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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왜인지 꾸준히 나오는 귀얇은 사람들
특정신화나 전설이 실제 역사가 틀림없다고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 가장 대표적인 부류가 트로이의 예시를 들면서, “봐라 전설이나 신화도 다 뭔가가 있어서 나오는거다. 아틀란티스 같은거도 분명히 실존했다.” 라는 사람들이다. 일단 역사학에선 제대로된 기록이 남은 것도 다른 독립적인 기록들과 여러번 교차검증을 거쳐야 되고, 기록이 있다하더라도 고고학적 발굴로 반박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보편적으로 과장이 심한 전투규모와 전과에 대한 기록이 대표적.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7194139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뻔한게, 신화와 전설은 그 목적부터가 역사적인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매체가 아니다. 구전역사는 따지고보면 제대로된 역사책이 아니라 사극에 가깝다는 뜻. 그리고 소리지만 모든 전설과 신화는 100명의 화자가 1000개의 다른 버전을 내놓는 일이 흔하고, 우리가 듣는 버전은 그저 가장 인기가 많거나 그냥 유일하게 기록된 버전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거기다 애초에 인간의 무의식이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이야기와 소재라는게 거기서 거기라서, 선녀와 나무꾼 같이 서로 교류가 없음에도 유사한 구조의 이야기가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지는 경우도 생긴다. 즉, 전설과 신화 및 기타 구전문학은 그 자체로는 역사로 인정받지 못하는 원시고대 판춘문예라는 뜻. 역사적 사실을 가려내려면 다른 역사기록이나 고고학적 발견이 뒷받침되야 된다. 애초에 트로이만 해도 그냥 전설 하나만으로 입증된게 아니다. 일단 트로이는 고대세계에서 완전히 잊혀지지 않아 거의 1000년 뒤에 알렉산더 대왕이 위치를 알고 마을의 신전에 공물을 바치고 참배하기도 했고, 19세기에 발굴지역이 선정된 것도 그 지역에 도시가 있었다는 언덕에 대한 독립된 전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발굴후에 히타이트에 의해 남겨진 기록들이 해독되어 더 확실하게 입증 되기도 하였다. 즉, 전설 하나 만으로 입증된게 아니라 발굴을 포함한 다른 여러가지 방법이 동원되어 교차검증을 거쳤다는 말. 반면에 아틀란티스를 위시한 초고대문명론이나 유사역사학은 교차검증을 교묘하게 피하거나, 아예 날조된 주장으로 교차검증이 되는척만 한다. 아틀란티스가 2000년이 훌쩍 넘게 플라톤이 유일한 사료(구전까지 포함해서)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최근 10여년간 일명 “사하라의 눈”이 아직 발굴도 못된 것처럼 주장하는 유튜버 역사렉카들이 대표적. (실제론 1950년대부터 프랑스 학자들이 씹뜯맛 다해봤다. 렉카들이 프랑스어가 딸려서 모르는 것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인터넷에만 봐도 날조와 헛소문이 일주일이면 수백수천개씩 나왔다가 사라지는데, 입에서 입으로 수백수천년간 이어진 고요속의 외침은 무조건 믿어도 괜찮을리가 있겠는가. 구전된 이야기들은 그 자체적으로는 증명할수 있는게 없다. 마치 발자국 딱 한짝만 보고 그 사람의 보폭을 알수 없듯이, 구전은 너무나도 단편적인 단서이기 때문. 구전이 무언가 의미가 있으려면 더 많은 발자국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랩터날개작성일
2024-11-23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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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싱글벙글 지도로 보는 동아시아 역사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중국 최초의 왕조 하(夏)나라 현대 중국에서는 실존했다고 우기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역사가 아닌 신화의 영역임. 상나라도 마찬가지로 그냥 신화인줄 알았는데 20세기에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존재가 입증되었음. 공식적인 중국의 첫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짐. 이후 주나라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동양의 문화체계를 확립했음. <사기>에 의하면 요동으로 주나라가 와서 고조선을 통치했다고 하는데 고고학적 근거가 없어서 한국 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음. 주나라 멸망 이후 그 유명한 춘추 전국시대. 고조선은 요동을 넘어 만주일대와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점령하며 분열중인 중국과 대등한 강대국으로 입지를 넓힘.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나라가 등장. 시황제는 요동을 공격하며 동양의 패권을 다지고 만리장성을 쌓아 북방 흉노의 침략에 대비함. 진나라는 얼마 못가 시황제의 폭정으로 멸망하고 초한전쟁에서 승리한 유방의 한나라가 재통일. 현재 중국인들의 중화사상과 한족이라는 개념을 알린 나라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이기도 함.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에 가장 어울리는 나라. 황제가 된 유방은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을줄 알았지만 흉노와 붙었다가 영혼까지 털림.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 북부를 점령해 한4군을 설치함. 또한 흉노 정벌에도 성공하고 베트남까지 정복, 서쪽으로 실크로드까지 개척하며 최전성기를 보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초창기 모습. 부산 위치에 있는 사로국이 나중에 신라가 됨. 평양 지역은 여전히 낙랑군 소속으로 중국땅임. 한나라가 멸망하고 조조 유비 손권이 다투던 그 유명한 삼국지 시대. 이때 위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해서 수도까지 털어먹지만 완전히 멸망시키진 못함. 사마염의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며 삼국시대 종결. 낙랑은 아직도 중국 땅임. 중국이 다시 분열되어 혼란한 시대. 이때부터 힘을 키운 고구려가 313년 낙랑을 정복하면서 한반도에서 중국 세력이 사라지게 됨. 근초고왕이 이끄는 백제의 최전성기. 그 고구려마저 백제에게 삼국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패퇴하며 동진, 일본과 활발한 교역을 하며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함. 광개토대왕 등장이후 고구려의 영토 확장 모습. 한반도는 충청도 인근까지 지배, 북쪽으로는 만주를 비롯한 요동지방 까지 영토를 넓히며 위-진 이후에 남북조 시대에 들어간 중국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국력을 가진 동북아의 패권국으로 위세를 떨침. 참고로 중국을 유린하던 북방민족들은 전부 고구려에게 기가 눌려 조공을 바치는 등 이후 거란족과 여진족, 몽골족이 날뛰게 된 이유가 이들을 무력으로 통제하던 고구려가 사라졌기 때문. 장수왕이 고려로 국명을 바꾼 시대. 다만 후세 역사가들은 왕건의 고려 왕조와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라고 함. 지증왕이 신라라는 국명을 확정한 것도 이 무렵. 신라의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 진흥황 시절. 가야는 이와중에 멸망하지 않았는데 엄연히 보면 4국시대로 말하는게 맞지만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아니기에 사실상 무시되는 국가. 300년간 분열기를 끝낸 수나라의 중국 통일. 그러나 고구려 정복에 모든 국력을 꼬라박은 수나라는 거짓말처럼 패하게 되고… 당나라가 다시 재통일. 어찌보면 진한 교체기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는게 수당 교체기인듯. 서역까지 정복한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수나라가 국력을 탕진했는데도 정벌하지 못한 고구려까지 정복했으나 당나라 역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국력 소비가 막대했기에 신라에게 개쳐맞고 쫓겨나며 신라가 주장하는 영토까지는 인정하고 옛고구려의 영토까지만으로 만족하고 물러남. 사실상 신라는 삼국통일이 아니라 이국통일이라고 해야할 판. 고구려의 영토는 백제와 신라를 합한 것 보다 컸기 때문. 고구려 유민 대조영은 고구려의 의지를 이어받아 발해를 건국. 당나라의 거센 방해에도 불구하고 만주와 연해주를 아우르며 고구려 이상의 영토를 확보하는 등 신라와 함께 공존하며 당나라의 황제에게 해동성국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통일신라의 전성기가 끝나고 분열 시작. 견훤은 백제, 궁예는 고려를 건국했는데, 예전 삼국시대에 존재했던 나라들의 이름을 사용함. 후대의 역사가들은 구분하기 쉽게 후백제, 후고구려라고 부름. 중국도 당나라가 멸망하고 분열기가 시작되며 거란족의 요나라가 잘나가는데, 무려 발해까지 먹어버림. 왕건의 고려가 한반도를 재통일함. 신라의 통일과 이질적인 점은 자주적인 통일이라는 것과, 고구려라는 나라의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것. 이후 고려는 요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송나라가 SOS를 보내자 친선관계를 맺음. 그러자 요나라가 고려에게 시비를 걸고 서희는 이때 말빨만으로 외교 담판을 통해 강동6주를 얻어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의 절반을 차지함. 그 기쁨도 잠시 칭기스칸의 몽골 부족 통일. 순식간에 금나라를 갈아버리고 고려를 복속시킨 뒤, 유럽과 아시아 일대를 정복해버림. 이때까지 버틴 남송이 대단할 정도. 고려의 끈질긴 저항과 먹히지 않겠다는 의지로 결국 몽골은 고려를 간접통치 하는 선에서 남겨두고 중국을 통일시키며 몽골제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거듭남. 핍박받던 한족의 명나라가 몽골을 몰아내고 중원을 되찾음. 이때 명나라는 고려에게 시비를 걸며 조공을 요구하는데 최영이 요동 정벌을 명령하지만…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오히려 쿠데타를 일으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 명나라에게 사대주의 정책을 펼치며 명나라의 그늘 아래서 보호받게 됨. 세종 시기에 여진족을 정벌하고 압록강-두만강 국경을 확정. 현재 남북한을 아우른 한반도의 영토는 이시기에 형성됨. 잠자코 있던 일본은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킴. 명은 임진왜란때 조선을 돕느라 국력 소모가 막대했기에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를 막을 수 없었고, 조선은 명청 교체기에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킨다는 병신같은 선택을 저지르고 맘. 청나라는 명나라 대부분의 지역을 정복한 뒤에 조선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켜 명나라를 섬기던 조선은 다시 청나라를 섬기게 됨. 지금의 중국 영토를 형성한 청나라의 최전성기. 이때 대영제국과 함께 세계 최강국을 다투던 러시아 제국과 마찰하기도 함. 세계 최초로 마약 거래 금지했다고 일으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 유럽열강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고 연해주 영토는 러시아가, 홍콩은 영국이 가져가게 됨. 이와중에 잠자코 있던 일본은 제국주의를 선포하며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시작함. 조선도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국제정세를 살피고 제국주의를 선언하는데 결국 근대화된 일본제국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연달아서 승리하고 미국과 영국 등의 열강들의 지원에 힘입어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에 성공. 청나라가 지배하던 베트남은 프랑스가 뜯어먹음. 망해가던 청나라는 결국 수천년동안 이어진 황제국을 포기하고 쑨원의 중화민국으로 대체됨. 이후에는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중일전쟁으로 중화민국을 침략하는 일본을 서양 열강들이 재재하자 눈깔이 돈 일본은 열강들의 식민지가 깔려있는 동남아에서 남방작전을 실시하고 영국과 미국을 해전에서 전부 격파하는 쾌거를 선보이며 인도차이나반도, 동남아, 조선, 중국 영토의 절반을 전부 차지함. 이제 대동아 공영권은 시간 문제인 것 처럼 보였으나… 결국 남방작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시간을 끌기 위한 작전이였던 진주만 공습이 미국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고, 미국이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자 추축국 독일 역시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전개, 일본은 열세한 국력으로도 기상천외한 작전을 통해 3년동안이나 발악하며 선전했으나, 원폭 2방 맞고 무조건 항복. 일본이 물러난 한반도는 북위 38도 선을 기준으로 당시 초강대국이던 소련이 북쪽을, 미국이 남쪽을 점령한다. 결국 조선-대한제국-일본제국 점령기 대한제국에서 1948년 남한과 북한은 따로따로 독립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한민국,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됨. 이와중에 중국 대륙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국공내전이 일어나는데 당시 중화민국은 일본제국과의 중일전쟁에 막대한 국력을 쏟아 부은 상태였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패배하여 타이완 섬으로 쫓겨남. 사실 미국은 인구가 많은 중국이 소련같은 공산국가가 되면 위험할 가능성에 대비해 중국에게 지원을 막대하게 하였으나, 그 지원 덕분에 공산화가 되버림. 625전쟁.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고 북한은 파죽지세로 부산 앞까지 진격하지만, 미국과 연합군이 참전해서 역전, 역으로 통일에 한걸음만 남았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리며 장기전으로 돌입함. 결국 1953년 휴전선을 그으며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일단락. 일본은 미군정이 물러나며 일본국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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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체스 역사 속의 TMI들
[시리즈] 체스 옛날 이야기 · 15세기의 체스 대격변 패치, “여왕의 체스” · 인디언 오프닝과 어느 시골 브라만의 이야기 · 미국체스협회 레이팅 2위를 달성한 살인범의 이야기 · 1000년 전의 이슬람 체스 퍼즐, 만수바(+++++++) · 에반스 갬빗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 ㅋㅋㅋㅋ 이건 진짜 체스 성유물이네 · 19세기의 체스계 슈퍼스타, 하워드 스턴튼 上 - 영웅편 - · 19세기의 체스계 슈퍼스타, 하워드 스턴튼 下 - 악귀편 - · 대수기보법과 오스만제국 출신 체스마스터 이야기 · 체스 유럽 전파 초기의 무서운 이야기 · 윌리엄 슈타이니츠 : 세계 체스 챔피언의 탄생 앞선 이야기들과 연관된, 미처 적지 못한 TMI들을 모아옴. 1. 이슬람은 알다시피 우상숭배의 우려 때문에 인간과 동물의 형상표현을 제한했었음. 그래서 아라베스크 같은 추상적인 장식문화가 발달하기도 함. 이는 체스에서도 마찬가지였음. 기물을 너무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면 인디언밥 당할 위험성이 있음. 그래서 당시 이슬람 애들은 샤트란지를 둘 때 이렇게 생긴 기물을 썼음. 각각 뭘 어떻게 추상화한거냐면, 룩(전차)은 양쪽에서 말 두마리가 끌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양쪽으로 삐쭉 나와있음. 나이트는 말 대가리 하나가 달려있음. 코끼리는 상아 두 쪽을 표현하기 위해 앞으로 두개 뾰족한 게 나와있음. 킹은 거대한 왕좌, 재상은 그것보다는 조그만한 의자. 졸라 힙하게 생긴듯. 덤으로, 이슬람에서는 최강의 체스 선수들을 알리야트Aliyat, 그에 약간 못 미치는 선수들을 무타까리밧Mutaqaribat이라고 불렀다 함. 2. 19세기까지 체스의 중심지는 파리와 런던이었다고 했는데, 이 파리와 런던에서도 각각 ‘체스의 성지’ 취급받는 장소들이 있었음. 파리에서는, Café de la Régence. 여기는 진짜 오랜 시간동안 체스로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였고,유명한 프랑스 체스마스터가 있다 하면 다 여기가 활동거점이었다고 보면 됨. 레갈, 필리도어, 데샤펠, 라부드로네, 생아망 등등… 유명 경기들도 여기서 엄청 자주 열림. 전에 소개한 스턴튼-생아망 매치도 여기. 폴 모피 vs Harrwitz도 여기. 워낙 핫플이다 보니 유명인들도 자주 방문했는데, 루소, 디드로 같은 철학자는 물론이고, 체스를 좋아했던로베스피에르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도 자주 들렀음.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밴저민 프랭클린도 파리 체류 당시 여기 단골이었다고 함. (여기서 필리도어의 사인을 받고 매우 기뻐했다고 전해짐) 공산주의의 아버지인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도 이 카페에서 만나서 친해짐. 안타깝게도 이미 20세기 초에 망해서 오늘날에는 방문할 수는 없음. 파리의 Café de la Régence보다는 약간은 급이 딸리지만, 런던의 성지는 Simpson's Grand Divan Tavern이었음. 스턴튼 편에서 스턴튼이 겜졌다고 분풀이로 욕했던 그 장소임. 여기도 정말 많은 체스 마스터들이 자주 찾던 곳이었는데, 스턴튼, 안데르센, 모피, 라스커, 타라쉬 등등등… 체스 두고 있으면고기 잘라서 옆에먹을 수 있게 놔주는 서비스가 당시 체스인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았다고 함. 슈타이니츠도평상시에 여기 와서 대국료 받고 손님들이랑 체스 두면서생계를 유지했음. 아돌프 안데르센과 Lionel Kieseritzky가 불멸의 게임(the immortal game)을 둔 장소도 바로 여기. 그냥 체스 핫플로만 유명했던 게 아니라 음식점으로도 졸라게 유명한 곳. 아서 코난 도일도 이 음식점의 단골로,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셜록 홈즈가 “심슨 가서 밥이나 먹을까” 하는 대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고 함. 윈스턴 처칠도 이곳을 자주 찾았음. 놀랍게도 이곳은 아직까지도 운영중이고, 런던에서 가장 전통 있는 레스토랑 중 하나임. 체스 핫플이던 시절은 한참 지났지만 그래도 레스토랑 장식으로 체스를 제법 활용하고 있음. 00년대에는 여기서 이벤트성으로 체스대회를 열기도 했다고 함. 방문객들 말에 따르면 체스 관련 옛날 희귀템들도 레스토랑 안에 제법 전시되어 있다고 함. 코로나 때 경영난으로 일시 휴업을 했고, 2025년에 재개장한다니까, 런던에 방문할 재력이 되는 체붕이라면 꼭 방문한 뒤 인증샷을 남기도록 하자. (음식 존1나게 비싸다고 함ㅋ) 3. 19세기, 20세기 체스사는 사료가 많을 테니 그렇다 치고, 1000년도 전의 인도, 페르시아, 이슬람, 중세 유럽 체스사 같은 건 대체 누가 연구한 걸까? 바로 이 사람. 영국의 학자 H. J. R. Murray가 체스사에 있어서는 거의 신화적인 연구자임. 글에서도 몇 번 언급을 했었는데, 이 사람이 저술한 “A History of Chess”는 1913년에 발표된 책인데도 아직도 체스사 GOAT 취급을 받고 있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체스 인도기원설’을 정설로 정립한 게 바로 이 책. 이 사람은 사실 이 사람 본인보다 아버지가 더 유명한데, 제임스 머레이 교수라고, 대한민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초대 편집장임. 언어학자로 엄청나게 뛰어났던 사람이라 25개 언어를 알고 있었다는 괴담 같은 이야기가 있음… 심지어 제임스 머레이가 주인공인영화도 있음;;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장남인 H. J. R. Murray도 여러 언어에 제법 능통했는데,아버지 급에는 미치지 못하고 12가지 정도의 언어를 알고 있었다고 함. 그 언어 중에는 아랍어, 아이슬란드어, 중세 독일어, 중세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등이 포함되어 있었음… 본직은 교수였는데, 체스 역사에 대한 작업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von der Lasa 남작(당대 꽤 유명했던 독일 체스마스터)의 제의를 받고, 작업에 착수함. 특히 당대에는 ‘체스의 기원이 도대체 어디인가?’라는 논쟁이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었음. (페르시아 기원설 / 인도 기원설이 계속 싸움.) 근데 Murray가압도적인 언어 지식과 수집가들에게 얻어온 세계 각지의 졸라게 광범위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A History of Chess를 집필하면서 인도 기원설을 채택함. 그 뒤로 인도 기원설이 그냥 정설이 되어버림. 세상에 비슷한 작업을 흉내낼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없는데 뭐 이의를 어떻게 제기하겠음?? 인도 페르시아 이슬람 고문헌 함 읽어보실분?? 한 체스 역사가는 “체스 역사가들이 머레이의 작업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을 내놓는 데에 적어도50년이 필요했다”고 말하기도 함. A History of Chess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체스 역사가들이 연구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참고하는 서적. 체닷 포럼에서도 “체스사 책좀 추천해주세요” 하면 이거나 읽으라는 댓글이 졸라게 달림. (근데 900페이지짜리 고봉밥이라 실제로 다 읽은 놈 얼마나 있을까 싶음) 진짜 별에 별 자료를 다 갖다놔서한국 장기도 매우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음 ㅋㅋ 옆에 ‘쟝긔판’이라고 써놓은 게 킬포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280652
조깅27작성일
2024-11-15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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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스압) 스와와 스와신앙
마츠모토에서 새벽전철을 타고 넘어와 카미스와上諏訪에 도착. 카미스와역에서 동네버스를 타고 스와대사 카미샤 혼미야諏訪大社上社本宮로 가는 길. 좌우 산지에 둘러쌓인 고지대이면서도 호수와 강을 끼고 토착신앙이 자라날 면적은 갖춘 스와의 지리적 조건과 그 편린이 엿보인다. 가는 길에 있었던 스와고료닌諏訪御寮人의 모에화 캐릭터. 스와고료닌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후술. 스와대사 카미샤 혼미야. 그 유명한 온바시라御柱. 신사 대각선 방향으로 4개가 서있다. 첫번째 온바시라一之御柱 뒤편 금줄 너머에 있는 아마노사카호코天逆鉾. 타카치호高千穂에 있었던 창이라는 전승으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이 창으로 대지를 뒤집었다고 전한다. 창세의 병장기라는 의미에서 수메르 신화의 창세검 (혹은 그 의인화된 신) 과 유사성이 엿보인다. 인류문명이 시작되기 전의 병장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병장기와는 그 형태가 사뭇 다른 것도 재미있다. 물론 실제로 이 아마노사카호코가 이곳에 안치된 건 에도 시대라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지만, 신화라는 것이 다 그렇듯 사실여부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느냐가 중요하다. 신사 경내는 시치고산七五三을 맞이하여 가을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당연한 듯이 걸려있는 이타에마. 니게와카가 새로 참전한 것도 재미있다. 스와대사는 호조 토키유키北条時行의 사실상 후견인이었던 스와 요리시게諏訪頼重로 인해 니게와카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가마쿠마 시대의 스와 요리시게는 전국시대의 다이묘이자 스와고료닌의 친부인 그 스와 요리시게와 한자까지 동명이인이다. 頼는 스와 가문의 통자通字로, 다케다 신겐의 후계자 다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의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다케다 카츠요리는 다케다 가문의 통자가 아닌 스와 가문의 통자를 이었으며, 따라서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로 불리기도 했던 것. 상세 후술. 혼미야에서 내려다본 스와의 모습이 퍽 넉넉하다. 과거엔 현인신現人神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전하는 회랑. 회랑 끝에 위치한 두번째 온바시라二之御柱. 당대의 마구 및 병마 형상도 구경할 수 있었다. 과연 현대 사극의 서러브레드와는 달리 중세의 말답게 체간이 낮고 단단하다. 스와묘진諏訪明神은 군신軍神으로 추앙받기도 하여 전란의 시대에 스와신사가 곳곳에 퍼지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매년 정초에 행하는 와수의식蛙狩神事의 장소. 고대로부터 이어진 것으로 전하는 이 의식의 의미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하나 재미있는 점은 미샤구지ミシャグジ가 개구리에 빙의한다는 인식으로, 정초에 개구리에 빙의한 미샤구지를 포획하여 바침으로서 모리야신 (토착신) 이 타케미나카타 (외래신) 에게 충성함을 보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토착신과 외래신에 대해서는 후술. 근처 스와시 박물관에는 스와시에서 출토된 죠몬, 고훈, 야요이 시대의 유물을 비롯하여 근세에 이르기까지의 고문서 및 일기들이 망라되어 있어 알찬 시간이었다. 위 사진과 같이 당대에 쓰던 가재도구도 볼 수 있고, 역사를 넓은 시각으로 통사적으로 머릿속으로 정리하기에는 박물관만한 곳이 없다. 근처의 현인신 가문 오오호리大祝의 옛 저택 터. 상당히 최근인 헤이세이 시대에 대가 끊겨 30여년째 폐가가 되어있다. 시 차원에서 관리는 한다고 하지만 간신히 폐가 신세를 면할 정도의 관리상황이다. 토리이가 서있어 이곳이 신역임을 알리고 있지만 그뿐이다. 스와대전 신화를 기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스와에는 원래 토착신 모리야와 그 추종세력이 존재했지만 (야마토 정권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외래신 타케미나카타와 그 추종세력과의 전쟁에서 패배한다. 그러나 완전히 절멸되지 않고 습합, 융화되어, 이후 타케미나카타의 자손은 세습하여 스와諏訪씨가 되어 스와 지역의 현인신 및 통치자가 되고, 모리야의 자손은 세습하여 스와신앙의 신장관 역할을 한 것이다. 그와 별도로 신앙의 대상인 스와묘진諏訪明神은 때때로 구분되지 않고 광범위한 양태를 보이는데 타케미나카타, 모리야는 물론이고 그 이전 신앙의 대상이자 나가노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미샤구지ミシャグジ, 혹은 산악신, 수목신, 수렵신 등 애니미즘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여 다양하게 해석된다. 오오호리大祝 가문의 위 저택 자체는 에도 시대에 형성된 것인데, 오오호리 가문은 고대로부터 스와묘진의 요리시로依代, 즉 신령이 깃든 대상으로서 현인신의 자리에 있었다. 즉 계통을 따지자면 타케미나카타 계통인 것. 동방프로젝트적으로 비유하자면, 외래신 타케미나카타가 야사카 카나코의 모티브, 토착신 모리야가 모리야 스와코의 모티브, 현인신 오오호리 가문의 세습자가 코치야 사나에의 모티브인 셈이다. 현재 일본에서 오오호리 가문은 단절되었지만, 동방프로젝트에서의 코치야 사나에는 문명개화와 신앙 사이의 중간자적 위치에 있다가 현인신으로서 환상들이한 셈이 된다. 오오호리 가문의 대는 왜 끊겼을까. 용도폐기된 것인가? 외국인으로서는 자세히 알 길은 없다. 그리고 안다고 해서 피부로 실감되는 사건일 수 없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의해 신앙의 대상, 즉 토착신, 외래신, 스와묘진 등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바뀌어갔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은 있다. 이하 후술. 근처에 있는 모리야守矢 사료관. 크진 않지만 상당히 특징적인 건물양식이다. 앞에 꽂힌 나무가 왠지 온바시라 같기도 하다. 들어서자마자 왠 박제된 토끼가 전시되어 있다. 이어서 박제된 사냥감들. 전시의 원인은 이렇듯 신장관 모리야 가문이 주관하는 어두제御頭祭에 쓰이기 때문. 스와묘진은 군신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에, 수렵신에게 바치는 신앙이라 생각하면 아귀가 맞다. 에도 시대 카미샤 혼미야, 마에미야 및 오오호리, 모리야 가문의 저택 위치를 그려놓은 약도. 상세히 보면 이들의 당시 역학관계가 엿보여서 재미있다. 다케다 하루노부武田晴信 (신겐信玄) 이 당시 모리야 가문의 신장관에게 통자 노부信를 내린 사료. 텐몬天文 14년 (1545년) 의 사료다. 생각해볼 부분은, 다케다 신겐은 1542년 스와를 침공하여 당시 스와의 현인신이자 통치자였던 스와 요리시게를 자결시켰다는 것. 그리고 3년 뒤 다케다 신겐이 스와의 신장관 가문 모리야에게 통자를 내린 것이다. 통자는 가문 중신일지라도 함부로 수여하지 않는다. 이는 스와 지방의 특수한 사정, 즉 스와 = 타케미나카타 (외래세력) 을 제거한 뒤 모리야 (토착세력) 에게 힘을 실어주어 Divide and rule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 스와고료닌이 다케다 신겐의 첩이 된 것도 1542년~1545년 사이의 일이다. 당시 다케다 가문 중신 (= 시나노 지방의 소영주들) 들은 대체로 반대하였으나, 야마모토 간스케山本勘助의 중재로 혼인하였다 전한다. 스와고료닌은 1530년생이므로 당시 스와고료닌은 불과 10대 초반의 나이다. 이윽고 스와고료닌은 아들 카츠요리를 낳고 1555년에 사망하며, 다케다 신겐은 상락 도중 1573년 급사하고, 그로부터 10여년 후, 1582년 다케다 카츠요리는 오다 및 도쿠가와 연합군의 공세에 텐모쿠잔天目山에서 자결한다. 결과적으로 다케다 신겐은 스와의 현인신의 후계자와 혼인하여 자신이 스와의 새로운 통치자, 현인신의 피를 이었음을 스와의 주민들에게 보이려 했고, 더불어 스와의 신장관 가문 모리야에 통자를 내림으로써 자신이 스와의 신장관 가문을 통제하에 두고 있음을 명확히 하려 했다 보아도 무리한 해석은 아닐 것이다. 특히 스와의 여식과 혼인한 것은 로마노프 왕조가 비잔틴 가문의 여식과 혼인한 것과 그 수법에 유사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다케다 신겐의 지배는 30년을 채 가지 못했고, 다케다 카츠요리는 스와의 통자인 요리頼를 이었기 때문인지 시나노 지방 영주들의 연이은 배신 속에서도 스와의 협력 속에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자결했으며, 스와는 또다시 스와씨의 살아남은 후계자가 대를 이어 에도 막부로 향하게 된다. 스와 주민들에게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스와대전 역시 외래세력과 토착세력의 충돌이었고, 이번 역시 예전부터 있어왔던 외래세력과 토착세력의 충돌일 따름이다. 그 이전 가마쿠라의 끝자락에 호조 토키유키가 찾아왔을때 역시 스와 주민들은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이전, 과연 모리야는 태고적부터의 토착신이었을지. 이하 후술. 모리야 사료관 뒤편에는 어두 미샤구지 총사御頭御社宮司総社가 자리하고 있다. 허름해보이지만, 일본 전국의 미샤구지 신앙의 총본산격에 해당하는 곳이다. 생각해보면 모리야는 토착신이며, 미샤구지 역시 신앙의 대상으로서 사마様를 붙이는 대상이다. 신이 신을 섬긴다는게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 신토적으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현상이지만 때때로 모리야는 미샤구지를 강림시킴으로 인해 자신들의 권위를 강화하기도 하고, 자연에 깃든 신령을 미샤구지에게 보임으로써 토지신, 스와묘진의 은총을 바라기도 하며 (와수의식의 해석 1) 자연에 깃든 미샤구지를 사로잡아 바침으로써 외래신 타케미나카타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도 한다. (와수의식의 해석 2) 즉 모리야는 태고적으로부터 내려온 토착신이라기보다는 그 또한 스와에 찾아온 외래신 - 시기적으로 보자면 빠르면 야요이 시대, 외래유입된 농경세력은 아닐까. 시기적으로 보자면 미샤구지 신앙을 따르는 무리는 그 이전부터 스와에서 살았던 거주민들, 즉 야요이 시대 이전, 수렵채집의 죠몬인들은 아닐까. 다케다가 스와를 침공하여 현인신의 후계와 혼인하고 신장관 가문을 자신의 권위 아래에 두었듯이, 이전에는 막부의 마지막 후계자가 찾아오기도 하였으며, 그 이전에는 야마토 정권의 무리들이 스와를 침공하여 스와대전 신화를 쓰기도 하였으며, 그 이전에는 어쩌면 모리야를 따르는 무리와 미샤구지를 따르는 무리의 충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신앙이 습합, 융화되어 현재의 스와를 이루고 있고, 우리는 그 흔적을 미샤구지 총사와 같은 곳에서 엿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샤구지 총사 옆에 마련되어 있는 역대 오오호리 가문의 비석. 모두 통자 頼를 쓰고 있다. 3,000년의 광명 있으라 스와 일족. 이곳에서 편히 잠드시길. 3,000년은 그저 미사여구일수도 있겠지만, 죠몬 시대의 시작이 기원전 10세기로 비정되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한 숫자다. 그러나 아직 잠들기에는 이를지도 모른다. 여전히 스와대사에는 참배객이 많았다. 오는 사람마다 박수를 두번 치며 신앙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거쳐 수많은 융화를 거치며 모습과 형태는 바뀌더라도 이 땅에서 신앙은 여전히 소용되고 있다. 모리야 사료관을 나서서 마에미야로 향하는 길. 가마쿠라 시대가 전승인 듯한 길 안내도가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마에미야가 나온다. 적당히 걷기 좋은 산책길이다. 가을이 무르익었다. 고대로부터 신앙의 대상이었던 칠목칠석 중 하나가 아직 남아있다. 이는 모리야일까 미샤구지일까. 추측건대 아마도 미샤구지가 아닐까. 애니미즘 및 산악신앙은 농경 이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조금 더 자연스럽다. 물론 산악신앙은 5세기 이전 일본 전역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 영향을 받아 탄생한 슈겐도修験道 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걸 나누어 생각하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습합, 융화가 이 토지의 로마법이다. 수풀이 울창하다. 마에미야 본전 옆 상류로부터 흘러내려오는 스이가水眼. 예로부터 신성한 물로 여겨졌다 하는데, 과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맑고 청명하다. 산악신앙이 그 본류일거라 미루어 짐작해도 크게 빗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에미야 근처에도 어김없이 서있는 온바시라. 스와대사 카미샤 마에미야諏訪大社上社前宮는 지금은 혼미야보다 그 규모가 작지만, 연원을 따져보면 이쪽이 더 오래되었다고도 전한다. 타케미나카타를 모시는 첫 신사가 이곳이었다 하며, 무로마치 막부 때 혼미야 쪽이 본전이 되면서 말사가 되었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무언가의 역학관계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기적으로 호조 토키유키北条時行와 어느정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상상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마에미야의 첫번째 온바시라一之御柱가 동방풍신록 자켓의 모토네타라고 한다. 타케미나카타 (= 야사카 카나코) 를 모신 첫번째 신사가 바로 이곳이니 실로 적절한 안배다.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며 근처 킷사텐에서 한잔. 스와 초고수 동행분의 더할나위없이 친절한 가이드 덕분에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킷사텐 방문객들의 조공품들. 마에미야에 인사를 드리고 길을 나선다. 동네는 세월 속에 서서히 흐르고 있었다. 키오토시木落し의 현장. 여태 오면서 보았던 온바시라들은 6년마다 교체된다. 스와의 풍부한 삼림에서 거대한 나무를 벌채하여 직접 스와대사까지 옮기며 신역임을 표시하고 스와묘진에게 그 뜻을 알리는 것. 군신, 수렵신, 산악신앙의 성격을 두루 띠고 있는 스와 신앙에 걸맞는 행사다. 스와의 4개 대사뿐만 아니라 곳곳의 말사 역시 모조리 교체한다 한다. 이때 과거 전례에 맞춰 거대한 나무를 언덕에서 떨어뜨리거나木落し 강을 건너거나川越し 하는데, 이곳은 온바시라를 떨어뜨려 옮기는 장소인 셈. 온바시라 축제는 아직도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아직 잠들기에는 이를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니 새삼 그 규모가 장대하다. 온바시라 축제때마다 매번 사상자가 나온다기에 거 좀 조심해서 하지 싶었는데 직접 와보니 사상자가 안 나오는게 이상한 급경사다. 근처 치노역에 잠시 들러 사슴고기라멘을 먹었다. 방금전에 본 사슴박제를 생각하며 먹으니 각별했다. 후편에서 계속. -스와와 스와신앙 (후편) 스와와 스와신앙 (후편) 아침 일찍 스와대사 시모샤 아키미야諏訪大社下社秋宮로 향한다. 시모스와의 한 노부부 집에서 따스한 환대를 받아 보무도 가볍게 발걸음이 새롭다. 바다 건너 풍문으로만 전해듣던 무지막지한 금줄. 1톤에 달하는 무게라 한다. 경내는 고즈넉하다. 시모샤下社는 춘분, 추분에 맞춰 하루미야春宮, 아키미야秋宮를 각각 활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기간에 하루미야가 폐쇄되어있는 것은 아니고 참배는 가능하다. 야사카 카나코의 팬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인 야사카 신사도 있다. 야사카 신사八坂神社는 교토에 총본산이 있고, 그곳의 제신은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嗚尊라고 하는데, 스사노오가 일본신화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이젠 없으면 이상한 이타에마들. 초고수 동행분덕분에 자세히 살펴본 이 조약돌さざれ石이 다름아닌 기미가요에 나오는 바로 그 조약돌이라고 한다. 출처: 상하이앨리스환악단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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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블랙옵스6 올해 GOTY후보작 등록
https://www.purexbox.com/news/2024/11/xbox-has-one-game-of-the-year-nomination-at-the-golden-joystick-awards-2024 젠장 또 갤까흥이야? GOTY 후보에 오른 게임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You're nominated for GOTY this year. Can you win? 올해 GOTY 후보에 오르셨는데 수상 할 수 있을까요? 애니멀 웰 (Animal Well) ???? 제가?? 갑자기???? 아스트로 봇 (Astro Bot) 당연히 나지ㅋㅋㅋ장난하냐?ㅋㅋㅋ 발라트로 (Balatro) ??????? 그럴리가 없는ㄴ데 검은신화 오공 (Black Myth: Wukong) 우리 못받고 가면 시진핑한테 죽어요 콜오브듀티 블랙옵스6 (Call of Duty: Black Ops 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보에 껴넣어주긴했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래곤 에이지: 베일가드 (Dragon Age: The Veilguard) 수상하게되면 온 세상을 PC주의로….. 파이널판타지 리버스 (Final Fantasy VII Rebirth) 어차피 안줄거잖아 ㅆㅂ련들아!!!!!!!!!!!! 헬다이버즈2 (Helldivers 2) 괜히 유저들하고 기싸움했네 씹…. 메타포: 리판타지오 (Metaphor: ReFantazio) …. 섀티스 팩토리 (Satisfactory) ㅈㄹ하지마세요 안사요~~~ 사일런트 힐2 (Silent Hill 2) 철권ㅆㅂ새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철권 8 (Tekken 8) 사힐 병신새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종합 분석] 2024년 GOTY는 이 게임이 받습니다. GOTY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 전세계 게임 시장이 존나게 큰건 알고는 있을겁니다. 전세계 게이머 수는 34억 2200만명 자료=뉴주 ‘2024 글로벌 게임 마켓 리포트’. 올해 전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약 1877억달러(한화 약 255조원) 에 이를 전망이다. 올해 이렇게 거대한 게임 시장에서 최고의 게임이라는 후보에 오른 게임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애니멀 웰 (Animal Well)아스트로 봇 (Astro Bot)발라트로 (Balatro)검은신화 오공 (Black Myth: Wukong)콜오브듀티 블랙옵스6 (Call of Duty: Black Ops 6)드래곤 에이지: 베일가드 (Dragon Age: The Veilguard)파이널판타지 리버스 (Final Fantasy VII Rebirth)헬다이버즈2 (Helldivers 2)메타포: 리판타지오 (Metaphor: ReFantazio)섀티스 팩토리 (Satisfactory)사일런트 힐2 (Silent Hill 2)철권 8 (Tekken 8)본인은 아래 3개의 게임으로 간추렸습니다. 아스트로봇 파이널판타지 리버스 검은신화 오공 그리고 매년마다 GOTY 게임을 맞췄던 사람으로써 가장 유력한 게임을 고르자면 “검은신화 오공” 갑자기 중국인, ㅉㄲ 이 ㅈㄹ 하지마세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자 여기 그 동안 GOTY 수상작 자료를 보실까요? GOTY는 단순한 투표율만으로 뽑지 않습니다. 내부에 언론사, 평론가, 웹진에서 자체적으로 소수의 심사단을 꾸려서 분석을 하여 투표를 거친 결정도 포함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뽑힌 수상작들입니다. 몇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실사풍 위주의 그래픽 스타일2. 모험 액션 RPG 장르 3. 화제성 님… 2021년도에는 It takes two가 받았는데요? 네.. 2021년도의 GOTY 후보작은 찾아보시면 안됩니다. 그때를 잊으셔야 합니다. 도저히 못 뽑을거같아서 준 게 잇 테이크 투 였습니다…. 자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아마 몇몇은 3개의 공통점에서 먼 게임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년동안의 GOTY 행보를 보자면 저런 공통점을 띄고 있다는겁니다. 아스트로봇과 파이널판타지 리버스는 플스 독점작이었습니다. 정말 왠만하면 절대 독점작한테 안줍니다. (젤다의 전설은 너무 유명했고 그 당시에 닌텐도를 벗어나서 걍 게임시장에서 가장 큰 파급력을 불러왔습니다. 심지어 잘만들었음…..) 라스트 오브 어스2는 그럼 뭐냐??? 그 골프채를 제외하곤 그 당시에 기술력이나 아트, 테크니컬 그래픽, 네러티브 요소 전체적인걸 다 따졌을때 라오어2가 가장 유력했다는겁니다. 그래서 준겁니다. 제발 부탁인데, GOTY 수상을 골프채만으로 판단하지마세요 GOTY는 개발자들이 인정하는 게임한테 상을 준다 라고 해석하시면 됩니다. 유저들의 투표율도 무시는 못하는데 사실상 내부 심사단으로 인해서 거의 다 결정이 되는것이기 때문에 민심 어느정도 눈치는 보면서 판단을 하는것일뿐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재미있었다. 인기있다. 중국 게임이라 받으면 안된다. 심사위원들은 그런거 1도 신경안쓰고 주어진 항목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은 게임에만 주는겁니다. 심사 항목에는 위에서 말한 모든 요소들을 다 포함시킬테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심사를 할겁니다. 아스트로봇은 그냥 잇테이크투와 같은 인디 게임과 다를게 없는 수준의 게임입니다. 굉장히 라이트하면서 가볍다는거죠. 얘를 줘버리면 나중에 마리오 게임한테도 줘야합니다. 그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무엇보다 독점작이었다는거, 그래서 아쉽게도 아스트로봇은 패스할겁니다. 파이널판타지 리버스도 똑같습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콜오브듀티는 왜 안줘? 철권은 왜 안줘? 피파는 왜 안줘? 디아블로는 왜 안줘??? 어쌔신 크리드는 왜 안줘??? 왜 안주냐고요?? 시리즈라서요. 시리즈라서 안주는겁니다. 엘든링은 왜 줬냐고요? 드디어 하나 준거에요. 그것도 기존에 소울시리즈가 아닌 오픈월드로 변경을 하였고 아트 스타일, 테크니컬적으로 크게 변화된 게임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화제성으로 크게 성공을 했기때문에 준겁니다. 그것과 더불어 게임 내에 스토리도 제공되었죠. 여러 개발사나 심사단들이 봤을때 와 이 게임은 진짜 노력했구나 진짜 잘 만들었구나 이 게임에 주는 편이라고 보면 됩니다. 단순히 유저들이 보기에 아 이건 재미있다 아 이건 중국 게임이 아니네? 그럼 재밌다 이런걸로 주는게 아니에요. 오공은 올해 나온 게임중에서 가장 큰 화제성을 불러왔습니다. (화제성으로 드래곤에이지 베일가드 언급하지맙시다..) 그것도 콘솔뿐만 아니라 PC 여러 플랫폼에서 말이죠. 심지어 서유기 소설을 기반으로 한 네러티브적인 요소 오픈월드는 아니더라도 갓오브워4 스타일과 비슷하게 꾸려놓은 세계관 실사풍 그래픽, 거기다 액션성까지… 이것들이 전부 맞물린게 검은신화 오공 입니다. 무엇보다 팬 투표율로 봐도 중국 사용자들이 투표율 1위로 만들었다고 해도 OK 인정이 되는겁니다. 결국 팬 투표율이라서 검은신화 오공도 어쨌든 특정 국가에서라도 인기는 있구나라고 인정이 되는거구요. 한국인들이 스텔라 블레이드에 몰빵해서 투표하여 1등 만들면 되는건데 결국 그렇게 못했죠? 그럼 억울해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팬 투표가 공정한겁니다. GOTY 운영측도 굉장한 이득을 보게 될거라고 상황을 좋게 바라볼겁니다. 이번에 중국 게임한테 최초로 GOTY 상을 주면 게임 산업에도 큰 기대 효과를 바라보게 되거든요. 이게 모두한테 결국 Win Win이 되어버리는 효과라서 이러한 영향점 무시하지 못할겁니다. 이런 정치적인 요소들까지 고려하게 된다는 가정하에 검은신화 오공이 받게 될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팩트체크] GOTY 후보인 메타포에 대해서 알아보자올해 GOTY 후보에 오른 메타포 리판타지오 이 게임은 출시전부터 국내 많은 게임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에 오르며 대호평을 받았던 게임이다. 일본 오타쿠들만 하는게 아닌 페르소나 IP를 활용한 신작이기에 인기 있을법도 하다. 그래서 이 게임의 실제 평가와 현재 인지도를 보여주려고 한다. 매우 긍정적 (8,575개) 출시일 : 10월 11일 한달도 안됐는데…. 대단하다 ㄷㄷㄷㄷ 응???? 논란의 그 게임… 드래곤 에이지: 베일가드 출시일: 11월 1일 대체로 긍정적 (12,947개) 메타포 이 게임한테 밀리는건가? 아닐것이다. 현재 접속자 통계치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재 88위를 기록중 11,125명이 즐기는중 캬… 역시 메타포다!! ????? 그 게임… 29위를 기록중 25,825명이 즐기는중…. 음……………… 아무래도 GOTY는 무리일거같다
곰이시작성일
2024-11-0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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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홈런 군단에 세밀함 더한다...'340도루' 이종욱 코치 삼성 합류, '베이징 영웅'들과 의기투합
홈런 군단에 세밀함까지 더한 완전체 팀 컬러를 꿈꾼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주루 특화 코치를 새로 영입했다.삼성은 5일, 1군 작전ㆍ외야 코치로 이종욱 코치와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연봉 9000만원에 계약기간은 1년이다. 이 코치는 오는 6일부터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 합류해 선수단을 지도할 예정이다.삼성은 "선수단의 공격적인 베이스러닝 및 외야수의 타구 판단 능력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영입 이유를 설명했다.이종욱 코치는 선린정보고-영남대 출신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지만 이후 방출, 두산 베어스에서 신고 선수 신화를 쓰며 국가대표 외야수로 성장했다. 2014시즌을 앞두고 두산에서 NC로 이적, 4년 최대 총액 50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군 통산 1446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9푼1리(5081타수 1478안타) 41홈런 543타점 843득점 340도루를 기록했다. 2006년 51개의 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다. 2007, 2008, 2010년 통산 골든글러브 3회 수상에 빛난다.삼성 코칭스태프 가운데 박진만 감독과 정대현 수석 코치 그리고 이진영 타격 코치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서 함께한 바 있다. 한편, 삼성은 지난 1일 타치바나 1군 타격 코치, 이병규 퓨처스 감독, 이정식 퓨처스 배터리 코치, 강봉규 육성군 타격 코치, 권오준 재활군 코치 등 5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하면서 코칭스태프 개편을 시작했다. 이종욱 코치 영입으로 올해 185홈런으로 홈런 1위에 오른 타선에 주루 플레이 및 기동력을 더해 완전체의 팀으로 거듭나기 위한 채비를 마쳤다. 김지찬 김성윤 등 발 빠른 선수들에 이재현 김영웅 등 올해 성장한 젊은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마크42작성일
2024-11-0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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