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346);
-
-
-
[밀리터리] 이근대위가 말하는 K2 탄피받이 문제점
이근대위의 K2 탄피받이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는 유튭입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탄피받이를 하는것 자체가 군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이것때문에 효율적인 훈련 불가능- 탄피받이 부피가 커서 총기오발 안전사고나, 탄창해체가 굉장히 불편함- 무엇보다 기능고장 처치가 문제, 반복숙달훈련으로 실전에서도 본능적으로 신속하게기능고장조치를 해야하는데 탄피받이 때문에 적절한 기능고장처치 훈련이 안됨 제가 일전에 한국군 훈련체계는 재편되어야 한다고 글을 썼습니다.https://www.jjang0u.com/board/view/military/15069664 현재까지도 대다수의 현역들은 사격장 호안에서 의탁사격 그리고 1년에 한두어번방독면 사격이나 야간사격을 실시하는게 이것만으로, 바로 실전에 투입하기에는많은 무리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일례로 6.25 인천상륙작전당시 인천에서 서울로 넘어가는 부평부근 북한군과 시가전에서수많은 해병대원들이 전사했다고합니다. 이근대위역시 특수부대 일반 보병부대할것없이 CQB, 기동사격, 전진무의탁사격, 전천후 사격을 실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과 전면전이 벌어지면, 우선 보병이 평양을 거점점령하게 됩니다.이라크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군 보병들이 바그다그를 점령했습니다.그런데 우리 보병들은 CQB를 배운적이 없으니까 일반 보병부대들은 특수부대가 올때까지시가지에서는 지원병력이 올때까지 기다려야 될까요?? 모든 전투 군인들은 언제 어디서 어느상황에서든 간에 실전투입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얼마전 몇몇 보병부대에서 시범적으로 기동사격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이근대위는좀더 실전지향적이고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이 30년전부터 실시 되었어야 했다고 합니다.아직도 2차 세계대전에서나 가르치던 훈련법을 훈련소에서 가르치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쓴글에 몇몇분은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그건 특수부대에서나 가능한것”,"시가지전 전문부대가 있어서일반 보병부대는 배울필요성이 없음","요즘은 참호전 성격이 더 짙어졌고 강력한 첨단무기가 많아서 필요없음" ??????????????????????? 그럼 전쟁날때 특수부대나 강습 시가지전 전문부대가 없으면 시가지전을 못한다는 말이네요?우리나라 전국토의 20%정도가 도시인데, 보병들은 구경만해야 겠네요? 남북 전면전시에평양점령은 보병들이 못한다는 말씀이네요?? 미군의 경우 보병 특수부대 할것없이 기동사격 전천후 사격 전진무의탁사격 CQB를 실시하고있습니다.근데 우리나라 국군들은 전부 호안에서 의탁 사격만 했으니까 시가전이나 기동사격은못해!실전에도 투입못할 군인들 세금으로 운용하려면 뭐하러 애들 군대보내고 군복입히고 총쥐어 줍니까?언제까지 2차세계대전 6.25때나 가르치던 구시대 구닥다리 훈련법으로 교육시켜야 합니까? 이전 글에도 적었지만, 군인이 나라를 지키는게 1순위이고 그 다음으로는 전투원 하나하나 몸안다치고 건강히 작전수행후 집으로 돌아오는것도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언저 어느때 어느상황에서적절한 사격을 하고 전투를하고 생존하는것 이런걸 교육시키고 항상 실전에 대비하는것이군대의 역할 아닐까요?
-
-
-
-
-

[엽기유머] 2020년 8월 호국인물: 김홍일 육군 중장
전쟁기념관은 8월의 호국인물로 김홍일(金弘壹) 육군 중장을 선정하였다. 고(故) 김홍일 육군중장은 대한제국 시기인 1898년 9월 23일, 평안북도 용천군 에서 태어났다.그는 계몽주의 독립운동의 본산이었던 오산학교 졸업 후, 황해도 신천의 경신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지만,오산학교 출신자들이 항일운동 혐의로 탄압을 당하자 이를 계기로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하였다. 1920년, 구이저우[貴州]군 소위로 임관 후 무장투쟁이 치열하던 연해주 대한의용군사회에서 근무하였다.1926년 국민혁명군 소령이 된 후, 1927년 용담(龍潭)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고,1931년에는 상하이 병기창 주임으로서 이봉창·윤봉길에게 폭탄을 제공해 임시정부의 의열 투쟁을 지원하였다. 1938년, 중일전쟁 만가령 전투의 승리를 이끌어 외국인으로서 드물게 국민혁명군 소장으로 진급하였다.그는 임시정부의 권유로, 1945년 한국광복군 참모장에 취임하여 광복군의 육성에 힘썼다.대한민국 정부가 수립 직후, 귀국하여 육군준장으로 특별 임관하였고, 이듬해 소장으로 진급하였다.6·25전쟁이 발발 당시 육군참모학교장이었던 그는 6월 28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서울 북방에서 분산 철수하는국군 부대를 수습하여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그의 지휘를 통해 국군은 한강에서 6일 동안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였고,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고 첫 지상군을 한반도에 파견하는 귀중한 시간을 확보하였다. 7월 4일에는 제1군단장에 취임하여 중부전선의 지연전과 낙동강선 방어 작전을 지휘하였다. 이후 육군종합학교장으로서 초급간부 양성에 전념하던 그는 1951년 3월 중장으로 예편하였다.그리고 대만대사, 외무부장관, 국회의원, 신민당 대표, 광복회장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1980년 8월 8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정부는 군인으로서 그의 공을 기려 1951년 7월 26일 태극무공훈장을, 독립운동 유공으로서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수여하였다.그가 타계한 직후인 1980년 8월 11일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여 그의 공로를 드높였다. [출처: 전쟁기념관 https://www.warmemo.or.kr/front/viewAritcle.do] ------------------------------------------------------------------------------------------------ 몇일전 백선엽 현충원 안장 논란때, 대한민국 참군인으로서 유튜브 '황현필 한국사'에서도 언급되신 김홍일 육군 중장님이 2020년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되셨습니다 이분이야말로 대한민국 명예원수로 추대되어야 한다고 생각되기에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올립니다
아쿨라작성일
2020-07-31추천
33
-
-
-
-
-

[엽기유머]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각국의 평가 퍼옴
분석] 외국 언론이 평가한 한국 정부의 대응[오마이뉴스 원인성 기자, 김철웅 기자]한국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잘한 것일까, 못한 것일까? 아직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대구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야당과 보수언론들의 총공세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도 한때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2015년 메르스에 대한 대응 실패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급락한 전철을 밟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외국 언론들이 한국정부의 대응을 칭찬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미국 프랑스 등 강대국 정상들이 전화를 걸어와 협의를 요청하자 급반전되었다.그렇지만 보수-수구진영과 그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비판적이다. 미래통합당 지지율과 엇비슷한 수준의 부정 평가 여론이 존재한다. 코로나19의 감염력이 강력하다는 점, 모든 대륙을 휩쓰는 팬데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도 코로나19는 쉽게 종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보수언론과 야당은 다시 총공세를 펼치며 정권을 흔들려고 할 게 자명하다. 세계적인 감염병과 사투를 벌이면서 보수-수구진영의 정치공세에도 맞대응해야 하는 게 우리 정부의 어려움이다.한눈에 보는 세계 각국의 코로나 방역 성적표 한국 정부가 대응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다음 그래프를 보면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다. 영국의 <BBC>,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추이에 관한 주요 국가별 그래프이다. 대부분 나라가 급격한 커브를 그리지만 한국만 확실히 다른 모양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이들에게는 이 그래프 하나만 보여주면 된다. ▲ BBC가 소개한 확진자 수 추이 ⓒ BBC, Johns Hopkins University 정부 코로나 방역에 대한 국민의 전반적 평가국민들도 다수가 우리 정부의 대응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조사기관이 달라 동일선상의 비교는 곤란하지만 긍정 평가의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도 같은 조사기관의 정기조사에서 상승하고 있는데,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긍정 평가가 반영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1) 3월 27~28일 경향신문이 의뢰한 여론조사전문기관 매트릭스리서치 조사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에 대해>- 긍정 평가 77.0% : '매우 잘하고 있다'(36.4%), '잘하는 편이다'(40.6%)- 부정 평가 22.0% : '잘 못하는 편이다'(12.9%), '매우 잘못하고 있다'(9.1%) ▲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대응에 대한 긍·부정 평가 3월 27~28일 경향신문이 의뢰한 여론조사전문기관 매트릭스리서치 조사ⓒ 원인성 (2) 3월 1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조사<우리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평가>- 잘한다 58.4% : 매우 잘함(36.4%), 대체로 잘함 (22.0%)- 잘 못한다 39.9% : 매우 잘못함(26.9%), 대체로 잘못함(13.0%) ▲ 코로나19 감염증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월 5일 오마이뉴스가 의뢰한 리얼미터 조사ⓒ 원인성 (4) 대통령 직무 수행평가, 정당 지지도-최근 20주 지표 추이 (출처 : 한국갤럽)- 매주 화~목 통합데이터- 휴대전화 RDD조사(집전화 RDD 보완)|- 매주 유효표본 약 1천 명(표본오차±3.1%, 포인트 95% 신뢰수준)- 최근 20주 평균 응답률 15% ▲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에 의거 광화문광장 등 도심집회를 금지한 가운데 2월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대표 전광훈 목사) 주최 대규모 집회가 강행되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중국인 입국금지 피켓을 들고 있다.ⓒ 권우성 (1) 초기에 중국을 차단하지 않았다?- 중국인을 차단하지 않아 그들이 국내에서 심각한 전파자가 되었다는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초기부터 중국인 입국을 봉쇄했으나 급속도로 전파되었다.(2) 마스크 공급에 혼란을 초래했다?- 사태 초기 국내 하루 생산량이 1천만 개 이하이므로 수요에 비해 근본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중국에 지원한 물량이 사태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규모였다.-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발생한 마스크 가격 급등 현상이 크게 벌어지지 않았고, 매주 2개 공급 정책으로 곧 안정을 회복했다.(3)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독일을 제외하고 확진자 대비 사망자 수가 외국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사망자 숫자의 절대치도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4) 의료진과 시민들이 잘한 것이지 정부가 잘한 건 없다?- 보건당국·의료진이 잘할 수 있도록 지휘·관리하는 게 정부의 능력이다.- 대응을 총괄·지휘하는 질병관리본부 자체가 정부 조직의 일부라는 사실.(5)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므로 자화자찬할 것 없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보면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국 언론이 평가한 한국 정부의 핵심 대응(1) 대대적 검사: 사태 초기부터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검사했다. 검사-격리-치료에 드는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여 검사를 회피하지 않도록 차단했다. (다른 나라들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부분)(2) 신속한 대응: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 및 공간을 휴대전화-교통카드-신용카드 등으로 파악하여 신속하게 방역했다. (다른 나라들은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시행하지 못함)(3) 투명한 정보공개: 정부가 모든 내용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함으로 신뢰를 확보했다. (다른 나라들은 초기에 사태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아 불신 초래)(4) 시민의 협조 끌어냄: 투명한 공개를 통한 정부 신뢰와 시민들의 인식을 높여 사회적 거리 확보, 마스크 착용 등 자발적 참여 분위기를 형성했다.(5) 철저한 사전 준비: 보건당국이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모의훈련 진행, 발생 초기에 민간 기업들과 협업하여 진단장비 신속 개발하고 승인했다. 해외 언론의 칭찬 ▲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을 보도하는 영국 BBC 뉴스 갈무리.ⓒ BBC (9) 영국 <BBC방송> 3월 12일- 미국 조야에서 평가받고 있는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이 다른 나라의 '롤모델'이다.-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싸우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을 검사하는 능력은 한국을 롤모델로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는 매일 거의 2만 명이 검사를 받고 있어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전체 인구당 가장 높은 검사율을 보인다. 코로나바이러스 사망률도 0.7%로, 세계보건기구가 보고한 세계 평균 사망률의 3.4%보다 훨씬 낮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검사 키트가 부족하지 않고, 4개 회사가 이를 양산하며 일주일에 14만 개의 코로나19 샘플을 확보한다. 한국의 검사 정확도는 98%로 가장 정확하다. 한국은 대량으로 확보한 검사 샘플 등으로 어떤 나라보다도 빠르게 백신 개발에 접근하고 있다.- 한국이 이렇게 모범적인 방역을 펼치는 것은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의 시행착오 등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10)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 '한국의 민주주의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기고문, 3월 11일- 민주주의가 공공의 보건을 유지하는 데 훨씬 적합하다. 바로 한국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달리 수백만 인구를 억지로 집에 가두고 약자들을 노예 취급하며 정부의 조치를 비판하는 사람을 없애버리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시민사회가 자발적으로 동참했고 정부는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도시인 대구를 감옥으로 만드는 대신 시민들을 대구에 가지 않도록 설득했다. 한국의 방역이 시민들의 희생 없이 성공하고 있다.(11) 프랑스 <AFP통신> 3월 11일 투명한 정보·진단역량·시민 자발성 등 긍정평가-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처 방식이 다른 국가들에 모범이 될 수 있다.- 한국은 한때 코로나19 사례가 폭증해 확진자 수가 근원지인 중국 다음으로 많았으나, 이후 감염률을 크게 낮추고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치사율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가 됐다.- 한국이 사태를 관리할 수 있게 된 배경으로 정부의 정보 개방 방침이 있다. 정부가 확진자의 지난 14일간 동선을 신용카드 사용 이력, CCTV 분석 등으로 추적해 문자 메시지나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이는 감염 지역을 봉쇄한 중국의 조처와 대비되며, 사생활 침해 문제가 없진 않았지만 결국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검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한국은 하루에 코로나19 검사를 약 1만 건 시행하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빠른 검사 속도 때문에 감염자를 초기에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확진자와 관련 있는 의심 환자나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에 대해선 검사 비용을 면제해줘 참여율을 높인 점도 중요했다. 대규모 검사를 통해 감염자들을 초기에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치사율은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시민 사회가 정부 방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당국은 시민들에게 외출과 타인 접촉을 자제하라는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그 결과 서울에서 평소에 번화한 곳에서도 거리가 비어있다. 정부 조언에 따라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이런 한국의 대처 방식은 확산세가 격화하는 일본과 이탈리아 등에 모범이 된다. 가미 마사히로(上昌廣) 일본 의료 거버넌스 연구소 이사장은 "검사는 바이러스를 통제하기 위해 필수적인 초동 조처"라며 일본이 한국의 대응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12) 독일 주간지 <슈피겔>, 세계가 한국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3월 12일- 한국만큼 코로나 전염병에 잘 대비하는 나라가 없다. (베를린 샤리테 병원의 바이러스 권위자인 크리스티안 드로스텐이) "최고의 모범 사례다. 독일도 이런 (높은) 검진율에 도달할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의 우한과 달리 대구가 봉쇄되지 않았다.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시민의 자유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이 바이러스에 대해 민주주의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투명성과 공동체 의식, 월등한 의료기술이다.
-
-
-
-
-

[엽기유머] 놀랍게도 실제 고증을 지켰던 게임
버지니아 홀(1906~1982) 1906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났으며 레드클리프 칼리지,버나드 칼리지 등 여러 명문대를 다니며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독일어를 전공했음. 그 뒤 폴란드, 에스토니아, 터키 등지의 미국 대사관에서일하다가 터키 여행 중 사냥을 하다가 오발로 다리에총상을 입었음. 결국 상처가 악화되어 다리를 절단하여의족을 찬 장애인으로 생활해야 했음. 장애인이 된 이후에도 프랑스에서 공부를 계속하다가1940년 2차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군에 입대해서의족을 사용했음에도 구급차 운전병으로 종군했음. 프랑스가 졸전을 거듭하다 독일에 결국 항복하자 영국으로탈출했으며, 영국 특수작전부서(SOE)에서 다국어 능력자라는점에 주목해서 그녀를 영입해 스파이로 훈련시킴. 스파이가 된 버지니아는 비시 프랑스로 잡입해서 프랑스레지스탕스를 지원함. 그리고 격추되서 프랑스에 낙하한연합군 조종사들을 런던으로 탈출시키는 임무를 수행함.이에 나치 게슈타포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내고 체포 작전을벌였으나 간발의 차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스페인으로 탈출. 1944년에는 미국 전략사무국(OSS) 요원이 되었고다시 프랑스에 잡입, 늙은 양치기 여인으로 변장하고는레지스탕스 3개 대대를 훈련시키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앞서 그곳으로 투입될 독일군을 저지하기 위해교량 4개를 폭파하고 화물 열차 여러대를 탈선, 주변 전화선을 끊는 공을 세움. 게다가 버지니아의 부대는 독일군 150명을 사살하고 500명의 포로를 사로잡음. 게슈타포는 높은 현상금까지걸었지만 종전때까지 그녀는 무사히 첩보 활동을 계속함. 전후 당연히 그 공이 인정되어 명예십자훈장과 대영제국명예훈장, 프랑스 무공훈장을 수여받음.그 뒤 CIA에서 정보 분석관으로 일하다가 1960년에CIA 요원인 폴 고일로트와 사내결혼을 하고 6년 후은퇴, 고향의 농장으로 돌아가 살다가 1982년에76세의 나이로 사망했음. 그녀가 활동했을 당시 나치 게슈타포가 뿌린 버지니아 홀의 현상수배서.이런 좋은 예시를 알지도 못한 채 언에듀케이티드 드립친 그 게임 개발자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