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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26년 자서전 영화화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 무료 공개 중
https://standardebooks.org/ebooks/t-e-lawrence/seven-pillars-of-wisdom https://www.youtube.com/@MovieCon_Korea/search?query=%EC%95%84%EB%9D%BC%EB%B9%84%EC%95%84%EC%9D%98%EB%A1%9C%EB%9E%9C%EC%8A%A4 * 스포일러가 우려되시는 분들은 위의 링크를 통해서도 자서전 및 영화판을 보실 수 있으니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T. E. 로런스'로도 알려진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Thomas Edward Lawrence, 1888~1935)는 자서전에 따르면 영국인이지만 아랍에 애정을 느끼고, 여성과 교제 기록은 없는데 이니셜을 이용해 특정 대상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시를 자서전에 넣는 등(이로 인해 학계에선 동성애자로 분석하기도) 복합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자 1916년 '대아랍 봉기'(표기에 따라선 '아랍 전쟁', '아랍 반란')가 승리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공헌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1926년에는 자서전이자 회고록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을 발표하는 등 작가로서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이 자서전은 훗날 각색해 영화화되면서, 공교롭게도 숫자 2와 6만 바뀐 1962년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제목의 영화로 개봉해 당시 대성공을 거둔 한편으로, 자서전이란 형식의 한계 상 다원주의 및 교차검증이 가능해진 이후로는 해당 자서전 및 이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판 역시 미화, 과장, 우월주의, 사실과 다른 왜곡 문제 등이 논의되기도 했습니다.(웹 상에선 왜곡 문제가 발생한 김두한 자서전 및 이를 원작으로 삼은 '야인시대' 역시 실제 역사와 큰 차이가 있던 사례와 비교하는 등 다소 거친 비유도 존재) 이와 관련해선 아래 기사들도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열다섯 피를 흔든 결단의 밤은 어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4511 culture film - 우리 마음 속의 영원한 ‘아라비아의 로렌스’ https://economist. co.kr/article/view/ecn201312230018 데이비드 프롬킨, 『현대 중동의 탄생』. http://feliview.com/modern-hist/nation-state/davidfromkin-apeacetoendallpeace/ [백병훈 칼럼] 세기의 명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감춰진 진실 http://www.financial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60 아래 내용은 Yes24에서 인용한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 작품 소개입니다. 20세기 초반 서구 제국주의와 아랍 민족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시대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T. E. 로렌스의 자전적 기록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대중에게 알려진 로렌스의 역작 『지혜의 일곱 기둥』은 영어권에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필적하는 대작으로 손꼽히며, 20세기 최고의 전쟁 문학이자 자서전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이 작품은 원서 8백여 쪽에 달하는 분량의 대작으로, 로렌스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함께 실어 로렌스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편집했다. 또한 로렌스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소개를 덧붙여 로렌스의 행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세속적 가치와 물질적 이익만을 좇는 현대 사회에서 사막의 모래폭풍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로렌스의 생애를 담고 있는 이 저작은 진정한 명예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리더들이라면 반드시 읽고 음미해야만 하는 고전이다. 역사와 문학이 만나는 현대의 고전,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자화상“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위험하다.그런 사람은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의 꿈을 향해 행동한다.그렇다. 나는 낮에 꿈을 꾸었다."『지혜의 일곱 기둥』은 1935년에 간행된 Seven Pillars of Wisdom의 국내 최초 완역으로, T. E. 로렌스가 아랍 반란 전쟁에 참여했던 경험을 개인 기록을 토대로 1919년 봄에 집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해 겨울 원고를 분실하고, 자신의 기억과 당시의 노트에 의존하여 1921년부터 다시 쓴 책이다. 이 작품은 1922년 자비 출판으로 8부가 출간되었고, 1926년에 공식적으로 출간되었다. 번역 판본으로 사용한 1935년 판은, 로렌스 자신이 1926년 판을 수정ㆍ보완한 것이다. '지혜의 일곱 기둥'이라는 제목은 로렌스가 구약 성서의 잠언 9장 1절("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을 인용한 것으로, 아랍 지역의 일곱 도시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의 결과를 담은 원고에 붙이려던 표제를 사용한 것이다.『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로렌스가 활동했던 역사적 무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분할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 영국 정부는 터키에 대한 아랍인들의 반란을 이용하여, 적대국이었던 독일의 동맹국인 터키를 격퇴할 수 있으리라는 속셈에서 아랍 반란을 지원한다. 당시 터키에 대항한 아랍 반란을 주도했던 인물은 메카의 후세인 왕이었으나, 이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지도자는 그의 셋째 아들 파이살이었다. 로렌스는 파이살과 함께 부족 간 적대로 흩어진 아랍 부족민들을 민족주의적 정신 속에 하나로 규합하고, 2년 만에 다마스쿠스 해방이라는 업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1918년 파리 평화회의에서 아랍 자치 정부 수립에 대한 논의는 안건에 오르지도 못했고, 이러한 영국 정부의 약속은 결국 거짓으로 드러난다. 로렌스는 이 전쟁이 “아라비아에서 벌어진, 아랍인의 목적을 위해, 아랍인들이 주도하고 수행한 아랍 전쟁”이라는 확신 속에서 역사의 흐름을 주도했으나, 끝내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었다.열강의 치열한 이해관계와 힘없이 분열된 민족들의 고통 사이에서 고민했던 로렌스 역시 자신의 역할의 역사적 한계와 이율배반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로렌스는 이러한 한계 속에서 자신의 행위가 ‘헛된 희망’과 ‘실패’로 귀결될지라도 아랍인들이 최소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자유를 향한 내적 신념 속에서 행했다.1권에서는 로렌스가 카이로에서 출발하여 아라비아 반도의 항구 도시 지다에 도착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후세인 왕의 셋째 아들인 파이살을 만나기까지의 진로와 이후 메디나 근방의 철도를 장악하고 터키군의 물자 수송로를 차단해 나가는 북방 원정의 과정을 담고 있다. 2권에서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아부 타이족이 파이살과 로렌스 진영에 합류하여 주요 항구이자 요새인 아카바로 진격하는 과정과 치열한 전투를 그리고 있다. 3권에서는 이 저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사해 전투로부터 시작하여, 전쟁의 종착지였던 다마스쿠스로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고원지대의 혹독한 날씨와 엄혹한 지형 속에서 행했던 행군을 그려낸 3권의 사해 전투 기록은 이 저작에서 인간 한계의 극단에 대한 예리한 묘사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영어권 문단에서 이 저작에 멜빌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이 지닌 서사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권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대장정은 결국 다마스쿠스에 입성하여 아랍 독립을 완수하고 아랍의 자치 정부 수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끝이 난다. 로렌스는 비정한 살육의 현장에서 터키군 포로를 시켜 전사자들을 매장하고, 이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이살에게 모든 권한을 넘긴 뒤 아라비아를 떠난다.문학적 형상과 철학적 사색에 담아낸 아랍의 격동기 근대사“우리는 원하는 곳 어디에나 자유롭게 스며드는 안개가 되어야 한다.우리의 왕국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로렌스는 아랍 반란과 게릴라 전술을 지휘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혈맥이자 터키군의 물자 수송로인 헤자즈 철도를 파괴하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가로서의 면모는 로렌스의 진면모를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로렌스는 스스로를 ‘군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으며, 오직 내적 이상을 향해 나아갔을 뿐이었다. 그는 모든 권위와 “나는 행동가들이 느끼는 행복을 경멸했다.”고 할 만큼 영웅적인 신화를 거부했다. 헌시에서 로렌스는 “자유에 걸맞는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오직 그 집을 허물고 완성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실패를 부르짖으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싸우는 것“이 진정한 승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오직 ‘완성하지 않음’만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그의 고백은 거듭되는 자기반성 속에서 인간 의지의 극한에 이르고자 하는 초인적 정신을 드러낸다.정신의 힘과 의지에 대한 찬양, 거대한 역사적 흐름 안에서 몸부림쳤던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이 함께 녹아 있는 이 저작은 사색의 기록이자 여행기이자, 픽션을 뛰어넘는 문학적 정신을 지니고 있다. 근대적 교양인의 전형으로서 로렌스는 “평생토록 사람보다는 사물에, 사물보다는 관념에 더 이끌려왔다.”고 고백할 만큼 최고의 지성인이었으나, 동시에 극단적인 허무와 실존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구토』의 로캉탱을 떠올리게 할 만큼 모든 사물과 존재에 부여된 고정된 이름을 거부하고, 순수한 ‘사막’에서 세속의 범주를 모두 벗어버린 채 있는 그대로의 지각을 경험했다. 이 저작은 20세기 초반 서구 최고의 지성이 오해와 몰이해로 점철되어 있던 아랍 지역을, 바타유라면 ‘내적 체험’이라 했을 이러한 극단적 체험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기행문이자 사상서이다. 이러한 점에서 소로우의 『월든』이나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처럼 픽션을 뛰어넘는 감동과 사색의 계기를 선사한다.특히 특유의 예민한 감성과 역사의 소용돌이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 고뇌하던 스물아홉의 청년 로렌스의 눈에 비친 아랍 지역은 놀랄 만큼 생생하다. 옥스퍼드 대학 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영박물관 산하 원정대의 일원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탐사했던 고고학자로서 로렌스는 셈족의 종교와 사막의 신앙, 아랍의 식문화 및 주거 풍습, 야만적인 터키군의 실상 등을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관찰기록 속에 그려낸 풍경 및 인물 묘사는 단순한 기술적 서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대 국가로 정립되기 이전 베두인족을 비롯한 아랍 부족민들의 20세기 초반의 실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지혜의 일곱 기둥』이 문학적 필치로 그려낸 거대한 화폭과도 같은 한 편의 역사서이자, 여행기로 읽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숭고한 자연과 인간의 초월적 의지에 대한 최고의 묘사“사막의 본질은 마치 묘지처럼이 세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길의 아들인 듯 고독하게 혼자서 움직이는 데 있다.”『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어떠한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숭고한 자연에 대한 묘사가 펼쳐진다. 광활한 사막, 혹독한 추위와 숙련된 낙타마저도 무릎을 꿇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던 엄혹한 자연에 대한 사실적인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로렌스는 인간을 압도하는 숭고한 자연의 질서 안에서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무거워진 우리의 세속적 짐을 부끄러워”하면서, “자유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자유의 허울을 벗을 수 있는 힘”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충만감은 “존재의 연쇄적 고리에 대한 망각과 영원한 안식”에 대한 치열한 기도로 이어진다. 특히 2권에서 펼쳐지는 와디 룸의 장엄한 풍경과 이에 대한 로렌스의 묘사는 사막 위의 한낱 모래먼지와 같은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면서 준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로렌스는 자신의 행위가 자유를 향한 거대한 의지에, 광막한 사막에 한낱 점으로 존재함을, 들뢰즈의 표현대로 “자신이 맡은 역할이 국부적이며, 부서지기 쉬운 그물 속에 놓여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일곱 기둥을 세운 집”, 로렌스가 자유를 대신하여 부른 그 집은 오직 완성하지 않음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는 집이었던 것이었다. 로렌스는 자기부정을 통한 초월의지를 내세웠던 낭만주의적 사유 속에서 오직 과정으로서만 도달할 수 있는 드높은 이상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로렌스에게는 극단적인 허무주의와 한 개인으로서의 실존적 고민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로렌스가 ‘아라비아의 무관 왕’이라는 세간의 이름 외에 현대의 서사시적 인물, 20세기의 햄릿이라 불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자신이 처한 모순과 역경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일곱 기둥』이 근본적으로 희비극의 정서를 지니는 이유이다. 이러한 점에서 로렌스를 전쟁의 영웅으로 신화화하는 태도나, 영국 제국주의의 꼭두각시였다는 비판적 독서 모두 이 저작의 이중적인 면모를 사장시킨다. 이 자서전은 차라리 자신을 전쟁의 영웅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또 자신의 위선을 훗날 기억하게 될 아랍인들에게 조롱하는 문체로 쓴 거대한 보고서이다. 로렌스는 이러한 기묘한 보고서를 스스로 “전쟁의 규칙을 이용한 패러디”라 불렀다. 또한 로렌스에게 『지혜의 일곱 기둥』은 아랍인들과 스스로를 속였던 자신에 대한 속죄이자, 구원의 기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그려내지 못한 로렌스 자신의 문체를 읽어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인으로서 아랍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로렌스에게는 위선의 가면도, 그 뒤의 진정한 얼굴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아이러니를 구사하기보다는 어떤 수치의 흔적, 쓰고 다시 지우는 여러 겹의 문장을 쓴다. 그의 이 방대한 기록은 용해되고 분열된 여러 자아들 속에서 자신의 단 하나의 얼굴을 찾고자 하는 끝없는 여정이기도 한 것이다.아마도 끝내는 물처럼 모든 것을 극복할 것이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로 그들은 끊임없는 파도가 되어 육체의 해안에 스스로를 부딪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파도는 부서져 버리고 말았지만, 파도가 부딪힌 거대한 화강암은 조금도 닳아버리거나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인가는 걷잡을 수 없는 파도가 물질적인 세상이 자리 잡고 있던 그곳을 완전히 뒤덮어버릴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신은 그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본문 중에서서구 열강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 간의 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 현재에 이 저작은 그러한 갈등의 기원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윤리와 정의(justice)는 다르다. 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른 세속의 정의는 단 하나이지만, 윤리는 여럿이다. 그러한 윤리의 선험적이고도 절대적인 근거란 없다는 것, 정의의 주체는 민족일 수도, 국가일 수도 있으나, 윤리의 주체는 오직 개인일 수밖에 없으며, 그 개인을 정의(define)하기란 참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혜의 일곱 기둥』이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역사와 사회 앞에 개인은 나약할지 모르나, 한 개인의 윤리적 경험은 모든 세대와 해석을 뛰어넘어 스스로 살아남는다. 아래 내용은 교보문고에서 인용한 '스콧 앤더슨'의 저서 '아라비아의 로렌스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작품 소개입니다. 지난 백 년간 중동에 불어닥친 흉폭한 역사!한 줌의 모험가와 새파란 장교들이 판치고 다녔던 사막의 무대로렌스의 어두운 면과 심각한 결점을 세밀하게 재건하는 저자는현대 중동이 난장판이 되어가는 과정을 스펙터클하게 펼쳐낸다네 사내가 펼치는 20세기 최대의 첩보전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드리우기 전,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중동 사막에 네 사내가 등장한다. 한 줌도 안 되는 모험가와 새파란 장교들이 멋대로 쑤시고 다니며 은밀하고도 복잡한 게임을 펼치려 하고 있다. 비밀로 묻어둔 충성심, 일대일로 뒤엉킨 육박전은 각자 자국의 제국주의적 탐욕을 대표하며 비극적인 사막 전쟁으로 이어질 터이고, 이것은 오늘날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현대 중동의 탄생을 야기하게 된다.네 사내는 누구인가. 쿠르트 프뤼퍼는 이집트 카이로 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일하는 문약한 학자. 그는 영국을 향한 복수심의 칼날을 갈며 지하드에 불을 댕기는 비밀 임무를 맡았다. 훗날에는 중동지역에서 활동하는 독일 첩보 조직의 책임자가 된다.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인 서른일곱 살의 아론 아론손은 저명한 농학자이면서 열성적인 시온주의자. 길쭉하고 광대한 팔레스타인 땅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아 유대인 조국을 재건하겠다는 구상을 펼치려 한다. 이를 위해 영국의 힘을 등에 업고자 팔레스타인 한복판에서 첩보 조직을 꾸린다. 윌리엄 예일은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스탠더드오일 사의 하수인이다. 스탠더드오일 사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교활한 미국 기업으로, 세계대전의 비극을 지켜보면서 이 기회에 단단히 한몫 잡으려 한다. 예일을 중동 땅으로 파견한 것은 거대한 유전을 차지하려는 속셈으로, 그는 중동 전역을 통틀어 단 한 명뿐인 미국인 정보요원이다. 이들 세 인물과 함께 로렌스가 등장한다. 그는 중동이라는 원형 경기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영국인 첩보요원으로,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간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상황과 긴밀히 연결된다.네 사람은 자기 임무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아마추어들이지만 영악함과 용감함, 남을 배신하는 재주 따위의 특성으로 전쟁이 키운 열매를 거두어들이려 한다. 즉 유럽 열강이 계획한 각종 정책과 국경선을 전후에 현실로 만드는 장본인이 될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은 수백만 명의 주체가 발을 담근 대사건이었다. 세부 사건들은 당대에는 인과관계가 없는 우연의 연속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우연들이 뒤엉키면서 중대한 국면들을 형성하게 된다.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가장 낭만적인 인물로 일어섰다. 그리고 이 책은 어리석은 현대 중동이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가운데 처칠도 다른 누구도 아닌 로렌스를 중심 무대에 올린다. 국내에서는 로렌스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이 번역된 게 전부이고 이 책은 로렌스 개인을 다룬 책으로서는 처음 출간되는 것이다.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로렌스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양면적 평가 사이에 낀 그는 역동적인 역사를 만들기도 했지만, 다른 세 애송이와 더불어 지난 100년간 중동을 가장 비극적인 역사의 격전지로 만들어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서구 열강의 격전지, 중동의 비극정복, 탐험, 착취의 대상으로서 동양은 수천 년 동안 서양을 끌어당겼다. 중세에는 기독교 십자군이 300년 주기로 근동지역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1790년대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파라오가 되겠다는 환상을 품고 이집트를 침략했다. 1830년대에는 유럽 최고의 고고학자들이, 1870년대에는 서구의 석유 재벌과 투기를 일삼는 채굴자, 사기꾼 등이 카스피 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오스만 제국은 종교, 부족, 인종 면에서 다양한 구성 인자를 하나로 묶어놓은 모자이크였다. 이 제국은 한순간에 무시무시한 그림으로 둔갑할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공동체가 자기 보호를 위해 끼리끼리 뭉칠 경우 조상 대대로 묵혀온 반목과 의심과 질투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1850년대부터 오스만 제국은 서구 경쟁국들이 자신의 변두리를 야금야금 뜯어먹는데도 이들과 돌아가며 동맹을 체결하는 줄타기를 함으로써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오로지 한곳에 눈독을 들였는데, 바로 분열과 혼돈의 땅 오스만 제국이었다.러시아 차르는 콘스탄티노플을 낚으려고 200년 전부터 낚싯바늘을 드리우며 기다렸다. 그리하여 1870년대에 발칸에서 오스만 군대를 궤멸한 바 있다. 프랑스 역시 16세기 이래 오스만 제국 치하 시리아의 가톨릭 신도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특별한 지위를 누려왔다. 만약 제국이 붕괴하면 그 지역은 프랑스 땅이 될 터였다. 영국은 인도로 가는 육로를 제국주의 경쟁자들의 침식 작용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1882년 대영제국은 민족주의 움직임을 구실 삼아 이집트를 잡아채기도 했다. 1915년에 연합국을 구성한 이들 3국은 독실한 기독교국으로서 어쩌면 십자군의 역사를 해피엔딩으로 다시 쓸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한편 독일 역시 군사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오스만 제국과 무슬림의 영토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 5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은 눈치껏 뜯어먹던 행태에서 벗어나 게걸스럽게 달려들었고 오스만 제국은 “거대한 전리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특히 영국은 유럽 열강 가운데 해양 의존성이 가장 큰 국가로, 1870년대 이집트 수에즈 운하 건설을 배후에서 주도했으며, 운하를 독차지할 수만 있다면 오스만 제국과 지켜온 우호관계 따위는 내동댕이칠 준비가 돼 있었다. 마침내 영국은 속마음을 드러냈는데, 1882년 이집트를 침공한 것이다. 그 결과 수에즈 운하 서쪽 이집트 땅 전체가 영국 손안에 들어왔고, 오스만 군대는 운하 건너편 시나이 반도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작에 불과했다. 영국은 1906년 사소한 외교적 분쟁을 핑계로 시나이 반도까지 차지했다. 그리하여 이제 이집트와 시리아 서남부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리하는 넉넉한 완충지대까지 얻게 되었다. 즉 영국은 오스만의 가슴에 영원토록 변치 않을 적개심을 심게 된 것이다.더욱이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영국은 후세인-맥마흔 서한으로 아랍인들에게 거짓 독립을 약속했고,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뒤통수를 쳤다. 그리고 밸푸어 선언으로 시온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내주었다. 중동에 피바람을 일으키고 마침내 아랍인들과 로렌스를 좌절시킨 영국의 3중(속임수) 외교의 핵심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이었다.20세기 초까지 간신히 멸망을 피해왔던 오스만 제국은 1914년 막판으로 치닫던 끔찍한 전쟁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제 목숨을 재촉했다. 그리고 21세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분열의 물꼬를 트고 말았다.로렌스 그리고 아랍의 좌절T. E. 로렌스(1888~1935)는 대단히 매혹적인 인생을 바람처럼 살다 간, 20세기 초 서구 역사의 스타다. 역사적 탐구 대상이든 대중적 호기심거리이든 로렌스만큼 인기를 누리는 이도 드문데, 한편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들의 위대한 수호자인가, 아니면 반유대주의 선동가인가? 아랍 독립에 힘쓴 깨우친 진보주의자인가, 아니면 가면을 쓴 제국주의자인가? 희대의 영웅, 사유하는 투쟁가, 제국주의의 하수인, 자기파멸적 몽상가와 같은 수식어로 역사는 그를 칭송과 조롱 사이에 놓고, 먹칠과 금칠을 번갈아 덧댄다.저자는 당시 서구 열강의 탐욕적 경쟁과 그에 따른 외교 및 첩보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로렌스의 정체를 살핀다. 옥스퍼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고고학자인 20대 초반의 로렌스는 중동 사막에 대한 열정과 지식을 지닌 터라 영국이 새로운 영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며 제국주의자로서의 기질을 발휘한 때에 영국 정보요원이 된다. 여느 서구인과 달리 로렌스는 중동에 정통했고, 오스만 제국의 시골 마을에서 제국이 무너지는 과정을 낱낱이 목격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첩보전 한가운데 섬으로써 고고학자로서의 경력에 종지부를 찍으며 1914년 9월 육군에 들어갔다.당시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파멸로 이끌고자 아랍 민족운동을 이용했다. 이런 움직임의 중심에 로렌스가 섰는데, 그는 1916년 6월 파이살 이븐 후세인을 내세워 아랍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1917년 7월 6일에는 홍해 끝부분 쪽 아카바를 장악했고, 1918년 10월에는 다마스쿠스(현재 시리아이 수도)를 점령했다. 이런 면모로 인해 그는 아랍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그러나 로렌스는 원래 군인 출신도 아니었을뿐더러 성격, 태도, 말투, 복장 등 모든 면에서 조직과는 어긋나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차디찬 눈빛을 지닌 그는 군 조직에서 자기와 다른 의견이 제시되면 나이와 계급에 관계없이 정면으로 맞서 하극상을 저지르고도 남았다. 또한 그는 영국과 아랍 세력 사이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즉 그는 영국의 정보요원이었지만, 어느 순간 모국의 군 조직을 흔들 만큼 치명적인 전략이나 정보를 내놓는가 하면, 아랍 반란을 이끄는 가운데 아랍인의 입장에 서서 사고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는 아라비아에서 활약하는 주요 인사들, 그들이 견지하는 주장의 요점, 그들의 경쟁자까지 꿰뚫고 있었던 반면, 그가 관찰한 바의 상당 부분은 특별한 내용이 거의 없고 권위 있는 분석이라기엔 겉핥기식에 지나지 않기도 했다. 그는 자기편에게 전보를 서둘러 보낼 때는 외교 의례를 밥 먹듯이 어겼고, 원치 않는 명령을 받으면 못 받은 것처럼 꾸며 사안을 무효화시켰다. 어쨌든 28세의 대위에 불과한 로렌스는 영국 정부 관료의 척후병 역할을 수행하면서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던 정부 관료의 세도를 꺾고, 영국의 아라비아 정책에 근본적인 물꼬를 텄다.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대단원을 향해 치달으면서 로렌스가 투쟁하고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이루고자 했던 아랍을 지키려는 소망은 영국과 프랑스 총리의 대담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영국은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가지려 했고, 프랑스는 시리아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려 했다. 종전 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호언장담했지만 종국엔 뒷거래, 앙갚음을 위한 협정, 독단적으로 그어버린 국경선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즉 파리평화회의에서 서구 열강들은 저마다 음모를 품고 오스만 제국이라는 짐승의 사체를 나누어 갖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이후에도 로렌스는 아랍의 희망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접지 않았다. 파리회의 내내 아랍 반란의 지도자 파이살의 조언자로 활동하면서 아랍인들이 사활을 걸고 싸운 그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협상 전략을 짰다. 영국 유력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펼치는가 하면, 아랍을 옹호하는 열정적인 칼럼을 수차례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렌스는 영국 정부가 보기에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다. 정부 관료들은 그를 가리켜 ‘악영향’ ‘시리아 문제로 프랑스와 갈등을 빚는 데 대한 책임’ 등을 들이밀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결국 로렌스는 아랍을 지켜내려는 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함과 동시에 평화를 상실하고 말았다.마크 사이크스, 20세기에 가장 큰 비극을 드리운 인물이 책에서 네 명의 주인공 외에도 모든 등장인물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워넣을 만큼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그중에서도 현대에 가장 큰 비극을 몰고 온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영국의 마크 사이크스 경이 될 것이다. 역사상 그처럼 부주의하게 수많은 비극을 야기한 인물은 없다.제1차 세계대전으로 정치인들이 득세하고 각국이 제 이익을 더 챙기려 하면서 속임수와 비잔틴식 술책이 판치는 곳에서 그는 술수의 대명사가 된다. 사이크스란 인물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고 증명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서, 또는 재미 삼아 상대방을 속이고 싶어하는 사기꾼의 전형적인 습성을 지녔다. 그런 까닭에 이 젊은 아마추어는 자신의 필요에 맞춰 사실을 곡해하거나 중요한 정보를 숨기거나 조작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했다.그런데 영국 정부는 이 젊은이에게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골치 아프면서 가장 중요한 숙제를 떠넘겼다. 그것은 바로 대영제국과 중동 우방들의 상충하는 영토적 요구를 정리하는 업무였다. 로렌스는 훗날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사이크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세상만사를 제멋대로 지껄이는데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편견, 지레짐작, 유사과학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했다. 진실의 일면에 도취한 나머지, 그것이 속한 상황에서 분리해낸 다음, 의미를 부풀리면서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빚어내는 식이었다.”그가 이뤄낸, 역사상 가장 이상하고도 파괴적이었던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1916년 1월 초, 회담이 열리고 처음 며칠 동안 영국과 프랑스의 중진급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수아 조르주피코는 미래 중동의 지도를 날림으로 끼워서 맞추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가 제국주의적 탐욕을 부린 탓에 영국 또한 경쟁의식이 불타올랐다. 그 결과, 프랑스가 시리아 전역을 직접 관리하게 되고 영국은 이라크를 모두 차지하는 반면, 진정한 아랍의 독립국은 아라비아 사막의 격오지로 대부분 밀려나고 말았다.어불성설로 들릴지 모르나, 미래 중동의 지도를 거의 완성한 1916년 1월 초, 이 중차대한 시점에 후세인-맥마흔 서한과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내용을 속속들이 꿰뚫고 아랍과 프랑스와 영국이 그 지역에서 이루려는 목표가 결국엔 충돌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사람, 마크 사이크스뿐이었다.중동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책1960년대까지 유럽 제국주의 시대가 황폐한 뒷모습을 남긴 채 막을 내리자, 중동에는 식민주의 열강이 지구 반대편에 저질러놓고 떠나버린 난장판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중대한 차이점이 있었다. 석유였다. 중동이 여타 제국주의 피해 지역과 달리 여태껏 지구상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으로 남아 있는 것은 석유 때문이다. 그런 탓에 서구 역시 스스로 야기한 중동의 혼란으로부터 아무리 발을 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지난 50년 동안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랍과 이스라엘이 네 차례나 전쟁을 벌였고, 레바논과 예멘은 각각 10년과 21년에 걸친 내전을 치렀다. 시리아와 이라크는 소수 인종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고,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가 40년 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극단주의 종교가 격동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네 차례 대규모 군사작전을 비롯해 수시로 개입에 나섰다. 아랍 민중의 절대다수는 최근까지도 튀니지부터 이라크에 걸친 광대한 땅에 포진한 수많은 독재 정권의 통치에 억눌려 시민권을 빼앗긴 채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이 모든 고통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에 내린 끔찍한 결정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 대단히 치명적인 씨앗을 심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전 세계 분쟁지역을 누벼온 언론인 스콧 앤더슨은 로렌스의 행적을 더 깊이 파고드는 작업이 더없이 절실한 시대라고 판단했다. 로렌스가 열정을 바친 대상이 바로 중동의 국경선 문제였기 때문이다.저자는 몇 년간 사료를 모으는 일에 집중한 뒤 이 책을 썼다. 그 결과 현대 중동의 형성 과정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유럽의 제국주의 책략이 초래한 파괴와 고통에 대해 단호하게 지적하고 날카롭게 묘사하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철저한 고증과 방대한 사료, 최근 기밀 해제된 자료까지 동원해서 큰 그림부터 세밀화까지 치밀하고도 힘 있게 펼쳐낸다.저자만의 독특한 관점도 몇 가지 확인할 수 있는데, 예컨대 로렌스가 경쟁국 프랑스에 맞서서 어느 정도는 조국의 이득을 고려했다는 식의 애국주의적 설명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 등이 그렇다.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통설에 이견을 제시하는 내용 중에는 로렌스가 터키군에 붙잡혀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데라 사건도 포함된다. 저자는 무엇보다 태생부터 유년기, 꿈 많은 옥스퍼드 재학 시절을 거쳐 전쟁 이후 피폐한 심리 상태와 불행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로렌스 개인의 인생 전반을 충실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아울러 첩보의 세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판 Lawrence of Arabia (1962) 위에서 언급했듯 1926년 자서전을 원작으로 삼아 영화화한 작품이며 극장 개봉 당시 기준으로 이미 1950년대에 엇비슷한 제작비의 작품이 제작됐거나, 혹은 이 작품보다 더 제작비가 높은 작품도 볼 수 있는 정도의 제작비인 1500만 달러로 제작해 영국 및 미국 개봉 당시 평론적으로 극찬을 받아 아카데미 수상작이 됐고, 극장 매출만으로 제작비의 4배가 넘는 7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초대박 흥행 성공을 기록하고, 부가 매출 시장에서도 큰 수익을 올렸으며,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무비콘에서 한국어 자막과 함께 무료 공개 중입니다.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한 영화판 작품 소개이며, 당시 이 작품 관련 소개를 한 잡지 '영화 TV'도 PDF로 공개 중이니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영국 정보국 소속 장교 로렌스(피터 오툴)는 1차 대전 중 중동지역의 전투에서 아랍 부족의 지원을 받기 위해 아랍 지역으로 파견된다. 그런데 그는 영국 정부가 바라던 것 이상으로 아랍의 지도자들을 사로잡고, 아랍의 독립을 위해 열심히 싸워 아랍 민족으로부터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적인 칭호를 받게 된다. 그는 아랍 전사들을 이끌고 터키 군과 싸우면서 규율을 잡기 위해 남의 마을의 우물물을 마신 병사를 과감히 처형하는 등 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그런 용맹성은 터키 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그곳에서 받은 성적 학대를 통해 병적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로렌스는 영국 정부의 소환을 받고 런던으로 돌아오지만, 종동으로 보내줄 것으로 요구하면서 사막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으로 타결이 된 아라비아 사막은 이제 그를 원치 않는다.* 70mm 대형영화의 대표작인 <아라비아의 로렌스> 역시 1970년 1월 1일 대한극장 신정 프로그램으로 개봉하여 한 달간 상영되었다. " (출처 : 시네마테크KOFA상영정보(2017))아라비아에 정통한 로렌스 중위는 아라비아의 상황파악을 위해 파견된다. 파이잘 왕자와 알리 족장을 만난 로렌스는 파이잘 왕자에게 수에즈 운하의 주요 통로인 아카바로 출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파이잘 왕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50명의 부하들과 알리를 내준다. 신이 내린 죄악의 땅인 네퓨드 사막을 간신히 통과한 로렌스 일행은 호웨이랏족의 족장 아우다 이부타이를 만나 서로 힘을 합치게 되고, 수가 불어난 일행은 아카바의 터키군을 무찌르는 데 성공한다. 이후 계속된 전쟁에서 연승을 올린 로렌스는 아랍부족민에게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스스로도 자신은 예언자이며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F/01083 '로런스: 애프터 아라비아' Lawrence: After Arabia (2021) 아랍 시절 장면도 잠시 나오긴 하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 이후 시기가 메인인 내용의 저예산 영화 작품으로, 단순 사고였는지 혹은 첩보부에서 입막음 차원에서 제거한건지 의문이 제기됐었던 로런스의 사망 사건을 포함한 'T.E. 로런스'의 인생 말기를 다뤘으며,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무비 센트럴'에서 무료 공개 중이고 Plex에선 다중 언어 자막 기능도 지원하는 형태로 공개 중이니 아래 링크 역시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watch.plex.tv/watch/movie/lawrence-after-arabia
콩라인박작성일
2025-01-14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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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기아 EV5, 내년 3분기 광주서 만든다…“韓·中 투트랙 생산 체제”
EV5는 기아 전용 전기차 제품군 EV 시리즈 마지막 퍼즐로 꼽히는 핵심 신차다. 기아는 EV5 국내 생산을 계기로 EV3·EV4와 더불어 3종의 보급형 전기차 제품군을 완성하게 된다. 기아는 신차 프로젝트명 ‘OV1’으로 개발한 EV5를 내년 8월 말부터 광주 공장에서 양산하는 일정을 수립했다. 본격 판매는 3분기 중 이뤄질 전망이다.EV5는 광주에서 생산하는 첫 전용 전기차다. 기아는 국내 공장 3곳 중 광명에서 EV3와 EV4(내년 1분기 예정), EV9, 화성에서 EV6를 생산해 왔다. 광주는 EV5 생산을 맡아 전용 전기차 생산이 가능한 생산 거점으로 거듭난다.앞서 기아는 EV5 중국형 모델을 현지 옌청 공장에서 생산했다. 국내 광주 공장에도 EV5 생산 거점을 마련, 트럼프 리스크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대내외 수출 환경 변화에 대응할 방침이다. 중국산에 대한 관세에 비교적 자유로운 신흥국은 옌청,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한 국가는 광주 물량을 투입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EV5가 주목받는 이유는 기아가 처음 선보이는 준중형 SUV 형태의 전용 전기차로, 압도적 상품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당초 중국 전략형 모델로 개발한 EV5는 여유로운 공간과 합리적 가격을 바탕으로 현지에서 순찰차·택시로 도입되는 등 호응을 얻고 있다.EV5 차체 크기는 전장 4615㎜, 휠베이스 2750㎜로 스포티지와 비슷하며 실내·외 V2L(Vehicle to Load) , 스마트 회생제동 시스템 등 첨단 장비를 갖췄다. 기아 안팎에서는 EV5가 올해 선보인 소형 전기 SUV EV3, 내년 나올 준중형 전기 해치백 EV4를 뛰어넘는 파급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광주에서 생산할 EV5는 중국형 모델와 배터리와 주행 성능에서 차별화된다. 가장 큰 차이는 배터리다. EV5 중국형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강점인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반면에 내수형은 효율이 높은 삼원계(NCM) 배터리를 장착한다.EV5 배터리 용량은 82㎾h로, 1회 완충 시 400~500㎞ 사이의 주행거리를 확보한 전망이다. 가격은 5000만원대부터로 책정, 보조금 100% 지급 기준에 충족할 것으로 예상된다.한편, 기아는 내년 1분기 광명에서 양산할 EV4의 유럽형 모델을 별도로 개발, EV5처럼 현지에서 생산하는 투트랙 전략을 검토 중이다. EV4 유럽형 생산 거점은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이 유력하다. 리튬 출처 : https://www.etnews.com/20241120000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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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쿠밍가, 구단 제시 보다 많은 금액 원해 ... 끝내 계약 불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자칫 큰 부담을 안을 뻔했다. 『The Athletic』의 앤써니 슬레이터 기자에 따르면, 골든스테이트가 조너던 쿠밍가(포워드, 201cm, 102kg)에 연간 3,000만 달러 계약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골든스테이트는 쿠밍가와 연장계약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계약 규모를 두고 이견이 있었으며, 끝내 협상을 타결하지 못했다. 골든스테이트는 적잖은 규모를 제시했으나, 쿠밍가가 연간 3,500만 달러를 바란 것으로 확인됐다. 골든스테이트는 지난 시즌에 쿠밍가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할 수 있었다. 앤드류 위긴스가 부진과 결장을 반복한 사이 그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 무엇보다, 쿠밍가 본인이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에 힘입어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인 그는 골든스테이트의 미래로 평가를 받기 충분했다. 연장계약도 가능해 보였다. 모제스 무디가 계약을 체결한 사이 쿠밍가는 좀 더 많은 금액을 바랐다. 그도 그럴 것이 연장계약은 다시 찾아올 수 없는 기회인데다 자신의 계약 규모가 팀에서 입지를 반영하는 것을 고려하면, 좀 더 큰 금액을 바라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다만, 골든스테이트는 지출 규모가 적지 않은 팀인 만큼, 추가적인 부담을 원치 않았다. 결국, 마감시한 전에 타결은 없었다. 골든스테이트도 현재 구성과 재정 규모를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제시했다고 봐야 한다. 연간 3,000만 달러면 최고대우에 포함될 만하기 때문. 그러나 쿠밍가는 좀 더 많은 것을 바랐으며, 이로 인해 접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른 선수가 계약을 체결한 사이 그의 계약 소식은 끝내 들리지 않았다. 골든스테이트도 충분한 의사 표시를 한 만큼, 미련이 없을 만하다. 쿠밍가는 이번 시즌 이후에 제한적 자유계약선수가 된다. 다른 구단이 그의 영입을 시도하더라도 골든스테이트가 조건에 합의하면, 그를 앉힐 수 있다. 즉, 시장 상황을 한 번 더 관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더군다나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과 같은 활약이라면 그가 연간 3,000만 달러의 다년 계약을 받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지난 시즌 74경기에 나섰으며, 이중 46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장했다. 경기당 26.3분을 소화하며 16.1점 4.8리바운드 2.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평균 득점을 대폭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번 시즌 들어서는 주춤하고 있다. 현재까지 치른 5경기에서 평균 23분 동안 11.4점(.408 .154 .714) 3.4리바운드 1.6어시스트 1.2스틸을 올리고 있다. 앤드류 위긴스와 동시에 출장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터. 그러나 위긴스가 자리를 비웠을 때, 전반적인 활약상이 지난 시즌만 못한 측면도 있다. 결국, 골든스테이트의 스티브 커 감독은 그를 주전에서 제외했다. 결국, 벤치에서 출격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벤치에서 나선 두 경기에서 평균 16.5점을 책임지며 나아진 모습을 보이며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태무진칸작성일
2024-11-03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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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휴스턴, 센군과 연장계약 맺을 가능성 거론
휴스턴 로케츠가 팀의 핵심으로 거듭난 유망주와 장기간 동행이 예상된다. 『ESPN』의 샴스 카라니아 기자에 따르면, 휴스턴이 알파렌 센군(센터, 211cm, 110kg)과 연장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전했다. 센군은 다가오는 2024-2025 시즌을 끝으로 신인계약이 만료된다. 휴스턴은 당연히 연장계약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르면 다음 주 초에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만큼, 가능하다면 시즌 전에 계약 타결이 점쳐진다. 휴스턴은 센군과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 제임스 하든(클리퍼스) 트레이드 이후, 대대적인 재건에 돌입해 있는 휴스턴은 어린 선수 위주로 팀을 확실하게 탈바꿈했다. 지난 여름에 경험을 갖춘 이들까지 두루 불러들이며 신구 조화를 갖췄으며, 지난 시즌에는 무려 5할 승률을 달성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다. 그 중심에 다른 누구도 아닌 센군이 있었다. 데뷔 시즌은 지난 2021-2022 시즌부터 꾸준히 코트를 밟은 그는 2년 차를 맞아 온전한 주전으로 거듭났다. 이어 지난 시즌에야 비로소 3년 차가 됐음에도 엘리트 빅맨에 가까운 활약을 펼치면서 기대감을 모았다. 평균 득점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표에서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인 것. 지난 시즌 그는 63경기에서 경기당 32.5분을 소화하며 21.1점(.537 .297 .693) 9.3리바운드 5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시즌 평균 20점을 점령했다. 아쉽게 시즌 평균 ‘20-10’을 달성하진 못했으나, 빅맨임에도 다수의 어시스트를 곁들이며 팀이 전력을 다지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에 힘입어 기량발전상 투표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막판에 심각하게 다치면서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지난 3월 중순에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 발목 염좌와 무릎 골멍으로 인해 남은 일정을 치를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구조적인 손상이 없었다. 자칫 인대나 아킬레스건을 다쳤다면 오는 시즌 출장이 불가능했을 터.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중상을 피했다. 휴스턴은 어린 선수 위주로 팀이 꾸려져 있어 재정적인 여유도 충분하다. 특히나 다가오는 2024-2025 시즌을 끝으로 노장 전력과의 계약이 종료되는 만큼, 샐러리캡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센군에게 연간 3,000만 달러를 상회하는 5년 계약을 안겨도 여전히 연봉 총액이 사치세선과 거리가 있다.
태무진칸작성일
2024-10-1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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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계약 만료 앞둔 잉그램, 연간 4,500만 달러 원해
뉴올리언스 펠리컨스가 속히 결단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The Athletic』의 샴스 카나리아 기자에 따르면, 뉴올리언스의 브랜든 잉그램(포워드, 203cm, 86kg)이 대형계약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잉그램은 무려 연간 4,500만 달러 이상의 계약을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뉴올리언스와 연간 4,000만 달러에 5년 계약을 맺는다고 예상하더라도 최대 2억 달러의 계약인 셈. 적어도 이보다 큰 규모의 계약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뉴올리언스가 그와의 재계약에 얼마나 무게를 두고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 다가오는 2024-2025 시즌 개막까지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그와 연장계약을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약을 맺는다고 하더라도 그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해줄지는 의문이다. 이미 지난 5월 초에 뉴올리언스가 그와의 연장계약에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기도 했다. 잉그램도 궁극적으로 해당 조건의 계약을 따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최대한 큰 규모의 계약을 바라는 게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종전에 체결한 계약(5년 1억 5,800만 달러)보다 좋은 조건의 계약을 바란다고 봐야 한다. 종전 계약에 따라 받게 되는 다음 시즌 연봉(약 3,600만 달러)보다 많은 연봉을 염두에 둔 것으로 짐작된다. 관건은 뉴올리언스가 궁극적으로 연장계약을 원치 않는다면, 그를 트레이드해야 한다. 이미 전력이 갖춰진 데다 자이언 윌리엄슨과 다소 겹치는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 윌리엄슨과 잉그램을 주축으로 좀 더 많은 도약을 일궈내지 못했기에 변화가 필요한 측면도 없지 않다. 이에 거래에 나서야 한다면 시즌 전에 마무리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뉴올리언스에는 잉그램 외에도 다른 전력이 두루 자리하고 있다. 트레이 머피 Ⅲ도 포진해 있다. 내외곽을 넘나들 수 있는 허버트 존스도 있다. 존스는 지난 주전으로 출장하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결정적으로 이번 여름에 디존테 머레이를 품으면서 C.J. 맥컬럼을 오롯하게 슈팅가드로 내세울 수 있게 됐다. 포지션이 이미 잘 채워져 있다. 머레이를 데려온 이상 뉴올리언스에도 공격진이 충분해졌다. 머레이, 맥컬럼, 윌리엄슨으로 충분히 위력적이다. 즉, 여기에 잉그램이 가세해 주전 스몰포워드로 나선다면 그가 이전처럼 공격작업에 기여하지 못하거나 추후 불만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에 뉴올리언스가 그와 계약을 속히 타결하지 않을 것이라면 트레이드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뉴올리언스는 이번 여름에 그를 트레이드하지 않았다. 막상 상대가 관심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잉그램이 대형계약을 바라는 만큼, 뉴올리언스도 속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재정관리도 간과할 수 없다. 다음 시즌을 끝으로 머피와의 계약이 종료된다. 머피와 연장계약도 염두에 둬야 한다.
태무진칸작성일
2024-08-0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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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정말 대단한 문재인 정부의 업적 리스트
문재인 정부는 5년이란 짧은 시간동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말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뤄냈죠. 그리고 난 뒤 부동산, 페미, 윤석열로 이 모든 업적을 한번에 말아먹고 맙니다. 대단한 정부였습니다. 이 다음 민주당 정권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성과 - 평창 올림픽 성공적 개최- 미사일 지침 해제-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공수처 출범+ 검경수사권조정- 소방관 국가직화, 소방관 처우개선, 국군장병들 처우개선- 제조업 경기를 나타내는 제조업 PMI 10년만에 최고- 캐나다, 스위스, 미국 등과 통화스와프 체결. 캐나다와는 무제한, 무기한 스와프- 신남방정책, 신북방정책 추진으로 교역 비중이 17% 증가- 경상수지 흑자 역대 3번째 수치 2020년, 재정적자 선진국중 최소수준- 전 세계적인 코로나 19 팬대믹 상황에도 '한국의 국가신용 등급 AA2' 유지'-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CDS 프리미엄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수준 달성'- 체불된 임금 국가가 변상- 사업주에게 구상권 청구-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납품단가 후려치기 제동- 카드 수수료 인하- 하청업체에 대한 부당 경영정보 요구 금지- 가맹본부의 가맹점에 대한 보복금지조치 도입- 대기업의 순환출자고리 해소- 공직자 갑질 금지 규정 강화- 공익신고대상 보호 강화- 한국 감염병 진단 검사기법 국제표준으로 채택- 전국 4년제 국공립대 입학금전면 폐지- 어린이집 누리과정 전액 국고 지원- 학자금 대출금리 인하- 사각지대에 있던 청년들도 포함하여 20~30대 전체 무료건강검진 실시- 학부모 급식 모니터링 모든 유치원에 확대- 초등학생 독감 예방접종 무료- 5G 통신설비,공동구축 의무화 지원- 공인인증서 폐지- 전국 시내버스 무료와이파이 구축- 소재부품장비 반도체 지원- 전세계 코로나 19 위기에 대선방- G7 정상회담에 두번 연속으로 초청 받음- 역대 최대 조선업 수주 호황- 일본 보복 무역에서의 승리- 남김없는 주사기 대량 생산- 코로나 백신 한국 생산 설비 구축 문재인정부 보훈 성과 - 軍사망사고진상규명위, 13명의 억울한 죽음 진실 풀었다- '단순 자살'이라더니..수십 년 만에 억울함 풀린 김일병- JSA 벙커에서 총상…故 김훈 중위, 19년 만에 순직 인정- 故 안병하 치안감 “정의로운 경찰의 표상”40여년만에 명예회복- 아덴만 영웅 예우, 6년 지각한 ‘국가의 역할’..석해균 선장 미납 치료비 6년 만에 정부가 지급- 다리잃은 김상병 보상금 800만원..이젠 최대 1억 받는다. 국가유공자 된 김 상병, 학자금·취업지원까지 받는다- 보훈처, 선임병 구타로 사망 윤 일병 국가유공자 등록-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가족 1억여원 추가 보상금 받았다- '교전 중 부상' 군인 장애보상금 현재 1700만원에서 최대 1억2천만원까지 인상- 간부와 병사의 '전상'과 '특수직무 공상'에 대한 장애보상금 신설- 근무 기간에 상관없이 순직한 하사 이상 군인의 유족에 대한 유족연금 지급률을 43%로 일원화- 유족 1명당 지급률을 5%씩 최대 20%까지 가산하는 유족 가산제도 신설- 국방부, 軍사망사고 유족에 국선변호사 지원- 경찰 출동도 '위험직무'.. 공무원 안심하고 일할 기반 다졌다- 2022년엔 병장 월급 67만6천원…文정부 기간 46만원 인상- 軍복무 기간 모두 국민연금 가입기간 인정- 최전방 부대 병사에게 보급됐던 패딩형 동계점퍼는 입대병사 전체로 확대 보급- 예비군 보상비 4만2000원으로 33.3% 인상- 보훈예산 역대 최대 5조원 시대-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생활지원금 첫 지급('18.1월~) ('18.1월~) 3,007명 -> ('19.10월~) 1만 8,716명으로 총 1,362억원 지원- 참전명예수당 인상 ('17년 월 22만원 -> '18년 월 30만원)- 독립유공자 포상 대폭 확대 (역대 최대규모) ('17년 194명 -> '18년 355명 -> '19년 647명)-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 국가보훈처장 최초 주관-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엔참전용사 등 유해 봉환- 국가유공자 사망시 대통령 명의 근조기 26,934명 전달-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146,126명 부착)- 참전유공자 진료비 감면 확대 ('18~'19.6월) 90% 감면, 17만 2,341명 913억원 수혜- 국립묘지 확충. 괴산호국원 개원(2만 447기), 임실호국원 확충(1만 2,240기), 신암선열공원 국립묘지 승격('18. 5월), 제주국립묘지 착공(1만기), 연천현충원 착공예정(5만기)- '2.28민주운동', '3.8민주의거', '학생독립운동기념식'을 정부기념식으로 격상- 충칭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복원 ('19년 3월)- 인천보훈병원 개원 ('18.11월)- 심리재활 서비스 신설- 중앙보훈병원 치과병원 증축 추진 (~'22년)- 강원·전북권 요양원 건립 추진 (~'21년) 문재인정부 국방 정책 -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 해제.. 독자적인 응징능력 확대. 대한민국이 미국으로부터 나이키-허큘리스 미사일을 수입한 이후 반세기만에 사실상 무제한의 독자적인 탄도미사일 전력을 갖춤- 미국과 '고체연료사용 발사체 제한' 막판 조율.- 방위력개선비의 평균증가율 11% 역대최대.. 참여정부 2위. 2006년 방위사업청 개청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인 33.3%로 증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의 평균증가율 5.3%의 약 2배.- 2022년엔 병장 월급 67만6천원…文정부 기간 46만원 인상. 예비군 보상비 4만2000원으로 33.3% 인상- 핵추진잠수함 추진.. 해군 원자력 추진 잠수함 TF 운용중.- 차기대형수송함 건조계획.. 해군 중형항모 연구용역- 대형장거리 수송기 추가확보 계획- 해병대 항공단 21년 창설.. 3개 항공대대로 증편 문재인정부 통상교섭부문 성과 - WTO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제소, 2심서 뒤집고 승소. (지난 정부에서 손 놓고 있다가 일본에게 1심 패소)- WTO 일본산 공기압밸브 분쟁 '한국 승소' 최종 확정- WTO 미국 상대 철강·변압기 제품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 분쟁에서 승소. (조치 8건 모두에 대해 협정 불합치성을 인정하고 우리의 손을 들어줌)- WTO 미국 상대로 세탁기분쟁 양허정치 중재, 유정용강관 반덤핑 분쟁 승소- 수입쌀 관세율 513% 확정. '상대가 있는 국제협상에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성과를 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것' 이란 평가를 받음- 베트남産 의류에 사용된 한국産 직물도 베-EU FTA 특혜 부여. (한국은 베트남 2위 직물 공급국임 20년 17.2억불.. 對베 직물수출 증가 기대)- 日보다 높은 수준… 인도네시아 ‘자유무역 영토’ 넓혔다. 한-인니 CEPA 최종 타결- 신남방·신북방 중요한 교역파트너로 부상.. 수출비중 역대최대- 이스라엘과 아시아 최초로 FTA체결.. 이스라엘이 스타트업 성지이며 반도체장비부분 및 여러 혁신분야 협력. 자동차 관세 철폐 (현기차 이스라엘 점유율 1위)- 브렉시트를 대비해 아시아 첫 영국과 FTA 협정으로 비교 우위. 자동차 무관세 유지 (현기차 영국 점유율 3위). 올해 상반기 한-영 교역 40% 증가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 성과 - 국가정보원의 국내정보수집 및 정치개입을 금지하고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관(2024.1까지 3년 유예)하는 국가정보원법 개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검경수사권 조정.- 경찰 내 '국가수사본부'를 신설하여 '수사경찰'과 '행정경찰' 분리.- 자치경찰제 전국 실시.- '기무사령부'를 '안보지원사령부'로 해편하고, 정치활동에 관려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 문재인 정부 청년 정책 1. 장병들 처우 개선 (시설 및 환경관리등에 군무직 및 외주화,휴대폰 사용 허용)2. 사병들 월급 현실화 실현 및 환경개선비 역대 최고수치3. 사적으로 이용하는 공관병 폐지4. 디지털 정부 강화 (OECD중 1위)5. 체불 임금 국가가 변상, 사업주에게 구상권 청구6. 최저 임금 인상7. 4대보험 알바 및 시간제등 직종 확장8. 카드 수수로 인하9. 공직자 갑질 금지 규정 강화10. 산업 안전보건법 강화11. 고교 보편교육 보편급식 확립12. 전국 4년제 국공립대 입학금 전면 폐지13. 학자금 대출금리 인하14. 2030 전체 무료 건강검진 실시15. 어린이집 누리과정 전액 국고 지원16. 미혼부 법적 인정 및 보호17. 학부모 급식 모니터링 유치원 전체18. 스클존 법 강화19. 5G 통신설비, 공동구축 의무화 지원20. 전국 시내버스 무료와이파이 구축21. 초등학생 독감 예방접종 무료22. 공인인증서 폐지23. 청년 근로 지원금24. 국가장학금 소득 8분위 이하 대학생 등록금 지원25. 중소기업 취업 조건으로 대학생 등록금 전액과 취업준비금 지원26.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한 고졸 재직자(3년 이상) 대학 등록금 지원27. 대학생·대학원생에 등록금·생활비 대출 지원28. 청년 정규직 신규채용 중소기업에 1인당 연간 900만원(3년) 지원29. 중소·중견기업 정규직 취업 청년의 자산형성 지원(3년)30. 중소·중견기업 재직 청년의 자산형성 지원(5년 3000만원)31. 청년 근로자·실업자·구직자의 직업훈련능력개발32. 중소기업 취업이 확정된 고3 재학생에게 300만원 지원33. 팁스(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 성공벤처인 등 민간(운영사)을 활용하여 창업팀 선별,엔젤투자-정부 R&D 등을 연계하여 고급 기술인력의 창업을 촉진) 사업 단계적 확대, 포스트 팁스 사업 신설34. 온·오프라인 청년센터 구축·운영하여 취업 지원35. 청년취업성공패키지 지원 36. 국가기간·전략산업직종 훈련 지원37. 청년취업아카데미 및 일학습병행 지원38. 블라인드 채용 정책 확대39. 청년 중소기업탐방프로그램40. 대학일자리센터 지원 및 구축41. 청년친화 강소기업 지원 및 취업42. 청년 월드잡플러스 및 해외취업센터 지원43. K-Move스쿨(해외취업 연수과정) 지원44. 해외취업정착지원금 지원45. 대학생·청년·신혼부부 등을 위한 저렴한 공공 임대주택 공급46. 만34세 이하 단독세대주 주택구입·전월세자금 지원47. 청년 셰어형·창업지원형 등 맞춤형 청년주택 30만실 공급48.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 신설(금리 최고 3.3%, 이자소득 500만원까지 비과세]월세대출 한도 확대(30→40만원)49. 전세대출 1인가구 대출연령 제한완화(25→19세 이상), 분할상환50. 신혼특화형 공공임대 20만호 공급51. 신혼희망타운(분양형) 7만호 공급(수도권 4.7만)52. 특별공급 2배 확대(공공 15→30%, 민영 10→20%)53. 전용 구입·전세자금대출 도입(최저금리 구입 1.2%, 전세 1.7%)54. 아동이 있는 빈곤가구 지원 강화(전세임대 무상지원, 소액 주거비 대출)55. 청년 희망사다리 강화방안 및 개선.(청년고용지)(고용률) 42.5% → 43.2%(+0.7%p) / (실업률) 10.1% → 10.6%(+0.5%p) / (경제활동률) 47.3%→48.4%(+1.1%p)56. 청년전용창업에 대한 융자를 확대하고(1,300→1,600억원),57. 화장실·샤워실 개선 등 중소기업 근로여건 개선사업을 신설하여(최대 4천만원 지원)58. 서울 종로구 선거연수원, 대방동 군관사 등 공공청사 복합개발을 통하여 교통요지에 임대주택을 공급59. 전세임대 우대금리(최대 0.5%)를 제공하는 등 청년 주거부담을 완화60. 고교 취업연계 장려금 지원규모를 현재 2.5만명에서 ‘22년까지 3만명으로 확대하는 등 장학금을 포함한 교육 분야 지원을 강화61. 청년저축계좌 신설, 중금리(5% 내외)의 청년·대학생 햇살론 재출시(‘20년) 등을 통해 취약청년의 자립을 지원 62. 고졸 재직자의 후학습 장학금 확대, 2019년 2학기부터 기업요건 없애고 재직요건 완화, 선취업-후학습 우수기업 인증제 도입)63. 중소기업 취업연계 장학금확대, 장학금 지원규모 단계적 증액64. 대학 진로체험학점인정제 도입, 휴학 없이 진로탐색 활동을 스스로 설계해 수행할 수 있는 과정 개설, 참여 대학에는 운영비 지원, 학생에게는 학점 부여65. 고교 취업연계 장려금 확대 : 지원 인원을 단계적으로 확대 ('19년 2.55만명 → '22년 3만명 목표)66. 역세권 노후 고시원 리모델링을 통한 청년셰어하우스 공급67. 기숙사형 청년주택 2022년까지 5000호(1만명)를 공급, 신규 국·공유지를 발굴하여 지역사회와 상생 가능한 생활 SOC 연계 기숙사 확대68. 주택금융 정책 대출과 보증의 신혼부부 인정범위를 혼인기간 5년 → 7년 이내로 확대69. 취약청년 및 신혼·다자녀부부 대상 전세임대 우대금리 신설70. 일하는 차상위계층 청년이 본인저축시 근로소득장려금을 분담 지원해 탈빈곤과 자립지원* 예) 본인적립금(10만원) 저축시 근로소득장려금(30만원) 분담 지원(3년 후 1,440만원 수령)71. 저소득·저신용 청년의 생활자금 대출, 재정지원 방안 마련해 2020년 출시72. 장기연체자 지연배상금 부과 단일 고정금리 → 가산금리로 개편73. 청년, 저소득 구직자, 폐업 자영업자 등에 소득지원·취업지원서비스 제공74. 군입대 예정자의 적립 중지 기간을 연장(6개월→2년)해 군복무 중에도 통장유지 허용75. 만19~39세 무주택 청년 대상,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 (행복 68%(소득없는 청년), 70%(소득있는 청년), 매입, 전세임대 30~50%)76. 캠퍼스 내외, 행복(공공·연합)·민간기부형 등 다양한 유형, 관계기관 협업 통한 부지 확보 등 추진77. 신혼부부 공공임대 확대 * 매입,전세임대 지원요건 완화(평균소득 70% 이하 → 100% 이하, 맞벌이 120% 이하)* 분양전환 임대주택 특별공급 비율 상향 (15% → 30%)* 임대주택 우선공급 대상 확대 : 혼인 기간 5년 이내 → 7년 이내 및 예비부부78. 만34세·연소득 3500만원 이하 중소기업 재직자 대상 융자 지원, 한도 확대* 융자 지원 : (’18년) 7,483억원 → (’19.10월) 5조 8,248억원 / 한도 확대(’18.9월) : 3,500만원 → 1억원79. 청년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 비과세 신설, 청약통장 가입요건 완화 * (’18년) 11만 7,164구좌 → (’19.9월) 24만 4,979구좌80. 청년전용 버팀목 전세대출 금리인하(’18.9월, 2.3% → 1.8%)81. 신혼부부 주택 구입 및 전세자금 대출 대상 및 한도 확대(’18.7월)82. 단독가구 소득 2000만원 미만, 재산 2억원 미만 청년 최대 150만원 지급, 연령요건(30세 이상) 폐지(2019)83. 산단내 중소기업 재직 청년 대상, 월 5만원 지원 (2018년 15.4만명)84. 연 2.0%의 저렴한 고정금리로 최대 1억원까지 6년간 대출 가능한 청년전용창업자금 지원 (’19년 1,300억원 → ’20년 정부안 1,600억원)85. 청년 예비창업자 사업화 자금을 바우처형태로 최대 1억원을 지원, 전담 멘토를 매칭해 경영자문 서비스 제공 * (’18년 실적) 1,512명 지원86. 중소·중견기업 정규직 취업 청년의 자금형성 지원 * 지원인원 : (’17년) 4.5만명 → (’18년) 15.5만명 → (’19.9월) 25만명87. 중소기업 청년 근로자 목돈 마련 지원. * (’18년 하반기) 3.6만명 → (’19.1월~11월) 25만명88. 5천명 → 1만명 / 소득인정액이 중위기준소득 30% 이하인 청년 생계급여수급자 대상 자산형성 지원(3년 만기 수급시 1,440만원)89. 중소기업 취업 청년은 5년간 소득세를 90% 감면해 소득증대 지원(연간 150만원 한도) 90. 공공기관 청년고용의무제(정원의 3%이상 고용) 적극 추진 * 청년채용 인원 : (’16년) 1.9만명 → (’17년) 1.9만명 → (’18년) 2.6만명91. 중소·중견기업이 청년 정규직 채용시 1인당 연 최대 900만원 지원(최대3년)* 기업당 평균 채용인원 증가(’18년 수혜기업) : (’16년) 7.4명 → (’17년) 7.5명 → (’18년) 9.5명92. 청년 고용률은 44.3%로 전년 동월 대비 1.4%p 상승하고, 실업률은 하락(’19.10월)* 청년 고용률(15~29세) : (’16.10월) 41.9% → (’17.10월) 41.8% → (’18.10월) 42.9% → (’19.10월) 44.3%* 청년 실업률(15~29세) : (’16.10월) 8.5% → (’17.10월) 8.6% → (’18.10월) 8.4% → (’19.10월) 7.2%93. 자기주도적 구직활동을 하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월50만원, 최대 6개월 지원94. 4차 산업혁명 대비 혁신성장산업 등 선도인력 양성 확대* ’19.9월까지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1,700명, 정보보호 분야 883명, 블록체인 662명 교육 등95. 2022년까지 사립대 입학금 단계적 폐지 (’18년 사립대 입학금 약 20% 인하(약 582억원))96. 반값등록금 지원(사립대학 평균 등록금 기준 50%(368만원)) 확대 * (’17년) 52만명 → (’18년) 66.5만명 → (’19년) 68.9만명97. 다자녀 장학금 확대 : (’17년) 셋째 이상 자녀(6.2만명) → (’18) 다자녀 가구 전체 대학생(21만명)98. 병 의무 복무기간 18개월(육군 기준) 단축99. 고이율 ‘장병내일준비적금’ 출시 (’18.8월), 전역 시 목돈마련 지원100. 군 복무 중 원격강좌 수강료 지원(50%)과 수강 여건 개선, 군복무 경험 학점인정제도 시행 (‘19년 10월 현재 23개 대학 참여 확정) 101. 병사 개인별 5만원 내 자기개발비용 지원102. 공공기관에서 시급 1만500원 받으며 알바하는 국가근로장학금 지원103. 비수도권 고등학교 → 비수도권 대학 진학자 지역인재장학금 지원104. 중소기업 청년소득세감면(5년 동안 소득세 90% 감면)105. 최대 1억원 창업자금 지원 (청년창업사관학교)106. 중소기업 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 1.2%로 최대 1억원)107. 청년전용 버팀목전세자금 (연 2.3~2.7%로 최대 3천 5백만원)108. 청년 우대형 청약통장( 금리가 최대 3.3%)109. KTX 최대 40% 할인 지원 (청소년 드림·힘내라 청춘)110. 출·퇴근 교통비 월 5만원씩 지원 (청년동행카드)111 교통비 10% 할인 + 걷는 만큼 20% 추가할인 (광역알뜰교통카드) ※ 중복 사항 있을 수 있음
단팔짱작성일
2024-07-01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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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총선 시기 의협 투쟁 프레임 뇌피셜 예상
우선 저는 민주당 지지자이고현재 윤석렬 정부가 당파를 떠나서 ‘일’을 굉장히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런데 여론조사 나오는 것 보면 내가 지금 같은 대한민국에 살고있는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처음에는 여론조사가 뻥튀기일 것이라 생각하고 안믿었는데명절에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 대형교회 교인들, 강남부자들..)이실제로 “윤석렬 잘하고 있고, 물론 좀 아쉬운 지점이 있지만, 그래도 한동훈이가 잘하고 있어서 아주 걱정없다!”라는 말을 듣고 현타가 왔습니다. 지금 여소야대 정국에서, 윤정부 중간쯤의 지지율을 점검할 초석이 될 총선이 곧 다가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가지 정부의 헛발질 (날리면, 야당대표 구속 시도, 잼버리 파행, 부산엑스포, 명품백, 해병대 채상병, 이태원참사 거부권 등) 세보면 끝도 없습니다. 이제는 이런 폭주기관차를 막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언론 플레이 돌아가는 꼴 보니 또 작업질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물론 제가 정치충이어서 모든걸 그렇게 해석하는 걸수도 있습니다. 현재 의대 정원 문제가 가장 핫한 이슈입니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여기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1) 의사 니들의 특권의식은 문제있는 것 맞다 이건 윤석렬이 강력하게 때려잡아야 한다2) 아무리 그래도 2천명을 한번에 늘리는게 이게 말이되는 정책 방향성이냐? 네 둘다 맞는 의견이고 일리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보기엔 그 지점을 정확히 갈라치기하고 들어오는 듯 합니다. 제가 뇌피셜 예상 예언 하나 해보겠습니다. 정부는 초반에 일부러 의사들의 파업을 몇주간 방치할 것입니다.의료시스템 붕괴가 여기저기에서 나고, 실제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생길겁니다.언론은 이걸 계기로 의사집단을 이기주의로 몰아갈겁니다. (의사들이 돈은 많을 수 있지만 정치력이 없어서 법조 정치인들만큼 언론 대응을 못합니다)그리고 총선이 임박했을 때 쯤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달라는 메시지와 호소를 하기 시작할 것이고 국민들은 .. “ 그래.. 이건 힘을 실어줘야지..”하고 국힘을 뽑을 생각을 갖게됩니다. 총선 직전에 의협과 극적 타결을 하고 2천명으로 질렀던 것을 합의조정한 1천명 정도로해서 대통령과 의사협회장, 여당대표가 악수하면서 사진찍을겁니다.전공의들은 학교로 다시 돌아오고 의료 시스템이 정상화 되면서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갑니다. 그러는 사이 민주당에 대해서는 ‘공천잡음', ‘비명계 반란’, ‘이재명 리더십 문제’, ‘총선 성적 책임지고 물러나야..’이런 기사들이 도배될 것입니다. 아아… 제 눈에만 이렇게 보일까요? 부디 제 예상이 틀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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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한국 어민들이 방사능에 침묵하는 이유
과거 FTA등 1차산업과 관련한 국제 협정을 채결할때 전국의 농민들은 모두 같이 들고 일어났었음. 심지어 광화문까지 소달구지, 트랙터를 끌고와서불지르고, 돼지 때려죽이고이런 과격한 행동까지 해서 본인들 분노와 절박함을 표현했고,정치권에서도 호응해서 최대한 국익과농민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었었음. 하지만, 이번 방사능 오염수에 대해선한국 어민들 대부분이 조용함. 심지어 생계에 직접 타격을 받을 해안가 지역들은 평소 부산싸나이 부심부리며,센척하기로 유명한 지역들인데도, 항의 한번 안함. 이유가 뭘까? 첫번째는 현재가 문재인 정권처럼 자국민한테는 공격안하는 사람좋은 정부가 아니란 점이며, 두번째는 방사능수 방류는 누구도 막지 못할 시대적 재앙이기 때문에,어민들도 싸우기 전에 미리 포기했다는 것임. 지금 강하게 항의했다가 방류가 막상 시작되면,생계를 위해 다시 수산물을 팔아야 하는데,이때, 얼마 전까지 못 먹을 음식처럼 정부에게 항의해 놓구선 다시 오염된 물고기 시민들에게 판매한다고 공격받을 게 두려워 항의도 못한다는 것임. 만약, 정부 상대로 보조금이라도 받으려 한다면,못먹는 음식 팔아놓구선 이제 다시 돈 뜯어간다고, 마치..세월호, 이태원참사 유가족 공격하던 일베들의 먹잇감이 될 테니이런 뵹신같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찍소리 한번 못 내는 것임. 현정권 1년 사이에코로나 시국 취약해져 버린 경제 구조와벼랑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이러다 보니 전부 무기력하며, 생계가 망하면 가정도 망하게 되는 한계기업들이 넘쳐나니 전부 현 정권에게 책잡힐까봐 눈치게임 하고 있는 것임. 이러니 저들은 계속해서 뵹신짓을 맘껏 하는 것이고,없는 자들은 정권을 향해 침묵하며 셀프로 노예화, 개돼2지가 되버리니기득권 친일파 놈들의 촘촘한 노동자 탄압의 역사는 지금과 같은 위기의 순간, 매우 순종적인 국민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것임.
레딛고작성일
2023-07-05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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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스압] 석유 이야기 (feat 푸틴과 빈 살만의 만남)
1. 2011년에서 2013년까지 3년간 석유 가격은 배럴당 90달러 선에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었음. 2. 10년 전에 비하면 5배나 오른 가격이었지만, 산유국들은 배럴당 90달러를 적정 가격이라고 생각함. 3. 2014년 여름이 되면서, 아시아 지역의 석유 판매량이 급감하며 석유가격이 흔들리기 시작함. 중국의 경기 둔화가 시작된 것임. 4. 2014년 10월에 유가가 84달러로 떨어졌고, 미국의 셰일오일 공급까지 확대되자 11월 유가는 77달러까지 떨어짐. 5. 예전에는 이럴 경우 OPEC이 공급물량을 조절하면서 가격을 90달러 근방으로 다시 올렸음. 6. 2014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OPEC 회의가 열림. 7. 회의 며칠 전 도착한 사우디의 알 나아미 장관은 멕시코 장관 콜드웰과 미팅을 했는데, 멕시코는 현재 경제성장의 중요한 시기라서 석유 생산량을 줄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힘. 8. 연이어 만난 러시아 측 대표인 노박 에너지부 장관도 러시아는 생산량을 줄일 생각이 전혀 없고, 사우디가 줄여주기만을 바란다는 답변을 받게 됨. 9. 2014년 11월 24일 OPEC 장관급 회담이 열렸고, 사우디는 산유국들이 다 같이 석유 생산량을 줄이자는 제안을 함. 10. 사우디를 제외한 OPEC 회원국들과 러시아는 어느 누구도 산유량을 줄이기를 원하지 않고, 사우디가 독박을 쓰기를 바란다는 태도를 보이자, 사우디의 알 나아미 장관은 "결국 어떤 나라도 생산량을 줄이진 않으려는 것 같다. 그러면 이 회담은 이걸로 끝이다"라며 서류를 챙겨서 회담장을 나감. 11. 결국 OPEC 회담은 "시장에 맡기자"라는 결론으로 종료가 되었고, 이것은 산유국들이 알아서 생산량과 수출량을 정하라는 말이었음. 12. 산유국들이 알아서 생산량과 수출량을 정하라는 말은 생산량 증가로 이어졌고, 석유가격의 추가 하락이 시작됨. 13. 2015년 1월이 되자 유가는 45불로 반 토막이 났고, 이후에도 하락은 계속되어 25불까지도 떨어짐. 14. 가장 먼저 미국의 셰일 업체들이 부도가 나기 시작함. 15. 그 당시 셰일오일은 생산 비용이 높아서 배럴당 70달러는 되어야 타산이 맞는 상황이었음. 계속되는 기술 개발로 셰일오일의 생산 비용이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2015년에는 70달러는 되어야 이익이 생기는 구조였던 것임. 16. 셰일오일의 출현은 석유산업을 단기 개발과 장기 개발로 나누어지게 만듦. 17. 셰일오일은 개발을 결정하고 석유를 생산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6개월 정도면 가능하고, 유정 하나당 1500만 달러 정도의 비용이면 충분하지만, 유정이 금방 바닥나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유정을 개발하는 식으로 돌아가는 것임. 18. 반면에 일반 산유국들이 하는 장기 개발은 길게는 5년에서 10년의 준비작업이 필요하고, 제대로 생산하기까지 7억 달러에서 70억 달러까지도 초기 비용이 들어감. 19. 저유가 행진이 계속되자 수많은 단기 개발이 중단되며 석유 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함. 20. 2016년 2월 알 나이미 사우디 장관은 이렇게 말함. "감산의 고통을 분담할 생각이 없으면 우리는 시장에 계속 맡길 것이다" 21. 사우디는 석유 생산 비용이 배럴당 10달러로 가장 낮고, 쌓아놓은 재산이 충분해서 고통을 견딜 자신이 있었던 것임. 22. 석유생산 비용이 높은 다른 석유 수출국들은 고난의 행군을 시작함. 23. 러시아까지도 석유 생산비용이 배럴당 40달러 수준이라, 외화보유액을 까먹으면서 버티는 정도가 됨. 24. 2016년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회담에서 러시아의 푸틴과 사우디의 빈 살만이 단독 회담을 하게됨. 25. 무엇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둘 사이의 협상은 타결됨. 26. 2016년 9월 말. 알제리에서 세계 석유 공급의 90% 이상을 책임지는 72개국의 에너지 관련 장관급들이 모이는 국제 에너지 포럼이 열렸고, 러시아를 포함한 OPEC 회원국들은 따로 자리를 가짐. 27. 다들 기대를 안했지만, 뜻밖에 알제리 합의라고 부르는 감산 합의가 도출된 것임. 28. 알제리 합의 2주 뒤 OPEC 회원국들과 러시아를 포함한 산유국들은 2014년 11월 사우디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다시 만남. 29. OPEC 회원국들이 하루 120만 배럴을 감산하면 러시아가 30만 배럴을, 카자흐스탄, 멕시코 등 OPEC 회원이 아닌 다른 산유국들이 25만 배럴을 감산하겠다는 총 175만 배럴의 합의안이 만들어진 것임. 30. 이 새로운 합의를 OEPC 플러스 합의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때 OPEC 회원국들에 러시아가 포함되는 OEPC 플러스 회의체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짐. 31. 감산이 시작되자 유가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함. 32. 사우디의 빈 살만과 러시아의 푸틴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됨. 33. 빈 살만과 푸틴의 친분은 갑자기 생긴게 아니라 나름 역사가 있고, 바이든을 공동의 적으로 대하며 더 친해지는 모습을 보임. 34. 빈 살만과 푸틴의 합의로 175만 배럴을 감산했던 빈 회담과 바이든의 요청으로 10만 배럴 감산한 이번 회의가 대조되는 것임 35. 셰일가스가 미국에서 엄청나게 발견되며, 천연가스와 석유를 수입하던 미국은 쓰고도 남는 에너지를 수출까지 가능해지게 됨 36. 미국이 천연가스를 수출하려면 가스전으로부터 수출항까지 천연가스를 배송하는 파이프라인이 필요하고, 천연가스를 영하 160도 이하로 냉각해서 600배 압축이 된 LNG로 만드는 시설과 LNG운반선이 필요함. 37 지금까지는 수입만 하던 터라 이 시설이 필요가 없었음 38. 미국은 13개 LNG 수입항구에 액화시설을 만들어서 수입항을 수출항으로 바꾸는 공사를 진행했고, 2021년부터 하나씩 완공 되기 시작함. 39. 이런 상황에서 미국 셰일가스의 큰 고객이 되어야 할 독일이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노르드 스트림 2를 진행하자 미국은 가만있을 수 없었음. 40. 19년 12월. 트럼프는 독일이 미국의 안보에 무임승차하면서 러시아 에너지의 포로가 되려고 한다고 비난을 한 후 노드 스트림 2에 관련된 기업을 제재하는 2020 국방수권법에 사인을 해버림 41. 미국의 강한 반발에 독일은 주춤했고, 공사 완공을 질질 끌기 시작할 때 OPEC 플러스 회담이 시작됨. 42. 지난번에는 사우디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다면, 이번에는 러시아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버림. 43. 코로나로 세계가 석유를 적게 쓰게 되자, 산유국들은 석유 생산을 줄이는 감산 합의를 해서 가격을 유지하고 있었음. 44. 감산 합의가 깨지자, 감산만 안 하는 게 아니라 산유국들이 알아서 석유를 능력껏 생산할 수 있게 제한이 풀린 것임. 45. 푸틴이 감산 합의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자 말릴 줄 알았는데 사우디가 동참을 해버리는 이변이 발생함. 46. 사우디도 문제가 있었음 . 사우디의 실세인 왕세자 빈 살만은 아버지 국왕이 86세로 노령이었음. 초대 왕의 유언인 형제 상속을 중단시키고, 왕족들을 힘으로 눌러 아들 상속으로 바꾸며 차기 왕권을 확보한 빈 살만은,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한 후에도 왕족들의 지지를 받아 순탄하게 왕위를 이어 받으려면 기름값을 높여야 함 47. 사우디가 버는 돈은 기름 판돈이 거의 전부인데, 쓰는 돈이 엄청나고, 네옴이라는 서울 33배 규모의 미래형 신도시를 건설하는 자금들이 추가로 필요해서, 기름값이 최소한 배럴당 85불 이상은 유지가 필요했음. 48. 사우디가 푸틴이 시작한 저유가 치킨게임에 사전 협의라도 한 듯이 동참을 하며, 하루 970만 배럴 생산량을 1,230만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함. 49. 사우디의 최고 생산능력이 1,200만 배럴인데, 1,230만까지 늘리겠다는 것은 비축유까지 풀겠다는 말이었음 50. 사우디와 러시아가 원유 증산에 나서고 여타 산유국들까지 따라 하기 시작하자, 기름값이 급락하기 시작함. 2020년 3월경이었음. 51. 사우디와 러시아가 일시적으로는 괴로운 기름값 급락을 실행한 것은 미국의 셰일 기업들이 타깃이라서 그랬음. 52 러시아는 저유가에 버틸 힘이 있다고 봤음. 배럴당 40불 정도면 재정 유지가 가능한데다, 5,700억 불의 외화가 있다고 생각함. 53. 사우디도 석유 퍼내는 원가가 배럴당 10불 수준으로 워낙 싸고, 쌓아놓은 달러가 많아 버티는데 문제가 없었으나, 미국 셰일 기업들은 달랐음. 54. 미국 셰일 기업들은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을 빌려서 투자를 함. 유가가 급락하니 셰일 기업에 돈을 빌려준 투자자와 금융기관들이 대출 만기 연장을 안 해주고, 너도 나도 빌려준 돈을 상환 받고 빠져나가니 미국 세일 기업들이 하나씩 부도가 나기 시작함. 55. 1년 가까이 계속된 저유가에 금융 햇징을 해놓은 일부 셰일 회사들은 살아남았지만, 대부분의 셰일 회사들이 망해 셰일가스 공급이 줄어듦. 56. 석유회사들을 파산시켜 공급을 줄이고 나면 유가는 다시 올리겠다는 사우디와 러시아의 작전은 성공함. 57. 셰일 회사들의 파산으로 공급이 줄어들자 사우디와 러시아는 다시 물량 조절을 하며 가격을 올리기 시작함. 58. 푸틴은 유럽에 공급하는 천연가스를 1/5로 줄여버리기까지 함. 장기계약이 되어있는 가스는 그대로 공급했지만, 현물시장에 가스를 풀지 않아 버린 것임. 59. 가스 부족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자 천연가스 대신 석유를 쓰는 곳이 늘어나며 석유 수요까지 증가해서, 한때 마이너스 유가가 등장할 만큼 바닥이 아니라 지하를 파고 있던 기름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함. 60. 원래대로라면,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셰일 기업들이 다시 생산시설 가동을 시작하고, 새로운 유전이나 가스전 개발에 투자를 시작해서 공급이 늘어나야 함. 61.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며, 미국은 신재생에너지로 방향을 전환함. 62. 기름값이 오른다고 하더라도, 정부 지원은 신재생 쪽에 집중되어 있고, 신규 유전 개발이나 기존 셰일 가스전 재가동에는 정부 지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환경규제가 추가로 걸려있다 보니, 셰일 유전에는 투자 자금이 들어오지 않게 됨. 63. 캘리포니아는 신규 셰일가스 유전 개발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기까지 하는 정도였음. 64. 미국이 기름과 천연가스의 주요 수출국이 되는 트럼프의 계획은 바이든의 신재생 에너지 위주 전환으로 어려워 진것임. 65. 2014년~2015년 러시아 경제를 힘들게 만든 것은 미국이 유동성을 축소하는 테이프링이 주원인이었음. 66. 미국이 유동성을 회수하고, 금리를 올리자 신흥국에 가 있던 투자 자금들은 미국으로 이동함 67. 신흥국 통화로 바뀌어있던 자금들이 미국으로 이동하기 위해 신흥국 통화를 팔고 미국 달러를 사게 되었고, 미국 달러를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달러는 귀해지고 그만큼 비싸짐 68. 달러가 강세가 되었다는 말임 69. 세계의 석유 거래는 달러로만 하게 되어있음. 한 드럼통 기름값이 100불인데, 달러가 두 배 오르면 기름값은 50불이 되는 것임 70. 달러가 강세가 되었다는 말은 달러로만 결제를 하는 유가가 그만큼 약세가 된다는 말이 됨 71. 달러 강세로 유가가 약세로 돌아서니 세계 석유 생산량 3위를 차지하며 석유, 천연가스로 돈을 버는 러시아 경제가 힘들어지게 됨. 72. 2014~2015년의 러시아가 힘들었던 이유이고, 미국의 저유가 정책에 러시아가 불편해했던 이유이기도 함. 73. 2021년 말 미 연준은 물가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테이프링을 거론하며, 금리를 올리려는 움직임을 다시 보이기 시작함 74.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다시 미국으로 달러가 몰려간다는 것이고, 2014년에 발생한 달러 강세 에너지 가격 약세가 시작된다는 말임 75. 이런 타이밍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에너지 가격 급상승이 시작한 것임. 한 줄 코멘트.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만이 아닐지도 모름 출처 https://m.dcinside.com/board/dcbest/75307
달라란작성일
2022-09-0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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