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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각 대학교 슬로건 모음 (고3 자극용)|
서울대 :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 Veritas lux mea (라틴어 '진리는 나의 빛')
포항공대 : 100%를 위한 1%, 포항공대와 함께 한국 과학의 미래를
연세대 : 오라! 연세로, 가자! 세계로 / YONSEI Standing Proud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연세)
고려대 : 민족의 고대에서, 세계의 고대로 / 자유, 정의, 진리
서강대 : Be as proud of Sogang, As Sogang is proud of you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의 자랑이어라)
성균관대 : 한국지성 600년, 미래인재의 산실 / 仁義禮智 (인의예지)
한양대 : 세계를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 사랑의 실천이화여대 : 이화! 즐겁게 세상을 흔들어라
한국외대 : 내 꿈에, 세계를 플러스
서울시립대 : 서울을 보다 세계를 보다 내일을 보다
중앙대 : 한국의 중앙에서, 세계의 중앙으로
경희대 : 뉴밀레니엄, 평화와 공존의 대학 / 그대 살아 숨쉬는 한 경희의 이름으로 전진하라
동국대 : 동국사랑 아름답게 동국미래 희망차게
건국대 : 시대를 앞선 지성, 세계를 향한 도전
홍익대 : 산업과 예술의 만남
아주대 : Dynamic Tomorrow Ajou
인하대 : 인하에서 배우고 세계에서 펼치자
부산대 :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 속의 명문대학
숙명여대 :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국민대 : 21세기 글로벌 시티즌을 양성하는 국민대학교
숭실대 : 진리와 봉사를 세계로
단국대 : 민족애를 바탕으로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전문인 양성
항공대 : 세계를 향한 날개짓의 시작!
성신여대 : 성신의 네가지 약속! 변화,성장,이상,완성 / Bright Sungshin
덕성여대 : 나의 브랜드 파트너, 덕성여자대학교
광운대 : 동북아 IT 최강대학
명지대 : 명지대학교는 나무처럼 늘 푸른 마음으로 사람을 키웁니다
상명대 : 색깔있는 대학, 푸른 꿈을 꾸는 대학
동덕여대 : 변화를 꿈꾼다면, 변화의 시작은 동덕과 함께, '세상 앞에 한 발짝 더' / 그녀가 가는 곳이 길이 됩니다
서울여대 : 나를 깨우고, 사회를 깨우고, 미래를 깨우는 대학
세종대 : 넓은 세계로 나를 이끄는 세종대학교
가톨릭대 : Three distinct campuses, One great University (각기 다른 세 캠퍼스, 하나의 큰 대학)
한성대 : 다르다 그래서 멋지다
삼육대 :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학
서경대 : 북경엔 북경대, 동경엔 동경대, 서울엔 서경대
경기대 : New Start! New Kyonggi! / 한국의 얼을 지닌 세계와 미래를 위한 창조적 인재양성
경원대 : 한계를 깨고 더 높은곳을 향하는 대학총신대 : 세상의 빛이 되는 젊은 지성성공회대 : 인권과 평화의 대학
오산대 : 서울에서 가깝다고 걸어오지 마세요 / 우리곁에 항상 가까운 대학! 오산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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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가 제일 멋진 듯
킥오프넘작성일
2011-02-04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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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지하철로 보는 대학교 통학 등급
A급 - 통학하기 매우 편한 대학. 학교가 역에서 코앞, 대부분 학교 부지와 지하철 출구가 연결되어있음고려대(고려대역/안암역) - 역이 학교안에 있는 통학거리 본좌 학교다 ,,,, 학교 캠퍼스가 워낙 넓어 캠퍼스 하나에 고려대역과 안암역 2개를 끼고 있으며 고대생들은 과에 따라서 더 가까운 쪽으로 두개역중 하나에 내림. 두역 모두 출구가 바로 고대로 연결되있기 때문에 통학이 매우 편함.한양대(한양대역) - 역시 역이 학교안에 있어 통학거리 본좌 학교,,,역에서 학교까지의 거리 0m. 한양대역은 아예 학교 캠퍼스밑으로 지하철역이 있다. 나와서 출구만 올라가면 바로 학교가 보이므로 등교 매우 수월. 4호선 한대앞역과는 달리 개념있다세종대(어린이대공원역) - 내려보면 바로 학교가 보이고 역시 등교가 매우 수월. 근데 세종대가 역이름을 못얻고 어린이대공원역의 부역명에 그친건 좀 안타까움...경원대(경원대역) - 정문과 30초거리라 등교가 매우 쉬움. 비전타워 완공후 역과 연결된다.B급 - A보단 아니지만 매우 가까움숭실대(숭실대입구역) - 역과 거리만 따지면 숭실대 역시 a급. 학교가 통학을 위해 정문을 역근처로 바꾸기도 할정도....허나 역의 그 엄청난 깊이는 좀...숭실대생들은 매일 등산을 한다,,,ㅋ동국대(동대입구역) - 나오면 바로 동국대가 보이므로 쉽게 학교를 찾아감.건국대(건대입구역) - 7호선쪽으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건대 대문. 허나 캠퍼스가 넓어 과에 따라서 어린이대공원역이 더 가까울수도 있음.한국외국어대 (외대앞역) - 입구역이 아니라 앞역이라는 말이 잘 들어맞음. 역에서 내리면 말그대로 역앞에 외대가 있음. 역시 등교가 수월하며 간혹 경희대생이 여기서 내릴때도 있음.C급 - 그럭저럭 걸어다닐만한 그다지 멀지않은 거리, 역까지 거리가 1km를 넘지않는다서강대(신촌역,대흥역) - 정문으로 갈지 후문으로 갈지에 따라 내리는역이 다름. 두역 거리는 비슷비슷하다. 신촌역에서는 연대생들과 통학거리가 비슷하다.연세대(신촌역) - 그럭저럭 걸어갈만하다. 서강대와 거리가 비슷하다...근데 연세대는 정문까지만 c급이고 대다수는 d급으로 봐야할정도....왜냐면 연대는 캠퍼스가 워낙 넓어서 정문에서 동떨어진 세브란스병원과 몇몇 단과대 강의실은 또 멀리 걸어야하므로 안습이다....경복궁역에서 가는게 나은 과도 있다..근데 연대가 신촌역의 부역명을 못딴건 좀 아쉬움...근데 가까운데 서강대도 잇고하니 안될듯...중앙대(상도역) - 상도역의 부역명이긴 한데 그렇게 가깝지는 않다. 마을버스 2정거장거리...그래도 걸어다닐만 하다. 후문까지 거리야......홍익대(홍대입구역) - 언덕이 있지만 지름길도 있어서 체감거리는 의외로 안 긴편, 10분이면 학교에 도착하며 버스도 다닌다...상수역에서 내리는 것도 선택가능하다...이화여대(이대역) - 연대나 서강대는 역도 없지만 이대는 역이 있다. 거리는 홍대와 비슷.광운대(성북역) - 1호선 성북역(홍대수준)서울교대(교대역) - 2, 3호선 교대역(꽤 가까움)가톨릭대(한성대입구역) - 한성대입구역인데 가톨릭대가 더 가까움...인천대(제물포역)D급 - 걸어가면 빨라도 10분 이상, 버스 필수성균관대(혜화역) - 혜화역이나 종로3가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걸어가면 거의 지각할정도로, 금방일꺼 같지만 정말 멀다. 수원캠퍼스는 1호선 성균관대역..성신여대(성신여대입구역) - 어째서 입구역인지...옛날 이름은 돈암역, 지금도 돈암역이라 하는 사람도있음.서울시립대(회기역) - 가까운 경희대나 외대한테 묻히고 거리도 더 멀다...청량리역이랑 회기역중에 어디가 더 가까운지...한성대(한성대입구역) - 옛날 이름은 삼선교역 이지만 삼선교가 없다, 게다가 더 어이없는건 한성대입구역 근처에 가톨릭 대학교가 있다는거 -_-......경희대(회기역) - 1호선 회기역(생각보다 멈), 수원캠퍼스의 경우 6킬로미터 떨어진 세류역이 제일 가까움서울산업대(공릉역) - 공릉역에서 학교까지 최단거리 800미터..숙명여대(숙대입구역) - 역과 학교사이가 큰길이라 학교찾기는 쉽다...한국예술종합학교(신이문역)경기대(충정로역) - 서대문역이 더 낫다...서울여대(화랑대역)E급 - 마을버스 없으면 시망, 역사 주변 안내도에 대학교가 안 보인다서울대(서울대입구역/낙성대역) (+공학과인 경우는 F급을 초월함) - 역이름으로 낚이는 사람 조심...; 만약 학교까지 걸어서 등교할 경우 서울대 3대바보중 하나가 되며 등산과 장거리 달리기 경험을 할수있다. 도착해서 정문 주위를 보면 한양대처럼 상가가 가득하긴 커녕 있는건 저 옆에 보이는 산, 버스정류장과 도시락집(?)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캠퍼스도 허벌나게(?) 넓은 데다가 경사까지 있어서 학생들을 위해서(?) 캠퍼스 안에 마을버스와 택시가 다니는 것을 볼 수도 있음. 서울대입구역보다 낙성대역이 더 가까운 단과대가 많다. 제발 관악구청역으로 이름 바꿧으면 좋겟는데 이름값때문에 역이름은 안바꿀듯... 대학교는 산속에 짓지 말자(1)인하대(주안역) - 주안역의 부역명이 인하대라고 되있어서 낚인 사람이 많겠지만 주안역에서 40분을 내내 걸어야 학교가 나오므로 걸어갈 생각을 한다면 그날 수업 불가다. 그래서 학교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항시 대기중임. 그나마 서울대 보다 나은거라면 평지에 지어서 경사가 완만하다는 거 그리고 캠퍼스가 그리 넓지 않다는거.한양대(안산캠)(한대앞역) - 2호선 한양대역이 아님총신대(총신대입구역) - 이수역의 부역명으로...상당히 많은 사람이 낚이는데 조심하자.... 총신대 관계자분들께서 홍보목적으로 짜증나게 이렇게 만들어놨으니..;; 총신대입구역에서 내리면 열받으니 꼭 남성역에서 내리자...서정대(덕정역) - 대학교는 산속에 짓지 말자(2)단국대(죽전역) - 상당히 멈. 버스 필수. 단대오거리역은 대대적으로 낚는중...명지대(홍제역) - 증산역과 홍제역 사이에 있지만 두 역에서 모두 멈. 버스 필한북대(동두천중앙역)F급 - 지하철따위 업ㅅ어국민대 - 대학교는 산속에 짓지말자(3)삼육대 - 대학교는 산속에 짓지말자(4)상명대 - 대학교는 산속에 짓지말자(5)서경대, 아주대 - 역 개통 시급.....;
지방대는 없네요...인서울,수도권만..
면죄자작성일
2010-04-1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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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한글의 창제.... 세종대왕?? 집현전..??
오늘날 대부분의 책이나 교과서에는 훈민정음의 창제는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공동으로 만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우리가 알고 있는 이 상식은 정확한 것일까?이기문 교수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한글 창제 무렵의 기록으로는 그런 증거가 하나도 없다.강창석 교수 (충북대 국문학과)⇒ 친제했다고 하는 것을 잘 모르는 시절에 그런 말이 나와서 모든 사람들한테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포가 된 것이죠.여증동 교수 (경상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실록에 전혀 그런 말이 없다. 잘못된 걸 모든 백성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데 세종이 알면 무덤 속에서 통탄하고 있을 거다.한글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443년, 세종 25년의 일이다.
▲ 중학교 국사(상)
실록에는 이것에 대해, 매우 간략한 기록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창제는, 무렵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관료들이, 집단으로 상소를 올려 한글 창제를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를 대표로 신석조, 김문, 정창손 등 모두 일곱 명의 학자들이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이다. 이들은 모두 집현전 소속으로 집현전 내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던 원로 학자들이었다. 이들이 상소를 올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굳이 언문을 만들어야 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재상에서 신하들까지 널리 상의한 후행해야 할 것인데 갑자가 널리 펴려 하시니 그 옳음을 알지 못 하겠나이다." 이들은, 상소를 통해 한글 창제가 세종의 독단적 행동이었음을 비난하고 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박종국 (세종기념사업회 회장) ⇒ 최만리도 훈민정음 창제한 것을 그때 안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면 그 전에 그런 기록이 없고 집현전이라면..부제학이라면 실제 실무담당 책임자다....미리 알았으면 그런 게 벌써 나오지 그때 나왔다는 것은 그분이 전혀 모르신 게 아닌가? 집현전의 최고 책임자였던 최만리가 한글 창제를 몰랐다면, 창제 과정에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한글 창제에 간여한 것으로 알려진 학자는 정인지, 최항, 신숙주, 성삼문 등 모두 일곱 사람이다. 반대 상소를 낸 학자들이 원로라면, 이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로 소장학자에 속한다. 집현전 7학사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이름은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성현'의 용재총화 -세종이 신숙주, 성삼문에게 명해 언문을 지었다는 것이다. 집현전 7학사 가운데서도 한글 창제와 관련해 가장 주목을 받는 학자는 신숙주다. 세종의 총애를 받았을 뿐 아니라, 한글 관련 사업에 가장 많이 동원된 사람이 바로 신숙주였기 때문이다.
신숙주는 외국어에도 능통했다고 알려져 있다. 치나어, 니혼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같은 사실도 그가 한글 창제에 참여했을 거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신숙주의 문집인 보한제집에는,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신숙주가 직접 쓴 글을 비롯해, 당대 학자들이 기록한 그의 일대기가 실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글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든 것은 세종이라고 적고 있다. 신숙주가 한 일은 세종의 명을 받아 한글 서적을 편찬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동안 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신숙주가 요동에 다녀왔다는 기록이다. 그 무렵 요동에 귀양 와 있던 치나의 언어학자 황찬을 만나기 위해, 성삼문과 함께 여러 차례 요동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신숙주가 황찬을 만난 것은 훈민정음 창제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강창석 교수 (충북대 국문학과) ⇒ 질문 한 것은 한글을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 질문 한 것이 아니고, 한자를 바로 잡기 위해서 한자음에 관한 질문을 하러 간 것이다. 한자음에 대한 이론인 성운학에 관해 질문 하러 간 것이지, 한글을 만드는데 어떤 직접적인 조언을 얻기 위해 간 것이 아니다. 그 연도 등은 조선실록을 보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숙주가 황찬을 만나기 위해 요동으로 간 것은 언제일까?조선 왕조실록을 검색해보기로 했다. 검색결과, 신숙주가 최초로 요동에 간 것은 1447년 1월. 한글이 만들어진 뒤 1년 2개월 후의 일이었다. 이기문 교수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실제 일은 성삼문 신숙주 또래들이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성삼문은 조금 전에 집현전에 왔고 신숙주는 세종 25년 말에 훈민정음이 창제됐는데 신숙주는 23년 즈음 집현전 학자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니혼에 갔다. 그일에 관여할 시간이 없었다. 한글 창제에,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원로 학자들은 한글 창제 자체를 반대했고, 젊은 학자들도 한글 서적을 만드는데 참여했다는 사실만을 밝혀냈을 뿐이다. 결국, 세종 25년에 만들어진 한글 스물 여덟 자는 그들의 공로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 신숙주 영정
훈민정음에 관한 책 중에, 현재 전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바로 이것이 세종 28년, 한글 반포를 위해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해례본은 한글의 글자 하나하나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집현전 학자였던 정인지가 쓴 이 책의 서문 가운데 한글을 만든 사람에 대한 언급이 있다. 전하 창제(殿下創制) - 전하가 지으셨다.여기서도 훈민정음 스물 여덞자를 만든 것은 세종이라고 밝힌 것이다.강창석 교수 (충북대 국문학과)⇒ 신하들이 만들었는데 관례에 의해서 임금이 한 것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종대왕 때 한글만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업도 많이 했는데. 그런 것들은 다 한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공을 임금한테 돌리기 위해 했다고 하더라도 그 무렵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은 한글을 만든 것은 대단한 공이 아니고 해서는 안될 일을 임금이 하고 있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공을 임금에게 돌리기 위해서 친제라는 표현을 썼다. 이건 전혀 근거가 없는 그런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최만리의 상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언문은 새롭고 기이한 한가지 재주에 지나지 못하는 것으로 학문에 방해됨이 있고 정치에 유익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것이 없습니다. (최만리 상소문) 그는 한글을 만든 것은 신기한 재주를 부린 것에 불과한 것으로 전혀 유익할 것이 없다고 혹독한 비판이었다. 이에 대해서 세종은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너희가 설총은 옳다고 하면서 제 군주가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설총이 만든 이두는 옳다고 하면서 제 군주가 한 일을 그르다고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며 반박하고 있다. 세종 스스로 한글을 만든 것이 자신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세종이 직접 쓴 글속에서도 한글 창제를 다른 사람에게 명해서 만들게 했다는 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은 훈민정음 서문의 글을 통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글 스물 여덟 글자는 자신이 직접 만든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기문 교수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 친제라고 하는 표현은 훈민정음에서만 볼 수 있다.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면 훈민정음은 역시 친제다. 세종이 이것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여러 가지 학문적인 배경이나 능력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 역시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세종은 어린시절부터 학문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에 몰두해, 건강이 나빠지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아버지 였던 태종이 글을 읽지 못하도록 책을 모두 빼앗았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세종은 이미, 왕자시절에 학문에서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종국 (세종기념사업회 회장) ⇒ 세종께서 학문의 대왕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좋아했으니, 임금이 되어서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공부한다. 그분 말씀이 나는 경서가운데서 안본 책이 없다. 그 무렵에 우리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을 다 본 분이시다. 세종은 언어학에서도 조예가 깊었다. 가볍게 옛사람들의 운서에 터무니 없는 언문을 붙이면 되겠습니까? (최만리 상소) 한글로 운서를 번역하는 것에 대해 최만리 등의 학자가 그것이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자 이에 대한 세종의 반박은 단호했다. 너희가 운서를 아느냐? 또 너희가 사성 칠음과 자모가 몇인 줄 아느냐? 세종 스스로 언어학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세종의 반박에 대해 당대 이름난 학자였던 집현전의 학사들은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한다. 강창석 교수 (충북대 국문학과) ⇒ 최만리라고 하는 분이 집현전 책임자로 다른 말로 당대 최고의 학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당대 최고의 학자를 앞에 두고 당신이 이걸 아느냐고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무리 임금이라도 자신이 학문적 역량이 없으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게... 한글을 만든 직후 세종은 동국정운을 편찬하도록 명한다. 이것은 방대한 분량의 치나 음운값을, 모두 한글로 옮겨 적는 일이었다. 그런데 실무자였던 신숙주가 쓴 서문에 따르면 음 하나하나까지 모두 왕에게 직접 재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음운학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가 바로 세종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훈민정음 창제과정에서,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정인지가 쓴 훈민정음 해례의 서문에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상세하게 덧붙이라고 명했다. 즉, 세종의 명을 받아 한글 스물 여덟 글자의 원리와 용례를 해석하는 일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록으로 볼 때,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 스물 여덟 글자의 해석과 동국정운 등 한글 서적의 편찬사업에 관여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세종의 지시를 일일이 받아서 이루어 낸 일들이었다. 강창석 교수 (충북대 국문학과) ⇒ 세종이 임금이기 때문에 학자라고 하는 사실이 가려지는데 세종은 왕이면서도 아주 뛰어난 언어학자였다. 언어학자라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는데 만약 임금이 아니었다면 언어학자라는 부분으로 세계사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을까? 워낙 많은 일을 하고 또 임금이다 보니까 학자라는 사실이 가려지는데 여러 가지 업적이나 기록을 보면 세종은 뛰어난 언어학자였다. 세종대에 이뤄진 한글 관련 사업의 최고 책임자, 그것은 바로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였던 세종 자신이었던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싸고 떠도는 이야기는 많지만, 그 중 믿을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한 가문에서 구체적인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고 해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바로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와 관련된 것이었다. 안국승 (죽산 안씨 대종회 부회장)⇒ 우리 어릴 때 들은 이야긴데 한글을 만든 다음에 민간에 실험시키는데 동원되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한글을 만들었다고 까지 이야기 되는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는 죽산 안씨 가문으로 출가한다. 그런데 이 가문의 족보에 시집온 그녀가 세종의 명을 받아 한글 창제를 도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안명국 (죽산 안씨 대종회 사무국장) ⇒ 족보를 보니까 여기에 기록과 같이 유사가 나오잖아.. 한글의 변음과 토착을 세종이 대군들에게 풀어라고 하니 대군들이 못 풀어서 세종이 정의공주에게 하명.. 정의공주가 변음과 토착을 풀어 올리니 세종이 극찬하시고 상으로 노비 수백구를 하사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정의공주가 해결했다는 변음과 토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다만 이것이 민간에서 사용되던 언어나, 사투리 등이 아니었을까 막연히 추정해 볼 뿐이다. 한글 창제과정에서 정의 공주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기록은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 세종의 직계 가족들이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집현전 학자들을 중심으로 추진된 한글 서적 편찬 사업에도 왕자들이 깊숙히 개입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글을 창제한 다음에 처음 실시한 사업이 바로 운회를 번역하는 것, 이 일에 왕자들이 동원된 것이다. 이기문 교수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 세종이 한글 창제과정에서 문종, 수양대군들과 상당히 서로 의견교환을 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세종 25년 말에 훈민정음을 공표하고, 그 다음해에.. 두 달 뒤에 훈민정음으로 사업을 하는데 그 총책임자를 세자와 왕자를 임명했다는 것은 그들이 내용을 알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그때처음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이 참여했고 그 후 최만리의 반대상소가 나온다. 운회를 번역하는 일에 참여한 왕자는 모두 세 사람... 훗날 문종이 되는 세자와 수양대군. 그리고 안평대군이 그들이다. 이들이 번역 사업의 책임자가 된 것은 왕의 아들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한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들이 세종을 도와 한글 자모 스물 여덞 자를 만들 때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박종국 (세종기념사업회 회장) ⇒ 아들 세분이 세종 못지않게 학문, 글씨등에서 능가할 수 있는 분들이다. 심지어 어떤 기록에는 세종과 문종이 같이 만들었다고 하는 기록도 나오고 또 세종께서 대군들과 식사하시면서 대화를 한 기록이 나온다. 이런 것으로 봐서...... 세조가 석보상절을 만들었잖습니까? 그게 그러한 것이 없으면 안되거든요. 문종과 관련해, 직해동자습이라는 책의 서문에, 재미있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것은 신숙주와 함께 한글을 만든 장본인으로 지목되는 성삼문이 쓴 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성삼문은 이 글에서 한글을 만든 것이 세종과 문종이라고 적고 있다. 이것을 뒷받침해줄 다른 기록은 없지만 한글창제에 왕자들이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인 셈이다. 그렇다면 세종은 왜 한글을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세종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있으니....그것은 바로 삼강행실도 이다. 이 책이 만들어진 동기는 세종 10년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진주사람 김화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세종은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효자 충신 등의 사례를 담은 행실도의 간행을 지시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삼강행실도는 내용과 함께 그에 맞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림을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배려였다. 그러나 세종은, 글자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림만으로는 제대로 된 뜻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안타까워 한다. 글자 창제의 필요성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그리고 10년 뒤, 훈민정음 서문에서 어리석은 백성과 글자라는 단어가 다시 나타난다. 삼강행실도에 백성이 알 수 있는 글자를 붙이고 싶었던 세종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로 사업은 중단되고 훗날 성 종 때 이 책은 간행될 수 있었다. 한글 삼강행실도가 빛을 보게 되는 것은 성종대에 이르러서다. 한글 창제는 세종이 신하들 몰래 자식들을 데리고 10여년간을 추진해 온 비밀스런 연구의 결과인 것이다. 한글이 완성된 직후 세종은 큰 곤경에 처한다. 한글 창제를 찬성하는 이는 없는 반면, 가장 신임하던 집현전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최만리 등의 학자들은 상소를 통해 왕의 행동은 사려 깊지 못한 일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한다. 이들의 태도와 어조는 매우 당당한 반면, 이에 대해 세종이 오히려 변명을 하는 형상이다. 어찌 옛날부터 쓰는 폐해 없는 글자를 고쳐 낮고 천하고 속된 말인 이익이 없는 글자를 새로 만들어 쓰겠습니까? 이들이 감히 세종에게 도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치나와의 문제 때문이였다. 만약 이 사실이 치나에라도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최만리는 걱정하고 있었다. 이기문 교수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 상식적인 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때 학자들로선 그런 소양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우리 나라는 치나의 한문으로 글자 생활을 했고 한문으로 이뤄져 있었기 때문에 한글을 만드는 것은 그들에게는 필요치 않았고 이것은 오히려 오랑캐가 되려는 것이다고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고 볼 수 있다. 나랏말이 치나와 달라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생각은 무렵으로서는 위험한 생각이었다. 치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대 관계에 있던 조선이 이미 쓰고있는 한문을 두고 따로 국어를 가진 다는 것은 치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증동 교수 (경상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 집현전 학자들에게 명령을 하면 하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남 몰래 만들 수 밖에 없어... 집현전 학자에게 명령을 내렸을 때 전하 절대로 안됩니다하고 반대할 터인데... 만약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 신하들의 반대가 있었다면 한글 창제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같은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것이 바로 내불당 사건이다. 세종이 궁권 안에 법당을 지으려 하자 신하들이 대대적으로 반대를 하고 나선다. 나라의 국교가 유교 즉 성리학인데, 왕이 불교를 숭상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해동잡록에는 무렵 신하들의 반대가 어느 정도 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집현전 학자들은 자신들 의견이 관철되지 않자, 업무를 중단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에 세종은 무렵 영의정이었던 황희를 붙잡고 "이를 어쩌면 좋을까" 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무리 임금이라고 하더라도 명분을 앞세운 신하들의 주장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글 모르는 백성을 위한 한글창제는, 양반계층의 이익과는 상반되는 것이었기에... 반대는 더욱 거셀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창석 교수 (충북대 국문학과) ⇒ 그 무렵 최만리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한문으로 글자생활을 하고 그것이 다른 서민들과 자신들이 구별되는 어떤 근거이기도 했기 때문에 굳이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는 글자를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자기 고유의 글을 가지고 있는 니혼이라든지 여진, 서하를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대목을 보면 한마디로 말해 필요 없다..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필요 없지만 세종은 그들 입장이 아니라 글 모르는 백성을 입장에서 보면 필요하다고 의견차이가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불당 사건 때와는 달리, 세종은 반대론자들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대처한다. 반대 상소를 올린 집현전 학자들을 전원 하옥 시키면서까지 한글의 사용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다. 한글 창제 전에 이 사실이 신하들에게 알려졌다면 한글은 탄생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무렵의 명분에는 어긋나는 한글창제, 한글은 혼자만의 고독한 작업 뒤에 비밀작업으로 이루어낸 업적이었던 것이다.
한글과 가장 닮은 글자? 니혼 남단에 위치한 시코쿠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한 작은 마을의 어귀엔, 이상한 글씨의 비석이 있다. 여기에 새겨진 글자가, 한글의 기원과 관련해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비석에는... 마치 한글을 풀어 쓴 듯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니혼에서는 이 글자를 신대글자라고 부른다. 니혼에 한문이 들어오기 전인, 신대에 사용하던 글자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학계에서는 이 글자들이 바로 고조선의 글자가 니혼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신대글자는 현재, 니혼 전역에 흩어져 있다. 주로 조상신을 모시는 신사 등에 많이 남아 있는데, 그 분포지역만도 백여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한글과 꼭 닮아 있은 이 글자를, 니혼 사람들은 어떻게 발음하고 있을까? 비문 읽는 신주 - 정식으로는 가무나가라 입니다. 놀랍게도 이 글자는 한글과 똑같이 발음되고 있었다. 니혼 사람들은 신대글자를 과거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글자라고 여겨, 매우 신성시 여기며 숭배하고 있다. 일부 신사에서는 이 글자 자체를, 신대신 모시는 경우도 있다. 신대글자에는 그 자체로도 신령한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도 신대글자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적이다. 신사에서 만드는 부적에는 지금도 신대글자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신대글자의 흔적은 비석 청동검, 청동거울 등의 물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자가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하는 점이다. 한글 이전에 있었는지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신대글자를 최초로 소개한 것은 1800년대 초반에 출판된 신자일문전을 통해서 였다. 매우 여러 종류의 신대글자들이 소개돼 있는데, 신대글자는 이 책의 저자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의심을 받고 있다. 김문길 교수 『 니혼의 고대문자연구(형설출판사)』⇒ 신대글자를 보고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국어국문학계 뿐만 아니라, 니혼의 국어국문학회에서도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훈민정음 즉, 한글을 니혼 국학학자들이 조작하고 짜집기하여 전쟁 이전까지 인정해왔다고 자인하고 있는 실정고, 니혼의 신도교에서는 신대에 있었던 말씀 즉, 신이 주신 말씀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신대글자를 둘러싸고 진위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 나라의 부적 속에도 고대 글자가 씌여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왔다는 부적의 문양 속에서, 한글과 유사한 글꼴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읽을 수 없지만... 물을 세 번썼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김민기 (부적 연구가) ⇒ 부적 속의 글자는 우리 조상들이 쓰던 글자고...왜 부적에 그런 글자가 남았냐면 하늘님을 부르거나 북두칠성을 부르려고 할 때 .......그 조상신이 알던 글자를 써야 아니까 조상들이 읽고 알아들을 수 있는 글자로써 만드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 나라에 고대부터 글자가 있었다는 주장은 옛날부터 있어 온 것이다. 연대가 의심되는 책?? 속에서는 고조선 때 사용되던 글자라며 신지글자라는 것이 소개돼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신지글자의 글꼴도 부적 속에서 종종 발견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는, 남해 양하리에 있는 바위그림을 일러 고대 우리 선조들이 쓰던 그림글자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 이 부적이 삼국시대 이전이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여러 사실들로 미루어 살펴 보건데 위의 부적 또한 한글창제 이후의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기호의 모양으로서 닮은 점을 찾는다면 세상의 모든 글자와 기호들에서 한글과 닮은 점을 찾을 수 있다. 한글은 기하학의 기본이 되는 수직/수평/점(세모,네모,동그라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많은 주장들 가운데, 가장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환단고기라는 책 속에 소개된 가림토 글자다. 모두 서른 여덟 개로 이뤄져 있는데, 글자 모양이 한글과 매우 비슷하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한글은 이 글자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이 가림토 글자가 실재 존재했으며 그 물증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림토 글자의 증거로 제시되기도 하는 이 탁본. 이 탁본의 글자가 과연 고조선 시대, 우리가 쓰던 글일까? 이 탁본의 원래 소장자는 이상백 교수의 소장품이다. 1930년대 만주에서 탁본 했다고 한다. 이상백 교수가 말씀하시기를 우리나라 한글의 어머니 글이라고 말했다고 듣고 있다. 탁본을 살펴본 결과, 그 가운데는 한글과 유사해 보이는 글꼴들도 더러 있었다. 정말 이것이 가림토 글자, 혹은 원시 한글의 흔적일까? 동아시아 고글자를 연구하는 송기중 교수의 도움을 받아 이 글자에 대해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이것은 가림토가 아니었다. 이미 해석까지 어느 정도 완료된 투르크 글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투르크 글자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소리글자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지금 얘기한 투르크족들이 쓰던 글을 12세기말에 몽고족들이 받아들여 썼던 걸 16세기 말에 만주족이 써서 만주글로 써서 그러니까 이건 만주글이다.
이처럼 동북 아시아에서는 치나의 뜻글자 외에도 독자적인 소리글자의 전통이 이어져 온 것이다. 우리겨레와, 언어학적 계통을 같이하는 이들... 그렇다면 우리 겨레에게도 소리글자의 전통이 있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 신경준이 쓴 훈민정음 운해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사용하던 속용글자가 있었는데 그 수가 일정치 않고 그 꼴의 법칙 또한 없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한문 외에 민간에서 사용되던 글자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만약 세종무렵 이런 민간 글자가 있었다면,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던 세종이 이 글자를 참고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방고전에 대해서는 그 어느 기록에서도 명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세종이 참고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이다.
기역 니은 이라는 이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훈민정음 해례가 발견되면서 터무니없는 것이었음이 밝혀진다. 한글의 글자꼴이 무엇을 본떠 만든 것인지 이 책에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섯 개의 기본음은 발음기관의 생김새에서 본떠 만들었던 것이다. 이현복 교수 (서울대 언어학과) ⇒ 글자가 왜 ㄱ과같은 모습을 가졌난 말야.. 그건 발음을 할 때 혀의 모습이 ㄱ의 모습을 가졌다. 그건 인류공통이다. 흑인동양인 할 것 없이 다 그렇게 발음해야 한단 말이야... 그게 독특한 것이고 유래가 없는 일이다. 한글의 글자꼴이 발음기관의 모습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한 것인지,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이것이 맞다면, 세종은 이미 500년 전에 발음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해례의 설명 그대로 였다. 나머지 글자들도 모두 해례의 설명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 외의 글자들은 매우 간단한 획을 더한다 원칙에 의해 만들어지도록 했다. 다섯 글자를 기본으로 삼고, 소리가 강해지면 기본자에 획을 더하면 된다. 여기서 기본글자를 만들고 하나를 더해서 ㅋ를 만들고, 여기서 하나를 더해서 ㄲ를 만든다. 보면 기본글자가 다 있잖아, 이걸 보면 누구나 이거 하나를 배우면 세 개를 금방 알게 되는거지... 하나 배우면 열을 안다는 옛날 속담이 여기서 실현된 것이지... 사람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는 다섯 가지 기본음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 한글의 기본글자를 이루게 된다. 이 다섯 글자를 기본으로 삼고, 획을 추가해 글자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동일한 계열의 소리는 동일한 글자꼴을 갖게 됨으로써 한글은 소리와 모양이 일치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글자가 되는 것이다. 권정선 교수 (대구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 ⇒ 세종의 한글시대에 오면 세종이나 학자들이 음운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알거든.. 소리 낼 때 혀와 입술이 어떻게 난다는 것을 잘 알지.. 실제로 우리 한글이 고도로 발달된 글자라는 것은 고도로 발달된 음성지식이 있고 난 뒤에 만들어진 글자란 뜻이다. 가림토든, 신대글자이든 그 무엇이든지 간에 이 해례본을 뒤엎지 않고서는 그 이야기들은 그저 이야기들일 뿐이다.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평가는 어떨까? 세계적 과학잡지, 디스커버리는 지난 94년 7월호에 글자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이 글은, 한글을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글자. 그리고 최상급의 표현을 써서 한글을 극찬하고 있다. 다른 글자와 비교해도, 한글의 우수성은 탁월한 것이다. 어메리커에서 한글을 연구하고 있는 레드야드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글자의 사치품! 세계 글자사상 가장 앞선 글자, 그것이 바로 한글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글자의 사치, 그것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 언어학자 세종의 외로운 노력이 가져다 준 고귀한 선물이었다.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비록 오랑캐가 된다 하더라도 백성이 글을 알아야 한다는 그의 의지. 한글창제는 극소수 양반층만 누리던 글자의 특권을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준 세종의 거룩한 글자 혁명이었다.
짱공머꼬작성일
2008-09-1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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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터] 한글의 위대함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세계언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학자들은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 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KBS1, 96.10.9).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글의 우수성을 정작 우리 자신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1986년 5월, 서울대학 이현복 교수는 영국의 리스대학의 음성언어학과를 방문하였다. 그때 리스대학의 제푸리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한글이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파생해내는 방법(ㄱ-ㅋ-ㄲ)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훌륭하다고 극찬하였다. 그러면서 한글을 표음문자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feature system)로 분류하였다. 샘슨교수의 이러한 분류방법은 세계최초의 일이며 한글이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로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지난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에서 우리 나라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언어 연구학으로는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를 순위를 매겨(합리성,과학성,독창성...등의 기준으로) 진열해놓았는데 그 1위는 자랑스럽게도 한글이다. -------------------------------------------- 어느 미국인이 생각하는 한글 번호:568 글쓴이: Simram 조회:790 날짜:2003/01/17 11:38 .. One example of unique Korean culture is Hangul, the Korean alphabet. There are no records in history of a king made a writing system for the benefit of the common people except in Korea. The Korean alphabet has an exact purpose and objective. So its use cannot be compared with other languages.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한글이다. 세계 역사상 전제주의 사회에서 국왕이 일반백성을 위해 문자를 창안한 유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한글은 문자발명의 목적과 대상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그 효용성은 다른 문자와 비교할 수 없다. For example, each Chinese character has a meaning, so people have to memorize all of them, but the Korean alphabet is made of phonetic letters just like English. Anyone can learn Hangul in a day, that is why it is called 'morning letter'. It is easy to learn because it can be put together with 10 vowels and 14 consonants. Hangul has 8,000 different kinds of sound and it is possible to write each sound. 예를 들면 한자는 표의문자이므로 모든 글자를 다 외워야 하지만 한글은 영어와 마찬가지로 표음문자이므로 배우기가 쉽다. 그래서 한글은 아침글자라고도 불린다. 모든 사람이 단 하루면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을 조합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기 쉽고 24개의 문자로 약 8,000음의 소리를 낼 수 있다. 즉, 소리나는 것은 다 쓸 수 있다. Because Japanese letters imitate Chinese characters, they cannot be used without Chinese characters. The chinese government secretly sent scholars to the United States to alphabetize its language. Chinese is too difficult to learn, therefore the illiteracy rate is very high. Chinese thought it would weaken national competitive power. 일본어는 한자를 모방한 문자이기 때문에 한자 없이 독자적인 문자 수행이 어렵고 또, 한자는 너무나 배우기 어렵다. 한때 중국정부는 은밀히 학자들을 미국에 파견해 한자의 알파벳화를 연구한 적이 있다. 그것은 한자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문맹율이 높고 그것이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Hangul has an independent reading and writing system. It can be used on its own, but some old generations like to use Hangul along with Chinese characters education. 한국인들은 한국어로만 말하고 쓰는 완벽한 언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기성세대는 한자를 섞어 사용하고 심지어 일부 교수들은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This is an anachronism and absolutely against the globalization of Hangul. Even the Chinese government recognized the weak points of its writing system for the coming 21st century. 중국 정부조차 21세기의 미래 언어로서 약점을 인정한 한자에 대해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시대 착오이며 한글의 세계화에 역행하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Latin was used as an official language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It has been used as a custom or religious authority for people who in Western societies, Latin is disappearing. 라틴어는 카톨릭의 공식언어로 사용되었다. 관습상 또는 종교적 권위를 위해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지금 서구에서 라틴어는 사라져 가는 언어일 뿐이다. Hangul was invented 500 years ago. but it has only been used for 100 years by all Koreans. Now it is standing in the world proudly with its value. Korean has been chosen as a foreign language in some universities in the United States and Australia. Now large Korean companies are building Factories in some Asian and Eastern European countries. These companies have invested a lot of money. The managers of those companies are also learning Hangul. 한글은 창제된 지 500년이 되었지만 실제 발전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그 한글이 세계 속에 자부심을 가지고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호주의 대학에서는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해 놓았다. 그리고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아시아나 동부 유럽 국가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 회사 간부들은 한글을 배우고 있다. It is time to invest money and to make an effort to develop Hangul for the 21st century like the French government has done. The language of the future has a strong economic value. Hangul is seven times faster in computer operation ability than Chinese or Japanese. 이제 한국 정부도 프랑스 정부가 했던 것처럼 한글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21세기의 언어는 강한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컴퓨터에서 한글의 업무능력은 한자나 일본어에 비해 7배 이상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When Windows 95 appears on your screen, Hangul is breathing on the tips of your fingers beyond the time barrier. 윈도우 95 화면을 보고 더블클릭을 하는 순간 한글의 위력은 500년이란 시간의 벽을 넘어 손끝에서 살아 숨쉰다. The 21st century will be the age of information. National competitive power depends on the quantity and quality of information. Therefore the national goal for the Clinton administration is to end illiteracy. The American literacy rate is only 79%. The Korean illiteracy rate is near the zero percent mark, because Hangul is easy. 21세기는 정보화 사회다. 즉 정확한 정보의 양과 질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적 목표로 내세우는 것도 문맹의 퇴치이다. 현재 읽고 쓸 줄 아는 미국인은 고작 79%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쉽고 간결한 한글 덕분에 문맹률 0%라는 경이적인 기록에 육박한다. 한글이 과학적인 글자다라는 소린 많이 들어봤지만 이렇게 가슴 뿌듯한 글은 처음입니다. 유네스코에 세종대왕상이 있다죠. 문맹퇴치나 언어학적으로 업적을 쌓은 사람에게 주는 상인데, 말은 있어도 글이없는 소수 민족들에게.. 한글로 표기하는걸 가르친다고합니다. 과학적인언어이기때문에 비교적 읽고 쓰기가 편하기때문이랍니다. 한글은 어떤 발음 일본어,독일어,영어 기타등등 우리나라 말로 다 받아 쓸수있다고 해요. 인터넷을 자유롭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한글의 덕분이죠(!) 한글을 오염시키지 말고.. 통신어, 외계어를 자제합시다
박기남작성일
2006-07-12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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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터] 좋은글 있어서 야후에서 퍼왔습니다....
유네스코에 세종대왕상이 있죠. 문맹퇴치나 언어학적으로 업적을 쌓은 사람에게 주는 상인데, 말은 있어도 글이없는 소수 민족들에게.. 한글로 표기하는걸 가르친다고합니다. 과학적인언어이기때문에 비교적 읽고 쓰기가 편하기때문이랍니다. 한글은 어떤 발음 일본어,독일어,영어 기타등등 우리나라 말로 다 받아 쓸 수가 있기 때문이죠..우리가 영문단어를 한글로 써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세계언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가 있었다. 마침 한국의 학자들은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 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KBS1, 96.10.9).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글의 우수성을 정작 우리 자신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1986년 5월, 서울대학 이현복 교수는 영국의 리스대학의 음성언어학과를 방문하였다. 그때 리스대학의 제푸리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한글이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파생해내는 방법(ㄱ-ㅋ-ㄲ)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훌륭하다고 극찬하였다. 그러면서 한글을 표음문자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feature system)로 분류하였다. 샘슨 교수의 이러한 분류방법은 세계최초의 일이며 한글이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로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지난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에서 우리 나라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언어 연구학으로는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를 순위를 매겨(합리성,과학성,독창성...등의 기준으로) 진열해놓았는데 그 1위는 자랑스럽게도 한글이다. -------------------------------------------- 어느 미국인이 생각하는 한글 -글쓴이: Simram -날짜:2003/01/17 11:38 .. One example of unique Korean culture is Hangul, the Korean alphabet. There are no records in history of a king made a writing system for the benefit of the common people except in Korea. The Korean alphabet has an exact purpose and objective. So its use cannot be compared with other languages.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한글이다. 세계 역사상 전제주의 사회에서 국왕이 일반백성을 위해 문자를 창안한 유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한글은 문자발명의 목적과 대상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그 효용성은 다른 문자와 비교할 수 없다. For example, each Chinese character has a meaning, so people have to memorize all of them, but the Korean alphabet is made of phonetic letters just like English. Anyone can learn Hangul in a day, that is why it is called `morning letter`. It is easy to learn because it can be put together with 10 vowels and 14 consonants. Hangul has 8,000 different kinds of sound and it is possible to write each sound. 예를 들면 한자는 표의문자이므로 모든 글자를 다 외워야 하지만 한글은 영어와 마찬가지로 표음문자이므로 배우기가 쉽다. 그래서 한글은 아침글자라고도 불린다. 모든 사람이 단 하루면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을 조합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기 쉽고 24개의 문자로 약 8,000음의 소리를 낼 수 있다. 즉, 소리나는 것은 다 쓸 수 있다. Because Japanese letters imitate Chinese characters, they cannot be used without Chinese characters. The chinese government secretly sent scholars to the United States to alphabetize its language. Chinese is too difficult to learn, therefore the illiteracy rate is very high. Chinese thought it would weaken national competitive power. 일본어는 한자를 모방한 문자이기 때문에 한자 없이 독자적인 문자 수행이 어렵고 또, 한자는 너무나 배우기 어렵다. 한때 중국정부는 은밀히 학자들을 미국에 파견해 한자의 알파벳화를 연구한 적이 있다. 그것은 한자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문맹율이 높고 그것이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Hangul has an independent reading and writing system. It can be used on its own, but some old generations like to use Hangul along with Chinese characters education. 한국인들은 한국어로만 말하고 쓰는 완벽한 언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기성세대는 한자를 섞어 사용하고 심지어 일부 교수들은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This is an anachronism and absolutely against the globalization of Hangul. Even the Chinese government recognized the weak points of its writing system for the coming 21st century. 중국 정부조차 21세기의 미래 언어로서 약점을 인정한 한자에 대해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시대 착오이며 한글의 세계화에 역행하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Latin was used as an official language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It has been used as a custom or religious authority for people who in Western societies, Latin is disappearing. 라틴어는 카톨릭의 공식언어로 사용되었다. 관습상 또는 종교적 권위를 위해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지금 서구에서 라틴어는 사라져 가는 언어일 뿐이다. Hangul was invented 500 years ago. but it has only been used for 100 years by all Koreans. Now it is standing in the world proudly with its value. Korean has been chosen as a foreign language in some universities in the United States and Australia. Now large Korean companies are building Factories in some Asian and Eastern European countries. These companies have invested a lot of money. The managers of those companies are also learning Hangul. 한글은 창제된 지 500년이 되었지만 실제 발전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그 한글이 세계 속에 자부심을 가지고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호주의 대학에서는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해 놓았다. 그리고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아시아나 동부 유럽 국가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그 회사 간부들은 한글을 배우고 있다. It is time to invest money and to make an effort to develop Hangul for the 21st century like the French government has done. The language of the future has a strong economic value. Hangul is seven times faster in computer operation ability than Chinese or Japanese. 이제 한국 정부도 프랑스 정부가 했던 것처럼 한글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21세기의 언어는 강한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 컴퓨터에서 한글의 업무능력은 한자나 일본어에 비해 7배 이상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When Windows 95 appears on your screen, Hangul is breathing on the tips of your fingers beyond the time barrier. 윈도우 95 화면을 보고 더블클릭을 하는 순간 한글의 위력은 500년이란 시간의 벽을 넘어 손끝에서 살아 숨쉰다. The 21st century will be the age of information. National competitive power depends on the quantity and quality of information. Therefore the national goal for the Clinton administration is to end illiteracy. The American literacy rate is only 79%. The Korean illiteracy rate is near the zero percent mark, because Hangul is easy. 21세기는 정보화 사회다. 즉 정확한 정보의 양과 질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적 목표로 내세우는 것도 문맹의 퇴치이다. 현재 읽고 쓸 줄 아는 미국인은 고작 79%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쉽고 간결한 한글 덕분에 문맹률 0%라는 경이적인 기록에 육박한다. 우리는 흔히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 선포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 전해진 것으로 한글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단군 시대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글자다. 정확히 말해 단군3세 가륵임금 때인 B.C 2181년에 정음 38자를 만들어 ‘가림토(加臨土)’ 문자라고 명명하여 발표한 것이 그 시초다. 놀랍게도 과거 우리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만주에는 가림토 문자 비석이 우뚝 서 있다. 그 비석을 탁본한 것이 높이 2m, 폭이 32㎝인 것을 보면 비석은 이보다 조금더 클 것이다. 세종대왕은 성삼문을 만주 방면으로 열세 번이나 보내어 가림토 문자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글을 연구케 하였다. 그리하여 집현전 학자들인 성삼문, 박팽년, 최항, 신숙주 등과 가림토 문자를 실제 쓰기에 편리하도록 다듬어서 서기 1446년 병인 음력 9월 상한(양력 10월 9일)에 훈민정음 28자를 반포하였다. 우리 민족 문화의 뿌리는 음양오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과 글은 물론이요, 음식, 주거, 의복, 의학, 음악 등 어느 하나 음양오행과 관련되지 않은 분야가 없다. 한글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원리와 음양오행(陰陽五行) 원리를 바탕으로 창제되었다. 한글의 기본 형태는 천(天), 지(地), 인(人), 원(圓), 방(方), 각(角)의 형태로 나누어지는데, 천은 , 지는 ―, 인은 |로 표시하여 모음을 만드는 데에 이용한다. 하늘은 둥글어서 둥근 점이요. 땅은 평평하여 一자이고 천지간에 서 있는 것이 사람이라 |자로 표시하는 것이다. 원(○), 방(□), 각(△)은 자음을 만드는 데에 이용한다. 원방각의 구조는 인간을 말한다. 원은 사람의 머리이고 방은 사람의 몸통이다. 각은 손발의 움직임을 상징한다. 또한 각은 만물이 싹트는 모양이며, 방은 잎이 넓게 자라는 모양이며, 원은 열매 맺는 모양을 말한다. 우주 만물은 오행의 원리에 따라 존재하는데, 우리말의 소리법칙도 이 원리에 맞추어 창제되었다. 따라서 한글은 이 세상의 온갖 소리를 그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다. 소리는 입안의 목구멍¹에서 시작되어 어금니², 혀³, 이⁴, 입술5 을 통해 나온다. 자음은 오행의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그리고 기본음이 있고 각 기본음에서 파생하여 계열음이 생김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기본음 ㄷ에서 ㅡ을 떼면 ㄴ이 된다. 또한 ㄷ에 ㅡ을 보태면 ㅌ이 되고 ㄷ에 ㄱ을 보태면 ㄹ이 된다. 또 ㄷ에 ㄷ을 합치면 ㄸ이 된다. 한글이 얼마나 지혜롭게 이루어졌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미국에 널리 알려진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 지 1994년 6월호 「쓰기 적합함」이란 기사에서, ‘레어드 다이어먼드’라는 학자는 ‘한국에서 쓰는 한글이 독창성이 있고 기호 배합 등 효율 면에서 특히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 바 있다.(조선일보 94.5.25). 그는 또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말한다. 또 소설 『대지』를 쓴 미국의 유명한 여류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극찬하였다(조선일보 96.10.7). 그런가 하면 시카고 대학의 메콜리(J. D. McCawley) 교수는 미국사람이지만 우리 나라의 한글날인 10월9일이면 매해 빠짐없이 한국의 음식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KBS1, 96.10.9). 몇 년전 프랑스에서 세계언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학자들은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 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KBS1, 96.10.9).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글의 우수성을 정작 우리 자신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1986년 5월, 서울대학 이현복 교수는 영국의 리스대학의 음성언어학과를 방문하였다. 그때 리스대학의 제푸리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한글이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파생해내는 방법(‘ㄱ-ㅋ-ㄲ’)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훌륭하다고 극찬하였다. 그러면서 한글을 표음문자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feature system)로 분류하였다. 샘슨교수의 이러한 분류방법은 세계최초의 일이며 한글이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로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지난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에서 우리 나라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한글은 소리글자(표음문자) 중에서도 가장 발달한 음소 문자이다. 즉, 글자 하나하나가 낱소리(하나의 소리)를 표기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모음이 열자이고 자음이 열넉자이다. 그리고 받침이 27종 있다. 모음과 자음을 합치면 하나의 글자가 되고 여기에 받침을 더해 사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한글은 그 구성 원리가 간단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대단히 쉽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모든 어린이들이 한글을 알고 있다. 또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한글은 글자 그대로 읽을 뿐 아니라, 인쇄체나 필기체 등이 따로 없다. 이에 반해 영어는 인쇄체와 필기체가 서로 다르다. 또한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별이 있고 글자대로 읽지 않는다. 예를 들어 speak(말한다)를 ‘스피-크’라고 발음한다. ea를 ‘이-’로 발음하는 것이다. 그런데 head(머리)는 ‘헤드’라고 발음한다. 같은 ea인데도 ‘에’라고 발음한다. 또 knee(무릎)를 ‘니-’라고 발음하는데, 여기서는 K자가 있는데도 발음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영어는 알지 못 하면 읽을 수조차 없다. 국제어로 그 위상을 뽐내고 있는 영어에 비해 우리의 한글이 더 없이 우수한 글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한글의 우수성이 세계에 널리 알려질수록 영어는 국제어의 자리를 한글에 양보해야 할 것이다. 한글 문화권에 사는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기는 쉽다. 영어발음을 90%이상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소리의 표현을 우리말은 8800개를 낼 수 있다. 이에 비해 일본어는 300개, 중국말(한자)은 400여개라고 하니 우리말의 표현력이 무려 20배가 넘는다. 세계언어 중에 단연 독보적인 존재인 것이다.(조선일보, 96.10.7, 재미동포 박춘양의 발표기사) 외국인이 말을 할 때 흔히 제스츄어를 많이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언어의 표현력이 부족하여 생기는 습관이다. 우리는 말로써 충분히 표현되기 때문에 제스츄어를 굳이 쓸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제스츄어 쓰는 것이 세련된 문화인 것처럼 인식되어 한 때는 흉내내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우리말은 외국어로 번역이 안되는 것이 너무 많아서 나쁘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사실 우리말의 표현 그대로는 세계 어느 나라 언어로도 번역을 못한다. 우리말은 표현력도 세계 으뜸이지만 어감(語感), 정감(情感), 음감(音感) 등도 으뜸이다. 외국에서 우리말을 번역 못하는 것은 우리말이 뒤떨어져서가 아니다. 외국어가 표현력이 부족하여 우리말을 번역하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 책임이라 할 수 있을까? “가자미 냄비에 물을 잘잘 부어 살근살근 끓이고 졸졸 졸여서 노리끼한 고기를 보시기에 소복하게 담아서 괴괴한 달빛 아래에 사랑하는 님과 둘이서 술 한 잔 곁들이니 살살 목을 넘는 요맛이 달콤하기도 하다.” 너무나 다양하고 아름다운 표현법이다. 이 표현과 어감을 어떻게 외국어로 제대로 번역해 내겠는가? 삼라만상(森羅萬象)에 음양(陰陽)이 있듯이, 우리글에도 음양의 짝이 있다. 한글은 양이요, 한자는 음이다. 한자의 시조로 불리는 창힐은 배달국시대 제14세 치우천황의 후손으로 동이사람이다. 초기의 문자로서 실증된 최초의 자료는 갑골문(甲骨文)이다. 거북이 배뼈와 소 어깨뼈에 주로 새겨진 갑골문자는 3천4백년전 중국 은(殷)나라 때 사용된 것으로, 황하 이북 은나라 도읍지였던 지금의 안양(安養)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명지대 진태하(陳泰夏) 교수(국문학, 한국 국어교육학회 회장)는 대만에서 문자학을 연구하면서 갑골문에서 북방민족이 아니면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특징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연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漢字’라는 명칭은 옳지 않으며, 고대 한민족의 글이라는 ‘고한글(古韓契)’ 혹은 ‘동방문자(東方文字)’ 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교수는 또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표의문자도 만들었고,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도 만들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이 일은 한민족의 큰 자랑이다’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입증되는 날,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글 전용론자들과 한자와 한글을 혼용해야 한다는 논쟁 자체가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한글은 한글로서의 장점이 있고, 한자는 한자로서의 장점이 있다. 이 둘을 합하여 쓸 때 가장 합리적이고 완벽한 언어가 된다. 다시 말해 한자와 한글의 혼용은 음양의 합덕인 것이다. 왜 한글이라고 할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한’이란 자를 애용해 왔다. 현재 우리 나라의 국호가 한국(韓國)이라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한의 뜻은 왕, 수장, 우두머리, 하나, 크다, 바르다, 많다, 밝다, 훌륭하다, 하느님 등 여러 가지 좋은 뜻이 담겨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28자를 반포할 당시 훈민정음이라 불리어졌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언문(諺文), 언서(諺書)라고도 했으며, 그 후에는 반절, 암클, 아랫글, 가갸글, 국서, 국문, 조선글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근대에까지 이르렀다. 그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불리던 명칭은 ‘언문(상말을 적는 상스러운 글자)’이었다. 그러나 개화기에 접어들어, 언문이라는 이름은 사대주의에서 나온 이름이라 하여, 주시경 선생께서 비로소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이 명칭이 일반화한 것은, 조선어학회에서 훈민정음 반포 8주갑이 되던 병인년 음력 9월 29일을 반포 기념일로 정하여 처음에는 ‘가갸날’이라고 부르다가 1928년에 ‘한글날’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면서 부터이다. ‘한글’이라는 명칭의 뜻은 ‘한나라의 글’, ‘큰글’, ‘세상에서 첫째 가는 글’등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한글’은 한나라, 한겨레와 함께 영원히 뻗어나갈 글이요, 큰 글이니, 남녀노소 모두 한가지로 넓고 크게 써야할 글이며, 세상에서 첫째 가는 글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상제님 말씀처럼 앞으로 우리말, 우리글이 세계 공용어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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