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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인물]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우리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만은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러시아 하면은 도스토예프스키 아니면 톨스토이를 가장 많이 이야기 합니다. 어떤 분들은 두 사람을 합쳐서 톨스토예프스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9세기 중반에 활동을 했지만 20세기 그리고 21세기 까지 영향력이 지대한 작가입니다. 실존주의 작가들, 가톨릭 성직자들, 동방 정교회 성직자들 그리고 니체, 카프카 작가, 사상가, 프로이드, 칼 융 게다가 천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 까지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어디선가에 서는 누군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열정적으로 연구하면서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19세기에 활동했던 러시아 작가가, 아직도 우리에게 울림을 전달하고 있는 것인가?도스토예프스키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 인간 존재의 토대가 되는 질문을 하고 독자들에게 답하도록 초대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영향력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인간에가 가장 근원적인 존재의 이유 그것은 자유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죄와 벌은 자유의 문제를 재기 합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1821년 11월 11일~ 1881년 2월 9일) 별명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여러 가지 별명이 있습니다. -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잔인한 천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잔인하다‘는 것은 수사적 표현입니다. 너무나도 예리하게 심리를 분석하고, 인간의 가장 깊은 곳까지 접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잔인하다‘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 '인간 영혼의 선견자‘ 이런 표현도 많이 씁니다. 영혼 하면 보이지도 않는 것인데, 보이지 않는 것을 도스토예프스키은 평생 연구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돋보입니다. 다른 리얼리즘 작과들과는 달리 무엇을 먹고 사느냐 관심 보다는 주인공이 어떠한 영적인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조망을 갖고 있습니다. - ‘러시아 문학 사상 가장 종교적인 작가’ 그는 러시아 정교, 동방 정교, 그리스도교 신앙에 몰입해 있던 사람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이 정교 신앙이 면면히 심어져 있습니다.- 영국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유명 인사들을 두 가지로 분리 했습니다. 여우형, 고슴도치형 두 가지로 분리 하였습니다. ‘여우형’은 활동적이며, 관심도 많고, 열정적인 사람이지만 한 가지 일에는 몰두 하지 못하는 형 이며, ‘고슴도치 형’은 단일한 목표로 사는 것, 단일한 원칙을 가지고 통일된 사고를 통해서 깊이깊이 들어가는 유형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전형적인 ‘고슴도치 형’ 인간입니다. 그는 평생 동안 자유에 관해서 고슴도치처럼 파고들었습니다. 돈과 자유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하면은 심오한 천재 작가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심오한 작가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돈 때문에 작가가 된 사람입니다. 항상 돈에 쪼들리는 사람 이였습니다. 낭비벽도 있고 도박벽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나치게 관대했습니다. 돈에 대한 경제관념이 전혀 없던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항상 돈을 헤프게 쓰고, 쪼들리고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많이 쓰게 된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정확하게 읽었습니다. 인간을 읽고 사회를 읽는데 천재적인 이었던 작가는 돈도 정확하게 읽고 돈을 해부했습니다. 이와 같은 돈에 대한 이해는 그의 작품 속에 면면히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빈곤에 관한 성찰, 분배문제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도 있지만 돈에 대한 문제가 아주 빈번히 나옵니다. 가령 주인공의 월급이 얼마다, 이 물건은 얼마짜리다, 지참금은 얼마다, 방세는 얼마다 이러한 돈에 대한 문제가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심지어는 살인자가 살인을 할 때 쓰인 칼의 가격 까지 아주 시시콜콜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 주인공들은 돈으로 연결됩니다. 돈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고, 죽이고, 자살도 합니다. 이러한 돈의 관계로 인간이 연결 됩니다. 인간의 가장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돈의 문제를 자유의 문제와 결부 시켜서 가장 흥미롭고, 심오한 소설을 만들어 냈습니다. 돈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동시에 같이 생각 했던 것은 자유의 문제였습니다. 이 자유에 관한 생각은 시베리아 감옥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싹트기 시작 합니다. 감옥 만큼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수감생활을 하면서 다른 수감자들을 보면서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돈은 주조된 자유다(coined liberty). 그래서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 배나 더 소중하다.” -죽음의 집의 기록 中 그는 수감자들을 관찰하면서 자유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욕구라는 것을 이해 합니다.식욕과 같이 없으면 죽는것 이기에 인간은 누구나 자유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 합니다. 돈은 이러한 자유에 대한 욕구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감자들은 모든 생필품이 지급되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노력 하는 것을 봅니다. 감옥 안에는 고리대금업자도 있고 시장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벌고 쓰고 하는 것에서 대하여 자유를 만끽합니다. 그래서 돈과 자유는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돈과 자유를 평생 탐구 하게 됩니다. 일생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 시절 도스토예프스키 아버지는 군의관 이였습니다. 어머니는 상인가문에 독실한 정교 집안입니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근검, 절약을 모토로 삼은 사람으로 자식에게 항상 돈에 대한 절약을 강요 합니다. 그러한 아버지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청소년기부터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에 입학 시킵니다. 이유는 졸업 후 취직이 잘되기 때문이 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의지와는 무관하게 입학하게 됩니다.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항상 사색하고, 과묵한 청년 이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낭비벽이 싹트기 시작 합니다. 가진 자를 부러워하고, 그와 똑같이 살고 싶어서 이 시기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항상 돈을 청합니다. “아버지 모두들 새 깃털 달린 모자가 유행이니, 저도 모자를 사야하기 때문에 돈 좀 보내 주십시오.” 도스토예프스키 그냥 과시하고 싶어서 남들과 똑같이 부자처럼 보이이기 위해서 돈을 썼습니다. 이러한 과시형 소비는 작가가 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학교 졸업 후 공병 소위로 임관하게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상당한 유산이 남게 됩니다. 가족 전체에 분배되고 신탁 자금으로 조금씩 지급되었습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도스토예프스키, 유산 집행인에게 부탁하여 유산 전액을 한번에 받게 됩니다. 하지만 돈을 탕진하게 됩니다. 공병 소위 봉급으로는 생활이 유지가 안되었으며 항상 가난에 찌들게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항상 자신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작가가 되면 한목에 큰 돈을 벌수 있기 때문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원고 여백을 보면 조그마한 숫자들이 많이 적혀 있습니다. 그건 전부다 돈 계산을 한 것입니다. 원고지 1매당 얼마, 천매를 쓰면 얼마. 집 한 칸의 방세가 얼마 이러한 계산을 적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첫 작품이 나오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 1845’ 가난한 사람들 23세 때 최초의 장편 소설을 쓰게 됩니다. 내용은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하급 관리가 아름다운 소녀와 연애를 하는 이야기이며 서간체 소설(편지형식)입니다. 작품은 호평 속에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당시 가난에 관련된 소설은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주로 가난에 대한 사회학, 경제학 적은 측면만 파고들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빈곤에 심리학을 탐구합니다. 소설 속에서 가난한 관리는 이야기 합니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잘 못 먹고, 잘 못 입는 다는 것은 불편함이다.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타인의 눈초리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나를 힘들게 한다. “ 이러한 부분이 바로 20세기 많이 지적이 되었던 심리적 상대적 빈곤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돈을 벌지만 또다시 탕진하여 가난하게 됩니다. 출판사들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다음 작품을 부탁하고 그는 선불을 받아쓰는 나쁜 습관이 생기게 됩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 평생 선불로 살게 됩니다. “나는 선불을 받지 않고 작품을 쓴 적이 없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소설 ‘분신’은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였습니다. 분신 이시기 러시아 지식인들, 젊은이 들은 반체제 인사들이였습니다. 니콜라이 황제의 전제정치에 젊은이들은 폭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자주 가졌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그 모임의 일원 이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당시‘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 가입하게 됩니다. 이 서클은 차 한 잔 마시며, 공상적 사회주의 이념을 이야기 하는 모임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어느 날 불온서적을 모임에서 낭독하게 되고 당국의 첩자에 의해서 고발당하고 모임 33명은 체포당하게 되고 반란 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 진행 중 황제의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옵니다. 형집행 정지를 명합니다. 대신 내린 선고는 4년 징역, 5년 3개월의 사병 생활이 내려집니다.(시베리아 옴스크) 이 사건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질발작이라는 지병을 얻게 됩니다. 사형 직전의 도스토예프스키 유배(1849 ~ 1859) 시베리아 옴스크로 수감 생활을 하게 된 도스토예프스키는 3가지 일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수감된 살인자, 사기꾼들 사회 최하층의 사람들 내면을 관찰 합니다. 두 번째는 유일하게 반입 될 수 있었던 ‘성경책’을 4년 동안 읽게고, 이후 작품 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자유에 대한 사색을 합니다. 관찰, 사색, 독서 이 3가지가 시베리아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한 일입니다. 이전 낭만적 공산주의를 꿈꾸던 사람이 아닌 지옥을 여행하고 돌아온 단테와 같은 사람으로 새롭게 거듭납니다. 이후 소설은 자유, 신앙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시베리아 생활 중 마리아 이사예바라는 여인을 만나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배지에서 결혼하고 페테르부르크에 돌아 왔지만 여인은 병약했고 폐병에 걸려서 얼마 살지 못합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수슬로바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이 여성은 도스토예프스키보다 20살이 어린, 성격, 개성, 지식이 뛰어난 여인 이였습니다. 수슬로바에 빠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가던 중 잠깐 비스바덴(도박장)에 들리게 됩니다. 여기서 돈을 딴 이후 도박에 맛이 들어 10년 동안 도박중독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변화 이 와중에도 계속 소설을 쓰게 되고, 글들은 언제나 졸속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듬어진 소설이 한편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잡지에 연재하는 소설도 많았습니다.(연재하고 원고료 받고를 반복) 앞뒤에 일관성이 없는 소설이 꽤 많고 1부에 나왔던 올가가 3부에서는 안나로 바뀌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3천 루블(5천만 원)의 빚이 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이는 돈을 갚을 능력이 안 되었습니다. 이때 마침 출판업자가 접근하여 3천 루블을 선불로 줄 테니 11월까지 장편소설 1편을 써달라고 합니다. 급해서 쓴 계약서는 악덕 계약서였습니다. 책을 완료하지 못할시 위약금은 물론이고 이후 출간되는 모든 소설의 판권은 그 출판사가 가지게 된다는 계약 조건 이였습니다. 3천 루블을 받은 이후 빚도 갚고 도박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10월 초가 되어 버립니다. 친구들은 걱정이 되어 도스토예프스키를 위해 해결방안을 냅니다. 친구들 끼리 소설을 1챕터씩 각자 쓰고 이를 모아 도스토예프스키가 최종 편집하기로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작가의 양심을 문제로 거절하게 됩니다. 친구들은 최후의 제안을 하게 됩니다. 속기사를 보내 줄 테니 구술을 하면 속기사가 적어 주는 방식으로 하자고 합니다. 탐탁지 않았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지못해 승낙하게 됩니다. 속기사가 도착하고 일주일간은 도스토예프스키는 거의 의욕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속기사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열혈팬 이였습니다. 속기사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일으켜 세워 작품을 쓰게 만듭니다. 이후 받아 적은 속기록을 집에 가져 가서 다시 원고에 적어서 차곡차곡 쌓여 가게 됩니다. 일류 역사상 가장 졸속으로 쓰인 작품이 10월 29일에 나오게 됩니다. [노름꾼] 1866. 25살 연하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 15년 동안 결혼 생활 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는 경제관념이 철저한 여인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제권을 가지게 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글만 쓰게 합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작들이, 이 시기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말년에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고, 도박중독증도 치유 되었습니다.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을 하러 나가면 오히려 돈을 더 주고, 도박 좀 더하고 오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책감으로 인해 도박을 중단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사망 후 부인은 그를 추모하고 기록하는데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어느 날 도스토예프스키는 각혈을 하기 시작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간질병 때문에 술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담배는 많이 피웠습니다. 평상시에도 가끔 각혈을 하기 도 하지만 이날 만은 의심이 들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성경책을 가져 오라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습관중 하나가 성경책을 가지고 점을 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성경책을 아무데나 펼쳐서 거기에 쓰인 것에 따라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날 읽은 것은 “예수계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하고 대답하셨다” -마태오 복음서- 3장 15절 이 구절을 읽은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을 예감하고 가족을 불러 종부성사를 준비하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로오데작성일
2021-10-3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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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문 정부의 원전 사건 감추려는 짱공유저
ㄹX가 지령을 받았는지 또 선동질을 하려하길래 다 파헤쳐봄 우선 아래와 같은 기사를 남김 그러나 하나씩 읽어보면 이런 말이 있음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수단으로 북한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물론 완전하고도 철저한 비핵화가 전제다’ 이걸 가지고 사돈의 팔촌도 우리 식구요 하며 한국당이니 어디니 들어갔다고 선동질 중 ㅋㅋㅋㅋ 왜 문재인 정권에서는 원전 단체 동향도 살피고 신내림 받았다면서 증거도 새벽에 삭제하고청와대에도 보고 한 정황이 나왔는데? 왜 선동질일까? 무엇을 위해서? 누구 사주를 받아서?문재인이 잘못한거를 선동질하면서 거짓으로 얘네도 이랬는데요? 이러는 이유가 뭘까? 조중동이 원전 짓는 걸 찬성 했다고?ㅋㅋㅋㅋㅋㅋ =========================== 원전수출 국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원전과 신재생 둘 중 하나 포기 안 될 말국민 뜻 모으면 150조원 에너지 수출북한에 짓다만 경수로 완공시키자 제안완전하고, 철저한 비핵화가 전제조건"북한, 정상국가화 계기 될 것" 원전수출 국민행동(이하 원국행)이 20일 출범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원국행은 원전 관련 기관, 학계, 산업계, 노동계, 여성계, 언론계, 청년·학생 대표 등이 모여 결성한 시민단체다. 원국행은 첫 공식활동으로 원전수출 촉진 100만 서명운동에 돌입한다. 4월 21일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만명이 참가하는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를 열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원전수출 국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정부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 체코 등에 원전 수출을 추진 중이다. 일본·중국·프랑스·러시아 등과 치열한 수주 경쟁을 펼치고 있다. 원국행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을 구가하던 철강·조선·자동차산업이 수십 년간 압축 성장해 온 속도보다 더 빨리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수준의 한국 원자력발전 기술을 세계에 수출하는 것이야말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유력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원국행 본부장을 맡은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009년 연간 매출 1경 5000조원을 기록한 에너지 시장의 1%만 한국이 점유한다면 전체 수출액의 30%를 차지하는 새로운 ‘옥동자’가 탄생한다”며 “국민이 일치단결해 원전 수출을 지원한다면 연간 150조원 규모의 에너지 수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기자회견에선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태양광의 발전단가는 아직 원전의 4배가량인데 리터당 1500원짜리 기름을 넣다가 6000원짜리 기름을 넣는 셈”이라며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이 빨라지고 있는 만큼 다른 발전원과 경쟁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큰 형님(원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것으로 보지 말고, 함께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수단으로 북한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물론 완전하고도 철저한 비핵화가 전제다. 한국형 원전 개발책임자였던 이병령 박사는 “우리의 원전 기술은 최대 현안인 북한 비핵화에도 절묘한 대안”이라며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한국형 경수로를 다시 공급하기로 방향을 잡고 30% 짓다가 만 신포에서 나머지 70% 공정을 완성한다는 제안을 하자는 것이다.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박사는 “예전에 짓다 만 OPR1000도, 신형 APR1400도 설치가 가능하다”며 “건설 기간이 짧은 스마트원전을 짓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스마트 원전은 막대한 예산이 드는 송전선 설비 부담이 적다. 자연 대류에 의한 냉각 속도가 빨라 안전성이 높은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황 교수는 “일자리 창출과 환경보호가 시대적 당위라면, 원전과 같은 고부가가치 수출은 필수불가결한 국가적 과업”이라며 “4월 열릴 국민통합대회는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세대 간의 간극을 치유하는 국민 화합의 한마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 공학과 교수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원전수출 국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세계원전수명관리학회장), 이병령 전 대북 원전 지원팀장, 김창영 따뜻한손 출판사 대표(전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한국원자력학회 부회장), 김병기 한국수력원자력 노조위원장(원자력정책연대 공동의장), 김헌규 환경운동실천협의회 총재, 조성은 무진기연 대표, 차민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생회장(원전수출 국민행동 학생대표), 김대홍 원전수출 국민행동 청년대표 등이 참석했다. 아래는 원전수출 국민행동 입장문 전문.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희망이 싹트는 새봄입니다.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으나, 우리 국민은 평창에서 기적을 창조했습니다. 뜻을 모으고 지혜를 모아 이름조차 익숙하지 않던 종목에서도 메달을 따고, 한반도를 평화와 번영의 땅으로 만들 디딤돌을 놓았습니다.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지자체 선거와 개헌으로 달아오르고, 적폐청산에 미투(Me Too) 운동이 맞물려 오랜 관행과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 달 뒤에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핵 버튼 운운하며 ‘분노와 화염’으로 치닫던 미국과 북한 간에도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습니다.그러나 사회 한 쪽에는 아직도 한겨울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청년실업 빈부격차 하우스푸어 같은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저출산 가계부채 같은 고질적 숙제 또한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그렇습니다. 경제가 문제입니다. 거시지표는 양호하지만, 기업과 가계에 켜진 빨간 불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을 구가하던 철강 조선 자동차산업은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는 경제에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루 빨리 현재의 위기를 미래를 위한 기회로 바꾸어야 합니다. 반도체와 전자통신 등 ICT산업 이후의 미래 먹거리를 개발해야 합니다.희망의 불꽃을 되살릴 신수출산업 발굴에 대한민국의 국운이 걸려 있습니다. 가장 유망한 신수출 챔피언은 에너지산업입니다. 석탄 석유 가스로 구성된 기존 에너지산업은 ▲기후변화 ▲미세먼지 ▲자원고갈 ▲고비용이라는 사면초가에 휩싸여 있습니다. 미국 러시아 중동 등 모든 자원대국들이 지속가능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우리 국민이 하나로 뭉쳐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전에 나선다면 첫 번째 목표는 바로 원전 수출입니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이념의 틀을 깨고 온 국민의 지혜와 정성을 모아 원전 수출에 매진해야 합니다.이러한 현실적 인식 아래 우리는 원전 수출을 행동으로 지원하는 ‘원전수출 국민행동 추진본부’를 결성했습니다. 우리 단체에는 원전 관련 기관은 물론, 학계 산업계 노동계 여성계 언론계 청년 ‧ 학생 대표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우리는 다음달 21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원전수출 국민행동’을 출범할 예정입니다. 범국민적 조직의 출발을 기념하는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개최됩니다. 2018년 4월 21일 토요일 광화문은 5천만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원전 수출을 촉구하고 지원을 다짐하는 역사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너지산업은 2009년 이미 연간 매출 1경 5천조 원을 기록한 세계 최대 시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총 부동산 가격의 4배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급속한 진행에 따라 에너지시장 규모도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러 세대에 걸쳐 ‘에너지 빈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학 기술력은 이러한 악조건을 능히 극복하고, 벌써 오래 전에 ‘미래 에너지’라 불리는 원자력발전을 국산화 했습니다. 가격과 품질 모두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빈국이 에너지 수출국으로 우뚝 서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우리나라가 세계 에너지시장의 1%만 점유한다면, 대한민국 수출액의 30%를 차지하는 새로운 옥동자가 탄생합니다. 국민 여러분이 일치단결하여 원전 수출을 지원한다면, 연간 150조 원 규모의 에너지 수출에 원전이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우리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체코 등에 새롭게 열린 원전 시장 개척을 위하여 이달부터 러시아 중국 프랑스 일본과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올림픽에는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 동메달도 있습니다만, 원전시장은 금메달 한 가지만 빛이 나는 가혹한 전쟁터입니다. 정부가 앞장서고 국민이 지원하여 원전 시장에서도 우리 대한민국이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합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원전은 일자리 창출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애국산업입니다. 지금도 700여 기업이 연간 25조 원의 매출을 올리며 3만5천 명에게 고급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간접고용 21만 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1백만 명에 이르니, 이미 엄청난 고용효과를 거두고 있는 효자산업입니다.우리가 세계 에너지시장의 1%를 점유하는 날, 원전산업의 일자리는 6배 이상 늘어나게 됩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고급인력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원자력은 두뇌에서 캐내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우리 원자력 기술은 최대 현안인 북한 비핵화에도 절묘한 대안이 될 수 있는 다목적 카드입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로 우리 원전을 북한에 착공한 역사적 사건을 상기해 보십시오.지금도 우리 사회 일각에는 원전 수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강대국들이 겨루는 원전 올림픽에서 내부의 갈등이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습니까. 지속적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그리고 지구 환경보호가 시대적 당위라면, 원전과 같은 고부가가치 수출은 필수불가결한 국가적 과업 아니겠습니까.안전하고 경제적인 원전 수출은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데에도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편견을 버리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원전 수출에 국력을 결집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이 원전 수출로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지구 환경개선 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기 때문입니다.20년 전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겪었습니다. 달러가 부족하여 국가가 굴욕을 겪고, 국민들은 하루아침에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금 모으기 하던 자세로 우리가 먼저 대장정에 나서겠습니다. 아기 돌 반지까지 내놓던 심정으로 온 국민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겠습니다. 원전 수출로 우리 청년들의 미래를 열고, 원전을 경제성장의 한 축으로 키워나가겠습니다.우리의 간곡한 뜻이 담긴 ‘원전수출 국민행동’에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앙망합니다.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를 여야·보혁·세대 간의 간극을 치유하는 국민 화합의 한마당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고개 숙여 부탁 드립니다. https://news.v.daum.net/v/20180320144255648 이상 2018년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자 그럼 기사에 나오신 양반들이 뉘시고 뭐하시는 분들일까요?? 와우~ 면면이 화려하신 분들이 무려 유엔제재로 인해 안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적 행위를 해보겠다고 모였던게 기사로 나왔군요~!!!! 기사가 이것 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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