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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일본2ch 괴담] 폐촌에 홀로 있던 노파
이 이야기는 일본2ch에 올라왔던 이야기라고 하는데 구글 및 다른블로거분들 글을 참고해서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일본2ch 괴담] 폐촌에 홀로 있던 노파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에 체험한 이야기인데 당시 저는 출장으로 1개월 정도를 G현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G현은 기후현이라고해도 시내가 아니라, 외곽에 있는 시골이었습니다. 시골이라고 해도 역 주변에는 노래방이나 카바레 클럽 같은 오락시설 같은 것들이 있어서 지루하진 않았고 업무는 기본적으로 출장이다 보니 잔업 하나 없이 정시 퇴근을 했습니다. 처음 왔을 땐 지인도 없었던 터라 퇴근후 바로 비즈니스 호텔행이었지만 점점 사람이 그리워져서 어떤 바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 바는 마스터 혼자 가게를 맡고 있었고 카운터 자리 5석, 테이블 2석 정도의 작은 가게였습니다. 마스터는 사카구치 켄지(배우)에다 남성적인 느낌과 나이를 더한 풍채의 사람이었는데말솜씨도 좋아서, 지인 하나 없이 외지에 홀로 온 나는 언제부턴가 일이 끝나는 대로 매일 그 바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이나 연속으로 다니다 보니 단골손님들과도 면식을 트게 되어 별 볼일 없는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특히 사이가 좋아진 사람은 타카시 씨라고 불리는 40대 전반의 사람과 사짱이라 불리는 동양풍 미인 여자애였습니다. 타카시 씨와 사짱도 사이가 좋아서 마스터를 낀 네 명이서 항상 폐점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어느 날 일을 마친 저는 바를 향했는데지하로 이어지는 짧은 계단을 내려가 바의 두꺼운 나무 문을 여니, 항상 카운터석에 앉아있던 사짱이 테이블석에 앉아있었는데 친구들을 같이 데려온 모양인지 여자 셋이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장 안쪽 카운터석에 앉자마자, 마스터에게 맥주와 주인장 추천 파스타를 주문했고 조금 뒤 타카시 씨도 가게로 들어와 내 옆에 앉았고, 둘이서 해외 축구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짱이 말을 걸어왔다. " 유우키 씨(나)는, 귀신같은 거 믿으세요? " 엉뚱한 질문에 저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런 계열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터라 믿는다고 대답했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타카시 씨까지 유령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스터까지 이야기에 끼어들어서 이야기의 주제는 무서운 이야기로 바뀌어버렸고 이런저런 체험담을 어느 정도 이야기 나누던 때, 이야기가 흘러감에 따라 담력 테스트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가장 의욕이 넘치던 마스터가 가게를 빨리 닫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고 그리고 나서 다 함께 마스터의 마감을 도와 0시 전에 가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쯤에서 사짱의 친구 2사람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먼저 한 사람은 준짱. 마른 체형에 키도 크다. 긴 흑발이 인상적인 사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사야짱. 작은 체구에 보브컷이 잘 어울리는 여성스러운 친구였습니다. 이렇게 여성 3인과 나와 타카시 씨, 마스터 이렇게 여섯 사람이서 역 앞 번화가를 지나 마스터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을 향했는데 당시 술에 취해있지 않았던 사람이 마스터뿐이어서, 운전은 당연히 마스터가 하기로 했습니다. 마스터의 차는 독일의 유명한 왜건이었는데. 바 라는 게 의외로 돈이 되는 장사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운전석에는 마스터 조수석에는 준짱이 앉았고 두 번째 줄은 타카시 씨와 사야짱, 그리고 저는 사짱과 뒷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목적지는 통칭 "가와사키무라"라고 불리는 폐촌이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시대에 걸친 시기(1868~1989) 즈음에 폐촌이 된 마을이라는 것 같았고, 지금까지도 당시의 민가 같은 것들이 꽤 남아있다고 하는데 그 남아있는 건물이라고 해봐야 낡은 건물들뿐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지방 사람이 아니어서 가와사키무라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지만, 의외였던 것은 이 지방 사람인 다른 다섯 사람도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점이었고, 실제로 가 봤다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 지방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장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제일 나이가 많은 마스터가 가와사키무라까지 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자동차를 타고 산 방향으로 1시간 정도 걸려 달려야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거기다 도중부터는 차로 지나갈 수 없는 길이어서 거기서부터는 도보로 갈 수밖에 없다고 들었고 저는 걸어야 한다는 말에 의욕이 살짝 떨어졌지만, 나머지 다섯 사람은 그렇지도 않은 분위기인 데다 기분 좋게 콧노래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를 뒤로하고 교외를 빠져나가니 양쪽으로 펼쳐진 풍경은 산 뿐이었는데 마침 산과 산 사이를 뚫고 나가듯이 나 있는 도로를 달렸고 다시 도로를 달려, 표지로 생각되는 찌그러진 드라이브 인에서 우회전을 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정말 산길이 시작되었는데, 어떻게 포장은 되어있었지만 아스팔트 곳곳이 들려진 상태로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길이었는데 이어서 차로 지나갈 만한 포장조차 되어있지 않은 자갈길로 바뀌었습니다. 자갈길을 지나니 부자연스러운 광장이 나타났는데 광장을 지나고부터는 검정, 노란색 로프가 걸려있었고 로프에는 간판이 걸려있었습니다. 산사태 주의 ○△□시청 여기서부터는 정보대로 도보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았는데 로프를 넘어간 여섯 사람은 자갈길을 신중히 나아갔고 달빛도 나무들에 가려져서 시야가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무릎 위까지 자란 풀 때문에 걷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심령스팟으로는 합격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저 분위기만 그랬을 뿐, 그 당시에는 아직 이상한 느낌은 없었고 풀을 헤치며 점점 나아가니 또다시 작은 광장에 나왔습니다. 그 광장은 버려진 가전제품이나 타이어의 잔해가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아마 불법투기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광장을 지나니 다시 좁은 짐승 다니는 길이 나타났는데길을 잘못 든 게 아니냐고 여성진들이 말했지만 마스터의 말에 따르면 제대로 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짐승 다니는 길을 따라 15분 정도 나아갔을 즈음 순간 앞장서서 걷고 있던 마스터가 걸음을 멈추었고 그것에 영향을 받은 듯 전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마스터가 바라보는 곳에 커다란 비석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나란히 서있다고는 했지만 비석과 비석 사이에는 차 두 대가 스쳐 지나갈 정도의 간격이 있었는데 마침 비석과 비석 사이가 문처럼 보였습니다. 도다이 사(東大寺)의 금강역사(인왕)상을 예로 들면 상상하기 쉬우실까요? 우측 비석은 전체적으로 사각형이었고, 크기는 묘지에 쓰일 정도의 물건이었고 세월을 탔는지 돌에 이끼가 두껍게 끼어있었습니다. 뭔가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 같았지만 일부가 지워져서 읽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 이름 같은 게 새겨져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좌측의 비석은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를 띤 돌로, 굉장히 컸습니다. 이쪽도 문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사각 비석과 마찬가지로 읽기가 어려는데'慰(위)' 와 '碑(비)' 라는 문자만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비석과 비석 사이를 지나 우리들은 드디어 마을로 들어갈수 있었는데 지형부터 보면 단순한 산골마을이었고 멀찍이 몇 갠가 건물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일단 저희들은 건물을 향해 걸었습니다. 마을 안도 잡초나 쓰러진 나무들로 걷기가 힘들었는데건물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곳이 폐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뜻 봐도 폐허는 20채 정도가 있었고 전부 목조 단층집이었는데, 시대극에나 나올법한 나가야(長屋)를 상상하면 알기 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비교적 멀쩡한 건물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아마도 현관 미닫이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떼어내 안에 침입했습니다. 현관은 봉당(흙바닥)이었고, 거기서 한 칸 높은 곳에 다다미가 깔려있었는데 단 다다미도 너덜너덜하게 썩은 상태여서 마루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었고 저희들은 서로 넘어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민가 내를 탐색했습니다. 특별히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메이지 시대에 폐촌 되었다는 것은 정말이었던 모양으로, 전기제품 잔해는커녕 조명시설이 없는 것부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 시대에는 램프나 양초로 불을 밝혔나보다,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탐색하던 것을 끝내고 우리는 그 민가에서 나왔는데그곳에서부터 되도록 들어가기 편해 보이는 민가를 3,4채 정도 둘러보았습니다. 예전에 담력 테스트를 위해 방문했던 사람의 흔적(주스캔 등)이 있었지만 최근10년간은 아무도 방문한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얼추 돌아보는 것을 끝내고 우리는 잠깐 쉬기로 했는데생각한 것보다 무섭지 않다느니 뭐니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민가 뒤쪽 언덕 방향에서 오열인지 동물 울음소리 같은, 설명하기 어려운 소리가 들려오자 이 소리를 들었는지 다들 일제히 언덕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우오오오오오오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번에는 외친다기보다는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같았습니다. 다들 경계하기 시작하며 그때부터 온 신경을 집중시켜 세 번째로 들려올 소리를 기다렸지만, 결국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 방금 그거 뭐였을까? " 제가 모두에게 묻자 그 말에 대답을 해온 것은 마스터였는데 " 아마 코요테 같은 게 아닐까? " " 코요테는 일본에 없잖아? " 사짱이 지적했습니다. " 그건 그렇군. " 마스터가 부끄러운 듯 수줍은 미소를 보였고 모두에게 웃음의 기운이 돌았습니다. " 있잖아. 아까 소리가 들려온 쪽에 가 보지 않을래? " 사야짱이 제안했는데 다들 그 소리를 동물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 시점에서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민가의 뒷마당을 지나 조금 높은 언덕을 올라가자아래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언덕을 지나니 그곳에는 휑한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초원 가운데에 작은 오두막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 누군가 있는 걸까? " " 가까이 가서 확인해볼까? " 여섯 사람은 공포심보다 호기심이 컸기 때문에, 오두막집에 가보기로 했고 조심조심 작은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봤는데 그곳에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오두막집의 크기는 5평 정도였는데 방 모퉁이에는 양초와 소금 더미,그리고 개 · 돼지 · 소 · 닭의 머리가 놓여있었습니다. 게다가 방 중앙에는 제단으로 생각되는 선반이 있었고, 그 위에 술이나 비쭈기나무, 쌀 등이 즐비해있었고그리고 방 한쪽 벽은 먹으로 갈겨쓴 듯한 문자가 빽빽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가장 놀란 것은 제단 앞에 백발의 노파가 기도를 드리고 있던 광경이었는데 뭔가 외우고 있었지만 그게 일본어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주문을 외는 리듬은 묘하게 기분이 좋았는데, 마치 술에 취했을 때의 감각과 비슷해보였습니다. 저는 주변의 모두를 돌아보았는데 모두들 미소를 지은 채로 기분 좋은 듯이 주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노파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며 삼베 자루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인간' 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주 얄팍한. 분명 인간의 가죽을 벗긴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굉장히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준짱과 사야짱이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노파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말았습니다. " 본것이냐? " 저에게는 그렇게 들렸는데 노파는 다음 순간, 네발로 기어서 마치 개처럼 저희 쪽으로 뛰어왔고 저희들은 쏜살같이 오두막집에서 벗어나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주변 사람을 신경 쓸 여유 같은 건 없었고 그저 외치는 소리나 달리는 소리로 모두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무너진 마을을 뒤로하고 비석이 있는 광장까지 단숨에 달려왔는데 " 허억..허억..헉.. " 숨을 고르고 모두의 안부를 확인하는데 그럭저럭 전원 도망치는데 성공한 모양이었습니다. 멀리서 아직도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아마 이 소리는 그 노파의 목소리일것으로 생각했는데 분명 동물의 영에 씐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말없이 마스터의 차까지 돌아갔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모두들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바 앞이었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후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다음날부터 저는 바를 다니지 않게 되었고 그런 채로 1개월간의 출장도 끝이 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반년 정도가 지나고 차차 그 노파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때때로 꿈에 나타나기까지 했었는데 …. 그러던 어느 날, 제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사짱의 번호였습니다. " 여보세요? " 전 머뭇거리며 전화를 받았는데 " 유우키 씨, 오랜만. " 사짱은 , 당연한 거겠지만 반년 전과 변함없는 목소리였습니다. " 괜찮으면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돌아오는 일요일에 다시 기후까지 가기로 약속했고 일요일, 사짱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몇분 전에 패밀리 레스토랑에 도착했습니다. " 오랜만이야 " " 응, 오랜만. " 두서없는 인사를 주고받는데 " 오늘 왜 유우키씨를 불렀냐면 …… " 사짱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 사실 그 일 뒤로 타카시 씨랑 마스터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 …… " 아무래도 그 사건 이후로 타카시 씨, 마스터와 소식불통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에 마스터는 바도 폐점한 상태였고 소문에 의하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타카시 씨에 이르러서는 소식조차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짱은 이어서 말하기를 " 그래서 나, 그 마을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조사해봤어. " 라고 말하며 저 에게 한 권의 파일을 넘겨주었는데 파일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적혀있었습니다. 가와사키무라川崎村 (皮裂村 ) 쇼와 2년 폐촌 에도시대 중기부터 메이지 초기에 걸쳐 가죽제품을 주 수입원으로 삼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마을 인구는 총원 약 100명 정도. 소위 피차별지구. 바깥 세계와의 교류는 거의 없었고 농경이나 수렵으로 자급자족 생활을 하고 있었다. 메이지 후기에는 마을 인구가 20명 정도로 줄었고 쇼와 2년, 마지막 마을 사람이 옆 마을로 이사한 후 폐촌. 여기까지 읽고 확하고 느낌이 왔습니다. " 혹시 그 노파가 마지막 가와사키무라 마을 사람이었다는 소리야? " 사짱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 원래 그 마을은 가와사키무라 (皮裂村, 가죽 벗기는 마을) 라고 불리면서 엄청난 차별을 받아왔어. 그러던 차 바깥세상과 교류도 점점 없어져서 고립되어 간 거야. 그리고 그 마을은 수렵이나 가죽제품을 생업으로 두던 사람들의 마을이다 보니 짐승을 신으로써 모셨어. 그 왼쪽 비석은 죽인 가축들의 위령비였던 모양이야. " 사짱은 계속 이야기했는데 " 마을의 어떤 가계를 보면 요즘 말로 무당 같은 능력이 있던 일족이 있었다고 해. 그 일족은 짐승의 영혼을 내려받아 농작물의 풍작을 기원하거나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했다고 하더라구. 그리고 연 1회 짐승의 신에게 제물로써 인간의 가죽을 바치고 있었지. " 아무래도 우리들이 그 장소에서 본 것은 그 의식의 일부였던 모양이었고 이후 그 노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며 저도 마스터나 타카시씨와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말을 했고 사짱과 식사후에 헤어졌습니다.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사짱과는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종종 식사나 술 한잔을 하기도 합니다만 마스터나 타가시씨의 소식은 여전히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ghshffnfffn1/222130481911https://ghshffnfffn1.tistory.com/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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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간단했으면 좋았을)세계 코로나 상황과 국뽕의 웃픈 근거
코로나 19로 세계가 뒤집어진 지금
세계 여러나라의 혼란상 속에서 우리나라의 대처가 빛을 발하면서 국뽕 글들이 날마다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빛나는 모습만을 보는 것은 이제 슬슬 물리실 듯 하여, 1.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혼란속에 놓여있는지. 2. 이렇게 우리나라가 대처를 잘 할 수 있는 숨어있는 이유를 되짚어 봄으로서, 우리나라의 웃픈 현실을 재조명 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 게시글은, 3프로 tv의 소 코너,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내용을 토대로 함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이탈리아)
익히 ㅈ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굳이 언급을 해야 할까 싶냐마는.... 유럽 대륙에서 시범적으로 ㅈ되고 있는 케이스이다보니, 언급을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네요. 유럽 다른 국가들은 이탈리아의 확진자수 증가 양태를 따라가고 있으니, 유럽의 코로나 유행과 소강, 그리고 극복의 시금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아의 상황을 모니터링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영국은 이탈리아의 통계치를 2주 텀으로 따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한풀 꺾일랑 말랑 하고 있긴 한데, 최근까지는 확진자가 매일 10%씩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총 확진자의 10% 씩)
이탈리아는 사망률이 10%입니다. 이렇게 사망율이 높은 이유는 저번 게시글에도 밝혔다시피, 트리아지라는 전상자 처치법을 통해 환자를 분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증세를 느껴 병원에 간다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60세 이상이세요?”라고 합니다.
거기서 “YES”라고 대답하셨다면.... 당신의 팔엔 검은색 표딱지가 붙게 될 것입니다. (검은색 : 기대 / 죽을 날만 기다릴 것)
이건 나름의 고육책인 것이, 워낙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다보니, 치료를 위한 설비가 턱없이 모자라게 되었고, 생명의 무게를 “선별”해야 할 정도의 상황까지 몰리게 된 것이죠.
젊은이라면 산소마스크를 2일만 써도 회복이 되는 반면
노인의 경우 산소마스크를 7일 넘게 써도 간당간당 하다면
“공리주의적”으로 의사는 젊은이를 위주로 의료행위를 할 수 밖에 없겠지요. 아마 이탈리아에서 의사로 활동하신다면..... 참 PTSD가 우려되는 상황이겠죠.
그나마 다행이라면 증가세는 정점을 찍은 듯 합니다만.... 그 상태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하고 있습니다.
기승전전전전전전전....같은 상황이죠. 하루에만 사망자가 1,000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지옥의 한 복판에서 희망을 찾아 애를 쓰고있는 이탈리아를 응원합니다.
스페인)
이탈리아는 기승전전전전전.....이라면, 스페인은 기승ㅈ....의 상황입니다.
스페인은 짱공 게시판에도 사건 하나가 조명되서 잘 알려져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스페인 노인 요양 시설에서 집단 사망자가 발생했다지요?
노인들이 집단적으로 감염되었는데, 의료진들이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수습도 못하고 죽어간 사건 말입니다.
그 요양시설에 음식물을 납품하던 업체 직원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경찰 선에서 도저히 수습할 수가 없어, 군대에 시신 수습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비교적 덜 알려진 사실인데요. 날강두의 도시 마드리드에서는 도시내 아이스링크를 시신 안치소로 쓰리고 있다고 합니다. 시신을 소각해야 하는데 도시내 소각 시설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 그곳에 임시 보관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윽...... ㄹㅇ 이건 전시를 넘어서 지옥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지만 스페인은 특히 심각한 것이 “의료인의 감염”이 높습니다. 하루에 1,500명의 “의료진”감염이 발생하고 있어요.
이 이야기는..... 병원마다 하루에 적게는 1/3 ~ 많게는 1/2에 달하는 의료인들이 자가격리를 당하고 돌아오길 반복하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일이 잘 풀릴래야 풀릴 수 없는 대 환장의 사이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감염된 의료인 모두가 사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각을 다루는 전염병 창궐 상황에서 전염병이라는 적군과 맞서 싸워야 할 병사들이 전장에서 이탈하는 상황이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지요.
독일)
독일상황은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환자에 대한 검진은 그럭저럭 하지만 사망자에 대한 검진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망율이 낮다고 하지요. 그래도 유럽대륙에서 잘 막아내는 편이라고 해요. 하루 신규 확진자가 3,000여명 선이라고 합니다. 잘 막아내는게 이정도면.... 말 다했다고 보는게 맞겠네요.
여기에 추가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문제점들을 제시하자면,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우리나라는 1339 등을 이용하지만 독일은...... 무려 “팩스”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번호는 “단 하나”라고 합니다. 즉..... 독일 전역에서 벌어지는 코로나 감염을 집계하는 창구는 딱 하나라는 이야기죠.
일화를 하나 들자면, 독일에 한 학교에서 선생님이 코로나에 감염이 되어서, 이걸 보고하고 휴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팩스를 돌렸는데..... 하루종일 해도 팩스를 보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선진국 독일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되는 순간입니다.
여담으로 하나를 더 이야기 하지면, 독일 베를린 법원에서는 최근까지 “윈도우 95”를 써 오다가 랜섬웨어에 의해 그간의 전자자료들이 인질로 잡힌 사태도 겪었다고 해요.
21세기가 된지 몇년인데 윈도우 95라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스위스)
스위스는 최근에 감염자 수를 우리나라를 제꼈다고 합니다. 스위스 인구를 생각하면 (2019년 850만명) 엄청난 수치인 겁니다. 여기는 존엄사/안락사가 가능한 나라인데요. 코로나 19로 인해 최근들어서 유언을 남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해요. 예컨대 연명시술을 받을지 말지에 대해서 말이죠.....
코로나 공포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터키)
여기는 이제야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승전결의.... “승”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요. 누적 확진자가 3,000여명 정도인데, 하루 확진자가 1,000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감염자수 증가가 30%라.... 이제 막 롤러코스터의 초입에 들어온 셈이지요.
영국)
영국은 떠오르는 신흥 감염국입니다. 이탈리아보다 2주정도 뒤쳐져서 따라가는 상황이지요. 영국 의료진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인데요. 마스크도 마스크지만, 방호복은 특히 최악의 상황입니다.
영국 최고 공공의료기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 병원인) NHS에서는 방호복을 구할 수 없어서 경리 직원이 자기 돈으로 쓰레기 봉투를 200여장 사 온 뒤에, 거기에 구멍을 내서 “방호복”으로 사용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저번에 짱공에서 게시물을 올렸을 때 “메르켈 발언”을 영국 총리가 한 발언이라는 댓글이 나왔었는데요. 방송을 들어보니 영국 총리도 60프로 감염되야 이 일이 끝난다 라고 하긴 했었다고 합니다. 죄송해요.
어쨋건, 영국은 “집단 면역으로 이걸 극복하자”라는 상당히 병x같은 주장을 했고, 그래서 초기엔 “휴교? 안해!” “프리미어 리그? 열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제가 해외 축구는 몰라서 지금도 하는지는.... 팩트체크 부탁드립니다.)
어쨋건, 이런 행보를 보이자, 영국내에서 감염병 관련해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학자분이..... 자기 직을 건 보고서를 냅니다. 보고서의 요지는
“영국 총리 마! 너 이따위로 하면 영국에서 최소 40만명은 죽어. 너 그거 감당 할 수 있겠냐?” 였습니다.
지금까지 코로나 감염자 대비 사망자 비율은 1%라고 해요. 영국 인구는 2018년 기준 6,600만명입니다. 이중에 70프로는 약 4,600만이지요. 그중 1%는 약 46만명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가 13,000여개가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로 치면 학교당 30명 넘게 죽어야 이 일이 끝날 거라는 다소 충격적인 보고서가 나온 거지요.
그래서 움찔한 영국은 그때부터 엉덩이를 질질 끌며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쓰레기 봉지 방역복” 사태인 것입니다.
프랑스)
이후에 세계 여러나라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이야기 하겠지만,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물자 사태”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프랑스도 감염자를 근절하기 위해선 손소독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손소독제를 대량 생산하도록 했다고 해요. 문제는.....
병원에 구비한 손소독제가 누군가에 의해 빼돌려지고, 빈 병에 물을 채워서 넣는 이른바 “가짜 소독제” 사태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한국에선 교회 사모가 소금물로 소독하다가 집단 감염이 됐다지만..... 이건 그냥 맹물 소독제라니. 한술이 아니라 몇십술 더 푸는 사태가 벌어진 셈입니다.
어쨋거나, 이대로 ㅈ될 수 없다고 판단한 프랑스는 샤넬에서도 손 소독제를 만들고 있다고 해요. 손 소독제 자체는 만드는건 쉬운데, 그걸 담을 병을 따로 구할 시간이 없던 샤넬은...... 자신들의 제품을 담던 향수병에 손 소독제를 담아서 병원에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엽게에서도 보셨죠? 구찌 마스크.... 그것도 이런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미국)
드디어 트럼프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팔 걷어부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선 검사의 자동화로 연구소 하나가 하루에 8,000여명씩 검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문제는..... 그걸 감당할 의료 시스템이 존재 하냐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영국의 “쓰레기 봉지 방역복”까진 아니지만, 앞치마 식으로 두르는.... 즉, 앞만 가리고 뒤는 뻥하니 노출된.....우리나라의 D레벨 방호복에는 한참 모자라는 수준에 노출되어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하나의 병크로 지목되는 것이..... 의료진의 리타이어를 막기 위해 의료진 중에 확진자가 나와도, 3일 지켜봐서 증상이 안나오면, 다시 현장에 복귀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합니다.
미국의 병원.... 과연 안전할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의약품”은 현재, 인도의 감염자 확대로 인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응? 대체 인도랑 뭔 상관이여? 하실 분들이 있을 텐데요. 후술할 인도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인도)
인도는 이제서야 셧다운이 시작됐습니다. 기간이 좀 길어요. 3월 말도 아니고 4월 말까지 입니다.
힌두어를 필두로 엄청난 수의 언어들이 공용어로 인정받는 인도에선 “우리나라 오늘부터 셧다운 1일~” 이라고 전달 하는 것 마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인도는 세계 공용어 “바디 랭귀지”를 사용하기로 했답니다.
최근 짱공유 엽게 짤로 등장한, “사람 패는 인도 경찰” 아시죠? 인도에선 그런 식으로 셧다운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뚜까 패서 집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합니다.
아 그리고 미국을 언급하면서 앞서 말씀 드렸던, “인도의 셧다운이 미국 제약계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는 발언의 근거를 말씀드리자면
인도는 “제너릭” 즉, 복제약의 천국입니다.
미국에선 제약 회사들이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인도의 제약회사들에게 하청을 주고 있다고 해요. 어느정도냐 하면, 미국에서 유통되는 의약품중에서 인도산이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인도가 전국민을 뚜까 패가면서 가택에 몰아넣는 다면...... 미국의 의약품 사정은......
세계 각국의 현상)
이쯤되면 왜 대체 무엇때문에 못막나 싶을 텐데요.
저번 게시물에도 언급했지만, 집계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퍼져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 시기에 계절성 독감이 유행을 하니..... 코로나 감염자도 자신이 설마 코로나에 걸렸을 거란 생각을 못하고 병원을 방문한 것이지요. 이것의 근거가 바로 “지나치게 높은 의료진 감염”인 것이지요.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의료진들을 위한 “방호장비”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공정마스크로 배포하고 있은 kf-94마스크는 세계적인 희귀템이 되어버렸습니다. 의료진들은 kf-94는 꿈도 못꾸고 그냥 면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독일 마저도 그 면마스크에 이름을 주기해서 퇴근시 소독하고 걸어두고 간 다음, 익일에 출근해서 재활용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앞서 영국 사례에서 언급 되었지만 방호복 상황도 최악이지요. 쓰레기 봉투가 아니면 편의점에서 팔 법한 일회용 우비 조차도 방호복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할 정도니까요.
마스크를 더 이야기 하자면.... 마스크는 이제 세계 제일의 전략 물자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이탈리아에게 구호품으로 마스크를 보냈다는 뉴스를 엽게에서 접하셨을 텐데요. 이탈리아가 중국을 거쳐간 사람들 까지 일체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이탈리아-중국 직항 노선이 폐쇄되었습니다.
결국 마스크는 직접 날아가는 대신, 다른나라를 경유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체코에서 일이 터져버렸습니다.
체코 세관 당국이 마스크 70만장을 압류해 버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이 일로 이탈리아와 중국이 동시에 체코에게 항의를 하니, 체코에선 “어멋 실수 미안해”라고 하면서
마스크를 10만장만 돌려주었습니다.
나머지 60만장은요? 라는 질문이 나올텐데요.
그건 짱공인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독일 같은 경우는 마스크를 60만장을 주문했는데요. 마스크를 싣은 비행기가 뜬금포로 케냐를 경유해 가더니...... 마스크만 증발해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세상에, 버뮤다 마스크 지대도 아니고 말이지요. 마스크가 비행기만 타면 증발해 버리는 신묘한 현상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판입니다.
프랑스는 아까 손 소독제에 대해서 언급하긴 했지만, 여기도 마스크에 대해서 병크가 터졌으니 언급을 안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도 온갖데에 수소문 끝에 마스크를 구했습니다. 그 소중한 “전략물자”인 마스크를 남미대륙의 프랑스령인 불령 기아나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이 소중한 “전략물자”를 지키기 위해 그곳에서 제일 엄중한 요새인 우주센터 핵심 시설에 보관을 해놨는데
누군가가 들고 튀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완전한 개판이 완성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 보니, 마스크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선 1,500원인 kf-공정마스크가 코로나 이전의 유럽에선 개당 69센트이던게 코로나 사태 이후론, 개당 18~20유로(개당) 그리고 암시장에선 30유로(한화 30,000원 가량)로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석유를 넘어서는 기축통화가 되려는 모양입니다.
또한 앞서 영국에서 언급한 “집단면역”이 얼마나 개소리인지 이유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집단 면역이라는 이름의 방치를 하게되면 과연 “코로나 감염자”만 죽게 될까요?
병원이 마비되면, 당장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 + 신장투석이 필요한 사람 등, 기저질환이 있던 사람들은 의료시스템 붕괴로 죽을 수 밖에 없어집니다. 즉 안 죽을 수 있던 사람들도 시류에 희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와 감염된 나라 개많아 영국 이탈리아 어쩔? 유럽 ㅈ망이네 ㅉㅉ. 이란은 그리고 또 어쩐다냐?”하실 분들이 있을 텐데요.
이란의 감염자와 사망자수가 보여주는 것이 역설적으로 “이란이 중동지역에선 그나마 의료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걸 반증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이탈리아/영국/스페인..... 이렇게 감염자가 나날이 늘어나는 나라들은 “세계에서 그나마 의료 시스템이 돌아가는 나라”들인 겁니다. 코로나 감염자 집계, 사망자 집계가 나오지 않는 나라들은, 그걸 집계할 의료 시스템 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들인거지요.
아프니까 -> 병원을 가고 -> 거기서 검사를 받고 -> 확진이 나고 -> 치료를 받거나 사망을 하거나 -> 수치가 기록 된다.
즉...... 세계적으로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그걸 드러낼 용기가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옆의 뉴클리어 몽키즈 같은) 들만 있을 뿐인거에요.
국뽕의 근거)
이제 세계가 이렇게 ㅈ됬다는 걸 알았으니, 왜 우리나라만 유독 이렇게 잘 해쳐나가고 있는가를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 대통령의 과감한 드라이브, 질본을 위시한 관료들과 의료인들의 헌신, 국민들의 적극적 협조가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이것도 나름의 기반이 있어야 작동을 하겠지요. 이젠 그 “기반”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저도 팟캐스트를 들으며..... 참 웃프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인식되던 것이
이런 재난 상황에서는 극복의 실마리가 되었다는 것이 말이지요.
1 . 마스크 / 방호복에 관하여
영국 NHS의 사례를 들었지만 세계가 마스크와 방호복이 없어서 몸살을 앓는 와중에, 왜 우리나라는 유독 우주복 수준의 방호복을 갖출 수 있었던 걸까요?
방호복의 경우는...... 아이러니 하게도 “메르스” 덕분이었습니다. 메르스가 우리나라를 휘저어 놓으면서 얻은 교훈이었던 것이지요. 세계 여러나라는 괜찮을 동안 우리나라 혼자서 메르스에 쥐어터진 경험이..... 반대로 우리나라 혼자서 평온 하고 세계 여러나라가 코로나로 쥐어터지는 이유가 된 것입니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에서 새로운 것을 미루어 안다는 “온고지신”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메르스의 뼈아픈 기억이 우리나라에겐 코로나의 예방주사가 된 격이지요.
메르스가 준 교훈을 더 들자면
선별 진료소의 필요성 / 검사 채취 / 음압병실 / 레벨 D 방호복이 되겠습니다.
마스크를 이야기 하자면, 우리나라는 유통되는 마스크 중에 kf-94, 95의 비중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입니다. (대만의 공정 마스크는 부직포 마스크)
왜 이게 가능했을까요?
웃프게도......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연중 미세먼지를 보내다 보니..... 마스크를 쓰려는 사람이 연중 존재했고, 그 덕분에 우리나라에선 마스크가 꽤 큰 산업이 되어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마스크)제조업 기반이 있었던 것이.... 지금의 마스크 생산을 가능하게 한 셈이지요.
참고로 kf-94 마스크의 핵심 재료인 MB필터가 의외로 생산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그걸 생산할 기술이 있었던 거지요. MB필터는 휴지나 애기용 귀저기에도 쓰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휴지 사재기가.....)
그럼 유럽은 생산 안해?라고 하실 분이 있을 텐데요. 세계화의 단점이 여기에서 발휘되었습니다. 유럽등은...... “귀저기 그 비싼 인건비 들여서 만드느니 그냥 수입하자” 한 거에요. 유럽에서 휴지를 만드는 회사는 스위스에 있는 것 하나 뿐입니다.
그동안은 서플라이 체인이 돌아가서 이상이 없었으나, 지금같은 비상 시국에는.... 무력화가 된 셈입니다. 우리나라는 화성, 안산, 포천등 각종 공단에서 “핫산”들을 고용해서 어떻게든 생산을 이어갔던 것이..... 지금의 화를 모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 분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순간이지요)
2 . 의료 시스템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에 대하여 까는 분들은 참 많습니다. “미국 시스템과 유럽 시스템의 좋지 않은 것들을 모으면 한국 의료 시스템이 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요.
암같은거 걸려도 제대로 보장도 안되는 한편
감기만 걸려도 병원가서 약받고, 나이롱환자들이 건강 보험을 갉아먹고, 간호사들은 살인적인 업무강도에 시달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의료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이번 만큼은 우리나라를 구원하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유럽은 의료 시스템이 선진적이라고 알려있어요. 병 걸려도 공짜로 다 치료해줘..... 참으로 부럽죠. 이번에는 그것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의료가 공짜가 되려면 그것을 “세금”으로 운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국자 입장에서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정말 필요할 때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게 만들면 될 겁니다. 예컨대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에선 내가 아프다 싶으면 “병원 간호사”에게 전화를 합니다.
목이 아파요 출근하기 힘들어요.
아 그래요? 한 삼일 쉬다 오세요.
통화 종료.
전체 시스템이....하루에 받는 환자수가 제한 되게 운용 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의료인력들이 고강도 업무에 취약합니다.
짱공인들도 보셨겠지만 이탈리아에 코로나가 번져갈 때, 간호사가 유튜브에 호소하는 동영상을 올렸어요. 거기서 뭐라고 했냐.....
“너무 힘들어요.... 하루에 자그마치 10시간 연속해서 이틀동안이나 일을 했다구요.”
9시 출근 -> 7시퇴근을 이틀이나 했다구요....잉잉 ㅠㅠㅠ
우리나라는 반면..... 코로나 터지자 마자 3일 밤을 새서 근무하셨습니다...... 당장 질본의 정은경 질본 본부장님만 봐도.....허..... 참 웃픈 일이지요. 혹사의 일상화가..... 지금 한국을 구했다는게 말이죠.
또한 3분 진료로 알려진 한국의 진료 시스템.... 감기만 걸려도 오는 환자들 때문..... 이런 이야기 자주 들어보셨을 텐데요.
아이러니 하게도, 여기에 의료인들이 익숙해지고 진료 체계가 갖춰지면서 “빠른 진단과 간호사들의 재빠른 처치.....”로 이어지는 효율적인 진단 시스템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허..... 이거 참 이것마저도 웃프네요.
거기에, 각종 질병에 대한 의료가 보장된다는건, 의사들이 공무원화 된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러다보니 능력이 있고 욕심있는 의사들은 돈을 잘 벌 수 있는 미국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암이 보장이 안돼냐. 이런 각종 희귀 질환들이 왜 보장이 안돼냐 힘들다..... 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것들이 보장이 안된다는 건 그것으로 의사선생님들이 한국에서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으로 연결 되어.....그로인해 상대적으로 실력있는 의료진의 해외 유출을 막는...... 크흡 ㅠㅠㅠ 이거 참.... 국뽕이라고 해야할지....
한편 나이롱 환자들도 아이러니하게 도움이 된 것이..... 그들을 입원 시키려면 어쨋건 병원이 존재해야겠지요. 그 비효율들이.... 전염병 창궐 상황에선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 범퍼가 되어준 것입니다.
3. 의약품에 관하여.....
우리나라의 제약계는 물론 셀x리온 등이 신약을 개발한다 뭐한다로 잘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신약 개발에 뒤쳐진건 사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앞서 인도에서 말씀 드렸던 “제너릭”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의약품 제조업 기반이 남아있는 덕분인 겁니다. 특히 화성시에는 아예 제약 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지요.
화성시를 “살인의 추억”으로만 기억할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감염병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최고의 병참기지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치며)
다소 두서가 없이 정리하여, 여러분들께서 읽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그래도 나름 정리한다고 한 건데, 죄송합니다.
국뽕의 근거 파트의 맨 처음에 언급했다 시피, 우리나라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 “질본과 의료계의 헌신” 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것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받쳐줄 것”이 없어선 안됐고, 그것이 아이러니 하게도
옆나라의 민폐, 한국 의료계의 고질적 문제점들, 외국인 노동자등 소외자들, 빈약하게나마 남아있던 제조업 기반들 이었다는 것을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타산지석이라고도 하고
새옹지마라도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외국의 종교 지도자가 말했던 “석수장이가 버린 돌이 건물의 머릿돌이 되었다.”라는 비유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사회가 성공을 이루는데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시너지를 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언급하며 글을 마치고요.
이건...... 뭔가 광고 같아서 안하려고 했지만
엄연이 원전이 있으니 언급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남기자면
제가 정리한 이 글의 원전은 유튜브 “3프로tv”의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임을 밝힙니다.
갑과을작성일
2020-03-29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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