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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노무현 마지막 글
노무현 대통령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글입니다. ~~~~~~~~~~~~~~~~~~~~~~~~~~~~~~~연일 제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의혹으로나라가 어지럽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합니다.몰랐다고, 모함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냐고 따져 묻지도 않겠습니다.'노무현'답게 하겠습니다잘못이 있으면 누구든 벌을 받아야 하며,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다만 이제 제가 할 선택으로 상처받을 이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습니다.어떤 꾸중과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그 서운하고 노여운 마음, 부디 저의 마지막 진심을 담은 이 편지로 조금이라도 달래지기를 빕니다.누군가 저의 인생을 '싸움'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정말로,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정치인이 되기 전 인간 '노무현'의 삶도 그랬습니다.그 최초의 상대는 '가난'이라는 녀석이었던 것 같습니다.'가난'은 단지 불편한게 아니라, 사람을 비겁하고 치졸하게 만드는 고약한 놈이었습니다.어쩌다 먹을거리가 하나 생기면, 형제들이 볼새라 저만의 비밀 장소에 감춰두고 먹던 기억이 납니다.어린 마음에도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너무나 배가 고파 나눠 먹을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집이 풍족하여, 화기애애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눠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어린 저의 꿈은 그런 것이었습니다.그 가난과의 긴 싸움을 끝냈을 때, 저는 어느새 처자식을 거느린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무 전문 변호사로 돈을 좀 만지고 있었습니다.무엇보다 기뻤던 건, 제 아이들이 어린 날의 저처럼 먹을걸 숨겨두고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양보해라, 나눠 먹어라, 힘주어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성공한 사람들과 어울려 요트도 타고 멋도 좀 부렸습니다.안사람은 그 시절을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종종 추억하곤 합니다. 정말로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그 행복은...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부끄럽게도, 저는 그 나이가 되도록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눈앞에서 나와 내 가족의 목을 죄는 가난과 싸우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그러나 점점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풍요와 여유에 취해갔지만, 눈에는 자꾸 그런 것들이 밟히기 시작했습니다.곧, 세상엔 수없이 많은.. ‘노무현’들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죽어라 이 악물고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먹을걸 숨길 수 밖에 없는 건.. 예전의 저만이 아니었습니다.'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왜 그럴까. 왜 나라는 성장하는데, 가난한 이들은 왜 학교에조차 갈수 없는 가난을 자식에게까지 대물림하게 되는가.점차 사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경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왜곡된 역사가, 도처에 널린 반칙과 특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뒤늦은 깨달음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들을 외면하고, 저 혼자 소시민적 행복을 느끼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그 후 저의 삶은 아시는 대로입니다.인권변호사가 되었고, 국회의원이 되었고, 청문회에 나가 이름도 얻었고,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늘 예전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돈이 없고 힘이 없어 세상으로부터 매맞고 짓밟히는 이들 편에 서고자 했습니다.그 눈물을 멈추게 할 힘이 내게 없다면, 최소한 내 손등으로 닦아주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모두들 ‘대세’니 ‘주류’니 하는 것에 우루루 몰려갈 때, 원칙을 지키며 버티려 했습니다.'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비웃음 살때도, 그 바위가 잘못된 것이라면 내 몸이 박살나더라도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야 그 바위가 잘못되었다는 표시라도 나지 않겠습니까.저를 굉장한 '싸움꾼'처럼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하지만 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겁도 많고 무서운 것도 많은, 그런 보통 사람입니다.'3당합당'에 반대하고 '재야의 길'을 선택하며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따논 당상이라던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갈 때도, 대통령 당선 확정을 통보받고도, 다리가 떨려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할만큼 두려웠습니다. 제가 대담한 강골이었다면 안 그랬을 것입니다.그렇게 겁이 나도, 그런 선택들을 한 이유는 한가지입니다.'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였습니다.힘 없다고 짓밟히지 않는 세상,한번 가난하면 죽을 때까지 가난한 게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면 일어날 수 있는 세상,명백한 부정에 타협하고 고개 숙여야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에 따라 '이의 있습니다.!' 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에내 아이들을 살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아무 것도 아닌 저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신 국민의 뜻도 그러했을 것입니다.노무현은 짓밟혀도 됩니다. 무너져도 됩니다.하지만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들과, 그들이 꾼 꿈은 짓밟히고 무너져선, 안 됩니다. 그 꿈은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우리의 아이들 뿐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그 아이들의 아이들도 살아가야할 나라입니다.언제까지 대결과 분열을 가르칠 것입니까.언제까지 증오와 반목을 가르칠 것입니까.언제까지 특권과 반칙을 가르칠 것입니까.사실은 모두가 불안하고, 또 불행하지 않습니까.할아버지가 된지 오래지 않습니다.자식들보다 더 귀엽습니다.그애들이 자라나고 시집도 가는 걸 왜 보고싶지 않겠습니까.하지만 저는, 늘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해 왔습니다.변호사 시절의 안락한 삶보다 눈 앞의 부조리에 맞서는 것이,국회의원 한번 더 하는 것보다 지역주의 보스정치에 저항하는 것이,대통령 되는 것보다 원칙을 지키는 일이,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2002년, 저와 여러분이 함께 꾸었던 꿈이,더럽혀지지 않도록 지키는 건.. 이 길 뿐입니다.너무 슬퍼하거나 미안해하지 않기 바랍니다.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의 운명입니다.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습니까.이제 작별인사 하겠습니다.대통령이었음보다, 이 아름다운 나라의 국민이었음이 더 큰 영광이었습니다.너무나 감사했습니다.사랑합니다.2009년 5월 23일노무현 드림. 처음보네요
배에힘쿡작성일
2022-01-09추천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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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우리나라 지역별 괴담 -1편
우리나라 지역별 괴담 -1편 첫번째 지역 (안산) 고3수험생때 겪은 일입니다. 저희학교는 안산쪽에 위치한 초지고등학교이며 본관 건물하나와 별관건물 두개가있는데, 별관건물 두개는 서로 마주보고있는 형태입니다. 별관A에는 제가 입학하고 나서 생겼고, 체육관입니다. 별관B 2층엔 저희교실이 있었어요. 저희반에서 별관A가 훤히 보였어요. 사건이 일어난 날은 고3 1학기 기말고사 시즌이였습니다.대학에 심각성을 알지못하고 놀던 1,2학년때와달리 고3땐 현실을 직시해 열심히 공부를했습니다. 집에서 공부를 한참하다가 영어를하려는데 교과서만 가져오고 교제를 놔두고 온걸 깨닫게 된 저는 주말이였지만, 눈물을 머금고 학교로 향했습니다.여름이라 낮이 길긴했지만 그땐 이미 밤 9시가 넘은시간이라 굉장히 어두웠습니다. 그 시간의 학교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시기에 시험을 망치는것보다 무서운게 없다고 생각한 저는 B별관 2층에 위치한 저희 교실로 향했습니다.비상구의 초록불빛과 도로에 가로등과 핸드폰의 불빛만으로 의지한채 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엔 경비실에 가서 아저씨와 함께 동행하려했지만 아저씨가 안계시더라구요.간신히 반에 도착한 저는 문 위에 놔둔 열쇠를 더듬더듬 찾아꺼내어 문을 열고 불을키고 들어갔습니다. 제 사물함을 열어서 EBS 교체를 꺼내고 나오는 순간,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저희반에선 반대편 별관A가 훤히보였습니다.별관A는 4층까지는 교실이였고, 5층부턴 신설한 체육관이였습니다. 그 5층 체육관에 좁고 길쭉한 창문에 무언가가 비춰보이는걸 봤어요.사람형상이였지만,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였습니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것마냥 계속 쳐다봤어요. 그 순간 건너편의 그 물체와 저는 눈이마주쳤습니다. 그리곤 그 물체가 씨익 웃는것같았어요. 순간 등에 소름이돋고 , 정신이차려지며 공포감이 극도로 달했습니다.저희 학교를 아시는분들은 아실거에요. 계단쪽이 다 유리로되어있어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가고올라가는게 훤히보였습니다.그 알수없는 생물체는 관절이란 관절이 다꺾이며, 정말 영화에서만보던 그런귀신처럼 계단을 내려오기시작했습니다. 굉장히 빠른속도였습니다.시야에 그 물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이기시작했을때,그 생물체는 온몸이 불에 그을린것마냥 새까맣고, 눈이라고 생각했던 그 부분은 뻥뚫렸으며, 입은 끔찍하리만큼 찢어져 피를 질질 흘리더군요. 그러더니 제가 있는 건물로 들어오는걸봤습니다. 저는 잡히면 죽는다는생각에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소리가들렸습니다. 뚜둑- 끼익- 뚜둑-끼익- 뚜둑-끼이익- 관절꺾는듯한 소리가들렸습니다.마치 그 생물체와 저는 숨바꼭질이라도하듯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학교 정문밖으로 미친듯이뛰었고, 나중에 EBS교재를 떨어뜨리고온걸 알아챘을땐 이미 돌아갈수없을만큼 공포감에 휩쌓였습니다. 다음날 평소 등교시간보다 1시간일찍 등교를했는데, 제가 어제 도망쳐왔던 계단엔 제 책이 떨어져있었고, 무언가의 손자국이 물들여져있었습니다.혹시몰라 시험끝나자마자 교제를 갈기갈기 찢어서 버렸습니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믿지않았는데, 알아보니 본 사람이 한둘이아니였습니다. 아직도 의문입니다. 그 생명체가 도대 체 무엇인지. 두번째,(부산) 부산으로 이사간지 한 일주일 뒤 부터 옆집에 여자가 찾아오더라고 그것도 한밤중에만 게다가 그 여자가 올땐 항상 내가 딱 잠들기 직전이였는데 드디어 의식이 희미해질 무렵, 깡깡깡- 하며 하이힐을 신은채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들렸는데 뭐랄까.. 또각거리는소리가아니라 뛰어오는소리같다고해야하나. 그런식으로 매일 밤 시달렸어. 2주정도 계속되니 옆집의 녀석이 부러운마음 반, 자고싶은데 못자는 짜증나는마음 반이었는데 근데 이상하다는걸 깨달았어. 비몽사몽한상태라 착각해서 그런진 몰라도 옆방에선 항상 그 이후 대화소리는 안들렸어. 방음이 잘안되는 아파트였지만말야. 더 이상한건 그 여잔 항상 우리집 앞을 지나간다는거야. 복도의 끝 부분에 위치한 내 집을말야. 우리집 보다 안쪽은 벽인데말이야 그 이변을 알아차린 후 1주일동안은 있을리 없는 옆집으로 가는 여자의 발소리를 듣고있었어. 근데 그 일주일 후부터는 여자의 발소리가 내 현관 문앞에서 멈추기 시작했어.문앞을 왔다갔다하는거야.그런식으로 또 일주일이 지났어.무서움을 느끼긴했지만 바로잠들정도로 피곤한 상태로 매번 잠들곤 했기 때문에 아무일도일어나지않고 아침의 해가 떴어. 근데 말야. 요즘은 그 발소리가 내 집안으로 들어오더라구. 평소처럼 내 집 앞에서 왔다갔다거리다가 갑자기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현관 앞에 서있더라고. 솔직히 쫄았어. 지금까진 멈추지않고 그저 헤메는듯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되는건지..라고 생각했지만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거야. " 으아 지금 엿 된것 같은데...." 라고 느끼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어. " 당황하고있는데 그 발소리가 집 안에서 들려오는거야. 문을 연 기억은없는데. 들어올수 없는 우리집에 대체 어떻게.. " 이제 내가 있던 방 문앞에서 소리가들렸어. 그녀와 나 사이엔 벽하나만 남겨저 버린 상태인거야. 또각- 또각- 또각- 이라는 소리를 내며 느그사게 뭔가를 찾는듯이 왔다갔다거리고 있었어.그렇게 계속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또각- 방문앞에 발소리가 멈춰버렸어. 이제 큰일 났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여기에도 없어........." 라고 들린 뒤 나는 정신을 잃었어.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때 그냥 꿈이였나.. 싶고 멍하게 방문을 열었는데,어젯밤은 꿈이 아니였다는걸 알려주듯 바닥엔 수없는 발자국이 찍혀있었어. 그것도 하이힐 오른쪽 발자국들만. 세번째 (안양) 안양은 아파트도 많고 살기 좋은곳입니다만 15년전만해도 허허벌판이였습니다. 제가 6살정도쯤 아파트라는게 들어서기 시작했는데,제 친구중 민규라는 아이는 거의 처음으로 지어졌던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였고 또 그만큼 가정이 부유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매일같이 민규네 집으로 놀러갔습니다.굳이 민규랑 놀기위해서라기보단 민규네집은 항상 수입 장난감이며 과자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민규네집으로 가서 놀다보니 나중엔 부모님들끼리도 친해졌어요.그래서 민규어머니와 저희 어머니도 시장도 같이보시고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곤했어요.그러던 어느날 민규와 민규어머니 저희어머니 이렇게 넷이서 시장을 갔다가 민규네집 앞으로 걸어오는데 민규네 아파트 앞에 왠 바나나파는 트럭이 한대 와있더라구요. 평소같으면 민규가 어머니께 집 열쇠를 받아 저랑 같이 먼저 집으로 올라갔을텐데 갑자기 바나나가 먹고싶어진 제가 어머니한테 바나나를 사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민규가 먼저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위에서 "엄마!!!!!!!!!!!" 하는 민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듣고 잠시 위를 쳐다보았는데, 민규가 아파트 복도 창문에 상반신을 거의 다 내놓고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더라구요. 그걸 보던 민규 어머니는 " 민규야 하지마 위험해!!!" 라며 들어가라고 소리를 치는데, 그만 민규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민규가 밑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어머니는 급히 제 눈을가려 민규가 떨어지는 장면을 못보게 하셨지만,민규어머니의 처절한 절규는 가려지지못하고 제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민규네 집은 이사가게되었어요. 여기까지가 제가 아는이야기고, 얼마 후 빈둥대다가 어릴적 앨범을 보게되었습니다. 민규랑 저랑 같이찍은 사진이였고, 처음엔 얘가 누군가싶어 물어보니 민규라고 하더군요 어릴때 눈앞에서 친구가 죽었는데 어떻게 잊었는지, 아니 어쩌면 잊고싶었을 수도 있겠죠. 근데 갑자기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 세상에 귀신이 있긴있나봐. 민규 엄마랑 나랑 전에 너희 사주보러갔는데, 무당이 민규는 얼마못가서 죽을상이라더라. 민규 조상한테 억울한 일 당해서 그 귀신이 한이되어 민규주변을 맴돈다는거야." 그리고 그 다음 해주신 이야기는 더욱 끔찍했습니다. "거기다가 얼마 후에 민규엄마가 꿈을꿨는데,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네발로 현관 앞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지뭐니..." 계단식 아파트는 복도 창문이 추락사고때문에 일부러 높이 만들어놨는데,성인남자들도 겨우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높이에 6살의 민규가 혼자서 그 위로 올라갈수 있었을까요? 여기까지 생각이 나니 어머니의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않았습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2132506017 https://ghshffnfffn1.tistory.com/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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