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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일반] [책과 함께보는 유튜브] 그리드 (GRID)
그레천 바크 저/김선교, 전현우, 최준영 역 20세기에 오일쇼크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전기쇼크가 있을 것이다! 그리드 :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리드’를 번역하면 전력 계통, 전력망, 송배전망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단어도 전기 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라는 저자의 표현에 딱 들어맞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원어를 그대로 활용했다. - 들어가며 우리는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이 땅을 ‘그리드’라고 부르며, 이들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말하고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 있는 그리드는 3개다. 서부 그리드는 맥시코 일부와 캐나다 서부의 많은 지역을 포함한다. 또 다른 그리드는 동부 지역을 담당하며, 더 작은 하나는 텍사스주를 포함한다. 멕시코 지역의 대부분은 자체적인 그리드를 가지고 있지만, 캐나다는 그렇지 않다. 오래되고, 더럽고, 삐걱 거리는 미국 전기 그리드 그리드를 이루는 송전선과 변압기 중에서 사용한 지 25년 넘은 것이 70% 이상이다. 여기에 9년을 더하면 미국 발전소의 평균 연식이 된다. 전력 산업 전문가 피터 애머스에 따르면, 우리는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2배나 많은 발전소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이 시스템에 내재해 있는 엄청난 비효율성”때문이다. 이처럼 노후화 된 설비가 늘면서, 중대 정전 사태는 2001년 15건 발생하던 것이 2007년 78건, 2011년 307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미국의 연간 평균 정전 시간은 6시간을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길다. 2003년에서 2012년 사이, 극도로 변덕스러운 날씨나 다른 천재지변으로 인한 정전을 제외하더라도 정전 사고의 수는 679건에 달했다. 미국의 '풍력발전'/美 '바람'으로 450만 가구 전력 만들어 쓴다 그리드를 환경친화적인 기계로 만드는 것만이 태양광이나 풍력같은 가변적인 발전원으로 전환하는 데 문제가 된다면, 새롭고 향상된 전력 저장 장치의 개발에 막대한 종잣돈을 투입하고 세심하게 계획된 몇 가지 정책만 더하면 불만과 늑장 대응을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풍력 농장을 만들다 하여도 이런 지역에는 전기를 이용할 사람도, 수요 처로 전기를 이동시키는 데 쓸 수 있는 장거리 전력선(송전선)도 없다. 그리드가 그런 황무지 한가운데 건설되어 견고하게 유지되었던 적은 없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리드의 작동 방식을 수도관이나 가스관을 작동시키는 물리학에 빗대어 이해한다. 수도관은 물을 모으고 이동시켜 사람들에게 공급한다. 가스관은 메탄을 모아 가스레인지와 온열 난방기에 공급한다. 하지만 전기는 전혀 다르다. 전기는 상자에 넣어둘 수도, 저장할 수도, 수출할 수도 없다. 언제나 만들어지는 순간 사용되며, 만들어지는 즉시 배송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1,000분의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전기를 생산하는 데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그 사용량에 대해 얼마를 지불해야 적절한지, 이것들을 가운데 소비자들이 제대로 알고 있으리라고 믿을 만한 것은 전혀 없다. 게다가 전력 회사는 본래 국가가 그 권리를 보장하는 독점기업이다. 전기 사업은 특정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구매해야 하는 상점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이 상점에서 판매하는 개별 품목에는 가격도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월말에 구매자들 앞으로 한 달 동안 소비한 전기에 대해 단 한장의 청구서만 남을 뿐이다. 결국 이 책은 그리드의 총체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비할 데 없는 복잡함 속에 벌어지는 수많은 문제점들과 그 옆에서 새롭게 싹트는 희망, 갖가지 부조리로 점철되어 있지만 동시에 경탄할 만한 탁월함으로 가득한 역사, 이를 현실에 구현한 사람들과 이들 배후에 있는 법과 논리까지, 그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기술적 진보에 따라 가능한 한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긴박한 문제들이 그리드 앞에 밀려드는 지금 이 순간, 그리드 사용자들, 즉 우리 모두는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우리에게 무슨 이익을 가져다 줄것인지, 어떤 함축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현제 그리드가 지닌 결점 가운데 무엇을 개선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Smart Grid] 미국의 스마트 그리드 1장 - 바람이 불어오는 길목 앞에서 스티븐 추 그리드 위크(Grid Week) 기조 연설자는 노벨물리학상 수장자이며 미국 에너지부 장관인 스티븐 추다. 파워포인트 화면을 가르키며 추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2008년 9월 4일 오후 5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이었습니다. 콜로라도주 알라모사카운티에서, 아주 두꺼운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추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전력 공급량이 등락이 이어지고 5분이 지나자, 태양광 농장(solar farm)에서 카운티로 공급되던 전력의 생산량이 무려 81%나 떨어졌습니다.” 모든 참석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할 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에어컨을 켜고 TV와 컴퓨터의 전원 스위치를 누르는 저녁5시에 발전량이 순식간에 81%나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전기 엔지니어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세게에서 가장 거대한 기계, 그리드는 전기 소비와 생산이 매 순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발전 ‘연료’의 믹스가 어떻게 되든, 더 많은 태양광발전소가 이 계통에 연계될수록 갑작스러운 구름의 등장에 대응하기는 어려워진다. 오후 5시처럼 수요가 하루 중에서도 극에 달하는 시간에는 더욱더 그렇다. 문제의 그래프에서, ‘발전’이라고 표시된 검은색 선은 급격히 아래로 향했던 반면, ‘소비’로 표기된 빨간색 선은 양의 기울기로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태양광에서 전기를 얻는다는 말은, 햇빛이 지상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전력도 없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바로 이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이 일터에서 자주 겪는 비상 상항이다. 비상 상황에서 이들은 긴급히 투입되어 블랙아웃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미국 최대의 태양광 솔라팜 프로젝트 제미니 Gemin solar 프로젝트 “4개월 뒤, 2009년 1월 5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컬럼비아강 협곡 지역에서는 바람이 갑자기 멈췄고, 그 후 3주 동안이나 바람이 불지 않았습니다.” 컬럼비아강 협곡에 풍력 농장은 총 25개가 있었다. 2015년에 그 수는 대략 4배 증가했다. 이것들은 각각 수백 개의 터빈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터빈들 각각 1,000킬로와트 이상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거대한 풍력발전 사업이 바로 이 지역에 있다. 여기에서 생각되는 전력은 최대 6,000메가와트(이는 약 450만 가구에 공급되기에 충분한 에너지다)로 추산되며, 이들은 모두 바람, 그러니까 이 협곡의 명물인 바람 그 바람에 의존하고 있다. 풍력, 태양, 파도처럼 예측할 수 없는 연료원에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 즉 가변 발전소가 문제다. 시스템의 어떤 부분이 결국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갑작스럽게 부하가 공극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경우도 가능하고(가령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에어컨을 켜는 순간, 풍력 농장에서는 바람의 세기가 약해지는 경우), 구름이 태양전지판을 덮어 최외각에 있던 전자를 벗겨내는 전지판 능력이 격감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유틸리티나, 전력망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설치된 그 밖의 기관들은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 매우 기민하게 행동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전력이 부족해져 불을 켜놓을 수 조차 없게 된다. 정전은 거의 이런식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석탄, 천연가스, 우라늄 등의 인공적인 자원과 저량 자원 발전기의 출력을 상승시키는 작업은 전혀 쉽지 않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발전기는 5분 안에 출력을 50%까지 상승시킬 수 있어서,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발전기라고 할 수 있다. 천연가스 발전기의 경우, 냉간기동(cool start)으로 최대 출력에 도달하는 데 10분 정도가 걸린다. 원전의 발전기는 단 몇 초 안에 가동을 멈출 수 있으나, 이를 다시 가동하려면 꼬박 24시간이 걸린다. 전력을 저장하는 수단이 아직 마땅치 않는 점은,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예비 전력이 거의 없다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과잉 생산되어 남은 잉여 전력을 처분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는 석유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기에, 석유 공급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기름이 세심하게 계량되어 투입되지 않고 오히려 엄청난 규모의 기름이 쏟아져 나와 그와 그의 차량을 삼켜버리는 상황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은 항상 그리드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변동하는 양의 전력을 제공한다. 풍력 터빈의 비중이 올라갈수록 또는 태양전지판의 비중이 올라갈수록, 평소 소비하는 전력에 비해 더 많은 전력이 생산되는 위험도도 올라간다. 이것은 추 장관이 이야기하지 않은, 재생에너지가 주인공인 공포물의 한 장면이다. 2장 - 그리드가 전선을 얻었을 때 1830년대에 마이클 페러데이가 실험을 수행한 이후로, 우리는 전자기력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800년 알렉산드로 볼타(Alessandro Volta)가 화학전지를 발명한 이후, 산화환원반응이 일어나는 배터리를 만들어 전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전기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고 이를 만들기 위해 고안한 기계도 제작되었으나, 1860년에 접어들 때까지 전기를 어디에 쓰면 좋을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70년, 인류는 전기를 생산하고 통제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전기와 무관했다. 1세대 전기 제품 개발자(모두 발명가로, 판매 가능하며 생산성 있는 기술을 추구했다)가운데 상당수는 조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쓰인 조명은 불꽃이 뿜는 먼지로 눈이 따가웠고 주변에 검댕이 휘날렸다. 게다가 야간 조명은 워낙 비싸서 잠도 일찍 자야 했다. 거의 모든 사람의 생업과 일상생활에서 그 시대를 지배한 촛불과 가스램프보다 더 나은 조명이 그 무엇보다도 더 절실했다. 당시 도입된 전기 조명 시스템은 5개 정도 되는 전등이 직렬회로로 묶인 구조였는데(동시에 켜고 꺼지는 회로), 3년 뒤인 1882년에 <<뉴욕타임스>>는 사무실에 처음으로 전기 조명을 설치했는데, 이 시스템은 백열등 52개가 병렬회로로 연결된 구조였다. 회로 구조가 직렬에서 병렬로 변했다는 이 미묘한 사실은, 그리드에서 일어난 첫 번째 혁명이다. 우리는 전구 발명의 공로를 토머스 에디슨에게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지만(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의 가장 뛰어난 발명은 병렬회로, 즉 현대 세계를 이루는 기술적 구조물 가운데 그의 공로를 가장 두드러지게 하는 회로 구조를 고안한 데 있다. 테슬라 & 에디슨 에디슨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아주 근면한 인물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그는 물리법칙은 고려하지 않은 채 기술적인 해법을 찾으려고 시도하고는 했다. 이런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지만, 가끔은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그와 아주 상반된 성격의 발명가인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에디슨이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고 있다고 해보자. 그는 일벌의 근면함으로, 자신이 찾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지푸라기를 하나하나 검사할 것이다. … 이론도, 계산도 없다는 약점은 90% 그의 노력에 의해 돌파되었다.” 1882년 에디슨의 첫 번째 공공 그리드가 깜빡거리며 등불을 밝혔을 때, 그 포괄 범위는 0.42제곱킬로미터에 불과했다. 1884년, 이 그리드의 범위는 2.56제곱킬로미터로 확장되었고 총 8,000개의 전구를 포함했는데, 여기에 연결된 전구는 오늘날의 15와트 전구와 같은 휘도를 가진 어스름한 작은 황금빛 구였다. 이 8,000개의 전구들을 병렬로 배치되어, 총 길이가 300킬로미터도 넘는 전선으로 연결되었다. 이 전선은 뉴욕의 자갈 포장도로 밑에 매설된 전선관을 통해 연계되었다. 전체 네트워크는 에디슨이 발명했고, 이는 그의 팀이 “미끈하게 뻗어”있다고 말한 직류발전기 ‘점보 매리 앤(Jumbo Mary-Ann)’6기에 의해 구동되었다. 이것이 병렬회로로 백열전구를 연계한 미국 최초의 공공 조명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은 직류로 가동 되었으며, 석탄을 연료로 썼다. 초기 전기화 시대에 전기는 공적인 산물로 생산되거나 판매되지 않았다. 당시 전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구매할수 있는 여력이 있는 엘리트를 위한 생산물로 규정되었다. 전기는 대중에게 널리 퍼지지도 않았는데, 이후 역사적 전개와 달리 대중이 접근할 만한 소비재로 여겨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전력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대규모 그리드로 가능해졌고, 이러한 그리드를 향한 첫걸음인 교류 전기 시스템의 발명과 성공적인 설치가 1887년에 이뤄졌다. 당시에는 이미 무수한 케이블이 어지럽게 얽혀 있던 옥상과 전신주 꼭대기에 다른 종류의 전류를 더하는 일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한동안 그랬다. 그러나 교류는 직류에 비해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전선, 전류, 전압, 주파수의 교란을 줄이는 데 용이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직류와 다르게 교류는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다. 교류의 전송 가능 거리는 교류가 시장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경쟁 시스템이 기록한 1.6킬로미터를 한참 앞섰다. 그러나 교류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따로 있다. 교류가 발전기에서 낮은 전압으로 생산되었다고 해도, 변압기(촘촘하게 감겨 있으나 서로 닿아 있지 않은 2개의 구리 도선 뭉치로 이뤄진 간단한 장치)를 통해 훨씬 더 높은 전압으로 ‘승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압을 높일수록, 전기는 더 멀리까지 전송할 수 있다. 당신이 전자의 욕망을 더 크게 끌어 올리고, 이것들이 더 강렬하게 원하도록 만든다면, 이들을 더 멀리까지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변압기는 그 구조가 단순하지만, 전압의 ‘승압’과 ‘감압’을 손실 없이 달성하는 놀라운 수단이다. 하지만 1초에도 수십차례 음전하와 양전하를 오가는 교류는, 전하가 매우 높은 주파수로 진동해야 전송이 가능한 전류이기도 하다. 대공황이 가장 심각했던 1936년에 농촌전기화법이 입법되기 전까지, 농촌 사람들은 사실상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전, 20세기의 처음 10년 동안에도, 도시 주민은 물론 교외 거주자, 공장주는 가스등과 증기기관을 주로 사용했지 전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늘날 우리는 전기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전기 대중화 이전의 인프라와 오늘날의 전기 인프라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만큼이나, 전기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단 한 세기 만에 큰 변화를 겪었다. 3장 인설의 법칙, 그리고 법칙의 종말 4장 카디건을 입은 미국 5장 붕괴 위기에 처한 그리드 6장 돌 하나로 새 두 마리 잡기 7장 두 폭풍 이야기 8장 성배를 찾아서 9장 시대정신 로 이어 집니다. 미국은 정전이 자주 일어나는 도시입니다. 5분 이상 정전이 되면 블랙아웃이라 하며, 이하면 브라운 아웃이라고 합니다.한국은 블랙아웃에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한국은 그만큼 그리드가 잘되어 있는 나라 입니다. 오일쇼크 부분도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석유 전기 생산보다 석탄, 원자력등에 투자 해서 전기 생산부분에 석유가 주는 타격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한국도 앞으로 탄소중립, 친환경에너지, 전기자동차 등 에너지에 관련하여 기술이 필요할것이고 우리도 기존 그리드에서 신재생에너지가 발생될 문제점은 당장 현안이 되어 있는 시점입니다. 번역에 참여한 최준영 교수가 출연 그리드를 소개 합니다. 책 읽으시기 귀찮으신분은 유튜브를 통해서 그리드를 알아 가면 좋을듯 합니다.
로오데작성일
2021-12-2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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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지구본 연구소 - 13. 글로벌 슈퍼파워들의 속사정 (1)
오랜만입니다. 내무부 장관님과의 약속이 내일로 잡혀있어서 오늘 시간이 비어 이렇게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저번에 남미 희망편과 절망편 둘중에 하나로 고민을 해보고 다음편을 결정한다고 했었는데요.둘 중에 뭐를 하지? 하며 고민하는 중에 짱공유에서 시의성 있는 이슈가 생겨서그 부분을 다루는 것으로 급 선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라틴아메리카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살짝 미루고(1)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2) 글로벌 슈퍼파워들의 수싸움과 그들이 그렇게 나설 수 밖에 없는 배경이 두가지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하기 전에,이 게시글은 유튜브“3프로 TV”의 코너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1. 국제 사회를 이해하려면요즘 중국이야기 하면 “아오 저 짱X새기들” “안물 안궁”이라는 반응이 나오겠지만어쨋건 글로벌 슈퍼파워가 되었으니, 좋든 싫든 알고 넘어가기 위해 이야기 한토막을 말씀드리자면 시진핑이 다른 나라 정상과 회담을 하기 전에 항상회담 당사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들어간다고 합니다.그래야, 그 나라의 문화적인 풍습,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역사는 인간을, 그리고 인간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만......이 게시글의 토대가 된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의 호스트......라고 해야겠죠?최준영 박사는 인간을 이해하려면, “세계사” 뿐 만 아니라, “지리” 또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역설을 합니다. “세계사야 그렇다고 쳐....... 지리는 왜?”라고 하실 수 있을텐데요.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시간”이라는 기준에서 추적해 나간 것을 세계사라고 한다면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공간”이라는 기준에서 추적해 나간 것을 지리라고 하거든요.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 / 극복해 나가면서 역사가 진행되어 왔지만알다시피 지구는 정말로 다양한 지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눈감고 뺑뺑이 돌려서 태어나봤더니어떤 곳은 사계절이 뚜렷하고어떤 곳은 평생 눈구경은 못한 채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크고어떤 곳은 소변을 보자마자 얼어붙고어떤 곳은 어떤 곳은 물 긷으려고 3시간을 걸어가야 하고어떤 곳은 파도가 땅을 집어삼켜서 모래포대로 벽을 쌓아야 하고 이렇게 다양한 환경에 랜덤으로 던져지다보니......선택은 두 가지겠죠?“아...... 이번생 가챠 ㅈ같이 했네. 그냥 캐삭하고 다시 키우자.”“에휴....... 하필 뽑아도 이런델 뽑냐......... 어쩌겠어 맞춰 살아야지 뭐” 전자의 경우야 역사에 어떤 자취를 남기지 않았을 테고,결국 역사에 자취를 남긴 사람들은 후자들입니다. 후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지리적 환경에적응하거나변화시키거나어찌됐든 그 속에서 “생을 영위”하고자 발버둥을 쳐왔습니다. 물론 이건 인류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에만 해당되는게 아니라‘나라’라는 좀 더 작은 카테고리에도 해당되겠지요. 이제까지의 게시글을 읽어 오신 분들이라면게시글이 “지리”와 연관지어서 나라들을 설명해 온 것을 알 수 있을거에요.(EX–콜롬비아의 지형과 커피의 상관관계 / 남미에 연방국가가 생겼지만 미국처럼 안된 이유)아무래도 최준영박사의 영상을 토대로 하다보니,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1. 지리를 알려면 필요한 것이두 가지가 있을 거에요. 바로 지구본과 지도입니다. 지구본이야 지구의 모습을 3차원의 구라는 사물에 투영시켜서 만든 것이니정확한 실제를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남반구를 보려면 지구본을 뒤집어서 보거나, 누워서 봐야 하는 등 단점이 있지요.대신 지도는 남반구를 보기위해 드러눕지는 않는 등 보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3차원의 구에 펼쳐진 땅을, 2차원인 종이로 펼치다보니......필연적으로 왜곡이 발생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 ‘왜곡’에 지도를 제작한 사람들의 ‘가치’가 투영될 수 있다는 거지요.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겠지만지도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한때 세계를 경영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참 잘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알게모르게 서구적인 가치가 ‘당연스러운 것’으로 이식되어있기 때문에세계 10위권 경제대국(최근 이탈리아도 제꼈다고 합니다)에아시아에서 1,2위를 다투는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구에 비해 주변부야.”“서구가 옳다고 하면 뭐...... 그게 맞겠지?”라는 생각이 깔려있지요.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예를 들기 전에, 저는 특정 국가를 지지한다 / 특정 국가를 지지하지 않는다이런 가치를 깔고 있지 않고, 가치 중립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니 오해는 없으시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포스터는 전 세계적인 영화 프랜차이즈 “MCU”의 작품 어벤져스입니다. 두 번째 포스터는 중국에서 야심차게 계획을 하고, 런칭을 했지만짱공유에서 “키야 저 뙤놈들 국뽕빠네.”라고 비웃음만 샀던 유랑지구라는 영화입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전 지구적인 위험이 닥쳤고 그것을 극복한다.”라는 것이고 두 영화의 차이점은“그걸 누가 구하냐.”라는 것입니다. 어벤져스는캡틴 아메리카 – 미국인아이언맨 – 미국인토르 – 외계인헐크 – 미국인블랙 위도우 – 소련 -> 미국인호크아이 – 소련 -> 미국인 으로 구성되어있고 유랑지구는중국인중국인중국인중국인중국인 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구하는 주체가 다를 뿐, 이 영화는 쌍둥이 같지만.......짱공유에서의 반응은 천양지차였습니다.전자는....... “ㅗㅜㅑ CG컬 보소 지리네.......”라면후자는....... “ㅋㅋㅋㅋㅋㅋㅋ짱.깨놈들 국뽕보소 지리네ㅋㅋㅋㅋㅋㅋ”였지요. 사실 앞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두 영화에는 숨겨진 공통점이 있어요.바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우리가 바로 세계의 슈퍼파워야.”라는 헤게모니를 은연중에 주입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으니,어벤져스를 보면서“그래 지구에서 문제가 생기면 미국이 알아서 해결할걸?”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겠지만 훗날 미중의 패권경쟁에서 중국이 승리한다면?유랑지구를 보면서“그래 지구에서 문제가 생기면 중국이 알아서 해결할걸?”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릅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우리나라도 이것에 벗어날 기미가 보이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1-2. 헤게머니에서 벗어나려는 조짐첫 번째는...... 개인적으로는 절반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BTS와, 기생충의 성공입니다. 둘 다 우리나라의 “국위선양”을 높였다고 알려진 사례지요.K-한류의 성공사례로 보이는 사례고,우리나라가 이젠 문화강국이다!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만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이 두 컨텐츠 / 인물에 포커싱을 두기 시작한건?유럽과 미국에 상륙해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지요. “우리나라”의 컨텐츠가 “유럽과 미국에” 성공을 거두었다!“주변나라”의 컨텐츠가 “세계의 중심에” 성공을 거두었다!라는 헤게머니가 우리에게 얼마나 깊숙이 박혀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일전에 ‘휘바휘바의 나라 핀란드’ 이야기를 하면서핀란드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눈치의 나라 핀란드 코끼리를 본다면영국사람은 “저걸로 어떻게 돈을 벌지?”프랑스 사람은 “이야 저 곡선보소 엄청 아름답네.”라고 생각한다며핀란드 사람은 “저 코끼리는 핀란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라고요 “여섯줄의시” 님의 게시글에서 퍼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핀란드와 우리나라는 둘 다 ‘PISA’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긴 하군요.공부 잘하는 애들이 의외로 남들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나 봅니다. 두 번째 사례는 앞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을텐데요.......‘김어준의 뉴스공장’이라는 코너에서 이런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어요. 코로나 초기, 우리나라가(지금도 그렇지만) 비교적 잘 막아내고 있고프랑스를 위시한 유럽은 (지금도 그렇지만) 폭망 일변도를 그리고 있었지요. 프랑스의 방송에서 한국에 파견간 특파원이 한국의 방역을 이야기하니까그때 앵커가 리포트를 듣고 나서 이렇게 멘트를 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이런 상황인데....... 한국은 프랑스의 방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이 순간만큼은, 우리나라가 “중심부”, 프랑스가 “주변부”로서 관계가 역전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의 방역에 대한 영국의 기사 (유교적 문화가 영향을 줬다?!?) 1-3. 다시 지도로 돌아가서앞서 말씀드렸지만, 한때 세계를 경영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은 지도를 정말 잘 활용했어요.사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당장 지도를 꺼내놓고 봐도......이게 뭔지 영....... 하실텐데요. 대체 제국주의 열강은 지도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미국의 맵룸(map room) 보여드리는 사진은 미국 백악관에 있는 “맵룸”이라는 공간입니다.일종의 상황실인데요 방 이곳저곳에 지도들이 붙어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꾸며 놓았는가......저 사진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찍은 것인데요. 미국입장에선 전장이 넓어도 너무 넓었습니다.유럽 – 아프리카 – 중동 – 아시아 – 태평양오만데에서 싸우다보니, 미국 대통령 입장에서는 “17 사단이 박살이 났습니다.”“어디에 있는 17사단이란 말이냐.” 하는 일이 벌어지겠지요. 그래서 지도를 펼쳐놓고 “여기 섬에 있는 곳에서 주둔하고 있었습니다.”“아하, 그렇구나.” 하는 거지요.물론, 저렇게 큰 지도만 있는게 아니라,뒤편에 책장처럼 꽂혀있기도 해요. 저건 포켓 맵이라고 해서특정 지역의 지도를 접어서 보관하고 있다가, 그 지역에서 작전이 벌어지면“그쪽 지도 펼쳐봐”하면서 살펴보기 위한 수납장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사실 이런 컨셉의 맵룸은 영국이 원조라고 합니다. 1-4. 이번엔 왜곡으로 돌아가서세계지도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런 지도일거에요.이건 잘 아시겠지만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해 그려진 세계지도입니다.또 역시 잘 아시겠지만 지도의 장단점은 명확합니다. 장점은 땅의 모습을 비교적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고단점은 땅의 크기가 왜곡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캐나다 옆에 있는 그린란드...... 저는 어렸을 때 저걸 보면서“아니 저게 왜 섬이야? 아프리카보다 더 큰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종종했거든요. 실제 크기를 비교해보면 이렇습니다.지도상 크기와 실제 크기비교 물론 섬 치고도 상당히 큰 편이지만....... 지도가 얼마나 크기를 왜곡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여기까지는 대충 알고 있으시겠지만.......그동안 (제 기준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메르카토르 도법의 장점은항해할 때 보기 편리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도법이 개발된 때가 ‘대항해 시대’였고도법을 개발한 사람은 무역의 나라 ‘네덜란드’의 지도학자 “헤르하르뒤스 메르카토르”였으니 말 다했죠.네덜란드의 지도학자 헤르하르뒤스 메르카토르 2. 관점을 바꿔볼까요?앞서는 지도의 왜곡에 대해서 다루었다면,이번에는 지도의 관점에 대해서 다루고자 합니다. 사례 1)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한다면?이 지도를 통해 보시면, 미국과 러시아의 거리는 상당히 멀게 보입니다.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핵 경쟁을 하던 시절 두 나라가 핵전쟁을 한다면........ 아마 서로의 미사일이 이렇게 날아갈 거라고 생각들 하셨을 겁니다.이야 저 미사일이 지구를 반 바퀴를 돌아서 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실제론 이런 루트로 날아가겠지요. 이래서 아이슬란드가 꿀을 빨았습니다. 사례 2) 덴마크 vs 캐나다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몇 년 전부터 덴마크와 캐나다는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이 지도를 통해 보시면 이해가 안되겠죠. “엥? 덴마크는 유럽이고, 캐나다는 미주인데 둘이 왜 싸워?”느낌이 오시겠지만, 이렇게 북극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로 본다면...... “아...... 이웃나라네. 붙어있네. 싸울만 하네.”라고 생각이 되실거에요. 관점을 달리 보신다면 보이는 것이 달라지고, 그만큼 아는 것이 달라지겠지요. 3.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예전에 니카라과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 짤을 보여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알고보면 시사만화였던 키드갱 이 장면이 개그포인트였던건 신당동 떡볶이니카라과의 족벌 독재 정권에 반한 니카라과 혁명 이 둘 간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데 연결을 지어보려고 한다는 것에서 비롯됐습니다.물론 21세기인 지금도 신당동 떡볶이와 니카라과의 혁명 사이의 관련성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의 정치적 불안정성테슬라 / 현대자동차 주가이 둘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콩고 민주공화국 이젠 뭐...... 놀랍지도 않죠?그럼 대체 왜 그러느냐...... 콩고민주공화국은 나중에 콩고민주공화국을 다루면서 깊이 설명하겠지만자원이 어마X2 하게 많은 나라입니다.저 나라에 있는 자원을 모두 캐낸다면 약 24조 달러정도 된다고 추산되고 있어요. 2008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 연방준비위원회에서“우리는 무제한으로 달러를 찍어낼거임”이라고 선언했던양적완화로 풀어낸 돈의 총량은 약 4조달러....... 2008 금융위기때 양적 완화의 액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캐낸 자원들로만, 양적완화를 6번을 더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콩고민주공화국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자원중에요즘 핫한 자원이 바로 코발트입니다. 코발트는 니켈, 리튬과 더불어서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핵심 재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니켈, 코발트, 망간의 비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성능이 크게 좌우된다고 해요.니켈의N 코발트의 C 망간의 M을 따서, NCM 배터리라고 하지요 NCM 배터리의 충전 원리 (이과생 소환짤) 여담으로 재료 각각의 비율이 배터리의 이름이 됩니다.NCM811 배터리는 니켈 80% 코발트 10% 망간 10%의 비율로 사용되는 거지요.NCM622 배터리는? 니켈 60% 코발트 20% 망간 20%가 사용되겠지요. 한때 엘화에 몸을 담으셨던 아버지 말씀으로는배터리 트렌드가 바뀌고 있어서인산철배터리로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LiFePO4라고 요즘 핫하다는 인산철 배터리 PO4는 인산Fe는 철Li는 리튬이라는데...... 설명을 듣다가 GG쳤습니다.배터리 회사에 투자하시거나, 관련직업에 종사하신 분들의 피드백을 기다립니다. 콩고의 자원 코발트 이 코발트라는 자원이....... 콩고에서 생산되어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인 물류체인을 거쳐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으로 팔려나가는데....... 중국인 물류상에게 코발트를 파는 콩고 민주공화국 사람들 문제는 콩고민주공화국이 내전중이라는 겁니다.(요즘은 조금 나아졌다지만)콩고의 가족노동자들이 캐온 코발트를 받아서신나게 정글을 돌파하고 있는데 갑자기 총 든 무장단체가 나타나서코발트를 뺏고 나르던 사람을 스폰지밥으로 만들어버린다면??? 그날 LG화학, 삼성SDS, 현대차, 기아차, 테슬라 주식은 난리 나는 거지요 뭐. 그래서 테슬라의 CEO 일론머스크가“아오, 중국인 물류체인도 짜증나고, 반군들도 짜증나. 이대론 안되겠다.” 하면서.......직접 코발트 광산을 사버렸다고 하지요.예전에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긴한데...... 그게 아마 그런 배경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코발트 광산 스웩하신 일론머스크 우리나라도 코발트를 확보하기 위해 콩고민주공화국에 진출한 적이 있긴 한데......그건 언젠가 콩고민주공화국을 다루게 되면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빡침주의) 4. 세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 우리도 바뀌고 있다.사례 1) 국가의 약화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제관계”를 하면 그 플레이어로 “국가”를 생각하고는 합니다.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우리나라와 이란의 관계뭐.... 이런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요즘 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국제회의를 가보면 “OO나라 대표”가 참석하기도 하지만“국제기업 XXX사 대표”“ㅁㅁㅁ나라의 지자체 BBB도의 도지사”“XXX부족의 스트롱맨”“인별그램의 인플루언서 아무개씨” 등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물음표가 뜰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나도 선수요 엣헴”하며참가를 하고 있다고 해요. 제가, “중동을 이해해야 세계를 이해한다.” 라는 게시글에도 언급하긴 했습니다만 우리나라-중국-일본은 예전부터나는 우리‘나라’사람나는 중국‘나라’사람나는 일본‘나라’사람 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있었고그 덕분에,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다른 지역에 비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그 덕분에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빠른 속도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전 세계를 통틀어서 한-중-일 삼국에만 해당된다고 합니다.쟤들이 특이하네? 가 아니라우리 세 나라가 특이한거에요.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국가와 민족이란 외부에서 들어온 ‘신기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냥 우리 XXX부족, OOO부족 이렇게 몇 천년을 살고 있었는데어느날 갑자기 공무원이 포크레인을 끌고와서“야”“왜?”“여기서 나가.”“왜?”“여기를 재개발 할 거니까.”“뭔 소리야? 여긴 우리 조상 때부터 여기 살고 있었는데.”“국토교통부에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국토교통부? 그게 뭐냐?”“국가기관.”“국가가 또 뭐여?”“선거 안했냐?”“선거는 또 뭐여?” 그래서 뉴스를 보다보면 “AAA나라에서 내전이 벌어져 치안이 위태롭고.....”이런 뉴스가 국제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그걸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에그 ㅉㅉㅉ 쟤들은 왜 저러고 사냐? 국가는 뭐하는거야?”라고 하지만 저쪽 동네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게 있어서는국가는 의사결정의 “One of them”에 불과하고국가가 의사결정의 “One and only”까지 되는우리나라-중국-일본이 매우 희귀한 케이스라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사례 2) 역사는 반복된다?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말들은 인터넷을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일거에요.신채호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요.실은, 저 말은 신채호 선생님이 하신 적이 없고그냥 누가 했는지도 모르게 인터넷에서 떠도는 ‘멋진 말’ 정도라고 합니다. 출처가 어찌되었든 이 말이 우리나라의 사람들에게 널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그 말이 우리나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나라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구한말중국-일본-러시아 열강들의 세력다툼의 한 복판에서우리나라는 마치 꼭두각시마냥 마구 휘둘리다가우리나라를 차지하겠다고 열강들이 우리나라 땅에서 싸움을 벌여 우리의 민중이 희생되고 결국나라를 일본에 홀라당 빼앗겨버린 아픈 역사가 있었기에그것을 잊지 말자는 의지가 이 말에 담겨있을거에요. 그러다보니 예전에 “미국과 소련이 신경전을 벌인대”요즘에는 “미국과 중국이 신경전을 벌인대” 라는 뉴스가 나오면 그때로 돌아가는거 아니냐 하는 두려움그리고 그때로 돌아가면 안된다는 굳은 결의에 찬 댓글들이 보이는데요.그건 “정신차리지 않으면 그때처럼 나라를 홀라당 빼앗길지도 모른다.”라는 두려움을크든 작든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만 120년 전의 대한제국과,120년 후의 대한민국은 체급 자체로서는 비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생각해보면 참 비교를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게 120년 전 대한제국은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다면120년 후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며 120년 전 대한제국은 외교적으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면120년 후 대한민국은 G11에 포함된 세계적인 파워를 가진 국가입니다. 120년 전 대한제국은 일본의 군함 한 척에 강화도가 박살날 정도의 열악한 국방력을 가졌다면120년 후 대한민국은 병력만으로는 세계 7위입니다. 솔직히 동일선상에 놓는게 말이 안됨. 방비를 하고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말자는 것까지는 수용이 가능하겠으나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비관론으로 빠지는건 경계해야겠습니다. 음..... 어쩌면 이런식의 방어적 역사인식은 ‘식민지 시절’을 겪은 나라들이라면가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트라우마는 결국 극복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결국은 극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시간은 결국 지나가고,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듯이과거로 갈수록, 식민지 시절의 암울한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있고그분들의 증언과,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이 생생하게 다가온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증언과 가르침은 기억의 풍화를 겪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물론,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지요. 식민지시절에는 주인과 종과 같은 굴욕적 관계였다면독립 직후에는 “하...... 저놈 마음에 안들어....... 하지만 이길순 없어. 그래 더럽고 치사하지만 배우는 수 밖에.”의 관계였겠지요.그럼 요즘은요? 뭐....... “야동 잘 보고 있어요. 만화 불법 다운로드 하고 있어요......” 이정도? 제가 학교 다닐 때는 “하이테크 펜”이라고 일본제 2,000원짜리 펜이 좋은 펜이다라는 인식이 있었어요.실상....... 몇 번 쓰다가 펜 촉이 뚝 뿌러지는 매우 저급한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그땐 이게 뭐라고 그렇게 샀나 싶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나이드신 분들은 “워크맨 하면 일본이지.” 이러셨을 겁니다.요즘은 “일본제품” 하면 떠오르는게 있을까요? 과거를 잊지말자. 다시는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라는 뼈에 사무치는 기억으로우리나라는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이젠 뭐 좀 기다리면 일본도 따라잡을 것 같습니다. 그때의 트라우마는 우리나라가 지금의 우리나라로서 있을 수 있게 만든 중요한 원동력입니다만로케트도 올라가다보면 엔진을 분리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젠 충분히 잘 사는 나라눈뜨고 나라 뺏길 일 없는 나라가 되었으니 이젠 그 트라우마를 훌훌 털고 자신감을 가지고 국제사회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4-1. 저물어 가는 세계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우리가 생각하는 ‘세계’는 이런 특징이 있었지요. (1) 여러 나라가 장벽을 없애고 자유무역을 하고 있다.(2) 세계 여러나라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있다.(3) 미국이 킹왕짱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특징들이 있겠지만...... 어쨌건지금의 세계가 지금의 세계일수 있었던 것은 앞서 언급한 세 개의 특징 중에서바로 (3)번, 미국이라는 슈퍼파워가 중심을 잡고있기 때문에 비롯된게 큽니다. 뭐.......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학년 초,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화두가 처음에 시작되죠“이 반의 짱은 누구지?”그렇게 한동안 눈치싸움 + 주먹다짐이 몇 번 오가고 나면짱이 결정이 나죠. 대충 이런 식으로 딱 그런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좋든 싫든, 미국을 능가할 수 있는 국가는 없고,미국이 “야, 세계의 해상루트는 미국이 안전을 책임지고 보증할테니, 니들은 해군력 키울 생각 말고 무역이나 잘해.”라고 천명을 했습니다. 그러고나니, 미국 외 다른 나라들은“그래 뭐, 해군력 키워봐야 돈만 잡아먹는데, 그 돈으로 상선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 그거야 말로 땡큐지.”하며 자유무역과 교류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물론 저는 태어나보니, 저런 세계가 펼쳐져 있었기에“저게 당연한거 아녀?”라고 생각을 했지만......아마 저보다 연배가 10살 이상 많으신 분들이라면, 그 이전의 세계를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냉전 시기 세계 구도 “미국과 소련의 대결”“철의 장막”“동서대결”제가 태어나고 자란 세계 이전에는 “냉전시대”라는 시대가 있었고 그때의 세계는 3개로 나눠져 있었죠 미국을 위시한 “제 1세계”, 소련을 위시한 “제 2세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제 3세계”지금 제가 사는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로 어벤져스를 뽑자면그 당시 세계의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로 007이 있지 않을까요? 냉전 이후의 세계를 상징하는 어벤져스냉전 시기의 세게를 상징하는 007 어벤저스는 세계 어느곳이든 “여권”과 “비자”없이 마음대로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힘을 투사했다면007은 영국의 스파이 제임스 본드가 적의 본진에 침투해 들어가서 은밀하게 비밀을 빼오거나 음모를 막아내지요. 007의 세계는 비등비등한 힘의 균형과 갈등의 세계였다면어벤져스의 세계는 더 이상 적수가 없는 단 하나의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세계였습니다.우리는 이런 세계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이런 시대가 만들어진 것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니까, 이제 막 30년이 좀 넘은 것 밖에 안돼요. 어찌됐든 이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30년간 잘 돌아가나 했습니다만.......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가루가 됐던 코스피.jpg 미국이 중국하고 무역 분쟁을 한다고 하더니 코스피가 한창 두들겨 맞아(2018년까지) 미국이 중동에 슬슬 발을 빼나 싶더니, 그리고 웬걸 “주한미군을 너무 싼값에 주둔시키는거 아님? 올려”라고 하지를 않나. 코로나에 개털린 미국 본진 거기에 분명 세계 제1이라고 여겼던 미국이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한테 함락 직전까지 몰려........ 우리는 그동안 “아오 저 도람뿌 X끼, 노망난 영감쟁이가 홰까닥 했구만?”이라고생각을 해왔습니다만....... 이 현상의 원인을 단순히 돈 많은 늙은이의 변덕으로 치부하는 것은세계적인 현상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마련입니다. 어쩌면 지금 제가 이 게시글을 쓰는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 게시글을 읽는 지금 2021년은어쩌면, 30년간 유지되어오던 하나의 시대가 그동안 누적되어온 모순에 의해 무너지고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는 시작과 끝이 만나는 지점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글을 옮기는 최준영 박사도 점쟁이는 아닌지라,새 시대는 이렇다라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않더라구요.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세계에서 힘깨나 쓴다는 두 나라가어찌되었든 새 시대의 초반(에 그칠지라도)에 힘을 쓰긴 쓸 것이 분명하니까 그 두 나라의 상황을 분석해보고자 합니다.그럼 이 게시글의 본론을 시작해 보겠습니다.(물론 게시글의 분량상, 글로벌 슈퍼파워의 한 축만 우선 다루려고 합니다.) 4-2. 냉전이 끝나고 – 행복은 끝이나고, 모순이 극대화 되다.다시 말씀드립니다만저는 그 때 당시에 태어나지를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냉전시대에는 세계가 양분 혹은 삼등분 되어있었습니다. 미국을 위시한 제 1세계소련을 위시한 제 2세계그리고 어느쪽도 아닌 제 3세계 이 양 세계는 서로 경계를 하나, 싸우지는 않는, 그리고 교류가 없이 거의 따로노는상황이었습니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은 끝이 났습니다.이때 사실상 승자였던 제 1세계는제 2세계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과당시에는 진출하지 못했던 세계의 절반이 엄청난 시장을 한껏 만끽했습니다. 이때 제일 꿀을 빤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지요이때 한창 우리나라가 중국 코인 쭉쭉 빨고 있었음. IMF 직전까지 우리나라가 중국의 최대 투자국이었고저도 초등학교때, 선생님이 수업 거리가 없을 때 마다 했던 잡담들 중에“서해안 시대가 열린다.” 라는 말을 종종 들었듯이 우리나라의 수많은 기업들이 중국으로 뛰쳐나갔지요. 물론“기술을 뺏겼어요 엉엉.”“시설을 뺏겼어요 엉엉.”하며 헬피앤딩으로 끝이 났다고 하지만어쨌거나 우리는 차이나 머니를 쫙쫙 빨아올리면서, 중산층을 두텁게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럼 그대로 잘 살면 되잖아? 요즘 왜 이러는건데?”라고 생각하실텐데요.세상에 공짜점심 없다고 하지요?우리나라는 냉전이 끝나면서 차려진 진수성찬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동안한 가지 사실을 간과한 겁니다.다 먹고 나면 계산을 해야 한다는 것을요. 물론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의 나라들이 크든 작든 꿀을 빨아왔습니다만이걸 나무로 치면 ‘누구나 딸 수 있는 낮은 곳에 있는 과실’이었던 거지요.용어로 하면 Low haning fruit.라고 하지요.요걸 다 따먹는데 장장 30년이 걸림 워낙 큰 나무였기 때문에, 낮은데 있는 과실을 다 따먹는데 30년이나 걸린거에요. 이제 선택의 시간이 찾아온 겁니다. (1) 에이, 낮은데 있는 건 다 떨어졌네? 나무를 갈아타야지 뭐.(2) 에이, 낮은데 있는 건 다 떨어졌네? 사다리 가지고 와봐라. 하지만 높은데 있는 과일이라고 딱히 좋은건 아니에요.이건 비유적인 표현이었구요. 구체적인 예시를 들자면 이런거죠. Low haning Fruit 를 먹고 난 뒤에 남은 게산서들 “글로벌 환경위기”“지구 온난화”“각국 간 무역마찰” 이 세계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해결하기 어려워서 그동안 눈 돌리고 있던 과제들이무한리필 “세계화” 뷔페에 계산서로 남은거지요. 좋든 싫든, 이 세게를 유지하려면, 계산을 해야 합니다. 4-3. 우리 미국이 달라졌어요.냉전이 끝난 뒤에, 미국은 자의든, 타의든 세계의 넘버 원이 되었습니다.이때 미국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Global supply chain’ 즉, 세계 물류망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이때 미국은 인건비가 당연히 비쌌을 것이고다른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쌌으니“미국에서 만들거 있냐? 다른 나라에서 만들라 그래. 우린 수입할 테니까.”라며 맡겨버렸고 전 세계의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들은 미국이 구성한 세계 물류망을 따라 미국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죠?모든 물류는 미국으로 통한다 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미국이 세계의 시장을 자처할 수 있었던 것은(1) 미국에 그만큼 수요가 있으니까 도 있겠지만앞서 언급했듯이(2) 미국의 인건비가 다른나라의 인건비 보다 비싸니까 라는 전제도 들어야 할 겁니다.그런데 말이죠. 이 2가지 전제 중 두 번째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2000년의 생산비용을 100으로 보았을 때모든 나라의 생산비용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높아졌습니다.예를 들면, 우리나라와 독일 같은 경우는 2000년도의 생산비용 대비2020년의 생산비용은 2배가 되었습니다.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하겠죠? 경제는 성장하니까.그러면 당연히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그럼 가격이 높아지겠지요? 그런데 전 세계에서 딱 두 나라만 생산비용이 낮아졌습니다.하나는 짐작하셨겠지만 미국이고, 다른 하나는 대만입니다. 이와중에 생산단가가 낮아진 두 나라들 대만은 왜? 라고 생각하실텐데요.대만이 왜 거기서 나와….? 대만 같은 경우는..... (비자발적) 인건비 절감이 있었거든요. 대만은 바다 하나만 건너면 바로 중국입니다.냉전 시대야 대만의 기업가들은 좋든 싫든 대만의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생산을 했을테지만냉전이 종식되면서 옵션이 생긴거죠. (1) 대만의 노동자들에게 큰 돈 주며 일을 시킨다(2) 중국의 노동자들에게 싼 돈 주며 일을 시킨다 그러다보니 대만의 많은 기업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지으러 떠나버렸고남은 기업들은? “똑똑”“누구십니까?”“노조 대표입니다.”“들어오세요.”“임금 협상하려고 왔는데요.”“아..... 그래요? 잠깐 통화중이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실수 있어요?”“네 뭐.”“어 최사장! 거기 사업은 잘 되는가? 아 그래? 진짜 노다지구먼 그래?”“.......?”“에이 아니긴 뭐가 아닌가? 여기 사람들 주는 돈에 절반만 줘도 그렇게 사람이 몰려온다는데 그게 노다지가 아니고 뭔가?”“......샹.”“어 그래 그래 나중에 연락함세. 아이고 죄송합니다. 통화가 길어졌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죠?”“이번에 저희가 사회적 고통 분담 차원에서 임금을 동결시키고자 한다는 말씀 드리려 왔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노동자들로서는 임금 올려달라고 하기 눈치 보이겠지요.그래서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를 졸업한 대졸 신입사원의 월급이 200만원도 안되고 그나마도점점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어쨋거나,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서도람뿌가 당선되자마자 “음뭬리카 뻘스트!” 하면서해외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기는 한데요. 이런 현상을 re shoring(리 쇼어링) 이라고 합니다. 미국 기업들은“아이고 이거 참, 미국에다가 공장 안 지으면 미국에 못 판다고 하니 어쩔~수 없이 돌아가네요 ㅠㅠ 미안합니다.”라고 하지만사실 도람뿌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던 셈입니다.“욕은 내가 먹을 테니 니들은 못 이기는 척 하고 돌아와 임마.”라는 거지요. 알고보니 탱커였던 트럼프 그럼 대체 왜 미국은 생산비용이 낮아졌느냐......별거 있나요? 기술의 발전 때문이죠.기술이 발전하다보면 기업가들은 슬슬 주판알을 굴리게 됩니다. 어디보자, 생산공장에 사람을 두면 인건비로 한 달에 xxx달러 만큼 드는데이걸 한방에 기계로 대체하고, 할부로 갚으면 한 달에.......엥? 더 싸네? 그럼 당연히 사람들을 잘라내고 기계로 대체를 하겠죠?이걸 좀 더 큰 스케일로 생각하면 어떻게 되느냐....... 어디보자, 해외에 생산공장을 두면 말이지...... 만든 거를 배로 싣어 날라야되고그 나라 인건비를 환전해서 줘야하니 수수료도 떼먹히고..... 그리고 요즘 인건비도 올라서굳이 안 싸네.....?그럼 이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고, 새로 짓는 공장에 기계를 둬버리면......환전비용도 안들고, 물류도 더 싸고....... 개꿀이네? 하는 거지요. 문통이 취임하자마자 GM에서 “우리 이제 공장 폐쇄함 ㅃㅃㅇ”하려다가 뒷목 덜컥 잡힌거 기억나시죠? 제 기억이 맞다면 GM에서 “공장에 일하는 노동자들 취업도 보장해 놓을게요.”라고 타협책을 했던 걸로 기억나는데요.달리 생각해보자면 저렇게 굳이 욕을 먹어가면서도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을만큼미국 내에서 공장을 만드는게 GM으로서도 훨씬 이득이 되었기 때문일겁니다. 저렇게 ‘리 쇼어링’이 발생한다는 것은미국에서 해외로 진출했던 기업들이 미국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이고 해외로 진출했던 미국기업이 미국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은그 나라에서 만드는 물건들이 미국으로 가지 않게 된다는 것이고 해외에서 만든 물건이 미국으로 가지 않게 된다는 것은미국이 냉전 이후에 만들었던 세계 물류망이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보면, 해변가에서 아이가 정성 들여 모래성을 만든 뒤에스스로 그걸 박살내는 것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걸 보면 이런 의문이 드실 것 같습니다.“쟤들이 돌았나? 왜 저렇게 히키코모리가 되려고 드는거지?”사실...... 미국이 저런 행보를 보인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에요.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나는 내 방에서만 짱박혀 있을거임 안 나갈 거임.”이라고 히키코모리 선언을 했었습니다.‘먼로 독트린’ 혹은 ‘먼로 선언’이라고 하는 건데요.먼로 독트린을 선언한 제임스 먼로 미국의 5대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먼로라는 사람이 선언을 했었습니다.대충 이런 내용이었지요, “남-북 아메리카는 미국 영역이니까, 유럽은 꺼져라!”“???? 님 돌았음?”“대신에”“?”“미국도 유럽을 침략하지 않을게”“뭐래? 이제 막 나라 세운 허접한 놈들이....... 니들 해군은 있냐?”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비웃음이나 사던 선언이었으나.......미국이 참...... 상투적으로는“지리적 축복을 받았다.”라고 표현되고,속된말로 하면“show me the money를 한 아홉 번은 치고 게임을 시작한다.” 할 정도로 지리적 조건이 워낙 탁월했던지라나라 세우고 문자 그대로 ‘순식간에’ 국력을 뻥튀기 한 터라유럽 세력이 남-북미 대륙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어야만 했긴 했습니다. 실제로도, 제 1차, 2차 세계대전 모두 미국은 끝~~~까지“야 저거 유럽에서 지들끼리 싸우는건데, 굳이 우리가 끼어야 할 필요 있냐?”라며참전을 미루고~~미루고~~~ 또 미루긴 했어요. 그만큼 미국은 기본적으로“다른 나라랑 무역 안해도 우리끼리 알아서 잘 사는데 무역 그까짓거 왜함?”이라는 정서가 깔려있어요.냉전,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도 미국 입장에서는“저거 언젠가 기회 되면 없애버리고, 그냥 우리끼리 알아서 잘 살던 그때로 돌아가야지.”하는 생각이 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4-4. 마지막 남은 족쇄를 끊어버리고저렇게 미국은 기회만 되면“헤헤, 방 문 걸어잠그고 안에서 게임만 줄창 해야지.”라는 생각에 골몰해 있었지만사실 그걸 현실화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코를 꿰는, 혹은 미국의 마지막 족쇄가 되는 것이미국 너머 해외에 있었거든요. 바로, 석유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짱공인들은어린 시절 이런 뉴스를 심심찮게 들어보셨을 겁니다. 중동전쟁 “제n차 중동전쟁”“석유파동”“이란사태”“걸프전”그리고 저도 여기까지는 들어봤습니다. 테러와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후세인 축출” 세계를 요동치게 만든 국제뉴스의 무대는 대부분 중동이었고그 사태의 주요 플레이어는 항상 미국이었습니다.이는 “미국은 항상 중동문제에 개입해왔다.”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이 문장의 시각을 좀 달리해서 분석을 해보면 “미국은 중동을 중요하게 여겨왔다.”“미국은 중동에 문제가 생기면, 어찌됐건 개입을 해왔다.”“미국은 중동에 매여있다.” 라고 할 수 있어요. 안 그래도 방구석에 쳐박혀 있으려고 하는 것이 디폴트값인히키코모리 미국이 왜 굳이 중동문제에 개입해서젊은이들의 피를 흘려야 했을까요? 잘 생각해보세요. 9.11 테러가 2001년에 발생했습니다.그리고 2021년에도 그 문제는 해결이 안됐습니다.한 사회에서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들여사회의 젊은 층을 갈아넣으며 타국의 문제에 개입하는건사회로서는 엄청난 부담을 느낄 일입니다.그런데 그것을 미국으로 하여금 강제하게 만든 것은 바로 석유 때문이란 말이지요. 어쩌면 중동의 석유는중동 사람들에게 있어서는“아오 이것만 아니었으면 양키 코쟁이들이 여기에 폭탄 떨구는 일이 없었을 텐데.”라는 자원의 저주일 수도 있겠지만 전 세계 사람들로서는“이거 없으면 저거저거 다시 지 방에 쳐 박힌다. 저거라도 있어야 미국이 세계를 어떻게든 정리정돈 할 거라고.”하는 마지막 동앗줄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 마지막 동앗줄이....... 뭐 아시겠지만 간당간당하지요?셰일가스 혁명 덕분에 미국은 해외에 개입해야 하는 마지막 명분이 끊어지게 생겼지요.셰일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에 미국은 석유 수출량과 수입량을 비교했을 때명백히 석유를 수입하는 양이 더 많은 국가였습니다.그런데 셰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수출량이 수입량을 넘어서서이제는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가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3년 뒤면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됩니다. .......제가 아까 말했잖아요. 쟤들은 show me the money를 한 아홉 번은 치고게임을 시작한 놈들이라니까요? 셰일 혁명 전에도 미국은 “아오 이 자원 이것만 아니면......”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그래서 대선 때마다 늘 나오는 공약이 바로 “Energy Independence” 즉 “에너지 독립”이었어요.이것만 극복하면 미국이 중동에 아쉬운 소리 안해도 되고나아가 세계에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되고먼로선언을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우리끼리도 알아서 잘 사는데 뭐.”하는 시절이 열릴테니까요. 하지만 이제까지는 그건 상투적인 선거 구호에 지나지 않았으나.......셰일 혁명이 나오면서 그게 현실화 되어버렸던 거지요. 요걸로 중동은 나가리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미국은 여전히 석유를 수입하긴 해요......“잉? 세계 최대의 수출국이라며? 근데 수입을 왜 해?” 사실 이건 제가 베네주엘라 편을 다루면서 언급하려고 했는데요...... 미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베네주엘라산 석유의 최대 수입국은 미국이에요. 미국형이 여기에 왜나와??? “엥? 미국하고 베네주엘라하고 사이 나쁘잖아? 근데 왜????”라고 하실텐데요.정유업계관계자분들은 아시겠지만정유공장마다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 생산한 석유에 맞춰서 세팅을 해놓습니다.” 하거든요.미국은 그게 베네주엘라 산 석유에 세팅이 되어있습니다. “아니 미국은 베네주엘라랑 사이도 나쁜데, 얼른 세팅 바꿔서 수입 안하면 될걸 왜 놔두냐?”라고 하실텐데요.미국이라고 그걸 안 하고 싶겠습니까만...... 그걸 세팅하는데만 천억 달러 단위의 돈이 들어가니“에휴...... 저거 마음에는 안들지만, 그냥 용돈 주는 셈 치고 수입하는 게 더 싸게 먹혀.”라고 생각하는거죠. 석유 세팅을 바꾼다는건 여기에 들어갈 걸 다 바꾼다는걸 의미함. 만약에 미국이 이젠 정말 필요하다라고 생각한다면그래서 자국의 정유업체들에게“이제 세팅한거 모두 초기화 하고, 미국산 셰일가스에 맞게 다시 세팅하세요.”라고 공문을 내리는 날이 오면그때는 미국은 석유 수입 제로, 오로지 석유 수출로 전환될 겁니다.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겁니다. 이야기를 다시 돌려서,미국을 어쨌든 세계의 무대로 끌어들이는 마지막 고리가 간당간당해지니미국은 중동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그러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됐죠. “이제 사우디고 뭐고 눈치 볼 거 없다.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다!”“중동에 석유가 한국에 가든 말든 뭔 상관이여? 야, 한국아 주한 미군 주둔비 팍팍 올린다잉?”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가 바로 사우디이고어쨋든 미국을 잡아야 하는 사우디 사우디로서는“미국 빠지면 여긴 진짜 ㅈ되는데 어쩌지?”“미국 바짓가랑이를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고.”“그걸 어떻게 하냐.......?”“셰일 가스 회사를 ㅈ되게 만들면 되지 뭐.”라고 짱구를 돌려서 OPEC회의에서“저기 요즘 석유 수요가 줄어드는 판이니, 생산량을 줄여서......”“놉. 우리는 늘린다.”“엥? 님 그러면 석유값이 더욱 똥값이 되잖아요. 미쳤습니까 휴먼?”“우리는 늘린다.”“야이 미X놈아. 시장경제 몰라? 누구 하나 죽어 나가는 꼴 볼라고 그러냐?”“ㅇㅇ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그래서 한때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 (WTI)가격이 $-40까지 간 적이 있었던 거지요.석유 한 드럼을 사시면 4만원을 드립니다! 정유관련주식을 투자했던 분들은“우와 저것들 돌았나? 왜저러는거야 대체ㅠㅠㅠ”를 외쳤지만사우디는 어떻게든 미국을 잡아야 하니까 환상의 똥꼬쑈를 한 셈이었던 거지요. 5. 마치며예상했던대로....... 분량이 차고 넘치는 바람에글로벌 슈퍼파워의 두 번째 주자 중국 이야기는 하지 못했습니다 ㅠㅠㅠ뭐...... 어쩌겠습니까? 제가 뭐 늘 그렇죠 뭐. 아마 지키지 못할 공산이 크지만최대한 빠른 시일에 돌아와서 그렇다면 중국 저 짱X놈들은 왜저러는가를찬찬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마치기 전에, 이 게시글은유튜브 “삼프로 TV”의 코너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토대로 함을 밝힙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갑과을작성일
2021-02-15추천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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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극혐짤주의)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 - 5 이스라엘과 중동전쟁
이번에는 너무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지각은 지각이되, 조금 일찍 지각하자는 마음으로 이렇게 게시글을 작성하게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너무 충동적으로 게시판을 선택한 거 같더라구요.
새로운 게시판으로 좋은 글터를 선택한게
조회수와 ㅊㅊ이 괜찮아 보여서 였는데.... 이게 보니까
ㅊㅊ과 조회수가 많은 게시글 중에서 원래 게시글을 올린 게시글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게시글을 여기로 보내는..... 음.... 그런 시스템이었다는걸 모르고
그냥 무작정 “여따가 말뚝 박지 뭐”라고 성급하게 결정한 거 같습니다 ㅠㅠ
역시 임장은 꼼꼼하게 하고 결정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이번 이스라엘 편을 여기서 마무리 짓고, 새로운 게시판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저는 ㅊㅊ과 조회수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관종끼를 가지고 있는 놈인 것 같습니다.
일단은 웃긴글터쪽을 노려보고 있긴 한데
여유시간은 일주일이 있으니,
이번에는 차분하게 임장을 해 보고,
웃긴글터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게시판이다 싶은 곳을 정하면
이 게시판에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래저래 혼란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게시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게시글은 “삼프로 tv”의 코너 “최준영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토대로 함을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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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라는데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라는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에요.
다만 그 시절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인지라(짱공 형님들 중에는 “아 그때 적잖이 요란했지”라고 기억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그걸 “개념적”으로만 알고있을 뿐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게시글에서는 중동이 왜 세계의 화약고 소리를 듣게 됐는지
그 난장판의 한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는지를 다뤄보겠습니다.
2) 이스라엘, 투탁거림의 역사 브리핑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동갑이지만,(1948년생)
우리나라는 그로부터 2년 뒤에 내전(한국전쟁)이 벌어졌다면
이스라엘은 독립하자마자 전면전에 돌입했습니다.
(1차 중동전쟁)
그 뒤로 1970년대 내~내
주변의 나라들과 캐삭빵 전면전을 하다가
70년대 말에
“짜식.......꼴에 힘 깨나 쓰는구나?”
“하아....하아.... 네놈도 명줄 한 번 질기구나?”
“이대로 싸워봐야 다 죽는데 그만 싸우고, 친구할까?”
“그래, 이제부터 우리 친구다.”
라며 석양을 향해
“하하하하하!!!”
라며 우정의 레이스를 하게 됐고
1980년대 부터는
캐삭빵 전면전 대신, 민병대들(헤즈볼라, 하마스)과
술래잡기 게임을 하게되었다
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게시글에선, 제 3자 입장에선
“ㅗㅜㅑ 팝콘 ㄱㄱ” 할 만한
“독립” -> ”우정의 레이스”까지의
이야기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3) 영국의 트리플 플레이 이후 vol.2
중동을 이해해야 세계를 이해한다 특집에서
내내 이야기 했던 영국의 트리플 플레이를
다시 한 번 브리핑 하겠습니다.
이젠 지겹다 고마해라 하시겠지만
그 사건이 지금의 중동을 불지옥으로 만든
일종의 “결정적 사건”(critical event)였기 때문에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어요 ㅠㅠㅠ
1차 세계 대전 말,
“이거 우리가 이길 각 나왔다”라고 생각한 영국은
오스만 투르크가 갖고 있던 거대한 땅을 먹고
인도로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
(1) 이슬람의 콩라인 “하심가문”에게 접근해서
“니들이 원탑 하게 도와줄테니, 나랑 비밀친구 ㄱㄱ”
(2) 유럽의 쩐주 “유대인”들에게 접근해서
“니들 조상 땅에 나라 세워줄 테니, 큰 거 세 장만 꽂아줘봐”
(3) 프랑스와는 지도를 펼쳐들고
“여기는 내구역, 저긴 니구역 ㅇㅋ?”
라는 희대의 트리플 플레이를 했고,
그 결과..... 영국은 (3)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콩라인 “하심가문”이 반발하니까
“우리가 통째로 준다고 한 적은 없는데?”
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한 편,
“잘게 잘게 짤라서 왕국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니 아들 손자 며느리 다 왕으로 앉히면, 애들도 불만 없을 거 아냐?”라고 꼬드겼다.....
까지가 중세 특집에서 다룬 내용이었구요.
이젠, 전쟁의 쩐주 노릇했던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사탕을 줬느냐.......”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3-1) 이젠 여기 영국 땅 아녀? 나도 영국 신민이야
영국이 오스만 투르크의 옛 땅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이곳은 “영국 땅”이 됐습니다.
즉, 영국의 신민이라면,
“저기 땅 좋아 보이는데? 나 저기 가서 살까?”
하고 이사를 갈 수 있게 된거에요.
유대인 입장에선 처음엔
“하..... 피쉬 앤 칩스 새기들, 돈만 뜯어가고 ‘우리 나라’는 안 만들어주네 ten새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라 만드는건 포기하더라도
이젠 저긴 영국땅이니, 저 동네로 이사가는건 자유거든요.
그래서 시온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저기에 가서 유대인 커뮤니티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여행갈 혹은 이사를 갈 여유가 되는 유대인들부터,
“조상의 옛 땅으로 이사갑니다~”하기 시작했죠.
당시 그곳에 살던 아랍인들로선
“어? 저기 버려진 폐가에 누가 이사오나본데?”
“안녕하세요. 이번에 여기로 이사오게 된 김사무엘입니다.”
“예. 난 최 핫산이요. 근데 이 흙투성이 모래바다에 무슨 일로 이사오셨수?”
“아 제가 이번에 사업에 은퇴하면서, 남은 여생을 조상님들 살던 땅에서 보내볼까 하고 이사왔습니다.”
“아이고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구먼요. 편하게 사세요. 이 동네 우물이랑 주요 시설 알려드릴테니까 내꺼라 생각하고 마음껏 이용하세요.”
하며 살았드랬죠.
어차피 소규모였으니 별로 큰 상관없겠거니 한 겁니다.
하지만
수요가 늘면, 공급이 생기고
이주의 비용이 점점 내려가면서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크고작은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야, 소수의 부자들만 오면서
“이 흙투성이 모래바다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니 여기서 돈써주면 땡큐지 뭐” 하던 아랍인들도
생각보다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몰려오고
게다가 후발주자들은 초기 이민자들에 비하면 가난한 사람들인지라
돈을 쓰기 보단, ‘여기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모래바다 사막에서 그나마 찔끔찔끔 있는 “경작 가능한 토지”는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이번 이민자들은 아랍인들에게 있어 일종의 “경쟁자”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이었을 겁니다.
“야..... 너 편지 받음?”
“ㅇㅇ 너두?”
“ㅇㅇ 나두.”
“땅 팔거냐?”
“아니 뭐.... 돈이 크긴 한데, 그걸로 우리 가족이 먹고 사는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될거 같은데.”
“그럼 뭐.... 알박기 하고 가격좀 높게 받아야겠지?”
“ㅇㅇ”
어째, 부동산 재개발 조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화 장면이죠?
‘그렇게 최핫산과 김알리는 알박기를 한 뒤에 적정한 보상을 받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평화적으로 진행되면 참 좋겠습니다만.....
어느 집단에나 일정비의 또:&;!/라이가 존재한다는
또:?;)/라이 일정비 보존의 법칙이 문제였습니다.
돈으로 하는 협상이 먹히지 않는다면
총과 칼이라는 최고의 의사소통 수단이 등장하게 마련이겠죠.
3-2) 오픈게임
UFC나, 복싱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알겠지만
메인 이벤트가 있기 전에, 관객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오픈 게임이 진행됩니다.
중동도 마찬가지였어요.
메인경기인 1차 중동전쟁 전에
앞서 언급한 “또라:?:):이 일정비 보존의 법칙”에 따라
팔레스타인으로 유입된 유대인들 중에
“돈으로 안되는 문제는 폭력으로 해결한다.”는
또라:?;)이들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폭력적인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어요.
사례 하나를 들자면, 1948년 4월 9일
“데이르 야신”이라는 마을에,
“이르군”이라는 유대인 무장단체가 쳐들어 옵니다.
(유대계 무장단체 이르군의 표지)
“안녕 하냐?”
“총칼들고 안녕하냐고 물으면 퍽이나 안녕하겠다고 하겠네.”
“ㅇㅇ 솔직히 그냥 물어만 본거야.”
“근데 여긴 무슨 일로 왔냐?”
“우리 손에 총 들린거 보면 모르겠어? 방 빼.”
“싫다면?”
“그럼 뭐 죽는거지. 그냥 뺄래 아니면 우리가 빼줄까?”
“총칼도 없는데 그냥 빼야지 뭐. 이사하게 시간 좀 주셈.”
“우리가 길거리 양아치도 아니고 당연히 이사할 시간은 주지. 근데 우리가 그리 시간이 남아돌진 않거든. 15분 주면 되냐?”
“뭐?!?”
“빨리 빼.”
.....뻥인거 같죠?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마을 하나 빼는데 15분만 준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살려둘 생각은 없었던 거죠.
(학살당한 데이르 야신의 마을 사람들)
결국 데이르 야신에 살던 250명의 주민들은 이스라엘 무장단체의 손에 모두 죽거나 강간당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니
영국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겠죠?
“야이 샤일록 새기들아”
“ㅇㅇ 왜?”
“아니 왜 자꾸 원주민들 탄압하는거여.”
“왜?”
“왜라니 임마. 저긴 원래 쟤들 땅이라고.”
“뭐래? 여긴 원래 우리 조상들 땅인데?”
“그걸 니들이 뭔 수로 증명할래? 땅문서 있어?”
“ㅇㅇ”
“?!? 그게 있다고?”
“ㅇㅇ예배당 가서 성경책 보세요.”
“왓.....?”
“애초에 유대인 국가 만들어 준다고 뻥카 치며 돈 뜯어놓고 입 싹 닦은 놈들이 할 말은 아니지 않냐? 어차피 나도 영국 신민인 마당에, 내 돈 들여서 저 동네로 이사간다는데 니가 뭔 상관임?”
“아니 그래도 임마.”
“어어? 지금 우리 윽박질렀냐?”
“아니 그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 피시 앤 칩스가 지껄이는거 좀 보소. 자유 경제의 총아라고 떠들고 다니더니, 사유재산도 마음대로 못 쓰게 만들고, 거주 이전의 자유도 제한하고 있습디다. 이거 완전 진성 빨갱이 아닙니까???”
“?!?”
이렇게 1919년 부터 1948년까지 약 30년 간을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분쟁을 조정하던 영국은
유대인들의 논리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결국
“와 나 x발 더는 못버티겠다. 난 이제 여기서 발 뺍니다.”
“엥? 언제?”
“4월 20일에 완전 철군 ㅇㅇ”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는걸 포기하고
탈주를 선언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4월 21일
또 다른 이스라엘 민병대인 “하가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벌려버렸죠.
(유대계 무장테러단체 하가나)
이들은 “하이파”라는 항구도시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명분은 앞서 보여줬던 이르군 만큼이나 간단합니다.
(오늘날의 하이파를 위성사진으로 찍은 모습)
“자 이제 여기서 방빼라.”
당연히 기존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은
“니들이 뭔대?”라고 반문했고
그 질문에 하가나들은
소이탄으로 답을 했습니다.
소이탄은 백린탄이라고 하는데
불이 붙는 무기에요.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알겠지만, 백린탄이 몸에 붙으면, 피부를 파고 들어가는 특성이 있죠.
그리곤 뼈나 장기까지 모조리 태워버리는 매우 악독한 무기입니다.
(가지지구에 떨어지는 소이탄, 저 하얀연기에 닿으면 살과 뼈가 타들어간다)
지금은
“야 이건 인간적으로 너무 잔인한 무기여. 이 무기는 적어도 쓰지 말자.그냥 인도적으로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라는 약속을 걸었지만
이스라엘은 지금도 잘만쓰고 있습니다.
“이건 조명탄인디요?”라고 하면서요.
조명탄을 백주대낮에, 그것도 사람에게 쏴버린다는게 문제지만.......
여담으로 “하가나”는 이스라엘 방위군의 시초가 되는 단체에요.
이스라엘 말로 “싸움을 잘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잘싸우긴 잘 싸워”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스라엘군의 뿌리는
보시다시피 테러단체였던 겁니다.
그럼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느냐....
영국이 1948년 4월 20일에 손털고 떠나긴 했지만
당연히 그 전부터 차근차근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 전에 공지를 했던거죠.
“아아, UN에서 안내말씀 드립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영국이 곧 손 털고 나갈 예정이오니, 식민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자기들 나라를 세울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소식을 접한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이 땅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워야지”
“이 땅에 아랍인의 나라를 세워야지”
라고 각자 꿍꿍이가 있었을 뿐
애초에 “서로가 함께 공존하는 나라”라는 옵션따윈
머릿속에 없었던 겁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 땅이 유대인의 나라가 되려면 저 아랍놈들을 ‘청소’해 버려야돼.”라고 생각 한 겁니다.
끔찍한 상황이죠? 히틀러가 유대인들에게 했던 그 생각을 유대인들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는게요.
이런 ‘청소’작업을 히브리어로 “티우르”라고 하는데요. 1947년 ~ 1948년 독립에 이르는 시간동안
이 티우르를 얼마나 열심히 했냐면
그 전에는 480개에 달하던 팔레스타인의 마을들 중에서 380개가 모조리 박살나 버리고 맙니다
나머지 100개 마을도
집만 남겨두고, 경작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버리고 말아버리죠.
신세계 버전으로 하면하는 상황인 겁니다.
이런 “청소작업”을 지켜보던 이웃국가들 사이엔
분노스택이 차츰차츰 적립되어가다가
1948년에 이스라엘 초대 총리인 “벤구리온”이
“자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라고 말하자마자(이스라엘 초대 총리 벤구리온)
그 주변의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이집트
요르단들이
“저것들이 이젠 나라까지 세우려 드네? 그 꼴은 못본다.”라며 쳐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1차 중동전쟁이었어요.
4) 1차 중동전쟁
지도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스라엘 서쪽인 지중해 외에 이스라엘과 접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다구리치기 위해 쳐들어 왔습니다.
누가봐도 15분 서렌 각이 뜬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결과는 알다시피 이스라엘이 5:1의 상황을 승리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저번편에 다루었던 잉여인간 “하레디”들까지 지켜가면서 말이죠.
20일간의 전쟁이었지만
잘 싸우긴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핵심지역이었던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을 모두 지켜냈거든요.
물론 그 과정에서 예루살렘이 피바다가 되긴 했습니다만......
그럼 이제 궁금함이 들 겁니다.
대체 왜? 이스라엘이 이기게 됐는지요.
이스라엘의 승리에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었습니다.
(1) “우리가 근본 없는 테러단체인줄 아냐?”
앞서 오픈게임 단계에서 언급했던 “하가나” 기억하시죠?
항구도시 하이파에 소이탄을 퍼부었던 그 무장단체입니다.
얘들이 유대계 민병대이긴 한데
동네에서 축구하던 애들이 총을 잡은 그런 허접한 단체가 아니었어요.
하가나의 주요 구성원들은 2차세계대전기간동안 나치와 싸워온 레지스탕스 출신들이었거든요.
같은 군인들끼리 붙어도
한쪽은 나치들과 실제로 싸워온 실전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국군의 날에 오와 열을 맞추기만 해온 초짜들이니
질적으로 큰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2) 무기 줍줍 yeah~~~
거기에 이스라엘군은 “장비빨”도 좋았습니다.
영국군들이 물러나지만
“모든” 장비를 다 챙기고 간 건 아니었거든요.
알음알음 이스라엘이 영국에
“님들 그냥 가면 우리만 남는데, 우리 지킬 무기는 좀 남겨주고 가면 안됨?”
“얌마, 저 멀리 한국에선 탄피 하나만 잃어버려도 온 부대가 산을 이잡듯이 뒤지는데 무기를 놓고 가라고?”
“아니 영국땅 만들어놔서 신민들이 여기에 이주했는데 그냥 죽게 둘거요? 영국 클라스 이정도 밖에 안되? 이거 완전..... 동네사람들!!!”
“알았어 알았어 이거 먹고 입 다물어”
하고 놓고간 무기에.....
영국이 알아주는 “인도 성애자”였다면
영국만큼이나 “부동항 성애자”였던 마더 로씨아는 계산기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이 물러난다고? 그럼 저 동넨 무주공산이네?”
“가만보자 마침 저기 가만두면 다구리 맞을 유대인놈들이 있는데 쟤들한테 무기좀 쥐어주면 우리 따까리가 되겠구먼.”
“어디보자 무기 남는게.....”
마침 2차 세계대전이 끝났고
소련의 무기창고였던 체코제 AK-47은 온 지구에 널려있었으며
앞서 말했듯이, 아슈케나지들은 대부분 동유럽국가 출신이다 보니.....
(세계에서 제일 널리 사용되는 무기 AK-47)
“한때 우리 세력권에서 살던 이웃인데
살 방도는 주는게 인도주의다”라는 명분으로
체코제 무기들이 대량 이스라엘로 흘러들어왔습니다.
(3) 내 지시를 따라라! / 니가 뭔데?
이제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스라엘은 만랩케가 전설급 무기를 장비한 상황입니다.
스타로 비유하자면, 울트라리스크 vs 저글링 한부대 인 상황인거겠죠?
그래도 제 아무리 울트라 리스크가 강한들, 저글링들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피떡이 되는게 당연지사일 겁니다만.....
문제는 저 명제가 참이 되려면 저글링들이 “조직적으로 달려들어야”라는게 전제되어야 할 겁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인 국가는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였습니다.
각 국가별로 사령관을 보냈을 것이고
모두들 비슷비슷한 계급이겠죠.
그럼 “누가 대장이 될거냐”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다섯명의 별들이 모여서 작전을 짠다고 칩시다.
“자 이스라엘 놈들이 여기있다고 하니 a국과 b국의 탱크부대가 원거리 지원을 하고, c d e국의 특수부대들이 뒤에서 급습합시다.”
“저기요.”
“네?”
“님이 뭔데 그런 허접한 작전을 세움?”
“나? 시리아 총 사령관인디요?”
“그건 시리아에서나 먹힐 이야기고. 니가 내 상관이요?”
“그럼 뭐 더 좋은 작전이 있수?”
“당연하지. a국과 b국의 탱크부대가 원거리 지원을 하고, c d e국의 특수부대들이 뒤에서 급습하는 겁니다.”
“내가 말한 작전하고 차이가 뭐요?”
“내가 제안했다는데 차이가 있는거지 ㅇㅇ.”
“야이......”
(이런 상황이 된거죠)
이렇게 저글링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는데
제대로 싸울수 있을리가 없겠죠?
거기에, 저 연합국들 중에서 제일 힘이 쎘던 이집트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공화국이 아닌 왕국이었습니다.
중세특집에서 언급했던대로
이집트는 “아랍민족주의”가 시작된 국가였던 만큼
“명분만 생기면 왕을 쫓가내고 공화국을 만든다.”라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당시 이집트 왕 파루크 1세)
그런 상황에서 전쟁에서 이긴다?
“이야 우리 왕 대단 하시다! 이집트 왕 폐하 만세!!”가 되버리니
차라리 전쟁에서 져버려야
“왕 이거 대체 할 줄 아는 일이 뭐냐? 쫓아 내자!”라고 하는게 자국 정치적으로 이득이 될 겁니다.
그래서 이집트는 전쟁 내내
“이집트군 헬프!”
“알았어 금방간..... 에엑?”
“왜? 무슨 일이야?”
“우리 탱크부대의 무한궤도가 고장났네? 얼른 수리하고 갈게!”
“그 래퍼토리는 저저번 전투때도 똑같이 말했는데?”
“응.....? 그랬냐?”
“야 솔직히 말해봐. 니들...... 싸우기 싫지?”
“어 맞아.”
“야이.....”
이런 이유로 제 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이집트는 왕을 쫓아내고 나세르가 대통령으로
돌아가는 헬피엔딩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 1차 중동전쟁을 “이스라엘 독립전쟁”이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이때 성립된 이스라엘의 영토는
텔아비브~예루살렘의 주변부였을 뿐,
지금의 골란고원까지는 꿈도 못꿀 미니미한 국가였습니다.
여담으로, 앞서 계산기를 돌린 뒤에 이스라엘을 도와준 소련으로선
“자! 형 덕분에 잘 이겼지?”
“ㅇㅇ 고마워”
“에이! 우리가 남이가! 우리출신 아슈케나지들이 죽는 건 형이 못본다 아이가! 이제부터 우리 찐하게 지내보.....”
“근데, 미국이 이제부터 친하게 지내보자고 하더라고. 돈도 팍팍 준다데?”
“잉?! 얌마!!! 우리가 무기 안 줬으면 니들 그대로....”
“옛말에”
“뭐”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고 명장은 칼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니들이 무기 안 줬어도 이겼을 껄?”
“뭐 이런...... 니들 양아치냐?”
“유대인들 특성 몰라? 비지니스 이스 비지니스 ㅇㅋ?”
“ㅂㄷㅂㄷ....”
무기만 낼롬 먹어버리고 서방의 품에 안긴 이스라엘을 닭쫓던 개 마냥 보던 소련은.....
“아슈케나지들.”
“.....네?”
“당장 꺼져.”
“저..... 어디로.....”
“시베리아로 간다. 실시.”
“아니 x바 공산주의의 시초인 마르크스랑 붉은 군대의 아버지인 트로츠키도 유대계인데.....”
“지금 대빵은 스탈린이다 이 새x야”
소련에 남아있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에게 불똥이 튀어 온갖 탄압을 받게되었다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5) 제 2차 중동전쟁
제 1차 중동전쟁, 이스라엘 독립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이 완전히 중동에 말뚝을 박은지
7년이 지났습니다.
이 이후엔 이스라엘로선 만족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만.....
그 사이에 앞서 언급한 대로 이집트에 혁명이 발생하고
나세르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중세특집에서 다뤘지만, 나세르 대통령은 “아랍민족주의”의 슈퍼스타였지요.
옛 무슬람의 거대한 영토를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되찾아야 한다는 명분을 가진 나세르에겐
중동의 요지에 말뚝을 박은 이스라엘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에헤이! 지금 뭐하는거야?”
“스윙연습 하는데?”
“스윙연습을 할거면 야구배트로 해야지, 각목에 스파이크를 박고 뭐하냐?”
“남이사 이걸로 야구공을 치든 뚝배기를 깨든 뭔 상관임?”
“뚝배기? 누구 뚝배기?”
“그건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지.”
이러니 둘 사이에 전운이 감돌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불안해진 이스라엘에게 큰 형님 영국 프랑스가 손을 잡고 다가왔습니다.
“야 샤일록 새기야. 잘 사냐?”
”가스실도 갔다 왔는데 어딘들 못 살겠냐?”
”저번에 너 싸운거 잘 봤다. 이야 우리 샤일록이 머니건만 쏘는 줄 알았는데 실탄도 잘 쏘더라?”
”지금 나라 건설중이니까 별 일없으면 나중에 연락함 ㅇㅇ”
”얌마 그래도 우리집 문간방에 2000년 가까이 세 들어 산 옛정이 있는데 마냥 쌩 까지 말고, 다 너 잘되라고 온 거 아냐?”
“또 무슨 간섭을 하려고 저러시나?”
”너 임마, 아랫동네 이집트놈들이 빠따에 스파이크 박고 풀스윙 연습한담서? 니네 뚝배기 깨버린다고”
”ㅇㅇ 그래봐야 거리도 멀어서 뚝배기 깨러 오기 전에 지쳐 나가떨어질 걸?”
”멀긴 뭘 멀어? 지도 똑바로 안보냐? 시나이 반도가 이집트 땅 아냐.”
”저긴 어차피 사람 안 사는 사막임 ㅇㅇ”
”그러니까 문제지. 사막에선 탱크가 짱먹는거 몰라? 탱크로 달리면 며칠만에 니네 예루살렘임 ㅇㅇ”
”어....? x바 듣고 보니 그렇네?”
사실 영국과 프랑스도 꿍꿍이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집트가 식민지였을 때는 지들이 만들어둔 수에즈 운하를 잘 쓰고 있었는데
이집트의 나세르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보겠습니다.”라며
경제개발을 하는데 문제가 생겼거든요.
당시 이집트는
“경제개발과 자주국방 이 모든게 문제다.”
“그럼 어떻게 할래?”
“우리는 제 3세계 국가니까, 모두에게 창구가 열려있지. 그걸 활용하자고.”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할거냐고.”
“간단하지, 돈은 서방세계에 빌려서 경제 개발을 하고, 무기는 소련에게 얻어서 자주국방을 하면 되는거 아님? 이게 바로 균형외교다 이거야.”
“캬 기가 맥히네?”
물론 기가 막힌 생각이었지만
기가 막힌건 서방과 소련 모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레? 저것보소? 이집트 저 작것들이 이솝우화의 박쥐처럼 구네?”
“그러게, 돈은 우리한테 빌리고, 무기는 소련한테 받아? 이게 말이여 방구여?”
“야 이집트”
“왜염?”
“이따위로 할거야?”
“우린 균형 외교중임 ㅇㅇ”
“그래? 그 균형추를 깨면 어떻게 될까?”
라며 서방에서 자금지원을 끊어버렸습니다.
이에 빡이 친 나세르는
”똑똑”
”누구십니까?”
”나세르입니다.”
”근데 여긴 무슨 일로...?”
”이집트를 부자 나라로 만들고 싶어서요.”
”근데요?”
”이제 수에즈 운하는 제것 입니다.”(2차 중동전쟁의 원인이 된 수에즈 운하)
물론 저렇게 날강도 처럼 국유화를 선언한 건 아니고요.
“시세대로 계산 할게요.”
라고는 했지만, 영국과 프랑스 입장에서는 “내가 왜?”라고 생각 할 겁니다.
당연한게 수에즈 운하를 사용하지 못하면, 그 넓은 아프리카 땅을 빙 둘러서 이동해야 하니까요.애초에 “돈내고 이용한다.”라는 옵션 따위는 없던 바게트와 피쉬 앤 칩스였습니다.
언제 뚝배기가 깨질지 몰라 불안해 하던 이스라엘
공짜로 수에즈 운하를 백년천년 쓰고 싶던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한 점에서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죠.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영국이 나서서 이스라엘을 꼬드기는 동안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프랑스는
쉬는 시간에 이스라엘에게 SSG다가갔습니다.
“여 잘 지내냐?”
“ㅇㅇ 올만이네?”
“ㅇㅇ 둘이서 바게트 뜯으며 독일놈들하고 싸운게 엊그제 같은데 많이 컷다?”
“근데 왜 따로 불렀어?”
“쉿..... 이건 너한테만 말해주는건데.”
“ㅇㅇ?”
“땅쪼가리 좀 얻는다고, 마냥 발 뻗고 잘 순 없는거 아냐.”
“솔직히..... 좀 그렇지?”
“내가, 몰래 만들고 있는거 있거든?”
“.....? 뭔데?”
“그거 있잖아..... 크고 아름다운거.”
“잉? 너네 설마 핵......”
“얌마 조용히 하라니깐?”
“ㅇㅇ”
“내가 그거 거의 만들었거든? 이번에 잘 도와주면, 스터디 그룹에 너 껴줌. 그것만 있으면.....”
“이집트 놈들은 쳐들어올 꿈도 못꾸겠지.”
“바로 그거야.”
안그래도 땅 준다는데, 핵까지 얹어 준다는 것은
이스라엘로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겠죠.
이스라엘과 영국 프랑스의 연합국의 작전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이스라엘이 먼저 선빵을 갈긴다.
(2)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투탁투탁한다
(3) 영국의 공수부대와 프랑스의 외인부대가 이집트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4) 이집트가 항복을 한다.
(5) 평화 유지 체제가 되면 수에즈 운하를 포함한 시나이 반도는 이스라엘 차지가 된다.
(6) 수에즈 운하의 소유권은 영국과 프랑스가 갖는다.
(2차 중동전쟁의 전개)
저 작전에 따라 10월 29일에 전쟁이 납니다.....만이스라엘이 생각보다 너무 잘 싸웠고 이집트는 생각보다 너무 못싸웠어요.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가 나타나기 전에 상황이 정리돼 버렸습니다.
영국의 공수부대와 프랑스의 외인부대가 떨렁떨렁 나타날 때 쯤엔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뭐래? 전쟁 끝남ㅋ”
“?!?!?”
“여긴 내 땅임.”
이스라엘이 수에즈 운하 너머까지 다 차지해버린 뒤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로선 민망해지긴 했지만..... 이긴건 이긴거니까요.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보다 더 큰 형님 둘이 이 사태를 보고 격노하셨습니다.
미국과 소련이었죠.
둘은 이 사태를 보고
“이 자식들이 아직도 제국주의 흉내를 내고 있네?”
“그러게 힘도 없고 이빨도 다 빠진 것들이.”
“우리한테 양해도 안 구하고 전쟁을 벌여?”
미국 입장에선
“얌마 우리 허락도 안구하고 쌈박질이냐?”
라고 화를 냈지만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영국과 프랑스는 “우리가 왜?”라고 계속해서 뺀질거리다가
그 모습을 지켜본 소련이 한마디 했습니다.
“야 니들.....”
“ㅇㅇ 왜?”
“그동안 세계지도에 색연필하고 자만 사용해 봤지?”
“그거 말고 쓸거 더 있냐?”
“ㅇㅇ 하나 더 있지?”
“그게 뭔데?”
“지우개.”
(소련이 보여준 지도의 지우개)
소련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핵폭탄을 보여주며
“이거 하나씩 니네 수도에 떨어뜨려서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고 이야기 했고
그 말에 영국과 프랑스는 사색이 됐습니다.
아직 둘은 핵무기를 완성하진 못했거든요.
둘은 쪼는 와중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야 이거..... 미국도 빡이쳤는데?”
“ㅇㅇ 소련도 개빡침.”
“소련 저것들이 핵무기를 진짜 날려버리는데 미국이 안도와주면.....”
“우린 ‘강대국이었던 것’이 되는거지.”
“하.... 날샜다 ㄹㅇ.”
이러는 동안 UN이 짜잔 하고 나타납니다.
“에헤이, 신사분들 잠깐 모여봐요.”
“ㅇㅇ”
“솔까 니들 주권국가인 이집트를 무력으로 침공한거 맞죠?”
“ㅇㅇ”
“잘못했죠?”
“......”
“잘못한거 맞죠?”
“ㅇㅇ ㅠㅠㅠㅠㅠㅠ”
결국 일단 먼저 선빵을 갈긴 이스라엘은 욕이란 욕은 다 먹고,기껏 먹은 시나이반도를 모조리 뱉어냈으며
같이 쥐어박힌 '전직' 큰 형님 둘은 이를 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풀을 뜯어 먹더라도 핵은 꼭 가져야 한다.”
으응.....?!?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죠?
5-1) 영국의 사정
“우리가 풀을 뜯어먹더라도 핵은 꼭....”이라는 드립이 영국이겐 진심이었던 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영국 경제는 개판이었습니다.
전쟁중에야 당연히 배급제였겠지만, 영국은 그 이후 8년동안 배급제를 계속 할 수 밖에 없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핵개발이라니..... 국운을 걸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영국은 “경제상황”만 제외하곤 핵개발에 유리한 상황이었어요.
일단, 멘하탄 프로젝트(핵개발 프로젝트)에 영국사람도 대거 참가한 상황이었고......
영국과 미국은 같은 언어를 쓰잖아요? 막말로 핵무기 설계도를 훔쳐와도, 번역기 돌릴 필요가 1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전해지는 5 eyes의 주요국가중 하나가 영국이었으니..... 미국 입장에선
“남도 아닌데 만드는거 그냥..... 도와나 줄까?”하는 심정적 동조도 있었고요.
(미국의 최 우선 동맹 5 eyes)
그래서 “우리가 돈이 없지 기술이 없냐?” 하던 영국은 어찌어찌 쥐어짜는게 가능하기도 했고
핵개발이 어느정도 단계에 다다르니
미국도 몰래몰래 도와줘서 핵무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5-2) 프랑스의 사정
프랑스는 “유럽의 중국”이라는 별명답게
사람도 많고, 경작지는 더 많아서
영국보다는 빨리 배급제에서 벗어나 번영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었습니다......만
그게 다였어요.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이던 샤를 드 골)
드 골이 워낙 깐깐하게 나오니 미국에선
“아오 저 재수없는 새x. 그냥 도와주지 마.”라고 한거죠.
“우리가 기술이 없지 돈이 없냐?”라며 프랑스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영국보단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으나, 어찌어찌 발전 단계를 밟아니갔습니다.
그걸 지켜본 미국은
“저것들 결국은 만들거 같긴 한데. 아예 안 도와 주는 것 보단,조금이라도 도와줘야 지분요구라도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미국에다가 프랑스 핵개발 기술자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래서 핵개발 기술을 알려줬냐.....?
그럼 소련이 가만두지 않겠죠?
그래서 다소 웃긴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알려주진 않을거임. 다만 질문에 대답은 해주겠음.”
“오케이 뮤슈. 그럼 질문입니다. 요 부분은 이렇게 하면 됩니까?”
“놉!”
“음.... 그럼 저렇게 하면 됩니까?”
“예스.”
“아하 그렇군요. 근데 이 공식 말이에요. 계산해 보니까 잘 안맞던데....”
“님들이 가지고 온 자료 12페이지 좀 봐봐요. 거기 있잖아 바보들아.”
“아..... 그렇네?”
대환장 파티죠?
사실 우리도 그랬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나로호 우주선을 만들 때, 러시아에서 기술자문단이 왔었죠.
(나로호 발사 순간)
그때 공식적으로 알려준 것 보다
회식자리에서 보드까에 막걸리 말아먹으며
시간 보내다가 먼동이 터 올때 쯤에
수저를 얹어 놓을 때 쓰던 티슈 뒷장에 끄적끄적 써주던 것이
더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내려오던게 있습니다.
그 원조가 프랑스의 핵개발 스토리였던 거에요.
5-3) 이스라엘의 사정
이스라엘 입장에선 제일 억울했을 겁니다.
전범국가라고 욕은 욕대로 먹고
지들을 꼬드긴 영국과 프랑스는 욕도 먹긴 했지만
미국의 용인하에
어찌어찌 핵 개발을 하긴 했잖아요.
영토도 반납해, 핵개발 스터디에서 발도 못붙여
안그래도 약이 올라있는 이스라엘인데
다 줘터지다가 UN덕분에 살아난 나세르는
“아이 엠 나세스 맨.”
“5252 믿고 있었다구!!!”
라며 승전 퍼레이드를 벌이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을 겁니다.
서로가 그정도에서 타협하고 살면 다행이겠다만
이집트는 스스로에 대해 과잉된 자의식을 가지게 된게 문제였습니다.
6) 제 3차 중동전쟁
어찌됐든 이집트가 이기긴 했지만
이집트 입장에선 UN아니었으면 그대로 멸망할 뻔했으니 “그냥 이긴걸로 끝” 했다면
해피엔딩이었을 겁니다......만
자의식 과잉이 된 나세르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이스라엘을 조지고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한다.”
“엥? 니들 돌았냐? 다 털리다가 UN덕분에 살아난 놈들이?”
“과정은 중요치 않다. 어쨋건 우리가 이긴게 중요하다. 여세를 몰아 니들을 홍해에 빠트려 죽이겠다.모세가 한 거처럼 홍해를 갈라달라고 빌어보던지.”
라며, 이스라엘의 여러도시에 포탄공격으로 계속 깐죽거리는 거 뿐 만 아니라,이스라엘의 해안가 도시에 해안 봉쇄까지 해버렸지요.
이스라엘은
“저거 가만 놔두다간, 먼저 쳐들어 오겠는데? 선빵 필승이니 우리가 먼저 친다.”라고 결심하게 되요.
앞서의 2차 전쟁에서 승리한 기억도 있고,
결정적으로...... 공식적으론 스터디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프랑스가 몰래몰래 미국에서 배워온 것을 이스라엘에게 몰래몰래 알려준 것이 바탕이 되어
이스라엘에도 2개의 핵폭탄이 만들어졌거든요.
일단 먼저 친다. 근데 혹시 우리가 질거 같으면
카이로는 우리와 함께 지옥으로 간다.라는 꿍꿍이가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1967년 6월 5일에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선빵을 갈기게 되었습니다.
(3차 중동전쟁 phase 1)
이때 작전 시간이 기가막힌게,
당시 이집트엔 소련군이 고문 자격으로 와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서방세계에 뚜까맞았으니, 이집트는 동구권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이때 소련군이 이집트군에 레이더 기술이며 뭐며 도와주고 있었는데..... 24시간 내내 근무할 수는 없으니
“근무교대”를 할거 아닙니까?
이때를 노려 이스라엘이 공군기를 끌고 쳐들어 온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근무교대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포탄이 떨어진다......
세시간의 공습이 끝나니 어떻게 됐냐....
당시 이집트가 보유하고 있던 450대의 비행기 중에서 300대가 지상에서 파괴되어버리고
공군기지 전부가 초토화 되어버렸습니다.
당시 이집트도
“우리가 이렇게 깐죽대는데, 쳐들어 오겠지?”라는걸 예상은 했지만
이스라엘의 이니시에이팅이 생각보다 대규모에
조직적이었던게 문제인 겁니다.
“레이더 포대는 무너졌냐 새x야.”하겠지만
레이더 혼자선 무리고, 초계기가 떠 있어야죠.
하지만 이때까진 초계기란 기술 자체가 없었으니
그냥 줘 터져야죠 뭐.
어쨌거나, 이스라엘 공군이 이집트의 공군기 + 공군기지를 뚜까패며 제공권을 장악한 동안,
이스라엘의 기갑부대는 시나이반도에
“Again second middle east war!!”를 외치며
닥돌을 했고,
순식간에 시나이 반도를 꿀꺽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남쪽의 이집트를 뚜까패는 것으로 끝이 났느냐......
“기수를 돌려라.”
“어디로요?”
“동쪽으로 간다.”
이집트를 뚜까팬 원심력을 이용해서
동쪽의 요르단까지 뚜까 패버립니다.
(3차 중동전쟁 phase 2)
“야!”
“왜?”
“가만이 있는 우린 왜 때려?ㅠㅠ”
“때리기 릴레이여.”
“근데 왜 니가 두번 때리냐?”
“내맘이지 ㅇㅇ”
“야 이....”
“꼽냐?”
“아니 그게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표정관리 안하냐? 니들 땅 압수.”
그렇게 이스라엘은 요르단과 전투를 벌여서
요단강 서안에 있는 오늘날의 “웨스트 뱅크”를 홀라당 먹어버립니다.
사실 여기서 웃긴건..... 요르단하고 사전에 양해는 구했었나 보더라구요.
“야 요르단.”
“ㅇㅇ?”
“나 이제 이집트 뚜까 팰거다.”
“어..... 그래?”
“근데 니들도 팰거다.”
“우린 왜?”
“니들도 1차 중동 전쟁 때 쳐들어 왔잖아.”
“아니 임마 그건 큰형님들이 가지고 하니까 그냥 따라만 온거지.”
“마음같아선 니들도 그냥 홀라당 하고 싶고, 우리가 실제로 그럴 수 있는거 봤지?”
“ㅇㅇ.....”
“근데 우리가 니들한테 미리 찾아온 이유가 뭐겠냐?”
“글쎄.....”
“적당히 하잖거지. 니들 멸망당하기 싫으면 적당히 요단강 서쪽까지는 내놔.”
“.....ㅇㅇ ㅠㅠ”
이렇게 요르단과는 “약속대련” 까지 한 뒤에
그 기세를 북쪽으로 돌려
시리아까지 뚜들겨 패버립니다.
(3차 중동전쟁 phase 3)
중세특집을 보셔서 알겠지만
시리아는 2차 중동전쟁 이후, 나세르에 뻑 가버려서
바트당이 혁명을 일으킨 뒤에 이집트에 자기 나라를 홀라당 갖다바쳤거든요.
당시 이집트와 시리아는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집트를 치면서 시리아도 조져야 했던거죠.
안그러면 전선이 두개가 되어
세계대전의 독일 꼴이 날 테니까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군대를 빠르게 북쪽으로 돌려
시리아와 전투를 벌였고
이스라엘 북쪽의 골란고원을 실효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숨가쁘게 바쁜 전쟁이었을 겁니다. 이 모든 상황이 6일간 일어났거든요.
6월 5일 ~ 6월 10일간 일어난 이 6일간의 전쟁을 제 3차 중동전쟁, 혹은 6일 전쟁이라고 불립니다.
어쨋거나 이 전쟁 이후로,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무시못할 강국이 되었습니다.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법 한게6일만에 세 나라를 뚜까패버리는게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한편 앞서 언급했듯이 이스라엘에겐 2개의 핵무기가 있었고“여차하면 그걸 쓴다.”가 플랜 B에 있었을 텐데요.
미국과 소련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통보했습니다.
“헬로 미스터 프레지던트?”
“오 헬로 썰 무슨 일?”
“우리 이집트 칠건데요.”
“ㅇㅇ?”
“지면 핵무기 쓸 수도 있음.”
“왓?!?”
“스파시바 총 서기관.”
“오 스파시바 무슨 일?”
“우리 이집트 조질건데.”
“잉?!?”
“지면 핵무기 쓸 수 있음.”
“뭐 임마?!?”
이런 식으로 한게 아니라
일부러 미국과 소련이 감청하라고
“야, 우리 플랜 B기억하지?”
“아! 그거? 싸.움.에.서. 질.거.같.으.면. 핵.무.기.를. 쓴.다?”
“ㅇㅇ 바로 그거야.”
이런 식으로 교신을 주고 받는 식으로요.
6-1) 우리라고 마냥 뚜까 맞기만 한건 아냐 ㅠ
여기까지만 보면,
“이야 이집트 저 바보같은 놈들 암것도 못하고 뚜들겨 맞기만 했네.”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집트도 한 건 하긴 했어요.
이집트에 소련의 군사 고문단이 온거 기억하시죠?
이때 고문단을 따라 여러 무기들이 이집트로 흘러들어오는데요.
그중에는 스틱스라는 “대함미사일”이라는게 끼어있었습니다.
그것이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6일 전쟁 중에, 두들겨 맞던 이집트 군은 소련에서 제공해준
고속정 + 대함미사일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대형 전함에게 다가갔습니다.
“야, 저기 수평선 쪽에 뭐가 있냐?”
“뭔 쪼깐한 배인데요?”
“이집트 놈들 거 같은데 쫓아내.”
“네 알겠습..... 으응?”
“왜그래?”
“쟤들 쪽에서 뭐가 날아오는데요?”
“쪼깐한 배가 쏴봐야 기스나 나겠냐 ㄲㄲ”
“어억?”
“억?”
“히익?!?”
이집트의 고속정에서 발사된 스틱스 미사일은 이스라엘 전함에 그대로 적중했고
그 한방에 이스라엘의 전함은 아무것도 못하고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전 육군에서도 운전병 출신이라 잘은 모릅니다. 해군출신 짱공인의 피드백이 필요합니다.)
대함미사일이 개발되기 전 해전은 그냥 배들의 체급싸움 이었어요.
그래서 작은 배가 큰 배를 앞두고 도망치는건 흠이 잡히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큰 배일 수록, 사거리가 긴 대포를 더 많리 싣을 수 있고
내구성도 더 좋을테니까요
그걸 뒤집은게 바로 스틱스 미사일이었습니다.
(스틱스 미사일)
작은 배가 큰 배를 이길 수 있단 것을 보여줬을 뿐 만 아니라,경쟁적으로 큰 배를 만들어온 국가들 사이에서
“야”
“ㅇㅇ”
“봄?”
“ㅇㅇ ㅠㅠ”
“이거 배 크게 만들어 봐야 표적만 커지는데?”
“ㅇㅇ ㅠㅠㅠ”
라는 여론이 생기게 되었거든요.
일단 그 모습에 쾌재를 부른 소련은
“봤냐? 양키 새기들아. 우린 이게 이따시만큼 있다고!!”하며
공개 군사훈련에서 소련 해군이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한대의 전함에서 수백발의 대함미사일이 발사되, 표적을 개박살 내는 장면을 말이죠.
미국입장에선 “ㅗㅜㅑ ㅈ되겠다.” 싶었겠죠.
“어..... 저 많은걸 뭔 수로 막냐?”
“장갑을 더 빡세게 조질까요?”
“그러면 뜨지도 못하고 가라앉지 않겠냐?”
“그건 또 그래요.”
“거기에 배가 멀쩡해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으면 뭔 소용이여.”
“그것도 그렇죠.”
“방법은 하나다.”
“뭔데요?”
“미사일엔 미사일이지. 미사일을 미사일로 맞추면 되는거 아냐?”
“오....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그게 될까요?”
“돈과 기술. 그걸로 못할건 없다.”
미국의 그 생각은 나중에 이지스함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지스 함)
6-2) 이제는 때가 됐다.
여기서 잠깐 여담을 하자면.....
우리가 생각하기엔
“이스라엘 사람들은 역사공부 할 때, 자신들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철저하게 가르칠 것이다.”라고 생각할 거에요.
(홀로코스트의 유대인들)
하지만, 이스라엘이 역사에 “홀로코스트”를 가르친건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3차 중동전쟁 이후에 가르치게 되요.
그전엔....? 안가르쳤습니다.
대체 왜....?라고 하실텐데요.
그전엔 “이런 어두운 역사 가르쳐 봐야 애들 사기만 떨어지니까”그랬다고 합니다.
이웃나라들 중에 어느 누구도 좋아하질 않고 호시탐탐 자국을 노리는 상황에서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가르친다면 그걸 배우는 학생들에게서
“우리 조상들은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끌려가서 죽었나요?”라는 질문에 직면해야 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 질문에 “ㅇㅇ 그랬단다.”라고 대답을 한다면
한참 파이팅 넘치게 싸워도 모자를 판에
“야.... 우리도 언젠가 그 꼴 나는거 아냐?”라고 기세가 꺾이겠죠.
그래서 3차 중동전쟁 이전에는 홀로코스트의 역사는
이스라엘 자국인들도 회피하고 무시하고 잊어버리려 하는 흑역사 취급을 받다가,
3차 중동전쟁 이후에 자신감을 얻고 나서야
“실은 얘들아.... 우리도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단다.”
“아니 왜 그동안은 안 알려줬어요?”
“그때 알려주면 니들이 ‘우리 이스라엘도 언젠가 그 꼴 나는거 아냐?’ 하며 기세가 꺾이지 않았겠니? 이제 우리도 어께 펴며 살 수 있게 됐으니 이젠 배우고 우리 가슴에 기억하자꾸나.”
하게 됐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가슴아픈 역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7) 제 4차 중동전쟁
이때 이후로 이스라엘은 자신감을 넘어서 자만심을 갖게 되었어요.
“3번 싸웠는데 우리가 세번 다 떡실신 시켰네?”
“누가 우릴 건드려?”
“건드리기만 해봐? 니들 다 주옥 되는거야.”
하며 기세등등할 동안.....
1차에선 고의 트롤링으로 패배
2차에선 UN덕에 어찌어찌 판정승
3차에선 변명할 것도 없이 완패
당한 이집트로서는 이를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이집트의 나세르가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권력자 사다트가 대통령에 오르면서
(새로운 대통령 사다트)
“새 술은 새부대에 담는다.”
“이제는 저 거만한 것들에게 유효타를 한방 먹인다.”
라는 명분하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1) 군제 개혁
나세르가 대통령이 되면서 공화정이 되었지만
이집트는 여전히 왕정의 잔재가 남아있었대요.
대표적인게 군대였습니다.
“당시엔 장교는 오로지 귀족 출신만
그 외의 천것들은 끽해야 병이나 부사관 정도나 하세요.”였었는데
사다트가 군제를 개혁했습니다.
“귀족출신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쫓아내기 전에 알아서 제대해라.장교는 오로지 능력을 중심으로 뽑는다. 평민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위로 갈 수 있다.”
지금으로선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시 이집트 군에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사다트의 개혁하에 이집트는 정예 강군이 되었지요.
거기에 소련에서도
“하..... 저것들 독립하는거 도와줬더니 통수를 쳐?”
“거기에, 우리가 이집트에 고문단을 파견했는데 거기에 포탄을 퍼부어?”
하며 이를 갈고 이집트를 지원해 줬지요.
(2) 훼이큰데? 훼이큰데? 이것.....도 훼이큰데?
훈련만 하면 이스라엘이 대비를 할 테니
이집트는 여기서 훼이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는 한번 “36계”를 인용해 보도록 하지요.
36계 중에 “타초경사” - “풀을 때려 뱀을 놀라게 하다.”가 있습니다.현대식으로 번역하자면 "조그만한 도발로, 상대의 본색을 드러내게 만든다."는 작전인데요.
어느정도 준비가 된 사다트는
군대를 쭉~ 끌고 수에즈쪽에 병력을 보냅니다.
이집트에서 활동 하던 모사드도
“쳐들어 올거 같은데요?”라고 첩보를 보내니
이스라엘은 “전쟁 준비!”하며
국민을 총 동원해서 국경지대로 보냈습니다.
국민들이 총들고 긴장한 상태에서 2주를 지키고 있는데, 온다는 이집트 군은 보이지 않고
“훼이크다 새기드랑 ㅋ” 한거죠.
이스라엘은 “뭐야 별거 없네.” 하고 다시 생업으로 복귀했지요.
그러다가 몇달 뒤에
“이번엔 진짜야~~” 하며 이집트군이 또다시 스에즈 쪽으로 탱크를 몰고가고
모사드가 “이번엔 진짜입니다!”라고 첩보를 또 보내니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사람들이 총동원 되서 지키고.....
“힝 속았징? 이번에도 보리다 ㅋ”
하며 이집트 군이 돌아가 버렸습니다.
(보리보리쌀)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다보니 이스라엘 사회도 지치겠죠?
모사드는 완전히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렸고
이스라엘은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이집트 점마들 함부로 못온다.”
“저건 그냥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쑈여.”
그래도 찝찝한건 찝찝한 거니까
이스라엘도 나름의 대책을 남겨놓긴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래방벽, 바레브 라인)
수에즈 운하 너머에 모래로 장성을 쌓아놓은 거지요.
일단은 사막에 넘치는게 모래일 뿐 만 아니라
모래로 장벽을 만들어 놓으면
탱크도 올라가질 못하고
사람들도 오르다가 허우적 거릴 것이며
고운 모래에 포탄 쏴 봐야 포탄 낭비만 될 거니까요
사실..... 그 모습을 본 사다트는
“이제야 쳐들어갈 때가 됐다.”라고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타초경사의 작전이 성공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됐다는 거지요.
7-1) 차시환혼으로 모래를 넘다.
36계중에 “차시환혼”이라는 전략이 있습니다
남의 시체를 빌려 영혼을 부른다는 뜻인데요.
이걸 번역하자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목적을 달성한다”이겠습니다.
사다트의 목적은 모래방벽을 넘는다 입니다.
모래방벽은 그냥 두면 탱크고 사람이고 넘어갈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한가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모래방벽을, 수에즈 운하 앞에 만든 것입니다.
운하는 물이 흐르죠.
모래는 물에 젖으면..... 무너집니다.
이스라엘 딴에는
“모래를 이렇게 쌓으면 저거 치우는데 3일은 걸려. 그 안에 준비하면 되지 뭘.”이라 생각했겠지만
사다트는 독일제 소방펌프를 사용해 수에즈운하의 물을 퍼서 이스라엘의 모래방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레브 라인을 무너뜨리는 댐 버스터)
거기에서 걸린 시간은 9시간
여차해도 3일의 시간은 벌겠지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은 완전히 허를 찔려 버렸습니다.
물론 그래도 9시간은 벌었으니, 이스라엘은 어찌어찌 국민 동원령을 내려, 군을 조직할 수는 있었지요.
“한방 먹긴 했지만, 늘 하던대로 탱크로 밀어버림 되지 뭘 ㅋ”하며 이스라엘군은
자랑하던 기갑부대를 앞세워 수에즈로 달려갔습니다.
7-2) 소리장도로 허를 찌르다.
36계의 하나인 “소리장도”는 웃음 속에 칼을 숨겨두라. 라는 뜻입니다.
현대식으로 번역하자면 "비장의 무기를 감춰둬라" 라는 이야기겠죠.
수에즈로 달려간 이스라엘군이 망원경으로 이집트군을 보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올 탱크로 다 끌고 나왔더니,
적진에는 벙커에 마린들만 가득했거든요.
저 멀리에 탱크들이 몇대 보이긴 했지만저정도 숫자로는 자신들이 끌고온 탱크들이 시즈모드 안하고 퉁퉁포로만 쳐도 다 가루가 될 정도로 보잘것 없기도 했지요.
스타로 치면
바카닉인데, 마린 위주라 탱크는 몇대 보이지도 않은 상황인 겁니다.
(대충 이런 느낌)
이러니 뭐..... 퉁퉁포로 어택땅 찍으면 게임 끝나겠네 한 거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의 기갑부대는 어택땅을 찍고 달리는데 이집트 탱크에서 뭔가가 발사된 겁니다.
“엥? 저거리에서 쏜다고? 닿지도 않을텐데 저 군기빠진 것들 포탄 낭비하는거 보소 ㅋㅋㅋ”
“아닌데요?”
“잉? 뭔소리야?”
“우리 맞았어요.”
“?!?!?”
이집트 기갑부대는 “대전차 미사일”이라는 신종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탱크부대는
“엥? 저게 뭐냐?” 하는 사이에
(대전차 미사일)
대전차 미사일을 맞고 몇십대가 한순간에 반파 혹은 완파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뭐여? 옆 탱크가 왜터져?” 했지만
일단 탱크 수는 압도적으로 많으니,
보병들을 후딱 밀어버리고 탱크를 포위해서 조지자라는 생각으로 닥돌을 계속했습니다만.....
“야.”
“ㅇㅇ?”
“우리가 마린인거 같지?”
“ㅇㅇ? 아니야?”
“ㅇㅇ 아니야.”
참호속의 이집트군은 소총대신
RPG-7이라는 무기를 장비하고 있었어요.
(알라의 요술봉 RPG-7)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죠?
정식 명칭보다는, “알라의 요술봉”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바로 그 무기가 여기에서 정식으로 데뷔했습니다.
알라의 요술봉들이 뿅뿅 거리며 탱크들을 향해 날아왔고, 더 많은 탱크들이 속절없이 터져나갔습니다.
“야 씨 jot됐다 ㅌㅌㅌㅌ”
“올 때는 니마음이었겠지만~”
“나갈땐 아냐?”
“ㅇㅇ 잘 아네.”
탱크들이 도망을 가려 했지만, 숨어있던 이집트군은 빙 돌아서 퇴로가 될 곳에 윤형 철조망을 쳤습니다.
(윤형 철조망)
기갑부대 출신 짱공인들이라면 알겠지만
윤형 철조망이 쳐지면, 탱크는 속수무책이죠.
오도가도 못하게 된 이스라엘 기갑부대 130여대는 순식간에 고철 쪼가리로, 그 안에 타고있던 이스라엘군은..... 뭐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어찌보면 소리장도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이죠.
이걸 지켜보던, 이스라엘 공군이
“야 땅깨들아 기다려라. 이스라엘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이 간다.”
라며 전투기들을 날려 보냅니다만......
이집트군은
“소리장도가..... 한자루 뿐인줄 알았냐?”
“ㅇㅇ? 아니었어?”
“ㅇㅇ 난 이도륜데?”
이스라엘 공군이 높은 고도에서 날아오니
SA-6라는 대공 미사일이(이 이름이 맞나 모르겠네요.) 소나기처럼 날아왔습니다.
(대공 미사일)
“ㅗㅜㅑ 이거 뭐야?”
“뭐긴 뭐여 가장 높은 힘을 조지는 마술봉이지.”
물론 몇대가 추락하긴 했지만, 이스라엘 공군도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고,
“그럼 저공비행으로 피하면 되지롱~ 기관총알 잘 먹고 스폰지밥 코스프레나 해라.”
하며 저공비행을 시작했습니다.
문젠 그것 역시 이집트군이 계산대로였던 겁니다.
이스라엘 공군이 저공비행을 시작하니, 이번에는소련이 제공했던“실카”라는 자주 대공기관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공기관포)
기갑차량 위에, 자체적인 레이더가 있고,
23mm기관포 x4가 달려있었던 건데요.
“요래쯤에서 미사일 쏘면, 얘들이 저공비행을 할거거든? 이 길목으로 날아올거니까, 여기 길목 잘 지키면......”
“아....c 전투 jot같이 하네.”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불나방마냥 떨어지게 되어버렸습니다. 어느정도였냐면.....
하루 한 방의 전투로 이스라엘 전체 공군기의 12%가 그대로 살살 녹아내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계산해 보니, 8일 뒤면 이스라엘 공군은 96%가 날아갈 판이었던 거지요.
여기에 북쪽에서 “이제는 이집트와 남이 된”시리아가
“야, 봄?”
“ㅇㅇ”
“이젠 때가 됐지?”
“ㅇㅇ”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며 쳐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동안 지들을 그렇게 괴롭히던
독일 시즌3을 찍게 되어버렸습니다.
위 아래로 동시에 쳐맞게 된 셈이지요.
이스라엘 입장에선 망국을 눈앞에 두게 된 셈입니다.
7-3) 선택과 집중 그리고 투량환주
이스라엘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국민의 역량을 총 동원해야 하는데
전선이 두개로 갈라지게 생겼다.
어디부터 조져야 할 것인가.
이스라엘의 선택은
의외로 시리아였습니다.
이집트가 기세등등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들도 어느정도 피해를 봤으니,
병력을 쉬면서 숨고르기하는데 시간이 걸릴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투량환주”는 대들보를 빼돌려 기둥과 바꿔치기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주력을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바꿔서 적의 헛점을 찌른다”는 거지요.
그래서 이집트군에겐 “니들과 마주보고 있는 우리가 주력이다.”라고 보이게 만들어 속이고
(골란고원의 위치)
진짜 주력을 시리아가 쳐들어오는 골란고원으로 보낸다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러자면, 시리아에게도 “여기로 주력이 올라온다.”라는걸 모르게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골란고원에 배치된 이스라엘군에게도 명령을 내립니다.
“최다윗 장군 들립니까?”
“네 잘 들립니다. 지금 시리아군이 쳐들어 오는데....”
“ㅇㅇ 안그래도 우리가 새로 기갑부대를 배치해서 골란고원으로 보낼거임.”
“얼마나 걸릴까요?”
“하루”
“잉? 너무 오래걸리는데요? 쟤들 병력을 대충 세봐도 우리보다 10배 더 많은데요?”
“이집트 놈들 몰래 최대한 빨리 보낼거니까 뭔 수를 써서라도 하루는 꼭 버텨야 합니다. 파이팅!”
“하...... 아무리 봐도 ㅈ됐는데.”
누가 봐도 망했죠 뭐.
10대 1의 싸움인데 될 턱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습니다.
골란고원이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였는지
이스라엘군이 그만큼 잘 싸웠는지
시리아군이 더럽게 못 싸웠는지
아니면 셋 다인지
이스라엘군이 실제로 만 하루를 병력의 10배가 되는 시리아군을 막아냈고
이스라엘 본대가 합류해서 시리아군을 털어버렸습니다.
이 사건이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쳐서, 우리나라엔 책으로도 번역이 됐대요.
“골란고원의 영웅들”이라는 책이라는데
지금 군복무중인 짱공인이라면, 생활관 책자를 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한 권은 꽂혀있을 가능성이 크겠죠.
(군복무중인 짱공인이라면 한번 쯤 읽어보길 바랍니다)
그래서 일단 시리아와의 전투를 교착상태로 만들고,
한숨돌린 이집트와도 투탁거렸지만
이대로 가면 시간만 벌었지 나라 망하는건 똑같다는 생각에
이스라엘은 3차 중동전쟁에선 머릿속에만 남겨둔
플랜B를 실행하기 시작합니다.
미국과 소련이 보라고
건물 밖에서 핵무기를 조립하기 시작했고
그걸 미국의 인공위성이 발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핵시설)
미국이 소련에게 찾아갔습니다.
“야 빨갱이들아 봤냐?”
“ㅇㅇ. 저기 ㅈ돼겠던데?”
“ㅈ되는건 ㅈ되는거고..... 확전되면 세계가 위험해 지잖아.”
“ㅇㅇ 그건 막아야지비.”
결국 미국과 소련은 합의를 보게 되었습니다.
(1)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핵공격하게 되면 소련이 이집트에게 핵무기를 제공해주고 이집트가 그걸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한다.
(2) 이후에 미국과 소련은 이 일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미국과 소련이 그린 최악의 시나리오)
어쩌면 세계 최초의 “핵전쟁”이 중동에서 발발할 뻔 한거지요.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라는 별명이 왜 붙게 됐는지 이젠 알 것 같습니다.
사실 겉으로만 보면
“니들끼리 죽든지 살든지 간섭 안함.”이지만
그 속을 보면......
“이스라엘 니네 핵 쏘지 마라.”라는 의미일 겁니다.
실제로, 핵을 싣은 화물선이 지중해를 건너, 이집트 앞바다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고 해요.
미국은 소련과 약속한 대로 진짜진짜 신경을 끄려고 했지만
사태가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는걸 눈치 챈 이스라엘이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형..... 나 죽게 둘거야?”
“야 니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거든? 주권국가를 두번이나 뚜까 패놓고 이제와서 혀엉?”
“그래도 잘 생각해봐 형. 이대로 나 산화되면 중동에서 누가 형 편 들어줄거 같애? 이집트가 아랍민족주의가 어쩌고 하며 떠들어대면 사우디도 무너질껄?”
“이젠 협박질이네? 사우디는 내가 알아서 우쭈쭈 하니까 신경 끄고 이만 달게 받아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미국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미국의 경제를 틀어쥔 유대계 미국인들이
“다음선거에 미련이 없으신가봐요?”
하며 돈주머니를 짤랑짤랑 흔드니......
“읍블르..... 즌트그 들으근드.”
“엥? 뭐라고?”
“입벌려 전투기 들어간다.”
“5252! 형만 믿고 있었다구!!”
“날아가는데 일주일은 걸리니까 그때까지 버텨.”
“일주일? 나 그안에 못버텨! 그전에 난 핵폭탄 버튼 눌러야 돼!!!”
“어디서 뻥카질이여?”
“하지만 그 말이..... 사실입니다.”
CIA의 보고를 들으니 그게 사실인거에요.
그래서 미국은 다급해져서 당시에 직접 운용하고 있던 팬텀기를
미국산에서 이스라엘산으로 둔갑시키는 꼼수를 사용했습니다.
(미국의 팬텀기 - 밀덕이라면 알겠지만 얘들은 해군이 개발했음)
꼼수라고 해서 별건 아니고요.
성조기를 쓱 긁어내고 그 자리에 손으로 이스라엘 국기를 그려넣으면 끝!
참 쉽죠?
미군은 그런식으로 재빠르게 이스라엘에게 신무기였던 “팬텀기”를 이스라엘 공군기지까지 직배송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뭐..... 소련이야 진작에 알고는 있었겠지만
“냅 둬 저런거 일일이 지적질 하면 괜히 불편해져.”라고 묵인했겠죠.
(4차 중동전쟁)
미국의 지원하에 이스라엘은 제공권을 확보하고
탈탈 긁어모은 기갑사단을 바탕으로 이스라엘군은
골란고원을 넘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쳐들어갑니다.
이때 이집트는..... “아오 힘들다 죽겄네”하며 한숨 돌리고 있었지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이스라엘의 투량환주는 이런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입장에선 다마스쿠스고 나발이고 죄다 밀어버리고 싶었겠지만
소련이 더 묵인할 수가 없었던 거지요.
“워워, 미국이 끼어든거 까진 내가 모른척 해줬지만 여기까지 오는건 내가 용납 못하지. 당장 꺼져. 안그러면 우리가 직접 개입한다?”
“ㅇㅋㅇㅋ 알았음. 이만 내려갈게용~”
그러는 동안 이집트군은
“자! 휴식 끝! 이제 다리놓고 수에즈 운하를 넘어가자!”
하고 넘어가는데.....
문제는 그 동안 이스라엘군은 위에 있던 시리아를 뚜까패고 빠르게 원대복귀를 한 뒤였습니다.
“뭐여? 니들 ㅈ된거 아니었어?”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
7-4) 암도진창..... 그리고 개싸움
이집트군은 “어라? 이것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 했지만
“시리아는 어차피 시간벌이용이고 진짜는 우리다.”라는 마음으로 신나게 뚜까팰 생각이었습니다.만
이스라엘은 36계 중에서 “암도진창”이라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암도진창은 “은밀히 진창을 건넌다”라는 뜻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앞에서 싸우는 척을 하다가, 주력이 은밀히 뒤로 돌아가서 백도어를 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집트의 앞에 선 부대가 설렁설렁 투닥거릴 동안, 이스라엘의 본대가 다른 루트로 수에즈 운하를 건너서......
수에즈 운하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군을 포위해 버린 겁니다.
이집트군으로선 죽을 맛일 겁니다.
앞뒤로 적들이 자기를 싸먹어버리니 말이죠.
(대충 이런상황)
그럼, 육군이 이럴 동안, 해군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냐.....
이집트군은 지난 3차전에서 재미를 봤던 스틱스 대함미사일을 신나게 뿅뿅 쏘고는 있었는데....
“이잉?”
“왜그려?”
“이거 불량인가? 잘 안맞는데요?”
“그럴리가 없는데? 이거 조종사 문제 아냐?”
“아니라구요.”
사실...... 이스라엘 군이 지난 대참사에서 교훈을 얻은 결과였습니다.
이스라엘군은, 3차 ~ 4차 중동전쟁 사이에, 이집트 몰래 잠수사를 파견해서, 격침되어 가라앉아있던 이스라엘 전함에 들어가서 블랙박스를 회수해 왔습니다.
그리고 블랙박스를 분석한 결과....
“ㅇㅎ, 레이더에 이런 파장이 보이면 대함미사일이 날아오는구만기래?”
“그럼 어떻하죠? 미사일을 미사일로 맞추나?”
“한번만 실수해도 그대로 꽝이지. 이럴땐 말이야.”
“어....어엌ㅋㅋㅋ”
“방해전파만 쏴주면 저거 바보되는건 순간이라고.”
스틱스 미사일은 상당히 초보적인 수준의 미사일이라, 드론 조종하듯이 조종해야 했거든요. 당연히 거리가 멀어질 수록 전파는 약해질테니, 방해전파를 쏴주면 게임 끝인 겁니다.
날아오는 족족 미사일은 빗나가고, 이집트 군은 그것도 모르고 핵당황만 할 뿐이었던거죠.
이때 우리가 예비군 훈련에서 줄창보는 “이스라엘 군의 신화”가 만들어진 겁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가와 전쟁이 나자
해외에 있던 동포들이 자국을 위해.....
물론 처음부터 전쟁에 참전 한건 아니구요.
미국이 슬슬 도와주는것 같으니
“야 미국이 도와주니까 어쨋건 이길거 같은데?”
“그럼 숟가락 얹으러 ㄱㄱ”
하게 된 거라도 합니다만.....
그래도 목숨을 건 선택을 한 건 사실이긴 한 것 같습니다.
7-5) 전쟁이 끝나고
어쨋건 잘 끝나긴 했지만
이스라엘 입장으로선, 하마터면 나라가 그대로 망할 뻔 하긴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젊은 남녀가 수없이 죽어나갔구요.
이대로는 “국민 총동원령”을 내려서 전면전을 하는건 무리다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한 국가에 상비군을 둔다는건
“생산연령에 있는 국민을 일정기간 생산활동에서 배제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니
국민의 수가 적은 국가로선 부담이 큰 방법이지만 이스라엘은“그래도 모두가 나서서 다 죽느니. 일부라도 정예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게시글에도 언급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대가 그 누구라도 일단 들이박고 보는 민족성이 있는 국가다보니
이 전쟁이 끝난뒤에, 이스라엘군에서는 “유성우”마냥 별들이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는 이스라엘의 별들)
이스라엘 내부에선 “바보같은 지휘관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할 뻔했다.”라는 여론이 빗발치고
온 나라의 신문사들이 나서서 기사를 뽑아내면서
“내가 이스라엘의 독립투사다 이거야.”하며
군에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던 장성들이 대거 옷을 벗게 되었지요.
안그래도 말 많은 민족이, 남여 가리지 않고 죄다 군사 전문가들이니..... 작전을 말아먹은 장교들이 버틸 재간이라곤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 일을 지켜본 나머지 중동국가들은
“하 저 이스라엘 독한놈들 이번에도 살아남았네.”
“이대로는 안되고 천천이 말려죽이자.”
라면서 석유 수출을 막아버린게.....
1차 오일쇼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는
“야 이 정도면 내가 이스라엘 멸망시킬뻔 한거 ㅇㅈ하냐?” 라고 자신만만했고
사실 이정도로 이스라엘을 몰아부친 나라는 없으니 모두가 이집트를 인정했으며
이스라엘도..... 나중에 캠프 데이비스에서 사다트를 만나서
“짜식.......꼴에 힘 깨나 쓰더라?”
“네놈도 명줄 한 번 질기더라?”
“이젠 뭐 서로 전투력도 확인했는데 그만 싸우고 이젠 친구할까?”
“그래, 이제부터 우리 친구다.”
하며 이집트를 적어도
“쟤는 ㅈ밥이야”라고 무시하지는 않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나이 반도도 이집트에게 돌려주었고요.
그 이후엔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잘 지냅니다.
이스라엘편 1편에서도 다뤘지만, 이스라엘은 지중해 앞바다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천연가스를 이집트에게 지원해 주고 있으니까요.
이 전쟁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은 지금도 나라 대 나라로서 캐삭빵을 하는
전면전, 혹은 정규전은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8) 마치며
사실 이 이후에 이야기가 더 이어지긴 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핵무기를 개발했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루거든요.
하지만 너무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고
제 집중력도 이젠 한계에 달해서
더는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것까지만 하고 새로운 둥지를 찾아보려 했지만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까지는 끝내고 새로운 둥지를 찾아보겠습니다.
긴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글부터 올리고, 보충할 사진자료는 찬찬이 찾는대로 올리겠습니다.
마치기 전에 이 게시글은 “삼프로 티비”의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갑과을작성일
2020-07-1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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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까도까도 계속나오는 나경원
4년째 SOK 이사' 나경원 딸..자격도 없고 승인도 안 받아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비영리 국제 스포츠 기구인 사단법인 스페셜올림픽코리아(이하 SOK)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딸 김 모 씨를 자격이 없는 미승인 이사로 취임시킨 사실이 밝혀져 또다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스페셜올림픽코리아는 5년간 나 원내대표가 회장을 역임해 현재는 명예회장으로 있는 단체이며, 딸 김 씨의 활동 등에 대해 특혜 시비가 일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스페셜올림픽코리아가 지난 2016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에 보낸 임원 승인 요청 공문에는 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나경원 원내대표의 딸 김 모 씨의 이름이 빠져있다. "나경원 딸 김 씨, 4년째 자격 없는 미승인 SOK 당연직 이사로 등재"나경원 원내대표의 딸 김 씨는 스페셜올림픽코리아의 당연직 이사로, 나 원내대표가 회장직에서 물러난 직후인 지난 2016년 7월 취임했습니다. 정관에 따르면 당연직 이사의 자격은 SOK 사무총장과 시·도 스페셜올림픽 회장단 협의회 추천 3인,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장으로 구성돼야 합니다. 그러나 김 씨는 현재까지 당연직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지난 2일에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딸 김 씨의 당연직 이사에 대한 자격 논란이 일자 문화체육관광부와 SOK 측은 "김 씨는 출전 선수 자격으로 이사에 선임했고, 문제없는 선임이었다"이라고 답변한 바 있습니다. 또한 SOK 측은 "김 씨가 당연직 이사로 취임했어도 수당 등 급여 지급은 전혀 없다"며 특혜성을 재차 부인했습니다.문체부 "정관상 당연직이사 자격 없어, 자격 없음 통보할 것"그러나 오늘(21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문체부는 답변 자료를 통해 "김 모 씨는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의 당연직 이사 정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또한 "지난 2016년 9월에 제출한 제3기 임원 승인요청 이사명단에 김 씨의 이름은 없었으며, 이에 대한 문체부 승인 통지문서에도 김 씨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SOK 정관에 따르면 임원은 주무 부처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해야 합니다.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처음 문체부 관련 부서 과장에게 자격이 되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자격이 된다고 하더라. 근데 다시 정관을 보니 아니었다. 제대로 파악도 못 하고 있었던 거다."라며 "지금 문체부에서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느냐"고 질의했습니다.이에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저희가 확인했을 때도 김 씨는 당연직 이사 자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것은 정관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서 적합하게 이뤄지도록 조치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질의에 앞서 문체부 관련 부서 또한 답변자료를 통해 "당연직 이사로 있는 김 씨에게 정관에 따라 임원 승인을 받지 않은 미승인 이사로서 이사 자격이 없음을 통보하고, 앞으로 정관 규정에 따라 이사 선임이 적합하게 이루어지도록 철저하게 관리·감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8년 SOK 신사옥 구입 자금에 문체부 법인화지원금이 쓰이도록 의결된 서면결의서. 문체부 소속 당연직이사는 서면결의에 불참했다.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 강남 신사옥 구입에 문체부 법인화지원금 사용…적절성 논란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5년 SOK에 지급한 법인화지원금 10억 원이 SOK의 신사옥에 쓰이는 것이 적절했느냐는 추가 공방도 불거졌습니다.지난 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가 올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구입해 이전한 70억 원 상당의 신사옥 자금 가운데 법인화 지원금 10억여 원이 사용됐다는 사실에 대한 논란이 일자, 문체부와 SOK는 "법인화 지원금은 반납이 원칙이고 불가피한 경우 문체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타 종류의 기본자산으로 전환 가능하다"라며 "문체부 차원에서는 원금 기금을 보존하고 돌려받기 위해 10억 원에 대한 근저당을 설정한 바도 있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제출한 문체부 관계자 면담 자료에 따르면 "사옥 매매에 법인화 지원금 사용을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서면결의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답변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제1차 임시이사회에서 의결된 법인화지원금 사용 관련 서면결의에는 해당 문체부 당연직 이사가 서면 불참자로 분류돼 있습니다.신동근 의원은 "법인화 지원금을 사옥 짓는 데 썼는데, 신사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서 의결과정에 체육과장도 참석 안 하고 서면에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문체부가 찝찝하니 10억에 대해 근저당까지 설정했다"며 "이건 정상적인 의결 과정이라고 볼 수 없으며 신사옥 자금뿐 아니라 문체부 법인화지원금에 관해 감사원의 감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안민석 "SOK 특별 감사를 해야할 수준"…박양우 장관 "사무 감사 등 종합 검토 하겠다"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에 관한 질타가 이어지자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박양우 장관에게 "갈수록 SOK 농단의 의혹이 짙어져 가고 있어서 이 의혹과 관련한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며 "여야를 떠나서 진실 규명해야 하는 문제로 오게 됐는데 장관의 특별 지시로 특별 감사를 해야될 수준에 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질의했습니다.이에 박양우 장관은 "문체부 소관에서 법인들에 대한 사무감사, 또는 기관감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종합적으로 검사하고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이화진 기자 (hosky@kbs.co.kr)출처 : https://news.v.daum.net/v/20191021191244024 ------------------------------------------------------------------------- 이건뭐 양파도 아니고 까면깔수록 새로운게 나오는 마술이런사람이 제1야당 원내대표라니 개탄스럽내요빨리 토착왜구당이 해체되야 나라가 정상운영될거같습니다.
멀좋아해작성일
2019-10-2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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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본부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본부 출범,'문재인 하야','조국 구속'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이문열 소설가, 박찬종 전 의원,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송영선 전 의원 등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 결성식 및 10·3일 범국민투쟁대회 출정식’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 퇴진과 조국 법무부 장관의 구속을 외치고 있다.사진@이상천 기자 지난 9월 20일 우파 성향 정치인과 1,460여 개 종교 및 사회 등 각계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는 결성식을 열고 “오는 10월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하야’를 촉구하는 범국민투쟁대회를 개최한다”고 선포하고 그 출범의 닻을 올렸다. 이들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결성식 및 10·3 범국민투쟁대회 출정식’에서 투쟁본부 총괄대표에 전광훈(한기총 대표회장), 총괄본부장에 이재오(전 특임장관), 총괄실행위원장에 노태정(자유통일 대표) 등 집행부를 결성하고 출정식과 함께 본격적인 ‘문재인 하야’ 운동에 돌입했다. 아울러 준비위원으로 심재철, 주호영, 정진석, 김영우, 권성동, 김용태, 장제원, 김진태, 윤상직, 정종섭, 유기준, 김무성 등 자유한국당 의원이 그리고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이 명단에 올렸다. 전직 국회의원으로 박찬종 변호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 김기현 전 울산시장과 안경률, 김애실, 정미경, 박승환, 차명진, 송영선 등 전 의원이 포함됐다. 이 외에 이문열 작가, 허신행 전 농림수산부 장관과 이헌, 이경성, 최병국, 고영주, 김태훈 등 변호사가 참여했다.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총괄대표인 전광훈 목사는 이날 인사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체가 확실히 드러났다.”며 “문 대통령은 대학 시절, 주체사상을 신봉한 후로 오늘까지 한 번도 전향한 적이 없으며 그의 일당 청와대 보좌관들과 주사파들도 전향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문재인은 지난 9월 19일 평양에서 대한민국을 ‘남쪽 정부’로 호칭하며 김정은과 비밀회담을 통해 국민의 동의도 없이 NLL을 넘겨주는가 하면, 휴전선 비행금지구역을 일방적으로 선언했고, 2018년 5월 26일에 국민, 국회, 언론 등 그 누구 한 사람과도 상의 없이 새벽에 판문점에 가서 김정은과 역적모의를 하고 돌아왔다”며 “이제 그는 대통령으로서 어떠한 짓을 해도 국민이 가만히 있다고 하는 약점을 이용하여 쓰레기 같은 조국을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행하고 고려연방제를 통해 김정은에게 나라를 갖다 바치려는 망국적 행위를 만천하에 드러냈다”고 성토했다.푸른한국닷컴 이상천 기자 http://www.bluekoreadot.com/news/articleView.html?idxno=27771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출범 선언문>문재인 대통령은 하야하라우리는 오늘 대한민국 존망의 갈림길에서 엄숙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이 자리에 모였다.문재인은 집권이후 국정운영에 실패했다. 국민의 갈등과 분열은 오히려 심화됐고 나라의 경제는 더욱 후퇴했으며 국가 안보와 외교는 위기에 처했다. 마침내 범죄자인 조국을 국민 과반수이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무장관에 임명함으로서 전 국민을 분노케 했다.우리는 이 나라가 처한 상태가 비상시국임을 선언하며 문재인의 7대 죄상을 밝히고자 한다. 하나. 나라를 지켜온 한미동맹을 파괴한 죄.둘.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나라의 경제를 무너뜨린 죄.셋. 국가 안보의 해체로 국가와 국민을 위기에 빠뜨린 죄.넷. 국가 기간산업인 원전을 해체한 죄.다섯. 가뭄과 홍수를 예방하고 전 국민 65%의 식·용수를 해결하는 4대강 16개보를 해체하려는 죄.여섯. 한-미, 한-일 등 우리나라의 우방과 외교관계를 악화시키고 나라를 국제미아로 만든 외교망국의 죄.일곱. 후안무치한 범죄자 조국을 임명하여 나라를 사회주의로 끌고 가고 주사파 인사를 국가 각 기관에 포진시켜 나라를 북한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만들려고 하는 죄. 우리는 이상 7대 국가 범죄가 문재인 정권의 남은 임기동안 더욱 가속화되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이에 우리는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문재인은 하야하고 조국은 감옥으로 보낼 것을 전 국민의 이름으로 선언한다.2019년 9월 20일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일동 뉴스핌 김승현 기자 http://www.newspim.com/news/view/20190920001002 이런 단체가 결성되고 사람들 끌어 모아서 열었던 집회가 지난 10월 3일 대규모 집회였습니다.‘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투쟁본부)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범국민 투쟁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동아일보 최우열 기자 http://www.donga.com/news/Main/article/all/20191002/97700858/1 자칭 보수 세력들의 수준이 참으로 볼 만 합니다.그러니 황교안, 나경원 및 기타 자한당 의원들이 오늘 같은 날에도 집회에 참석했겠죠.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범국민투쟁본부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대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2019.10.9/뉴스1뉴스1 안은나 기자 http://news1.kr/photos/details/?3859307
GitS작성일
2019-10-0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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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문대통령 오슬로 포럼 기조연설 전문
존경하는 국왕님, 이네 에릭슨 써라이데 장관님, 스바인 스퇴렌 오슬로대학교 총장님과 학생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구우 다그 (안녕하십니까)!
따뜻하게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만드는 중재자로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오슬로포럼에 초청해 주신 것에 특별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사람들은 노르웨이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부릅니다. 직접 와보니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평화로운 일상과 다양성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 자연과 사람의 아름다운 조화가 노르웨이의 또 다른 이름인 것 같습니다.
오슬로 곳곳에서 `2019년 유럽환경수도`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친환경 대중교통과 사회통합 정책 등 `사람 중심 도시`를 만들기 위한 오슬로의 노력에서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오늘 인류 평화와 발전에 기여한 지성의 산실, 오슬로대학에서 노르웨이의 미래를 이끌어갈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아주 뜻깊게 생각합니다.
오슬로대학에 개설된 한국학 강좌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노르웨이와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겸손과 배려, 평등을 강조하는 `얀테의 법칙`은 과도한 경쟁에 지친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구전으로 전해 주는 평범한 노르웨이인의 지혜가 지구 반대편 한국인에게 용기와 힘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올해는 양국 수교 60년을 맞는 해입니다. 양국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60년간 우정을 나누며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2006년 한·EFTA(에프타)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양국의 교역량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조선·해양산업에서는 노르웨이의 우수한 기술력과 한국의 건조 역량을 토대로 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산과학기지 개설과 극지연구 협력센터 개소 등 북극 관련 협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양국은 전우입니다.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노르웨이 출신 트리그베 리(Trygve Lie) 초대 유엔 사무총장은 강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군 파병을 국제사회에 강력하게 호소하여 관철시켰습니다.
노르웨이는 한반도에 의료지원단 623명을 파견했고, 9만여 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노르웨이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을 대신해 뜨거운 우정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외 귀빈과 학생 여러분,
평화, 포용, 복지, 혁신, 성장 등 세계는 노르웨이의 오늘을 부러워합니다. 저는 노르웨이의 진정한 위대함이 국민의 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1814년, 작은 도시 에이츠볼(Eidsvold)에 37명의 소작농민, 17명의 마을대표 등 112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노르웨이의 독립을 선언하고, 헌법을 공포했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담은 `에이츠볼 헌법`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진보적인 헌법으로 노르웨이 국민의 자긍심이 되고 있습니다.
1940년대 독일 점령 기간에는 평범한 국민들의 저항운동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3만5천명에 이르는 노르웨이 국민들이 집단수용소나 감옥에 수용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국민이 이룬 평화의 바탕이 흔들리지 않도록 정치지도자들도 힘을 모았습니다.
국가의 성장이 국민의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사회복지 체계를 구축하고, 평등 사회를 향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오늘날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성평등이 가장 잘 이루어졌으며, 언론의 자유가 최고로 보장된 나라로 평가받습니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선정하는 민주주의 지수에서 작년까지 9년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노르웨이 국민이 이룬 위대한 성취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도 국민입니다.
한국이 식민지에 처해있던 100년 전, 나무꾼, 학생, 맹인, 광부, 머슴, 기생, 시골 촌부 등 평범한 국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3·1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인구의 10%인 202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 항쟁이었습니다.
독립 후 한국전쟁을 겪고서도, 7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국민들의 힘으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과로 평가받습니다.
자신은 못 배웠어도 자식 교육에는 투철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북돋아 준 이웃과 친구, 국가와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촛불을 들어 민주주의 회복에 앞장섰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2017년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을 달성했고, 지난해 수출 6천억 불을 넘어 세계 6위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등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국민 복지를 더욱 높이는 포용국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남북미 정상의 결단으로 한반도 안보 상황의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 중입니다.
2017년 베를린에서 나는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제안했고 지난해 1월 북한은 신년사를 통해 이에 화답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북한의 참가와 국제적 지지 속에서 성공적인 평화올림픽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4월 나는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분단 이후 남쪽 땅에 처음으로 발걸음을 디딘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간에 군사적 적대행위를 멈출 것을 합의했고, 비무장지대의 초소 철수와 유해발굴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남과 북은 개성에 설치한 공동연락사무소에서 언제든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남과 북, 유엔사의 군인들이 함께 근무하는 DMZ의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했고, 먼저 남측 구역부터 일반 관광객에 개방했습니다.
남북분단의 상징이었던 비무장지대에 `평화의 길`이 조성됐고, 일반인들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르웨이가 단 한 번도 평화를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고 오늘의 평화를 이룬 것처럼 한국 정부 또한 평화를 위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며, 반드시 평화를 이룰 것입니다.
마침 오늘은 제1차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담대한 의지와 지도력이 큰 기여를 했습니다.
1년 전 오늘, 역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손을 맞잡았고,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새로운 북미관계, 한반도 평화체제의 큰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지금 그 합의는 진행 중입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화가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70년 적대해왔던 마음을 녹여내는 과정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이나 선언이 아닙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깊이 하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의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여전히 상대에 대한 신뢰와 대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대화를 통한 평화 실현에 한결같은 지지를 보내주고 있으며, 지금의 상황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평화란 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는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통찰이 우리 모두에게 새겨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내외 귀빈과 학생 여러분,
우리는 국민의 힘으로 평화를 만들어 온 노르웨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지혜를 배웁니다.
첫째, 일상을 바꾸는 적극적 평화입니다.
평화에 관한 선구적인 철학과 이론을 제시한 `요한 갈퉁`은 평화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직접적 폭력이 없는 소극적 평화와 구조적 갈등요인을 찾아 해결하는 적극적 평화입니다.
갈등의 가장 큰 요인은 서로 간 적대하는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구조적 갈등을 찾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냥 서로 등 돌리며 살아도 평화로울 수 있지만, 진정한 평화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평화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분단이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 심지어 국민의 사고까지 제약해 왔습니다.
그로 인해 경제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정치 문화는 경제 발전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평화가 국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때,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는 노르웨이와 북유럽이 평화를 만들어 온 방법이었습니다.
1950년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 사이에 대기오염, 해양오염 등 환경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노르웨이는 소극적 평화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국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1979년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는 `장거리이동 월경성 대기오염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1985년 대기오염물질을 30% 감축하기로 한 `헬싱키 의정서`는 생활과 밀접한 문제까지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 노력의 산물입니다.
난개발, 오염물질 투기,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로 어족자원이 고갈되고, 생태계가 망가지자, 노르웨이는 연안국들과 해양오염 문제 해결에도 나섰습니다.
1972년 `오슬로 협약`을 체결해 해양투기를 강력하게 규제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오슬로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바다는 대화와 협력, 공감과 이해로 이룬 평화의 모습입니다.
노르웨이의 진심 어린 노력에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남과 북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생명공동체`입니다.
함께 한 역사는 5천년이고, 헤어진 역사는 70년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오가지 못하는 접경지역에서도 산불은 일어나고, 병충해와 가축전염병이 발생합니다.
보이지 않는 바다 위의 경계는 어민들의 조업권을 위협합니다.
갈퉁 교수가 지적한 대로, 남북한 주민들이 분단으로 인해 겪는 구조적 폭력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국민을 위한 평화(Peace for people)`로 부르고 싶습니다.
접경지역의 피해부터 우선 해결돼야 합니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에 따라 설치된 `접경위원회`는 협력의 좋은 사례입니다.
동독과 서독은 접경지역에서 화재, 홍수, 산사태나 전염병, 병충해, 수자원 오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접경위원회`를 통해 신속하게 공동 대처했습니다.
이러한 선례가 한반도에도 적용되어, 국민들 사이에서 평화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이 자라길 바랍니다.
평화가 내 삶을 나아지게 하는 좋은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모일 때, 국민들 사이에 이념과 사상으로 나뉜 마음의 분단도 치유될 것입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커다란 평화의 물줄기도 더욱 힘차게 흐를 것입니다.
둘째, 이웃국가의 분쟁과 갈등 해결에 기여하는 평화입니다.
평화의 소중함을 자각한 노르웨이 국민들은 다른 나라의 평화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체결을 통해 반세기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PLO) 간 갈등을 중재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평화협정은 노르웨이의 평범한 외교관 부부의 상상력과 용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부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고위직을 한자리에 모아 수차례 비밀협상을 진행했습니다.
부부의 노력으로 이-팔 양측은 상대를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아닌 대화와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평화로 가는 과정을 창조한 이 부부의 이야기는 J.T. 로저스에 의해 연극 `오슬로`로 재구성되어, 세계인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작년 말 한국에서도 무대에 올라, 평화를 열망하는 많은 한국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한반도에는 여전히 냉전구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북은 분단되어 있고, 북한은 미국, 일본과 수교를 맺지 않았습니다.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정착은 동북아에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구도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합니다.
역사와 이념으로 오랜 갈등을 겪어 온 동북아 국가들에게 미래지향적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것입니다.
나는 지난해 8월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에너지, 경제공동체로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다자안보공동체로 확대하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가 지역 평화와 화해에 기여하고, 아시아와 유럽의 공동번영으로 이어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국왕님, 써라이데 장관님, 스퇴렌 오슬로대학교 총장님과 학생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매년 5, 6월이 되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가장 높은 `갈회피겐 산`에서 만년설이 녹아내립니다.
좁고 긴 피오르드를 거쳐 마침내 광활한 대양과 만납니다.
한반도 평화의 여정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년설이 녹아 대양으로 흘러가듯 서로를 이해하며 반목의 마음을 녹일 때 한반도의 평화도 대양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노르웨이와 한국은 평화의 동반자입니다. 한반도 평화가 단단히 자리 잡을 때까지 노르웨이가 함께 지혜와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노르웨이가 걷고 있는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향한 숭고한 여정에 대한민국도 늘 함께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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