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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26년 자서전 영화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 무료 공개 중
https://standardebooks.org/ebooks/t-e-lawrence/seven-pillars-of-wisdom https://www.youtube.com/@MovieCon_Korea/search?query=%EC%95%84%EB%9D%BC%EB%B9%84%EC%95%84%EC%9D%98%EB%A1%9C%EB%9E%9C%EC%8A%A4 * 스포일러가 우려되시는 분들은 위의 링크를 통해서도 자서전 및 영화판을 보실 수 있으니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T. E. 로런스'로도 알려진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Thomas Edward Lawrence, 1888~1935)는 자서전에 따르면 영국인이지만 아랍에 애정을 느끼고, 여성과 교제 기록은 없는데 이니셜을 이용해 특정 대상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시를 자서전에 넣는 등(이로 인해 학계에선 동성애자로 분석하기도) 복합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자 1916년 '대아랍 봉기'(표기에 따라선 '아랍 전쟁', '아랍 반란')가 승리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공헌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1926년에는 자서전이자 회고록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을 발표하는 등 작가로서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이 자서전은 훗날 각색해 영화화되면서, 공교롭게도 숫자 2와 6만 바뀐 1962년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제목의 영화로 개봉해 당시 대성공을 거둔 한편으로, 자서전이란 형식의 한계 상 다원주의 및 교차검증이 가능해진 이후로는 해당 자서전 및 이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판 역시 미화, 과장, 우월주의, 사실과 다른 왜곡 문제 등이 논의되기도 했습니다.(웹 상에선 왜곡 문제가 발생한 김두한 자서전 및 이를 원작으로 삼은 '야인시대' 역시 실제 역사와 큰 차이가 있던 사례와 비교하는 등 다소 거친 비유도 존재) 이와 관련해선 아래 기사들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열다섯 피를 흔든 결단의 밤은 어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4511 culture film - 우리 마음 속의 영원한 ‘아라비아의 로렌스’ https://economist. co.kr/article/view/ecn201312230018 데이비드 프롬킨, 『현대 중동의 탄생』. http://feliview.com/modern-hist/nation-state/davidfromkin-apeacetoendallpeace/ [백병훈 칼럼] 세기의 명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감춰진 진실 http://www.financial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60 아래 내용은 Yes24에서 인용한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 작품 소개입니다. 20세기 초반 서구 제국주의와 아랍 민족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대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T. E. 로렌스의 자전적 기록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대중에게 알려진 로렌스의 역작 『지혜의 일곱 기둥』은 영어권에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필적하는 대작으로 손꼽히며, 20세기 최고의 전쟁 문학이자 자서전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이 작품은 원서 8백여 쪽에 달하는 분량의 대작으로, 로렌스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함께 실어 로렌스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편집했다. 또한 로렌스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소개를 덧붙여 로렌스의 행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세속적 가치와 물질적 이익만을 좇는 현대 사회에서 사막의 모래폭풍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로렌스의 생애를 담고 있는 이 저작은 진정한 명예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리더들이라면 반드시 읽고 음미해야만 하는 고전이다. 역사와 문학이 만나는 현대의 고전,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자화상“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위험하다.그런 사람은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의 꿈을 향해 행동한다.그렇다. 나는 낮에 꿈을 꾸었다."『지혜의 일곱 기둥』은 1935년에 간행된 Seven Pillars of Wisdom의 국내 최초 완역으로, T. E. 로렌스가 아랍 반란 전쟁에 참여했던 경험을 개인 기록을 토대로 1919년 봄에 집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해 겨울 원고를 분실하고, 자신의 기억과 당시의 노트에 의존하여 1921년부터 다시 쓴 책이다. 이 작품은 1922년 자비 출판으로 8부가 출간되었고, 1926년에 공식적으로 출간되었다. 번역 판본으로 사용한 1935년 판은, 로렌스 자신이 1926년 판을 수정ㆍ보완한 것이다. '지혜의 일곱 기둥'이라는 제목은 로렌스가 구약 성서의 잠언 9장 1절("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을 인용한 것으로, 아랍 지역의 일곱 도시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의 결과를 담은 원고에 붙이려던 표제를 사용한 것이다.『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로렌스가 활동했던 역사적 무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분할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 영국 정부는 터키에 대한 아랍인들의 반란을 이용하여, 적대국이었던 독일의 동맹국인 터키를 격퇴할 수 있으리라는 속셈에서 아랍 반란을 지원한다. 당시 터키에 대항한 아랍 반란을 주도했던 인물은 메카의 후세인 왕이었으나, 이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지도자는 그의 셋째 아들 파이살이었다. 로렌스는 파이살과 함께 부족 간 적대로 흩어진 아랍 부족민들을 민족주의적 정신 속에 하나로 규합하고, 2년 만에 다마스쿠스 해방이라는 업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1918년 파리 평화회의에서 아랍 자치 정부 수립에 대한 논의는 안건에 오르지도 못했고, 이러한 영국 정부의 약속은 결국 거짓으로 드러난다. 로렌스는 이 전쟁이 “아라비아에서 벌어진, 아랍인의 목적을 위해, 아랍인들이 주도하고 수행한 아랍 전쟁”이라는 확신 속에서 역사의 흐름을 주도했으나, 끝내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었다.열강의 치열한 이해관계와 힘없이 분열된 민족들의 고통 사이에서 고민했던 로렌스 역시 자신의 역할의 역사적 한계와 이율배반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로렌스는 이러한 한계 속에서 자신의 행위가 ‘헛된 희망’과 ‘실패’로 귀결될지라도 아랍인들이 최소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자유를 향한 내적 신념 속에서 행했다.1권에서는 로렌스가 카이로에서 출발하여 아라비아 반도의 항구 도시 지다에 도착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후세인 왕의 셋째 아들인 파이살을 만나기까지의 진로와 이후 메디나 근방의 철도를 장악하고 터키군의 물자 수송로를 차단해 나가는 북방 원정의 과정을 담고 있다. 2권에서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아부 타이족이 파이살과 로렌스 진영에 합류하여 주요 항구이자 요새인 아카바로 진격하는 과정과 치열한 전투를 그리고 있다. 3권에서는 이 저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사해 전투로부터 시작하여, 전쟁의 종착지였던 다마스쿠스로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고원지대의 혹독한 날씨와 엄혹한 지형 속에서 행했던 행군을 그려낸 3권의 사해 전투 기록은 이 저작에서 인간 한계의 극단에 대한 예리한 묘사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영어권 문단에서 이 저작에 멜빌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이 지닌 서사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권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대장정은 결국 다마스쿠스에 입성하여 아랍 독립을 완수하고 아랍의 자치 정부 수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끝이 난다. 로렌스는 비정한 살육의 현장에서 터키군 포로를 시켜 전사자들을 매장하고, 이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이살에게 모든 권한을 넘긴 뒤 아라비아를 떠난다.문학적 형상과 철학적 사색에 담아낸 아랍의 격동기 근대사“우리는 원하는 곳 어디에나 자유롭게 스며드는 안개가 되어야 한다.우리의 왕국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로렌스는 아랍 반란과 게릴라 전술을 지휘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혈맥이자 터키군의 물자 수송로인 헤자즈 철도를 파괴하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가로서의 면모는 로렌스의 진면모를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로렌스는 스스로를 ‘군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으며, 오직 내적 이상을 향해 나아갔을 뿐이었다. 그는 모든 권위와 “나는 행동가들이 느끼는 행복을 경멸했다.”고 할 만큼 영웅적인 신화를 거부했다. 헌시에서 로렌스는 “자유에 걸맞는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오직 그 집을 허물고 완성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실패를 부르짖으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싸우는 것“이 진정한 승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오직 ‘완성하지 않음’만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그의 고백은 거듭되는 자기반성 속에서 인간 의지의 극한에 이르고자 하는 초인적 정신을 드러낸다.정신의 힘과 의지에 대한 찬양, 거대한 역사적 흐름 안에서 몸부림쳤던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이 함께 녹아 있는 이 저작은 사색의 기록이자 여행기이자, 픽션을 뛰어넘는 문학적 정신을 지니고 있다. 근대적 교양인의 전형으로서 로렌스는 “평생토록 사람보다는 사물에, 사물보다는 관념에 더 이끌려왔다.”고 고백할 만큼 최고의 지성인이었으나, 동시에 극단적인 허무와 실존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구토』의 로캉탱을 떠올리게 할 만큼 모든 사물과 존재에 부여된 고정된 이름을 거부하고, 순수한 ‘사막’에서 세속의 범주를 모두 벗어버린 채 있는 그대로의 지각을 경험했다. 이 저작은 20세기 초반 서구 최고의 지성이 오해와 몰이해로 점철되어 있던 아랍 지역을, 바타유라면 ‘내적 체험’이라 했을 이러한 극단적 체험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기행문이자 사상서이다. 이러한 점에서 소로우의 『월든』이나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처럼 픽션을 뛰어넘는 감동과 사색의 계기를 선사한다.특히 특유의 예민한 감성과 역사의 소용돌이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고뇌하던 스물아홉의 청년 로렌스의 눈에 비친 아랍 지역은 놀랄 만큼 생생하다. 옥스퍼드 대학 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영박물관 산하 원정대의 일원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탐사했던 고고학자로서 로렌스는 셈족의 종교와 사막의 신앙, 아랍의 식문화 및 주거 풍습, 야만적인 터키군의 실상 등을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관찰기록 속에 그려낸 풍경 및 인물 묘사는 단순한 기술적 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 국가로 정립되기 이전 베두인족을 비롯한 아랍 부족민들의 20세기 초반의 실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지혜의 일곱 기둥』이 문학적 필치로 그려낸 거대한 화폭과도 같은 한 편의 역사서이자, 여행기로 읽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숭고한 자연과 인간의 초월적 의지에 대한 최고의 묘사“사막의 본질은 마치 묘지처럼이 세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길의 아들인 듯 고독하게 혼자서 움직이는 데 있다.”『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어떠한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숭고한 자연에 대한 묘사가 펼쳐진다. 광활한 사막, 혹독한 추위와 숙련된 낙타마저도 무릎을 꿇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던 엄혹한 자연에 대한 사실적인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로렌스는 인간을 압도하는 숭고한 자연의 질서 안에서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무거워진 우리의 세속적 짐을 부끄러워”하면서, “자유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자유의 허울을 벗을 수 있는 힘”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충만감은 “존재의 연쇄적 고리에 대한 망각과 영원한 안식”에 대한 치열한 기도로 이어진다. 특히 2권에서 펼쳐지는 와디 룸의 장엄한 풍경과 이에 대한 로렌스의 묘사는 사막 위의 한낱 모래먼지와 같은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면서 준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로렌스는 자신의 행위가 자유를 향한 거대한 의지에, 광막한 사막에 한낱 점으로 존재함을, 들뢰즈의 표현대로 “자신이 맡은 역할이 국부적이며, 부서지기 쉬운 그물 속에 놓여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일곱 기둥을 세운 집”, 로렌스가 자유를 대신하여 부른 그 집은 오직 완성하지 않음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는 집이었던 것이었다. 로렌스는 자기부정을 통한 초월의지를 내세웠던 낭만주의적 사유 속에서 오직 과정으로서만 도달할 수 있는 드높은 이상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로렌스에게는 극단적인 허무주의와 한 개인으로서의 실존적 고민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로렌스가 ‘아라비아의 무관 왕’이라는 세간의 이름 외에 현대의 서사시적 인물, 20세기의 햄릿이라 불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자신이 처한 모순과 역경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일곱 기둥』이 근본적으로 희비극의 정서를 지니는 이유이다. 이러한 점에서 로렌스를 전쟁의 영웅으로 신화화하는 태도나, 영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였다는 비판적 독서 모두 이 저작의 이중적인 면모를 사장시킨다. 이 자서전은 차라리 자신을 전쟁의 영웅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또 자신의 위선을 훗날 기억하게 될 아랍인들에게 조롱하는 문체로 쓴 거대한 보고서이다. 로렌스는 이러한 기묘한 보고서를 스스로 “전쟁의 규칙을 이용한 패러디”라 불렀다. 또한 로렌스에게 『지혜의 일곱 기둥』은 아랍인들과 스스로를 속였던 자신에 대한 속죄이자, 구원의 기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그려내지 못한 로렌스 자신의 문체를 읽어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인으로서 아랍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로렌스에게는 위선의 가면도, 그 뒤의 진정한 얼굴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아이러니를 구사하기보다는 어떤 수치의 흔적, 쓰고 다시 지우는 여러 겹의 문장을 쓴다. 그의 이 방대한 기록은 용해되고 분열된 여러 자아들 속에서 자신의 단 하나의 얼굴을 찾고자 하는 끝없는 여정이기도 한 것이다.아마도 끝내는 물처럼 모든 것을 극복할 것이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로 그들은 끊임없는 파도가 되어 육체의 해안에 스스로를 부딪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파도는 부서져 버리고 말았지만, 파도가 부딪힌 거대한 화강암은 조금도 닳아버리거나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인가는 걷잡을 수 없는 파도가 물질적인 세상이 자리 잡고 있던 그곳을 완전히 뒤덮어버릴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신은 그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본문 중에서서구 열강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 간의 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 현재에 이 저작은 그러한 갈등의 기원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윤리와 정의(justice)는 다르다. 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른 세속의 정의는 단 하나이지만, 윤리는 여럿이다. 그러한 윤리의 선험적이고도 절대적인 근거란 없다는 것, 정의의 주체는 민족일 수도, 국가일 수도 있으나, 윤리의 주체는 오직 개인일 수밖에 없으며, 그 개인을 정의(define)하기란 참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혜의 일곱 기둥』이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역사와 사회 앞에 개인은 나약할지 모르나, 한 개인의 윤리적 경험은 모든 세대와 해석을 뛰어넘어 스스로 살아남는다. 아래 내용은 교보문고에서 인용한 '스콧 앤더슨'의 저서 '아라비아의 로렌스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작품 소개입니다. 지난 백 년간 중동에 불어닥친 흉폭한 역사!한 줌의 모험가와 새파란 장교들이 판치고 다녔던 사막의 무대로렌스의 어두운 면과 심각한 결점을 세밀하게 재건하는 저자는현대 중동이 난장판이 되어가는 과정을 스펙터클하게 펼쳐낸다네 사내가 펼치는 20세기 최대의 첩보전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드리우기 전,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중동 사막에 네 사내가 등장한다. 한 줌도 안 되는 모험가와 새파란 장교들이 멋대로 쑤시고 다니며 은밀하고도 복잡한 게임을 펼치려 하고 있다. 비밀로 묻어둔 충성심, 일대일로 뒤엉킨 육박전은 각자 자국의 제국주의적 탐욕을 대표하며 비극적인 사막 전쟁으로 이어질 터이고, 이것은 오늘날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현대 중동의 탄생을 야기하게 된다.네 사내는 누구인가. 쿠르트 프뤼퍼는 이집트 카이로 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일하는 문약한 학자. 그는 영국을 향한 복수심의 칼날을 갈며 지하드에 불을 댕기는 비밀 임무를 맡았다. 훗날에는 중동지역에서 활동하는 독일 첩보 조직의 책임자가 된다.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인 서른일곱 살의 아론 아론손은 저명한 농학자이면서 열성적인 시온주의자. 길쭉하고 광대한 팔레스타인 땅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아 유대인 조국을 재건하겠다는 구상을 펼치려 한다. 이를 위해 영국의 힘을 등에 업고자 팔레스타인 한복판에서 첩보 조직을 꾸린다. 윌리엄 예일은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스탠더드오일 사의 하수인이다. 스탠더드오일 사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교활한 미국 기업으로, 세계대전의 비극을 지켜보면서 이 기회에 단단히 한몫 잡으려 한다. 예일을 중동 땅으로 파견한 것은 거대한 유전을 차지하려는 속셈으로, 그는 중동 전역을 통틀어 단 한 명뿐인 미국인 정보요원이다. 이들 세 인물과 함께 로렌스가 등장한다. 그는 중동이라는 원형 경기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영국인 첩보요원으로,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간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상황과 긴밀히 연결된다.네 사람은 자기 임무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아마추어들이지만 영악함과 용감함, 남을 배신하는 재주 따위의 특성으로 전쟁이 키운 열매를 거두어들이려 한다. 즉 유럽 열강이 계획한 각종 정책과 국경선을 전후에 현실로 만드는 장본인이 될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은 수백만 명의 주체가 발을 담근 대사건이었다. 세부 사건들은 당대에는 인과관계가 없는 우연의 연속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우연들이 뒤엉키면서 중대한 국면들을 형성하게 된다.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가장 낭만적인 인물로 일어섰다. 그리고 이 책은 어리석은 현대 중동이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가운데 처칠도 다른 누구도 아닌 로렌스를 중심 무대에 올린다. 국내에서는 로렌스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이 번역된 게 전부이고 이 책은 로렌스 개인을 다룬 책으로서는 처음 출간되는 것이다.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로렌스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양면적 평가 사이에 낀 그는 역동적인 역사를 만들기도 했지만, 다른 세 애송이와 더불어 지난 100년간 중동을 가장 비극적인 역사의 격전지로 만들어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서구 열강의 격전지, 중동의 비극정복, 탐험, 착취의 대상으로서 동양은 수천 년 동안 서양을 끌어당겼다. 중세에는 기독교 십자군이 300년 주기로 근동지역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1790년대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파라오가 되겠다는 환상을 품고 이집트를 침략했다. 1830년대에는 유럽 최고의 고고학자들이, 1870년대에는 서구의 석유 재벌과 투기를 일삼는 채굴자, 사기꾼 등이 카스피 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오스만 제국은 종교, 부족, 인종 면에서 다양한 구성 인자를 하나로 묶어놓은 모자이크였다. 이 제국은 한순간에 무시무시한 그림으로 둔갑할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공동체가 자기 보호를 위해 끼리끼리 뭉칠 경우 조상 대대로 묵혀온 반목과 의심과 질투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1850년대부터 오스만 제국은 서구 경쟁국들이 자신의 변두리를 야금야금 뜯어먹는데도 이들과 돌아가며 동맹을 체결하는 줄타기를 함으로써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오로지 한곳에 눈독을 들였는데, 바로 분열과 혼돈의 땅 오스만 제국이었다.러시아 차르는 콘스탄티노플을 낚으려고 200년 전부터 낚싯바늘을 드리우며 기다렸다. 그리하여 1870년대에 발칸에서 오스만 군대를 궤멸한 바 있다. 프랑스 역시 16세기 이래 오스만 제국 치하 시리아의 가톨릭 신도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특별한 지위를 누려왔다. 만약 제국이 붕괴하면 그 지역은 프랑스 땅이 될 터였다. 영국은 인도로 가는 육로를 제국주의 경쟁자들의 침식 작용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1882년 대영제국은 민족주의 움직임을 구실 삼아 이집트를 잡아채기도 했다. 1915년에 연합국을 구성한 이들 3국은 독실한 기독교국으로서 어쩌면 십자군의 역사를 해피엔딩으로 다시 쓸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한편 독일 역시 군사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오스만 제국과 무슬림의 영토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 5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은 눈치껏 뜯어먹던 행태에서 벗어나 게걸스럽게 달려들었고 오스만 제국은 “거대한 전리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특히 영국은 유럽 열강 가운데 해양 의존성이 가장 큰 국가로, 1870년대 이집트 수에즈 운하 건설을 배후에서 주도했으며, 운하를 독차지할 수만 있다면 오스만 제국과 지켜온 우호관계 따위는 내동댕이칠 준비가 돼 있었다. 마침내 영국은 속마음을 드러냈는데, 1882년 이집트를 침공한 것이다. 그 결과 수에즈 운하 서쪽 이집트 땅 전체가 영국 손안에 들어왔고, 오스만 군대는 운하 건너편 시나이 반도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작에 불과했다. 영국은 1906년 사소한 외교적 분쟁을 핑계로 시나이 반도까지 차지했다. 그리하여 이제 이집트와 시리아 서남부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리하는 넉넉한 완충지대까지 얻게 되었다. 즉 영국은 오스만의 가슴에 영원토록 변치 않을 적개심을 심게 된 것이다.더욱이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영국은 후세인-맥마흔 서한으로 아랍인들에게 거짓 독립을 약속했고,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뒤통수를 쳤다. 그리고 밸푸어 선언으로 시온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내주었다. 중동에 피바람을 일으키고 마침내 아랍인들과 로렌스를 좌절시킨 영국의 3중(속임수) 외교의 핵심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이었다.20세기 초까지 간신히 멸망을 피해왔던 오스만 제국은 1914년 막판으로 치닫던 끔찍한 전쟁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제 목숨을 재촉했다.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분열의 물꼬를 트고 말았다.로렌스 그리고 아랍의 좌절T. E. 로렌스(1888~1935)는 대단히 매혹적인 인생을 바람처럼 살다 간, 20세기 초 서구 역사의 스타다. 역사적 탐구 대상이든 대중적 호기심거리이든 로렌스만큼 인기를 누리는 이도 드문데, 한편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들의 위대한 수호자인가, 아니면 반유대주의 선동가인가? 아랍 독립에 힘쓴 깨우친 진보주의자인가, 아니면 가면을 쓴 제국주의자인가? 희대의 영웅, 사유하는 투쟁가, 제국주의의 하수인, 자기파멸적 몽상가와 같은 수식어로 역사는 그를 칭송과 조롱 사이에 놓고, 먹칠과 금칠을 번갈아 덧댄다.저자는 당시 서구 열강의 탐욕적 경쟁과 그에 따른 외교 및 첩보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로렌스의 정체를 살핀다. 옥스퍼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고고학자인 20대 초반의 로렌스는 중동 사막에 대한 열정과 지식을 지닌 터라 영국이 새로운 영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며 제국주의자로서의 기질을 발휘한 때에 영국 정보요원이 된다. 여느 서구인과 달리 로렌스는 중동에 정통했고, 오스만 제국의 시골 마을에서 제국이 무너지는 과정을 낱낱이 목격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첩보전 한가운데 섬으로써 고고학자로서의 경력에 종지부를 찍으며 1914년 9월 육군에 들어갔다.당시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파멸로 이끌고자 아랍 민족운동을 이용했다. 이런 움직임의 중심에 로렌스가 섰는데, 그는 1916년 6월 파이살 이븐 후세인을 내세워 아랍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1917년 7월 6일에는 홍해 끝부분 쪽 아카바를 장악했고, 1918년 10월에는 다마스쿠스(현재 시리아이 수도)를 점령했다. 이런 면모로 인해 그는 아랍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그러나 로렌스는 원래 군인 출신도 아니었을뿐더러 성격, 태도, 말투, 복장 등 모든 면에서 조직과는 어긋나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차디찬 눈빛을 지닌 그는 군 조직에서 자기와 다른 의견이 제시되면 나이와 계급에 관계없이 정면으로 맞서 하극상을 저지르고도 남았다. 또한 그는 영국과 아랍 세력 사이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즉 그는 영국의 정보요원이었지만, 어느 순간 모국의 군 조직을 흔들 만큼 치명적인 전략이나 정보를 내놓는가 하면, 아랍 반란을 이끄는 가운데 아랍인의 입장에 서서 사고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는 아라비아에서 활약하는 주요 인사들, 그들이 견지하는 주장의 요점, 그들의 경쟁자까지 꿰뚫고 있었던 반면, 그가 관찰한 바의 상당 부분은 특별한 내용이 거의 없고 권위 있는 분석이라기엔 겉핥기식에 지나지 않기도 했다. 그는 자기편에게 전보를 서둘러 보낼 때는 외교 의례를 밥 먹듯이 어겼고, 원치 않는 명령을 받으면 못 받은 것처럼 꾸며 사안을 무효화시켰다. 어쨌든 28세의 대위에 불과한 로렌스는 영국 정부 관료의 척후병 역할을 수행하면서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던 정부 관료의 세도를 꺾고, 영국의 아라비아 정책에 근본적인 물꼬를 텄다.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대단원을 향해 치달으면서 로렌스가 투쟁하고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아랍을 지키려는 소망은 영국과 프랑스 총리의 대담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영국은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가지려 했고, 프랑스는 시리아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려 했다. 종전 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호언장담했지만 종국엔 뒷거래, 앙갚음을 위한 협정, 독단적으로 그어버린 국경선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즉 파리평화회의에서 서구 열강들은 저마다 음모를 품고 오스만 제국이라는 짐승의 사체를 나누어 갖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이후에도 로렌스는 아랍의 희망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접지 않았다. 파리회의 내내 아랍 반란의 지도자 파이살의 조언자로 활동하면서 아랍인들이 사활을 걸고 싸운 그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협상 전략을 짰다. 영국 유력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펼치는가 하면, 아랍을 옹호하는 열정적인 칼럼을 수차례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렌스는 영국 정부가 보기에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다. 정부 관료들은 그를 가리켜 ‘악영향’ ‘시리아 문제로 프랑스와 갈등을 빚는 데 대한 책임’ 등을 들이밀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결국 로렌스는 아랍을 지켜내려는 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함과 동시에 평화를 상실하고 말았다.마크 사이크스, 20세기에 가장 큰 비극을 드리운 인물이 책에서 네 명의 주인공 외에도 모든 등장인물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워넣을 만큼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그중에서도 현대에 가장 큰 비극을 몰고 온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영국의 마크 사이크스 경이 될 것이다. 역사상 그처럼 부주의하게 수많은 비극을 야기한 인물은 없다.제1차 세계대전으로 정치인들이 득세하고 각국이 제 이익을 더 챙기려 하면서 속임수와 비잔틴식 술책이 판치는 곳에서 그는 술수의 대명사가 된다. 사이크스란 인물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고 증명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서, 또는 재미 삼아 상대방을 속이고 싶어하는 사기꾼의 전형적인 습성을 지녔다. 그런 까닭에 이 젊은 아마추어는 자신의 필요에 맞춰 사실을 곡해하거나 중요한 정보를 숨기거나 조작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했다.그런데 영국 정부는 이 젊은이에게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골치 아프면서 가장 중요한 숙제를 떠넘겼다. 그것은 바로 대영제국과 중동 우방들의 상충하는 영토적 요구를 정리하는 업무였다. 로렌스는 훗날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사이크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세상만사를 제멋대로 지껄이는데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편견, 지레짐작, 유사과학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했다. 진실의 일면에 도취한 나머지, 그것이 속한 상황에서 분리해낸 다음, 의미를 부풀리면서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빚어내는 식이었다.”그가 이뤄낸, 역사상 가장 이상하고도 파괴적이었던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1916년 1월 초, 회담이 열리고 처음 며칠 동안 영국과 프랑스의 중진급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수아 조르주피코는 미래 중동의 지도를 날림으로 끼워서 맞추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가 제국주의적 탐욕을 부린 탓에 영국 또한 경쟁의식이 불타올랐다. 그 결과, 프랑스가 시리아 전역을 직접 관리하게 되고 영국은 이라크를 모두 차지하는 반면, 진정한 아랍의 독립국은 아라비아 사막의 격오지로 대부분 밀려나고 말았다.어불성설로 들릴지 모르나, 미래 중동의 지도를 거의 완성한 1916년 1월 초, 이 중차대한 시점에 후세인-맥마흔 서한과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내용을 속속들이 꿰뚫고 아랍과 프랑스와 영국이 그 지역에서 이루려는 목표가 결국엔 충돌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사람, 마크 사이크스뿐이었다.중동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책1960년대까지 유럽 제국주의 시대가 황폐한 뒷모습을 남긴 채 막을 내리자, 중동에는 식민주의 열강이 지구 반대편에 저질러놓고 떠나버린 난장판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중대한 차이점이 있었다. 석유였다. 중동이 여타 제국주의 피해 지역과 달리 여태껏 지구상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으로 남아 있는 것은 석유 때문이다. 그런 탓에 서구 역시 스스로 야기한 중동의 혼란으로부터 아무리 발을 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지난 50년 동안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랍과 이스라엘이 네 차례나 전쟁을 벌였고, 레바논과 예멘은 각각 10년과 21년에 걸친 내전을 치렀다. 시리아와 이라크는 소수 인종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고,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가 40년 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극단주의 종교가 격동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네 차례 대규모 군사작전을 비롯해 수시로 개입에 나섰다. 아랍 민중의 절대다수는 최근까지도 튀니지부터 이라크에 걸친 광대한 땅에 포진한 수많은 독재 정권의 통치에 억눌려 시민권을 빼앗긴 채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이 모든 고통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에 내린 끔찍한 결정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 대단히 치명적인 씨앗을 심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전 세계 분쟁지역을 누벼온 언론인 스콧 앤더슨은 로렌스의 행적을 더 깊이 파고드는 작업이 더없이 절실한 시대라고 판단했다. 로렌스가 열정을 바친 대상이 바로 중동의 국경선 문제였기 때문이다.저자는 몇 년간 사료를 모으는 일에 집중한 뒤 이 책을 썼다. 그 결과 현대 중동의 형성 과정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유럽의 제국주의 책략이 초래한 파괴와 고통에 대해 단호하게 지적하고 날카롭게 묘사하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철저한 고증과 방대한 사료, 최근 기밀 해제된 자료까지 동원해서 큰 그림부터 세밀화까지 치밀하고도 힘 있게 펼쳐낸다.저자만의 독특한 관점도 몇 가지 확인할 수 있는데, 예컨대 로렌스가 경쟁국 프랑스에 맞서서 어느 정도는 조국의 이득을 고려했다는 식의 애국주의적 설명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 등이 그렇다.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통설에 이견을 제시하는 내용 중에는 로렌스가 터키군에 붙잡혀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데라 사건도 포함된다. 저자는 무엇보다 태생부터 유년기, 꿈 많은 옥스퍼드 재학 시절을 거쳐 전쟁 이후 피폐한 심리 상태와 불행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로렌스 개인의 인생 전반을 충실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아울러 첩보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판 Lawrence of Arabia (1962) 위에서 언급했듯 1926년 자서전을 원작으로 삼아 영화화한 작품이며 극장 개봉 당시 기준으로 이미 1950년대에 엇비슷한 제작비의 작품이 제작됐거나, 혹은 이 작품보다 더 제작비가 높은 작품도 볼 수 있는 정도의 제작비인 1500만 달러로 제작해 영국 및 미국 개봉 당시 평론적으로 극찬을 받아 아카데미 수상작이 됐고, 극장 매출만으로 제작비의 4배가 넘는 7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초대박 흥행 성공을 기록하고, 부가 매출 시장에서도 큰 수익을 올렸으며,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무비콘에서 한국어 자막과 함께 무료 공개 중입니다.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한 영화판 작품 소개이며, 당시 이 작품 관련 소개를 한 잡지 '영화 TV'도 PDF로 공개 중이니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영국 정보국 소속 장교 로렌스(피터 오툴)는 1차 대전 중 중동지역의 전투에서 아랍 부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아랍 지역으로 파견된다. 그런데 그는 영국 정부가 바라던 것 이상으로 아랍의 지도자들을 사로잡고, 아랍의 독립을 위해 열심히 싸워 아랍 민족으로부터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적인 칭호를 받게 된다. 그는 아랍 전사들을 이끌고 터키 군과 싸우면서 규율을 잡기 위해 남의 마을의 우물물을 마신 병사를 과감히 처형하는 등 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그런 용맹성은 터키 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그곳에서 받은 성적 학대를 통해 병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로렌스는 영국 정부의 소환을 받고 런던으로 돌아오지만, 종동으로 보내줄 것으로 요구하면서 사막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으로 타결이 된 아라비아 사막은 이제 그를 원치 않는다.* 70mm 대형영화의 대표작인 <아라비아의 로렌스> 역시 1970년 1월 1일 대한극장 신정 프로그램으로 개봉하여 한 달간 상영되었다. " (출처 : 시네마테크KOFA상영정보(2017))아라비아에 정통한 로렌스 중위는 아라비아의 상황파악을 위해 파견된다. 파이잘 왕자와 알리 족장을 만난 로렌스는 파이잘 왕자에게 수에즈 운하의 주요 통로인 아카바로 출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파이잘 왕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50명의 부하들과 알리를 내준다. 신이 내린 죄악의 땅인 네퓨드 사막을 간신히 통과한 로렌스 일행은 호웨이랏족의 족장 아우다 이부타이를 만나 서로 힘을 합치게 되고, 수가 불어난 일행은 아카바의 터키군을 무찌르는 데 성공한다. 이후 계속된 전쟁에서 연승을 올린 로렌스는 아랍부족민에게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스스로도 자신은 예언자이며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F/01083 '로런스: 애프터 아라비아' Lawrence: After Arabia (2021) 아랍 시절 장면도 잠시 나오긴 하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 이후 시기가 메인인 내용의 저예산 영화 작품으로, 단순 사고였는지 혹은 첩보부에서 입막음 차원에서 제거한건지 의문이 제기됐었던 로런스의 사망 사건을 포함한 'T.E. 로런스'의 인생 말기를 다뤘으며,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무비 센트럴'에서 무료 공개 중이고 Plex에선 다중 언어 자막 기능도 지원하는 형태로 공개 중이니 아래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watch.plex.tv/watch/movie/lawrence-after-arabia
콩라인박작성일
2025-01-14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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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도서]2024년 책 추천
2023년 4분기 부터 2024년 3분기 까지 1년간 읽었던 책 추천입니다. 1.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세계 반도체 패권의 향방을 읽기 위해 읽어야할 책 페어차일드, 텍사스인스트루먼트, TSMC, 인텔 IT에 무지한 사람들도 얼핏 들어본 단어 일것입니다. 반도체 시장의 태동과 발전에 대해서 빠르게 알고 싶으시면 이책을 한번 읽어 보시면 전체적인 반도체 지도가 머리에 그려 지실것입니다.복잡한 반도체 공급망은 영국에 본사를 둔 암(ARM)이라는 회사에서 켈리포니아와 이스라엘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이 미국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반도체를 설계 디자인하고 설계도는 대만의 설비로 보내지고, 그곳에선 일본에서 온 극히 순수한 실리콘 웨이퍼와 특수한 가스를 사용하여 가장 정밀한 공작기계가 반도체 설계도를 웨이퍼에 그려 넣습니다. 이런 장비를 제작하는 기업은 다섯 곳으로 네덜란드, 일본 나머지 셋은 켈리포니아에 있습니다. 테스트는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이루어 집니다. 진공관, 트렌지스터, 집적회로, 실리콘 산업의 쌀이라는 칩(Chip) 반도체까지의 태동의 역사, 반도체를 개발한 곳은 미국이지만 제작은 동남아시아에서 생산하게된 이유. 오만한 일본의 반도체 시장의 몰락, ASML이 네덜란드 기업이지만 판매가 쉽지 않은 이유(렌즈는 독일, 광학은 미국 등 다국적 기업의 이해 관계), 반도체에 문외한이라도 쉽게 이 한권의 책을 통해서 전반적인 산업흐름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2.돈 사회와 경제를 움직인 화폐의 역사 돈이란 무엇이고 신용이란 무엇인가? 화폐는 국가만 발생할 수 있는 걸까? 돈자체 만으로 물건을 만들수 없고 단순한 돈 조각을 어떻게 믿고 거기에 따를수 있는것일까요. 문명이 발달되지 않는 오지 무인도 섬에서도 돈은 사용합니다. 그 돈은 커다른 돌덩이에 대고 누가 얼마를 빌렸다고 적어 놓고 그것에 따라 신용거래가 이루어 집니다. 어느날 그 돌덩이가 바닷속으로 빠져 버리자 또다른 사물을 이용하여 신용거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한때 금, 은이 돈의 가치 였습니다. 현재는 동전, 지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돈을 통해 '안정'과 '자유'가 주어지게 되고 사회적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나날이 추상화 되어 실제 경제는 추상화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물물교환의 대체하는 돈이 신용의 핵심이 되어 왔는가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3.몬테크리스토 백작 통퀘한 복수! 숨 쉴 틈 없는 긴장감! 알렉상드르 뒤마 하면 삼총사를 쉽게 떠올립니다. 뒤마의 소설은 현대 드라마적 요소가 다 녹아져 있습니다. 화물선 선원이였던 주인공이 사랑의 치정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고 감옥에서 지인을 만나 탈출, 막강한 재력과 백작이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복수하게 됩니다. 책은 만만치 않은 두께를 자랑하지만 단숨에 몰입하여 읽었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프랑스 인이였지만 흑인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분은 몇번이나 계실까요 뒤마의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오페라 '춘희'의 작가 이기도 합니다. 4.분열하는 제국 11개의 미국, 그 라이벌들의 각축전 미국은 용광로가 아니다. 북미 대륙엔 11개의 뚜렷이 다른 민족들이 존재했고, 미국은 그 상호작용으로 생겨났으며 아직도 9개 민족이 각 축을 벌이고 있다. 미국 역사와 지정학에 관한 무수한 의문을 풀어 줍니다.북미 대륙에 11개의 민족, 초기 식민지인 양키덤, 뉴 네덜란드, 미들랜드, 타이드워터, 딥 사우스, 그레이터 에팔레치아 이들만 알아도 현재 미국의 현실이 보여 집니다. 뉴잉글랜드를 근거로 하는 양키덤과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중심으로 확장한 딥사우스, 양키덤은 미국 건국 서사의 주인공이며 남북전쟁의 승리자 입니다. 반면 딥 사우스는 노예농장주들의 자식 중, 상속 받을 건덕지도 없는 처남들이 들어와 만든 식민지 입니다. 노예인구가 많고 깊은 차별의식으로 인종차별의 베이스캠프가 됩니다. 남북전쟁 패전후 정치조직을 대신해 민간의 교회가 구심점이 되어 부흥을 꾀한 흔적이 강하게 남아 편견가득한 기득권 지배층의 인종차별을 내재화하고, 창조론을 교과서에 실어 원리주의 기독교가 탄생합니다. 북부의 양키는 종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가르치려 들고 참견하는 선민의식이 강해 다른 민족을 배척하여 남북 불균형을 초래하게 됩니다. 현재 민주당, 공화당으로 이해하기보단 양키덤 대 딥사우스의 대결로 보는게 훨씬 미국을 이해하는것이 정확합니다. 트럼프가 인기가 있고 러스트 벨트가 생성되는 이유는 그 11개의 국민은 종교 이념 문화등이 다양하기에 서로간의 이익또한 판이하게 다름으로 미국의 선택, 각주마다 법이 다른 이유, 청교도적인 삶, 유럽의 아류에서 주류로 변화되는 과정, 차후 미국은 어디로 나가게 될 것인가를 더 잘 이해하게 될것입니다. 5.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무함마드를 숭배하는데 다섯 가지 의무를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라고 부릅니다. 사하다, 신은 오로지 한 분뿐이며 무함마드는 신의 사도라고 증언하기살라트(또는 나미즈), 매일 다섯 차례 정해진 기도 의식 올리기자카트, 매년 재산의 일정 비율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기소움(또는 로자), 매년 라마단의 달에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하기하지, 가능하다면 일생에 적어도 한 번 메카로 순례여행 가기 이슬람은 그저 하나의 믿음이나 신앙체계가 아니라, 식이요법이나 운동 프로그램처럼 어느 모로 보나 구체적인 프로그램입니다. 이슬람은 실천입니다. 무함마드 생전에는 모든 계시를 신이 알려 주었습니다. 전투준비 포로 생환 등 모든 것은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아 이야기 해줬습니다. 무슬림들이 메카가 있는 방향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 무슬림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무슬림 공동체가 무르익어가던 중에 기도하는 방향을 바꾸라는 계시가 내려왔고, 그때부터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해왔습니다. 무함마드가 죽었으며 신의 사도는 더이상 오지 않을 테니, 기도하는 방향을 바꿀 권위가 있는 사람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무함마드가 죽고 쿠란의 마지막 한조각 까지 모아 만들어 봤지만 쿠란의 실제 생활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전부 명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석'이란 곧 문제의 조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책은 여타 다른 이슬람 관련서적보다 읽기도 쉬었고 내용도 충실했습니다. 이슬람의 성장, 십자군의 활동, 콘스탄티노플 공략, 사이크스-피코 협정(이전 소개 드렸던 책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좀더 자세하게 소개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등 기존 서양인들의 눈에서 보던 세계사를 이슬람인의 눈으로 다시 보는 관점의 제전환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6.플라톤전집 Ⅳ 국가 대화 형식의 책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답변하고 플라톤의 형제들이 질문하고 책은 플라톤이 적었습니다.'철인정치' 소크라 테스가 말하는 핵심 정치 이론입니다.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정치 유형은 철인정-명예정- 과두정-민주정-참주정 으로 이야기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정체 형태인 철인정은 개인적인 야망을 버리고 올바름에 따라 통치하는 국가 형태로서 철학자가 국가의 모든 구성원에 그 자질과 능력에 따른 직무를 부여하며, 올바름을 통해 나라를 통치하는 최고의 정치체 입니다. 명예정은 전사가 다스리는 국가 입니다. 국가의 공적인 일에 명예를 추구하여 올바르게 세워 줍니다. 하지만 명예를 향한 충동은 이성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주장으로만 이어지고, 욕망이라는 요소가 제멋대로 풀리면서 퇴락하게 됩니다. 과두정은 부자들에 의한 정치 입니다. 부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은 통치에 관여 하지 못합니다. 과두정의 궁극적 목적 또한 사적인 부의 축적에 있어 사회적 평가 기준이 덕보다 부가 되어 욕망이 우선성이 지배 합니다. 결국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분열로 국가의 단일성이 분열되고 악화되어 국가의 힘이 약화 되어 가난한 자가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민주정은 부자들이 가난한자들을 생산하게 되어 결국 혁명으로 이뤄 지게 되며 이러한 정부는 무정부 상태로 평등한 사람에게도,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일종의 평등을 배분해주는 정체 입니다. 민주정은 구성원들의 방종적인 가치를 가지며, 결국 자유를 남용하여 대중은 법을 지키지 않게 되고 국가는 통일성을 잃고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참주정은 방종으로 자유의 지나침으로 지나친 자유는 새로운 예속을 불러오고 파퓰리스트의 속임에 빠져들어 참주를 제외한 어느 사람도 자유롭지 않게 됩니다. 책이 두꺼워서 읽기 힘드신분은 10장부터 읽으셔도 됩니다. 앞장은 '정의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통해 국가의 생성과정과 국가적 정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10장은 플라톤의 핵심이론 이데아론'동굴이론'이 소개 됩니다. 이데아론은 이전 플라톤 소개글에서 갈무리 합니다. https://www.jjang0u.com/board/view/hobby/15178214 7.민주와 애국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공공성 2024년 4분기 책소개에서 잠깐 소개해 드린 책입니다. 전후 일본의 지성인들의 사상 문학등을 통해 시대정신의 변화 과정을 이야기 하며, 현재 일본인의 정신구조 이해에 가정 적확한 책입니다. 일본은 시위 문화가 있지만 임펙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강렬한 시위가 없었던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 전공투를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의 과격함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과격함은 소수의 몫이고 나머지 참여자는 그저 시위에 참여하여 같이 외치고, 어울리는 소속감에 만족 합니다. 즉 목적과 이유 지속이 불가능한 모임 수준입니다. 이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 모임인 '베헤이렌(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으로 변화되고 '소리 없는 모임'이라는 피치 아래 그저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면 그에 동조하는 이들이 그 아래 조용히 서서 지지하는 소극적 어찌보면 무책임한 시위 양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일본의 이중성이 창궐하는 결정적 이유로는 천황제의 폐지를 하지 못한것을 지적합니다. 2차 대전의 최대 책임자 천황이 책임지지 않으니 그 책임은 결국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이유도 모르고 참여 했던 국민은 자신들의 아픔을 피해자화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8.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 20세기 가장 혁명적인 인간, 그리고 그가 만든 21세기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자 컴퓨터공학자이자 경제학자이자 생명공학자였던 20세기 최고의 천재" 수학자로 출발해 그 분야에서도 천재적인능력을 보여 양자역학의 최대 난제인 연산자 이론을 양자역학에 접목시키는 퀘거를 이룩합니다. 최초의 컴퓨터(애니그마-앨런 튜링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컴퓨터는 아닙니다.)에니악(ENIAC), AI, 생명공학, 핵융합, 우주과학, 오토마타, 기후 변화 같은 21세기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예측했습니다. 그가 만든 '게임 이론(Game Theory)'을 연구하여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노벨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론이 현대 경제, 정치, 사회, 군사,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게임 이론의 가장 기본인 예시로 1개의 케이크를 2명의 사람이 공평하게 분배 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한사람에게 케이크를 자르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이 우선 선택권을 가지게 하면 공평하게 분배가 가능 합니다.책은 단순히 한 천재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보다는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태어난 한 천재가 인류의 최대의 비극인 1차, 2차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엄청난 과학적 성과를 만들어 내게 된 과정을 폰노이만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20세기 과학기술의 벨 에포크 시대를 수놓은 많은 천재들의 지적 교류와 창발의 파노라마를 흥미롭게 서술한 책입니다. 가끔 어려운 과학이론 설명이 있지만 그것마저 매력적이였습니다.
로오데작성일
2024-12-2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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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윤석열 "경제는 대통령이 살리는 게 아니다"
무려 대선 전 22년도 유세 현장에서 굥이 직접 한 말입니다. 얼마 전 유시민이 매불쇼에 출연해서“경제는 대통령이 살리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발언한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아 놨으니까 지금 국가 경제가 나락 가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고요 현재 미국의 상황을 한번 봅시다. 왜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승리 했는가 여러가지 분석이 있지만저는 트럼프가 어떤 인간임을 떠나서 굉장히 똑똑한 사업가 출신이고트럼프의 가장 최고의 캐치 프레이즈는 “아메리카 퍼스트”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미국 국민들이 잘 먹고 살아야지 왜 쓸데없이 남의 나라 전쟁에 돈을 쏟아붓는 멍청한 짓을 하냐고 비판합니다. 실제로 바이든이 집권해서, 미국 경제가 좋아지긴 했지만 물가가 미친듯이 올라서, 서민들은 별로체감하지 못했고, 본인 먹고살기도 빠듯한 지경이었으니 미국의 젊은 계층들은 바이든의 경제정책에서무능한 모습을 보고 전부 트럼프로 돌아섰죠, 게다가 우.러 전쟁과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에 개입하고도뚜렷한 성과도 못 내고, 돈만 축 내고 있으니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민주당 대선주자로 최종 낙점된 카밀라 해리스 역시 여론이 좋지 않은 바이든과 차별화를 전혀 못하고주요 아젠다로 이슈를 끌고 간게, 유색인종과 이민자 문제 성소수자 문제 이렇게 마이너하고 현재 먹고살기 팍팍한 미국 유권자들에게 공감하기 힘든 얘기를 하다 보니, 외면 받을수 밖에없었고요, 예전에 미국의 호황 황금기를 경험한 60대 이상 계층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하루하루먹고살기 힘든 팍팍한 현실에 당연히 이상한 얘기나 떠들어대는 여자 보다는 시원시원하게“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실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트럼프에게 표를 줬을 겁니다.이는 미국 국민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자면, 유시민이 말 했던 것 처럼 “경제는 대통령이 살리는게 아니다”이런 발언과 생각을 하는 대통령을 직접 우리 손을 뽑았습니다. 그가 말한 것 처럼 경제는 대통령이 살리는게 아니니까, 경제가 개 씹.창이 나든 말든 아무 상관도 없고 신경 안 쓰고책임 질 필요도 없는 거죠, 근데 이런 씹.세끼를 왜 뽑았을까요???? 님들 다 아시잖아요……… 30대 들은 영끌해서 내 아파트 값 더 떡상 해서 상급지 갈아타야 하니까 아파트 값 올려줄 2찍 한거고40~50대들 역시 본인이 소유한 아파트 더 떡상해서 엑싯할 생각 하니까60대 이상 은퇴자들도 본인이 지금까지 돈 다 벌어서 부동산에 투자해서, 부동산 밖에 없는데자기 자산 더 불리고, 자식세끼들 증여해줘야 하니까집 없는 사람들은, 국힘당이 집값 안정화 시켜줘서 모두가 집 한 채 마련 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민주당 정권에서는 집값이 시원치 않았으니, 국힘당이 집권하면 집값은 올려주겠지 이래서 다들 눈 딱 감고 2찍 했잖아요 부동산 미친듯이 폭등해서, 저출산에 고령화 지방은 아예 소멸 중 이고, 소득 양극화가 서울 내에서도 강남과 비강남 점점 심해지고있고, 젊은이들 결혼은 커녕 연애도 안 합니다. 아예 구직 포기하고은둔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군병력 전체보다 더 많답니다. 백날 직장 생활해봤자아파트 한채 사기 힘드니, 코인 주식 로또 사행성 도박 같은 한탕주의에 미쳐 있습니다. 이게 다 부동산 욕망으로 인한 국민 전체 집단 광기의 결과이며, 이런 어리석은 2찍들 때문에 저능아 범죄자 세끼 대통령이 탄생했으며 대한민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같이 좇망테크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재낀 꼴이 되었습니다. 저는 트럼프를 뽑은 미국 유권자들이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적어도 부동산에 미쳐서 2찍한 어리석은 인간들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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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마오 아들 달걀 볶음밥 먹다 뒤졌다는 사료 뒤져본 결과
11월 25일에 발생한 미군 폭격에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사망하는 사건이 생기고 그 과정이 마오안잉이 달걀 볶음밥 해먹을려다 생긴 연기 때문에 어그로 끌려서 사망했다고 하는데 유튜브 영상이나 인터넷 게시물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내용인데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먼저 마오 아들 죽음에 대해 증언한 사람들은 Ding Ganru (당시 지원군 본부 작전 책임자), 조남기, Yang Fengan (펑더화이의 비서), Cheng Pu (폭격 생존자)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여러 보고서를 포함하여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를 종합하면 11월 25일 오전 10시에 폭격이 발생했고 이때 마오안잉은 사망한 걸로 보임 먼저 마오안잉이 죽기전에 당시 다른 군인들에게 받은 취급을 보면 邓华将军传 등화장군전기 중일전쟁부터 한국 전쟁까지 참가한 등화장군을 다룬 전기에서 마오안잉은 개 싸가지 없는 새끼로 서술 되어 있음 지 아빠 빽 믿고 그동안 엘리트 코스 밟은거 가지고 오만하게 군다 다른 장군 수기에도 스탈린에게 받은 권총이라며 자랑하는 등 좋지 못한 개 싸가지 없는 새끼 방공 조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의 안전이나 타인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새끼라는 언급이 있는거 보면 아마 당시 중국군 내부에서도 마오안잉에 대한 인식은 나빴을꺼라 생각되고 마오안잉 사망 원인 중 하나인 마오안잉이 방공 수칙을 무시했기에 생겼다는 주장은 이 책을 통해서 퍼진거라고 생각됨 险难中的共和国领袖与将帅 고난에 빠진 공화국의 지도자와 장군들 우리가 흔히 아는 달걀 10개와 볶음밥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는 책으로 이 책에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에서 보낸 계란 10개를 언급하며 작전실에서 밥을 볶은건 러시아어 통역사였는데 같이 있던 Cheng Pu는 폭격 소리를 듣고 도망쳤음 Cheng Pu는 탈출하고 나서 지휘관이 안에 누가 탈출 못 했냐는 말에 러시아어 통역사와 마오안잉은 도망 못 쳤다는 기록이 서술 되어 있음 여기서 마오안잉 사망에 대한 내용을 담은 서적에서 나온 주장을 바탕으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네이팜이 떨어져서 싹다 타버렸다는데 생존자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작전실에다 계란 볶음밥을 만들 수 있는 시설이 있을까? 간단한 조리시설은 있을꺼 같기는 한데 그래도 밥 까지 볶을 정도가 될려나? 보내준 달걀은 진짜로 보내주긴 한 건가? 마오안잉이 죽기전부터 인근에는 미국 공습이 지속되고 있는 와중에 북한 전선사령부 부사령관이 중국 인민군 총 사령관인 펑더화이에게 달걀 10개만 보낼리가 없음 달걀을 전달하면서 전쟁에 관련된 문서 라던가 편지를 주고 받은게 없는거 보면 달걀 줬다는 일 자체가 존재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음 그 지역에 있던 참전자 증언을 따르면 한국에서 11월은 엄청 추웠기 때문에 아무리 등화관제를 해도 병사들이 몰래 몰래 난로를 피웠다고 주장이 있어서 당시 폭격을 유도한 연기가 마오안잉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거기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책 마다 폭격 당시 2명이다 혹은 3명이다 마오안잉이 볶았다, 볶으라고 시켰다, 볶는걸 같이 먹자고 하다 변을 당했다 사람마다 변을 당한 시간이 7시,10시다 뭐 이러고 있어서 진짜 재수 없어서 맞은건지 달걀 볶다 맞은건지,달걀을 삶았는지, 과일(아마 사과)을 구웠다가 네이팜에 죽었는지, 삶은 달걀, 꽃빵을 먹다가 놀라서 잘못 삼켰다 질식사 바리에이션도 있고 마오쩌둥 아들이 겁쟁이 마냥 도망치지 않고 결국 네이팜에 타 죽었다 등등 많음 거기다 마오안잉 사망 전날인 24일에 벌어진 폭격은 중국 지도부들은 이미 미군이 중국군 작전실 특정해서 킬각 재고 있는걸 눈치 까고 대공망을 설치하고 있던걸 보면 중공군은 미군에 공중 폭격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다는게 분명한데 그걸 마오안잉한테 경고 안 해줘서 작전실에 있던 마오안잉이 뒤졌는지 아니면 장군들이 마오안잉에게 경고 해줬는데 무시해서 뒤졌는지 그것도 아니면 중국군은 미국이 자기네들 작전실 특정 했는지 몰라 가지고 마오안잉이 작전실에 있다가 뒤졌는지 정확히 왜 어쩌다 죽었는지 대해서 문서나, 서류로 남은게 없고 있는 기록 조차 대부분 구전 기록인데다 죽은 시간, 그를 죽인 전투기 기체, 죽은 이유, 뭘 먹다가 죽었는지, 불타 죽었는지 전부 제각각인거 보면 마오안잉에 대한 죽음에 대한 진실은 애매모호함 결론이 뭐다? 앞에 장황하게 글 써놨지만 결국은 모름임 마오안잉 죽음 자체는 폭격 맞고 죽었다 정도로 끝날 이야기인데 마오안잉 계란 볶음밥 먹다 죽은 썰 부터가 중국에서도 있고 한국에서도 중국에 대한 웃음거리로 여겨지면서 일부 사료들하고 엮이고 부풀려져서 탄생한 누더기 골렘 같은 야사라 당장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 엇갈리는 주장이 나오는것만 봐도 계란 볶음밥 만들어 먹다가 미국 폭격기에게 어그로 끌려 죽었을 가능성은 낮긴한데 문제는 해당 가능성이 0이 아니여서 이런 미적지근한 결론밖에 나오지 않음 최소한 한국에서는 달걀 볶음밥 좀 먹는다가 죽을 일 없으니 오늘 하루는 중국집에서 달걀 볶음밥 시키는게 어떨까?
츠데츠데작성일
2024-11-2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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