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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캄보디아, 가난을 팔게 된 나라
캄보디아, 가난을 팔게 된 나라 저는 약 1년 동안 캄보디아에 거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사진은 캄보디아 시엠립의 서바라이, 쁘사, 똔레삽 호수 입니다. 현재도 캄보디아 현지에 계신분과 소통하고 있기에, 그곳의 현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최근 한국인 납치 사건과 불안한 치안 문제가 잇따르면서,캄보디아라는 나라의 구조적 현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캄보디아는 폴포트 정권의 킬링필드를 겪은 이후,지금까지도 깊은 상처와 함께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국가의 주요 수입원은 극히 제한적입니다.① 수도 프놈펜의 외국계 섬유·화학 공장,② 시엠립의 앙코르와트 관광업,③ 보이펫 등 국경지대의 카지노,④ 메콩강과 똔레삽 호수의 식량 자원,⑤ 그리고 시아누크빌의 온라인 카지노 산업. 이처럼 외국 자본과 불안정한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는한 번의 외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캄보디아는 흔히 ‘가난을 판매하는 나라’라 불립니다.국제 원조금과 외국 환전이 끊임없이 들어오지만,그 자금의 상당 부분이 부패한 행정 체계 속에서 사라집니다.빈민구제 사업이나 도로건설, 인프라 확충 같은 프로젝트들은 명목상 ‘발전사업’으로 포장되지만,현장에서는 형식적인 완성 후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시엠립은 한국 수원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도로와 도서관을 지원받았지만,포장도로는 5km 남짓, 품질은 국내 농로보다도 좋지 않았습니다.기부라기보다는 ‘사업 실적’에 가까운 일이었죠.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가난한 나라이다 보니,사람들은 “이것이라도 감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때 시엠립의 앙코르와트 관광사업은 캄보디아 경제의 핵심이었습니다.하지만 그 이익의 대부분은 외국 자본의 몫이었습니다.항공사, 호텔, 식음업 등 고수익 산업은 모두 외국기업이 운영했고,캄보디아인들은 낮은 임금으로 단순 노동만 맡았습니다.관광객이 늘면서 성범죄와 치안 문제도 심각해졌고, ‘관광을 통한 발전’이라는 구호 뒤에는불평등한 착취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무너뜨렸습니다.연간 200만 명 이상 방문하던 한국 관광객이 사라지자 시엠립은 순식간에 유령도시로 변했습니다.항공편이 줄고 노선이 폐지되자, 관광업 전반이 마비되었습니다.대형 호텔과 식당은 문을 닫고, 가이드와 운전기사들은 생계를 위해 주변국으로 떠났습니다.‘관광도시’였던 시엠립은 이제 조용한 농촌 마을로 되돌아갔습니다. 시아누크빌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캄보디아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접한 도시로, 정부와 투자자들은 더 큰 수익을 위해 중국 중심의 카지노 관광지로 개발했습니다. 한국인은 법적으로 도박이 불가능했기에, 자연스럽게 중국 자본이 중심이 되었습니다.그러나 코로나19로 카지노가 멈추자, 산업은 불법 온라인 카지노로 전환되었고,이 과정에서 각종 프로그램 개발과 인터넷 인프라 구축을 명목으로 인력을 납치·감금하는 범죄가 급격히 확산되었습니다.최근 발생한 한국인 납치 사건들 역시 이 구조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결국 평범하고 가난한 캄보디아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생존을 위해 착취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한때 찬란했던 크메르 제국의 유산은 킬링필드를 거치며 무너졌고,그 잔해 위에 남은 것은 교육도, 문화적 기반도 부족한 현실뿐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적인 원조나 일시적 기부가 아니라,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교육의 기회와 성장의 환경입니다.진정한 도움은 ‘불쌍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을 그곳에서의 시간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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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 병태와 영자(1979) 공개 중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 과거 기준으로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로 분류되는 등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할수 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부탁 드립니다. 바보들의 행진The March of Fools (Babodeul-ui haengjin) ㆍ 1975 년 하길종 연출작, 윤문섭 , 하재영 , 이영옥 , 김영숙 , 김상배 출연작으로 최인호 작가가 1973년에 신문에 연재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실사판 작품으로(원작자가 실사판 각본다 담당) 통행 금지 뿐만 아니라 여러 곡들이 금지되는 등 당대의 암울하고 답답한 시대를 살아가던 청춘들, 그런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 내용도 다룬 작품으로 당시 큰 인기를 얻었으며 후술할 속편들도 제작됐습니다.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한국영상자료원 계열 채널에서 공개 중이며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한 작품 소개입니다. Y대학 철학과에 다니는 병태(윤문섭)와 영철(하재영)은 그룹 미팅을 통해 또래의 H대학 불문과의 영자(이영옥)와 순자(김영숙)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저 만나고 하릴없이 대화할 뿐이다. 병태는 영자에게 농담처럼 결혼하자고 말하지만, 영자는 철학과 출신은 전망이 없다는 말로 그의 현실을 지적한다. 그 후로도 병태와 영자는 데이트를 즐기지만, 어느 날 영자는 선본 남자와 곧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며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통보한다. 한편 언제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술만 마시면 고래를 찾으러 떠나겠다고 하는 영철은 순자를 좋아하지만, 순자는 말도 더듬고 전망도 보이지 않으며 군 입대 신체검사에서도 탈락한 영철을 거부하고, 영철은 이에 절망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병태와 영철은 바다로 간다. 예쁜 고래를 잡으러 떠나겠다던 영철은 바닷가 절벽까지 자전거를 몰고 올라가 드넓은 바다로 뛰어든다. 학교는 무기한 휴강에 돌입하고, 텅 빈 교정을 서성이며 병태는 괴로워한다. 결국 병태는 입대를 하고, 병태를 만나지 않겠다던 영자는 역으로 병태를 마중 나온다. 입영열차 차창에 매달려 병태와 영자는 입맞춤을 한다. 등급정보(1) 심의일자 1975-05-13 심의번호 제5368호 관람등급 미성년자관람불가 상영시간 117분 개봉일자 1975-05-31내용정보-개봉극장국도삽입곡'날이 갈수록' - 노래: 송창식 (작사/곡: 김상배)'왜 불러' - 노래: 송창식'고래사냥' - 노래: 송창식노트■ “암울한 시대를 지냈던 70년대 젊은이들을 감각적이면서 불안한 카메라와 함께 낭만적이고도 자조적으로 풀어놓은 ‘영상시대’의 대표작”송창식의 ‘고래사냥’, ‘왜 불러’, 김상배의 ‘날이 갈수록’이 영화 전편에 흐르면서 낭만적이고 허무한 그림을 그려낸다. 이 영화는 60년대 후반 미국유학을 통해 자유로운 문화를 경험했던 하길종 감독이 암울하고 숨막히는 시대현실을 신촌 일대를 배경으로 자조적이면서도 경쾌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핸드헬드와 허무하게 울려 퍼지는 내면적 목소리들은 경쾌하면서도 동시에 암울하고 불안한 젊은이들의 미래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 영화는 또한 장발단속, 음주문화, 미팅, 무기한 휴강, 캠퍼스, 군입대 풍경 등 70년대 청년문화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영철이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전거를 타고 동해바다 절벽 위로 파란물을 가르며 떨어지는 장면과, 영자가 입영열차 창문에 매달려 “할머니가 될 때까지 기다릴게 꼭 돌아와.”라고 하며 키스하는 장면은 당시 청년문화의 아이콘처럼 되어버렸으며,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장면 중에 하나이다. 이 영화는 <바보들의 행진> 이후 수차례의 강압적인 검열 등으로 흥행에 실패하고 요절한 하길종 감독의 생애를 연상케 하며 낭만적이지만 허무한 젊음의 분위기를 여전히 강하게 전달하는 영화다.■ 제작후일담- 일간스포츠에 연재했던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하길종 감독이 창안했다는 예쁜 고래를 잡으러 떠났다가 자살하는 영철 역을 맡은 신인 하재영은 이 영화로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영상시대’는 신인배우 발굴을 통해 새얼굴, 새 영화를 보여주고자 했는데 이 영화의 주연들 역시 오디션을 통과한 실제 대학생 신인들로 채워졌으며, 이들의 신선하고 생생한 연기는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술집에서 병태가 일본인과 싸우는 장면, 경찰서에 들어간 두 주인공이 여자의 옷을 벗기는 장면, 데모 장면 등 30분 분량이 사전검열에서 잘려나갔다.- 장발 단속 장면에서 흘러나오던 송창식의 ‘왜 불러’와 영철의 테마곡인 ‘고래사냥’이 인기를 끌며 대학가 시위현장에서도 자주 불러지자 공륜에 의해 금지곡 판정을 받았으며, 하길종 감독은 정보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다. 심지어 하길종 감독은 이 일로 가수분과 위원장이었던 어느 가수에 의해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바보들의 행진>은 검열 시대의 아이러니한 걸작이다. 젊은이의 절망도 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용공이 되고 명랑과 건전만이 강요되던 유신체제기, 이 영화는 당시 대학생의 모습을 코미디로 풀어내고 결말에는 주인공을 입대케 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명랑과 건전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바보’가 되어야 살 수 있는 청년들의 현실을 웃음으로 비틀며 비극보다 더 진한 슬픔을 자아낸다.(박유희 영화평론가, 영화천국 61호) 이 작품과 관련 칼럼들, 사료들도 KMDB에서 공개 중이며 이와 관련해선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898 병태와 영자Byung-tae and Young-ja (Byeongtae-wa Yeongja) ㆍ 1979 년 하길종 연출작, 손정환 , 이영옥 , 한진희 , 백일섭 , 박남옥 출연작으로 전작에 이어 하길종, 최인호 콤비가 참여한 후속편 작품으로 이 작품 역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하길종 연출가가 뇌졸증으로 사망하며 이 작품이 유작이 됐습니다.(이후 바로 다음 년도에 넝ㅎㄴ 시리즈 3편 '속 병태와 영자'는 다른 연출가가 담당.) 아래 내용은 KMDB에서 인용한 작품 소개입니다. 영자에게 실연당한 병태는 군에 입대한다. 제대 두달을 남긴 병태에게 뜻밖에 영자가 찾아오고 면회를 한다. 영자는 병태를 한시라도 잊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또한 젊은 의사인 주혁과 곧 결혼한다는 편지도 보낸다. 졸업한 영자는 은행에 취직하고 병태는 복학를 한다. 영자를 가운데 놓고 주혁과 병태는 내기를 한다. 영자와 주혁의 약혼식장에 먼저 도착하는 것을 승부로 한다. 승용차로 달린 주혁이 앞에 맨발로 뛴 병태가 땀에 젖어 기다린다. 당황하는 주혁을 뒤로하고 병태는 영자를 데리고 약혼식장을 빠져 나간다. 등급정보(1) 심의일자 1979-01-25 심의번호 제5790호 관람등급 국민학생관람불가 상영시간 115분 개봉일자 1979-02-09내용정보-다른제목바보들의 행진 제2부(시나리오명)고래사냥(시나리오명)개봉극장스카라삽입곡(주제곡)'한 동안 뜸했었지' - 노래: 사랑과 평화노트■ 하길종 감독의 마지막 작품, 한창 흥행 몰이를 하던 1979년, 고혈압에 따른 뇌졸중으로 사망■ 1975년 <바보들의 행진>을 탄생시킨 하길종 감독과 최인호 작가의 속편 격인 작품■ 한진희, 백일섭, 김희라, 조상구씨 등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랑과 평화의 "한 동안 뜸했었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관련 칼럼 및 관련 사료를 KMDB에서 공개 중이며 구체적인 것은 아래 크를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3319
콩라인박작성일
2025-10-06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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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단독] 김건희 종묘 사적 이용 때문에 '이성계 고조부 신실' 개방
https://v.daum.net/v/20251002172103479[단독] 김건희 종묘 사적 이용 때문에 '이성계 고조부 신실' 개방김지현2025. 10. 2. 17:21타임톡106요약보기음성으로 듣기번역 설글씨크기 조절하기2024년 9월 3일 휴관일 김씨 일행 방문 때 '목조 제1신실' 개방 확인...유네스코 문화유산, 평소 출입 통제[김지현 기자]이미지 크게 보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등의 혐의를 받는 김건희(파면된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아내)씨가 8월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대기 장소인 서울남부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김건희씨의 세계문화유산 종묘 사적 이용의 절정은 조선 왕실 최고의 신성한 장소인 종묘 영녕전 내 '목조' 신실 개방이었다. 목조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다. 영부인이라는 지위를 남용한 신실 개방 행위는 윤석열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오마이뉴스>는 '2024년 9월 3일 종묘 영년전 내 어느 신실이 열렸는지'를 국가유산청에 질의했다. 2일 국가유산청 측은 "목조(穆祖)를 모신 제1신실"이라고 밝혔다. 김씨가 당시 외국인 2명 등과 함께 어느 신실을 방문했는지 확인된 건 처음이다. 다만 김씨 일행 중 신실 내부에 들어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목조는 태조 이성계의 고조 할아버지로 조선의 추존 왕이다. 고려에서 문신을 지냈다. 영년전에는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미고, 각 방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조선 왕조에 있어 대대로 매우 신성한 곳인 영녕전은 1985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됐다. 또한 영녕전을 포함한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영녕전은 평소 관람 및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곳으로 통상 신실은 5월 첫째 주 일요일 종묘대제와 11월 첫째 주 토요일 추향대제 행사 때에만 열린다.국가유산청은 최근 허민 청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김씨 종묘 사적 이용 건을 자체 감찰하다가 김건희특검(민중기 특별검사)의 수사 개시로 현재 내부 감찰이 중단된 상태다.태조 이성계 고조부 신주 모신 신실 열려이미지 크게 보기▲ 2024년 5월 5일 국가 사당이자 세계유산인 서울 종로구 종묘 영녕전에서 종묘대제가 진행되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대제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제례의식이다.ⓒ 연합뉴스김씨의 종묘 영년전 신실 방문 사실은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문체위 소속)이 2일 국가유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해당 자료 내용을 종합하면 종묘 휴관일인 2024년 9월 3일 오후 2시 50분께 김건희씨와 외국인 2명, 궁능유적본부장 이재필씨, 통역사가 방문했다. 이들은 일반인이 출입하는 곳이 아닌 비상시 사용하는 소방문을 통해 출입했다. 김씨 등은 영녕전을 거쳐 망묘루로 이동했고, 망묘루에서 차담회를 진행했다.종묘 방문을 위해 대통령실까지 나섰다. 차담회 하루 전인 2024년 9월 2일 사전점검이 이뤄졌는데, 이 자리에는 대통령실 문체비서관실 비서관도 참여한 것으로 국가유산청은 파악했다."문체비서관실이 김씨 동선과 관련해 영녕전 1신실 개방을 요구했다"는 게 국가유산청의 설명이다. 이밖에도 대통령실은 의자·가구 제공 및 배치, 꽃장식 제공, 다과 준비 장소(냉장고) 설치, 창덕궁·경복궁 행사물품 설치, 형광등 교체를 국가유산청 궁능관리본부 측에 요구했다. 지시를 하달받은 종묘관리소는 차담회 전날 청소 등 시설정비에 나섰고, 이때 병풍도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임오경 의원은 "김건희씨 일행의 사적 사용을 위해 신실 개방을 요구한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라며 "위법성을 떠나 영부인 스스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이어 "이 사안이 국가유산 사적사용으로 결론나면 김건희씨에게 비용 및 손해배상 청구하고 담당자들은 징계를 내려야 할 것"이라면서 "특검과는 별도로 이번 국정감사에서 명확히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강조했다.국가유산청은 "종묘 영녕전은 조선 왕실의 신주가 봉안된 공간으로서 신실은 제례와 보존 관리 이외의 목적으로 개방할 수 없으며, 이러한 원칙을 엄격히 지켜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진짜 진짜 진짜로 희대의 캐릭터이고 역사에 남을 캐릭터 입니다 사료적인 가치가 크긴 하네요 차마 이렇게 글로 남기기도 더럽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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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신과 외계인 -2
신은 존재 하는가? 라는 단순 명료 심플한 명제에 대해 낙서를 해보고자 합니다. 두번째로, 논리적 영역에서 신의 존재. 우선 신의 존재 유무를 판단하는것은 성서, 와 세상. 단 두가지를 보고 판단 합니다. 세상의 현상과 성서를 보고 말이죠. 우선 세상의 현상을 봅니다. 태어나고, 죽고, 사고가 생기고, 행운이 찾아오고, 불운이 찾아오며, 사랑을 만나고, 행복하거나 불행해 하면서 삶을 보내며, 부패하고 부조리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 가며 겪는 그런 세상의 현상 말입니다.(잘 보면 팔씨름이 아니라 협력을 다짐하느라 손을 맞잡은 모습이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현상학적 논리 1. 창조주 신 개념과 현상과의 불일치전통 유신론에서 신은 전지·전능·전선한 창조주로 가정됩니다.그렇다면 신이 만든 세계는 최선의 세계여야 합리적이겠죠.그러나 현실은 고통, 불행, 불의, 자연재해, 무고한 죽음으로 가득합니다.이 점은 **“전능하고 선한 창조자가 만들었다”**라는 주장과 정면 충돌합니다. 2. 철학적 반증 논거들악의 문제 (Problem of Evil)전능·전선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악은 없어야 한다.악이 존재하므로, 그 신 개념은 모순이다 → 따라서 창조주 신이 없을 수 있다.불필요한 고통 논거 (Unnecessary Suffering)진화 과정에서 동물들의 수억 년간 고통, 자연재해, 질병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이는 설계자보다는 무작위적 자연 과정을 더 잘 설명한다.설계의 불완전성 (Imperfect Design)인간의 척추, 맹장, 시력 구조 등은 비효율적이고 취약하다.완벽한 지적 설계자가 만든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진화론은 이런 불완전성을 자연 선택 과정의 부산물로 설명 가능.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성서적 논리 1. 전통적으로 제시된 “신의 선함” 증거들과 반론사실 기독교·이슬람·유대교 같은 유일신 계통에서는 이런 증거를 시도해 왔습니다.하지만 엄밀히 보면 “논리적 증명”이라기보다 “신앙적 해석”에 가깝습니다.창조의 질서우주와 생명은 정교하고 아름답다 → 그 배후에는 선한 창조주가 있다.반론: 아름다움만큼 고통과 파괴도 공존하므로, 선함의 단독 증거가 되지 못함.도덕 의식인간 내면에 보편적 양심과 도덕이 있다는 사실 → 선한 근원(신)의 흔적.반론: 진화론적·사회적 설명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구원 경험기도 응답, 기적, 죽을 뻔하다 살아난 체험 등을 “신의 선함”의 증거로 제시.반론: 주관적 경험이며, 같은 사건을 “우연”이나 “자연적 설명”으로도 해석 가능.2. 신학적 방어 논리“신이 선하다”는 것을 합리화하려고 고안된 논리들입니다.자유의지 변호: 악은 인간 자유의 필연적 결과, 자유를 주는 것이 더 큰 선.→ 그러나 자연재해나 아동 고통은 여전히 설명 불가.영혼형성 변호: 고통은 인간을 성숙시키는 도구.→ 하지만 아예 성숙할 기회조차 없이 죽는 경우는 모순.신의 신비: 인간은 알 수 없으나, 궁극적으로는 선한 목적이 있다.→ 사실상 논리적 설명이 아니라 신비주의적 회피.외계인 입장(헛소리 이므로 무시해도 됨) 사회 현상 자체를 볼때 신은 존재 하지 않거나 존재 한다면 선한 존재일수 없음. “신이 있다”라는 전제를 유지하면 → 수많은 모순과 해명이 불가피하고, 결국 ‘신의 알 수 없는 계획’이라는 신비주의나 매직으로 도피.“신이 없다”라는 전제를 택하면 → 모순은 깔끔하게 해소되고, 자연적 설명만 남음. 그래서 철학적으로는, 무신론적 가설이 불가지론/유신론보다 논리적으로 더 단순하고 일관적 결론: 위의 사진이 선과 악이 대치하는 사진이라면 왼쪽 악마가 바로 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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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랜든 프레이저 (1968) 출연 살인 누명 실화 영화 '결백 입증 전까진 유죄' 공개 중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filmrise.com/ '결백 입증 전까진 유죄' 영화판 Guilty Until Proven Innocent (1991) 폴 웬드코스 연출작, 브랜든 프레이저, 마틴 쉰 출연작으로 살인 누명을 쓴 인물의 실화를 TV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며 이 작품의 경우 관련 실화에 대해서도 상세히 정리된 기록이 존재합니다. 이 글을 올린 시점 기준으로 필름라이즈 운영 채널에서 공개 중이며, 아래 내용은 관련 사건 기록을 일부 정리한 내용입니다.(혹시 몰라 내용 그대로 퍼오진 않고 요약해서 정리했으나 엉터리로 해석했을 위험성도 있으니. 자세한 것은 아래 링크도 참고) '악몽의 끝: 로버트 맥라플린의 무죄 판결' 1979년 12월 29일, 브루클린의 마린 파크에서 무장 강도들이 강도 행각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강도들에 저항하던 한 피해자가 총에 맞아 사망.20세의 로버트 맥러플린은 이 강도 및 살인 사건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검찰 측의 유일한 증거는 당시 15세였던 목격자 로버트 키프 토빈의 증언. 사진 대면 과정에서 존 디엘리아 형사는 토빈에게 로버트 맥러플린이 다른 강도 중 한 명과 체포된 적이 있다고 잘못 언급했는데 이는 다른 동명이인과 혼동한 것. 당시 사건 현장 근처에 맥러플린이 없었다는 다른 증인들의 증언과, 맥러플린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 또 다른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맥러플린은 유죄 판결을 받고 15년 이상의 종신형을 선고.맥러플린의 의붓아버지 해롤드 호네가 아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한 노력, 1986년에 당국에서 재수사, 목격자 초기 진술에서 여러 모순점이 발견, 이로 인해 주 검찰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 앤 G. 펠드먼 판사는 7월 3일에 맥러플린의 살인 유죄 판결을 취소. 저지르지 않은 죄로 6년 반을 감옥에서 보낸 로버트 맥러플린은 마침내 자유로워지며 석방.맥러플린은 자주 다른 시설로 옮겨지다가, 맨날 싸움이 벌어져 "글래디에티어 스쿨"로 불리던 교도소로 끌려간 시기도 존재. 부당한 투옥에 대한 보상으로 140만 달러를 지급. (아래 자료가 작성된 시점 기준으로) 그러나 엉터리 증거로 잡아넣은 지방 검찰청이나 경찰은 어떠한 기소도 당하지 않은 상황. https://archives.law.virginia.edu/dengrove/writeup/end-nightmare-exoneration-robert-mclaughlin 이 사건은 재판 관련 정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잊혀지고, 묻히는 사건들 중 하나가 될 뻔하기도 했으나 이후 대중들이 극장 가서 관람료를 내지 않아도 집에서 쉽게 TV로 볼 수 있는 NBC의 TV 영화로 제작되어 방송된 바 있으며, '약자가 시스템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라 표현되기도 한 작품으로 이와 관련해선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www.2minuteverdict.org/blog/robert-mclaughlin-inadequate-legal-defense
콩라인박작성일
2025-09-28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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