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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형법에 따른 윤석렬의 빼박 내란죄 성립 근거
◎12월3일 당시 상황만 놓고 평가해보자1.대통령이 직접 계엄령 선포를 했고 그 과정도 불법이었다.이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행위로, 헌법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2.국회에 군인이 난입했다.군인의 국회 난입은 헌법상 의회 독립을 침해하는 불법적인 군사력 행사이다.국회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률 제정과 통제를 수행하는 중요한 기관으로,군사력이 개입하면 국회 기능의 마비와 정상적인 정치 절차의 중단을 의미한다.군인의 국회 난입은 쿠테타의 핵심적인 특징인 군사적 강제력 행사로 볼 수 있다.3.경찰이 의원의 국회출입을 방해했다.경찰의 개입은 군의 개입과 함께 국회 내 권력 행사의 강압적 개입을 나타낸다.경찰이 의회의 활동을 방해했다면, 이는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방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으며,쿠테타적 성격을 강조하는 요소이다.4.대량의 총알반출이 있었다는 군수뇌부의 증언이 있었다.총알 반출은 내란을 준비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이는 군사적 충돌을 준비하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으며,국가의 헌법 질서를 전복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군 수뇌부의 신뢰할 수 있는 증언은내란을 일으킬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1~4번 모두 권력 장악을 위한 군사적 및 경찰적 개입을 나타내며,이는 분명히 헌법 질서를 전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따라서, 12.3 계엄령은 친위 쿠테타로 판단할 수 있으며, 명백한 내란죄이다.◎ 내란 관련 형법을 알아보자대한민국 헌법 제84조내란 또는 외환죄를 범한 경우 대통령이라도 면책특권을 받을 수 없다.형법 제87조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한 경우 성립한다.실패한 경우에도 내란죄로 처벌한다.내란의 실패가 법적 처벌을 완전히 면제하는 것은 아니며,실패하였더라도 그 자체로 국가를 전복하려는 의도와 구체적인 실행은 형법상 중대 범죄로 간주되어반드시 처벌이 이루어진다.따라서 내란을 실행했으나 실패한 경우에도 사형, 무기징역, 5년 이상의 징역형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내란의 수괴는 단순 가담자보다 가중처벌된다.내란을 주도한 수괴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내란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수괴는 주도적 역할을 한 자로서 내란 전체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진다.실패로 인해 국가에 미친 피해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수괴의 범죄 의도와 실행의 책임은 그대로 유지된다.미수범의 경우, 법원은 **형법 제25조(미수감경 규정)**에 따라 형량을 감경할 수 있으나◎ 내란수괴의 경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감경받기 어렵다.형법 제87조 및 형법 제89조의 처벌 규정에 따라 내란의 의도와 시도 자체가 중요하며실행이 실패했거나 미수로 끝났더라도 수괴에게는 여전히 처벌이 가해진다는 점에서 근거를 둔다.수괴의 책임은 내란을 일으키려는 주도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므로실행 여부가 형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내란수괴의 변명?내란을 일으킨 자가 실체 없는 위협을 근거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쿠데타가 실패한 경우어떠한변명도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내란죄는 국가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명백히 존재한 상황에서 발생하며,위협의 실체 여부와 관계없이 행위 자체가 불법으로 간주되므로 어떤 변명을 해도내란수괴는 그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혹~시나 내란수괴에 대한 감형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경우 1.자백 및 반성: 내란수괴가 자발적으로 자백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일 경우.-내란과 같은 중범죄에 대해서는 그 감형 범위가 매우 좁고, 대체로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기본적으로 유지한다.-윤은 조사를 거부하고 있으므로 해당사항이 없고 이는 법정에서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점을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간주할 수 있고반성의 여지 없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이는 판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미수에 그친 내란: 내란이 실행되지 않고 실패로 끝났을 경우-실행하고 실패했으므로 해당없음3.심신미약이나 미성년자일 경우.-미성년자 해당없음-사법부가 미치지않고서야 인정해줄수 없음4.형사정책적 고려: 사회적 요구나 법원의 재량에 따른 형량 조정.-해당없음 ================================= 윤석렬은 실패한 쿠데타의 명백한 내란수괴 이므로 파면이후 형법에 따라 조속히 판결이 이뤄져야하며, 사형이 선고되어야 마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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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한국 건강보험에 놓여져있는 미래...jpg
1. 미국식 미국식은 너무 단점이 잘 알려진 체계임. 말 그대로 의료보험을 사보험에 맡기고 민영화시키는거임. 미국 의료보험에 대한 큰 오해중 하나는 가난한 계층이 힘들다는건데 정확히 말하자면 가난한 계층은 커버됨. 문제는 너무 가난하지도 않고 부자도 아닌 어중간한 중하위 및 중산층들이 비용 감당이 안되서 파산하거나 죽어나가는것. 대신 의료 처리 속도나 의료인력 수준은 뒤에서 얘기할 영연방식이나 대륙유럽식보다는 나은편. 2. 영연방식 돈이 없어도 의료는 받아야 된다는 취지에서 영국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시작해 캐나다 호주등 영연방 백인 국가들로 퍼져나간 보험체계. [ 25 년간 의료보험 비용이 약 500% 증가한 영국 ] 언뜻보면 듣기엔 참 좋고, 아직까지 해당 국가들이 젊을때는 잘 돌아갔음. [ 미국 제외하고 모두 40-50대 중위연령에 접어든 G7 국가들 ] 그런데 저출산으로 노인들이 아이보다 많아지며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전과 다르게 의료기기나 신약 개발 비용이 말도 안되게 비싸졌음. 한국 보험에서 희귀병 치료제 적용이 힘든 이유가 이거기도 하고. [ 신약 개발 평균 비용 : '최소' 4480억원에서 최대 4조원 ] 이전 천연두 콜레라등 인류를 가장 많이 죽이고 남은 질병을 치료할 신약의 개발 난이도는 매우 높은데다, 의료기기는 이전보다 더욱 정밀한 검사를 해내며 기술 요구 수준도 올라갔기 때문. [ 캐나다의 75세 이상 노인 인구 말 그대로 폭증 ] 즉 병이 빈발하는 노인들이 폭증하는 초고령화 + 의료기기 및 신약 비용의 급증으로 인해 사실상 유지 불가. [ 영국에서 MRI 대기시간 목표는 6주 이내, 다시 말해 6주도 아직 전부 안지켜진다는 뜻 ] MRI나 CT 찍는데 수개월을 기다려야되고, [ 영국 내 치료 대기 환자는 약 1000만명으로, 정부는 5개월내로 수술을 받을수 있게 한다 했으나 실패했다고 비판 ] 대기환자는 이미 1000만명 단위에 [ 어깨수술 받기 위해 5년 기다려야 되는 캐나다 BC 주 ] 수술 받을려면 몇년을 기다려야 되는 경우도 속출. [ 영국 의사와 간호사들 실질소득 감소는 일반노동자들보다 훨씬 심각 ] 게다가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세금으로 월급받는 [ 영국 주니어 닥터 세후 월급: 395만원 ~ 514만원 ] 사실상 공무원이다 보니 월급 인상은 상한선이 있을수밖에 없고 [ 캐나다 의료 대기 시간: 27.4 주, 약 7개월 ] 이게 한국처럼 환자가 조금 불편하다고 진료보고 검사할수 없는 이유. 전부 세금이거든. [ 전문의 기준 영국의 3배 평균연봉인 5억 이상을 받는 미국 의사들 ] 그래서 현지 태생 실력 있는 의사 간호사들은 돈을 몇배나 더 주는 미국등지로 떠나고, [ 영국 의사의 38% 가 외국 태생 ] 부족분은 인도, 남아프리카, 파키스탄등 3세계에서 수입하는 처지로 외국계가 영국에서 진료하는 의사의 40% 에 육박함. 3. 독일-스웨덴 식 독일-북유럽등으로 대표되는 대륙유럽은 미국식과 영연방식을 약간씩 섞은 체제. 무조건 국영만 존재하는 영연방식과 달리 국영과 민영이 같이 존재하는 병행체계임. 어떻게 보면 " 오 장점만 섞은 개꿀 " 아니냐 하지만 반대로 단점까지 결합되서 보이고 있는중. [ 스웨덴 전문의 보는데 걸리는 시간: 3개월 단위 ] 무슨말이냐면 국영 의료보험을 이용하는 서민-중산층은 푸대접과 의사 얼굴 한번 보는데 몇주는 물론 몇개월 단위 대기시간이 걸리고 의료 질이 저하되고 의사들의 질도 점차 떨어져 가고 있음. 최근 독일 의사 4분의 1이 업계에서 은퇴함. [ 독일 의사 협회장 " 이대로면 올해안에 독일 의료체계가 더 이상 회복될수 없을 정도로 붕괴 " ] 그리고 이중 가장 큰 이유는 미국등 국가 대비해서 의사들의 연봉이 너무 낮다는거였음. 비싼 사보험 쓰는 중상위층과 상류층은 보다 실력있는 의사의 치료를 받을수 있고 대기시간 없이 즉각 진료, 검사, 수술을 받는 의료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고 있음. [ 이재용 자녀에 트럼프 아들까지 사립 보내는 이유는 다 있음 ] 공립학교랑 사립학교의 교육 질적 차이가 나는 이유랑 동일함. [ 요즘 상위 1% 부자들은 싱가포르, 서유럽, 미국 국제학교에서 글로벌 엘리트 인맥 쌓고 천룡인화 되는중 ] 공립은 수천만명 국민 대다수를 위해 자원을 평균적 분배해야하지만, 사립은 돈많은 소수가 내는 돈으로 최상의 선생님들과 최고급 시설 및 월등한 커리큘럼을 짤 수 있기 때문. 가붕개 발언에도 분노하는 한국에서 대놓고 빈부격차에 따른 의료격차를 국가에서 제도화한다? 아마 난리날거임. 즉 어느식이든 한국에게 만족스러운 방안은 없을거. 2번은 이미 의료대란이 났고, 심지어 병행체계라는 3번 체제조차 지금 초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폭증으로 유지가 힘들다는중. [ 1980년대 12-13% 성장했던 한국 ] 한국식이 가능했던건 말 그대로 젊은데다 + 양질의 교육을 받은 인력이 대량으로 공급되고 + 중국보다 높은 초고성장률 + 군부 정권이 반대세력 씹어버리고 강행한 결과물인데 현재 한국은 이제 그 젊고 교육받은 대량의 인력이 늙었고 + 초저출산으로 더 이상 수급 안되는데다, 일본-유럽식 0-1% 성장 진입에 부채 급증중. 하여간 어떤 식의 의료보험을 선택하던간에 감기 걸린다고 병원가고 몸 좀 아프다고 엑스레이나 CT 찍는건 불가능해질수밖에 없음. 3줄 요약: 1. 현행 한국 건강보험은 유지 불가능이며 한국 건강보험에게 놓여져있는 방식은 악명높은 미국식, 영연방식, 독일-스웨덴등 대륙 유럽식이 존재. 2. 미국은 하위층은 국가에서 커버하나 중하위층 의료비가 지나치게 가혹하며 영연방식은 반대로 비용은 저렴하나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검사 대기시간이 몇주단위에 수술의 경우 몇년을 기다릴수도 있는데 의사들은 낮은 연봉때문에 미국등지로 탈출해서 인도, 파키스탄등 외국 의사가 전체 의사의 40% 에 육박. 3. 독일-스웨덴식은 국영과 사보험 병행체계로 돈을 많이 내는 사보험이 대기시간이 없고, 실력좋은 의사에게 진료받는 반면, 국영은 대기 시간도 길며 수준도 못해지는만큼 의료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우려되긴 하나 사람 갈아넣기와 중국보다 높은 고성장으로 가능했던 한국 건강보험은 유지가 힘든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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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우리가 몰랐던 위대한 흑인 발명가들
역사를 통틀어 흑인 발명가들의 공헌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간과되거나 과소평가되었다. 필수 가정 용품에서부터 생명을 구하는 의료 장비에 이르기까지 이 발명가들은 세상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과 이야기는 알려져야 할 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아 그들의 업적에 대한 인정과 감사가 부족하다. 이 글에서는 간과되었던 가장 뛰어난 흑인 발명가들의 삶과 발명품을 살펴보겠다. 벤저민 베네커는 최초의 미국산 시계를 만들고 연감을 썼다. 벤저민 베네커 는 최초의 미국 시계를 만든 것으로 유명합니다. 벤자민 브래들리는 고성능 증기 기관을 발명하여 자신의 자유를 샀다. 벤자민 브래들리 덕분에 우리는 증기 엔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발명가 개릿 모건은 가스 마스크와 교통 신호를 만들었다. 개릿 모건 덕분에 우리는 가스 마스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리처드 스파이크스는 자동차의 자동 시동 장치를 발명했다. 리처드 스파이크스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수동으로 자동차를 시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발명가 메리 밴 브리튼 브라운은 가정 보안 시스템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다. 메리 밴 브리튼 브라운 덕분에 우리는 홈 보안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22년에 태어난 메리 밴 브리튼 브라운은 가정 보안 시스템을 발명하여 1966년에 특허를 받았다. 브라운은 아파트 건물의 높은 범죄율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이 집 안에서 모니터링할 수 있는 폐쇄 회로 텔레비전을 포함한 시스템을 설계했다. 그녀는 또한 원격 제어 도어 잠금장치를 발명했다. 브라운의 발명품은 가정 보안 분야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으며, 보다 진보된 시스템의 길을 열었지만, 그녀는 생전에 자신의 업적에 대한 인정이나 보상을 거의 받지 못했다. 찰스 드류 박사는 혈액은행 설립의 책임자이다. 찰스 드류 박사 덕분에 수백만 명의 생명이 구해졌습니다. 발명가 사라 분은 오늘날의 다리미판을 만들었다. 사라 분 덕분에 우리는 현대적인 스탠딩 다리미판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업가 마담 CJ 워커, 흑인 여성을 위한 헤어 제품 발명 최초의 여성 백만장자는 CJ 워커 부인이었습니다. 발명가 얀 에른스트 마첼리거는 신발 제조 산업에 혁신을 일으켰다. 얀 에른스트 마첼리거 덕분에 신발은 대량 생산될 수 있었습니다. 엔지니어 루이스 래티머가 백열전구를 개량하다. 루이스 티머 덕분에 우리는 현대식 전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래티머의 탄소 필라멘트 제조법은 백열전구를 더욱 신뢰할 수 있고 긴 수명을 가지게 만들었으며, 이는 전기 조명의 널리 퍼진 사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래티머의 연구와 발명은 전기 조명과 전력의 대중적인 사용을 정착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발명가 메리 케너는 여성들을 위한 생리 용품을 발명했다. 메리 케너 덕분에 1950년대 여성들은 생리대를 맘 편하게 착용할 수 있었습니다. 토마스 L. 제닝스가 드라이클리닝을 발명하다. 토마스 제닝스 덕분에 우리는 섬세한 옷을 드라이클리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셰프 조지 크럼이 감자칩을 발명했다. 조지 크럼 덕분에 우리는 이제 감자칩을 먹게 되었습니다. 엔지니어 일라이저 매코이, 증기 엔진을 개량하다. 일라이저 매코이 덕분에 증기 엔진이 개량되었다. 식품 과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는 땅콩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조지 워싱턴 카버 덕분에 우리는 땅콩 기반 제품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전기 엔지니어 그랜빌 우즈는 5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했다. 발명가 그랜빌 우즈는 50개의 특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엔지니어 오티스 보이킨은 여러 가지 중요한 전자 부품을 발명했다. 오티스 보이스킨스 덕분에 우리는 이제 여러 개의 새로운 전자 부품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엔지니어 마크 딘은 IBM PC의 부품을 발명했다. 마크 딘 덕분에 우리는 IBM 개인용 컴퓨터를 얻었습니다. 청각 물리학자(음향학자) 제임스 E. 웨스트는 전기 마이크 개발에 기여했다. 제임스 웨스트 덕분에 우리는 현대 기술에서 작은 마이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수학 물리학자 J. 어니스트 윌킨스 주니어는 맨해튼 계획에 기여했다. 제시 어니스트 윌킨스 덕분에 우리는 원자 폭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발명가 프레더릭 매킨리 존스는 트럭용 냉장 시스템을 만들었다. 프레더릭 매킨리 존스 덕분에 우리는 전국으로 음식을 운반할 수 있습니다. 기업가 사라 E. 구드는 캐비닛 침대를 발명했다. 사라 E 구드 덕분에 우리는 접이식 침대와 같은 현대적 발명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화학 엔지니어 노버트 릴리유는 설탕 정제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노버트 릴리유 덕분에 우리는 거의 모든 것에 정제된 설탕을 넣습니다. 다니엘 헤일 윌리엄스 박사는 최초의 성공적인 개심 수술을 수행했다. 다니엘 윌리엄스 박사 덕분에 우리는 심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윌리엄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의학 분야에서 큰 장벽에 직면했던 시기에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 학위를 취득했다. 1893년, 윌리엄스는 역사상 최초의 성공적인 개심 수술 중 하나를 수행했다. 그는 환자의 심장에 찔린 칼 상처를 성공적으로 치료하여 심장 수술의 발전을 위한 길을 열었다. 이 업적은 현대 심장 수술의 발전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또한, 그는 시카고에 프로비던트 병원과 훈련 학교를 설립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유 병원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알렉산더 마일스가 자동 엘리베이터 문을 발명했다. 알렉산더 마일스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필요 없습니다. 알렉산더 마일스라는 남자는 1838년부터 1918년까지 살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발명가였다. 마일스는 자동 엘리베이터 문을 발명하여 엘리베이터 산업에 혁명을 일으켜 엘리베이터를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의 획기적인 발명품이 나오기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수동으로 작동했다. 승객은 종종 스스로 문을 닫고 열어야 했다. 마일스의 자동문 설계는 센서 시스템을 사용하여 문을 자동으로 열고 닫아 엘리베이터를 훨씬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자동 엘리베이터 문은 금세 산업 표준이 되었고, 마일스의 발명은 현대 엘리베이터 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엔지니어 로니 G. 존슨이 슈퍼 소커를 발명했다. 로니 존슨 덕분에 전 세계 어린이들이 강력 물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컴퓨터 엔지니어 필립 에미괄리의 발명품은 슈퍼컴퓨터 개발에 기여했다. 필립 에미괄리 덕분에 우리는 슈퍼컴퓨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엔지니어 매리언 R. 크로크는 VoIP 기술을 개발했다. 매리언 크로크 덕분에 우리는 VoIP 기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화학자 퍼시 라본 줄리안은 연구를 통해 여러 가지 의료 응용 프로그램을 발명했다. 퍼시 줄리안의 의학 연구 덕분에 우리는 많은 새로운 호르몬과 스테로이드 화합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발신자 ID에 대해 우리는 셜리 잭슨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 발명가 셜리 잭슨 덕분에 우리는 발신자 ID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리사 겔롭터는 GIF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발명했다. 리사 겔롭터 덕분에 우리는 밈 문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패트리샤 E. 배스 박사가 백내장 치료를 위한 레이저 장치를 발명했다. 패트리샤 배스 박사 덕분에 백내장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https://historycollection.com/black-inventors-who-dont-get-the-credit-they-des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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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소니 ‘PS5 프로’, 고가 정책 독됐나… 판매량 부진 신호
美·日 제외하고 초기 판매량 부진PS4 프로는 시리즈 전체 판매량 20% 차지고가 정책에 일부 사용자들은 게이밍 PC로 전환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가 최신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5 프로’를 지난 7일 출시했지만, 성능 업그레이드에도 시장의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작 PS5 대비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이 45% 향상되는 등 하드웨어적으로 진화했으나, 비싼 가격과 제품 구성에 대한 논란이 판매량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 스캘퍼들조차 정가 이하로 제품 판매 23일 시장조사업체 써카나(Circana)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PS5 프로의 초기 판매 실적은 지역별로 엇갈리고 있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PS5와 비슷하거나 소폭 상회하는 판매량을 기록했지만,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출시 직후부터 판매 부진 신호가 뚜렷하다. 영국 대형 소매업체 아고스(Argos)는 출시 후 불과 6일 만에 PS5 프로 가격을 인하했으며, 스캘퍼(특정 인기 상품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웃돈을 붙여 판매)들조차 정가 이하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PS5 프로의 판매량 부진은 PS5가 출시 초기 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으며 기록적인 수요를 보였던 것과 대비되는 결과다. 당시 콘솔 게임 시장이 작은 한국에서도 PS5는 출시 이후 1년이 넘도록 ‘없어서 못 사는’ 기기로 자리 잡았으며,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 공급난으로 리셀러들이 웃돈을 붙여 판매하는 상황이 이어진 바 있다. PS5 디스크 에디션의 출고가는 62만8000원이었으나, 인터넷 오픈마켓에서는 프리미엄이 50% 이상 붙어 90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됐다. 소니가 PS5를 사전예약 방식으로 판매를 진행했지만, 매번 몇 초 만에 품절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플레이스테이션(PS)4 프로도 지난 2016년 11월 출시 이후, 전체 PS4 판매량의 약 20%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2년 기준 PS4의 누적 판매량이 약 1억1700만대인 것을 고려하면, PS4 프로의 판매량은 약 2340만대로 추정된다. ◇ PS5보다 두 배 높은 가격에 구매 주저 소니에 따르면 PS5 프로는 성능 면에서는 확실한 개선을 이뤘다. GPU 연산 유닛이 기존 PS5 대비 67% 증가했고 메모리는 28% 더 확장했다. 이를 통해 렌더링 속도가 최대 45% 빨라졌으며, AI 기반 업스케일링과 진보된 레이트레이싱 기술로 사실적이고 몰입감 있는 게임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발더스게이트3′와 ‘호라이즌 포비든웨스트’ 같은 최신 게임은 PS5 프로에서 더 높은 해상도와 부드러운 프레임률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능 향상에도 불구하고, PS5 프로의 고가 정책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PS5 프로의 국내 출고가는 111만8000원으로, 디스크 드라이브가 포함되지 않은 디지털 에디션임에도 기존 PS5보다 두 배 가까운 가격이다. 물리적 게임 디스크를 선호하는 사용자들은 별도로 블루레이 디스크 드라이브를 구매해야 하며, 이로 인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출처 : https://biz.chosun.com/it-science/ict/2024/1½3/RKITSIFTTFAIXEITGAG4NHOFJY/
신월드작성일
2024-11-2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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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바이크] 현존하는 세계 자동차 브랜드들의 첫 자동차 모음 1886-1920
메르세데스-벤츠 벤츠 파텐 모터바겐 너머 아인츠 (특허 자동차 1호)1886년 독일의 발명가 카를 벤츠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차. 특허 1호차라고도 불림. 카를 벤츠는 1886년 7월 3일 첫 시운전을 했으며 이후 1886년 11월 2일 독일제국 특허 36435호로 등록,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차 타이틀을 가져가게 됨. 0.954 리터의 4행정 단기통 엔진으로 400 rpm에서 0.75 마력을 발휘했고 프레임은 강철을 용접해서 만들어짐. 휠은 아들러 자전거 공장에서 구매해 사용했고 자전거를 연상시키는것 만큼 엔진에서 바퀴까지 동력도 체인을 통해 전달 됨. 사진은 레플리카가 아닌 단 1대 존재하는 실차. (이외 차량은 전부 벤츠에서 2000년대에 제작한 레플리카라고 생각하면 됨) 이후 자녀 이름인 Mercedes를 붙혀 Mercedes-Benz. 푸조 푸조 Type 1 1886년 푸조는 증기자동차를 1886년에 제작하면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음. 푸조 가문은 원래 1810년 철강업을 시작한게 시초인데 자동차는 사실 아르망 푸조가 아닌 레옹 세폴레라는 증기기관 발명가에 의해서 개발, 이후 파리시에서 주행 허가를 받고 16 km/h의 속력으로 달림. 아르망 푸조는 이에 감명 받아 레옹 세폴레와 손잡고 푸조자동차를 창립, 그러나 물을 보일러로 끓여 증기를 생산해 1기통 엔진를 구동하는건 너무 시간이 오래걸렸고 나중에 메르세데스-벤츠가 되는 다임러사의 내연기관차를 보고 증기기관 방식을 포기, 다임러사와 제휴를 해서 내연기관을 받아옴. 푸조는 몇번 망할뻔 하다가 시트로엥과 합병 이후 PSA 그룹을 창립, 지금은 스텔란티스의 일부임. 르노 르노 브와뛰레뜨 Type A 1898년 드 디옹사가 개발한 273 cc 1.75 마력의 단기통 엔진에 독일 컨티넨탈사의 타이어를 탑재한 이 자동차는 르노사 최초의 자동차임. 1898년에서 1903년까지 생산된 이 차량은 르노사의 창립자 루이 르노가 설계를 당담, 르노의 부모의 친구에게 처음 판매 됨. 초반부터 32 km/h의 고성능으로 어필을 해 자동차가 생소하던 시절 출시 첫날에 무려 12대나 팔았고 이후 엔진 배기량을 늘리고 실런더를 추가해 2기통 엔진으로 적지 않은 판매량을 달성함. 이후 르노자동차는 소형 히트작 르노 5이나 F1에서 터보 첫 엔진을 선보이는등 활약하다 1999년에 닛산과 얼라이언스 그리고 삼성자동차의 지분을 인수해 닛산으로 르노가 철수한 북미시장을 재진출했고 이후 닛산이 미쓰비시자동차를 인수해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를 설립함. 2차 대전 나치와 협력한 탓에 프랑스 정부에서 지분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반 공기업 수준의 자동차 회사임. 피아트 피아트3 ½ HP 1899년 참고로 FIAT는 약자로 Fabbrica Italiana Automobili Torino, 토리노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 아담 오펠 오펠파텐 모터바겐 시스팀 루츠만 1899년 현재 PSA와 스텔란티스의 일부. 한때 GM의 소유라 GM과 많이 콜라보를 했고 대우자동차도 오펠 차량을 기반으로 생산함. 스카니아 스카니아 A1 1901년 스웨덴의 트럭 버스 제조사인 스카니아가 Vabis와 합병전에 생산했던 승용차. 이후 스카니아는 화물차와 버스만 제조하는 회사로 바뀜. 현재 폭스바겐 그룹의 산하임. 캐딜락 캐딜락런어바웃 모델 A 1902년 첫 캐딜락은 1902년 4분기에 출시된 2인승 런어바웃 모델. 브러쉬사에서 개발한 1609 cc 10 마력 1기통 엔진에 리랜드사에서 조립을 한 모델임. 사진은 1903년 토뉴 모델. 원래 캐딜락은 헨리 포드 모터컴퍼니이었지만 포드가 경영진과 싸우고 나간후 핸리 리랜드가 지분을 인수, 원래 주주들은 설비를 매각할 생각이었으나 리랜드가 자동차 생산을 설득해 첫 자동차를 탄생시킴. 사명은 디트로이트를 최초로 발견한 프랑스 탐험가 앙투안 드라 모스 카디약을 영어로 읽은 캐딜락. 이후 GM의 고급 브랜드가 되었고 50년대 GM을 빛낸 디자이너 할리 얼이나 빌 미첼의 손에 의해 우주시대를 테마로 한 엄청나게 화려한 디자인으로 유명했고 대한민국 대통령도 캐딜락을 80년대까지 애용함.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독일이나 영국 고급차에 밀리게 되었고 경영진의 판단미스와 오일쇼크로 하락새를 타다가 다시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 뛰어난 디자이너와 설계를 바탕으로 재건중임. 포드 모터 컴퍼니 포드모델 A 1903년 포드가 첫 자동차 회사 실패 이후 설립한 포드 모터 컴퍼니의 첫 자동차. 핸리 포드는 이전에 Henry Ford Motor Company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나 실패했고 다시 Ford Motor Company를 설립했는데 크게 성공하게 됨. 모델 A는 이전의 핸리 포드사에서 설계된것과 엔진과 일부 부품을 제외하면 완전 똑같은 수준이라 위에 캐딜락과 매우 유사함. 2기통 1668 cc 엔진으로 8 마력을 발휘, 엔진은 앞좌석 밑에 위치한 미드쉽 방식이며 슬라이딩 기어가 아닌 유성기어를 사용한 2단 수동변속기임. 의외인게 고종 황제가 구매해 탔던 첫 어차가 포드 모델 A으로 추정된다고 함. 이 차량에 들어간 기술을 바탕으로 포드는 세계 최초의 대량양산차 모델 T를 개발함. 뷰익 뷰익모델 B 1904년 캐딜락 보다 한급 낮은 GM의 브랜드. 뷰익 모델 B는 세계 최초의 OHV 엔진 차량인데 당시 차량들은 모두 L 헤드라고 캠축이 위에 위치한 푸시로드를 밀어 밸브를 개하던 심플한 방식이었음. 그러나 OHV 기구는 밸브가 헤드 상단에 위치하기 때문에 연소실을 축소화해 열효율을 올려 출력과 연비, 냉각성능이 뛰어남. 그래서 고작 2기통 엔진이지만 당시 경쟁차종에 비해 2배 높은 출력인 21마력을 발휘. 뷰익은 할리 얼 시절 세계 최초의 컨셉카를 출시하는등 한때 자동차 디자인을 선두했지만 지금은 본국보다 중국에서의 판매량이 대부분인 중국 전략 브랜드로 바뀜. 롤스로이스 롤스로이스10HP 1905년 Charles Rolls와 Henry Royce가 회사명을 Rolls-Royce로 합의한후 생산한 첫 차. 1800 cc 2기통 엔진으로 1000 rpm에서 12 마력과 최고 시속 63 km의 차량. 샤시나 브레이크는 당대 흔한 방식인 트랜스미션 밴드 브레이크나 마차형 설계를 유지함. 롤스로이스는 당시에는 차체를 제작하지 않아서 차체 제조사를 소비자가 따로 선택해야 했던지라 같은 모델이라도 차체 제조사마다 형상이 조금 달라짐. 현재 4대가 생존중이라고 하며 가장 최근 낙찰가는 세전 55억이었다고.. 지금은 독일 BMW의 고급차 산하 브랜드임. 부가티 부가티Type 10 1908년 독일 퀼른에 위치한 부가티의 창고에서 단 한대만 제작된 프로토타입. 당시로선 엄청나게 혁신적인 OHV 밸브기구를 탑재한 1200 cc 4기통 엔진으로 12 마력을 발휘, 4단 변속기를 탑재해 420 kg의 차량을 시속 88 km에 도달하게 했음. 다른 회사들이 전부 목재로 차체를 만드는 상황에서 무려 알루미늄 차체를 사용했고 이후 부가티는 모터스포츠에 참여할 차량을 고향인 프랑스에서 생산하게 됨. 부가티는 자동차보다는 바퀴 달린 예술품을 목표로 제작한 최고급 자동차를 지향했는데 그래서 고객들과 트러블도 많았던 모양. 그러나 그 덕분인지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높은 가치를 가진 차량으로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침. 그러나 에토레 부가티 사망 이후 50년대까지 가다가 경영 악화로 부도, 부가티라는 명성에 이끌려 이탈리아에서 부가티 이름을 부활시켜 EB110라는 하이퍼카를 생산했지만 실패한 이후 VW 그룹 밑으로 들어가서 출시한 W16 엔진의 부가티 베이론으로 상업적으로 성공, 재기 이후 리막그룹의 산하에 들어감. 란치아 란치아알파 12 HP 1908년 현재 FCA 스텔란티스의 일부임. 과거에는 상용차에서부터 경주용차까지 다양했지만 지금은 승용차만 생산중. 모건 모건런아바웃 1909년 영국 클래식카 제작사 모건의 첫 자동차. 모건은 아직도 나무 차체를 사용하는 클래식 자동차를 생산중임. 알파로메오 알파로메오24 HP 1910년 첫 자체개발 알파 승용차, ALFA는 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i, 무명 롬바르디아 (밀라노) 자동차 제조의 약자에 투자자 로메오의 이름이 들어간 A.L.F.A 로메오. 쉐보레 쉐보레시리즈 C 클래식 식스 1911년 1911년 등장한 클래식 식스는 4,900 cc라는 거대한 배기량과 T형 헤드의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 40마력을 발휘했음. 당시 기준으로는 포드 모델 T와 같은 대중 브랜드가 아닌 고급차이었고 무게도 그 당시 기준으로 무거운 1.7톤에 시속 104 km/h의 고성능 차량이었음. 쉐보레는 원래 GM 경영진 자리에서 �i겨난 윌리엄 듀란트가 스위스 이민자인 루이 쉐볼레이와 공동 창업한 회사인데 이를 통해 듀란트는 나중에 GM의 경영진으로 복귀함. 이후 알프레드 슬로안에 의해 GM의 대중 브랜드로 자리잡게 됨. 미국에서는 쉐볼레이라고 발음함. GMC GMC모델 H/K 1912년 2기통 2행정 혹은 4기통의 수냉식 엔진을 탑재한 2.5톤에서 5톤 트럭. 변속기는 뒤에 위치하지만 체인도 사용하는 독특한 방식임. 원래 릴라이언스 모터 컴퍼니를 윌리엄 듀란트가 인수하고 GMC로 개명함. 이 모델은 가솔린과 전기 모델이 있었지만 배터리 기술이 열악하던 시절이라 전기 모델은 전부 폐기되었고 가솔린 모델들만 남게 됨. 원래 GMC는 트럭 브랜드이었지만 지금은 GM의 고급 SUV와 픽업트럭 브랜드. 닷지 다지30-35 투어링 1914년 원래 포드에 엔진과 샤시를 공급하던 다지 형제가 자동차 기업을 설립하고 처음 생산한 자동차. 3475 cc 직렬 4기통 수냉식 엔진을 탑재해 최대출력 35마력, 정격출력 30마력을 발휘, 3단 변속기와 조합되어 경쟁사의 포드 모델 T보다 스팩적으로 우수했음. 6볼트 전장을 쓰던 당시로는 엄청나게 혁신적인 12볼트 전기 시스템, 전기 시동모터 제너레이터를 사용했고 속도계와 포드 모델 T는 목조 차체를 사용할때 강철 차체를 사용하는등 포드를 저격해 만들었던 탓에 포드와 사이가 틀어지고 1919년 포드와 소송전 끝에 포드자동차의 주식을 전부 매각하게 됨. 국내에도 일제시대때 택시나 승합차로 많이 들어왔던 차량. 현재 스텔란티스의 일부이지만 이 차량을 생산했던 공장 부지는 아이러니하게도 허머나 실버라도 EV를 생산하는 GM의 전기차 생산공장임. MAN MAN자우어 1915년 MAN은 세계 최초로 디젤 엔진을 선보인 기업임. 원래 U보트와 같은 해양디젤 엔진을 생산했지만 당시 트럭을 생산하던 스위스의 자우어(현재 총기제조 업체로 유명한 SIG 사우어의 전신)와 협력해 디젤 트럭을 생산함. 사진은 1924년에 직분사 디젤엔진으로 개량된 체인구동 트럭. 40마력 4기통 엔진에 직접분사 방식을 적용한 디젤 엔진으로 세계 최초임. 지금은 VW 그룹이 지분을 인수해서 VW 그룹의 트럭, 버스, 그리고 가스터빈 전문 제조사로 활약하고 있음. 대한민국 시장에도 화물차에서 버스, 선박 엔진까지 다양한 산업 분야에 진출해 있음. 시트로엥 시트로엥 Type A 10 cv 1919년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 시트로엥의 1.3리터 4기통 엔진의 10마력 자동차. 공차중량 810 kg에 최고시속 75 km/h의 당시 기준으로 준수한 성능을 가진 자동차이었음. 시트로엥은 앙드레 시트로엥이 1913년 설립한 업체인데 원래 톱니바퀴를 생산하다가 1차 대전때는 탄약을 생산하다 종전후 1919년 자동차 생산을 시작함. 당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포드 모델 T의 유일한 프랑스 경쟁자로 1차 대전 이후 시대상을 반영함.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여전히 큰 인기가 있는 브랜드임. 최초로 전륜구동 자동차 트락숑 아방이나 SM의 시대를 앞선 기술등으로 한때 유명했던 회사이지만 과거에 비해 쇄락한 브랜드. 현재 PSA 그룹과 스텔란티스 산하. 링컨 링컨 모델 L 1920년 링컨은 포드 모터 컴퍼니의 고급 브랜드이지만 한때는 독립된 자동차 업체이었음. 디트로이트에서 창립한 링컨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성씨를 따와 헨리 M. 리랜드가 창업한 기업임. 리랜드는 원래 캐딜락을 창업했는데 GM에 1909년 매각하면서 GM의 경영진으로 등극했으나 1917년 윌리엄 듀란트와 불화로 회사를 나갔고 링컨자동차를 창립함. 링컨이라는 이름을 쓴 이유는 본인이 처음 투표한 대통령이 링컨이라서.. 당시 최고급차이던 메르세데스-벤츠, 롤스로이스, 패커드와 경쟁하기 위한 고급 모델이었고 1920년대에 V8 5.9 리터 엔진에 3단 수동변속기를 조합함. 그러나 모자 제조업을 하던 사람을 고용해 디자인한 탓에 구식 디자인이라고 혹평 받았고 전후 경재가 악화되면서 헨리 포드의 포드자동차에 매각하게 됨. 출처 - 개냥이산책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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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후기 우주세기 결국 인류가 전부 지구에서 떠나게된 이야기
하만칸의 네오지온 이후로 지구를 직접 ‘점령’한 세력은 잔스칼 제국이 유일했다. 그러나 단두대로 표현되는 잔스칼 제국의 폭압은 결국 전국 각지에서 반란세력이 궐기하게 만들었고. 리가 밀리티어와 지구연방은 대대적인 공세를 펼쳐 잔스칼 제국을 몰아내기 시작하였다. 잔스칼 제국은 광역병기 엔젤 헤일로를 사용하여 전 우주의 인류를 사념으로 컨트롤하려고 시도했지만… 웃소 에빈과 샤크티 그리고 수많은 리가밀리티어와 연방군의 희생으로 잔스칼 제국의 수뇌부와 여왕은 전사하였고, 그후 사이드2로 쫓겨난 잔스칼 제국은 붕괴하였다. 다시 평화가 찾아온 것이었다. . 하지만 그뿐이었다. GIF (클릭 새창 재생) 인류는 변하지 않았다. 지구연방은 우주세기 200년이 넘게 폭압과 전쟁말고는 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지구연방은 그동안의 분쟁이 자신들의 ‘성공’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봐라! 우리에게 대들던 지온, 네오지온, 코스모 바빌로니아, 목성제국, 잔스칼 모두 우리한테 망하지 않았느냐? 우리는 승자다. 왜 우리가 성공적인 해결책을 버리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하는 거지? 200년동안 우린 잘만 버텼고 앞으로도 이럴 것이다.’ 물론 지구연방의 방식은 적대세력들의 도전이 올 때는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에게 국한된 문제였다. UC 200년경 새로운 적이 등장하자 지구연방은 속수무책으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뉴타입, 강화인간, 건담형 모빌슈트 모두가 이 적에겐 지푸라기보다 못한 쓰레기였고. 어쩌면 유니콘 건담이 때거지로 몰려와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새로운 적은 또다른 스페이스노이드들의 국가도 외계인도 아니었다. 그 새로운 적은 바로 지구였다. UC 200경년부터 지구는 더이상 인간을 보듬어주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사막화와 환경오염으로 범벅된 지구는 이제 인간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지옥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좀 똑똑한 사람들이었다면 이 끔찍한 결과를 예측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우주세기(UC)가 시작된 원인도 지구의 인류가 너무 과포화가 되자, 지구의 환경을 지키자는 기득권들이 하층민들을 우주에 쫓아내기 위해서 스페이스 콜로니들을 건설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그런 차별정책이 지구에게 가장 끔찍한 결과로 돌아온 것을 잘 알고 있다. 스페이스 콜로니는 무려 3번이나 떨어지면서 지구의 황폐화를 돌이킬수 없을정도로 가속화시켰고… 몇몇 선지자들은 지구를 지키고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 나름의 주장을 펼쳤다. 극소수의 엘리트를 제외하고 모두 어머니 지구에서 나가자는 자미토프의 엘레즘과 아예 인류 전체가 지구를 떠나자는 샤아 아즈나블… 그러나 둘의 주장은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고. 그들은 그 현실성 없는 것들을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지옥도를 만들었다. 그들이 사라지고 지구연방은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마 지구가 망하겠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나 이제 위기는 바로 눈 앞에 다가왔다. 우주세기 218년 지구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지구연방 역시 자연스럽게 붕괴했다. 수많은 적들을 이겨낸 지구연방도 자연 앞에선 개미만도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아직까지 살아있던 지구인들은 모두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도망쳤다. 소원대로 돼서 좋겠네 씨1발아 이제 인류는 샤아가 원했던 대로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우주로 나왔다고 갑자기 모든 인류가 뉴타입으로 각성하고 유토피아가 되었을까? 그건 망상이었다. Congress of Settlement Nations 지구연방이 망했어도 그 지구연방이 가지고 있던 군사력도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지구연방의 후예들은 그들의 선조가 남긴 군사력으로 반절이나 되는 콜로니들을 통합 세틀먼트 국가 의회 줄여서 컨센트(CONSENT)를 창립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주세기 220년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뉴타입의 가능성? 사이코뮤의 신비? 스페이스노이드 독립? 그따위 것들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이었다. 지구를 잃어버린 인류는 이제 오롯이 콜로니에서 나오는 작물로만 살아가야했고, 그 작물들은 오랜기간동안의 유전조작으로 망가졌는지도 몰라도. 영화 인터스텔라의 곡물들이 전멸하기 시작한 것처럼 서서히 소멸하고 있었다. 어쩌면 인류는 스페이스콜로니라는 커다란 관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다 멸망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와중에서 컨센트는 자신들의 주린배를 채우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마치 지구연방처럼 다른 콜로니들을 착취하는 것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번엔 착취하는 지구와 착취당하는 콜로니같은 이분법이 아니었다. 컨센트에 속했던 스페이스노이드들 역시 그 방식에 열렬한 박수를 치며 같이 다른 콜로니를 짓밟았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남아있었다. ‘일루미나티’라는 고대 비밀조직 이름만을 따온 에우고와 같은 단체가 컨센트에 맞서고 있었으며 컨센트 밖의 콜로니도 당하지만 않고 ‘세틀먼트 자유 동맹’ 을 만들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주세기 223년 중립콜로니 세틀먼트 8에서 새로운 곡물종자를 개발했다. 이 곡물은 지금 현상황의 굶주림을 완전히 해결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어찌보면 인류에게 다시 희망이 찾아온 것일까? 모든 인류가 웃었다. 심지어 컨센트도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악한 웃음이었다. 컨센트는 이 기회를 자신들의 계획을 위해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의 계획은 간단했다. 저 ‘만능’곡물종자를 무력으로 빼았으면. 컨센트의 식량난은 해결될 것이고. 중립콜로니도 자신의 세력으로 흡수된다. 그럼 그것을 바탕으로 가증스런 일루미나티와 자유 뭐시기 놈들을 때려부수면 인류는 ‘통합’될 것이다! 마치 지구연방의 재림처럼 말이다. 컨센트는 잔스칼 제국의 찌꺼기인 엔젤 헤일로를 점령, 그 내부의 공장을 이용하여 무지막지한 모빌슈트들을 대량생산하는 ‘레이븐 계획’을 실행하였다. 일루미나티는 이걸 눈치채고 우주세기 224년 엔젤 헤일로에 침투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이 건담 G세이비어였다. 이런 개쩌는 설정을 배경으로 말아먹을수 있다는게 참 대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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