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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F-16과 맞장뜬 후 몰락하기 시작한 Mirage F-1
F-16과 맞장뜬 후 몰락하기 시작한 Dassault Mirage F-1 Dassault Mirage F1은 프랑스산 단좌 제공전투기겸 공격기로 프랑스 Dassault Aviation에서 제작하였습니다.700대이상의 F1 전투기를 생산하여 프랑스공군과 수개국에 수출되었습니다.Dassault는 Mirage F1을 Mirage III과 Mirage 5 전투기의 후계로 개발하였습니다. 전작과 달리 후퇴각을 고익형으로 배치하고 통상적인 수평미익을 장착합니다.첫번째 시제형이 Dassault 자체자금으로 개발되어 1966년 12월 23일 첫비행을 실시합니다. 이 형식은 1967년 5월 프랑스공군이 채택하며 3대의 시제형을 발주합니다. A/B를 장착하여 더 추력이 향상된 SNECMA Atar 9K-50 터보젯엔진을 장착하여 F1은 Mirage III보더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집니다.Mirage III보다 익폭이 더 작아졌지만 F1은 전작보다 분명히 뛰어난 기체임을 증명합니다. 40% 더 연료를 탑재하며 던 단거리에서 이륙하고 Lo-Lo 임무시 뛰어난 항속거리를 가지며 기동성도 더 뛰어납니다.
Mirage F1C 프랑스공군이 요구한 전천후 요격기를 위해 Thomson-CSF Cyrano IV monopulse 레이더를 장착한 Mirage F1C이 개발됩니다. 후기형 Cyrano IV-1형은 제한적인 look-down 능력이 추가됩니다. Mirage F1전투기는 1973년 5월 프랑스공군에 도입됩니다, 이시기에는 2문의 내장형 30mm 기관포로만 무장하였지만 1976년 Matra R530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이 채용됩니다. 일년후 R550 Magic 미사일이 도입되는데 그리스공군이 자국이 도입하는 Mirage F1CG 전투기에 Sidewinder의 통합을 요구하여 미국산 AIM-9 Sidewinder가 Mirage F1의 무장으로 추가됩니다. 다음 생산분으로 79대가 1977년 3월부터 1983년 12월사이 생산되어 납입됩니다. 이들 기체는 Mirage F1C-200형으로 고정형 공중급유용 probe가 장착되면서 동체길이가 7cm 연장됩니다.Mirage F1은 Dassault Mirage 2000이 도입되기전까지 프랑스공군의 주력 요격기로 운용됩니다.Mirage F1C 수출형Mirage F1CE : Mirage F1C 스페인 수출형 45대 제작. Mirage F1CG : Mirage F1C 그리스 수출형 40대 제작. Mirage F1CH : Mirage F1C 모로코 수출형 30대 제작. Mirage F1CJ : Mirage F1C 요르단 수출형 17대 제작. Mirage F1CK : Mirage F1C 쿠웨이트 수출형 18대 제작. Mirage F1CK-2 : 9대의 F1C가 추가주문으로 쿠웨이트에 추가 공급 Mirage F1CZ : Mirage F1C 남아공 수출형 16대 제작
Mirage F1B프랑스공군은 20대의 Mirage F1B 복좌형 통상 전환훈련기를 주문합니다.1980년 10월부터 1983년 3월사이 납품되며 동체길이를 30cm 연장하여 좌석과 조종기가 추가됩니다. 내부연료탑재량과 내장기관포가 없어 가격은 더 저렴합니다. F1C에 탑재된 Mk 4 대신에 사출속도가 제한된 2개의 Martin-Baker Mk 10 제로제로 사출좌석이 추가되어 자중은 200 kg증가합니다. 그외 모든 면에서 F1B은 전투능력을 가졌으며 외부 기관포 포드와 연료탱크를 장착하여 내부공간의 부족한 부분을 대신합니다.Mirage F1BE : Mirage F1B 스페인 수출형 6대 제작. Mirage F1BJ : Mirage F1B 요르단 수출형 2대 제작. Mirage F1BK : Mirage F1B 쿠웨이트 수출형 2대 제작. Mirage F1BK-2 : 추가로 쿠웨이트가 발주하여 4대를 공급. Mirage F1BQ : Mirage F1B 이라크 수출형
Mirage F1A단좌형 지상공격기로 레이저거리측정기를 탑재하며 제한적인 공대공전투능력을 보유한 기체로 남아공 공군과 Dassault사가 협력하여 개발함.Mirage F1AD : Mirage F1A 리비아 수출형으로 16대 제작. Mirage F1AZ : Mirage F1A 남아공 수출형으로 32대 제작.
Mirage F1E단좌형 전천후 다목적 전투기겸 지상공격기.Mirage F1JA : 에쿠아돌 수출형 16기. Mirage F1ED : 리비아 수출형 14기 Mirage F1EE : 스페인 수출형 22대. Mirage F1EH : 모로코 수출형 14대. Mirage F1EH-200 : 모로코공군용으로 공중급유용 probe 장착 6기 제작. Mirage F1EJ : 요르단 수출형 17대 제작 Mirage F1EQ : 이라크 수출형 16기. Mirage F1EQ-2 : 단좌 방공형으로 이라크 수출형 16기. Mirage F1EQ-4 : 단좌 다목적 전투, 지상공격, 정찰형으로 이라크 수출형 28기Mirage F1EQ-5 : 단좌 대함공격형으로 이라크 20기 수출. Mirage F1EQ-6 : 단좌 대함공격형으로 이라크 수출형 소량 제작됨. Mirage F1EDA : Qatar 수출형 12기
Mirage F1DF1E 전천후 다목적 전투기겸 지상공격기의 복좌 훈련용Mirage F1JE : 에쿠아돌 수출형 2대 Mirage F1DD : 리비아 수출형 6대. Mirage F1DDA : Qatar 수출형 2대
Mirage F1CRMirage F1이 성공적으로 생산된 기체임이 분명해지자 Dassault사는 가장 중요한 고객인 프랑스공군을 위한 정찰형의 가능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투기 비용의 상승은 이런 목적을 위해 포드를 부가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대안임을 의미했습니다. 많은 프랑스 공군기와 몇개 수출국가(이라크공군의 Mirage F1EQ등)는 동체하부에 장착할 수 있는 다양한 정찰용 포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공군을 위한 전술 정찰형의 개발은 계속되어 Mirage F1CR-200 1호기가 1981년 11월 20일 첫비행을 실시합니다. Mirage F1CR은 다양한 정찰장비를 동체 내외부에 장착하여 운반합니다. SAT SCM2400 Super Cyclone 적외선 linescan장비가 기관포를 들어낸 공간에 장착됩니다. 또한 기수아래 공간에는 Thomson-TRT 40 panoramic카메라나 Thomson-TRT 33 수직카메라를 장착합니다. Cyrano IVM-R 레이더에는 추가적인 지상 및 등고선 지형 추적용 모듈이 추가됩니다. 추가적인 광학시과 전자식 센서를 동체와 주익의 파일론에 장착하여 운용할 수도 있습니다.모두 64대의 Mirage F1CR이 프랑스공군에서 주문되어 일호기가 1982년 11월 10일 비행하며 첫번째 비행대에서 작전시작은 1983년 7월부터입니다.
Mirage F1CTMirage F1CT는 Mirage F1C-200의 전술지상공격형입니다. 첫번째 시제형 2대가 1991년 5월 3일 첫비행을 합니다.이어 1995년까지 55대가 프랑스공군의 정비창에서 개조됩니다. Mirage F1CT 계획은 F1C의 항전장비를 F1CR형으로 개수하는 작업입니다. Cyrano IV 레이더는 Cyrano IVM-R로 대체되고 항법/공격 시스템은 업그레이드되고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장착합니다.또한 Mk 10 사출좌석으로 변경됩니다.개량된 레이더 탐지겸 경보기. chaff/flare 살포기 그리고 보안무전기가 추가됩니다 또한 다양한 신형무장을 운용할 수 있는 설비들이 추가되었습니다.
Mirage F1AZ 과 Mirage F1CZ남아공은 Mirage F1AZ 지상공격기와 레이더를 장비한 Mirage F1CZ 전투기 두종을 운용하였습니다. 남아공의 항공기 제작업체인 Atlas Aircraft Corporation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Mirage F1을 면허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받습니다.그러나 Atlas에서는 남아공공군을 위해 생산한 기체는 없는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발주분인 48대의 Mirage F1 (32대의 F1AZ과 16대의 F1CZ) 전투기중 2대를 1975년 5월 5일 납입합니다. 이들 F1CZ는 비밀스럽게 포장되어 SAAF C-130 Hercules로 수송됩니다. 동년 7월 남은 F1CZ들이 납품되어 남아공 Waterkloof기지에서 제 3 비행대가 재창설되어 운용을 시작합니다. 1975년 남아공 에어쇼에서 F1CZ가 선보이지만 이미 남아공군이 작전운용중이라는 사실을 일반인들을 알지 못합니다. F1AZ는 Dassault사와 남아공군이 협력하여 개발한 지상공격형입니다. AZ형은 레이저측정기를 장착하여 무유도 폭탄이나 로켓탄의 조준과 폭격에 높은 정확성을 부여합니다. Optical는 남아공의 ARMSCOR사 Optics (후 ELOPTRO) 사업무가 개발합니다., 1997년 퇴역하였슴에도 불구하고 F1AZ의 정확한 무장투하능력은 아직도 남아공공군에 의해 비밀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Jane's Defence Weekly같은 매체나 전직 조종사들의 보고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의하면 AZ형는 비유도 탄도모드애서 미공군의 F-15E와 근접하는 정확성을 가진다고 합니다.( 출처: Jane's 'F15', Electronic Arts, 1996; Jane's All the World's Aircraft, 2000)
F1AZ는 1975년 11월부터 1976년 10월 사이 납품되며 1비행대에 소속되어 남아공 Waterkloof기지에 배치되며 이전투기의 도입은 1980년 2월 에어쇼에서 공개되기전까지 비밀로 유지됩니다. 남아공군은 1992년 F1CZ를 퇴역시키고 1997년에는 F1AZ도 퇴역시킵니다. 1998년 University f Stellenbosch가 퇴역한 F1CZ를 구입하여 aeronautical Engineering에서 연구에 사용합니다.남아공 항공기술자협회 Aerosud에서 Mirage F1에 Mig-29의 Klimov RD-33 엔진을 장착, "SuperMirage" F1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MAKS Airshow에 서방기체로는 처음으로 참가한 바 있습니다.2004년 최대 21대의 F1AZ가 Hoedspruit기지에 보관되어 수요자를 찾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2006년 4월 가봉에서 Mirage F1AZ과 부품을 ZAR 40백만에 구입합니다. 2006년 8월 17일 프랑스 Agence France-Presse (AFP)보도에 의하면 2대의 업그레이드된 구 남아공의 F1AZ이 가봉 독립기념일에 Libreville상공에서 축하비행을 했다고 합니다.기체의 재생과 업그레이드는 Aerosud. Aerosud Group 관리책임자가 수행했다고 하지만 수량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정보에 의하면 겨우 3대만을 가봉정부가 도입했다고 합니다.
Mirage F1CG그리스는 40대의 Dassault Mirage F1CG 단좌형을 도입합니다. 1974년 F1CG가 첫발주되고 1975년부터 그리스공군에서 운용을 시작합니다.그리스공군 334/342 비행대에서 운용한 이 기체들은 Sidewinder AIM-9P 미사일을 Matra Magic II 대신 운용하는데 4발을 장착하여 2발만 장착하는 것보다 탑재량도 증가하였습니다,.그리스공군은 2003년 6월 30일 남아잇던 27대의 Mirage F1CG들도 퇴역시키는데 28년간 운용하면서 160 000 비행시간을 기록하였고 일부 F1CG는 비행불가능한 상태로 전시중입니다.
Mirage F1M-53Belgium, Denmark, Netherlands, Norway등이 보유한 F-104G를 대체하는 "European" NATO 전투기 경쟁에 참가한 기종입니다. 1974년 12월 22일 첫비행을 실시한 Mirage F1.M53은 더 강력한 SNECMA M-53엔진을 장착하고 몇군데 개량을 하였지만 미국 General Dynamics F-16에 패배합니다.Mirage F1C이 장착한 Atar 9K-50 터보젯엔진을 Mirage F1.M53에서는 SNECMA M53 터보팬으로 교체하여 드라이추력 5550kg, A/B 추력 8500kg으로 강화되고 동체구조를 대폭적으로 재설계 강화하여 지상공격과 장거리 차단임무및 요격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개량합니다. F1C과 비교하여 F1.M53은 연료탑재량이 증가하고 공기흡입구가 대형화되었으며 하부가 강화되어 무장탑재량이 증가합니다. 기수형상은 접이식 공중급유용 프로브를 장착할 수 있도록 변경됩니다. 기본무장으로 2문의 30mm 기관포는 유지되고 4톤의 무장을 주익과 동체 7군데 장착부에 탑재할 수 있습니다.당시 경쟁기종은 Saab 37 Viggen과 General Dynamics F-16이었습니다. 이 경쟁에서 탈락한 후 F1은 더이상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하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실전기록남아공Border War에 투입되어 1981년과 1982년 앙골라공군 MiG-21 2대 격추s in 1981 and 1982. 1988년에는 2대의 F1AZ이 앙골라에서 SA-13 Gopher SAM에 격추됨 1987년 Operation Moduler에서 쿠바 FAR MiG-23ML과 교전하여 AA-7 Apex 혹은 AA-8 Aphid AAM에 피해를 입음남아공은 모두 6대의 F1AZ과 3대의 F1CZ를 상실모로코1975년 30대의 Mirage F1CH을 발주하여 1978년 도입시작. 1979년 Polisario Front와 Western Sahara에서 교전하여 기관포와 SA-7미사일 공격에 고전, 1979년 11월 1대 손실. 1981년에는 리비아가 공여한 SA-6과 SA-9 미사일에 2대가 격추됨. 이후 급히 chaff/flare dispenser를 장착하기 시작1979년부터 1988년 Polisario와 교전으로 적어도 7대가 격추되고 6대가 사고로 손실 에쿠아돌Ecuadorian Air Force's (FAE) Mirage F1JA은 1981년 1~2월 페루와 Paquisha War 수행Peruvian Air Force (FAP)의 Mirage 5P과 Sukhoi Su-22M가 헬리본 호위임무를 수행하자 공중초계임무 수행1995년 Cenepa War에서 ,전방배치된 Mirage F1과 Kfir C.2가 페루와 전투임무수행. 1995년 2월 2대의 Mirage F1JA이 전투에 참가 Matra R550 Magic AAM으로 페루공군 Su-22M 2대를 격추하고 Kfir는 A-37B Dragonfly 격추프랑스프랑스공군 Mirage F1 전투기가 1984년 차드에 첫 해외 파견을 하는데 Operation Manta작전시 리비아를 견제하기 위해 4대의 Mirage F1C-200과 4대의 Jaguars와 함께 배치, 1986년에도 Operation Epervier 수행을 위해 차드에 4대의 F1C-200와 8대의 Jaguar, 2대의 정찰공격형 F1CR도 배치2007년 10월에는 아프칸에 Mirage 2000 3대와 Mirage F1 3대가 Kandahar기지에 배치되어 남부아프칸의 전술정찰과과 근접공중지원임무 수행이라크이란 이라크전에 투입된 Mirage F1EQ는 차단, 지상공격과 대함임무를 수행합니다., 1981년 11월 Mirage F1은 이란공군 F-14에 격추됩니다. 1988년 종전단계에 Mirage F1EQ-5/6와 이란 F-14사이에 전투가 벌어집니다.F1EQ-6는 F-14's AWG-9 radar/fire-control system에 적합한 ECM 장비를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1988년 7월 19일 4대의 Mirage가 2대의 이란공군 F-14를 공격하여 손실없이 격추시킵니다. 전쟁중 이란공군 F-14는 적어도 14대의 이라크 Mirage F1을 격추시켰는데 2대는 Mirage F1EQ-4이고 나머지는 EQ-5 과 6입니다. 1987년 F1EQ는 2기의 Exocet 미사일로 페르시아만에서 미해군 USS Stark (FFG-31)를 공격합니다.1991년 걸프전에서 2대의 F1EQ가 Exocet로 미해군을 공격하려다 사우디공군 F-15C에 격추됩니다.
운용현황Dassault Mirage F1는 13개국에서 사용되었고 현재는 8개국이 운용중입니다. 프랑스외에 유럽에서 3개국, 남미 1개국, 중동지역 5개국 및 아프리카 4개국입니다. 현재운용국가에쿠아돌 공군 16 F1JA & 3 F1JE. 프랑스공군 250댜도입, 최근 단 3개비행대만 운용중가봉공군 3 F1AZ (1 may be an F1CZ). 이란공군 1991년 걸프전당시 넘어온 이라크공군기 억류중 24 F1EQ과 F1BQ 요르단공군 17 F1CJ, 17 F1EJ, 2 F1BJ & 2 F1DJ. 리비아공군 16 F1AD, 16 F1ED & 6 F1DD보유중 대부분 지상계류중이었으나 29대를 재생하여 운용시작모로코공군 30 F1CH & 20 F1EH.1979년부터 1988년사이 7대는 격추되고 6대는 사고로 손실스페인공군 42 F1CE, 24 F1EE & 6 F1BE. 스페인공군 F1은 최근 Baltic Air Policing 임무를 위해 배치됨
과거운용국으로 현재는 보유하지 않는 국가들그리스공군 40 F1CG. 이라크공군 93 F1EQ & 15 F1BQ. 쿠웨이트공군 27 F1CK & 6 F1BK. 카타르공군 13 F1EDA & 2 F1DDA. 남아공군 32 F1AZ & 16 F1CZ.
일반제원Crew: 1 길이: 15.33 m (50 ft 3 in) 익폭: 8.44 m (27 ft 8 in) 기고: 4.49 m (14 ft 8 in) 익면적: 25 m² (270 ft²) 자중: 7,400 kg (16,000 lb) 적재중량: 11,130 kg (24,540 lb) 최대이륙중량: 16,200 kg (35,700 lb) 엔진: 1× SNECMA Atar 9K-50 afterburning turbojet 최대속도: Mach 2.3 (2,573 km/h, 1,600 mph) at 11,000 m (36,000 ft) 전투행동반경: 425 km (229 nm, 265 mi) 페리항속거리: 2,150 km (1,160 nm, 1,335 mi) 상승고도; 20,000 m (66,000 ft) 상승율: 215 m/s (42,300 ft/min) 익하중: 450 kg/m² (91 lb/ft²) Thrust/weight: 0.64 무장기관포: 2× 30 mm (1.18 in) DEFA 553 cannons with 150 rounds per gun 로켓탄: 8× Matra rocket pods with 18× SNEB 68 mm rockets each 미사일: 4× AIM-9 Sidewinders OR Matra R550 Magics, 2× Super 530Fs, 2× AM-39 Exocets, 2× AS-30L 폭탄: 14,000 lb (6,300 kg) 의 다양한 무장과 정찰포드, 연료탱크등을 외부하드포인트에 장착가능
< 출처 : 야후 - 비겐 (viggen) 님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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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국산 고등훈련기 T-50의 날개는 꺾이지 않는다
한국 최초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일명 검독수리(Golden Eagle)
일부에선 F-16 카피, 외국산 부품으로 구성된 조립품 등 부정적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떠한가!우리가 대한민국의 이름을 달고 만든 항공기임에는 틀림없지 않은가! 그리고 잘 날고 있지 않은가!
345m의 짧은 이륙거리를 통해 활주로를 박차오르는 골든이글의 이륙장면을 보고 있자면, "이야~ 시원스럽게 잘 뜬다!!!"라는 느낌이 든다. T-50은 현재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 양성을 위한 고등훈련기로 활용되고 있으며, 2007년 1월 부터 시작하여 5개 차수의 조종사를 배출해 내면서 조종사양성 기간과 비용의 획기적인 절감하여그 성능을 입증하고 있다.
1박 2일이라는 연예프로그램 녹화 현장을 가보면, 15~20여대의 카메라와 80여명의 스태프가 동원된다고 한다. 스태프들은 주인공 6명의 세세한 움직임과 말 한마디까지 카메라에 담아내어 촬영보다 긴 편집기간을 거친다.그리고나서, 방송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은 단지 6명!항공기에 탑승하는 사람 역시 1~2명 뿐이다.하지만, 완벽하고 안전한 비행을 연출하기 위해 '정비, FOD, 관제, 기상' 등 각자 위치에서 노력하는 수십, 수백명들의 장병들이 있기에 조종사들는 안심하고 기량껏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수 있다.
이글루(항공기 격납고)에 보관 중인 T-50의 모습이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처럼 근사한 자태와 위엄을 내뿜으며 서있는 골든이글의 기체는 실로 근사하다.항공기의 눈이 되는 조종석에서 시작되어 앞으로 길게 내뻣은 검은색 머리부분은 검독수리의 강한 부리와 닮았다.더욱이 부드러운 하얀색 바탕에 훈련기 특유의 붉은색 장식은 한 껏 그 멋을 더한다.
현재 공군에서 고등훈련기로의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지만,T-50의 나래짓을 포용하기에 한반도 하늘은 좁다!!!그렇게 염원하던 UAE 수출건은 최근 아쉽운 결과를 남겼지만, 싱가포르 수출건이 올 해 말에 결정된다.응원합시다!!!그리고, T-50의 재발견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2009년 10월 T-50의 첫 번째 변신이 시도된다.잠시 우리 곁을 떠나있었던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스"로 다시 태어난다.초음속기의 추력과 우수한 기동성을 십분 살려 기존에 운용했던 아음속기인 A-37보다 역동적인 특수비행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새로운 도장과 특수기동으로 무장한 검독수리가 움추렸던 나래를 힘껏 펴고 비상할 날이 기다려진다.
[출처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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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풍경(현장취재)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풍경
해사 63기 임관식이 3월13일 진해에서 열렸다
독도함, 세종대왕함 등 한국해군이 보유한 모든 전투함들이 종류별로 한척씩 정박하여 해군의 발전된 위상을 과시했다. 해군사관학교 63기 생도들의 졸업식이 3월13일 진해의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비롯하여 이상희 국방부장관, 정옥근 해군참모총장, 김학송 국회국방위원장, 김태호 경남도지사 등 내빈이 참석하여 젊은 장교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우리는 독도함, 세종대왕함 등을 스스로 건조하며 대양해군의 목표를 이루어 가고 있다." 라며 지난날의 업적을 평가 하면서 "졸업생 여러분은 해군의 미래를 이끌어 갈 조타수다." 라고 하며 신임 장교들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었습니다. 또 "대양해군의 꿈을 앞당기자"라는 말을 하였는데, 대통령께서 대양해군에 대한 의지를 "뭐 뭐 하자!" 라는 강한 표현을 써 가면서 피력 했기 때문에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으로 보고, 이를 지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 북한 관련 발언에서 "북한은 현재 육해공 모두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민간까지 위협을 서슴치 않고 있다." 라고 한 뒤 "이 시간에도 북한 화물선이 저 앞의 제주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아마 남포항으로 갈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위협에도 북한선박의 안전을 보장 하고 있다. 이렇게 남북은 대결이 아닌 상생공영으로 가야 한다."며 평화를 염원하는 뜻을 밝혔습니다. 해군사관학교장 최윤희 중장은 "올해는 해군의 창설자인 손원일 제독 탄생 100주년인 만큼 여러분에게 거는 기대는 더 크다."라며 신임 장교들에게 국가안보와 해군발전을 위한 의지를 다져주었습니다. 졸업생 전원은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참석 귀빈들과 일일이 악수한 후, 후배들의 분열을 지켜보며 박수와 환성으로 화답 했습니다. 분열이 끝나고 모자를 하늘 위로 던져 올리며 졸업식을 마쳤는데, 오늘 임관한 200여명의 해군, 해병대 장교들은 투철한 국가관과 굳건한 사명감으로 복무에 임하여, 대양해군의 염원을 이루어 주길 바랍니다.▼식전 행사로 해군의장대의 시범이 있었습니다. 의장대 뒤로 209급 잠수함 이억기함과 세종대왕함이 보입니다.
▼대통령에 대한 경례와 동시에 독도함 함상에서 축포를 쏘고 있습니다.
▼모든 생도들과 악수를 하고 있는 대통령 내외분과 귀빈들.
▼악수가 끝나자 P-3C 1대와 Lynx헬기 6대가 행사장 상공을 축하비행 하였고, 이어서 UH-60 2대가 날아와 UDT대원들의 수상강하 시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후배들의 축하분열에 박수와 환성으로 화답하고 있는 졸업생들.
▼이번 행사에는 가장 큰 독도함부터 가장 작은 반잠수정까지, 가장 최신형인 윤영하함 부터 가장 오래된 포항급, 울산급 까지 한국해군이 보유한 거의 모든 전투함들이 총출동하여 멋진 광경을 연출해 주었습니다.
출처: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kdn0404@yahoo.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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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다시돌아온 공군 블랙이글스
잠정 해체됐던 공군의 곡예비행단 ‘블랙이글스’가 해체 2년만인 내년 10월, 다시 날아오르게 됐다.공군은 14일, 지난 해 서울에어쇼에서 고별비행을 마지막으로 잠정 해체되었던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내년 10월에 계획된‘서울에어쇼 2009’를 통해 다시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새롭게 선보이는 블랙이글스는 세계 최초의 초음속 훈련기인 T-50으로 운영되며, 전 세계에서 초음속기로는 유일하게 8기 대형으로 특수비행을 펼치게 된다.이를 위해 블랙이글스는 금년 1월, 이철희 중령(공사 39기, 41세)을 팀장으로 재창설해 박대서 중령(진)(공사 40기, 40세)을 비롯한 8명의 조종사를 새롭게 충원했으며 현재 ① 기종전환 ② 특수비행자격 ③ 기동개발 ④ 부분훈련 ⑤ 전체훈련 등 5단계로 나누어 세계 최고수준의 특수비행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으며 이제 기종전환과 특수비행자격 훈련단게를 마친채 기동개발에 몰두하고 있다.특히 초음속기로서 추력이 좋고 비행성능이 우수한 T-50 항공기의 특성을 살려 아음속 항공기인 A-37로 운영할 때보다 더 역동적이고 웅장하며, 독창적인 면모를 살리고, 8기 편대를 통해 더욱 다양하고 화려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팀원들은 매일같이 머리를 맞대고 세계적인 특수비행팀인 미국의 블루엔젤/썬더버드, 영국의 레드 애로우 등의 비행장면이 담긴 영상과 사진 탐구 등을 바탕으로 심층 연구 중이다.처음 선보이게 될 기동 중 8기의 항공기가 동시에 동체를 회전시키는 ‘본톤 롤(Bonton Roll)’이나 길게 늘어선 편대가 수직방향으로 크게 원을 그리는 ‘에쉴론 루프(Echelon Loop)’ 등이 우선 연구된 기동과목이다.내년 3월까지 기동 개발이 완료되면 행사가 열리기까지 6개월 동안 4, 5단계에 해당하는 본격적인 특수비행 훈련을 시작한다. 먼저 1~3대로 구성되는 편조별 훈련을 실시한 후 최종적으로 모든 항공기가 동시에 참여하는 전체 훈련을 통해 에어쇼의 완벽한 대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국산 T-50 훈련기로 새롭게 선보일 블랙이글스를 지휘하며 에어쇼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철희 중령은 “블랙이글스가 공군의 명예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팀원 모두가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특수비행을 선보일 것입니다.”며 굳은 각오를 다졌다.에어쇼 전용 T-50 항공기 10대는 현재 별도 설계 중에 있으며, 팀원들은 같은 기종인 T-50 훈련기를 이용하여 비행훈련에 임하고 있다. 내년에는 현재 훈련기의 도장에 약간의 특징만 살려서 에어쇼기동을 하고, 올 연말에 항공기 외장 디자인을 공모하여 2010년 5월에 새롭게 탄생하는 항공기는 블랙이글스와 어울리는 외양을 갖출 예정이다.
자료제공 : 생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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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카모프 Ka-50 호컴 (Hokum) 공격헬리콥터
카모프 Ka-50 호컴 공격헬리콥터
1976년12월, 소련은 육군 지원용 공격 헬리콥터 개발 계획을 마련하였다.밀(M.L Mil)설계국과 카모프(Kamov)설계국은 각각 신형 헬기 개발 경쟁에 들어가
각종 뫀업을 제작,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카모프의 헬리콥터 설계자들은 1960년대부터 상하 2개의 메인 로터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2중 반전 로터를 채용한 시속 400km/h의 V-100 전투 헬리콥터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그러나 이 헬리콥터는 제작에 이르지는 못했다.
소련 정부의 육군 지원용 공격 헬리콥터 개발계획에따라
카모프 설계국은 1977년 1월부터 V-80 신형 전투 지원 헬리콥터 개발에 착수하였다.이 전술 헬기의 기본임무는 지상의 전차와 장갑차량 파괴였다.헬기는 임무 수행 후 생존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는 평가에따라
카모프 설계국은 공중과 지상의 적에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야만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카모프의 헬리콥터 설계자들은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된 2중 반전 로터를 신형 헬기에 적용하고,
기체는 기동성이 뛰어나고 레이더망에 잘 포착되지 않도록 작고 가볍게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조종사 1명만 탑승한다는 획기적 개념을 마련하였다.조종사가 항법사 임무를 통합 수행하는 전투 폭격기나 전술 공격기에의하여
이미 증명된 것이기 때문에 1인승 공격 헬기도 가능하다는 발상이었다.
공격 헬기는 표적 가까이까지 접근하는 동안
적 대공포를 피하기위해서는 매우 낮은 고도(5~50m)를 비행해야만한다.그리고 작전/항법사는 낮은 고도에서는 임무를 수행할 수 없으므로,
평지의 표적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35~70m 고도까지 상승하여야한다.그러나 이러한 높이에서는 독립된 조준기와 감시 시스템없이는 표적에대한 공격이 어렵다.
카모프 설계국은 표적 발견, 추적 및 자동 조종 시스템을 통합하면 조종사가 작전/항법 임무를
심리적 부담없이 병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재하에 헬기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1970년대말까지 소련의 기술력은 이러한 종류의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어낼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카모프 Ka-25와 Ka-27는 이미 잠수함 자동 탐색과 항법 지원 장비들을 갖추고있었다.
또한 이 장비는 헬기 상호간의 자동화 데이터 교환 능력을 추가로 갖추었기 때문에
전투 시 발생하게되는 혼란 감소 등의 효과가 있었다.
소련 툴라 기기 제작국에서는 9A4172 비키르(Vikhr) ATGM/미사일 발사 시스템을 개발하였는데,이 시스템은 레이저 빔 유도 방식이었으며, 이 시스템에 사용될 유도탄들은
수석 공학자 A.G 시푸노프의 지도하에 개발되었다.
레이저 빔 유도방식은 적 ECM장비의 방해를 적게 받는 장점과 충격/근접 2중 신관을 사용하여
반응장갑 관통력이 우수하며 적 항공기 공격도 가능하였다.
또한 자동 관측 및 사격 시스템 개발 경험이 풍부한 제니스 기계 설비공사는 자동 조준 시스템과
자동 미사일 유도 장치를 개발하였으며, TV 조준 시스템은 Su-25T 공격기와
카모프 V-80 신형 전투 지원 헬리콥터에 사용되기 위하여 개발되었다.
Ka-50 호컴의 원형기 V-80 극 초기 축소 모형
V-80 신형 전투 지원 헬리콥터에 탑재될 기관포는 가장 효율적인 무기를 선택해야했는데,
카모프 설계국은 툴라 기기 제작국의 권유에따라 BMP-2에 사용된 2A42 30mm 기관포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카모프 설계국은 2A42 30mm 기관포를 기수에 탑재하면 심한 반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였고,
만약 동체 하부에 탑재하게되면 헬기의 전고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동체 우측에 탑재하기로 결정하였다.
결과적으로 V-80 신형 전투 지원 헬리콥터는 강력한 무기들로 무장하라는 요구에의해대지 공격용 미사일과 UPK-23-250 23mm건 포드, 소형 폭탄과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등
다양한 무기들을 무장하게된다.
Ka-50 호컴의 원형기 V. 80 실물 크기 뫀업비키르(Vikhr) AT-9 대전차 미사일, 로켓 포드,
R-73(AA-11) / Kh-23(AS-7)단거리 적외선 유도 공대공 미사일, 2A42 30mm 기관포와 탄약
NPPU-80 건 마운트에는 BMP-2에 사용된 2A42 30mm 기관포가 탑재되고, 동체 오른쪽 측면에 고정 장착하였다.유압 가동식으로서 상 + 3.3도. 하 -37도, 우측 9도 이상으로 움직일 수 있다.탄약 상자는 2개이며 앞상자에는 철갑탄 240발, 뒤쪽 상자에는 고성능 대전차 고폭탄(HE) 230발이 적재되어있다.이 탄약들은 더블 사이드 벨트에의해 공급되며 조종사는 손 쉽게 탄을 선택하여 공격할 수 있다.
사격 통제 장치는 빠르게는 550-600 rpm의 속도로, 느리게는 350 rpm의 속도로 발사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추가로 파일런 안쪽에는 UPK-23-250 23mm기관포 포드를 장착할 수 있다.
Ka-50 호컴은 야전에서의 보급 및 무장 장착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위하여
파일런에 500kg용 전기식 호이스트를 장착하여 신속한 재무장이 가능하다.러시아측은 Ka-50 호컴 공격 헬기가 미국의 AH-64 아파치보다 전술적 측면에서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카모프 기술자들은 V-80 신형 전투 지원 헬리콥터의 생존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다양한 재료 비교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었다.
V-80 헬기는 AH-64A 아파치 또는 Mi-28 보다 더 아담한 사이즈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조종사 보호용 장갑 강화에 있어서 더욱 유리했다.그리고 엔진은 동체 양쪽 측면에 각각 1기 씩 장착하여 동시 피탄을 피하도록 조치하였다.
생존성에 역점을 두었던 카모프 설계국은 다음과같은 개발 방침을 마련하였다.
엔진은 동시 피탄을 방지하기 위하여 동체 좌우에 각각 1기씩 장착한다.
조종석은 강력한 방탄 유리와 장갑으로 보호한다.
연료 탱크, 비행 제어용 유압 장치 등 주요 부분은 복합 재료를 사용하여 방어한다.
강력한 로터 블레이드
연료 공급 시스템 피탄 등 긴급 사태 발생시 30분 간 비행 가능한 대비책 마련
보조 동력 시스템 도입
카모프는 조종석 방탄을 위해 세라믹 패널(Mi-28에 사용)을 옵션으로 채택하여 테스트에 들어갔다.
세라믹 패널은 강철 장갑보다 훨씬 뛰어난 방탄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몇 가지 문제가 발견되어 포기하였다.이후 장갑 개발은 GosNIIAS 연구소에의해 완료되었는데,
이 장갑은 가볍고 방탄 능력이 우수하여 헬기 중량 감소가 가능하였다.카모프는 20mm탄을 비롯 더 작은 구경의 실탄 사격 테스트를 실시하기로 하였다.방탄 장갑을 부착한 조종석에 실제 사격이 가해졌으나 조종석은 아무런 피해가없어
방탄 장갑은 100% 안전성이 입증되었다.
Ka-50 호컴에 사용하기 위하여 개발된 방탄 장갑.
관통되지 못하고 튕겨나간 20mm 탄의 흔적이 보인다.
카모프는 조종사 안전에 최대한 노력, 몇 가지 안전 지침을 마련하였다.
자동 비상 탈출 가능한 사출 좌석 설치.
비상 착륙시 발생하게될 큰 충격을 최대한 흡수할 것.
추락시 조종석 충격 완화 조치.
추락시 연료 공급 시스템 화재 발생 방지 등 이었다.
조종사 비상 탈출 시스템은 즈베즈다 연구소의 기술자 세베린에의해 어렵게 개발되었다.여러 전술 및 전투기와 동일하게 사출 좌석 방식을 사용한 이 탈출 시스템은
소련 Mi-4와 미국 S-67헬기에의해 이미 테스트 되었었으나
V-80(Ka-50 호컴)공격 헬기가 최초로 사용하는데 성공한다.
카모프는 강력한 경쟁기종인 미국 AH-64 아파치와 밀 설계국 Mi-28의 발전 과정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Mi-28이었다.
카모프 수석 공학자 세르게이 V. 미헤예프는 휘하의 기술자들에게
가장 강력하고 컴팩트한 공격 헬기를 제작하도록 독려하였다.
조종석 방탄유리 두께는 55mm이며 측면에 설치된 방탄장갑은 20mm탄의 피격에 견딜 수 있다.Ka-50 호컴은 헬리콥터로서는 유일하게 세계 최초로 전투기 방식의 비상 탈출 시스템을 채택하였다.제로 고도에서 순간 탈출이 가능한 로켓작동식 낙하산이 장착된 NPO사의 K-37-800 사출좌석을 채택하였으며,
사출 시 조종사 탈출직전 로터가 자동 이탈되어 조종사가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게끔 고안되었다.
동체와 세미 동체 인입식 랜딩기어는 착륙 시 충격을 최대한 흡수하도록 설계되었다.한명의 조종사가 조종과 공격을 병행 수행하므로 자동화로 작업 부담율을 경감하기위하여
해군헬기에 사용되었던 자동 호버 시스템을 개량 탑재하였다
1978년, 1:6 스케일의 뫀업이 만들어져 그해 11월 TsAGI 풍동 연구소에서 공기 역학적 테스트가 실시되었다.
그 당시 소련 정부는 여러 항공사가 협력하여 항공 기술을 개발하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지시,Su-25T 공격기 발달 임무를 수행하던 수호이의 기술자들이 카모프 기술자들과 공동 연구에 착수하게되었는데,
이것이 카모프 설계국에게 많은 도움이되어 거의 20가지에 달하는 각종 기기들을 발명하게된다.
1980년 8월, 소련 국가 간부최고회의는 공격 헬기 비교 테스트를 결정,
카모프 V-80과 밀 Mi-28은 본격적인 경쟁에 들어서게되었다.최고 간부회의는 우선 양 설계국이 시제기를 제작하여 독자적 테스트 임무를 완료한 다음,
문제점들이 보완되면 실물 기체의 비교 경쟁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V-80 제1호기(010)가 1982년 6월 제작이 완료되었다.6월 17일 테스트 파일럿 니콜레이 베즈데트노프가 V-80 호버링 테스트를 실시하였으며,완전한 처녀비행은 6월 23일에 성공적으로 실시되었다.
제1호기의 테스트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들을 보완한 제2호기(011)는 각종 전자 장비와 무기 테스트에
사용될 계획이었으며, TV3-117V엔진은 더 강력한 2,200마력 TV3-117VMA 로 대체되었다.
제2호기는 PrPNK K-041 조종장치와 항법장치, 사격 조준기와 NPPU-80 기관포 마운트,
그리고 냉방장치가 갖추어졌으며 처녀 비행은 1983년 8월 16일에 실시되었다.
1984년 7월까지 양 설계국은 테스트를 완료하였고, 본격적인 경쟁은 연말부터 시작되었다
Ka-50 호컴(Hokum)의 경쟁 헬기인 밀 설계국 Mi-28 하보크(Havoc) 원형기의 처녀비행
V-80 제3호기의 테스트 비행
2대의 신형 공격 헬기는 광범위한 비교 테스트 경쟁을 수행하였다.그러던 중 V-80 공격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1985년 4월 3일, 테스트 파일럿 예게니 라유신이 경로 비행 도중 추락하여 목숨을 잃었다.대형 사고가 발생하자 카모프 설계국의 수석 공학자 세르게이 V. 미헤예프와 그 기술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사고 원인은 로터 블레이드에 있었다.가혹한 상황의 비행 성능 테스트에 들어간 예게니 라유신은 아주 낮은 고도에서 비행하다 추락하였는데,
격렬한 장애 극복 비행도중 헬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과부하가 걸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카모프는 로터 블레이드 강화 작업에 들어갔으며, 상하 두 개의 메인로터 간격을 넓혔다.
3번째 V-80(012) 공격 헬기는 1985년12월 제작 완료되어
비행평가 테스트 프로그램을 완료하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카모프 V-80과 밀 Mi-28은 미사일 사격장에서 최종 전투 능력 비교 테스트에 들어갔다.두 헬기는 V.I 코스틴 대령에의해 각각 테스트 비행되었으며,
1986년 8월에 테스트 프로그램은 최종 완료되었다.
소련 공격 헬기 테스트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매우 높은 온도와 높은 고도에서의
V-80 공격 헬기의 전투 수행 능력은 Mi-28, AH-64A 아파치보다 더 뛰어나다는 결론을 얻었다.또한 다양한 각종 무기들을 운용할 수 있음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V-80과 Mi-28 모두 야간 작전을 위하여 저광량 TV시스템을 도입하였으나 그 능력은 제한적이었다.
카모프 설계국은 야간 탐색 장비 업그레이드와 더 강력한 방어 시스템을 개발하여
조종사가 손쉽게 조종, 표적 탐색 및 식별, 공격할 수 있도록 하고,
감시 장비는 컴퓨터에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이 되어야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그 당시 소련 국방장관 S.V. 소콜로프는 1986년 10월에 실시된 공격 헬기 테스트를 직접 참관하였다.
1986년 10월, V-80과 Mi-28 공격 헬기의 무기 운용 테스트가 고로코베츠 사격 연습장에서 실시되었다.
두 헬기에게는 똑 같은 표적들이 할당되었다.
소콜로프 국방장관과 그의 참모들은 V-80의 놀라운 비행/공격 능력에 박수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한다.
테스트 참관 후 소콜로프 국방장관은 테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국가 방어 연구소 기술자들과 조종사들이 참석한 회의를 개최하였다.
참석자들은 Mi-24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Mi-28을 더 선호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가 Mi-28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해서 V-80 공격 헬기의 신뢰성과 능력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성향의 신형 회전익기 개발과 발전에는 동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의가 끝난 후, 소련 군사 중앙위원회는 V-80 시리즈 생산 인정 결의서를 작성,
카모프 설계국의 승리로 최종 결정되었다.
Ka-50은 통상 2인승이라는 공격 헬기의 고정관념을 탈피 1명의 승무원이 조종과 공격임무를 병행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생존성에 무게를 두었고, 강력한 파괴력과 나쁜 기상에서의 작전능력, 신속한 이착륙과
빠른 기동력을 추구하였다. 2,200마력 TV3-117VMA 터보샤프트/개스터빈 엔진 2기를 탑재하였으며,
엔진 시동을 위한 보조동력장치(APU-auxiliary power unit)를 탑재했다.2기의 엔진 중 하나가 피탄되거나 고장이 발생하면 비 피탄 엔진의 출력이 자동 증가하며
엔진 배기 닥트는 적외선 피탐율이 낮도록 설계되었다.
2055x650x728mm 크기의 엔진은 시간당 137g 비율로 연료를 소비한다.
Ka-50 호컴 공격 헬기는 상하 2개의 매인 로터(직경 14.5m)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2중 반전 로터를 채택하여 테일 로터가 필요없다.
일반 헬기들은 동체 후부에 달린 테일 로터를 이용하여 주 로터에서 발생하는 토크를 제어하여
안정된 자세를 얻지만 Ka-50 호컴 공격 헬기는 테일 로터없이도 가능하다.
기동성이 뛰어나 80km/h의 속도로 좌우 방향으로 비행할 수 있고
90km/h의 속도로 후진할 수 있어 생존성 확보에 유리하다.
동체의 대부분은 알루미늄 합금과 35%의 폴리머 복합소재(카본 파이어 플라스틱, 유기 플라스틱,
허니컴/honeycomb충전제) 로 이루어졌으며 연료탱크와 제어 시스템, 유압계통, 보조동력장치들도
방탄장갑으로 보호되어있다. 추락 피해를 줄이기위하여 꼬리 테일 로터, 제어 시스템, 기어박스, 블레이드는
초강력 복합소재로 제조되어 어느 정도 피탄되어도 비행이 가능하다.
PrPNK Rubikon (K-041)디지털 통합 조종 시스템은 5대의 컴퓨터로 구성되어있다.4개의 BCVM 20-751 컴퓨터는 전투, 항법, 디스플레이 정보, 표적 지시용이며1개의 BCVM 80-30201 컴퓨터는 무기 제어와 UW 20M-800 데이터 입출력기기에 사용된다.
L-140 Otklik 레이저 감시장비가 설치되었으며, UV-26 적외선 교란 데코이는
파일런에 장착된 2개의 26mm 카트리지 포드로 운용된다
러시아 비행 테스트 센터의 V-80 공격 헬기
V-80 공격 헬기 생산 준비는 아르센예프 항공기 제작 공장에서 시작되었다. V-80 시리즈 생산 결정으로 1989년 3월 제4호기(014)가 제작되었으며 1990년 4월에 제5호기-V-80Sh-1(015)가 제작되었다.
이 두 대의 공격 헬기는 UV-26 대전자전 장비와 레이저 경고 시스템이 설치되었다.
통합 자동 항법, 조종, 표적 탐지 시스템과 K-37-800 사출 좌석, 디지털화된 사격 통제장치를 갖추었다.
생산된 4대의 V-80 공격헬기들은 1988년 7월부터 1990년 7월까지 각종 실험 비행에 사용되었다.
그후, 1991년 5월 V-80Sh-1 공격 헬기 시리즈 제1번기(08)가 아르센예프 항공기 제작 공장에서 제작되었다.
V-80Sh-1 공격 헬기의 처녀 비행은 1991년 5월 22일에 실시되었고,1991년 중반부터 2대의 V-80 공격 헬기와 함께 각종 테스트에 들어갔다.
테스트를 마친 V-80Sh-1 공격 헬기는 1992년 1월에 국가 비행 테스트 센터로 옮겨져
1993년 8월까지 각종 테스트에 사용되었다.
Ka-50 호컴은 정밀 표적 시스템과 그 어떠한 기상조건하에서도 24시간 작전이 가능한
비행 제어 시스템과 신형 사격 통제 시스템을 채택하였다.
전투기에 필적하는 헤드 업 디스플레이(HUD)와 헬맷 조준기(HMS)를사용, 조종사의 대지상,
대공 전투 수행 능력을 극대화했다. 공중조기경보기나 다른 헬기, 또는 지상 관제소로부터 전달된 데이터가
계기판의 컴퓨터 스크린에 제공되면 조종사는 자동 조준시스템을 작동시켜 가장 위험한 표적에대하여
미사일 공격을 가한다.
비키르(Vikhr) AT-16 대전차 미사일은 사정거리 10km의 레이저 유도 미사일로 900mm의
장갑 관통 능력이있으며 적 ECM장비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장점이있다.초음속으로 항진하는 미사일의 탄두는 이중 신관을 사용할 수 있고, 대지상 공격뿐만 아니라
시속 800km/h의 속도로 비행하는 항공기도 공격할 수 있다.그러나 목표물까지 정확한 유도를위해서는 이동 범위가 몹시 제한되어
그동안 Ka-50 호컴은 공격에 노출되기 쉬운 약점이있다.
Ka-50 호컴은 양쪽 파일런에 비키르(Vikhr) AT-16 대전차 미사일을 12발 탑재한다.파일런 안쪽에 UPK-23-250 건 포드가 장착되어있고, 동체 하부 측면에 2A42 30mm 기관포가 장착되어있다
동체 전방, 측방과 후방에 레이저 경고센스가 설치되어있고,
파일런에 적외선 전방 감지 장치 (FLIR) 포드를 장착하여
Kh-25MP 대 레이더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다(좌측 그림)
UPK-23-250 23mm건 포드와 S-24 로켓 (우측 그림)
소련이 개발한 V-80 공격헬기의 정확한 존재는 서방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몇몇 군사 전문가는 소련의 신형 공격 헬기는 최신 레이더를 갖추었고,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6포신 발칸포로 무장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V-80 공격 헬기의 첫 번째 공개는 1992년에 있었다.
그해 1월 카모프 설계국 수석 공학자 세르게이 V. 미헤예프는 영국에서 개최된 국제 심포지움에서 처음으로 Ka-50 공격 헬기를 소개하였고, 2월 벨로루시에 개최된 비행 박람회에서도 이를 언급하였다.
그러다 1992년 8월에 제3호기가 MosAeroShow 92에서 그 모습을 최초로 공개하였다.그리고 그해 9월 판버러 에어쇼에서도 전시되어 관객의 시선을 집중케하였다.
이때 Ka-50은 "Werewolf" 늑대인간으로 명명, 소개 되었는데, 소련 기술 지원팀의 비자 문제 때문에 에어 쇼에 지연 도착하여 비행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Ka-50의 선전 동영상이 제작되었는데, 아프가니스탄 전개에 앞서 우즈베키스탄에서의 훈련 모습이 담겨있었으며 이때 기체는 검정색으로 도색하여 마치 흑상어(Black Shark)를 연상케 하였다.
1993년 6월, 프랑스 에어 쇼에서 검정 색 도장을한
Ka-50 공격 헬기는 동체에 상어 그림을 새겨넣고 일반 대중앞에서 비행하였다. Ka-50 워울프/블랙 샤크는 나토 명칭 Ka-50 호컴(Hokum)으로 즉각 유명세를 타게되었다.
1993년 후반기에는 알제리 조종사가 Ka-50 호컴을 조종하였고,
그후 러시아와 알제리는 사막에서의 비행 테스트에 들어가기로 합의하였다.그러나 알제리가 정치적 불안정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무산되었다.
소련 연방 붕괴와 경제 위기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Ka-50 호컴에 큰 영향을 끼쳤다.러시아군은 심각한 예산 부족 때문에 여러 군사 장비 도입에 어려움을 겪게되었다.
때문에 1994년, 러시아군은 3대의 Ka-50과 4대의 Mi-8, 그리고 4대의 Mi-26를 포함,
총 32대의 항공기만을 도입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1993년 중반에도 테스트용 Ka-50을 제작하여
비행 테스트 센터에서 테스트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러시아 헬기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승리 50주년 기념일에는 Mi-26과 Ka-50, Mi-24가 축하 비행을 하였다.
Ka-50 호컴 공격 헬기의 양산 준비는 알마 아타 공장에서 개시하였지만 소련 연방 붕괴 등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오직 20대가 제작되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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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유인항공기 : SR-71 블랙버드
"한걸음쯤 앞서는것만으로는 아무런 쓸모가없다. 소련이 곧 우리를 추격할것이니까...
내가 원하는것은 최소한 10년 이상 하늘을 지배할수있는 항공기이다."
"내가 해낸 일가운데 가장 큰 업적을 꼽아보라면 나는 주저없이 블랙버드를 꼽을것이다." - 클라렌스 켈리 존슨
"속도, 고도, 효율면에서 블랙버드를 능가할 비행기는 그 이전에도, 그후에도 없었다. 우리가 만일 이 항공기를
2020년에 만들어냈더라도 대단한 위업으로 평가받았을것이다." - 엔지니어 벤 리치
"그것이 이륙할때 나는 마치 지진과 토네이도가 동시에 다가오는줄 알았다. 블랙버드란 이름은 내가 붙여준것이지만
그것을 보고난후에는 지옥의 망치(hell hammer)라고 부를거라며 후회했다." - cia국장 리차드 헬름스
"sr-71을 퇴역시키는 조치는 돌이킬수없는 중대한 잘못이며, 장차 알수없는 위기가 다가왔을때 우리 국민들은
대단히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될것이다." - 전 우주비행사출신 상원의원 존 글렌
<the first hot flight / dru blair 作>
나는 1990년 3월 6일, 로스앤젤레스와 워싱턴간의 3,680 km의 마지막 공식비행을 조종하는 영예를 얻었다. 의회가 sr-71을
은퇴시키기로 결정하자 스미소니언 항공협회에서 국립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할수있도록 우리 비행기를 보내달라고 요청 해왔다.
그래서 나는 조 비달 중령과 함께 캘리포니아부터 달라스공항까지 블랙버드를 조종해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고 이와중에
대륙횡단 신기록을 세우게되었다. 우리는 la 교외에 위치한 팜데일 비행장에서 미서부 표준시 오전 4시 30분에 이륙했다.
새벽일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원들이 이 역사적인 비행을 배웅하기위해 나와있었다. 이륙한후 태평양상공에서
공중급유를 받은 다음, 동쪽을 향해 선회해서 고도를 6만피트로 높이고 mach 2.6으로 속도를 높였다.
아래로는 수백마일에 걸쳐 캘리포니아의 해안이 이른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상공에는 동이 트는 가운데 금성과 화성, 토성이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곧 캘리포니아주의 중부를 소닉붐을 일으키며 도달했고, 이 소리는 지상에서 자고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모닝콜이 되었을것이다. 나는 계속해 엔진출력을 높여 mach 3.3으로 증속해나갔고 캔자스시티 상공에 떠있는 권운위로 올라가서 마지막으로 둥근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우리의 눈아래에는 수평선을 드러내며 밝은 청색으로 빛나는 지구대기의 97%가 있었다. 눈위로는 이미 해가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먹물처럼 검은 우주가 보였다. 제트기류도 불지않는 고고도였기때문에 풍속은 시속 5마일밖에 안되어서 마치 비단결위를 날으는것같았다.
고도 84,000피트에서 워싱턴이 옆으로 보이자 나는 후연기를 끄고 강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비행으로 2개의 비행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물론 그 기록도 블랙버드가 세운 기록이지만... la - 워싱턴간을 64분, 캔자스시티 - 워싱턴간을 26분만에 비행했고 3,869 km의 거리를 67분 54초로 주파했으며, 소닉붐이 *대륙을 연속해서 가로지른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안개를 통해서 달라스공항의 관제탑이 보였다. 나는 고도 800피트로 내려가 마중나온 사람들 위로 지나갔다.
그대로 활주로위를 지나가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지만, 블랙버드의 엔진이 일으키는 강력한 진동이 공항 유리창을 깰것을 우려해 참기로했다. 나는 커다란 흥분과 함께 엄청난 슬픔이 밀려오는것을 느꼈다.
우리가 착륙해서 항공기에서 내리자 켈리 존슨의 뒤를 이어 스컹크웍스의 책임자인 벤 리치가 다가와 악수를 하며 포옹했다.
나는 작년 겨울에도 그를 만난일이 있다. 89년 12월 20일, 블랙버드 운용 25주년 기념으로 록히드사의 버뱅크공장 상공을
비행하기 위한 토의때문이었다. 그당시 나는 스컹크웍스의 격납고와 건물위를 세번 저공비행했는데 벤은 모든 직원들을 밖으로 내보내어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 경이적인 항공기가 축하비행하는것을 마중나오게했던것이다. 수천명의 공원들이 나와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있는것이 보였다. 세번째로 통과할때 나는 후연기를 점화해 급상승하면서 날개를 흔들어 경의를 표했다.
벤에게 들은바에 의하면 그때 사람들은 울었다고한다. - 블랙버드 파일럿 에드워드 일딩 중령의 회고
< sr-71 / peter van stigt 作 >
블랙버드는 걸프전에서 사막의 폭풍작전을 마지막 임무로 이렇게 퇴역했으나 그후 1993년에 한반도와 보스니아의 긴장도가
높아지자 오버홀을 거쳐 재취역했고 1998년에 다시 퇴역했지만 2대의 가동기가 nasa에 보관중입니다.
1990년의 1차 퇴역때까지 블랙버드는 3,500 쏘티 이상의 정찰비행을 실시하며 1억km를 초음속으로 날았고 임무 비행동안
적성국 상공에서 100발 이상의 지대공 미사일에 의한 공격과 전투기들로부터 여러번 요격을 받았으나 단 한차례도 격추는 커녕 상처하나 입히지못했습니다. 그밖에도 대륙간 전략정찰을 위해 한번에 수만km를 비행하는 동안 10여차례의 공중급유를
받으면서도 한건의 비행사고도 없는 그 어떤 군용기도 가지고있지못한 경이로운 효율성과 안전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가루33작성일
2007-11-1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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