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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상담] 형님 동생분들 7 월에 인혼상담했던 인생입니다.^^
짱공 형님 동생분들 다시 한번 안녕하세요.
짱공 10 년차에 글 딱 두번 남기는게 여기네요.^^
경황이 없어 글도 못 올렸는데, 지금은 딸 아이 재우고 혼자 맥주 한잔 하다가 예전 글을 찾아보고, 여러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ㅎㅎ 결국 이혼했어요. 어떠게든 이혼은 안해볼려고 노력하고 설득도 해봤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전문 상담사 분과 몇 차례 상담도 나누었죠.
그런데 참 신기하더군요. 전 딸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참고, 이혼만은 하지 말자고 사정사정 했는데도...
전처는 일단 무조건 이혼을 해야겠다고 하더라구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존심이 보통 사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지나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 부모님이 사실을 안게 용서가 안된다는 이야기도 하고, 이혼후에 연인처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사실 이건 뭔 개소린지 모르겠어요.
문제의 발단은 자기측인데, 이혼 사유는 제 가족이 되는 마법의 시간을 한번 겪고나니, 오만 정이 다 떨어지더군요.
결국 12 월초 법적 합의 이혼이 마무리 되었고 4살 딸아이는 현제 저와 둘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직장인이 어땋게?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제 사정을 직속 부장님과.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좀 늦게 출근하고 좀 일찍 퇴근해서 애하고 잘 지내라는 통큰 선물을 주신 두분 때문에,
저 8시 30분에 애기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5시 30분에 직접 어린이집에서 애기를 데려오며 지내고 있습니다.^^
아빠가 혼자 딸아이를 키우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긴 하지만. 전 할만한것 같습니다. 오랜 자취기간 동안 배운 요리 실력과.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너무 좋네요. ^^
처음에는 아기와 장모님과의 애착 관계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지만. 이혼 진행과정에서 금토일 항상 같이 있고 노력 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딸아이가. 아빠하고 계속 있을거야라는 말을 달고 살더군요.
덕분에 큰 문제 없이 이혼후에 딸아이를 데려와 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혼 진행부터 양육권은 저한테 명시되어 있었구요.
지금은 이대로 행복합니다. 딸아이한테는 너무 미안하지만. 전 최선을 다 할려고 합니다.
내 딸 지유야~~ 아빠가 세상에서 널 제일 사랑한단다~~
아빠 옆에 있어줘서 너무 고맙고, 미안해.. 사랑해요.
내 딸아~~
형님 동생분들 다들 즐겁고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다들 사랑합니다.~~
어느 초보 아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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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외신, 박근혜, 교황 평화 메시지 하루 만에 무시, 생생보도
외신, 박근혜, 교황 평화 메시지 하루 만에 무시, 생생보도외신, 박근혜, 교황 평화 메시지 하루 만에 무시, 생생보도-내셔널가톨릭뉴스, 경찰 대거 동원 김영오씨 산보길 막아-유민아빠 김영오씨 국민과 정부의 분열의 표징내셔널가톨릭뉴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박근혜가 그녀의 경찰을 대거 동원하여 한국에서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영혼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남자를 에워싸고 막아 나섰다고 비난했다.내셔널가톨릭뉴스는 15일 ‘Police confront Korean ferryboat victim’s father-한국 여객선 피해자 아버지를 막아선 경찰’이라는 제목으로 단식 중인 김영오씨의 산책길을 막아 선 경찰의 모습은 박근혜가 교황에게 ‘교황의 방한으로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과 모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 기사는 ‘한국 사회에서 힘없는 자를 꼽자면, 그의 딸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수사 팀을 구성하고 죄가 드러난 자들은 누구든지 기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박근혜정부에 요구하며 33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 씨보다 눈에 띄는 사람은 없다’ 며 박근혜와 그녀의 경찰이 김영오씨의 산책길을 막아섰다고 전했다. 단식 중인 김영오씨는 날마다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고 있었고 이날도 산책을 나서던 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내셔널가톨릭뉴스는 현장사진 5장과 함께 이 소식을 전했는데 내셔널뉴스는 산책길에 나서기 직전부터 김영오씨와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던 관계로 생생한 현장 뉴스를 포착해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됐다. 내셔널가톨릭뉴스의 폭스 기자는 경찰이 김씨를 둘러싼 현장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지난 한 달 동안 그가 계속 머물고 있는 광장에서 김 씨와 내가 함께 대화하던 중, 그가 때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우리가 앞으로 움직이자, 처음엔 경찰 십 수명이, 다음엔 수십 명이 우리 앞에 저지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저지선 안에 갇혔고, 경찰이 김 씨에게 돌아가라고 말했고 그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몇 분 만에, 한 사람 대 경찰 수십 명 간의 대치상태는, 더 많은 경찰이 그를 저지시키는 대열에 가담함으로써 확대되었다.(중략) 김 씨는 발걸음을 돌려 광장 발치에 있는 그의 흰색 텐트로 조용히 돌아갔다.>내셔널가톨릭뉴스의 이 뉴스로 박근혜와 그녀의 정부가 얼마나 기만적이며 위선적인가가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내셔널가톨릭뉴스는 광복절을 맞아 텅 빈 도시의 모습을 전하며 단지 한 곳, 여객선 참사 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무수의 사람들이 모인 시청 광장만이 예외이고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노란 리본들과 기도 리본들이 광장을 장식하고 있다고 현장의 모습을 전했다.내셔널가톨릭뉴스는 김영오씨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그에게 우리의 독립적 수사요구를 지지해 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버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한국인들이 김씨의 쇠약해진 어깨 위에 희망을 올려놓은 것 같다며 김영오씨가 국민적 상징, 즉 국민과 정부의 분열의 표징이 되었다고 전했다.내셔널가톨릭뉴스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는 교황의 한국과 세월호 희생자들, 그리고 유족들을 위한 기도문을 소개하며 기사를 마무리했다.한편 경찰이 김영오씨를 막아 선 것은 같은 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행사에 박근혜가 참석하기 때문에 경찰이 과잉반응을 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국민TV의 뉴스에 따르면 아침마다 하는 산책을 하기 위해 김영오씨가 걸음을 옮겼고 10시로 예정된 광복절 기념식이 시작되기 30분 전인 오전 9시 30분경, 김영오씨와 도철스님, 김 씨를 부축하는 유가족 1명, 천주교 사제 등 4명은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돌려고 했지만 경찰에 가로막혀 40미터도 나가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전했다.김영오씨는 이에 대해 ‘“대한민국이 이런 곳입니다. 제가 아침저녁으로 한 바퀴 도는데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이래요. 나 혼자고 유가족 몇 명밖에 없어요. 딱 4명 갑니다. 매일 하는 운동을 지금 못하게 합니다. 이래서 대한민국 국민이 더 일어나는 겁니다. 모르십니까?’라고 일갈했다. 박근혜, 그녀는 한 달이 넘는 단식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이 남자가 무엇이 그리 무서워 대거 경찰병력을 동원해 막아서는 것일까?어둠과 사악한 곳에 있는 자들은 진리와 정의, 그리고 해 아래 서기를 두려워한다. 김영오씨는 목숨을 내건 단식으로 진실과 정의를 온 삶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김영오씨를 막아서는 박근혜와 경찰들, 그들이 막아서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어둠의 세력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내셔널가톨릭뉴스의 기사전문이다.번역 감수: elisabeth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rGGN2b Police confront Korean ferryboat victim’s father한국 여객선 피해자 아버지를 막아선 경찰National Catholic Reporter by Thomas C. Fox | Aug. 15, 2014NCR’s Tom Fox interviewing father of ferryboat victim before police moved in (photo by Hoa Fox)경찰이 진입하기 전 여객선 피해자의 아버지와 인터뷰 중인 NCR 기자 톰 폭스Kim begins walk on plaza set for beatifications (photos by Tom Fox)김 씨가 시복식을 준비 중인 광장을 걷기 시작Police tell Kim he must stop walking경찰이 그에게 걸음을 멈추라고 지시Police cordon off Kim김 씨를 둘러싼 경찰Ferryboat victim supporters confront police경찰에 맞서는 여객선 피해자의 지지자들 SEOUL, SOUTH KOREA ? Less than a day after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told Pope Francis, here on a five-day visit, that she hoped his trip would “begin an era of peace and reconciliation,” her police were out in force Friday and cordoned off and confronted the man most widely seen as the soul of the vulnerable and voiceless of South Korea.한국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일정으로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그의 방한으로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그녀의 경찰은 금요일 병력을 대거 동원해 한국에서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영혼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남자를 에워싸고 막아섰다.There is an irony here. Pope Francis, speaking Thursday afternoon to Park, assembled dignitaries, and later to the Korean bishops, also called for reconciliation. He told the bishops they must live in solidarity with the poor and vulnerable.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목요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박 대통령 및 주요 공직자들과의 만남에서, 이후에 만난 한국 주교단에게도 화해를 주문했다. 교황은 주교들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연대해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No one in South Korean society more visibly represents the vulnerable of the nation than does Kim Young-oh, who has been fasting for 33 days while demanding the Park government set up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into the ferry disaster that took his daughter’s life, calling for legislation to prosecute anyone found culpable.한국 사회에서 힘없는 자를 꼽자면, 그의 딸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수사 팀을 구성하고 죄가 드러난 자들은 누구든지 기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박근혜정부에 요구하며 33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 씨보다 눈에 띄는 사람은 없다.Korean Catholics are celebrating two feast days Friday. The first, Liberation Day, a national holiday, commemorates the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at the end of World War II. The second is the feast of the Assumption. Offices are closed. The streets of the city are quiet. The exception is City Hall plaza, where countless thousands are gathered in support of the families of the ferry disaster. Countless yellow ribbons, prayer ribbons, adorn the plaza.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금요일 2개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첫 번째는 한국이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기념하는 국경일인 광복절이다. 두 번째는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사무실들은 문을 닫았다. 도시의 거리들은 조용하다. 여객선 참사 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무수의 사람들이 모인 시청 광장만이 예외이다. 셀 수 없는 노란 리본들과 기도 리본들이 광장을 장식한다.Pope Francis on Friday morning was celebrating Mass in Daejeon, South Korea, 90 miles south of here. He will spend the rest of the day with young Catholics there, gathered for Asian Youth Day. He briefly met families of ferry victims as he stepped off his plane Thursday. Today, he will encounter young Koreans the very age of those who died in the ferryboat sinking, which took the lives of 306, most of them high school students, one of them Kim’s 17-year-old daughter, Kim Yoo Min.금요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에서 남쪽으로 90마일 (역주: 약 145 킬로미터) 떨어진 대전, 한국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있었다. 그는 이 날 나머지 시간을 그곳에서 아시아청년대회를 위해 모인 젊은 가톨릭신자들과 보낼 것이다. 그는 목요일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여객선 희생자 유가족들을 잠시 만났다. 오늘 그는 대부분 고등학생들이었고 그 중 한 명이 김 씨의 17살 딸 김유민 양인, 306명이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사망한 이들과 똑같은 나이의 젊은 한국인들을 만날 예정이다.Three days ago, on the 30th day of his fast, Kim told me his fondest memory was of his daughter coming up from behind him each day, hugging him and calling out, “Father, Father.”3일 전, 단식 30일째인 김 씨가 가장 애정 어린 기억은 그의 딸이 매일 그를 뒤에서 안으며 “아빠, 아빠”하고 부르던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Today, on the 33rd day of his fast, I visited with Kim again and asked him how his spirits were holding out. “I am holding on,” he said. “I am hoping I can meet Pope Francis. I will beg him to support our demands for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he told me through an interpreter.오늘, 단식 33일 째, 나는 김 씨를 다시 방문해 그가 정신력으로 어떻게 버티고있는지 물어보았다. “버티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에게 우리의 독립적 수사요구를 지지해 달라고 간청할 것이다”고 그는 통역을 통해 내게 말했다.Scores of ferry victim relatives began a fast one month back, trying to draw attention to their demands. All but Kim has dropped out. He is weak and bone thin. He has a difficult time standing. He leaned upon a cane when I met him Friday.한달 전 많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그들의 요구에 관심을 끌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 김 씨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중단했다. 그는 쇠약하고 뼈밖에 없이 말랐다. 그는 서있는 것도 힘들어 한다. 금요일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지팡이에 기대어있었다.“I’m still hopeful I can speak with the pope,” he repeated more than once. ”교황님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다”고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As the days have passed, Koreans have focused more and more on Kim, seemingly placing their own hopes on his weakened shoulders. He has become a national symbol, increasingly a sign of a divide between the people and their government. He has become the voice of the marginalized that Francis on Thursday called his bishops to become. Kim’s picture can be seen on placards throughout the city. His face appears in newspapers daily. They are following his fast, which daily seems to grow in importance to the Korean people.날이 갈수록, 한국인들은 김 씨에게 더욱더 집중해 왔는데, 이는 그들의 희망을 그의 쇠약해진 어깨에 올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국민적 상징이 되었고 점점 더 국민과 정부 간 분열의 표징이 되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의 주교들에게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 소외계층의 대변자가 되었다. 김 씨의 사진은 이 도시 전역의 플래카드에 올려져 있다. 그의 사진은 일간신문에 게재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단식을 뒤따르고 있으며, 이는 한국인들에게 매일 더욱 중요해지는 듯하다.As Kim and I spoke together on the plaza where he has remained for the past month, he walked slowing, leaning at times on his cane. As we proceeded, dozens, then scores, of Korean police began forming a line in front of us. Soon we were being cordoned off, and the police told Kim he would have to turn around, that he could no longer walk forward.지난 한 달 동안 그가 계속 머물고 있는 광장에서 김 씨와 내가 함께 대화하던 중, 그가 때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우리가 앞으로 움직이자, 처음엔 경찰 십 수명이, 다음엔 수십 명이 우리 앞에 저지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저지선 안에 갇혔고, 경찰이 김 씨에게 돌아가라고 말했고 그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Within minutes, what became a confrontation between one man and a few dozen police had escalated as scores of police added to the ranks of those stopping Kim.몇 분 만에, 한 사람 대 경찰 수십 명 간의 대치상태는, 더 많은 경찰이 그를 저지시키는 대열에 가담함으로써 확대되었다.Within a few more minutes, dozens, then scores, of Kim supporters were lining up face-to-face with the police. The Kim supporters started chanting through megaphones, demanding legislation to investigate the ferry disaster. The protesters held placards over their heads ? and in the faces of the police ? with Korean characters printed on them demanding the legislation.몇 분이 더 흐르자, 수십 명의 김 씨의 지지자들이 경찰과 얼굴을 맞대며 대열을 갖췄다. 김 씨의 지지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확성기를 통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시위자들은 그들의 머리 위로 ?그리고 경찰들의 얼굴 앞에? 한국어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구호가 인쇄된 플래카드를 들었다.Kim stepped back and returned quietly to his white tent at the foot of the plaza.김 씨는 발걸음을 돌려 광장 발치에 있는 그의 흰색 텐트로 조용히 돌아갔다.Saturday, on the same plaza where the police confronted Kim, Pope Francis is set to beatify 124 18th- and 19th-century martyrs. The police want Kim and the other ferry victim families out of Gwanghwamun Plaza by the end of the day Friday so it can be readied for the beatification ceremony.토요일, 경찰이 김 씨와 대치한 같은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124위의 18-19 세기 순교자들을 시복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경찰은 시복미사 준비를 위해 금요일까지 김 씨와 다른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철수해주기를 원하고 있다.The families have reluctantly agreed to leave by 4 p.m. to avoid violence. They have been told by city officials they can return to the plaza after the ceremony.유가족들은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오후 4시까지 철수하기로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시복식 후에 광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시청직원의 말을 들었다.While Catholic officials here hope the beatification ceremony will stir the souls of the faithful, renewing their faith as Christian disciples, it is clear that many Korean souls have already been stirred, and that in the process, they are giving more attention to the vulnerability of others as well as their own vulnerability.가톨릭 측은, 시복식이 신자들의 영혼에 울림을 주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들의 신앙을 새롭게 할 것으로 바라고 있는 가운데, 많은 한국인들의 영혼은 이미 동요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나약함 뿐 아니라 타인들의 나약함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것은 자명하다.One day before a planned historic beatification of Korean martyrs, this nation, including the Catholics within it, are struggling to seize the ghosts of the past, martyrs from different ages ? 19th-century Catholics and 21st-century children ? implore their memories to renew the hearts and souls of a nation to give it direction in the years ahead.예정된 한국의 순교자들을 위한 역사적 시복식을 하루 앞두고, 가톨릭 신자들을 포함한 이 나라 국민들은 과거의 영혼들, 다른 시대의 순교자들?19세기 가톨릭 순교자들과 21세기 아이들?을 붙잡아 그들에 대한 기억으로 국가의 심장과 영혼을 새롭게 하여 이 국가의 앞날에 방향을 제시하기를 애원하며 분투하고 있다.How Francis understands this moment and helps shape it in the hours ahead could make a significant difference for the health of the church and wider Korean society for years to come.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순간을 어떻게 이해하여 앞으로 주어진 시간에 그것을 형상화할 것인지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성장과 다가올 한국 사회의 지평에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There are early indications he does, and that he is ready to touch the souls of this nation. In Daejeon on Friday, in his Angelus remarks, he entrusted to Mary “all who lost their lives in the sinking of the Sewol ferry, as well as those who continue to be affected by this great national disaster.”일찍이 그는 행동으로 이 나라 국민들의 영혼을 위로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금요일 대전에서, 그의 삼종기도문에서, 그는 “이 국가적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월호 선박 침몰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사람들”을 성모님께 의탁했다.“May the Lord,” he prayed, “welcome the dead into his peace, console those who mourn, and continue to sustain those who so generously came to the aid of their brothers and sisters. May this tragic event, which has brought all Koreans together in grief, confirm their commitment to work together in solidarity for the common good.”“주여” 그는 기도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http://linkis.com/thenewspro.org/b8L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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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펌] 사람이 살 수 없는 집 (스압)
안녕하세요 저는 23살여자에요 다름이아니라 제가 어릴때 겪은 일을 재미삼아 꺼내보려구요 재미삼아 할이야기는 아닐수도있지만요...흠... 글쓰게 된 것은 요즘 상영영화 컨저링 오늘 보고왔는데 보는내내 예전 어릴때 살던 집생각이 나서 많은생각을 했어요 어린시절 가족들과 제가 죽을고비를 수도없이 넘기며 겨우 탈출했던 집에대한 이야기 해드리려구요 확실히 재미는 아닌가요;; 뭐.. 지금은 전혀문제없고 주변사람들에겐 괴담하나 풀듯이 가볍게 많이도 이야기했으니.. 그래도 그집에 대해 이렇게 글 쓰긴 처음이라 뒤죽박죽일수도 있는점 이해해주세요 나름대로 가족들과 기억을더듬어 열심히 정리하고있어요..ㅎㅎ 문제에 집터에는 지금 그냥 아스팔트 길이되었어요 뒤쪽에 철도가 놓이고 방음벽같은게 설치되면서 집터를 좀 침범했지만 집터의 대부분은 아스팔트길 그집이 없어진탓에 이사간후에 한번도 찾아가볼수없었지만 (찾아가고 싶지도않았구요) 그치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네요 집의구조같은거라던가 냄새도 어렴풋 기억나고.. 집은 여관건물 맨위층에있었고 엄청낡은집이었지만 오래전엔 고급스러웠을 법한 그런집이었어요 엄마말로는 이사올때부터 가구가 몇개 있었는데 텔레비전 놓는 장식장이랑 거실탁자하나 작은방 침대랑 안방화장대 주인아줌마가 찜찜하면 버리라고 했지만 전부 나무고 고급스럽게 생겨서 그대로 두고 침대만 왠지 찜찜해서 버렸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기억하는 그집첫인상은 하루종일 햇빛이 잘들지 않아서 벽지라던지 곰팡이가 많았구요 주택에다 바닥도 나무고 햇빛이 잘안들어 바닥이 썩은곳도있었고 집자체도 엄청낡았는데 벌레한마리 없었던것 그정도? 심지어 여름인데 모기도없었어요 처음엔 무섭다던지 그런건 못느꼈어요 그저 마냥 신나고 그전에 네가족이 한방에 잤었는데 그렇게 갖고싶던 오빠와 내가잘방 생긴것이 기쁘고 집이 이상하게 꼭 마음에 들었던거 같아요 그때 오빠가 12살이고 제가 10살이었는데 엄마아빠가 작은방에 원래있던 침대를 빼고 작은침대 나란히 두개를 넣어줬어요 1주일은 아무일도 없이 잘지나가고 이사간후 일주일뒤 오빠일기엔 수요일이라고 되있어요 새벽에 자다가 깼는데 이상한소리가 들렸어요 누가 손까락으로 벽을 딱 딱 치는소리같은게 불규칙하게 딱, 딱딱, 딱, 딱딱딱 딱, 딱, 딱 이런식으로 들렸어요 처음엔 오빠가 일어났나 싶어서 그냥 자려고 눈을 감고 스르르 잠들었을때 갑자기 얼굴이 너무시원한거에요 그때가 여름이었거든요 그집이 원래 시원한편이라 선풍기는 켜놓지않았고 도둑든다고 창문도 닫고자고있었거든요 얼굴에 바람이 부는것도아니고 얼굴으로 박하같은거로 세수한 기분이랄까.. 나중엔 팔하고 허리까지 시원했는데 뭔가 갑갑한 느낌도 들엇던거같아요 그때, 누가 제어깨를 잡고 확끌어당겼어요 정신이 들면서 잠에서 확깼는데 저는 서있고 창문앞에서 아빠가 저를안고있더라구요 불도 다켜져있고 오빠는 방문앞에서 엄마뒤에 숨어있고 눈떴을때 왜그런 상황이었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그날 그냥 아빠가 그대로 안고 안방으로 가서 가족들 다같이 안방에서 잠이들었던거같아요 제가 겁먹을까봐 아무도 말안한거같았는데 후에 몇년지나고 오빠말로는 자다가 일어났는데 제가 창문앞에서서 창문을 손까락으로 딱딱 치고있었대요 왜그러냐 물어도 답이없어서 덥냐고 창문을 조금열어줬더니 제가 까치발을들고 창문밖에 얼굴만빼고 얼굴을 이리저리 이상한방향으로 돌리더래요 오빠가 너무놀라서 제팔을 잡아당겼는데 당겨지지않더래요 그래서 제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려고 옆에서 제얼굴을 보는데 제가 입이 귀에걸릴 만큼 활짝웃고있더래요 (좀과장되었지만..) 그게 예쁘게 활짝이아니라 말그대로 입이찢어져라 오빠가 소리도 못지르고 안방으로 달려가 아빠엄마를 깨우고 방에돌아왔을때는 제가 창문을 활짝열고 창틀에 아슬아슬하게 수건처럼 걸려있었다는거에요 아빠가 제어깨를 확젖혀서 안고 제가 그때 깼다는데 엄마아빠는 심한 몽유병이라고 생각했대요 오빠가 일기에 썼었는데 엄마아빠가 그런거 쓰는거아니라고 그래서 지웠다고.. 그래서 그날짜 오빠 일기엔 다른내용 적혀있구요 그뒤로 저는 몽유병 증세가 나타난적은없었어요 그리고 그일있고 한 1주일간은 그냥 집에서 갑자기 쿵 소리가 난다던가 물소리가난다던가 그런것밖엔 이상한점이없었고 우리가족은 그냥 집이 낡아서 그러려니하며 살고있었죠 그후 일주일 뒤부터 일이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는데 그집 1년좀 안되게 살면서 겪은 온갖 나쁜일 (좋은일은 전혀없었음) 아무튼.. 오빠일기와 가족들 한테 물어보고 제기억도 더듬어서 정리하고있는데 엄마아빠는 뭐 좋은일이라고 글쓰냐고 달갑지않아하시네요 그래도 오빠가 이것저것 많이 이야기해주고 부모님몰래 오빠랑 제가 그당시 적어둔것도 있으니 내일부터 매일은 아니더라도 많이 올리도록할게요 시간도 늦었고 저는 이만 자러가볼게요.. 저도 고민하듯 올리는글 아니고 재미로 들어주셨으면 하니까 자작이니 거짓이니 비난없이 읽어주셨으면해요 아무도 안읽어주실줄 알았는데 의외로 댓글도 몇분 달아주시고 힘내서 2편쓰러 왔습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전편에 말씀드렸듯이 우리가족은 그때까진 아직 사태의 심각이라고 해야하나 전혀 공포심마저 느끼지 못했어요 집에대한 공포감같은게 처음 생긴일은 그후로 1주일정도 지나서 연달아일어났어요 어두워지기전? 노을질때쯤이었는데 그집이 해가 잘안드는 집이라 저녁되기 전부터 좀 어둡다는 느낌이거든요 아빠는 가게에서 안오셨고 오빠는 학원갔다 친구집에 간날 엄마랑 저랑 둘이서 거실에 엄마는 쇼파에앉아있고 저는 쇼파앞 탁자에 앉아서 엄마가 제 머리를 묶어주면서 티비를 보고있었어요 탁자에 양반다리하고 앉아있는 제가 엄마한테 '엄마 탁자가 밑에서자꾸 쿵쿵거려' 라고 했대요 엄마는 그냥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고는 밑에층에서 뭘 하는가보다 하고 저한테 말씀하셨대요 그러고 제머리를 다묶어놓고 티비를보셨대요 한 5분쯤 지나 제가또 '엄마 탁자가 자꾸 쿵쿵거린다니깐'하고 말했대요 엄마는 '그러면 그냥 탁자에서 내려와서 쇼파에앉으면 되지않니' 하고 다시 티비를보셨구요 근데 그후 제가 꼼짝도 안하고 탁자에 앉아있더래요 엄마는 제가 삐져서 그러나보다 하고 제이름을 부르시고 제팔을 잡았대요 저는 대꾸도도안하고 티비만보고있는데 그순간 제팔을 통해서 쿵! 하는느낌이 전해졌대요 바닥에 있는 엄마의 발은 안느껴지는 진동이.. 탁자랑 저만 쿵!하고 울리는듯한 느낌이었대요 그러고는 순간 엄마가 탁자밑에 뭔가가 있나 혹시 커다란짐승이라도 든것아닌가 하는 엉뚱한생각을 순간하시고는 탁자밑을보아야 겠다는 생각을하셨대요 탁자는 낮았고 나무였어요 둥그런 나무판자를 밑에 네모난 나무가 바치고있는데 탁자밑에 8센치정도만 공간이 뚤려있는 그런탁자였어요 처음엔 그냥 다리를벌리고 손을 탁자에 댄체 고개를숙여서 탁자밑을 슬쩍봤는데 검은게 왔다 갔다 거리다가 손에 쿵하는 느낌이 전해지더래요 엄마는 너무놀라서 악!소리를지르며 저를데리고 티비쪽으로 몸을 피하셨대요 그러고 천천히 멀리떨어져서 탁자밑을 보려고 엎드리셨는데 순간 시커먼게 확 튀어나와 엄마를 덥치셨대요 엄마는 순간 눈을감고 허공에 팔을 휘저으면서 미친사람처럼 소리를 고래고래지르셨대요 그러시다 정신이 빠져서 거실에 저를 두고 기어서 안방으로 도망을 가셨다가 이내 정신을차리고 나와 저를챙기고 집에있던 막대기 같은걸 집어와서 거실 곧곧을 샅샅히 뒤졌는데 그검은것은 온대간대 없고 형체도없더래요 저한테 그것을 봣냐고 어디갔냐물으니 제가 손으로 가르키는곳은 탁자밑 (저는 지금 그일을 기억못하지만) 그후에 오빠가오고 아빠가와서 탁자밑이랑 온가족이 집곳곳을 찾아다녔지만 그 검은물체의 정체는 알수없었고 결국 흐지부지 그일이 끝나고 이틀후 해가 저물고 깜깜해질때 쯤일이에요 이일은 저도 아직 생생히 기억나는일이에요 그집은 안방 작은방 그리고 너무 작아서 그냥 창고로 쓰기로 한방 그치만 저희식구가 원래 네명이 한방에서 살았어서 이사올때 짐도별로없었고 창고를 쓸일이없어서 그방은 그냥 가족앨범이라던지 예전 갖고놀던 장난감들이 한켠에 조금있고 텅비어있었어요 놀기 좋은방이었지만 그방은 창문이 너무작아 햇빛이 제일안들어서 곰팡이가 많이피어있고 화장실 옆이라그런지 냄새가나서 오빠랑 저랑은 잘 안들어갔었죠 아무튼 그날은 가족끼리 거실에 앉아있었는데 아빠랑 엄마랑 이야기를 한참 하시다가 아빠가 화장실에 가셨어요 저랑 오빠는옆에서 각자 티비보고있었구요 근데 아빠가 갑자기 큰일보시다가 '밤에 그렇게 크게 웃으면 안되지!' 하시는거에요 엄마는 잘못들으셨는지 '뭐라구요!?' 하고 되물으시고 저는 들었는데 제가 그런것이아니니까 가만히있었어요 아빠가 그후 아무말이없자 엄마가 저랑 오빠한테 '아빠가 뭐라고하시니' 하고물었고 오빠는 대답을 안하고 저는 '밤에 시끄럽게 하지말래요' 하고 말했어요 엄마는 '그게 무슨소리지'하시고는 '여보! 여보!'하고 아빠를부르셨어요 그때 물내려가는소리 들리고 아빠가 곧 '아 거참 그방에 생전 안들어가더니!' 하시면서 나오셔서 우리한텐 눈길도 안주시고 화장실옆 그방에 문을 쾅닫고 들어가시는거에요 엄마는 멍하게 그모습을 보고계시고 그때 오빠가 벌떡일어나서 '아빠! 아빠!!' 하고 그방쪽으로 뛰어가서 '아빠! 아빠! 우리아니에요! 저아니에요!!' 이러면서 미친사람처럼 문을열려고 문고리를돌리는데 안에서 잠구셨는지 안열리고 오빠는 막 울기시작했어요 그방안은 정적.. 엄마는 놀라셨는지 가만히굳어계시다가 오빠가 울자 다가가셔서 왜우니 하고 오빠를 달래며 대신 문을 열려고 하셨는데 역시 문은 잠겨있었어요 엄마도 당황하신듯 '여보! 여보!' 하고부르며 문에 귀도대보고 그러셨죠 오빠는 옆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댔어요 그러고 엄마가 한참 아빠를 부르고 있는데 문열리고 아빠가 나오셔서는 쇼파에 그대로 앉으시는거에요 아빠는 얼빠진얼굴로 앉아서 가만히계시고 엄마는 오빠를 안아주고 아빠한테 무슨일이냐고 왜 그방엔 들어가서 문을잠그냐고 대답은 왜안했냐고 물으셨어요 그때 오빠가 울면서 또 '아빠 그거 우리아니에요 저아니에요 거기가지마세요' 이런말만 계속 했어요 엄마는 뭐냐면서 말을해야알지않겠냐고 아빠한테 화내시고 곧바로 오빠보고 뚝그치라고 혼내셨어요 그때부터 오빠는 좀 진정됬는데 갑자기 아빠가 오늘은 아무래도 나가서 자자면서 엄마랑 저희보고 당장나가자고했어요 엄마도 탁자일도있고 해서인지 그러자고하시고 가족이 지갑만 챙겨들고 거의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와서 아빠가잠시 집앞에 가족들을세워놓고 오빠한테 혹시 뭘봤냐고 물어보셨거든요 오빠는 '본건아니고 들었어요' 하고말했어요 아빠가 뭘들었니 하고 물었을때 오빠가 말해준걸듣고 가족전부 무슨 달리기 경주하듯이 집에서 도망쳐서 찜질방으로갔어요... 오빠이야기론 아빠가 화장실에 들어가고 얼마안되서 그방에서 오빠랑 제목소리가 들렸대요 막 웃으면서 아빠! 아빠! 소리치는것 그러고 아빠가 '밤에 그렇게 크게 웃으면 안되지!' 하고 소리치셨는데 그거 듣고 오빠는 '저희 거실에있어요!' 라고 말하려고 입을때는데 순간 아무도없는 왼쪽에서 누가 귓속말로 '쉿! 죽어!' 오빠는 그대로 굳어서 아무말도 못하고있는데 아빠가 화장실에서 나와서 거실쪽은처다도 안보고 그방으로 걸어가는데 그방에서 계속 우리목소리가 아빠! 아빠 부르면서 웃어댔다는거... 아빠는 그일에대해 그날 딱히 아무말씀도 하지않으셨는데 후에 이야기들은것으론 아빠는 화장실에서 우리가 떠드는소리가 너무시끄러워서 나가면 혼내켜줘야지 생각하셧대요 그런데 아빠가 화장실에서 나와서 그방에 들어간기억은 없으시대요 정신차려보니 밖에서 엄마가 부르고있고 오빠울음소리가 났대요 아빠가 뭔가에 단단히 홀렸구나 싶어 뒤돌아 나가려던찰나에 오빠목소리가 아빠! 하고 뒤에서 부르셨다는거에요 그뒤로 발이 돌덩이처럼 무겁고 겨우 방을빠져나와서 쇼파에앉았는데 그방에서 계속 애들소리가 들리고.. 뭔가에 홀린것같이 멍해서 집에서 당장 나가야 할것같은데 말한마디를 꺼낼수가없더래요 그러고 웃음소리가 멈췄을때 겨우 집에서 나가자고 말씀하셨대요 그날부터 아빠는 이사를 가야겠다는생각을 조금하셨다는데 가족이 갑자기 이사갈집도 마땅치않고 지금집을 어떻게 해야할지막막해서 그럴수 없으셨대요 덕분에 그뒤로 반년넘게 우리가족은 그집에 계속 살아야했죠.. 오늘은 이쯤해두고 자러가볼게요... 필력이없어서 읽기 불편하실까 죄송하네요.. 내일 또 이야기 해드리러오겠습니다 재밌으시라고 쓰는글이니까 가볍게 읽으시고 비난하지말아주세요 ㅎㅎ... 판될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네요.. 언제또 제가쓴글을 이렇게 많은사람들이 읽어주실기회가 있을지;; 어제 좀 아파서 글을 삼편을 오늘에서야 쓰게됬는데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을줄이야..ㅇ.ㅇ... 다들 스압이아니라고 하시는데.. 오늘은 스압일듯... 무튼 서둘러서 이야기 시작할게요.. 그날가족들모두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세고난 다음날 아빠는 가게를 하루 쉬시고는 엄마랑함께 여관주인아저씨의 어머니랑 만나셨대요 처음 집계약할때 그 여관집 아주머니와 이야기 했었기때문에 처음에 저희아빠가 여관아주머니한테 그이야기를 꺼냈더니 자기는 집에대한 권리가 없다고 집은 자기 시어머니소유라 하셔서 그 할머니를 만나신거죠 저희부모님은 그때 그할머니를 처음뵙는거였는데 키도 작고 나이도 많은 노인인데 얼굴에 심술이 가득차있었대요 아빠가 조심스럽게 집에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아빠말은 잘라먹고 요즘세상에 무슨 귀신타령들이냐 그러시더래요 아빠가 그집에 못살겠다고 집 빼달라고하니까 눈에보이는게 문제가있으면 그래주겠는데 미신이야기나 들이밀면서 무슨소리하냐고 정 그렇게 무서우면 자기가 무당을 알아봐준다면서 비꼬듯이 이야기했대요 집주인이 그렇게 나오는데 부모님도 어떻게할 방법이없는데다 보증금도 못돌려받은채 집을 빼고 이사갈수도없는 노릇이었대요 그날은 아무성과도없이 그냥돌아오셨고 결국 그날 우리가족은 그집에 다시돌아갔어요 학교에서 겨우 어제일잊고 잘놀다가 그집을 다시가려니 지옥에 끌려가는 느낌이었어요 엄마아빠손에 억지로 다시 그집에들어섰을때 처음 그집의 인상과 너무다르더라구요 곳곳이 누런벽지가 괜히 무섭기도하고 시원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으스스하고 소름이돋고 무엇보다 오빠는 제가 그때 밤에 했던행동도 몽유병이아니라 뭔가 다른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방에서 못자겠다고 엄마아빠한테 때를썼어요 저도 오빠가 그방에 안잔다고 하니 저도 같이때를썼구요 그랬더니 엄마아빠가 그럼이제 안방에서 같이자자 하셨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네식구 같이 자면서부터 그런일이 좀 줄어드는거에요 그냥 가끔 저녁에 쿵!소리가난다던가 티비가 꺼진다던가 등등 자잘한일만 가끔생기고 괜찮은듯 싶었어요 그래서 그날이후 항상 네식구가 같이잤는데 (안방엔 침대가없어서 네식구가 바닥에서 자야 했어요) 한 열흘 지나서였어요 우리가족들이 잘때 큰이불 두개를 깔고 엄마,저,오빠,아빠 이렇게 누워서 자거든요 엄마옆에는 이사올때부터 있던 그화장대가있고 그옆에 방문이있었어요 방문을 항상닫고잤는데 그날따라너무 더운거에요 그래서 방문을 열고잤거든요 방문을 여니까 거실이 너무무서운거에요 그날은 네식구가 전부다 긴장해서 스텐드같은거까지 켜놓고 쉽게 잠도못들고 한참 이야기를하다가 잠들었는데 자는데 이야기소리가 계속 들리는거에요 좀 시끄러워서 중간에 눈을떴어요 엄마 목소리인거같아서 엄마 하고 엄마쪽을 봤는데 엄마가 뒤돌아누워있더라구요 방문쪽을 바라보고 옆으로 누워서 주무시고계신데 엄마 옆 화장대위에 사람이 올라가서 이상한소리내면서 춤을추고있는거에요 화장대가 바닥에 앉아서 쓰는 식의 화장대라 낮아서 그것의 하체가 딱눈에띄게 보였어요 너무무서워서 눈을감았다가 떴는데 도저히 눈을다뜨고 못보겠어서 실눈을뜨고 보는데 하얀발목이 껑충껑충 뛰면서 춤을추는것같은거에요 도저히 보고있을수가없어서 눈을감았는데 이상한 소리를계속 내는거에요 말도아니고 이상한 괴기스런소리? 같은걸 내면서 계속 방방뛰고있는거 같았어요 식은땀 뻘뻘흘리면서 거의 몇십분을 뒤척이지도못하고 그렇다고 눈을뜨지도못하고 그 이상한소리를듣고있다가 저도 모르는사이에 잠이든거같아요.. 그다음날 제가 제일먼저일어났는데 오빠는 어디갔는지 자리에없고 엄마랑 아빠랑 전부다 몸을 웅크리고 방문쪽으로 돌아누워서 자고있는거에요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곧바로 엄마가 일어나시더니 소리를 지르시는거에요 그소리에 아빠가 일어나서 엄마보고 왜그러냐 물으시다가 아빠도 굳으시고.. 화장대에 있던 엄마화장품같은게 다 바닥으로 떨어져있는거에요 아빠도 엄마도전부다 밤에 시끄러운소릴듣고 깼는데 화장대에서 방방뛰는 그것을보고 한참동안 가위를 눌리다 소리가멈춰서 겨우잠드셧다는거에요 엄마랑아빠랑저는 놀랄세도없이 아빠가 오빠 없어진거 눈치채시고 엄마랑 아빠랑 저랑 오빠찾아서 거실로나갔어요 그런데 오빠가 작은방가도없고 거실에도없고 창고에도없는거에요 오빠이름부르면서 한참 찾고있는데 작은방 옷장에서 오빠 우는소리가 들리는거에요 제가 아빠 오빠 옷장에있나봐요 해서 아빠가 옷장문을 열었는데 오빠가 진짜 괴성을지르면서 옷장에서 튀어나와서 방밖으로 뛰어나가다가 넘어지는거에요 엄마가 놀라서 바로 오빠를 일으켜세우셨는데 오빠얼굴이 퉁퉁부어서 밤세 울었는지... 아빠랑엄마가 왜그러냐 물어도 대답도안하고 '밖에나가자 밖에나가자' 계속 그랬어요 엄마는 '그래 그래 씻고 옷만갈아입고나가자'하면서 달래셨는데 오빠는 싫다고 지금 나갈거라고 소리를지르고 난리를 부리고... 결국 오빠 상태도그렇고 옷도안 갈아입으려해서 학교에아프다고 전화하고 아빠가 오빠 가게에 데려가고 전 엄마가 학교에 챙겨보냈어요 학교다녀와서 집에왔는데 오빠가 계속 어린애처럼 엄마한테 착달라붙어있었어요 저 평소같으면 오빠한테 장난치고 놀렸을텐데 저도 그냥 얌전히 아빠옆에 붙어있었어요 매일 가족들 전부다 집에서 시체처럼 티비소리 크게틀어놓고 티비만보다가 (사실보는둥마는둥했지만요) 잘시간되면 방문 닫고 전부다 안방에모여서 다닥다닥붙어서 자고 초등학교 5학년인 오빠가 집에서 계속 화장실을 혼자 못가서 아빠가 한동안 계속 같이들어가고 오빠가 맨날 아무말도안하다보니 집이 대화도 약간 단절된느낌이었어요 (오빠한테 그날 왜그랬는지 아무리물어도 계속 대답을 안해줬거든요) 그러고 또 몇일 아무일없다가 가족기리 외식하는날이 있었어요 기분전환겸 그날 고기를 먹으러갔는데 거의 다먹어갈때즘에 오빠가 또 엄마아빠한테 '우리집에 가지말자.. ' 그러는거에요 그랬더니 아빠가 오빠를 달래셨어요 목요일날 왜그랬는지 엄마아빠한테 말을해야 엄마아빠가 안다고 말도안하고 집에가지말자그러면 아빠엄마는 ㅇㅇ이가 뭐가무서운지 모르겠다고 엄마아빠가 지금 당장은 이사못가지만 조금있다가 다른데로 이사꼭 해줄테니까 뭐가 무서운지 엄마아빠한테 말해달라고 뭐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때서야 오빠가 그날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날 오빠는 자다가 화장실을갔는데 무서워서 화장실문을 열고 볼일을봤대요 근데 어렴풋이 방에서 떠드는소리가 들려서 누가 깼나보다하고 안그래도 무서웠는데 좋았대요 그래서 기분좋게 볼일보고 방에가려고 나왔는데 화장대위에서 키가큰여자가 하얀천을 둘러메고 머리는 산발이고 발목만 허옇게내놓고 춤을추면서 이상한 알아들을수없는소리를 내고있더래요 너무 무서워서 소리도 못지르고 화장실앞에서 꺽꺽대며 울었는데 그게 화장대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오빠를 잡으러 막 쫒아오더래요 이상한춤을 추며 이상한소리까지 내면서 오빠가 안방으로 도망치려니까 잡힐거같아서 작은방으로 가서 옷장안에 숨었는데 그게 옷장밖에서 이상한소리를 내다가 엄마목소리도 흉내내고 아빠목소리도 흉내내고 제목소리도 흉내냈는데 가족들목소리로 'ㅇㅇ너 죽어 죽는다 이리나와 나와 죽는다' 밤세도록 옷장앞에서 쿵쿵뛰어대면서 가족들목소리로 협박했다가 갑자기 이상한소리로 끽끽 웃어대다가 오빠는 옷장에숨어서 소리내서 울지도못하고 밤세 울었다는거에요 그날밤에 아빠랑 저랑 엄마가 이상한소리멈춰서 겨우 잠들수있었을때 그귀신이 오빠를 쫒아가서 그랬던거죠... 나중에 알게됬는데 그옷장은 우리가 가져온 옷장이거든요 엄마가 아빠한테 시집올때 가져온 옷장인데 외할머니가 그옷장안에다가 악한거? 쫒는 그런 부적을 붙혀두셨나봐요 그래서 그귀신이 그옷장에숨은 오빠한테 해코지를 못한거일수도 있다고 엄마가 그러시더라구요 아무튼 오늘이야기는 여기까지구요.. 내일 이야기 이어갈게요 !... 많이들 읽어주셔서 감사하구 오늘도 그냥 재미로 읽으시고 비난은 삼가해주세요... 안녕하세요ㅎㅎ 어제글열심히 썼다 날아가서 화를 가라앉히고 오늘 다시쓰러왔어요 ㅎㅎ..... 제가 발로쓰는 일기같은글에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당황스럽지만... 발글을 읽어주시는분들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있어요 오빠는 어떻게됬냐는 댓글이 좀 있던데 오빠는 그날이후... 라면을스스로 못끓여먹는 라면장애인이 된듯해요 ^^;; 성격이좀 아프구요.. (성격파탄같은거...?) 여러분의 뜨거운관심에 변태처럼 좋아하고있으니까 걱정하지마세요.,, 잡소리 그만하고 이야기 시작할게요 ㅎㅎㅎ 외식 후에 오빠랑저는 제일가깝게 사시던 고모할머니댁에 잠시 맡겨졌어요 오빠상태가 안좋아서 엄마아빠는 저희를 맡겨두고 그집과 담판을 지으려고 생각하셨대요 외식하기 하루전 누구한테 연락을해야할까 고민하시다가 친할머니는 천주교셔서안될거같고.. 가끔 절도다니시고 용한무당 찾아다니시기 좋아하는 외할머니께 연락을드렸는데 신기하게 전화걸자마자 전화를 바로 받으셨대요 평소때 귀가좀 어두우시고 외할머니댁 전화벨소리가 작아서 전화를걸면 한참후에 받으시는편인데 바로받으셔서 엄마가 '엄마 왠일로 전화를 바로 받으셨대요?' 하고 여쭈었더니 외할머니께서 며칠전부터 같은꿈을 계속 꾸셨는데 외할아버지가 꿈에서 액자를 뒤집어서 들고 외할머니를 계속 쫒아오셨단거에요 외할머니는 아니 이영감이 나를데리고 가려고 내 영정사진을들고 쫒아오나 싶어서 매일밤 도망다니시다 잠에서 깨셧다는데 어젯밤에는 도무지 꿈이 깰생각을 안하는통에 너무 지치셔시고 힘드셔서 멈춰서셨대요 그러고는 '아니영감! 대체 왜이러는거야!' 하고 화를내셨는데 할아버지가 말없이 뒤집어들고있던 액자를 바로해서 할머니한테 주셨다는거에요 그래서 할머니가 그액자를 들여다보는데 까만 액자안에 우리 가족사진이 있었다는거에요 그런데 사진이 보면볼수록 이상하고 찜찜해서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우리가족말고 한사람이 더있었다는데 머리산발을한 흰옷을입은여자가 자기도 우리가족인양 우리가족한테 딱붙어서.. 그모습이 섬뜩하고 기분이안좋아서 잠에서깨셨는데 깨신후에 아무리 그여자얼굴을 기억해내려해도 또렷히 기억이나질 않으시더랍니다 그래서 온종일 걱정하며 엄마가 전화오길 기다리셨다는거에요 먼저 전화를 하지않으신건 괜히 나쁜꿈을꾸고 전화를하면 재수 옴붙을까봐 그렇게 못하셨다고 엄마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모든이야기를 털어놓으셨대요 그랬더니 외할머니가 꿈속사진에서 본 꼴이 우리가족한테 그것이 꼭붙어있는게 이사가도 쉽게 떨어질거같진않고 일단 내일 애들맡겨놓고 내려오라고 하시더래요 그래서 엄마아빠는 우리를 고모할머니댁에 맡기고 바로 내려가셨어요 외할머니댁까지 2시간거리여서 저희대려다주고 가려니 10시에 도착하셨는데 시간도 너무 늦었고 해서 그날은 그냥 외할머니댁에서 자고 그다음날에 외할머니가 용한무당집이라고 어디론가 데려가셨데요 아빠는 집안이 천주교셔서 무당집은 처음이라 긴장하셨는데 생각보다 멀쩡한 가정집이고 불교용품이 있다는것빼곤 특별할것도없었대요 그무당은 40대여자인데 모시는신때문인가?.. 결혼도안한 처녀무당이었는데 외할머니 말씀으론 아는사람만아는 유명한무당이래요 그런데 옷도 무당같은옷이아니라 사복을 입고있고 넉살좋게 웃으며 엄마아빠를 반겨서 처음엔 그집에 무당의 가족인줄 알았는데 외할머니가 먼저 바닥에 앉으시고 따라서 엄마아빠가 앉으려고하는데 그사람이 '그렇게 걱정되는데 왜 안데려왔어요? 데리고와야지' 하더래요 엄마아빠가 갑작스럽고 당황해서 아무말도안하고 서있었더니 '일단 앉으시고요 딸은 안데려와도 아들은 데려와야되는데.. '하면서 우리가 겪은일을 듣지도않고 줄줄꾀더래요 구체적이진않지만 딸은 한번죽을뻔하고 아줌마는 놀라서 나자빠지고 아저씨는 한번 호되게 홀리고 아들은 한번 지독하게 괴롭힘 당하지 않았느냐 대충 이런식으로?..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정작 그귀신은아닌데 그집에있는 귀신중에 하나가 엄마한테붙어서 자랑하듯이 이야기 해주었다고.. 아주재밌어 하고있다고 무당말론 그집에 귀신이 여럿인데 아주 악질인 귀신 하나가 나쁜짓을하고있고 그귀신은 재미로 그러는게아니라 진짜 화가 나있는 상태이고 나머지귀신중 지금 엄마한테 졸졸따라다니는 귀신은 그게 재밌어서 괜히같이 그런짓을한다고 티비끄고 소리내고 자잘한것은 다 엄마따라다니는 그 귀신짓이라고하더래요 아빠가 그러면 어쩌면 되는지 이사가면되는지 이것저것물으셨더니 아들을 데려왔으면 좋았을건데 안데려왔으니 어쩔수없고 자기가 어차피 그집에가봐야 될거같으니까 올라갈때 같이가서 살펴보겠다 그러셨대요 그러고 무당이 그집에있었던일을 자세히 해달라고해서 엄마아빠가 이것저것 이야기해드리고있는데 갑자기 무당이 사색이되서 빨리 애맡긴곳에 전화해보라고 그러더래요 이유를 물을세도없이 엄마아빠도 허둥지둥 고모할머니댁에 전화했는데 그때 오빠가 엄청아팠거든요 엄마아빠가고부터 머리가 너무아프다고 하루종일토하고 그래서 고모할머니가 오빠랑 저를데리고 병원열자마자 병원에갔는데 오빠가 진짜 갑자기 멀쩡한얼굴로 할머니 나이제안아파요 이러고 의사도 아무문제없다고 그래서 다시 집에왔더니 또 시름시름앓고 밤세 고모할머니는 그전날 밤부터 잠도못자고 오빠돌보시고 그때 엄마아빠가 핸드폰도없고 외할머니댁 연락처도없어서 연락도 안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전화끝내고 무당아줌마가 당장 가는게 좋지않겠냐고 본인도 같이가주신다 하셔서 엄마아빠랑 외할머니랑 무당아줌마랑 급하게 고모할머니집으로 갔대요 내려가는길에 오빠아픈걸어떻게 아셧냐고 엄마가 물으니까 엄마옆에붙어있는 그귀신이 갑자기 낄낄대고 웃고 너무 좋아하는꼴이 분명히 그 악귀가 애들한테 해코지를 했구나 싶어서 알았다는거에요 무당이야기를 듣고나서 엄마는 계속 오빠걱정에 우시고 외할머니는 달래주시고... 아빠는 무슨정신으로 운전했는지 기억도 안날정도로 정신없이 오셨대요 저는 낮잠자고 있을때 엄마아빠가 고모할머니댁에 도착하셨는데 고모할머니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보다 무당아줌마가 먼저 오빠한테달려가서는 오빠를 안고 막 우셨다는거에요 고모할머니는 생전처음보는 여자가 저희오빠를안고 우니까 놀라서 멍하니처다보고 엄마는 그때 아무이유없이 갑자기 서러워져서 무당이랑 같이 막 같이우셨대요 무당아줌마랑 엄마랑 정신없이 울고있을때 외할머니가 고모할머니한테 상황설명하시고 아빠는 차주차하시고 올라오시고 아빠가 자고있는저를 깨워서 집에가자고 하셨어요 고모할머니도 천주교셔서 그런걸 별로 달가워하지않으셔서 같이안가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고모할머니께 인사드리고 집으로가는데 차가 좁아서 저는 엄마무릎에앉아서가고 오빠는 무당아줌마무릎에 앉아서 갔는데 무당아줌마가 오빠를 계속 쓰다듬으면서 우리 ㅇㅇ이 우리 ㅇㅇ이 하고 계속 중얼거리셨어요 저는그때 그아줌마가 무당인거모르고 그냥 아는사람인가보다 생각했어요 신기한게 엄마아빠는 오빠이름을 그아줌마한테 한번도 가르쳐준적이없었다는데 아줌마는 오빠이름을 어떻게알았는지 집가는내내 오빠이름을 주문처럼외우셨는데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우는모습이나 말투로봐서는 아마 외할아버지 였을거라고 하셨대요 집에도착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무당아줌마는 오빠를 내려놓고 무표정으로 집안에 제일먼저 들어가셨고 다시 오빠를 끌어안거나 하지않았어요 집안에 들어가서도 특별한 행동은없고 그냥 이방저방 둘러보고 다니다가 유독 한참동안 멈춰서있을때가 있었는데 창고방이랑 안방화장대 앞이었어요 한참 돌아다니다가 작은방에가서 장농을열고 장농에있던 부적을 바로찾아 때버리는데 부적이 무슨 불에탄것도아니고 누렇게 반쯤 삭아있었어요 (후에 외할머니가 붙여두신 부적이다는걸 알게되었죠) 그러고 새부적을 척 붙히시고는 오빠한테 숨고싶으면 저번처럼 발길닿는곳에 숨으면된다 안전하니까 라고 하셨대요 그러고는 작은방에서 나와서 탁자를 갖다버리라해서 탁자가커서 아빠가 나중에 버리겠다고하니까 무당아줌마가 지금 당장버려야한다고 버리자고 하시는통에 엄마랑 아빠랑 무당아줌마랑 셋이서 탁자를 겨우 밖에다 내놓고 그러고는 또 안방화장대앞에 가서 한참있더니 버리면 큰일날거라고 일단 두라고하고는 화장대 맨밑서랍 깊숙히 접은부적같은걸 숨겨두시고는 누가 부적을찾거든 절대 어딨는지 일러주지마라고 우리가족한테 열심히 설명하셨어요 그러고 바로 창고방으로 가서 그방문에 부적을 붙혀두시고 되도록이면 들어가지 마라고하셨구요 그러고나서 뭔가 찝찝하다고 둘러봣던곳을 또둘러보고 또둘러보다가 갑자기 무당아줌마가 티비바치고있는 장식장에가서 장식장도 갖다버려야된다고 그래서 또세분에서 그걸 낑낑거리면서 빼냈는데 장식장뒤에 머리카락이 진짜 한웅큼이있는거에요 무당아줌마는 그걸보고 질겁을하셨어요 당장 쓸어없애버려야한다면서 바닥에 뭘쏟았는지 찐득한거에 머리카락이 한웅큼달라붙어있고 고약한냄새도나고 그런게있는데도 집에 벌레는 한마리도없었어요 엄마아빠는 장식장 버리러 가시고 무당아줌마는 수건를 빨아오셔서 독한집이야 독한집 하시면서 그 더러운머리카락과 찐득거리는걸 열심히 치우시더니 다치우고는 머리카락이랑 오물묻은 수건를 봉지에싸서 내다버리셨어요 엄마아빠한테 '뱀술에 사람머리카락 이다' 라고했대요 그 찐득한게 뱀술이었나봐요 그집에서 한바탕을하고 아줌마가 버릴건다버렸는데 아직은 아니니까 당분간은 말한거잘지키라고 본인은 다시자기집에간다고 몇달뒤에 굿이나하러 올거니까 그때까지만 잘버티고있으라고 말씀하신거 잘지키라는말은 계속 신신당부를 하고 가셨어요 오늘이야기는 여기까지구요.. 내일이나 내일모레 다시찾아뵐게요! 기다려주세요 무당아주머니가 다녀가신후에 집꼴이 좀 말이아니었어요 티비는 바닥에 떡하니 대충놓여있고 (내릴때 잘못건들였는지 티비는 고장났더라구요) 그리고 쇼파앞은 휑했죠... 근데 신기하게 아무일도없는거에요 진심 너무 일반가정집같아서 이상할지경으로요... 티비없어도 가족들끼리 잘놀았어요 (솔찍히 그후 집분위기는 더 무서워진거같았어요) 그래도 가족들이 전부다 약속이라도 한듯이 서로 무섭단이야기는 안했어요 그냥 거실에서 불켜놓고 제가 갖고놀던 살구랑 부루마블같은거 꺼내놓고 하고놀고 전 진심재밌었지만 엄마아빠는 억지로 웃고 놀고 그러고있었던거같아요 그러다 밤되서 가족끼리 우르르 화장실가서 다같이 양치하고 지금생각하면 웃긴데 가족들 차례로 볼일보고 나머지가족들이 밖에서 기다려주고 우르르 안방에들어가고.. 그렇게 그날 다같이 잘 잠이들었는데 밤세 자꾸자꾸 잠에서 깼어요 좀 몽롱하게 깼는데 바닥에 슥슥 소리나는걸 들었어요 근데 소리는들리는데 확인할수가 없었어요 무슨 수면제먹은거처럼 맥없이 다시잠들고 그런걸 반복했어요 눈꺼풀이 천근만근인 느낌?... 계속 그렇게 일어났다 기절했다 깨고 자고하는 중간동안에 슥슥소리는 밤세났던거같아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아빠 오빠 전부다 밤에 무슨일있었다고는 말안하는거에요 그래서 그소리는 저만 들은줄 알고 그냥 넘어갔어요 그렇게 한 한달은 가족 모두 잘 지내는거 같았어요 한달정도 지나서 날씨좀 쌀쌀해질때 쯤이었는데 오빠랑 저랑 학교갔을때 주인집 할머니가 찾아왔었는데 엄마아빠가 굿을해도되냐고 연락했더니 찾아오신거에요 오자마자 다짜고짜 엄마아빠한테 동네시끄럽게 무슨굿을하느냐고 집계약 얼마되지도않고 (집이 몇년안에 철거될거라서 계약이 길지않았어요) 좀 조용히 살다나가면 안되겠느냐고 화를내셨대요 한참 실랑이를하다가 엄마아빠는 홧김에 그러면 오늘하루 이집에서 주무셔보시라고 그러셨대요 근데 주인할머니가 그러시겠다고 하셔서 진짜 저희학교갔다왔을때 주인할머니가 계셨어요 솔찍히 엄마아빠는 진짜 주무시고 가신다기에 좀 이상하게생각되고 놀라셨대요 그냥 다툼도 있었고 오기로 주무시라고 하신거죠 오빠랑 저는 엄마아빠가 주인할머니 오늘 주무시고 가실거라고 그러시길래 할머니께인사드리고 어색하게 앉아있다가 같이 저녁식사하는데 그할머니께 엄마아빠가 작은방에 주무시라고 했었거든요 할머니도 알았다고하셨었대요 근데 갑자기 저녁먹다가 할머니가 창고방을 가르키면서 저방은 뭐로쓰고있냐고 물으시는거에요 엄마아빠 말씀으론 이미 다 설명 들으셔놓고 또물으신거래요 엄마아빠는 그냥 창고라고 다시설명했더니 식사하시다 말고 갑자기 그방을 구경하시겠다고 그방문을열고 들어가시는거에요 엄마아빠는 그때 너무놀라서 밥먹다가 더먹지도못하고 멍하니 그모습을 보고계셨대요 방안둘어보시다가 방문에있는 부적을보고 이런걸 왜갖다 붙혀놓았냐고 물으셔서 제가 '그방에 무당아줌마가 들어가지마라고 했는데요' 했는데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갑자기 그방에 주무시겠다는거에요 엄마아빠가 계속 말리고 설득했는데 끝까지 거기 주무신다고... 그래서 이불을 그방에 깔아드리고 저희가족은 그냥 안방에서 잤죠 근데 한참 자고있을때 엄마가 이상한소리를 들으셨대요 막 화내는 소리라고해야하나? 뭐라고 하는진 잘모르겠는데 분명누가 화내는소리같았대요 아무리생각해도 그방에있는 할머니 목소리인거같아 엄마는 아빠를 깨워서 그방으로가셨대요 아니나 다를까 방안에서 할머니가 어디있어! 어디있어! 죽는다! 진짜죽는다! 어디있느냐고! 뭐 이런소리를 하시면서 방안에서 뭘 던지시는지 책같은거 던지는소리랑 물건던지는소리가 났대요 엄마아빠가 놀라서 방문을 열려고하는데 뻑뻑하니 전보다 좀 안열리는 느낌이었대요 근데 방문을 열자마자 그할머니가 '여기있다!!! 하고 소리치시면서 방안에서 툭튀어나오셔서 문지방으로 달려드셨대요 엄마는 깜짝놀라서 막 소리를지르시고 그바람에 제가 깼어요 잠에서 깨서 그방쪽으로갔는데 할머니는 문지방에 막 달려드시고 아빠는 할머니를 막 뜯어말리면서 '여보 여관집좀 불러와! ' 하시면서 다급하게 소리치고 계셨어요 아빠가 할머니를 말리시면서 봤는데 할머니가 달려드는 문지방에 접어놓은 종이가 테이프로 발려있더래요 (문이 뻑뻑하게 안열린이유인듯) 우리가족도 모르게 무당아줌마가 부적을 붙혀놓고 가신거같았대요 아무튼 엄마는 잠에서깬 저를 방에 들어가라고 하시고 여관집으로 가서 아저씨를 부르러 가셨어요 전 방에들어가서 다시 잠들었구요 엄마가 여관 아저씨를 데려와서 할머니를 아빠랑 아저씨가 겨우 그방밖으로 데리고 나오셨는데 아빠말씀으론 그때 그할머니힘이 보통 노인네힘이아니라 장사였다고 아저씨랑 아빠가 함께말리는힘으로도 힘드실정도엿대요 근데 더이상한건 겨우 방밖으로 떼어내니까 할머니가 아무일도 없으셨다는듯 쇼파로 가서 주무셨다는거에요 그모습을 여관아저씨랑 엄마랑 아빠가 진짜 한참넋나간듯 보고계시다가 여관아저씨가 자기어머니가 왜저러는거냐고 따져물으시는데 엄마아빠도 뭘 알아야 대답을 해드리죠... 아저씨도 결국 내일 이야기하시자고 그할머니 부축해서 내려가셨구요 그일이 있는동안 저는 다시 방에와서 오빠옆에 다시누웠다가 얕게 잠이들었어요 그때 제가 꿈을꿨는데 제꿈에 노란한복을입은 아저씨가 나와서 제이름을 부르시면서 이리로 와보라는거에요 저는 거부감이 하나도 들지않아서 아저씨한테 가까이갔어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갑자기 '일어나!!!' 하고 호통치시는데 그소리가 무슨 귀바로옆에서 천둥이 치듯이 크게들리는거에요 무섭다는느낌은아니었고 그냥 많이 놀랐어요.. 무튼 너무 놀라서 잠에서 벌떡 깼는데 꿈에서본 아저씨얼굴이 너무생생한거에요 방은 깜깜하고 조용한데 방문은 살짝열려있고 밖에서 어른들소리가 들리는데 왠지 거실에 나가기보다 오빠를 깨워야겠다 싶어서 오빠를흔들어 깨웠어요 그랬더니 오빠도 깜짝놀란사람처럼 벌떡 일어나는거에요 저는 계속 멍했고 오빠도 뭘생각하는지 아무말없고 둘이그냥 엄마아빠 들어오실때까지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엄마아빠가 그때 방에들어오셨어요 두분다 방에들어오셨다가 저희가 앉아있는거보고 놀라셔서 불부터 키시고 나쁜꿈이라도 꿨느냐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그냥 어떤 노란옷입은 아저씨가 꿈에서 나보고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꿈 꿨다고 그아저씨 목소리가 너무커서 놀라서 일어났다고했어요 그랬더니 오빠도 꿈에서 그아저씨를 봤다는거에요.. 오빠는 꿈속에서 잠에서깼는데 엄마아빠랑 제가 방안에서 뭘찾고있더래요 오빠가 엄마아빠한테 뭘찾는거냐 물으니까 엄마가 오빠한테 '야 밖에 무당아줌마 오셨는데 부적을 가져오시라고 하신다' 라고 했데요 그러고 곧바로 아빠가 '근데 어디있지? 야 너는 기억하니?' 그러시는데 오빠는 아무리생각해도 이상했대요 무당아줌마가 그렇게 몇번이나 말했는데 엄마아빠가 왜기억못하지? 하는생각도들고 게다가 제가 막 빠른속도로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방 장롱밑을 막 보고다니는게 너무 무섭고 이상하더래요 가장결정적으로 엄마아빠가 저희한테 야 라고 안하시거든요 항상 누구야 이름부르시거나 아들~ 딸~ 하고 부르시지.. 아무튼 그게이상해서 밖에진짜 무당아줌마가 있는지 확인하려했데요 마침 방문이좀 열려잇어서 밖에 나가진못하고 문쪽에 좀 가까이갔는데 누가 열린방문사이에 서있었데요 처음엔 잘안보이다가 서서히 그사람모습이 뚜렸해지는데 하얀옷을입은 그 산발머리여자가 서있더래요 근데저번과는 다르게 오빠가 그여자얼굴을 정확히봤는데 얼굴이 뱀비늘처럼 되있고 귀까지 찢어진 입에서 뱀혀를 쭉빼고잇는데 방에 못들어오는지 계속 아무것도없는 열려있는 방문으로 들어오질못하고 머리를 허공에 유리라도있는거처럼 쿵! 쿵! 찍고있더래요 그러다가 오빠가 더가까이가니까 머리를 막 미친속도로 쾅!쾅!쾅!쾅!쾅!!!! 오빠가 너무놀라서 뒤로 자빠졌는데 넘어질때 등에 뭐가 부딫혀서 봤더니 노란옷을입은 아저씨가 천둥처럼 큰목소리로 그 여자한테 '가!!' 하고 소리치셨다는거에요 그때 제가 깨워서 꿈에서 깼는데 오빠도 그아저씨얼굴이 너무나도 생생하다고 하는거에요 결국 그날밤은 가족들모두다 또 뜬눈으로 밤을세고 말았죠.. 그런데..... 며칠후 외할머니께 엄마가 전화해서 그날 있었던있을 말씀드리는데... 외할머니는 이야기듣자마자 그꿈에 노란옷입은 아저씨가 외할아버지 인거같다고 하셨어요 알고보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엄마를낳고 엄마 첫돌날 입으신옷이 그 노란옷이었어요.. 진짜 신기하게도 지금은 꿈속에서 본 얼굴이 잘기억 안나지만 그후 얼마안지나 외할머니댁에서 외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오빠랑 제가 그때 꿈에서 본 할아버지가 확실하다 했었데요.. 아무튼 오늘이야기는 여기까지구요 아침에 저랑오빠를 학교에보내신 아빠는 먼저 여관집으로갔어요 내려갔더니 주인할머니는 안계시더래요 새벽에 도망치듯이집에 가셨다고 다행히도 여관아저씨와 대화끝에 굿을할수있게되었어요 그날 주인할머니꼴을 함께보셨으니.. 할머니가 왜그랬는지는 아직도 몰라요 그뒤로 주인집할머니를 한번도 못봤거든요 웃긴건 그할머니 본인도 우리집에서 그렇게놀라서 도망치셔놓고 끝까지 우리가족 이사는 못가게하시더라구요 무튼 그날 굿하는걸 허락받고 아빠는 한시름놓으셨대요 그렇게 또 며칠이 흘러갔는데 시간이가면갈수록 제몸이 너무피곤한거에요 밤마다 잠에서 깨고 슥슥소리도 밤세들리고 진짜 황달온사람처럼 얼굴도 누렇게뜨고 엄마가 걱정이되서 저를 병원에 대려갔더니 스트레스받고 많이피로한거같다고했대요 근데 이상하게 가족들은 밤에 한번도 안깨고 잘자는데 저만 유독 하루밤에 10번도넘게깨고 그시기에 학교에서 코피도 여러번 터지고 뭘먹으면 자주체했어요 피곤해서 스트레스성으로 소화불량이자주와서... 그러던 어느날은 제가 엄청 아픈날이있었어요 그날 엄마가 밤에 저를 돌보시다가 너무 졸리시더래요 12시에 너무졸려서 미칠거같은데 제가 혹시나 엄마잠든사이에 큰일날까봐 이를악물고 졸음을 참으셨는데 12시 반쯤되니까 제가 갑자기 엎드려눞더니 몸을 웅크리고 무슨 절하는거같은자세로 한참을 있더래요 엄마는 제가 배가아파서 그러나 싶으셔서 'ㅇㅇ아 왜 배아프니?' 하고 저를 일으키려고 하셨는데 제가 꿈쩍도안하더래요 보통때면 제가그때 뭄무게가적게나가서 엄마가 번쩍들수도있을만큼인데 옴짝달싹도안해서 엄마가 다급하게 아빠를 깨우셨대요 근데 아빠도 안일어나시더라는거에요 엄마는 한 10분을 저를 어떻게해보려고 씨름을하시다가 너무피곤하고 저에게 못이겨서 나가떨어지셨데요 근데 갑자기 제가 조금씩움직이더니 땅에 머리를처박고 절하는자세로 방을 막 기어다니기 시작했데요 손톱을 세워서 바닥을 긁으면서다녔대요 빠르지도않고 느리지도않고 이상한포즈로 손톱이 바닥에스쳐서슥슥슥 소리내며 기어다니는데 엄마는너무 무서워서 멍하니 그걸 보고계셨대요 그모습을 아무것도 못하고 홀린듯 지켜보시다가 본인도 모르게 잠드셨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안가시더래요 그래서 당장 외할머니께 전화드려서 제가 아프단것과 밤에본것을 말씀드렸더니 그다음날 당장 무당아줌마랑함께 내려오신다고 하셨대요 오후에 무당아주머니께서 전화가오셨어요 제 안부를물으시고 아무래도 제가 아프고하니 오늘밤은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요령을 알려주셨대요 가족들에겐 절대 알리지말고 12시가되면 화장대서랍에 숨겨둔 부적을 꺼내서 오른손에쥐고 그걸 품에 안고 방문을 등지고 앉아있으라고 12시반이 지나고부터 잠이 엄청나게쏟아질건데 4시까지 절대로 잠들면안되고 소리도내지말고 숨죽여있어야되고 또 제가 어떤행동을하던지 건들이지말고 가만히 부적만품고있으라고 하셨대요 4시가되면 화장대서랍중에 다른곳에 부적을 숨겨두고 그다음날엔 오빠랑 저를 학교에보내지말고 가족모두 기다리라셨대요 그날밤이 되고 가족들이 모두잠들고나서 엄마는 계속 저를 돌보시다가 12시가 되기 좀전에 화장대에서 부적을 꺼냈대요 그걸 아줌마가 일러주신대로 오른손에쥐고 품에 안은채 문을 등지고 앉았는데 정말 잠이 미친듯이 쏟아지더래요 입안쪽 살을 깨물어가며 잠을 참고있었는데 제가 또 엎드려서 절하는자세를 하더래요 엄마는 놀랐지만 그냥그모습을 숨죽여서 지켜보고있으셨데요 그런데 제가 전날처럼 얼굴을 처박고 손톱을세우는게아니라 무슨 강아지처럼 엄마한테 기어서 와서는 엄마 옆에 강아지가 눞듯이 가만히 누워있더래요 제행동을 보느라 잠이 좀깬것도 잠시이고 전날처럼 홀리기라도한듯 잠이쏟아지는데 볼을 그렇게 피가나도록 깨무는데도 너무 졸려서 어쩌다 잠들때도 있을정도였데요 근데 그럴때마다 제가 엄마다리위에 두손을올리고 꾹꾹 눌러서 깨우더라는거에요 그렇게 겨우 4시까지 버텼더니 저는 언제그랬냐는듯 제자리로 돌아가 잠들고 엄마는 가족들이 모르게 다른서랍에 부적을 숨기고 잠드셨대요 그러고 그다음날 무당아줌마가 외할머니랑함께 집에찾아왔어요 이상하게 아줌마가 갈치를 한가득 사들고 찾아오셨는데 엄마한테 갈치를 주면서 저녁밥은 이걸로하시라 그랬대요 갈치는 냉장고에 넣어둔뒤에 무당아줌마랑 우리가족은 거실에 모였어요 아줌마가 한참을 아무말도없이 집안 이곳저곳을 보시다가 갑자기엄청 상냥한말투로 엄마한테 '혹시.. 미미라는 고양이 기억하세요?' 하고물으셨는데 엄마는 그말을듣는순간 머리에 뭔가 쿵 하고얻어맞은기분이 드셨대요 미미는 고양이었대요 엄마가 중학생 나이쯤 키우던 고양이었는데 미미는 길고양이었는데 새끼를 낳다가 새끼는 몸이너무약해서 죽고 미미도 거의죽어가던걸 엄마가 주워와서 외할머니 허락에 키우셨다는거에요 외할머니는 미미한테 살쾡이가 살쪘다고 살찐아하고 불렀는데 엄마는 그게너무 마음에안들어서 외할머니모르게 미미라는 이름을 붙혀주셨대요 근데 그이름은 엄마만 알고있고 설상 외할머니 아셨다고해도 무당아줌마가 그걸 아실턱이 없는거죠 정성들여서 돌봐서 회복한뒤로도 거의 10년을 키웠는데 사실상 키웠다고도 할수없는게 원래 길고양이인지라 집에 잘있지는않았데요 그런데 항상 엄마가 학교다녀올때 대문쪽에 가만히앉아서 기다리고 외할머니가 주는 밥은안먹고 엄마가주는 밥만먹고 엄마를 그렇게도 좋아해줬대요 그런데 어느날부터 안보였다는거에요 장마철이라 비까지내리는데 고양이가 돌아오질않으니까 엄마는 며칠을 비맞으며 고양이를 찾았는데 결국찾을수 없었대요 엄마는 당연히 기억한다고 대답하셨고 무당아줌마는 뭐가기쁜지엄청 좋아하셨어요 박수까지 막 치면서 그러곤 한동안 상냥한말투로 저한테도 괜찮냐고 말을 걸고 뭐 쓸데없이 가족들 하나하나한테 안부를물으시고 그러시다가 (아마 그고양이인것도같아요) 그러다가 갑자기 원래 말투로 돌아오셔서는 엄마한테 그 고양이랑 전생부터 인연이 아주깊다고 여러번 생을 돌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은인이었던 인연인데 그런데 그고양이가 지금 딸(저)옆에 있다고 .... 안방에서 화장대에있던 부적은 그방에 귀신이 들어오면 그귀신이 작열통(불에 타죽는고통)을 느끼게 하는 부적인데 계속해서 달려들면 혼이 완전 사라지게된다는거에요 근데 그 고양이가 엄마와 우리가족을 지키려고 매일밤 혼을깎아먹는 작열통을 견디면서 그방을 지킨다고 하시는거에요 처음왔을때 무당아줌마가 부적으로 괜찮을거라고 고양이를 설득 했는데 고양이가 끝까지 지키겠다고 그방에서 옴짝달싹을 안한다고하셨어요 엄마는 그이야기를듣고 막 우셨어요... 무당아줌마는 부적을 없애주고싶지만 부적없이는 집에있는 귀신이 팔뚝만한 구렁이인데 그 구렁이로부터 고양이는 절대 가족을 지켜줄수없고 때면 가족이 큰일날거라 그럴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더군다나 고양이가 가족을 지켜준다고 딸옆이있어봤자 귀신이 붙어있으면 수호령이아닌이상 산사람은 힘들다고 고양이는 그것을 모르니 오늘은 고양이혼이 다갉아먹히기전에 고양이를 보내주러오셨다고 그날 저녁식사후 고양이를 성불시키는 제사를간단하게 지냈어요 굿이라기보단 간단한제사였어요 사오신갈치는 제삿상에 올라갔구요 그때 저는 무당아줌마가 시키는데로 가만히앉아있었는데 제사지내는 중간중간 기억이 뚝뚝 끊기듯 안나는부분이있구요 엄마아빠말로는 그냥아무일없이 끝난일이래요 무당아줌마는 제사후에 곧바로 가셨어요 당장굿은못하니까 몇달더 있으라고하셨는데 이유는모르겠어요 그당시에 가족들이 왜요 이유가뭐에요 당장해주세요 이런식으로 따지고들 입장도아니었고 엄마아빠도 그런성격이 못되셔서 못물어 보셨다더라구요 아무튼 그제사를지내고부터 일단 저는 잠을잘자게되었어요 근데 무당아주머니가 가시면서 새로 당부하신게있었는데 오빠한테 꿈에 뭐가나와서 말을걸든간에 대답을하지마라고 하더래도 4번이상 대답하면안된다고 그러고 내려가셨는데 그뒤로 3개월동안 가족들끼리 안방에 갇히다시피살았어요 이미 그집에 겁을집어먹은탓에 스트레스도 만만치않았어요 무당아줌마가 안방말고는 잠자리로 안전한방은없다 하셨거든요 그렇게 3개월동안 오빠는 잊을만하면 요상한 꿈을꿨대요 오빠일기에 적혀있는거만 말씀드리자면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어디아파서 왔냐고 묻는꿈 길을잃어버려서 경찰서에 가서 경찰한테 이름등등을 질문받는꿈 엄마가 화내시면서 뭘잘못했느지 말할때까지 때린다고 때리는꿈 심지어 퀴즈쇼에나가는꿈까지 그게 무당아줌마가말하신 질문인지는 잘몰라도 신기하게도 꿈을꿀때마다 오빠는 남자목소리가 꿈이다 꿈이다 ㅇㅇ아 하고 말하는목소리를 들었다는거에요 오빠도 꿈인줄 몰랐으면 대답을했을지도 모르지만 매번 꿈인걸알게해준거죠 그렇게 시간이가고 마지막한달째에는 오빠가 꿈을 전혀 꾸지않게되었대요 신기하게 그시기에딱 무당아줌마가 연락도없이 찾아오셨어요 밤중에 갑자기 젊은여자한명하고 같이 오셨는데 원래는 사복입고다니시는데 옷까지 무당처럼 차려입고오셔서는 가족들전부 오늘밤다른곳에 자고오라하셨어요 그날 엄마랑 저희는 고모할머니집에자고 아빠는 가게에서 쪽잠자고 아침일찍 집에갔더니 같이왔던젊은여자는 이미돌아갔는지없고 무당아줌마가 끝났다고 인사하고 가셨대요 가시면서 집에향냄새빠지면 마누라랑 애들데리고 들어와서 이사갈때까지 편히지내라고 하셨는데 무당아줌마한테 돈챙겨드렸더니 외할머니한테 은혜입은게있다고 돈거절하시고 그냥가셨대요 그뒤로는 거짓말처럼 아무일도없었고 우리가족들은 2달뒤에 이사를 갔어요 이사갈때도 주인할머니는 못뵙고 후에 아빠가 동네사람들한테 들은이야기로는 그집에 전에 산좋아하는 아저씨부부가 살았는데 산에가면 뱀을 잡아다가 산채로 술을담그고 그걸모으는게 취미였대나봐요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구요 영적으로 힘드신분들이 무당아주머니 소개해달라고 하시는댓글 많이읽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분은 지금 이세상분이아니세요 도움이되지못해 죄송합니다 아무쪼록 그동안 많이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감사합니다 안녕히계세요! ----------------------------------출처 네이트판 마이너스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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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단편] 뻐꾸기 시계
웃대의 초록환타님 작품입니다.
전화 업무란 것이, 상당한 인내를 요구로 하는 것이다. 전화가 끝나도 그 구매자가 상품을 구.매.할.지.아.닐.지.는 절대로 알 수 없다. 물건에 대한 찬사를 터뜨린 고객이 되려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혹평과 불만을 토해낸 고객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구입’ 버튼을 누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그가 전화 받는 모든 고객은 잠정적 고객원이
된다. 어떤 전화에도 성심껏 상품 안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흔 중반에 접어든 나이의 남자가 일하기에는, 또 남에게 명함을 내밀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직업 이긴 하지만 그는 열심히 일했다. 그는 러브 젤과 각종 바이브레이터, 흥분제와 최음제들에 대해 부지런하 게 설명했다. 간혹 새로 나온 제품이 있을 땐, 누구보다 먼저 제품에 대한 설명을 빠르게 이해했다. 그는 떳떳한 직장인이었다. 물론 그 자신이 생각기에 그렇다는 의미다. 어쩌면, 그냥 스스로 떳떳하다고 착 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정시에 출근했고 정시에 퇴근했으며, 여러 칸칸이 나뉜 업무 공간에 서 누구보다 열심히 맡은 역할을 수행했다. 좋은 구매자만 있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샐러리맨이
된다. 문제는 좋은 구매자가 별로 없다는 데에 있었다.
1.
“워낙 중국산 바이브레이터가 많아서 솔직히 조금 의심이 되네요. 저번에 모르고 샀더니 5분 돌다가 고장 나더라고. 여기 보니까 환불 불가라고 씌어 있는데다가…” “백퍼센트 믿을만한 제품입니다, 손님. 환불불가라는 건 물건 특성상 그런 겁니다. 구매하신 손님들 반응도 아주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느냐고…. 아저씨가 써봤어요?”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귀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척 봐도 한참은 어린놈이었다. 참자, 수화기를 들고 있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직접 써보진 않았습니다만….” “얼씨구. 써본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리 자신 있게 권해요? 웃기네. 이 아저씨.” “상품 평이 많이 있으니까 한번 읽어보시면 될 겁니다. 저희가 자신 없는 제품은 결코 내놓지 않아요.” 상대가 피식피식 비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거 죄다 알바라는 거 알거든요. 사람 살에 들어가는 건데 주의해서 사야지, 안에서 폭발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수화기너머에서 자지러지듯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앞에 수화기를 잡고 있는 한 녀석과 둘러싸고 박 장대소하는 고삐리들의 모습이 훤했다. “야, 이 씨.발새끼야!” 순식간에 전화를 받던 동료들의 시선이 모조리 그에게 향했다. “뭐? 씨.발새끼? 이 게이새끼가 어디 손님한테 대고 욕질이야?” “어린 노므 새끼가, 너 뭐하는 놈이야?” “낄낄낄… 야, 그런 거 팔지 말고 그냥 너희들이나 평생 쓰다 뒈져. 오케이? 에이즈 옮을까봐 전화 먼저 끊는다.” 뚜- 뚜- 소리가 귀에 울렸다.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데스크 위에 있던 생수병의 목을 비틀고 통째로 마셨다. 가는 물줄기가 붉어진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전화 추적을 하던가 해야지, 잡아 족쳐야 돼.” “내비 두쇼, 그런 놈들 한 둘이요? 매번 그리 열을 올리면 아저씨 염통만 나가지… 좀 참아 보드라고요.” 옆 자리 이 씨의 말에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 부채질은 했지만 홧홧함은 가시지 않았다. 이 씨 는 입맛을 쩝 다시고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이반들의 천국, 게이 포.르.노 세상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2.
“아빠 왔다” 대답은 ‘당연히’ 없었다. 그가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말하고 답하는 일반적인 대화 기준은 사라진 다. 그는 닫힌 방문을 흘끗 바라보았다. 나무문이지만 강철로 만든 것보다 더 견고해보였다. “오늘은 말이다. 또 장난전화가 왔다.” 사온 야채들과 생선들을 꺼내어 식탁 위로 죽 나열했다. “그래서 아빠가, 점잖게 충고해줬단다. 짜식들, 장난전화 몇 번 걸리는게 뭐 대수겠냐.” 랩을 꺼내 뜯었다. 각각의 재료들을 칭칭 말아 단단히 봉했다. 냉장고문을 열어 하나하나 안으로 던져 넣었 다. 음식물이 들어가자 구형 냉장고는 온도를 맞추어 올렸다. 기계 진동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TV를 틀었다. 그는 뉴스를 보지 않는다. 내셔널 지오그래피에서 채널을 멈추고 캔 맥주를 딴 채 소파에 앉 았다. 풀벌레 소리가 꾸준하게 브라운관에서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아르마딜로는 자기 보호 성향이 매우 강한 동물입니다. 포식자가 나타나면 몸을 둥글게 말고 보호태세에 들어갑니다. 겉껍질은 매우 딱딱해서 날카로운 이빨들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탁월하지요.” 쥐를 닮은 생물 하나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 늑대가 다가와 이리저리 놈을 굴린다. “음식을 충분히 먹은 아르마딜로는 본인이 안전해질 때까지 얼마든지 몸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안전하다고 확신하기 전까지 절대로 갑옷을 벗지 않지요.” 그는 빤히 그 노란 쥐새끼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직도 노랑 공처럼 말려 있었다. 발을 멋대로 뻗대고 편 히 누웠다. “내일 아침은 카레 해 줄 테니까. 많이 먹어라” “좋아하잖아, 카레” “그렇지?” 대답이 없으므로 대화는 성립이 안 된다. 칠이 벗겨진 괘종시계에서 뎅, 뎅, 뎅 소리가 들렸다. 고장 난 까 닭에 뻐꾸기가 튀어 나오지 않는다. 언제부터였더라…. 시계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맥주를 한 모금 더 들이 켰다. 눈을 떠보니 브라운관이 파랗게 변해 있었다. 정규채널이 모조리 끝난 것이다. 반쯤 남은 캔 맥주가 엎질러 져 있었다. 옆에 놓인 휴지를 꺼내 쏟아진 맥주를 빨아들이려 했지만 휴지는 자꾸 곤죽이 되어 갔다. 한 무더기 쌓인 휴지를 뒤로하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다. 그는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발뒤꿈치를 치켜 들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한걸음씩 내디뎠다. 한 발자국씩에 넉넉히 시간을 들였다. 겨우 다다랐다. 그는 문 앞에 서서 폭탄을 해체하는 대테러요원처럼 조심스레 움직였다. 허공에서 천천히
미끄러지는 그의 얼굴 뺨이 문에 닿았다. 차가웠고, 소름이 돋아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했다. 집중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분 명히, 거기 있었다. 두께가 오 센티 남짓한 나무문을 간격으로 부자는 대치하고 있다. 자고 있을까. 조심스럽게 얼굴을 뗐다. 처음과 같이 시간을 들이며 방문에서 멀어졌다. 덕분에 그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 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3.
아들은, 녀석과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가 생각났다. ‘더티 해리’를 보았다. 부자가 함께 보기에 더할 나 위 없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아들과 터프한 서부 총잡이들의 이미지를 느껴보려는 시도는 일반적인 아버 지의 것이었다. 시도는 반만 성공했다. 아들은 황량한 사막의 바람과 거친 황야의 술집에는 관심이 없었다. 줄곧 나오는 당 시 최고의 권총이었던 44구경 매그넘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영화가 끝난 후 무심히 하나만
물었다. “주연 배우가 누구였어요?” 물론 그건 클린트 이스트 우드였다. 현대에서도 그만한 남성적 입지를 가진 배우는 별로 없다. 아무튼 그렇 게 물어오는 녀석의 눈은 무심해보였지만, 모종의 반짝거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그가 흑백영상으로
‘공룡 백 만년’을 보면서 금발의 글래머 여배우 라켈 웰치를 바라보았을 때와 같은 묘한 흥분을 포함한
눈이었다. 무의식적 자각이랄까, 불안함에 그의 시도는 연이어 계속 됐다. 이소룡 주인공, ‘와호장룡’. 성룡의 ‘취 권’. 강하고 패도적인 영화는 두 부자의 꾸준한 취미가 되었다. 그는 매번 아들과의 관전 포인트가 다른
것을 어렴풋 느꼈다. 미식축구와 이종격투기를 배우게 했다. 아들은 그럭저럭 따라왔다. 그러니까, 그의 생각에는 아들이 진정 한 남자가 거치기에 이상적인 것들을 상당수 습득했다고 느꼈고, 일말의 안도를 느꼈다. 하지만 클린트 이 스트우드를 바라보던 녀석의 시선은 너무 컸다. 남자가, 롤 모델로서 이상적인 남자를 바라 볼 때의 시선과, 이상적인 여자를 바라 볼 때의 시선은 다르다. 아마도 그래서, 그의 아들이 생일파티 때에 ‘남자를 좋아해요’ 라고 선언했을 때 당연하게도 놀라지 않았 던 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는 당연하게도 화를 냈다. 그것도 엄청나게.
무지막지한 분노 끝에 아들은 배척되었다. 아들은 방으로 숨었지만, 방문은 걸어 잠기지는 않았다. 당시에
문은 단지 문으로써만 기능했을 따름이었다. 그게 철옹성으로 바뀌기까지 어떤 개입이 있었고, 그 사건은
그 누가 만든 것도 아니라 아들 스스로가 부른 것이었다. 아들은, 사춘기였고 누군가를 벅차게 좋아해 볼 수 있는 때였다. 그것이 녀석 또래의 소녀였더라면, 그는
아버지로서 퍽 즐거운 시선을 누렸을 것이다. 한바탕 슬쩍 지분거린 뒤, 아버지다운 조언 몇 마디면 해결 될 해프닝이었다. 아니면 스스로 문제를 가지고 끙끙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던가. 단지, 그게 아니었을 따름이다. 아들은 고백을 했고, 상대방 남자아이는 거절한 모양이다. 아들은 원치 않 는 커밍아웃을 당했고, 학교에서 1년을 버텼다. 그 1년 동안, 녀석은 그야말로 남자답게 투쟁한 모양이었 다. 그리고 나서 아들은 자기 방을 철저한 요새로 삼았다. 그러니까 녀석은 한마디로, 졌다. “히키코모리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그 수요가 많은 사회 부적응자를 그렇게 불러요. 타인과 부대끼는 걸 두려워하는 거죠. 처방?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이건 오롯이 개인의 문제에요. 이해의 접점을 찾아야죠.” 의사는 아들의 동성애를, 힘겨운 고백을, 따돌림에의 저항을 그렇게 진단했다. 처방 없음. 알아서 하시오.
이해의 ‘접점’을 찾으시오. 대형 매그넘과 쌍절곤과 중국 권법을 제외한, ‘접점’
4.
카레가 서서히 끓었다. 그는 아들이 싱겁게 먹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간을 모자라게 했다. 자신이 먹을 분량 만큼만 덜어 따로 소금을 더 넣었다. 완성된 카레를 도시락에 천천히 담았다. 따뜻한 밥과 따로 담아 밑반 찬들을 꾸려 넣었다. 완성된 도시락을 방문 앞에 놓았다. 언제 내놓았는지 까만 비닐봉지가 요강과 함께 밖에 놓여 있었다. 그는 밤새 붉어진 오줌을 변기에 따라 버 리고, 비닐봉지를 가위로 오려 신문지로 쌓인 대변 역시 물속으로 낙하 시켰다. 물을 내리고 화장실을 나섰 다. “현장조사?” “그렇다는구만. 환장 하겄소. 안 그래도 남세스러워 죽겠는데, 현장 조오사?” 고객 욕구 파악이란 명목으로 그들에게 떨어진 ‘게이 바 탐사’는 충격적인 임무였다. 심지어 물건 상담
업무를 맡고 있던 그가 속한 팀까지 모조리 그곳으로 답사를 가야했다. 그는, 유능하진 않지만 누구보다 헌 신적인 직장인이었으므로, 동료들의 불만에 적당히 맞장구치며 술렁거리는 체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상담업무를 지속했다. 낮 동안 꾸준히 전화가 왔고, 한 두건의 전화를 제외하면 모두 평범 한 고객이었다. 그렇게 업무를 마치고, 녹음기와 종이가 끼워진 차트를 들고서 밖으로 나갔다. 2인 1조로 배정받은 사람은, 바로 옆자리 앉은 이 씨였다. 그는 항문에 정조대를 하고 가야하는 것 아니냐 며 쉼 없이 낄낄 거렸고, 그는 그런 이 씨의 농담에 악의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의 농담 한마디에 가슴이 깊 이 내리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야간업무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늦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들은, 밤늦게까지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도 그의 방에만 있겠지. 핸드폰을 꺼내 1번을 눌렀다. 신호음이 흐물흐물 늘어졌다가 마침내 받을 수 없다 는 여자의 안내음이 들렸다. “도착했구만, 형씨는 여기 들어가쇼. 난 저쪽 가볼텡게. 우리 표정 컨트롤 좀 해줌서 딱 다섯 사람씩만 인터뷰 따내는 기요. 이따가 요기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드라고요. 늦어도 2시까진 꼭 나올 테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 안으로 들어섰다. 지하로 내려가 처음 느낀 것은. 의외로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외설스러운 복장과 끈적끈적한 스킨쉽 같은 건 볼 수 없었다. 일반 펍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미 러볼 대신 은은한 반사조명이 바 전반을 옅게 비추고 있었다. 몇 몇 남자들이 테이블 앞에 앉아 각자의 잔 에 담긴 술을 마셨다. 그는 녹음기와 차트가 든 가방을 한번 두드려보고는 쉼 호흡을 했다. 가장 가까이에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가볼까, 하는 생각과 달리 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힘겹게 걸음을 뗐 다.
5.
대화를 하다가 느꼈지만, 남자는 상당히 젊었다. 스물 초반쯤으로 보였다. 남자라는 말보다 청년이라고 부 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로. 그러니까, 벌써 그 나이에 성 정체성을 찾고 이러한 전용 바를 찾을 정도 가 된 것이다. 그러한 그의 말에 청년은 ‘찾은 것이 아니라, 깨달은 것’ 이라고 그의 말을 정정했다. 태생부터 게이라는 의미다. 아무튼 청년은 그가 이 바에 찾아오게 된 계기를 상당히 흥미로워 했다. “좋은 시도에요” 한 마디로 표현한 청년은, 일반 이성애자들이 그와 같은 이반들과 이렇듯 사소하게라도 조금씩 접촉해나가 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비록 포.르.노 물품을 팔려고 왔지만, 나랑 이렇게 대화하고 있잖아” 청년은 자신이 마시던 것과 같은 것으로 그의 음료 하나를 샀다. 그는 거절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처음에, 혼자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보는데요. 그 있잖아, 아저씨 경우대로 말하면 죽여주는 여자를 봤을
때 가슴이 짜릿! 한 거 말이에요. ‘대부’를 보는데, 마이클 꼴레오네 아시죠? 알 파치노가 연기했잖아 요. 그게 나한텐 그거였단 말이야.” 청년은 손을 권총처럼 취하고 허공에 한방 쏘는 시늉을 했다. “최고였죠. 그건, 그 전까지 있었던 모든 가치관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남자는 여자만 사랑해야 된다 고 교육받은 10년이 송두리째 박살나던 순간이었다고요.” 그는 잠자코 자신의 컵을 바라보고 있다가 잔을 들어 꿀꺽 꿀꺽 삼켰다. 휘유, 하고 청년이 눈을 크게 뜨 고 바라보았다. 다 마시고 나자 기침이 올라왔다. “그거 무지 독한 건데, 괜찮겠어요?” “한잔 더” 청년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한잔 더 주문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다 빌어먹을 정도로 똑같다. 그게 라켈
웰치일 때도 있고, 클린트 이스트 우드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한테는 알 파치노일 수도 있는 거다. 그 금발의 여배우가 그에게 주었던 어떤 이미지들을, 누군가는 단단한 턱과 곧은 어깨에서 발견 할 수도 있 는 거다. 그건 이해의 문제보다 ‘받아들임’의 문제였다. 여전히 그의 집에는 아들이 유배되어 있다. 괘종시계가
몇 번이나 울렸을까. 그런데 그는 이곳에서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다. 게이 바에서, 청년 게이와. 그 빌 어먹을 접점. 이게 진보일까. 물어볼 사람 어디 없나. “아저씨 재밌네요. 나가서 한 잔 더 할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관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청년은, 씻고 있었다. 화장실 문 앞에 벗은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매트리스에 앉은 채 시계를 흘끔 봤다. 새벽 한 시 반이다. 이 씨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거의 다 됐다. 그 는 걸어두었던 자신의 외투를 찾아 조용히 걸쳤다. 신발을 신고 방문을 소리 없이 열었다.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6.
“이제 오시는 고마, 어째, 인터뷰는 많이 따셨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그랗지요? 내도 점마들이 내 몸을 눈으로 훏는기 아닌가 싶아라 오금이 저리갖고 할 수가 있어야지요. 낄낄낄.” 그가 웃지 앉자 이 씨가 고개를 옆으로 빼고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와 그라시오? 경우 없는 일이라도 당해뿌셨소?” “아들이 기다려서 그래. 빨리 가봐야겠어.” “웜매, 아들이 있었소? 난 여태 몰랐네…. 시간이 몇 신데 자겄지라. 몇 살이나 되요?” “모르겠어.” 이 씨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기 뭔 말이요. 아들내미 나이를 모른다교?” “그래, 몇 살이었지. 응. 몇 살이었지.” “허… 참.” 이 씨가 입을 쩝 다시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언능 들어가서 자던 거 흔들어 깨움서 나이 한번 물어보쇼! 애비가 새끼 나이 모르는게 말이 되덜 합니까 그래. 부자지간 왠수 졌소?” “사실 말이야. 그런 것 같애” “웜매? 을마나 옴팡지게 화나 나 부렀음 지 아빠하고도 말을 안 할려고 한 대요. 아따 싸가지.”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아주 후레자식이야. 싸가지 없는 놈.” 피식 피식 거리다 박장대소하는 그를 보고 이 씨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 너털, 마주 웃음을 놓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빠가 너 좋아하는 치킨 사왔다.” 침묵. “닭, 무지 비싸더라.” 침묵. “너 프라이드치킨 좋아하지? 내가 좋아하는 양념치킨 포기하고 사온거야.” 부스럭 부스럭 포장을 뜯자 노랗게 튀겨진 치킨들이 보였다. 그는 치킨 봉지를 들고 아들의 방 문 앞으로
다가갔다. 방 문 앞에 검은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닭튀김을 놓고서 봉지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선반에
놓인 가위로 봉해진 봉지를 갈랐다. 변기 위로 떨어진 것은 머리카락이었다. 여자의 것처럼 길게 자라난 몇 뼘의 머리카락. 견고하고 질겨보였 다. 그러나 잘려 있었다. 아들은 몇 살이었지? 그는 잘려진 머리카락을 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몇 년간 누적 되어온 그 길이는 아주 길었다. 그는 드러난 아들의 목덜미를 상상했다. 그는 봉지 속에 있던 머리카락을 집어든 채 다시 거실로 갔다. 소파에 앉아 김이 오르는 치킨이 놓인 아들 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칠 벗겨진 괘종시계가 뎅, 뎅, 뎅 소리를 냈다.
*외전
이 씨는 그의 집 맞은 편에 살았다. 이 씨는, 자신의 직장동료가 자신의 아파트 맞은편에 건물에 산다는 걸 몰랐다. 동료는 항상 식거리를 산다며 대형 슈퍼에 들렸다 귀가했다. 혼자사는 남자쯤으로 생각했다. 이 씨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들어 있는 와이프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 조심 베란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담배를 하나 태워 물고 허공에 멍하니 불었다. 그 때, 항상 창 밖을 바라보던 건너편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수척하던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이씨는 이 늦은 시간에 창밖을 보고 있던 적이 없음을 생각해내고 눈을 부볐다. 그러나 소년은 그곳에 있었다. ...뭔가 어색했다. 그는 한참 소년을 바라보면서 어색함의 이유가 어깨까지 길었던 머리카락이 짧게 잘려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챘다. 피식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마저 빨았다. 다시 힐끔 소년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담배를 떨어뜨렸다. 손이 달달 떨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1m 남짓한 긴 창문의 맨 아래에서 간신히 창밖을 바라보던 소년의 얼굴이 창문의 맨 꼭대기에 있었다. 구름이 지나가자 달빛이 환하게 창을 드러냈다. 늘어진 발끝과 쓰러진 의자를 본 이씨는 기어코 비명을 질렀고, 아내를 깨우고 말았다.
금산스님작성일
2013-04-1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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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위안부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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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8일 버마랑군에서 연합군 장교와 인터뷰 중인 중국인 위안부의 모습
종군위안부(한자: 從軍慰安婦, 일본어:從軍慰安婦(じゅうぐんいあんふ), 영어:Comfort Women) 또는 일본군 성노예(영어: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징용 또는 인신매매범, 매춘업자 등에게 납치, 매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군에 징용 또는 납치, 매매되어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여성을 말한다.
위안부의 구성원으로는 조선인을 포함한 중국인과 타이완인 등이 포함된다. 그 밖에 필리핀과 태국,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일본 제국이 점령한 국가 출신의 여성도 일본군에게 징발되었다. 생존한 사람들은 하루에 30번 이상 성행위를 강요당했다고 증언했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국 가운데 유일한 유럽 국가인 네덜란드의 얀 할머니는 1990년에 세계 최초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혔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살고 있던 얀 할머니는 KBS 다큐멘터리 <KBS 스페셜>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군의 성폭력을 피해 달아났다가 다시 일본군에게 잡혀왔다는 증언을 한 바가 있다. 얀 할머니의 고백 이후 엘른 판 더 플루흐 할머니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증언했다. [1]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94년8월 31일무라야마 도미이치내각총리대신(총리)이 위안부에 대해서 사죄의 담화를 낸 바 있다.[2] 또한 1996년에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역시 위안부에 대해서 사죄의 편지를 보낸 바 있다.[3] 아울러 이 문제가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이나 양국간 각종 조약(한일기본조약 등)따위로 법적으로 해결이 완료되었다고 주장하였다.[4] 한편 일본 측은 대한민국 정부 또한 미군을 위해 위안부와 비슷한 것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5][6]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자 본인들은 일본 정부의 사과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1992년부터 현재까지 서울특별시종로구에 위치한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시위를 개최하고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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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칭
2개요
3증거
4차출 방법과 대상 그리고 규모
4.1유괴와 납치
4.2인원
5소송
6논쟁
6.1소수 주장
7국제사회의 일본의 반성 촉구
7.1미국 하원 본회의의 위안부 결의안
7.1.1경과
7.2각국의 위안부 결의안
7.3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
7.4수요시위
8관련 기사
9참고 자료
10같이 보기
11주석
12바깥 고리
[편집]명칭
일부에서 근로 정신대인 여자 정신대(女子挺身隊)와 위안부를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여자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 여자 정신대는 일본 정부에 징용되고, 일반의 노동을 강요당한 여자를 일컫는 반면 위안부는 일반의 노동 대신에 성적인 행위를 강요당한 여자를 일컫는다. '정신대'의 '정신(挺身)'은 '솔선하여 앞장선다'는 뜻으로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대한민국 관계 법령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사용하고 있다. '위안부'라는 용어는 이 제도를 통해 '성적 위안'을 받은, 가해자 일본군 중심의 용어라는 문제가 지적되기도 하였으나 당시의 공식 문서에서 사용되고 있어 일본군 또는 정부의 개입 사실을 보여주는 용어라는 의미도 있다. 피해 여성 입장에서 본다면 이를 '성노예'로 부를 수 있으나 강한 어감 때문에 피해 여성들은 '성노예'라는 명칭에 부정적이다. '위안부' 관련 인권 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는 관련 용어에 관한 연구와 논의를 꾸준히 벌이고 있는데, 1995년 제3차 일본군‘위안부’문제 아시아연대회의 때부터 이 문제의 역사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위안부'에 강제적·부정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작은 따옴표를 붙여서 한국어로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고유명사를 쓰고 영어로는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일본군 성노예)로 쓰기로 결의하였다.[7][8][9]1998년 유엔 인권소위원회 특별 보고관의 보고서에서는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는 국제적인 용어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문서 내용.[10]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나, '종군'이라는 말에 내포된 자발적인 의미와 일본 극우 세력에서 쓰는 표현이기 때문에 옳지 못한 명칭이라는 지적이 있다.[11]
[편집]개요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위안부는 일제강점기 말기 전시체제 일본군 위안소로 연행되어 강제로 성폭행 당한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본 군인들의 성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집단적 성행위 장소인 이른바 군대 위안소를 제도화하고, 식민지 및 점령지 출신의 여성들을 전선으로 수송하여 성노예 역할을 강요했다. 일본군이 영내에 설치된 위안소에 식민지 여성들을 끌고 가 병사들을 상대로 강제적인 성노리개로 삼았는데, 이를 자기들 용어로는 "위안부"라고 불렀다. 위안부란 말도 실제로는 완곡어법에 불과했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성노예였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여성들의 의사에 관계없이 강제로 끌고 가거나 혹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다",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라고 모집한 뒤 태평양 섬 등지의 외딴 곳에 성노예로 보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해당 지역의 일본군이 항복을 거부하고 자폭할 때 일본군의 비밀 누설 방지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같이 죽도록 강요되기도 했다. 이를 옥쇄 정책이라고 한다.
당시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구타, 가해는 일상다반사로, 군도나 칼 등으로 몸을 긋거나 담뱃불로 지지는 등 가히 고문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매일 수십 명의 남자들을 상대하기에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 후 강제로 중절수술을 받고 건강이 악화되어 죽는 경우도 많았으며, 배식량은 극도로 떨어져서 영양실조도 많았다고 한다.
성노예 피해자들은 간신히 전쟁이 끝나도록 살아남았으나, 태평양 전쟁 이후 패전국으로서 일본의 전후보상 문제가 관련당사국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던 것에 비해, 위안부는 일제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오히려 '일본군과 놀다온 더러운 여자들'이란 잘못된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 되며 억울한 질타를 받기도 하다가, 나중에나 진실이 밝혀지고 육체적 및 정신적 피해 등을 포함해서 평생 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기에 지금도 일본 정부에 피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는 심하게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게 문제가 있다. 일본 측의 입장은 크게 3가지로서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 '피해보상의 근거가 없다.' 등으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발적 참여의 근거로는 여성들의 서명이 담긴 문서와 일본 여성 참여의 증거 등이 있는데, 끌려온 여성들의 대부분은 글도 쓸 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다, 취업 서류로 알고서 서명했다가 끌려간 경우라는 증언들로 볼 때 날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가론의 경우, 당시 '지불됐다'라는 임금 자체도 여성들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았을 뿐더러 강제성과 인권 모욕의 경우는 대가로 어떻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점에서 논점이 이탈된다. 하지만 실제 당시 여러 기록이나 증언들을 보자면 위안부의 징집 절차에는 친일파 조선인이 다수 협력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사실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피해 보상의 경우 독일의 경우보다도 더 피해 보상을 해줘야할 문제다. 왜냐하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정권은 전쟁으로 붕괴되어 그 후대 정권과는 완전히 분리되었고, 구 정부의 정통성 자체를 헌법상으로 부정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후대 정권에 전쟁 책임을 묻기는 좀 애매하지만, 도의적인 책임에 따라 후대 정권들이 나치정권의 시대를 후회하고 보상한다는 의미에서 배상을 하는 것인 반면 일본 정부는 그 때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는 같은 정부다. 심지어 천황을 비롯한 국가 수뇌부 대부분과 군 지휘부도 대부분 전쟁 후까지 살아남았다. 전쟁 중의 지휘부 책임은 지금 정부가 계승해야 될 문제인 것이지만 정작 일본은 그 피해 보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동양인 여성들의 피해 보상에는 굉장히 둔감하던 일본 정부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홍콩 등지에서 백인 성노예 피해자가 나타나자 즉각 사과하고 피해 보상을 한 사례가 있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편집]증거
1945년4월 당시 중국 쿤밍에서 포로들을 조사했던 미 육군 조사보고서에는 일본 공장의 여직공을 뽑는다는 모집 공고를 보고 속아서 모집에 응했다는 당시 증언의 내용이 공개됐으며[12], 1937년12월 21일 중국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소속 경찰관이 보낸 문서에 황군장병 위안부녀 도래에 관한 의뢰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이 공개됐다.[13]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미군이 미얀마에서 발견한 20여 명의 한국인 출신 '위안부'의 증언과 호레이스 언더우드 박사가 미국 정부에 보고한 일본군의 한국인 위안부 강제동원 기록, 네덜란드 정부문서기록보관소에 보관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자료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14]
일본군이 조선인 부녀자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위안부를 강제로 징집했음을 뒷받침해주는 판결문 기록이 발견되었다.
[편집]차출 방법과 대상 그리고 규모
[편집]유괴와 납치
일본 요시미 교수가 1980년 우연히 발견한 위안부 관련 서류에는 중국 북부를 점령한 구 일본군의 참모가 위안소의 설치를 명령하는 내용 이 담겨 있었다.[15]
1956년에 중국에서 행해진 일본인 전범 재판으로 스즈키 히라쿠 중장의 자필진술서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여성을 유괴해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진술이 적혀 있다.
교토시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전쟁의 진실을 말하는 모임’에서 1942년싱가포르에서 육군 헌병대 통역관으로 근무했던 나가세 다카시(永瀨隆·89) 씨는 “조선 위안부들은 모두 군용선에 실려 왔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당시 상부 명령으로 한반.도에서 온 여성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러 와 있던 그에게 그 여성들은 “싱가포르의 일본군 식당에서 일하기로 돼 있었는데, 이곳에 도착하자 (일본군이) 위안부를 할 것을 강요했다”라고 하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증언했다.[16]
인도네시아자카르타에서 위안소를 운영했던 일본인(아오치 와시오, 1967년 야스쿠니에 합사)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전범재판소의 재판에서 "아오치는 1943년6월 2일 군정감부로부터 매춘업소를 개설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차 지시를 받은 후 이를 수용했다"라고 군이 위안소 설치를 지시했음을 인정했다.[17]
일본 국립국회 도서관 보관되어 있는 극동 국제 군사 재판의 문서 중에 인도네시아 모어섬에서의 일본 육군중위에 대한 심문조서에는 현지 여성을 강제로 '위안부'로 만든 사실이 진술되어 있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가 사용했던 콘돔이 발견되었다. [18]
[편집]인원
일본군 위안부 총인원은 정확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쥬오대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계산법에 의하면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편집]소송
한국인 등을 중심으로 위안부였던 사람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한일기본조약으로 해결 완료 등을 이유로 패소했다. 현재 일본 사법부에서는 전쟁 전 국가간의 배상이 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인정하지도, 책임지지도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일부 법조인과 국회의원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송신도 할머니의 재판을 변호하거나, 배상의 걸림돌인 전후보상법 개정을 시도하는 등 위안부 할머니들의 편에서 일하고 있다.[1]
2000년에 도쿄에서 있었던 여성국제전범법정을 통해, 히로히토 천황과 일본 정부에 유죄를 선언했지만, 피고인이 부재했으며 강제력이 없는 민간 재판이었으므로 이 선언은 현재의 상황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2008년10월 31일에 일본에 위안부 책임을 인정하는 첫 권고를 한 바 있다.[19]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 배상 등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노령으로 사망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 연금을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한 2009년 일본 정부는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동원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1인당 99엔(1300원)을 지급하는 등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20]
[편집]논쟁
일명, '고노 담화'라고 일컬어지는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에서 위안부 모집에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으며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있지만, 일부 일본 우익 세력은 위안부는 강제연행은 없었으며 단순한 매춘부로, 인권침해는 없었다고 주장하며 고노 담화의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 등의 매체를 이용하여 이러한 주장을 홍보하고 있으며, 동시에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홍보활동을 하는 운동가들을 협박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21] 하지만 바우넷 재팬등의 일부 시민단체는 여전히 2005년8월 1일 도쿄에 바우넷 재팬의 전 대표인 아츠 야오리의 유산으로 일본군 위안부 홍보관을 설립하는 등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있다.[1]
[편집]소수 주장
안병직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위안부를 일본 국가권력이 강제 동원했다는 자료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증언자가 있을 뿐인데, 이것은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강제 동원 증거가 없다고 해서 자발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강제와 자발 사이에 있는 엄청나게 많은 중간항이 있다. 한국에는 아직도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하는데, 이들이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자발적이라 말할 수 있나. 그들에게는 수많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했다. [22]
군사평론가 지만원은 '수요시위 참가하는 할머니들의 건강과 혈색이 너무 좋아보인다.'고 이유를 들면서 '가짜 위안부가 아니냐?'면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위안부를 '일본군 위안부'와 '종군 위안부', '정신대'로 구분한 뒤 "진짜 피해를 본 '일본군 위안부'는 전체 20% 정도이며 어려운 형편에 스스로 성을 판 종군 위안부가 80% 쯤 된다더라"고 썼다. [23]
일본 우익은 '유가증권' 개념인 '군표'를 사용한 것을 들어 위안소 제도를 일종의 공창제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제도를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공창제와 비교해서 군 위안소는 전시라는 상황에서 군이 관리·운영함으로써 위안부 여성의 인권을 더 보장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24]
[편집]국제사회의 일본의 반성 촉구
[편집]미국 하원 본회의의 위안부 결의안
끊임없이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해 노력한 미국 민주당 레인 에번스(Lane Evans) 전 하원의원
2007년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한 민주당의 마이크 혼다 의원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 존재를 인정하고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는 위안부 관련 결의안(House Resolution 121) H. Res. 759은 2001년 처음 미국 하원에 소개되었고 2006년에 미 하원 국제관계 위원회에서 통과되었다. 일본계 하원의원을 포함, 공화당과 민주당 통틀어 50명이 넘는 의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결의안은 일본정부의 강한 로비활동에도 끝내는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정식 통과하였다.[25]
일본 정부가 결의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하원의장과 주일 미국 대사를 지낸 민주당의 거물 토머스 폴리를 로비스트로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26]
현지 시간으로 2007년6월 26일, 39대 2의 표차로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27]
현지 시간으로 2007년7월 30일, 만장일치로 미 하원 본회의에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28][29]
[편집]경과
1999년 미국 민주당 레인 에번스(Lane Evans) 의원,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주장하여 미 의회 의사록에 기록으로 남기면서 이 문제를 이슈화. 레인 에번스 위원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의한 ‘위안부’의 사용을 비난하는 법안을 2000년부터 꾸준히 미국의회에 상정해왔다.[1]
2001년 - 1차 결의안 제출, 상정되지 못함
2005년 - 2차 결의안 제출, 상정되지 못함
2006년9월 12일 - 3차 결의안 제출, 상정되고 심의됨. 회기가 지나 폐기됨.
2006년 말 - 에번스(Evans) 의원 파킨슨병으로 정계은퇴
2007년1월 31일 - 미국 민주당 마이크 혼다(Mike Honda) 의원, 4차 결의안 제출
2007년2월 15일 -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 환경소위원회에서 위안부 청문회 처음 개최
2007년6월 26일 - 결의안 외교위원회 상정, 찬성 39 대 반대 2로 통과
2007년7월 30일 - 하원 본회의에서 만장일치 투표로 결의문 채택
마이클 혼다 의원은 이 날 하원 본회의에서 "이 결의안은 나의 스승이자 동료 의원이었던 에번스 전 의원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라고 말함[30]
[편집]각국의 위안부 결의안
2007년11월 8일, 네덜란드 하원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31]캐나다에서도 같은 해 11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을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으며[32], 12월 13일에는 유럽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33]2008년3월 11일에는 필리핀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34]
[편집]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8년10월 30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하여 일본이 위안부 동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 보상하여 피해자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야 하며, 이를 학생과 대중에게 알리고 부인하지 말 것을 촉구하였다.[35]
[편집]수요시위
이 부분의 본문은 수요시위입니다.
수요시위는 대한민국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대한민국 주재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이는 항의 시위로, 1992년1월 8일에 10여 명으로 시작된 이래 현재까지 시위 참여 인원 3만여 명, 발표 문건 600여 건, 최고령 시위 참가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집회이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1]
[편집]관련 기사
사카모토 치즈코. 조명되지 못한 필리핀 ‘위안부’문제. 일다. 2006년 6월 25일.
박유하. 위안부 문제, '일본 때리기'만이 능사인가. 프레시안. 2007년 4월 13일.
박희정. 역사교과서 논란과 한 ‘위안부’여성의 죽음. 일다. 2008년 12월 12일.
윤정은. 위안부운동 “지식인들 머리로 하는게 아니야”. 일다. 2009년 3월 18일.
[편집]참고 자료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
H. Res. 759 : 위안부 관련 결의안
H. RES. 121 (Engrossed-in-House) :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결의안
EBS 지식채널 E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이슈 털어주는남자 133회-'미쓰비시와 말뚝'
[편집]같이 보기
미하원 위안부 결의안 121(en:United States House of Representatives House Resolution 121)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스즈키 노부유키(ja:鈴木 信行)
일제시대의 강.간(en:Rape during the occupation of Japan)
나치독일의 강.간(en:Rape during the occupation of Germany)
전쟁 강.간(en:War rape)
태평양 전쟁
일본 제국
일본의 전쟁범죄
오카무라 야스지
무라야마 담화 - 무라야마 총리가 1995년에 발표한 담화
고노 담화
아시아여성기금
마이크 혼다
레인 에번스 -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해 노력한 미국 하원 의원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이승연 -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누드 영상집으로 파문을 일으킨 대한민국의 배우
일본의 성매매
성노예
가라유키상
백마사건(ja:白馬事件)
얀 루프 오헤른(Jan Ruff O'Herne)
주석
↑ 가나다라마http://www.kbs.co.kr/1tv/sisa/kbsspecial/vod/1383556_11686.html 일본군 위안부 세계가 껴안다 - 1년간의 기록 2006년2월 25일 방영
↑?閣?理大臣の談話 平成六年八月三十一日 首相官邸
↑아베 “위안부 사죄마음 변함없다”
↑アジア女性基金事業?施に際しての?理の手紙 首相官邸
↑http://www.nytimes.com/2009/01/08/world/asia/08korea.html?_r=1&scp=8&sq=Comfort%20Women%20Korean%20War&st=cse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67635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신대연구회 (1997년 4월 30일).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들 2 (증언집)》. 한울. ISBN 978-8946024175
↑군위안부 바로 알기 - 위안소/위안부. 한국정신대연구소. 2012년 1월 16일에 확인.
↑제3차 아시아연대회의 결의문 (HWP).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2006년 12월 16일). 2012년 1월 16일에 확인. 관련 게시물 및 영문 결의문(게시물) 참고.
↑링크 제목, 기타 설명.
↑위안부란 용어해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위안부 동원 강제성 있어" 미 정부 기밀문서 발견(조선일보)
↑"일제, 위안부 강제동원 영사관까지 개입했다" 당시 일본 문, 군대ㆍ경찰 역할분담 입증
↑美의회보고서, 아베총리 위안부발언 공개반박 연합뉴스 2007-04-09.
↑요시미 교수 “日 정부는 위안부 진실을 외면”, 2007년 03월 12일 경향신문.
↑日軍 통역관 “위안부 군용선으로 강제연행”, 2007년07월 09일 경향신문.
↑"일본군 위안소 설치 지시 판결문 발견"<교도> 연합뉴스 2007-04-11.
↑2차 대전 일본군 콘돔 발견 - 중앙일보2009년6월 10일자 기사
↑유엔 인권위, 일본에 위안부 책임 인정 첫 권고
↑'99엔은 농락' 日 후생연금 수당에 분노 폭발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보수는 이렇게 말한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
↑지만원씨 '가짜 위안부' 의혹 제기 파문
↑김성재. ‘공창제’는 진정한 대안인가. 한겨레21. 2004년 10월 13일.
↑미 하원 결의안 관련 기사: Congress backs off wartime Japan rebuke
↑日정치인, 지지율 떨어지면 한국에 도발? 노컷뉴스 2007-03-07
↑'미 하원, 위안부결의안 ‘39:2’ 압도적 다수로 채택', 한겨레신문, 2007.6.27.
↑'美하원, 35분 만에 위안부결의안 만장일치 통과' 2007.7.31. 매일경제
↑'美하원 위안부 결의안 일지' KBS뉴스, 2007.7.31.
↑99년부터 3차례 발의… 이슈화, 조선일보 2007-08-01
↑네덜란드의회, 위안부 결의안 만장일치 채택, 《조선일보》, 2007.11.11.
↑캐나다도 日에 사죄요구, 《캐나다 한국일보 케이티타운》, 200.11.30.
↑(단신) 유럽의회, '위안부 결의안' 채택, 《MBC뉴스》, 2007.12.14.
↑필리핀 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 《연합뉴스》, 2008.3.12.
↑유엔 "日, 위안부 동원 즉각 사죄.보상해야", 《매일경제》, 2008.10.31.
[편집]바깥 고리
나눔의 집 홈페이지
아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홍보 만화 (또는 동영상) “다시 태어나 꽃으로”이다.
다시 태어나 꽃으로 : 한국어/만화
Born again as a flower : 영어/만화
もう一度生まれたら 花に : 일본어/동영상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 대한민국 여성가족부 제공
일본군 위안부 - 독도수호지기 제공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를 조사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홈페이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홈페이지
일제 강점하 강제 동원 피해자 유족회 홈페이지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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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저작권이 영국공식문서 같은 것에서 온지라;;
함부로 못올리겠더군요.
업로드 문제로 일부단어(강.간, SE.X, 반.도, 성.기)는 본 내용과 다르게 수정했습니다.
내용이 엽기라 올려봅니다.
황제네로작성일
2013-02-08추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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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 35부
35부-그녀 이야기-엄마의 저녁식사 하자고 부르는 소리에 오빠를 이끌고 방을 나와 부엌으로 향했다.아빠는 먼저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식탁에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에 오빠와 내가 앉았다.엄마는 데워진 찌게와 양념이 발라진 고등어 구이를 식탁에 올려 놓고는 아빠 옆에 앉았다.오빠의 얼굴은 조금전 내방에서 단둘이 있을 때 보다 긴장을 했는 듯 했고, 아빠가 수저를 들자오빠도 수저를 들었다.그 모습을 아빠가 살짝 봤는데 그 모습을 내게 들켰다.-아빠~ 이 남자 예의도 바르지? 내가 선택하는 사람이니깐 아빠라도 허락 해주라..-식사를 할 때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고, 조용히 수저가 부딪기는 소리만 들렸다.오빠의 밥을 먹는 모습을 계속 쳐다보는 내 모습을 아빠와 엄마는 묵묵히 지켜 보고만 있었다.고등어 구이를 젓가락으로 살을 발라내어 오빠의 숟가락 위에도 올려주고, 오빠가 젓가락이 가는반찬을 오빠 쪽으로 당겨도 주고 했다.일부러 그 모습을 부모님이 보게끔 행동을 했었다. 이 정도로 내가 오빠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일종의 나만의 작은 시위였다.내 모습을 본 아빠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그 남자가 그렇게 좋아?"아빠의 말에 오빠는 긴장을 했는지 삼키려던 음식물이 입에 걸려 작은 기침을 했다.물병에 물을 따라서 오빠에게 건네 주면서 아빠에게 말했다."응.. 정말 많이 좋아해 아빠.."-그러니깐 아빠는 허락을 해 줄꺼지?? -그리고 오빠가 밥을 거의 다 비워 갈 때 엄마가 오빠에게 말했다."밥 더 드려요?""네..감사합니다.."-오빠의 식사량이 초과 한 것 같은데..일부러 잘 보이려 많이 먹는 듯 한데..-걱정스런 표정으로 옆에 앉은 오빠의 배를 만지며 말했다."오빠 더 먹어도 괜찮겠어?"오빠는 웃으며 걱정말라는 듯 말했다."어머니 음식 솜씨가 너무 좋아서 먹어도 계속 먹고 싶네~"오빠의 말에 엄마가 살짝 웃는 모습이였다.아마도 오빠가 잘 보이려고 먹는 양을 초과 했는 것을 아는 듯 했고, 방금 오빠의 말에 기분이 살짝 좋아진 듯 보였다. -오빠 화이팅~ 잘하고 있어~!! 그런데 너무 무리하지는 마~-엄마가 밥을 다시 반 공기를 떠서 오빠에게 주었고, 오빠는 여전히 맛있다는 듯이 맛갈스럽게 먹었다.오빠를 지켜보던 아빠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자네..혹시 술 마실 줄 아는가?""네..""그럼 한 잔 하겠나??"오빠에게 술 마시자고 권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오빠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 나도 몰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남자 이야기 -식탁에 앉아서 숨막히는 긴장으로 은주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밥을 먹었다.- 어른들은 잘 먹는 사람을 좋아하니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네..-숟가락에 밥을 듬뿍 퍼서 한 입에 넣고 반찬도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집으며 먹었다.겨우 밥을 다 먹었을 때 은주 어머니가 다 비워 버린 밥공기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밥 더 드려요?"-아~! 숨쉬기가 지금도 힘든데..-하지만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딸려는 욕심에 웃으며 말했다."네..감사합니다.."그 때 은주가 내 배를 쓰다듬으며 걱정을 했었고, 나에게 자연스레 접촉을 하는 은주의 모습을 은주 부모님이 보는 것이 신경쓰여 은주의 손목을 잡고 내 배에서 떼었다.그리고 배가 불러 떨리는 손으로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정신력으로 깨끗이 비웠다.밥을 다 먹은 모습을 본 은주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자네..혹시 술 마실 줄 아는가?"-아..내일 출근해야 하는데...만약에 술을 안 마신다면 좋아하시지 않겠지?--그래 술 마시고 차에서 잠시 눈 붙이고 새벽에 가야겠다..-일단 조금이나마 점수를 더 따기 위해 은주 아버지를 보며 미소를 띄며 말했다."네~""그럼 한잔 하겠나??"은주는 아버지와 술을 마시려 하는 나를 보고는 부모님이 눈치 못채게 윙크를 했다.은주 어머니는 자리를 피해 주었고, 은주 아버지와 나는 식탁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은주 아버지는 은주를 조용히 불렀다."은주야 ~""응 아빠?"은주 아버지는 은주에게 만 원짜리를 한 장 쥐어주며 말했다."너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슈퍼에 가서 소주5병 좀 사와라~"-엥?? 소주 몇 병?? 내가 잘 못 들었나??-그 때 은주가 아버지에게 말했다."아빠 소주 5병이나?""그래 5병~"-아..맞게 들었네..5병..설마 오늘 다 마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은주는 소주를 사러 나갔고, 은주 어머니는 우리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안주꺼리를 요리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은주는 소주가 들어 있는 검은 봉지를 들고 집에 도착을 했다.소주를 사온 은주는 또 다시 내 옆에 앉았고 은주 아버지는 은주가 내 옆에 앉아 있는 것이부담스러운지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은주 아버지가 나에게 소주를 한 잔 따라 주었고, 내가 양손으로 공손히 받을 때 은주 아버지가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물었다."자네..올해 몇 살인가?""네..올해 29살이고 은주는 작년에 만났습니다."그리고 대답을 하고 나서 은주 아버지에게 소주를 따라 주었다."집이 포항이라고?""아닙니다..집은 대구고 직장이 포항이라 혼자서 포항에 살고 있습니다.""그래..?""네..아버님"나의 아버님이라는 소리에 은주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내가 눈치 챌까 바로 감추는 듯 했다."솔직히 말하겠네..""네.."은주 아버지의 잔이 비어 다시 술을 따르려 할때 은주 아버지가 말했다."난 자네가 마음에 드네.."-아..다행이다..진짜 다행이다..-내가 마음에 든다는 은주 아버지의 말에 순간 손에 힘이 풀려 소주병을 놓칠 뻔 했지만,다시 소주병을 바로 잡고 은주 아버지에게 소주를 따라 줄 때 은주 방에서 은주가 은주 어머니를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은주가 무슨 일이지??-은주 아버지도 은주 방을 잠시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었다."자네는 인상도 좋고, 예의도 바르고, 직장도 있고, 술도 잘 마시고 참 탐이 나지만.."-아 너무 좋은 말만 늘어 놓으시니 불안하네요..아버님..-왠지 불안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겨우 대답을 했다."예..""우리 은주의 과거를 알기에 어쩔 수가 없네..은주를 그만 만나게"-역시나..은주 아버지도 나를 반대 하시는 건가..-은주 아버지마저 반대를 하는 듯 하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고개를 숙인 나를 보며 또 다시 말했다."한 여자의 과거를 다 알고도 사랑해주는 남자라..얼마나 멋진가..하지만.."다시 고개를 들어 은주 아버지를 봤다."내 딸은 안된다네..""왜..그렇죠??? 멋지다면서요..."은주 아버지는 다시 소주를 한 입에 털어 넣고서는 말했다."내 딸이니깐..""....""내 딸은 행복해야 하니까..."-아버님 저도 은주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낮에 우리 부모님의 모습과 그 때 당황하고 긴장을 하던 은주의 모습이떠오르니 말을 뱉지도 못하고 그냥 삼켰다.그리고 은주 아버지가 또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는 속상한 듯 말했다."미안하네.."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고 다시 은주 아버지가 말했다."외동딸 하나 곱게 키우지 못해 정말 미안하네.."계속적인 은주 아버지의 말에 나는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했었고, 어느 순간 나도 약간 취한 듯 시야가 조금 흐려지며 식탁 위에 소주 빈병이 네 병정도 보였다.은주 아버지는 취한 중에 차를 가져 왔는지 물었고, 오늘은 여기서 자고 아침에 나가라고 말했다.잠시후 은주 아버지는 안방으로 들어갔고, 은주는 속상한 얼굴에 눈가가 젖어 있었고 취한 나를 일으켜 세우며 자기 방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은주 아버지랑 했던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이니..은주야..-한동안 아무 말도 없던 은주는 나를 자기 침대에 뉘면서 말했다."엄마가 오빠를 내 방에 재우고 아침에 보내라더라""아버님도 자고 가라고 그러시던데.."은주가 젖은 눈을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말했다."오빠 많이 취했는 것 같은데 어서 자~ 난 엄마랑 잘꺼야~""그래..""아침에 일찍 깨워 줄께..그리고..""그리고 뭐?""아냐 잘자.."-은주가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무슨 말일까?-은주는 방문을 닫고 나갔고, 가만히 은주 침대에 누워 있으니 은주를 떠올릴 때 항상 기억나던 은주의 향기가 코 끝을 기분 좋게 만들었지만 가슴은 막막했다.-그녀 이야기 -아빠 심부름을 하고 오빠 옆에 앉아 있는데 아빠가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하기에 오빠를 한 번 쳐다보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오빠..힘내고 아빠만은 우리편으로 만들어주라.."방에 들어와 있으니 부엌에서 어떤 대화를 하는지 정말 궁금해 어쩔 줄 몰라하며책상에 앉았다가 침애에 누웠다가 방문에 귀를 대었다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그 때 방문을 열며 엄마가 들어왔다."어..엄마..""엄마 많이 밉지.."엄마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으니 엄마가 다시 말했다."언젠가는 너도 엄마 심정 알꺼야.."엄마의 말에 갑자기 울컥한 느낌이 올라와 엄마에게 따지듯 말했다."아니..지금도 전혀 모르겠는데 그 때 되서 어떻게 알겠어~!!""하여튼 아빠에게도 말은 해놨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엄마!!! 그게 무슨 말인데!!""너의 그 사람과는 정말 안된다고 말했다. 아빠에게..""엄마..도대체 왜!! 도대체 왜 그러는건데.."엄마의 마음이 편치 못한 표정을 지켜봤다."딸을 한 번 잃었으면 됐지 두 번은 잃고 싶지가 않구나..." "엄마..저 사람은.. 저 사람은..날 힘들게 하지 않을꺼야..그러니깐.."엄마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을 나가면서 말했다."아빠하고 너의 그 사람 많이 마실 것 같은데 넌 엄마랑 자고 그 사람은 네 방에 재우렴"엄마가 내 방에서 나가고 여전히 반대하는 엄마와 아버지가 야속해 침대에 엎드려 부엌 식탁에 앉아 있는 오빠가 듣지 못 할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부엌에서 술자리를 파하는 인기척이 들려 침대 맡에 놓아둔 각 티슈에서 티슈 몇 장을 뽑아 눈물을 닦아 내었고, 책상 위에 있는 작은 거울을 보며 표시가 나는지 확인 후에 내 방에서 나갔다.오빠가 조금 취한 듯 눈가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오빠를 일으켜 세우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오빠는 지금 취해서 다행이다..아마도 내가 눈물을 흘렸는 거 눈치를 못 채겠지..?-그런데 오빠는 내 방에 들어가면서도 자꾸 내 얼굴을 보려 하기에 나를 보려는 오빠의 눈을 피했다.-오빠.. 지금 이런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지금은 날 보지마..오빠..-침대에 오빠를 뉘이면서 취한 듯 보이는 오빠에게 말했다."엄마가 오빠를 내 방에 재우고 아침에 보내라더라""아버님도 자고 가라고 그러시던데.."-역시 엄마가 아빠에게 미리 할 말을 다 일러 두었구나...-그리고 내 침대에 누워 있는 오빠에게 말했다."아침에 일찍 깨워 줄께..그리고.."-오빠..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부모님 몰래 오빠랑 같이 포항에 내려갈까?-그러나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쉽게 내뱉지 못하고 얼버무려 버리고 내 방에서 나왔다.거실에 나오니 아빠는 쇼파에 누워 있었고 엄마는 안방에서 자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아빠에게 다가가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아빠~ 일어나 방에 들어가서 자~"잠시 눈을 뜬 아빠는 나를 보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아빠가 미안해..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아빠의 말에 가슴 한 곳이 아파왔다.오빠 때문에 아파 왔던 그런 아픔과 다른 느낌이였다.거실에서 잔다는 아빠를 겨우겨우 안방으로 보내고, 나는 쇼파에서 무릎을 가슴까지 당겨 앉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생각을 하려 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아빠의 마지막 말만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아빠가 미안해..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오빠도 혹시 내가 지금 느끼는 이런 이상한 아픔을 느껴 봤을까..- -남자 이야기 -은주방에 가만히 누워 있으니 술에 취한 듯 했지만 정신은 멀쩡했다.-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걸까..?--난 은주를 위한다면 다 포기 할 수 있지만, 은주는 나 때문에 다 포기하게 하긴 정말 싫은데..-이런 생각에 어느덧 잠이 살짝 들었고, 잠결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뜨였다.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와 방문 밖에서 작은 목소리로 은주가 말했다."오빠~ 자?""아니.."은주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옆에 걸터 앉아 나를 보며 말했다."아까 내가 말 할려고 했는데..""뭐?""나 오빠가 아침에 포항 갈 때 따라갈꺼야.."-은주야..안돼! 나 때문에 너까지 힘들어 지는 건 정말 싫어.."내가 가만히 있자 은주가 다시 말했다."따라갈꺼니깐 말리면 안돼~! 알았지?""응..알았어..은주야.."은주는 누워 있는 나를 보며 살짝 웃음을 짓고는 다시 방을 나갔다.-은주야 미안해..그건 안되겠다..-은주의 말에 신경이 쓰여 깊이 잠들지는 못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뜨니 아직도 새벽이였고,휴대폰의 시간를 보니 새벽 4시 35분이 찍혀 있었다.조용히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니 쇼파에서 옆으로 누워 자는 은주가 보였다.은주를 한 동안 지켜보다가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현관문을 열고 은주집을 나섰다. 내 차 앞에서 새벽공기를 맡으며 기지개를 크게 한 번 펴니 정신이 맑아지는 듯 했다.새벽에 포항까지 오는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집에서 찬 물로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아침에 내가 없어진 걸 은주가 알면 좀 속상해 하겠지..?--지금쯤 은주가 일어났으려나??-그러나 출근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은주에게서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출근을 하려 회사복으로 갈아 입고 집을 나서려 현관문을 여는데 현관문 앞에 은주가 서 있었고,은주의 한 손에는 예전에 봤던 바퀴가 달린 가방이 있었다.나는 깜짝 놀라 은주를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은주에게 말했다."언제부터 밖에 있었던거야?""방금 도착했어..벨을 누르려는데 오빠가 문을 연거야..""그렇구나.."은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데...오빠..""왜?""나 버리지 않는다며..그렇게 말하고는 혼자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나 때문에 네가 곤란 할까봐..""오빠 나는...나는..아팠어.."나는 웃으며 장난스럽게 은주의 이마에 손을 대며 말했다."많이 아팠어~??"은주는 가방을 쥔 손을 놓고는 나를 안으며 말했다."죽을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 하니까 죽을만큼 아팠단 말야.."항상 은주 때문에 아프던 가슴이 또 다시 저려 왔다.-그래 은주야..오빠가 미안해.. 앞으로는 너 두고 어디든 가지 않을께..-35부 끝격려 부탁드려요~
진짜킹카작성일
2012-06-1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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