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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쇼쇼숏
형님들 오늘 월요일인거 사실입니까? 누가 구라라고 좀 해주세요. 연휴가 길어서 그런지 남은 3주가 정말 빡세네여. 요세 자주 못들어와서 저도 아쉬운데 형님들은 여전하시네요 ㅅㅅㅅㅅㅅㅅ 아참 츤대장님 뽀포 감사하구 감동입니다. ㅅㅅㅅㅅ 형님들 5월 3주 시작인인 스승의날 월요일 화이팅하시고. 오늘따라 그선생님생각나네요. 남자의 스승님 참교육의 진리였던 pvc 파이프로 그냥 이유없이 등짝 스매싱 하시던 ...... 그때부터 엿을까요? 등짝에 집착하던게,,,,,,,,,,
댓글킹작성일
2017-05-15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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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간편 종합 뉴스?
5월 13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1. 자신의 통장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돈 1,000만 원이 입금되자 망설임 없이 주인을 찾아 돌려준 여군 하사가 있어 화제입니다.
앞서 지난 2011년 김 하사의 남편인 김성렬 중사도 자신의 통장에 잘못 입금된 250만 원을 주인에게 돌려줘 말 그대로 ‘부창부수’라 할 수 있습니다.
나 같으면 어땠을까? 근데 어떻게 부부가 똑같은 일을... 신기하네~ 암튼 멋지다는...
2. 2012년 대선 직전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 지분 매각을 논의한 비밀회동을 보도한 ‘한겨레’ 최성진 기자에게 징역 6월의 선고유예가 확정됐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축소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법규범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의 양심의 실현이 법률에 반하는 매우 드문 경우에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원칙적으로 요구한다’라는 법 조항... 양심에 찔려도 물러나랍니다. 이게 세상사는 처세술?
3. 정운호 사건이 전관예우 논란으로 번지는 가운데 국회에도 이른바 율사 권력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법조인 출신 의원들은 전관예우 논란이 일 때마다 앞장서서 옹호했습니다.
그래야 자기도 나중에 전관예우 대우를 받으니까... 이 양반들은 ‘법피아’라고 해야 하나?
4. 19대 국회 종료를 목전에 두고 세월호 특별법이 최대 쟁점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새누리당의 활동기한 연장 반대에 야당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20대로 넘길 경우 여당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켕겨서 저러는지... 그러다 나중에 뒷 감당 못 한다~
5. 서울시가 날씨처럼 '모기 예보'를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측정기를 통해 모기 활동 정도를 네 단계로 구분하는 방식인데, 특히 3·4단계 시 야외 활동에 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거 좋다... 뉴스 끝나면 '내일 서울은 모기 물릴 확율 50%' 뭐 이렇게 할라나?
6.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단원고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을 방문해 희생 학생 제적처리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은 세월호 희생 학생 246명이 제적처리 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제적처리를 취소하고 학적복원을 추진키로 했습니다.
그러게 왜 머리 숙여 사과할 일을 만드셨는지... 빠른 후속 조치 기대합니다.
7. 수면 내시경을 받는 여성환자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에게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했습니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많은 환자들에게 내시경을 하면서 피로한 나머지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범행한 것’이라고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피로하면 성추행하는 거야? 그냥 박카스를 쳐 먹지 이놈아~
8. 주한미군사령부는 주한미군이 용산기지에서 지카 바이러스 실험을 추진한다는 일부 국내 보도와 관련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주한미군은 ‘에지우드 화생실험실에서 게재한 글이 잘못 번역됐다며 ’미군은 어떠한 지카 바이러스 샘플도 대한민국에 반입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탄저균 실험 한 거 보면 썩 믿음은 안 가지만... 우리 땅에서 제발 그러지 말자 응?
9.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폭행해 뇌사상태에 빠트려 사망하게 한 20대 남성에게 집행유예가 확정됐습니다.
이미 제압한 도둑을 추가 폭행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입니다.
도둑질도 집주인 봐가면서 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아니지 시작도 말아야지... 암~
10. 전국 지자체의 절반가량이 기간제·무기계약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올해 임금을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게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민주노총이 주장했습니다.
민주노총의 주장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46.4%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도록 예산을 편성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러면서 공무원 휴가제 어쩌구 하시면 많이 불편합니다. 상생, 모범 이런 것 모르세요?
11. 일본에서 이달 26∼27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맞춰 참가국 정상의 이세신궁 방문이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세신궁이 강한 종교적 색채를 지니는 까닭에 아베 총리의 행위는 정교분리 원칙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면 성황당에서 해야겠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짓을 하는 구만...
12. 초선 국회의원 당선자의 연찬회가 벌써부터 특권의식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 안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이동을 위해 우등버스를 동원하고, 엘리베이터를 잡아두는 등 무리한 진행으로 국회를 이용한 시민과 민원인 등이 불편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왜 욕을 사서 먹는지... 볕도 좋은데 좀 걸으면 어때서... 하여간 쯧쯧.
13. 국토교통부가 최근 20~30대 젊은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대거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젊은층 대상으로 행복주택 공급 물량을 내년까지 14만 가구에서 15만 가구로 늘리고, 신혼부부를 위해 10년간 임대료가 오르지 않는 임대주택도 처음으로 선보인다고 합니다.
취지는 알겠습니다만, 이러면 결혼하고 애도 낳고 그런답디까? 글쎄~
14. ‘가방끈이 긴’ 사람들의 유전자는 따로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학 석·박사 진학 등으로 학업 기간이 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DNA의 특징을 발견했다는 주장인데 학업 기간이 긴 사람들에게 발견된 DNA의 특징은 뇌와 신경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어쩐지 학교 가기 무지하게 싫더라... 내 잘못도 아니었는데 맞은 게 너무 억울해 흑흑...
15.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선물을 사이에 둔 학부모와 교사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선물=촌지’란 인식이 자리 잡아 교사는 괜한 구설에 오를까 극구 사양하지만, 학부모는 ‘내 자식만 빈손이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선물 전달을 위한 묘안을 짜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빈손이라고 차별하는 선생님은 없겠지? 선물 안 주고 안 받기가 정답 아닐까요?
16. 올해 3월 공시생 한 명에게 맥없이 뚫린 정부청사가 '얼굴인식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출입 보안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얼굴인식시스템이 설치되면 등록된 사진과 실제 얼굴이 일치하지 않을 시 출입문이 차단되고 경고음이 나오게 됩니다.
혹시 성형수술하고 나면 새로 등록해야겠네... ㅎ
17. 세계적으로 연간 1조5천억 달러(약 1천749조 원)~2조 달러(약 2천332조 원)의 뇌물이 오가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IMF가 발표했습니다.
이는 세계 전체 GDP의 2%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IMF는 경제성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뇌물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몫 단단히 거드는 건 아닌지... 방산비리만 봐도 어마어마 하자나?
18. 가습기 살균제 사고 파문이 나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계 기업 한국P&G도 유해성 논란에 휘말릴 조짐이 일고 있습니다.
대표 상품인 '페브리즈'에 옥시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유해성분과 유사한 성분이 들어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 이제 고기 냄새, 남자 냄새는 무엇으로 가린단 말인가... 겁나 살 수가 없다 정말~
19.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검찰에 소환됐던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가 포토라인 앞에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뒤에선 자신의 변호사에게 ‘내 연기 어땠어요?’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허리를 연신 굽신거리며 몹시 침통한 표정을 지었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도 했습니다.
내 몸이 다 부들부들 떨리네... 뭐 이런 개XX 같은... ‘내 욕 어땠어요?’
20. 교통 검문 중 도망갔다는 이유로 총을 쏴, 한 남성을 살해한 경찰에게 유죄가 인정됐습니다.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휴대전화 영상이 공개되면서 결국 경찰에게 1년 만에 대배심 유죄 평결 및 조사 방해 혐의까지 유죄가 인정돼 최대 종신형이 선고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물대포에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씨는 누가 책임진답니까?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거...
21. 음주운전의 처벌 강화 후 음주 사고가 20% 감소했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개입 혐의로 고발당한 원세훈 씨가 무혐의 처리됐답니다.
캐나다 15살 소년이 고대 문헌과 위성사진으로 마야 유적을 찾아냈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술 팔아 음주운전을 조장한 음식점 주인이 첫 입건됐답니다.
SK텔레콤의 자회사가 신생 벤처기업의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도용했답니다.
한국 상하위 10%의 임금 격차가 OECD 최악의 수준이랍니다.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이 ‘개그콘서트’ 개그맨 이상훈도 고소했답니다.
정보당국이 처형됐다던 이영길 북한 총참모장이 살아있답니다.
벌써 5월의 절반을 마감하는 주말을 맞이합니다.
대학마다 5월의 축제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굳이 5.18을 축제 기간으로 잡는 곳이 있어 아쉽습니다.
학교 당국도 학생 스스로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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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제가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어제 또 아버지가 술 먹고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서 오네요.저는 그럴 때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시험 기간이라 1분이 아까운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네요. 하...글이 길어질 거 같아서 반말로 적겠습니다 양해해주세요..그냥 하소연 하고 싶어서요... 나는 태어나서 초등학교 입학 할 때 까지는유복한 집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학원을 하셨는데당시에 컴퓨터,주산, 부기 학원이 나름 잘되서 그 당시 월수입 7~800정도 되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술 먹고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돌파해서택시를 쳤다. 아버지는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았지만 택시 기사는즉사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학원에 가는 대신 교도소에 갔다.어머니는, 아버지가 없어도 학원을 열심히 꾸려갔다.그 즈음에,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교도소가 군대보다 싫었던 아버지는형량을 견디지 못하고 보석금을 내달라 해서 보석금을 내고 출소하셨다.당시에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아버지가 없어도 별 느낌이 없었고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느낌도 없었다.지금 생각해보면, 학원 자판기에 있는 200원짜리 코코아 뽑아 먹는 것조차도힘들었던 거 같다.결국, 학원 근처에 샀던 자그마한 집은 팔게 되었고, 어떨 때는 남의 집에 세를 들어 살다가결국에는 학원에 있는 보일러 하나 없는 방으로 세 가족이 이동하게 되었다.그러다가, 아버지의 주폭에 못 이긴 어머니가 이혼을 하기로 결심을 했고이혼을 했다. 주폭보다는 어머니를 선택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외갓집에 갔다.처음에는 즐거웠다.곧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찾아와 외갓집에서 행패를 부렸고,결국 나는 외할머니에 의해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졌다. 어렸을 때의 나에게는아주 큰 트라우마로 작용해서, 지금은 외갓집과는 전혀 연락도 하지 않는다.그러다가 어머니가 김밥 집에서 일을 하면서 학교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작은 세를 얻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터 나는 시내버스를 타며 초등학교를 다녔다.집은 단칸방이고, 부엌에는 바퀴벌레 투성이었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 자상한 어머니 밑에서사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집주소를 학교에서 알아내지 못한 아버지는, 학교에 찾아왓다.조퇴하는 날이 잦아졌다.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아버지를 피해.어느 날은 뒷문으로 달아나고어느 날은 초등학교 3학년 생인 내가 넘기 어려운 담을 넘어 도망갔다.그러다가 아버지는나를 미행했고 우리집 주소는 또 발각되었다.어머니는 어린 나를 위해 이혼을 포기 했다.다시 결합했다. 참 힘든 결정이었을꺼다.그렇게 살았다.학교 근처에 다시 작은 집을 얻었다.아버지는 역시 술을 자주 마시고어머니는 근처 시장 김밥집에서 일을 시작하셨다.지금도 어떻게 가정을 꾸려갔는지는 모르겠다.그러다가, 어머니가 밥을 토하는 날이 많아졌다.나에게 좋은 부분을 주시고, 다 탄 부분을 드시다 그러셨나보다.알게 되었을 때는 위암 말기였다. 나는 잘 몰랐따 뭐가 뭔지.다만 허준을 보고 있었는데, 그거 때문에 어머니가 죽는다는 것은확실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3학년 2학기 때 쯤에 알게 됬었으리라.아버지는 어머니가 그렇게 되시니 정신을 차리는 듯 했다.자주 마시던 술도 그만 두시고, 어떻게 보험을 넣어서 보험금을 타셔서어머니 위암 치료에 노력을 다하셨다.양방도 가보고, 좋다는 한방 병원을 찾아 봉고차 한 대에 어머니를 태우고전국을 떠돌았다. 그 즈음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결국에는 답이 없어졌다.간만에 본 어머니는 내가 알던 어머니가 아니었다.뼈밖에 없어보이셨다.동산병원에 입원했다. 집근처 병원이었지.나의 발걸음으로도 30분이면 갔었다. 어린 나에게도 병원에서 시간은 지옥이었다.차츰 차츰 자신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내 마음까지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꼇다.몇 개월이 지나 어머니는 어느 새 물 한 잔 마시는 것조차힘들어 했다. 하루종일 물 한 잔 마시지 못하다 삽관 후에마시는 물 몇 방울에도 감사하며 아 물맛 시원하다 하셨다.그 즈음에는 모르핀을 맞았는데정신이 성한 날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내 얼굴을 보고나인지 인지를 할 정도가 되었다.그리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가끔씩 헛소리처럼 내뱉는소리에 아직도 소름이 돋았던 거는 기억난다.저 뒤에 할아버지가 계시구나(돌아가신 할아버지)그런 후 몇일 뒤이야기가 나왔다.오늘이 고비다.나는 당시에 철권 3을 잘 못 했다.집 앞에는 철권 오락기가 잇었는데 100원으로 끝판을 깨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어머니가 고비라는 이야기를 듣고할 줄 아는게 없었던 나는 신에게 속으로 이야기 했다.내가 100원으로 끝판 깨면어머니 살려주세요최선을 다했지만 8판 중에 7판에서 나는 뻗어버렸다. 신기록이었지만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왠지 불안해서.그리고 아침에 깨어보니 어머니는 돌아가셨다.이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내가 못 이겨서 그런가?내가 태어나서 어머니한테 폐를 끼쳐서 그런가?그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장례식을 했다. 처음에는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현실감이 없었거든. 동적으로 움직이던 존재가 정적으로 바뀌는 과정을 본 적이 있나?그 괴리감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 없다.영안실에 들어가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보러 들어갔을 때만졌던 어머니의 차가운 유체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라움츠러 들게 만들었다.삼일 내내 잠 한번 안자고 역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어머니를 선산에 묻어드리고 내려왔다. 죽은자를 인도할 때 부르는노래 역시 뭔가 서글픈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따라 불렀다.그리고 학교에 복귀했다.복귀하고 집에 오는데, 내 친구를 자기 어머니가 데려가는게 보이더라.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오더라.집에 와서는 누워있는 아버지를 잡고는그간 참아온? 혹은 터지지 않았던 눈물을 터뜨렸다.집에 있는 반찬도 있는 거 다 먹었다.냉장고에 어머니가 해두신 반찬은 정말 오래 되어냉장고에서 조차 곰팡이가 피었지만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그 싫어하던 곰팡이핀 김치를 먹고먹지도 못하던 버섯을 먹었다. 단지 어머니의 냄새가 난다는 생각에차마 버리지 못하겠더라.그렇게 내 초등학교 생활은 가세가 기울어진 채 끝이 났다.급식비 조차 내지 못해서 학교에서 지원을 받았으며아버지는 여전히 뚜렷한 직업조차 가지지 못했다.중학교 때는 학비를 내야 했었다.한 학기에 10만원이가 그랬던 거 같다.그것조차 못 냈다.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나도 돈 벌 수 없었고, 아버지는 역시 정신을 못차렸으니까.술 먹는 날이 점점 늘었다.근처에 계시던 고모 할머니 집으로 도망가는 날이 늘어만 갓다.처음에는 반겨 주시다가도, 결국 너무 자주 가니까 나를 싫어하게 되었다.그 기억 쯔음에 아버지는 내가 하릴 없이 집에서 뒹굴 거리면나를 시장에 보냈다. 시장에는 고모 할머니께서 장사를 하고 계셨는데나를 팔아 돈을 빌려오라고 보냈다. 그렇게 5만원씩 빌려오고 하면나에게 5천원은 주고 나머지는 자기 술 먹는데 썻던 거 같다.중학교 때 쯔음에나는 왕따였다.초등학교 때는 내가 왕따를 시켰지만먼 곳에서 전학을 온 나에게, 어머니를 잃고 집에 돈도 없어숫기조차 없었던 나는 왕따 기질이 다분했다.두드려 맞거나 한 건 아니다 나는 덩치가 컷기 때문에.그래도 말 한번 섞을 사람이 없었던 것 힘들었지..우연히 그러다 동네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걔네들이 내 중학교 시절 빛이었다.돈 없고 빌려오고, 아버지의 주폭에 시달리던 중학교를 보냈다.고등학교 시절은 더 했다.한 학기에 3~50정도를 냈으니까. 당연히 그 돈이 어딨었겠나.더 했지. 그렇다고 뚜렷한 직업을 가진 것도 없으니까.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학비 못 낸다고 반아이들 다 있는데서 담임한테개같이 까인 적이 있다. 나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나 보는 일인 줄 알았는데실제로 당했다. 공부는 열심히 했다.1학년 1학기 때는 인문계 학교에서 평균 80점 후반대 받았으니까나름 열심히 한 셈이다. 하지만 점점 추락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열심히 하면 할수록 나는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기만 했다.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2학년 때는 평균 60점대였나보다.그러다가 아버지가 술 먹고 집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햇다.그 불길했던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고등학교 가서도 왕따일뻔한 내가친구를 사귀고 10시 넘어 12시까지 노래방에서 놀다가집에 들어왔을 때 술 냄새는 진동하고 신발은 방에 있었지만아무도 없었다는 거. 전화해보니까 응급실이더군.그렇게 1년을 누워있었다. 오늘 내일 하던 시기도 있었다.차라리 그 때 아빠가 죽었으면 했다. 내 인생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으니까.고3이 되었지만 술 먹고 사람을 죽이고,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또 자신이 크게 다쳤음에도그 주폭은 변하지 않더라. 오히려 막판 스퍼트를 올리듯 더욱 더 자신을 좀먹어갔다.그래도 나름 고3 때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성적은 얼마 안 나왔다. 경북대 건축 올 정도. 나는 재수를 하고 싶었다.어머니를 죽인 암을 내가 정복하고 싶었다.의대를 가고 싶었다. 가당치 않았지만 ㅋ여튼 우겨서 재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학원비?초등학교 때부터 기초생활수급자에 아직까지도 기초생활수급자인 내가 학원을 어떻게 다니겠냐.독학으로 그 모든 것들을 해결했다. 밥값도 없어 하루에 한 끼 먹으며 재수를 했다.졸업식 때 나는학교에 남들 다 가는 정장 한벌 입지 못했다.정장을 살 돈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졸업식이 끝나자 은사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나는 독서실로 들어와 잡히지도 않는 공부만 했다.목적 없는 펜 끝은 굴러다니지 않으며온갖 잡생각 따위만 내 머리속을 부유했다. 독서실에 앉아있는 시간은 많았지만앉아 있기만 하며 반송장처럼 정물처럼 앉아있었다.머리에는 아무 생각도 없으며 펜은 움직이지 않은채 그 자리에 멈추어서서먼지가 쌓일 정도가 되었다.그러다가 문득 5월에 스승의 날을 계기로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다.10월 까지는 눈부신 성적을 보여주더라. 111 121 나왔으니 의대 가자.학비 이런 거는.. 대출해서 나중에 갚자. 이런 악연은 내 대에서 끊는다는 생각으로ㅋ재수 수능 전날? 아버지 술 먹고 와서 결국 행패 부려어디 갈 곳 없는 나는 그걸 그대로 듣고만 있어야 했고결국 체어샷을 팔 한쪽 희생해서 막은 후 잠 한 숨 못자고시퍼렇게 부어오른 팔로 청구고등학교에 시험치러 갔다. 핑계라면 핑계일 수 있지.집중력이 다 흩어지더라.수능 끝나고 집에 들어가기 싫더라.당시 시험 칠 때는 그래도 잘 쳤다 생각했는데가채점하니까 피시방에서.. 답이 없더라. 근 몇 개월간 거지같이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공부한 시절은 뭔가 싶었다. 마음을 추스르고원서질은 일단 한 후에아버지께 말했다.삼수하고 싶다고.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뗀 후에 말했지만.그 이야기를 계기로 대학 입학 한 후에도아버지는 술을 먹고와서 나를 개같이 팼다.맞는데도 이골이 났다. 나는 사실 아버지보다 힘이 약해서맞고 있는 게 아니었다. 발에 수없이 까이며 의자에 수없이 찍히며한 대 밖에 없는 오래된 컴퓨터가 박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힘이 약해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사실 내가 아버지보다 힘이 쎄진지는 오래되었다.고등학교 무렵, 아버지의 등이 예전에 비해 많이 왜소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그게 측은하게 여겨져, 언제까지고 두드려 맞고 있다. 지금 역시도 그렇지.대학교에 입학했다.원하지 않는 과에 왔으니, 반수를 한다고 하고는과 아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렸다. 당연히 대학교 인맥관계는글에서나 보던 아웃 싸이더와 아주 흡사해졌다.애들이 착해서 자꾸 끌어주려고 했지만 정붙이지 않으려 딱딱 끊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칠 노릇이지.그러다가 여름방학 때 게임에 빠져반수를 포기했다.2학기 때 돌아온 학교는이미 희망이라곤 없었으며인맥 관계는 아주 쓰레기 같았다. 밥 같이 먹을 친구도 없었으며뭐 나갈 곳도 없었다. 밥 학교 집 밥 학교 집 가끔 고등학교 친구들이 패턴 밖에 없엇다.그러다가 동아리에 가입했다.열심히 했다. 인정도 받고 했지만.나는 나를 강하게 누르는 것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다.군대 막 전역한 형들의 처우는 너무 부당하다 느껴나보다 몇 살 높은 형들과 자주 대치했다. 후배들이나 동기들과는아주 잘 지냈지만역시 높은 사람과 어긋나면 좋은 일은 없었다.내 전부를 투자했던 동아리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ㅋ 그러다가 군대를 갔다.군대 복무 하다 보니 다 잊혀져 가더라대학에서 어떻게 사귄 동기들이나 후배들, 동네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하면서나름 재밌게 지냈다. 가끔은 과외했던 여자애들이 밥도 사주고 그래서 휴가가 심심지는 않았다.어느 날, 부대에 전화가 왔다.아빠한테 전화가 왔다.술먹고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경찰서에서 도망쳐서 집에 왔는데몸이 하나도 안 움직여진다면서 구해달라고 하더라.부랴부랴 휴가를 받고 나갔다.그러니 병원에 있더라.예전에 당했던 교통사고보다는 심하지 않아서 그런지농담도 하더라. 안심했다. 하지만 너무 열받더라 술 때문에 술 때문에 그놈의 술 때문에수술을 했다.수술 후 근 일주일간은 지옥같았다. 병수발이란게 사람이 미칠 지경이더라.나는 이것저것 서류 때러 다녀야 하는데내가 동사무소에 있으면 아버지는 대변이 급한데내가 없으니 나보고 동사무소에 뛰어오라 해서 서류 떼다 말고도 뛰어갔다그렇게 쉬지 않고 한여름에 땀 뻘뻘 흘리며 뛰어간 나에게는고맙다는 말 대신 돌아온 것은왜 이제 오냐고 윽박지르는 거다.나이 스무살 넘게 처먹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더라.결국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몸이 멀쩡해지는데로 바로 원대 복귀했다.병원 퇴원한 후에 혼자 생활하고 있을 때집에 전화를 걸었다.여전히 술에 쩔은 목소리로 받더라.나는 생각했다.술에 쩔어어머니도 잃고사람도 죽이고..게다가 나는 남들처럼 정상적인 가정에서 살아오지 못했다.그 수십년을 살아오며 나는 웃었던 날들보다 슬펐거나 분노했던 날이 더 많다.이걸 찔러죽일까 아니면 개패듯이 패버릴까 생각하면서.다 지나갈꺼라 생각하고 넘겼는데그건 아니더라.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너무 힘들잖아. ㅋ조만간 진지하게 이야기 해볼 생각이다.십수년간의 악순환을 끊어볼 생각이다.술 때문에 어머니도 잃고 건강도 잃고이제 나도 잃고 싶냐고. 이제 술 안 끊으면집을 나갈거라고 말할 거다.어릴 때 어머니에게 했던 것을 보면분명히 내가 살해당하거나 그 비슷한 위험에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그런데 어떻게 해야겠냐.솔직히 말해서 너무 지쳤다.내 삶에는크나큰 기쁨도 없고남들 한번쯤 사귀어본 여자친구도 없고정상적인 것들도 없다.모든 것들이 조금씩 뒤틀려서엉망인 느낌이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여전히 아빠는 술을 많이 먹어. 하루 걸러 하루. 그렇게 술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인지 새벽 세시나 네시쯤에나 겨우 잠들어 7시에 일어난다. 그런 날이면 하루가 엉망진창이지.몸은 쪼그라들다 말고, 정신은 흐리멍텅해.나의 할머니는 다른 자식들 잘 살지만나 하나 바라보고, 아직까지 나이 80에 농사를 지으신다.잘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가지고. 여전히 아빠는 술을 마신다.하루는 그런 얘기를 들었나 봐.할머니 나이 80에 농사 짓는다고 술 먹고 이야기를 했어.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거 알면서 그렇게 술 먹냐고.그 후로 말 돌리면서 계속 술을 먹었다.하루는 또 그랬다.나는 주변 사람들때문에 이렇게 술을 많이 먹게 되는가보다이제는 안 먹을게 하면서 전화가 왔다.그리고 그 날 1시간도 되지 않아 술에 만취해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계속 아직도 술을 먹는다.어제 역시 술 먹고 새벽 2~3시쯤 어물쩡 어물쩡문에 달라붙어있는 거 데리고 들어왔다. 이제는 독립해서 살고 싶다.스트레스 받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그렇다고 아버지를 버리겠다는 건 아니다.단지, 학교 다니는 동안 술 먹고 있다는 소식이 안 들려왔으면 한다.시험 기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 중간 중간에이런 소식이 들려오면 하루종일 속이 메슥거리고, 멍하고 사는게 사는 거 같지 않다.나도 이제 평범하게 행복해지고 싶다.평범함이 얼마나 힘든지...내 행복은 평범함이요내 욕망은 평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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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에 해외학자 성명서까지, 세월호 참사 학계 비판 잇따라
‘연세대 교수 시국선언’ ‘해외학자 성명서’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함께 정부의 무능한 대처에 대한 학계의 비판이 잇따랐다.연세대학교 교수 131명(외국인 교수 15명 포함)은 스승의 날 하루 전날인 14일 “스승답지 못한 우리 모습을 돌아보며 겸허히 반성하고 참회하고자 한다”며 이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슬픔을 안고 공동체 회복의 실천으로’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세월호 참사는 분명한 인재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반성을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다”면서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동시에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와 양심의 침몰이었다”고 밝혔다.이들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포함한 청해진해운에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사고 발생 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구조의 난맥상을 보여 온 정부당국의 책임도 결코 이에 못지않게 엄중할 것”이라며 “세월호 침몰 원인과 대처,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은 한 치의 의구심도 남김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이들은 이번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물질적 탐욕에 젖은 나머지 생명의 가치를 내팽개친 황금만능주의, 편법과 탈법의 관행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여 온 결과중심주의에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범적으로 이루어 왔다고 자부해 왔음에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삶과 생명에 대한 철학 및 성찰이 빈곤한 반인간적 사회인지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들은 또 세월호 참사와 함께 국민과 유가족들에게 참담함을 안겨준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와 관련해서도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가족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일부 언론의 태도와, 무기력하게 대처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던 정치권의 태도는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며 “언론은 갑갑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문고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해왔는지 겸허하게 자성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권력 감시를 올바로 수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아울러 이들은 “우리는 과정과 원칙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중시하고 비리와 이권으로 뒤엉켜있는 우리 사회를 질타하고 개혁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방조하며 이에 편승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자성한다”며 “스승의 날을 맞이해 우리의 스승답지 못한 모습을 뒤돌아보며 가슴 속 깊이 뉘우치고자 한다”고 밝혔다.해외 학자들도 성명서를 내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남태현 미국 샐리스버리 대학 교수 등 5명의 학자들은 13일(현지시각)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경종: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근본적 문제’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낭독했다.이번 성명에는 교수 577명과 박사후 연구원 163명, 독립적 학자 334명 등이 참가했다. 특히 노마 필드 시카고대 교수, 낸시 에이블먼 일리노이대 교수 등 외국인 교수 130여명도 성명서에 서명을 해 눈길을 끌었다. 특정 사안에 대해 1000명이 넘는 외국 학자들이 서명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이들 교수들은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비도덕적인 선장과 선원들의 일탈적 행위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최근 진행되고 있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 무능력과 부패에서 비롯된 미비한 구조 노력의 결과”라며 “사회 총체적인 비리와 부실이 신속하게 개혁되지 않는 한 이런 비극은 앞으로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이들은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적시했다. 첫째, 생존자·희생자와 이들 가족에 대한 적극적인 치유와 정당한 배상을 요구했다. 둘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가장 기본적 의무임을 인식하고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특히, 관련 관료들에 대한 엄중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데 실패한 청와대와 대통령도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셋째, 독립적인 특검 및 특별법 도입을 요구했다. 넷째, 무분별한 공적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철폐하고, 사람의 생명과 안전, 삶의 질을 기업 이익과 정부 편의 위에 놓으며, 경제적 이익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섯째, 방송 장악과 언론 통제를 위한 일체의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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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교수 131명 다 종북데스
해외 학자 천 명도 죄다 종북데스
아직도 세월호 사건에 정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나?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514500136
니췌작성일
2014-05-15추천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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