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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싱글벙글 지도로 보는 동아시아 역사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중국 최초의 왕조 하(夏)나라 현대 중국에서는 실존했다고 우기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역사가 아닌 신화의 영역임. 상나라도 마찬가지로 그냥 신화인줄 알았는데 20세기에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존재가 입증되었음. 공식적인 중국의 첫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짐. 이후 주나라가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동양의 문화체계를 확립했음. <사기>에 의하면 요동으로 주나라가 와서 고조선을 통치했다고 하는데 고고학적 근거가 없어서 한국 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음. 주나라 멸망 이후 그 유명한 춘추 전국시대. 고조선은 요동을 넘어 만주일대와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점령하며 분열중인 중국과 대등한 강대국으로 입지를 넓힘.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나라가 등장. 시황제는 요동을 공격하며 동양의 패권을 다지고 만리장성을 쌓아 북방 흉노의 침략에 대비함. 진나라는 얼마 못가 시황제의 폭정으로 멸망하고 초한전쟁에서 승리한 유방의 한나라가 재통일. 현재 중국인들의 중화사상과 한족이라는 개념을 알린 나라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이기도 함.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에 가장 어울리는 나라. 황제가 된 유방은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을줄 알았지만 흉노와 붙었다가 영혼까지 털림.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 북부를 점령해 한4군을 설치함. 또한 흉노 정벌에도 성공하고 베트남까지 정복, 서쪽으로 실크로드까지 개척하며 최전성기를 보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초창기 모습. 부산 위치에 있는 사로국이 나중에 신라가 됨. 평양 지역은 여전히 낙랑군 소속으로 중국땅임. 한나라가 멸망하고 조조 유비 손권이 다투던 그 유명한 삼국지 시대. 이때 위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해서 수도까지 털어먹지만 완전히 멸망시키진 못함. 사마염의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며 삼국시대 종결. 낙랑은 아직도 중국 땅임. 중국이 다시 분열되어 혼란한 시대. 이때부터 힘을 키운 고구려가 313년 낙랑을 정복하면서 한반도에서 중국 세력이 사라지게 됨. 근초고왕이 이끄는 백제의 최전성기. 그 고구려마저 백제에게 삼국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패퇴하며 동진, 일본과 활발한 교역을 하며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함. 광개토대왕 등장이후 고구려의 영토 확장 모습. 한반도는 충청도 인근까지 지배, 북쪽으로는 만주를 비롯한 요동지방 까지 영토를 넓히며 위-진 이후에 남북조 시대에 들어간 중국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국력을 가진 동북아의 패권국으로 위세를 떨침. 참고로 중국을 유린하던 북방민족들은 전부 고구려에게 기가 눌려 조공을 바치는 등 이후 거란족과 여진족, 몽골족이 날뛰게 된 이유가 이들을 무력으로 통제하던 고구려가 사라졌기 때문. 장수왕이 고려로 국명을 바꾼 시대. 다만 후세 역사가들은 왕건의 고려 왕조와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라고 함. 지증왕이 신라라는 국명을 확정한 것도 이 무렵. 신라의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 진흥황 시절. 가야는 이와중에 멸망하지 않았는데 엄연히 보면 4국시대로 말하는게 맞지만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아니기에 사실상 무시되는 국가. 300년간 분열기를 끝낸 수나라의 중국 통일. 그러나 고구려 정복에 모든 국력을 꼬라박은 수나라는 거짓말처럼 패하게 되고… 당나라가 다시 재통일. 어찌보면 진한 교체기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는게 수당 교체기인듯. 서역까지 정복한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수나라가 국력을 탕진했는데도 정벌하지 못한 고구려까지 정복했으나 당나라 역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국력 소비가 막대했기에 신라에게 개쳐맞고 쫓겨나며 신라가 주장하는 영토까지는 인정하고 옛고구려의 영토까지만으로 만족하고 물러남. 사실상 신라는 삼국통일이 아니라 이국통일이라고 해야할 판. 고구려의 영토는 백제와 신라를 합한 것 보다 컸기 때문. 고구려 유민 대조영은 고구려의 의지를 이어받아 발해를 건국. 당나라의 거센 방해에도 불구하고 만주와 연해주를 아우르며 고구려 이상의 영토를 확보하는 등 신라와 함께 공존하며 당나라의 황제에게 해동성국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통일신라의 전성기가 끝나고 분열 시작. 견훤은 백제, 궁예는 고려를 건국했는데, 예전 삼국시대에 존재했던 나라들의 이름을 사용함. 후대의 역사가들은 구분하기 쉽게 후백제, 후고구려라고 부름. 중국도 당나라가 멸망하고 분열기가 시작되며 거란족의 요나라가 잘나가는데, 무려 발해까지 먹어버림. 왕건의 고려가 한반도를 재통일함. 신라의 통일과 이질적인 점은 자주적인 통일이라는 것과, 고구려라는 나라의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것. 이후 고려는 요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송나라가 SOS를 보내자 친선관계를 맺음. 그러자 요나라가 고려에게 시비를 걸고 서희는 이때 말빨만으로 외교 담판을 통해 강동6주를 얻어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의 절반을 차지함. 그 기쁨도 잠시 칭기스칸의 몽골 부족 통일. 순식간에 금나라를 갈아버리고 고려를 복속시킨 뒤, 유럽과 아시아 일대를 정복해버림. 이때까지 버틴 남송이 대단할 정도. 고려의 끈질긴 저항과 먹히지 않겠다는 의지로 결국 몽골은 고려를 간접통치 하는 선에서 남겨두고 중국을 통일시키며 몽골제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거듭남. 핍박받던 한족의 명나라가 몽골을 몰아내고 중원을 되찾음. 이때 명나라는 고려에게 시비를 걸며 조공을 요구하는데 최영이 요동 정벌을 명령하지만…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오히려 쿠데타를 일으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 명나라에게 사대주의 정책을 펼치며 명나라의 그늘 아래서 보호받게 됨. 세종 시기에 여진족을 정벌하고 압록강-두만강 국경을 확정. 현재 남북한을 아우른 한반도의 영토는 이시기에 형성됨. 잠자코 있던 일본은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킴. 명은 임진왜란때 조선을 돕느라 국력 소모가 막대했기에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를 막을 수 없었고, 조선은 명청 교체기에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킨다는 병신같은 선택을 저지르고 맘. 청나라는 명나라 대부분의 지역을 정복한 뒤에 조선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켜 명나라를 섬기던 조선은 다시 청나라를 섬기게 됨. 지금의 중국 영토를 형성한 청나라의 최전성기. 이때 대영제국과 함께 세계 최강국을 다투던 러시아 제국과 마찰하기도 함. 세계 최초로 마약 거래 금지했다고 일으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 유럽열강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고 연해주 영토는 러시아가, 홍콩은 영국이 가져가게 됨. 이와중에 잠자코 있던 일본은 제국주의를 선포하며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시작함. 조선도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국제정세를 살피고 제국주의를 선언하는데 결국 근대화된 일본제국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연달아서 승리하고 미국과 영국 등의 열강들의 지원에 힘입어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에 성공. 청나라가 지배하던 베트남은 프랑스가 뜯어먹음. 망해가던 청나라는 결국 수천년동안 이어진 황제국을 포기하고 쑨원의 중화민국으로 대체됨. 이후에는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중일전쟁으로 중화민국을 침략하는 일본을 서양 열강들이 재재하자 눈깔이 돈 일본은 열강들의 식민지가 깔려있는 동남아에서 남방작전을 실시하고 영국과 미국을 해전에서 전부 격파하는 쾌거를 선보이며 인도차이나반도, 동남아, 조선, 중국 영토의 절반을 전부 차지함. 이제 대동아 공영권은 시간 문제인 것 처럼 보였으나… 결국 남방작전을 위해 일시적으로 시간을 끌기 위한 작전이였던 진주만 공습이 미국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고, 미국이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자 추축국 독일 역시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전개, 일본은 열세한 국력으로도 기상천외한 작전을 통해 3년동안이나 발악하며 선전했으나, 원폭 2방 맞고 무조건 항복. 일본이 물러난 한반도는 북위 38도 선을 기준으로 당시 초강대국이던 소련이 북쪽을, 미국이 남쪽을 점령한다. 결국 조선-대한제국-일본제국 점령기 대한제국에서 1948년 남한과 북한은 따로따로 독립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한민국,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됨. 이와중에 중국 대륙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국공내전이 일어나는데 당시 중화민국은 일본제국과의 중일전쟁에 막대한 국력을 쏟아 부은 상태였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패배하여 타이완 섬으로 쫓겨남. 사실 미국은 인구가 많은 중국이 소련같은 공산국가가 되면 위험할 가능성에 대비해 중국에게 지원을 막대하게 하였으나, 그 지원 덕분에 공산화가 되버림. 625전쟁.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고 북한은 파죽지세로 부산 앞까지 진격하지만, 미국과 연합군이 참전해서 역전, 역으로 통일에 한걸음만 남았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리며 장기전으로 돌입함. 결국 1953년 휴전선을 그으며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일단락. 일본은 미군정이 물러나며 일본국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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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김정일이 즐겼던 요리들
후지모토 겐지(가명) 1982년부터 2001년까지 김정일과 그 일가들한테 요리를 해준 담당 요리사였던 일본인임 여기서 나온 정보들은 이 사람이 말한 정보가 대다수이니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김정일은 깊고 진한 맛을 좋아하여 차림표에도 중화요리가 많다. 특히 상어 요리는 김정일이 매우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 중에서도'야자상어날개탕'은 가장 특별한 요리로 러시아와 중국의 인사가 북조선을 방문했을 때 만찬석상에도 내놓는다. 또한 상어 지느러미를 일주일에 세 번이나 먹는 경우도 있다. ‘상어 지느러미와 전복죽’, ‘상어 지느러미 찜’, ‘상어 지느러미 유부 수프’가 사흘 밤 계속 나온 적도 있다. 김정일은 스테이크도 좋아해서 프랑스로부터 직접 요리사를 부른 적도 있다. 북조선에서는 고기를 완전히 익혀 먹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는 ‘미디엄(Medium)’이나 ‘레어(Rare)’가 더 맛있다는 것을 알고, 그 후로 김정일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는'미디엄이나 레어'로 굽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한편 김정일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식탁에 오르는 북한요리 중 한국 특유의 매운 음식은 적었고, 삼계탕이나 설백탕(雪百湯, 소뼈를 우려낸 국물 설렁탕)등이 많았다. 특히 한국의 국물 요리중에서 가장 좋아했던건 단고기(보신탕) 요리였고 연중 세 번 찾아오는 복날에는 단고기 요리가 반드시 식탁에 올랐다. 내 담당인 초밥(스시)은 매주마다 한 끼는 꼭 먹었다. 일본요리의 섬세한 맛은 김정일의 미각에도 맞는 것 같았다. 생선회를 먹을 때도 꼭 고추냉이(와사비)를 푼 간장에 찍어 먹었다. 또한 내가 처음으로 김정일에게 성게알 초밥을 권한 사람인데 김정일은 처음에는 성게알의 모습을 보고 영 내키지 않는듯 하더니 성게알 초밥을 먹고 매우 맛있어했다. 특히 ‘뱀장어 캐비어 초밥’은 내가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것인데, 뱀장어의 단맛과 캐비어의 짠맛이 일품이라며 호평을 받았다. 김정일이 초밥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초밥은 참다랑어 초밥이었다. 내가 원산 초대소에서 김정일을 처음 만났을때도 내가 만든 참다랑어 초밥을 각 부위별로 잔뜩 먹었다. 송이버섯도 가을에는 자주 식탁에 오르는데, 한 사람당 7~8개씩 먹는다. 송이버섯을 넣고 밥을 지을 때마다 김정일은 “향이 매우 좋군!”하며 좋아했다. 김정일의 요리에 대한 지론은 첫째가 눈(모양과 색), 둘째가 향기, 셋째가 맛이었다. 생선회를 생선 모양 그대로인 상태로 올렸을 때도 보기가 좋다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정일은 탁월한 미각의 소유자다. 그것을 입증해줄 만한 일화가 있다. 1992년, 8번 연회장 철판구이 코너에서 초밥을 만들고 있던 내게 김정일이 한마디 했다. “후지모토, 오늘 초밥은 평소와 맛이 다른데.” 그 날 밤 김정일은 내가 초밥을 만들기 전부터 술을 많이 마셨다. “그래서 내가 혹시 과음하신 탓이 아니겠느냐”고 말하자 김정일은"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리실로 돌아가 사용한 조미료 양을 확인했다. 설탕이 평소보다 10g 덜 들어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김정일뿐이었다. 나만 만들 수 있는 메뉴인 ‘후지모토 우동’도 자주 주문을 받았다. 이 요리는 꿩고기로 국물을 우려내야 하기 때문에 주문을 받으면 오전 중에 꿩 사냥을 나간다. 꿩은 망원총으로 잡는데, 총을 쏠 때는 조준하는 지점에 주의해야 한다. 머리가 아닌 몸체에 총알이 박히면 요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꿩은 머리가 작은데다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에 머리를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아무튼 잡은 꿩고기로 국물을 우려내면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김정일도 먹을 때마다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마신다. 그리고는 “이 맛은 후지모토밖에 낼 수 없어”라며 언제나 나를 칭찬한다. 한편 밥을 짓기 전에는 요리사와 웨이터가 쌀을 한 톨 한 톨 검사한다. 쌀알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부서져나간 것은 빼고, 형태가 완전한 것만을 고른다. 밥은 특별히 제작한 가마솥으로 만들고 요리 특별한 나무로 된 장작을 사용한다. 음식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나는 여러 차례 외국에 다녀왔다. 김정일이 무엇을 사오라고 할 때마다 항공편을 이용해 음식 재료를 사러 가는 것이다. 싱가포르에는 과일을, 러시아와 이란에는 캐비아(소금에 절인 철갑상어 알)를 사러 갔었고, 그 밖에 중국과 유럽, 일본에도 자주 다녀왔다. 일본에서는 주로 생선을 구입했다. 질 좋은 다랑어와 고영희 부인이 좋아하는 물오징어등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전부 1,200kg이나 되는 양을 구입한 적도 있는데, 그때는 운반하는 데 드는 운송료만도 엄청났다. 나는 항공회사와 담판을 벌여 운송료를 엄청나게 깍은 적도 있다. 북조선에 돌아와 그 사실을 보고하자, 김정일은 기뻐하며 그 돈을 모두 내게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멋들어지게 거절했다. “그러면 제가 노력한 의미가 없어집니다.” 말린 생선도 몇 가지 구입했는데, 김정일은 그 중에서도 꽁치, 전갱이, 꼬치고기, 바다빙어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다. 먹는 도중에 내가 “말린 생선은 무를 갈아서 함께 먹어야 비린내가 없어집니다.” 라고 말하자 김정일은 “일본 사람들의 식생활은 꽤 섬세하구만”하며 감탄했다. 어느 날, 식사 도중에 김정일이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후지모토, 일본에 쑥찹쌀떡이 있지 내일 가서 좀 사와라.” 그는 가는 김에 일본 담배도 종류 별로 사오되, 이번 출장은 2박3일 안에 돌아와야 한다고 못박았다. 나는 곧바로 출발하여 북경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긴자에 있는 미쓰코시 백화점에 전화를 했다. 긴지로 다이후쿠라는 떡집을 통해 찹쌀떡 100개와 쑥찹쌀떡 100개를 준비해놓으라고 했다. 다음날 오전 중에 물건을 받은 다음 다시 북경을 거쳐 돌아와야하는 강행군이었다. 찹쌀떡은 개당 100엔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 든 교통비와 숙박비를 포함하여 계산하면 개당 1,500엔인 셈이었다. 이렇게 해서 평양과 도쿄를 잇는 작업을 단숨에 끝마친 나는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떡과 여러 종류의 일본산 담배를 들고 김정일이 기다리는 신천 초대소로 향했다. 일본에서 종류별로 사온 담배를 모두 바카라용 테이블 위에 늘어놓자, 김정일은 맨솔 담배를 집어들었다. 당시 김정일은 “로스먼드 로열”이라는 영국산 담배를 피웠는데, 일본의 맨솔도 한번 피워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 뒤 맨솔 까르띠에를 피우기도 했는데, 그는 나중에 아예 담배를 끊었다. 일본에서 사가지고 온 떡은 81과의 검사를 받아 합격 통보를 받은 후 먹었다. 김정일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일본의 찹쌀떡은 정말 맛있어. 왜 우리 요리사들은 이렇게 만들지 못할까 쑥 향기도 아주 좋아.” 1989~1991년 3년 동안은 김정일의 관저에도 자주 갔다. 관저에는 술 창고가 하나 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 그 안에는 세계 각지의 명주(名酒)들로 가득 차 있었다. 1만 병은 족히 되어 보였다. 일본 술도 있고, 소주도 있었다 하루는 김정일이 “일본 술 가운데 여기에 없는 것을 찾아봐”하기에 하나하나 점검했다. ‘산토리 임페리얼’이 없었다. 산토리 임페리얼은 일본의 최고급 위스키다. 김정일은 다음에 일본에 가면 반드시 사오라고 했다. 그 후 기회가 닿아 일본에 갈 때가 있었다. 나는 귀국할 때 임페리얼을 다섯 병 사가지고 들어와 김정일에게 따라주며 말했다. “이 임페리얼은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확 퍼져 주며 전혀 걸리는 느낌이 없습니다.” 김정일은 처음 한 모금을 음미하듯이 마시더니 감탄했다. “맛이 좋아, 정말 확 퍼지는 느낌이야.” 김정일이 집권중인 기간동안 아사한 사람의 수는 “최소” 40만~50만명으로 추정중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28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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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무색해진 '트럼프 골프외교 연습' 해명‥"무속인 점괘라도 받았나"
경기도 부천의 호텔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이틀 뒤 공군 골프장에 왔다는 겁니다. 국방위원회에선 북한 ‘오물풍선’이 날아온 9월 7일, 윤 대통령이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는지 질의가 나왔습니다. 그러다 이달 9일, CBS ‘노컷뉴스’가 윤 대통령이 태릉골프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다음날과 지난 12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잇따라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골프 외교에 대비해 8년 만에 연습에 나섰다”, “대화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대선은 11월 5일이었는데, 훨씬 앞선 8월 말부터 군 골프장을 찾았다는 내부 관계자 증언과는 앞뒤가 안 맞습니다. https://naver.me/GmbsRTgU 무색해진 ‘트럼프 골프외교 연습’ 해명‥"무속인 점괘라도 받았나" ◀ 앵커 ▶ 그런데 이번 논란이 일기 전부터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는지, 정부에 물어왔습니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해 주지 않던 정부와 대통령실은, 이번에 대통령이 군 골프장을 방 naver.me https://naver.me/Fnm99OXc [단독]尹 골프 갑작 방문에 10팀 취소시켜…"무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이 이뤄지던 지난달 12일에도 서울 태릉체력단련장(태릉CC)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당일 예약이 취소된 팀이 10개인 것으로 확인됐다. ‘안보 위기’ 상황이란 명분 때문에 국 윤석열 김건희 오세훈 홍준표 한동훈 尹 10월 12일 골프, 기존 예약 10팀 비워'北도발' 당일 골프장 ‘현역 軍 불가’ 방침…남의 자리 비우고 들어간 대통령경호 구실 홀 간격 띄운 뒤 앞 팀에 경기 재촉…경호처 적반하장 “국민 제한 안 주려”골프장 찾은 이용자들 불만 폭주…"대통령 무례했다" 사정당국 정보보고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이 이뤄지던 지난달 12일에도 서울 태릉체력단련장(태릉CC)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당일 예약이 취소된 팀이 10개인 것으로 확인됐다.'안보 위기' 상황이란 명분 때문에 국방부의 취소 방침이 있었는데, 그 자리를 국군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이 들어가 친 셈이다.윤 대통령은 이달 2일에도 같은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는데, 앞뒤로 몇 팀씩 비워놓고 치는 과정에서 “무례했다”는 불만이 사정당국에 보고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13일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12일 태릉CC에서 예약이 취소된 팀은 10개다. 태릉CC는 국방부 산하 국군복지단에서 운영하는 ‘군(軍) 골프장’으로, 예약 취소는 주로 국방부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이는 전날 저녁 북한이 갑자기 중대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날인 10월 11일 저녁 북한 외무성은 성명을 통해 우리나라가 평양으로 무인기를 침투시켜 ‘삐라’(전단) 등을 살포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모든 공격 수단을 ‘준비 태세’에 두는 등 보복 조치에 나서겠다고 위협했다.실제 북한은 바로 다음 날 우리나라를 향해 ‘오물 풍선’을 보내는 등 추가 도발을 이어갔다. 그러자 태릉CC예약자 중 현역 군인들을 중심으로 국방부에 의해 예약이 취소됐다. 통상 북한 도발 등 위기 상황 때 국방부에서 ‘장성급 운동(골프) 금지’ 등 지령이 내려온다고 한다.문제는 이렇게 취소된 자리에 정작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들어가 골프를 쳤다는 점이다.윤 대통령은 이달 2일에도 같은 골프장을 찾았다. 오후 12시 55분 화랑 코스에서 시작해 을지 코스까지 18홀을 전부 다 돌고 오후 5시 이후 골프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11월 2일 태릉CC는 화랑 코스 12시 41분, 12시 48분과 을지 코스 13시 2분 등 윤 대통령 골프 시작 앞뒤로 예약이 비워져 있었다. 이날 비워진 티(tee-time)은 총 6개에 달한다. 이는 홀 간격을 띄우는 대통령 경호 방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그럼에도 민폐는 벌어졌다. 억지로 홀을 비워야 했기 때문에 윤 대통령보다 앞에서 플레이하던 팀을 재촉하는 일이 잦았다. 이와 관련 불만이 속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윤 대통령의 골프와 관련해 “너무 무례했다”는 민원이 접수돼 사정 당국에 관련 내용이 보고됐다.하지만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마치 국민들을 위해,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태릉CC를 찾았다며 정반대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의원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에게 “꼭 트럼프하고 골프 치는 게 필요하면 연습장 가셔야죠”라고 물었다. 이에 김 차장은 "연습장에 가게 되면 또 거기 일반 국민들이 제한받는다"고 답했다.다른 사람의 경기 진행을 방해해 놓고 적반하장으로 배려를 위해 군(軍) 골프장을 찾았다는 억지 논리를 편 셈이다. 한편 윤 대통령은 지난 11월 9일 태릉CC로 골프를 치러 가는 장면이CBS노컷뉴스 취재진에 포착된 바 있다. 이후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의 만남을 앞두고 8년 만에 골프 연습에 나섰다’고 홍보하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인 올해 8월부터 윤 대통령의 라운딩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8월 31일부터 9월 28일, 10월 12일, 11월 2일, 11월 9일 등 토요일마다 윤 대통령이 골프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공군 산하의 남수원골프장의 경우 통상 매일 86팀의 예약이 꽉 차지만, 윤 대통령이 찾았다는 제보가 있던 9월 7일에는 72팀만 받았다고 한다. 14팀의 예약 시간대가 비어져 있던 셈이다. 입벌구 윤꼴통표 공정과 상식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280742
벽수비작성일
2024-11-15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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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19세기 제국주의 시절 서양의 풍자화들 .jpg
19세기 후반에는 제국주의, 민족주의가 절정에 달한 시기였고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으로 무장한 백인들의 자신감은 극에 달해있던 시기였음 또한 민족주의 논리에 따라 국가의 존엄, 민족의 운명, 식민지에 대한 집착이 강박적인 수준이었음 또한 대중매체가 발전하면서 풍자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고 이러한 풍자화 속에 당대 서구 유럽인들의 시각을 엿 볼 수 있음 “누군가는 받드시 뒷받침 해야 한다” 괴물로 상징되는 용을 타고 ‘4억명의 야만인’이라는 깃발을 든 중국인의 전진을 자동차, 기관총, 면화, 철도, 전선등으로 상징되는 서구 문명을 짊어진 엉클 샘(미국의 의인화)이 가로막고 있는 모습. “케이프 타운에서 카이로까지” ‘문명화’라는 깃발을 든 백의의 여신을 선두로 해서 영국군, 개척자, 노동자들이 야만인을 짓밟고 ‘야만’이라는 깃발을 든 아프리카 부족들에게 전진하는 모습. 이는 영국의 식민지 확장을 옹호하는 걸로 볼 수 있음 “돼지 꼬리(변발)은 잘라야 해” 머리에 서구 문명을 상징하는 빛나는 별을 달고 있는 여신이 ‘진보와 19세기’라 써져있는 가위를 가지고 야만적인 중국인의 문화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음. 다들 알겠지만 이 당시에는 문화 상대주의 따윈 개나 주던 시기 “백인의 짐” 존 불(영국의 의인화)과 엉클 샘(미국의 의인화)이 세계 각국의 야만인들을 등에 태우고 폭력,야만,무지,편견,잔인성등과 같은 바위를 힘겹게 오르며 정상에 빛나는 ‘문명’이라는 이름의 여신을 향해 가고 있음 이런 식으로 식민지를 확장하는 것은 야만 민족들에게 문명을 선사해주는 축복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 “세월이 흐른 후에” 미국 독립전쟁, 미영전쟁이 발발한지 수십년이 지난 후 미국은 새롭게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는 오른쪽의 젊은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고 왼쪽은 더욱 큰 대포를 가지고 있지만 노쇠해 보이는 늙은 여성이 미국의 손을 부여잡고 “딸”이라고 외치고 있음 곧 있으면 미국이 세계를 주도할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보임 “새로운 손님” 청일전쟁의 승리 이후 왼쪽 미국의 주선 아래 ‘열강 클럽’에 가입하게 된 일본이 기존의 회원국에게 인사를 하고 있음 서양식 콧수염과 양복, 양우산, 모자를 쓰고 있지만 나막신을 신고 동양인의 모습을 한 일본에 대해 서구 열강들은 의아함과 우려의 시선을 가지고 있음 “우리는 문명과 평화를 위해 함께 서있다” 미국과 영국이 제국주의 질서를 주도한다는 것을 암시 ‘첫번째 의무 - 문명화’ “저 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처리하겠다” 1900년 발발한 의화단 운동으로 여러 서양인이 죽고 공사관이 불타던 당시 서구 문명을 상징하는 백의의 여신이 왜소해 보이는 광서제를 향해 의화단을 해치울 것을 강하게 명령하는 모습임"학교 수업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의식이 강해지던 미국이 하와이,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쿠바등의 ‘미개국’들을 향해 엄한 시선과 회초리로 문명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 “우리의 크리스마스 트리” 마찬가지로 성조기를 두른 컬럼비아(미국의 여성 의인화)와 엉클샘이 당시 미국의 보호국이었던 하와이, 푸에르토 리코등과 같은 어린이에게 문명과 성경(기독교)을 선물해 주는 모습. 이렇게 당시 백인들은 제국주의야 말로 미개인들에게 축복이라고 생각했음 “거의 날 기독교도로 설득할 뻔 했군” 의화단 운동으로 열받은 열강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고 닥치는 대로 중국인들을 학살하고 있고 중국은 훨씬 강력한 미국을 향해 기독교인의 자비를 구걸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음. 러일전쟁 당시 조선을 형상화한 모습 일반적으로 갓을 쓴 채 일본과 러시아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무력한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음. ------------ 이러한 풍자화를 통해 백인들의 자신감과 우월의식, 문명에 대한 강박의식을 엿볼 수 있고 식민지 확장이야말로 미개인들에 대한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있음 또한 현대 중국이 힘 좀 쎄지자 괜히 더 나대는 것도 이 19세기,20세기 당시 서양열강들에게 무기력하게 털렸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더욱 일그러진 모습의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거라는 걸 짐작해 볼 수 있음 조선 역시 아무런 능동적인 의지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약소국의 모습이었다는 걸 알 수있음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28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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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홈런 군단에 세밀함 더한다...'340도루' 이종욱 코치 삼성 합류, '베이징 영웅'들과 의기투합
홈런 군단에 세밀함까지 더한 완전체 팀 컬러를 꿈꾼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주루 특화 코치를 새로 영입했다.삼성은 5일, 1군 작전ㆍ외야 코치로 이종욱 코치와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연봉 9000만원에 계약기간은 1년이다. 이 코치는 오는 6일부터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 합류해 선수단을 지도할 예정이다.삼성은 "선수단의 공격적인 베이스러닝 및 외야수의 타구 판단 능력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영입 이유를 설명했다.이종욱 코치는 선린정보고-영남대 출신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지만 이후 방출, 두산 베어스에서 신고 선수 신화를 쓰며 국가대표 외야수로 성장했다. 2014시즌을 앞두고 두산에서 NC로 이적, 4년 최대 총액 50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군 통산 1446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9푼1리(5081타수 1478안타) 41홈런 543타점 843득점 340도루를 기록했다. 2006년 51개의 도루로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다. 2007, 2008, 2010년 통산 골든글러브 3회 수상에 빛난다.삼성 코칭스태프 가운데 박진만 감독과 정대현 수석 코치 그리고 이진영 타격 코치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서 함께한 바 있다. 한편, 삼성은 지난 1일 타치바나 1군 타격 코치, 이병규 퓨처스 감독, 이정식 퓨처스 배터리 코치, 강봉규 육성군 타격 코치, 권오준 재활군 코치 등 5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하면서 코칭스태프 개편을 시작했다. 이종욱 코치 영입으로 올해 185홈런으로 홈런 1위에 오른 타선에 주루 플레이 및 기동력을 더해 완전체의 팀으로 거듭나기 위한 채비를 마쳤다. 김지찬 김성윤 등 발 빠른 선수들에 이재현 김영웅 등 올해 성장한 젊은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마크42작성일
2024-11-0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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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오늘은 점자의 날입니다 (박두성 선생님의 위대한 업적)
https://www.hangeul.go.kr/webzine/202111/sub2_2.html #01 1926년 11월 4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또 하나의 우리글, 시각장애인의 한글이라고도 불리는 훈맹정음이 탄생한 날이기도 합니다. #02 사실 한글 점자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미국 선교사 로제타 홀인데요. 이 점자는 1896년 평양에서 만들어져 평양 점자라고도 불립니다. 하지만 로제타 홀의 점자는 첫소리와 받침글자가 헷갈린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03 현재 우리가 쓰는 6점 점자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만들었는데요. 선생은 보통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중, 시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학교의 교사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04 1913년, 서울에 제생원 맹아부가 세워지자 전국에서 온 시각장애인과언어장애인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이곳을 졸업하면 안마사 면허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해부학, 안마 등 어려운 수업을 전부 일본말로 배워야 했습니다.통역을 하던 박두성 선생은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05 이에 선생은 총독부의 눈을 피해 제자들과 함께 한글 점자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12개 안을 모은 뒤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도 하며 1926년 11월 4일, 드디어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을 발표 했습니다. #06 훈맹정음은 훈민정음과 마찬가지로 기본 글자를 바탕으로다른 글자를 쉽게 외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선생은 한글 점자를 알리기 위해 편지로 점자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명심보감>, <춘향전> 등과 같은 수백 권의 책을 점자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07 한편 박두성 선생은 일본의 눈을 피해 밤에만 한글 점자 작업을 하다가 시력을 잃을 뻔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광복을 맞이한 후에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대문에 커다란 태극무늬를 그려 넣었는데요.이 덕분에 시각장애인들이 선생의 집을 쉽게 찾아올 수 있었답니다. #08 이렇게 해서 박두성 선생은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처럼, 시각장애인을 위해 훈맹정음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에는 훈맹정음 관련 유물이 국가등록문화재로 등재되었는데요. 국립한글박물관은 또 하나의 우리글 훈맹정음 역시 잘 지켜나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또 하나의 우리글, 훈맹정음 [만화로 즐기는 한글 이야기]
초꼬슴작성일
2024-11-04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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