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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이재오·나경원·안상수 의원은 기억상실증?
이재오·나경원·안상수 의원은 기억상실증?
2006년 "야당 당원 명부를 내놓으라? 어떻게..." 성명을 잊었나
10.02.09 20:39 ㅣ최종 업데이트 10.02.09 20:39
김행수 (hs1578)
한나라당, 압수수색, 정치활동, 동아일보
다음 글은 어느 특정 정당의 대변인 성명이다. 글을 잘 읽고 물음에 답을 한번 해 보세요. 특히 기자님들과 한나라당 관계자분들은 답을 꼭 맞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야당의 당원 명부를 내놓으라는 억지 역공이다. 특히 검찰과 경찰 수뇌부가 정부의 이런 야당 탄압 정책에 동원되어 들러리를 서는 것은 실망을 금할 수 없다. 21세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스럽고 평화스러운 분위기에서 치러져야 될 선거 분위기를 공포로 몰고 가는 이번 조치는 전면 취소되어야 하고 이러한 발표가 나오게 된 배경과 의도, 그리고 주도한 인물에 대해서는 역사적 심판을 위해서도 반드시 규명하여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우리 당은 당원 명부를 내놓을 생각이 없다."
위의 대변인 성명은 어느 당이, 언제 내놓은 성명일까요?
① 2004년 열린우리당 대변인 최재성 ② 2006년 한나라당 대변인 이계진
③ 2008년 민주당 대변인 이낙연 ④ 2010년 민주노동당 대변인 우위영
언뜻 보면 2010년 2월 현재 검찰이 전교조 교사들의 당원 가입과 투표 여부를 확인한다고 민주노동당의 서버를 압수수색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비판 성명으로 읽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글의 주체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이다. 2006년 1월 13일 한나라당의 당시 대변인인 이계진 의원이 내놓은 논평이다.
교원의 정치활동 혐의에 대한 수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 형법에 피의사실공표 금지와 직무상 비밀누설죄가 분명히 규정되어 있어 경찰이 수사상 알게 된 사실을 언론에 알리는 것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거의 매일 새로운 의혹을 흘리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헌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리고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2대에 걸쳐 국회의원을 배출한 공당의 서버까지 압수수색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2006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검찰의 당원 명부 제출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고, 결국 검찰은 이를 포기했다. 물론 당사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2006년 한나라당, 검찰의 명부 요구에 "당원 명부는 생명" 제출 거부
지금까지 정당의 이름으로 저지른 최대의 범죄는 아마 한나라당의 이른바 '차떼기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차떼기 사건 때도 검찰은 한나라당을 압수수색하거나 서버를 압수수색 하지 않았다.
재미 있는 것은 2006년 유령 당원이라고 하는, 당원 명부에 이름은 있는데 자신은 가입한 적도 없고 당비를 낸 적도 없는 페이퍼 당원이 문제가 되었던 때의 한나라당의 반응이다. 이때에 열린우리당에서는 기간당원제를 당 개혁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당 내에서 제기된 유령 당원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경찰에 스스로 수사의뢰를 하고 수사 협조를 한다는 의미에서 서울 봉천동 지구당사를 경찰에 공개했고 경찰이 압수수색을 들어왔다.
이에 한나라당은 자신에게 칼날이 향할 것이 두려워 이를 정당 탄압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나라당의 당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에 대해서 유령 당원 의혹을 품게 된 검찰이 한나라당의 당원 명부 제출을 요구한 것이다. 이때 한나라당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시 언론보도를 찾아보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당시 한나라당의 대변인,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 사무총장 등 핵심들의 말을 되짚어 보자.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 = "정당에 대한 압수수색은 정당정치에 대한 중대한 위해이다. 야당 후보들을 사찰하고 당의 생명이자 근간인 당원 명부를 압수해 야당의 발목을 잡아 놓으려는 음모를 당장 중단하라."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 "시도당이든 중앙당이든 한나라당 당사를 압수수색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지방선거 등 여러 정치 일정을 앞두고 당사를 압수 수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야당 당원들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방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 "정당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것이고 헌법에 보장된 고유 기능을 침해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정당의 고유 기능('정당 당원 명부'를 의미)을 보호할 것이다."
최연희 한나라당 사무총장 = "(수사에) 협조는 하겠지만 법에 근거했다는 명분으로 당원명부를 무조건 내놓으라는 요구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검찰의 당원 명부 요구와 당사에 대한 압수수색 분위기에 대해 '선거를 앞둔 시기에 야당을 탄압하기 위한 불순한 정치적 의도'라고 비난하며 이에 절대로 응할 수 없다는 강경한 뜻을 밝혔다. 결국 검찰은 한나라당의 당원 명부도 보지 못했고, 당사 압수수색도 하지 못했다. 당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지방선거 부정방지를 위한 관계 장관회의에서 "유령당원, 당비대납 등의 행위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엄정 단속을 지시했다. 검찰은 이를 받아서 당원명부, 당비입금계좌 등 수사에 필요한 자료에 대해 정당들에 제출을 요구하면서 이를 거부할 때에는 압수수색, 계좌추적을 포함한 강제수사도 실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 인해 한나라당과의 대립이 격화된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강력한 의지에도 결국 검찰은 한나라당의 명부를 입수하지 못했고,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현재 민주노동당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 태도와는 너무도 다르다.
2006년이나 지금이나 민주노동당은 당원 명부와 정당 압수수색에 대해 일관성이 있다.
당시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의 '노인차비 떼먹기'에 대한 압수수색은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정당에 대해 일괄적으로 당원 명부를 요구하는 조치는 야당 탄압의 소지가 있는 만큼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혀 검찰이 당원 명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단호히 거부했다. 현재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민주노동당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당원 명부를 지킬 것이다"라고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한나라당의 태도는 일관성이 없다.
2006년 4월 한나라당 홍성군수 출마자의 불법 당원 모집에도 압수수색 거부
한나라당이 당원명부 제출과 압수수색을 거부한 사례는 또 있다. 2006년 4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홍성군수 출마자 2명이 당원을 불법 모집하고 당비를 대납했다는 혐의가 불거졌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이 당원 명부 등 관련 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한나라당 중앙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한나라당은 이를 강력하게 저지하고 나섰다.
당시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자료를 제출하라는 명목으로 정당의 기밀을 다 뒤져서 가려는 것 아니냐?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발로 뛰라'고 지시한 것이 결국 야당 탄압을 지시한 셈임을 입증하는 사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계진 대변인 역시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가 예상되자 검찰과 경찰을 앞세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야당의 손발을 묶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이른바 자유당 시절의 선거행태다"라고 비난하며 이를 거부했다. 한나라당의 격렬한 반발에 결국 검찰은 한나라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포기했다. 이 역시 현재의 검찰과는 너무도 다르다.
2007년 동아일보도 거부하여 결국 검찰도 압수 수색 포기
언론은 어떤가? 현재 전교조 교사들의 정치활동 혐의에 대해 각종 의혹을 생산하고 있는 대표적인 언론사가 <동아일보>다. 경찰은 그런 적이 없다는데 전교조 위원장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여 투표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동아>고,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에 대한 체포 영장을 1면에 실어 증거인멸 의혹을 키우고 있는 것도 <동아>다.
피의사실공표죄니 명예훼손이니 개인의 인권이니 하는 것은 애초에 염두에 없는 것 같고, 야당 탄압이니 정당 정치 훼손이니 하는 민주주의의 훼손을 우려하는 반대 목소리는 그들에게는 관심 밖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잣대를 자신에게 돌리면 참으로 우스운 모양새가 나온다. 2007년 7월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에 대한 신동아의 보도를 둘러싸고 이를 밝히기 위해 검찰이 <동아일보>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이때 그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2007년 7월 26일과 27일 서울중앙지검은 <동아일보> 본사 전산실의 중앙서버에 보관된 신동아 허모와 최아무개 기자의 e메일 계정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나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동아일보> 기자들은 "법 집행을 가장한 국가기관의 언론자유 침해에 맞서 절대 물러설 수 없다. 취재원 보호 원칙을 목숨처럼 아끼고 지켜나갈 것"이라 성명을 내고 몸으로 압수수색을 막아섰다. 결국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이 사건을 한나라당은 어떻게 봤을까? 2007년 7월 30일 한나라당 성명 자료실에 올라있는 "검찰의 동아일보 압수수색, 언론자유를 훼손하는 과잉수사[한나라뉴스]"라는 자료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현재 국회의장) = "검찰이 동아일보 전산실에 대해 두 번씩이나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은 언론의 자유와 취재원 보호의 원칙을 침해하는 중대 사태이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여러 기법의 수사를 동원할 수 있겠지만, 특정 언론사 전산실을 통째로 압수수색하겠다는 것은 언론 자유라는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과잉수사에 해당한다."
안상수 공작정치분쇄 범국민투쟁위원회위원장(현 한나라당 원내대표) = "이 부분(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관한 수사는 전혀 하지 않고 엉뚱하게 피내사자도 아닌 동아일보에 대해서 압수수색을 2차례나 걸쳐서 한 것은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전도된 수사라 아니할 수 없다 국정원에 관해서 이 부분을 전혀 조사하지 않고 언론사에 대해서 압수수색이란 가장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무슨 의도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 = "검찰이 신동아 전산실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은 결론적으로 지나친 것이다. … 기자 2명의 이메일 목록과 내용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언론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취재원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취재원 보호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자들의 취재활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 검찰의 이메일 계정 압수수색은 기자들을 발가벗겨 언론활동을 제약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 수사상 꼭 필요하다면 사건과 관련된 이메일만 특정해서 출력하는 게 정상이다. 사적인 내용까지 포괄적으로 압수수색 하겠다는 것은 기본권침해 논란을 부를 수 있다."
검찰의 <동아일보> 전산실 압수수색 시도에 대한 <동아일보>의 반발이나 한나라당의 입장을 지금 전교조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민주노동당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과 연관시켜 보면 하나도 틀림이 없어 보인다. 너무도 정당하고 당연한 주장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왜 그것이 한나라당과 <동아일보>에만 해당되어야 하는가?
<동아일보>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론의 자유가 왜 민주노동당이라는 소수 정당과 교원노조에는 적용될 수 없는가? 언론 자유가 소중하다면서 e메일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는 자들이 어떻게 공당의 서버 전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찬성하고, 합법적인 교원노조의 서버를 통째로 들고 가는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는가?
출처 : 이재오·나경원·안상수 의원은 기억상실증?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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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고건전총리,
高建, "푸른산 볼 때면 朴正熙가 생각난다"
어떻게 해서든 가난을 극복하려는 무서운 집념이 절절하게 다가오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식목일 나무심기가 끝난후 관계자 일행과 식사를 하며 1974. 4. 5
산이 푸르른 계절이 되었다. 푸른 산을 볼 때면 나는 朴正熙 대통령이 생각난다. 朴대통령과의 첫 만남이 산에 나무 심는 일을 매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참 일에 열정을 불태우던 젊은 副理事官 시절,
새마을 擔當官으로 있던 나에게 東大本山에 砂防事業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東大本山은 月城郡 外東面과 蔚州郡 農所面 사이에 있는 큰 산이다 . 도꾜에서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 상공으로 들어오다 보면 이 산이 제일 먼저 눈에 잡힌다.
지금이야 녹화가 잘되어 푸르르지만 당시에는 헐벗은 민둥산이었다. 이 민둥산이 울창한 일본의 산을 내려다보며 날아온 방문객에게 처음 비춰지는 한국의 산이라는 사실을, 朴대통령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방사업의 設計者 겸 현장감독이 되어야 했다. 현지에 가보니 동대본산은 정말 악산이었다. 몇 년간 사방사업을 했지만 거듭 실패했다고 한다.
비가 오면 흙이 곤죽이 되어 무너져 버리는 특수토질이라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방법, 저 방법 생각하다가 부산의 어떤 토목과 교수로부터 자문을 구했더니 一般 砂防方式(일반 사방방식)으로는 안되고 ‘特殊砂防工法(특수 사방공사)’을 써야한다고 했다. 鐵筋(철근)을 넣어 콘크리트 수로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대로 해 보았다. 정말 대성공이었다. 청와대에 결과보고를 했더니 대통령이 주재하는 經濟動向報告會(경제동향 보고회)에 참석해 그 내용을 직접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무가 꽤 자라난 일년 뒤에는 전국의 시장, 군수를 현장에 모아 녹화교육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실적이 있어서인지 ‘第1次 치산녹화 10년 계획’을 수립하는 莫重(막중)한 과제가 내게 맡겨졌다. 워낙 농림부가 해야할 일이었지만 새마을 사업을 추진하던 내무부가 그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두어 달 밤낮없이 매달려 계획을 만들었더니 關係長官會議(관계장관 회의)에서 計劃立案者(계획입안자)가
직접 보고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떨어졌다. 보고날짜가 잡혀졌다. 차트사를 붙잡고 보고 전날 밤 한숨 안자고 일을 했지만 보고시간 10시에 임박해서야 겨우 차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차트를 들러메고 청와대 회의장에 도착하니 보고시간은 이미 10분이나 지나 있었고 朴대통령을 위시해서 총리, 장관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낭패스럽던 생각을 하면 몇십년 지난 지금도 등에 식은 땀이 난다. 당황스러운 속에서도 심호흡을 하고 보고를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녹화10년 계획의 기본방향으로 國民造林(국민조림), 速成造林(속성조림), 經濟造林(경제조림)의 세 원칙을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훔쳐보니 대통령의 눈빛이 빛나며 고개를 끄덕이고 계신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휴- 하고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준비한대로 찬찬히 브리핑을 진행할 수 있었다. 보고 중간 중간 대통령은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하셨다. 하나같이 산림녹화에 대한 熱情(열정)과 執念(집념)이 느껴지는 말씀들이었다. 師團長(사단장) 시절의 에피소드도 이야기하셨다. 部隊 巡視(부대 순시) 길에 플라타나스 가지를 지팡이 삼아 꺾어 짚고 다니다가 무심코 거꾸로 꽂아놓고 歸隊(귀대)하셨던 모양이다. 나중에 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다보니 거꾸로 꽂힌 지팡이에서 싹이 돋았더란다. 나무의 생명력에 감탄을 했다 하시며 파안대소를 하셨다. 그때 웃으시는 대통령 입안에 덧니를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 地方局長(지방국장)으로 승진한 다음에는 대통령을 자주 뵐 기회가 있었다.
매달 한번씩 청와대에서 새마을 國務會議(국무회의)가 열렸는데 이때 유일한 안건인 새마을사업 추진상황을主務局長(주무국장)으로서 보고 드리곤 했었다.
모두 합해 21번 보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대통령이 새마을 사업에 대해 가졌던 열정은 잘 알려진 바이지만 ,매 회의마다 그 분이 우리 농촌과 국토에 대해 가졌던 뜨거운 애정,빈곤했던 우리의 역사에 대한 한에 가까운 처절한 심정,
그리고 貧困(빈곤)을 克服(극복)하여 경제대국을 이룩하려는 결연한 집념에 숙연해지곤 했다. 그뒤 나는 전남지사를 거쳐 行政首席(행정수석)이 되었다. 1979년 1월 3일에서 10월26일 돌아가시기까지 열달 동안 바로 옆에서 대통령을 모셨 다.이 시절에는 대통령과 首席秘書官(수석비서관)들과의 저녁 회식 자리가 잦았다.
그전에는 잘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찬이 있었는데, 이 시절에는 매주 한 번 이상이 될 정도였다.
영부인이 돌아가신 뒤 외로우셔서 그러셨으리라 짐작한다. 朴大統領은 저녁에 곁들여 飯酒(반주)를 드시곤 했다. 막걸리 아니면 양주였다.
막걸리도 특별한 것이 아니고 고향군에서 만든 일반 막걸리였고, 양주는 시바스 리갈이 고작이었다. 반주를 드시면서 옛 이야기도 자주하셨다.그러다가 가끔 흥이 나시면 '비탁' 칵테일을 만들어 돌리시곤 했다. 비탁이란 맥주 한 병을 탁주 한 주전자에 섞은 朴大統領 秘藏(비장)의 칵테일이다.비탁 칵테일을 '調製(조제)'하시는 대통령에게 옆에 앉았던 내가 “조제는 제가 하지요”하니까
“어이, 이 사람, 이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당신은 配合比率을 모르지 않나”하시면서 젓갈로 비탁을 휘휘 저으시고는 우리들에게 비탁 칵테일의 사연을 들려주셨다. 일제하 대통령이 聞慶(문경)국민학교 선생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젊은 선생들이 ‘기린 비루’를 마시고 싶기는 한데 워낙 박봉이라 마음놓고 마실 형편은 못되었다 한다.
그래서 추렴한 돈으로 비루(맥주) 두어 병을 사 탁주 한 말에 부어 함께 돌려 마시곤 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구미 상모리에 대농 한 사람이 있었는데,이 지주 집에서 모내기를 할 때면 온 동네사람이 모두가 품앗이를 했다 한다
이 때 마을 아이들과 함께 朴대통령도 따라 가곤 했었는데 그 때 지주 집에서 주던 밥과 반찬 맛이 어른이 되어서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특히 호박 잎에 얹혀진 ‘자반고등어’ 한 토막이 그렇게 맛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통령이 마음속에 간직한 가난한 시절에 대한 한과어떻게 해서든 가난을 극복하려는 무서운 집념이 상대적으로 안녕하게 성장한 나에게도 절절하게 다가오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뒤로 나도 비탁 칵테일을 몇번 만들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朴대통령이 만들어 주시던 그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우리가 잘 살게 된 탓에 내 입맛이 변한 것인지, 배합비율의 비결을 몰라서인지,아니면 그 둘 다 인지 알수 없다.
※편집자 주.
고건 前 총리가 서울특별시장 재직시 박정희 前 대통령을 회상하면서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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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Dirty Hands...
빅토르 유시첸코는 대선 1차 투표를 앞둔 2004년 9월 5일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 국장 일행과 키예프 교외의 별장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극심한 복통과 함께 얼굴 피부가 심하게 손상되는 증상을 보였다. 즉각 현지 병원에서 1차 검진을 받았으나 식중독 진단이 나왔고 다시 오스트리아 병원에서 검진을 받은 결과 다이옥신 중독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었다.
알렉산더 리트비넨코는 런던 피카디리 광장에서 이탈리아인 마리오 스카라멜라를 만났다. 2006년 10월 7일 체첸에서 러시아 당국의 만행을 폭로하려다 살해당한 러시아 여기자 안나 폴리콥스카야 사건과 관련한 서류를 넘겨받기 위해서였다. 리트비넨코는 폴리콥스카야를 살해한 범인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스카라멜라로부터 폴릿콥스카야 사건의 용의자들로 FSB 요원의 이름이 적힌 서류를 전달받았다. 둘은 인근 초밥 식당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으며, 통증을 느낀 것은 집으로 돌아와 몇 시간이 흐른 뒤였다. 리트비넨코는 곧바로 병원에 달려갔지만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고, 17일 대학병원으로 옮겼으나 5일 만인 23일 그는 결국 사망했다.
2006년 10월, 러시아 일간지 노바야가제타의 안나 폴릿콥스카야 기자(48)가 모스크바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됐다. 폴릿콥스카야 기자는 당시 러시아군이 체첸에서 자행한 고문과 인권 유린을 폭로하는 기사를 준비 중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2007년 8월 러시아 검찰이 그녀의 사망과 연루된 러시아 정부기관 및 내무부 요원 10명을 체포하면서 진전을 보이는 듯했으나, 이들 용의자가 증거 부족으로 풀려나면서 다시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안나는 푸틴 집권 이후 13번째로 청부 살해당한 러시아 언론인이기도 하다.
군 당국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써 왔던 러시아의 군사전문 기자의 추락사에 살해 의혹이 제기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의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의 이반 사프로노프 기자는 2007년 3월 2일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5층 계단 창문 아래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코메르산트는 5일 기사에서 사프로노프 기자가 평소 군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써 온 보복으로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코메르산트는 “수사 결과가 자살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이를 부인한다”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나라에서는 당국이 싫어하는 기자들이 속속 죽어나간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우주군 대령 출신인 사프로노프 기자는 1997년 입사 이후 군 당국을 비판하는 기사를 여러 건 써서 연방보안국(FSB)에서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 신형 블라바 대륙간탄도미사일이 3차례 연속 발사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처음 보도해 정부를 당혹하게 했다. 이 미사일 발사 계획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핵전력의 주축”이라고 추켜세웠던 것이다.
1967년 영국에 망명하려고 했던 소련인 물리학자 블라디미르 토카첸코. 망명직전에 그는 소련대사관으로 끌려와서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태워졌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독물이 체내에 퍼져 있었다. 영국인 의사단이 최선을 다했으나 해독시킬 수 없는 심한 독물이었다. 그에게 투입된 독물에는 방사능이 끼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영국정부는 할수없이 소련대사관과 협상에 들어갔다. 소련측은 만일 그가 소련측에 인도되기만 하면 생명을 살려낼수 있다는 약속을 영국측에 했다. 인명을 제일로 삼고있는 영국정부는 그들의 약속을 믿고 토카첸코를 소련대사관에 인도했다. 그후 토카첸코의 소식은 오리무중에 빠져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1941년 2월10일 공산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한 후 워싱턴에서 숨진 채 발견된 월터 크리비츠키. 그는 사인이 밝혀지지 않아 결국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그 진상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1937년 9월. 옛 KGB 공작원 이그나세 라이스가 공산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한 후 스위스 로잔에서 무장괴한들의 자동소총 세례를 받고 사망했다.
볼셰비키 혁명가이며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스탈린과의 타협을 거부했던 레온 트로츠키는, 1936년부터 시작된 스탈린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가족과 거의 모든 측근을 차례로 잃고 해외로 도피와 망명을 거듭했으나 1940년 8월 20일 망명지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암살 공작원에 의해 등산용 송곳으로 무참히 살해당했다.
(피격에 사용된 브라우닝 권총과 사건현장 / 성형수술 전과후)
1996. 2. 13 김정일 본처 성혜림 일행 서방 방문 보도
1997. 2. 15 경기도 분당 서현동 아파트에서 괴한에 권총 피격
1997. 2. 16 국무총리 긴급 안보 치안 관계장관회의 개최, 이한영 피격사건 수사본부
(본부장 경기경찰청장 김덕순)설치
2. 25 피격 11일만인 오후 9시 이한영 사망
10. 27 부부간첩 진술토대 이한영 피격사건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특수 공작조
‘순호조’ 소행, 성형수술을 하고 내려와 임무수행후 입북 확인 수사발표
1988년 중앙일보 자매지였던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사회부장이 OOO요원에 테러를 당한 뒤 병원에 입원해 누워있다.
88년 8월 6일 오전 7시30분 서울 강남구 청담동 S아파트 입구. 당시 오홍근 중앙경제신문(당시 중앙일보의 자매지) 사회부장이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OOO요원 4명이 오 부장의 팔을 잡고 "대공에서 조사할 것이 있으나 같이 가자"고 끌고 가려 했다. 이들은 오 부장이 저항하자 얼굴을 때려 넘어뜨린 뒤 작전용 특수칼로 오 부장의 왼쪽 허벅지를 찌르고 달아났다. 수사 결과 테러 사건에 가담했던 이OO 등 3명이 구속 기속되고, 이OO 등 5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이OO은 월간중앙 88년 8월호에 게재된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제목의 오홍근 칼럼이 군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다며 부하인 박OO에게 오 부장 테러를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가 의문사한
고(故)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 사건 일지
1973년 10월 16일 최교수 중앙정보부에 출석
10월 18일 최교수 의문사, 중앙정보부, ‘간첩활동 자백하고 투신했다’고 발표
2005년 2월 14일 2심법원, 국가는 유족에게 18억 4천 8백만원 손해배상 판결
4일 오전 계동 현대사옥에서 투신자살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의 시신을 경찰들이 수습하고 있다.
전 국정원직원 김기삼씨는 5월 3일, 워싱턴 D.C 내셔널 프레스센터' 에서 "노벨상 수상 공작 전모"를 밝혔다. 김기삼씨의 폭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1)~(6)...생략>
“(7). 정몽헌 회장을 시켜 김정일에게 15억 달러(1조 5천억원)를 전달하였고 이러한 비밀을 끝까지 숨기기 위해 정몽헌 회장을 살해하지 않았나 의심된다.”
우리는 여자 일행이 탄 차가 대기하는 순간 모셔다 드리겠다며 기다리라고 한 뒤 카지노에서 나와 막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려는 김형욱 앞에 서서 “밖에 여자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안내했다. 김형욱은 약간 술이 올라 있었다. 여배우가 타고 있던 캐딜락 문을 열자마자 “저희가 모시겠습니다”하면서 팔을 잡고 부축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동시에 즉시 코에 마취제를 스쳤다. 타고 있던 여배우 일행에게는 “많이 취하셨으니 오늘은 저희가 호텔로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차에서 내리도록 했다.
--여배우 일행이 보는데 그게 가능한가?
첫 만남이기 때문에 김형욱은 우리를 여배우의 보디가드로 알고 있었다.
그녀가 당시 한국 정계에 대단한 파워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보디가드를 붙였다고 해도 김형욱은 의심하지 않았다. 여배우는 거꾸로 우리가 김형욱의 보디가드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축하고 앉히고 하는 과정에 특수 기술을 썼다. 그런 기술을 쓰면 사람은 어리어리한 상태로 잠시 말을 못하고 술취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김형욱을 앉히자마자 여자 손님에게 “오늘은 너무 취하셨으니 저희가 호텔로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순간에 그렇게 납치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김형욱 제거는 우리 팀이 이미 1년 전부터 준비했다. 1978년 11월부터 일본을 경유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본부를 둔 비밀 정보기관 모사드에 파견되어 특수 훈련을 받았다. 암살 현장답사와 실행 지휘는 내가 담당했다.
이스라엘 정보 및 특수공작 연구소 관할로 모사드 내의 모사드라 불리는 전투 공작원 관리담당 극비부서 코메미우트 소속 살인 납치 전담기구 키돈.
이들이 받는 정식 교육은 다양하고 전문적인 내용이다.
이들이 실제 활동에서 애용하는 것들 중 스틸레토 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칼끝으로 가면서 넓어졌다가 끝에 가서는 다시 좁아지는 칼날이 달린 예리한 단검이다. 이 칼은 찔렀다가 뽑아도 피가 밖으로 흐르지 않는다. 뽑을때도 살이 도로 붙게 된다. 이 칼의 특징은 갈빗대 사이로 깊숙이 찔러서 비틀면 안에 있는 것이 다 찢어진다는데 있다. 그런 다음에 그냥 뽑기만 하면 된다.
또 다른 것으로 엄지와 검지에 칼날이 하나씩 달려 있는 특수장갑과 갈고랑쇠가 함께 사용되는 야르멜커가 있다. 장갑을 끼고 두 개의 칼날(하나는 스위스 군대에서 쓰는 칼같이 접히게 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융단칼처럼 생겼다)을 붙인다음 다시 갈고랑쇠를 붙이는 형태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목을 쥐고는 손만 오므리면 된다. 마치 가위의 용도와 같다. 뭐든지 자를 수 있으나 금방 끝나지 않는다. 죽이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이것을 사용하려면 힘이 좀 세야 한다. 주위의 이목을 끌게될 염려를 없애기 위해 머리꼭지 뒷부분을 밀고 거기에 머리카락으로 만든 야르멜커를 엮어 넣은 가발을 사용하기도 한다.
언제인가는 차속의 요인을 암살하는 과정에서 차 뒷유리로 걸어가 9밀리 피스톨의 연장된 탄창을 사용 두 사람의 머리를 잽싸게 번갈아가며 열한발을 쏘고 확인하기 위해 운전석 옆으로 가서 보니 두 사람의 머리부분이 아예 없어져 버렸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구소련의 KGB가운데서도 가장 극비부문으로 알려진 제1국의 V과는 암살, 유괴, 파괴공작 등 특별지령공작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부문으로, 그 존재와 활동내용 등은 다른 과의 멤버에게조차 밝혀지지 않는다.
제1국은 해외에 있어서의 극비활동을 한손에 맡고 있는 기관인데 그 중에서도 V과는 초극비성이 요구되는 가장 위급성을 지니는바, 매우 어려운 공작들을 내용으로 하는 일들이다. V과는 “최종적 해결책”의 실천을 주로 하는 기관이다.
훈련의 시작은 심리전에서부터이다. V과의 멤버는 한마디로 전문암살자이고 테러리스트의 지도자가 되어야만 한다. 여기에는 온갖 폭력과 피비린내 나는 장면에 대한 정신적인 면역 상태를 지녀야 하는 것을 절대로 필요로 한다.
훈련생은 캄캄한 방속에서 의자에 앉혀진다. 그리고 양팔과 몸의 둘레는 벨트로 꽁꽁 묶여서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얼굴은 정면으로 향해진 채 움직일 수 없도록 고정되고 두 눈을 깜박거릴 수 없도록 특별한 장치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러한데서 오는 반응을 재기 위해 뇌파, 심장의 고동, 호흡, 페이스 등을 탐지하는 기구가 몸에 채워진다. 정면에는 영화용 스크린이 걸려진다. 훈련생은 모든 정력을 한곳으로 집중시켜 스크린을 보도록 지시받는다.
처음에는 매우 부드러운 필름에서 시작된다. 예를들면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성인식에서 한 소년이 마취하지 않은 채로 할례를 받는 장면이라든가, 기혼여성의 바람기를 막기위해 생식기의 일부를 잘라내는 장면, 제왕절개 수술이나 양족절단수술 등인 것이다.
필름은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간다. 루비앙카 형무소 안에서의 고문, 시베리아에서의 처형, 나찌의 유대인 대량학살 등. 이러한 필름은 KGB기록 보존소에 산처럼 쌓여 있으므로 부족함이 없다.
대부분의 훈련생은 처음 두 세 개의 필름을 보는 시점에서 구토증을 일으킨다. 그리고 제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듯이 위장을 해도 부착된 탐지기를 속이지는 못한다. 특히, 헝가리 동란때의 것으로서 다섯 살 가량의 어린이가 소련군전차에 돌을 던졌는데 전차 뒷뚜껑이 열리면서 소련병사가 기관총의 조준을 맞춘다. 다음 순간 어린이의 몸체는 박살이 나고 두개골과 내장은 주위에 산산이 흩어지는 장면처럼, 훈련생이 강한 반응을 보인 필름은 몇 번이고 되풀이되어 스크린에 비춰진다. 며칠이고 계속해서 보는 동안에 저절로 그 반응도가 희미해진다. 3개월 후에, 반응이 제로이든가 그에 가까운 상태에 있으면 성공으로 간주된다.
이 일이 끝난 다음에는 암살과 테러에 관한 실천적인 연수의 단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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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유시민 인터뷰~~~이 대통령은 학습 의지가 없다
이 대통령은 학습 의지가 없다
정치인 유시민의 마지막 인터뷰… 쇠고기 협상 보면 대통령 독주, 부처 간 협조체제 완전히 무너져
▣ 글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표지이야기 2부-요동치는 정치권]
5월29일 17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무소속 유시민 전 의원도 여의도를 떠났다. 유 전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집권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앞으로 ‘지식소매상’, 혹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게 될 그가 <한겨레21>과 정치인으로서는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6월3일 취임 100일을 맞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주요 소재였다.
유시민 전 의원은 “이전 정부의 장관을 지냈던 사람으로서의 국민의 선택을 받아 당선된 현직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은 결례”라면서도 “혹시 이 대통령이나 측근들이 <한겨레21>을 본다면, 대통령은 혼자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뭉친 사람들이 공무원 및 국민과 함께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꼭 살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정치가 여론을 수렴해주지 못하니까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불과 5년, 10년 전만 해도 시민들이 여의도에 있는 주요 정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많이 했다. 이제는 정당과 정치에 기대하는 것이 없으니 국회나 정당 앞으로 가는 대신 직접 청계광장이나 광화문, 거리로 나가고 있다. 정치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정치 이외의 수단을 통한 정치’가 집권 초기부터 나타나고 있는데, 굉장히 위험한 현상이고 국가적으로 볼 때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지난 5년간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둘러싸고 언론과 지식인 사회에서 펼친 담론을 종합해보면, 이런 조건에서는 누구도 성할 수 없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됐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난 5년간 특히 미디어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과잉 기대를 한없이 부추겼다. 지난 대선을 봐라. 마치 메시아를 뽑는 선거 같지 않았나. 이렇게 된 데에는 대통령의 의도와 무관한 많은 객관적 요인도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 개인의 문제는 없나.
=사실 지난 선거 때 상당히 걱정스럽게 봤다. 이 대통령 본인부터 유세를 다니면서 ‘분식집 사장님, 장사 안 되죠. 내가 잘되게 해줄게요’라는 말을 했다. 지금의 수급 구조에서는 미용실이나 분식집이 장사가 잘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영세 자영업이 만성적 공급 과잉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구조의 조정이 필요하고, 국민 개개인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뒤따른다. 그런데 어떤 메시아가 내려와서 누구도 알지 못했던 절묘한 해법을 제시해 단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대책 없는 기대를 보수 언론이 지난 5년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일부 진보 언론도 거기에서 면책되기는 어려운데, 이 대통령이 이런 환경을 너무 무시했다. 스스로 대책 없는 기대를 부풀린 측면도 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불가피한 것 아닌가.
=물론이다.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고, 당선되고 난 이후에는 리더십과 철학, 통치 스타일, 의사결정 방식 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누구보다 문제를 잘 알고 있고, 내 말대로 하면 해결된다’ 이럴지 모르지만 지도자가 늘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학습이다. 이 대통령은 학습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경우는 어떤가.
=바로 쇠고기 협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알아, 내가 설득할게’ 이런 태도가 나타났다. 전혀 모르는 분이 ‘축산농가의 피해가 있지만 그건 돈으로 대책을 세우면 되고, 결국 소비자의 이익이야’ 이런 건데, 도장 찍을 때 협정문이나 읽어봤는지 모르겠다.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거다.
유 의원도 참여정부에서 복지부 장관을 지낼 때,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나.
=우리는 철저히 부처 간 협조체제 안에서 협상을 진행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경우 광우병은 인수공통(동물로부터 사람에게 감염되는) 전염병이라 당연히 협상문에 도장을 찍으려면 농림부와 복지부 등 관계부처 장관이 합의해야 한다. 참여정부에서는 위생조건을 협상할 때 통상교섭본부와 농림부, 복지부가 끊임없이 협의했고, 농림부가 갈 때도 복지부에 의견을 물어왔다. 복지부가 OK 해주지 않으면 합의 못했다. 지금 복지부는 뒤로 빠져서 구경만 하고 있다. 부처 간 협조체제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이 대통령의 ‘학습 의지’를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학습 능력’은 있다고 보나.
=의심스럽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 하루 차량 220대 지나가는 톨게이트를 찾아서 예산 낭비를 줄이라고 했는데, 그런 톨게이트는 국내에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얼마 뒤에 또 그런 말을 했다. 청와대에서 아무도 ‘대통령님,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그런 말씀은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누군가 말했는데, 귀담아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참여정부에서는 나부터가 ‘대통령님, 안 됩니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뭔가.
=장관들 기능이 거의 죽어 있고 (청와대) 수석들이 책임은 안 지면서 뒤에서 움직여서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데, 대통령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 자신보다는 정부 공무원들이 아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관계장관 회의에서 장관 세워놓고 쿡쿡 찔러서 아무거나 물어보고, 대답하지 못하면 사정없이 깨버리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해당 부처에서도 장관의 영이 안 선다. 그건 공무원 사회를 완전히 죽이는 거다. 장관도 실국장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중앙인사위원회에서 만든 장관 리더십 매뉴얼에 나와 있다. 질책할 일이 있으면 따로 독대해서 하면 된다.
이 대통령의 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위기와 비교되기도 한다.
=큰 차이가 있다. 참여정부 때는 개별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거의 다 높았다. 심지어 종부세에 대한 지지율도 높았다. 그런데 대통령의 정치 행위, 혹은 말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았기 때문에 대통령의 낮은 인기가 지지도 높은 정책의 수행을 때로는 방해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영어몰입 교육부터 시작해 0교시 부활이나 우열반 등 교육정책, 최근 쇠고기 파동이나 한반도 대운하까지 지지도가 높은 정책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높은 것이 공직사회 때리기다. 이건 ‘철밥통’에 대한 국민의 정서적 반감 때문에 높을 수밖에 없다. 이걸 빼면 나머지 정책의 지지율은 바닥이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렇게 낮아진 것은 단순히 정서적 이유가 아니라 국민이 원치 않는 정책을 무작정 밀어붙인 데서 오는 현상이다. 양상이 완전히 반대다.
가자서작성일
2008-06-0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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