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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리터리] 세계의 특수부대들
             
일단 순위는 과거에도 지금도 .. 
공식적인 자료에도 1위이고 제생각도 1위라고 판단
베어그릴스형 출신 부대 SAS 
그외는 솔찍하게 말하자면 ..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아는 수준이라 ... 개인적인 생각임
 
 
 
 
 
현대 특수부대의 아버지.특수부대 하면 이분들 생각부터 날것이다.Special Air Service, SAS는 영국 육군 소속의 특수부대이다. 오랜 역사 및 무수한 실전경험, 전 세계를 무대로 작전을 벌이며 쌓은 노하우를 통해 다른 나라 특수부대들의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 쌓아올린 전설적인 전과들을 가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SAS라 불렸으나 현재의 정식명칭은 그냥 '제22연대'이다. 21연대와 23연대도 있는데 이들은 전시에 예비군으로 구성될 부대이고,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은 22연대다. 때문에 자기네들은 그냥 'The Regiment'(연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진짜 SAS 출신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자기네 부대를 '싸스'라고 발음하면 가짜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이름 탓에 사람들이 공군 소속으로 착각하거나, '특수공군연대'라는 해괴한 번역을 당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SAS는 어디까지나 고유명사이니만큼, 미군의 델타포스처럼 따로 옮기지 말고 그냥 SAS 그대로 쓰는 게 가장 무난하다. SAS가 뭔지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을 위해 굳이 번역을 해야 한다면 기원이나 역할을 고려할 때 '공수특전단'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영국군 공수부대가 따로 있어 헷갈릴 위험도 약간 있지만, 공수특전단의 "특전단"이란 명칭이 특수전을 수행하는 부대임을 나타내므로 정규전 부대인 영국 육군의 공수연대와 헷갈릴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SAS에서는 병과
4개의 부대로 다시 나눠짐.
Air-공수 부대, 적진 후방에 침투. 교란 및 보급 차단 임무 수행.
Mobility-전투 차량 기동 부대, 탈것 위주로 조정 훈련 받으며 적진 침투 임무 수행.
Mountain-산악 부대, 산에서의 생존법과 전투법 위주.
Boat-보트를 타고 침투, 주로 수중 관련 훈련.
개인적인 의견은 .. 모든 핵무기, 총기 등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최정예 요원들로 구성 
이소리에 흠 .. 핵 .. 핵 .. 핵 ... 핵 구경도 못해본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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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그냥 국가별로 몇개의 특수부대만 간략한 소개로 .. 
다들 저보다 잘 아시니까 ..
일단 독일 부터
GSG-9(Grenzschutzgruppe-9)은 독일 연방경찰 (Bundespolizei)에 소속된 특수부대로, 부대명칭은 연방경찰의 옛 이름인 제9국경수비대의 약칭이다. 2005년 국경수비대는 연방경찰로 조직이름을 변경했으나, GSG-9라는 부대명칭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독일어로는 게-에스-게 노인이라고 읽는다.
1972년 9월 5일에 벌어진 뮌헨 올림픽 참사를 계기[1]로 울리히 베게너에 의해 창설되었다. 대테러부대를 군이 아니라 국경경비대에서 창설한 이유는, 당시에 독일군 내에서 특수부대를 창설하는 것에 대하여 반감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치 친위대를 상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시점이다.) 다만 군이 아닌 경찰인 까닭에 해외에서 작전을 하는데 큰 제한이 있어 90년대 후반 르완다 내전에서 대처에 한계를 보여줬고, 결국 KSK라는 특수부대를 독일 육군 내에 새로이 창설하게 되었다.일본의 SAT는 GSG-9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당시 테러범들의 요구에 굴복한 정권이 이들 부대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707특임대 역시 초창기에 GSG-9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하긴 해도 개인적으로는 안좋아함 .. 군인이 아닌 경찰이고
게임에서 많이 발려서 
 
지금 부터는 천조국 .... 
 
델타포스 .. 천조국 에서 티어1 로 들어가는 3팀중 1팀
워낙 유명해서 ..
대부분의 팀원이 그린베레 출신 .. 일부 레인저 출신도 있음
초기에는 그린베레부대원들 중 상위 몇%만 들어갔다는 .. 그렇다는 소리가
네이버씰 산하에 있는 Team 6 
지금은 데브그루
역시나 T1 으로 들어감 .. 
팀원들은 주로 미 해군 Diver나 해군 EOD 출신들 
 
 
 
 
 
 
그리고 마지막 T1 부대...
CCT 부대 산하 
24th Special Tactics Squadron (제24특수전술대대)
줄여서 24th STS
 
 
미국 특수부대는 .. 등급을 3등급으로 두고 운영함 
 
그중 최고가 T1 ... 3부대만 존재함 .. 
그다음이 ..T2 제일 아래가 .. T3
 
가장 많이 알려진 .. 부대들중 몇개의 등급을 말하자면 .. 
 
여기아래 4개 부대가 T2 등급 특수부대임..
 
미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10공수특전대) , 레인저(75레인저연대)
 
미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씰 (2개 그룹 10개팀) 
대한민국 남북전쟁나면 미해군 특수전 1그룹  SEAL 5 Team 배치됨 (5팀이  북한 담당임)
 
미공군 특수부대 CCT (Combat Control Team) 
  
  
일단 규모만 보면 .. CCT  애들이 갑임 .. 그다음이 네이비씰 .. 
T2 등급의 부대는 몇개 더 있음 .. 
미해병대 산하 특수부대중에 T2 기억이 안남 .. 없었던가 .. 기억이 .. 가물 가물 .. 
  
그외 T3 등급 특수부대는 너무 많아서 
  
  
그리고 .. 마지막으로 .. 천조국의 영원한 라이벌 .. 불곰국 
 
스페나츠(스페츠나츠) 
러시아어로 .. 특수부대라는 말일뿐 ..   
미국에 T2급 부대는 6~7개 정도 됨 
 
러시아 특수부대 중 .. 미국 T1 급 해당하는 부대 2개 .. 
 
알파 .. 그리고 빔펠.. 
그런데 의외로 자료가 많이 없는게 단점. 
 
 
대부분 스페나츠 사진이라고 돌아다니는건  
1991년에 창설되고 2008년 해체된 
러시아 내무부 소속 비탸즈 부대 사진이 과반이 넘음 
이애들이 .. 러시아 특수부대 상징인 빨간 베레모에.. 초록색 얼룩 군복 ... 
 
  
 
알파 부대 (Gruppa Al-fa) 
KGB 산하의 대테러부대 ... 
까불면  방사능 홍차 한잔 배달 됨 ..  
 
 
 
 
빔펠 부대 (vympel) 
 
  
 
 
 
해체되서 알파외 기타 특수부대로 나누어 질뻔한 흑역사가 있다고만 알려짐.
대부분 러시아 중요 건물 경비가 우선이라고만 알려짐 
대충 몇자 적어봤네요 .. 
자료의 출처는 나무워키 입니다.
             수라신작성일
                2016-02-04추천
                5 수라신작성일
                2016-02-04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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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수다] 에니메이션 UP 실사판...효암 채현국 선생님
            자신을 ‘조명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을 연말인 12월23일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 안에서 만났다. 채 이사장은 “쓴맛이 사는 맛”이라며 “요즘처럼 절망적일 때 신명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khan@hani.co.kr“쓴맛이 사는 맛이다…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거부’였지만 유신시절 ‘양심세력의 보루’였던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지는 않았다…노인 세대를 절대로 봐주지 마라”[토요판] 이진순의 열림며칠씩 신문을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상쾌한 표정으로 조간신문을 펼쳐 드는 건 신문사 광고에나 나오는 장면이다. 신문을 펼치는 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만큼 불길한 나날들, 불빛도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어른을 만나고 싶었다. 채현국 선생을 만나면 “어른에 대한 갈증”이 조금 해소될 수 있을까. 격동의 시대에 휘둘리지 않고 세속의 욕망에 영혼을 팔지 않은 어른이라면 따끔한 회초리든 날 선 질책이든 달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채현국 선생에 대한 기록은 변변한 게 없다. 출생연도 미상. 대구 사람. 서울대 철학과 졸. 부친인 채기엽과 함께 강원도 삼척시 도계에서 흥국탄광을 운영하며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거부였던 그는 유신 시절 쫓기고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언론인 임재경의 회고에 따르면 채현국은 <창작과 비평>의 운영비가 바닥날 때마다 뒤를 봐준 후원자였으며 셋방살이하는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사준 “파격의 인간”이다. 김지하, 황석영, 고은 등 유신 시절 수배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여러 민주화운동 단체에 자금을 댄 익명의 운동가, 지금은 경남 양산에서 개운중, 효암고를 운영하는 학원 이사장이지만 대개는 작업복 차림으로 학교 정원일이나 하고 있어 학생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던 채현국 선생을 지난 12월23일 조계사 찻집에서 어렵사리 대면했다. 검은 베레모에 수수한 옷차림, 등에 멘 배낭은 책이 가득 들어 묵직했다. 노구의 채현국은 우리 일행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깍듯이 존대를 했다.“독지가라 쓰지 말라”는 인터뷰 조건-왜 그렇게 인터뷰를 마다하시나?“내가 탄광을 한 사람인데….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었다. 난 칭찬받는 일이나 이름나는 일에 끼면 안 된다.”-탄광사고는 다른 탄광도 마찬가지 아니었나?“그게 결국은 내 책임이지. 자연재해도 아니고….”흥국탄광이 설립된 것이 1953년. 열일곱 살 때부터 채현국은 서울에서 연탄공장을 하며 부친의 일을 돕기 시작했고 10여 년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도계에 내려가 73년까지 회사를 운영했다.-젊어서는 큰 기업가였고 현재 학원 이사장인데, 어르신 70 평생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평전이나 자전에세이 같은 것도 없고.“절대 쓰지 않을 거다. 주변 사람들한테도 부탁했다. 쓰다 보면 좋게 쓸 거 아닌가. 그거 뻔뻔한 일이다. 난 칭찬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죄송하지만 연세도 잘 모르겠다. 몇 년도 생이신가?“호적에는 1937년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35년생이다. 올해 일흔아홉.”-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쓴 글에 보면 “채현국은 거리의 철학자, 당대의 기인, 살아있는 천상병”이라는 대목이 있다.“하하하… 거지란 소리지.”-어쨌든 주류 모범생은 아니신 듯하다.(웃음)“근데 시험을 잘 치니까 내가 모범생으로 취급되고. ‘저러다 언젠간 출세할 거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10여 년 전부터 내게 성을 내는 친구들이 있다. ‘이 새끼, 출세하고 권력 가질 줄 알았는데 속았다’고….(웃음)”-출세는 안 하신 건가, 못 하신 건가?“권력하고 돈이란 게 다 마약이라…. 지식도 마찬가지고. 지식이 많으면 돈하고 권력을 만들어 내니까….”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채현국 선생과의 인터뷰는 긴 실랑이 끝에 몇 가지 약속을 전제로 성사되었다. “절대로 자선사업가, 독지가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것” “미화하지 말 것” “누구를 도왔다는 얘기는 하지 말 것.”-도움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도운 사실을 숨기나?“난 도운 적 없다. 도움이란, 남의 일을 할 때 쓰는 말이지. 난 내 몫의, 내 일을 한 거다. 누가 내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지는 몰라도 나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다.”-왜 안 되나?“그게 내가 썩는 길이다. 내 일인데 자기 일 아닌 걸 남 위해 했다고 하면, 위선이 된다.”-한때 소득세 10위 안에 드는 거부였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떠신가?“난 여섯번 부자 되고 일곱번 거지 된 사람이다. 지금은 일곱번짼데 돈 없는 부자다.(웃음) 돈은 없지만 학교 이사장이니까. 개인적으론 가진 거 없다. 보증 불이행으로 지금도 신용불량자다.”-탄광업에선 완전히 손 떼셨나?“73년도에 탄광 정리해서 종업원들한테 다 분배하고 내가 가진 건 없다.”-어떻게 분배를 했나?“광부들한테 장학금 주기 시작해서 그 자식들 장학금 주다가 병원 차려서 무료 진료하다가… 마지막에 손 털 때는 광부들이 이후 10년씩 더 일한다 치고 미리 퇴직금을 앞당겨 계산해서 나눠줬다.”-73년이면 오일쇼크로 탄광업이 황금알 낳는 거위였을 텐데 왜 기업을 정리했나?“경기 좋을 때였다. 근데 72년도에 국회 해산되고 유신 선포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곤 ‘이제 더 이상 탄광 할 이유가 없겠다’고 결론 내렸다. 내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군사독재 무너뜨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왔는데….”-그럴수록 돈을 벌어서 민주화운동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사업을 해보니까… 돈 버는 게 정말 위험한 일이더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돈 쓰는 재미’보다 몇천배 강한 게 ‘돈 버는 재미’다. 돈 버는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돈이 더 벌릴지 자꾸 보인다. 그 매력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떤 이유로든 사업을 하게 되면 자꾸 끌려드는 거지. 정의고 나발이고, 삶의 목적도 다 부수적이 된다.”-중독이 되는 건가?“중독이라고 하면, 나쁜 거라는 의식이라도 있지. 이건 중독도 아니고 그냥 ‘신앙’이 된다. 돈 버는 게 신앙이 되고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된다. 그래서 ‘아, 나로서는 더 이상 깜냥이 안 되니, 더 휘말리기 전에 그만둬야지’ 생각했다.”-부친이신 채기엽 선생도 중국에서 크게 사업을 일으켜 독립운동가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신 걸로 알고 있다. 큰돈을 만지면서 돈에 초연하기는 부친한테서 배우신 건가?“우리 아버님도 일제 치하 왜곡된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성공 자체를 그리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부끄러운 시절에 잘산 것이 자랑일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과거 얘기를 나한테 하신 적이 없어서, 내가 아는 것도 다 남한테 드문드문 들은 거다.”대구 부농의 독자였던 부친 채기엽은 교남학원 1기 졸업생으로 시인 이상화 집안과 교분이 깊었다. 이상화의 백형인 이상정 장군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걸 알고 상하이(상해)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중국에 잔류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트럭운송업, 제사공장, 위스키공장을 하며 손대는 일마다 크게 성공했다. 독립운동가들을 먹이고 재우고 돈 대준 대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도 46년 귀국할 때는 빈손이었다.※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장의사적인 인간과 산파적인 인간-일제하 지식인 중에 사회주의에 경도된 사람이 많았는데 아버님은 어떠셨나?“아주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사상이나 이념 그런 거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좋아하셨다. 아버님도 나도, 지식이나 사상은 믿지 않는다.”-서울대 철학과까지 나오신 분이 지식을 안 믿는다니?“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다.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반드시?“반드시!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이, 옳은 소리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는 법이다.”부친이 큰 사업가였지만 채현국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지 못했다. 사업은 부침이 심했고, 부친의 종적이 묘연할 때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가계를 꾸린 적도 적지 않았다. 위로 형이 한 분 계셨는데 휴전되던 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대 상대 4학년이던 형은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이제 우린 영구분단이다. 잘 살아라…” 한마디뿐이었다. 형의 죽음으로 채현국은 열일곱 살에 집안의 11대 독자가 되었다.-서울대에 입학해서 연극반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다.“한 게 아니라 만든 거다. 그때 이순재가 철학과 3학년이고 내가 1학년이었는데 순재더러 ‘우리 연극반 하나 만들래?’ 해서….”-이순재씨가 선배라면서 왜 반말을 쓰시나?“나이로는 순재가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내가 중학 때부터 후배한테는 예대(禮待)하고 선배한테는 반말했다. 나랑 친구 할래, 선배 할래? 물어보고 친구 한다고 하면 반말로…. 후배한테 반말하는 건 왜놈 습관이라, 그게 싫어서 난 후배한테 반말하지 않는다.”-원래 조선 풍습은 후배한테 반말 안 쓰는 건가?“퇴계는 26살 어린 기대승이랑 논쟁 벌이면서도 반말 안 했다. 형제끼리도 아우한테 ‘~허게’를 쓰지, ‘얘, 쟤…’ 하면서 반말은 쓰지 않았다. 하대(下待)는 일본 사람 습관이다.”도계에서 흥국탄광 운영하는 거부였지만 유신 시절 쫓기던 양심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파격, 파격, 파격, 파격의 인간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진 않았지 노인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어쨌든 사업하는 집안 자제로 일류대까지 갔는데 왜 연극을 할 생각을 했나?“교육의 가장 대중적인 형태가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글자를 몰라도 지식이 없어도, 감정적인 형태로 전달이 되고. 지금도 난, 요즘 청년들이 한류, 케이팝 하는 거 엄청난 ‘대중혁명’이라고 본다. 시시한 일상, 찰나찰나가 예술로 승화되고… 멋진 일이다.”대학 졸업 후 채현국이 선택한 직업은 중앙방송(KBS의 전신) 공채 1기 연출직이었다. 그러나 입사 석달 만에,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드라마를 만들라는 지시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마침 흥국탄광도 부도 위기였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연 360%의 사채를 쓰며 겨우 위기를 막고, 이후 10여 년간 사업에만 전념했다.-그렇게 고생해서 일군 사업인데, 아깝지 않나?“아깝지 않다.”-기업을 제대로 키워서 돈을 벌어 좋은 일에 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그거 전부 거짓말이다. 꼭 돈을 벌어야 좋은 일 하나? 그건 핑계지. 돈을 가지려면 그걸 가지기 위해 그만큼 한 짓이 있다. 남 줄 거 덜 주고 돈 모으는 것 아닌가.”-기업가가 자기 개인재산을 출연해서 공익재단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흥분한 어조로) 자기 개인 재산이란 게 어딨나? 다 이 세상 거지. 공산당 얘기가 아니다. 재산은 세상 것이다.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잘한 것뿐이다. 그럼 세상에 나눠야 해. 그건 자식한테 물려줄 게 아니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데, 재단은 무슨…. 더 잘 쓰는 사람한테 그냥 주면 된다.”-그렇게 두루 사회운동가들에게 나눠주셨지만 개중에는 과거 경력을 입신과 출세의 발판으로 삼거나 아예 돌아서서 배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돈이란 게 마술이니까… 이게 사람에게 힘이 될지 해코지가 될지, 사람을 회전시키고 굴복시키고 게으르게 하는 건 아닐지 늘 두려웠다. 그러나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다. 비겁한 게 ‘예사’다. 흔히 있는, 보통의 일이다. 감옥을 가는 것도 예사롭게, 사람이 비겁해지는 것도 예사롭게 받아들여야 한다.”-서운하거나 원망스러운 적 없으신가?“모든 건 이기면 썩는다. 예외는 없다. 돈이나 권력은 마술 같아서, 아무리 작은 거라도 자기가 휘두르기 시작하면 썩는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보통 선생 연배에 이른 분들을 뵈면, 4·19에 열렬히 참여하고 독재에 반대했던 분들이 나이 들며 급격히 보수화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의제든 종북이냐 아니냐로 색칠을 해서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시하는데, 이런 세대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다.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살고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 아닌가. 그중에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 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이다. 이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남의 사이가 나빠져야만 말발 서고 화목하면 못 견디는…. 난 그걸 장의사적인 직업이라고 한다.”깨진 돌에 쓰인 “쓴맛이 사는 맛”-그럼 산파적인 직업은 뭔가?“시시하게 사는 사람들, 월급 적게 받고 이웃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들…. 장의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실제 장의사는 산파적인 사람들인데. 여하튼 갈등을 먹고 사는 장의사적인 사람들이 이런 노인네들을 갈등 속에 불러들여서 이용하는 거다. 아무리 젊어서 날렸어도 늙고 정신력 약해지면 심심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심심한 노인네들을 뭐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꾸며 가지고 이용하는 거다. 우리가 원래 좀 부실했는데다가… 부실할 수밖에 없지, 교육받거나 살아온 꼬라지가…. 비겁해야만 목숨을 지킬 수 있었고 야비하게 남의 사정 안 돌봐야만 편하게 살았는데. 이 부실한 사람들, 늙어서 정신력도 시원찮은 이들을 갈등 속에 집어넣으니 저 꼴이 나는 거다.”-젊은 친구들한테 한 말씀 해 달라. 노인세대를 어떻게 봐달라고….“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요즘 청년들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보시나?“아주 고마워! 젊은 사람들 그렇게 하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살아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날조 조작하는 이 언론판에 조종당하지 않고 그렇게 터져 나오니 참 고마워. 역시 젊은 놈들이 믿을 만하구나. 암만 늙은이들이 잘못해도 그 덕에 사는구나 하고….”-정약용 같은 사람은 죽기 훨씬 전에 자기 비문을 썼다는데, 만일 그런 식으로 선생의 비문을 스스로 쓴다면 뭐라고 하고 싶으신가?“우리 학교에 가면 ‘쓴맛이 사는 맛’이라고 돌멩이에 쓰여 있다. 원래 교명을 쓰려고 가져왔는데 한 귀퉁이가 깨져 있었다. 깨진 돌에 교명 쓰는 게 안 좋아서 무슨 다른 말 한마디를 새겨볼까 하다가 그 말이 생각났다. 학생들한테 ‘이거 어떠냐?’ 물었더니 반응이 괜찮더라. 비관론으로 오해하는 놈도 없고.”-그 말이 비관론이 아닌가?“아니지. 적극적인 긍정론이지. 쓴맛조차도 사는 맛인데…. 오히려 인생이 쓸 때 거기서 삶이 깊어지니까. 그게 다 사람 사는 맛 아닌가.”-그럼 비문에 “쓴맛이 사는 맛이다” 이렇게?“그렇게만 하면 나더러 위선자라고 할 테니 뒤에 덧붙여야지.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하고.(웃음)”-“쓴맛이 사는 맛이다… 그래도 단맛이 달더라.” 뭐가 인생의 단맛이던가?“사람들과 좋은 마음으로 같이 바라고 그런 마음이 서로 통할 때…. 그땐 참 달다.(웃음)”당분간은 쓴맛도 견딜 만할 것 같다. 선생과 함께한 시간이 내겐 “꿀맛”이었다.녹취 김혜영(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82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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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리터리] [펌] 가짜 군기군찰대에 혼비백산한 초소근무자들
            제대 D- day 355일군기 순찰 나왔다고 했더니...........때는 바야흐로 1981년 10월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제 제대일자가 355일 정도 남았으니 1년도 안 된다. 이제 털보의 두 번째 휴가가 진행되고 있었다. 휴가 나가면 온통 다 내세상이 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만 막상 휴가를 가더라도 친구들도 모두 군대 가고 같이 놀아줄 사람도 별로 없다.미리 작업해둔 아가씨가 없었기에 청춘사업은 그대로 접어두고, 그냥 며칠을 마음 편하게 쉬고 있다가, 같이 휴가 나온 선임병을 제천에서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했었다. 일주일 뒤 제천 중앙로 모 주점에서 만나기로 선약했지만, 당시는 전화도 없었고, 다른 연락방법이 없었지만 그래도 묘하게 만나게 된다.당시 육군전차병들은 육군 중에서는 유일하게 특별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육군들은 국방색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얼룩무늬 위장복에 베레모를 쓰고 황색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가슴에는 권총을 차고 목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전투복장이지만, 휴가 때는 비공식 전투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한다.물론 선임인 장병장도 마찬가지고, 털보 또한 별도로 약속을 안 해도 전차병 전투복장으로 목에 힘을 주고 주점에 들어섰다. 특별한 복장이라 주변사람들로 부터 이목을 집중받기도 한다. 물론 제멋에 사는 것이지만, 목에 힘을 바싹 주고 남들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절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두 사람은 한잔 술로 회포를 풀고 해가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할 때, 장병장이 특별한 제안을 하는 것이다."어이! 털보. 우리동네 방위병들 군기순찰 좀 나가보자." 하늘같은 장병장이 제의 하는데,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어디로 갈 겁니까?""따라 와 보면 알아" 출발!마을 인근에 무기고 근무하는 방위병들 군기가 해이하다고 한번 교육을 시키자고 한다. 요즘 시대에는 좀 이해가 안가겠지만, 당시에 그 지역의 방위병들은 현역군인들 보면 깍듯이 인사하고 나태한 자세가 발견되는 시정조치까지 받던 그런 시절이었다.장병장이 앞장서서 찾아간 곳이 시골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무기고였다. 당시 그 지역에 비상사태 발생 시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지면 그 무기고에서 무기를 지급받아서 동원하는 체계였다. 그곳에 근무자들은 주로 그 지역에서 방위병으로 편입된 사람들이 몇 명씩 조를 짜서 교대로 무기고를 지키고 있다.두 사람은 전차병 얼룩무늬복으로 갖추었지만, 물론 계급장도 달지 않고 다닌다. 예로부터 전차병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깡다구 그것 하나만으로 겁 없이 거리를 활보한다.무기고 앞에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어둠이 짙어 지기 시작하니, 초소 근무병이 정위치 하기 지겨운지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장병장이 앞서서 들어가면서 초소근무자에게 다짜고짜 말을 던진다."이상 없나?"초소에서 군기가 빠져서 흐느적거리던 근무병이 눈이 번쩍 뜨이는 모양이다.영문도 모르고 그는 특이한 전투복 차림의 군인이 나타나니까 곧바로 받들어총을 하면서 인사를 한다."단결! 근무 중 이상무""다른 근무자들은 어디 있나""넵! 대기실에 있습니다.""그래! 오늘 이곳에 근무기강이 해이하다는 연락을 받고 군기순찰 나왔다.""초소 근무자는 갑자기 얼굴이 경색되면서, 온몸이 굳어 버린다."장병장은 초병을 밀치고, 무기고 옆쪽에 있는 근무자들 대기실로 진입했다.근무자들 대기실에 들이닥치니, 6명이 장기도 두는 사람도 있고, 누워서 잠자는 사람도 있었다."어허! 이것들 봐라""기상! 초병만 제외하고 전원 무기고 옆으로 집합"세월아 네월아 탱자탱자하던 근무자들이 모두 얼굴이 경색되고 총알같이 밖으로 튀어나온다."일렬횡대로 집합. 열중쉬어! 차렷.....열, 차, 열, 차.....자동..............."어허! 이것들 동작 좀 봐라!" 취침 기상, 취침 기상"방위병들은 영문도 모르고 지시에 따라 정신없이 동작을 취했다.한참동안 방위병들의 정신을 빼놓고, 장병장의 일장 연설이 시작된다."내가 누군지 아냐?"나로 말할 것 같으면 육군기갑부대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군기순찰대다."얼마 전 보고받은 내용에 의하면 이지역의 방위병들이 근무기강이 헤이하다는 보고를 받고 들렸다.""지금 전방에서는 근무하는 현역병들은 북한의 도발을 막기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아냐?""그런데 내 지역을 지키는 자세가 이 모양이니, 어떻게 너희들을  믿고 전방을 사수하겠냐?"장병장은 근무자들을 부동자세로 세워놓고 한참동안 일장연설을 하고나서, "오늘은 처음이니만치, 이정도로 정신 교육만 시키는 것으로 마치겠다. 하지만 차후 또 다시 이런 보고가 들어올 경우에는 모두 각오하고 있어라. 알겠냐?""네, 알겠습니다."그제야 모두 마음이 놓이는지 부동자세로 힘차게 합창을 한다.장병장은 이렇게 한참동안 일장 연설을 한참동안 하고 있지만, 감히 누구하나 질문을 하거나 토를 다는 사람이 없이 쥐죽은듯 부동자세로 경색되어 있었다.한참동안 군기교육을 시키고 온몸에 힘을 바싹 주고 무기고초소를 유유히 걸어 나왔다.그때서야 비상상황이 해제되었음을 직감한 보초병이 힘차게 받들어총을 한다. "단결! 계속 근무하겠음"한참을 걸어 나와서 장병장은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짜식들 군기가 빠져 가지고 개판이구먼....... 그러니 늘 방위병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듣는 거야............""아마 저녀석들 기갑부대가 뭔지도 모를 뿐더러, 군기순찰대가 있다는것도 처음 들었을거다."........ㅋㅋ사실 직속상관이 아니면 지시하거나 명령할 수 없다고 하지만, 당시는 특수부대에서 길러온 자신만만한 용기 하나만 믿고 방위병들을 엄중하게 교육 시키고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의 육군 전차병이라는 자부심을 뿌듯하게 가슴에 안고 밤이 깊도록 "내 생명 전차와 함께"를 외치며 건배를 하고 있었다.출처: http://boskim.tistory.com/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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