말을 건다. 그러면 동물들이 내 말을 알아듣고 나에게 대답하는 게 보인다.
동물들은 어떤 동작을 해보이거나 나를 쳐다본다. 그러면 꼭 동물들 눈에 글자가 쓰이는 것 같다.
나는 인종 차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것은 대개 종교 때문이다. 누구나 세상 사람 모두가 자기 하느님을 믿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바보같다. 누구나 각자가 원하는 하느님을 믿을 권리가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피부색이나 말이나 머리색이나 습관들이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나는 아프리카인의 피를 가지고 있지만 백인이다. 아프리카에는 백인이 많다. 피부색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자고 내가 이 지구상에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동물 몇 마리를 구해낼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잘 한 일일 것이다.
내 이름은 티피다. 나는 아프리카 사람이고 십년 전에 나미비아에서 태어났다.
'인디언들의 티피(Tipi)를 뜻하는 그 티피냐?'하고 묻는 사람들은 사전을 좀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내 이름(Tippi)에는 P자가 두개니까. 부모님이 내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은 티피 헤드렌이라는 미국 여배우 때문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아저씨의 너무 너무 무서운 영화 <새>에 나온 여배우 말이다.넌 무섭지 않니? 어떻게 그렇게 겁이 없어?' 이건 보는 사람마다 나에게 늘 하는 질문이다. 특히 어른들이 그런다.
물론 나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무섭다면 가까이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깜짝 놀랄 때는 있었지만, 동물을 무서워 한 적은 없다. 그건 같은게 아니다.
내가 동물을 아는 건 동물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위험한 녀석들을 일러주시기도 했다.
예를 들어 노란 코브라는 건드리면 죽는다. 그렇지만 왕뱀은 쓰다듬을 수도 있고 배를 간질일 수도 있다. 그래도 해치지 않는다. 그런 것만 알면 된다."
훼인즈작성일
2011-06-2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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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
해외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도로)'을 모아서 소개 합니다.
1.투리니 고개 (Col de Turini, 프랑스)
프랑스 남부 알프스에 있는 해발 1,607m 위에 투리니 고갯 길.
이 도로는 WRC 몬테카를로 랠리의 주 무대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프랑스 남동부 라 볼리느(La bolline)에서 소스펠(Sospel)
까지의 드라이브 구간이다.
투리니 고개는 그 가운데 있는 정상이라 할 수 있다.
2.스텔비오 고개(Stelvio Pass,이탈리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최악의 산악도로이다.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연결하는 이 도로는 1800년대 초반 오스트리아 황제에 의해 건설된 후 개보수 작업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해발 2,757m의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최악의 산악도로로 180도 각도로 휘어지는 '헤어핀 커브'가 48개나 된다.
이 도로는 산악 자전거 선수들의 훈련 장소로도 유명하며 세계적인 자전거 대회 중 하나인 '지로 이탈리아'의 주요 코스이다.
3.레-마날리 도로(Leh-Manali Highway,인도)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곳(5,328m)에 위치한 도로로 레(Leh)에서 마날리(Manali)까지의 연결되어 있다.
명칭은 고속도로이지만 고속도로로 불리기에 민망한 도로이다.
이 도로는 인도 군(軍)에서 관리,유지한다고 한다.
4.죽음의 길(The Road of death,볼리비아)
'죽음의 길'로 가장 많이 알려진 볼리비아의 북 융가스 도로(the North Yungas Road).
북 융가스 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자동차 도로이다.
이 도로는 La Paz에서 Coroico까지 이며,볼리비아 안데스 산맥의 70km 거리에 걸쳐 있고,거의 3,600m 밑으로 떨어지는
극단적으로 좁은 급커브와 800m의 구렁텅이가 있다.
1995년 미국개발은행은 La Paz-Coroico간 도로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라고 명명했다.
5.레나 고속도로(Lena Highway,러시아)
모스크바시에서 야쿠추크(Yakutsk)시까지 가는 공식적인 연방정부 고속도로이며 길이가 600마일이다.
레나 강을 옆에 두고 난 도로로 모스크바와 야쿠츠크로 연결된 유일한 도로이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진흙 속에 빠져 1000km구간의 긴 차 행렬 속에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6.러시아-그루지아 간의 군사 산악도로
이 도로는 Caucasus산맥에 위치하고 있다.
트럭운전사와 와인을 잔뜩 마신 라다(Lada) 차를 모는 운전사들 만이 이곳을 지나간다고 한다.
이 곳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도로이다.
7.구오리강 터널(Guoliang Tunnel Road,중국)
중국 하남성 태행산(太行山 , Taihang Mt.)에 있으며 1972년에 13명의 지역 주민들이 약 5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한다.
1977년 5월1일 개통된 이 도로는 높이 5m,폭4m의 길로 1,200m의 긴 터널이 연결되어 있다.
이 곳에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데 대부분 사고 원인이 운전자 부주의라고 한다.
8.타로코 협곡 도로(Taroko Gorge Road,타이완)
이 도로도 구오리강 터널 도로처럼 암석을 깎아 만든 길이다.
타이완을 종단하는 중앙산맥 중간쯤의 타로코 국립공원에 있는 협곡 도로이다.
국제적으로도 꽤 유명하며,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대리석 협곡이다.
9.파슈비오 도로(Pasubio,북 이탈리아)
옛날 도로로 주로 모터사이클 애호가들이 놀라운 광경을 보기위해 방문하는 길이다.
매우 좁고 가파르며 많은 절벽과 터널로 이루어진 위험한 길이다.
10.할세마 고속도로(The Halsema Highway,필리핀)
필리핀 루손 섬에 있는 Central Cordillera Valley를 관통한 도로이다.
바기오(Baguio)에서 본똑(Bontoc)에 이르는 고속도로이다. 하지만 이름만 고속도로일 뿐, 대부분 비 포장도로이며 차선도
없이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시골 길이다. 길이는 약 150마일.
11.요정의 길(Trollstigen,노르웨이)
노르웨이 게이랑에르(Geiranger)지역에는 엄청난 급경사로 이루어진 길과 깎아낸 듯한 폭포와 절벽이 일품인 요정의 길이 있다.
트롤스티케(Trollstigen)이라 하는 요정의 길은 1936년 8년간의 공사끝에 완성되었다.
이 곳의 관광은 대개 6월~8월까지 가능하며 날씨에 따라 관광을 못 할 수도 있다고 한다.
12.안데스 Los Caracoles Pass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이 도중에 안데스 산맥을 관통하는 도로이다.
매우 가파르고 굴곡이 많으며 일년 중 대부분 눈으로 덮여 있다.
그러나 도로 관리는 잘 되어 있어 트럭이나 심지어 관광버스가 이용한다고 한다.
13.Iroha-Zaka winding road , 일본
이 도로는 중앙 Nikko와 Oku-Nikko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이다.
14.Van Zyl's Pass ,나미비아
이 도로는 엄겨히 말하면 도로가 아니고 여행자들이 만든 산악 길이다.
약 10~15km의 험준한 길로 되어있으며 드라이브하게 되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Marienfluss Vally라 불리는 고대 황홀한
계곡이 나타난다.
15.El Espinazo Del Diablo, 멕시코
멕시코 Durango에 있는 산 길이다.
이 도로는 '악마의 등뼈'(the devil's backbone)으로도 불리며 Durango에서 Mazatlan Sinaloa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며
약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 도로는 많은 주의 표지판이 있으며 잘 유지 관리가 되어 있다고 한다.
16.Lysebotn Road, 노르웨이
리쎄피요르(Lysefjord)의 가파른 절벽 위에 놓여진 좁은 도로로 시작된다.
마지막 30km부분은 실제 롤러코스터 같은 길이라고 한다.
이곳은 4륜차로 여행할 수 잇는 가장 재미있는 도로로 알려져 있다.
(펌 흰머리대혁명 블로그)
쿠라라네작성일
2010-03-3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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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차가운 현실주의자 김대중 노무현-, 공치사에 안달 난 이명박
차가운 현실주의자 김대중 노무현‥, 공치사에 안달 난 이명박
(다음 - 음성다올찬수박님 글)
◆글 읽기 싫은 분은 2개의 동영상만 이라도 보아주십쇼.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성공을 보자.
여수 세계엑스포 유치는 국민의 정부시절 해양수산부장관이던 노무현이 그토록 유치하려다가 실패한 것임을 먼저 알고 이 글을 읽어야 한다.
당시 여수세계박람회 유치결정은 BIE(세계박람회기구) 비공인도 아닌 공인, 게다가 등록 아닌 (공식)인정박람회였다. 실로 2006년부터 유치선정 발표 때까지 참여정부의 노력과 지원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그 중심에 노무현이 있었다. 2007년 11월 BIE세계엑스포유치선정위 투표가 끝나고 서방선진국 외교부들이 여수엑스포의 선정은 '한국 외교력의 승리'라고 말했다. 이를 이코노미스트, 타임, 텔레그라프, 블룸버그닷컴, 뉴욕타임스, 뉴스위크에서 받아 보도했고, AP 로이터 등의 통신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세계 유수의 언론사가 이 정도 였다면 누가봐도 참여정부의 공로이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여수세계엑스포 선정은 '노무현 정부의 공'으로 등식화 해서 보도하였다. 경제적 효과 면에서는 07년 계산으로만 따져도 ‘생산유발 13조 원, 부가가치 4.6조 원, 고용창출 7만 명’의 효과가 기대돼 2002 월드컵 축구의 2배의 경제적 효과가 있던 것이다.
이런 국가 경사에 노무현은 슬쩍 비켜서 있었다. 유치선정된 날 우리나라 메이저 언론사들이 보도한 유치 성공의 장본인들은 기업인들과 지자체장으로 되어있었지 노무현과 한덕수 송민순 김성진 등 참여정부 인사는 기사에서 찾을 수 없었다.
외교통상부장관도 아닌 김성진 해양수산부 장관이 나미비아 나이지리아 모로코 등 서부와 남부아프리카국에 자원외교 뿐 아니라 여수엑스포 유치를 위해 간 사실도 보도안했을 정도다.
더군다나 이런 대단한 BIE의 인정엑스포 선정투표 전날에 노무현은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투표 전날 대통령 일정을 세계엑스포 투표와 연계하지도 않았다. 여수유치가 확정된 날 방송은 물론 신문 기사도 이를 대통령이나 정부와 연관지어 보도하지 않았다. 그저 여수시와 기업(동원그룹, 현대그룹)의 혼신의 노력이라는 정도였다.
이런 것에는 다 까닭이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유치선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별도의 가시적이고 가식적인 액션을 따로 취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치선정의 마지막 분수령이라는 BIE실사단의 3박4일인가(?다소 부정확) 여하튼 그 일정으로 내한했을 때인 2007년 4월11일, 이미 오전에 실사단과 노무현 대통령이 면담을 가졌다. 여기서 실뱅 단장과 탈레스 BIE 사무총장은 노무현의 솔직하고도 인간적인 대담내용에 감명받았다고 했다.
△ 플레이버튼(▶)을 눌러 주십쇼 이 동영상을 보면 남에 대한 배려가 넘친다. 그 노고를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 등 유치위원과 관계자들에게로 하나하나 그 공적을 돌리며 실뱅단장 등에 소개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듯 남을 배려한다. 심지어는 한나라당 까지도 추켜세우며 그 공적대상에 포함시켜 한나라당 위상까지도 높여주는 대목이 나온다.이 동영상은 공중파 지상파 방송에는 공개되지 않은 <국정브리핑의 희망채널 동영상>이다.원본출처: 참여정부 희망채널 출처: http://blog.naver.com/heromyhero/50022530022
윗 동영상의 4월11일 오전 내내 BIE실사단과 면담한 대통령은 그날 저녁땐 예정에도 없던 여수를 깜짝 방문한다.(동영상에도 여수만찬장에서 좋게 보내십쇼라는 식으로 자신과는 마지막이라고 언급하는 내용)
이는 일정에도 없던 것이었다. 노무현은 그전에 해군의 협조를 얻어 충무공 이순신 함에서 환영리셉션이 펼쳐지도록 배려했다.
연합뉴스가 보도한 탈레스 BIE사무총장의 발언은 "오늘 여수를 방문해보니, 왜 그토록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 지도자들이 여수엑스포를 지지하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다시 실뱅 실사단장이 충무공 이순신함 함상 만찬에서 한 말이다. "오전에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이미 접견했는데 다시 대통령이 여수 현지까지 직접 내려와 환영 리셉션에 참석해주셔서 크게 놀라고 감동했다. 서울에서의 환대도 영광이었는데 이런 만찬을 베풀어 준 데 감사한다"며 "한국에 입국한 이후 한국정부와 여수시민이 보여준 따뜻한 환대는 정말 감동적이었다."라고….
누가 보더라도 당시 이런 쾌거에 노무현의 역할을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는데 이는 메이저 신문이라는 조중동문과 경제신문들의 보도태도와 연관이 깊다. 엑스포 선정까지의 과정과 절차에 대한 설명이 그동안 거의 기사화 하지 않다가 2007년 11월 드디어 여수로 결정되자 그제서야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일제히 두 명의 기업인(현대 정몽구, 동원 김재철 회장)이 지대한 공헌을 한 주역으로만 보도했다.
그 두 사람이 애쓴 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언론의 보도태도다.
실제로 기여가 가장 컸던 한덕수 총리와 송민순 외교부장관 김성진 해양부장관 등 정부의 노력은 언론 기사나 방송에서 별다른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ITU에서 우리나라의 와이브로를 3세대 이동통신부문 국제표준으로 선정한 것은 또 어떤가?
한국전기통신연구원의 쾌거‥ 무려 5년간 94조원의 이익이 창출되는 엄청난 사건
이 또한 세계언론이 '5년간 94조의 이득 창출'하는 것으로 보도해 왔다. '5년간 94조 원의 경제가치'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여정부 정통부(한국전기통신연구원 와이브로팀)가 해낸 것인데도 삼성이 혹은 KT와 SK가 그 공의 중심으로 등장하여도 노무현은 크게 괘념치 않았다. 참여정부의 ITU에서의 국제표준 채택에 대한 노력과 지원은 진지하고 최선이었지만, 그 방식은 언제나 조용한 내조와 같았다.
한국전기통신연구원의 한국형 지상파DMB인 T-DMB(한국형 지상파DMB)의 국제표준 선정
또 있다. 참여정부의 정보통신부에서 추진한 한국형 지상파DMB인 T-DMB.
참여정부 정통부에서 제시한 T-DMB(Terrestrial Digital Multimedia Broadcast, 지상파 DMB)… 그리고 DVB-H, ISDB-T, MediaFLO를 다시 ITU가 모바일TV부문 국제표준으로 채택하는 경사가 연이어 벌어졌다.
DMB가 유럽전기통신연합에서 유럽표준으로 채택
그 이전인 2005년에 이미 우리나라 정통부의 기술인 DMB가 유럽전기통신연합에서 유럽표준으로 채택된 것은 아예 관두자. 당시 수십조 원에 해당한다는 언론기사는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하였고 그나마 단신이었다.
과학기술분야에서의 혁혁한 성과
과학기술분야에서의 혁혁한 성과는 어떤가? DJ로부터 시작한 BT, IT, 첨단대체에너지 개발, 항공우주강국의 기틀 마련을 성실히 계승 이행해 꽃피운 정부가 참여정부이다.
과학기술분야에선 김대중 대통령의 영도력과 그 혜안은 널리 칭송받아 마땅할 정도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DJ의 IT·BT를 국가의 비전으로 삼을 만큼 국정의 주요목표였다.
김대중 국민의정부 때 한국우주항공연구원에 559명의 연구원과 약 3천억원 정도의 예산을 사용하였으며, 노무현의 참여정부들어서 더욱 발전 승화시켜 2006년에는 2922억 3100만원의 자체수입금과 257억 6900만원의 정부출연금 합계 3180억원으로 과학기술을 중시한 과학기술의 황금기가 국민의 정부 +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김대중대통령 때 IT국가정책의 일환으로 고흥의 작은 섬 외나로도에 우주과학기지를 건설하여 우리 손으로 만든 과학기술 위성을 쏘아 올리기 시작하여 참여정부 까지 그 시절에 이미 우리별1ㆍ2ㆍ3호와 아리랑1~7호, 또다른 과학기술위성, 무궁화호, 통신해양기상로켓이 쏘아졌다. 한국형 최초 우주로켓인 나로호 개발(2005년)과 최초발사시기도 2006년으로 잡혀있었던 것이다.‥‥
탄소배출 없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원전의 기술력 발전과 해외수출의 기반을 다진 건 또 누구였던가?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한국형원전의 개발착수와 그 기반조성은 김대중대통령으로부터 언급되어 참여정부에서 드디어 2005년 초 <한국형원전>이 완성된다. 해외수출 얘기도 2005년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세계적인 기술로 첨단 제철기술인 '파이넥스'의 상용화 생산설비의 준공에서도 그렇고, 또 당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나라 조선업의 5년 연속 세계시장 점유율 1위 기록 하면서도 참여정부가 스스로 공치사하거나 언론이 노비어천가를 불러준 적이 있었나? 그저 단신으로라도 보도해 주면 그만.
저것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구 소련에서 독립한)국가들과의 자원외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우리 무기의 수출계약, 아프리카대륙의 그나라 국가사업에서 우리 기업의 선정 등등 외교적 성과는 또 어떤가?
△자신의 공이라고 해도 당연한 것을 두고, 자신의 공적내세우기 보다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공적으로 돌리며 오히려 추켜세운 사회자를 머쓱하게 하기도 한다. 칭찬에 너무도 긍정하지 않을 정도로 수줍음 타는 노무현이다.
김대중 시절 과학기술부가 처음 태동하더니, 참여정부에 와선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은 곧바로 과학기술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고 두 정부 다 과학자들을 우대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부총리급을 장관으로 격하하는 건 고사하고 인수위에서 곧바로 실행한 일이라곤 아예 과기부 폐지였다. 4대강 삽질하는 머리로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경지에 있었던 것이 참여정부였다.
그런데도 이명박정권은 억세게도 운이 좋다. 금융위기도 (98년 인수당시 37억불을) 전임정부들이 만들어 준 2천6백억달러의 튼실한 외환보유고로 넘기더니, 나로호 발사 행운에 어쩌다가 급기야는 원전수주까지 받게 된다.
문제는 이명박의 개씨보랄 놈의 <공치사>이다.
살다 살다 이런 개망나니 자기자랑이 아예 습관화된 인간은 처음 본다.
"왕년에 다 해본거다", "그건 내가 해봐서 잘 안다", "일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현대건설 직원처지에서 이라크전쟁 때 현지에서 모두 구해냈다", "서울시장 해봤다", "그건 내 전공이다", "마프펀드, 내가 직접 해봐서 잘 안다"‥
근데 하는거 보면 왕초짜에 초심자만도 못하다.
사실, 좀 구체적으로 물어보면(마프펀드의 경우), "마포 해장국이냐, 껄껄껄" 하는 식이다.
진짜 문제는 공치사만 하는게 아니라 과대포장에 거짓말이 범람해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는 게 정작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명박은 양심에 철판 깐 개씨보랄 놈이라는 거다.
※ 한나당 썩은 정권아, 참여정부 국정브리핑과 참여정부 청와대 대통령기록관실 홈페이지 열리게 해놔라.
왜 막아 놓은 거냐, 왜, 블로킹 해놓은 것이냐구
http://korea.pa.go.kr/ ←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아무탈 없이 열렸던 URL이었다.
내가 늘 세종시관련 지난 정부 데이터를 보려고 가는 곳이었다.
용현코비작성일
2010-01-1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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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바이크] 역사탐험 1907 Daimler Dernburg Wagen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보도 자료)에서 세계 최초로 사륜 구동 승용차 뭩 - Motoren 다임러로부터 온다 - 1907 년먼트 * 100 년 전 조회 수 : 밆 ernburg - Wagen? 그리고 심지어 모든 핸들 휠 드라이브의 모든 기능을 * 폴 다임러에 의해 고도로 세련된 디자인 * 독일의 식민지에서 일상적으로 사용 사우스 웨스트 프리카 공화국, 오늘은 뭩 나미비아 모든 휠 - 일상적인 사용을위한 차를 모는 다임러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Motoren - 게임 (DMG) 1907 안에. "Dernburg - Wagen"로 알려진, 심지어 모든 핸들 기능. 그 후 국무 장관과 식민지 사무소 베른 하르트 Dernburg의 사람 아프리카에서 많은 킬로미터 다음해 운전 후에 호출됩니다. 사실 모든 휠 - 드라이브를 회사의 역사에서 약간 앞서, 1903 년, 폴 다임러 때이 기술의 첫 번째 디자인 초안과 기초를 해고하기 시작했다. 모든 휠 드라이브 차량이 1904 년에 등장, 그리고 다른 사람에 의해 처음으로 신속하게 그 뒤를이었다. 그 이후로, 표어는 all - wheel 드라이브 때 더 나은 트랙션과 안전, 안심 진행 오면 최고 기술하고있다. 성공적으로 벤츠의 모든 종류에 사용되고 수십 - 벤츠 차량을 모두 승용차 및 상업용 차량, 밴, 오버 및 대형 트럭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모델 중 일부, 예를 들면은 G - 클래스 또는 Unimog, 전설의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을 사실상 지구상에 어디서나 찾을 수있다. all - wheel 드라이브 하루도 점수를 심하게 벤츠 일반 도로에서 일상적인 운전하지만, saloons 4MATIC 벤츠와 함께 보여줍니다. 1907의 Dernburg 자동차 때 지난 세기의 시작 부분에 생산 주문, 독일의 식민지 Office를 정확하게 무엇을 다임러로부터 Motoren - 게임 (DMG) : 어느 불평없이 깰 도로에 긴 여행을 견딜 것이라고 믿을만한 자동차, 동시에 유연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그 amply 자동차는 이미 지난 세기의 처음으로 입증했다. 엔지니어 폴 다임러, 회사의 창립자의 아들 뭩, 주로 어떤 마침내 하나로 만든 새로운 차량의 설계에서 베를린 공장 Marienfelde 1907에서에 대한 책임을지지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륜 구동 차량 DMG 상용 차량 섀시를 기반으로했고 1.42 미터의 트랙 폭 4 미터의 차축했다. 32cm의 지상 통관 시간이 비정상적으로 큰, 거의 모든 차량이 아닌이 가끔 심하게 rutted unmetalled 도로에 사용됐다. Allgemeine Automobil 1908 "에서 - 차이퉁"(AAZ) 이것에 대해 다임러 뭩 디자인을 썼습니다 : "모든 높은 도로 장애물 강력한 전면 및 후면 axles에 의해 극복하고 있으며, 특히 주택의 기어 박스 하단 부분에 취약 강한 철강 경비에 의해 묶여있습니다 을 누르면 프레임 간 사이 어느 정도 내성이 회원의 전체 프레임 하단에 있도록합니다. " 자동차 시장에서 34,750 마크의 가격했다. 그것은 여행 차체 운전사 뭩 벤치와 후면 4 석 2 석가 장착됐다. 단지 뒤쪽 승객, 그리고 문을했다 큰 단계를 주위에 1 미터의 높이를 극복하기 위해 항목을 제공했다. 프런트 엔드를 거의 확장 및 8 개의 기둥에 장착, 양산에서 드라이버를 방해에도 태양이 낮은 황홀하게되고. 화물 랙 경우 또는 스페어 타이어를 뒤쪽에 지붕 타포린에 의해 보호를 추가, 대형화물 랙 마운트했습니다. Awnings 양쪽 지붕 아래에 첨부했다;이 몸을 둘러싸 보호 바람, 날씨와 모래에서 거주자가 인하 될 수있습니다. "이 벤츠는 빛과 우아한 건축 눈에 띄는되지 않도록하려면, 권력과 인내가 틀림이 외부 표지판,"그러나 AAZ 썼다 : "차량의 전체적인 인상을 특별한 요구 사항의 결과로 고통되지 않았습니다 . " 다양한 특수 기능과 함께 작동 조건에 일치 약 4.90 미터의 길이와 지붕 구조, 장엄한 차량을 포함한 훌륭한 2.70 미터의 높이 3.6 톤 완전히 할 때 특별한 상품 콜로니얼 사무소에 의해 특히 중장비 클러치과 같은 지정된 라덴의 주위에 무게 열대 조건, 부품 교체 및 도구에 대한 석유 및 냉각수를 갖습니다. 이것에도 불구하고 4 기통 엔진을 manfully, 35 마력, 800 rpm에서 약 6.8 리터의 배기량에서 (26 kW 급)?의 출력을 매우 존경 약 40 ㎞의 최고 속도 / h 수준의 활주로에 수행할 수 있도록 제공. 의도된 동작 조건에서 볼 수 있음, 등반 능력이 가능한 all - wheel 드라이브에 의해 그러나 더 중요하다고했다 :이 뛰어난 25 %가됐다. 차량의 모든 기능을 갖춘 영구 사륜 구동, 엔진은 4 개의 바퀴에 정교한 기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전력을 제공한다. 샤프트는 4 개의 순방향 및 역방향 장비를 하나의 기어했다 중앙에 설치되어있는 기어 박스,로 연결되어있습니다. 거기에서 베벨 샤프트에 사용되는 설정을 분할하고 바퀴를 전송할 기어 전면 및 후면 차이 차축에 토크를 전달 소품. 기계 부품 공수 모래으로부터 보호 설계자는 폴 다임러 드라이브의 구성 요소를 밖으로 모래를 계속 공중에 특별한주의했다. 관절의 대부분은 베이에서 모래를 계속하고 빠른 마모를 방지 윤활 기름과 함께 포장했다지만 앞 차축이 처음에는 진짜 도전 : 예상 무거운 공기에 미치는 영향 및 미세 모래 때문에, 그것을 사용할 수없습니다가 될 수 입증 베벨에 대한 일반적인 보호 바퀴는 핸들의 움직임을 따라 망원경으로 시스템에 기어. 다임러,하지만 강력하고, 원통형의 슬리브와 함께 취약 요소에 싸여 있기 때문에이 솔루션은 단지 23 도까지 최대의 조향 각도를 제한, 차량도 뒤쪽에 바퀴가 달린 빠지게할만한 합리적인 터닝 원을 달성을 갖추고있다. 뒷 바퀴는 공기가 모래 사장을 보호로 캡슐했다. 하나는 긍정적인 효과는 차이, 바퀴와 브레이크를 포함한 전면 및 후면 차축 부품, 이는 상당히 교체 부품을 제공 단순 동일 건설이있었습니다. 단단한 강철 바퀴는 또한 기계 부품을 보호하고 오염에 대한 브레이크가 드럼을 역임, 목조 (이상 거의 스틸)와 바퀴 바퀴살 시간에 평소했다, 그러나 이러한하자했을 모래 드라이브를 구성 요소로. 또한, spoked 바퀴가 그것을 실질적으로 차량이 모래 속으로 들어가고 후 자체가 불가능 무료로 만든 것이다. 강철 바퀴 크기 930 x 125 픽셀의 공기압 타이어, 다른 특별한 기능을 shod했다처럼 단단한 고무 타이어로 인해 그 당시로서는 아직도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아마도 바울은 다임러 강력한 잎 도움이 선택의 여지가 만든 차량보기에서 자신의 작품에 높은 뭩 무게 온천이있다. 아니 평소 시간 동안에만 뒷 타이어가 앞 타이어하면서 매끄러운 표면 타이어 실시. 타이어 밸브 바퀴 안쪽에 너무 너무 손상에 노출 아니었 위치해있다. 냉각 시스템은 특히 열대 기후에 대한 큰 냉각 표면 큰 냉각 실린더 더 냉각수 주위에 벽난로와 함께 구성되었다? 회로 총 140 리터 포함되어있습니다. 프런트 엔드의 라디에이터뿐만 아니라, 두 번째 라디에이터에서 전면 덮개에 말굽 모양의 패션에 둘러싸 마운트되었습니다 슬립 스트림으로 자사의 벌집 구조로 확장됩니다. 라디에이터 두 가지 측면 모두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 물이 저수지 마운트, 그리고 물이 온수 탱크 라인을 통과했다 다시 실린더 주위를 흐르는 전에. "깊은 모래에도 겨우 8 km 지점 / h로 냉각 시스템을 훌륭하게 한 시간 동안 인내를 시험을 수행,"AAZ 보도했다. 현실적인 조건 하에서 광범위한 테스트 3 월 말 / 4 월 1908, 식민지 차량을 독일에서, 철저한 1,677 킬로미터 재판을 받게됐다 시작했다. 경로는 베를린에서 만났 - Marienfelde 스투 트가 르트 - Untert? kheim 다시. Untert? kheim 4 하루 아침에하는 동안, 그리고 4 일 후, 다시 차에 Marienfelde에 도달했다. 경로 all - wheel 드라이브 시험 도로 부분도되므로, 오프 포함되어있습니다. 5으로 10 %의 그라디언트와 깊이 강타 분야에서 밃 impeccably 차례 협상을했다,? 콜로니얼 사무소 보고서를 밝혔다. 밡 귀에 휘텐버그에서 차량은 잘 최대 모래에서 axles에 침몰 모래 파는 곳,에, 그러나 어떤 몰고에서 손쉽게 자체를 무료로 20 그라디언트에도 불구하고 21 %를 관리.? Thuringian 숲에서 밶 언덕 약 150 미터 높이의 돌이 어서, 트위스트, 상승했다 최대 20 %까지 어려움없이 그라디언트와 좁은 도로. 이는 본질적으로 4의 결과로서 륜 구동, 복잡했다하더라도 조향, 자체적으로 입증했다.? 콜로니 오피스 뭩 테스트 보고서를 양성했다. 1908년 5월 차량 Swakopmund 아프리카 보드에 밙 edive 제공된? 국무 장관이 독일의 식민지 사무실, 베른 하르트 Dernburg (1865 -1937)에서 독일어로 자신의 개인적인 처리를위한 저장 한 달 남 아프리카 서부 그것을 받았다. 그의 작업을 조정하고 식민지와 모국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그의 모든 륜 구동 차량 닉 - "Dernburg - Wagen"라는 몇 년 후 여행의 결과로서. 동시에, 이러한 목적으로 모든 바퀴 드라이브 밆 ernburg 이러한 여행을 식민지의 교통 수단으로서 자동차의 일반적인 테스트를 역임, 그리고? 동행했다 적어도 몇몇에 의해 시간을, 후면 기타 - 휠 - 드라이브, 벤츠와 다임러, 즉 7 인승 차량의 광범위에서 다임러 벤츠의 3 차로 호송 트럭. 그 시점부터 여행 보고서의 저자 Dernburg과 여행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밫 600 - Berseba 통해 Keetmanshoop에서 Gibeon 킬로미터의 여행과 그 다음엔? 전자, 레오 보스 빈트후크 Maltah에서 4 일간의 여정을 시간에없이되었다 사고. 그건 엄청난 시간 절약, 교양 12 일 기수가 말을 타고 걸리는 같은 여행 이후로 [?.? 그리고 심지어 공식적인 이동 통신 지원을 사용할 수있었습니다 너무 : 밯 암탉 [자동차] Dernburg 국무 들고 있었고, 또한 수 있었다 필드에 전화를했다 전보 전선에 도청 방법으로 어디서나 함께합니다.? / 글꼴 " 경찰에 의해 영구적인 서비스가 있음 이 여행에 따라, 자동차 독일어 경찰은 남 아프리카 서부 영구적으로 교통 수단으로 제공되었다. 정확한 로그는 또한, 예를 들어 자동차가 1910의 시작에 의해 1만킬로미터 주변 처리했었단을 보여주는 유지했다. 또한 자사의 정비사, 다임러에 의해 - Motoren - 자동차와 함께먼트 보내진거야? 시간에 일반적인 관행으로 두 자동차 뭩 드라이버. 그리고 이후 경찰에 물러가고 드라이버 폴 리터없이 소속 경찰관이 만들어졌습니다. Dernburg의 사임에 따라, 리터 나라에서 차가보고, 반복되므로 필요한 예비 부품을 확보 Marienfelde 복귀뿐만 아니라, 수리 및 유지 보수 능력을 그들과 함께 이동합니다. 자세한 내용 밆 ernburg에 대해 알고 있나? 포인트 폴 다임러,자는 만들어진 응용 프로그램을 정확하게하는 차 뭩 디자인에 맞는 엔지니어링 능력. 하나하나의 기능을하므로 차량의 최고의 목적에 관한 어떠한 타협을 통해 만들 생각이었는데? 운전 자취를 남기지 않는 지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자동차와 같이 부드럽게 당사자로 좋아했을 가지 않았어 착수. 때문에 높은 체중, 대형 측정의 식민지 오피스 뭩 특별한 요구 사항으로 인해, 그 공기압 타이어를 처벌의 대상이됐다 많은 뜻이됐다. 즉,이 금액은 특히 벗어와 함께 그 일을해야했다 도로를 운전하고, 그들은 단지 비교적 짧은 시간 지속 뜻? 36 타이어 내부 튜브에서 27 위에 10,000km 초기 1910에 의해 보호 언급을 사용했다. 이후 미군 바퀴가 다음 행동을 너무 많이했다 솔리드 고무 타이어와 함께 실험에 실패, 증명들을 파괴했습니다. all - wheel 드라이브, 이와 대조적으로, 특히 모래 사장에, 어떤 자동차와 함께 뒤쪽보다 진전이 표면에 자사의 가치가 입증 륜 구동 트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대한 자세한 검사를 경찰이 대령이 복잡하고 시간 소모를 유지하고 수리를 만든 순수 후륜 구동하는 자동차로 변환 추천 : 전부의 다양한 구성 요소 휠 드라이브 시스템을 제출했다. 이러한 변환은 다음 사실은 분명하지만, 일어 났죠 정확한 내용을 내려오고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차 1 차 세계 대전 중에 사용에 아무런 기록이있습니다. 그것 후 독일어 식민주의가 끝난 후에, 모든 밆 ernburg의 흔적? 사라 졌다고? 자신의 운명을 알 수있습니다. 폴 리터, 자사의 드라이버와 정비공, 1919 년에 그가 어디 한 번 더 다임러와 함께 Motoren -먼트 고용 발견 Marienfelde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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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아파치 아성에 도전하는 공격헬기
루이벌크를 개발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80년대, 주변의 앙골라와 나미비아 등과 지역 분쟁을 계속하고 있던 상당히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당연히 전차나 장갑차와 같은 중장비는 필수였지만 광활한 아프리카의 특성상 이들 장비들이 효과적으로 보병을 지원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기동력이 우수한 헬리콥터들이 보병 지원을 하는 일이 잦았다.
실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알루엣 헬리콥터에 기관총을 다수 탑재시켜 화력 지원용으로 운용했지만 점차 게릴라들이 소련제 T-34/85 전차 및 BTR-40, 60과 같은 장갑차까지 장비해 공격하는 대범한 짓을 저지르자 보다 강력한 지원용 헬리콥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이러한 의견들이 수렴되어 마침내 1984년부터 새로운 공격 헬리콥터의 개발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CSH-Ⅱ"루이벌크"다.루이벌크의 개발은 우선 1986년, SA330 "푸마" 수송 헬리콥터를 기초로 개조된 시험 기체에 무기 체계와 자동 조종장치 등을 탑재해 시험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여러 시행 착오를 거듭한 끝에 1990년 1월, 데날과 아틀라스 항공사의 CSH-Ⅱ"루이벌크"의 시제기가 공개되었다.루이벌크의 초기 형태는 미국의 AH-64 "아파치"와 유사했는데 아마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 외 탠덤식 좌석배치와 보조익을 장착했고 설계 시 대전차 작전, 적 방공 체계 파괴, 적 헬기와의 교전, 전천후 작전 능력 등에 주안점을 두었다.
한편, 기체의 형태는 적 레이더에 의한 반사를 최소화하도록 배려한 점이 특징이며 강도 자체에도 많은 노력을 가해 적 대공 기관포 및 중기관총에 의한 사격에서도 최대한의 방어력과 생존성을 확보하였다.엔진은 치르보 메카의 치르모 4B 2기를 탑재다가 곧 마킬라 1K2로 교체되었는데 적 대공 화기에 의한 피격으로 엔진 작동이 정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병렬로 배치하되 간격을 많이 떨어뜨렸다.이 외에 적외선 방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배기 가스에 냉공기를 섞어 방출하도록 했다.
CSH-Ⅱ"루이벌크"는 무장 체계에도 많은 신경을 썼는데 우선 항공 전자방비를 컴퓨터를 이용, 통합한 관리 체계를 구축했다.이 체계 덕분에 루이벌크의 조종사와 사수는 공격 임무, 비행 경로, 적 정보, 전장 지도 등이 표시되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함은 물론 성공리에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기체 내의 승무원 배치는 조종사가 전면에 위치해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고 야간에는 열영상장치를 이용해 지형을 따라 저공으로 비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사수는 목표 탐지 추적 체계를 이용, 원거리의 적을 수색하고 정확한 공격을 할 수 있다. 사격 통제장치는 레이저 거리 측정기, 목표 추적 체계, 열영상 장비, 미사일 유도 관제장치로 구성되어 있고 헬맷 내장 조준장치를 이용, 기관포와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탑재 무장은 기본적으로 스위프트 대전차 미사일 8발, 68mm 로켓탄 포트 2기, GA-Ⅰ 20mm 기관포가 장착되고 보조익 끝에는 적외선 추적방식을 사용하는 쿠크리 공대공 미사일이 각각 1발씩 탑재된다.기수 하단에 장착되는 GA-Ⅰ20mm 기관포는 마찬가지로 헬맷과 연동되어 발사된다.
아틀라스사는 현재 루이벌크의 해외 판촉에 적극적으로 일단 아파치보다 저렴한 가격과 자체적으로 개발한 공대공 미사일, 대전차 미사일 등과 더불어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하지만 2000년 이래 말레이시아를 제외하고는 도입을 결정한 국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수출실적이 낮다고 볼 수 있고 특히 한국군도 관심을 가졌지만 워낙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한국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기술지원 및 부품 조달 등의 난항으로 인해 상식적인 차원에서 끝이 나고 말았다.
제원
로터 폭 : 15.58 m 전장 : 18.73 m 전고 : 5.19 m 자중 : 5,910 kg 최대속도 : 309 km/h 항속거리 : 704km 이륙 출력 : 2,243kW 순항 출력 : 1,660kW 탑승인원 : 2 개발 : 데날 항공, 아틀라스 항공
자료제공 : (주)천년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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