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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초강속구’ 노아 신더가드, 2025시즌 복귀 예고…“살 빼고 만나요”
Cựu đội bóng chày Major League (ML) Noah Syndergaard dự kiến sẽ trở lại vào mùa giải tới. @@John Heyman của hãng truyền thông Mỹ New York Post cho biết trên kênh cá nhân của mình vào ngày 17 (giờ Hàn Quốc), “Noah Syndergaard đang lên kế hoạch trở lại. “Tôi dự định sẽ trở lại vào năm sau sau khi giảm cân,” anh nói. @@Syndergaard từng được coi là cầu thủ ném bóng xuất phát ném bóng nhanh nhất ở Giải bóng chày Major League (ML). Anh ấy đã ra mắt ML với New York Mets vào năm 2015 và sử dụng bóng nhanh với tốc độ 102 dặm một giờ (164 km một giờ, dưới tiêu chuẩn tốc độ tối đa) và một thanh trượt 95 dặm một giờ (152,9 km một giờ). Tốc độ nhanh hơn sức quay của quả bóng khiến người đánh bóng rơi vào tuyệt vọng. @@Tuy nhiên, chấn thương thường xuyên được coi là vấn đề điển hình của những người ném bóng nhanh đã cản trở Syndergaard. Syndergaard cuối cùng đã trải qua cuộc phẫu thuật Tommy John vào năm 2020 do tổn thương dây chằng ở khuỷu tay phải. @@Sau cuộc phẫu thuật, Syndergaard cũ biến mất. Tốc độ bốn đường nối, trước đây là 97,8 dặm một giờ (157,4 km một giờ), đã giảm xuống còn 90 dặm một giờ (144,8 km một giờ). Tốc độ quay của Syndergaard thấp hơn so với các tay ném khác so với bóng nhanh. Tốc độ không phải là vấn đề, đó là lợi thế của anh ấy. Tuy nhiên, khi vận tốc của anh ấy giảm xuống, Syndergaard ghi 1 trận thua trong 2 trận, 3 lần trúng đích (1 lần chạy trên sân nhà) và điểm trung bình kiếm được (ERA) là 9,00 sau khi trở lại mùa giải 2021. @@Sau mùa giải trở lại, Syndergaard chơi cho bốn đội trong hai năm, bao gồm LA Angels, Philadelphia, LA Dodgers và Cleveland. Nhưng tôi không thể tìm thấy Syndergaard trước đó. Cuối cùng, anh ấy không thể xuất hiện ở ML mùa này. Thật thú vị để xem Syndergaard sẽ sử dụng chiêu trò nào sau khi nghe tin anh ấy sẽ trở lại sau khi giảm cân.
라저스작성일
2024-07-1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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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터] 어느 인강 강사가 해주는 위로
출처 공단기 유튜브참고로 이 인강 강사님은 공무원 행정법계 스타강사 '써니' 박준철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까 한 마디만 좀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사실 강의를 이렇게 하다보면요. 많은 수강생들을 만나고 많은 합격생들을 만나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 직업이 가지는 좋은 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근데 그 합격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요. 정말 사연은 다 달라요. 전부다 고유한 사연 가지고 있고, 그리고 합격한 학생들이 와서 이런저런 얘기하는 거 보면 정말 제가 이제 스스로 감동을 받고,제 스스로를 다그치고,제 스스로를 동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다들 이렇게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중에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런 수강생들이 있었는데, 2011년이었어요. 그때는 제가 오전 수업을 하고 저녁 수업에 저녁에 단과가 있었거든요. 그때 오전 수업을 끝나고 연구실로 가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가고 있는 길인데 학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합격생들이 찾아왔으니까 점심 먹으러 오라 그래서 굉장히 의아했었죠. 왜냐하면 합격생들 온다고 밥 먹으러 오라고 그러지는 않거든요.얼마나 많은데...당연히 그런 얘길 안 할 거 아니예요. 그래서 이제 갔더니 학원 관계자들이 있었고, 그리고 이제 합격생들로 보이는 학생들이 4명이 있었고 그리고 좀 나이가 많은 분들도 몇몇이 있었어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그 학생들이 시각장애인들이었어요. 시각장애인들이었는데, 그 때 그 당시 학원에서 시각장애인 연합회에다가 학원 강의를 제공을 했었던 겁니다. 그 학원 강의를 무료로 듣고 합격한 학생들이 네 사람이나 있었던 거예요. 보통 우리가 장애가 있으면 공부하는 게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특히 시각장애인들 같은 경우는 공부하기가 되게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안 그래도 그 학생들이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우리가 공부에 있어서는 제일 취약했을 겁니다."라고... 웃으면서 얘기를 하는데 저도 이제 굉장히 참 놀라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해서 몇 마디를 이제 물어 봤었죠. 물었던 내용 중에 하나가, 점자 책을 볼 때 색깔이 들어가 있거나 좀 강조 되어 있거나 하는 부분은 어떻게 공부를 했느냐. 그랬더니 웃으면서 하는 얘기가 점자 책은 볼 수가 없었대요. 왜 볼 수 없었냐 하니까, 너무 당연한 얘기였던 게,사실은 이 책을 점자로 바꾸면 권당 억이 넘는대요. 수요도 없고 텍스트가 많으니까 권당 억이 넘는대요. 한 과목만 해도 몇 억이 넘는 거죠. 5과목을 다 합치면 10억이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어보니까, 동영상강의를 순수하게 귀로 들어서 공부를 했었던 거예요. 근데 아시다시피 동영상 강의는 시각에 최적화된 거지, 절대로 청각에 최적화된 강의가 아니었거든요. 근데 이 학생들이 동영상 강의를 듣기만 해가지고... 특히 저같은 경우는 판서가 별로 없지만, 판서 많은 강의 같은 경우는 정말 힘들었을 거란 말이야. 근데 그 강의를 들어가지고 합격을 한 거예요. 그리고 그 학생들이 공부할 때 제일 어려운 과목이 영어였다는 거예요. 영어 같은 경우는 철자를 봐야 되는데 그것도 안 보이고 하니까. 시험을 칠 때는요. 시험시간이 100분이면 시각장애인들 같은 경우는 150분의 시간을 줬대요. 근데 막상 영어 푸는데 거의 시간을 90분을 다 썼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그 시각장애인들이 시험을 칠때 리더기를 줬대요. 리더기를 줘서 영어를 쭉 읽으면 발음을 해 주는데, 그게 그냥 거의 뭐 기계음 있죠. 옛날 기계음. 그것처럼 나오다 보니까 또렷하지도 않아서 어떨 땐 알파벳을 하나하나 찍어 가지고 시험을 쳤다는 거요. 그래서 영어 푸는 시간만 보통 한 90분이 걸렸답니다. 그렇게 해서도 매번 간신히 과락만 면하는 점수를 얻었다는 거예요. 근데 그 학생들이 저를 콕 집어서 와 줬으면 했던 게... 그 당시에 그 학생들이 행정법을 고득점을 한 거예요. 영어는 과락만 면하고, 행정법을 잘 쳐가지고 저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그랬다는데, 저는 그때 제가 고맙다고 그 학생들한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말을 되돌려 줄 정도로, 그 날 밥 먹는 내내 1시간 동안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같이 오신 분들은 복지관 분들이셨어요. 눈이 잘 안보이는 분들도 약시가 있고, 전맹(全盲)이라 그래서 아예 안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 학생들은 완전히 앞이 안 보이는 학생들이었으니까 올 때도 혼자 못 오죠.그래서 그 복지관 분들이 같이 온 겁니다. 이 합격생들이 합격을 하고 전국의 시각장애인 분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격려 전화를 받았대요. 그 전까지는 '시각장애인들' 그러면 특정 직업만 가지는 거라고 고착화가 되어 있었는데,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정말 많은 격려 전화를 받았다고, 환한 얼굴로 돌아가셨어요. 그 학생들은 처음으로 남들이 안 가본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간 거 아닙니까. 그 전까진 합격생이 없었으니까. 남들이 안 가본 길을 그 당시에 그 친구들이 최초로 간 거였기 때문에,저는 내심 그 다음해에 합격생들이 더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발표가 그 당시에 9월에 났는데, 9월이 되어도 연락이 없어요. 연락이 없다가, 10월이 되어도 연락이 없어서 거의 뭐 반 포기하고 있었는데, 11월에 연락이 왔었어요. 연락이 와서 갔더니 이제 두 명이 앉아 있는 거예요. 두 명이 앉아 있는데. 한 학생은 28살 여학생이었고 한 학생은 35살 남학생이었습니다. 그땐 뭐 점자 이런 얘기를 안 하고 몇 가지를 편안하게 물어보는데, 공부 기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죠. 그러니까 그 여학생은 12월 28일에 시작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그렇게 얘기를 안 하잖아요. 보통은 몇 년 됐다, 몇 개월 됐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12월 28일이 뭘까 싶었더니 그 전 해 12월 28일에 시험을 쳐서 4월에 국가직에 합격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또렷하게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게다가 그 학생은 또 다른 발표를 기다리고 있대요. 뭐냐고 그랬더니 7급 시험을 필기를 합격한 상태로 최종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 학생도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학생이었어요.그래서 올 때도 어머님과 같이 왔었던 그런 학생이었는데, 나름 굉장히 학업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있어가지고 지방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원래 고향은 서울인데 지방에까지 대학원에 가서 다닐 정도로, 그 정도로 열의를 가지고 공부를 했었던 학생이었죠. 그러니까 그렇게 빨리 붙었던 거죠. 그리고 35살 남학생은요. 공부를 언제부터 했냐고 그러니까 3년이 됐대요.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해서 직업훈련만 받다 보니까 공부를 전혀 안 했대요. 공부를 언제 시작했느냐고 물어보니까, 3년 전부터 시작해서 알파벳부터 시작했답니다. 알파벳부터 공부를 해 가지고 어쨌든 3년 안에 붙어 낸 겁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대단해서 그러면 체력관리는 어떻게 했냐고 그랬더니, 웃으면서 하는 얘기가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복지관에 가면 있대요. 일반적인 헬스클럽은 갈 수가 없고요. (시각장애인에게는)흉기니까. 다 위험하니까 갈 수가 없고, 복지관에 가면 그나마 시각장애가 있더라도 운동을 할 수 있는 고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데, 가는 데 2시간, 오는 데 2시간이어서 엄두를 못 냈대요. 그 학생은 그냥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특정 일을 계속 하다가서른 둘에 모든 걸 접고 공부를 시작을 하면서 그때 알파벳 공부를 시작했던 거죠. 혼자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고 빨래하고 그러는 걸 운동 삼아 해서,공부를 3년 해서 붙었다는 거예요. 지금 저는 이렇게 뭐 담담하게 얘기하지만, 막상 그 학생들이랑 얘기하는 순간에는 무슨 마술을 보는 것 같았어요. 일단 결심을 했다는 것 자체부터 엄청나게 대단한 거구요. 알파벳부터 공부해 가면서 모든 강의를 귀로 들어 가면서 하나하나 공부를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그 당시에는 감동이 되었거든요. 첫해에 그랬고, 그 다음해에도 그랬으니 그 다음부터는 합격자가 되게 많이 나올 거라고 기대를 했지만, 그 다음해부터 행정법이 선택과목으로 바뀝니다. 영어, 국어, 국사는 필수, 나머지는 선택과목으로 되다 보니까 아무래도 그 학생들은 영어를 잘 할 수가 없어요. 영어를 잘할 수가 없는 게, 영어는 독해 때문에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고 독해 하는게 너무 힘들어서 시각장애인들이 잘 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 이거 이제는 안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보니까 선택과목이 도입된 해에도 많은 학생들이 붙어서 메일을 보내오고 그랬었거든요. 지금도 묵묵하게 공부를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을 거예요. 그 학생들이랑 밥을 같이 먹고 나서, 피상적으로 그냥 제가 좋아했던 시가 떠올랐었어요. 그래서 그때 저녁 수업시간에 가서,오늘 오전에 수업 끝나고 이런 일이 있었다고 단과 수업시간에 얘기를 하면서 전해드린 시가 있었습니다. 한때 노벨상 후보까지 올랐었던 시인의 '길' 이라는 시가 있었어요. 길이 없다.여기서부터 희망이다.숨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다.길이 없으면길을 만들며 간다.여기서부터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미래의 험악으로부터 내가 가는 현재 전체와그 뒤의 미지까지 그 뒤의 어둠까지이다. 어둠이란 빛의 결핍일 뿐. 여기서부터 희망이다.길이 없다. 그리하여 길을 만들며 간다. 길이 있다. 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 있다. 라는 시를 전해드렸습니다. 그 학생들은 정말 길을 하나하나 만들어 갔었던 학생들이었거든요.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공부를 하실 때 정말 하나하나 길을 만들면서, 그러면서 공부를 해야 되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그나마, 그나마 길을 만들지는 않아도 놓여 있는 길을 그냥 편하게 가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막상 길을 가다 보면은 목적지를 분명히 보고 갔는데,가다 보면 점점 더 목적지가 가까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경험을 하는 분도 계실 거고요. 분명히 길이라고 갔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물들이 하나씩 하나씩 여러분들 앞을 막아 나서는 그런 경험들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 앞으로도 많이 하실겁니다. 근데 원래 그렇습니다. 원래 어떤 목표라는 게 있으면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은 원래 쉽지 않아요. 어떤 하나의 목표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는 것 자체는 원래 사람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목적을 위한 과정은 원래 힘든 길입니다.(중략)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는 말은요. 내가 지금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꼭 참고 이겨내면 행복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에요. 우리 삶은요. 늘 굴곡이 있습니다.삶이라는 것 자체는, 올라가기만 하는 삶도 없구요. 내려가기만 하는 삶도 없습니다. 늘 삶이라는 것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게 돼요. 우리 많이 보지 않습니까.최정상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을 엄청나게 많이 보지 않습니까. 연예인, 정치가, 운동선수...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추문을 저지르면서,본인의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지금도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사람들이 무명 시절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일들은 안 일어났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바닥에 있더라도 비굴하고 좌절하지 말고,어느 정도 성공을 했더라도 교만하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어느 정도 성공이 있을 때에는 똑같이 옛날에 힘들었던,노력했던 그 과거를 생각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 감사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나중에 밀알이 될 거란 말입니다. 저는요.'제 수업을 들으신 분들은 전부 다 100% 합격할 겁니다'이 말씀을 못 드려요. 경쟁률이 1:1이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에 합격했다고 성공, 떨어졌다고 실패했다는 말에도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신도 사람이 죽어야 평가를 내리는데,우리가 어떻게 사람의 단면만 보고 '잘했다, 못했다' 는 평가를 내리겠습니까. 그러나, 그러나 여러분.작물을 수확해서 먹고 사는 농부도 가을에 낫 들고 뛰어가지는 않습니다. 엄청난 수고를 겨울과, 봄과, 여름에 하기 때문에 가을에 작물을 걷을 수 있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가만히 있다가 운 좋아서 덜컥 걸리는 시험은 그것은 복이 아니라 나중에 엄청난 독으로 돌아올 거예요. 내가 지금 땀을 흘리지 않고, 내가 노력을 하지 않고 얻은 결과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을 하고 내가 수고를 했었을 때 얻어내는 결과가 내 것이 되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농사를 짓는 사람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태풍으로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병충해 때문에 날아갈 수가 있습니다. 양계장을 하기 위해서 엄청난 공을 들이고 엄청난 노력을 했더라도 조류독감이 퍼지면 다 날아갈 수가 있어요. 특히 우리 공부는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느정도 노력을 했더라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온다고 보장하기는 어려워요. 그렇지만 여러분. '조류독감이 올해도 올 거야' 라고 하면서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있는 사람과 열심히 노력했는데 조류독감 때문에 양계장을 망친 사람은 그 다음이 달라질 거예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은 그 다음에도 똑같이 아무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적어도 양계장을 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었던 사람들은 그 노력과 수고의 결실을 알기 때문에 성공할 수가 있게 되는 거죠. 예측은 아무도 못 합니다.다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그때그때 노력하는 것. 여러분을 위해서,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그리고 여러분들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최선을 다해 가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의 삶이 힘드실 거예요. 그러나 적어도 20년 뒤 30년 뒤에 여러분들은 정말 지금의 여러분들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을 겁니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의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이 이 시기를 정말 강하게 잘 이겨내어서 여러분들이 또 다른 훌륭한 자산을 쌓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제가 확실히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그거에요. 지금 여러분들이 힘드시겠지만 이 과정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이 시간들은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정말 축복의 시간이 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잘 일어나 가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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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터] 자룡과 미부인
"쳐라! 진격이다!" 조조군은 유비군을 향해 군사를 앞세웠다. 유비는 완전히 꺽인 전세를 보고 후일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는 도주했다. 조조는 이번 전쟁이 유비를 꺽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매섭게 추격했다. 발밑까지 쫓아온 조조군을 보고 유비는 가족을 돌볼 여유도 없이 도망을 쳤다. 유비는 조운에게 흩어진 가족을 구출해, 후발대로 합류할 것을 지시하였다. 자룡은 홀로 적진을 뚫고 유비의 가족을 찾아다녔다. 이런 자룡을 순우도가 알아보고 추격했다. 자룡은 앞으로 나선 기병을 쓰러트리고는 말에 올라타 달렸다. 본진에 홀로 뛰어든 자룡을 본, 순우도는 공을 쌓을 기회라 여겨 맹렬히 추격하여 맨앞으로 튀어나왔다. 이때를 노린 자룡은 몸을 돌려 창을 휘둘렀고, 순우도는 쓰러졌다. 이에 놀란 추격군은 뿔뿔히 흩어지고, 자룡은 추격에서 벗어났다. 어느 작은 마을에 들어선 자룡은 잠시 몸을 숨기고 허기를 달래려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우물 근처에서 미부인과 유선을 찾았다. "미미..!" 자룡은 미부인과 눈을 마주치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룡은 수려한 외모와 시원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특히 유비의 측근인 미축과 사이가 좋았다. 미축은 그를 집으로 초대하여, 대접할 일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그의 동생인 미미를 자룡에게 소개해 주게되었다. 미미는 아름다웠다. 작은 체구에 분홍색 옷과 장신구가 잘 어울렸다. 얼굴에 항상 웃음이 넘쳤고,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성격에 구김이 없었다. 미미의 눈에도 자룡이 멋있게 보였다. 휜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농담도 잘하는 그가 맘에 들었다. 둘은 자주 만나게 되고 좋은 감정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치가로써 야심이 컸던, 미축과 미방은 그녀를 유비의 후첩으로 시집을 보내게 되고, 자룡과 미미는 자신들의 감정을 감춰야만 했었다. "자룡 오라버니.." 자룡과 마주한 미미는 다친다리를 뒤로 숨기고, 자신의 아들인 유선을 품에 끌어 안았다. 자룡은 막막했다. 이 둘을 데리고, 적진을 뚫고 나가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자룡은 옆에 우물을 바라보고는. 주변에 바위들을 모두 모아 우물에 던져 메꾸고 내려갔다.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미를 우물아래로 뛰어내리게 하고는 자룡이 받아 안았다. 키가 작은 미미는 땅에 발을 디딜수가 없어 자룡을 끌어안을 수 밖에 없었고, 자룡은 그런 미미를 유선과 함께 감싸 안았다. 잠시후 밖은 시끌시끌했다. 들킬까 두려운 미미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런 미미의 움직임을 느낀 자룡도 같이 안아줬다. 무엇인가 찾는 듯 하고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잔뜩 긴장했던 둘은 마음을 풀었다. 하지만 서로 아무말 하지 않았다. 자룡은 자신의 얼굴을 간지럽히는 미미의 머리카락을 피하려했지만, 끌어안은 상태에서 그냥 있어야 했고, 간간히 닿는 그녀의 얼굴을 느꼈다. 어두워질때까지 기다린 그들은 밤이 되자 우물에서 나왔다. 리를 다친 미미는 서있기 어려웠고, 그런 그녀를 등에 업은 자룡은 오히려 행복했다. 등에 엎힌 미미는 둘이 처음 만났을때 이야기를 했다. 서로의 첫인상과 어떻게 친해졌는지 되돌아 보고는 재밌어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시 미미가 유비에게 시집가는 이야기 까지 와버렸다. 미미는 물었다. 그리고 한참뒤에 자룡이 대답을 했고, 이내 미미는 자룡의 등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린다. 그 뒤 서로는 아무말 없이 본진으로 복귀했다. "고생많았어!. 이렇게 우리 아들을 구해온 자룡에게 상을 내려라!" 유비는 혼자힘으로 자신의 아들을 구해온 자룡을 칭찬했다. 유비의 입에서 미미의 이름이 나오지 않은것에 대해 자룡은 서운했다. '주군은 당신의 부인이 살아돌아온 것은 기쁘지 않습니까?' "미부인, 당신도 고생많았소. 어서 들어가 쉬시오." 유비는 아들을 안고는 첫째부인 감부인에게 가버렸다. 미미는 방에 들어가 털썩 주저 앉았다. 이내 시녀와 의원이 찾아와 다리의 상처를 치료하고는 돌아갔다. 미미는 침대에 누워 지난날을 뒤돌아 봤다. 미축/미방의 정치적인 욕심때문에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하게된 자신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유비에 대한 태도로 자연스레 나타나게되어. 유비에게 살갑게 대하지를 못했고, 유비역시 이런 미부인보다는 자신에게 잘하는 감부인에게 더 정을 쏟았다. 자룡은 군장을 풀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았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돌아봤다. 우물안에서 미미의 몸을 끌어안고 있던 느낌을 되새겼다. 우물밖 병사들의 소리와 미미의 가녀린 떨림의 순간들..그리고 자신의 조절할수 없었던 심장의 울림.. 조조군에게 쫒긴 유비군은 서쪽으로 멀리 이동한 후 전열을 가다듬었다. 비를 따랐던 농민과 군사들은 물론 유비의 친가족까지 나와 진지구축에 힘을 쏟았다. 자룡은 홀로 떨어져서 풀을 배고 있는 미미를 보았다. 미미 역시 자신을 보고 있는 자룡의 눈길을 느끼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룡은 지난번 느꼈던 둘의 감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미미 곁으로가 풀을 베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는 슬쩍 말을 건넸다. "밤에 여기서 기다릴께" 미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밤에 그와 같이 있게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될지 알 수 있었다. 미미는 일과가 끝난후 침소에 들어선 후에도 흐트러진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감정과 현실을 넘나드는 자신의 마음을 붙잡기가 힘이 들었다. 오랜 고민중에 밤이 깊어가고, 자룡이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함을 참지못한 미미는 시녀복장으로 밖을 나섰다, 미미는 자신의 몸을 담벼락의 어둠속에 몸을 숨긴채 주변을 둘러본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않자 기다리다 지쳐 돌아갔구나 안심하고 돌아서던 찰나, 누군가가 자신의 입을 가리고 끌어안았다. 미미는 깜짝 놀라 동그란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룡임을 알아보자 그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미미도 자룡을 끌어안았다. 밤마다 미미를 만나는 자룡은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날 밤 자리에 누운 그는 생각했다. 이 행복이 언제까지나 이어질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만남은 결국에 발각될 운명인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 봤다. 이 난세에 장군으로써의 삶.. 아군/ 적 할 것없이 서로 살기위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전장속의 자신은 결국에 열심히 싸우다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리고 남몰래 만나는 이 만남..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들켜 약점을 잡히거나 죽임을 당할 것이다. 자룡은 자신의 행복과 인생을 위해, 미미와 함게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말과 식량 금 등을 준비하고 떠날 계획을 세운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조조군의 추격으로 잃어버렸던 화장품을 새로이 준비한 미미는 오랜만에 화장대에 앉았다. 오늘밤 유비를 맞이할 생각인 미미는 얼굴에 분칠도 하고 눈썹도 그리고, 입술도 붉게 덧칠을 한다. 옷도 가장 화려한 것으로 골라 입고, 시녀들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마당 중간 나무 밑에 음식과 악기들을 차리고 춤과 노래를 불렀다. 유비는 길을 걷다가 미미가 춤과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근처로 다가갔다. 미미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본것이 언제였던가. 유비는 미미를 처음 봤을 때를 생각했다. 미축의 초대로 술자리에 앉았을 때, 그 옆에 미미가 앉아있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당시 느꼈던 두근거림도 같이 떠올랐다. "미부인, 당신 오늘 너무 아름답소.." "마마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부끄럽습니다. 호호" 미미는 대답을 하면서 유비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잡는다. "오늘밤 소인의 침소에 들리시옵소서. 마마. 술과 안주를 준비하겠습니다." "알았느니라 허허허" 깊은밤 미부인은 유비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눈다. 유비는 이렇게 평소와 다른 미부인을 보고 기분이 매우 좋았다. 미부인의 미색은 감부인보다 뛰어나다고 느꼈지만, 자신에 대해 거리감을 두고 싶어하는 듯 하여, 본인도 그렇게 두었던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와 반대로 친근하게 다가와 즐겁게 해주니, 매우 기분이 좋았다. "미부인, 당신 오늘 평소와 다르오. 무슨 일이오? "마마,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제가 오늘 술기운 때문인지 저도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미부인은 유비에게 몸을 맏긴다. 유비는 그런 미부인을 침대에 눕히고 오랜만에 금슬을 좋게하고자 했다. 둘이 절정으로 향해갈 무렵 유비는 목에 무엇인가 감기는 느낌을 느끼곤 신음을 했다 정사중에 목이 졸리며 몸이 들리는 상황에 깜짝 놀랐고, 그저 몸부림을 칠 뿐이었다. 목에 감긴 것을 풀어보려 애를 쓰는데,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미부인의 행동이 눈에 보였다. '이럴수가..!' 자신의 목을 메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왜 미부인은 자신을 죽이려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또 무엇인가?..소리만 지르면 밖에 내시들이 들어와 목숨을 구할진데, 자신의 숨통을 완전히 졸라매는 천 때문에 그럴수가 없다. ‘소리만 지르면 되는데.... ’ 입에서 점점 거품이 올라오고, 눈앞에 시야가 흐려졌다. 허우적대는 유비의 몸짓에 술상과 음식은 바닥에 팽개치며 소리를 냈고, 꺽꺽 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방안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신하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기다릴 뿐이었다. 이내 유비의 몸은 쳐졌고, 미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 몸을 던진다. 천장의 서까래와 기둥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자룡이 내려선다. 유비 목에 감겨있던 천을 풀러보니 두터움 때문인지 목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자룡은 유비를 미미의 몸위에 올려놓고는 침대 밑으로 몸을 숨긴다, "마마. 마마. 어인일입니까. 밖에 아무도 없느냐!!" 미미는 크게 소리치고, 외침에 방에 들어온 내시들은 황망해 어쩔줄을 몰랐다. 단 의원들을 불러 상황과 유비의 시신을 보게 했다. 의원은 정황상 복상사로 주변에 알렸다. 어수선하고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유비, 그의 제사를 치른 신하들은 앞으로의 일을 논하였다. 첫째 아들 유선은 너무 어렸고, 유씨 이외의 다른 이들은 후사를 이을 대의 명분이 부족했다. 다들 답답한 심정으로 말만 오갈뿐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가운데, 미미는 그저 대전에 자리를 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고, 자룡은 그런 미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ps. 2003년도에 짱공 가입하고 눈팅만 하다가 글을 올려보네요.. 제 인생 처음 써보는 짧은 소설입니다. 부끄럽지만 한번 올려봅니다. 돌을 던지시더라도 작은 돌로만 골라서 던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ㅎㅎ 행복한 연말 맞으시길 바랍니다.
사랑천사작성일
2022-12-1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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