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61);
-
-
-

[엽기유머] 영화보다 더 굉장했던 실존 저격수들
1. 미군 현대전 스나이퍼의 거의 모든 것을 재확립한 전설의 스나이퍼 카를로스 헤스콕 - 3박4일에 걸쳐 1.5km를 포복전진만으로만 월맹군 기지에 침투해 월맹군 장군을 사살했고, 아군 소대를 포위한 월맹 정규군 1개 중대를 관측수와 둘이서 우선 모든 장교와 통신병을 사살하고나서 5일간에 걸쳐 서서히 녹여 버렸다. - 한 전투에서 적 저격수 12명을 카운터 스나이핑(역저격. 적 저격수를 사살)으로 침묵시킨적도 있다. 이때 적 저격수의 조준경에 정확히 구멍을 내는 헤드샷을 쏘았는데, 실전에서는 현재까지 기록으로 남은 유일한 성공사례이다. 'Mythbusters' 에서도 한번은 불가능이라고 했다가 여러번의 실패끝에야 성공했을 정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톰 베린저의 스나이퍼 등 저격수가 나오는 각종 영화 등에서 나오는 같은 상황도 헤스콕의 이런 전과를 따온 것이다. - 헤스콕이 M2 중기관총으로 세웠던 세계 최장거리 저격기록(약 2,300m)은 35년이나 흘러서야 겨우 깨졌다. 그밖에도, 물위를 달리는 고속보트 위에서 대략 700m거리밖의 베트콩을 저격하는 곡예에 가까운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헤스콕의 전설적인 저격 실력을 놓고 킬 수 많은 2차대전 때의 저격수들과 비교하곤 하지만, 사실 저격사에서 헤스콕의 위치는 단순히 킬 수 많은 정도가 아니라 미군의 저격술 학교 시스템을 정립하다시피 한 '저격 교관'으로서의 위치가 높게 손꼽힌다. 미 해병대 저격학교의 모토인 "One shot, One kill."을 만든 것도 헤스콕이며, 네이비 씰 팀 식스와 많은 군경에 저격 강습을 한 것도 그다. 2. 최장거리 저격기록을 갖고 있는 영국 근위 기병대 크레이그 해리슨 2009년 11월 영국 근위 기병대의 크레이그 해리슨은 2명의 탈레반 저격에 성공함으로써 기네스 기록을 수립했다. 저격 거리는 2.47km로 8.59mm총탄이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3초나 걸린다. 사용한 라이플은 L115A3이다. 라이플의 권장 거리보다 914m나 멀었다. 3번째 저격에서 병사의 기관총을 떨어뜨렸다. 추가 : 이 기록은 깨졌다고 한다. 현재의 최장 기록은 2012년 호주군 SAS의 병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달성한 2.81km이라고 한다. 3. 100일간 500여명을 사살한 시모 해위해 (시모 하이하) 1939년 영토 확장을 위해 26개 사단 병력으로 핀란드를 침공한 스탈린은 ‘하얀 사신(White Death)’을 만난다. 헤위헤는 16만 소련군과 대치한 콜라 강 전투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는 러시아제 모신나강 소총에 망원조준경을 달지 않았다. 오로지 맨 눈에 가늠쇠만으로 저격했다. 햇빛이 렌즈에 반사되면 매복 장소가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저격 중에는 입김을 내뿜지 않기 위해 차가운 눈으로 입안을 채웠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설원에서 헤위헤가 사살한 적은 542명, 지금까지도 최고 기록이다. 4. 총알 1발로 6명을 죽인 영국 저격수 마크스맨 2013 년 12 월, 영국의 저격수가 단 한 발의 총알로 6 명의 탈레반 병사를 처치했다. 이것은 자폭 테러범의 기폭 스위치를 저격하여 폭발시킨 기술이었다. 그는 20살의 저격병으로 850m 거리에서 20kg의 폭발물을 폭발시켜 탈레반의 공격을 막은 것이다. 5. 소련이 낳은 역사상 최강의 여자 저격수 파블리첸코 1941 년 6 월 독일의 소련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24 세의파블리첸코는 키예프 대학에서 역사를 배우는 학생이었다. 간호사가 되는것을 거부하고 당시는 아직 드물었던 여군의 길을 선택했다. 적군은 2,000 명의 여성 저격수가 있었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500 명 뿐이다. 그녀도 그 중 한 명으로,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적의 저격수 36 명을 포함한 309 사살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종전 후 외교 홍보의 일환으로 캐나다와 미국에 부임 미국 대통령에 초대 된 최초의 소련인이되었다. 6. 벽 넘어로 3명의 적군을 사살한 미 해병대 스티브 라이헤르트 2004 년 4 월 9일 이라크 군의 기습을 받았을 때 미 해병대의 스티브 라이헤르트 이등 중사는 아군을 엄호하기 위해 폐기 된 원유 저장 탱크에 올라 앉았다. 당시 인근 건물 뒤에 대구경 기관총으로 무장 한 3명의 이라크 병사가 매복하고 있었다. 때문에 라이헤르트는 추측에 의지해 벽돌 벽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로했다. 그 결과 이라크 병사 3 명은 모두 무너져 내렸다. 1명은 철갑탄에 의해 벽 너머로 관통되었고, 나머지 2명은 비산 한 벽의 파편에 명중 되었다. 그는 이라크 종군 동안 1,614m 저격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7. 255명을 사살한 미군 역사상 최고의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미 해군 특수 부대 SEALs의 크리스 카일은 2003 ~ 2009 년 이라크 종군 동안 공식 160 사살을 포함한 255 사살을 이뤘다. 이것은 미군 사상 최다 기록이다.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진 2차 팔루자 전투만 해도 40명의 병사를 사살했다. 라마디 전투에서 그의 소문이 이라크 병사 사이에도 퍼져 “라마디의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그 목에 2000만원 이상의 현상금까지 가했다. 2008 년 사다르 시티 교외에서 1,920m 거리의 338매그넘 로켓 발사기 병에 명중시킨 저격은 지금도 회자 되고 있다. 카일은 2013 년 PTSD를 앓는 25 세의 전직 해병대 병사 에디 레이 루스의 사격지도 중 갑자기 그가 발사한 총에 의해 사살되었다. 제대 후 쓴 자서전 “네이비 실즈 최강의 저격수’는 베스트 셀러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의 원작이되기도한다. 8. 860m 거리에서 총알을 17m나 휘게하여 저격에 성공한 영국 해병대 맷 휴즈 이라크 전쟁 초기 영국 해병대가 자랑하는 사격의 명수 맷 휴즈 하사는 이라크 병사의 전진을 막도록 명령을 받았다. 당시 강풍이 불고 있으며이를 성공 시키려면 바람의 흐름을 완벽하게 읽어야 했다. 이 악조건 속 그의 스나이퍼 라이플 L96에서 발사 된 7.62mm 탄은 공중에서 17m 휘게 한 끝에 이라크 병사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는 풍속과 풍향의 탄도를 계산하고 860m의 목표물을 저격하기 위해 위치를 계산했던 것이다. 9. 900m의 저격에 도전한 미군 고참병 테드 군디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테드 군디는 미군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벌지 전투에 몸 담고 있었다. 2011 년 85 세가 된 그에게 그 실력을 선보일 기회가 찾아왔다. 현역 중에 애용하고 있던 스프링 필드 1903 소총의 복제본을 짊어진 군디는 66 년의 공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 270m의 목표물을 손쉽게 관통시켰다. 그 후 최신 레밍턴 M700을 처리하는 방법을 강의하고 900m의 목표물 저격에 도전했다. 이 때의 경험을 “인생에서 최고의 경험중 하나입니다”라고 말했다. 10. 소련의 저격영웅 바실리 자이체프바실리 자이체프는 62군의 284 소총병 사단의 1047 소총병 연대에서 근무했는데, 저격수로 활동하면서 공식기록 242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살기록을 내세우게 된다. 그가 시모하이하와 달리 유명해진 까닭은, 닥치는 대로 저격한 것이 아니라 군 지휘관 즉, 군 장교들만은 목표로 삼아 저격을 했기 때문. 공식적으로는 225명의 독일군 (대부분이 장교이며, 11명의 저격수 포함)을 저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 더 많은 적을 사살을 했을 수도 있는 사람, 즉 저격계의 왕 스탈린그라드 전투 내내 저격수로 싸웠으며 1943년 1월에 박격포 포탄에 피격되어 부상을 입은 뒤에 잠시 눈이 멀었다가 다시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는 전쟁영웅으로 크게 선전되었고, 스탈린그라드에서 분투하는 소련군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시력을 살리기 위해 소련에서 가장 유명한 안과의사였던 필라토프 교수가 파견되었다고. 눈 부상 후유증으로 시력이 나빠져 저격 일선에는 나가지 못하고 이후 저격수 교관 업무를 주로 맡았다. 그러나 종전시까지 계속 군에 남아 있었으며,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주역인 제62군이 이름을 바꾼 제8친위군 소속으로 1945년 베를린 전투에도 참가하여 베를린 근방의 젤로 고지 전투에 참전하고 종전을 맞았다. 후에 업적을 인정받아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해군에서 상사까지 진급한 뒤 육군 준사관이 되었다가 보병대위까지 진급했으며, 1943년엔 공산당 당원이 되었다. 그가 전쟁 중 기록한 공식 킬 카운트는 242킬인데 이 전적을 올리기 위해 사용한 탄환의 수는 불과 243발이었다고 한다. 딱 한 발이 빗나갔으니 명중률은 99.588...% 그야말로 원샷 원킬 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전설적인 저격수이다.
LoMi작성일
2017-03-16추천
9
-
-
-
-
-

[자유·수다] 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의사에게 살해 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
책내용 요약
대부분의 질병은 병원치료나 약으로 고칠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성인이 걸리는 질병은 대부분 ‘노화 현상’으로, 의사에게 치료를 받거나 약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인이 되면 동맥도 노화로 딱딱해져서 혈액을 흘려보내는 힘이 약해진다. 따라서 우리 몸은 나이를 먹을수록 혈압을 높이려고 한다. 뇌나 손발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런 상태를 약으로 떨어뜨리면 지각이 둔해지거나, 몸이 휘청거리게 된다.
핀란드의 한 연구 팀이 75세부터 85세까지 ‘혈압 강하제를 먹지 않는’ 남녀 521명을 추적 조사했는데, 그 결과 80세 이상 그룹에서는 최고혈압이 180mmHg 이상인 사람들의 생존율이 가장 높고, 최고혈압이 140mmHg 이하인 사람들의 생존율이 뚝 떨어졌다."
"고혈압, 고콜레스테롤혈증, 당뇨병 같은 병은 대부분 치료할 필요가 없거나,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 건강검진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장이나 담낭의 폴립, 그리고 조기 암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몸에 이롭다."
"서양 의료전문가들은 의료 피폭의 발암 위험을 전제로 환자 보호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직도 의사나 환자가 '일단 CT부터 찍고 보자'는 식이다. 그 결과 국민의 피폭선량은 계속 늘어나, 현재 암 사망 원인의 6퍼센트를 넘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에서 의료 피폭에 의한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매년 2만 명 전후로 추정된다. CT 검사로 인해 몸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부디 주의하기 바란다."
'예방 의학'은 업계의 번영을 위해 환자를 끌어들이는 의학이다
"요즈음 질병의 조기 발견이나 예방, 조기 치료 등 ‘예방 의학’이 대유행이다. 의학계 입장에서 어디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어서 병원을 찾는 사람만 진찰하다가는 환자 수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건강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병을 찾아내고 치료함으로써 업계의 번영을 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질병에 미리 대처해서 막는 의학이 아니라 ‘환자를 끌어들이는 의학’인 것이다."
"나는 모든 환자들에게 '한 번에 3종류 이상의 약을 처방하는 의사는 믿지 말고, 5종류 이상의 약을 한꺼번에 먹는 행위는 상당히 위험하다'라고 누누이 강조하곤 한다. 약을 몇 종류나 복용하면서도 늘 몸이 좋지 않다는 환자나, 고령자 중에서 치매나 현기증이 나타나는 경우는 '약을 전부 중단하라'고 조언한다. 약의 복용을 그만둬도 약효는 얼마간 지속되면서 자연스럽게 떨어지므로 금단증상이 일어나는 일 없이 몸 상태가 거의 호전된다."
모든 약의 사용을 중단하라
“가능한 한 모든 약의 사용을 중단하라. 그것이 어렵다면 최대한 약을 줄여라.”
“먹는 약의 수가 늘어나면 부작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4종류 이상의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는 의학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위험한 상태에 있다.”
“고령자 대부분은 약을 중지하면 몸 상태가 좋아진다.”
"약의 의존하지 않으면 낫지 않는 병 같은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내성균으로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약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암을 방치하면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사나 노쇠사는 주변에서 보기 힘들어졌고 자연히 잊혀졌다. 반면에 치료를 받다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암 환자들 이야기는 시도 때도 없이 들린다. 그러니 현대인이 그토록 암과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암을 방치하면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 건강검진 등으로 암을 억지로 찾아내지 말고, 만약 발견되더라도 치료하지 않으면 오히려 오래 살 수 있다. 현대인이 성인이 되고 나서 걸리는 다른 병도 대부분 그렇게 방치하면 마찬가지로 더 오래 살고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이 암이 사라졌다거나, 말기 암의 증상이 나타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온 사람은 내가 진찰한 수백 명의 환자 중(세계 여러 논문을 봐도)에는 한 사람도 없다. 진짜 암은 발생하면 즉시 여기저기 장기로 전이해, 종국에는 반드시 숙주의 생명을 앗아간다."
"콜라겐이나 글루코사민의 합성 능력을 최대한 유지하는 데는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 적당한 운동,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로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는 것이 가장 좋다.(건강보조식품을 먹는 것보다)"
"세계 각국의 연구 조사 데이터를 살펴보면, 오히려 염분이 부족한 사람 쪽이 병에 더 잘 걸리고 일찍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심장학회로부터 고혈압학회의 최고상이라 불리는 ‘지바상’을 수상한 아오키 규조 박사는 '비타민C의 결핍은 특정 질환을 일으킬 뿐이지만, 염분의 결핍은 생명을 위협한다. 일본인의 고혈압증은 98퍼센트 이상이 소금과는 관계가 없다. 신장이나 호르몬, 혈관이나 혈액의 문제이다. 대다수 일본인에게 염분을 감량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오히려 염분 감량은 건강에 큰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라고 경고했다."
■ 의사를 선택할 때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의한다.
- 도서관이나 인터넷을 통해 자기 나름대로 정보를 모은다.
- 환자로서의 직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 환자의 얼굴을 보지 않는 의사, 환자를 무시하는 의사는 선택하지 않는다.
- 의사의 설명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 의사의 유도에 주의한다.
- 약의 부작용, 수술 후유증, 생존율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주는지 지켜본다.
- 질문을 귀찮아하는 의사는 제외시킨다.
- 5종류 이상의 약을 처방하는 의사는 각별히 주의한다.
- 주치의 외에 다른 의사의 진단이나 소견을 들어본다.
- 검사 데이터나 뢴트겐 사진은 환자의 것이므로, 그것을 떳떳하게 요구하고 제공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의사가 파업을 하면 사망률이 감소한다
"의사가 된 후로 의료에 대한 내 생각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의료 행위로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감기와 독감은 치료할 수가 없고 암, 신장병, 간염의 경우 낫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해도 낫지 않는다. 약을 사용하면 부작용이 심하고, 오히려 목숨이 단축되는 경우도 많다. 고혈압, 당뇨병, 류머티즘은 수치를 낮추거나 통증을 완화하는 정도밖에 치료할 수 없다.
특히 고령이 될수록 의료 행위는 몸에 부담이 된다. 수술을 하면 후유증이나 합병증으로 생명이 단축되는 경우도 많다. 고령의 환자인 경우 약은 가능하면 먹지 않는 편이 좋다."
"1976년 남미의 콜롬비아에서는 의사들이 52일 동안 파업을 해서 응급치료 이외의 진료 활동이 전부 중단된 적이 있었다. 당시 신문이 이 사건의 기묘한 부작용으로 보도한 내용은 의사들이 파업을 해서 “사망률이 35퍼센트나 감소했다”는 뉴스였다. 콜롬비아 국영 장의협회는 마치 여우에 홀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같은 해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도 의사들의 파업이 있었다. 그로 인해 17개의 주요 병원에서 수술 건수가 평소보다 60퍼센트가 줄었는데, 그 결과 “전체 사망률이 18퍼센트 감소했다”는 발표가 보고되었다. 하지만 의사들의 파업이 끝나고 진료가 다시 시작되자, 사망률은 파업 전의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 같은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갈 필요도 없는 병원에 찾아가 생명을 단축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의학 전문지 의 편집장 인겔하임은 '질병의 80퍼센트는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 의사의 진찰이 필요한 경우 10퍼센트 남짓이며, 나머지 10퍼센트 조금 못되는 부분은 병원에 간 탓에 오히려 더 나빠진 경우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아주 정확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평균 수명'이 아니라 '건강 수명'이 중요하다
"2012년 6월 후생노동성은 ‘건강 수명’이라는 새로운 지표를 발표했다. 이것은 ‘보살핌을 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연령’을 말한다. 이 같은 의미에서 2010년의 건강 수명은 남성 70.42세, 여성 73.62세로, 평균수명은 남성 79.55세, 여성 86.3세이다. 즉 일본인은 죽기 전에 평균적으로 약 10년 동안이나 ‘건강하지 못해 보살핌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초장수 국가인 일본의 현실이다."
-
-
-
[무서운글터] [실화] 츠야마 30인 살인사건...
츠야마 30인 살인사건
오카야마(岡山)현 츠야마(津山)시에서 북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톳토리현 경계 근처의 산촌에서, 일본 범죄 사상 전대미문의 참극이 일어났다.
오카야마현 니시카모(西加茂) 마을 카이오(貝尾) 부락과 이웃 사카모토(坂本) 부락을 무대로 한 명의 청년이 불과 1시간 반 사이에 마을사람 30명을 살해한 사건이었다.
니시카모 마을은 380가구, 약 2000명, 카이오 부락은 23가구, 인구 111명, 사카모토 부락은 20가구, 인구 94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대부분이 영세 농민인 이 양쪽 부락 주민은 산전(山田)을 경작하거나 양잠이 주된 수입원이었다. 그러나 겨울 동안은 눈에 갇혀 지내게 되는데, 남자는 대부분 객지로 나가 돈을 벌거나 숯을 구우러 산에 들어가는 바람에 마을에는 노인과 부녀자만이 남는다. 일명 '밤놀이'라는 성적(性的)으로 방종한 구습이 현저하게 남은 지역이기도 했다.
1938년 5월 21일 새벽 1시 무렵. 카이오 부락 779번지에서 농사를 짓는 토이 무츠오(都井睦雄 : 당시 22세)는 할머니와 함께 자던 중 할머니가 눈을 뜨지 않도록 살그머니 일어나 발소리를 죽여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토이의 집은 카이오 부락 거의 중앙에 위치했으며,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방해꾼 취급하는 부락사람들을 살해하려고 면밀한 습격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특히 자신과 육체관계를 가졌으나 다른 사람에게 시집간 2명의 여성에 대해 격렬한 살의를 품고 있었다.
토이는 두 여성이 마을에 돌아오는 날을 알아내 그 날을 실행일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사건 전날인 5월 20일 오후 4시 무렵, 그는 자전거로 습격할 예정인 집들을 몇 번이나 왕복하면서 꼼꼼하게 조사했다. 오후 5시쯤에는 전봇대에 올라가 전선을 절단해 부락 전체를 깜깜하게 만들었다.
전등 회사에 수리를 부탁한 마을사람은 없었다.
토이는 친한 친구에게 어차피 폐병으로 죽을 테니, 아베 사다(阿部定, - 영화 ‘감각의 제국’의 실제 범인) 이상의 굉장한 일을 저지르겠다고 토로하고 있었다.
다락방에 올라간 토이는 검정색 교복을 입고 양쪽 다리에 군사 훈련용 각반을 단단하게 감고 고무창 신발을 신었다.
머리에 감은 수건에는 2개의 소형 회중전등을 달았고, 자전거용 램프를 목에다 끈으로 매달고 다른 끈으로 몸통에 고정해 어두운 곳에서 상대를 비출 수 있도록 했다.
일본도(刀) 하나와 비수(匕首) 두 개를 왼쪽 허리춤에 끈으로 묶은 후 가죽의 벨트로 다시 맸다. 손에는 맹수 사냥용 구경 12번 9연발에 개조한 브라우닝 엽총을 들고, 포켓에는 실탄 100발을 넣고, 실탄 100발을 넣은 주머니를 왼쪽 어깨에 걸쳤다.
이 지방에서는 야간 천렵을 할 때 회중전등 1개를 수건 등으로 머리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토이가 애독한 잡지 「소년클럽」(전년 12월호)에는 총검을 단 총(회중전등도 묶어 붙어 있다)을 든 일본군이 중국인을 찔러 죽이려는 만화가 실려 있었는데, 이것을 흉내 낸 것 같기도 하다.
5월 21일 밤에는 이슬비가 내렸지만 곧바로 그쳤고 가끔 구름 사이로 달이 보였다.
봄이었지만 쌀쌀한 밤이었다.
(※ 주 : 범인인 토이 무츠오를 제외한 등장하는 사건 관계자의 이름은 모두 가명)
희생자 1 - 오전 1시 40분쯤, 토이는 다락방에서 내려와 난로 옆에서 푹 잠들어 있는 자신의 친할머니인 요네(76세)의 목을 장작 패는 도끼로 절단했다.
희생자 2 - 가장 먼저 습격한 곳은 북쪽 이웃인 키시모토 카츠유키(岸本勝之)의 집이었다. 여기는 5인 가족이었지만 카츠유키는 군대에 입대해서 집에 없었다. 시골이라 문단속은 하지 않고 있었다. 몇 차례 밤놀이로 집안을 다 알고 있던 토이는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토이는 과부인 카츠유키의 모친 츠키요(50세)와 육체관계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거절당한 데다 마을에 소문이 퍼졌기 때문에 강한 원한을 품고 있었다. 엽총을 사용하면 근처에 들린다고 생각한 그는 일본도를 소리 없이 뽑아 숙면 중이던 츠키요의 목과 가슴을 찔렀다.
희생자 3, 4 - 계속해 어머니의 옆에서 자고 있던 남동생 요시오(14세)와 마모루(11세)를 일본도로 베어 살해했다. 여동생 미사(19세)는 일 때문에 다른 곳에 묵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은 살해되는 것을 모면했지만 토이는 그녀가 누구의 집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희생자 5 - 세 번째 집은 니시다 슈지(西田秀司)의 집이었다. 이곳에는 4명이 있었는데, 이곳도 열쇠를 잠그는 습관은 없었다. 토이는 이 집의 안주인인 토메(43세)와 몇 차례 육체관계가 있었지만, 토메는 “몇 번이나 덤벼든 것을 거절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었다. 토이는 방에서 잠들어 있는 토메의 복부에 엽총을 대고 쏘아 즉사시켰다.
희생자 6~8 - 옆방에서는 3명이 난로 옆에서 자고 있었다. 장녀 오토모 요시코(22세)와 주인 슈지(50세), 아내의 여동생 치즈코(22세)였다. 요시코는 토이와 육체관계가 있었지만 다른 집에 시집갔다. 그러나 감기로 앓고 있는 토메를 문병하러 요시코와 치즈코가 와 있었다. 토이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 날을 학살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세 사람은 총성에 잠을 깼는데, 근거리에서 엽총에 맞아 모두 즉사했다.
희생자 9, 10 - 네 번째는 키시모토 타카시(岸本高司)의 집이었다. 여기는 4인 가족이었다. 마찬가지로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앞문으로 침입한 토이는, 한 이불 속에 잠들어 있던 주인 타카시(22세)와 임신 6개월이던 아내 니시다 토모에(西田智惠, 20세)를 엽총으로 사살했다. 토모에는 5번째로 살해된 토메의 둘째 딸이었다.
희생자 11 - 잠에서 깬 조카 테라나카 타케오(寺中猛雄, 18세)가 달려들었으나, 토이는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때려 쓰러뜨린 뒤 엽총으로 가슴을 쏘았다. 토이는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던 모친 타마(당시 70세)의 앞에 버티고 서서 당신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었지만, 니시다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기 때문에 죽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타마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토이는 총을 쏘았다. 그러나 타마는 치명상을 입지 않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혼자 살아남은 타마는 젊은 사람이 죽고 내가 살았다. 신도 부처님도 없다고 슬퍼했다.
희생자 12 - 다섯 번째는 테라카와 마사이치(寺川政一)의 집. 여기는 6인 가족이었다. 거듭되는 총소리에 테라카와 집의 식구들은 모두 잠에서 깼지만 문단속은 하지 않았다. 현관으로 들어온 토이는 무슨 일인가 하며 나온 주인 마사이치(60세)의 가슴을 엽총으로 쏘아 사살했다.
희생자 13~16 - 놀라서 창밖으로 튀어나온 장남 테이이치(貞一, 19세)의 등을 엽총으로 쏘아 사살하고, 복도의 덧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던 5녀 토키(15세)와 6녀 하나(12세)를 사살했다. 며느리 노기 세츠코(野木節子, 22세)는 복도 구석으로 몰고 가 총으로 쏘았다. 테이이치와 세츠코는 불과 6일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4녀 유리코(당시 22세)와 토이는 깊은 사이였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불만을 품은 토이가 신혼집에 밤마다 찾아가는 바람에 유리코는 이혼하고 말았다. 토이는 둘 사이를 되돌리려 했지만, 유리코는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마침 3일 전부터 유리코가 집에 와 있었는데, 그것을 알고 있던 토이가 이 날을 학살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유리코는 뒷문으로 재빨리 나와 이웃집으로 도망쳐, 토이가 가장 원망한 유리코는 경상을 입는데 그쳤다.
희생자 17 - 유리코가 도망친 것을 눈치 챈 토이는 바로 뒤를 쫓았다. 6번째 집인 테라카와 모키치(寺川茂吉, 당시 45세)의 집은 원래 토이의 습격 계획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비극에 연루되고 말았다. 여기는 5인 가족이었다. 앞문을 잠근 직후 토이가 와서 문을 열라고 고함쳤다. 별채에 있던 부친 코시로(孝四郞 86세)가 덧문을 열자 토이는 그를 엽총으로 쏘아 즉사하고 말았다. 유리코와 주인 모키치, 아내 노부코(伸子, 당시 41세), 차남 신지(進二, 당시 17세)는 모든 문을 꼭 닫았다. 토이는 총을 마구 쏘고 문을 격렬하게 두들겼다. 모키치는 이대로는 모두 살해당한다고 판단, 신지를 테라카와 모토카즈(寺川元一)의 집으로 가 도움을 청하도록 했다. 그러나 신지는 옆문으로 나와 대나무 숲으로 뛰어들었으나 토이에게 들키고 말았다. 토이는 곧바로 뒤를 쫓았지만 그것을 눈치 챈 신지는 숲 속에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자 토이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 신지를 놓친 토이는 뒷문 앞으로 와 마치 그를 잡은 것 같은 말투로 말하지 않으면 “쏴버리겠어~!”라고 큰 소리로 고함쳤다. 노부코는 신지가 잡힌 것으로 알고 울면서 모키치에게 매달렸다. 유리코도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흐느껴 울었다. 모키치는 몰래 뒷문으로 다가가 틈새로 밖의 모습을 보았다. 문 바로 옆에는 토이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신지가 없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 하지만 토이는 열지 않으면 도끼로 부숴 버리겠어~라고 고함치면서 집을 향해 2발을 쏘았다. 이때 1발이 4녀 유키코(당시 21세)의 대퇴부에 명중해 경상을 입었다. 이 때쯤 되어 심야의 산간에 울려 건너는 총성, 절규와 비명 탓에 이상함을 느낀 마을사람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희생자 18~19 - 일곱 번째는 언덕에 있는 테라카와 코지(寺川好二)의 집이었다. 여기는 모친 토요(45세)와 아들 코지(21세) 등 2명이 살고 있었다. 이곳 역시 열쇠를 잠그는 습관이 없었다. 토이는 돈을 주고 토요와 관계를 가졌지만 그녀가 니시다 요시코, 테라카와 유리코의 중매를 한 것을 원망하고 있었다. 총소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잠들어 있던 두 명은 이불을 덮은 채로 총에 맞아 사망했다.
희생자 20~21 - 여덟 번째는 토이의 집 남쪽 테라카와 센키치(寺川千吉, 당시 85세)의 집. 이곳에는 가족 여섯 명과 양잠 일을 하는 2명 등 모두 8명이 자고 있었다. 토이는 이 집에 원한이 없었지만, 예전에 자신과 정교를 거절한 단게 우이치(丹下卯一)의 여동생 츠루요(21세) 와 키시모토 카츠유키의 여동생 미사(19세) 등 양잠실에서 자고 있던 두 명을 엽총으로 사살했다.
희생자 22 - 같은 방에서 자고 있던 다른 한 명인 장남 아사이치(朝市, 64세)의 아내 히라지 토라(65세)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총을 두 번 쏘아 죽였다. 양잠실을 뛰쳐나온 토이는 안방 툇마루의 덧문을 열고 들어가 난로 앞에 앉아 있던 센키치와 마주쳤다. 센키치는 토이를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토이는 “노인이라도 가만 두지 않겠어~!”라고 하면서 총구를 센키치의 목에 겨누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더니 “당신은 내 욕을 하지 않았으니 봐 주겠어. 내가 죽으면 욕을 할지도 모르지만”이라고 말하면서 히죽 웃더니 자리를 떴다. 그 직후 토이는 안쪽 창고로 갔다. 여기에는 아사이치가 이불 속에서 자는 척 하고 있었다. 아사이치는 토이와 센키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떨면서도 자는 척 하고 있었다. 토이는 3개의 전등으로 아사이치를 비추다가 갑자기 베개를 걷어찼다. 아사이치가 놀라 일어나려 하자, 가슴을 총으로 밀면서 “젊은 사람(이사오 부부)은 도망쳤군. 움직이면 공격할거야. 얌전히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아사이치는 토이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으고 꼼짝하지 않을 테니 살려달라고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토이가 “그렇게 목숨이 아까운가?”라고 조롱하듯 말하자, 아사이치는 손을 모은 채로 여러 번 아이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살려주지~” 토이는 그렇게 말하고 센키치 집을 나왔다. 센키치의 아내 테라카와 치요(당시 80세)는 마루밑에 숨어 있었고, 손자 테라카와 이사오(당시 41세)와 그 아내 테라카와 키이(당시 38세)는 2층에 숨어 있었다.
희생자 23 - 아홉 번째는 단게 우이치(당시 28세) 집이었다. 이 집은 3인 가족이었지만, 여동생인 츠루요(21세)는 테라카와 센키치의 양잠실에서 이미 살해당했다. 단게 집에도 별채인 양잠실이 있었는데 마침 어머니인 이토(47세)가 보온용 화로의 불을 보고 있던 중 토이가 나타나 딸 츠루요는 이미 죽었고, 이번에는 당신이라고 하며 엽총을 쏘아 중상을 입혔다. 그녀는 병원에 옮겨졌지만 6시간 후에 사망했다. 우이치는 안방에서 자고 있다가 어머니의 비명과 총성을 듣고 깨어나 재빨리 탈출해 난을 면했다. 우이치는 한때 테라카와 유리코와 부부였기 때문에 토이의 표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이치는 니시카모(西加茂)의 파출소에 갔지만 순경이 부재중이자, 다시 카모쵸(加茂町) 파출소로 달려가 숨을 헐떡이며 사건의 발생을 알렸다. 약 3km의 논두렁길을 달리다가 도중에 자전거를 빌려 20분 후에 도착했다. 오전 2시 40분쯤이었다. “순경 아저씨, 큰 일 났소. 일어나요, 살인이야~!”라는 우이치의 고함소리에 이마다 타케오(今田武雄) 순경은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이치의 이야기를 듣기 전 토이가 저질렀냐고 이마다 순경은 고함쳤다. 평소부터 토이의 동정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이마다 순경은 곧장 전화로 츠야마 경찰서 숙직인 키타무라 부경감에게 보고했다. 이웃 히가시카모마을 파출소의 요네자와(米澤) 순경에게도 연락했다. 소방대와 의사에게도 연락하고, 만일의 경우에는 철도 전화를 빌려 더 이상의 사태 발생을 막기 위해서 마을의 종을 두들길 것 등을 아내에게 부탁한 후 우이치와 함께 카이오 부락으로 향했다.
희생자 24 - 10번째 집은 이케야마 스에오(池山末男, 당시 37세)의 집이었다. 8인 가족이었지만 수학여행 중이었던 장남 요우(당시 15세)를 제외한 7명이 있었다. 토이가 이곳을 습격 대상에 포함시킨 이유는 이케야마 스에오가 테라카와 마츠코(당시 35세 이케야마 가츠이치의 5녀, 20세에 테라카와 히로시와 결혼)의 오빠였기 때문이었다. 토이는 마츠코와 관계가 있었는데, 토이가 폐결핵에 걸린 것을 알자 갑자기 변심했다. 스에오는 뒤의 덧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이 때 이미 뒤로 돌아갔던 토이가 스에오를 보자마자 총을 난사했으나 스에오는 대나무 숲으로 뛰어들어 위기를 모면했다. 토이는 집안에 들어가 엽총으로 아내인 미야(34세)를 사살했다. 테라카와 마츠코 일가는 위험을 알아채고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남편과 3일쯤 전 교토로 이사 갔다. 이 때, 다섯 번째 희생자인 니시다 토메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지만, 토메는 “(토이가) 죽일 만큼 미워하진 않을 거야”라며 거절했다. 토이는 마츠코 일가가 도망친 것을 알고 있었다.
희생자 25~27 - 토이는 4남 아키오(5세)와 모친 츠루(72세)를 사살하고 도망치려 하던 부친 가츠이치(74세)에게 총을 난사해 사살했다. 차남 쇼우(당시 12세)와 삼남 쇼조(당시 9세)는 토이의 눈에 띄지 않았는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살아났다.
희생자 28 - 11번째 집은 마을 제일의 부자인 테라카와 쿠라이치(寺川倉一, 당시 61세) 집이었다. 여기는 세 명이 살고 있었다. 쿠라이치는 돈이나 물건을 주면서 테라카와 마츠코, 오카베 미요 등 몇 명의 마을 여자와 관계하고 있었다. 토이가 비탈을 오르는 도중 가슴에 달았던 전등이 떨어졌지만 쿠라이치가 있냐고 고함치면서 정문으로 뛰어들었다. 아내 하마(56세)가 초를 들고 덧문을 열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앞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전등 두 개가 보이는데”라고 쿠라이치와 장남 스구루(당시 28세)를 돌아보며 외치는 순간, 토이의 엽총이 불을 불었다. 하마는 초를 들고 있던 오른손에 총을 맞았지만, 아픔을 참고 서둘러 덧문을 닫은 후 쿠라이치와 함께 필사적으로 토이의 침입을 막았다. 토이는 닫히는 덧문을 향해 엽총을 5발 난사, 하마의 오른 팔에 중상을 입혔다. 그것을 본 쿠라이치는 2층에 뛰어 올라 창을 열고 도와 달라고 소리쳤다. 언덕이었기 때문에 마을사람 전원에게 이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토이는 쿠라이치에게도 발포했지만 총알은 1층의 지붕 기와를 깼을 뿐이었다. 쿠라이치는 당황해 방안에 몸을 숨겼다. 토이는 쿠라이치를 단념하고 떠났다. 하마는 사가노 병원에 옮겨졌지만 출혈이 심해 12시간 후 사망했다.
희생자 29~30 - 지금까지는 모두 카이오 부락에서 벌어졌지만, 12번째 살인은 카이오 부락 북서쪽의 사카모토(坂本)부락에 있는 오카베 카즈오(岡部和夫, 51세)의 집이었다. 토이는 약 2킬로의 산길을 달려가 이곳에 왔다. 여기는 부부 2명이 살고 있었다. 아내 미요(32세)와 토이는 여러 번 관계를 가졌는데, 남편 카즈오는 이를 막으려고 부심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요까지 차갑게 대하고 있었다. 오카베의 집은 토이가 찾아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문단속은 하고 있지 않았다. 혹은 테라카와 쿠라이치 때문에 미요가 자물쇠를 떼어 두었을지도 모른다. 카즈오는 토이를 쫓기 위해 최근 공기총을 구입했는데, 토이가 들어왔을 때 맞서려 했으나 아내와 함께 사살 당했다. 이렇게 해서 약 1시간 반에 걸친 참극은 끝났다. 피해자는 사망자 30명(즉사 28명, 중상을 입고 나중에 사망한 사람 2명), 중상자 1명, 경상자 2명 등 합계 33명이었다.
오카베 집을 떠나 오전 3시 쯤 타루이(樽井)부락 타케다 마츠하루(武田松治, 당시 66세)의 집에 나타난 토이는 “오늘밤은~ 오늘밤은~”하며 마츠하루가 자고 있는 방에 마구 들어갔다. 마츠하루는 토이를 보고 강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토이는 “할아버지, 떨지 말아요. 할아버지, 빨리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요. 경찰차가 이 아래까지 나를 쫓아오고 있어~!”라고 말했다.
마츠하루가 종이를 찾고 있자 토이는 함께 자고 있던 마츠하루의 손자에게 “앗챵, 할아버진 안되겠다. 네 연필과 공책을 가져와라”고 말했다.
손자가 연필과 공책을 주자, 토이는 공책의 일부를 찢으며 “나는 죄 없는 사람은 공격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공부 열심히 해라”고 하면서 서둘러 나갔다.
손자는 저 사람이 토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츠하루는 처음으로 오카베 미요와 밀통(密通)의 소문이 있던 토이를 본 것이었다.
마츠하루는 토이가 유서를 쓸 생각으로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한 것을 알아챘지만, 토이에게 앗짱이라 불린 초등학교 5학년 아츠오(篤男)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토이의 시체가 발견된 곳은 거기서 산으로 3.5km 들어간 산꼭대기였다.
옆에는 몸에 달았던 회중전등, 머리띠, 일본도 1개, 비수 2개, 자전거용 램프, 잡낭(雜囊)이 가지런히 늘어 놓여 있었다. 신발도 벗어 제대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검정색 학생복의 단추를 풀고 브라우닝 9연발 엽총을 손에 들어 셔츠 위에서 심장 쪽에 총구를 대었다. 양손으로 총신을 제대로 잡고 오른쪽 다리를 펴 엄지발가락을 방아쇠에 걸었다. 총성과 동시에 손에서 총이 1미터 정도 날아갔으며, 토이는 쓰러졌다.
즉사였다.
자살 현장에는 유서가 있고, 자택에서도 2통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5시경. 이 사건에는 하나의 기묘한 전설이 항상 따라다녔다.
중일전쟁의 한창이던 시기에 벌어진 이 사건은 너무나 끔찍해 공표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라디오를 비롯한 전국의 매스컴에 빠짐없이 보도되었고 전 일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난향동작성일
2013-09-20추천
1
-
[정치·경제·사회] 백토에서 나온 거짓말 두 가지만 바로잡을게
백토에서 나온 거짓말 두 가지만 바로잡을게 [늙은도령님 글] 선친께서 이승만에 대해서 해주신 얘기의 일부를 전한다. 내 선친은 황해도 해주에서 월남했으며 생존해 계셨으면 85세이다. 선친은 안창호 집안과 친해서 이승만에 대해서 특별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최고의 자리가 아니면 늘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의 지나친 권력욕을 컨트롤 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선친이 북한에 있을 때 안창호 선생과 그의 아들로부터 들은 얘기는 상해임시정부 누구도 권력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한 이승만을 해방된 조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를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으로 묶어두는 것이 항일독립운동과 조국 해방에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군인 신분으로 미국에 단기유학 중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귀국하신 선친이 ‘미국에서 이승만이 워싱턴에 있었던 독립협회에서 밀려나자 하와이에서 새로운 독립협회를 만들어 워싱턴 주재의 독립협회를 모함하고 비난을 퍼부었고’ 그의 비열한 공작을 당할 수 없었던 타 독립운동 단체들은 이승만을 수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백분토론 화면캡처이런 내용은 선친이 미국에 유학갔을 때 이승만과 일했던 당사자들에게서 들은 얘기며, 비슷한 내용이 제1공화국에서 제3공화국까지 다룬 각종 서적과 연구, 한국과 미국의 정부자료들에 나와 있다. 이승만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컸기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하는 부도덕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실제로 독립운동을 한 적이 거의 없으며 미국에서 받은 박사학위와 고위 실세와의 친분을 이용해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쟁취해나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승만은 상해임시정부 주석에 올랐고, 그 지위를 이용해 좌우 진영을 포괄하는 조선인민공화국(이하 인공)의 초대 주석에 올랐다. 국무총리에 허헌, 내부부장에 김구, 부주석에 여운형, 외무부장에 김규식, 경제부장에 하필원, 제정부장에 조만식, 채신부장에 신익희가 임명되었다. 이들은 나름대로 상당한 식견과 전문성일 갖춘 이들이었다. 하지만 인공의 하부조직은 미흡했으며 미군과의 마찰이 잦아지면서 갈수록 힘을 잃어갔고, 당시에 압도적 세력의 우위를 확보하고 있었던 자생적 공산주의자 정당과 맞섰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힘이 부족했다. 전국적 조직과 행정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인공은 지리멸렬해졌으며, 기회주의자 이승만은 친일부역자들이 다수 포함된 정당인 한국민주당(이하 한민당)과 손을 잡았다. 한민족역사문제연구소의 자료 캡처 한민당은 보수우파와 친일부역자, 자산가들로 이루어진 미군의 유일한 파트너가 되었다. 이후 국가의 권력은 인공에서 친일부역자가 다수인 한민당의 수중으로 넘어갔고, 이때부터 여운형 등 자생적 공산주의(실제는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웠다) 정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강제로 해체됐고, 인사들은 한 명씩 암살되거나 테러로 보이는 각종 사고로 죽었다. 이들을 이용해 정권을 잡는데 성공한 이승만이 일제에 부역한 공무원과 경찰의 80~90%를 대한민국 최초의 공무원과 경찰로 고스란히 채용했다. 이는 일본군에 대한 미국의 파단 오류(도대체 미국은 모든 곳에서 오판한다)가 불러온 최악의 비극이었다. 미국의 계획대로 된 것은 베트남전쟁의 확전일 뿐이다. 이를 위해서 돈킹만 사건(한국의 천안함과 비슷함)을 소련에 의해 침몰된 것으로 조작해 베트남전 확대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쉽지 않았고 사상자가 늘어나자 전쟁을 대신해줄 군대가 필요했다. 박정희가 미군을 대신해 전쟁을 하겠다며 다른 국가에 비해 대규모 파병에 나섰다. 하지만 베트남 국민들이 공산주의자인 호치민을 숭상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은 베트남에서 철수하기 전에 베트남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화학폭탄을 무차별적으로 투하해 지옥으로 만들었다. 베트남 참전군인의 고엽제 피해가 여기서 발생했으며, 국토가 만신창이가 된 베트남은 오랫 동안 빈곤에서 탈출할 수 없었다. 반면에 한국은 베트남전을 통해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너무나 많은 베트남 사람을 죽이고 어린 여자를 건드렸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한 동안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국가적 차원의 보상과 사과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최초의 단기장교훈련기관인 십자성 출신의 선친은 베트남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베트남에 파견 나갔다 돌아온 동료 군인과 장교들로부터 들은 얘기와 서류로 확인한 것들이 여러 가지다. 특히 한국 군인이 특정 마을에서 베트공에 의해 죽으면 그 마을을 완전히 포위해 주민을 모조리 학살함으로써 다시는 베트공을 도와 한국 군인이 살해되는 일이 없도록 만들었다. 퐁니, 퐁넷 마을 이상의 학살은 참전군인들의 기억에만 있을 뿐이다. 이는 베트남 국민들에 대한 확실한 경고였고,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은 후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국인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고, 베트공도 한국 군인을 죽일 때 가급적 주민의 도움을 받지 않았고 한국군과의 전투가 가급적 피했다. 베트남전에서 보여준 한국군의 잔인함과 비인도적 행태는 거의 전쟁범죄 수준에 이를 정도라 잔혹했지만 미국의 편에 서있었기 때문에 국제적 질타와 책임을 받지는 않았다. 한국 군대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죄악은 결코 작지 않으며 전쟁을 치르면서 미군으로부터 대여 받은 M16을 대량으로 국내에 빼돌리기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은 베트남 국민의 희생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따라서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호치민 동상에 헌화했을 때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어야 마땅하다. 베트남전은 박정희의 최고업적인 압축성장에 엄청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구원의 손길을 받은 일부의 라이 따이한 일본의 위안부 문제처럼 한국 군인들도 수없이 많은 베트남 여성들을 건드리면서 라이 따이한이라는 수많은 아이들을 낳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군인들은 이들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거의 다 방치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따라서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베트남 전쟁의 아버지이자 공산혁명의 국부인 호치민의 무덤에 헌화를 하면서 최소한의 김대중과 노무현 이상의 사과는 있어야 했다. 아무튼 교학사 역사교과서에서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고 김구의 역할을 줄이고, 친일파들의 행적을 왜곡하고, 베트남전을 미화한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넘어 당대의 양국 국민들을 욕보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분명 이승만 정권은 극도로 부도덕했고 부패와 비리로 얼룩졌으며 6.25전쟁이 일어나자 국민들이 피신할 때 이용할 한강 다리를 폭파함으로써 자신의 도주에 시간을 벌기도 했다. 박정희도 마찬가지다. 그를 미화할 수 있는 것은 극도의 노동착취와 정경유착, 베트남 참전으로 대책 없는 압축성장을 이룩한 것뿐이다. 몇몇 경제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각종 통계자료와 지수, 수치를 근거로 박정희 시대의 압축성장이 허상이었음을 입증한 것도 제법 나와 있다. 필자가 뉴라이트가 만든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분노하는 것에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승만과 베트남전의 미화란 그중에서도 최상에 속한다.
가자서작성일
2013-09-11추천
9
-
-
[엽기유머] 역사를 이끈 그사람들 이 나이에 무얼했을까 ?
1세:누구나 비슷하게 생겼다2세:될 놈은 약간 이상한 기색을 보인다3세:푸이, 중국 황제가 되다.모짜르트,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다4세:마이클 잭슨, 가수로 데뷔하다5세:모짜르트, 협주곡을 작곡하다6세:이소룡, 연기를 시작하다7세:베토벤, 무대에 서다8세:편지를 쓸 수 있다 9세:모짜르트, 3곡의 교향곡을 작곡하다10세:에디슨, 과학실험실을 만들다11세:할머니보다 키가 커진다12세:로리타가 험버트를 만나다13세:빌 게이츠, 컴퓨터 프로그램을 시작하다14세:줄리엣, 로미오와 연애를 시작하다15세:복녀, 홀애비와 결혼하다 펠레, 프로축구선수로 첫 골을 넣다16세:이몽룡, 성춘향과 연애를 시작하다. 아리스토텔레스, 대학(아카데메이아)에 입학하다17세:유행가에 자주 등장한다18세:테레사 수녀, 인도에 가다19세:엘비스 프레슬리, 가수 생활을 시작하다20세:다이애나, 찰스 황태자와 결혼하다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하다21세:스트브 잡스, 애플컴퓨터사를 설립하다22세:알리,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다23세:주말이 갑자기 의미가 있어지기 시작한다24세:마를린 몬로, 배우 생활을 시작하다25세:니체, 바젤대학 교수가 되다26세:월트디즈니, '마키 마우스'를 발표하다27세:로빈슨 크루소, 해변에 도착하다28세:김영삼, 국회의원에 당선29세:펠레, 1000번째 골을 성공30세:베토벤, '월광 소나타'를 발표하다31세:아직 29살이라고 우길 수 있다32세:군대에 지원해도 받아주지 않는다33세:예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다34세:정일권, 육군참모총장이 되다35세:석가모니, 도를 깨치다 나폴레옹, 황제가 되다 퀴리부인, 남편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다 모짜르트 사망하다36세:마가렛 미첼 여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발표하다37세:가족을 위해서 캠코더를 산다38세:병으로 죽으면 엄청 약오른다39세:걸리버, 여행을 시작하다40세:헨리 포드, 포드사를 설립하다41세:이주일, 텔레비젼에 첫 출연하다42세:아이슈타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다43세:퀴리부인,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다 유진오,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다44세:박정희 소장, 5.16 혁명을 일으키다45세:히틀러, 독일의 지도자가 되다46세:간통죄에 많이 걸린다47세:대학을 졸업하고 몇년이 지났는지를 계산해야 알 수 있다 한국의 정동영 국회의원이 방송통신대학 2년에 편입했다48세:통계학적으로 돈을 제일 많이 번다49세:'9'라는 말이 절실히 느껴진다50세:히틀러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다51세:태어난 지 반세기를 넘어선다52세:카드 한 벌과 수가 같다53세:숀 코너리, 마지막으로 007시리즈에 출연하다 사담 후세인, 걸프전을 일으키다54세:라식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55세:정년이 시작된다56세:손주가 자식보다 더 사랑스럽다 노무현,한국화합 대통령당선57세:윌리엄 와일러 감독, 영화 '벤허'를 만들다58세:캐롤 요셉 워틸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되다59세:올브라이트, 여성으로 처음으로 미국 국무장관이 되다60세: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 되다61세:'경험'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62세:피카소, 21살의 프랑수와즈 질로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63세:미국에 사는 여인 아셀리 키, 인공 수정으로 출산에 성공하다64세:자신의 후임자를 찾아야 한다65세:교수들의 강제 퇴직 파티가 열린다66세:아라파트, 팔레스타인 대통령이 되다67세:"이제 늙었어"라는 말을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린다68세:안필준 전 보사부장관, 의학박사 학위 취득하다69세:테레사 수녀, 노벨평화상 수상하다70세: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지막으로 영화 출연하다71세:짐을 들고 있으면 주변 사람이 욕을 먹는다72세:부시 전 미국 대통령, 스카이 다이빙에 성공하다73세: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 재선되다74세: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다75세:넬슨 만델라, 남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다76세:기저귀를 차고 자야 맘이 편하다77세: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에 재선되다78세:앞으로의 1년씩이 인생의 보너스로 느껴진다79세:프랑크 시나트라, 마지막 리사이틀 가지다80세:어디를 가나 값을 깍아 준다81세:'長壽'라는 말이 어울린다82세:톨스토이, 가출하여 시골역에서 사망하다83세:괴테, <파우스트> 완성하다84세:보청기 없이는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85세:프랑스에 사는 장 칼몽 할머니, 펜싱을 배우기 시작하다86세:짠 음식도 이제 신경 쓸 필요가 없다87세:TV연속극이 본방송인지 재방송인지 알 수가 없다88세:사진첩에 있는 사람들 중 반은 기억할 수가 없다89세:파블로 피카소, 자화상을 완성하다90세:자식들 이름을 가끔씩 잊어버린다91세:샤갈, 마지막 작품을 발표하다92세:야생 버섯을 마음대로 먹어도 상관 없다93세:가끔씩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린다94세: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여준다.95세:앞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이 자식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96세:혼자 화장실에 갔다가는 되돌아 나올 수 없다97세:큰 아들이 정년을 맞는다98세:알츠하이머에 걸리기에는 너무 늦었다99세:고지가 바로 저기다100세:장 칼몽 할머니, 자전거 타기를 즐기다.107세:일본 쌍둥이 할머니 자매 중 킨 할머니 사망하다.120세:장 칼몽 할머니.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다.121세:장 칼몽 할머니, 'Time's Mistress'라는 노래를 발표하다123세:살아 있으면 기네스북에 오른다
면죄자작성일
2013-02-02추천
2
-

[엽기유머] 전 세계 많은 기부금을 낸 인물 top10
10위 리자청 (Li Ka-shing)
국적 : 중국
나이 : 85세
직업 : 청콩그룹 회장
2012년 10월 기준 순자산 : 255억 달러 (27조 8,205억 원)
2012년 10월 기준 총기부금 : 16억 5,000만 달러 (1조 8,002억 원)
9위 제임스 스토워즈 (James Stowers)
국적 : 미국
나이 : 89세
직업 : 아메리칸 센추리 설립자
2012년 10월 기준 순자산 : 1억 달러 (1,091억 원)
2012년 10월 기준 총기부금 : 20억 달러 (2조 1,820억 원)
8위 아짐 프렘지 (Azim Premji)
국적 : 인도
나이 : 68세
직업 : 위프로 회장
2012년 10월 기준 순자산 : 159억 달러 (17조 3,469억 원)
2012년 10월 기준 총기부금 : 21억 달러 (2조 2,911억 원)
7위 마이클 블룸버그 (Michael Bloomberg)
국적 : 미국
나이 : 71세
직업 : 뉴욕시장
2012년 10월 기준 순자산 : 250억 달러 (27조 2,750억 원)
2012년 10월 기준 총기부금 : 28억 달러 (3조 548억 원)
6위 조지 카이저 (George Kaiser)
국적 : 미국
나이 : 70세
직업 : BOK파이낸셜 회장
2012년 10월 기준 순자산 : 100억 달러 (10조 9,100억 원)
2012년 10월 기준 총기부금 : 33억 달러 (3조 6,003억 원)
5위 엘리 브로드 (Eli Broad)
국적 : 미국
나이 : 80세
직업 : 브로드재단 이사장
2012년 10월 기준 순자산 : 63억 달러 (6조 8,733억 원)
2012년 10월 기준 총기부금 : 35억 달러 (3조 8,185억 원)
4위 고든 무어 (Gordon Moore)
국적 : 미국
나이 : 84세
직업 : 인텔 공동설립자, 인텔 명예회장
2012년 10월 기준 순자산 : 48억 달러 (5조 2,368억 원)
2012년 10월 기준 총기부금 : 50억 달러 (5조 4,550억 원)
3위 조지 소로스 (George Soros)
국적 : 미국 (출생 : 헝가리)
나이 : 83세
직업 :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회장
2012년 10월 기준 순자산 : 190억 달러 (20조 7,290억 원)
2012년 10월 기준 총기부금 : 85억 달러 (9조 2,735억 원)
2위 워렌 버핏 (Warren Buffett)
국적 : 미국
나이 : 83세
직업 :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2012년 10월 기준 순자산 : 460억 달러 (50조 1,860억 원)
2012년 10월 기준 총기부금 : 172억 5,000만 달러 (18조 8,198억 원)
1위 빌 게이츠 (Bill Gates)
국적 : 미국
나이 : 58세
직업 : 마이크로소프트 의장
2012년 10월 기준 순자산 : 660억 달러 (72조 60억 원)
2012년 10월 기준 총기부금 : 280억 달러 (30조 5,480억 원)
미국 포브스에서 2012년 11월 5일에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인물 상위 10명이다.
-
-
-
-
[자유·수다] 콩의 놀라운 힘
★ 콩의 놀라운 힘 ★
뼈 속까지 건강하고 날씬해진다! 콩물의 놀라운 힘 !
콩 속에는 어떤 성분이 들어 있을까?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 불릴 정도로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완전 단백질 식품이다. 특히 콩 속에 들어 있는 식물성 단백질은 40대 여성들이 걸리기 쉬운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사포닌, 이소플라본과 같은 항암 물질이 들어 있어 콩을 즐겨 먹으면 유방암과 전립선암, 대장암, 폐암 등에 걸릴 위험이 적어진다. 콩에는 뇌의 활동을 촉진시키는 레시틴도 풍부하게 들어 있어 머리 좋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평소 콩을 많이 먹이는 것이 좋다
건강과 피부미용에 특히 좋은 콩물
우리 몸에 좋은 영양분이 쏙쏙 들어찬 콩에도 한가지 약점이 있다. 바로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 삶거나 구워 조리를 해도 70% 정도밖에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콩으로 청국장이나 된장, 간장, 두부 등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소화흡수율을 높여왔다.
하지만 이런 콩 가공품에도 단점은 있다. 염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많이 먹으면 심장병이나 고혈압,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것. 하지만 두유만큼은 예외로 소화흡수가 잘 될 뿐 아니라 아무리 많이 마셔도 염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 효과1. 소화 잘 되는 단백 먹거리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콩을 갈아서 먹기 때문에 흡수가 훨씬 빠른 것이 장점이다. 또한 단백질 식품인 콩물을 섭취하면 포만감이 생겨서 조금만 먹어도 금세 배가 불러진다. 때문에 먹는 양이 줄어들어 다이어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효과2. 부기와 변비를 잡는다
콩물에 남아 있는 식이섬유가 혈관을 깨끗하게 만들어 혈액순환이 원활해진다. 때문에 콩물을 마시면부기가 빠지는 효과가 있다. 변비가 심한 경우는 콩을 갈아 거르지 말고 건더기까지 함께 먹으면 좋다. 속에 들어 있는 풍부한 섬유질이 대장활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변비를 없애주기 때문.
▶ 효과3. 피부를 윤기 있게 가꿔준다
콩물에는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 무기질 등 피부에 좋은 영양분이 골고루 함유되어 있어 피부를 윤기 있게 가꿔준다. 또한 신진대사를 도와 얼굴에 환한 혈색이 돌게 한다.
▶ 효과4. 고혈압인 사람에게 특히 좋다
식물성 단백질 덩어리인 콩물은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특히 좋은 식품이다.
[미니 인터뷰] 화제의 콩물, 남들은 어떻게 먹을까?
드라마 <인어아가씨>의 작가임성한씨
MBC 드라마 <인어아가씨>에서 금여사(김용림)가 가족들을 위해 만드는 건강식으로 등장한 콩물. 임성한 작가가 직접 마시고 효과를 본 다음 드라마에 소개한 것으로 드라마가 방영되자마자 시청자들의 문의가 빗발쳐 제작진이 드라마 홈페이지에 만드는 법을 공개했을 정도.
검은콩, 검은깨, 잣, 호두를 갈아 만든 이 콩 음료는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여 영양 간식은 물론 한끼 식사로도 그만이다. 건강을 위해 점심 대용으로 꾸준히 먹고 있는 임씨는 군살이 빠지는 것은 물론 만성 변비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만드는 법
① 검은콩을 물에 하룻밤 정도 불려서 껍질을 제거한다.
② 콩을 삶을 땐 쌀알 만큼 안 익은 부분이 남도록 삶는다. 너무 푹 익으면 메주 냄새가 나고, 반대로 덜 익으면 비린 맛이 나므로 주의한다.
③ 검은깨는 씻어서 살짝 볶아낸다.
④ 검은콩, 검은깨, 잣, 호두를 믹서에 넣고 생수를 부어 갈아준다. 잣, 호두를 준비하기가 번거로우면 콩과 깨만 갈아도 된다.
아침공복에 콩물마시는 강정미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콩물을 마셔요. 우리집 콩물은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 것이 원칙이죠. 전날밤 콩을 불려놓았다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살짝 끓인 다음 블렌더에 갈아 마셔요. 처음에는 비리기도 했지만 자꾸 마시다 보니 콩국수 콩물을 마실 때처럼 고소한 맛이 느껴져요. 콩물을 먹은 다음부터 변비가 사라졌고, 피부관리실에 다닌 것도 아닌데 피부가 뽀얘졌어요. 더 놀라운 것은 시어머니의 다리 저림 현상이 줄었다는 거예요.”
검은콩으로 차를 끓여 마시는 박주민씨
“서리태라고 하는 검은콩으로 차를 끓여 마셔요. 검은콩에는 콜레스테롤을 없애주는 필수 지방산이 풍부해서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특히 여자들이 많이 걸리는 골다공증에 좋다더군요. 검은콩을 깨끗하게 씻은 후 물기를 빼고 팬에 한번 볶아요. 그다음 콩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거품이 날 때까지 한소끔 끓입니다. 까만 콩물이 우러나면 체에 걸러 콩물을 받아 차처럼 마셔요. 검은콩 차를 마신 지 한달 정도 지났는데, 부기가 많이 빠져 얼굴이 갸름해졌다는 얘길 듣고 있어요.”
몸에 좋은 콩, 제대로 알고 먹기
노란콩보다 검은콩이 더 좋을까?
서리태인 검은콩은 예로부터 신장 치료를 위해 민간약재로 많이 쓰였다. 맛이 담백하고 고소해 콩자반을 해 먹거나 밥에 넣어 먹는 경우가 많다.
백태라 불리는 노란콩은 메주나 두부를 만들어 먹거나 볶아서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고소한 콩가루를 내기도 한다. 백태의 색깔을 내는 노란 색소는 이소플라본이 주성분으로, 항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런 몇가지를 제외하면 노란콩이나 검은콩의 영양상 차이는 거의 없다. 때문에 콩물을 만들 때 노란콩이나 검은콩 어떤 것을 선택해도 상관없다.
신토불이 우리 콩을 고집해야 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콩 소비량의 10%만을 자급하고 있고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검은콩의 경우 중국산이 많고, 수입 노란콩의 대부분은 미국산이다. 미국에서 수입한 콩은 국산콩보다 기름기가 많은 대신 단백질 함량은 적다.
또 수입콩은 운송과 저장을 위해 방부제를 뿌릴 뿐 아니라, 요즘은 유전자 변형 콩의 유해 논란까지 번져 왠지 먹기가 불안한 것이 사실. 때문에 건강을 생각한다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우리 콩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영양분이 쏙쏙 들어찬 콩물 만들기
재료
노란콩(또는 검은콩) 2컵, 물 적당량, 소금 약간
만들기
① 노란콩은 물을 붓고 4~5시간 정도 두어 충분히 불린다.② 불린 노란콩은 손으로 문질러 씻어 껍질을 벗기고 물기를 뺀다.③ 냄비에 물을 뺀 노란콩을 담고 물을 충분히 부어준 다음 소금을 넣고 삶는다.④ 노란콩이 무르게 익으면 한김 식힌 다음 믹서에 넣어 곱게 간다.⑤ ④는 고운 체에 걸러 건더기는 빼고 콩물을 받아낸다.⑥ 콩물에 소금을 넣어 적당히 간한 다음 마신다.
[전문가에게 물었어요] 콩물, 효과 두배 더 높이는 노하우
1.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콩물이 좋다 - NO
아침에 일어나면 차고 신선한 것이 당기지만, 몸을 생각한다면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콩물보다는 미지근한 것이 더 좋다. 너무 차가운 콩물은 배를 차게 해서 배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
그래도 찬 것이 좋다면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기 전에 잠깐, 컵에 물방울이 맺힐 정도까지 기다린다. 10~15분 정도 기다렸다 먹으면 OK!
2. 갈증날 때 음료수처럼 한번에 마신다 - NO
갈증이 날 때 설탕이 첨가된 탄산음료 대신 콩물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매우 좋다. 하지만 목이 마르다고 차가운 콩물을 한번에 마시는 건 피하도록 한다. 차가워진 위를 따뜻하게 만들려고 몸속의 혈액이 위로 갑자기 몰리게 되어 몸에 무리가 생기는 건 물론 배탈이나 어지럼증, 냉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 천천히 한모금씩 꼭꼭 씹어 마셔야 무리가 없다.
3. 냉증인 사람은 콩물에 꿀을 섞어 마신다 - YES
콩은 몸을 차게 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냉증으로 늘 한기를 느끼는 사람은 콩물에 몸을 따뜻하게 하는 꿀을 1큰술 정도 넣어 먹는 것이 좋다. 하지만 당뇨가 있거나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열량이 높은 꿀 대신 검은깨나 대추를 갈아 넣어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딱 3주면 3kg빠지는 콩물 다이어트법
아침식사 없이는 건강도, 날씬한 몸매도 없다
사실 아침을 맛있게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식욕 자체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출근 시간에 쫓기다 보면 허둥지둥 먹기가 일쑤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이렇듯 별로 당기지 않는 식사다 보니 아예 굶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제부턴 콩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여보자. 콩물에 생식이나 미숫가루를 타서 먹는 것도 좋은 방법.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다
어떤 음식이든 잘근잘근 오랫동안 씹어 삼키면 위와 장을 보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식욕중추의 활동이 강화되어 과식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또한 오래 씹으면 당연히 먹는 속도가 느려지게 되어 금세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 이런 이유로 콩물 역시 한번에 마시지 말고 한모금씩 꼭꼭 씹듯이 먹는 것이 좋다.
밥 먹기 1시간 전에 마셔 식욕을 억제한다
밥 먹기 1시간 전 콩물을 마시면 포만감이 생겨 식욕이 억제되는 효과가 있다. 또 위액을 희석시켜 식욕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과식하지 않게 도와준다. 그리고 식사 때는 물을 마시지 말고 식사가 끝난 1시간 후 생수를 한잔 정도 마시면 소화도 잘 된다.
시간 절약파를 위한 간편 다이어트
콩가루로 빻아서 물에 타 먹는다
콩물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만들어 먹어야 한다. 때문에 매번 만들기가 번거롭다면 콩가루를 내어 물에 타 먹는 것도 좋은 방법. 콩은 볶거나 갈 경우 열에 의해서 비타민의 일부가 손실될 뿐 단백질, 지질, 무기질 등의 영양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노란콩이나 검은콩을 팬에 볶은 다음 껍질을 벗겨 가정용 분쇄기로 빻거나 ○집에 가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온다. 가루를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는다. 물에 꿀과 함께 타서 식사 대신 먹거나 양념처럼 반찬에 넣어 먹어도 좋다.
▶ 첫째 주
콩가루 200g과 검은깨 가루 10g을 생수 200ml에 타서 저녁식사 대신 먹는다. 아침과 점심은 평소 섭취량의 ⅔만 먹어 약간 부족한 듯 배를 채운다. 변비가 심하다면 생수 대신 요구르트에 타서 먹는 것도 좋은 방법.
▶ 둘째~셋째 주
아침은 평소처럼 먹고, 저녁식사와 점심식사로 콩가루와 검은깨 가루를 생수나 요구르트에 타서 먹는다. 먹는 양이 줄어 배가 고플 수 있으므로 야채 샐러드나 과일을 곁들여 먹는다.
▶ 넷째 주
저녁과 점심에 콩가루와 검은깨 가루를 먹는다. 이 기간이 되면 잘 참아왔던 사람도 먹기가 싫어질 수 있다. 이때 생수 대신 우유나 주스, 요구르트 등에 타서 먹거나 꿀을 넣어 먹는다
[응용해 보세요] 콩물로 만든 건강요리 3
콩물달걀찜
재료달걀 4개, 콩물 1컵, 소금 약간, 새우 50g, 표고버섯 2개, 브로콜리 30g
만드는 법① 달걀은 깨뜨려 볼에 담고 잘 풀어 준비한다.② 새우는 소금물에 흔들어 씻어 건져 물기를 뺀다.③ 표고버섯은 따뜻한 물에 불려 기둥을 떼고 가늘게 채썬다.④ 브로콜리는 작게 송이를 떼어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친 다음 찬물에 헹구어 물기를 뺀다.⑤ 달걀 푼 물에 콩물과 소금을 넣고 고루 섞어 체에 한번 걸러 그릇에 7부 정도 담는다.⑥ 김이 오른 찜통에 ⑤를 넣어 찐다. 달걀 푼 물이 익기 시작하면 손질한 새우와 표고버섯, 브로콜리를 올리고 조금 더 쪄낸다.
콩물녹차국수
재료녹차국수 150g, 콩물 4컵, 다시마물 2컵, 소금 약간, 방울토마토 5개, 구운 김 ½장
만드는 법① 콩물에 다시마물과 소금을 넣고 섞어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만든다.② 방울토마토는 씻어 꼭지를 떼고 얇게 썬다.③ 김은 팬에서 살짝 구워 가늘게 썬다.④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녹차국수를 넣어 삶는다. 녹차국수가 한소끔 끓으면 찬물을 한컵 부어 다시 끓인 다음 건져내어 찬물에 헹구어 사리를 짓는다.⑤ 그릇에 녹차국수를 담고 손질한 방울토마토와 김을 얹고 콩국물을 부어낸다.
두유야채주스
재료셀러리 4대, 토마토 2개, 사과 1개, 콩물 3컵, 소금 약간
만드는 법① 셀러리는 물에 씻어 겉면의 단단한 부분을 칼끝으로 벗겨내고 짧게 썬다.② 토마토는 씻어 꼭지를 떼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③ 사과는 껍질을 벗겨 씨를 제거하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④ 블렌더에 콩물과 손질한 셀러리, 토마토, 사과, 소금을 넣고 곱게 갈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