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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중복이긴 하지만 못보신 분들을 위해.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그것은
평화요
안식이요
이 세상의 마지막이요
처음이다.-정호승의 『연인』 中-
안녕하세요 점점 동이 터오네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무리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글을 다시 쓰려니 표현이 다소 서툴러도 이해해주십시오.
큰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부도를 맞으시고 우리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죠.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그 등쌀을 피해서 생활하다가 입 하나라도 덜고 학비걱정이나 좀 덜려고 군대를 자원해서 갔습니다.
제대 후에도 집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학기 휴학해서 돈을 벌고 한학기 다니다가 한학기 또 휴학하고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경남의 한 중소도시 대형마트에서 일했는데 커피나 햄 같은 거 시식할 때 나레이터모델들을 고용해서 유니폼 입혀서 시선을 끌고손님들의 시식을 종용하는 역할을 맡기는데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모델이 있었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 잘하는 모델들 틈에서 유독 말 한마디 못하고오히려 손님들이 다가와서 알아서 시식하고 물어보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더라는 거죠.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인상 깊어서 저도 다가가서 시식하고는 몇 가지 물어보고 했는데
이 모델분은 나레이터모델답지 않게 말하는 것도 너무 수줍어하고 얼굴 빨개지고...ㅎㅎ
원래는 밤늦게까지 매장정리하고 맨마지막에 퇴근을 하지만
그날은 죽어도 일찍 가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나레이터모델들 마치는 시각에 맞춰 출구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그분들이 우루루 몰려나와서 각자 집으로 가기도 하고 몇몇은 시내에서 놀기 위해 같이 택시 타고 가는데
이 여성분만 외톨이처럼 혼자 버스를 기다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저..매장에서 일하는 OO인데, 남자친구 없죠? 저랑 사귀어보는 건 어때요? 저 정말 괜찮은 놈인데요..제발요...주절주절.." 하면서 울상을 지으니까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아! 기억해요" 하면서 아는 척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폰번호를 얻었어요. 저는 돈이 없어서 휴대폰도 없었구요.
그래서 시식행사가 잡힐 때마다 우린 늘 보게 되었죠.
그 친구는 일부러 마트 행사를 자원했구요. 일하기 편한 대신 페이가 적어요.
그래도 제가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나레이터모델분들이 더 많이 받으시더라구요.
외부행사 나갈 때는 더 많이 받고..
지명되면 거기서 더 받고..
우린 너무 가난한 커플이라서
남들 먹는 커피숍이나 스파게티점이나 피자헛에도 못갔어요.
그리고 학비도 모아야 했고 집에도 보태야 했던 저보다는
아무래도 돈을 좀더 받고 집안형편도 조금 나은 여자친구가 데이트비용을 거의 부담했구요.저는 거지 중의 상거지, 개털 중의 상개털이었어요.
집에서 쫓겨나면서 옷도 못가지고 나와서
때 묻어도 티도 안나는 아래위로 군복을 구해서 입고 다녔거든요. 잠바도.
막 입고 아무리 빨아도 티도 안나니까요.
크리스마스 때는 길거리의 붕어빵이랑 군밤, 호도과자 섞은 게 우리의 만찬이었고 그걸로도 너무 행복해했어요.
여중여고 앞 떡볶이도 우리의 주 메뉴였구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그런 거 우리한텐 사치였어요.
다니다가 꽃바구니 버려진 게 눈에 띄면 주워서 기념일에 부직포와 솜을 사서 뽑기한 작은 인형과ABC초콜렛이랑 칸쵸 같은 거 담아서 선물했구요. 화려한 케익과 포도주와 잔 두 개도 그림 그려서 앞에 두고실제로는 초코파이랑 델몬트 병쥬스로 상상 속의 파티를 벌이며 즐거워하곤 했네요.
저는 몰라도 여친이 착하고 키도 크고 단아한 인상이기 때문에 아마 길거리 고백도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하지만 한번도 그런 내색을 안해서 잘 몰라요.
학교 다니면서도 과외도 하느라 만날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저는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도 안되는 사람이었구요. 언제나 제가 연락을 했죠.
한밤 중에 끝나서 언제나 공중전화로 잠깐 통화를 하고
일요일에야 좀 시간을 갖고 만날 수 있었네요.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여름에는 비 맞아가면서, 겨울에도 외부행사만 고집했대요.찬바람 부는데도 짧은 치마에 배 드러 나는 옷 입고 행사 했었대요. 돈 더 받아서 제 용돈 주고 제 학비 보태주려구요 ㅠㅠ걔 친구들한테서 들었어요. 자외선과 대로변 자동차 매연과 먼지, 그리고 겨울바람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피부가 깎였을까요..)
학교 다니는 내내 여자친구한테 용돈을 얻어 살았어요.
처음엔 안 받았는데 여친이
"나랑 결혼할 생각 없어? 결혼할 생각 가지고 있다면 돈 받아. 내돈이 네돈이니까 부담갖지 마.그리고 친구들한테 얻어먹지만 말고 가끔 사주기도 하고 인심 잃지 말구. 남자는 인맥이 재산이잖아."
그 친구가 이렇게까지 얘기해서,
나중에 결혼해서 다 갚을게 하고 용돈을 받아썼습니다. 걔네 집에서 반찬 다 갖다 먹었습니다. 언제는 쌀도 가져왔더군요. -_-
그 전엔 기본반찬인 김치 살 돈은 물론이고 쌀 살 돈도 없었거든요. 정말 완벽한 거지였네요.현금은 물론 계좌지급까지 모두 정지 당해서. 맨밥에 간장을 살짝 묻혀 짭짤하게 비벼먹는 게 매 끼니의 반복이었어요.
라면 사먹을 돈도 없어서 마트에서 라면박스 옮기다가 충격 받아서 부서진 게 가끔 나오는데그걸 100원 씩에 사서 국 대신으로 국물 먹곤 했던 기억이 있네요.
자장면과 짬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중국집 앞에서 냄새만 배부르게 맡고 발걸음을 돌리길 수십번..결국 상가에서 내놓은 그릇에 담긴 짬뽕국물을 마시면서 그 갈증을 달래기도했습니다.
저희집이 잘 살 때 제 동생이 사귀던 여자가 정말 착했는데 가난한 집안의 딸이어서 어머니 반대로 헤어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저희집이 가난해서인지 제가 사귀는 여자에 대해 어머니는 별 말씀을 못하시더라구요.
고졸에 집도 그냥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집이라는 이유로 예전 같았으면 결사반대 하셨을 어머니께서..
그러다가 저희 아버지 사업이 다시 풀리기 시작해서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집도 찾고 아버지 어머니도 각각 자가용 굴릴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안정되었습니다.
제 여친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구요.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갑자기 돈 생겼다고 돈 쓰고 다니면 또 예전으로 돌아가버릴까봐 너무 무서웠거든요.
집에 빚이 너무 많아서 아마 나랑 결혼하면 부모님 빚을 갚느라 40살 넘게까지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 잘하라고 해도 제 여친은,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대. 좀 덜 먹고 덜 입고 아껴서 열심히 살며 조금씩 갚아가면 설마 죽을 때까지 못 갚겠어?난 자기를 믿어. 내 걱정이라면 하지마. 미안한만큼 평생 나만 사랑해주면 될 것 같은데? "
정말 감동했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나레이터모델 친구들이 다 말렸대요.
술자리에서 저한테 직접 얘기까지 하더라구요.
착한 희영이 배신하면 자기들이 가만히 안둔다고.
걔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유학가면 잘사는 여자들, 이쁘고 어린 애들도 수두룩할텐데 바보같은 너는 버려질 거라고.
미국에 가서 어학코스를 끝내고 전략협상 분야를 공부했어요.
쉽게 말해 Negotiator라고 하는데 협상전문가, 협상컨설턴트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한국과 미국이 무역과 시장개방 등의 문제로 FTA 할 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분이 한국측 수석대표로 주도하지 않았었나요?그런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범죄현장에서 인질이 있을 때나 자살시도자가 있는 현장에 급파되어 일반경찰들이 현장 확보하고SWAT 이 타격작전개시 하기 전에 쌍방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각국간 군병력, 화기 유지 및 연합훈련 등 각종 협의를 하는 자리에 동원되기도 하고,혹은 대형그룹들 간의 딜과 기업인수합병을 위해서 고용되기도 해요.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해야 하고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서 우리쪽에 좀더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죠.
우리 쪽에서 가장 강점으로 내세워 공격무기로 활용할 카드를 찾고,상대 쪽의 약점을 찾아서 궁지로 몰아서 기를 꺾은 후 살 길을 터주는 식으로 며칠 동안 협상을 이어갑니다.
상대도 손해보지 않은 듯 맞춰주는 동시에 우리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사수해서 최대한의 소득을 이끌어내는 거죠.
肉斬骨斷(육참골단), 捨小取大(사소취대)의 사자성어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거죠.군더더기 여러 조건들을 포용하는 대신 큰 덩어리 두 세 개를 가져오는 겁니다.그 과정에선 20년, 30년 후의 국제정세와 종목에 따른 계산까지 합니다.물론 상대측에서도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뭔지 알 수 없어야 하는 거구요.국제관계에서 그때의 종속관계를 위해 몇 십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양방간 상황과 입장에 대해 몇 달 전부터 고용되어 몇 달 동안 밤새며 공부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구요,계약금, 약속된 수고료 외에 성사될 경우 보너스도 받죠.
성사율이 낮을 땐 지명도도 떨어지고 금액도 낮아지고 소질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도태될 수도 있는 직업입니다.
미국에서는 많긴 하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대우가 괜찮은 편이구요.한국에선 그런 전문양성과정이 없어서 아직 정부기관 및 대기업에서조차 인식이 미흡하고금전적 대우도 미국만큼은 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식만 제대로 이해되고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겠죠.
국내엔 전문가가 너무 희귀하니까.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도 제 여친은 저희집이 아직 빚에 시달리며 힘들게 공부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수시로 돈을 송금해와요. 그거 쓰지도 않고 꼬박꼬박 모아놨어요. 일부러 말은 안했구요.
저희집 수준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제가 미국에서 공부마칠 때가 되니까 저희집에 선이 많이 들어온대요. 소위 돈 많은 집안에서요.
우리나라에 돈 많은 집안이 그렇게 많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대도시 버스운송회사 소유주도 계시고, 서울 강남역 앞에 대형빌딩 몇 채 소유하고 계시는 집안도 있고,할아버지 때부터 장관, 국회의원 해오신 권력집안도 있고, 거기다 인물도 좋다더군요. 저는 아직 못봤지만.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유학생들 모임에서 그런 집안 친구들 많았어요.
유학할 때 저도 몇 번 고백 받아봤어요. 다들 뭐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의 애들요.
일본이나 유럽애들 같은 다른 외국애들한테도 몇 번 받아봤고..
그런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거지일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저 하나만 품어 준 그 여자를,
어떻게 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배신을 하겠습니까.
아직도 부유한 정도는 아니어서 유학생활 내내 일도 하고 돈 정말 아껴썼어요.
기한 지난 폐기처분 전 바게트빵 싸게 사서 끓인 우유에 불려서 배채웠어요.
레바논출신 애랑 우범지대 같은 곳에 방2칸짜리 렌트해서 돈 아끼며 지냈어요.
겨울에 전기장판 하나로 버텼고 여름엔 주워 온 선풍기.
먹을 거 없어서 쥐도 안와요. ㅎㅎ
그런데 돈 많은 집안 애들이 비싼 옷 쇼핑하러 다니고 좋은 차 구입해서 놀러다니고 파티하고,대기업 누구 딸, 어느 병원장 딸 이런 애들이 수두룩한데 걔네 중 몇몇이 호감 비치면서 따라다니면 님들은 어떨 것 같은가요?
전유성씨 말씀대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편안해지는 거 한순간이예요.
그런데 그 여자들...
제가 만약 죽을 병에 걸리거나 위험한 순간에 처한다면 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까요?
그 친구들에 대해선 몰라도 제 여친에 대해선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딴맘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오직 한국에 들어가든, 미국에 불러들이든 제 남은 인생 그녀를 위해 희생하려구요.
그녀가 제게 모든 걸 주었듯 이젠 제가 그녀를 보호해주려구요.
평생 한 여자만을 위해 살 겁니다.
죽을 때까지 제 눈 속엔 그녀 밖에 없을 거예요.
여자한텐 20대가 인생의 절반이라고 하죠?
그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20대를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을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려 5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외국에 보내놓고 흔들리지 않고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ㅠㅠ제가 유학 중에 좋은 배경 가진 여자 만나서 연락 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제 심장을 누군가에게 꺼내 맡겨야 한다면 그녀에게 맡길 겁니다.
죽을 위험에 처해도 저를 위해 희생할 여자라는 걸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고보니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네요.
첫번째 이유는, 그녀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어서입니다.
제가 특별히 화나게 했던 기억도 없지만 다른 일에도 화를 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언젠가 집요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냥 단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자기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고,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오히려 그런 자신이 답답해서 제가 화나진 않았었냐고 되물었던 사람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제가 화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제게 화를 내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제게 잘못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그리고 그녀가 제 앞에서 제게 화를 내고 있다는 그 현실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안심할 것입니다.
화를 내건 어떻건 일단은 제 앞에 있어줬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돈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좋은 요리 먹으러 다니고, 좋은 옷 쇼핑하러 다니고, 비싼 선물 사주고,기념일마다 몇 만원 하는 선물바구니와 이벤트 하는 거...
돈만 있으면 어느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해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없어서 눈물 흘리며 미안해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을 위해 자기 수명도 떼어 팔 사람입니다.
100을 가졌다면 100 모두 내어주고도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해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살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평생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희영아..
나 약속 지켰다. 절대 유학 가서 다른 여자 내 가슴에 담지 않겠다고 너한테 맹세한 약속.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거야.
나 너한테 붕어빵이랑 떡볶이랑 캔커피 밖에 못사주고 언제나 버스 타고 데이트 하고,
너한테 FI*A 운동화 사주려고 했을 때 네가 매장에서 도망나가서 대로변의 잡브랜드 1만원짜리 운동화 골라 신고나 만날 때마다 그것만 신고 나오고...
나 정말 거지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인생 막막했는데 네가 나 품어줘서 나 유학 갈 꿈도 가질 수 있었어.
유학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게 되어도 비웃지 않고 기쁘게 환영해 줄 네가 있기 때문에,언제나 난 돌아갈 곳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
너 아니었으면 아마 꿈도 잃어버리고 한국에서 대학중퇴에 하루하루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내가 언제든 돌아갈 집 같은 네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안심하고 시도할 거야.
네가 전에 보낸 편지에
"자기가 너무 잘나버려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더이상 없어.어쩌지? 자기가 그렇게 커져가고 멋있게 변해가는 동안 난 7년 동안 더 늙었고 더 무식해졌고 더 초라해졌네..
그런 자기 옆에 이런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기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그러니까..
정말정말 나보다 더 자기 마음 안에 들어오는 여자를 찾게 되면 그때 나한테 꼭 말해줘.
내가 봤을 때 좋은 여자면 안심하고 자기 보내 줄 수 있을 거야.
난 괜찮으니까 자기는 자기가 더 멋지게 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해.
대신 다음 생이 또 있다면 그땐 꼭 날 선택해줘야해.
그땐 나도 부잣집에 똑똑한 여자로 태어나서 자기한테 어울릴만한 여자로 태어날 테니깐."
희영아..
나.. 네가 보낸 그 편지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넌 모를거야.
지금 이 글 쓰면서도 눈물이 흘러서 모니터가 안보여..
내가 널 두고 어느 여잘 사랑할 수가 있겠어..
너처럼 좋은 여자는 내가 천번을 다시 태어나도 아마 만날 수 없을 거야.
네가 나한테 안어울릴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나 내가 배운 공부 다 버리고 붕어빵장수 아저씨로 살 수도 있어.
내가 익힌 것들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 거라면 말이야.
내가 죽어서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 내 인생에 너를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딱 그것만 말씀드릴거야.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너로 인해서 꽃 피울 수 있었으니까.
내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다면,
지금의 나로 이렇게 키운 두번째 내 어미는 바로 너야.
내게 아무 힘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 시기에 내 부모가 나를 키우셨고,
그 두번째 시기에 네가 나를 키웠어.
일시귀국일지 영구귀국일지 아직 결정짓지 못했지만
한국 돌아가면 그때 처음으로 무릎 꿇고 네게 청혼할게.
우리..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사랑 지켜왔잖아.
우리 애들이 컸을 때
이 글을 보여줄거야.
그리고..
아빠가 엄마한테 이런 무한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때 이미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였다고,
엄마는 아무 것도 없는 아빠를 조건없이 품었고
그래서 아빠는 큰새가 될 수 있었다고,
아빠가 할아버지할머니께 생명으로 진 빚이 있다면
엄마에겐 녹 슬어 버릴 뻔한 심장과 황폐해질 뻔한 영혼의 빚을 졌기 때문에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에게 빚을 진 셈이라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영원히 빚을 갚는 심정으로 엄마를 사랑할 거라고.
그게 내가 너희들보다 엄마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니까
너희들이 이해하라고
그렇게 말을 할 거야.
사랑한다.
영원히..
...
출처 : 네이트판
여자의 답장
저예요...
톡톡 > 사는 얘기| 사랑이 (판) 2009.12.19 17:27
조회173,347 스크랩213
왠지 그래야할것 같아서 2달정도전부터 말을 높이긴했지만 아직 어색하네요. 여기에서 글로 그러니까 더 이상하구...
괜히 저까지 이런글써서 여러가지로 여기 다른님들 심기건드리고 있는건 아닌가 넘 걱정도 되구...그래서 답장써놓고두 안절부절하고있어여 ㅠㅠ
혹시 몇분이라도 거슬린다하시면 바로 삭제할께요 죄송해요
..........................................
안녕하세요저는...음....저는....일단 이 글에 나오는 여자구요....
공개답장쓰려니까 굉장히 부끄럽네요....
자기가 꼭 읽었음 좋겠어여
뒤늦게 발견했네요. 친구들한테서 전화 받았어요. 혹시 저 아니냐고..니글 인터넷에 뜬것 같다고..너무너무 놀라서 심장이 터져버릴것같고 손이 떨려서 글을 칠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할지...너무 울어서 눈도 퉁퉁............
근데 저는..제가 한건 너무 작은건데 한것에 비해 너무 큰 평가를 받고 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너무 큰것을 받아버렸네요 감당할수 없을만큼. ㅠㅠ저는 내세울수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잘할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구요 그런데 처음으로 제가 잘한 무언가를 발견했네요 정말 좋은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이요
자기.. 그때 저한테 말걸어줘서 고맙고 제가 자기를 사랑할수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먼나라에서 외로우셨을텐데 힘들겠지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힘들게 지내셨는지 몰랐어요 저는 한국에서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데서 잠도 잘잤는걸요 미안해요 저혼자 잘지내서... ㅠㅠ
오늘 모든걸 알았지만 그래도 자기한테 돈을 붙일거예요어차피 별도움 안되는 적은돈이겠지만 받아줘요 그것도 저의 즐거움이니까요. 저를 위한것이에요. 제가 자기를 위해 아무것도 할수있는게 없어졌을때 그땐 정말 제가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질거예요
제가 드리는 사랑은 아주 작은사랑이에요작은걸 드렸는데 자기가 크게 받으셨을뿐..
자기가 저를 위해 여기에 편지를 쓰셨듯이 저도 여기에서 자기한테 답장을 쓰는거예요
자기한테 메일을 보낼까했지만 왠지 저도 이래야할것 같아서...
언제인가 자기의 어떤점이 좋아서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셨었죠? 그때, 처음엔 없어보여서 좋았고, 좀 지나서는 사람하나 살린다는 심정으로 희생한다는 생각이었고, 점점 지나면서 내팔자려니 한다고 장난친거 기억해요? ^^사실은.., 자기의 사랑을 확신한 계기가 있었어요
언제인가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먹다가 뜬금없이제 눈..한참을 바라보다 주르륵 눈물 쏟은거 기억나요? 그렇게 이유도 없이 우리 펑펑 울었었잖아요 자기 눈물을 닦아줄수도, 울지말라고 말할수도 없었어요 그냥 실컷 울도록 두는게 그순간 제가 할수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가 슬픈눈으로 저를 한참 바라볼때 이미 당신의 마음이 전해졌거든요 이사람..너무 미안해하고있구나..라는..제마음도 그렇게 아팠는데 당신마음은 어땠을까요...그때 이 사람...내가 사랑할수밖에 없는 남자구나 라는 결심이 섰던거예요
머리가 나빠서 기억은 잘안나지만 티브인지 영화인지 모르겠지만왜 날 사랑하느냐고 묻는 여자에게 남자주인공이, 당신은 내가 사랑할수밖는 사람이었다고, 내심장이 그렇게 시켰다고 말한 장면이 기억나요.
저도 그와 같아요그냥..이남자..내가 사랑하지않음 안되겠구나 하고 느꼈을뿐이예요.
고마워요...속마음 말해주셔서 고마워요...너무행복해요ㅠㅠ
나의 하늘...사랑합니다...
아참그리고 얼굴가린 사진으로 올려줘서 고마워요 얼굴 공개되었음 아마 부끄러워서 밖에도 못나갔을거예요 ^^대학교도 다녔었는데 조금 다니다가 관둬서 그냥 고졸이라고 한건데...^^ 고졸맞네요 ㅎㅎㅎㅎ
저는 시를 잘 몰라요그래서 답시가 떠오르지 않지만...이런 것도 시가 될수있을까요?
앞에 그릇이 있어서 떠오르길래 썼는데..유치하겠지만 욕하진마세요 ^^
지금도 심장이 터질것 같아요 부끄러워서 얼굴도 화끈거리고...
어쩌면 삭제할지도 몰라요 ㅎㅎㅎ
...
접시에 물을 부었습니다당신의 이름과 사랑한다고 글씨를 씁니다지워집니다억만번 또쓰면 새겨질까요그렇게 또접시물에 저의 사랑을 새깁니다
.....
남자 원문 : [여친자랑] 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여자 답장 : http://pann.nate.com/b200768191
면죄자작성일
2011-07-1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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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21세기 신드롬을 일으켰던 예능 프로그램들
2000년
- 개그콘서트의 세대교체를 통해 다양한 코미디언들이 등장했다.
kbs - 개그콘서트
- 1기의 주요 참모였던 전유성, 김미화 그리고 백재현의 퇴장으로 개그콘서트가 1차 세대 교체기를 맞는다.
2기에는 사바나의 아침의 추장역으로 큰 인기를 모은 심현섭이 중심축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수다맨' 강성범, '황마담'의 황승환, 이장님 김준호, 갈갈이 박준형, 옥동자 정종철, 병팔이 이병진, 김대희, 이태식 등이 꼽힌다.
3사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 중 압도적 인기로 1위를 누릴 정도로 엄청난 전*를 구가했을 뿐만 아니라
수다맨, 700-오!병팔이, 갈갈이, 청년백서, 우격다짐 등 고정 코너들이 엄청난 인기를 누린 시기였다.
또, 타방송에 대한 언급이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독창적이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스탠딩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mbc - 러브하우스
- 양심냉장고 이후 일밤의 대표적인 공익예능 프로그램이다.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의 집을 새롭게 고쳐주며 감동과 웃음을 주면서 큰 호평을 받았다.
마약사건에 연루되었던 신동엽이 러브하우스를 통해 방송에 재기하며 다시한번 전*를 누린다.
이후 러브하우스가 잠시 중단 되었다가 2003년도에 박수홍이 mc를 맡으면서 다시 방송을 했다.
러브하우스에서 새로 고친집안을 소개할때 나오는 배경음악은 다양하게 패러디 되었다.
mbc - 동거동락
- 서세원쇼의 토크박스로 인기를 끈 유재석이 최초로 단독 mc를 맡았던 프로그램이다.
유재석은 이 프로를 통해 mc로써의 자질을 익히고 점점 인기를 얻게 되었다.
당시 다양한 분야의 스타들이 출연하였고, 유승준,박경림,이범수등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
특히 유승준은 동거동락을 통해 바른생활 사나이로 이미지를 쌓으며 군문제가 터지기 전까지 최전*를 맞게 된다.
방석퀴즈,비몽사몽퀴즈등 다양한 게임과 매주 한명씩 탈락하는 서바이벌 형식을 통해 큰 인기를 얻었던 프로그램이다
2002년
- 김용만과 신동엽의 전성시대에 유재석과 강호동이 급성장을 했다.
kbs - 공포의 쿵쿵따
- 유재석,강호동,이휘재등 지금은 한 프로그램에서 뭉치기 힘든 국내 최정상급mc들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이다.쿵쿵따를 시작당시엔 4명의 mc들중 이휘재가 가장 인기있었는데강호동과 유재석이 콤비를 이루워서 여러가지 상황극과 딱지치기 대결등을 통해 쿵쿵따에 중심에 섰고 인기를 얻었다.산기슭-슭곰발 콤보나 해로 시작하는 단어금지등 끝말잇기만으로도 큰웃음을 주었던 mc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 프로를 통해서 전국에 쿵쿵따 열풍을 일으켰다.
kbs - 쟁반노래방
당대 최고의 인기를 얻고있던 mc신동엽과 핑클의 이효리의 만남 이었다.
프로그램 포멧은 노래를 들려주고 총 10번의 기회가 주어지며, 한번 들려준 가사를 외워 틀리면 쟁반이 머리로 떨어지는 코너로
실패할 시, 게스트와 mc가 돈을 모아 장학금을 기부하고, 성공할 시 제작진이 장학금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쟁반노래방을 통해서 신동엽이 kbs 연예대상을 수상하였고 이효리도 예능으로 활약할수 있게 큰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역대 해피투게더 코너중에 가장 인기있었던 코너였다.
mbc - 브레인 서바이버
- 일밤에서 연속적으로 가장 많이 방영했던 코너이다.
김용만이 브레인서바이버를 통해 최전*를 맞이하고 이경규를 제치고 2년 연속 연예대상을 거머 쥐었다.
연예인들이 여러가지 퀴즈를 풀고 최종 우승자가 모교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떡먹은 용만이,같은 그림 찾기등 다양한 문제들을 통해 재미와 인기를 얻었고 이때 나온 올챙이송이 크게 히트쳤다.
이후 노브레인 서바이버 같은 패러디 프로등이 나오면서 오랫동안 인기를 얻었다.
2003년
- 느낌표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익예능들이 등장하였다.
kbs - 위험한 초대
- 쿵쿵따 1기 멤버들이 하차한 이후 2기멤버들의 쿵쿵따가 이전처럼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위험한 초대로 바꿔서 진행 했는데 중간에 2기 멤버중 강성범과 주영훈이 빠지고 유재석과 이혁재가 들어오며 점차 살아났다.
프로그램 방식은 기본적으로 매회 연예인을 게스트로 초대하여 게스트와 대담을 나누는 형식이다.
다만 진행 mc들이 게스트가 한 말이나 행동에 따라 고정 멤버들이 물과 관련되어 벌칙을 수행하게 된다.
초기에 스튜디오에서 진행될때 물낭비라는 비난여론이 있어 수영장으로 옮긴후 플라잉 체어를 덧붙여서 큰 인기를 끌었다.
mbc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 공익예능을 표방하는 느낌표의 가장 대표적인 코너이다.
느낌표는 독서 문화에 앞장서자는 의미로 매달 1권의 선정 도서를 발표했었다.
도서의 장르가 소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과학, 어린이 도서 등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도서들이 선정되었다.
프로그램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 코너는 말 그대로 독서 열풍을 일게 만들었고, 느낌표에서 선정된 도서들은 어김없이 베스트 셀러로 선정되곤 했다.
또 도서관이 부족한 대한민국 곳곳의 도시를 선정해 기적의 도서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mbc - 강호동의 천생연분
- 강호동이 처음 단독mc를 맡았던 프로그램이다.
강호동이 천생연분을 진행하면서 mc로써의 자질을 갖추며 이후 국민mc로 거듭날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신토불이(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밤 유후~),돼랑이 등 다양한 유행어들이 만들어 졌고
게스트로 나왔던 비와 세븐이 많은 인기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천생연분이 인기를 끌면서 이후 다양한 짝짓기 버라이어티프로그램이 생겨 났다.
2004년
- 이경규와 김용만 라인의 예능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kbs - 스펀지
- 처음에 이혁재 황수경 이휘재로 시작하다가 황수경에서 김경란 아나운서로 바뀌면서 스펀지의 전*가 시작 되었다.우리들이 모르던 다양한 사실들과 실험맨들의 실험을 통해서 지식과 재미를 동시에 잡으면서 20%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의 합성어)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 했다.'네 사실입니다.','ㅇㅇ은 네모다'등은 다양한 매체에서 패러디 되며 유행어가 되었다.
mbc - 대단한 도전
- 일밤의 이끌던 두명의 수장 이경규와 김용만 뭉쳐서 했던 프로그램이다.
도전 과제를 정해 그분야의 전문가들의 시범을 보고 ob팀과 yb팀으로 나눠서 서로 경쟁하며 도전하는 방식이었다.
규라인 주요 멤버들이 출연했고 만갑형님,무달,태릉인,국민약골등과 같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만들어 지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이경규와 김용만 콤비의 다양한 상황극등을 통해서 큰웃음을 만들어 냈다.
국내의 다양한 스포츠 스타들과 성룡등 유명 해외스타가 게스트로 출연해서 큰 화제를 낳았다.
sbs - 야심만만
- 박수홍,강호동,김제동등 여러명의 mc들이 진행하던 토크쇼
이 프로그램은 시민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출연한 게스트들이 그에 맞는 경험담을 말하는 방식이었다.
게스트들의 경험담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러브레터로 인기를 얻은 김제동이 야심만만을 통해 메인mc로 급부상 하였고 강호동의 다양한 명언과 어록이 쏟아졌다.
2005년
- x맨,웃찾사 등이 sbs예능의 전*를 이끌었다.
sbs - x맨
- 쿵쿵따 이후 유재석과 강호동이 다시한번 뭉쳤다.x맨을 통해서 부진했던 sbs 일요일 예능에 최대 부흥기를 이끌었다. 이때 당시엔 유재석이 메인mc로 진행을 했고 강호동이 보조mc를 하면서 mc능력을 키워나갔다.박명수,김제동,이혁재등이 고정 출연하면서 mc능력을 키웠고,김종국-윤은혜 커플등 다양한멤버들의 캐릭터들이 돋보였고, 당시 신인 연예인들의 필수 예능 코스였다.
sbs - 웃찾사
- 개콘의 독주를 막기위해 sbs에서 만든 스탠딩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박승대 지휘아래 리마리오,컬투,나몰라패밀리,김신영 등이 인기를 끌면서 개그콘서트에 맞먹는 인기를 얻게 된다.
특히 행님아,허이짜 여러가지 다양한 유행어를 탄생 시켰다.
개그콘서트와 함께 스탠딩 코미디의 양강체제를 유지하다가 컬투,리마리오 등 웃찾사의 주축들이 빠지면서
점차 하락세를 타게 되고 결국 2010년에 종영하였다.
2006년
- 예능계에 노현정을 필두로 수많은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들이 등장했다.
kbs - 상상플러스
올드앤뉴를 통해서 평소 우리들이 몰랐던 우리말을 알수있었던 공익적인 프로그램신인 아나운서 노현정이 진행하며 엄청난 인기를 이끌며 일명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의 전성시대를 열었고 다시 뭉친 탁재훈-신정환 콤비의 예능감이 빛났다.특히 게스트로 김수로가 왔을때 췄던 꼭지점댄스는 각종 ucc등이 만들어지고당시 2006년 독일월드컵의 공식응원댄스가 될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mbc - 개그야 (사모님)
개그야는 특히 김미려,김철민의 사모님을 중심으로 서서히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였고, 운전해~,어서~등의 유행어가 퍼지면서
시청률도 급상승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동시간대에 철옹성같이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던 sbs의 야심만만-만명에게 물었습니다는 이에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개그야는 2006년 10월 야심만만의 시청률을 뛰어넘고 동시간대 1위로 등극한다. 이후 개그야는 10% 중후반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였다.
사모님의 김미려는 신인코미디언임에도 불구하고 2006 mbc방송연예대상 대상후보에 오르기까지 할 정도였다.
2007년
- 무한도전이 대한민국 예능을 리얼버라이어티로 바꾸어 놓았다.
mbc - 무한도전
대한민국 예능은 무도이전과 무도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예능의 역사를 다시 쓴 프로그램이다.
2005년에 출범하여 초반에 저조한 시청률과 인기를 보이다가 2006년 하반기부터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포맷으로 바꾸면서
점점 인기를 얻더니 2007년에 예능의 정점에 서서 대한민국 예능의 중심을 리얼버라이어티로 바꾸었다.
무한도전에 나오는 자막이나 뛰어난 편집,기획능력을 통해서 김태호pd가 스타pd가 되었고, 멤버들도 최고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예능프로중에선 유일하게 매번 포맷을 바꾸면서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예능을 개척해 나가고있다.
2008년
- 잠시 부진하던 일요일 예능이 kbs-1박2일,mbc-우리결혼했어요,sbs-패밀리가 떳다를 통해 예능의 중심지가 되었다.
kbs - 1박2일
처음 나왔을땐 무한도전의 아류작이라는 소리를 듣다가 멤버교체와 함께 프로그램이 점점 발전해 나가면서
리얼버라이어티의 후발주자로써 자기색깔을 찾아갔다.
요즘 현대인들이 하기힘든 여행이라는 포멧으로 대한민국의 다양한 경관을 소개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유재석에서 밀리던 강호동이 1박을 통해 유재석의 유일무이한 라이벌로 급부상하고 이승기가 허당승기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무한도전에게 부족한 중장년층의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여서 21세기 예능중에 최고의 시청률을 얻으며
남녀노소 전세대를 아우르는 예능프로그램이 되었다.
mbc - 우리 결혼했어요
- 설날 파일럿프로그램으로 처음 출범하였다가 반응이 좋아서 일밤의 고정코너로 자리매김 하였다.
당시 경쟁하던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떳다에 비해선 시청률이 좀 낮았지만 인터넷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처음나왔던 알신커플,앤솔커플,개미커플,상추커플등이 엄청난 화제를 낳았고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트랜드를
주도 하고, 다른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이 커플들이 나오면 시청률상승과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처음멤버들이 빠지면서 점점 하락세를 걷다가 일밤에서 독립하여 토요일로 시간대를 옮기게 되었다.
sbs - 패밀리가 떳다
x맨 이후 저조하던 sbs예능을 다시한번 일으켜서 유재석의 저력을 보여준 프로그램이다.
유재석을 필두로 예진아씨,천데렐라,덤앤더머 등 다양한 캐릭터를 형성 하였고, 매번 바뀌는 게스트들과 게임들로
상당한 인기를 끌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 하였다.
mbc-무한도전 kbs-1박2일 sbs-패밀리가 떳다 이렇게 3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예능프로중 가장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각방송사의 간판프로그램이 되었다.
하지만 이천희&박예진이 하차하고 각종 조작 논란에 휩싸이며 결국 2009년 하반기에 종영하였다.
2009년
- 일밤에서 나온 이경규가 남자의 자격으로 다시 부활 했다.
kbs - 남자의 자격
일밤이 점점 하락세를 걸으면서 결국 이경규가 일밤을 나오게 된다.
일밤의 라이벌 프로 1박2일이 버티고 있는 해피선데이에 들어가면서 남자의자격이란 코너를 시작하였다.
90년대를 함께 이끌었던 김국진,부활의 리더 김태원,영원한 이경규의 부하 이윤석든 다른 리얼버라이어티에 비해 평균연령이
좀 높은 사람들이 멤버로 들어왔다.
페러글라이딩,마라톤등의 미션을 통해서 점차 인기를 얻으며 이경규가 다시 부활 하였고,
2010년엔 남아공,지리산에 가고 합창단을 하면서 남자의 자격이 절정의 인기를 얻는다.
2010년
- 리얼버라이어티의 강세속에서 슈퍼스타k 시즌2가 케이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대한민국에 오디션 열풍을 일으켰다.
m net - 슈퍼스타k2
- 케이블 프로의 대박기준이 시청률 1%이고, 초대박은 3%인데 슈퍼스타k2가 19.3%의 시청률을 달성하면서 케이블의 역사를 다시 썻다.
슈퍼스타k1도 인기를 끌긴했지만 슈퍼스타k2 만큼의 인지도,화제성을 따라오지 못했다.
슈퍼스타k2의 top11에서 허각,존박,장재인,강승윤,김지수등은 데뷔하지 않았는데도 가장 인기스타였고 이들의 부른노래가 음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성주가 말하는 60초후에 공개하겠습니다,심사위원들의 제점수는요~ 는 여러군데서 패러디 되면서 유행어가 되었다.
이후 공중파에게도 영향을 줘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을 불게한 케이블 프로그램이다.
2011년 상반기
- 현재 예능은 리얼버라이어티와 오디션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mbc - 나는 가수다
일밤의 시청률 저조로 계속해서 프로그램 폐지를 반복하고 있을때 90년도 스타pd 김영희 pd의 야심작이다.
포맷은 매주 7명의 실력있는 가수들이 나와 자신의 곡이 아닌 새로운 곡을 편곡해 부르는 미션에 도전하고
일반인 500명으로 구성된 평가단의 심사를 받아 1명이 탈락하고, 나중에 새로운 가수가 이를 채워가는 방식이다.
첫 방송부터 큰 반응을 얻으며 실력파 가수들의 재발견과 아이돌이 점령해 버린 가요계를 다시 진정한 가수들이 주류를 이루며
가요계의 판도를 바꿔 가는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건모의 재도전 논란과 김영희pd의 사퇴로 잠시 프로그램 재정비를 위해 잠시 중단하고 5월달에 다시 방송.
면죄자작성일
2011-05-1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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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돈으로하는사랑이 가장쉬운사랑입니다. [남자편]
안녕하세요 점점 동이 터오네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무리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글을 다시 쓰려니 표현이 다소 서툴러도 이해해주십시오.
큰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부도를 맞으시고 우리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그 등쌀을 피해서 생활하다가 입 하나라도 덜고 학비걱정이나 좀 덜려고 군대를 자원해서 갔습니다.
제대 후에도 집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학기 휴학해서 돈을 벌고 한학기 다니다가 한학기 또 휴학하고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경남의 한 중소도시 대형마트에서 일했는데 커피나 햄 같은 거 시식할 때 나레이터모델들을 고용해서 유니폼 입혀서 시선을 끌고 손님들의 시식을 종용하는 역할을 맡기는데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모델이 있었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 잘하는 모델들 틈에서 유독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손님들이 다가와서 알아서 시식하고 물어보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더라는 거죠.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인상 깊어서 저도 다가가서 시식하고는 몇 가지 물어보고 했는데
이 모델분은 나레이터모델답지 않게 말하는 것도 너무 수줍어하고 얼굴 빨개지고...ㅎㅎ
원래는 밤늦게까지 매장정리하고 맨마지막에 퇴근을 하지만
그날은 죽어도 일찍 가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나레이터모델들 마치는 시각에 맞춰 출구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그분들이 우루루 몰려나와서 각자 집으로 가기도 하고 몇몇은 시내에서 놀기 위해 같이 택시 타고 가는데
이 여성분만 외톨이처럼 혼자 버스를 기다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저..매장에서 일하는 OO인데, 남자친구 없죠? 저랑 사귀어보는 건 어때요? 저 정말 괜찮은 놈인데요..제발요...주절주절.." 하면서 울상을 지으니까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아! 기억해요" 하면서 아는 척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폰번호를 얻었어요. 저는 돈이 없어서 휴대폰도 없었구요.
그래서 시식행사가 잡힐 때마다 우린 늘 보게 되었죠.
그 친구는 일부러 마트 행사를 자원했구요. 일하기 편한 대신 페이가 적어요. 그래도 제가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나레이터모델분들이 더 많이 받으시더라구요.
외부행사 나갈 때는 더 많이 받고..
지명되면 거기서 더 받고..
우린 너무 가난한 커플이라서
남들 먹는 커피숍이나 스파게티점이나 피자헛에도 못갔어요. 그리고 학비도 모아야 했고 집에도 보태야 했던 저보다는
아무래도 돈을 좀더 받고 집안형편도 조금 나은 여자친구가 데이트비용을 거의 부담했구요. 저는 거지 중의 상거지, 개털 중의 상개털이었어요.
집에서 쫓겨나면서 옷도 못가지고 나와서
때 묻어도 티도 안나는 아래위로 군복을 구해서 입고 다녔거든요. 잠바도.
막 입고 아무리 빨아도 티도 안나니까요.
크리스마스 때는 길거리의 붕어빵이랑 군밤, 호도과자 섞은 게 우리의 만찬이었고 그걸로도 너무 행복해했어요.
여중여고 앞 떡볶이도 우리의 주 메뉴였구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그런 거 우리한텐 사치였어요.
다니다가 꽃바구니 버려진 게 눈에 띄면 주워서 기념일에 부직포와 솜을 사서 뽑기한 작은 인형과 ABC초콜렛이랑 칸쵸 같은 거 담아서 선물했구요. 화려한 케익과 포도주와 잔 두 개도 그림 그려서 앞에 두고 실제로는 초코파이랑 델몬트 병쥬스로 상상 속의 파티를 벌이며 즐거워하곤 했네요.
저는 몰라도 여친은 착하고 키도 크고 단아한 인상이기 때문에 아마 길거리 고백도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한번도 그런 내색을 안해서 잘 몰라요.
학교 다니면서도 과외도 하느라 만날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저는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도 안되는 사람이었구요. 언제나 제가 연락을 했죠.
한밤 중에 끝나서 언제나 공중전화로 잠깐 통화를 하고
일요일에야 좀 시간을 갖고 만날 수 있었네요.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여름에는 비 맞아가면서, 겨울에도 외부행사만 고집했대요. 찬바람 부는데도 짧은 치마에 배 드러나는 옷 입고 행사 했었대요. 돈 더 받아서 제 용돈 주고 제 학비 보태주려구요 ㅠㅠ 걔 친구들한테서 들었어요. 자외선과 대로변 자동차 매연과 먼지, 그리고 겨울바람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피부가 깎였을까요..)
학교 다니는 내내 여자친구한테 용돈을 얻어 살았어요.
처음엔 안 받았는데 여친이
"나랑 결혼할 생각 없어? 결혼할 생각 가지고 있다면 돈 받아. 내돈이 네돈이니까 부담갖지 마. 그리고 친구들한테 얻어먹지만 말고 가끔 사주기도 하고 인심 잃지 말구. 남자는 인맥이 재산이잖아."
그 친구가 이렇게까지 얘기해서,
나중에 결혼해서 다 갚을게 하고 용돈을 받아썼습니다. 걔네 집에서 반찬 다 갖다 먹었습니다. 언제는 쌀도 가져왔더군요. -_-
그 전엔 기본반찬인 김치 살 돈은 물론이고 쌀 살 돈도 없었거든요. 정말 완벽한 거지였네요. 현금은 물론 계좌지급까지 모두 정지 당해서. 맨밥에 간장을 살짝 묻혀 짭짤하게 비벼먹는 게 매 끼니의 반복이었어요.
라면 사먹을 돈도 없어서 마트에서 라면박스 옮기다가 충격 받아서 부서진 게 가끔 나오는데 그걸 100원 씩에 사서 국 대신으로 국물 먹곤 했던 기억이 있네요.
자장면과 짬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중국집 앞에서 냄새만 배부르게 맡고 발걸음을 돌리길 수십번.. 결국 상가에서 내놓은 그릇에 담긴 짬뽕국물을 마시면서 그 갈증을 달래기도했습니다.
저희집이 잘 살 때 제 동생이 사귀던 여자가 정말 착했는데 가난한 집안의 딸이어서 어머니 반대로 헤어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저희집이 가난해서인지 제가 사귀는 여자에 대해 어머니는 별 말씀을 못하시더라구요.
고졸에 집도 그냥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집이라는 이유로
예전 같았으면 결사반대 하셨을 어머니께서..
그러다가 저희 아버지 사업이 다시 풀리기 시작해서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집도 찾고 아버지 어머니도 각각 자가용 굴릴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안정되었습니다.
제 여친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구요.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갑자기 돈 생겼다고 돈 쓰고 다니면 또 예전으로 돌아가버릴까봐 너무 무서웠거든요.
집에 빚이 너무 많아서 아마 나랑 결혼하면
부모님 빚을 갚느라 40살 넘게까지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 잘하라고 해도 제 여친은,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대. 좀 덜 먹고 덜 입고 아껴서 열심히 살며 조금씩 갚아가면 설마 죽을 때까지 못 갚겠어? 난 자기를 믿어. 내 걱정이라면 하지마. 미안한만큼 평생 나만 사랑해주면 될 것 같은데? "
그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미안해서..너무나 미안해서..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나레이터모델 친구들이 다 말렸대요.
술자리에서 저한테 직접 얘기까지 하더라구요.
착한 희영이 배신하면 자기들이 가만히 안둔다고. 걔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유학가면 잘사는 여자들, 이쁘고 어린 애들도 수두룩할텐데 바보같은 너는 버려질 거라고.
미국에 와서 어학코스를 끝내고 전략협상 분야를 공부했어요.
쉽게 말해 Negotiator라고 하는데 협상전문가, 협상컨설턴트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한국과 미국이 무역과 시장개방 등의 문제로 FTA 할 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분이 한국측 수석대표로 주도하지 않았었나요? 그런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범죄현장에서 인질이 있을 때나 자살시도자가 있는 현장에 급파되어 일반경찰들이 현장 확보하고 SWAT 이 타격작전개시 하기 전에 쌍방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각국간 군병력, 화기 유지 및 연합훈련 등 각종 협의를 하는 자리에 동원되기도 하고, 혹은 대형그룹들 간의 딜과 기업인수합병을 위해서 고용되기도 해요.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해야 하고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서 우리쪽에 좀더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죠.
우리 쪽에서 가장 강점으로 내세워 공격무기로 활용할 카드를 찾고, 상대 쪽의 약점을 찾아서 궁지로 몰아서 기를 꺾은 후 살 길을 터주는 식으로 며칠 동안 협상을 이어갑니다.
상대도 손해보지 않은 듯 맞춰주는 동시에 우리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사수해서 최대한의 소득을 이끌어내는 거죠.
肉斬骨斷(육참골단), 捨小取大(사소취대)의 사자성어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거죠. 군더더기 여러 조건들을 포용하는 대신 큰 덩어리 두 세 개를 가져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선 20년, 30년 후의 국제정세와 종목에 따른 계산까지 합니다. 물론 상대측에서도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뭔지 알 수 없어야 하는 거구요. 국제관계에서 그때의 종속관계를 위해 몇 십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양방간 상황과 입장에 대해 몇 달 전부터 고용되어 몇 달 동안 밤새며 공부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구요, 계약금, 약속된 수고료 외에 성사될 경우 보너스도 받죠.
성사율이 낮을 땐 지명도도 떨어지고 금액도 낮아지고 소질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도태될 수도 있는 직업입니다.
미국에서는 많긴 하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대우가 괜찮은 편이구요 한국에선 그런 전문양성과정이 없어서 아직 정부기관 및 대기업에서조차 인식이 미흡하고 금전적 대우도 미국만큼은 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식만 제대로 이해되고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겠죠.
국내엔 전문가가 너무 희귀하니까.
제가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도 제 여친은 저희집이 아직 빚에 시달리며 힘들게 공부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수시로 돈을 송금해와요. 그거 쓰지도 않고 꼬박꼬박 모아놨어요. 일부러 말은 안했구요.
저희집 수준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제가 여기에서 공부마칠 때가 되니까 저희집에 선이 많이 들어온대요. 소위 돈 많은 집안에서요.
우리나라에 돈 많은 집안이 그렇게 많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대도시 버스운송회사 소유주도 계시고, 서울 강남역 앞에 대형빌딩 몇 채 소유하고 계시는 집안도 있고, 할아버지 때부터 장관, 국회의원 해오신 권력집안도 있고, 거기다 인물도 좋다더군요. 저는 아직 못봤지만.
여기에서 공부할 때도 유학생들 모임에서 그런 집안 친구들 많았어요.
유학할 때 저도 몇 번 고백 받아봤어요. 다들 뭐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의 애들요.
일본이나 유럽애들 같은 다른 외국애들한테도 몇 번 받아봤고..
그런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거지일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저 하나만 품어 준 그 여자를,
어떻게 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배신을 하겠습니까.
아직도 부유한 정도는 아니어서 유학생활 내내 일도 하고 돈 정말 아껴썼어요.
기한 지난 폐기처분 전 바게트빵 싸게 사서 끓인 우유에 불려서 배채웠어요.
레바논출신 애랑 우범지대 같은 곳에 방2칸짜리 렌트해서 돈 아끼며 지냈어요.
겨울에 전기장판 하나로 버텼고 여름엔 주워 온 선풍기.
먹을 거 없어서 쥐도 안와요. ㅎㅎ
그런데 돈 많은 집안 애들이 비싼 옷 쇼핑하러 다니고 좋은 차 구입해서 놀러다니고 파티하고, 대기업 누구 딸, 어느 병원장 딸 이런 애들이 수두룩한데 걔네 중 몇몇이 호감 비치면서 따라다니면 여러분들은 어떨 것 같은가요?
전유성씨 말씀대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편안해지는 거 한순간이에요.
그런데 그 여자분들...
제가 만약 죽을 병에 걸리거나 위험한 순간에 처한다면 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까요?
그 친구들에 대해선 몰라도 제 여친에 대해선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딴맘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돈은 정말 사람을 편하게 해주더군요. 많은 것을 해결해주고.
그런데 단지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일뿐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돈은 진짜사랑과 타협하거나 비교하기에는 성질 자체가 달라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단지 사랑을 해치지 않을만큼 최소한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한처럼 맺혔던 돈에 대한 집착을 버렸어요.
이제 한국에 들어가든, 미국에 불러들이든 제 남은 인생 그녀를 위해 희생하려구요.
그녀가 제게 모든 걸 주었듯 이젠 제가 그녀를 보호해주려구요.
평생 한 여자만을 위해 살 겁니다.
죽을 때까지 제 눈 속엔 그녀 밖에 없을 거예요.
여자한텐 20대가 인생의 절반이라고 하죠?
그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20대를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을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려 5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외국에 보내놓고 흔들리지 않고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ㅠㅠ 제가 유학 중에 좋은 배경 가진 여자 만나서 연락 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제 심장을 누군가에게 꺼내 맡겨야 한다면 그녀에게 맡길 겁니다.
죽을 위험에 처해도 저를 위해 희생할 여자라는 걸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고보니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네요. 첫번째 이유는, 그녀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어서입니다. 제가 특별히 화나게 했던 기억도 없지만 다른 일에도 화를 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언젠가 집요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냥 단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자기를 괴롭히려는 의도로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이 답답해서 제가 화나진 않았었냐고 되물었던 사람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제가 화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제게 화를 내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제게 잘못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녀가 제 앞에서 제게 화를 내고 있다는 그 현실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안심할 것입니다.
화를 내건 어떻건 일단은 제 앞에 있어줬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돈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좋은 요리 먹으러 다니고, 좋은 옷 쇼핑하러 다니고, 비싼 선물 사주고, 기념일마다 몇 만원 하는 선물바구니와 이벤트 하는 거... 돈만 있으면 어느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해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없어서 눈물 흘리며 미안해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을 위해 자기 수명도 떼어 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제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100을 가졌다면 100 모두 내어주고도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해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살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평생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희영아.. 나 약속 지켰다. 절대 유학 가서 다른 여자 내 가슴에 담지 않겠다고 너한테 맹세한 약속.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거야.
나 너한테 붕어빵이랑 떡볶이랑 캔커피 밖에 못사주고 언제나 버스 타고 데이트 하고,
너한테 FI*A 운동화 사주려고 했을 때 네가 매장에서 도망나가서 대로변의 잡브랜드 1만원짜리 운동화 골라 신고 나 만날 때마다 그것만 신고 나오고...
나 정말 거지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인생 막막했는데 네가 나 품어줘서 나 유학 갈 꿈도 가질 수 있었어.
유학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게 되어도 비웃지 않고 기쁘게 환영해 줄 네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난 돌아갈 곳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
너 아니었으면 아마 꿈도 잃어버리고 한국에서 대학중퇴에 하루하루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내가 언제든 돌아갈 집 같은 네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안심하고 시도할 거야.
네가 전에 보낸 편지에
"자기가 너무 잘나버려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더이상 없어. 어쩌지? 자기가 그렇게 커져가고 멋있게 변해가는 동안 난 7년 동안 더 늙었고 더 무식해졌고 더 초라해졌네..
그런 자기 옆에 이런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기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 그러니까..
정말정말 나보다 더 자기 마음 안에 들어오는 여자를 찾게 되면 그때 나한테 꼭 말해줘.
내가 봤을 때 좋은 여자면 안심하고 자기 보내 줄 수 있을 거야.
난 괜찮으니까 자기는 자기가 더 멋지게 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해.
대신 다음 생이 또 있다면 그땐 꼭 날 선택해줘야해.
그땐 나도 부잣집에 똑똑한 여자로 태어나서 자기한테 어울릴만한 여자로 태어날 테니깐."
희영아..
나.. 네가 보낸 그 편지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넌 모를거야.
지금 이 글 쓰면서도 눈물이 흘러서 모니터가 안보여..
내가 널 두고 어느 여잘 사랑할 수가 있겠어..
너처럼 좋은 여자는 내가 천번을 다시 태어나도 아마 만날 수 없을 거야.
네가 나한테 안어울릴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나 내가 배운 공부 다 버리고 붕어빵장수 아저씨로 살 수도 있어.
내가 익힌 것들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 거라면 말이야.
내가 죽어서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 내 인생에 너를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딱 그것만 말씀드릴거야.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너로 인해서 꽃 피울 수 있었으니까.
내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다면,
지금의 나로 이렇게 키운 두번째 내 어미는 바로 너야.
내게 아무 힘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 시기에 내 부모가 나를 키우셨고,
그 두번째 시기에 네가 나를 키웠어.
일시귀국일지 영구귀국일지 아직 결정짓지 못했지만
한국 돌아가면 그때 처음으로 무릎 꿇고 네게 청혼할게.
우리..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사랑 지켜왔잖아.
우리 애들이 컸을 때
이 글을 보여줄거야.
그리고..
아빠가 엄마한테 이런 무한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때 이미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였다고,
엄마는 아무 것도 없는 아빠를 조건없이 품었고
그래서 아빠는 큰새가 될 수 있었다고,
아빠가 할아버지할머니께 생명으로 진 빚이 있다면
엄마에겐 녹 슬어 버릴 뻔한 심장과 황폐해질 뻔한 영혼의 빚을 졌기 때문에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에게 빚을 진 셈이라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영원히 빚을 갚는 심정으로 엄마를 사랑할 거라고.
그게 내가 너희들보다 엄마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니까
너희들이 이해하라고
그렇게 말을 할 거야.
사랑한다.
영원히..
...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그것은
평화요 안식이요 이 세상의 마지막이요 처음이다.
-정호승의 《연인》중에서-
-
[엽기유머] 네이트판)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안녕하세요 점점 동이 터오네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무리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글을 다시 쓰려니 표현이 다소 서툴러도 이해해주십시오.
큰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부도를 맞으시고 우리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그 등쌀을 피해서 생활하다가 입 하나라도 덜고 학비걱정이나 좀 덜려고 군대를 자원해서 갔습니다.
제대 후에도 집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학기 휴학해서 돈을 벌고 한학기 다니다가 한학기 또 휴학하고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경남의 한 중소도시 대형마트에서 일했는데 커피나 햄 같은 거 시식할 때 나레이터모델들을 고용해서 유니폼 입혀서 시선을 끌고 손님들의 시식을 종용하는 역할을 맡기는데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모델이 있었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 잘하는 모델들 틈에서 유독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손님들이 다가와서 알아서 시식하고 물어보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더라는 거죠.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인상 깊어서 저도 다가가서 시식하고는 몇 가지 물어보고 했는데
이 모델분은 나레이터모델답지 않게 말하는 것도 너무 수줍어하고 얼굴 빨개지고...ㅎㅎ
원래는 밤늦게까지 매장정리하고 맨마지막에 퇴근을 하지만
그날은 죽어도 일찍 가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나레이터모델들 마치는 시각에 맞춰 출구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그분들이 우루루 몰려나와서 각자 집으로 가기도 하고 몇몇은 시내에서 놀기 위해 같이 택시 타고 가는데
이 여성분만 외톨이처럼 혼자 버스를 기다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저..매장에서 일하는 OO인데, 남자친구 없죠? 저랑 사귀어보는 건 어때요? 저 정말 괜찮은 놈인데요..제발요...주절주절.." 하면서 울상을 지으니까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아! 기억해요" 하면서 아는 척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폰번호를 얻었어요. 저는 돈이 없어서 휴대폰도 없었구요.
그래서 시식행사가 잡힐 때마다 우린 늘 보게 되었죠.
그 친구는 일부러 마트 행사를 자원했구요. 일하기 편한 대신 페이가 적어요. 그래도 제가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나레이터모델분들이 더 많이 받으시더라구요.
외부행사 나갈 때는 더 많이 받고..
지명되면 거기서 더 받고..
우린 너무 가난한 커플이라서
남들 먹는 커피숍이나 스파게티점이나 피자헛에도 못갔어요. 그리고 학비도 모아야 했고 집에도 보태야 했던 저보다는
아무래도 돈을 좀더 받고 집안형편도 조금 나은 여자친구가 데이트비용을 거의 부담했구요. 저는 거지 중의 상거지, 개털 중의 상개털이었어요.
집에서 쫓겨나면서 옷도 못가지고 나와서
때 묻어도 티도 안나는 아래위로 군복을 구해서 입고 다녔거든요. 잠바도.
막 입고 아무리 빨아도 티도 안나니까요.
크리스마스 때는 길거리의 붕어빵이랑 군밤, 호도과자 섞은 게 우리의 만찬이었고 그걸로도 너무 행복해했어요.
여중여고 앞 떡볶이도 우리의 주 메뉴였구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그런 거 우리한텐 사치였어요.
다니다가 꽃바구니 버려진 게 눈에 띄면 주워서 기념일에 부직포와 솜을 사서 뽑기한 작은 인형과 ABC초콜렛이랑 칸쵸 같은 거 담아서 선물했구요. 화려한 케익과 포도주와 잔 두 개도 그림 그려서 앞에 두고 실제로는 초코파이랑 델몬트 병쥬스로 상상 속의 파티를 벌이며 즐거워하곤 했네요.
저는 몰라도 여친은 착하고 키도 크고 단아한 인상이기 때문에 아마 길거리 고백도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한번도 그런 내색을 안해서 잘 몰라요.
학교 다니면서도 과외도 하느라 만날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저는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도 안되는 사람이었구요. 언제나 제가 연락을 했죠.
한밤 중에 끝나서 언제나 공중전화로 잠깐 통화를 하고
일요일에야 좀 시간을 갖고 만날 수 있었네요.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여름에는 비 맞아가면서, 겨울에도 외부행사만 고집했대요. 찬바람 부는데도 짧은 치마에 배 드러나는 옷 입고 행사 했었대요. 돈 더 받아서 제 용돈 주고 제 학비 보태주려구요 ㅠㅠ 걔 친구들한테서 들었어요. 자외선과 대로변 자동차 매연과 먼지, 그리고 겨울바람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피부가 깎였을까요..)
학교 다니는 내내 여자친구한테 용돈을 얻어 살았어요.
처음엔 안 받았는데 여친이
"나랑 결혼할 생각 없어? 결혼할 생각 가지고 있다면 돈 받아. 내돈이 네돈이니까 부담갖지 마. 그리고 친구들한테 얻어먹지만 말고 가끔 사주기도 하고 인심 잃지 말구. 남자는 인맥이 재산이잖아."
그 친구가 이렇게까지 얘기해서,
나중에 결혼해서 다 갚을게 하고 용돈을 받아썼습니다. 걔네 집에서 반찬 다 갖다 먹었습니다. 언제는 쌀도 가져왔더군요. -_-
그 전엔 기본반찬인 김치 살 돈은 물론이고 쌀 살 돈도 없었거든요. 정말 완벽한 거지였네요. 현금은 물론 계좌지급까지 모두 정지 당해서. 맨밥에 간장을 살짝 묻혀 짭짤하게 비벼먹는 게 매 끼니의 반복이었어요.
라면 사먹을 돈도 없어서 마트에서 라면박스 옮기다가 충격 받아서 부서진 게 가끔 나오는데 그걸 100원 씩에 사서 국 대신으로 국물 먹곤 했던 기억이 있네요.
자장면과 짬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중국집 앞에서 냄새만 배부르게 맡고 발걸음을 돌리길 수십번.. 결국 상가에서 내놓은 그릇에 담긴 짬뽕국물을 마시면서 그 갈증을 달래기도했습니다.
저희집이 잘 살 때 제 동생이 사귀던 여자가 정말 착했는데 가난한 집안의 딸이어서 어머니 반대로 헤어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저희집이 가난해서인지 제가 사귀는 여자에 대해 어머니는 별 말씀을 못하시더라구요.
고졸에 집도 그냥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집이라는 이유로
예전 같았으면 결사반대 하셨을 어머니께서..
그러다가 저희 아버지 사업이 다시 풀리기 시작해서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집도 찾고 아버지 어머니도 각각 자가용 굴릴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안정되었습니다.
제 여친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구요.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갑자기 돈 생겼다고 돈 쓰고 다니면 또 예전으로 돌아가버릴까봐 너무 무서웠거든요.
집에 빚이 너무 많아서 아마 나랑 결혼하면
부모님 빚을 갚느라 40살 넘게까지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 잘하라고 해도 제 여친은,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대. 좀 덜 먹고 덜 입고 아껴서 열심히 살며 조금씩 갚아가면 설마 죽을 때까지 못 갚겠어? 난 자기를 믿어. 내 걱정이라면 하지마. 미안한만큼 평생 나만 사랑해주면 될 것 같은데? "
정말 감동했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나레이터모델 친구들이 다 말렸대요.
술자리에서 저한테 직접 얘기까지 하더라구요.
착한 희영이 배신하면 자기들이 가만히 안둔다고. 걔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유학가면 잘사는 여자들, 이쁘고 어린 애들도 수두룩할텐데 바보같은 너는 버려질 거라고.
미국에 와서 어학코스를 끝내고 전략협상 분야를 공부했어요.
쉽게 말해 Negotiator라고 하는데 협상전문가, 협상컨설턴트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한국과 미국이 무역과 시장개방 등의 문제로 FTA 할 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분이 한국측 수석대표로 주도하지 않았었나요? 그런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범죄현장에서 인질이 있을 때나 자살시도자가 있는 현장에 급파되어 일반경찰들이 현장 확보하고 SWAT 이 타격작전개시 하기 전에 쌍방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각국간 군병력, 화기 유지 및 연합훈련 등 각종 협의를 하는 자리에 동원되기도 하고, 혹은 대형그룹들 간의 딜과 기업인수합병을 위해서 고용되기도 해요.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해야 하고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서 우리쪽에 좀더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죠.
우리 쪽에서 가장 강점으로 내세워 공격무기로 활용할 카드를 찾고, 상대 쪽의 약점을 찾아서 궁지로 몰아서 기를 꺾은 후 살 길을 터주는 식으로 며칠 동안 협상을 이어갑니다.
상대도 손해보지 않은 듯 맞춰주는 동시에 우리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사수해서 최대한의 소득을 이끌어내는 거죠.
肉斬骨斷(육참골단), 捨小取大(사소취대)의 사자성어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거죠. 군더더기 여러 조건들을 포용하는 대신 큰 덩어리 두 세 개를 가져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선 20년, 30년 후의 국제정세와 종목에 따른 계산까지 합니다. 물론 상대측에서도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뭔지 알 수 없어야 하는 거구요. 국제관계에서 그때의 종속관계를 위해 몇 십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양방간 상황과 입장에 대해 몇 달 전부터 고용되어 몇 달 동안 밤새며 공부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구요, 계약금, 약속된 수고료 외에 성사될 경우 보너스도 받죠.
성사율이 낮을 땐 지명도도 떨어지고 금액도 낮아지고 소질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도태될 수도 있는 직업입니다.
미국에서는 많긴 하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대우가 괜찮은 편이구요 한국에선 그런 전문양성과정이 없어서 아직 정부기관 및 대기업에서조차 인식이 미흡하고 금전적 대우도 미국만큼은 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식만 제대로 이해되고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겠죠.
국내엔 전문가가 너무 희귀하니까.
제가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도 제 여친은 저희집이 아직 빚에 시달리며 힘들게 공부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수시로 돈을 송금해와요. 그거 쓰지도 않고 꼬박꼬박 모아놨어요. 일부러 말은 안했구요.
저희집 수준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제가 여기에서 공부마칠 때가 되니까 저희집에 선이 많이 들어온대요. 소위 돈 많은 집안에서요.
우리나라에 돈 많은 집안이 그렇게 많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대도시 버스운송회사 소유주도 계시고, 서울 강남역 앞에 대형빌딩 몇 채 소유하고 계시는 집안도 있고, 할아버지 때부터 장관, 국회의원 해오신 권력집안도 있고, 거기다 인물도 좋다더군요. 저는 아직 못봤지만.
여기에서 공부할 때도 유학생들 모임에서 그런 집안 친구들 많았어요.
유학할 때 저도 몇 번 고백 받아봤어요. 다들 뭐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의 애들요.
일본이나 유럽애들 같은 다른 외국애들한테도 몇 번 받아봤고..
그런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거지일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저 하나만 품어 준 그 여자를,
어떻게 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배신을 하겠습니까.
아직도 부유한 정도는 아니어서 유학생활 내내 일도 하고 돈 정말 아껴썼어요.
기한 지난 폐기처분 전 바게트빵 싸게 사서 끓인 우유에 불려서 배채웠어요.
레바논출신 애랑 우범지대 같은 곳에 방2칸짜리 렌트해서 돈 아끼며 지냈어요.
겨울에 전기장판 하나로 버텼고 여름엔 주워 온 선풍기.
먹을 거 없어서 쥐도 안와요. ㅎㅎ
그런데 돈 많은 집안 애들이 비싼 옷 쇼핑하러 다니고 좋은 차 구입해서 놀러다니고 파티하고, 대기업 누구 딸, 어느 병원장 딸 이런 애들이 수두룩한데 걔네 중 몇몇이 호감 비치면서 따라다니면 여러분들은 어떨 것 같은가요?
전유성씨 말씀대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편안해지는 거 한순간이에요.
그런데 그 여자분들...
제가 만약 죽을 병에 걸리거나 위험한 순간에 처한다면 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까요?
그 친구들에 대해선 몰라도 제 여친에 대해선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딴맘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돈은 정말 사람을 편하게 해주더군요. 많은 것을 해결해주고.
그런데 단지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일뿐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돈은 진짜사랑과 타협하거나 비교하기에는 성질 자체가 달라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단지 사랑을 해치지 않을만큼 최소한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한처럼 맺혔던 돈에 대한 집착을 버렸어요.
이제 한국에 들어가든, 미국에 불러들이든 제 남은 인생 그녀를 위해 희생하려구요.
그녀가 제게 모든 걸 주었듯 이젠 제가 그녀를 보호해주려구요.
평생 한 여자만을 위해 살 겁니다.
죽을 때까지 제 눈 속엔 그녀 밖에 없을 거예요.
여자한텐 20대가 인생의 절반이라고 하죠?
그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20대를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을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려 5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외국에 보내놓고 흔들리지 않고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ㅠㅠ 제가 유학 중에 좋은 배경 가진 여자 만나서 연락 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제 심장을 누군가에게 꺼내 맡겨야 한다면 그녀에게 맡길 겁니다.
죽을 위험에 처해도 저를 위해 희생할 여자라는 걸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고보니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네요. 첫번째 이유는, 그녀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어서입니다. 제가 특별히 화나게 했던 기억도 없지만 다른 일에도 화를 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언젠가 집요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냥 단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자기를 괴롭히려는 의도로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이 답답해서 제가 화나진 않았었냐고 되물었던 사람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제가 화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제게 화를 내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제게 잘못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녀가 제 앞에서 제게 화를 내고 있다는 그 현실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안심할 것입니다.
화를 내건 어떻건 일단은 제 앞에 있어줬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돈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좋은 요리 먹으러 다니고, 좋은 옷 쇼핑하러 다니고, 비싼 선물 사주고, 기념일마다 몇 만원 하는 선물바구니와 이벤트 하는 거... 돈만 있으면 어느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해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없어서 눈물 흘리며 미안해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을 위해 자기 수명도 떼어 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제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100을 가졌다면 100 모두 내어주고도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해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살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평생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희영아.. 나 약속 지켰다. 절대 유학 가서 다른 여자 내 가슴에 담지 않겠다고 너한테 맹세한 약속.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거야.
나 너한테 붕어빵이랑 떡볶이랑 캔커피 밖에 못사주고 언제나 버스 타고 데이트 하고,
너한테 FI*A 운동화 사주려고 했을 때 네가 매장에서 도망나가서 대로변의 잡브랜드 1만원짜리 운동화 골라 신고 나 만날 때마다 그것만 신고 나오고...
나 정말 거지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인생 막막했는데 네가 나 품어줘서 나 유학 갈 꿈도 가질 수 있었어.
유학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게 되어도 비웃지 않고 기쁘게 환영해 줄 네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난 돌아갈 곳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
너 아니었으면 아마 꿈도 잃어버리고 한국에서 대학중퇴에 하루하루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내가 언제든 돌아갈 집 같은 네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안심하고 시도할 거야.
네가 전에 보낸 편지에
"자기가 너무 잘나버려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더이상 없어. 어쩌지? 자기가 그렇게 커져가고 멋있게 변해가는 동안 난 7년 동안 더 늙었고 더 무식해졌고 더 초라해졌네..
그런 자기 옆에 이런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기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 그러니까..
정말정말 나보다 더 자기 마음 안에 들어오는 여자를 찾게 되면 그때 나한테 꼭 말해줘.
내가 봤을 때 좋은 여자면 안심하고 자기 보내 줄 수 있을 거야.
난 괜찮으니까 자기는 자기가 더 멋지게 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해.
대신 다음 생이 또 있다면 그땐 꼭 날 선택해줘야해.
그땐 나도 부잣집에 똑똑한 여자로 태어나서 자기한테 어울릴만한 여자로 태어날 테니깐."
희영아..
나.. 네가 보낸 그 편지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넌 모를거야.
지금 이 글 쓰면서도 눈물이 흘러서 모니터가 안보여..
내가 널 두고 어느 여잘 사랑할 수가 있겠어..
너처럼 좋은 여자는 내가 천번을 다시 태어나도 아마 만날 수 없을 거야.
네가 나한테 안어울릴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나 내가 배운 공부 다 버리고 붕어빵장수 아저씨로 살 수도 있어.
내가 익힌 것들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 거라면 말이야.
내가 죽어서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 내 인생에 너를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딱 그것만 말씀드릴거야.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너로 인해서 꽃 피울 수 있었으니까.
내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다면,
지금의 나로 이렇게 키운 두번째 내 어미는 바로 너야.
내게 아무 힘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 시기에 내 부모가 나를 키우셨고,
그 두번째 시기에 네가 나를 키웠어.
일시귀국일지 영구귀국일지 아직 결정짓지 못했지만
한국 돌아가면 그때 처음으로 무릎 꿇고 네게 청혼할게.
우리..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사랑 지켜왔잖아.
우리 애들이 컸을 때
이 글을 보여줄거야.
그리고..
아빠가 엄마한테 이런 무한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때 이미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였다고,
엄마는 아무 것도 없는 아빠를 조건없이 품었고
그래서 아빠는 큰새가 될 수 있었다고,
아빠가 할아버지할머니께 생명으로 진 빚이 있다면
엄마에겐 녹 슬어 버릴 뻔한 심장과 황폐해질 뻔한 영혼의 빚을 졌기 때문에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에게 빚을 진 셈이라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영원히 빚을 갚는 심정으로 엄마를 사랑할 거라고.
그게 내가 너희들보다 엄마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니까
너희들이 이해하라고
그렇게 말을 할 거야.
사랑한다.
영원히..
...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그것은
평화요 안식이요 이 세상의 마지막이요 처음이다.
-정호승의 《연인》중에서-
[여친자랑] 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여자의 답글
안녕하세요저는...음....저는....일단 이 글에 나오는 여자구요....
공개답장쓰려니까 굉장히 부끄럽네요....
자기가 꼭 읽었음 좋겠어여
뒤늦게 발견했네요. 친구들한테서 전화 받았어요. 혹시 저 아니냐고..니글 인터넷에 뜬것 같다고..너무너무 놀라서 심장이 터져버릴것같고 손이 떨려서 글을 칠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할지...너무 울어서 눈도 퉁퉁............
근데 저는..제가 한건 너무 작은건데 한것에 비해 너무 큰 평가를 받고 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너무 큰것을 받아버렸네요 감당할수 없을만큼. ㅠㅠ저는 내세울수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잘할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구요 그런데 처음으로 제가 잘한 무언가를 발견했네요 정말 좋은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이요
자기.. 그때 저한테 말걸어줘서 고맙고 제가 자기를 사랑할수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먼나라에서 외로우셨을텐데 힘들겠지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힘들게 지내셨는지 몰랐어요 저는 한국에서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데서 잠도 잘잤는걸요 미안해요 저혼자 잘지내서... ㅠㅠ
오늘 모든걸 알았지만 그래도 자기한테 돈을 붙일거예요어차피 별도움 안되는 적은돈이겠지만 받아줘요 그것도 저의 즐거움이니까요. 저를 위한것이에요. 제가 자기를 위해 아무것도 할수있는게 없어졌을때 그땐 정말 제가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질거예요
제가 드리는 사랑은 아주 작은사랑이에요작은걸 드렸는데 자기가 크게 받으셨을뿐..
자기가 저를 위해 여기에 편지를 쓰셨듯이 저도 여기에서 자기한테 답장을 쓰는거예요
자기한테 메일을 보낼까했지만 왠지 저도 이래야할것 같아서...
언제인가 자기의 어떤점이 좋아서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셨었죠? 그때, 처음엔 없어보여서 좋았고, 좀 지나서는 사람하나 살린다는 심정으로 희생한다는 생각이었고, 점점 지나면서 내팔자려니 한다고 장난친거 기억해요? ^^사실은.., 자기의 사랑을 확신한 계기가 있었어요
언제인가 떡볶이집에서 떡볶이먹다가 뜬금없이제 눈..한참을 바라보다 주르륵 눈물 쏟은거 기억나요? 그렇게 이유도 없이 우리 펑펑 울었었잖아요 자기 눈물을 닦아줄수도, 울지말라고 말할수도 없었어요 그냥 실컷 울도록 두는게 그순간 제가 할수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가 슬픈눈으로 저를 한참 바라볼때 이미 당신의 마음이 전해졌거든요 이사람..너무 미안해하고있구나..라는..제마음도 그렇게 아팠는데 당신마음은 어땠을까요...그때 이 사람...내가 사랑할수밖에 없는 남자구나 라는 결심이 섰던거예요
머리가 나빠서 기억은 잘안나지만 티브인지 영화인지 모르겠지만왜 날 사랑하느냐고 묻는 여자에게 남자주인공이, 당신은 내가 사랑할수밖는 사람이었다고, 내심장이 그렇게 시켰다고 말한 장면이 기억나요.
저도 그와 같아요그냥..이남자..내가 사랑하지않음 안되겠구나 하고 느꼈을뿐이예요.
고마워요...속마음 말해주셔서 고마워요...너무행복해요ㅠㅠ
나의 하늘...사랑합니다...
아참그리고 얼굴가린 사진으로 올려줘서 고마워요 얼굴 공개되었음 아마 부끄러워서 밖에도 못나갔을거예요 ^^대학교도 다녔었는데 조금 다니다가 관둬서 그냥 고졸이라고 한건데...^^ 고졸맞네요 ㅎㅎㅎㅎ
저는 시를 잘 몰라요그래서 답시가 떠오르지 않지만...이런 것도 시가 될수있을까요?
앞에 그릇이 있어서 떠오르길래 썼는데..유치하겠지만 욕하진마세요 ^^
지금도 심장이 터질것 같아요 부끄러워서 얼굴도 화끈거리고...
어쩌면 삭제할지도 몰라요 ㅎㅎㅎ
...
접시에 물을 부었습니다당신의 이름과 사랑한다고 글씨를 씁니다지워집니다억만번 또쓰면 새겨질까요그렇게 또접시물에 저의 사랑을 새깁니다
.....
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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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차 다시올려요 ㅎㅎ
와니야작성일
2010-09-20추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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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결혼·육아] [펌] 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눈팅만 하다가 처음 글써보네요
네이트 판에서 보신분들도 계시겠지만, 아직 짱공에서는 보지 못한것 같아 퍼왔습니다
왠지 공유하고 싶은 글이라 ^^
이분 여친이 답장으로 달으신 글도 링크 타고 들어가셔서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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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질 때는 인터넷으로 한국뉴스도 보고 개그프로그램도 보고 이렇게 인터넷으로 여러분들의 일상을 구경하며 웃고 눈물 짓기도 하는 이제 서른을 넘겨버린 젊은이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남녀간 데이트 때 더치페이 문제, 루저 소동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제가 받은 사랑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안녕하세요 점점 동이 터오네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무리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글을 다시 쓰려니 표현이 다소 서툴러도 이해해주십시오.
큰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부도를 맞으시고 우리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그 등쌀을 피해서 생활하다가 입 하나라도 덜고 학비걱정이나 좀 덜려고 군대를 자원해서 갔습니다.
제대 후에도 집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학기 휴학해서 돈을 벌고 한학기 다니다가 한학기 또 휴학하고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경남의 한 중소도시 대형마트에서 일했는데 커피나 햄 같은 거 시식할 때 나레이터모델들을 고용해서 유니폼 입혀서 시선을 끌고 손님들의 시식을 종용하는 역할을 맡기는데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모델이 있었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 잘하는 모델들 틈에서 유독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손님들이 다가와서 알아서 시식하고 물어보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더라는 거죠.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인상 깊어서 저도 다가가서 시식하고는 몇 가지 물어보고 했는데
이 모델분은 나레이터모델답지 않게 말하는 것도 너무 수줍어하고 얼굴 빨개지고...ㅎㅎ
원래는 밤늦게까지 매장정리하고 맨마지막에 퇴근을 하지만
그날은 죽어도 일찍 가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나레이터모델들 마치는 시각에 맞춰 출구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그분들이 우루루 몰려나와서 각자 집으로 가기도 하고 몇몇은 시내에서 놀기 위해 같이 택시 타고 가는데
이 여성분만 외톨이처럼 혼자 버스를 기다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저..매장에서 일하는 OO인데, 남자친구 없죠? 저랑 사귀어보는 건 어때요? 저 정말 괜찮은 놈인데요..제발요...주절주절.." 하면서 울상을 지으니까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아! 기억해요" 하면서 아는 척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폰번호를 얻었어요. 저는 돈이 없어서 휴대폰도 없었구요.
그래서 시식행사가 잡힐 때마다 우린 늘 보게 되었죠.
그 친구는 일부러 마트 행사를 자원했구요. 일하기 편한 대신 페이가 적어요. 그래도 제가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나레이터모델분들이 더 많이 받으시더라구요.
외부행사 나갈 때는 더 많이 받고..
지명되면 거기서 더 받고..
우린 너무 가난한 커플이라서
남들 먹는 커피숍이나 스파게티점이나 피자헛에도 못갔어요. 그리고 학비도 모아야 했고 집에도 보태야 했던 저보다는
아무래도 돈을 좀더 받고 집안형편도 조금 나은 여자친구가 데이트비용을 거의 부담했구요. 저는 거지 중의 상거지, 개털 중의 상개털이었어요.
집에서 쫓겨나면서 옷도 못가지고 나와서
때 묻어도 티도 안나는 아래위로 군복을 구해서 입고 다녔거든요. 잠바도.
막 입고 아무리 빨아도 티도 안나니까요.
크리스마스 때는 길거리의 붕어빵이랑 군밤, 호도과자 섞은 게 우리의 만찬이었고 그걸로도 너무 행복해했어요.
여중여고 앞 떡볶이도 우리의 주 메뉴였구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그런 거 우리한텐 사치였어요.
다니다가 꽃바구니 버려진 게 눈에 띄면 주워서 기념일에 부직포와 솜을 사서 뽑기한 작은 인형과 ABC초콜렛이랑 칸쵸 같은 거 담아서 선물했구요. 화려한 케익과 포도주와 잔 두 개도 그림 그려서 앞에 두고 실제로는 초코파이랑 델몬트 병쥬스로 상상 속의 파티를 벌이며 즐거워하곤 했네요.
저는 몰라도 여친이 착하고 키도 크고 단아한 인상이기 때문에 아마 길거리 고백도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한번도 그런 내색을 안해서 잘 몰라요.
학교 다니면서도 과외도 하느라 만날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저는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도 안되는 사람이었구요. 언제나 제가 연락을 했죠.
한밤 중에 끝나서 언제나 공중전화로 잠깐 통화를 하고
일요일에야 좀 시간을 갖고 만날 수 있었네요.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여름에는 비 맞아가면서, 겨울에도 외부행사만 고집했대요. 찬바람 부는데도 짧은 치마에 배 드러나는 옷 입고 행사 했었대요. 돈 더 받아서 제 용돈 주고 제 학비 보태주려구요 ㅠㅠ 걔 친구들한테서 들었어요. 자외선과 대로변 자동차 매연과 먼지, 그리고 겨울바람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피부가 깎였을까요..)
학교 다니는 내내 여자친구한테 용돈을 얻어 살았어요.
처음엔 안 받았는데 여친이
"나랑 결혼할 생각 없어? 결혼할 생각 가지고 있다면 돈 받아. 내돈이 네돈이니까 부담갖지 마. 그리고 친구들한테 얻어먹지만 말고 가끔 사주기도 하고 인심 잃지 말구. 남자는 인맥이 재산이잖아."
그 친구가 이렇게까지 얘기해서,
나중에 결혼해서 다 갚을게 하고 용돈을 받아썼습니다. 걔네 집에서 반찬 다 갖다 먹었습니다. 언제는 쌀도 가져왔더군요. -_-
그 전엔 기본반찬인 김치 살 돈은 물론이고 쌀 살 돈도 없었거든요. 정말 완벽한 거지였네요. 현금은 물론 계좌지급까지 모두 정지 당해서. 맨밥에 간장을 살짝 묻혀 짭짤하게 비벼먹는 게 매 끼니의 반복이었어요.
라면 사먹을 돈도 없어서 마트에서 라면박스 옮기다가 충격 받아서 부서진 게 가끔 나오는데 그걸 100원 씩에 사서 국 대신으로 국물 먹곤 했던 기억이 있네요.
자장면과 짬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중국집 앞에서 냄새만 배부르게 맡고 발걸음을 돌리길 수십번.. 결국 상가에서 내놓은 그릇에 담긴 짬뽕국물을 마시면서 그 갈증을 달래기도했습니다.
저희집이 잘 살 때 제 동생이 사귀던 여자가 정말 착했는데 가난한 집안의 딸이어서 어머니 반대로 헤어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저희집이 가난해서인지 제가 사귀는 여자에 대해 어머니는 별 말씀을 못하시더라구요.
고졸에 집도 그냥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집이라는 이유로
예전 같았으면 결사반대 하셨을 어머니께서..
그러다가 저희 아버지 사업이 다시 풀리기 시작해서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집도 찾고 아버지 어머니도 각각 자가용 굴릴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안정되었습니다.
제 여친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구요.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갑자기 돈 생겼다고 돈 쓰고 다니면 또 예전으로 돌아가버릴까봐 너무 무서웠거든요.
집에 빚이 너무 많아서 아마 나랑 결혼하면
부모님 빚을 갚느라 40살 넘게까지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 잘하라고 해도 제 여친은,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대. 좀 덜 먹고 덜 입고 아껴서 열심히 살며 조금씩 갚아가면 설마 죽을 때까지 못 갚겠어? 난 자기를 믿어. 내 걱정이라면 하지마. 미안한만큼 평생 나만 사랑해주면 될 것 같은데? "
정말 감동했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나레이터모델 친구들이 다 말렸대요.
술자리에서 저한테 직접 얘기까지 하더라구요.
착한 희영이 배신하면 자기들이 가만히 안둔다고. 걔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유학가면 잘사는 여자들, 이쁘고 어린 애들도 수두룩할텐데 바보같은 너는 버려질 거라고.
미국에 가서 어학코스를 끝내고 전략협상 분야를 공부했어요.
쉽게 말해 Negotiator라고 하는데 협상전문가, 협상컨설턴트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한국과 미국이 무역과 시장개방 등의 문제로 FTA 할 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분이 한국측 수석대표로 주도하지 않았었나요? 그런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범죄현장에서 인질이 있을 때나 자살시도자가 있는 현장에 급파되어 일반경찰들이 현장 확보하고 SWAT 이 타격작전개시 하기 전에 쌍방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각국간 군병력, 화기 유지 및 연합훈련 등 각종 협의를 하는 자리에 동원되기도 하고, 혹은 대형그룹들 간의 딜과 기업인수합병을 위해서 고용되기도 해요.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해야 하고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서 우리쪽에 좀더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죠.
우리 쪽에서 가장 강점으로 내세워 공격무기로 활용할 카드를 찾고, 상대 쪽의 약점을 찾아서 궁지로 몰아서 기를 꺾은 후 살 길을 터주는 식으로 며칠 동안 협상을 이어갑니다.
상대도 손해보지 않은 듯 맞춰주는 동시에 우리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사수해서 최대한의 소득을 이끌어내는 거죠.
肉斬骨斷(육참골단), 捨小取大(사소취대)의 사자성어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거죠. 군더더기 여러 조건들을 포용하는 대신 큰 덩어리 두 세 개를 가져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선 20년, 30년 후의 국제정세와 종목에 따른 계산까지 합니다. 물론 상대측에서도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뭔지 알 수 없어야 하는 거구요. 국제관계에서 그때의 종속관계를 위해 몇 십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양방간 상황과 입장에 대해 몇 달 전부터 고용되어 몇 달 동안 밤새며 공부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구요, 계약금, 약속된 수고료 외에 성사될 경우 보너스도 받죠.
성사율이 낮을 땐 지명도도 떨어지고 금액도 낮아지고 소질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도태될 수도 있는 직업입니다.
미국에서는 많긴 하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대우가 괜찮은 편이구요 한국에선 그런 전문양성과정이 없어서 아직 정부기관 및 대기업에서조차 인식이 미흡하고 금전적 대우도 미국만큼은 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식만 제대로 이해되고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겠죠.
국내엔 전문가가 너무 희귀하니까.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도 제 여친은 저희집이 아직 빚에 시달리며 힘들게 공부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수시로 돈을 송금해와요. 그거 쓰지도 않고 꼬박꼬박 모아놨어요. 일부러 말은 안했구요.
저희집 수준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제가 미국에서 공부마칠 때가 되니까 저희집에 선이 많이 들어온대요. 소위 돈 많은 집안에서요.
우리나라에 돈 많은 집안이 그렇게 많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대도시 버스운송회사 소유주도 계시고, 서울 강남역 앞에 대형빌딩 몇 채 소유하고 계시는 집안도 있고, 할아버지 때부터 장관, 국회의원 해오신 권력집안도 있고, 거기다 인물도 좋다더군요. 저는 아직 못봤지만.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유학생들 모임에서 그런 집안 친구들 많았어요.
유학할 때 저도 몇 번 고백 받아봤어요. 다들 뭐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의 애들요.
일본이나 유럽애들 같은 다른 외국애들한테도 몇 번 받아봤고..
그런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거지일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저 하나만 품어 준 그 여자를,
어떻게 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배신을 하겠습니까.
아직도 부유한 정도는 아니어서 유학생활 내내 일도 하고 돈 정말 아껴썼어요.
기한 지난 폐기처분 전 바게트빵 싸게 사서 끓인 우유에 불려서 배채웠어요.
레바논출신 애랑 우범지대 같은 곳에 방2칸짜리 렌트해서 돈 아끼며 지냈어요.
겨울에 전기장판 하나로 버텼고 여름엔 주워 온 선풍기.
먹을 거 없어서 쥐도 안와요. ㅎㅎ
그런데 돈 많은 집안 애들이 비싼 옷 쇼핑하러 다니고 좋은 차 구입해서 놀러다니고 파티하고, 대기업 누구 딸, 어느 병원장 딸 이런 애들이 수두룩한데 걔네 중 몇몇이 호감 비치면서 따라다니면 님들은 어떨 것 같은가요?
전유성씨 말씀대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편안해지는 거 한순간이예요.
그런데 그 여자들...
제가 만약 죽을 병에 걸리거나 위험한 순간에 처한다면 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까요?
그 친구들에 대해선 몰라도 제 여친에 대해선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딴맘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오직 한국에 들어가든, 미국에 불러들이든 제 남은 인생 그녀를 위해 희생하려구요.
그녀가 제게 모든 걸 주었듯 이젠 제가 그녀를 보호해주려구요.
평생 한 여자만을 위해 살 겁니다.
죽을 때까지 제 눈 속엔 그녀 밖에 없을 거예요.
여자한텐 20대가 인생의 절반이라고 하죠?
그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20대를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을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려 5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외국에 보내놓고 흔들리지 않고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ㅠㅠ 제가 유학 중에 좋은 배경 가진 여자 만나서 연락 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제 심장을 누군가에게 꺼내 맡겨야 한다면 그녀에게 맡길 겁니다.
죽을 위험에 처해도 저를 위해 희생할 여자라는 걸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고보니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네요. 첫번째 이유는, 그녀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어서입니다. 제가 특별히 화나게 했던 기억도 없지만 다른 일에도 화를 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언젠가 집요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냥 단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자기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이 답답해서 제가 화나진 않았었냐고 되물었던 사람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제가 화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제게 화를 내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제게 잘못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녀가 제 앞에서 제게 화를 내고 있다는 그 현실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안심할 것입니다.
화를 내건 어떻건 일단은 제 앞에 있어줬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돈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좋은 요리 먹으러 다니고, 좋은 옷 쇼핑하러 다니고, 비싼 선물 사주고, 기념일마다 몇 만원 하는 선물바구니와 이벤트 하는 거... 돈만 있으면 어느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해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없어서 눈물 흘리며 미안해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을 위해 자기 수명도 떼어 팔 사람입니다.
100을 가졌다면 100 모두 내어주고도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해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살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평생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희영아.. 나 약속 지켰다. 절대 유학 가서 다른 여자 내 가슴에 담지 않겠다고 너한테 맹세한 약속.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거야.
나 너한테 붕어빵이랑 떡볶이랑 캔커피 밖에 못사주고 언제나 버스 타고 데이트 하고,
너한테 FI*A 운동화 사주려고 했을 때 네가 매장에서 도망나가서 대로변의 잡브랜드 1만원짜리 운동화 골라 신고 나 만날 때마다 그것만 신고 나오고...
나 정말 거지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인생 막막했는데 네가 나 품어줘서 나 유학 갈 꿈도 가질 수 있었어.
유학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게 되어도 비웃지 않고 기쁘게 환영해 줄 네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난 돌아갈 곳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
너 아니었으면 아마 꿈도 잃어버리고 한국에서 대학중퇴에 하루하루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내가 언제든 돌아갈 집 같은 네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안심하고 시도할 거야.
네가 전에 보낸 편지에
"자기가 너무 잘나버려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더이상 없어. 어쩌지? 자기가 그렇게 커져가고 멋있게 변해가는 동안 난 7년 동안 더 늙었고 더 무식해졌고 더 초라해졌네..
그런 자기 옆에 이런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기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 그러니까..
정말정말 나보다 더 자기 마음 안에 들어오는 여자를 찾게 되면 그때 나한테 꼭 말해줘.
내가 봤을 때 좋은 여자면 안심하고 자기 보내 줄 수 있을 거야.
난 괜찮으니까 자기는 자기가 더 멋지게 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해.
대신 다음 생이 또 있다면 그땐 꼭 날 선택해줘야해.
그땐 나도 부잣집에 똑똑한 여자로 태어나서 자기한테 어울릴만한 여자로 태어날 테니깐."
희영아..
나.. 네가 보낸 그 편지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넌 모를거야.
지금 이 글 쓰면서도 눈물이 흘러서 모니터가 안보여..
내가 널 두고 어느 여잘 사랑할 수가 있겠어..
너처럼 좋은 여자는 내가 천번을 다시 태어나도 아마 만날 수 없을 거야.
네가 나한테 안어울릴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나 내가 배운 공부 다 버리고 붕어빵장수 아저씨로 살 수도 있어.
내가 익힌 것들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 거라면 말이야.
내가 죽어서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 내 인생에 너를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딱 그것만 말씀드릴거야.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너로 인해서 꽃 피울 수 있었으니까.
내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다면,
지금의 나로 이렇게 키운 두번째 내 어미는 바로 너야.
내게 아무 힘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 시기에 내 부모가 나를 키우셨고,
그 두번째 시기에 네가 나를 키웠어.
일시귀국일지 영구귀국일지 아직 결정짓지 못했지만
한국 돌아가면 그때 처음으로 무릎 꿇고 네게 청혼할게.
우리..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사랑 지켜왔잖아.
우리 애들이 컸을 때
이 글을 보여줄거야.
그리고..
아빠가 엄마한테 이런 무한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때 이미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였다고,
엄마는 아무 것도 없는 아빠를 조건없이 품었고
그래서 아빠는 큰새가 될 수 있었다고,
아빠가 할아버지할머니께 생명으로 진 빚이 있다면
엄마에겐 녹 슬어 버릴 뻔한 심장과 황폐해질 뻔한 영혼의 빚을 졌기 때문에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에게 빚을 진 셈이라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영원히 빚을 갚는 심정으로 엄마를 사랑할 거라고.
그게 내가 너희들보다 엄마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니까
너희들이 이해하라고
그렇게 말을 할 거야.
사랑한다.
영원히..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그것은
평화요 안식이요 이 세상의 마지막이요 처음이다.-정호승의 《연인》중에서-
.....[여친자랑] 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GUN@작성일
2009-12-2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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