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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수꾼 (2010) 기간한정 공개
‘파수꾼’ Bleak Night (Pa-su-kkun) ㆍ 2010 년 2010년에는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고, 2011년에 극장 개봉한 뒤 호평을 받고, 독립영화 기준 대성공을 거두며 평과 흥행 양쪽 다 성공한 독립 영화 작품으로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 잇츠뉴에서 금, 토, 일 기간 한정으로 무료공개하고 있습니다.(금요일 첫공개 때는 언뜻 보이기엔 생방송처럼 보이는 스트리밍 형식이라 첫장면부터 되돌려보기 가능) 아래 내용은 QDVD에서 인용했습니다. 잘못된 건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한 소년이 죽었다. 평소 아들에게 무심했던 소년의 아버지(조성하)는 아들의 갑작스런 공백에 매우 혼란스러워하며 뒤늦은 죄책감과 무력함에, 아들 기태(이제훈)의 죽음을 뒤쫓기 시작한다. 아들의 책상 서랍 안,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던 사진 속에는 동윤(서준영 )과 희준(박정민)이 있다. 하지만 학교를 찾아가 겨우 알아낸 사실은 한 아이는 전학을 갔고 한 아이는 장례식장에 오지도 않았다는 것. 뭔가 이상하다. 그러던 중, 간신히 찾아낸 희준은 ‘기태와 제일 친했던 것은 동윤’이라고 말하며 자세한 대답을 회피한다. 결국 아버지의 부탁으로 동윤을 찾아나선 희준. 하지만, 학교를 자퇴하고 떠나버린 친구는 어디에도 없다. 천진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 미성숙한 소통의 오해가 불러 일으킨 비극적 파국. 독단적 우정이 가져온 폭력과 그 상처의 전염은 우리를 아프고 충격적인 결말로 이끌어간다. 서로가 전부였던 이 세 친구들 사이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Commentary by 윤상현 감독, 변봉선 촬영감독, 송현식 조명감독, 이제훈, 서준영 , 박정민, 배제기 - 단편영화 “아이들” - 예고편 - CJ E&M의 20번째 한국영화 블루레이! [파수꾼] - 2011년 올해의 발견, 가장 빛나는 데뷔작! -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수상, 2011년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 지금껏 발견하지 못한, 전혀 다른 청춘영화! - <질투는 나의힘>의 박찬옥감독,<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의 뒤를 잊는 29세 젊은 감독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 아래 내용은 코리아필름에서 인용했습니다. 2010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수상2011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심사위원들이 모두 좋아했던 작품"이라고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배우 김윤진은 말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과 뛰어난 연기력이 잘 조화된 이 영화는 감독의 가능성이 매우 밝은,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도 말했다.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프로그래머이자 영화평론가 장병원은 "보는 이의 호흡을 완전히 장악하는 창조적인 이야기꾼의 탄생!"이라는 극찬을 남겼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은하해방전선>등을 만든 윤성호 감독은 "언젠가 클래식이 될 감독이 만든, 아마도 올해 최선의 장편!" 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트위터에서 여러 번 <파수꾼>의 발견을 언급했다. 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과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은 신인감독에게는 인생에 매우 드문 기회이며, 커다란 영예다. 새로운 영화로 세계를 채울 청년들의 길을 밝혀주고 그를 응원하며 전 세계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의 상이기 때문이다. 1997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2003년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 2009년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등 선배 감독들이 그랬듯이! 전 세계 슈퍼 신인감독 발굴의 장에 당당히 입성한 <파수꾼> 윤성현 감독의 행보를 기대한다. 29세 청년감독이 만든 올해의 데뷔작,빛나는 신인배우들의 화려한 발견! 부러움과 놀라움, 기대와 찬사, 박수와 응원이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다. 영화를 본 거의 모든 이가, 이 놀라운 성장영화 또는 청춘영화 아니 그 어떤 범주에도 가둘 수 없는 29세 청년 감독이 만든 영화 한편과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올해의 데뷔작, 올해의 발견이라는 표현을 가감없이 바치게 된다. 윤성현 감독은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2008년 단편 <아이들> 로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 및 수상을 통해 이미 그 저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각본, 연출을 비롯 편집까지 맡은 첫 장편데뷔작 <파수꾼>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3기)을 통해 제작된 작품으로 2010년 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 이후, 국내의 메이저 영화사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탄탄한 연출실력을 인정받으며 상업영화 시장으로의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는 놀라운 청년감독이다. 영화적 완성도 뿐만 아니라, <파수꾼>을 지키는 또 하나의 보석이 있다면 무섭도록 환한 빛을 내뿜고 있는 배우들이다. 영화 속, 아직 미성숙한 고등학교 남자아이들의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 그것을 표출할 20대 중,후반의 각기 다른 남자배우 셋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고스란히 싣기 위해 100% 핸드헬드 촬영을 감행한 윤성현 감독은 연출자의 제 1덕목이자 양보해서는 안되는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을 믿어주고 기대보다 더 많은 걸 보여준 세 배우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현재 촬영중인 <고지전><김종욱 찾기>등을 통해 이미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이제훈,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어린 지진희 역으로 시작해 <회오리 바람> 주연 등을 통해 독립영화 스타상까지 수상한 화려한 이력의 서준영, 그리고 한예종 영상원 연출과에서 연기과로 전과한, 신예 박정민까지 각기 다른 이력을 가진 젊은 야수들의 에너지를 모으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놀랍게 발견하고 감사히 즐기는 일만 남았을 뿐! 지금껏 발견하지 못한, 전혀 다른 청춘영화!절대적이고 깊은 호흡으로 마지막 10분을 마주하라 29세 젊은 신인감독이 만든 5천만원 예산의 졸업작품이 만들어낸 파장이 꽤 강하다. 그건 충무로라는 바다에 괜히 던진 물수제비가 아니다. 꽤 깊은 심해에서 일기 시작한 해일의 두려운 파괴력이다. 그 이유는, 이 영화를 수식하는 몇가지 숫자를 빼고도 놀라운 깊이감이다. 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 이후에도, 일찍이 영화를 접한 평론가들 역시 평범한 맞장구로는 그치지 않는 찬사를 보냈다. 장병원 평론가는 "처음과 끝에 보는 한 인물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만드는 이 이야기는 전체가 거대한 반전으로 이뤄진 영화" 라고 말하며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시간의 순서와 편집기법에 대해 특별히 언급했다. <파수꾼>은 3명의 친구들의 시점으로 각자의 현재와 과거 시점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죽은 친구의 아버지가 사건을 쫓는 미스터리 구조속으로 이야기를 빨려 들어가게하는 독특한 얼개 속에 자리잡고있다. 각각의 그 시간들은 제 역할들이 있고, 그 리듬을 잃지 않으며 시간과 장면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로 흘러가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며 부산영화제 심사위원인 크리스토프 테레히테(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 집행위원장)로부터 "아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다. 세 소년의 관계는 천천히 드러나지만 그것의 신비적인 요소는 끝까지 잃지 않고 있다."라고 감탄하게 했다. <파수꾼>은 단연코 청춘영화 또는 성장영화라는 범주안에 들어가겠지만, 이 영화는 10대 영화가 가지는 아주 일반적인 관습에서 벗어난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루는 부모님과의 갈등, 학습과 이성, 그 외 호기심 어린 사건에 대한 집착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세 친구들의 관계에만 집중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가까움도 틀어짐도 멀어짐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음으로 더욱 명확하게 그 상처와 오해를 드러낸다. 이는 한국영화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 구조이며 상당히 세련되고 현대적 스토리텔링의 구현이라고 말할만한 정교한 화법이다. 이에, 윤성현 감독은 "처음부터 의도했다. 마치 미스터리적으로 시작을 해서 사람들이 으례 생각하게 되는 전형적인 의식들을 깨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아버지가 굉장한 진실을 알게 될 것이고, 과연 가해자가 누구인가라는 식의 생각으로 유도하고 싶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 시선인지 역으로 보여주고 싶었고 그걸 통해 관객들이 각 인물들에 집중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찾으려는 의식에서 벗어나 이들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길 바랬다."라고 신중하게 의도를 밝혔다. '친구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이 낳은 비극' 이라는 소재를 세심한 촬영과 편집으로 완성시킨 전혀 다른 청춘영화의 탄생! 특히, 영화의 마지막 10분이 주는 그 가슴 먹먹하고도 현실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결합된 감정의 무중력 상태, 그 심장의 뻐근함은 진한 마력을 선사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KAFA FILMS)이생산한 '5천만원의 기적' 2007년 신설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이하 KAFA FILMS)은 영화아카데미 정규졸업생을 대상으로 실사극 영화 3편, 애니메이션 1편을 선발하여 1년간 1억원 미만의 예산지원을 통해 장편영화를 제작하는 장편영화 제작 중심의 심화과정이다. 지금까지 완성한 각 기수들의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5천만원. 최근, KAFA FILMS가 내놓은 결과물은 전 세계 어느 영화학교의 성과보다 뛰어나,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영화인들의 산실로 주목받고 있다. 그야말로 5천만원의 기적이라고 일컬을만한 것! 1기 <장례식의 멤버>(백승빈 감독)는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특별언급, 넷팩상을 비롯, <어떤 개인 날>(이숙경감독) 과 함께 제5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분에 공식 초청되며 화제를 불러모았다. 2기 <나는 곤경에 처했다>(소상민 감독)역시 2009년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대상을 수상, <너와 나의 21세기>(류형기 감독)와 함께, 60회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에 초청되었다. 여기에, 3기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역시, 부산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과 함께 전 세계 신인감독들의 가장 화려한 데뷔무대인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상태. 사실, 학생교육과정에서 만들어진 장편영화가 연달아, 유명 영화제에 진출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아 보기 힘든 사례다. 이는 장기적으로 자체 프로덕션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작현장과 새로운 형태의 산학협력을 이뤄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제작모델을 개발, 한국영화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KAFA FILMS 3기에서 배출한 세편의 영화 <파수꾼>을 비롯해, 현재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상업영화 데뷔작을 준비중인 조성희 감독의 <짐승의 끝>과 2010 CinDi 영화제 버터플라이 부문에 초청되어 화제를 모은 박수민 감독의 <간증>은 3월 중순, 무비꼴라쥬를 통해 개봉할 예정이다. 열혈 영화매니아라면, 매년 3월 기다리는 반가운 시간이다. 또한 현재, KAFA FILMS 4기 작품들이 열혈 촬영 중이다. 원석 그 자체로도 아름답게 빛나는 신인감독들의 '어메이징한' 영화를 두 손 모으고 기대하게 된다.
콩라인박작성일
2025-02-0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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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연예] '공연형 아이돌' 82메이저, 세 번째 단콘 '에투메붐' 성료
그룹 82메이저가 세 번째 단독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82메이저(82MAJOR, 남성모·박석준·윤예찬·조성일·황성빈·김도균)는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3일 동안 예스24 원더로크홀에서 세 번째 단독 콘서트 '에투메붐(82MAJOR BOOM)'을 개최했다. '에투메붐'은 82메이저가 지난 8월 개최한 두 번째 단독 콘서트 'BEAT X 82' 이후 약 5개월 만에 여는 것. 이번에도 티켓 전석이 매진을 기록했다. 특히 팬들의 관심에 힘입어 추가 공연까지 열었다. 82메이저는 이번 공연에서 'FIRST CLASS(퍼스트 클래스)', 'Illegal(일리걸)', 'Gossip(가십)', '가시밭길도 괜찮아', 'Face Time(페이스 타임)', '촉(Choke)', '혀끝(Stuck)' 등 풍성한 세트리스트를 선보였다. 솔로 무대와 유닛 무대를 비롯해 다양한 커버곡 퍼포먼스로 에티튜드(팬덤명)를 열광하게 했다. 멤버들은 수준 높은 라이브와 퍼포먼스로 '공연형 아이돌'이란 수식어를 입증했다. 앞서 82메이저가 지난해 발매한 미니 2집 'X-82(엑스-82)'는 빌보드 앨범 세일즈(Albums Sales) 45위, '커런트 앨범 세일즈(Current Album Sales)' 37위, '이머징 아티스트(Emerging Artist)에서 24위, '월드 세일즈(World Sales)' 15위에 오르며 데뷔 1년 만에 빌보드 차트에 입성했다. 미국 DRT 'GLOBAL TOP 150 INDEPENDENT AIRPLAY CHART(글로벌 톱 150 인디펜던트 에어플레이 차트)'에서 6위를 올랐고, 미국 패션지 WWD 화보를 장식하는 등 신인 그룹으로서 이례적인 행보를 펼치며 K팝 5세대 아이돌 신흥 강자로 자리매김했다.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437/000042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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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동년배 최고 무비스타
눈물 터뜨렸던 맥컬리 컬킨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 행사 23년 12월 '나홀로 집에' 시리즈의 케빈 역으로 유명한 맥컬리 컬킨이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는데 그 자리에 나홀로 집에서 케빈 엄마 케이트 역을 맡은 캐서린 오하라 배우가 나타남.전설적인 시리즈의 모자가 상봉해서 양웹 다들 눈물젖은 분위기..그리고 오하라는 맥컬리에게 축하를 건내는데..."'나홀로 집에', 지금도 앞으로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대표적인 작품일 거예요.그리고 전 세계의 가족들이 '나홀로 집에'를 함께 보고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맥컬리 컬킨 때문입니다.네, 맞아요. 그에겐 훌륭한 스크립트와 멋진 감독이 있었죠.하지만 '케빈'을 완벽하게 연기한 맥컬리 덕분에 우리는 특별한 모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맥컬리, 네가 정말 열심히 했다는 걸 알아.하지만 너의 연기는 그냥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우리가 마치 진짜 케빈이라 불리는 어린 소년이 사는 집에 침입해서 영화를 찍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던 것 같아.넌 정말 소중한 존재였단다.맥컬리, 그때 넌 10살짜리 소년이었지...10살밖에 안됐던 아름다운 소년은 당시 헐리우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면서 세계적으로 슈퍼스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습니다.대체 누가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맥컬리, 정말 축하한단다.넌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할 자격이 충분해.그리고 이 행복한 순간에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널 혼자 집에 남겨뒀던 자격없는 엄마를 포함시켜줘서 고마워.난 네가 정말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네게 축복이 가득하길 빌게."오하라의 축하가 끝나자 눈물을 참지 못하는맥컬리 컬킨....둘은 포옹하며컬킨은 오하라에게 "고마워요, 엄마"라고 했고 그런 컬킨에게 오하라는 "오, 내 사랑하는 아가"라고 해줬다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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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26년 자서전 영화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 무료 공개 중
https://standardebooks.org/ebooks/t-e-lawrence/seven-pillars-of-wisdom https://www.youtube.com/@MovieCon_Korea/search?query=%EC%95%84%EB%9D%BC%EB%B9%84%EC%95%84%EC%9D%98%EB%A1%9C%EB%9E%9C%EC%8A%A4 * 스포일러가 우려되시는 분들은 위의 링크를 통해서도 자서전 및 영화판을 보실 수 있으니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T. E. 로런스'로도 알려진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Thomas Edward Lawrence, 1888~1935)는 자서전에 따르면 영국인이지만 아랍에 애정을 느끼고, 여성과 교제 기록은 없는데 이니셜을 이용해 특정 대상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시를 자서전에 넣는 등(이로 인해 학계에선 동성애자로 분석하기도) 복합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자 1916년 '대아랍 봉기'(표기에 따라선 '아랍 전쟁', '아랍 반란')가 승리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공헌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1926년에는 자서전이자 회고록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을 발표하는 등 작가로서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이 자서전은 훗날 각색해 영화화되면서, 공교롭게도 숫자 2와 6만 바뀐 1962년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제목의 영화로 개봉해 당시 대성공을 거둔 한편으로, 자서전이란 형식의 한계 상 다원주의 및 교차검증이 가능해진 이후로는 해당 자서전 및 이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판 역시 미화, 과장, 우월주의, 사실과 다른 왜곡 문제 등이 논의되기도 했습니다.(웹 상에선 왜곡 문제가 발생한 김두한 자서전 및 이를 원작으로 삼은 '야인시대' 역시 실제 역사와 큰 차이가 있던 사례와 비교하는 등 다소 거친 비유도 존재) 이와 관련해선 아래 기사들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열다섯 피를 흔든 결단의 밤은 어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4511 culture film - 우리 마음 속의 영원한 ‘아라비아의 로렌스’ https://economist. co.kr/article/view/ecn201312230018 데이비드 프롬킨, 『현대 중동의 탄생』. http://feliview.com/modern-hist/nation-state/davidfromkin-apeacetoendallpeace/ [백병훈 칼럼] 세기의 명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감춰진 진실 http://www.financial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60 아래 내용은 Yes24에서 인용한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 작품 소개입니다. 20세기 초반 서구 제국주의와 아랍 민족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대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T. E. 로렌스의 자전적 기록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대중에게 알려진 로렌스의 역작 『지혜의 일곱 기둥』은 영어권에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필적하는 대작으로 손꼽히며, 20세기 최고의 전쟁 문학이자 자서전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이 작품은 원서 8백여 쪽에 달하는 분량의 대작으로, 로렌스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함께 실어 로렌스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편집했다. 또한 로렌스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소개를 덧붙여 로렌스의 행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세속적 가치와 물질적 이익만을 좇는 현대 사회에서 사막의 모래폭풍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로렌스의 생애를 담고 있는 이 저작은 진정한 명예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리더들이라면 반드시 읽고 음미해야만 하는 고전이다. 역사와 문학이 만나는 현대의 고전,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자화상“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위험하다.그런 사람은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의 꿈을 향해 행동한다.그렇다. 나는 낮에 꿈을 꾸었다."『지혜의 일곱 기둥』은 1935년에 간행된 Seven Pillars of Wisdom의 국내 최초 완역으로, T. E. 로렌스가 아랍 반란 전쟁에 참여했던 경험을 개인 기록을 토대로 1919년 봄에 집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해 겨울 원고를 분실하고, 자신의 기억과 당시의 노트에 의존하여 1921년부터 다시 쓴 책이다. 이 작품은 1922년 자비 출판으로 8부가 출간되었고, 1926년에 공식적으로 출간되었다. 번역 판본으로 사용한 1935년 판은, 로렌스 자신이 1926년 판을 수정ㆍ보완한 것이다. '지혜의 일곱 기둥'이라는 제목은 로렌스가 구약 성서의 잠언 9장 1절("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을 인용한 것으로, 아랍 지역의 일곱 도시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의 결과를 담은 원고에 붙이려던 표제를 사용한 것이다.『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로렌스가 활동했던 역사적 무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분할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 영국 정부는 터키에 대한 아랍인들의 반란을 이용하여, 적대국이었던 독일의 동맹국인 터키를 격퇴할 수 있으리라는 속셈에서 아랍 반란을 지원한다. 당시 터키에 대항한 아랍 반란을 주도했던 인물은 메카의 후세인 왕이었으나, 이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지도자는 그의 셋째 아들 파이살이었다. 로렌스는 파이살과 함께 부족 간 적대로 흩어진 아랍 부족민들을 민족주의적 정신 속에 하나로 규합하고, 2년 만에 다마스쿠스 해방이라는 업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1918년 파리 평화회의에서 아랍 자치 정부 수립에 대한 논의는 안건에 오르지도 못했고, 이러한 영국 정부의 약속은 결국 거짓으로 드러난다. 로렌스는 이 전쟁이 “아라비아에서 벌어진, 아랍인의 목적을 위해, 아랍인들이 주도하고 수행한 아랍 전쟁”이라는 확신 속에서 역사의 흐름을 주도했으나, 끝내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었다.열강의 치열한 이해관계와 힘없이 분열된 민족들의 고통 사이에서 고민했던 로렌스 역시 자신의 역할의 역사적 한계와 이율배반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로렌스는 이러한 한계 속에서 자신의 행위가 ‘헛된 희망’과 ‘실패’로 귀결될지라도 아랍인들이 최소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자유를 향한 내적 신념 속에서 행했다.1권에서는 로렌스가 카이로에서 출발하여 아라비아 반도의 항구 도시 지다에 도착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후세인 왕의 셋째 아들인 파이살을 만나기까지의 진로와 이후 메디나 근방의 철도를 장악하고 터키군의 물자 수송로를 차단해 나가는 북방 원정의 과정을 담고 있다. 2권에서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아부 타이족이 파이살과 로렌스 진영에 합류하여 주요 항구이자 요새인 아카바로 진격하는 과정과 치열한 전투를 그리고 있다. 3권에서는 이 저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사해 전투로부터 시작하여, 전쟁의 종착지였던 다마스쿠스로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고원지대의 혹독한 날씨와 엄혹한 지형 속에서 행했던 행군을 그려낸 3권의 사해 전투 기록은 이 저작에서 인간 한계의 극단에 대한 예리한 묘사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영어권 문단에서 이 저작에 멜빌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이 지닌 서사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권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대장정은 결국 다마스쿠스에 입성하여 아랍 독립을 완수하고 아랍의 자치 정부 수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끝이 난다. 로렌스는 비정한 살육의 현장에서 터키군 포로를 시켜 전사자들을 매장하고, 이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이살에게 모든 권한을 넘긴 뒤 아라비아를 떠난다.문학적 형상과 철학적 사색에 담아낸 아랍의 격동기 근대사“우리는 원하는 곳 어디에나 자유롭게 스며드는 안개가 되어야 한다.우리의 왕국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로렌스는 아랍 반란과 게릴라 전술을 지휘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혈맥이자 터키군의 물자 수송로인 헤자즈 철도를 파괴하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가로서의 면모는 로렌스의 진면모를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로렌스는 스스로를 ‘군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으며, 오직 내적 이상을 향해 나아갔을 뿐이었다. 그는 모든 권위와 “나는 행동가들이 느끼는 행복을 경멸했다.”고 할 만큼 영웅적인 신화를 거부했다. 헌시에서 로렌스는 “자유에 걸맞는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오직 그 집을 허물고 완성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실패를 부르짖으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싸우는 것“이 진정한 승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오직 ‘완성하지 않음’만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그의 고백은 거듭되는 자기반성 속에서 인간 의지의 극한에 이르고자 하는 초인적 정신을 드러낸다.정신의 힘과 의지에 대한 찬양, 거대한 역사적 흐름 안에서 몸부림쳤던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이 함께 녹아 있는 이 저작은 사색의 기록이자 여행기이자, 픽션을 뛰어넘는 문학적 정신을 지니고 있다. 근대적 교양인의 전형으로서 로렌스는 “평생토록 사람보다는 사물에, 사물보다는 관념에 더 이끌려왔다.”고 고백할 만큼 최고의 지성인이었으나, 동시에 극단적인 허무와 실존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구토』의 로캉탱을 떠올리게 할 만큼 모든 사물과 존재에 부여된 고정된 이름을 거부하고, 순수한 ‘사막’에서 세속의 범주를 모두 벗어버린 채 있는 그대로의 지각을 경험했다. 이 저작은 20세기 초반 서구 최고의 지성이 오해와 몰이해로 점철되어 있던 아랍 지역을, 바타유라면 ‘내적 체험’이라 했을 이러한 극단적 체험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기행문이자 사상서이다. 이러한 점에서 소로우의 『월든』이나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처럼 픽션을 뛰어넘는 감동과 사색의 계기를 선사한다.특히 특유의 예민한 감성과 역사의 소용돌이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고뇌하던 스물아홉의 청년 로렌스의 눈에 비친 아랍 지역은 놀랄 만큼 생생하다. 옥스퍼드 대학 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영박물관 산하 원정대의 일원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탐사했던 고고학자로서 로렌스는 셈족의 종교와 사막의 신앙, 아랍의 식문화 및 주거 풍습, 야만적인 터키군의 실상 등을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관찰기록 속에 그려낸 풍경 및 인물 묘사는 단순한 기술적 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 국가로 정립되기 이전 베두인족을 비롯한 아랍 부족민들의 20세기 초반의 실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지혜의 일곱 기둥』이 문학적 필치로 그려낸 거대한 화폭과도 같은 한 편의 역사서이자, 여행기로 읽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숭고한 자연과 인간의 초월적 의지에 대한 최고의 묘사“사막의 본질은 마치 묘지처럼이 세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길의 아들인 듯 고독하게 혼자서 움직이는 데 있다.”『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어떠한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숭고한 자연에 대한 묘사가 펼쳐진다. 광활한 사막, 혹독한 추위와 숙련된 낙타마저도 무릎을 꿇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던 엄혹한 자연에 대한 사실적인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로렌스는 인간을 압도하는 숭고한 자연의 질서 안에서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무거워진 우리의 세속적 짐을 부끄러워”하면서, “자유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자유의 허울을 벗을 수 있는 힘”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충만감은 “존재의 연쇄적 고리에 대한 망각과 영원한 안식”에 대한 치열한 기도로 이어진다. 특히 2권에서 펼쳐지는 와디 룸의 장엄한 풍경과 이에 대한 로렌스의 묘사는 사막 위의 한낱 모래먼지와 같은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면서 준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로렌스는 자신의 행위가 자유를 향한 거대한 의지에, 광막한 사막에 한낱 점으로 존재함을, 들뢰즈의 표현대로 “자신이 맡은 역할이 국부적이며, 부서지기 쉬운 그물 속에 놓여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일곱 기둥을 세운 집”, 로렌스가 자유를 대신하여 부른 그 집은 오직 완성하지 않음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는 집이었던 것이었다. 로렌스는 자기부정을 통한 초월의지를 내세웠던 낭만주의적 사유 속에서 오직 과정으로서만 도달할 수 있는 드높은 이상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로렌스에게는 극단적인 허무주의와 한 개인으로서의 실존적 고민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로렌스가 ‘아라비아의 무관 왕’이라는 세간의 이름 외에 현대의 서사시적 인물, 20세기의 햄릿이라 불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자신이 처한 모순과 역경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일곱 기둥』이 근본적으로 희비극의 정서를 지니는 이유이다. 이러한 점에서 로렌스를 전쟁의 영웅으로 신화화하는 태도나, 영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였다는 비판적 독서 모두 이 저작의 이중적인 면모를 사장시킨다. 이 자서전은 차라리 자신을 전쟁의 영웅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또 자신의 위선을 훗날 기억하게 될 아랍인들에게 조롱하는 문체로 쓴 거대한 보고서이다. 로렌스는 이러한 기묘한 보고서를 스스로 “전쟁의 규칙을 이용한 패러디”라 불렀다. 또한 로렌스에게 『지혜의 일곱 기둥』은 아랍인들과 스스로를 속였던 자신에 대한 속죄이자, 구원의 기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그려내지 못한 로렌스 자신의 문체를 읽어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인으로서 아랍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로렌스에게는 위선의 가면도, 그 뒤의 진정한 얼굴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아이러니를 구사하기보다는 어떤 수치의 흔적, 쓰고 다시 지우는 여러 겹의 문장을 쓴다. 그의 이 방대한 기록은 용해되고 분열된 여러 자아들 속에서 자신의 단 하나의 얼굴을 찾고자 하는 끝없는 여정이기도 한 것이다.아마도 끝내는 물처럼 모든 것을 극복할 것이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로 그들은 끊임없는 파도가 되어 육체의 해안에 스스로를 부딪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파도는 부서져 버리고 말았지만, 파도가 부딪힌 거대한 화강암은 조금도 닳아버리거나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인가는 걷잡을 수 없는 파도가 물질적인 세상이 자리 잡고 있던 그곳을 완전히 뒤덮어버릴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신은 그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본문 중에서서구 열강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 간의 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 현재에 이 저작은 그러한 갈등의 기원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윤리와 정의(justice)는 다르다. 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른 세속의 정의는 단 하나이지만, 윤리는 여럿이다. 그러한 윤리의 선험적이고도 절대적인 근거란 없다는 것, 정의의 주체는 민족일 수도, 국가일 수도 있으나, 윤리의 주체는 오직 개인일 수밖에 없으며, 그 개인을 정의(define)하기란 참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혜의 일곱 기둥』이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역사와 사회 앞에 개인은 나약할지 모르나, 한 개인의 윤리적 경험은 모든 세대와 해석을 뛰어넘어 스스로 살아남는다. 아래 내용은 교보문고에서 인용한 '스콧 앤더슨'의 저서 '아라비아의 로렌스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작품 소개입니다. 지난 백 년간 중동에 불어닥친 흉폭한 역사!한 줌의 모험가와 새파란 장교들이 판치고 다녔던 사막의 무대로렌스의 어두운 면과 심각한 결점을 세밀하게 재건하는 저자는현대 중동이 난장판이 되어가는 과정을 스펙터클하게 펼쳐낸다네 사내가 펼치는 20세기 최대의 첩보전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드리우기 전,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중동 사막에 네 사내가 등장한다. 한 줌도 안 되는 모험가와 새파란 장교들이 멋대로 쑤시고 다니며 은밀하고도 복잡한 게임을 펼치려 하고 있다. 비밀로 묻어둔 충성심, 일대일로 뒤엉킨 육박전은 각자 자국의 제국주의적 탐욕을 대표하며 비극적인 사막 전쟁으로 이어질 터이고, 이것은 오늘날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현대 중동의 탄생을 야기하게 된다.네 사내는 누구인가. 쿠르트 프뤼퍼는 이집트 카이로 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일하는 문약한 학자. 그는 영국을 향한 복수심의 칼날을 갈며 지하드에 불을 댕기는 비밀 임무를 맡았다. 훗날에는 중동지역에서 활동하는 독일 첩보 조직의 책임자가 된다.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인 서른일곱 살의 아론 아론손은 저명한 농학자이면서 열성적인 시온주의자. 길쭉하고 광대한 팔레스타인 땅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아 유대인 조국을 재건하겠다는 구상을 펼치려 한다. 이를 위해 영국의 힘을 등에 업고자 팔레스타인 한복판에서 첩보 조직을 꾸린다. 윌리엄 예일은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스탠더드오일 사의 하수인이다. 스탠더드오일 사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교활한 미국 기업으로, 세계대전의 비극을 지켜보면서 이 기회에 단단히 한몫 잡으려 한다. 예일을 중동 땅으로 파견한 것은 거대한 유전을 차지하려는 속셈으로, 그는 중동 전역을 통틀어 단 한 명뿐인 미국인 정보요원이다. 이들 세 인물과 함께 로렌스가 등장한다. 그는 중동이라는 원형 경기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영국인 첩보요원으로,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간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상황과 긴밀히 연결된다.네 사람은 자기 임무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아마추어들이지만 영악함과 용감함, 남을 배신하는 재주 따위의 특성으로 전쟁이 키운 열매를 거두어들이려 한다. 즉 유럽 열강이 계획한 각종 정책과 국경선을 전후에 현실로 만드는 장본인이 될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은 수백만 명의 주체가 발을 담근 대사건이었다. 세부 사건들은 당대에는 인과관계가 없는 우연의 연속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우연들이 뒤엉키면서 중대한 국면들을 형성하게 된다.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가장 낭만적인 인물로 일어섰다. 그리고 이 책은 어리석은 현대 중동이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가운데 처칠도 다른 누구도 아닌 로렌스를 중심 무대에 올린다. 국내에서는 로렌스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이 번역된 게 전부이고 이 책은 로렌스 개인을 다룬 책으로서는 처음 출간되는 것이다.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로렌스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양면적 평가 사이에 낀 그는 역동적인 역사를 만들기도 했지만, 다른 세 애송이와 더불어 지난 100년간 중동을 가장 비극적인 역사의 격전지로 만들어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서구 열강의 격전지, 중동의 비극정복, 탐험, 착취의 대상으로서 동양은 수천 년 동안 서양을 끌어당겼다. 중세에는 기독교 십자군이 300년 주기로 근동지역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1790년대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파라오가 되겠다는 환상을 품고 이집트를 침략했다. 1830년대에는 유럽 최고의 고고학자들이, 1870년대에는 서구의 석유 재벌과 투기를 일삼는 채굴자, 사기꾼 등이 카스피 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오스만 제국은 종교, 부족, 인종 면에서 다양한 구성 인자를 하나로 묶어놓은 모자이크였다. 이 제국은 한순간에 무시무시한 그림으로 둔갑할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공동체가 자기 보호를 위해 끼리끼리 뭉칠 경우 조상 대대로 묵혀온 반목과 의심과 질투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1850년대부터 오스만 제국은 서구 경쟁국들이 자신의 변두리를 야금야금 뜯어먹는데도 이들과 돌아가며 동맹을 체결하는 줄타기를 함으로써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오로지 한곳에 눈독을 들였는데, 바로 분열과 혼돈의 땅 오스만 제국이었다.러시아 차르는 콘스탄티노플을 낚으려고 200년 전부터 낚싯바늘을 드리우며 기다렸다. 그리하여 1870년대에 발칸에서 오스만 군대를 궤멸한 바 있다. 프랑스 역시 16세기 이래 오스만 제국 치하 시리아의 가톨릭 신도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특별한 지위를 누려왔다. 만약 제국이 붕괴하면 그 지역은 프랑스 땅이 될 터였다. 영국은 인도로 가는 육로를 제국주의 경쟁자들의 침식 작용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1882년 대영제국은 민족주의 움직임을 구실 삼아 이집트를 잡아채기도 했다. 1915년에 연합국을 구성한 이들 3국은 독실한 기독교국으로서 어쩌면 십자군의 역사를 해피엔딩으로 다시 쓸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한편 독일 역시 군사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오스만 제국과 무슬림의 영토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 5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은 눈치껏 뜯어먹던 행태에서 벗어나 게걸스럽게 달려들었고 오스만 제국은 “거대한 전리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특히 영국은 유럽 열강 가운데 해양 의존성이 가장 큰 국가로, 1870년대 이집트 수에즈 운하 건설을 배후에서 주도했으며, 운하를 독차지할 수만 있다면 오스만 제국과 지켜온 우호관계 따위는 내동댕이칠 준비가 돼 있었다. 마침내 영국은 속마음을 드러냈는데, 1882년 이집트를 침공한 것이다. 그 결과 수에즈 운하 서쪽 이집트 땅 전체가 영국 손안에 들어왔고, 오스만 군대는 운하 건너편 시나이 반도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작에 불과했다. 영국은 1906년 사소한 외교적 분쟁을 핑계로 시나이 반도까지 차지했다. 그리하여 이제 이집트와 시리아 서남부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리하는 넉넉한 완충지대까지 얻게 되었다. 즉 영국은 오스만의 가슴에 영원토록 변치 않을 적개심을 심게 된 것이다.더욱이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영국은 후세인-맥마흔 서한으로 아랍인들에게 거짓 독립을 약속했고,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뒤통수를 쳤다. 그리고 밸푸어 선언으로 시온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내주었다. 중동에 피바람을 일으키고 마침내 아랍인들과 로렌스를 좌절시킨 영국의 3중(속임수) 외교의 핵심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이었다.20세기 초까지 간신히 멸망을 피해왔던 오스만 제국은 1914년 막판으로 치닫던 끔찍한 전쟁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제 목숨을 재촉했다.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분열의 물꼬를 트고 말았다.로렌스 그리고 아랍의 좌절T. E. 로렌스(1888~1935)는 대단히 매혹적인 인생을 바람처럼 살다 간, 20세기 초 서구 역사의 스타다. 역사적 탐구 대상이든 대중적 호기심거리이든 로렌스만큼 인기를 누리는 이도 드문데, 한편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들의 위대한 수호자인가, 아니면 반유대주의 선동가인가? 아랍 독립에 힘쓴 깨우친 진보주의자인가, 아니면 가면을 쓴 제국주의자인가? 희대의 영웅, 사유하는 투쟁가, 제국주의의 하수인, 자기파멸적 몽상가와 같은 수식어로 역사는 그를 칭송과 조롱 사이에 놓고, 먹칠과 금칠을 번갈아 덧댄다.저자는 당시 서구 열강의 탐욕적 경쟁과 그에 따른 외교 및 첩보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로렌스의 정체를 살핀다. 옥스퍼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고고학자인 20대 초반의 로렌스는 중동 사막에 대한 열정과 지식을 지닌 터라 영국이 새로운 영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며 제국주의자로서의 기질을 발휘한 때에 영국 정보요원이 된다. 여느 서구인과 달리 로렌스는 중동에 정통했고, 오스만 제국의 시골 마을에서 제국이 무너지는 과정을 낱낱이 목격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첩보전 한가운데 섬으로써 고고학자로서의 경력에 종지부를 찍으며 1914년 9월 육군에 들어갔다.당시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파멸로 이끌고자 아랍 민족운동을 이용했다. 이런 움직임의 중심에 로렌스가 섰는데, 그는 1916년 6월 파이살 이븐 후세인을 내세워 아랍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1917년 7월 6일에는 홍해 끝부분 쪽 아카바를 장악했고, 1918년 10월에는 다마스쿠스(현재 시리아이 수도)를 점령했다. 이런 면모로 인해 그는 아랍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그러나 로렌스는 원래 군인 출신도 아니었을뿐더러 성격, 태도, 말투, 복장 등 모든 면에서 조직과는 어긋나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차디찬 눈빛을 지닌 그는 군 조직에서 자기와 다른 의견이 제시되면 나이와 계급에 관계없이 정면으로 맞서 하극상을 저지르고도 남았다. 또한 그는 영국과 아랍 세력 사이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즉 그는 영국의 정보요원이었지만, 어느 순간 모국의 군 조직을 흔들 만큼 치명적인 전략이나 정보를 내놓는가 하면, 아랍 반란을 이끄는 가운데 아랍인의 입장에 서서 사고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는 아라비아에서 활약하는 주요 인사들, 그들이 견지하는 주장의 요점, 그들의 경쟁자까지 꿰뚫고 있었던 반면, 그가 관찰한 바의 상당 부분은 특별한 내용이 거의 없고 권위 있는 분석이라기엔 겉핥기식에 지나지 않기도 했다. 그는 자기편에게 전보를 서둘러 보낼 때는 외교 의례를 밥 먹듯이 어겼고, 원치 않는 명령을 받으면 못 받은 것처럼 꾸며 사안을 무효화시켰다. 어쨌든 28세의 대위에 불과한 로렌스는 영국 정부 관료의 척후병 역할을 수행하면서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던 정부 관료의 세도를 꺾고, 영국의 아라비아 정책에 근본적인 물꼬를 텄다.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대단원을 향해 치달으면서 로렌스가 투쟁하고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아랍을 지키려는 소망은 영국과 프랑스 총리의 대담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영국은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가지려 했고, 프랑스는 시리아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려 했다. 종전 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호언장담했지만 종국엔 뒷거래, 앙갚음을 위한 협정, 독단적으로 그어버린 국경선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즉 파리평화회의에서 서구 열강들은 저마다 음모를 품고 오스만 제국이라는 짐승의 사체를 나누어 갖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이후에도 로렌스는 아랍의 희망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접지 않았다. 파리회의 내내 아랍 반란의 지도자 파이살의 조언자로 활동하면서 아랍인들이 사활을 걸고 싸운 그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협상 전략을 짰다. 영국 유력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펼치는가 하면, 아랍을 옹호하는 열정적인 칼럼을 수차례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렌스는 영국 정부가 보기에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다. 정부 관료들은 그를 가리켜 ‘악영향’ ‘시리아 문제로 프랑스와 갈등을 빚는 데 대한 책임’ 등을 들이밀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결국 로렌스는 아랍을 지켜내려는 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함과 동시에 평화를 상실하고 말았다.마크 사이크스, 20세기에 가장 큰 비극을 드리운 인물이 책에서 네 명의 주인공 외에도 모든 등장인물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워넣을 만큼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그중에서도 현대에 가장 큰 비극을 몰고 온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영국의 마크 사이크스 경이 될 것이다. 역사상 그처럼 부주의하게 수많은 비극을 야기한 인물은 없다.제1차 세계대전으로 정치인들이 득세하고 각국이 제 이익을 더 챙기려 하면서 속임수와 비잔틴식 술책이 판치는 곳에서 그는 술수의 대명사가 된다. 사이크스란 인물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고 증명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서, 또는 재미 삼아 상대방을 속이고 싶어하는 사기꾼의 전형적인 습성을 지녔다. 그런 까닭에 이 젊은 아마추어는 자신의 필요에 맞춰 사실을 곡해하거나 중요한 정보를 숨기거나 조작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했다.그런데 영국 정부는 이 젊은이에게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골치 아프면서 가장 중요한 숙제를 떠넘겼다. 그것은 바로 대영제국과 중동 우방들의 상충하는 영토적 요구를 정리하는 업무였다. 로렌스는 훗날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사이크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세상만사를 제멋대로 지껄이는데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편견, 지레짐작, 유사과학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했다. 진실의 일면에 도취한 나머지, 그것이 속한 상황에서 분리해낸 다음, 의미를 부풀리면서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빚어내는 식이었다.”그가 이뤄낸, 역사상 가장 이상하고도 파괴적이었던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1916년 1월 초, 회담이 열리고 처음 며칠 동안 영국과 프랑스의 중진급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수아 조르주피코는 미래 중동의 지도를 날림으로 끼워서 맞추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가 제국주의적 탐욕을 부린 탓에 영국 또한 경쟁의식이 불타올랐다. 그 결과, 프랑스가 시리아 전역을 직접 관리하게 되고 영국은 이라크를 모두 차지하는 반면, 진정한 아랍의 독립국은 아라비아 사막의 격오지로 대부분 밀려나고 말았다.어불성설로 들릴지 모르나, 미래 중동의 지도를 거의 완성한 1916년 1월 초, 이 중차대한 시점에 후세인-맥마흔 서한과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내용을 속속들이 꿰뚫고 아랍과 프랑스와 영국이 그 지역에서 이루려는 목표가 결국엔 충돌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사람, 마크 사이크스뿐이었다.중동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책1960년대까지 유럽 제국주의 시대가 황폐한 뒷모습을 남긴 채 막을 내리자, 중동에는 식민주의 열강이 지구 반대편에 저질러놓고 떠나버린 난장판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중대한 차이점이 있었다. 석유였다. 중동이 여타 제국주의 피해 지역과 달리 여태껏 지구상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으로 남아 있는 것은 석유 때문이다. 그런 탓에 서구 역시 스스로 야기한 중동의 혼란으로부터 아무리 발을 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지난 50년 동안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랍과 이스라엘이 네 차례나 전쟁을 벌였고, 레바논과 예멘은 각각 10년과 21년에 걸친 내전을 치렀다. 시리아와 이라크는 소수 인종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고,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가 40년 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극단주의 종교가 격동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네 차례 대규모 군사작전을 비롯해 수시로 개입에 나섰다. 아랍 민중의 절대다수는 최근까지도 튀니지부터 이라크에 걸친 광대한 땅에 포진한 수많은 독재 정권의 통치에 억눌려 시민권을 빼앗긴 채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이 모든 고통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에 내린 끔찍한 결정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 대단히 치명적인 씨앗을 심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전 세계 분쟁지역을 누벼온 언론인 스콧 앤더슨은 로렌스의 행적을 더 깊이 파고드는 작업이 더없이 절실한 시대라고 판단했다. 로렌스가 열정을 바친 대상이 바로 중동의 국경선 문제였기 때문이다.저자는 몇 년간 사료를 모으는 일에 집중한 뒤 이 책을 썼다. 그 결과 현대 중동의 형성 과정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유럽의 제국주의 책략이 초래한 파괴와 고통에 대해 단호하게 지적하고 날카롭게 묘사하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철저한 고증과 방대한 사료, 최근 기밀 해제된 자료까지 동원해서 큰 그림부터 세밀화까지 치밀하고도 힘 있게 펼쳐낸다.저자만의 독특한 관점도 몇 가지 확인할 수 있는데, 예컨대 로렌스가 경쟁국 프랑스에 맞서서 어느 정도는 조국의 이득을 고려했다는 식의 애국주의적 설명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 등이 그렇다.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통설에 이견을 제시하는 내용 중에는 로렌스가 터키군에 붙잡혀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데라 사건도 포함된다. 저자는 무엇보다 태생부터 유년기, 꿈 많은 옥스퍼드 재학 시절을 거쳐 전쟁 이후 피폐한 심리 상태와 불행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로렌스 개인의 인생 전반을 충실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아울러 첩보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판 Lawrence of Arabia (1962) 위에서 언급했듯 1926년 자서전을 원작으로 삼아 영화화한 작품이며 극장 개봉 당시 기준으로 이미 1950년대에 엇비슷한 제작비의 작품이 제작됐거나, 혹은 이 작품보다 더 제작비가 높은 작품도 볼 수 있는 정도의 제작비인 1500만 달러로 제작해 영국 및 미국 개봉 당시 평론적으로 극찬을 받아 아카데미 수상작이 됐고, 극장 매출만으로 제작비의 4배가 넘는 7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초대박 흥행 성공을 기록하고, 부가 매출 시장에서도 큰 수익을 올렸으며,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무비콘에서 한국어 자막과 함께 무료 공개 중입니다.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한 영화판 작품 소개이며, 당시 이 작품 관련 소개를 한 잡지 '영화 TV'도 PDF로 공개 중이니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영국 정보국 소속 장교 로렌스(피터 오툴)는 1차 대전 중 중동지역의 전투에서 아랍 부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아랍 지역으로 파견된다. 그런데 그는 영국 정부가 바라던 것 이상으로 아랍의 지도자들을 사로잡고, 아랍의 독립을 위해 열심히 싸워 아랍 민족으로부터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적인 칭호를 받게 된다. 그는 아랍 전사들을 이끌고 터키 군과 싸우면서 규율을 잡기 위해 남의 마을의 우물물을 마신 병사를 과감히 처형하는 등 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그런 용맹성은 터키 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그곳에서 받은 성적 학대를 통해 병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로렌스는 영국 정부의 소환을 받고 런던으로 돌아오지만, 종동으로 보내줄 것으로 요구하면서 사막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으로 타결이 된 아라비아 사막은 이제 그를 원치 않는다.* 70mm 대형영화의 대표작인 <아라비아의 로렌스> 역시 1970년 1월 1일 대한극장 신정 프로그램으로 개봉하여 한 달간 상영되었다. " (출처 : 시네마테크KOFA상영정보(2017))아라비아에 정통한 로렌스 중위는 아라비아의 상황파악을 위해 파견된다. 파이잘 왕자와 알리 족장을 만난 로렌스는 파이잘 왕자에게 수에즈 운하의 주요 통로인 아카바로 출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파이잘 왕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50명의 부하들과 알리를 내준다. 신이 내린 죄악의 땅인 네퓨드 사막을 간신히 통과한 로렌스 일행은 호웨이랏족의 족장 아우다 이부타이를 만나 서로 힘을 합치게 되고, 수가 불어난 일행은 아카바의 터키군을 무찌르는 데 성공한다. 이후 계속된 전쟁에서 연승을 올린 로렌스는 아랍부족민에게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스스로도 자신은 예언자이며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F/01083 '로런스: 애프터 아라비아' Lawrence: After Arabia (2021) 아랍 시절 장면도 잠시 나오긴 하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 이후 시기가 메인인 내용의 저예산 영화 작품으로, 단순 사고였는지 혹은 첩보부에서 입막음 차원에서 제거한건지 의문이 제기됐었던 로런스의 사망 사건을 포함한 'T.E. 로런스'의 인생 말기를 다뤘으며,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무비 센트럴'에서 무료 공개 중이고 Plex에선 다중 언어 자막 기능도 지원하는 형태로 공개 중이니 아래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watch.plex.tv/watch/movie/lawrence-after-arabia
콩라인박작성일
2025-01-14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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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연예] [SC가요전망②] '82메이저→트리플에스' 중소 신인돌의 역습…'푸른 뱀의 해' 똬리 제대로 풀었다
[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이른바 '중소돌의 역습'이다. 2025년 '푸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 'K팝 중소 신예'들이 본격 똬리를 푼다.타고난 수저 색깔 나누기 좋아하는 요즘 세상, 개천에서 용은 커녕 미꾸라지도 날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방탄소년단, 비스트, 인피니트, 걸스데이, 여자친구, EXID, 마마무, 에이티즈, 최근 스테이씨와 키스오브라이프까지. 중소 기획사에서 성공한 케이스도 여럿 있었다. '푸른 뱀의 해' 글로벌 시장을 감고 돌면서, 차트 위로 구불구불 올라갈 '중소 신인돌'은 누구일지, 스포츠조선이 신년운세보다 더 알찬 점괘를 내어 본다.신생 기획사인 그레이트엠엔터테인먼트 소속 82메이저(82MAJOR)는 내수와 외수를 꽉 잡아, 놀라움을 샀다. 지난해 미니 2집 'X-82'로 데뷔 1년 만에 빌보드 차트에 입성하더니, 오는 18일부터 서울에서 개최하는 단독 콘서트도 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석을 매진시켰다. 급기야 추가 공연까지 진행, 82메이저를 향한 뜨거운 관심이 가늠되는 대목이다.또 다른 신생 기획사 모드하우스의 소속 그룹 트리플에스(tripleS)도 최근 일본 도쿄, 오사카에서 팬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무리하고, 중국 최고 페스티벌 '2024 광저우 스트로베리 뮤직 페스티벌'에 등장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오는 2월부터는 북미로 발걸음, 새 투어에 돌입할 예정이다. 지난해 5월 완전체 데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성장세가 꽤 가파른 셈이다.'원조 중소돌 기적'으로 불린 에이티즈의 동생 싸이커스(xikers)도 형아 따라 '중소돌의 반란'을 꿈꾼다. 지난해 이미 일본, 미주, 유럽, 호주 등 세계 주요 지역에서 월드투어를 성공적으로 전개한 데 이어, 올해는 태국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마카오, 인도네시아까지 4개국에서 현지 팬들을 만난다. 데뷔 6개월 만에 월드투어를 돌며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빅플래닛메이드엔터가 처음 선보인 신인 걸그룹 배드빌런(BADVILLAIN)의 기세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6월 데뷔곡 '배드빌런'은 공개 17시간 만에 뮤직비디오 1000만 뷰를 돌파, 당시 기준으로 작년 데뷔한 신인 걸그룹 중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다. '악동'이라는 콘셉트처럼,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 이어 11월 발표한 '숨'도 좋은 반응을 얻은 바, '힙합 여전사' 배드빌런이 참전하는 올해의 'K팝 전투'는 단연 글로벌 팬들의 관심사다.지난해 3월 데뷔한 리센느(RESCENE)를 향한 글로벌 관심도도 높다. 리센느의 미니 1집 '씬드롬'은 빌보드로부터 '2024년 베스트 K팝 앨범'에 선정됐고, 타이틀곡 '러브어택'은 영국 음악 매거진 NME, 데이즈드 등으로부터 호평을 얻는가 하면, 최근 미국 그래미닷컴에서도 '2024년을 뜨겁게 달군 K팝 10곡' 중 한 곡으로 꼽았다.SBS 오디션 프로그램 '유니버스 티켓'으로 데뷔한 유니스(UNIS)는 지난해 마지막날 일본 '모모이로 가합전'에 출연, 일본 인기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아직 일본 정식 데뷔를 하지 않은 유니스가 지난해 데뷔한 신인 걸그룹 중에서 최초로 '모모이로 가합전'에 초청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이처럼 K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중소형 기획사에서 내놓은 신인의 결실은 확실히 더 달콤하게 음미된다. 최근 가요계가 '자본력과 네임 밸류'에 따라 성패가 판가름 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점점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K팝 쩐의 전쟁' 속 중소 기획사 가수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아울러 올해만 해도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쏘스뮤직,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등 몸집 큰 기획사들이 줄줄이 신인을 선보인다. 일각에서는 결과가 정해진 '머니게임'이라며, 벌써부터 이들의 성적을 점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괄목할 성과로 '중소의 기적'을 다시 일궈낼 신인은 누구일지, 개천에서 훨훨 날아오를 '푸른 뱀'은 누구일지 올해 가요계를 흥미롭게 지켜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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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엽기영상] 싱글벙글 2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의 활약상
프랑스(연합국) 이전에는 쉬쉬해줬지만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하자 선전포고를 하는 모습 는 6주만에 개따먹히고 항복 당사국인 독일, 미국,소련 같은 연합국들마저 영국과 함께 세계 주요 열강이였던 프랑스의 허무한 멸망에 어이가 털려버림 결국 영국으로 망명 정부를 세우며 레지스탕스를 설립, 비밀 결사를 중심으로 독일한테 끈질기게 저항함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버스타고 독일에게서 해방됐음 대영제국(연합국) 유럽을 사실상 지배하는 데 성공한 독일이 마지막 남은 영국이 유럽 동맹국들이 전부 함락됐음에도 항복하지 않자 바다사자 작전을 실시한 히틀러 영국 본토를 향해 침공을 대대적으로 일으켰으나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해도 대영제국은 대영제국으로 독일의 상륙을 계속해서 막아내고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어버림 영국 본토 항공전 히틀러가 영국 침공을 접게한 사건으로, 영국 본토에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영국이 버텨내면서 독일이 철수하게 됨 이렇게 홀로 외롭게 유럽에서 독일의 침공을 막아낸 영국은 미국이 참전하기 전 연합국을 멱살 캐리하며 마지막 전성기를 독일과의 전쟁으로 소모시킴 중화민국(연합국) 중일전쟁 만주사변으로 만주국을 괴뢰국가로 세운 일본제국의 군부가 폭주하여 중원까지 침략해온 전쟁 사실상 주변국가들이 전부 식민지인 상태에서 연합국 아시아의 영국 포지션으로 일본과 대항하여 싸움 이때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도망만 다녔고, 중화민국의 장제스는 일본과 계속해서 대항하여 압도적인 물량과 미국의 지원으로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어서 연합국의 승기를 가져오지만 전력이 파탄나버렸기에 이후 국공내전에서 패배를 하게 된 원인이 되어버림 소련(연합국) 독소전쟁 영국 침공에 실패한 히틀러가 결국 결단을 내려 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한 사건 독일의 압도적인 전격전에 물량만 많은 소련은 쭉 밀리지만 소련의 지형적 이점과 아직 항복하지 않은 영국과 연합국들과의 양면전선에 의해 이도저도 못하고 히틀러의 ㅂㅅ같은 에고때문에 결국 독일이 패퇴하면서 그대로 쭉 항복까지 이어짐 만주 전략 공세 작전 유일하게 남은 추축국인 일본제국이 원폭 2방 맞고 완전히 패망하기 직전에 만주국을 무너뜨리고 일본열도까지 진출하려는 소련군을 보고 결국 무조건 항복을 결정하게 되며 2차 세계대전의 완전한 종식을 결정하는 사건이 됨 미국(연합국)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의해 선전포고를 날린 미국과 일본 관동군 사이에 열린 태평양 전쟁 유럽에서 독소전쟁이 한창이였다면, 아시아에서는 태평양전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장기전이고 스케일도 방대했음 사실 질적으로도 물량적으로도 미국이 우세했지만 일본의 말도안되는 변수로 가득한 전술때문에 3년 동안이나 질질 끌리며 미국도 엄청난 애를 썼던 전쟁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세계 최초이자 마지막이라는 핵 사용이 허가되었던 사건 패색이 압도적으로 짙었던 일본이였지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군부에 더 이상 질려버린 미국이 결국 금단의 무기를 투하하기로 결정함 이 원폭 2방의 투하로 인해 그 천하의 일본 군부마저 무조건 항복을 결정할 정도의 위력을 선보임 이탈리아(추축국) 나치독일, 그리고 연합국 사이에서 누구 편에 붙을지 선택권이 있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로마제국을 재현하겠다는 목적으로 독일에 붙고 추축국이 됨 이후 영국, 프랑스에게 동시에 선전포고를 날리고 이후에도 지중해를 비롯한 아프리카까지, 진짜 꼴리는데로 선전포고를 남발해버린 이후에 독일에게 유린당하여 항복 직전인 프랑스 남부로 침공함 그런데… 프랑스의 산악사단에 막힌 열강 이탈리아의 군대 심지어 그것도 독일에게 전부 갈려버려 잔당중에 잔당뿐이였음 만약 북프랑스의 독일군이 프랑스의 항복를 받아내지 못했다면 오히려 이탈리아가 프랑스군에게 본토를 침공당했을 판이였음 몰타 항공전 이탈리아의 선전포고 남발로 추축국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점령하지 못했음 이로 인해 아프리카 군단은 보급 문제가 생기고 이후 연합국에 의해 괴멸됨 또한 몰타섬에서도 최악의 졸전을 펼치며 참패 그리스 침공 이탈리아의 선전포고 남발로 독일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되는데 이탈리아는 21개 사단을 동원해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그리스군 13개 사단 반격에 알바니아까지 후퇴해 역관광 직전에 몰림 그리스는 사실상 친 독일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연합국 측에 가담했음 결국 독일은 이탈리아 똥 치우느라 공수부대를 투입해 대신 전선에 뛰어들게 되고 괜히 적만 늘리고 개못싸운다음에 동맹국에게 민폐만 존나 끼쳐버리면서 추축국 패망에 사실상 1등공신이 되어버림 이집트 침공 그리스에게 개같이 두들겨맞은 이탈리아는 화풀이 겸 이집트에게로 화살을 돌림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이였던 이집트 왕국을 침공한 이탈리아군 7개 사단은 영국군 2개 사단의 반격을 받고 패주 13만명이 포로가 되고 이탈리아령인 나라까지 잃는다 오죽하면 영국군은 이탈리아군이 항복을 너무 많이 해서 제발 그만 항복해주라고 했을 정도로 싸움에서 지자마자 바로 꼬랑지 내리고 투항해버림 이에 독일은 다시 이탈리아 똥 치우느라 소련 침공을 위한 바르바로사 작전을 미루게 되고 손해만 보게 됨 25만명 이탈리아군 병력은 영국군 3만 5천과 전투, 튀니지에서 항복해버림 독일과 합세해 동부전선에 합세한 이탈리아 는 소련군의 공격을 받자 바로 모든 병기를 포기하고 패주했음 이쯤되면 연합국에서 보낸 첩자가 아닐 정도… 결국 더 이상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하고 항복하는 이탈리아 추축국 3인방 중에 유일하게 웃으면서 항복한 나라 사실상 항복이고 바로 연합국으로 갈아타버림 독일은 결국 눈물 콧물 쏙 빼고 이탈리아 도와줬지만 연합국에게 프리패스 오픈 해버렸으니 히틀러 개같이 오열 일본제국(추축국) 만주사변 조선 합병까지는 오히려 일본을 편들며 청나라와 러시아를 압박했던 영국과 미국이였지만 일본 본토의 명령마저 재끼고 군부의 독단적 판단으로 만주를 집어삼켜버리며 이후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였던 서양 열강들마저 적으로 돌리고 군부가 나라 전체를 집어삼키면서 2차 대전을 위한 준비를 끝마침 무서운 속도로 중국 본토까지 밀고 들어가는 일본 관동군 중화민국 영토의 절반 가량을 점령하며 대륙을 철저하게 짓밟고 능욕하게 됨 남방작전 미국이 계속해서 재재를 하자 눈깔이 돌아버린 군부는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가 깔려있는 동남아를 먹어버리자는 작전을 개시, 여기서 미국과 영국 최고 함대들을 격퇴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결국 동남아 식민지들을 전부 빼앗고 대동아연방 실현을 코 앞에 두지만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된 일본은 대표적인 작전으로 알려진 카미카제(전투기를 그대로 적 함대에 꼬라박는 자살 특공대)같이 미군도 ptsd가 올 법한 기상천외한 작전들을 펼치며 3년 간 초강대국 이라는 미국과 전쟁을 펼침 본래 목적은 진주만 공습으로 동양에서 미국의 영향력만 없애고 협상으로 끝낼 작정이였지만 처음으로 외부 세력에게 기습으로 선전포고 없이 타격을 입은 미국의 성질을 건드리게 됨 도쿄 대공습 + 원폭 2방 + 소련 및 연합국의 열도 상륙이라는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일본은 결국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이로써 전쟁을 종결나게 됨 나치 독일(추축국) 오스트리아 합병 히틀러가 태어난 나라인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며 폴란드 침공의 초석을 다진 사건 무혈입성으로 나라를 합병한 유명한 사례 폴란드 침공 자신들과 비슷하게 국제사회로부터 외면을 받던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동시에 폴란드를 나눠 따먹은 사건 이로 인해 2차 대전이 발발하게 됨 프랑스 침공 유럽 열강 프랑스를 순식간에 집어삼키며 큰 충격을 준 사건 이후 전격전을 통해 영국을 제외한 전 유럽을 밀어버리는 업적을 세우고 히틀러의 야망은 성공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 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기습 침공한 독일군 초기에는 압도적인 전격전으로 소련마저 압도한다 하지만 소련의 홈그라운드 지형을 이용한 전술, 추위에 인해 큰 패착을 겪게 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친 연합국까지 더해지며 결국에 양면전선을 무리하게 펼치다가 독일 본토까지 밀리게 되어버림 결국 베를린까지 다다른 연합국에 큰 충격을 받고 히틀러는 권총 자살을 했으며 독일은 공식적으로 항복을 하며 일본제국을 제외하고 온 추축국이 연합국에게 굴복당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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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엽기영상] [방문기] 중국 베이징 피코 본사 초청 탐방기
방문기 - 중국 베이징 피코 본사 초청 탐방기Pico Beijing Headquarters Invitation Tour원본 게시글 :https://blog.naver.com/vr_insight/223672469905 많은 평가에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으며, 잘못된 정보의 경우 댓글을 통해 남겨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피코로부터 항공권 및 숙박 비용을 지원받은 방문기이며 모든 내용은 가이드라인 없이 개인 의견으로만 작성됩니다.* 본 탐방기는 정치적 / 사상적으로 무관하며, 글로벌 XR 유저 간 건전한 교류에 대해서만 다룹니다. https://blog.naver.com/vr_insight/223672469905 목차1. 들어가기2. 준비 ~ 첫 번째 날3. 두 번째 날4. 세 번째 날 ~ 귀국5. 마무리1. 들어가기안녕하세요 쭘쭘입니다.2024년 10월 초.피코의 공식 공지를 통해서, “2024 인텔 X 피코 스포츠 대회” (이하 피코 컵)이 개최된다는 소식이 들러왔습니다.작년, 재작년에도 피코에서 VR 스포츠 대회를 진행했었지만,수상 상품은, 현금에 불과하여,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참가하지 않았었지만,이번 2024년 대회의 경우, 대회 상품 특약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베이징의 버드 네스트에서 열리는 VR 스포츠 결승 대회 혹은 PICO 본사 방문할 수 있는 여행 팩이 추가로 수여됩니다."베이징 VR 대회 본선 참관 자격과, 피코 중국 본사의 방문 기회.VR을 사랑하는 하나의 유저 입장에서, 수십, 수백만 원의 현금 경품보다, 훨씬 값질 수도 있는 이 경품 덕분에,"이번에 한번 죽을 각오로 해보자!"라는 다짐을 하고, 만반의 대회 준비를 해 보았습니다.제가 선택한 종목은, “Tempo Club”이라는 비트 세이버에 DDR을 결합한 느낌의 리듬게임.이미 피코 트래커 사용자로서, 여러 번 플레이해본 경험도 있던 바,콘텐츠 자체의 재미 또한, 전혀 기대하지 않고 플레이했던 것과 다르게, 상당히 뛰어나대회가 아니었더라도, 종종 즐기던 게임인 만큼, 상당히 진지하게 대회를 준비하였습니다.10월 17일부터 11월 3일. 약 3주 정도 되는 기간 동안평일에는 일하는 시간 제외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주말에는, 내내 템포 클럽을 플레이하며, 누구보다도 점수를 쌓았는데,콘텐츠의 특성상, 일종의 춤을 춰야 하는 게임이기에, 동선 / 점프 / 동작이 모두 필요하여,부가 효과로 3주간 약 5kg의 체중 감량도 달성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템포 클럽 한국 유저 순위표 (약간의 오차는 있음)대회의 마감 시간인, 11월 3일 오후 7시.결국! 약 23만 점의 점수를 습득해, 국내 1위 / 글로벌 2위의 등수의 달성에 성공하였습니다.하루 내내 미친 듯이 무언가의 목표를 위해 몰두해 봤다는 게, 정말 오래간만이었고,나름의 성취감과 만족감 또한 매우 행복한 마무리였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얻게 된, “피코 컵의 베이징 대회 참관. 그리고 피코 본사의 방문 기회”오늘의 방문기는, 이 여정을 함께 따라가보는 시간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여정의 출국은 2024년 11월 15일, 입국은 11월 18일입니다. 상황에 따라, 사용되는 일부 이미지 소스는, 피코 담당자의 승인을 받아, 피코 공식 촬영본을 사용합니다.2. 준비 ~ 첫 번째 날(~ 2024.11.15)피코 컵 온라인 대전 마감 후 이틀 뒤인, 11월 5일.피코 코리아 마케팅 담당자님께서, 이메일을 통해, 당첨의 축하와 함께 중국 방문 과정을 설명하는 안내문을 공유 받았습니다.이번 방문에 있어, 한국인은 저와 피코 코리아 담당자님. 단둘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방문 기한(피코 컵 개최 기간)은, 2024년 11월 16일부터 17일.꽤 빠듯한 일정이었을 수도 있지만, 마침 11월 8일부터 중국의 비자 자유화가 선언되며큰 행정적 부담이 사라졌다는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됩니다.최근이 본업이 조금 바쁜 시즌이었기에, 정말 정신없는 준비 기간을 거치며,여권은 출국 3일 전에, 캐리어 (짐)은 출국 당일 새벽에 준비할 정도로, 촉박한 준비 기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항공기 안에서의 VR Insight인천 (인천 국제공항) - 베이징 (북경 수도 국제공항) 소요시간은 대략 2시간 30분 정도.동북아 국가들은 다들 인접하게 붙어있다 보니, 비행거리 자체는 큰 부담 없이 가까웠습니다.개인적으로, 중국어라곤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영어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인드로 왔었는데,영어 구사자 비율이 매우 낮은 국가였던 만큼, 입국부터 여정 전체적으로 손짓과 발짓을 많이 썼었습니다. 베이징 T 호텔중국 도착 후에는, 택시로 약 40분 거리.피코의 지원으로 중국의 실리콘밸리인, “중관춘” 인근의 5성급 호텔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대충 들은 바로는, 해당 호텔의 위치가, 피코의 모회사인 바이트 댄스 (및 자회사)와 인접해 있어,바이트 댄스 (및 자회사) 방문객 및 지사 직원들이 자주 머무르는 숙소라고 합니다.피코 행사 참여 대신 투어를 선택한 타국 대표 유저나, 국내외 피코 담당자.심지어는 피코 컵 중국 선수들 또한 같은 호텔에서 머물러 있었다고, 나중에 출국 날 알았습니다…호텔 시설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만족스러워, 머무는 내내 편하게 잘 머물렀습니다.3. 두 번째 날(2024.11.16)중국 방문 이틀째이자, 피코 컵 행사의 첫째 날인, 11월 16일이 밝았고,피코 중국 직원들도 다들 감탄할 정도로 매우 맑고 쾌청한 날씨였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베이징 국가체육장 / Bird's Nest Stadium)"피코 컵" 또한 스포츠 대회에 속하기에, 그 상징성을 더하기 위해서인지,오프라인 결승전의 위치는, 앞서 2008 / 2022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물론, 아무리 VR 관련 대규모 행사더라도, 최대 9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전부 사용하기엔 무리인 만큼,스타디움 중앙이 아닌, 내부 편의 시설에 이벤트 부스를 가설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올림픽 경기장 중 일부를 사용하지만, 일반 관광객의 출입이 금지되고, 타 행사가 진행되었지 않았던 만큼피코 측에서 이틀간 경기장 전체를 대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전 연습 및 리허설 중인 선수들행사 시작은 10시 30분부터 시작하기에, 이보다 일찍, 안내와 통역을 도와주실 피코 한국 담당자님과 만나 10시에 입장했지만,내부에서는 이미 방송 준비와 참가 선수들이 연습 겸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해당 경기는 중국 스트리밍 플랫폼인 빌리 빌리, 위챗 라이브, 틱톡 라이브에서 공식적으로 방송되었다고 하며,말레이시아 대표가 나중에 말해주길, 약 3만 명 정도의 시청자가 있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참가자 중 일부는, 개인 스트리머 분들도 오셔서, 방송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행사장 곳곳에는 자유롭게 피코 4U를 배치해 놓아, 일반 참관객들도 플레이하게 해 두었으며,대부분 조만간 경기를 앞둔 선수들이 리허설 겸 몸풀기로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코 포토부스 피코 시상대 겸 포토부스 수상을 위해 보관 중인 우승컵들.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부스도 여럿 마련되어 있었습니다.시상대를 겸하는, 흰색 포토부스에서는, “Proto”사의 홀로 부스가 설치되어 있으며,사진을 찍으면, 카툰 스타일로 보정되어 실시간으로 출력하여 제공하는 부스입니다.QR로도 제공되기에, 보관해 가서, 집에서 출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수상 인원의 경우, 모두 여기서 사진 하나씩 찍고, 포즈도 취하는 곳인데,시상 시간이 아닐 경우, 누구나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케이터링 겸 상담부스약간의 다과, 샌드위치, 음료 등을 제공하는 케이터링도 제공되었으며,그 옆으로 소규모 상담 부스가 존재하였습니다.피코 엔터프라이즈 관련 B2B 상담이 이뤄지는 곳이 아닌가 싶었으며,주변에 항상 직원들이 상주하는 분위기이긴 했습니다.11월 치곤 상당히 따뜻한 편이라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11월의 야외 행사는, 오래 있을 경우 추웠던 만큼,담요와 핫팩을 개개인별로 제공받았고, 여기서 커피랑 차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대기하는 중 촬영된 사진. MC 및 중계 아나운서진행의 경우, 총 3분의 진행자가 맡게 되었습니다.해당 분들은, 중국 스포츠 중계, 해설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중국어로 뭐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발성이나 분위기 리딩은 잘 해 주시는.확실히 프로틱한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이셨습니다. 올인원 스포츠 : 농구 본선 플레이 경기 대진표와 우승자 시상식첫 종목으로는 “올인원 스포츠”의 농구로 시작되었습니다.사전에 랭킹을 차지한 총 8명의 유저가, 8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합을 겨루는 식으로 진행됩니다.듣기로는, 모든 참가자 (선수)는 중국 각지에서 피코가 숙박 및 교통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1,2,3등 경기가 끝나는 대로, 시상식을 가지며 기념사진 및 단체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각 등수마다 별도의 상금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추후 개개인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싶네요. 점심 식사 : 铜锅涮羊肉 (양고기 샤브샤브)경기 중, 점심시간에는 피코 한국 담당자분께서 함께 점심 식사를 제안해 주셨습니다.덕분에 피코 본사(중국) 마케팅 담당자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담당자 등,피코의 여러 관계자분들과 대동하여, 난생처음 먹어보는 생 양고기 샤브샤브도 먹어보는 유익한 자리를 가졌습니다.피코 관계자분들은 대부분 영어 소통이 가능하셨던 관계로, 한국 담당자님이 도와주시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소통이 가능했으며주로, 한국 VR 유저들의 사용 형태와, 시장 상황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올인원 스포츠 : 복싱 본선 플레이 올인원 스포츠 : 양궁 본선 플레이식사 이후에는, 올인원 스포츠의 다른 종목인, 라켓볼 - 복싱 - 양궁 - 축구 순으로 계속 이어졌습니다.PVP 콘텐츠의 경우 특히 사람 대 사람 간 피지컬의 플레이가 나다보니,딱 봐도 고인물이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티키타카 플레이가 자주 나왔습니다. 올인원 스포츠 축구 우승자 시상 인터뷰인상 깊은 스토리라면, 올인원 스포츠 축구 종목 우승자가 현직 축구 심판으로서 활동 중이고,우승자의 아버지께서 전직 축구 선수이자, 현직 축구 코치로서 활동하는, 축구 부자였기에,부자 모두가 웃으면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훈훈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템포 클럽 플레이 예시 템포 클럽 중국 본선 선수피코 컵 첫 번째 날의 마지막을 장식할 종목은, 유일하게 비 올인원 스포츠 게임인, “템포 클럽”이었습니다.총 8명의 최종 본선 선수들이, 랜덤으로 선정되는 곡 중 하나로 1:1 대진하여, 8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형태로,동시 진행이 아닌, 2명식 한 조로 진행되어, 획득 점수의 값이 높은 사람이 이기는 방식입니다.템포 클럽의 경우, 다른 종목에 비해 본선 진출 선수가, 유독 20-30대 여성이 많았습니다.전체적으로 성비는 저를 제외하고, 약 8명 중 5명이 여성 선수였으며,우승자 또한, 이번 피코 컵 전 종목 중 유일하게 여성 선수가 우승컵을 거머쥔 종목이기도 했습니다. 좌 : 비트에 맞춰 춤을 추는 피코 직원분우 : 급하게 몸풀기 플레이..현장을 관리하는, 패션부터가 힙했던 피코 직원 한 분께서, 템포 클럽 음악 비트에 맞춰 장난삼아 춤을 추셨는데,이분은 춤을 전문적으로 배우셨는지, (저를 포함해서) 어기적 어기적 한 움직임과 다르게, 확실히 몸의 춤선이 살아있었습니다…저 또한 국내(한국) 1위, 글로벌 2위를 달성한 종목이 “템포 클럽”이었던 만큼,특히나 템포 클럽 선수 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이런 제 모습을 보신 피코 한국 담당자님께서,"중국 우승자 VS 한국 대표" 이벤트 매치를 한번 해 보는 게 어떠신지 제안해 주셨습니다.이런 행사에서, 타국 유저들과 함께 플레이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었던 만큼, 냉큼 부탁을 드려봤고,대회 진행 담당자와 이야기해본 결과, 나름 소소한 이벤트가 재미있겠다고 생각해 주셨는지, OK 승인이 나왔습니다.직접 스테이지에서 경기를 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만큼, 춤추기엔 불편한 차림에, 연습도 전혀 안 하고 있었지만,OK 승인을 받자마자, 우선 국가 대표(?)로 플레이를 하게 된 만큼, 최소한 나라 망신(?)은 시키지 말았어야 하므로허겁지겁 남는 체험용 피코 4 울트라 하나 집어다가, 급하게 몸풀기도 풀어줬습니다. 부끄러워서 함박웃음 실제 경기 영상부끄러움은 제 몫이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플레이 자체는 무난하게 잘 해냈습니다.승부와 직접적인 연관된 경기는 아니었던 만큼, 너무 부담 가지지도 않았고,해외 랭커가 참가해서, 붙어본다는 컨셉도 중국 유저들에게도 충분히 재미있는 소재였는지,다들 흥미로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집중해 주셨습니다. 우승자 상품 시상자로 참가 참가 기념 촬영결론적으로는, 중국 은상 유저에게는 승리했지만,아쉽게도 한 번의 실수로, 금상 수상자에게는 패배하였습니다.지긴 했지만, 스스로도 엄청 재미있게 즐겼기에 일말의 후회는 없었고,이번 템포 클럽 우승자에게 한정, 한국 대표인 제가 트로피를 수여하는 시상자의 역할도 함께 했습니다.제가 마지막 게임 플레이 참가자(선수)였던 만큼, 저를 이후로 첫째 행사가 마무리되었으며,한국 대표인 제가 흥미로우셨는지, 기자 / 사진사들한테 포토존 촬영 여러 장과, 간단한 인터뷰로 감사 인사도 전했습니다. 밤의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받은 트로피와 VR Insight 명함공식 플레이어는 아닌 만큼, 트로피는 받지 못했지만,대회 운영 측에서, 피코 굿즈를 전시해 두는 곳에서, 대회 아이콘으로 걸어두었던 딱 하나 있는 메달을 떼어다, 수여해 주셨습니다.이번 반응이 국내외 담당자님들 모두 꽤 재미있게 보셨는지,기회가 된다면, 진짜 올림픽처럼. 글로벌 단위 행사로 진행해 보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베이징 피코 본사 사무실.행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일정에 포함되었던 “피코 본사 오피스 투어”를 위해, 피코 본사를 방문했습니다.피코 VR 본사는 중국의 실리콘밸리인, 중관춘 인근 IT 거리에 위치하였으며,개인적으로 (피코 모기업인) 바이트 댄스 본사 건물 내부 일부 공간을 작게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라, n 층 규모의 거대한 빌딩 통째로가 피코 VR 전용 사옥인 것을 알고, 그 스케일에 상당히 놀랐습니다.모기업 자체가 한국의 인식보다 상당히 규모가 큰 IT 공룡기업 중 하나인 만큼,바이트 댄스 본사를 기준으로, 주변 블록 상당수가, 계열사들이 입점한 빌딩들이었으며 여기에 피코도 속합니다.(인근에는 피코 VR의 HW RnD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소도 존재하나, 보안 상 이번 기회에 방문하지는 못하였습니다.)사옥 내에서는 어떠한 촬영도 금지되어 별도 참조 이미지는 촬영하지 못하였습니다.보고 들은 것의 일부는, 비밀유지 서약으로 인해 방문기에는 모든 내용을 작성할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1층은 로비층. 지하 1층에는 사내 식당이나 카페, 헬스장, 휴게실, 1인 집중실 등으로 편의 시설 위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독특하게도, 곳곳에 0원 자판기가 존재하여, 그곳에서 사무비품 (마우스, 키보드, 스탠드 등)을 자유롭게 뽑아갈 수 있었습니다.2층부터는 직원들의 사무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방문 시간이 토요일 저녁임에도 업무 중이신 직원들이 자주 보였습니다.어느 나라든, IT 업계에서는 늦게까지 일하는 익숙한 모습에 약간 가슴이 찡해졌습니다.모든 직원들의 자리에는 곳곳에 자사 제품인 피코 HMD들이 한가득..HW 개발담당 직원 자리로 추정되는 자리에는, 많으면 20여 개의 피코 VR들이 수둑히 쌓여있는 곳이 종종 보일 정도였습니다.M / A / H / D / P 사 등, 다양한 시장 경쟁사들의 하드웨어들도 드문드문 볼 수 있었습니다.제품의 개발 과정에서, 여러 가능성과 성능을 실증 테스트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토타입 제품 실물들을 볼 수 있었으며,상당히 독특하고도 신기한 외관이나 가능을 가질 것으로 기대되는 여러 시도들과 스케일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피코 오피스 투어 과정에서 느낀 점은, 아래, 마무리 파트에서 함께 작성하겠습니다.층수가 높아질수록 보안 등급이 높아지는 보안 구성 상, 저는 모든 층을 둘러보지는 못하였고,n 층까지만 담당자님 동행 하에 함께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말레이시아 방문자와 함께 저녁호텔에 복귀 후. 피코 행사 대신 관광을 선택한 말레이시아 대표도 마침 비슷한 시간에 복귀하여, 주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말레이시아의 경우, 영어와 중국어가 흔히 쓰이며, 해당 유저분은 관광지 부근에 거주하신다 하여, 영어 소통이 원활했습니다.말레이시아 대표는 저에게 중국 관광 후기를, 저는 말레이시아 대표에게 피코 컵 후기를 말해주며,서로 대리 체험과 함께, 동남아 시장에서의 VR 유저의 시장 상황과, 보급, 인식 등을 주고받았습니다.4. 세 번째 날 ~ 귀국24.11.17 ~ 24.11.18 피코 컵 두 번째 행사 날의 오프닝피코 컵 두 번째 날이자, 베이징 방문 삼일차 아침이 밝았습니다.첫 번째 날과 그대로, 아침부터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에 방문하여, 두 번째 날 경기 관람을 했습니다.장내 아나운서가 “한국에서 온 VR 인플루언서도 함께하고 있습니다”라는 느낌의 멘트도 했다고 하니 꽤 부끄러웠습니다.. ㅎ 올인원 스포츠 : 배구 본선 플레이 올인원 스포츠 : 탁구 본선 플레이 올인원 스포츠 : 배구 본선 플레이두 번째 날의 진행 종목은, 올인원 스포츠의 배구 - 테니스 - 배드민턴 - 탁구 - 하키 순으로 이어졌습니다.배구나 탁구 같은 경우, 중국 내에서도 인기 있는 스포츠다 보니 그 접전이 상당히 치열하게 이뤄져서,1득점을 하는데도 적게는 여러 번, 많게는 수십 번 스매시가 이뤄질 정도로 격렬하였습니다. 바이트 댄스 산하 쇼핑몰 “1733”산하 그룹 목록에 PICO 로고도 함께 있음.경기 후, 피코 코리아 담당자분께서 바이트 댄스 그룹에서 운영 중인 “1733”이라는 쇼핑몰 방문을 제안해 주셨습니다.쇼핑몰 이름이 숫자인 “1733”인 이유는. 주변에 존재하는 사찰인 “대종사”가 1733년에 만들어진 이유.그리고 중국어로 1733의 발음이 “같이 놀자” 와 유사하여 명명된 이름이라고 합니다.지하 ~ 저층 부는 쇼핑몰로, 고층 부는 사무실로 운영되며, 신도시에 들어오는 깔끔하고 쾌적한 느낌의 평범한 쇼핑몰이었습니다.강호동 이름을 달고 있는 한국식 고깃집이 이곳에 영업 중이었습니다.쇼핑몰 정 중앙에, 쇼핑몰에 어울리지 않는 큰 로비 공간 겸 무대가 있었는데.이곳에서 피코 4 울트라와 같은 신형 기기를 발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쇼핑몰의 역할도 하지만, 그룹 내 제품 발표 및 시연장의 기능도 할 수 있도록 쇼핑몰의 설계를 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점심 식사 : 베이징덕을 포함한 코스요리베이징 세 번째 날의 점심 식사도, 피코 직원분들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피코 관련자 분과 함께하는 두 번째 점심 식사에서는, 첫 번째 날에 함께 식사했던 인원들을 포함해,피코 일본 판매 담당자분 등이 추가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전체적으로 외국인 관점에서 본 이번 행사의 간단한 소감. 그리고 제 본업 (VR 관련 직종)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 드렸으며.이번 식사에서의 주요 대화 주제는, 한류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였습니다.(생각보다 미용이나 쇼핑, 드라마 등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식사의 경우,, 딱 봐도 맛있게 생긴 것들이 코스로 계속 나와서, 정신없이 먹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이번 여행에서 먹었던 것 중에서 제일 맛있었고, 양도 풍성해서 남길 정도였습니다.이렇게, 피코의 일정은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그다음 날. 출국 날이자, 11월 18일 월요일.월요일이라 일부 관광지는 문을 닫는 관계로, 공항이동 전, 간단하게 로컬 구경을 산책 삼아 다녀봤습니다. 아침 운동 중인 베이징 시민들.인상적인 것은, 중국은 생활체육에 대한 허들이 상당히 낮고 대중적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대형 공원에는 수백 명의 중장년층이 모여, 대표적으로는 체조. 그 외에 댄스나, 부채춤, 칼 무예, 태극권 등을 하였는데퍼블릭 공간에서 주기적으로 운동을 한다는 데 있어, 후술할 다양한 VR의 사용층에 영향을 준 부분이 아닌지 추정되었습니다. 로컬 쇼핑몰로컬 쇼핑몰에도 들려, 화웨이 / 샤오미를 비롯한 여러 IT 스토어에도 들려 여러 제품을 보았지만,화웨이의 폴더블 스마트폰 정도가 한국에서 보기 힘든 정도였지, 그렇게 특별한 제품이나 구성은 볼 수 없었습니다.VR / AR / XR 디바이스 관련해서도, 일반적으로 전시해놓지 않았으며,유일하게 발견한 거라면, 화웨이에서 발매한 AR 글라스 (화웨이 비전 글라스)가 실물 없이 템플릿만 전시된 정도였습니다.이후, 공항으로 이동. 저녁 즈음에 한국으로 귀국하여.4일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북경 VR 여행을 마무리 지었습니다.5. 마무리이번 방문기를 통해, 글로벌 VR 유저들의 열정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VR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매우 유익하고 재미있으며,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중국 유저들의 VR에 대한 대중성과 인식에 대한 점이었습니다.앞서 여러 사진들에서 알 수 있듯, 비록 우승 자체는 일반론적인 피지컬의 차이로 인하여, 젊은 남성의 비율이 높았지만,충분히 뛰어난 실력과 경험을 가지고, 본선에 진출한 유저들의 총 성비는 남녀 6:4 수준으로, 여성 유저의 비율이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여기에 더해, 선수로 참가한 유저의 연령층도 20대부터 70대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으며.중년 ~ 노년( 50 ~ 70대 )이라 부를 수 있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VR에 대해 높은 이해도와 적극적인 활용을 보여준 것은한국인 유저 입장에서는 매우 신선한 광경이기도 했습니다.이러한 차이는, 앞서 언급했듯, 생활체육이 매우 대중화된 중국의 특성상,생활체육의 니즈와 활용이, 공간적 제약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VR로 그대로 이어져 발현된 문화라 생각됩니다.특정 기술의 폭발적인 보급을 위해서는, 그 기술이 특정 연령층에 국한된 것이 아닌,남녀노소 모든 유저들에게 널리 쓰여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였을 때,현재 중국의 VR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의 높은 잠재성을 보여준다 생각되었습니다.또한, 국내외 유저들에게 “피코가 중단기적으로 VR 사업에 철수할 수 있다” 우려하는 부분이 많이 존재하지만,피코의 모기업에서 표방하는 방향성, 피코의 예산 및 기업의 스케일, 투자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차세대 프로젝트 진행 등.개인적으로 보고 들은 종합적인 내용을 종합한, 주관적인 생각으로선,"방향성 자체는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XR 시장의 진출은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로 판단하였습니다.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 여정은 VR이라는 기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그리고 VR 인플루언서로서 많은 영감을 준 시간이었습니다.앞으로도 더 다양한 기회와 경험을 통해 글로벌 XR 유저들과의 교류를 이어가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피코 관계자분들,그리고 이런 여정을 앞으로도 함께 가꿔갈 독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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