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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긴글주의] 이낙연 그리고 진보 유튜브 채널의 뻘짓
먼저 많은 분들이 제 의견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낙연은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이자 최장수 총리였습니다. 총리를 역임할 당시엔 지지자 대부분이 인정할 만큼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차기 대권 후보 지지율 부동의 1위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올해 초 이명박근혜 사면이라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발언을 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지금의 결과를 만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뭐 여기까지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합니다. 먼저 저는 이재명이나 이낙연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이낙연의 이명박근혜 사면론이 나오기 전까진 이재명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이재명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얘기들을 해보겠습니다. 이낙연이 사면론을 얘기했을 때,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엄청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그 이후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전에 게시글인지 댓글에도 썼었는데,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의 강도가 심해졌습니다. 진보로 분류되는 여러 유튜브 채널들이 거의 동시에 이낙연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는데, 계속 지켜봐도 비판을 넘어선 비난에 가까운 내용의 방송을 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습니다. 그런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는 와중, 다른 신생 유튜브 채널에서도 이낙연에 대한 의혹을 쏟아냅니다. 과거 총리 시절의 발언에서부터 누굴 만나서 무슨 얘길 나눴는지 따지는 방송을 이어갔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최성해 전 총장과의 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어디가 끝일지 모를 취재를 이어갑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낙연 예전 측근의 죽음이 굉장히 수상하다며 마치 그 죽음에 이낙연이 연관이라도 된 것처럼 방송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솔직히 너무 이상했습니다. 왜 이낙연에게만 이렇게 혹독할까? 단지 이명박근혜 사면 발언 때문일까? 많은 분들이 그 사면 발언으로 상당한 실망감을 갖게 된 게 사실이지만 진보 성향의 유튜브들이 단지 그 이유만으로 한 번에 이렇게 돌아설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반대로 왜 그 유튜브들은 이재명의 의혹들에 대한 취재나 검증은 없이 옹호하는 방송을 했던 것인지. 저는 궁금합니다. 이재명에겐 그런 의혹이나 취재할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일까요?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예전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일가를 상대하듯이 무자비하게 털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건, 정말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고 그동안 이와 비슷한 내용들의 유튜브 방송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 중 약 보름 전 있었던 유튜브 방송의 사례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유튜브 채널의 이름은 이상호 기자의 [고발뉴스TV]입니다. 이 채널에서도 이낙연에 대한 비판을 넘어 줄곧 비난과 조롱을 이어왔는데, 이젠 그걸 넘어서 누군가가 이재명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그걸 못 참고 도를 넘는 짓을 벌입니다. 해당 영상입니다.(40분 30초부터)민주당의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의 발언을 두고 메신저를 공격하기 위해 전두환까지 끌어들입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정신나간 뻘짓인지 알 만한 분들은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영상에선 5.18의 원흉 전두환을 찾아가 세배까지 했다며 유인태를 공격하고 있지만, 정작 저 영상은 2004년 1월 1일 노무현 정부 시절에 정무수석의 자격으로 찾아가 인사를 드린 겁니다. 게다가 해당 방송의 리포팅을 하는 기자가 이상호 본인이었고,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원래 방송의 리포팅 멘트는 이렇습니다. "전두환 정권 타도를 외쳤던 민주당의 간부도 전씨를 예방하고, 노무현 대통령도 유인태 정무수석을 보내 새해 인사를 갖춥니다." 유인태가 개인 자격으로 전두환을 찾아가서 절을 했나요?? 이건 너무나 명백하게 노무현을 욕보이게 하는 짓입니다. 이게 정상인가요? 저 방송 후, 다음 날에도 똑같은 영상을 보여주며 유인태를 공격하길래 댓글을 달았지만 뭐 답은 없습니다. 글이 너무 길었습니다. 민주당의 경선이 이재명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민주당은 그동안 경선에서 있었던 여러 일들을 정리하고 조속히 원팀을 꾸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소위 똥파리라 불리는, 민주당 내부를 가르고 이간질 시키는 자들이 있고 그것과는 다르게 어느 한 후보를 너무나 티가 나게 옹호하면서 다른 후보를 비판, 비난하는 유튜브 채널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수도 있지만, 본인의 기준도 없이 너무 기울어지진 맙시다. 아직 대선은 많이 남았고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부디 정진합시다.
GitS작성일
2021-10-15추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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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장영자 * 이철희 어음 사기사건 - 2편
사건의 수사 및 여파 1982년 5월 2일이철희 장영자 부부 체포전 청와대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비상회의를 소집했다고 합니다.회의는 전두환의 주재 아래 청와대 서재에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재무부에서는 나웅배 장관과 이규성 1차관보, 검찰에서는 정치근 총장과 이종남 중수부장,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이범석 비서실장과 허화평 정무1수석, 이학봉 민정수석, 김재익 경제수석, 박철언 정무비서관 등이 참석했다고 합니다.이 자리에서 전두환은 이철희와 장영자를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기업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은행의 지원을 통해 무너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공영토건은 법정관리로 넘기고, 일신제강은 부도 처리되는 것으로 결론지었으며, 사채업자들은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여론의 강력한 반발 이철희와 장영자 부부가 여러모로 당시 정권과 친인척 관계로 얽혀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청와대가 당시 배후에 있는게 아니냐는 끊임없는 의혹을 받습니다.그렇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 발표에 대해서 언론부터 받아들이지 않았고, 국민들의 의혹은 해소되기는커녕 더 커져만 갔다고 합니다. 결국 전두환은 5월 11일에 다시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격론 끝에 이규광을 광업진흥공사 사장에서 물러나게 했다고 합니다.정권 수뇌부 사이의 갈등 하지만 이규광에 대한 처리를 놓고 전두환과 검찰, 그리고 비서진의 입장이 갈립니다.당시 검찰총장 정치근은 이규광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고, 허화평과 허삼수는 세간에서 이 사건의 배후로 청와대를 의심하고 있다며 전두환을 압박합니다.이에 밀린 전두환은 결국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규광을 구속하는 것은 반대했습니다. 전두환은 이철희가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몰아세웠습니다. 그러나 이규광을 구속하지 않고는 청와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누그러지지 않을 기세였습니다. 결국 전두환은 이규광을 구속시키라는 지시를 내렸고, 다음 날 이규광은 장영자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사건의 여파로 인한 숙청 민심을 달래기 위한 내각 개편을 단행합니다.이 사건으로 국무총리 유창순, 경제기획원장관 겸 경제부총리 신병현, 외무부장관 노신영, 문화공보부장관 이광표, 법무부장관 이종원, 검찰총장 정치근, 국가안전기획부장 유학성, 내무부장관 서정화, 총무처장관 김용휴, 재무부장관 나웅배, 체신부장관 최광수, 보건사회부장관 천명기,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권정달, 교통부장관 윤자중, 농수산부장관 고건, 상공부장관 서석준, 동력자원부장관 이선기, 정무수석비서관 허화평, 사정수석비서관 허삼수 등 당시 5공의 실세들이 물러나게 됩니다.또 당시 정권의 실세들로 불리던 허화평과 허삼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들을 공직에서 배제하려고까지 하였고 심지어는 전두환 정권의 개국 공신들인 유학성, 노태우,정호용 등을 궁정동 안전가옥에 초대하여 전두환에게 친인척의 2선 후퇴를 건의할 것을 결의하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이 점 때문에 그들은 전두환의 눈 밖에 났다고 합니다.장영자에 대한 수사 장영자는 수사 당시에나 기자들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워낙 사기 규모가 커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수 없게 오직 이사건만을 다루는 청문회가 열릴 정도 였고 담당검사가 티비 청문회에 참석 사건에 대해 리뷰를 하고 국민적 의혹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까지 할 정도로 여파가 어마어마했습니다.이 사건수사에 관련된 검사들만 1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장영자사건은 진귀하고 특이한 상황을 많이 연출했는데 국회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당사자 장영자를 세우려고 했지만 그녀가 단 한번도 출석을 하지 않아 직접 교도소로 찾아가 질의하는희대의 사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장영자 본인은 정치적 희생양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고 그대로 놔두었다면 충분히 해결가능한 어음들 이었다고 주장합니다..........결국 장영자는 1983년 희대의 어음 사기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습니다. 이후 형기 5년을 남겨두고 1992년 3월 가석방됩니다. 남편 이철희는 복역중 먼저 가석방 되었다고 합니다.출소 이후 2차사건으로 구속1992년 가석방된 후에도 용인술, 처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언론 보도를 내는가 하면, 다시 시중 은행의 주요 간부들을 자신있게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4년에 다시 140억 원대 어음사기 사건을 저질러서 4년간 복역합니다.3차사건으로 구속1998년에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이번에야 조용히 사나 싶었지만 또 다시 구권 화폐 사기를 일으키며 2000년에 다시 구속되었다가 2015년 1월에야 석방되었습니다.4차사건으로 구속2018년 12월 21일, 출소 3년 만에 또 6억대 사기를 쳐서 다시 구속됩니다. 이 때 나이가 75세였다고 하는데 거의 일평생 사기와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것 같습니다.장영자의 재산 사채시장 거물로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엄청난 재력가였으며, 젊은 시절부터 미모와 남다른 지략으로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데 매우 능한 인물로도 명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재산증식 과정 자체에 대해서는 세간에 크게 자세히 알려진적은 없다고 합니다.1992년 1차 가석방 후에도 살펴보면 구속기간중에도 장영자 개인의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라서 거의 1000억에 육박했었다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석방 후에 다시 사채시장에서 활동할 뜻을 보인적도 있다고 합니다.이후 또 압류취소청구소송에서 승소해 국세청에 압류당했던 골동품 서화류 1,000여점등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았다고 합니다.재산자체는 차명으로 되어 있는 부동산 재산과 은행기록으로 남지 않는 골동품 서화류등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장영자 관련 지하자금 관련해서 취재를 한 적이 있었는데 500억정도의 지하자금이 있다며 예금증서를 가지고 실제로 은행을 방문하는 일반인이나 검찰, 경찰등이 취재 당시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예금증서는 실제로는 위조로 보이고 500억 자체의 예금이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이철희 이전에 2명의 남편과 결혼한적이 있었지만 모두 끝까지 잘 살지는 못했고 이철희가 세 번째 남편이었다고 합니다. 결혼 당시 장영자와 이철희의 나이는 21살정도 차이가 나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만 둘 사이의 부부관계 자체는 원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결국 이 어음사기사건은 금융실명제 도입의 시초가 되고 전두환 대통령 당시에도 건의가 됐으나 여러 반대에 무산되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도입이 됩니다.출처 :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2000330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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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박근혜 10개 부처가 '세월호 7시간' 조사 막았다"
檢 특수단, 기재부·행안부 등 압수수색[서울신문]당시 특조위조직 인사·예산 축소조직적 개입 증거도 새로 발견“수석비서관회의서 최소 8차례강력하게 대응하라 지시” 정황세월호 항적자료 조작 의혹도 수사 박병우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진상규명국장이 22일 서울 중구 사참위 대회의실에서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방해 의혹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검찰이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 방해 의혹과 관련해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해당 의혹 규명을 위해 정부 부처를 강제수사한 것은 처음이다. 세월호 항적자료 조작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에도 착수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와 10개 부처가 ‘박근혜 7시간’ 조사 방해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도 새로 발견됐다.대검찰청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특수단·단장 임관혁)은 22일 특조위 조사 방해 고발 사건과 관련해 기재부와 행안부, 인사혁신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관련 자료를 확보 중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안전예산과, 행안부는 경제조직과와 인사기획관실, 인사혁신처는 인사관리국이 압수수색 대상이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2015년 1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운영된 1기 특조위 당시 조직과 인사, 예산 삭감, 활동 기간 축소 등에 관여했는지 살피고 있다.특히 기재부는 특조위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조사 활동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조위는 2015년 당시 160억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청와대와 기재부는 절반을 조금 넘는 89억원을 지급 예산으로 확정하면서 ‘조사를 방해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조위는 2016년 조사 연장을 요청했지만 기재부가 아예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서 강제 해산됐다.특수단은 지난 21일엔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 차관을 이 사건의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윤 전 차관이 2018년 1심 판단을 받은 특조위 방해 혐의 외에 다른 범죄 사실을 중점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특수단은 세월호 ‘항적자료 조작 의혹’ 수사에도 착수했다. 검찰은 전날 해수부로부터 세월호 항적이 기록된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임의 제출받았다. AIS 데이터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풀 결정적인 증거다. 그간 세월호의 AIS 데이터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고, 해외 자료 등과 비교해 신뢰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한편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청와대와 정부 부처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1기 특조위를 방해한 증거가 추가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참위에 따르면 1기 특조위가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조사 계획을 의결한 직후 청와대는 진상규명국장 등 공무원 임명을 무기한 보류하는 등 조사를 방해했다. 파견 예정이던 17~19명의 일반직 공무원도 파견이 무기한 연기됐다.사참위는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소 8번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면서 “이러한 방해는 이 전 실장은 물론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 안종범 전 경제수석 등 청와대와 인사혁신처·해수부 등 여러 부처가 상호 공모한 결과”라고 밝혔다. 사참위는 이 전 실장 등 19명과 국무조정실, 기재부, 행안부 등 10개 정부 부처에 대해 검찰에 추가 수사를 요청할 계획이다.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https://news.v.daum.net/v/2020042219210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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