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65);
-
[음악] 서태지,이수만,현진영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 90년대가요사
1985~1995년 사이의 가요사를 정리하여 서태지, 현진영, 이수만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 90년대 가요사라는 글로 작성해봤습니다. 정확하게는 8090의 가요사가 됩니다.이수만평전, 이현도자서전, 최진열씨가 쓴 서태지전기(일부텍스트), 현진영자서전(일부텍스트)를 종합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전에 PGR과 오유에 올린적이 있으며 토토가를 기념하면서 글을 재수정하여 여기 올려봅니다.---------------------------------------
부제: 댄스음악의 성지 문나이트와 이수만과 서태지의 기묘한 인연1. 여가수의 전성시대와 댄스음악의 태동90년대의 아이돌이라고 할수 있는 소녀가수들, 즉 10대의 나이에 데뷔한 하이틴여가수는 김완선, 이지연, 강수지, 하수빈, 이상은이 유명하였고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수빈, 강수지, 이지연이 청순가련형의 미소녀아이돌스타일로 인기를 얻었다면 김완선은 섹시하고 도도한 팜므파탈적인 매력으로, 이상은은 보이시한 톰보이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1978년 한백희는 인순이를 희자매로 데뷔시킨후에 김완선, 이주노, 박철우를 발굴하여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시켰습니다. 김완선은 한국가요계에서 최초의 연습생이며 1983년14살의 나이에 발탁되었습니다. 한백희는 희자매가 해체되자 인순이를 솔로로 전향시키면서 "인순이와 리듬터치"라는 백댄서팀을 구성하고 로드매니저로 김광수(현 코어사장)를 채용합니다. (1985년, 리듬터치의 백댄서멤버 : 이주노, 김완선, 박철우)한백희는 김완선을 백댄서로 기량을 가다듬게하고 1986년 김완선을 17세의 나이에 데뷔시킵니다. 김완선의 등장은 한 마디로 쇼킹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가 들고 나온 음악과 스타일, 컨셉, 안무, 무대 구성등은 예전의 기성 가요와는 궤적을 달리하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였죠. 그 후 인순이, 이주노, 박철우는 한백희곁을 떠나게됩니다. 이때 리듬터치에서 안무를 맡았던 안무가는 이주노와 박철우를 데리고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를 창단합니다.김완선 - 리듬 속의 그 춤을
http://www.youtube.com/watch?v=39wYlUhpmJQ 김완선 - 오늘밤
https://www.youtube.com/watch?v=cn9frQYla-g 김완선 -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백두산리더 유현상은 경복여고에서 락밴드 보컬을 하던 소녀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미모에 어울리지않은 가창력에 반해 이지연을 데뷔시킵니다.강수지는 16살때 미국으로 이민하여 가스펠밴드 보컬을 하다가 89년 교포가요제에 금상을 수상하면서 MC였던 송승환을 알게됩니다. 그후 송승환의 국내전화번호와 단돈100달러를 들고 89년에 한국행을 감행하여 1년만에 데뷔를 하게됩니다.하수빈은 1990년(17세)에 초콜릿CF모델이 되기위해 미국에 갔다가 현지공연프로모터의 눈에 띄어 리사라는 예명을 받고 미국팝가수인 토미페이지한테 "I`m Falling in love"라는 곡을 받아 1992년(19세)에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이상은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등장하였는데 18세의 나이에 당시 보기힘든 보이시스타일로 남자들이 아닌 소녀팬들의 열광적 추종을 이끌어낸 한국가요사에서 파격적인 여자아이돌 중 한명이었습니다. 당시 MC였던 이수만은 이상은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먼 훗날 F(x)의 제작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지연 - 난 사랑을 아직 몰라
http://www.youtube.com/watch?v=qSyoOPPp2S8 이지연 - 바람아 멈추어다오
http://www.youtube.com/watch?v=-t-ot7Fgnas 이지연 -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1988)강수지 - 혼자만의 겨울
http://www.youtube.com/watch?v=66KTU0bRJiY 강수지 - 보라빛향기하수빈 - 더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92)
http://www.youtube.com/watch?v=m-_UktHQhvk 하수빈- 노노노노노
http://www.youtube.com/watch?v=Rv7q5XOUuIQ 하수빈&강수지 - Tears in heaven이상은 - 담다디
http://www.youtube.com/watch?v=zmDrb2dZN1c 이상은 - 담다디 (강변가요제: MC 이수만)이들은 현재 유행하는 아이돌가수들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이지연, 강수지, 하수빈은 SES, 핑클, 장나라같은 아이돌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상은같은 특이한 스타일은 훗날 F(x)의 엠버로 재탄생하였고 엠버도 보이시한 톰보이스타일로 소녀팬들의 추종을 얻었죠. 특히 김완선에게 선보인 연습생시스템은 현재 아이돌기획사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수만이 김완선을 모델로 보아를 프로듀싱한것은 유명한 애기입니다.그리고 양수경, 김혜림, 윈준희가 데뷔하여 솔로여가수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또한 걸그룹으로는 세또래가 있었습니다.특히 김희애, 원준희, 하수빈은 가수, 배우, 모델의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였습니다.(김희애 : 모델→배우→가수, 원준희 : 배우→가수, 하수빈 : 모델→가수)안도희는 86년에 영화로 데뷔한후에 원준희이라는 예명으로 88년에 가수로 데뷔합니다. 김희애는 배우로 크게 성공하였으며 가수로 반짝활동을 하였습니다. 뒤이어 엄정화와 장나라가 가수과 연기자의 두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큰 영향을 끼쳤는데 아이돌들이 가수, 배우, 모델등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게 되어버렸습니다.양수경 - 사랑은 창밖에 빗물같아요
원준희(안도희) - 사랑은 유리같은 것 (1989)
http://www.youtube.com/watch?v=mW-gwgVVpag 김혜림 - 날위한 이별
http://www.youtube.com/watch?v=qIADkWc2si0 김희애 - 나를 잊지 말아요
http://www.youtube.com/watch?v=VUWsVZ-2VWU 양수경 - 당신은 어디 있나요양현석은 평범한 직장을 다니다가 우연히 TV에서 백댄서를 하는 친구를 보고 충격을 받아 직장을 그만두고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에 입단합니다. 당시 80년대 후반에는 수많은 브레이크 댄스팀이 있었는데 스파크, 노피플, 노파킹, 엑스레이등 여러팀이 이태원의 문나이트라는 클럽에서 춤을 췄고 점점 유명해지자 댄서들이 몰리면서 문나이트의 인맥이 형성됩니다.이때 박남정, 이주노, 박철우가 유명했는데 그후 양현석,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이현도, 김성재가 문나이트에 등장하게 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 이수만이 인재를 발굴할려고 문나이트에 출입을 합니다. 1988년 박남정은 기획사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한 후 양현석, 이주노, 박철우, 김영완을 백댄서로 영입해 프렌즈팀를 구축합니다.1987년 한밭기획의 이사였던 이호연은 소방차를 기획하여 성공하였고 그걸 발판으로 독립하여 1991년에 대성기획(後身:DSP)를 창립합니다. 그후 일본의 개그맨인 다운타운이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를 오쟈파멘이라는 커버곡를 발표하였는데 일본에서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한편 문나이트에서 DJ를 하던 신철은 나미를 만나 나미와 붐붐(1990년)을 결성하여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댄서와 랩퍼를 오가면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후 신철은 이미애를 만나 철이와 미애(1992년)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여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그당시 가요계는 박남정이 5주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톱으로 군림하였고 라이벌로는 김완선과 소방차가 있었으며 이들은 댄스음악계의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현진영도 큰 인기를 얻어 그들의 뒤을 바짝 추격하고 있었죠.그러나 서태지의 등장으로 박남정과 현진영, 소방차의 운명은 바뀌게 됩니다. (박철우는 R.ef로 데뷔, 김영완은 콜라로 데뷔)박남정 -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http://www.youtube.com/watch?v=Fjcmhovj_w4 이지연 - 난 사랑을 아직 몰라, 박남정 - 사랑의 불시착
http://www.youtube.com/watch?v=ZCpZoVZ_krM 소방차 - 어제밤이야기
http://www.youtube.com/watch?v=072IdwBcUk0 다운타운 - オジャパメン
http://www.youtube.com/watch?v=UZVnuogr6IA 나미와 붐붐 - 인디언인형처럼
http://www.youtube.com/watch?v=N28vLijnyJ0 철이와 미애 - 너는 왜2. 연예기획사 SM의 탄생1981년 이수만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컴퓨터공학으로 유학을 떠납니다.이때 이수만은 미국의 MTV와 미국의 음반산업을 보며 연예기획자로 꿈을 꿉니다.85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수만은 방송활동을 재개합니다. 다시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홍종화라는 작곡가를 설득 끝에 섭외하며 앨범을 발표했으나 실패한 후 가수를 그만두고 프로듀서로 전향하기로 마음먹습니다.본격적으로 연예기획사를 설립하기 위해 인천 월미도에 헤밍웨이 까페와 방배동 까페를 차려 기획사의 사업자금을 마련한 다음 한동준과 김광진을 영입합니다.여기서 이수만은 한국에 흑인음악을 도입하기로 마음먹고 바비 브라운을 참고합니다. 바비 브라운은 두명의 댄서와 삼각편대를 이루어 춤을 추는 형태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서 영감을 얻은 이수만도 3인조 그룹을 기획합니다.구체적인 구상이 끝난후 이수만은 이태원이나 여러 유명클럽에 찾아다니고, 문나이트에서 최진열을 고용한후 "음반을 낼까 하는데 주변에 춤되고 노래되는 애 있으면 찾아달라"고 일을 시킵니다. 최진열은 평소에 알고 있던 이주노와 현진영을 이수만에게 소개합니다. 이주노와 현진영을 저울질하던 이수만은 현진영이 이주노보다 노래를 잘하는 점에 현진영을 발탁합니다. 이때는 1988년이며 현진영은 당시나이가 16세였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MVjjwrBn6vA Bobbi Brown - Every Little Step: The Arsenio Hall Show얼마후 이수만은 나머지멤버를 영입하기위해 댄스페스티벌을 개최하였는데 이주노, 양현석, 구준엽, 강원래, 유영진, 미애등 여러명이 참가하였고 구준엽·강원래팀이 우승하여 최진열의 제의로 SM에 입사하게 됩니다.(당시 김승현이 사회자를 보았음, 구준엽·강원래는 와와1기이며 훗날 클론이 됨)이수만은 이들에게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기량을 가다듬게 합니다.1989년 이수만은 송파에서 SM기획를 창립합니다. 최진열에게는 SM기획의 경영과 매니지먼트를 맡기고 홍종화에게는 수석프로듀서를 담당합니다. 1990년 이수만은 제1집 "New Dance"를 발표하며 현진영과 와와(구준엽,강원래)를 데뷔시킵니다. 그후 한동준과 김광진의 앨범도 발표합니다.야한 여자 -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와와1기)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5wjY7Nnt6xg 이수만과 홍종화"현진영과 와와"의 야한여자는 그당시 대세였던 박남정과 김완선, 소방차에 밀렸지만 어느정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한편 구준엽과 강원래가 군대문제로 입영하게 되자 이수만은 새로 이현도, 김성재를 와와2기로 발탁한후 후속곡 '슬픈 마네킹'을 발표했는데 인기를 얻어 현진영은 단숨에 그당시 대세였던 박남정의 라이벌로 급부상합니다.슬픈 마네킹 - 현진영, 이현도, 김성재(와와2기)
3. 락커! 대격변을 일으키다. (신해철과 서태지)1988년 신해철은 아기천사라는 밴드로 강변가요제에 참여했으나 결선에 실패하지만 그해 12월에 다시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을 연합한 무한궤도를 결성한후 대학가요제에 참석하여 ‘그대에게’를 열창하며 대상을 거머쥐게 됩니다.이때 프로페셔널 뮤지션 활동을 계획하는 신해철과 젊은 시절의 추억으로 여기는 무한궤도의 나머지멤버들간에 괴리가 생기자 신해철은 새멤버를 영입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정석원과 장호일등이 새로 가입하고 여러명의 멤버들이 교체되었지만 결국 몇 달만에 무한궤도는 완전해체를 합니다.해체이유는 신해철은 정석원과 음악적견해차이였는데 신해철이 무한궤도를 탈퇴하면서 정석원과 장호일, 나머지 무한궤도멤버들은 015B를 결성합니다.솔로로 전향한 신해철은 댄스곡 "안녕"과 발라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등을 히트하며 인기가수로 자리잡습니다. 그러나 락밴드을 하고 싶었던 신해철은 솔로로 2장의 앨범을 낸 뒤 넥스트라는 락밴드를 결성합니다.무한궤도 - 그대에게(신해철 데뷔무대)
한편 사나위에서 활동을 하던 서태지와 김종서는 신대철과 마찰로 시나위를 떠나게 됩니다.그후 서태지와 김종서는 무궁화밴드에 입단하고 여러 나이트클럽에 진전합니다. (보컬은 김종서, 서태지는 베이스)무궁화밴드는 캐피탈호텔에 공연하게 되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때 "박남정과 친구들"도 공연을 하러왔습니다.무궁화밴드의 공연이 끝난후 박남정과 친구들이 공연을 하였는데 이때 서태지는 "박남정과 친구들"라는 댄스그룹팀의 춤에 반하여 춤을 배울려고 직접 양현석에게 말을 걸었고 양현석은 문나이트에 가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서태지는 한달동안 문나이트를 출입해서 지켜보다가 결국 양현석에게 춤을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이때 양현석은 레슨비로 한달에 150만원을 부르며 3달 레슨비 450만원을 선불로 요구하여 서태지는 지불하게 됩니다.그러나 본격적으로 레슨을 하기전에 양현석에게 군대영장이 날라왔고, 서태지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지 못한 채 군대에 가게 됩니다.이때 서태지는 낮에는 작곡을 하면서 밤에는 연주을 하는 생활을 하였고 드디어 곡을 완성하였는데 때마침 양현석도 의가사제대를 합니다.8개월간의 군대생활을 마친 양현석은 방정리를 하는 도중에 수첩을 발견하였고 레슨을 해줄려고 서태지에게 연락을 합니다.서태지는 데모음악을 양현석에게 들려주고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노래가 좋다. 그런데 이 노래는 혼자 하는 것보다 팀을 이뤄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고 서태지는 양현석의 조언에 3명의 팀을 결성하기로 결정하고 나머지 멤버를 구합니다. 5명정도의 후보를 탈락시킨후 결국 이주노까지 영입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탄생하게 됩니다.그후 서태지는 데뷔를 하기위해 여러기획사와 접촉을 하였는데 이때 반도음반사의 기획실장인 유대영은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제작을 결심하여 서태지와 계약을 합니다.그후 유대영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총괄매니저가 된후 로드매니저로 최진열을 고용합니다. 당시 최진열은 현진영의 대마초사건으로 큰 곤욕을 겪은 상황이였죠.그후 서태지가 MBC 특종TV연예에 출연을 합니다. 쇼의 반응은 놀라웠으며 1992년 4월에 서태지의 1집 난 알아요를 발표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방송 3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모두 석권하였으며, 그해 가요계에 부여된 모든 상을 휩쓸었고 데뷔 음반으로는 최다판매량인 17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는등 대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나 유대영은 서태지와 의견충돌로 결별하였고 그후 서태지는 자신의 기획사를 차린후 최진열을 총괄매니저로 고용합니다.서태지와 아이들 - 난 알아요 (데뷔무대)
참고로 80년대의 락밴드는 들국화, 백두산, 부활, 시나위,등의 4대밴드가 유명했으며 90년대에는 넥스트, 서태지밴드등의 락밴드가 유명했습니다.
http://pgr21.com/?b=8&n=55774 8090의 락밴드 가요사
http://www.youtube.com/watch?v=lF1ZSXGL_Sw 서태지 - 시대유감
http://www.youtube.com/watch?v=Vbfm2H_aMng 신해철 - 재즈까페
http://www.youtube.com/watch?v=-X41UVzR1qI N.EX.T - 날아라 병아리 (신해철)
http://www.youtube.com/watch?v=PR0Rug5QVic N.EX.T -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신해철)4. 이수만 힙합과 결별하다.1991년 부산의 야외무대에서 현진영과 와와가 공연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건장한 남자들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현진영을 무대 아래로 끌어내려버립니다.이 모습을 지켜본 이현도와 김성재는 현진영의 모습에 큰 실망을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현진영은 대마초혐의로 구속되었는데 SM기획이 경찰의 수사를 받아 최진열, 정해익같은 SM의 임직원들이 큰 고초를 껶었으며 회사의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고 와와의 활동마저 중단되고 맙니다. 그 후 최진열은 반도음반사의 유대영의 제의로 SM기획을 그만두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가 됩니다. SM의 대표이사였던 최진열은 몇년동안 SM기획에서 경영과 매니지먼트를 관리하는 총책임자라 인맥과 노하우가 상당했죠.[SM의 대표이사들: 최진열(1988) - 정해익(1992 ?) - 김경욱(1998) - 김영민(2005)]이때 현진영의 무책임한 행동에 분노한 이현도는 그때부터 다른 기획사로 오디션을 보면서 가수로써 독립을 꿈꾸게 되며 나중에 가수가 된후 현진영을 디스합니다.한편 자신의 1호 가수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볼수없었던 이수만의 노력으로 현진영은 1년만에 출소를 합니다.그후 부활을 꿈꾸던 현진영은 이탁과 함께 여러 곡을 공동작곡을 하였습니다.1992년 4월에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거대한 돌풍을 일으키자 이수만은 잊고 있던 현진영을 찾게되고 8월에 이수만은 현진영의 2집 앨범 "New Dance 2"를 발표합니다. 타이틀곡은 문나이트에서 친한 이탁이 만든 "흐린 기억 속에 그대"였는데 당시 현진영은 커다란 후드티와 한껏 내려 입은 청바지로 코디한 후 빨라진 음악에 맞춰 현란한 댄스를 선보입니다.'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높은 완성도와 함께 굉장한 인기를 얻었으며 같은 앨범의 '너는 왜'는 '현진영 고 진영고'라는 후렴구와 랩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과소평가되었던 싱어로써의 자질을 "너는 왜"에서 여성 백댄서와 격렬한 권투춤을 추면서 현진영 Go 진영 Go를 하면서 라이브로 빠른 랩을 소화해내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죠.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과 음악에 익숙한 대중들은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도 커다란 지지를 보냈고, 현진영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라이벌로 급부상합니다. 하지만 SM은 2집앨범이 유통사인 서라벌레코드의 부도로 인해 큰 손해를 입어버립니다.
1993년 성공을 확신한 이수만은 현진영의 3집 "두근두근 쿵쿵"을 발표하였고 서태지와 아이들 2집과 현진영 3집이 정면대결을 펼칠 93년 가요계는 모두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발표한지 일주일 만에 필로폰 투약 혐의로 현진영은 구속되었고 방송정지를 당합니다. 이때의 여파로 무려 40만장을 찍었던 현진영의 음반은 검찰에 압류되고 상품은 소각처리되어 SM은 큰 손실을 보게 되었고 월미도와 방배동의 까페를 매각하여 부도위기를 넘기게 됩니다.그러나 소속 연예인인 한동준, 김광진, 신동엽, 김승현, 이홍렬이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여겨 그만두게 됩니다.이수만은 사력을 다해 현진영을 띄웠으나 그때마다 대마초와 필로폰으로 무너졌으며 결국 최종적으로 서태지가 이수만과 힙합주도권 경쟁에 승리하게 됩니다.
5. 이현도 SM을 떠나면서 힙합을 완성하다.1991년 현진영의 대마초사건이 터지면서 이현도는 자신의 가요활동이 끝장나게되자 현진영에 대한 분노와 갑작스러운 활동정지로 인한 좌절감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이대로 댄서로서 끝날수없다고 마음먹게되면서 음악을 만들고 싶은 강렬한 열망에 붙타올라 신디사이저를 구입하여 곡을 쓰기 시작합니다.그후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한 김성재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을 하기시작했고 이현도는 다시 문나이트에 다시 출입을 하면서 춤을 추게 됩니다.이때 춤을 추면서 울분을 풀고 있는 이현도를 아는 지인이 안타까워하며 오디션을 권유합니다.그래서 가수로 데뷔하기로 마음먹고 김성재와 함께 코어의 김광수에게 오디션을 보지만 퇴짜를 맞습니다.미안해진 이현도의 지인은 다시 뮤즈기획을 소개하면서 들어갔으나 사무실이 없어 환경이 매우 열악하였으며 안무를 연습할 무용실이 없어 무용실을 빌려 연습했다고 합니다.시간이 지난후 현진영이 교도소를 출소합니다. 때마침 자신의 첫곡인 "너에게만"을 완성하여 현진영에게 들려주었는데 매우 좋다면서 곡을 달라고 하였죠. 이에 반신반의하며 이수만에게 들려주었는데 이곡을 극찬하면서 현진영의 "New Dance 2"의 앨범에 수록을 합니다.이때 현진영이 와와를 다시 하자고 제안을 하지만 큰 자신감을 얻은 이현도는 거절합니다.이현도와 김성재가 떠나면서 이수만은 2인조였던 와와를 다인원 백댄서팀으로 개편합니다.(와와팀에 션이 있었으며 훗날 지누션으로 데뷔)그후 김성재는 한양대에 진학하였고 이현도는 실용음악과에 응시를 했으나 떨어지면서 더욱더 작곡활동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악기만으로는 편곡까지 완성한다는 게 무리여서 유대영의 작업실을 빌려 작곡을 하였죠.마침내 앨범을 완성하여 듀스를 결성하고 93년 4월1일에 데뷔앨범인 '나를 돌아봐'를 발표합니다. 그러나 앨범을 발표한지 한달이 지나도 방송국에서 불러주지 않아 방송활동을 할수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였습니다. 그때 sbs의 PD가 듀스의 곡을 높게 사면서 sbs의 가요프로그램에 출연을 하게되면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듀스는 힙합계에 큰 족적을 남깁니다.한편 이탁은 구준엽과 함께 탁이준이를 결성(1993년)하여 활동하다가 이탁이 마약문제로 수감되면서 실패를 합니다.출소한 후 이탁은 현진영과 I.W.B.H를 결성(1997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한편 구준엽은 강원래와 함께 프로듀서 김창환 사단에 들어가 클론이라는 댄스그룹을 결성(1996년)해 큰 성공을 합니다. 그때 프로듀서 김창환이 이끄는 라인음향은 김건모, 신승훈, 노이즈, 박미경이 맹활약하며 90년대를 지배한 유명한 기획사였습니다. 8090년대의 발라드는 변진섭이 집권했으며 뒤이어 신승훈이 집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승환, 윤상, 윤종신이 유명했습니다. 포크송가수는 김광석이 유명합니다.듀스 - 나를 돌아봐
탁이준이 - 예감했던 이별
http://www.youtube.com/watch?v=1zVE4An9lpE 클론 - 쿵따리 샤바라
http://www.youtube.com/watch?v=KQc9kzuGyiU IWBH - 뻗어봐
http://www.youtube.com/watch?v=_GqLuR_Idak 변진섭 - 너에게로 또다시 (1989年)
http://www.youtube.com/watch?v=-UZnpcufkbc 신승훈 - I Believe (2001年)
http://www.youtube.com/watch?v=aqxiVEjOlak 윤종신 - 오래전 그날 (1993年)
http://www.youtube.com/watch?v=vbvaYfJh6kM 김광석 - 이등병의 편지
http://www.youtube.com/watch?v=dHeqQu8a1h0 김광석 - 서른즈음에6. 이수만 힙합외에 여러가지 시도를 하다 - 김광진, 한동준, 유영진
이수만은 힙합외에 알앤비, 포크록, 발라드등 여러장르를 기획합니다. 이때 한동준과 김광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1집앨범을 기획합니다. 특히 김광진은 작곡능력까지 있었죠.김광진은 1991년 한동준에게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라는 곡을 줬고, 같은 해 김광진 본인도 1집 앨범을 발표합니다.하지만 1993년에 현진영의 필로폰사건으로 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김광진과 한동준은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여겨 떠나게 됩니다. 그후 김광진과 한동준은 명곡을 발표하며 뛰어난 뮤지션으로 거듭나게 됩니다.(김광진의 대표곡으로 편지, 마법의 성등이 있습니다. 한동준의 대표곡으로 사랑의 서약이 있습니다.)한동준 -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http://www.youtube.com/watch?v=5crDXWlUURs 윤하가 부른 한동준의 명곡 - 사량의 서약1980년대 후반 춤을 추고자 서울로 상경한 유영진은 MBC 무용단에 합격하여 활동을 하게 됩니다.그 후 문나이트에서 친했던 구준엽과 강원래의 인연으로 SM 기획에 놀러갔었다고 합니다.1992년 유영진은 군대제대후 가수가 되고자 여러 기획사에 여러 오디션을 봤지만 탈락의 고배를 거듭하였습니다.마지막으로 유영진은 SM기획에 자신이 작곡한 음악 CD를 보냈습니다. 이때 이수만은 유영진에게 3일 정도 “곡이 더 있냐”고 물어보면서 유영진은 하루에 10곡씩 준비해 들려줍니다.실력을 인정받은 유영진은 스스로 원해서 종신계약을 맺습니다. 1993년 1집에서는 한국 R&B 역사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그대의 향기’가 나왔는데 유영진은 뮤직비디오에서 턴을 하기도 하였고, 1995년 2집에서는 댄스음악 ‘너의 착각’을 내놓는 등 R&B뮤지션과 댄서의 모습을 함께 보여줬습니다. 당시 그의 뒤에는 문희준과 강타가 춤을 췄죠.유영진- 그대의 향기
1993년 하반기에 새로 오디션을 벌여 서연수와 임범준을 발탁합니다.임범준은 락밴드활동으로 다져진 굵은 남성적 음색을 가졌고 서연수는 여성적인 맑은 미성을 지녔죠. 성공을 확신한 이수만은 메이저라는 2인조 그룹으로 데뷔쇼케이스를 하였고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그러나 방송국에서 이들이 선보인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도발적의상에 제재를 가했고 단정하게 나오지 않으면 방송활동을 할수 없다고 통보를 하였습니다. 이수만이 그들을 설득해도 서연수와 임범준은 비굴하게 음악을 할수없다고 거절하였고 결국 공중분해가 되어버렸죠.Early spring day (이른 봄날), 1994 - 메이저(Major) 서연수, 임범준
1994년 마지막으로 이수만은 2명의 재미교포로 이루어진 J&J라는 그룹을 선보입니다.하지만 시장의 반응이 없어 처참하게 망하고 이 모든 기획들이 실패한 SM은 나락에 빠집니다. 결국 수석프로듀서인 홍종화는 SM을 떠나는데 유영진이 그의 자리를 맡게 됩니다.J&J 강준식, 김주현 - 미지수야 미지수.1994
남은건 유영진뿐.
결국 이수만은 아이돌을 기획하기로 마음먹고 회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로 합니다.그래서 장우혁, 토니안, 강타, 문희준, 이재원등을 연습생으로 캐스팅합니다. (그후 H.O.T로 결성)이수만이 이런 기획을 하게 된 계기는 1992년경에 뉴 키즈 온 더 블럭이 내한을 하면서 한국에 큰 파장을 일으킨게 주요 계기 중 하나였는데 이수만이 예전부터 기획에 참고하던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 모리스 스타가 기획한 그룹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모리스 스타는 당시 어린 소년을 찾아 수년간 트레이닝을 거친 후 데뷔시켰는데, 그것이 뉴 에디션과 뉴 키즈 온 더 블록 등으로 5인조 아이돌 그룹이였고 바비브라운이 뉴에디션출신입니다.이수만이 바비브라운을 참고해서 현진영 와와를 발표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죠.또한 이수만은 걸그룹을 프로듀싱하기위해 TLC 벤치마킹합니다. 이때 이수만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시장을 노리는 원대한 비전을 피력하면서 유진, 슈, 바다등의 3인조걸그룹인 S.E.S를 결성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Q1B6RcFtJPs New Kids On The Block - Live In Seoul
http://www.youtube.com/watch?v=cS-ALhCSmfk H.O.T.- 아이야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수만이 기획하고 유영진이 작곡한 H.O.T와 S.E.S가 데뷔하게 되고 그야말로 빅히트를 터뜨리면서, 나락에 빠진 회사는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그후 1998년 신화, 1999년 플라이 투 더 스카이, 2000년 보아가 연속으로 히트하면서 아이돌기획사로 완전하게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S.E.S. - Love
여가수 데뷔년도비교김완선(1986) - 조갑경(1986) - 이지연(1987) - 김희애(가수:1987, 모델:1982, 배우:1983) - 원준희(가수:1988, 배우:1986) - 양수경(1988) - 이상은(1988) - 김혜림(1988) - 세또래(1988) - 강수지(1990) - 하수빈(가수:1992, 모델:1990) - S.E.S(1997)가수들 데뷔년도비교소방차(1987) - 박남정과 친구들(1988) - 현진영과 와와(1990) - 나미와 붐붐(1990) - 서태지와 아이들(1992) - 철이와 미애(1992) - 듀스(1993) - 탁이준이(1993) - 클론(1996) - H.O.T(1996) - I.W.B.H (1997)8090의 락밴드들들국화, 백두산, 부활, 시나위, 무한궤도, 015B, 넥스트, 서태지밴드문나이트의 인맥최진열, 박남정, 이주노, 양현석, 구준엽, 강원래, 이현도, 김성재, 이탁, 현진영, 유영진, 션, 신철, 미애, 박진영, DJ.Doc, 룰라댄스가수의 그룹의 멤버에 관해서박남정과 친구들 : 박남정, 양현석, 이주노, 박철우, 김영완현진영과 와와 : 현진영, 1기 - 구준엽·강원래, 2기 - 이현도·김성재, 3기 - 션서태지와 아이들 : 서태지, 이주노, 양현석SM의 초창기사람들SM의 아티스트들 :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이현도, 김성재, 이탁, 션, 김광진, 한동준, 유영진, 서연수,임범준, 강준식, 김주현SM의 예능인 : 이홍렬, 김승현, 신동엽
중원표국작성일
2015-02-04추천
14
-
-
-

[자유·수다] HOT 전곡,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
[스포츠서울닷컴 | 이다원 기자] 아이돌 1세대 그룹 HOT(문희준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 강타)의 전곡을 KBS에서는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된다. KBS 측은 13일 <스포츠서울닷컴>에 "지난해 12월 3일 '캔디' '전사의 후예'를 비롯한 HOT의 전곡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아 금지곡으로 분류됐다"고 밝혔다.KBS에 따르면 이와 같은 결정은 팀멤버였던 토니안이 불법 도박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어 KBS로부터 한시적 출연규제 조치를 받은 것과 관련해 출연 정지 대상자가 등장하는 영상물이나 음원은 방송될 수 없다는 조항에 따른 것이다. 앞서 토니안은 이수근 탁재훈 등과 함께 지난해 12월 일명 '맞대기'로 불리는 불법 도박으로 수억 원대 판돈이 오간 혐의로 기소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이들은 지난 2008년부터 수억 원의 판돈을 걸고 상습도박을 일삼았고, 대부분 혐의를 인정해 세간에 충격을 줬다.이로써 밸런타인 데이인 14일에도 단골 신청곡이었던 '캔디'를 들을 수 없게 됐다. 또한 '행복' '빛' '위 아더 퓨처(We are the future)' 등 히트곡들도 전파를 타지 못한다.한편 KBS는 '위법 또는 비도덕적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행위'를 방송출연규제심의 대상으로 정하고 있으며 세부적으로 '병역기피', '습관성 의약품 사용 및 대마초 흡연', '사기·절도·도박', '폭행 및 성추문', '기타 민·형사상 기소된 경우', '미풍양속과 사회질서를 문란케 한 경우' 방송출연규제심사위원회를 연다.심사위원회는 해당자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사안의 경중에 따라 '출연섭외자제권고', '한시적 출연정지(민·형사상 기소시)', '방송출연규제' 조치를 내리게 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6&oid=073&aid=0002387212--------------------------------------------------------------------------------------------------------------위법 또는 비도덕적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행위'를 방송출연규제심의 대상으로 정하고 있으며 세부적으로 '병역기피', '습관성 의약품 사용 및 대마초 흡연', '사기·절도·도박', '폭행 및 성추문', '기타 민·형사상 기소된 경우', '미풍양속과 사회질서를 문란케 한 경우여기에 음주도 포함된거겠죠??싸그리 조사해서 문제있는 연애인들 정치인들 티비에 못나게 하면 좋겠네요,,-_-ㅋ
-
-
-
-
-
[짱공일기장] 맨 오브 스틸 (1)
---맨 오브 스틸 보고 개인적으로 이렇게 갔으면 어땠을까 싶어서 써보려는 습작임.......맨 오브 스틸크립톤엘 가문의 조엘은 온몸에 느껴져 오는 땅의 미세한 진동에 걸음을 더욱 빨리 했다. 자신의 예측이 모두 맞아 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없어져 간다는 것이기도 했다. 엘의 후예들이 늘 입어왔던 금빛 갑주를 걸친 그의 손에는 크립토니안들의 모든 유전정보가 담겨 있는 ‘코텍스’가 들려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멸망을 앞둔 크립토니안들의 유일한 미래였다. 그는 지금 그것을 자신이 만든 또 다른 미래, 자신의 아들 칼엘와 함께 젊은 태양계 속에 존재하는 머나먼 어느 별로 보내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의 조급한 발걸음을 누군가가 막아섰다.“자네도 느꼈겠지.”같은 형태의 금빛 갑주. 그러나 가슴에는 다른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자. 조엘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크립톤의 미래를 위해 함께 힘썼던 자, 그리고 지금은 그의 앞길을 막아서는 최대의 적. 조드 장군.“우리가 그토록 지도자들에게 진언했던 멸망이 이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그래서 가야만 하네.”“코텍스를 가지고 어디로 가겠다는 건가.”조드의 절도 있는 손짓에 그의 친위대원 병사들은 조엘을 둥그렇게 포위했다. 모두들 손에 암 소드를 장비하고 있었다. “그걸 어디로 보내려는 건지는 몰라도, 그 미래는 내게 필요하네. 크립토니안들의 역사를 다시 일으켜 세울 나, 조드 장군에게.”“자네에겐 넘길 수 없어.”“나와 자넨 같은 목표를 위해 손잡았던 것이 아닌가.”“적어도 자네가 변하기 전까지는 말이지. 조드.”조엘은 팔에 달린 검을 들고 전투자세를 취한 채로 강렬한 적의의 눈빛을 조드에게 보냈다. “자넨 스스로 명예를 버렸어. 맘에 들지 않는 동족을 죽이고,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자 따위에게 협력한 기억은 없다.”“내가? 명예를 버렸다?”조드는 눈을 부라렸다. “크립토니안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는 나 조드 장군이, 명예를 버렸다고?”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간 조엘이 자신의 암 소드를 빠르게 뻗었지만 그 끝에 있는 건 조드가 아닌, 그를 보호하려던 친위대원 중의 한 명이었다. 빠르게 그것을 빼낸 조엘의 등 뒤로 친위대원들이 만든 벽이 그를 촘촘히 압박해 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이런 무의미한 싸움에 허비해야 한다는 것은 여간 안타까운 것이 아니었지만, 조엘은 그들 너머로 그가 준비해 놓은 것들에 다가가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팔의 갑주에서 뻗어 나온 암 소드로 짧고도 아름다운 궤적들을 그리면서. 캡슐의 마지막 궤도 수정을 위해 콘솔을 조작하고 있던 조엘의 부인, 라라는 캡슐발사실의 문이 열리고 갑주가 피투성이로 변한 조엘의 모습을 보자마자 다급히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괜찮아요? 조엘?”“가슴......밑을 찔렸소......준비는?”“다 됐어요.”“서두릅시다....” 갑주에는 조드의 친위대원들 피만 묻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늑골 밑부분에 소드의 부러진 칼날이 반쯤 박혔고, 그것을 통해 조엘의 피가 계속 흘러 갑주를 적셨다. 조엘은 라라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품속에서 코텍스를 꺼내고는 그것을 칼엘의 몸 위에 이미 준비되어 있던 트랜스 장치 위에 올려놓았다. 기계는 이내 작동을 시작했다. 조엘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코텍스가 미립자 단위로 분해되어 칼엘의 몸으로 흡수되어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칼엘은 그렇게, 크립토니안들의 수많은 유전샘플을 한 몸에 지닌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조차 조엘에게는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었다. 지각의 진동이 아까보다 더 심해져왔던 것이다. 시간의 계산이 맞다면, 이제 몇십 분 후 지각은 널을 뛰듯 들끓어 폭발하게 될 것이었고, 그 전에 캡슐을 발사해 궤도상보다 위로 올려놓아야 했다. 이로써 자신들은 멸망하고, 새로운 희망 칼엘은 다른 종족들 틈에서 자신을 만들어가며 크립토니안의 역사를 이어갈 것이었다. 비록 그가 외로운 존재로 남는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모습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조엘과 라라에게는 큰 슬픔이었고, 그들은 아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망막에 담으려는 듯 코텍스의 미립자들을 흡수하고 있는 칼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칼엘의 작은 사지가 꼬물대며 움직였고, 조그만 눈동자가 조엘과 라라를 코텍스의 미립자 흐름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잠깐의 시간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캡슐 발사실의 문이 이내 박살이 나면서 조엘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대여섯 명 정도의 친위대원들과 조드가 나타나 조엘을 노려보았다. 조엘은 라라를 뒤로 물러서게 한 뒤, 자세를 다시 잡고 소드의 날을 번뜩였다. 일순간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야 해. 자신의 다른 한 쪽 주먹에 쥔, ‘코덱’을 굳게 쥐고 그는 속으로 자신에게 외쳤다. 코덱스가 흡수되고 아이의 요람이 캡슐 속에 세팅될, 그 작은 순간만 견디면 되는 것이다. “자넨 끝까지 날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조드의 목소리가 무미건조하게 울렸다. “피차 마찬가지야.”“이것은 자네가 자초한 거야.”조드의 손짓에 친위대원들은 다시 달려들었다. 조엘의 손에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봤음에도 그들의 몸짓은 공포는커녕 어떤 감정에도 지배되지 않은 기계처럼 달려 나갔다.지각의 흔들림이 더 심해지는 것, 흡수과정이 끝난 칼엘을 담은 요람이 캡슐 속으로 이동하는 것과 조엘이 그들과 싸우기 위해 앞으로 나선 것은 동시였다. 다시 처절한 혈투가 벌어졌지만 조드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건물의 사방이 뒤틀리고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뒤흔들리는 와중에도, 친위대원들은 조엘에게 얻어터지면서 벽으로 날아가 쳐박히고 있었고, 조드는 자신이 보낸 병사들의 마지막 하나가 조엘에게 당하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갑작스레 돌진해갔다. 갑주로 싸인 그의 발이 방금 한 놈을 쳐날려 빈틈을 보이는 조엘의 늑골 밑으로 날아가 조엘에게 박혀 부러진 소드 끝을 쳐넣었다. “크헉!!!!”한됫박은 됨직한 피를 쏟으며 캡슐 밑까지 밀려나간 조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통과 과다출혈로 희미해지려는 눈에 캡슐이 전부 준비를 끝낸 것이 보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코덱을 캡슐의 콘솔 쪽으로 천천히 들어올렸다. 조엘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은 조드가 그를 막으려고 움찔했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코덱 홀 속에 코덱이 완전히 고정된 것이었다. 이제 한 번만 더 힘을 주어 누르기만 하면 되는 찰나. 조엘은 그 코덱 위로 손을 뻗은 채, 조드를 노려보았다. 조드는 한 손을 내뻗은 채로 말했다. “지금 보낸다면, 넌 네 아들까지 내 손으로 죽이라고 하는 거다.”“오만한 조드여.”피가 고인 조엘의 입에서 겨우 말이 새어나왔다. “이 아이는 네 손에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만들려는 크립토니안의 미래도 함께 막아서게 될 거야.”조엘의 손바닥이 코덱을 강하게 누르자 캡슐이 강한 진동을 하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지점까지 상승하면 캡슐은 초공간 도약을 통해 미리 입력된 위치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그 곳에는 아직 유전자적으로 자신들보다는 열등한, 그러나 자신들과 닮은 형태의 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 곳을 향해 캡슐은 서서히 가속하며 허공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조엘!!!!!!!!!!!”조드가 돌격해 오는 것에도 아랑곳없이 조엘은 떠나가는 캡슐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들아. 우리의 모든 미래를, 너에게 주마. 너는 외로울 것이다.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 어디서든, 너는 좋은 길을 만들어 내리라, 믿는다. 조드의 암 소드가 조엘의 몸속에 깊숙이 박혔다. 격통이 조엘의 온 몸을 휩쓸었다. 조엘의 고개가 캡슐에서 조드로 향했다. 조엘은 조드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이제, 끝이라네.”조엘의 평온한 눈을 보며 조드는 분노에 휩싸인 채 소릴 질러댔다. “으아아아악!!!!!!!!”조드가 힘있게 뽑아낸 암 소드의 날이 조엘의 피를 바닥에 흩뿌렸다. 그런 와중에도 이미 크립톤은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지붕에서 부서진 조그만 조각들이 계속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조드는 망연자실하게 일어서서, 조엘에게 달려들어 우는 라라를 내려다보았다. 조드에게는 동지로써, 또한 크립톤의 미래를 같이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조금이나마 조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었다.하지만 이제 남아있던 그 끈을 자신의 손으로 끊었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함께, 찌꺼기처럼 남아있던 모든 감정들은 사라져버렸다. 오로지 크립톤의 미래를 위해야 한다는 차가움만 남긴 채로, 그는 단서를 알고 있는 라라에게 거칠게 다가서서는 조드는 라라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키면서 물었다. “코텍스를 어디로 보낸 건가?”“말하지 않겠어.”라라가 노려보는 눈을 보며, 조드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각의 뒤틀림과 진동이 점점 더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우주선에 올라탈 시간만 겨우 주어져 있을 뿐. 그는 라라를 내팽개쳐버리고 건물 밖으로 향하며 가지고 있던 통신기로 피오나에게 통신을 시작했다. “지시한 것은 준비되었는가.”“네. 지금 그 앞으로 와 있습니다.”조드가 건물 밖으로 나서자, 바로 옆의 허공에 거대한 크립토니안의 우주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부하들을 시켜서 미리 탈취하라고 해놓은 특별한 우주선이었다. 그것을 올려다보며 조드는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있는 한, 자신이 만들려는 미래는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에. 라라는 충격을 입은 몸으로 바닥을 기어 아직 숨이 조금 붙어있는 조엘의 몸을 껴안고 어렵사리 앉았다. 이미 지각은 점점 부풀어 올라 그 속에 있는 것들을 상공으로 뿜어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몇 개의 산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주변의 건물들이 단숨에 그 폭발 속으로 휩쓸렸다. 인지조차 못한 채 죽어가는 크립토니안들의 마지막 광경을 바라보며 라라는 조엘에게 말했다. “우리의 미래가, 우리의 아들이 떠났어요, 조엘.”조엘은 말 대신 떨리는 팔을 들어 마지막으로 라라의 손을 잡으며 라라를 마주보았다. 둘은 크립톤의 마지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규모의 폭발은 점점 조엘의 건물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찰나에 라라는 조엘의 머리를 강하게 부둥켜안았고, 그 순간 두 사람의 잔영은 바닥에서부터 치솟아 오는 마그마에 먹혀 가려졌다. 크립톤의 내부 폭발이 융기하면서 행성의 모습은 짓눌리는 고무공처럼 크게 사방으로 일그러졌다. 내부로 잠시 응축되는 듯 싶었던 멸망의 힘은 순식간에 우주 공간의 전체면으로 되튕겨 나갔다. 행성은 자신의 시체조각들을 흩뿌리며 끝내 모든 것이 뿜어져 나오듯 폭발했고, 어마어마한 양의 부산물들은 인력을 잃어버린 채 자유속도로 공간을 질주했다. 그 반탄력과 파편들은, 궤도상을 벗어나 칼엘의 캡슐을 겨우 따라잡기 시작했던 조드의 우주선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조드의 우주선이 기우뚱거리며 손상을 입은 기체로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는 동안, 칼엘의 캡슐은 그것을 방패삼아 하이퍼 드라이브를 가동시켰다. 초공간 도약이 가져오는 공간의 찢김과 함께, 캡슐은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시작했다.크립토니안의 미래인, 아직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아기에게 삶을 주기 위해.
-
-

[자유·수다] 노총각의 삶
제대하고 졸업한지가 엇그제 인데 벌써 민방위가 되고 30대 중반이 꺽였다...주변엔 결혼한 친구들 보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1년에 두세번정도 고등,대학교 친구들 모임있으면 9시10시 쯤 부랴부랴 마누라 눈치에 들어가는 넘들이나 마누라 통금시간은 없지만 마누라 눈치피해 오늘 하루 놀아보자고 미친듯이 달려보자는 넘들이나 내눈에는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이다..다들 비슷한 삶을 살았다. 졸업한 고등학교도 서울에서 알아주는 명문고라 대부분 친구들도 상위권 대학갔고 내가 나온대학도 국내 다섯손가락 드는 대학이라 친구들 스펙이 장난아니다.의사,세무사,변리사,약사, 대기업 과,차장, PD, 기자,국토해양부 공무원 등등...하지만 결혼 후 행복해 보이는 녀석은 없어보인다. 단 한가지...자식이 그렇게 이쁘고 사랑스러울수가 없어서 다음날 출근에 쓸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하지만 그것도 아이의 유년기 시절뿐...초등,중등으로 들어가면 아이들은 점점 아버지와 멀어지고 아버지는 그저 물주로 생각한다. 난 결혼 생각이 없다. 사회적 지위가 없는것도 아니고 얼굴이 덕후도 아니고 키가 작은것도 아니다. 졸업하고 바로 사업 해서 2년 고생하고 부모님 도움없이 서울에 집이랑 조그마한 재수생 학원 4개을 운영하고 있다. 여자만나는것도 어렵지 않아서 많이 만나봤다. 여자만나서 잼있는것도 잠시...연애는 이제 지겨울 정도로해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도 쉽지 않고 지금 내가 유일하게 사랑 하는 것은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이랑 강아지들이다. 주변 친구들은 한심하다. 대부분 몇살때는 졸업을 해야하고 몇살때는 취직을 해야하고 몇살때는 결혼을 해야하고..마치 스타 크래프트 빌드 테크 타듯이 인생을 산다..정말 나의 운명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10대 후반에 나타나면 그때 결혼하는거고 50대 후반에 나타나면 그때 결혼하는건데 대부분 결혼 적령기때 그나이때 그시점에 만나는 여친이랑 결혼한다. 대부분 결혼전에 물어봤을때진짜 사랑해서 결혼 하는거냐 물으면 그건 아니라고 한다..다 그냥 복잡해서 설명은 못하고 해보면 안단다..미국에서 대학원 생활시절 놀란점이 미국사람들은 더 늦게 결혼하는줄 알았는데 정말 어린 학생 신분에도 일찍 결혼하고캠퍼스에서 와이프랑 애기랑 같이 샌드위치먹는 학생도 많고 기혼자들도 꽤 된다..대부분 20대중반에서 30대 초반 애들인데 우리나라랑 다르게 주변 압박에 20대후반~30대 중반에 결혼하는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다. 그리고 40대나 50대에 초혼하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비관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남녀가 서로 위로하고 감싸주고 행복한 결혼을 누구나 꿈꾸지만 그건 오래 못가거나 현실에 부딪히면서 점점 초심이 없어진다.내가 위인은 아니지만 대부분 위인들도 솔로이거나 이혼한 사람들이 많다. 본인의 꿈과 가정을 동시에 얻기는 힘들다고들 한다.(하지만 빌게이츠같은 사기케도 있음) 난 여친이랑 하는거 보다 야동보고 혼자 하는게 이제 더 편한다. 주말에 뻔한 데이트 (밥-커피-영화)가 지겨워서 예전 여친들이랑 여행도 많이 다니고 취미생활도 같이 해봤지만 다 재미없다..지금도 만나는 여자랑도 사실 재미는 없지만 그나마 어리고 발랄한 맛에 가끔 기분 전환은 되지만 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 토니안과 혜리나이차에 대해 말이 많은데 사실 내주변에 화려한 싱글들 사이에서는 별로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결혼한 친구들은 회사일과 회식 및 스트레스에 쩌들어 피부도 확 삭고 배나온 아저씨들이 되었지만, 부양 가족에 대한부담이 없는 싱글친구들은 서슴없이 사업도 시작하고 어차피 잃을게 없는 젊은이란 생각에 열심히 해서 성공한 친구도 있다. 그리고 자기관리 시간도 많고 싱글이다 보니 피부 및 몸매관리에도 많은 신경을 쓰니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친구들도 많다. 나도 만약에 결혼을 했으면 사업을 하지 못하고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회사를 선택 했을것이다. 지금은??난 회사생활 안하길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물론 사업 초창기때는 하루종일 사업장에 있었지만 어느정도 안정이 된 지금은 오전 11시~오후4시 근무하며 강사 및 부원장 관리 해주고 주말에는 일체 일안한다. 수익도 웬만한 대기업 간부 뺨친다. 주변에선 그러다가 진짜 결혼 못하고 나중에 늙어서 가족없으면 엄청난 외로움이 올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럼 나중에 외롭기 싫어서 결혼을 해야하나??그것도 이기적인 생각이며 어차피 인간은 혼자 태어나 혼자 죽고 외로움은 극복하는것이 아니라 달고 살면서 적응하는거라고 생각한다.근데 결혼한 사람은 정말 외로움이 없을까??오히려 상대적 외로움을 더 느끼다고 한다. 일만 죽어라 하는데 친구 남편과 비교하면서 집에서 취미생활 하는 아내와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이 아빠를 기피하면서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가서 하소연도 못하고..결혼했는데 더 외로운 친구들이 많다. 오피스 레이디란 말이 괜히 나왔을까?? 그렇다고 늙어서 밥차려주고 살림해줄 사람이 필요해서??지금 조선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늙고 은퇴하면 남자가 집에서 살림해야 하는 시대다...늙어서 혼자면처량해보인다는 말은 미혼과 기혼의 문제가 아닌것 같다. 엄청난 이혼율을 자랑하는 요즘. 황혼에 이혼당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노인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어느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되면 혼자 사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요즘 절실히 생각한다. 주변에 성공한 40대 선배들도 본인이 기혼이건 미혼이건 20대 여자랑 연애하는게 어렵지 않다고 하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요즘은 어느정도사회 돌아가는거 알고 돈맛을아는 능글맞고 여우같은 20대후반 및 30대초반 여자보다 오히려 발랄하고 아직 멋모르는20대초반애들이 편하다. 아무래도 결혼생각없이 만나려다 보니 결혼 부담없는 20대초반여자가 나한테 편한.. 그런것일 수 도있다. 주변에서는 자칫 이런 나를 보면 젊은 여자 밝히고 엔조이 좋아하는 녀석으로 보지만 난 까다로운 20대 후반 보다 초반이 좋을뿐이고 물론 20초반애들이 에너지도 넘치고 피부도 탱글하고 냄새도 하앜~하앜~.....여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린여자가 편하다. 정리하자면......대를 이를 생각하면 부모님 죄송스러워서라도 결혼 해야하지만 남동생들이 결혼을 해서 대를이었고굳이 주변에 꾸사리에 떠밀려 결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정으로 맘을 터 놓고 인생을 함께 할 사람이 없다는것에 대해 외롭게 볼 수도 있지만 요즘 부부끼리 진정으로 맘 터 놓고 대화하면서 서로 아껴주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이런말 하면 친척들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냐고 뭐라하지만, 굳이 구더기낄 확률이 높은데 별로 즐겨먹지도 않는 장을 담글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이상 노총각의 합리화였습니다... 에휴 딸이나 치고 자야겠다...라고 생각한다.
군포시장작성일
2013-04-25추천
12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