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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버락 오바마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를 더 자유롭게 할 아이디어
궁금해서 그런데 다들 이 글에는 동의 하시나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작년 8월 4일 ‘글래머’ 지에 페미니즘에 대한 열정적인 글을 기고했다. 작년의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주류 정당에서 여성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렇기에 그의 페미니즘에 대한 칼럼은 더욱 뜻깊었다.출처: http://www.dailymail.co.uk그는 성차별과 맞서 싸우는 것은 결코 여성들만의 몫이 아니며,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문화적으로 공고하게 뿌리가 박힌 수많은 고정관념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호소한다. 그렇게 남성, 여성, 성소수자 등 모든 이들을 위한 평등이 이뤄질 때 우리는 비로소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됨을 호소한다.아래는 칼럼 전문.대통령이 된다는 건 힘든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혜택도 있죠. 전국을 돌아다니며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관직에 있으면서 우리 조국의 삶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에어 포스 원.하지만 아마 이 일에서 기대치 않았던 가장 위대한 선물은, 일터 바로 위에서 살 수 있다는 점이었을 겁니다. 오랫동안 제 삶은 긴 통근 시간 때문에 소모되어왔거든요. 시카고의 집에서, 주 상원의원으로서는 일리노이 스프링필드까지, 그리곤 연방 상원의원으로서는 워싱턴 D.C.까지 말이죠. 그건 제가 원하는 남편, 아버지가 되기 위해선 더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의미였죠.하지만 근 7년 반 동안, 통근 시간은 45초로 줄어들었죠. 제 침실에서 집무실까지 걸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에요. 그 결과, 전 훨씬 긴 시간을 제 딸들이 총명하고 친절하며 위트있는 멋진 여성으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보낼 수 있었어요.늘 쉽지는 않았죠. 그들이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는 걸 바라보는 건 말이에요. 하지만 한 가지 긍정적이었던 것은, 이 시기가 여성이 되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는 것이죠. 우리가 지난 100년 동안, 50년 동안, 그리고, 맞아요, 지난 8년 동안 이룬 진보는, 제 딸들의 삶을 우리 할머니들의 삶보다 명백히 낫게 만들었죠. 대통령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페미니스트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제 생애에 걸쳐, 우리는 기본적으로 여성들에게 몇 안되는 박봉의 일자리만이 허락된 구직 시장으로부터, 여성들이 노동자의 대략 절반에 이른 것은 물론, 스포츠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에서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선도하는 순간에까지 이르렀습니다.저는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그리고 학습과 경력, 자신의 재정에 있어서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지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는지를 보아왔습니다. 신용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남편이 필요했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들이, 기혼이든 비혼이든 상관없이 재정적인 독립을 이루고 있습니다.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진보했는지 과소평가해선 안 됩니다. 그건 정의를 위한 싸움에 자신의 삶을 바친 모든 이들에 대한 모욕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이곳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성년과 미성년 여성들의 미래를 진보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습니다.저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정책에서부터, 성과 생식에 관한 권리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정책들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새로운 법을 통과시키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변화들이 있습니다.사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가장 어려운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죠.6월 최초의 여성 합중국 백악관 회담(White House Summit on the United States of Women)에서 제가 말씀드렸던 게 있습니다. 우리가 도달한 것만큼이나 비일비재하게, 여전히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구요.셜리 치솜 의원은 제 여성 영웅 중 한 사람입니다. 주류 정당의 대통령 경선에 최초로 출마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한번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의사가 ‘여자애네요’라고 말하는 순간, 여성에 대한 감정적이고 성적인, 심리학적인 고정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우리는 이 고정관념이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여자아이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법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대로 행동하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덜 가치있어보이게 되리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죠. 사실, 성 고정관념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의 사회적 성이 무엇이든, 성 정체성이 무엇이든, 성적 지향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제 삶에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언제나 여성들이었습니다. 전 싱글맘인 어머니에게 양육되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여성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해 긴 시간 힘써온 분이었죠. 제 할머니께서도 양육을 도우셨는데, 은행에서 일하며 윗자리로 올라가려 하셨으나 끝내는 유리천장에 부딪칠 뿐이었습니다.전 미셸(주: 버락 오바마의 부인)이 바쁜 일과 가족을 돌보는 일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왔는지도 보았지요. 많은 일하는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이를 어떻게 절충할지에 대한 주위의 기대와 평가 때문에 많은 걱정을 했어요. ‘제’ 선택에 대해선 의문을 가질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요.사실, 제 딸들이 어릴 때, 저는 주 의회에서 일하며 집안일과는 거리를 두었어요. 법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병행하면서 말이죠. 이제와서 되돌아보면, 제가 도와줄 때조차, 그건 제 스케쥴과 제 방식에 따른 것이었죠. 불공평하고 불균형적인 짐이 미셸에게 떠넘겨졌어요.그래서 저는, 여성들이 직면한 특이한 도전에 대해 꽤 잘 알아왔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제 페미니즘을 빚어왔던 것이죠. 그러나 또한 저는 두 여자아이의 아버지일 때, 성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해있는지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여러분은 문화 전반적으로 미묘한, 혹 그리 미묘하지 않은 사회적 신호들이 만연해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막대한 압력이 여자아이들을 특정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고, 특정 행동을 하게 하고, 심지어 특정 방식으로 생각하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이와 같은 고정관념이 젊은 남성으로서 제 의식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라면서, 저는 많은 시간을 제가 누구인가, 세상은 절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저는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보냈습니다.사회로부터 그 모든 남성성에 대한 메시지들을 받아들이는 건 실로 간단한 일이었고, 저는 남자로서 옳은 길과 그릇된 길이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전 터프한 남자나 쿨한 남자가 되고자 하는 제 생각들이 저 자신이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건 제 불안한 젊음의 징후였던 것입니다. 제가 제 자신이 되기로 결정한 후부터 제 삶은 한층 더 편안해졌습니다.우리는 이런 제약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딸은 얌전하고 아들은 강하게 키우는 사고방식을 계속 바꾸어가야 합니다. 딸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과 아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질책하는 것을 바꿔야 합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심판하고 남성은 보상하는 사고방식을 바꿔나가야 합니다.우리는 여성들에 대한 반복적인 괴롭힘을 용인해온 사고방식을 계속해서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그들이 거리를 걸어가고 있든, 인터넷에 접속해있든 말입니다. 우리는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의 존재와 성공에 위협감을 느끼도록 가르쳐왔던 사고방식을 계속 바꾸어나가야 합니다.출처: https://www.glamour.com/우리는 기저귀를 갈아주는 남자를 자랑스러워하고, 전업 주부 남성을 낙인찍고, 일하는 어머니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고방식을 계속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일자리에서 자신감 있고 경쟁적이며 야망 넘치는 모습을, 그가 여성이 아닐 때에만 가치있게 보는 사고방식을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여성은 남들을 쥐고 흔들려 한다 여겨지며,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 생각했던 미덕들이 오히려 그를 저지하게 됩니다.우리는 유색인종 여성들과 여자아이들만을 유독 불관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화를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미셸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그녀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을 쟁취한 후에도, 여전히 그녀는 그녀가 올바른 모습으로 보이는지, 올바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지를,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보이진 않는지, 지나치게 “화난 것처럼” 보이진 않는지 걱정해야 했습니다.부모로서, 이런 제약 위에서 아이들을 키워나가는 것은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입니다. 미셸과 저는 우리 딸들을 이중잣대를 보았을 때나 성별 혹은 인종에 따라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을 때, 이런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난 것을 목격했을 때 목소리를 내도록 길렀습니다. 그들이 어떤 분야를 선택하든 세계적으로 그 분야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오른 롤 모델을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렇습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페미니스트란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게 그들이 모든 남성들에게 원하는 일이니까요.성 차별과 싸우는 것은 절대적으로 남성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배우자로서, 동반자로서, 남자친구로서, 진정으로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더 열심히 과업을 수행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나가야 합니다.좋은 소식은, 제가 전국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성 역할에 대한 낡은 관념과 맞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학내 성폭행을 멈추기 위해 “우리에게 달렸다(It’s on Us)” 캠페인에 동참한 수많은 젊은 남성들부터,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특수부대원이 된 젊은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의 세대는 구식 사고방식에 묶여있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정체성에 대한 낡고 경직된 사고를 고집하는 것이 남성, 여성, 동성애자, 이성애자, 트랜스젠더, 그 누구든간에 누구에게나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런 고정관념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없도록 제약하고 있습니다.올 가을 우리는 역사적인 선거를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건국된 지 이백 년 하고도 사십 년, 여성이 선거권을 쟁취한 지 거의 한 세기 만에, 처음으로 여성이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습니다. 정치적 관점이 어떠하시든간에, 이건 미국의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것은 여성들이 평등을 향한 긴 여로의 어디까지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우리의 모든 딸과 아들들이 이 또한 그들이 물려받은 것임을 목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역사는 벤자민이 그려진 것에 대한 것이었을뿐 아니라 터브먼이 그려진 것에 대한 것이기도 했음을 알길 바랍니다.(주: ‘벤자민이 그려진 것(the Benjamins)’이란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려진 100달러 지폐를 말하며, 흔히 많은 돈을 뜻한다. 해리엇 터브먼은 20달러 지폐의 새 모델인데, 노예 출신의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이다. 단순히 지폐(돈) 뿐 아니라 인권에 대한 가치를 함께 물려받았음을 표현한 것.)미국을, 모든 아이들이 그녀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는 데 힘을 보태기를 바랍니다.21세기의 페미니즘이란, 모두가 평등할 때, 우리 모두가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저 : http://ppss.kr/archives/87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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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한국인은 모르는 한국에서 촬영한 영화
관악구 신림동..... 공시충들 득시글대는 그곳에 있는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있다.(지금은 금천구 시흥동으로 옮겼다고 한다)베이비박스란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기를 키울 여건이 안되는 부모들이 아기들을 버리면그럼 교회 안에서 그 아이를 받는 방식이다... 2012년의 CCTV를 보자.계단으로 어떤 여자가 올라가고있다대개 미혼모거나 10대 임산부,장애아 판정을 받은 애를 낳은 부모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붉은 원 안의 저기를 잘 보면베이비박스를 열고 아기를 넣는 장면이다. 이내 돌아나오는 여자..그리고 저 베이비박스는 아이를 넣고 문을 닫으면,자동으로 교회 안에 있는 벨이 울리게 되어있다.... 이렇게 교회 안쪽에서 아이를 받는다.애기 엄마의 얼굴은 CCTV를 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베이비박스의 내부는 이러하다.벽을 뚫고 난방기구를 달아서 추운날 한밤중에 아이가 놓여질 때를 대비하여체온을 보존할 수 있게 만듬. 이 베이비 박스를 만든 것은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이종락 목사님이다.젊었을땐 술마시고 깽판치는게 주특기였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 회개한 후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함.그 당시까지는 평범한 목사 A였던 그는 어느날.... <체코의 베이비박스> 2007년 어느날, 교회 앞에 아이가 버려져 있던 것을 목격해.그때가 새벽 3시라서 자칫하면 애가 얼어 죽을수도 있었다고 생각한 이 목사는 그 아이를 구하게 되고,2009년에는 체코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지. 그리고 곧바로 지금의 베이비 박스를 만든 것임...그 후로 소문이 퍼지면서 여기에 애들을 갖다 버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다.불가피했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단지 책임지기 싫어서 애를 버리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는 절대 그 아이들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바로 아들 '이은만' 때문이었지.이은만은 87년생으로 지적장애 1급에 뇌성마비 환자였고...바로 자기 친아들이 장애인이기에, 이 목사도 장애인들을 돌보는 봉사를 주로 했지. 그래서인지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만들기 전부터도) 장애아들을 양육해달라는 부탁들을 수없이 받아왔어.입소문을 타고 급기야 장애아로 태어난 아이들을 교회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지...이것이 나중에 그가 베이비 박스를 만들게 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해. 물론 이종락 목사 혼자서 저 애들을 다 키울순 없었고,이곳에 들어오게 되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구청 직원들이 아이들을 데려간다고 한다.그리고 입양기관에 넘겨져 주로 국내 입양을 가게 된다고 하네. 이 전에 교회가 관악구에 있을 때,구청에서는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팍팍 냈다고 한다.'애 버리는 곳을 왜 만들어서 지역 소문 안 좋게 나게 하느냐' 가 이유였고'베이비박스를 없애라' 라고 강요하기도 했다네.하지만 이 목사는 '그럼 애들을 다 길거리에 내버리란 말이냐?'라면서 버티지.... 지금은 금천구로 옮겼다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되어자고 있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2015년 5월, 미국에서 '더 드롭박스' 라는 제목으로이종락 목사와 베이비박스에 대한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로 개봉되었고.시대 배경은 2011년이었으니 한창 베이비박스가 운영되던때이다.이 영화는 John Paul II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이라는 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의 감독인 브라이언 아이비는, 당시에 USC 대학생이었다.브라이언 아이비를 포함한서 USC 영화학과 대학생들이 만든 독립 영화임.왼쪽은 이종락 목사이고, 오른쪽이 이 영화의 감독 브라이언 아이비이다.더 드롭박스는 독립 영화로써는 굉장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입소문을 타고 주로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미주 한인들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선 개봉된지 2년이 넘었지만아직까지 한국에선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오늘도 베이비박스는 조용히 운영되고 있다. 이종락 목사는 낙태반대 운동도 하고 있으며, "나는 베이비 박스가 필요없어지길 바란다.하지만 길거리에 위험하게 방치되고,심지어는 친부모에게 버려져 생명이 위태로운 아이들을 위해서 베이비 박스는 필요하다.언젠가 베이비 박스가 필요없어질 날이 오길 바란다" 라고 말하고 있다..
LoMi작성일
2017-07-05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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