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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펌] 청와대 자전거 1인 시위
5월 9일 오후 2시경 -청와대 분수대앞 예상한대로 역시 방해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경복궁 옆길로 해서 일부러 청와대가는 정통코스로 갔습니다.가면서 두 번 검문?에 걸렸습니다."잠시만요! 무슨일로 오셨습니까?""자전거 매니아인데요 산책나왔습니다""아 그러세요? 혹시 가방 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네"가방안에야 저녁에 서늘해질 것을 대비해서 점퍼 하나, 수건, 우유와 빵...청와대 분수대 앞에 도착하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청와대 단체 관람 왔습니다.벤치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워물고 빵하고 우유를 먹고 나서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근처에 사시는 연인들께도 부탁하고외국인 단체관광객 가이드께도 부탁하고 몇 컷 찍었습니다.일단 사진 먼저 올릴게요^^제가 99년도에 경호원들의 체육관격인 청와대 연무관을 한 달에 한번 정기출입을 했었습니다.일 때문에요. 공돌이다보니까 컴퓨터로 건물관리하는 시스템 정기점검하러요.옆길이나 샛길에는 청와대 경호원들보다는 파견나온 경찰들이 많이 있습니다.그래서 더 진입하는데 방해가 심하거든요. 그래서 청와대가는 정통코스로 진입, 성공입니다.외국인들하고도 간단한 인삿말도 건네고 자연스럽게 사진도 찍고, 자전거타고 분수대 공원을 왔다갔다하니까경호관계자들이 당황하고 여기저기서 무전기들고 뛰어오기 시작합니다.^^"여기 청와대 앞이고 예민한 곳이라...선생님, 가만히 계시는 것은 좋은데요..."(어쩌구...)"네, 잘알겠습니다. 경호원들님들 곤란하지 않게 최대한 조용히 있다가 갈테니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어디서 오셨습니까? 혹시 성함을 여쭈어봐도 괜찮을까요? 연세는?..."(어쩌구 저쩌구)이름까지는 알려주었습니다. 나이는 안가르쳐주었습니다.^^ 내가 바보입니까? 무전으로 신원조회하려는 속셈을요^^ 서울시에 사는 내 이름 다 조회해봐라 수백명이 뜰테니깐...ㅋㅋㅋ"경호원님들은 여전히 멋지시네요.""허허... 감사합니다."청와대 경호관계자들은 제가 알기로는 세 그룹 정도로 나뉘어집니다.(1년동안 연무관 출입했던 경험으로는요.)청와대 경호실 소속의 정통 청와대 경호원 그룹, 경찰에서 파견나온 경찰그룹, 마지막으로 파견나온 군인들입니다.다들 외모부터 교양이나 격이 다릅니다.경호원 그룹은 그야말로 키 178에서 185센티미터에 쭉 빠지고 잘 생긴 외모와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습니다.가장 엉망인게 경찰그룹입니다.마치 조폭같이 생긴 인상에 키도 짜리몽땅에서부터 제 각각...ㅋㅋㅋ" 효자동 가는 길이 저기 연무관 지나서 맞지요?""네. 가시게요?"반색을 하고 좋아합니다."'아니요. 볼일 좀 보고 다시 오겠습니다."인상이 순간 변합니다. '제발 좀 저희들 입장 좀 봐주세요'하는..." 주말마다 자주 놀러올거니까요,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곤란하게는 안할테니 너무 걱정마세요.""네 그럼 다녀오세요"그리고 저는 지금 광화문 근처 피씨방입니다^^잠시 후에 나갑니다.몇몇 님들께 문자나 전화가 와서 너무 걱정들하시길래 잠시 나왔습니다.그럼, 이제 청와대 1인시위 마치고 후기 때 뵙겠습니다.날씨가 덥더니 지금은 구름도 끼고 적당하고 좋네요^^* 뱀꼬리자전거타고 청와대 분수대 앞에 1인시위하러 온 사람이 처음이랍니다.적잖이 당황들합니다.그런데 차분히 집회 및 시위법률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니까 제제할 법이 없답니다.^^이런 자전거 1인시위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 이어서 이명박정권에서새로운 1인시위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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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참외 먹고 죽은 2천 100년 전 미라
후난성박물원 마왕퇴 유물 탐방(창사=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7년 10월23일, 1천년 역사의 악록서원(岳麓書院)을 잠시 뒤로 하고 택시를 타자마자 '湖南省博物院'(후난성박물원)이라고 쓴 취재수첩을 내미니 택시는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한다.창사시(長沙市)를 남북으로 가로지른 샹강(湘江)을 지나 동쪽 도심을 향해 매캐한 매연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질주한지 20-30분만에 혁명열사공원(革命烈士公園)이란 거리 명패가 보이고 그 뒤로 각종 수목이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숲이 끝나는 공원 북쪽 기슭에 바로 목적지인 '후난성박물원'이란 큼지막한 간판을 가로지른 대문이 나타난다. 1951년 3월에 주건(籌建), 즉, 박물관 준비기관을 발족하고 1956년 2월에 정식으로 개관했다니 올해로 이 박물관은 51살 완연한 중년이다.입장료는 성인 개인 기준 50위안. 한국돈 6-7천원 가량이나 된다. 그럼에도 이 박물관 관람실에는 한시도 사람이 빌 틈이 없고 관광버스는 연신 단체 관람객을 쏟아낸다. 그들이 내는 요란한 소음 중 절반은 한국말이다. 그만큼 이곳은 창사를 찾는 한국 관광객이면 어김없이 들른다.하지만 대개 한국 관광객에게 최종 목적지는 창사가 아니다. 창사에서 버스로 4시간 가량을 가야 하는 장자졔(張家界)로 오가는 길에 스쳐가는 곳이 바로 후난성박물원이다. 장자졔로 향하는 한국 관광객이 오죽 많은가? 그렇게 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이 박물관에 쏟아붓는 돈은 과연 얼마나 될까?후난성박물원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정확하지는 않지만 시체, 그것도 미라가 된 인체를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운 박물관은 아마도 이곳이 유일할 것이다. 각종 홍보 책자를 보면 대지 5만여㎡에 건축면적 2만㎡인 후난성박물원은 소장유물이 11여만 건에 달하며 이 중 1급품은 763건에 이른다.신석기시대 석기와 도기(陶器), 상주(商周)시대 청동기, 초(楚)나라 시대 문물, 동한(東漢) 이후 수당(隋唐) 시대에 이르는 각종 도자기, 당나라 사람이 모사했다는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序), 명말(明末)-청초(淸初) 시기 저명한 사상가 왕부지(王夫之)의 글씨 등을 수작으로 꼽기는 하지만, 이곳을 찾는 관람객 대부분은 실상 이런 유물에는 오래 눈길을 줄 틈이 없다.이곳에 처음 들어서는 사람이면, 특히 관광객이라면 거의 어김없이 '시체실'로 달려간다. 기자가 꼭 1년만에 다시 이곳을 찾아 진열실을 관람하는 와중에도 곳곳에서 "시체가 어디 있어? 저게 시체야?" 라는 한국인 관람객의 웅성거림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후난성박물관은 후난성을 대표하는 성급 박물관이지만 실제는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 전문박물관이다. 마왕퇴 유적 출토품이 아니라면 그 어떤 명품도 적어도 이 박물관에선 찬조 출연자일 뿐이다. 그만큼 후난성박물관에서 마왕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다. 굳이 우리의 사례를 비교한다면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무령왕릉 유물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다.무령왕릉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1971-1972년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고고학상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된다. 1971년 7월 공주에서 기적적으로 백제 무령왕릉이 발견되더니, 그 해 12월28일 중국 창사에서는 마왕퇴 한묘가 발견돼 세계 역사고고학계를 진동케 했다. 이어 이듬해 4월 일본에서는 다카마쓰즈카라는 고대 벽화고분이 발견됐다.무령왕릉이 그랬듯이 실로 우연히 마왕퇴란 언덕에서 전쟁 대피용 방공호를 파다가 한나라 때 묘를 뚫고 들어가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출현한 마왕퇴 한묘는 1974년까지 장기간에 걸친 조사 결과 고분 2기를 리스트에 더 추가했다. 조사 결과 이들 무덤은 한고조 유방이 한 제국을 건설할 때, 그에 협력해 지금의 후난성 일대를 지배하는 장사국(長沙國)이란 제후왕에 봉해진 오예라는 사람 밑에서 승상을 지낸 이창(利倉)이란 사람과 그 일가족 공동묘지로 밝혀졌다.구체적으로는 발견된 순서에 따라 가장 먼저 발견된 1호묘는 그의 아내 신추(辛追)가 묻힌 곳이며, 2호묘는 기원전 193년에 죽은 이창 자신, 그리고 3호묘는 아직까지도 확실치는 않으나 이창과 신추 부부의 아들이 묻힌 곳으로 추정된다.이 마왕퇴 발굴이 진시황 병마용갱 발굴에 비견될 정도로 세계를 경악케 한 까닭은 무엇보다 풍부한 출토 유물 때문이었다. 죽은 이를 위해 함께 매장한 각종 물품 품목을 적은 견책(譴策)이나 목간(木簡)은 물론이고 아마도 명정으로 사용됐을 대형 t자형 백화(白畵. 비단에 그린 그림), 각종 병기와 악기, 칠기류는 휘황찬란했다.하지만 출토품 중 백미는 28종, 총 12만자 분량에 이르는 죽백서(竹帛書)와 여자 미라다. 이곳에서 발견된 죽백서 대부분은 그동안 이름만 전해졌거나 아예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각기 다른 시기에 필사된 두 종류 판본이 동시에 발견됐다.수천 점에 이르는 마왕퇴 출토 유물이 고스란히 후난성박물원 차지가 된 것은 1971년 이 유적 발견 직후 조사를 담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마왕퇴 유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시실 배치가 '마왕퇴 한묘 진열'과 '후난 역사문물 진열' 두 곳으로 구분된다는 점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후난성박물원은 '마왕퇴 진열관과 기타 등등'의 전시관인 셈이다. 전시공간 역시 절반 이상이 마왕퇴 유물 차지다.마왕퇴 진열관은 전시품별로 특화해 놓았다. 입구에는 발굴 과정이나 유적 전모를 엿볼 수 있는 각종 도판이나 일반 유물을 전시해 놓았으며, 이곳을 지나면 악기류 코너를 만나고 다시 그곳을 통과하면 각종 칠기류 그득한 공간이 맞이한다. 사람을 본뜬 나무 인형, 가야금 비슷하지만 현이 25개인 악기, 바둑이나 장기 비슷한 놀이기구 일종인 박국이 특히 볼 만하다.이어 관람객은 직물 코너로 들어선다. 무덤에서 무슨 비단이 그리도 많이 출토됐는지 놀랍다 . 총길이 128㎝에 어깨길이는 190㎝나 되지만 중량은 겨우 49g인 직물 '소사의(素紗衣)'도 있다. 이것이 중국이 세계를 향해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옷'이다.빛에 민감한 직물 보호를 위해 조명을 어둡게 한 직물 코너를 지나면 각종 죽백서(竹帛書)가 열을 지어 나타난다. 그 중에는 노자도덕경 두 가지 판본은 물론이고 '합음양(合陰陽)'이라 해서 정기를 소모하지 않고도 *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설파한 성 교과서도 있다. 군사지도와 괴물들을 잔뜩 원색으로 그려넣은 그림도 보인다.이런 마왕퇴 한묘 진열관에서 시신은 가장 후미진 공간을 차지한다. 그곳에 이르기 위한 길목에서 거대한 목곽(木槨)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마왕퇴 1호 한묘에 있던 목곽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규모가 장대할 뿐만 아니라, 2천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목곽이 이토록 생생하게 남아있을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이 거대한 목곽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2층으로 올가가야 하는데,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박물관 측에서 세심한 배려를 한 흔적을 읽을 수 있다.이 거대 목곽 뒤 한 켠에는 시신을 안치했던 관 3점이 전시돼 있다. 이들 관은 모두가 겉에 화려한 구름 문양을 원색으로 수놓았다. 그래서 이들 관을 채회관(彩繪棺)이라 부른다.'시체'는 그 맞은편에 안치돼 있다. 지하에 마련한 관에 하늘을 보며 반듯이 누운 시신. 발견 당시에는 피부가 살아있는 듯 윤이 났다고 하지만, 보존을 위해 방부처리를 한 까닭에 지금은 그런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그냥 회반죽으로 만든 마네킹같을 뿐이다.미라가 된 시신을 이렇게 만천하에 꼭 전시해야 하는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마침 기자가 이 미라를 찾았을 때, 영국식 영어 발음이 완연한 서양인 일가족이 미라를 관람하며 키득키득 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시신을 두고 농담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1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와 비교할 때 이 '미라실'은 확연히 달라진 데가 있었다. 그 때는 미라 뿐만 아니라 그 주변으로 이 미라를 해부하면서 떼낸 각종 장기, 심지어 자궁까지 용액에 담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이 미라 주인공은 1호묘에 묻힌 신추, 즉, 초대 장사국왕의 승상을 지낸 이창의 아내다. 내관(內棺)에서 발견될 당시 신추 미라는 신장 154㎝에 체중은 34.3㎏이었다. 관 속에 있은 지 무려 2천100년이 더 지났건만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 전신에 윤택이 났고 피하 조직 또한 유연했으며 탄력이 있어 관절이 살아 숨쉬는 듯 했다고 한다.눈썹과 코털도 여전히 남아 있었으며 왼쪽 귀 속에는 고막이 완전했다. 나아가 손가락 발가락도 완연했다. 해부를 해 보니 장기 또한 보존 상태가 좋았고 폐부 신경 조직 또한 몇 가닥이 남아있었다. 혈관에는 응고한 상태의 핏덩이가 남아있어 검사했더니 혈액형은 A형이었다.병리검사를 해 보니 신추는 생전에 관심증(冠心病)이나 동맥경화 같은 각종 질병에 시달렸으며 직장과 간장에서는 편충란과 요충란, 혈흡충란이 발견되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식도와 위에서 참외씨 138개가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로써 신추가 죽은 계절이 참외가 익는 여름철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인은 관심증 발작, 죽을 때 나이는 50세 안팎으로 추정됐다.이 미라는 고대 이집트의 미라가 내장을 발라내고 방부처리를 거친 것인데 비해 시신에 손상을 전혀 내지 않은 상태에서 보존된 결과라는 점이 세계 의학계에서도 하나의 사건으로 평가된다.1년 만에 재회한 미라 신추. 그래서 반갑긴 했지만, 다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만나지 못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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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대한민국 전/의경 이야기- 전/의경이 본 한총련 여학생.
한총련이라는 이적단체의 무리들과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들 중 한 무리들이 바로 "전의경"들 일 거다. 군복무하면서 직접 본 것도 그렇고, 나중에 전역 후 온라인상으로도 그렇고 한총련의 밑바닥 난 정말 숱하게 본거 같다. 하긴, 그 밑바닥이라는게 보여지면 어떻겠는가? 정작 본인들이 거기에 대해서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를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년넘들이 존재를하니, 전재산 29만원뿐이라는 어떤 분이 말을 해도 "저정도는 약과로군~~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지금은 활동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포털사이트 다음에 시위현장이라는 카페가 있었다.말그대로 건전한 시위문화를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게시판인데 전의경출신예비역들과 한총련조직원들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는 했었다.(논제와 상관없이 일방적인 전의경들의 군생활 추억담이나 한총련의 일방적인 선동이 게시판에 글로 올라오면 가차없이 삭제를 당하던 곳이다.)당시 논쟁거리였던걸로만 대충 기억해봐도.(1)서해교전을 두고 홍익대한총련간부라는 "배째등x(닉네임)"= 북한군은 아무잘못없이 단순히 그들의 교전수칙을 지켰을 뿐이다. 그러므로 남한해군의 사망은 북한군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2)한총련 여학생간부 "물고x(닉네임)"=통일선봉대라는 조직의 활동을 보면서 "통일의 그날까지 적들의 수도 서울에서 투쟁!"(적들의 수도 서울? 도대체 넌 국적이 어디냐? 일단 가드부터 올리고 시작하자....) (3)한총련(닉네임) 이라는 넘.=세상에 시위를 하다보면 집회시간을 넘길수도 있고, 차도를 점거할 수도있고, 흥분하면 경찰을 밀수도 있고.(그럼~그럼~~ 네 여동생하고 연애를 하던 놈도 연애를 하다보니 잠자리를 같이 할 수도 있고, 그러다보면 애도 밸 수 있고, 그러다보면 남자놈은 나몰라라 할 수도 있고~~)(4)한총련의 이슈 (의장님따라잡아 의장님처럼 생활하기.)= 의장님? 같은 학우아냐? 같은 학우들끼리 계급을 정해 놓구 의장님이라는 호칭을 쓰나? 게다가 의장님처럼 생활하기...? 무슨 조폭이냐?(이걸두고 수배자인 윤정x라는 넘은 그냥 팬클럽 형식이므로 이해해 달라는 글을 올렸슴.)대충기억나는 이 네가지말고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솔직히 내 심정을 이야기하자면 위의 글을 쓴 사람들이 제발 한총련이 아닌 한총련을 가장한 고도의 안티이기를 바랄뿐이다.....특히 시위현장이라는 카페에서 물고x는 결국은 자폭을 하고 말았다.자폭의 이유는 현재의 한국의 징집제가 아닌 모병제로 전환을 하자는 주장을 하면서 군대를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만들면 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거였다. 그렇게 만드는게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인데 그동안의 전력의 공백은 누가 매꿔주는가? 라는 질문에 "현재도 우리나라를 지켜줄 우방국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라는 주장을 펼쳐서 카페회원들이 "그 우방이 어디인지 알려달라?"라는 질문을 끈질기게 했더니 자폭해버리더라는 거다...예전에 한총련애덜이 불법시위를 하다가 특기대 78중대원이 몸싸움도중 자기네 여학생을 성추행을 했다면서 그 범인 잡아내라고 난리를 치면서 자기 아버지뻘되는 경찰관들에게 쌍욕을 퍼부은 사건이 있었다.(이게 동영상도 존재한다. 그장면 보면 아주 가관이다.)근데 성추행을 한 대원뿐만이 아니라 그 근처에있던 대원들을 전부 잡아 넣으라는 요구를 하는 거다.(지하철에서 성추행사건 벌어지면 그칸에 탄 남자들 다 잡아넣어야 하냐?)그래서 경찰관이 순찰차까지 끌고와서 그 성추행을 한 범인을 지목해라라는 말에 누군지 잡아내지는 못하고 그냥 전부다 잡아넣으라는 말만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이후 에필로그를 들었는데 한참있다가 "저넘이 범인이다!라고" 한명을 지목했는데...그 범인이라고 지목당한 대원이 1열도 아닌 3열에 있던 대원이었다라는거다.(팔이 무슨 가제트냐?)그리고 데모질하는데 이제는 이용할게없어서 성(性)을 이용하냐? 이사건과 관련해서 올린 반박문이 서울청홈페이지에 가도 있다.하긴, 반미시위하러 미군기지를 몰려갈때 "나이키"신발 신고, "90년 걸프전때의 미군 위장복 입고", 리바이스 티셔츠를 입고다니던 개념없는 애들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2000년에 총선 시민연대인가? 에서 낙선운동을 대대적을 행하는 바람에 전국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 낙선운동과 관련항 행사가 벌어져서 대학로를 하루 통제한 후에, 시민축제 비스무레 하게 공연을 하던 상황에 출동을 나가게 됬다.아마 이때는 시민축제겸해서 가수들도 코요태와 박혜경도 출연하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걸로 기억한다.(우리도 당시 박혜경의 빨갛게 염색한 머리와 폭발적인 라이브실력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 이 당시는 전의경들 사이에서는 뒤숭숭 할 때 였기도 하다.1기동대1중대 기대마가 선거와 관련해서 인가? 시위와관련해서 인가? 암튼 이쪽으로 연관이 된 청년진보당 당원들에게 피탈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구, 그 소문이 돌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한가한 듯하면서도 좀 긴장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근데 이사람들은 지금 뭐하면서 살려나?) 서울청 소속 전 중대원들은 1 중대 기대마가 피탈당했다는 소리에 "천하의 1중대가 기대마를 피탈당해?" 하곤 했는데, 당시 상황지원나갔던 1기동대9중대 동기 이야기로는 "막 상황벌어진데 가보니까 대원하나랑 왠 놈이랑 둘이 기대마 위에서 유도를(?)하고 있더만. 난리도 아니었다.." 당시 그 청년진보당인가하는 넘들이 불법선거운동(아마 광화문쪽에서 했던거 같던데..)을 해서 연행하는 과정에서 순순히 연행되길래, 적은수의 인원으로 연행을 시도하다가 경찰서로 호송도중 버스안에서 역습을 당해서 버스 피탈당하고, 운전반장님이 핸폰으로 연락해서 지원병력 달?윤? 몇명 대원들 경찰버스내부에 붙잡혀서 다구리당하고.... 그거 대원들이 다시 들어가서 구해오구..... 여기까지가 들은 이야기다.암튼 낙선 운동 한다기에 그 상황에 우리는 혼잡경비의 목적으로 출동을 나간거였고, 우리가 받은 지시는 간단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해서 지하철 역 지붕위로올라가지 못하게 근무자를 배치하고, 시민들 밟혀죽지 않게 보호하라나?(월드컵 길거리 관람 할 때도 대학로쪽에서는 단체관람객들에게 지하철지붕위에는 안전문제로 못올라가게 했음.)암튼 근무자들 배열하고, 잠시후 당시 중대수하나였던 나는 중대원들이 제대로 배열이 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야, 나 배열지 확인차 잠깐 근무지 나가볼 거다. 누구 모 필요한거 있는 넘, 거수"그래서 물건 필요하다는 후임들 물건도 살겸, 근무배열도 확인하면서 체크할겸해서 근무지를 돌아보는데 마로니에 공원에서 저기 디자인 포장센터 쪽으로 끝부분에있는 지하철 역에서 그 청년 진보당 애들이 선거운동겸, 선전을 하고있어서 가봤더니,선전의 제목은 이름하야 "경찰의 폭력을 시민들에게 고발하며 이를 규탄한다..." 그 선전문구를 보면서 가다가 자세히 보니까 우리 근무지와 청년진보당의 선전전이 벌어지는 곳이 겹치기에 가서 근무자도 체크할겸 선전의 내용도 지켜볼겸 해서 가봤더니 호송도중1중대 기대마를 피탈당했을때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동영상의 내용은 만일 청년진보당 망하면 자신들은 편집기술담당자로 전업해서 먹고 살거라는걸 보여 주고 있었다. 동영상의 내용은 정말 재미가(?) 있었다. ^^;기브스하고 나와서는 경찰의 방패에 맞는 폭력으로 팔이 골절됬다는 자칭 출마후보자라는 넘은 그 골절된 팔로 경찰에게 빼앗은 장봉을 휘두르는 묘기를 보여주고( 무슨 마술도 아니고...) 우리는(정말 신기한거 봤다는 듯이...) "야, 저거 봐라. 저기 저사람, 팔 절단났다면서 장봉 휘둘러서 패는데?" 경찰의 폭력이 심화됐다는 장면에서는 "모야? 때렸다는 경찰이 피흘리네.... 저 모야?, 코에 나오는 뻘건거.." "팔 부러진 놈이 그팔로 경찰버스 두들기며, 민중가요 부르는거 봐라, 너도 상황나가서 어디 맞고 부러지면,부러진 팔로 경찰버스 두들기며 민가 불러봐 , 저기 영화(?)처럼 바로 뼈 붙는다..." 그순간, 구경꾼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집중되고, 다시 동영상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이 "저거 다 구라야?"하는 분위기로 가니까 백두대간어쩌구 티셔츠를 입은 한총련 남학생이 한넘 온다."저기, 좀 가세요 혐오감 일으키지 말고." "보시다 시피,우리도 마주치고 싶지않은데 근무지하고 겹치네요?" "그럼 거기 서서, 당신들의 만행을 잘 보구 반성하던가요!"(이게 지금 우리가 할소리 아닌가?) 다시 영화(?)보다가 몬가 발견 한듯이 "야, 저 팔부러졌다는 아저씨(?) 부러진 팔로 경찰버스천장으로 올라간다!" "신기하기도 하여라..." 사람들, "정말이네? 이거 경찰 패놓구 괜히 일 커질까봐 치는 구라 아냐?" 갑자기 왠 뿔테 안경쓴 학생하나가 온다.(역시 티셔츠는 백두대간..) "저리 가요!, 위화감 조성하지 말고!" "근무지가 곂친다니까요..."(왜? 잼있구만..) "그래도 암튼 가요! 방해하지 말고!" "그럼 경찰서에 연락해서, 근무자 좀 빼달라고 민원좀 넣으쇼. 우리좀 쉬게..." 갑자기 그애가 내귀에대고 한마디 한다. "나는 전경들만(의경이라니까!) 보면 식칼로 목을 따버리고 싶어(!)" 순간 너무 기가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열도 엄청 많이 받았다. 하지만 거기서 'ㅆ'이라도 들어가는 말 한마디만 하면 우리로서는 기가 막힌 시비거리를 제공하는 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말그대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할 순간이었다.) 그냥 놀라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해서 바로 비웃음을 날려 줄 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상당히 어색한 웃음이었을 거다. 갑자기 남자애처럼 생긴 여학생이 조그만 목소리로 목을 따버리고 싶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나중에 그학생이 여학생이라는 거에 난 더 놀랐지만 말이다..)"거, 전경 너무 미워하지 마요, 그리고 참고삼아 우리는 의경입니다."결국 한동안은 눈싸움이 벌어지고는 있었지만, 그쪽이나 우리나 따로 액션을 취할 상황은 아니었다. 어차피 사람들 다치지말라는 혼잡경비의 차원에서 나온 우리들이나, 선거운동을 빙자한 가짜영화(?) 상영을 위해 나온 그네들이나 따로 할게 뭐가 있겠는가?차라리 그 시간에, 중대장님하고 같이 머리 맞대고 근무지 조금이라도 빼가지고 근무좀 편하게 돌리는 쪽으로 머리쓰는게 더 생산적이겠고 말이다.그나저나 그넘들 지금은 뭐하고 사나 몰라~~~ 혹시 영화편집인? 아님 칼장수? 아님 암흑가의 히트맨...?================================================================================================한총련과 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오면 당시 청년진보당선전원으로 활동하던 그 한총련소속 여학생의 말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난다.과연 그 여학생은 식칼로 목을 따버리고 싶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줄 아는건가?아직 한참 신입생인것 같던데 전의경을 보면 막연히 식칼로 목을 따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니....도대체 그런 맹목적인 적개심은 어디서 나오는건가? 혹시 그 학생이 전의경뿐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도 그런 맹목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역시 경험자글.. 유용원군사세계 출처..다른건 용서가 되는데..(않되는 부분도 있지만..) 한총련.. 니들이 감히 민족의 국기이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태운것은 결코 용서할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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