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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자작][6.25때 중국동포들의 임무]라는 글에 대한 비판
※ 게시판 성격에 안 맞으면 글 옮기겠습니다 시진핑 ㄱㅅㄲ 라고 시작해야 덜 까일거 같네요 아래에 [6.25때 중국동포들의 임무] 라고 올라온 글을 일부입니다. 팩트체크 1) 1949년 7월, 1950년 4월 만주에 있던 조선인 수 만명이 북한군에 합류한다. → 사실그러나. 이 때 만주에 살던 사람들은 [조선인]인가? [조선족]인가? 생각해봐야합니다. 스스로를 조선인(한국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조선인이었지만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기 위해 중국인이 된 사람들도 있을테니, 하나의 균질집단으로 보기 어렵습니다.다만, 적어도 이 시기에 만주에 살던 사람들을 지금 개념의 조선족으로 보는건 무리입니다. 만약, 이 때 만주에 살던 사람들 = 조선족 이라면,중국놈들이 바이두 백과전에 우기는 것처럼 간도 명동촌 출신인 윤동주도 조선족입니다.(스피드웨건님 글: https://www.jjang0u.com/best/view/15054760/1?search=%EC%9C%A4%EB%8F%99%EC%A3%BC&search_type=title_content) 아무튼 이 당시 만주에 살던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전후로 자의, 타의로 넘어가서 살던 조선인들입니다.교과서만 보더라도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조선인(한국인)들의 만주 이주는 활발했습니다.우리가 조선족에게 비판적인 이유는 그들의 최종적인 정체성이 ‘중국인’이라는 것입니다.하지만 이 당시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의 정체성은 조선인(한국인)입니다. 그들을 모두 지금 개념의 조선족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인용된 책을 저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염인호 교수님의 [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 머릿말에 나오는 말입니다. 여기만 읽어도 저 게시물에서 이 책을 악의적으로 인용한 걸 알 수 있습니다. 팩트체크 2) 북한군에 합류한 조선인 수 만명은 누구인가1949년 7월 중국인민해방군 166사단, 164사단이 북한으로 이동1950년 4월 조선인으로 구성된 중국인민해방군 사단이 북한으로 이동이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중국인민해방군 166사단 ← 조선의용군 1지대 ← 조선의용군 ← 조선의용대중국인민해방군 164사단 ← 조선의용군 3지대 그들은 1938년 10월에 창설된 조선의용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조선의용대는 의열단 활동에 한계를 느낀 ‘약산 김원봉’이 중국 국민당의 지원 하에 만든 군사조직입니다. 중일전쟁 발발 후, 국민당 정부를 따라 충칭으로 이동하면서 노선갈등을 겪고 둘로 나뉩니다. 김원봉이 이끄는 그룹은 나중에 한국광복군에 합류합니다. 최창익이 이끄는 사회주의 계열은 중국공산당에 합류합니다. 당시,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하는 조선인 그룹과 합쳐지면서 조선의용군이 창설됩니다. 중국 국민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임정의 독립군이 한국광복군입니다.중국 공산당은 조선독립동맹을 지원하고 이들의 독립군이 조선의용군입니다.임정과 광복군은 국민당을 따라 중국 내륙의 깊숙한 충칭으로 이동하지만, 조선의용군은 중국 공산당과 화북에 남아서 항일전투를 벌입니다. 한국광복군보다 훨씬 더 최전방에서 일본과 맞써 싸우던 1940년대 최대 규모의 독립군 조직입니다.(약 1,000여명으로 추정) 물론, 한국광복군은 중국 국민당이 9개 행동준승으로 광복군의 지휘권을 가지려 하자 강력히 반대해서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데 반해, 조선의용군은 철저하게 중국 공산당의 지시를 따르는 한계는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조선의용군은 북진을 하면서 일제에 징집된 조선인들, 중국에 있던 조선인들을 흡수하면서 세를 불립니다. 사회주의 계열이니 만큼 북한에 들어가려 하지만 김일성이 막습니다. 당시 북한에는 김일성을 비롯한 빨치산파, 연안파, 소련파, 남로당파의 각각의 정파가 있었습니다. 당시까지는 김일성이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김일성 입장에서 제일 부담스러운 정파가 바로 조선독립동맹, 조선의용군 출신의 연안파였습니다. 김일성이 북한 입국때는 소련의 지원을 받았지만, 1930년대에는 중국공산당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열이 굉장히 낮은 당원이었던데 반해, 연안파 리더들은 중국공산당 안에서도 꽤 높은 위치였습니다. 특히, (김)무정은 대장정을 함께한 팔로군 포병사령관 출신이었고, 펑더화이(팽덕회)의 의형제였습니다. 김일성으로서는 부담되는 스펙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수만명이 연안파 군대가 들어온다? 김일성으로서는 막아야했지요. 결국 북한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만주에서 대기중이던 조선의용군은 중국공산당 요청에 따라 국공내전에 참전합니다. 중국이 6.25 한국전쟁 때 개입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들의 국공내전 참전입니다. 말 그대로 혈맹인겁니다. 1949년 국공내전에 승리하고, 김일성의 전쟁준비가 본격화되면서 이들이 북한군에 합류합니다. 팩트체크 3)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간부들 중심으로)이들은 각각 북한군 제 6, 5, 12사단으로 개편됩니다. 38선에 남진한 보병 21개 연대 가운데 47%인 10개 연대를 차지합니다. 이들은 서부전선 쪽에 배치되면서 초반 무서운 기세로 대한민국 국군, 미국 군사고문단을 무섭게 몰아부칩니다. 국공내전 참전 경험이 이들을 정예병으로 만든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군이 불리해지자 김일성은 책임을 일부 연안파에게 몰아부칩니다. 전쟁 중에 (김)무정을 비롯한 일부가 숙청당하고, 전쟁 후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숙청으로 연안파 리더들은 목숨을 잃습니다.남쪽에서는 북한군 주력이라서 빨갱이로 취급받고, 북한에서도 숙청 당하면서 잊혀지는 존재들이 됩니다. 1938년 조선의용대가 창설될 때부터 활동한 이들은 민족과 자신이 속한 국가와 이념을 위해 15년 가까운 기간을 전쟁터에서 보냈지만, 목숨 바쳤던 국가와 이념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사후에 북한에서 복권되었다고 하지만, 빨치산 중심의 국가에서 이들에 대한 평가나 연구가 제대로 됐을지는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뒤틀린 한국 현대사에서 각장 비극적인 인물 중 한 명이 ‘약산 김원봉’이라고 생각됩니다.그 분의 탁월한 독립운동 활동에도 불구하고, 월북과 북한군 전적 때문에 인정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마찬가지의 논리로 가장 비극적인 조직이 ‘조선의용군’이라고 생각합니다.이들의 북한군 주력으로 남침한 건 비판해야하지만(민간인 학살 등), 이런식으로 조선족이라는 말도 안되는 개념을 씌워서 멸시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첨) 해당게시물이 일베를 중심으로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는데 정확한 출처를 모르겠네요ㅠ
짭샹작성일
2020-10-1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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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변화하는 육군 감축되는 군.
(출처)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120600005&code=910302&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row2_thumb&C39개 사단 에서 33개 사단으로 9만여명 감축. 사라지는 부대는 제20·26·30 기계화보병사단과 제2·27·28 보병사단 등 6개 사단이다. 26사단은 이미 2018년 부대기를 내렸고, 20사단과 2사단은 올해 말까지 해체된다. 27·28·30사단은 수년 내 해체 대상이다. 이 밖에 철원지역 6사단은 경기 포천으로 이전하고, 강원 고성 22사단이 동해안에 분산 배치된다. ‘오뚜기 부대’ 8사단과 ‘불무리 부대’ 26사단 통폐합은 육군 구조개편 공식화의 신호탄이었다. 중서부 전선의 주력 사단으로 경기 양주에 있던 26사단은 지난해 12월 기계화보병사단(기보사)으로 재편된 8사단과 통폐합되면서 65년 만에 부대기를 내렸다. 육군은 이처럼 여러 군단에 흩어져 있던 기계화사단을 7기동군단 예하로 재편하고 정예화하기 위해 예하 기계화사단들을 통폐합하고 있다.8사단은 26사단의 주력 2개 여단과 수도기보사 1개 여단, 20기보사 1개 여단을 흡수·통합해 ‘기계화보병사단’으로 재탄생했다. 8사단은 이름만 취했을 뿐, 사실상 기존 26사단 전력인 73기계화보병여단과 포병여단 등이 8기보사 주력이다. 8기보사의 핵심 전력은 최신예 K2 흑표 전차다. 다음달 1일부로 아시아 최강 기계화보병사단이란 평가를 받던 20기보사는 단대호(단위부대 번호)가 빠른 11기보사에 통합된다. 애초 최전방 경계부대였던 20기보사는 대대장의 무전병 대동 월북사건으로 1978년 사단 전체가 경기 양평에 있던 5사단과 주둔지를 맞바꿨다. 1980년에는 하나회 출신인 박준병 사단장 지휘로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도 동원됐다. 이후 1983년 수기사에 이은 육군의 두 번째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됐다. 2020년 말에는 30기계화보병사단도 독립기갑여단인 30기갑여단으로 축소된다. 육군 기계화사단은 8기보사와 11기보사 ‘투 톱’ 체제를 형성하면서 기존 ‘6개 기보사·5개 기갑여단’ 체제가 ‘3개 기보사(수기사 포함)·8개 기갑여단’ 체제로 운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육군은 “앞으로 기갑여단에는 배속 전차대대가 많아지는 등 현재 여단과 사단의 중간급에 가까워진다”며 “전력이 증강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각 기보사에는 항공단을 창설해 공격용 및 병력수송용 헬리콥터를 배속할 계획이다. 3군단 예하 ‘노도부대’ 제2보병사단도 올해 말이면 사라질 예정이다. 2보병사단 내 3개 연대는 인근 21사단과 12사단으로 통합된다. 국방부는 대신 해체하는 2보병사단을 모체로 201·203특공여단을 묶는 새로운 부대를 만들어 7기동군단 예하에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후방 각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협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공중강습부대인 ‘신속대응부대’를 창설하는 방안이다. ■ 군단·모듈형육군은 6군단과 8군단 등 2개 군단을 폐지해 숫자를 줄이는 대신 작전수행체계를 야전군사령부에서 군단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작전수행체계가 군단으로 이동하면 현재 ‘30(가로)×70㎞(세로)’인 군단 작전책임지역은 ‘60×120㎞’로 면적이 3∼4배 확대된다. 개편 군단은 과거 야전군사령부의 인사·군수·전투근무지원 등 군정 기능과 작전지휘 기능을 모두 행사하게 돼 사실상 ‘미니 야전군사령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위해 군단별로 1~2개 기갑여단 및 공격·기동항공 지원을 할 수 있는 항공단을 편성할 계획이다. 전방 군단에는 다련장 로켓대대도 크게 신·증설된다. 부대 구조는 병력집약형에서 전투효율을 높인 맞춤형으로 개편한다. 육군은 “사단 정찰용 무인항공기(UAV), 한국형 기동헬기 등 필수전력을 적기에 전력화해 확장된 책임지역에 대한 제대별 감시정찰, 기동, 화력 등의 능력을 증대할 계획”이라며 “부대 수는 줄지만, 전투수행능력을 보강해 정예화된 구조로 발돋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육군이 내세우는 미래 육군의 모습은 ‘아미 타이거 4.0’이다. 보병부대를 기동화·네트워크화·지능화해 최적의 탐지·결심·타격 기능을 갖춘 고효율의 치명적 미래 전투체계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방탄기능, 센서와 슈터, 원격사격통제체계를 갖춘 장갑차량을 도입할 계획이다. 육군은 “K808 차륜형 장갑차를 전력화한 25사단 1개 대대를 대상으로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에서 2020년까지 전투실험을 진행한다”며 “그 결과를 토대로 실제 야전 운용과 보완작업을 거친 후 2023년부터 2025년까지 2개 대대에 시험 적용하고 2025년 이후 사단·여단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기동군단도 마찬가지다. 예하 각 기계화보병사단에는 이전에 없던 항공단이 새로 창설된다. 공격용 및 병력수송용 헬리콥터까지 갖추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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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무서운이야기 실화 ㅡ DMZ작전중 ..
(회상 수기로 적겠습니다)
나는 군시절 12사단 수색대대에 근무했었다
최전방 수색대이니만큼 6개월 전방(GOP지역 DMZ작전시즌)
3개월 후방 (백룡이라는 흔히말하는 페바) 의 로테이션으로 근무를하게되는데 이중 2년차 어느가을 DMZ작전중 생겼던일 같다
DMZ에선 매복이라하여 해당지역의 진지에서 적을경계하며 밤을지세우는 작전이 있는데 일이터진 그날도 매번하는 매복작전을 하는날이었다.
당시 작전을투입하고 얼마있지않아 약간의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었고 무거운 군장을 등에업어지고 힘겹게 작전지역으로 올라간 우리팀은 너나할것없이 지쳐있었다.
가랑비가 멎을생각을안하여 호덮게를이용하여 지붕을만들었고
판초우의를이용해 최대한 비를피했다.
전방외엔 시야가 굉장히 차단된상태였으며 지친 팀원들은 평소보다 빠르게 가침을 하였다(한팀에 2조로나누어 한조에 4~5명이 위치함 그중2명이가침을하고 나머지가전방 경계하는형식)
나또한 몸이지칠대로지쳐 평소완다르게 졸음을 참지못하고 불편한 자리에서 졸고있었다.
그러다 몇분쯤 흘렀을까...
내옆에 있던 신병은 한참 긴장탈때라 전방주시를아주 잘하던 병사였다 이신병이 갑자기 나를 흔들기시작한거다.
나는 조금놀라 그신병에게 "어 뭐야"라고 말하려는데 "어" 라고 하자마자 신병이 내입을막았다 그리고선 손짓으로 밖에 무언가있다는 제스처를 했다...
난제법 눈치가좋은 편이었고 순간 상황이 안좋다고 느끼고 청각을최대한 살렸다..
"툭.툭 저벅 저벅. 부스럭 , 부스럭.,,,,,,,,"
아....죳댔다... 한둘이아니었었다 . 우리참호쪽으로 확실하게
사람이라고 생각드는 것들이 점점 가까워지고있었고. 비를피하기위해 덮어논 판초우의때문에 전방외의 시야는차단되어있어서 위치를 확인하기어려웠다 단지 뒤쪽에서 가까워진다 라는것뿐...
나는 최대한 모든인원의 입을틀어막고 흔들어깨웠으며 그인원들도 순간 소리를들었는지 전부 자신의 총에 손을 올리고있었다.,
그렇게 가까워지는소리가 5분쯤 지났을가.
갑자기 소리가 사라지고 다시 빗소리만들려왔다.
우린긴장의 끈을놓지않았고 잔뜩 겁먹은채로 청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공포의 밤을지세웠다..
해는밝아왔고 풀리지않은긴장에 조심히 진지밖을나와 주위를 수색했고 이상이없다는안도감에 혹시나하는 마음에 주위를 정밀수색해보았다 ..
그리고우리는 놀랄수밖에없었다.
발자국이 있었다 . 약간은 늦가을이고 풀들이 많이 죽고 맨땅이 많이 보이는 상태라정확히 알수있었다 .
그런데 정확히 반경1M안에만 수많은발자국이있었고 벗어난곳엔 아무흔적도 발견할수없었다.
그때 우린 무슨경험을한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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