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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불륜남' SON 절친, 혼외자 2명 낳아 몰래 키우더니 '240억' 빼앗기고 이혼 초읽기..."극복 불가능 상황"
손흥민 전 동료 카일 워커(맨체스터 시티)가 아내와 재산 절반을 나누고 이혼할 예정이다.영국 데일리메일은 16일(한국시간) "워커의 아내 애니 킬너가 이혼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킬너는 워커가 저지른 일을 용서할 수 없었다. 워커가 돌아온 후에도 상황은 예전처럼 나빠졌다"고 보도했다.매체는 "킬너는 워커에게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이유는 워커가 저지른 일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네 아이의 어머니인 킬너는 워커의 재산 2700만 파운드(약 479억원) 중 절반을 놓고 싸울 준비를 하면서 변호사들에게 법적 절차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며 "이 문서는 10일 전에 워커에게 송달됐다. 워커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킬너와는 따로 잠을 자고 있다"고 두 사람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또한 워커가 킬너와의 관계를 끝내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한 측근은 "그들 사이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나쁘다. 평범한 결혼 생활과는 달랐다. 서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면서 "킬너는 노력했지만 워커가 자신에게 저지른 일을 용서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었다"며 "워커도 관계가 끝났다는 걸 받아들인 것 같다. 지난주쯤 더 행복해졌다. 마치 세상의 무게가 자신의 어깨에서 내려간 것 같은 모습이다"라고 밝혔다.워커와 킬너는 청소년 시절부터 교제해왔다. 하지만 워커는 커리어 내내 여러 스캔들에 휘말리곤 했다. 워커는 2019년 TV 스타 로라 브라운과 불륜 관계를 맺었고, 이후 인플루언서 로린 굿맨과 교제 후 두 아이를 낳았다.굿맨이 처음으로 워커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 킬너는 이미 워커를 집에서 쫓아낸 상태였다. 하지만 킬너는 2021년 11월 워커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했다.킬너의 노력에도 워커는 다시 킬너를 속이고 굿맨과 바람을 피웠다. 굿맨은 지난해 6월 두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굿맨은 킬너에게 "안녕, 그냥 빨리 워커가 우리 딸의 아빠라는 걸 말하고 싶어"라는 폭탄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당시 워커의 넷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킬너는 2주 후 워커와 헤어졌고, 워커는 관계 회복을 위해 집 근처 임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당시 워커는 영국 더선을 통해 "내가 한 일을 끔찍했다. 난 모든 책임을 질 것이다. 어리석은 선택과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고 후회했다.워커는 굿맨과 소송에 휘말렸다. 굿맨이 워커에게 자녀들의 양육비를 청구했고, 자동차, 가구, 재산 유지 관리비 및 보육비 같은 기타 비용으로 수만 파운드를 요구했다. 워커는 일부 요구 사항에 대해 반대했고, 금액을 낮춰야 한다고 법원에 주장했다. 판사는 굿맨의 요구 대부분을 기각했다. 굿맨의 요구사항에는 수양장 유지비, 정원사 월급, 자동차 등 비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굿맨과의 소송에서는 유리한 판결을 받았지만 킬너와의 관계 회복은 어려웠다.지난달 더선은 "워커의 아내 킬너가 최후통첩을 보냈다.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해 재산의 절반인 1500만 파운드(약 263억원)의 현금을 요구했다"고 전했다.이어 "워커와 킬너는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말다툼을 하고 있다. 킬너는 워커가 먼저 재산의 절반을 줄 때만 한 번 더 결합하는 걸 고려할 거라고 말했다. 킬너는 재산 분할의 경우 절반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으며, 재산이 단 한 푼도 굿맨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또한 "킬너는 이혼이 가져다 줄 독립과 안정을 원하지만 동시에 가족을 함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킬너와 워커는 재산을 분할하는 것에 대해 변호사와 이야기했다"며 "워커는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끝나든 상관없이 가족들의 안정된 삶을 원하기 때문에 킬너가 돈을 갖는 것에 대해 불만이 없다. 그는 애니와 자식들이 재정적 안정을 누리길 원한다"며 워커도 재산의 절반 가까이를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재산 절반을 내주는 조건으로 킬너와 재결합할 것으로 보였으나 킬너는 오직 이혼만을 원했다. 워커도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킬너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이혼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로보트카작성일
2024-10-17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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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모라타, 결국 7년 만에 이혼 발표... "아내가 스페인을 떠나길 원치 않았다"
모라타 부부가 결국 이혼했으며 모라타가 그 이유를 밝혔다.영국 매체 '골닷컴'은 19일(한국 시간) "AC 밀란의 스페인 공격수 알바로 모라타가 결혼 7년 만에 아내 알리카 캄펠로와 고통스러운 이별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라고 보도했다.AC 밀란의 공격수인 모라타는 7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네 명의 자녀를 낳은 아내와 별거하게 되었다. 캄펠로는 모라타가 스페인의 주장을 맡아 잉글랜드를 상대로 유로 2024에서 우승할 때 함께했지만, 두 사람은 이제 헤어지기로 결정했다.두 사람은 별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모라타는 AC 밀란으로 이적한 이후 결혼반지를 끼지 않은 모습이 포착되었고 캄펠로는 자신의 SNS 약력에서 전 남편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캄펠로는 넷째 아이를 낳은 후 산후 우울증이 이혼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또한 모라타가 밀란에 합류하기 전 레알 마드리드, 첼시, 유벤투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등 규칙적인 가정생활의 파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인정했다.그녀는 스페인 매체 '마르카'를 통해 "우리는 젊은 두 사람이고, 특정 상황을 관리하는 데 있어 미성숙했으며, 많은 자녀가 있고,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불안정한 순간이 있었다. 내 산후 우울증도 영향을 미쳤고 그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사이의 특정 상황을 관리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캄펠로는 또한 "우리는 서로를 무한히 사랑하고 사랑은 하루에서 다음 날로 끝나지 않으며 서로를 많이 존중하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한편 모라타는 자신의 커리어가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것이 결별의 주된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모라타는 자신과 캄펠로 모두 불륜 루머에 대해 해명하고 싶어 했다. 모라타는 '데 코라존'과의 인터뷰에서 "참담한 심정이지만 결코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 맹세한다. 그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여자다"라고 밝혔다.모라타는 이어서 "사람들이 내가 캄펠로에게 불성실하다고 말하는 것에 지쳤고, 이런 소문이 생기지 않도록 대표팀 파티에도 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 캄펠로에 대한 존경심과 이런 종류의 뉴스가 나오지 않도록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모라타는 마지막으로 "캄펠로는 스페인에 머물기를 원했고 다시는 이사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 다른 견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네 자녀의 행복을 위해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시는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모라타는 2014/15 시즌 유벤투스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이탈리아 모델 캄펠로와 2017년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현재 세리에 A로 복귀했지만 어린 가족은 스페인에 남아있다.
도지페페작성일
2024-08-2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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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네덜란드 부부 동반 안락사
유치원 시절 처음 만나 50년간 함께한 네덜란드 부부가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BBC 보도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얀 파버(70)와 엘스 반 리닝겐(71) 부부는 지난달 3일 동반 안락사를 통해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습니다. 두 사람은 유치원 시절 처음 만나 성인이 된 후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얀은 네덜란드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하키선수로 활약하다 스포츠 코치로, 엘스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20대에 결혼해 아들 한 명을 낳고 살았습니다. 보트와 항해를 사랑한 이들 부부는 결혼 생활 대부분을 보트에서 보냈고, 젊은 시절에는 화물선을 사들여 내륙 수로를 따라 상품을 운송하는 사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두 사람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10년 넘게 무거운 화물을 옮기며 일한 남편 얀은 2003년 허리 수술을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극심한 허리 통증에 시달리다 더 이상 일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아내 엘스 역시 2018년 교사직에서 은퇴한 뒤 2022년 11월 치매 진단을 받았고, 자신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을 것을 알게 된 후 가족과 동반 안락사를 논의했습니다. 얀은 "진통제를 많이 먹으면 좀비처럼 살아야 했다. 저는 제 인생을 살았고, 더 이상 고통은 원하지 않는다"라며 "우리가 살아온 인생은 고통으로 늙어가고 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아내의 병(치매)을 생각했을 때 이걸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부모님이 죽는 걸 원치 않는다. (병을 고칠 수 있는) 더 나은 시대가 올 거다" 라며 동반 안락사하는 것을 만류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안락사 전날, 얀과 엘스는 아들과 손주들과 해변에서 산책하고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는 등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들은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정말 이상한 하루였다"며 "우리 모두가 함께 마지막 저녁을 먹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라고 회상했습니다. 안락사 당일 아침, 부부의 가족과 친구들은 지역 호스피스에 모였고, 의사가 도착하기 전 2시간 동안 추억을 나누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의사들이 도착한 이후 모든 절차가 빠르게 진행됐고, 의사의 지시에 따른 부부는 단 몇 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75년 결혼식 날의 엘스와 얀 (사진=BBC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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