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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도서] 컬 트(세상을 경악시킨 집단 광기의 역사) + 유튜브
컬트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컬트에 빠져드는가? 1장 수치 [SHAME] : 찰스 맨슨과 패밀리[CHARLES MANSON] 1969년 8월의 이틀 밤에 걸쳐서 찰스 맨슨과 추종자무리는 일련의 살인을 저질렀는데, 그 내용이 워낙 과격하다 보니 급기야 컬트의 망령이 미국전체에 악뭉으로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대대적으로 보도된 그의 재판은 야간 뉴스에 등장하는 선정적인 보도까지 완비된 상태에서 자유로운 사랑, LSD 복용, 인종 전쟁, 영화배우와 할리우드 엘리트를 노린 무작위 살인에 헌신한 비행 청년의 이미지를 상기시켰다. 맨슨은 소년원과 교도소를 전전한 배경을 통해 범죄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이코패스의 요건을 거의 완벽하게 얻게 되었다. 예를 들어 조작, 예측 불가능한 폭력의 취향, 그리고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미혹된 감각이 그러했다. 1960년대의 반문화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때에 켈리포니아에 나타난 이 전과자는 낙오자와 도망자로 이루어진 무리를 피에 굶주린 컬트로 바꿔 놓았으며, 이들의 살인 파티는 이른바 사랑과 평화의 시대, 즉 히피 시대의 종식을 알렸다. 2장 수치[SHAME] 아돌포 데 헤수스 콘스탄소와[ADOLFO DE JESUS CONSTANZO]마약악마숭배파 마이애미의 쿠바 난민의 아들로 태어난 미국 국적자 아돌포 데 헤수스 콘스탄소야 말로 이 책에 묘사된 모든 컬트 지도자 중에서도 가장 가학적이며 피에 굶주린 인물이라 할 만하다. 1980년대 말에 멕시코시티에서 시작해 텍사스주 브라운즈빌 인근의 국경 도시까지 도달한 짧은 공포의 치세 동안 콘스탄소는 이미 확인된 것만 최소 16명의 달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의례적 살인을 저질렀으며, 살인과 잔혹 행위와 협박에 대한 그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를 감안해 보면 실제 희생자는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아돌포가 자란 집 안은 아마추어 희생제에서 비롯된 썩어 가는 동물의 유해와 오물로 가득했으며, 거기서 비롯된 차마 지울 수 없는 수치감으로부터 평생에 걸친 무자비함이 자라났다. 그의 삶에서 몇 안 되는 질서의 원천은 팔로 마윰베라는 산테리아의 어두운 분파에서 받은 훈련에서 비롯되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피를 흘리는 법이며, 제물로 바치는 살아 있는 동물의 고통을 무시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마이애미에서 정교한 입문 과정을 거친 후에 멕시코에 영업장을 차렸으며, 일개 점쟁이에서 마약악마 기업이자 컬트인 마약악마숭배파는 피에 굶주린 인간 희생제에서 비롯된 초자연적인 보호하에 운영되었다. 놀라우리만치 잔혹했던 희생제에서 그는 살아 있는 희생자의 가죽을 벗겼으며, 마체테나 칼로 죽인 시신을 토막 내고 장기를 떼어 내기도 했다. 국내 자료가 없어서 해외 자료로 대체 햅니다. 3장 착취[EXPLOITATION] 바그완 슈리 라즈니쉬[BHAGWAN SHREE RAJNEESH] 바그완 슈리 라즈니쉬는 본래 재치 넘치는 철학 교수였다가 카리스마적 구루로 스스로의 이미지를 바꾸었다. 처음에는 1970년 인도에 생겼고 나중에는 1980년대 미국 오리건에 생긴 그의 아슈람에서는 자유로운 사랑, 자본주의, 춤을 통한 깨달음에 관한 가르침을 설파함으로써 대부분 미국인과 유럽인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추종자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라즈니쉬가 마약 사용의 나락으로 떨어져서 아산화질소를 흡입하고 , 축복을 주는 대가로 비싼 선물을 받는 사이에(절정기에 그는 93대의 롤스로이스를 소유했는데, 그중 한 대는 범퍼 속에는 최루탄 발사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생물학 무기 공격을 실시하여 오리건의 여러 식당에 있는 샐러드 바에 살모넬라균을 살포했는데, 지역 선거를 조작하고 인근 도시를 장악하려는 의도였다. 결국 이들은 시골 공동체를 장악하고, 공공장소에서의 노출을 합법화하고 이에 항의하는 주민을 괴롭혔다. 하지만 정부의 기소로 인해 이들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다. 라즈니쉬는 인도로 추방되었고, 귀의자들은 감옥에 갔으며, 수많은 롤스로이스는 경매를 통해 7백만 달러에 매각되었다. 4장 착취[EXPLOITATION] 짐 존스[JIM JONES]와 인민사원 짐 존스는 가장 파악하기 힘든 컬트 지도자로서, 조명 속에서는 카리스마 적이고 공감적이었던 반면, 그늘 속에서는 가학적이고 조작적이었다. 그는 특유의 신앙 치유와 정치적 행동주의 혼합을 통해 자신의 교회인 ;그리스도 제자회 인민사원'의 신도를 불러 모았다. 20세기 중반에 증대하는 공민권 운동을 이용하여 빈민과 흑인 공동체 출신 추종자를 끌어들인 것이었다. 존스는 헌신적인 추종자들을 마치 돈 버는 기계 겸 성적 놀이터 처럼 대우했고,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매주 3만 달러씩의 수익을 얻었으며, 남성과 여성을 막론하고 ‘자유’가 필요한 추종자라면 누구에게나 성적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영향력이 늘어나면서 그는 켈리포니아 정계에서 하나의 정치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교회에 대한 의회의 조사가 포위망을 좁혀 오자, 천 명에 가까운 추종자들과 함께 미국을 떠났다. 격리되자마자 완전한 통제권을 갖게 되면서 망상과 중독에 압도당했고, 급기야 추종자들에게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도 지울 수 없는 악몽을 선사했다. 5.장 가학성[SADISM] 로크 테리오[ROCH THERIAULT]와 개미 언덕 아이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캐나다의 외딴 지역에 공동체를 설립한 종말론 컬트인 ‘개미 언덕 아이들’은 본래 순수하고 건강한 생활 방식을 설교하는 유토피아 고립주의자들로 시작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걷잡을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진 가학성의 무시무시한 사례로 남고 말았다. 다음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빋기 어려운지는 차마 판단하기 어렵다. 컬트 지도자 로크 테리오의 잔혹성일까, 아니면 여러 해 동안이나 그의 야만성과 무정함을 감내한 희생자들의 수동성일까? 판매 사원의 재능을 보유한 잘생긴 프랑스계 캐나다인 테리오는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황무지에 고립되어 살아가면서 여러 아내에게 잔혹 행위를 자행했는데, 그 중 한 명을 고문이나 다름없는 무면허 수술로 살해한 다음, 그 시신을 오욕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자녀들도 무척이나 잔혹한 행동으로 괴롭혔기에, 아내가운데 한 명은 유아를 테리오에게 내놓는 대신 차라리 눈밭에 방치해 죽게 했을 정도였다. 배우자 가운데 한 명의 팔을 자른 혐의로 감옥에 가서도 그는 매우 강력한 충성심을 유지시켰고, 급기야 투옥 중에도 배우자 면회를 통해 아내 세 명으로부터 자녀 세 명을 낳기까지 했다. 하지만 특유의 사악한 카리스마도 동료 죄소들에게는 효과가 없었는지, 금지 물품인 칼로 무장한 감방 동료에게 살해당해 63세로 최후를 맞고 말았다. 6장 데이비드 코레시와 다윗가지파, 7장 키스 라니에르와 넥시움, 8장 코레도니아 음훼린데와 하느님의 십계명 회복 운동 9장 마셜 애플화이트와 천국문 으로 이어 집니다. 이 책에서 자세히 설명한 컬트 지도자들은 그 어떤 분류 기준을 적용해도 두드러질 만한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 남들과는 다른 소질을 지녔다. 예를 들어 무자비함, 어린 시절의 수치, 억압된 성적 취향,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과장된 믿음, 가까운 사람에게 공포를 야기함으로써 얻는 쾌감 같은 것들이다. 또한 거의 모두는 세 가지 두드러진 소질을 공유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악의적인 자기도취증의 어두운 3요소라 할 만하다. 첫째는 공감의 결여, 둘째는 타인을 조종하는 태도, 셋째는 과도한 자기애이다. 각가의 사례마다 과연 이들이 이런 성격에 도달한 것이 본성 때문인지, 아니면 양육 때문인지를 단언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거의 모두는 공감 능력을 차단하는 어떤 요인을 지닌 것으로 드러났다.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였고, 그 인물에 대한 심층 탐구 부분이 재미 있었던 책입니다.
로오데작성일
2024-06-0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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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희대의 사기꾼 김찬경
1956년 12월 31일 ~ (67세) 대한민국의 사기 범죄자이며, 전직 금융인. 실제 학력은 신구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서울법대생이라고 사칭한 학력위조를 비롯해, 사기를 치기 위한 목적으로 저축은행을 인수하여 희대의 사기 행각을 저지른 악질적인 범죄자다. 2012년 5월 13일 기준으로 빼돌린 돈만 2,500억 원에 달한다. 미래저축은행의 CEO를 역임하다가, 부실경영으로 저축은행이 폐쇄되고 검찰의 조사가 다가오자, 회사 돈 200억 원을 빼돌린 후 조희팔처럼 중국으로 밀항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경찰에 체포되었다. 미래저축은행 시절, 투자한 골프장, 필리핀의 카지노 등은 김찬경 회장과 직,간접적인 관계에 있던 회사로, 자신의 회사에 은행돈을 대출시킨 후 부채의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긴 악질적인 수법을 사용했다.2. 행적[편집]충청남도 아산시의 소작농 집안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 중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 다니면서 고학을 했다고 한다. 그 뒤 1980년대 초반부터 차츰 사기꾼의 싹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에서 논란이 되었던 '서울법대생 사칭 사건'의 장본인이다. 이하 서술하는 내용에는 김찬경과 같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강의를 들은 모 대학 법과대학 교수가 직접 강의 도중에 말해준 내용이 포함되었다. 1981년 군에서 제대한 후, 초졸 학력[2]으로 서울법대생을 사칭하면서 수업도 듣고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무척 성실하고 열심히 학과 활동을 도와서 이미지는 좋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당시 서울법대 분위기는 워낙 개인주의적으로, 사법시험 공부에만 전념하거나 일부가 운동권으로 투쟁을 하는 분위기였던 탓에 일반적인 학과 업무를 아무도 맡지 않으려고 했으니, 적극적으로 솔선하던 김찬경이 좋게 보였을 법도 하다. 놀라운 것은 그런 와중에도 사법시험 공부를 해서 대학교 재학 중 1차 시험에 1문제 차이로 떨어졌다고 주장했지만[3], 1차 평균점수는 26점이라는 기사가 있다## 지금 사법시험과 그 때 사법시험의 위상과 난이도가 차원이 다르지만[4], 이후 "사법시험 대신 취업을 하겠다"고 동문들에게 말했는데, 이때는 다들 격려해줬다고 한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도 속여서 1984년 결혼식에는 서울대 법대 교수가 주례[5]를 섰다. 놀랍게도 졸업사진까지 찍었으나, 이 과정에서 졸업앨범에 들어가는 주소를 안 적어 냈는데 학과 사무실이 이를 대신 기입해 주려다가, 학적부 명부에 없어서 가짜 학생이라는게 밝혀졌다[6]. 이게 당시 언론에서 논란이 되었던 일명 '서울법대생 사칭사건'이다. 이 사건을 각색한 소설이 나왔다. 이런 학력위조 사기행각을 벌였음에도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받지는 않았다. 사실 법적으로 처벌할 건덕지도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잘해야 혼인 등 민법적인 부분이며, 형법적인 부분으로 걸고 넘어질 부분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허위학력으로 취업하려고 한다면 모를까, 그 시점에는 게다가 이미지도 나쁘지 않았기에 졸업앨범 때문에 걸린 후에도 그냥 묻고 넘어가려고 하기까지 했다. 대우그룹에서 서연고 졸업자에 한해, 면접만 보고 합격시키는 전형에 응시했으나 실패했다. 더 웃긴 것은 이렇게 개망신을 당하고도 서울법대 동문회에는 버젓이 계속 참석했다는 점이다. 진짜 동문들은 떨떠름했으나, 실제로 학과생활을 이끌어 준 인물이라 이미지도 좋았고 교우관계도 대단했으며, 사실 굳이 쫓아내 봐야 이득도 없고, 마당발 재력가가 동문회에 있으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했으니 그냥 용인한 듯하다. 이 정도로 낯이 두꺼워서인지, 아예 이 거짓 신분으로 병원 이사장 딸인 이대 학생과 결혼했다. 이 딸은 동기(?) 서울법대생이 소개해 준 사촌동생이었다고 한다. 사기 사건이 터졌을 때는 이미 임신 7개월이라서 이혼도 못 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집안에서는 당연히 이혼하라고 난리였지만, 임신도 하고 해서 곤란했던 듯하다. 이혼은 나중에 했다. 김찬경은 처가에서 돈을 빌려 사업 여러 개를 했으나 실패했고, 마침내 채석장 사업을 벌여 겨우 성공했다. 이 돈을 바탕으로 서울 테헤란로 일대에 빌딩을 사서 수백억대의 자산가가 되었으나, IMF 때 망했다. 이후 금융업에 눈을 돌렸는데, IMF 때 망한 상호신용금고를 헐값에 사들여 금융업에 진출했다. 이런 사기꾼이 금융계 인사를 자처했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사기에는 천부적 소질이 있었는데, 제3자를 내세워 자신이 소유한 미래저축은행으로부터 1,500억 원 정도의 불법 대출을 결정하고, 충남에 골프장 겸 온천 리조트[7]를 만들어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이 리조트의 시가는 2,0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적인 금융계 인사가 아닌 사기꾼이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 미래저축은행은 부실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을 이유로 예금주들에게 고소당했다. 이렇게 명백한 사기뿐만 아니라 부실경영으로 저축은행들은 결국 2012년 5월 퇴출 대상에 올랐고, 이렇게 경영을 부실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사기로 고객의 돈을 빼돌린 대출은행 경영진들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되었다. 결국 경찰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되자, 김찬경은 회사 돈 200억을 빼돌려 경기도 화성시에서 밀항까지 시도했으나 결국 체포되었다.#[8] 이때 검사 출신 곽상도 변호사가 변호를 맡아서 나중에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 임명 시 논란이 되었다. 결국 미래저축은행은 일본 J TRUST에 인수되었고 이것이 현재의 JT친애저축은행이 된다. 체포된 후, 필리핀에 카지노를 짓는다는 명목으로 270억 원을 횡령한 것과 회장 자신이 신용 불량자라는 것이 추가로 드러났다. 거기다 비자금 56억 원을 차떼기로 빼돌리다, 차량절도단에 의해 가볍게 도난당해 충남 아산경찰소에 다른 사람 명의로 액수를 대폭 줄여 도난신고를 넣는 짓까지 한 것이 드러났다. 참고로 돈을 훔쳐간 도둑은 "어차피 뒷돈인 거 다 아니까 신고 제대로 못 넣을 거"라며 대놓고 먹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또 그의 아들이 2011년 6월 5일 오전 3시에 관악구청 소속 공익근무요원 신분으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벤츠 승용차를 혈중알코올농도 0.137% 만취상태로 마구 몰다가 차량 6~7대를 들이받아 6명이 크게 다치기도 했다. 참고로 체포한 경찰 쪽에서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에서 기각했다.[9] # 아들은 결혼하여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더욱 나쁜 것은 이렇게 사기로 모은 재산을 사적 보복을 위해 사용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소작을 부쳐먹던 지주의 아들이 급전이 필요하자, 김찬경은 그 지주 소유인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건재고택[10]을 담보로 70억 원을 빌려줬다.# 이후 채무자가 빚을 못 갚자 그 집을 차지했고[11], 이 때문에 채무자는 자살했다. 이렇게 차지한 그 집에서 연회를 열면서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를 했다.# 학력 컴플렉스가 대단했는지, 서울법대의 최고지도자과정(advanced Law Program, ALP)을 10기생으로 수료한 사실이 드러났다.[12] 그나마 김찬경은 수업에 한두 번 들어왔을 뿐인데, 골프 모임은 맨날 나왔다고 한다. 한 번은 충청남도 아산시의 자신의 골프장에 동기생들을 초대하는 등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고, 인맥 만드는 데는 열심이었다고 한다. 사실 원래 최고지도자과정이나 최고경영자과정은 수업은 별 의미 없고 같이 술 마시고 인맥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2013년 1월 25일 1심에서 징역 9년이 선고됐다. # 그러나 2013년 12월 27일 항소심에서는 징역 8년으로 감형됐다. # 그 뒤 2014년 대법원에서 징역 8년이 확정되어 복역했다. 복역 중에 내연녀의 자살 소식을 듣고, 본인도 복역 중에 자살 시도를 했다. 그러나 2건의 혐의가 추가되어, 2020년까지인 복역 기간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 [1] 김찬경과 동향인 고등학교 교사의 말에 따르면, 사기 행각이 발각되기 이전에는 매번 마을 모임 때마다 내려와서 서울에서 성공한 기업가로 상당히 재력을 과시했다고 한다.[2] 중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고 한다.[3] 공시생 항목에도 나와 있듯 ‘아깝게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어요’ 하는 게 그들이 가장 즐겨하는 거짓말이다.[4] 과거와 현재의 시험 난이도를 비교하면 현재가 압도적으로 높다.[5] 당시 김찬경 결혼식의 주례를 맡았던 해당 교수는 이 사건 이후 격노했고, 다시는 제자들의 주례를 서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위에 링크된 한겨레21 기사 참조).[6] 사실 마음만 먹으면 가짜 학생도 졸업앨범에 들어가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졸업앨범은 많은 대학에서 대체로 총학생회 주관이기 때문에 학적을 엄격히 검증하지도 않는다. 다른 기사에 따르면, 졸업앨범에 얼굴이 없어서였다고 한다. # (그러나 졸업앨범에 김찬경 회장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유튜브 아이콘 석동현 전 검사의 사례.[7] 원래 김찬경의 꿈이었다고 한다. 개인 자산 500억+대출로 골프장을 지어 은퇴후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골프장 이름은 '아름다운CC'. 돈 들인 건 한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이 들였다. 그런데 정작 시설은 왠지 돈 들인 티가 안 난다고 한다.[8] 이 과정에서 낌새를 눈치챈 담당 직원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방법으로 협조하지 않으며 막으려 했으나, 은행에 인감도장을 들고가 비밀번호를 바꾸는 바람에 그대로 출금되었다. 우리은행 총 예금금액은 250억 원이었으나, 뱅크런 사태를 우려한 담당직원이 50억을 인출하여 저축은행에 보관하고 있어서 빼돌리지 못하게 되자, 담당 직원을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고 한다.[9] 교도소에서 1년 살면 출소 후 그대로 잔여 기간을 복무해야 하며, 2년 살면 면제다. 별로 이득 될 건 없다.[10] 이 집은 중요민속문화재이다.[11] 법적으로는 잘못이 아니지만, 은행에서도 담보를 바로 차압하는 게 아니라 채무자에게 몇 번의 기회를 준다.[12] 1학기 과정이지만 학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즉 문화센터의 명사 강연과 마찬가지이다. 1주일 1회 1시간 정도 수업하며 여기 졸업하면 서울대 동문 자격을 준다고 해서 저렇게 학벌에 목이 마른 정관계 인사들이 비싼 수업료(한 학기 500만 원)를 내고 들어온다. 이 수업료는 학과의 재정으로 쓰인다. 돈 많은 사장, 회장들은 이런 곳이 인맥 쌓는 곳으로도 좋기 때문에 참가하려고 안달이다. 여기 강연하는 교수에 따르면, 교수인 자신은 중형차 타고 오는데 학생들이 벤츠 S600, BMW 7시리즈, 아우디 A8, 에쿠스 같은 고급차만 타고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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