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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죽는 것이 효도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1862~1927) 여사와 안중근(1879~1910) 의사.한국일보 자료사진“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아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다.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모두의 분노를 짊어진 것이다.”유난히 길었던 1910년 겨울, 어머니는 때 아닌 여름 옷감을 꺼냈다. 아들이 입을 수의를 짓기 위함이었다. 3년 전, 국경을 넘어 대륙으로 간 아들은 사형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죄명은 살인. 그의 총구가 겨냥한 것은 힘없는 조국의 주권을 훔친 원수, 이토 히로부미(1841~1909)였다.어머니는 끝내 아들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아우들이 가져온 수의를 받아 든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했다. “나는 처음부터 무죄요, 무죄인 나에게 감형을 운운하는 것은 치욕이다.” 어머니의 전언대로 의연히 죽기로 결심한 그 때, 그의 나이 서른 하나였다. 절대로 삶을 구걸하지 말라던 어머니와 그 뜻을 따른 아들을 두고 적국의 신문은 이렇게 적었다. ‘시모시자(是母是子)’. (아사히 신문, 1910)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고. 안중근이라는 거대한 이름에 가려진 뿌리, 조마리아는 지사의 어머니이자 지사였던 시대의 여걸이었다. 조마리아 여사가 직접 지은 수의를 입고 순국하기 5분 전의 안중근 의사 모습. 안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식에서 한국의 안중근함 장병들이 헌화한 뒤 경례하고 있다. 류효진기자“중근아, 글보다 활이 좋다면 그리 하여라”사서오경을 펼치기 전에 활부터 들었다. 글을 제법 읽을 줄 알게 된 후로는 서당으로 향하는 발길도 서서히 끊겼다. 서책을 넘기는 것보다 표적을 쫓는 것에 빠진 소년을 어머니는 말리지 않았다. 몰래 포수를 따라다니며 사냥을 익힌 아들이 제 손으로 잡은 들짐승이라도 들쳐 매고 오는 날엔 뚝딱 삶아내 모두가 함께 먹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조마리아는 아들 중근이 황해도의 너른 산과 들을 누비도록 풀어두었다. 회초리로 엄히 다스려 서책 앞에 주저앉히는 것만이 어머니의 도리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남다른 어머니 덕에 아들은 저격수의 자질을 기를 수 있었다. 반면, 글을 익히는 데 두각을 보였던 안중근의 두 동생 정근과 공근에게는 책을 읽혔다. 아이가 타고 난 기질을 거스르지 않았던 슬기로운 양육법이었다.조마리아는 현명한 어머니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항일 투쟁의 전면으로 나섰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옭아매고자 거액의 차관을 강제로 들이밀었고 나라는 빚더미에 앉았다. 그는 아들 중근이 적극 가담한 국채보상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여자는 나라의 백성이 아닌가?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 패물은 무엇에 쓰리오.” 패물까지 팔아 나라 빚을 갚는 데 보태고자 하는 여성들이 움직이자 온 나라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은가락지부터 은장도, 은투호노리개는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었다. 한치 앞을 모르는 혼란의 시대, 식솔들의 생명줄이 될 요긴한 것이었다. 하지만 없는 살림을 털어 보내는 것만으로는 나날이 조여오는 일제와 맞서기엔 부족했다. 국채보상운동 최전선에서 힘을 쏟던 맏아들 중근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날 결심을 알려온다. “집안일은 생각지 않아도 된다. 최후까지 싸워라.” 어머니는 단호하게 아들을 보냈고, 아들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뤼순 감옥에 수감된 안중근이 가족들과 면회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독립 운동을 한다는 놈들이 엎드리기만 할 것이냐”그가 잃은 것은 맏아들 하나뿐이 아니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자마자 두 동생 정근과 공근은 공모자로 몰려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간신히 풀려난 아들들과 함께 끊임없이 타국을 떠돌 때, 중근이 남기고 간 일곱 살 난 손자마저 잃었다. 안중근 가족을 끈질기게 쫓은 한 밀정이 건넨 과자 속엔 독이 들어 있었다. 아이는 타인의 호의를 의심할 줄 모르는 나이였다. “어머니, 자식의 막심한 불효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 아들 분도는 장차 신부가 되게 하여 주기를 희망합니다. 후일에도 잊지 마옵시고 천주께 바치도록 키워 주시오.” 천주교의 교리에 반하는 죄를 지은 바, 자식만큼은 평생 신의 은총 속에서 살기를 바랐던 안중근의 유언은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 됐다.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잃었지만 그는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해졌다. 식솔들이 일제의 위협을 피할 곳을 찾아, 블라디보스토크 북쪽으로 110㎞ 떨어진 낯선 땅에 간신히 정착했다. 춥고 척박했지만, 오히려 그 거친 땅은 여사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독립운동의 무대가 됐다.“안중근 의사의 모친은 쉬는 날이 없었다.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로 서쪽으로는 바이칼호수에 이르기까지 분주히 동포들을 각성시키는 사업에 종사했다” (독립신문 1920년 1월 30일자)이미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거대한 대륙을 누비는 고행길에 맹수와 산적이 끊이질 않았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탄, 사납게 아가리를 벌리는 짐승들 앞에서도 조마리아는 대담했다. “같이 가던 청년들 수십 명이 땅에 엎드려 꼼짝 못할 정도였죠. 이 때 여사께서 내려오더니 ‘이놈들아, 독립운동 한다는 놈들이 이렇게 엎드리기만 할거냐? 이렇게 엎드려 있다간 다 죽어’ 라고 대갈일성을 했다는 겁니다.” (독립운동가 정화암) 마부를 밀쳐내고 스스로 고삐를 쥔 조마리아는 벼락처럼 소리쳤다. “죽는 한이 있어도 가고 보자.” 내지르듯 달려나간 마차가 적들의 혼을 빼놓아 결국엔 모두가 무사했다는 후문. 당시 여사를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독립운동가 이강이 ‘범을 낳은 범, 세상에 다시 없을 여걸’이라 회상할 만했다. 조마리아 여사의 생전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아무도 지켜주지 못한 조마리아의 후손들그가 임시정부 터가 잡힌 상하이로 이주한 것은 1920년. 어지러운 시대였던 만큼, 다툼도 잦았던 곳에서 그는 어른이자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쉽게 다루는 일이 없고, 누구의 말이든 반드시 끝까지 들었던 그는 곧 김구를 비롯한 현지 운동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너그러우면서도 대의에 밝은 분이었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아들을 조국에 바쳤듯이 자신의 인생 또한 그 앞에 헌신했다. 손주들이 돈이 없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궁핍한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돈을 모아 임시정부에 헌납했을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사력을 다한 탓이었을까. 조마리아는 1927년 7월 15일, 암투병 중 66세의 나이로 타국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남은 자식들은 어땠을까. 김구를 도와 한인애국단을 이끌었던 넷째 안공근은 해방을 보지 못하고 충칭에서 암살당했고, 독립군단을 통합시켰던 셋째 안정근은 해방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한 채 상하이에서 객사했다. 딸 안성녀는 몰래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어 입히며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나 연구자들의 무관심 속에 아직까지 독립 유공 서훈을 받지 못했다. 5대째에 이르러 수백 명 가까이 불어난 후손들은 몰락의 길을 걷다 뿔뿔이 흩어졌다. 해방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과거 우리는 안중근 집안이라는 이유로 왜놈에게 죽어야 했죠. 광복 뒤에는 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한 놈들이 권력을 잡아 그 때와 다를 것 없습니다” (안중근의 조카 민생이 사촌 동생 경옥에게 보낸 편지) 해방된 조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들은 국경 너머 북으로, 바다 건너 미국으로 건너가 영영 소식이 끊어졌다.조마리아의 유해는 상하이 내 프랑스 조계지에 묻혔으나 지금은 무덤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도시개발로 묘지를 갈아내고 건물을 세우며 사라진 탓이다. ‘하얼빈에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던 아들 안중근의 유해 또한 중국 땅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15일은 조마리아 여사가 세상을 뜬 지 91년이 되는 날. 어머니의 혼도, 아들의 혼도, 그 후손들의 삶도 제대로 보듬지 못한 우리에게는 여전히 부끄럽기만 한 날이다.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http://v.media.daum.net/v/20180714140256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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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추석특선 영화
KBS
내부자들 (9월 29일 금, 23:00, KBS2)
고산자, 대동여지도 (9월 30일 토, 21:20, KBS1)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10월 3일 화, 09:40, KBS2)
인천상륙작전 (10월 5일 목, 20:00, KBS2)
오빠 생각 (10월 6일 금, 12:10, KBS1)
극비수사 (10월 6일 금, 13:50, KBS2)
형 (10월 6일 금, 22:25, KBS2)
스포트라이트 (10월 7일 토, 22:20, KBS1)
비정규직 특수요원 (10월 8일 일, 15:00, KBS1)
럭키 (10월 9일 월, 19:55, KBS2)
SBS
시소 (10월 2일 월, 14:50)
장수상회 (10월 3일 화, 10:40)
뷰티 인사이드 (10월 4일 수, 17:40)
굿바이 싱글 (10월 5일 목, 17:50)
터널 (10월 6일 금, 20:35)
검사외전 (10월 7일 토, 17:50)
MBC
참새들의 합창 (10월 3일 화, 16:15)
발레리나 (10월 3일 화, 17:35)
사랑하기 때문에 (10월 4일 수, 23:10)
해어화 (10월 5일 목, 23:10)
부산행 (10월 6일 금, 20:30)
라라랜드 (10월 7일 토, 22:00)
JTBC
변호인 (10월 4일 수, 20:50)
밀정 (10월 5일 목, 20:50)
TV조선
표적 (9월 30일 토, 21:00)
EBS
라붐 2 (9월 29일 금, 24:25)
베스트 오퍼 (9월 30일 토, 22:55)
스피드 (10월 1일 일, 13:55)
우리 형 (10월 1일 일, 22:55)
라푼젤 (10월 3일 화, 17:45)
빅 히어로 (10월 4일 수, 08:40)
아이스 에이지 (10월 4일 수, 18:00)
블레이드 러너 (10월 4일 수, 23:35)
아이스 에이지 (10월 5일 목, 17:45)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10월 5일 목, 23:35)
아이스 에이지 3: 공룡시대 (10월 6일 금, 17:45)
바닷마을 다이어리 (10월 6일 금, 24:25)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10월 7일 토, 12:40)
타이타닉 (10월 7일 토, 22:55)
반지의 제왕: 왕의 귀한 (10월 8일 일, 13:10)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10월 8일 일, 22:55)
도둑들 (10월 9일 월, 22:45)
OBS
영웅본색1 (9월 30일 토, 22:10)
영웅본색2 (10월 1일 일, 22:10)
써니 (10월 2일 월, 22:30)
로봇, 소리 (10월 3일 화, 22:30)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10월 4일 수, 21:30)
탐정: 더 비기닝 (10월 5일 목, 21:30)
위플래쉬 (10월 6일 금, 23:10)
로마의 휴일 (10월 7일 토, 22:10)
EBS에서 좋은영화 많이하네요
라라랜드는 더빙안하고 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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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최강의 끝판왕 황제
청나라 세종 옹정제 신하들을 조사해서 세금 착복 사실이 밝혀질시"나 몽골 귀족인데?""너 처벌.""님 저 님하고 같은 만주족인데요 ㅎㅎ""너 처벌""헐 야 나 엄마만 달랐지 아버지는 너하고 똑같은 강희제야. 설마 나도 잡진 않겠지?""너님 처벌이요."처벌 방식이란 무지막지한 추징금대신들은 물론 황족들마저도 이 어마어마한 추징금을 값기 위해 집안의 가재도구도 내다 팔아서 간신히 돈을 맞춤 지방에서 관리가 세금 착복하다가 걸리면 그 즉시 전재산 몰수하고 국고에 충당은닉한 재산은 경매로 붙혀 팔아버림그리고 곧바로 관리는 쫒겨나고 미리 준비시켜놓던 새 관리들이 그 자리에 곧바로 들어옴"너희들 대용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깝치지 말아라."이렇게 인정사정 없이 처벌하자 옹정제 3년 호남성의 관원들 중 절반이 파직허베이성 3년 이상 근무한 고참 관리들도 대부분 파직 관리가 세금 착복하다가 걸리면, 그 관리는 물론 관리의 가족과 심지어 친척들까지 처벌과 추징금 크리이 는 "관리가 백성들의 돈을 뺏어먹으면, 그 혜택을 보는것은 관리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이다." "으악 횡령하다 걸렸네 황제놈이 우리 가족들까지 족치겠네 ㅠㅠ 차라리 나 혼자 죽어서 가족들 편하게 해주어야지."하고 횡령사실이 들어난 관리가 Za살시제 아무리 뿅뿅한 사람이라도 철저하게 털어서 가족들이 책임을 감당함. Za살해도 도망을 못감...이전의 관행으로는 횡령 사실이 드러날시, 곧바로 횡령금을 채워놓으면 관직이 유지되었지만 그 제도도 바꿈. 왜?"결국은 횡령한 금액 채워놓으려고 백성들 또 족치는거 아니냐."당연히 다른 사람이 횡령금 대신 내주는것도 금지. 너무 많이 먹었으면 배상이고 뭐고 없이 그냥 처형...이래서 옹정제에게 생긴 별명 "몰수왕" 지주가 백성들을 착취해서 억울하게 천민이 되면 철저하게 밝혀서 백성들은 다시 신분 회복못된 지주는 그냥 코렁탕에 사형 또 정세를 지세에 통합하는 토지-세금제도 개혁을 했는데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토지의 소유자는 세금이 늘어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세금이 사실상 면제됨. 당연히 땅가진 부자들은 반발하는데그 대부분이 향신, 즉 중국의 과거에 합격하고 임관하지 않은 채 향촌에서 살고 있는 자 또는 향촌의 퇴직관리나 유력인사 등의 사회 계층들로 실질적인 향촌 사회 지배층들.이 향신들이 전국에서 단체로 이 향신들의 시위가 벌어지게 되는데..."이 색히가?"대처법으로는 아주 간단하게 순무들을 시켜서 그냥 다 때려서 초죽음을 만듬+영원히 응시자격을 박탈하겠다는 교지를 내림+산동 지방의 진사, 거인, 수재, 감생 등 1천 4백여명의 공명이 모두 박탈+그래도 깝치는 향신들은 불이익을 주거나 벼슬길 자체를 아예 막아버렸고, 지세를 납부하지 않은 사람은 모조리 체포해서 코렁탕을 듬뿍 먹임.향신들 결국 모두 할말을 잃고 gg 선언 지방의 독무, 제독, 통병관, 포정사, 안찰사 거기에 하급 관리들 까지 대략 옹정제 10년동안 천여명의 신하들은 모두 밀절이라는 비밀 상소문을 옹정제에게 계속 바쳐 상황을 보고 해야함보고가 조금이라도 부실하면"이렇게 하찮은 것만 보고하는것을 보니, 반드시 보고해야 할 중요한 사실을 감추고 있는 것이겠지?"이미 한참 지난일을 그때 보고 안하고 나중에 보고 하면"나는 이미 그 일을 알고 있었다. 그때는 말 안하고 지금 와서 말하는것은 무슨 수작이냐?"별 내용없이 쓸데없이 말만 반지르르르 하게 써서 보고하면"너희들이 정치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 짐이 대충 넘어가는것 같은가?"다른것도 아니고 황제가 직접 편지로 신하들에게 욕을 써보내서 보고를 받은 신하들은 충격과 공포의 상황이 됨"바보는 고칠 수 없다더니 네가 바로 그짝이구나!""금수라도 너보다는 나을 것이다.""양심을 뭉개 버리고 수치를 수치로 여기지 않는 소인배 같으니..""무력하고 무능하며 욕심만 많아 헛다리만 집는 쓰레기""속임수를 밥먹듯이 하고 눈가림만 하는 사기꾼 같으니라고""은혜도 모르고, 의리도 모르는 잘못 둔갑한 늙은 너구리, 바로 너를 말함이다"(모두 실제 옹정제가 지방관들을 질책한 말들)지방관으로 임명되어서 황제를 뵙고 가려고 수도에 오면 욕만 먹고 쫒겨남"지방을 비운 사이에 정무가 지체되면 어떡하려고 그러는가? 보고할게 있으면 편지로 하라!" "폐하 살려주세요 ㅠㅠ 일이 너무 많아요 ㅠㅠㅠ 이러다 저 사망함""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경은 하나의 성을 다스리면서 일이 어렵다고 하는데, 짐은 수천리나 떨어진 지방의 모든 총독과 순무의 사무를 도와주고 있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놈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사방에 밀정을 풀어서 감시첨폭잡기(?曝雜記)라는 책에 나온 내용왕운금이라는 사람이 밤새 일은 안하고 마작 판 벌이고 놈. 놀다가 마작패가 하나 사라졌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그럼 오늘은 쫑내지" 하고 그만둠다음날 황제를 만났는데 황제가 갑자기 물어봄"자네 어제 뭐하고 놀았는가?"황제가 도박이라면 질색하는걸 알지만 그래도 속일수가 없어서 솔직하게 말함"죄송합니다. 도박하고 놀았습니다."그러자 갑자기 황제가 하는 말"솔직하게 말했으니 봐주겠다."그러면서 어제 사라졌던 마작패를 돌려줌 소정잡록(嘯亭雜錄)에 나온 이야기어떤 관리가 모자를 새로 사서 기분이 좋아 지인에게 모자 새로 산 이야기를 함.다음날 황제를 만나서 예의상 모자를 벗자 황제가 하는 말"새로 산 모자니까 더러워지지 않게 조심해라."사법부인 형부의 신하를 황제가 부르더니 하는 말이"형부의 간판은 어디에 있는가?""관청 문에 걸려 있습니다.""바보 같은 소리!"황제가 가르키는 쪽을 보자 궁전 구석에 형부의 간판이 굴러다니고 있는데 황제가 밤중에 관청의 불침번이 제대로 기능하나 밀정을 보내서 훔쳐옴관리가 제대로 안되었다고 하면서 간판을 안줘서, 형부는 한동안 간판도 달지 못하는 굴욕을 당함 죄를 저지른 신하에게는 황제가 몸소 직접'명교죄인' 즉 도덕의 죄인이라고 글자를 써서 액자로 만들어 신하의 집 앞에 달아두어서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만듬 그러면서 신하들이 숨도 제대로 못쉬고 벌벌 떠는동안청나라의 재정은 극적으로 호전되고 계속 적자만 나던 지방의 재정도 흑자로 전환관리들의 기강은 청나라 고증학자 조익의 평에 의하면"1000년에 한번 나올 수준" 지정은제 확립으로 백성들의 생활 수준은 크게 나아지고중국내 인구는 이전에는 볼수 없을 정도로 정말 폭발적으로 증가
케지톡작성일
2017-03-28추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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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있었습니다.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와 독립통고서에 서명한 33명의 열사님들 그리고 대한독립을 외친 수많은 독립투사분들 감사합니다 33인 명단 손병희 : 천도교측 수장. 1921년 사망. 딸 다섯 중 셋째 딸 손용화는 소파 방정환의 아내. 이승훈 : 기독교측 수장이자 교육자. 1906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었음. 30년 작고. 33인중 가장 늦게 풀려남. 한용운 : 불교 대표. 공약 삼장 작성. 말년 가난과 중풍에 시달리며 몇 푼 안되는 원고료로 연명하다 광복을 불과 1년 앞둔 1944년 사망. 권동진 : 1882년 일본 망명 후 1905년경(?) 천도교 입문. 3.1 운동후 신간회 부회장으로 광주 학생운동 참여. 증손 권혁방씨는 33인 유족회 회장. 권병덕 : 1894년 손병희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참가, 천도교 입문. 3.1 운동 후 천도교 감사원장, 선도사 등을 역임. 1947년 타계. 길선주 : 한국 최초의 목사. 3.1운동 때 서울에 늦게 도착. 총감부에 자수하였으나 무죄로 풀려남. 독립유공자에서 제외됐었으나 2009년 건국훈장 수여. 김병조 : 33인 중 유일하게 체포되지 않았음. 상해에서 임시정부 상임이사, 사료편찬위원 등을 역임. 독립혈사 간행. 북에 머물렀단 이유로 유공자 포상이 안되다 1990년 3.1절이 되어서야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김완규 : 한일 합방 후 천도교 입문. 3.1 운동후 도사직을 맡고, 민중 계몽운동. 1949년 타계. 김창준 : 기독교측 대표. 함경북도 만세 운동 주도. 해방 후 사회주의 기독교 운동. 남북연석회의가 열린 1948년경 월북. 독립유공자에서 제외. 나용환 : 23세 때 동학 입문. 3.1 운동 후 천도교 포교 사업. 1936년 병사. 나인협 : 19세 때 동학 입문. 3.1 운동 후 천도교 교사 활동. 1951년 병사. 박동완 : 기독교측으로 3.1운동 경기지방의 시위 주도. 신간회 상임이사. 1923년 하와이로 망명. 41년 병사. 백용성 : 불교 대표. 법명은 용성진종대사. 16세 때 출가하여 해인사 스님들의 봉기 주도. 불교 정화 및 대중화에 힘써 서울시내에 최초로 포교당 세움. 대각사 창건후 60여종의 불경어록과 저술을 남겼다. 박준승 : 29세 때 천도교 입문. 3.1 운동 때 임실, 남원, 장성 등 호남지방 민중 봉기 주도. 1921년 옥사. 신석구
: 기독교 대표. 3.1 운동 후 '38년 신사 참배 거부. '45년 전승 기원 예배 거부로 옥중에서 해방을 맞았다. 1949년
감리교 북한 지역 총 책임자로 기독교 민주당 결성. 같은 해 진남포 4.19 사건으로 북한 당국에 검거되어 50년에 처형. 신홍식 : 기독교 대표. 평양 남산현 교회 목사로 있다 3.1 운동 참가. 신사 참배 거부. 1937년 사망. 양전백 : 평양 신학교 졸업. 목사로 있다 3.1 운동참여. 목회사업에 전념. 105인 사건에 연루. 양한묵 : 1898년 일본에서 손병희를 만나 동학에 입문. 1905년 헌정동지회를 만들고 구국운동. 19년 10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순국. 오세창 : 개화론자 오경석의 아들이자 천도교 신자. 한성순보 기자. 만세보, 대한민보 등의 사장. 해방후 매일신보, 서울신문 사장. 53년 사망. 오화영 : 감리교 목사. 6.25 전쟁 때 서울에서 납북되어 1962년 병사. 북한의 평양 애국 열사릉에 안치. 89년 3.1절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96년 11월 위패만 국립묘지에 안치. 유여대 : 모사로 3.1운동 당시 의주에서 독립선언서를 뿌리다 오후 늦게 서울도착. 일경에 붙들렸다. 1937년 사망. 이갑성
: 기독교 신자. 세브란스 병원에 근무. 31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신간회 운동, 흥업구락부 사건 주도 등에 일제와 타협하지
않은 인물 중 한 사람이었지만, 1980년대에 변절했다는 주장 뿐 아니라 일제의 밀정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2005년
삼일절 특집 SBS 뉴스추적에서 심층취재한 결과 오히려 요시찰인 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매일신문에서 2010년에 이
떡밥에 낚여 친일파 언급했다가 정정기사를 냈다. 매일신문은 역사속의 인물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고도 친일파로 매도된 억울한
'희생자'였다고 평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이명룡 : 기독교 대표. 105인 사건 연루. 3.1 운동 후 미국으로 망명. 1956년 병사. 이종일 : 천도교 대표. 보성사 인쇄소 사장으로 선언서 인쇄. 1925년 작고. 이종훈 : 천도교 대표. 1931년 만주에서 병사.이필주 : YMCA 초대 체육 교사로 일하다 목사가 되었음. 1942년 작고. 임예환 : 동학혁명에 동참, 3.1 운동에 가담. 최성모 : 감리교 목사. 이필주를 만나 3.1 운동에 가담. 황해도 시위 주도. 홍기조 : 22세 때 천도교 입문, 손병희와 평안도 천도교 독립운동 주도. 3.1 운동 후 평안도 용강에서 독립운동. 1938년 병사. 홍병기 : 천도교 대표. 고려 혁명위원회 조직.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신의주에서 체포. 1949년 작고. 이분들이 진짜 지금같은 나라만드려고 독립운동하신게 아닐텐데 안타깝고 죄송스럽네
깨방유미작성일
2017-03-01추천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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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2016 대종상에서 고통받는 환희
환희가 이번 대종상에서 수고를 많이 했네요사람들이 많이 불참해서 이번에 곡성팀이 4개(녹음상, 편집상, 조명상, 촬영상)를 수상했는데 환희양이대리수상했다고 합니다 아래는 대종상 근황 MC : 공서영, 김병찬, 이태임 KBS 중계 포기 > 케이블TV K STAR 시상식 장소 : 세종대 컨벤션 센터 동주, 아가씨, 부산행, 비밀은 없다, 죽여주는 여자 등의 영화 후보군 제외 남우주연상 후보내부자들 이병헌 곡성 곽도원 대호 최민식 터널 하정우 밀정 송강호 → 이병헌 참석여우주연상 후보터널 배두나 계춘할망 윤여정 두번째스무살 이태란덕혜옹주 손예진 널기다리며 심은경 날보러와요 강예원→ 전원 불참남우조연상 후보곡성 황정민터널 오달수내부자들 이경영덕혜옹주 윤제문밀정 엄태구→ 전원 불참여우조연상 후보곡성 천우희덕혜옹주 라미란내부자들 이엘귀향 손숙밀정 한지민→ 이엘, 손숙 참석 최우수작품상 > 내부자들 감독상 > 우민호(내부자들) 남우주연상 > 이병헌 여우주연상 > 손예진 인기상 > 이범수 신인여우상 > 김환희 뉴라이징상 > 김희진, 최리 22개 상 중 14개 대리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