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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백악관 동해 서명운동!!
동해인가, 일본해인가.
외교통상부는 "매 5년마다 개최되는 제18차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 백지아 외교통상부 국제기구국장을 수석대표로 외교통상부, 국토해양부, 국립해양조사원 등 관계부처로 구성된 우리 대표단이 참가한다"고 20일 밝혔다.
오는 23~27일 모나코에서 개최되는 IHO 총회는 지난 5년간 IHO 활동 및 향후 활동 계획 등이 논의되며, 동해 수역 표기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ns and Seas : S-23)'책자 개정 문제도 논의될 예정이다.
외교부는 "우리 대표단은 이번 총회에서 수로분야 국제협력에 적극 동참하는 한편, ‘동해’ 명칭의 정당성을 강력히 제기하고, '해양과 바다의 경계' 4판 발간시 동해 병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제적 해역 명칭의 기준이 되고 있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는 1929년 발간하기 시작해 1937년 2판 발간, 1953년 3판 발간까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고 이후 59년간 개정판이 나오지 않고 있다.
개정판에 동해가 병기되려면 IHO의 80개 회원국 중 자격정지 중인 2개국을 제외한 78개국 가운데 과반수인 39개국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동해-일본해'를 둘러싼 논란은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재미교포단체인 버지니아 한인회는 백악관의 '위 더 피플' 웹사이트(http://wh.gov/Ryk)에 동해 표기 변경 온라인 청원서 '동해, 우리 교과서에 담긴 잘못된 역사'를 제출하고 서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백악관은 청원 숫자를 달성하면 한 달 이내로 관련 정책에 관한 공청회를 열거나 공식 입장을 표해야 한다.
한인회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며 미국 교과서에 일본해라고 표기된 지명을 동해로 바로 잡아야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이 단체는 그 근거로 "일본이 대외정복 정책으로 1928년 동해라는 지역명을 일본해로 바꿨다"고 강조했다.
이 서명운동의 목표 청원수는 2만5,000명이었으나 현재 3만2,000명 이상이 서명에 동참했다. 미주한인총연합회도 서명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있으며 국내 네티즌들은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서명 방법을 올린 글을 전달하고 있다.
이에 일부 일본인들이 반발, 미시건주에 거주하고 있는 한 일본인이 지난 13일 '일본해' 표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청원을 제기했다. 이 맞청원에도 20일 현재까지 1만5천여명이 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이 일본인은 "동해는 명백한 일본해이며, 아이들에게 정확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데 왜 바꾸어야 하느냐. 한국은 북한 공산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고, 극단적 민족주의에 눈이 멀어 역사를 왜곡하려 든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 국내 네티즌들이 SNS를 이용해 서명을 독려하며 재 반격에 나섰다. 백악관 동해 표기 서명은 백악관의 '위 더 피플' 웹사이트(http://wh.gov/Ryk)에 접속해 이름과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라이제르작성일
2012-04-2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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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15년전 한국 외교관의 명쾌한 '독도문답'
국제재판소행·무주지설 조목조목 반박 … 일본 입장 전하러 온 프랑스 법학자도 설복받고 떠나
최근 일본의 독도 왜곡에 대한 국제법·역사적 반박자료 역할일본이 교과서 검정과 외교청서 발표를 통해
독도에 대한 역사왜곡을 되풀이하고 있다.
격앙된 국내 여론과 대조적으로 일본 주장의 근거와 그 논리를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당연히 일본 논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적다.
1996년 6월 14일. 독도와 관련, 일본 입장을 대변하러 온 프랑스 학자가 한국 외교부 실무자와 마주 앉았다.
프랑스 국립극동학원 동경지부의 티에리 모르망(Mormanne) 박사와 홍승목 외교부 국제법규과 1등서기관
(현 네팔 대사) 사이의 대화를 보면 얼마나 일본의 주장이 터무니없는가 명쾌하게 알 수 있다.
모르망 박사 역시 홍 서기관 설명을 흔쾌히 수용하며 감사를 표하고 떠났다.
독자들의 보다 정확한 독도 이해를 위해 홍 대사의 허락을 얻어 당시 대화록을 발췌해 싣는다.
대화록 전문은 홍 대사 블로그 또는 내일신문 홈페이지(naeil.com)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모르망 : 일본은 독도분쟁을 재판으로 해결하자고 하고 한국은 이를 반대한다. 한국은 법적으로 자신이 없나?
홍승목 : 그렇지 않다. 한국은 '국제사법재판소(ICJ)ICJ'라는 특정 법정에 가는데 대해 이견이 있었을 뿐이다.
일본은 ICJ에 의한 분쟁 해결을 주장하면서 중국과 분쟁이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댜오위타이)는 ICJ로 가자고 하지 않는다.
자기네가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는 안되고 상대방이 점유하는 경우만 재판에 가자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더구나 '북방 영토(쿠릴열도)' 문제는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데 왜 ICJ로 갖고 가지 않나.
오히려 러시아는 ICJ로 가자고 하고 일본은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은 ICJ에 판사가 있는데 한국은 없으니, 한·일간 문제는 ICJ에 가는 것이 명백히 자기에게 유리하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각각 ICJ에 판사를 두고 있으니 불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 일본은 내심 보수적인 ICJ가 적어도 1905년 일본의 독도편입
당시에는 식민주의에 의한 조치도 합법이라고 판단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르망 : 조그만 섬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일본은 냉정한 데 비해 한국의 감정은 매우 민감하다.
홍승목 : 일본은 당초부터 자신의 영토가 아니니까 ICJ에 패소해도 잃을 게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일종의 '부담없는 게임'이다. 한국을 식민 지배했으니 자료입증 측면에서도 월등 유리한 입장이고.
모르망 : 일본은 그렇다고 치고, 한국 여론은 왜 그렇게 과민한가.
홍승목 : 한국민에게 독도는 '주권과 독립의 상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 때
제1단계로 1905년에 독도를 빼앗고, 그 5년 후에 제2단계로 나머지 전국토를 빼앗아 식민지화를 완성했다.
일본이 "다케시마(竹島)는 일본영토" 운운하는 것은 한국국민에게 "너희는 아직 완전히 독립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우리의 식민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독일이 지금 와서 프랑스더러 "파리가 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된 것은 인정해
주겠지만, 알자스·로렌은 돌려받아야겠다"고 한다면 프랑스 국민이 점잖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재판으로 해결하자"고
하겠나?
모르망 : 태평양전쟁 후 1951년에 체결된 대일평화조약에서는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명시하되 '독도'는
언급하지 않았다.
홍승목 : 그것은 패전국인 일본에 대한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영토와 관련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부분만을 언급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명시된 섬들이 한국영토의 외측 한계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 더 남쪽에는 마라도가 있다.
모르망 : 한국은 일본의 '1905년 영토편입조치'가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독도가 1905년 이전에 이미 한국의 영토라는 근거는
충분한가?
홍승목 : 일본은 "독도가 1905년까지는 무주지(無主地:주인없는 땅)였으므로 어느 나라든 선점할 수 있었다"는 입장으로
식민주의적 발상이다. 독도가 한·일 양국 사이에 있고 수 세기전부터 양국민이 존재를 알면서 어업을 해왔다면 두 나라 중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독도는 그 자체의 경제적 가치는 거의 없는데도 영유권을 입증할 역사적 기록은 다른 유사한 섬에 비해 풍부하다.
이것만으로도 무주지라는 논리는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
모르망 : 1905년 이전 한국 정부가 독도를 영토로 인식한 증거는?
홍승목 : 1905년 일본이 비밀스레 영토편입 조치를 하고 외교권을 탈취한 뒤 1906년 일본관리를 울릉도에 파견해 군수에게
"독도는 이제 일본영토가 되었기에 독도를 둘러보러 왔다"고 통보했다. 이에 울릉군수는 중앙정부에 '울릉군 소속인 독도'에
대해 일본 관리가 통보해 온 내용을 보고하고 내용을 조사토록 건의한 바가 있다.
'이제부터는 일본 영토'라는 일본 관리의 통보와 '본 울릉군 소속인 독도'라는 한국 관리의 보고가 당시의 양국 정부의
영유의식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일본 정부는 현재 "이 보고서의 원본이 없으므로 믿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또 1900년에는 정부가 취한 조치로서 "독도를 울릉군수의 관할로 한다"는 내용이 공포된 기록이 있다.
모르망 : 일본 고지도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것이 많은데?
홍승목 : 일본 고지도의 공통점은 울릉도와 독도를 한꺼번에 한국영토로 표시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일본영토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기록에서도 독도에 관해서는 반드시 울릉도에 곁들여 언급되고 있다.
일본이 '울릉도는 한국영토,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역사와도 단절된, 20세기의 새로운 주장이다.
모르망 : 일본은 독도가 '1905년 편입조치 이전부터 일본의 고유의 영토이고 1905년에는 시마네 현에 편입시켰을 뿐' 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안다.
홍승목 : 일본이 1905년에는 독도가 '무주지'라고 하면서 영토편입을 했다가 이제 와서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언제부터' 일본 영토라는 말인지, 주장 근거는 무엇인지, 1905년에는 왜 '무주지'라고 선언했는지, 일본에 돌아가면
문의해 보라. 독도에 관한 일본측의 최초의 기록은 1667년의 '온슈시초고끼(隱州視聽合紀)'인데 여기서 "울릉도·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은 사료에 울릉도·독도가 언급된 이유만으로 자기네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일본 책에 '프랑스의 파리'라는 기록이 많다는 이유로 언젠가 일본이 "파리가 일본 책에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일본의
영토라는 증거"라고 우길 때가 올 지도 모른다.
모르망 : 1905년에 분명히 '무주지'라고 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나?
홍승목 : 1905년 일본내각이 독도에 관해 채택한 결정의 요지는 "영토편입을 하라는 어느 개인의 청원을 접수한 것을 계기로
… 검토한 결과 타국의 영토라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되어 … 국제법에 영토편입으로 인정될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자기네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점을 여러 가지로 밝혔다.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이 너무 명백했기에 차마 '무주지'라는 표현조차
쓰지 못하고 '타국의 영토' 운운한 것이다. 일본정부가 정말로 '무주지'로 인식해 영토편입을 하는 경우에는 이해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나라에 사전통보를 하거나 관보게재를 통해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독도에 대해서는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 편입조치를 숨겼고 한국이 알게 될까봐 관보게재도 피했다. 도둑이
물건을 훔쳐가면서 주인이 알지 못하도록 조심한 것과 같다. 편입조치를 한국에 숨기려다 보니 일본국민조차 그 사실을 잘
몰라서 편입조치 후에도 독도를 계속 한국의 영토로 표시한 일본사료가 발견된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기사를 읽다가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퍼온 글입니다
저 글에 대한 전문은 따로 있으나 글이 좀 길기에 약간 요약되어 있는 글을 퍼왔습니다
독도에 대한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서 다른사람(특히 외국인)이 물어봤을때 어느정도는
논리있는 답변이 가능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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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어제와 오늘
1962년 충주고 3년때 적십자 비스타(vista)프로그램 선발자로 선정돼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때,
선발자들과 함께. 케네디 오른쪽에 보면 가려진 반장관(빨간 동그라미 안)
1962년 충주고 3년때 적십자 비스타(vista)프로그램 선발자로 선정돼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때,
선발자들과 함께. 왼쪽에서 두번째
충주 교현초등학교 2-3학년 시절 동생들과 함께. 뒷줄 가운데
충주중학교 시절 동생들과. 오른쪽에서 두번째
충주중학교 졸업앨범의 반기문
충주고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맨 뒷줄 가운데
충주고 3년때 적십자 비스타 프로그램에 선발돼 미국을 방문하기 전 공항에서.
맨 왼쪽, 맨 오른쪽은 환경그룹 곽영훈 회장.
서울대 외교학과 63학번 시절 교정에서. 오른쪽에서 두번째
1970년 서울대 졸업식때 가족들과.
반명환 아버지(91년 작고. 왼쪽에서 두번째), 어머니 신현순 옹(81).
1970년 서울대학교 졸업식때 연인 유순택씨(지금 부인)과 함께.
군시절 부산 제3항만 사령부에서. 사병근무 65-66년 시절.
65, 66년께 근무, 군시절
1972년 첫딸 선용씨와 함께 자택에서
1972년 외무부 사무관 임용 뒤 연수원 시절
포항제철소 방문해 동기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음. 왼쪽에서 두번째
1975년 녹조근정훈장을 받고나서 기념촬영
83년 8월부터 85년 4월까지 하버드 케네디스쿨 유학시절 집에서 설겆이를 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케네디스쿨 재학중 1984년 보스턴 자택앞에서. 왼쪽 위부터
부인 유순택씨, 반선용 첫째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반우현 둘째(아들), 반현희 막내딸.
1984년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졸업식에서.
인도대사였던 외무부 노신영 차관이 다시 인도 방문때. 왼쪽에서 세번째
1998년 오스트리아 대사시절 발트하임 오스트리아 대통령과 함께.
반기문
출생
1944년 6월 13일(1944-6-13) (64세)
출생지
대한민국 충청북도 음성군
거주지
미국 뉴욕
국적
대한민국
학력
서울대학교 외교학과하버드대학교대학원 행정학과 석사
직업
외교관
배우자
유순택
반기문(潘基文, 1944년 6월 13일 ~ )은 유엔의 사무총장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제 33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이었으며,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당선되어 2007년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최근 중국고고학계에선 반기문 총장의 조상은 고려로 건너간 중국인이라고 주장했다.
약력
그는 일제 강점기 말이었던 1944년에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고 충주중학교, 충주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충주고등학교 재학시절 미국에 가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일로 인해 외교관의 꿈을 품게 되었다. 1970년 2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2월 외무고시를 합격하고 3월 외교통상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을 자녀로 두고 있고, 모국어인 한국어는 물론 영어에 능통하며,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도 구사한다.
충주고등학교에선 VISTA(Visit International Student To America)프로그램에 충청도 대표로 자동 선발되어 1등으로 시험을 마치고 다른 학생 3명과 함께 미국에 다녀왔다.
우리 아들 장하다 - 26일 서울 KBS방송국에서 열린 '반기문UN사무총장취임기념 희망2007신년음악회'에 참석한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어머니 신현순(왼쪽) 여사와 손을 붙잡고 즐거워하고 있다.
외교관 경력
1970년 외무부 여권과, 1972년 주 인도대사관 부영사, 1974년 이등서기관 등을 지내고, 주로 국제조직을 거쳐 1980년 외교부 국제조직조약국 과장이 되었다. 외교통상부 지원으로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으로 유학하였으며, 1985년 4월 졸업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 4월 총리 의전비서관, 1987년 7월 주미대사관 총영사, 1990년 6월 외교통상부부 미주국장, 1992년 2월 외교통상부 장관 특별보좌관, 1992년 9월 주미 공사, 1995년 2월 외교통상부 외교정책실장, 차관보를 역임했다. 1996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의 외교안보수석이 되었다. 2000년 1월 외교통상부차관으로 지내다가 2001년엔 불미스러운 일로 외교통상부 차관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한국은 러시아와 ABM 조약을 찬성한다고 했으나 당시의 국제 정세를 살피지 않고 미국의 MD조약을 반대하는 느낌으로 협상을 했기 때문이다. 2001년 9월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 2002년 9월 본부 대사 2003년 2월 노무현 참여 정부의 외교정책보좌관을 지냈으며, 2004년 1월 외교통상부장관이 되어 2006년 11월까지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국제연합 사무총장
2006년 2월 14일에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였으며 2006년 10월 14일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코피 아난의 뒤를 잇는 차기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당선되으며, 그 중 일본만이 반기문 후보자에게 반대표를 던졌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2007년 2월 6일 국제 연합 총회장에서 192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반 총장은 비대해진 국제 연합 평화 유지 활동국(DPKO)을 업무별로 2개 부서로 분리하고 군축 부서를 사무총장 직속에 두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제 연합 평화 유지 활동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또 기구 개편안에 대한 회원국들의 지지를 촉구했다.
반 총장의 제안에 대해 개도국들은 사실상 군축국의 약화라며 반발하며 거절했다. 개도국 대표들은 반 총장의 개혁안이 전세계적으로 필요성이 증대한 평화유지군을 위태롭게 만들고 강대국 군축 문제를 핵심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반 총장은 전체 회원국 대표를 상대로 협조를 구하는 연설을 했다.
직인
반기문 사무총장은 삼족오가 새겨진 사무총장 직인을 증정받아 사용하고 있다. 한국 전각의 대표적 명인 정병례가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의 의뢰로 작업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인 2006년 12월 11일 완성한 직육면체의 직인은 가로·세로 7cm에 높이 18.5cm 크기로 삼족오를 주제로 제작되었다.
밑바닥에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날개짓을 하는 삼족오와 이글거리는 태양을 배경으로 ‘Ban Ki-moon Secretary-General The United Nations→국제연합 사무총장 반기문’라는 문구가 있다. 옆면 4곳에는 삼족오와 태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삼족오 직인은 2007년 1월 12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제3회 한국 이미지 디딤돌상 수상식에서 상을 받은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전달되었다.
수상 경력
975년 녹조근정훈장
1986년 홍조근정훈장
2001년 오스트리아 대훈장
2002년 브라질 리오 블랑코 대십자 훈장
2004년 코리아 소사이어티 밴 플리트 상
2006년 페루 태양 대십자 훈장
2006년 제6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최고대상
2006년 잡지인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상
2007년 제1회 포니정 혁신상
2008년 국제로타리 영예의 대상
2008년 필리핀 최고 훈장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선친의 묘를 찾아 술을 올리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동생들과 한 모습. 뒤쪽 가운데
MB만 관련 글만 보느라.... 눈이 많이 상하셨죠?
가끔씩 이런 분도 보셨음 해서.. 올려봤습니다...^^
출처 : 네이버 - corea8124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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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펌] 환율 급등, 어떻게 볼 것인가? 그 원인과 시그널
아고라에 괜찮은 글이 나왔길래 퍼왔습니다. 슬슬 외화 준비해야 할듯
2월18일 현재 원/달러 환율 1468원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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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해서 환율이 어떻게 이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작년부터 현재까지 훑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참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데 야마로 쓴 소설이라고 쓴 이유은 쥐새끼가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실력도 없는 제글을 무턱대고 믿지 말라는 의미로 쓴 것입니다. 이미 작금의 법이라는 것도 이현령비현령 아니던가요?
각설하고, 제가 처음 썼던 글을 다시 참고해서 2008년부터 지금까지 환율을 흐름을 부족하지만 써 보겠습니다.
2008년
실제적으로 환율을 개입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소위 스무스오퍼레이션이라는 미세조정을 통해서 시장에 무리가 없을정도로 개입을 하지요. 하지만 결코 당국은 환율 개입을 한다는 말을 안할 뿐 아니라 해서도 안됩니다. 국제적으로 환율조작국으로 낙인찍히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MB의 소망교회 30년 지기이시며 기획재정부장관이신 강만수는 2월 29일 장관 취임 기자회견에 이런 말을 합니다.
'환율을 시장에 온전히 맡기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아에 취임 때부터 한나라의 경제 수장이라는 작자가 저렇게 대 놓고 우리는 환율조작국이라고 온천하에 선포하니 이를 처다보는 외인들은 97년 IMF 주범이 컴백했다며 그날의 만찬을 회상했을 것입니다.
IMF이후 지난 10년간 각고의 구조조정과 국민들의 저력으로 상처는 여전했지만 1년만에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이후 저환율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호황과 맞물려 꾸준한 수출을 통한 무역흑자로 차곡차곡 외환보유고를 쌓아놨습니다. 물론 조중동과 딴나라당은 입에 거품을 물고 경제파탄을 노래하였지만 경제는 그럭저럭 순항하는 듯 하였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몰아간 그들의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소위 747공약으로 맹박이는 이후 청와대에 입성하게 됩니다. 잠재성장률이라는 의미를 퇴색시킬 정도로 그 당당한 7%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GDP의 50%에 육박하는 수출과 그에 준하게 GDP를 부양할 수 있는 부동산 건설경기에 이미 올인할 생각이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대기업과 2%의 그들을 위한 바로 정책이니까요.
하지만 이미 2007년 후반부부터 서브프라임 위기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있었으며 2008년도 초는 경제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풍기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강만수는 수출부양을 위한 고환율 기조를 이미 세운 상태에서 서서히 시장은 이미 이것을 반영하기 시작할 즈음 경제의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합니다.
3월 17일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여 달러가
997.30원에서 10,029.20으로 무려 31.90원이 폭등하게 됩니다.
보통 평일의 외환시장의 환율 등락폭은 3원정도였으며 10원이상 변동하였을 경우 그날 외환시장은 상당히 불안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3월 17일은 무려 32원가량이나 폭등하며 앞으로 닥칠 엄청난 허리케인의 전조를 보입니다.
역시 환율개입의 대가 답게 구두개입과 10억달러의 실개입을 통해 환율을 잠재웠습니다. 글로벌증시는 안정을 찾았고 환율 또한 안정을 찾는 듯 보였습니다만 여전히 미국발 서브프라임 문제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즈음이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여타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의 환율 변동성이 유독 증폭되었던 원인 중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라고 여기는 일이 3월 26일에 터지게 됩니다.
3월 26일 이미 10일전에 환율 급등이라는 위험신호를 맛보았고 서브프라임의 경제위기설이 나도는 횡횡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은밀히 달러를 매수하게 됩니다. 매도가 아니라 매수입니다. 당국이 환율 상승을 종용하기 위해 달러를 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후 한달동안이나 매수와 매도를 적절히 섞어가며 환율을 1,000선으로 맴돌게 하였습니다.
7% 성장이 필요했지요. 솔직히 현재 위기가 이정도 일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짓이 앞으로 활활 타오를 외환시장을 위한 군불 역활을 할 것이라는 것은 몰랐을 것입니다. 정말로 어리석은 고환율 정책이 시장의 롱심리를 자극한 상태로 몰아가게 하고 이는 향후 다가올 재앙을 멋지게 배가 시키게 됩니다.
달러화 급등의 서막 - 역송금 수요
2006년 12조3천159억원
2007년 29조6천562억원
2008년 11월까지 35조4천364억원
위 수치는 국내유가증권시장에서의 외인들의 순매도 규모입니다. 세계적 호황과 국내 자산버블로 인해 잘 구어진 상태에서, 글로벌 위기로 인해 달러 유동성 문제까지 불거지자 외인들은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역송금 수요를 늘리게 됩니다.
보통 외환시장에서 순매도의 80%정도가 역송금 수요로 등장했습니다. 1년내내 하루 2~3억달러로 추정되는 역송금 수요가 꾸준히 등장하면서 시장 참가자들의 롱심리를 자극했습니다.
만수의 고환율정책과 함께 외환시장의 환율 재앙은 이렇게 시작하게 됩니다.
무역수지적자와 유가급등
2008년초부터 무역수지 적자는 만수의 똥꼬를 상당히 타들어가게 했습니다. 지금 흑자를 해도 모자를 판에 말이죠. 97년 이후 최초의 연간적자를 기록한 2008년은 말할 것도 없이 달러 수요를 자극했습니다.
결제 수요 > 네고 물량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유가가 미친듯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유가는 7월 147.27달러를 찍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무역수지 적자에 고환율 정책, 글로벌 경제 위기에 이은 달러 유동성 문제...
시장에서 달러 매수세가 급증하자 수입업체들은 리딩(leading)전략을 구사하게 됩니다. 리딩 전략은 말그대로 앞으로 끄는 것으로 달러가 오를 것을 대비해 미리 달러를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수출업체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달러화가 오르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 상태에서 당연히 네고 물량 출회를 늦추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레깅(lagging) 전략입니다.
사는 것은 미리하려고 하고 파는 것은 늦추려고 하니 이것도 바로
결제 수요 > 네고 물량
6월 다우 하락세에 이어 달러화 급등의 전조가 보이자 당국은 한달간 4차례의 공식 구두개입과 약 40억 달러를 매도하며 개입했습니다. 그러나 유가폭등과 증시불안으로 국내 달러 상승 압력의 대세는 막을 수가 없었고 6월말에 1,046.00원을 기록하게 됩니다.
7월 7일 다급해진 만수는 한국은행과 공동대응을 모색하게 됩니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과 안병찬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각자 자기 부처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달러를 잠재우기 위해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천명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드디어 날뛰던 유가에 덩달아 미치던 환율을 잠재우기 위해 만수는 신종무기를 던집니다.
바로 도시락 폭탄입죠
7월 9일 오후 12시 40분경 서울환시에는 20억달러짜리 환율 30원을 내리까는 폭탄이 떨어졌고 딜러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딜링룸으로 러쉬했습니다. 유가폭등으로 인한 결제수요 급증으로 대부분 롱포지션을 구축했었건만..
이날 하루만 무려 60억달러를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7월달에만 210억달러를 쏟아 부으며 가까스로 환율을 1,000원대로 잡게 됩니다.
9월 위기설과 리먼 브라더스
9월 15일 158년을 자랑하던 美 IB의 선두주자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신청 계획을 발표하게 되고 VIX지수는 요동을 쳤고 덩달아 코스피와 환율시장도 뒤 흔들립니다.
게다가 국내에 위기를 고조시켰던 9월 위기설의 진원인 외채만기일이 9월 9일과 10일에만 외국인 채권 5조 9천억원이 몰려있게 되면서 환율이 치솟게 됩니다.
8월과 9월에만 글로벌 신용 경색을 타개하고자 총 5조6천698억원 주식 순매도
기록하게 되고 약 70억달러의 역송금 수요 발생,
9월 16일에는 리먼발 악재로 10년여만의 최대 폭인 50.90원이 급등하게 됩니다.
당국은 달러를 환시에 쏟아내며 8~9월 두달간 약 220억달러를 팔아 째끼게 되고 외채 만기일에 3조 8천억원의 채권 투자가 사라지게 됩니다.
글로벌 증시 폭락 - 투신권 다이나믹 매수 헤지
2007년까지만 해도 증시 호황을 구가하면서 우후죽순처럼 해외 펀드들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2008년 들어 글로벌 증시가 반토막 나면서 투신권은 다이나믹 달러 매수 헤지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해외 증시 폭락으로 펀드의 잔존가치가 선물환 매도 금액보다 낮아짐에 따라 이를 맞추기 위해 매도 헤지 물량을 매수를 통해 줄이려고 했습니다.
물론 달러 상승 압력...
그리고 더불어 과도한 선물환 매도.. 이는 세일러님의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통화 스와프
미친 듯한 환율 폭증과 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당국은 드뎌 통화스와프를 하게 됩니다.
10월 30일 미국, 일본, 중국과 각각 300억달러 규모의 스와프 계약을 맺는데 통화 스와프란 양국가가 현재의 계약환율에 따라 자국통화를 상대방의 통화와 교환하고 일정기간 지나면 최초 계약 때 정한 환율에 따라 원금을 재교환하는 거래를 말합니다.
그런데 미국은 스와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원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개무시한거지요. 한마디로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한 겁니다. 여튼 환율은 한미스왑을 통해 진정되는 듯 보였지만 그 하락폭을 금새 만회하게 됩니다.
2008년 한해에만 최소 6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먹어 치웠습니다. 고환율로 인해 작년까지 키코 피해액만 5조에 육박하며 외환으로 인한 흑자도산이라는 진풍경도 야기시켰습니다.
29일 환시 장 막판 만수는 10억달러 규모의 고강도 개입을 단행하고 금융권에 달러 매수 자제를 요청 등으로 달러를 찍어 눌렀으며 30일 1,259.50원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2009년
역시나 새해 벽두부터 억지로 찍어 눌렀던 만큼 환율은 크게 융솟음 치게 됩니다. 1월 2일 전거래일보다 61.50원이라 폭등한 1,321원으로 환율을 마감합니다. 이후 외환보유고 2천을 지키고자 한미사채를 쓰며 버텨보지만 서서히 올라 최근까지 1,400원을 저항선으로 테스팅하며 고환율이 계속 지속되게 됩니다.
2월 5일 만수에 이어 기획재정부장관으로 임명된 윤증현은 -%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외환유동성이 안좋아진다고 말하게 되죠. 이들이 이렇게 대놓고 고백할 때마다 우리는 주의를 기우려야 합니다. 뭔가 큰 걸 하겠다는 신호거든요.
2월 12일 드디어 금리인하를 하게됩니다. 증시, 금리 시장이 덤덤한 상황에서 1,400원 테스트를 하던 환율은 저항선을 뚫고 상승랠리를 이어가게 됩니다.
6일째 급등한 환율은 2월 17일 28원 오른 1,455원을 기록합니다. 이날 당국은 윤증현 체제이후 겉으로 보이는 첫 실개입을 단행합니다. 7억달러 수준으로 그 양이 미비하기 짝이 없습니다.
윤증현이 외화유동성을 언급하면서 외환보유고를 각별히 관리하겠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상컨데 현재 실개입할 달러 자체가 고갈된 상태에다가 수출증대를 통한 대기업 중심의 경제 모멘텀을 세워 나가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보입니다.
근데 문제는 현재 실탄도 거의 없는 상태로 보여지는 상태에서 당국의 미온적 태도의 시점이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좋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 환율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간략하게 살펴 보겠습니다.
이거 안지워지네요
1. CDS가 급등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CDS는 370안팎인 상태에서 외신에서는 대한민국 디폴트까지 운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2. 우리은행의 콜옵션 행사 포기로 인해 국내 금융업계에 대한 해외 시장의 시각을 악화시켰습니다. 현재 우리은행 CDS 프리미엄은 무려 580으로 감당히 안된 상태에서 파이넨셜타임즈는 칼럼을 통해 보복행위가 가해질 수 있다고 논평했습니다. 이미 올해 민간은행 중 외화차입을 성공한 은행이 단 한개도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어설픈 행보는 외화차입을 더욱더 힘든 지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3. CRS가 급락했습니다. 통화스와프(CRS)가 마이너스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몇번이고 말씀 드렸습니다. 간략하게 달러 빌려서 이자주고 원화 가져가줘서 고맙다고 이자주는 미친상황이라는 얘기죠. 문제는 1월 내내 CRS 1년물이 -%였지만 0.50%이내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1년물이 -1.45%입니다. CRS가 -%인 것도 심각한 상황인데 -1.45%이라니요. 상황이 심각해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더 심각한 것은 3년물이 -0.40%이라는 것입니다. 달러 수급에 대한 공포심이 단기에 끝나지 않고 더 길어질 것이라는 시장인식입니다. 도대체 언제 3년물이 -였는지.. 찾을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4. 스와프베이시스가 413bp까지 확대되었고 본드-스와프 역전폭도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냥 이것들이 벌어진다는 것은 달러가 무쟈게 고픈데 얻기가 힘든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한 외인들이 발을 빼는 결정적인 역활도 합니다.
5. 은행 3월 외채만기 몰림.. 롤오버가 얼마나 될까요? 이 얘기는 작년부터 나왔던 얘기였습니다.
6. 금리인하.. 상반기 1.5%까지 인하 예상. 이미 유동성함정 구간에 있어서 더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시장은 인하를 원하고 있으며 당국은 이렇게 할 것입니다. 시장이 이렇게 인식한다는 것은 각 지수에 반영이 됩니다. 비기축통화 주제에 1.5% 기준금리라뇨... 외화 탈출 금리로 딱 적정하네요.
7. 일본계 은행들의 회계 결산일이 3월 말입니다. 지금 일본도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상당량의 자금이 빠져 나갈 경우 환율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8. 미국발 위기입니다. 미국 CDS가 금년들어 전고점을 돌파했습니다. 저번에 경기부양안이 안되는 것이 우리나라에 긍정적이라는 글을 보았는데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여러가지 이유 중에 큰 부분이 바로 환율 때문입니다. 미국이 현재의 경기부양이 어정쩡 할 경우 오히려 달러 강세기조가 더 강해질 것입니다. 달러 폭락에 이은 미국의 막장 시나리오요? 당분간은 택도 없습니다. 우스운 경우지만 그저 우리는 미국이 잘되길 빌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GM 파산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직 은행들의 부실자산 문제가 끝나지 않습니다. 이런 불안 요소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불확실성은 환율상승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9. 유럽발 위기입니다. 러시아, 아일랜드가 디폴트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아이슬란드는 디폴트 선언했는데 아일랜드는 왜 짐까지 버티는 줄 아십니까? 원래 그넘이 그넘입니다만 바로 통화때문입니다. 아일랜드는 유로를 씁니다. 지딴애는 기축통화지요. 그래서 개막장이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여튼 유럽은 미국보다 더 힘든 처지에서 동유럽도 이곳저곳에서 디폴트 이야기가 끈이질 않고 있습니다. 뉴욕을 능가하는 금융의 핵심인 런던도 개막장입니다. RBS 등 은행들이 이미 작년에 천문학적인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파운드가 개털나는 등 한시 앞도 볼 수 없는 처지입니다.
10. 현물환 거래량이 대폭 감소했습니다. 작년 1분기 104억달러, 2분기 89억달러, 3분기 81억달러 4분기 38억달러.. 거래량이 감소한 이유는 환율 변동폭이 커지면서 딜러들이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거래량이 적으면 노랭이, 발갱이, 파랭이 등 여러 토끼들이 작전 펼치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작은 악재에도 환율이 크게 요동을 칠 수 있습니다.
11. 증시에서 외인들이 순매도로 돌아섰습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아시아에서 나홀로 강세를 띠고 나홀로 외인순매수를 기록했다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가는 리스크 프리이엄과 퍼등 봤을 때도 이미 고평가 상태였습니다. 환율매리트다 뭐다 증권애덜들이 주절거리는 거림은 다 서커들을 위한 낚시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지요. 게다가 펀더맨탈과 너무도 상이하게 움직이는 증시는 해도 너무 했습니다. 역시 혼자 오른 만큼 다른 나라보다 오늘은 잘도 내려주시네요.
12. 실탄 부족입니다. 외환보유고, 한미사채 거의 바닥입니다. 오늘 같은 날 7억달러라뇨.. 안한이만 못했습니다. 만수가 너무 많이 써서 없겠지요. 돈 젤 많이 썼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위인인데요
13. 북한 리스크입니다. 10년 공든탑 무너지는게 쥐새끼 이빨까는 것만큼 쉬울 줄 누가 알아겠습니까. 점입가경입니다.
14. 무역수지 악화입니다. 1월에만 무역적자가 34억불입니다. 카바가 안됩니다.
15. 3월 배당금 시즌 도래합니다. 배당금 송금은 달러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16. 당국은 이미 금리인하와 1,400선을 헌납하면서 강력한 개입의지를 버린 상태입니다. 어느선까지 보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전고점은 가뿐히 넘어 주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요인들이 16개가 되었지만 이것들은 이미 서로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속적으로 주면서 환율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미 지난 재료들도 있고 앞으로 줄 재료들도 있습니다. 당분간 환율을 내려갈 여지는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역시 문제는 당국이 얼마까지 허용하느냐입니다. 실탄이 없다고 해서 아에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독한 3월이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져 나올지 모를 일이지요. 아니.. 더... 이건 뭐..
......
곧 각종 색깔의 토끼들과 쥐새끼들이
인간을 다스리는 이상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곳간을 이미 먹어친 쥐새끼들은
이제 우리 공통의 집과 일터를 팔아 재낄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그 수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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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박찬종변호사의 미네르바 구속적부심 변론요지
박찬종변호사의 미네르바(박대성) 구속적부심 변론요지
-2009.1.15일 10:30분 서울중앙지법 501호 비공개법정
1. 피의자는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 피의자는 주거확실, 전과 없고, 한 개의 IP로 주소지에서 글을 작성 게재해 왔고, 확고한 주관과 자의식이 강하여 검찰수사를 면피키 위해 도주할 사람이 아니다.
피의자가 작성, 게재한 모든 글이 축적된 컴퓨터가 압수되어 증거인멸의 여지 및 우려가 전혀 없다.
2. 2009년 1월 10일 구속영장발부의 피의사실인 피의자가 인터넷에 올린 2회의 글(① 2008.7.30일 정부가 외화국유자산으로 재정차관원리금 상환의 환전을 중단 ② 2008.12.29일 정부가 수출입업자와 금융기관에 달러사재기 중지를 요청한 공문이 “외환시장을 혼란시키고,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에 대해서 살펴본다.
① 7월 30일자의 글과 관련, 실제로 정부가 보유외화로 재정차관자금상환의 환전을 중단한 조치를 내렸음이 밝혀졌다. 혐의가 없다.
② 12월 29일자의 정부가 금융기관에 ‘달러사재기자제공문’을 발송했다라는 글을 게재하기 사흘 전인 12월 26일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의 주재로 9개 금융기관의 외환관리 책임자를 소집, 연말 환율안정을 위해 달러가수요를 유발시킬 ‘달러사재기’를 자제할 것을 요청하고 그 이후 29일 오전까지 전화 등으로 지속적으로 요청한 사실이 2009년 1월10일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최모 국장이 확인하였는바 이는 영장발부 당시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사실로서 중요한 사정변경의 요소가 된다.
③ 미네르바는 위 2항의 회합, 지시사실을 전연 모른 체 12월 20경 이후 12월 29일 오전까지 인터넷 등에 오른 논설, 기사, 칼럼 등에서 정부가 구체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12월 29일자 글을 작성 게재 하였으며, 구속이후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
④ 검찰은 12월 26일에서 29일 오전까지의 재정부의 행위가 협조요청이며 공문으로 그 취지를 발송하지 않은 점을 들어서 “공문으로 발송하였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가장 핵심적 사실인 재정부의 금융기관 개입이 확인된 이상 ‘공문발송’이냐, ‘구두지시‘냐로 논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⑤ 검찰은 미네르바가 12월 29일에 게재한 글 때문에 외환시장에 혼란이 와서 재정부가 20억 달러를 긴급투입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구체적으로 환율에 개입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고 경제정보에 민감한 금융기관의 외환 딜러와 수출입업자들이 이를 확인하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났다. 따라서 미네르바의 위의 글이 2시간가량 인터넷에 게재된 것이 빌미가 되어 갑자기 외환시장에 혼란이 왔다는 것은 하늘을 쳐다보고 웃을 일이다.(앙천대소(仰天大笑))
⑥ 검찰은 미네르바를 석방할 경우 이른바 “사이버테러”가 기승을 부려 국가적 혼란이 온다고 하는데, 미네르바는 그 나름의 논리를 갖춘 의견을 제시했을 뿐 특정인을 지목하여 인격적 모욕 등의 글을 쓴 사실이 없어 그의 글을 “사이버테러”의 유형에 포함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3. 국가신인도, 국가이익이 심각하게 추락하고 있다.
정부의 외환시장개입은 범죄행위이다.
① 2009년 1월 10일 구속영장 발부 이후 한국의 국가신인도는 현저히 추락하여 엄청난 국가적 이익이 침해되고 있다. 한국이 가입한 OECD(선진국경제협력기구) 34개국 중 한국 을 제외한 33개국이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범죄행위로 다루고 있다. 유독 한국만이 정부가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사실이 미네르바구속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서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은 앞으로 국제외환시장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② 외신들은 한국정부의 불법한 외환시장개입과 개인“블로거”의 글까지 문제 삼는 태도를 비웃는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불명예를 해소하기위한 방법은 미네르바의 “즉각 석방”이다.
4. 미네르바구속에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 47조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 현재 헌법재판소의 심리 중에 있어 그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5. 재정부 강만수 장관, 국제금융국장 등을 증인으로 심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적부심사의 시간제약 때문에 부득이 증인신청을 생략한다. “미네르바의 글“이 탄생한 것은 전적으로 정부정책의 신뢰와 일관성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의 실책과 과오는 반성함이 없이 미네르바의 글을 문제 삼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이며, 정부의 실정을 오로지 미네르바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는 불구속수사가 원칙이다. 미네르바에게 그 원칙을 적용함이 마땅하다.
국익과 원칙을 고려하여 석방의 결정을 내릴 것을 간곡히 말씀드린다.
2009. 1.15 오후 4시
올바른사람들 공동대표 박찬종
해외에 까지 알려져 국제적 망신으로 부각되는 이 마당에 아직도 사리분간 못하고 짖어대는 것도 모자라
이젠 예전 버로우 탔던 똥찌꺼기들까지 떠올라서 더러운 냄새 풍기는 모습들이 참 암울합니다.
그들이 변화하길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날이 지날 수록 그 추접함이 추악함으로 변모하는 꼬락서니를 보자니
참 아름답네요~
허위사실 유포라는 간절한 명목으로 긴급체포된 미네르바도 불쌍하고
책임전가 대상을 발굴해내서 여기저기 물어뜯어대는 현정부의 개들도 불쌍하고
아직도 무엇이 진리인지 모른 채 수렁에 빠져 아둥바둥 허우적 거리는 몇몇 추종자들도 불쌍하고
이제는 인터넷에서조차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쥐의 눈을 두려워해야 하는 우리 국민들이 불쌍하네요~
정부와 여당이 이젠 독한 맘 먹은 듯 아예 국민에게 등 돌린 채 망국의 급행열차에 올라탔나봅니다.
미네르바를 참수하고 저잣거리 꼭대기에 메달아 보여주어 견제와 감시의 국민들에겐 공포의 재갈을 물려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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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외환보유액 감소도 미네르바탓(한겨레기사 펌글)
외환보유액 감소도 미네르바 탓으로 돌려
검찰 “미네르바 때문에 20억달러 소요”검찰 “글 실린뒤 개인 매수세 폭증…시장안정위해 추가소모”금융권 “당시 정부 시장개입 발언이 영향…당국 책임 더 커“
정남구 기자 김지은 기자 김경락 기자
» 전광우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2일 오후 국회 정무위에 나와 관계직원의 도움을 받으며 미네르바에 의한 외환 손실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검찰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아무개(31·구속)씨의 글 때문에 정부가 20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더 쓰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환 딜러 등 금융권 관계자들은 그의 글과 정부의 외환 개입액 증가를 직접적으로 연관짓는 것은 무리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 김주선)는 12일 박씨가 지난해 12월29일 <다음> 토론방 ‘아고라’에 올린 글 때문에 외환시장에서 달러 매수세가 폭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20억달러를 추가로 소모했다”며 “구체적이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12월29일 ‘정부 긴급명령 1호’ 글이 올라온 뒤인 오후 2시30분 이후 3시까지 이날 거래량의 40% 가까운 거래가 이뤄졌는데, 이는 평소 그 시간대에 하루 거래량의 10~20% 거래되던 것에 견줘 매수 주문이 폭증한 것”이라며 “30일에도 평균 하루 거래량 38억달러보다 22억달러가 많은 60억달러의 거래가 이뤄지는 바람에, 외환당국의 시장안정 비용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연말에 외환시장의 거래가 실제로 크게 늘어났다. 외환 딜러들은 개인들의 달러 매수 주문도 평소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거래 증가를 곧바로 미네르바의 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 외환시장 거래량 추이
무엇보다 먼저, 외환당국 스스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임을 미리 예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미네르바가 문제의 글을 올리기 닷새 전인 지난해 12월24일 “연말 환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며 “저가에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부작용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부 당국자조차 검찰의 설명에 대해 “당국의 시장 개입이 달러 수요 증가에 끼친 영향과, 미네르바의 글이 끼친 영향이 각각 얼마라고 계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둘째, 외환 딜러들은 미네르바의 글보다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언론 보도가 당시 달러 매수세 증가에 훨씬 큰 영향을 줬다고 지적했다. 한 은행 딜러는 “외환 당국의 개입 의지는 언론을 통해, 또다른 경로를 통해 이미 시장에 다 알려져 있었다”며 “그래서 개인 매수세가 많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은행 딜러도 “정부 당국이 (외환시장에) 세게 개입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개인들이) 당연히 (달러를) 사려고 들 수밖에 없었다”며 “미네르바의 글과 달러 매수세 증가를 연결시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선물회사의 한 연구원은 “미네르바의 글이 나온 29일 ‘개인’들은 달러 선물을 203계약 사는 데 그쳤고, 30일에 열 배가 넘는 2546계약을 순매수했다”며 “이는 개인들이 미네르바의 글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당국의 연말 환율목표 관리를 노려 달러 선물을 산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거액의 외환보유액을 소모한 게 문제라면, 그 책임은 미네르바보다 외환당국이 더 크게 져야 한다는 얘기다.
현정부가 건수하나 잡았네요!!
경제환란의 모든 책임을 미네르바에게 돌리고 있으니 말이지요.
검찰도 마찬가지이구요.
국민들을 완전히 세상 물정모르는 무식한 졸로 보는것 같아 더더욱 화가 납니다.
정말이지 이번 만큼 국민이 경제에 관심을 갖고 경제공부에 매달린적이 없는데
국민들의 교육수준 및 지적수준은 고려치도 않고 웬만한건 다아는걸 마치 아직도
국민은 개도해야 할 대상, 눈가리고 아웅 하는식으로 얘길해줘도 곧이 곧대로 다 믿을 것으로
아는걸 보면 정부로 부터 완전 대놓고 개무시 당하는것 같아
분노가 치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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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북한 미사일...위협의 실체와 정도는?
“북한은 대포동 1 뿐 아니라 대포동 2에 대해서도 죽 개발(work on)해왔기 때문에, 대포동 2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피터 플로리 미 국방부 국제안보정책 담당 차관보가 지난 9일(현지시간) 하원 군사위 전략군 소위 청문회에서 미사일방어망 구축 필요성을 의원들에게 강조하며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위협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그러나 같은 시점인 지난 7,9일 버웰 벨 주한미사령관은 각각 상.하원 군사위에서 “북한은 1990년 후반 이래 (대포동 등) 장거리 미사일 개발 활동 징후는 거의 보이지 않고, 대신 단거리 미사일 활동에 치중해 비약적인 도약을 이뤘다”며 단거리 미사일의 위협을 강조하고 그 사정권인 한반도 전역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위한 예산 필요성을 주장했다. 미 의회에서 국방예산을 심의하는 매년 봄이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국방부와 군 고위관계자들의 증언이 쏟아지는 가운데, 전략군측과 지역사령관이 저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예산을 따내야 하는 입장 때문에 일견 엇갈리는 증언을 한 것이다. 벨 사령관도 “북한이 대포동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해나갈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긴 했으나, 플로리 차관보의 증언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플로리 차관보를 비롯한 미사일방어 군고위관계자들은 그러나 북한 등의 장거리미사일 위협을 강조하는 동시에, 미사일방어망의 효율성과 예산 낭비 논란을 의식해자신들이 개발.배치해온 미사일 방어망이 시험발사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도 역설했다. 다음은 이런 점들을 접어두고, 13일 미 의회 속기록 등에 나타난 미 국방부와 전략군 고위관계자들의 북한의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 현황에 대한 판단 요지. ▲플로리 차관보 = 현재 우리의 미사일방어체제는 주로 개발과 시험을 계속하고 있는 단계이지만, 필요시 장거리 탄도탄을 요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냉전이 끝날 무렵인 1990년 16개국이 탄도탄 미사일을 보유했었으나, 현재는 25개국으로 늘었고, 중거리, 즉 사정 600km 이상 탄도탄 보유국은 5개국에서 9개국으로 거의 배증했다. 그중엔 북한과 이란 같이 가장 위협적이고 책임의식이 없는 나라도 포함돼 있다. 북한의 대포동 2는 핵무기 크기의 탄두를 탑재하고 미국의 더 많은 지역에 도달할 수 있다. 북한 수중에 장거리 탄도탄이 들어간다는 것은 사상 처음으로 미 국민이 위험에 빠진다는 뜻이다. 이들 나라는 (과거) 우리와 소련이 했던 것과 다른 비정통적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시험을 해보지 않고 신뢰도와 안전도를 별로 추구하지 않은 결과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유용한 미사일 능력을 보유한 뒤 이를 감추고 있다. 한두번 놀란 게 아니다. 한 예가, 북한이 노동미사일을 단 한번 시험한 후 (실전) 배치한 것이다. 또 한 예는, 1998년 북한이 대포동 1을 발사했을 때 놀랍게도 3단계 로켓을 사용한 점이다. 우리로선 북한이 그러리라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우리의 국제 미사일 방어 협력에서 특히 좋은 소식은 일본이 1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본은 특히 (탄도미사일의 형태까지 식별할 수 있는 고성능 레이더인) X밴드 레이더를 자국내 가장 적합한 지역에 배치키로 동의했다. (미국이 가장 취약한 미사일 위협은 북한서 오는가 중국서 오는가?) 우리가 현재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이란과 북한 같은 불량국가들의 위협이다. 정보계 판단으로, 이란은 2015년 ICBM을 시험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더라도 북한은 그보다 근접해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미 정보계는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가정하고 있다. 북한 스스로 핵무기를 가졌다고 주장하고 있고, 우리는 그 말을 믿는다. 가졌다고 가정해야 한다. ▲트레이 오베링 미사일방어국(MDA) 국장 = 북한과 이란은 장거리 탄도탄 추구를 멈춘 적이 없다. 미국의 현재 그리고 단기적인 미사일방어 실전 배치 활동은 이들 위험에 대한 직접 대응이다. (북한의 미 본토 공격시 미국의 요격 성공도는?) 우리는 시험을 활발하게 해오고 있는데, 그 결과를 분석해보면 (요격에) 성공한 것으로 나온다. 우리는 1999년-2002년 사이 지상배치 중간단계 요격 미사일방어체제(GMD)를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올해 5월하순부터 6월초 사이, 늦여름, 늦가을 등 3차례 더 발사시험을 할 예정이다./연합
최강썩이작성일
2006-03-1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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