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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도서]2024년 책 추천
2023년 4분기 부터 2024년 3분기 까지 1년간 읽었던 책 추천입니다. 1.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세계 반도체 패권의 향방을 읽기 위해 읽어야할 책 페어차일드, 텍사스인스트루먼트, TSMC, 인텔 IT에 무지한 사람들도 얼핏 들어본 단어 일것입니다. 반도체 시장의 태동과 발전에 대해서 빠르게 알고 싶으시면 이책을 한번 읽어 보시면 전체적인 반도체 지도가 머리에 그려 지실것입니다.복잡한 반도체 공급망은 영국에 본사를 둔 암(ARM)이라는 회사에서 켈리포니아와 이스라엘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이 미국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반도체를 설계 디자인하고 설계도는 대만의 설비로 보내지고, 그곳에선 일본에서 온 극히 순수한 실리콘 웨이퍼와 특수한 가스를 사용하여 가장 정밀한 공작기계가 반도체 설계도를 웨이퍼에 그려 넣습니다. 이런 장비를 제작하는 기업은 다섯 곳으로 네덜란드, 일본 나머지 셋은 켈리포니아에 있습니다. 테스트는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이루어 집니다. 진공관, 트렌지스터, 집적회로, 실리콘 산업의 쌀이라는 칩(Chip) 반도체까지의 태동의 역사, 반도체를 개발한 곳은 미국이지만 제작은 동남아시아에서 생산하게된 이유. 오만한 일본의 반도체 시장의 몰락, ASML이 네덜란드 기업이지만 판매가 쉽지 않은 이유(렌즈는 독일, 광학은 미국 등 다국적 기업의 이해 관계), 반도체에 문외한이라도 쉽게 이 한권의 책을 통해서 전반적인 산업흐름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2.돈 사회와 경제를 움직인 화폐의 역사 돈이란 무엇이고 신용이란 무엇인가? 화폐는 국가만 발생할 수 있는 걸까? 돈자체 만으로 물건을 만들수 없고 단순한 돈 조각을 어떻게 믿고 거기에 따를수 있는것일까요. 문명이 발달되지 않는 오지 무인도 섬에서도 돈은 사용합니다. 그 돈은 커다른 돌덩이에 대고 누가 얼마를 빌렸다고 적어 놓고 그것에 따라 신용거래가 이루어 집니다. 어느날 그 돌덩이가 바닷속으로 빠져 버리자 또다른 사물을 이용하여 신용거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한때 금, 은이 돈의 가치 였습니다. 현재는 동전, 지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돈을 통해 '안정'과 '자유'가 주어지게 되고 사회적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나날이 추상화 되어 실제 경제는 추상화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물물교환의 대체하는 돈이 신용의 핵심이 되어 왔는가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3.몬테크리스토 백작 통퀘한 복수! 숨 쉴 틈 없는 긴장감! 알렉상드르 뒤마 하면 삼총사를 쉽게 떠올립니다. 뒤마의 소설은 현대 드라마적 요소가 다 녹아져 있습니다. 화물선 선원이였던 주인공이 사랑의 치정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고 감옥에서 지인을 만나 탈출, 막강한 재력과 백작이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복수하게 됩니다. 책은 만만치 않은 두께를 자랑하지만 단숨에 몰입하여 읽었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프랑스 인이였지만 흑인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분은 몇번이나 계실까요 뒤마의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오페라 '춘희'의 작가 이기도 합니다. 4.분열하는 제국 11개의 미국, 그 라이벌들의 각축전 미국은 용광로가 아니다. 북미 대륙엔 11개의 뚜렷이 다른 민족들이 존재했고, 미국은 그 상호작용으로 생겨났으며 아직도 9개 민족이 각 축을 벌이고 있다. 미국 역사와 지정학에 관한 무수한 의문을 풀어 줍니다.북미 대륙에 11개의 민족, 초기 식민지인 양키덤, 뉴 네덜란드, 미들랜드, 타이드워터, 딥 사우스, 그레이터 에팔레치아 이들만 알아도 현재 미국의 현실이 보여 집니다. 뉴잉글랜드를 근거로 하는 양키덤과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중심으로 확장한 딥사우스, 양키덤은 미국 건국 서사의 주인공이며 남북전쟁의 승리자 입니다. 반면 딥 사우스는 노예농장주들의 자식 중, 상속 받을 건덕지도 없는 처남들이 들어와 만든 식민지 입니다. 노예인구가 많고 깊은 차별의식으로 인종차별의 베이스캠프가 됩니다. 남북전쟁 패전후 정치조직을 대신해 민간의 교회가 구심점이 되어 부흥을 꾀한 흔적이 강하게 남아 편견가득한 기득권 지배층의 인종차별을 내재화하고, 창조론을 교과서에 실어 원리주의 기독교가 탄생합니다. 북부의 양키는 종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가르치려 들고 참견하는 선민의식이 강해 다른 민족을 배척하여 남북 불균형을 초래하게 됩니다. 현재 민주당, 공화당으로 이해하기보단 양키덤 대 딥사우스의 대결로 보는게 훨씬 미국을 이해하는것이 정확합니다. 트럼프가 인기가 있고 러스트 벨트가 생성되는 이유는 그 11개의 국민은 종교 이념 문화등이 다양하기에 서로간의 이익또한 판이하게 다름으로 미국의 선택, 각주마다 법이 다른 이유, 청교도적인 삶, 유럽의 아류에서 주류로 변화되는 과정, 차후 미국은 어디로 나가게 될 것인가를 더 잘 이해하게 될것입니다. 5.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무함마드를 숭배하는데 다섯 가지 의무를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라고 부릅니다. 사하다, 신은 오로지 한 분뿐이며 무함마드는 신의 사도라고 증언하기살라트(또는 나미즈), 매일 다섯 차례 정해진 기도 의식 올리기자카트, 매년 재산의 일정 비율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기소움(또는 로자), 매년 라마단의 달에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하기하지, 가능하다면 일생에 적어도 한 번 메카로 순례여행 가기 이슬람은 그저 하나의 믿음이나 신앙체계가 아니라, 식이요법이나 운동 프로그램처럼 어느 모로 보나 구체적인 프로그램입니다. 이슬람은 실천입니다. 무함마드 생전에는 모든 계시를 신이 알려 주었습니다. 전투준비 포로 생환 등 모든 것은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아 이야기 해줬습니다. 무슬림들이 메카가 있는 방향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 무슬림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무슬림 공동체가 무르익어가던 중에 기도하는 방향을 바꾸라는 계시가 내려왔고, 그때부터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해왔습니다. 무함마드가 죽었으며 신의 사도는 더이상 오지 않을 테니, 기도하는 방향을 바꿀 권위가 있는 사람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무함마드가 죽고 쿠란의 마지막 한조각 까지 모아 만들어 봤지만 쿠란의 실제 생활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전부 명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석'이란 곧 문제의 조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책은 여타 다른 이슬람 관련서적보다 읽기도 쉬었고 내용도 충실했습니다. 이슬람의 성장, 십자군의 활동, 콘스탄티노플 공략, 사이크스-피코 협정(이전 소개 드렸던 책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좀더 자세하게 소개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등 기존 서양인들의 눈에서 보던 세계사를 이슬람인의 눈으로 다시 보는 관점의 제전환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6.플라톤전집 Ⅳ 국가 대화 형식의 책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답변하고 플라톤의 형제들이 질문하고 책은 플라톤이 적었습니다.'철인정치' 소크라 테스가 말하는 핵심 정치 이론입니다.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정치 유형은 철인정-명예정- 과두정-민주정-참주정 으로 이야기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정체 형태인 철인정은 개인적인 야망을 버리고 올바름에 따라 통치하는 국가 형태로서 철학자가 국가의 모든 구성원에 그 자질과 능력에 따른 직무를 부여하며, 올바름을 통해 나라를 통치하는 최고의 정치체 입니다. 명예정은 전사가 다스리는 국가 입니다. 국가의 공적인 일에 명예를 추구하여 올바르게 세워 줍니다. 하지만 명예를 향한 충동은 이성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주장으로만 이어지고, 욕망이라는 요소가 제멋대로 풀리면서 퇴락하게 됩니다. 과두정은 부자들에 의한 정치 입니다. 부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은 통치에 관여 하지 못합니다. 과두정의 궁극적 목적 또한 사적인 부의 축적에 있어 사회적 평가 기준이 덕보다 부가 되어 욕망이 우선성이 지배 합니다. 결국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분열로 국가의 단일성이 분열되고 악화되어 국가의 힘이 약화 되어 가난한 자가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민주정은 부자들이 가난한자들을 생산하게 되어 결국 혁명으로 이뤄 지게 되며 이러한 정부는 무정부 상태로 평등한 사람에게도,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일종의 평등을 배분해주는 정체 입니다. 민주정은 구성원들의 방종적인 가치를 가지며, 결국 자유를 남용하여 대중은 법을 지키지 않게 되고 국가는 통일성을 잃고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참주정은 방종으로 자유의 지나침으로 지나친 자유는 새로운 예속을 불러오고 파퓰리스트의 속임에 빠져들어 참주를 제외한 어느 사람도 자유롭지 않게 됩니다. 책이 두꺼워서 읽기 힘드신분은 10장부터 읽으셔도 됩니다. 앞장은 '정의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통해 국가의 생성과정과 국가적 정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10장은 플라톤의 핵심이론 이데아론'동굴이론'이 소개 됩니다. 이데아론은 이전 플라톤 소개글에서 갈무리 합니다. https://www.jjang0u.com/board/view/hobby/15178214 7.민주와 애국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공공성 2024년 4분기 책소개에서 잠깐 소개해 드린 책입니다. 전후 일본의 지성인들의 사상 문학등을 통해 시대정신의 변화 과정을 이야기 하며, 현재 일본인의 정신구조 이해에 가정 적확한 책입니다. 일본은 시위 문화가 있지만 임펙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강렬한 시위가 없었던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 전공투를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의 과격함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과격함은 소수의 몫이고 나머지 참여자는 그저 시위에 참여하여 같이 외치고, 어울리는 소속감에 만족 합니다. 즉 목적과 이유 지속이 불가능한 모임 수준입니다. 이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 모임인 '베헤이렌(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으로 변화되고 '소리 없는 모임'이라는 피치 아래 그저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면 그에 동조하는 이들이 그 아래 조용히 서서 지지하는 소극적 어찌보면 무책임한 시위 양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일본의 이중성이 창궐하는 결정적 이유로는 천황제의 폐지를 하지 못한것을 지적합니다. 2차 대전의 최대 책임자 천황이 책임지지 않으니 그 책임은 결국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이유도 모르고 참여 했던 국민은 자신들의 아픔을 피해자화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8.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 20세기 가장 혁명적인 인간, 그리고 그가 만든 21세기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자 컴퓨터공학자이자 경제학자이자 생명공학자였던 20세기 최고의 천재" 수학자로 출발해 그 분야에서도 천재적인능력을 보여 양자역학의 최대 난제인 연산자 이론을 양자역학에 접목시키는 퀘거를 이룩합니다. 최초의 컴퓨터(애니그마-앨런 튜링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컴퓨터는 아닙니다.)에니악(ENIAC), AI, 생명공학, 핵융합, 우주과학, 오토마타, 기후 변화 같은 21세기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예측했습니다. 그가 만든 '게임 이론(Game Theory)'을 연구하여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론이 현대 경제, 정치, 사회, 군사,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게임 이론의 가장 기본인 예시로 1개의 케이크를 2명의 사람이 공평하게 분배 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한사람에게 케이크를 자르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이 우선 선택권을 가지게 하면 공평하게 분배가 가능 합니다.책은 단순히 한 천재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보다는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태어난 한 천재가 인류의 최대의 비극인 1차, 2차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엄청난 과학적 성과를 만들어 내게 된 과정을 폰노이만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20세기 과학기술의 벨 에포크 시대를 수놓은 많은 천재들의 지적 교류와 창발의 파노라마를 흥미롭게 서술한 책입니다. 가끔 어려운 과학이론 설명이 있지만 그것마저 매력적이였습니다.
로오데작성일
2024-12-26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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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윤석열 "경제는 대통령이 살리는 게 아니다"
무려 대선 전 22년도 유세 현장에서 굥이 직접 한 말입니다. 얼마 전 유시민이 매불쇼에 출연해서“경제는 대통령이 살리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발언한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아 놨으니까 지금 국가 경제가 나락 가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고요 현재 미국의 상황을 한번 봅시다. 왜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승리 했는가 여러가지 분석이 있지만저는 트럼프가 어떤 인간임을 떠나서 굉장히 똑똑한 사업가 출신이고트럼프의 가장 최고의 캐치 프레이즈는 “아메리카 퍼스트”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미국 국민들이 잘 먹고 살아야지 왜 쓸데없이 남의 나라 전쟁에 돈을 쏟아붓는 멍청한 짓을 하냐고 비판합니다. 실제로 바이든이 집권해서, 미국 경제가 좋아지긴 했지만 물가가 미친듯이 올라서, 서민들은 별로체감하지 못했고, 본인 먹고살기도 빠듯한 지경이었으니 미국의 젊은 계층들은 바이든의 경제정책에서무능한 모습을 보고 전부 트럼프로 돌아섰죠, 게다가 우.러 전쟁과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에 개입하고도뚜렷한 성과도 못 내고, 돈만 축 내고 있으니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민주당 대선주자로 최종 낙점된 카밀라 해리스 역시 여론이 좋지 않은 바이든과 차별화를 전혀 못하고주요 아젠다로 이슈를 끌고 간게, 유색인종과 이민자 문제 성소수자 문제 이렇게 마이너하고 현재 먹고살기 팍팍한 미국 유권자들에게 공감하기 힘든 얘기를 하다 보니, 외면 받을수 밖에없었고요, 예전에 미국의 호황 황금기를 경험한 60대 이상 계층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하루하루먹고살기 힘든 팍팍한 현실에 당연히 이상한 얘기나 떠들어대는 여자 보다는 시원시원하게“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실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트럼프에게 표를 줬을 겁니다.이는 미국 국민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자면, 유시민이 말 했던 것 처럼 “경제는 대통령이 살리는게 아니다”이런 발언과 생각을 하는 대통령을 직접 우리 손을 뽑았습니다. 그가 말한 것 처럼 경제는 대통령이 살리는게 아니니까, 경제가 개 씹.창이 나든 말든 아무 상관도 없고 신경 안 쓰고책임 질 필요도 없는 거죠, 근데 이런 씹.세끼를 왜 뽑았을까요???? 님들 다 아시잖아요……… 30대 들은 영끌해서 내 아파트 값 더 떡상 해서 상급지 갈아타야 하니까 아파트 값 올려줄 2찍 한거고40~50대들 역시 본인이 소유한 아파트 더 떡상해서 엑싯할 생각 하니까60대 이상 은퇴자들도 본인이 지금까지 돈 다 벌어서 부동산에 투자해서, 부동산 밖에 없는데자기 자산 더 불리고, 자식세끼들 증여해줘야 하니까집 없는 사람들은, 국힘당이 집값 안정화 시켜줘서 모두가 집 한 채 마련 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민주당 정권에서는 집값이 시원치 않았으니, 국힘당이 집권하면 집값은 올려주겠지 이래서 다들 눈 딱 감고 2찍 했잖아요 부동산 미친듯이 폭등해서, 저출산에 고령화 지방은 아예 소멸 중 이고, 소득 양극화가 서울 내에서도 강남과 비강남 점점 심해지고있고, 젊은이들 결혼은 커녕 연애도 안 합니다. 아예 구직 포기하고은둔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군병력 전체보다 더 많답니다. 백날 직장 생활해봤자아파트 한채 사기 힘드니, 코인 주식 로또 사행성 도박 같은 한탕주의에 미쳐 있습니다. 이게 다 부동산 욕망으로 인한 국민 전체 집단 광기의 결과이며, 이런 어리석은 2찍들 때문에 저능아 범죄자 세끼 대통령이 탄생했으며 대한민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같이 좇망테크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재낀 꼴이 되었습니다. 저는 트럼프를 뽑은 미국 유권자들이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적어도 부동산에 미쳐서 2찍한 어리석은 인간들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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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엽기영상] 싱글벙글 2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의 활약상
프랑스(연합국) 이전에는 쉬쉬해줬지만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하자 선전포고를 하는 모습 는 6주만에 개따먹히고 항복 당사국인 독일, 미국,소련 같은 연합국들마저 영국과 함께 세계 주요 열강이였던 프랑스의 허무한 멸망에 어이가 털려버림 결국 영국으로 망명 정부를 세우며 레지스탕스를 설립, 비밀 결사를 중심으로 독일한테 끈질기게 저항함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버스타고 독일에게서 해방됐음 대영제국(연합국) 유럽을 사실상 지배하는 데 성공한 독일이 마지막 남은 영국이 유럽 동맹국들이 전부 함락됐음에도 항복하지 않자 바다사자 작전을 실시한 히틀러 영국 본토를 향해 침공을 대대적으로 일으켰으나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해도 대영제국은 대영제국으로 독일의 상륙을 계속해서 막아내고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어버림 영국 본토 항공전 히틀러가 영국 침공을 접게한 사건으로, 영국 본토에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영국이 버텨내면서 독일이 철수하게 됨 이렇게 홀로 외롭게 유럽에서 독일의 침공을 막아낸 영국은 미국이 참전하기 전 연합국을 멱살 캐리하며 마지막 전성기를 독일과의 전쟁으로 소모시킴 중화민국(연합국) 중일전쟁 만주사변으로 만주국을 괴뢰국가로 세운 일본제국의 군부가 폭주하여 중원까지 침략해온 전쟁 사실상 주변국가들이 전부 식민지인 상태에서 연합국 아시아의 영국 포지션으로 일본과 대항하여 싸움 이때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도망만 다녔고, 중화민국의 장제스는 일본과 계속해서 대항하여 압도적인 물량과 미국의 지원으로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어서 연합국의 승기를 가져오지만 전력이 파탄나버렸기에 이후 국공내전에서 패배를 하게 된 원인이 되어버림 소련(연합국) 독소전쟁 영국 침공에 실패한 히틀러가 결국 결단을 내려 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한 사건 독일의 압도적인 전격전에 물량만 많은 소련은 쭉 밀리지만 소련의 지형적 이점과 아직 항복하지 않은 영국과 연합국들과의 양면전선에 의해 이도저도 못하고 히틀러의 ㅂㅅ같은 에고때문에 결국 독일이 패퇴하면서 그대로 쭉 항복까지 이어짐 만주 전략 공세 작전 유일하게 남은 추축국인 일본제국이 원폭 2방 맞고 완전히 패망하기 직전에 만주국을 무너뜨리고 일본열도까지 진출하려는 소련군을 보고 결국 무조건 항복을 결정하게 되며 2차 세계대전의 완전한 종식을 결정하는 사건이 됨 미국(연합국) 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의해 선전포고를 날린 미국과 일본 관동군 사이에 열린 태평양 전쟁 유럽에서 독소전쟁이 한창이였다면, 아시아에서는 태평양전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장기전이고 스케일도 방대했음 사실 질적으로도 물량적으로도 미국이 우세했지만 일본의 말도안되는 변수로 가득한 전술때문에 3년 동안이나 질질 끌리며 미국도 엄청난 애를 썼던 전쟁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세계 최초이자 마지막이라는 핵 사용이 허가되었던 사건 패색이 압도적으로 짙었던 일본이였지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군부에 더 이상 질려버린 미국이 결국 금단의 무기를 투하하기로 결정함 이 원폭 2방의 투하로 인해 그 천하의 일본 군부마저 무조건 항복을 결정할 정도의 위력을 선보임 이탈리아(추축국) 나치독일, 그리고 연합국 사이에서 누구 편에 붙을지 선택권이 있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로마제국을 재현하겠다는 목적으로 독일에 붙고 추축국이 됨 이후 영국, 프랑스에게 동시에 선전포고를 날리고 이후에도 지중해를 비롯한 아프리카까지, 진짜 꼴리는데로 선전포고를 남발해버린 이후에 독일에게 유린당하여 항복 직전인 프랑스 남부로 침공함 그런데… 프랑스의 산악사단에 막힌 열강 이탈리아의 군대 심지어 그것도 독일에게 전부 갈려버려 잔당중에 잔당뿐이였음 만약 북프랑스의 독일군이 프랑스의 항복를 받아내지 못했다면 오히려 이탈리아가 프랑스군에게 본토를 침공당했을 판이였음 몰타 항공전 이탈리아의 선전포고 남발로 추축국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점령하지 못했음 이로 인해 아프리카 군단은 보급 문제가 생기고 이후 연합국에 의해 괴멸됨 또한 몰타섬에서도 최악의 졸전을 펼치며 참패 그리스 침공 이탈리아의 선전포고 남발로 독일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되는데 이탈리아는 21개 사단을 동원해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그리스군 13개 사단 반격에 알바니아까지 후퇴해 역관광 직전에 몰림 그리스는 사실상 친 독일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연합국 측에 가담했음 결국 독일은 이탈리아 똥 치우느라 공수부대를 투입해 대신 전선에 뛰어들게 되고 괜히 적만 늘리고 개못싸운다음에 동맹국에게 민폐만 존나 끼쳐버리면서 추축국 패망에 사실상 1등공신이 되어버림 이집트 침공 그리스에게 개같이 두들겨맞은 이탈리아는 화풀이 겸 이집트에게로 화살을 돌림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이였던 이집트 왕국을 침공한 이탈리아군 7개 사단은 영국군 2개 사단의 반격을 받고 패주 13만명이 포로가 되고 이탈리아령인 나라까지 잃는다 오죽하면 영국군은 이탈리아군이 항복을 너무 많이 해서 제발 그만 항복해주라고 했을 정도로 싸움에서 지자마자 바로 꼬랑지 내리고 투항해버림 이에 독일은 다시 이탈리아 똥 치우느라 소련 침공을 위한 바르바로사 작전을 미루게 되고 손해만 보게 됨 25만명 이탈리아군 병력은 영국군 3만 5천과 전투, 튀니지에서 항복해버림 독일과 합세해 동부전선에 합세한 이탈리아 는 소련군의 공격을 받자 바로 모든 병기를 포기하고 패주했음 이쯤되면 연합국에서 보낸 첩자가 아닐 정도… 결국 더 이상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하고 항복하는 이탈리아 추축국 3인방 중에 유일하게 웃으면서 항복한 나라 사실상 항복이고 바로 연합국으로 갈아타버림 독일은 결국 눈물 콧물 쏙 빼고 이탈리아 도와줬지만 연합국에게 프리패스 오픈 해버렸으니 히틀러 개같이 오열 일본제국(추축국) 만주사변 조선 합병까지는 오히려 일본을 편들며 청나라와 러시아를 압박했던 영국과 미국이였지만 일본 본토의 명령마저 재끼고 군부의 독단적 판단으로 만주를 집어삼켜버리며 이후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였던 서양 열강들마저 적으로 돌리고 군부가 나라 전체를 집어삼키면서 2차 대전을 위한 준비를 끝마침 무서운 속도로 중국 본토까지 밀고 들어가는 일본 관동군 중화민국 영토의 절반 가량을 점령하며 대륙을 철저하게 짓밟고 능욕하게 됨 남방작전 미국이 계속해서 재재를 하자 눈깔이 돌아버린 군부는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가 깔려있는 동남아를 먹어버리자는 작전을 개시, 여기서 미국과 영국 최고 함대들을 격퇴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결국 동남아 식민지들을 전부 빼앗고 대동아연방 실현을 코 앞에 두지만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된 일본은 대표적인 작전으로 알려진 카미카제(전투기를 그대로 적 함대에 꼬라박는 자살 특공대)같이 미군도 ptsd가 올 법한 기상천외한 작전들을 펼치며 3년 간 초강대국 이라는 미국과 전쟁을 펼침 본래 목적은 진주만 공습으로 동양에서 미국의 영향력만 없애고 협상으로 끝낼 작정이였지만 처음으로 외부 세력에게 기습으로 선전포고 없이 타격을 입은 미국의 성질을 건드리게 됨 도쿄 대공습 + 원폭 2방 + 소련 및 연합국의 열도 상륙이라는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일본은 결국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이로써 전쟁을 종결나게 됨 나치 독일(추축국) 오스트리아 합병 히틀러가 태어난 나라인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며 폴란드 침공의 초석을 다진 사건 무혈입성으로 나라를 합병한 유명한 사례 폴란드 침공 자신들과 비슷하게 국제사회로부터 외면을 받던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동시에 폴란드를 나눠 따먹은 사건 이로 인해 2차 대전이 발발하게 됨 프랑스 침공 유럽 열강 프랑스를 순식간에 집어삼키며 큰 충격을 준 사건 이후 전격전을 통해 영국을 제외한 전 유럽을 밀어버리는 업적을 세우고 히틀러의 야망은 성공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 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기습 침공한 독일군 초기에는 압도적인 전격전으로 소련마저 압도한다 하지만 소련의 홈그라운드 지형을 이용한 전술, 추위에 인해 큰 패착을 겪게 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친 연합국까지 더해지며 결국에 양면전선을 무리하게 펼치다가 독일 본토까지 밀리게 되어버림 결국 베를린까지 다다른 연합국에 큰 충격을 받고 히틀러는 권총 자살을 했으며 독일은 공식적으로 항복을 하며 일본제국을 제외하고 온 추축국이 연합국에게 굴복당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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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마오 아들 달걀 볶음밥 먹다 뒤졌다는 사료 뒤져본 결과
11월 25일에 발생한 미군 폭격에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사망하는 사건이 생기고 그 과정이 마오안잉이 달걀 볶음밥 해먹을려다 생긴 연기 때문에 어그로 끌려서 사망했다고 하는데 유튜브 영상이나 인터넷 게시물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내용인데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먼저 마오 아들 죽음에 대해 증언한 사람들은 Ding Ganru (당시 지원군 본부 작전 책임자), 조남기, Yang Fengan (펑더화이의 비서), Cheng Pu (폭격 생존자)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여러 보고서를 포함하여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를 종합하면 11월 25일 오전 10시에 폭격이 발생했고 이때 마오안잉은 사망한 걸로 보임 먼저 마오안잉이 죽기전에 당시 다른 군인들에게 받은 취급을 보면 邓华将军传 등화장군전기 중일전쟁부터 한국 전쟁까지 참가한 등화장군을 다룬 전기에서 마오안잉은 개 싸가지 없는 새끼로 서술 되어 있음 지 아빠 빽 믿고 그동안 엘리트 코스 밟은거 가지고 오만하게 군다 다른 장군 수기에도 스탈린에게 받은 권총이라며 자랑하는 등 좋지 못한 개 싸가지 없는 새끼 방공 조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의 안전이나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새끼라는 언급이 있는거 보면 아마 당시 중국군 내부에서도 마오안잉에 대한 인식은 나빴을꺼라 생각되고 마오안잉 사망 원인 중 하나인 마오안잉이 방공 수칙을 무시했기에 생겼다는 주장은 이 책을 통해서 퍼진거라고 생각됨 险难中的共和国领袖与将帅 고난에 빠진 공화국의 지도자와 장군들 우리가 흔히 아는 달걀 10개와 볶음밥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는 책으로 이 책에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서 보낸 계란 10개를 언급하며 작전실에서 밥을 볶은건 러시아어 통역사였는데 같이 있던 Cheng Pu는 폭격 소리를 듣고 도망쳤음 Cheng Pu는 탈출하고 나서 지휘관이 안에 누가 탈출 못 했냐는 말에 러시아어 통역사와 마오안잉은 도망 못 쳤다는 기록이 서술 되어 있음 여기서 마오안잉 사망에 대한 내용을 담은 서적에서 나온 주장을 바탕으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네이팜이 떨어져서 싹다 타버렸다는데 생존자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작전실에다 계란 볶음밥을 만들 수 있는 시설이 있을까? 간단한 조리시설은 있을꺼 같기는 한데 그래도 밥 까지 볶을 정도가 될려나? 보내준 달걀은 진짜로 보내주긴 한 건가? 마오안잉이 죽기전부터 인근에는 미국 공습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북한 전선사령부 부사령관이 중국 인민군 총 사령관인 펑더화이에게 달걀 10개만 보낼리가 없음 달걀을 전달하면서 전쟁에 관련된 문서 라던가 편지를 주고 받은게 없는거 보면 달걀 줬다는 일 자체가 존재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음 그 지역에 있던 참전자 증언을 따르면 한국에서 11월은 엄청 추웠기 때문에 아무리 등화관제를 해도 병사들이 몰래 몰래 난로를 피웠다고 주장이 있어서 당시 폭격을 유도한 연기가 마오안잉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거기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책 마다 폭격 당시 2명이다 혹은 3명이다 마오안잉이 볶았다, 볶으라고 시켰다, 볶는걸 같이 먹자고 하다 변을 당했다 사람마다 변을 당한 시간이 7시,10시다 뭐 이러고 있어서 진짜 재수 없어서 맞은건지 달걀 볶다 맞은건지,달걀을 삶았는지, 과일(아마 사과)을 구웠다가 네이팜에 죽었는지, 삶은 달걀, 꽃빵을 먹다가 놀라서 잘못 삼켰다 질식사 바리에이션도 있고 마오쩌둥 아들이 겁쟁이 마냥 도망치지 않고 결국 네이팜에 타 죽었다 등등 많음 거기다 마오안잉 사망 전날인 24일에 벌어진 폭격은 중국 지도부들은 이미 미군이 중국군 작전실 특정해서 킬각 재고 있는걸 눈치 까고 대공망을 설치하고 있던걸 보면 중공군은 미군에 공중 폭격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다는게 분명한데 그걸 마오안잉한테 경고 안 해줘서 작전실에 있던 마오안잉이 뒤졌는지 아니면 장군들이 마오안잉에게 경고 해줬는데 무시해서 뒤졌는지 그것도 아니면 중국군은 미국이 자기네들 작전실 특정 했는지 몰라 가지고 마오안잉이 작전실에 있다가 뒤졌는지 정확히 왜 어쩌다 죽었는지 대해서 문서나, 서류로 남은게 없고 있는 기록 조차 대부분 구전 기록인데다 죽은 시간, 그를 죽인 전투기 기체, 죽은 이유, 뭘 먹다가 죽었는지, 불타 죽었는지 전부 제각각인거 보면 마오안잉에 대한 죽음에 대한 진실은 애매모호함 결론이 뭐다? 앞에 장황하게 글 써놨지만 결국은 모름임 마오안잉 죽음 자체는 폭격 맞고 죽었다 정도로 끝날 이야기인데 마오안잉 계란 볶음밥 먹다 죽은 썰 부터가 중국에서도 있고 한국에서도 중국에 대한 웃음거리로 여겨지면서 일부 사료들하고 엮이고 부풀려져서 탄생한 누더기 골렘 같은 야사라 당장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 엇갈리는 주장이 나오는것만 봐도 계란 볶음밥 만들어 먹다가 미국 폭격기에게 어그로 끌려 죽었을 가능성은 낮긴한데 문제는 해당 가능성이 0이 아니여서 이런 미적지근한 결론밖에 나오지 않음 최소한 한국에서는 달걀 볶음밥 좀 먹는다가 죽을 일 없으니 오늘 하루는 중국집에서 달걀 볶음밥 시키는게 어떨까?
츠데츠데작성일
2024-11-2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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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싱글벙글 지도로 보는 동아시아 역사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중국 최초의 왕조 하(夏)나라 현대 중국에서는 실존했다고 우기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역사가 아닌 신화의 영역임. 상나라도 마찬가지로 그냥 신화인줄 알았는데 20세기에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존재가 입증되었음. 공식적인 중국의 첫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짐. 이후 주나라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동양의 문화체계를 확립했음. <사기>에 의하면 요동으로 주나라가 와서 고조선을 통치했다고 하는데 고고학적 근거가 없어서 한국 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음. 주나라 멸망 이후 그 유명한 춘추 전국시대. 고조선은 요동을 넘어 만주일대와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점령하며 분열중인 중국과 대등한 강대국으로 입지를 넓힘.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나라가 등장. 시황제는 요동을 공격하며 동양의 패권을 다지고 만리장성을 쌓아 북방 흉노의 침략에 대비함. 진나라는 얼마 못가 시황제의 폭정으로 멸망하고 초한전쟁에서 승리한 유방의 한나라가 재통일. 현재 중국인들의 중화사상과 한족이라는 개념을 알린 나라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이기도 함.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에 가장 어울리는 나라. 황제가 된 유방은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을줄 알았지만 흉노와 붙었다가 영혼까지 털림.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 북부를 점령해 한4군을 설치함. 또한 흉노 정벌에도 성공하고 베트남까지 정복, 서쪽으로 실크로드까지 개척하며 최전성기를 보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초창기 모습. 부산 위치에 있는 사로국이 나중에 신라가 됨. 평양 지역은 여전히 낙랑군 소속으로 중국땅임. 한나라가 멸망하고 조조 유비 손권이 다투던 그 유명한 삼국지 시대. 이때 위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해서 수도까지 털어먹지만 완전히 멸망시키진 못함. 사마염의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며 삼국시대 종결. 낙랑은 아직도 중국 땅임. 중국이 다시 분열되어 혼란한 시대. 이때부터 힘을 키운 고구려가 313년 낙랑을 정복하면서 한반도에서 중국 세력이 사라지게 됨. 근초고왕이 이끄는 백제의 최전성기. 그 고구려마저 백제에게 삼국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패퇴하며 동진, 일본과 활발한 교역을 하며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함. 광개토대왕 등장이후 고구려의 영토 확장 모습. 한반도는 충청도 인근까지 지배, 북쪽으로는 만주를 비롯한 요동지방 까지 영토를 넓히며 위-진 이후에 남북조 시대에 들어간 중국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국력을 가진 동북아의 패권국으로 위세를 떨침. 참고로 중국을 유린하던 북방민족들은 전부 고구려에게 기가 눌려 조공을 바치는 등 이후 거란족과 여진족, 몽골족이 날뛰게 된 이유가 이들을 무력으로 통제하던 고구려가 사라졌기 때문. 장수왕이 고려로 국명을 바꾼 시대. 다만 후세 역사가들은 왕건의 고려 왕조와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라고 함. 지증왕이 신라라는 국명을 확정한 것도 이 무렵. 신라의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 진흥황 시절. 가야는 이와중에 멸망하지 않았는데 엄연히 보면 4국시대로 말하는게 맞지만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아니기에 사실상 무시되는 국가. 300년간 분열기를 끝낸 수나라의 중국 통일. 그러나 고구려 정복에 모든 국력을 꼬라박은 수나라는 거짓말처럼 패하게 되고… 당나라가 다시 재통일. 어찌보면 진한 교체기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는게 수당 교체기인듯. 서역까지 정복한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수나라가 국력을 탕진했는데도 정벌하지 못한 고구려까지 정복했으나 당나라 역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국력 소비가 막대했기에 신라에게 개쳐맞고 쫓겨나며 신라가 주장하는 영토까지는 인정하고 옛고구려의 영토까지만으로 만족하고 물러남. 사실상 신라는 삼국통일이 아니라 이국통일이라고 해야할 판. 고구려의 영토는 백제와 신라를 합한 것 보다 컸기 때문. 고구려 유민 대조영은 고구려의 의지를 이어받아 발해를 건국. 당나라의 거센 방해에도 불구하고 만주와 연해주를 아우르며 고구려 이상의 영토를 확보하는 등 신라와 함께 공존하며 당나라의 황제에게 해동성국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통일신라의 전성기가 끝나고 분열 시작. 견훤은 백제, 궁예는 고려를 건국했는데, 예전 삼국시대에 존재했던 나라들의 이름을 사용함. 후대의 역사가들은 구분하기 쉽게 후백제, 후고구려라고 부름. 중국도 당나라가 멸망하고 분열기가 시작되며 거란족의 요나라가 잘나가는데, 무려 발해까지 먹어버림. 왕건의 고려가 한반도를 재통일함. 신라의 통일과 이질적인 점은 자주적인 통일이라는 것과, 고구려라는 나라의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것. 이후 고려는 요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송나라가 SOS를 보내자 친선관계를 맺음. 그러자 요나라가 고려에게 시비를 걸고 서희는 이때 말빨만으로 외교 담판을 통해 강동6주를 얻어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의 절반을 차지함. 그 기쁨도 잠시 칭기스칸의 몽골 부족 통일. 순식간에 금나라를 갈아버리고 고려를 복속시킨 뒤, 유럽과 아시아 일대를 정복해버림. 이때까지 버틴 남송이 대단할 정도. 고려의 끈질긴 저항과 먹히지 않겠다는 의지로 결국 몽골은 고려를 간접통치 하는 선에서 남겨두고 중국을 통일시키며 몽골제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거듭남. 핍박받던 한족의 명나라가 몽골을 몰아내고 중원을 되찾음. 이때 명나라는 고려에게 시비를 걸며 조공을 요구하는데 최영이 요동 정벌을 명령하지만…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오히려 쿠데타를 일으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 명나라에게 사대주의 정책을 펼치며 명나라의 그늘 아래서 보호받게 됨. 세종 시기에 여진족을 정벌하고 압록강-두만강 국경을 확정. 현재 남북한을 아우른 한반도의 영토는 이시기에 형성됨. 잠자코 있던 일본은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킴. 명은 임진왜란때 조선을 돕느라 국력 소모가 막대했기에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를 막을 수 없었고, 조선은 명청 교체기에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킨다는 병신같은 선택을 저지르고 맘. 청나라는 명나라 대부분의 지역을 정복한 뒤에 조선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켜 명나라를 섬기던 조선은 다시 청나라를 섬기게 됨. 지금의 중국 영토를 형성한 청나라의 최전성기. 이때 대영제국과 함께 세계 최강국을 다투던 러시아 제국과 마찰하기도 함. 세계 최초로 마약 거래 금지했다고 일으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 유럽열강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고 연해주 영토는 러시아가, 홍콩은 영국이 가져가게 됨. 이와중에 잠자코 있던 일본은 제국주의를 선포하며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시작함. 조선도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국제정세를 살피고 제국주의를 선언하는데 결국 근대화된 일본제국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연달아서 승리하고 미국과 영국 등의 열강들의 지원에 힘입어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에 성공. 청나라가 지배하던 베트남은 프랑스가 뜯어먹음. 망해가던 청나라는 결국 수천년동안 이어진 황제국을 포기하고 쑨원의 중화민국으로 대체됨. 이후에는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중일전쟁으로 중화민국을 침략하는 일본을 서양 열강들이 재재하자 눈깔이 돈 일본은 열강들의 식민지가 깔려있는 동남아에서 남방작전을 실시하고 영국과 미국을 해전에서 전부 격파하는 쾌거를 선보이며 인도차이나반도, 동남아, 조선, 중국 영토의 절반을 전부 차지함. 이제 대동아 공영권은 시간 문제인 것 처럼 보였으나… 결국 남방작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시간을 끌기 위한 작전이였던 진주만 공습이 미국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고, 미국이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자 추축국 독일 역시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전개, 일본은 열세한 국력으로도 기상천외한 작전을 통해 3년동안이나 발악하며 선전했으나, 원폭 2방 맞고 무조건 항복. 일본이 물러난 한반도는 북위 38도 선을 기준으로 당시 초강대국이던 소련이 북쪽을, 미국이 남쪽을 점령한다. 결국 조선-대한제국-일본제국 점령기 대한제국에서 1948년 남한과 북한은 따로따로 독립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한민국,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됨. 이와중에 중국 대륙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국공내전이 일어나는데 당시 중화민국은 일본제국과의 중일전쟁에 막대한 국력을 쏟아 부은 상태였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패배하여 타이완 섬으로 쫓겨남. 사실 미국은 인구가 많은 중국이 소련같은 공산국가가 되면 위험할 가능성에 대비해 중국에게 지원을 막대하게 하였으나, 그 지원 덕분에 공산화가 되버림. 625전쟁.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고 북한은 파죽지세로 부산 앞까지 진격하지만, 미국과 연합군이 참전해서 역전, 역으로 통일에 한걸음만 남았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리며 장기전으로 돌입함. 결국 1953년 휴전선을 그으며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일단락. 일본은 미군정이 물러나며 일본국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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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조종사가 권총쏘는 이야기
현대의 모든 군인들은 무장을 휴대하고 전투에 임하고 전투기 조종사라도 예외는 아님. 전투기는 그 자체로도 매우 강력한 무기체계지만 격추되면 알루미늄 관짝이 된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어서 이를 대비해 조종사들도 개인무장을 휴대함 조종사들이 본격적으로 총기를 휴대하기 시작한 것은 비행기가 전쟁에 본격적으로 투입된 1차 세계대전부터인데, 1머전 극초기에 비행기는 폭격이나 제공권 장악이 아니라 단순한 포병 관측과 정찰을 위해 투입되었기 때문에 권총의 휴대 여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음. 그냥 들고나가고 싶은 사람만 휴대하고 나가는 정도? 하지만 비행기의 임무가 단순 정찰에서 CAS같은 근접항공지원이나 폭격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곧 지상군에게 비행기란 존재는 반드시 격추시켜야 하는 중요목표가 되었고, 이 성가신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는 저격수와 함께 사살 1순위가 되었음. 따라서 각국은 소총이나 야포, 그리고 대공포를 이용해 상대방의 비행기를 격추시키려고 했음. 이에 따라 격추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거나-혹은 자살하기 위한 권총이 조종사의 필수품이 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조종사가 권총을 휴대하고 출격하기 시작했음. 조종사들이 휴대한 권총은 각국이 운용하던 제식 권총부터 조종사 개개인이 군에 입대하면서 가지고 온 사제 권총까지 다양했는데, 당장 조종사들이 입는 옷부터 통일되지 않았던 시기였어서 그럼. 사실 이당시의 권총은 생존용이라기보단 자살용에 가까웠음. 왜냐하면 1머전 초중기의 비행기는 너무나도 조약한 수준이라서 현대 기준에서 보면 모든 부분이 종이비행기 수준으로 형편없었음 방어력뿐 아니라 엔진 출력도 병신이라 전쟁 막바지인 1917년에야 100마력이 넘는 엔진을 장착한 비행기들이 등장했을 정도. 당시의 낙하산은 20kg가 넘었고, 조종사들은 20kg짜리 ‘짐덩이’ 대신 20kg어치의 탄약을 싣거나 기동성을 위해 낙하산을 내다버렸음 게다가 쌍팔년도를 아득히 뛰어넘는 ‘낭만의 시대’였던 특성상 낙하산을 가지고 비행하는 조종사는 비겁하거나 자신감이 없는 씹게이새끼로 여겨졌음.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의 높으신 분들이 ‘유능한 조종사는 낙하산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각국의 공군사령부는 조종사를 현재처럼 신경 쓰지 않았음. 아 물론 애초에 낙하산 자체를 조종사들한테 지급하지 않은 나라도 있었고 비겁하든 뭐든 조종사 살리는게 먼저라고 봤던 나라도 있었음 아무튼 간에 중요한건 당시의 항공기술은 매우 뒤떨어졌고, 이는 비행기의 생존성이 극히 떨어졌단걸 의미했음. 당시에 방염이란 개념이 존재할리가 없었기에 추락해서 찌그러진 비행기에 갇혀 산 채로 불타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으며, 그런 상황에 처한 조종사 중 많은 이들은 편리한 해결책을 위해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음.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1머전 종전 이후 항공기술력이 발전하며 조종사들의 복장과 항공기의 무장도 크게 달라졌음. 하지만 여전히 조종사를 포함한 군용기 승무원들의 개인무장은 권총 뿐이었음. 아 사실 권총 말고 다른걸 휴대하신 분들도 있었는데 일본제국의 비행기 조종사들은 권총과 함께 일본도도 패용했음 격추당한 뒤에 반자이돌격이라도 하려했던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종사의 개인무장이 권총으로 제한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조종사에게 지급되는 권총은 적지에서 마주친 적과의 교전용이라기보다는 야생에서의 생존수단, 즉 유사시 동물을 사냥하거나, 적 민간인을 위협해서 삥뜯는데 사용하라고 지급되는 측면이 강했기에 굳이 좁은 항공기 내부에 거추장스러운 볼트액션식 소총이나 기관단총을 쑤셔박을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맞닥뜨렸던 전장은 2차 세계대전이었고, 그나마 ‘신사적이었던’ 서부전선이 아닌, 독일과 소련이 맞붙었던 동부전선이나 야만 그자체였던 태평양 전선에서는 적진에 낙하한 조종사를 잔인하게 사살하거나, 포로로 붙잡은 후에 고문하고 살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음. 이렇게 되자, 조종사들은 동물들 사냥하라고 지급된 권총으로 최후의 교전을 벌이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몇몇은 이렇게 M1911을 전자동으로 개조해서 들고다니기도 했음 하지만 권총을 쏴본 군붕이들이라면 알겠지만 권총은 더럽게 안맞고 사정거리도 너무 짧으며 화력도 약함. 따라서 각국은 조종사만을 위한 생존용 총기 (Survival Rifle)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게 나치 독일의 M30 삼렬총과 미국의 M-4 서바이벌 라이플, 그리고 M-6 ASW임 우선 M30 삼렬총의 경우, 사냥광이었던 괴링의 입김 때문에 독일 공군에 채택되었음. 이렇게 알루미늄 상자에 분해된 채로 비행기 내에 보관되어 있었고 주로 북아프리카 전선의 독일군 조종사들에게 지급되었음. 여기에는 청소 키트, 12게이지 슬러그탄 20발과 12게이지 버드샷 20발, 그리고 9.3x74mmR 소프트 포인트 소총탄 20발이 동봉되어 있었는데, 소프트 포인트 탄환이 지급된 이유는 조종사가 사람을 향해 총을 쏘면 당시 국제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정규군에 제대로 된 보급을 하기도 빠듯한 독일이 이런 고급 사냥총을 모든 항공기에 탑재하기에는 무리가 컸으며, 작동 구조가 매우 복잡한데다 나치 독일의 난잡한 생산체계 덕분에 단가가 매우 비싸졌음. 따라서 이 독특한 삼렬총은 1941년부터 1942년까지 단 2,456정만이 생산되었음. 생산된 총의 대부분은 공군 장교들이 사냥용으로 쓰거나, 사냥 매니아였던 헤르만 괴링이 자신과 함께 사냥을 즐기러 찾아온 인사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사용했다고 함… 다음으로 M-4 서바이벌 라이플은 제 2차 세계대전중 개발이 시작되어 1949년부터 미 공군에 납품되었던 22구경 볼트액션 소총이었음. 주 목적은 적과의 교전이 아닌 야생에서 동물을 사냥하거나 개인 호신용으로 쓰기 위한 용도였기에 상대적으로 저위력이고 반동도 약한 22.lr탄을 사용했고, 비용 절감을 위해서 M265 22구경 사냥용 볼트액션 소총을 개조, 접철식 개머리판을 장착하고 무게절감을 위해서 목재 부품을 모두 제거했음. 따라서 소총치고는 가벼운 1.8kg의 무게를 가지게 되었음 성능에 만족한 미군은 1950년까지 약 29,000정의 M-4 소총을 생산해서 배치했음 M4 서바이벌 라이플은 분명히 좋은 무기였지만 몇 가지 단점이 드러났음. 우선, 22.lr의 성능이 호신용이 아닌 사냥용으로써는 생각보다 그닥이라는 불만이 있었고, 또 총기 자체의 내구도가 너무 약했음. 따라서 1950년, 미 공군은 Ithaca Gun Company에 새로운 조종사용 소총 제작을 요구했음. T39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시작된 이 소총은 M-6 Aircrew Survival Weapon이라는 이름으로 미군에 납품됨. 접히는 개머리판에는 9발의 22구경 탄환과 4발의 .410 산탄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조종사는 발사핀 선택기를 사용하여 총탄을 발사할 총열을 선택해 발사할 수 있었다고함. 또한 M-6은 주로 B-52, B-1폭격기 승무원들에게 보급되었는데, 이들은 냉전 기간 동안 북극과 알레스카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방아쇠는 장갑을 착용하고도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되었음. 최대 사거리는 22구경 호넷탄을 사용할 경우 100m, .410 bore의 산탄을 사용할 경우 25m였음. 채택한 지 몇 년 후, 미국 조종사들은 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M-6 ASW를 실제로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임. 베트남군은 충분히 강했고, 결과적으로 미 공군은 큰 손실을 입었음. 조종사들은 때때로 낙하산을 타고 도망쳐야만 했고, 파라레스큐가 그들을 구출하거나-혹은 베트남군에게 붙잡힐때까지 그들 중 일부는 이 ‘서바이벌 라이플’을 사용해야만 했음 미군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M-6 ASW는 훌륭한 총기와는 거리가 멀었음. .410산탄은 실제로 다양한 사냥감을 사냥하는 데 편리한 수단이었고, 곤경에 처한 조종사는 신선한 고기를 요리할 수 있었으나 베트남에서의 주요 위협은 굶주림과는 거리가 멀었다는게 문제였음. 조종사는 적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었고, 적과의 대치 상황에서 M-6은 거의 쓸모가 없었음. 여분의 탄약 없이는 겨우 몇 발만 쏠 수 있었으며, 베트콩과의 교전에서 .22구경의 위력은 크게 부족했음. 결국 70년대에 이 총은 민간에 불하되거나 폐기되었고, 의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함. 이후에도 XB-70을 위해 개발되다 사업 자체가 망하고 M-6을 대체하지 못한채로 시제품 12정만 생산된 아말라이트 AR-5라든가 AR-5를 개량한 AR-7(이건 항공기 조종사용보단 민수용과 특수부대용으로 더 많이 팔렸음) 등이 등장했지만 정작 미군은 도입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공군이 도입해서 써먹었다고 함. 하지만 ‘조종사용 생존 총기’라는 마이너한 총기 특성상 모든 파일럿들에게 이러한 총기가 보급되지는 않았고, 대다수의 조종사들은 그냥 권총을 들고 작전에 나갔음. 아래는 관련 조종사들의 증언임. ….(전략)….적대국가(여기서는 베트남)의 영토를 비행할 때는 그랬습니다. 해군은 저에게 스넙노즈 .38(길이가 3인치 미만인, 휴대하기 간편한 리볼버)또는 45구경 M1911을 지급받을지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니면 원한다면 다른 권총을 사서 휴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친구이자 동료가 9mm 자동권총을 직접 구매했습니다. (A-1 스카이레이더에 톱질한 산탄총을 휴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38을 선택했습니다. 여러 개의 AK-47이 저를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체포에 대비해 최후의 저항을 하기 위해 권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직 미 해군 조종사, 베트남전 참전용사 홀스터에 넣은 .38 리볼버는 비행할 때마다 확인하고 복귀할 때 반납했습니다. 저는 항상 신호탄을 장전했는데, 주된 용도가 신호 보내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의 영토에서 하고 싶은 마지막 일은 권총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전직 F-111 조종사 공군 조종사에게는 5발이 든 38구경 리볼버가 지급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똑똑하다면 AK-47과 맞서지 않기 위해서 즉시 내다버렸을 겁니다. -전직 F-4/KC-135 조종사 알래스카에서 비행할 때는 권총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22구경이었 는데, 토끼와 뇌조를 잡아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베트남에 있을 때, 저는 38 스페셜 리볼버를 휴대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지급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웃으며 아시아에서 육탄전을 하고싶진 않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무기라기보다는 장신구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를 더 안정되게 만들었습니다. -전직 F-86, F-100, F106 조종사, 한국전쟁, 베트남전 참전용사 예전에는" S&W .38구경 리볼버를 휴대했습니다. 조끼에 맞는 다른 물건도 휴대할 수 있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저는 알레스카에서 복무했습니다). 저는 보급계원한테 제 9mm 브라우닝 하이파워용 홀스터를 제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6발보다 14발을 쏘는 것이 더 나았고, 6발을 개별적으로 장전하는 것보다 탄창에 장전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입니다). 비행/탈출중에 스스로를 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총은 장전하지 않고 총알은 G-Suit의 주머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저는 그 무기를 어떤 종류의 자기 방어용으로도 고려한 적이 없고, 오히려 사출 후 하루나 이틀 동안 밖에 있어야 할 경우 먹을 작은 동물을 쏘는 용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다지 웃기지 않는 농담은 북극곰을 만났을 때를 대비해 마지막 한 방은 자살용으로 놔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극곰은 인간과 친하지 않으며, 권총으로 곰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전직 미 공군 조종사 저는 1970-71년 다낭에서 VMFA 115의 RIO(무장관제사) 였습니다. 우리는 S&W 38을 지급받았습니다. 우리는 어깨용 또는 벨트용 홀스터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깨용 홀스터를 선택했는데, G 슈트가 벨트 홀스터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별로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몇몇 이들은 조종석에 M16이나 소드오프 산탄총을 몰래 넣었습니다. 탈출시 어떻게 가져갈 계획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비행대의 한 조종사는 거대한 대검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그가 탈출하게 된다면 다리가 잘리거나 더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농담하곤 했습니다. -전직 미 해병항공대 장교, 베트남전 참전용사 베트남 출신은 아니지만, 원래 브루클린 출신인 매우 괴짜이지만 성 격 좋은 이스라엘 전투기 조종사를 알고 있는데, 그는 더 이상 전투기를 탈 수 없을 때까지 F-4 팬텀을 몰았고, 아랍 상공에서 격추될 경우를 대비해 항상 맞춤형 진주 손잡이가 달린 2인치 콜트 파이썬 357 매그넘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전직 미 공군 정비사. 저는 베트남에서 총을 휴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모든 생존 키트를 대기실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고 모두 반환할 수 있었습니다. 총을 잃어버리면 FBI 수사를 받아야 하므로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투기 조종사와 다른 사람들은 종종 권총을 휴대합니다. (공군은 짧은 M4 카빈총을 사출 좌석에 쑤셔넣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막의 폭풍 동안 해군항공대의 두 친구는 개인용 개틀을 가지고 갔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걱정하는 친구나 친척이 총을 사거나 선물로 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명은 새 9mm 베레타를 선물받았고, .380 리볼버를 선물받은 이도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 많은 항공 승무원은 수류탄을 포함한 다양한 무기를 휴대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분의 무게를 여분의 생존용 식량이나 무전기 배터리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베트남 민병대나 북베트남군과의 총격전은 패배로 끝났지만 한 RA-5C 조종사는 .25 hideout을 꺼내 헬기가 들어오는 동안 자신을 잡았다고 생각한 두 명의 NVA를 쏘았고, 그는 구출되었습니다. -전직 미 해군항공대 장교 저는 1970년 첫 임무로 태국에서 B-52를 조종했고, USAF의 제식 권총인 .38구경 S&W 리볼버를 받았습니다. 100m에서 6번 중 6번은 표적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저는 육군 예비역 동료들에게 제 첫 사격이 M1 Garand였다고 놀리곤 했습니다. 그들은 믿기 어려워했는데, 육군이 최소 1950년대 중반에 이 무기를 없앴기 때문입니다. 제가 1965년에 공군사관학교에서 훈련받을때까지 공군은 이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공군사관학교에 가기 전에, 저는 고등학교 때 권총으로 유타와 네바다에서 토끼를 사냥하곤 했는데, .357매그넘 리볼버와 .44구경 리볼버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38구경 리볼버를 다루는 것은 저에게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전투 임무중에 저는 USAF에서 보급한 .38구경 S&W 리볼버를 비공식적으로 테스트했고 근거리에서 텔레비전 화면과 같은 얇은 표적을 관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서 USAF가 여전히 사용 중인 오래되고 약한 리볼버를 보완하기 위해 .38의 작약량을 낮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군이 알루미늄 실린더가 달린 .38 초경량 “에어크루” 리볼버를 1,000개 이상 구매했기 때문에 이 탄약 [약장탄을 말하는듯?]을 구매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리볼버는 표준 .38 스페셜 탄약을 사용하면 폭발하는 성가신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쉽게 두개골이나 뼈에 튕겨져 화가 난 채로 피흘리는 적을 남겼습니다. 첫 번째 파병 동안 B-52에 있을 때는 약한 .38이 괜찮았는데, 대부분 적 지대공 미사일의 사거리를 넘어서 날았고 격추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B-52가 홍강 계곡과 하노이/하이퐁 지역으로 이동한 후, 지대공 미사일과 MiG에 큰 손실을 입었지만, 그것은 2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파병을 준비하기 위해 더 나은 총을 가지고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에는 B-52가 아닌 팬텀이었습니다. 저는 약 2개월 동안 비행기와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은 부대에 갔습니다. (1972년 부활절 공세 직후, 미 공군이 다시 북쪽으로 진군했을 때). 그래서 호신용 무기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저는 .44 Automag 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44구경 자동권총은 F-4용 G-Suit와 함께 착용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단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상자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저는 9mm 브라우닝 하이파워를 가지고 다낭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항상 권총을 편안하게 사용했고 항상 100m 근처에서 맞닥뜨린 적을 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비행한 세 가지 다른 유형의 지역에 대한 철학/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베트남의 홍강 계곡과 같은 거주 지역에서 격추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입니다) 논에서 저를 구출하러 오는 민병대와 북베트남 군인들에게 항복해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도망치거나 숨을 수 없다면 그게 해야 할 일이었고,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살아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심하게 구타당하긴 하겠지만-일단 살아는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라오스의 호치민 루트에서 격추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북베트남 군인들이 그 지역을 통제했으며, 평화 협정에 사용할 “포로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저는 하노이의 감옥으로 보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치민 루트 밖에서 라오스에서 격추되었다면, 그것은 더 미묘했습니다. 주된 목표는 구조대가 헬리콥터와 A-1 또는 A-7로 나를 발견할 때까지 숨는 것이었습니다. 나쁜 놈들에게 발견되면, 총을 쏘고 도망가서, 당신과 그들 사이에 최대한 거리를 둔 다음, 다시 숨어들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100m 밖으로 따돌리고 엄폐할 수 있다면, 저는 대다수가 AK로 그 사정거리에서 저를 맞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저는 “비교적” 안전했습니다. 캄보디아—잊으세요. 우리는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또는 아무 이유 없이 자국민을 학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크메르 루즈의 손에 사라진 모든 서양인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 선택은 숨는 것이었지만, 불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총을 쏴댈 생각이었습니다. 남베트남은 라오스와 비슷했습니다. 대부분의 적의 통제 지역은 NVA(북베트남군)가 운영했습니다(베트콩 게릴라와는 대조적으로, 일반적으로 그들의 지역에는 포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서 잡힐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상황은 상황에 따라 달랐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모든 옵션에 대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저는 제 9mm 하이파워에 탄창 1개를 넣고 베트남 전역에서 150회 이상의 임무를 수행했고, 착용한 GI 웹 벨트 앞쪽에 여분의 탄창 6개를 장착했습니다. 위험한 임무에 투입될 경우, 추적탄이나 플레어탄을 섞어서 약 60발이 든 .38을 장착했습니다. 38구경 탄약은 무료로 제공되었기 때문에 연습하고 휴대할 수 있는 탄약이 많았지만, 9mm는 구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저는 또한 CIA 요원을 통해서 9mm ‘Swedish K’ 기관단총 (칼 구스타프 M/45) 2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낭에서 자주 공격을 받았고, 라오스 국경에 가까운 태국 북부의 기지에서도 두 번 더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보호를 위해 “후치 건”(무슨 총을 말하는지 모르겠음)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종석에 M/45 기관단총을 한두 번 실었지만 .44 AutoMag처럼 항상 방해가 되었습니다. 지휘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무전망에서 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오스에서 비행하는 FAC(전선통제관)인 USAF 소령이 추락했고 Pathet Lao(라오스의 좌파-친베트남 무장단체)가 그를 쫓아와 총을 쏘았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그를 살아서 데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1시간 이상 적과 싸웠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에게 그가 입은 모든 상처와 그를 사냥하던 소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는데 성공했는지를 보고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파라레스큐를 보내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그는 이미 몇 발을 맞은 상태였다고 했고, 다음날 무전으로 그가 죽었음이 확인되었으며, 사령관은 그를 살려내려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책을 들었습니다. 한가지 기괴한 이야기는 Pathet Lao에 의해 포로로 잡혀서 파리 협정 당시 살아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USAF와 NAF 승무원(350명 이상—다른 이야기입니다)은 결국 단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소령은 CAR-15(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짧은 M-16)와 일종의 반자동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던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태국 북부에 있는 제 F-4 비행대의 다른 이들은 .45구경 M1911과 .357 리볼버를 가지고 다녔고, 와이오밍 출신의 친구 한 명은 7인치 총열을 가진 Colt .45 싱글액션 리볼버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제가 본 가장 특이하고 부러웠던 총은 베트남에 가기 전에 만났던 한 지휘관이 가지고 다닌 것인데, 바로 일체형 소음기가 장착된 .22 Ruger 반자동 권총이었습니다. 그가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받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중략)…….. 테러 지역을 비행하는 모든 항공 승무원은 조종석에 가장 크고 최고의 무기를 휴대하고 사용할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현재 우리의 적들은 제네바 협약을 존중하지 않으며 체포되는 일은 드뭅니다. 체포되면 다음에 일어날 일은 총격을 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 것입니다. -전직 B-52, F-4 조종사, 걸프전-베트남전 참전용사 보면 알겠지만 거의 모든 조종사들이 단순하게 권총만 휴대하고 다녔단걸 알 수 있음. 이후에도 대다수의 조종사들은 특수한 서바이벌 라이플보단 그냥 권총을 들고 작전에 나갔던것 같음. 하지만 2010년대에 상황이 다시 변하게 되는데 이새끼들 때문임 전세계가 위아더월드로 ISIS를 공습하는 와중에 격추된 조종사가 제대로 된 포로대우를 받을리가 없었고 이는 곧 붙잡힌 요르단군 조종사가 끔찍하게 화형당하며 현실이 됨 이에 기겁한 네덜란드 공군은 공습에 참여하는 자국군 조종사들한테 MP9 기관단총을 홀스터에 넣어 휴대하게끔 했고 시리아 반군과 ISIS에게 자국군 조종사가 맞아죽는걸 본 러시아군도 조종사에게 20발짜리 스테츠킨 기관권총과 다량의 탄약을 휴대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AK-74S같은 기관단총을 쥐어줬음. 근데 걍 권총 하나만 심플하게 휴대하는 경우도 있는거 봐선 여기도 조종사마다 케바케인듯 미 공군의 경우에는 3점사형 M-4에 착탈식 총열, 접이식 권총손잡이 장착 등의 개량을 거친 GAU-5 ASDW (Aircrew Self Defense Weapon) 를 2018년부터 도입했는데, ACES II 사출좌석 내부 공간에 이렇게 접어서 수납한다고 하며 현재까지 약 3천정 정도가 A-10, B-1, B-2, B-52, F-15C/D/E, F-16, F22 파일럿들한테 지급되었다고 함. 참고로 F-35는 US16E라는 새로운 사출좌석을 장착해서 GAU-5의 수납이 불가능하기에 권총을 지급한다고 여담으로 헬리콥터 조종사들의 경우 전투기보단 상대적으로 공간이 넉넉하고 추락했을때 적 보병과 맞닥뜨리기 쉬웠던 탓에 XM177같은 카빈을 가지고 타거나 아예 M-16같은 소총을 휴대하기도 했으며 아니면 그냥 권총만 가지고 다니기도 했음. 러시아군의 경우도 AKS-74U같은 기관단총을 휴대하거나 현재도 미국이나 영국의 헬기 조종사들은 M-4나 SA-80을 조종석 옆에 부착해놓음. 한국 공군과 육항대의 경우에는 K-5 권총과 S&W 38구경 리볼버를 조종사 개인무장으로 지급하고 있음.
하메스작성일
2024-11-1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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