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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김정일이 즐겼던 요리들
후지모토 겐지(가명) 1982년부터 2001년까지 김정일과 그 일가들한테 요리를 해준 담당 요리사였던 일본인임 여기서 나온 정보들은 이 사람이 말한 정보가 대다수이니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김정일은 깊고 진한 맛을 좋아하여 차림표에도 중화요리가 많다. 특히 상어 요리는 김정일이 매우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 중에서도'야자상어날개탕'은 가장 특별한 요리로 러시아와 중국의 인사가 북조선을 방문했을 때 만찬석상에도 내놓는다. 또한 상어 지느러미를 일주일에 세 번이나 먹는 경우도 있다. ‘상어 지느러미와 전복죽’, ‘상어 지느러미 찜’, ‘상어 지느러미 유부 수프’가 사흘 밤 계속 나온 적도 있다. 김정일은 스테이크도 좋아해서 프랑스로부터 직접 요리사를 부른 적도 있다. 북조선에서는 고기를 완전히 익혀 먹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는 ‘미디엄(Medium)’이나 ‘레어(Rare)’가 더 맛있다는 것을 알고, 그 후로 김정일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는'미디엄이나 레어'로 굽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한편 김정일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식탁에 오르는 북한요리 중 한국 특유의 매운 음식은 적었고, 삼계탕이나 설백탕(雪百湯, 소뼈를 우려낸 국물 설렁탕)등이 많았다. 특히 한국의 국물 요리중에서 가장 좋아했던건 단고기(보신탕) 요리였고 연중 세 번 찾아오는 복날에는 단고기 요리가 반드시 식탁에 올랐다. 내 담당인 초밥(스시)은 매주마다 한 끼는 꼭 먹었다. 일본요리의 섬세한 맛은 김정일의 미각에도 맞는 것 같았다. 생선회를 먹을 때도 꼭 고추냉이(와사비)를 푼 간장에 찍어 먹었다. 또한 내가 처음으로 김정일에게 성게알 초밥을 권한 사람인데 김정일은 처음에는 성게알의 모습을 보고 영 내키지 않는듯 하더니 성게알 초밥을 먹고 매우 맛있어했다. 특히 ‘뱀장어 캐비어 초밥’은 내가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것인데, 뱀장어의 단맛과 캐비어의 짠맛이 일품이라며 호평을 받았다. 김정일이 초밥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초밥은 참다랑어 초밥이었다. 내가 원산 초대소에서 김정일을 처음 만났을때도 내가 만든 참다랑어 초밥을 각 부위별로 잔뜩 먹었다. 송이버섯도 가을에는 자주 식탁에 오르는데, 한 사람당 7~8개씩 먹는다. 송이버섯을 넣고 밥을 지을 때마다 김정일은 “향이 매우 좋군!”하며 좋아했다. 김정일의 요리에 대한 지론은 첫째가 눈(모양과 색), 둘째가 향기, 셋째가 맛이었다. 생선회를 생선 모양 그대로인 상태로 올렸을 때도 보기가 좋다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정일은 탁월한 미각의 소유자다. 그것을 입증해줄 만한 일화가 있다. 1992년, 8번 연회장 철판구이 코너에서 초밥을 만들고 있던 내게 김정일이 한마디 했다. “후지모토, 오늘 초밥은 평소와 맛이 다른데.” 그 날 밤 김정일은 내가 초밥을 만들기 전부터 술을 많이 마셨다. “그래서 내가 혹시 과음하신 탓이 아니겠느냐”고 말하자 김정일은"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리실로 돌아가 사용한 조미료 양을 확인했다. 설탕이 평소보다 10g 덜 들어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김정일뿐이었다. 나만 만들 수 있는 메뉴인 ‘후지모토 우동’도 자주 주문을 받았다. 이 요리는 꿩고기로 국물을 우려내야 하기 때문에 주문을 받으면 오전 중에 꿩 사냥을 나간다. 꿩은 망원총으로 잡는데, 총을 쏠 때는 조준하는 지점에 주의해야 한다. 머리가 아닌 몸체에 총알이 박히면 요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꿩은 머리가 작은데다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에 머리를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아무튼 잡은 꿩고기로 국물을 우려내면 그 맛이 또한 일품이다. 김정일도 먹을 때마다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마신다. 그리고는 “이 맛은 후지모토밖에 낼 수 없어”라며 언제나 나를 칭찬한다. 한편 밥을 짓기 전에는 요리사와 웨이터가 쌀을 한 톨 한 톨 검사한다. 쌀알의 모양이 일정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부서져나간 것은 빼고, 형태가 완전한 것만을 고른다. 밥은 특별히 제작한 가마솥으로 만들고 요리 특별한 나무로 된 장작을 사용한다. 음식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나는 여러 차례 외국에 다녀왔다. 김정일이 무엇을 사오라고 할 때마다 항공편을 이용해 음식 재료를 사러 가는 것이다. 싱가포르에는 과일을, 러시아와 이란에는 캐비아(소금에 절인 철갑상어 알)를 사러 갔었고, 그 밖에 중국과 유럽, 일본에도 자주 다녀왔다. 일본에서는 주로 생선을 구입했다. 질 좋은 다랑어와 고영희 부인이 좋아하는 물오징어등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전부 1,200kg이나 되는 양을 구입한 적도 있는데, 그때는 운반하는 데 드는 운송료만도 엄청났다. 나는 항공회사와 담판을 벌여 운송료를 엄청나게 깍은 적도 있다. 북조선에 돌아와 그 사실을 보고하자, 김정일은 기뻐하며 그 돈을 모두 내게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멋들어지게 거절했다. “그러면 제가 노력한 의미가 없어집니다.” 말린 생선도 몇 가지 구입했는데, 김정일은 그 중에서도 꽁치, 전갱이, 꼬치고기, 바다빙어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다. 먹는 도중에 내가 “말린 생선은 무를 갈아서 함께 먹어야 비린내가 없어집니다.” 라고 말하자 김정일은 “일본 사람들의 식생활은 꽤 섬세하구만”하며 감탄했다. 어느 날, 식사 도중에 김정일이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후지모토, 일본에 쑥찹쌀떡이 있지 내일 가서 좀 사와라.” 그는 가는 김에 일본 담배도 종류 별로 사오되, 이번 출장은 2박3일 안에 돌아와야 한다고 못박았다. 나는 곧바로 출발하여 북경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긴자에 있는 미쓰코시 백화점에 전화를 했다. 긴지로 다이후쿠라는 떡집을 통해 찹쌀떡 100개와 쑥찹쌀떡 100개를 준비해놓으라고 했다. 다음날 오전 중에 물건을 받은 다음 다시 북경을 거쳐 돌아와야하는 강행군이었다. 찹쌀떡은 개당 100엔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구입하기 위해 든 교통비와 숙박비를 포함하여 계산하면 개당 1,500엔인 셈이었다. 이렇게 해서 평양과 도쿄를 잇는 작업을 단숨에 끝마친 나는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떡과 여러 종류의 일본산 담배를 들고 김정일이 기다리는 신천 초대소로 향했다. 일본에서 종류별로 사온 담배를 모두 바카라용 테이블 위에 늘어놓자, 김정일은 맨솔 담배를 집어들었다. 당시 김정일은 “로스먼드 로열”이라는 영국산 담배를 피웠는데, 일본의 맨솔도 한번 피워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 뒤 맨솔 까르띠에를 피우기도 했는데, 그는 나중에 아예 담배를 끊었다. 일본에서 사가지고 온 떡은 81과의 검사를 받아 합격 통보를 받은 후 먹었다. 김정일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일본의 찹쌀떡은 정말 맛있어. 왜 우리 요리사들은 이렇게 만들지 못할까 쑥 향기도 아주 좋아.” 1989~1991년 3년 동안은 김정일의 관저에도 자주 갔다. 관저에는 술 창고가 하나 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 그 안에는 세계 각지의 명주(名酒)들로 가득 차 있었다. 1만 병은 족히 되어 보였다. 일본 술도 있고, 소주도 있었다 하루는 김정일이 “일본 술 가운데 여기에 없는 것을 찾아봐”하기에 하나하나 점검했다. ‘산토리 임페리얼’이 없었다. 산토리 임페리얼은 일본의 최고급 위스키다. 김정일은 다음에 일본에 가면 반드시 사오라고 했다. 그 후 기회가 닿아 일본에 갈 때가 있었다. 나는 귀국할 때 임페리얼을 다섯 병 사가지고 들어와 김정일에게 따라주며 말했다. “이 임페리얼은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확 퍼져 주며 전혀 걸리는 느낌이 없습니다.” 김정일은 처음 한 모금을 음미하듯이 마시더니 감탄했다. “맛이 좋아, 정말 확 퍼지는 느낌이야.” 김정일이 집권중인 기간동안 아사한 사람의 수는 “최소” 40만~50만명으로 추정중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28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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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공일기장] 여자간 싸움은 남자보다 무섭다 [중편]
이제 20대 초, 중반대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젊은 끼를 발산하지 못하고 몇 년간 좁다란 강의실에서 공부만 주구장창 하니, 자투리 시간에 스트레스를 풀 방법은 존재해야겠지 남자들은 보통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한다. 나는 밴드를 했고 친한 동기들은 봉사활동을 했다. 종교 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연애를 하는 친구들도 당연히 있었다. 다만 총알처럼 쏟아지는 과제와 시험의 압박 속에서 그런 건전한 여가활동 으로도 스트레스를 풀기는 부족할 수 있었고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누적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게 조금식 새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도 아마 그런 날이였을 것이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시험 성적 발표로 인해 아침부터 강의실 게시판은 성적 확인을 위한 학생들로 북적북적 했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 성적을 확인 한 후 똥 씹은 표정으로 자리를 뜨거나 바닥에 절규하며 현실도피를 하고 있었다. 1학년 강의실과 2학년 강의실은 바로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복도에서 선후배끼리 절규하며 쏘주콜을 외치는 훈훈한 광경을 찾아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물론 게시판에 붙은 성적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자기가 미리 정해놓은) 별명으로 기재되지만 대충 점수대를 보면 상위권대는 대충 누구인지 어림짐작이 가능했다. 보통 점수는 80점 만점이지만 상대평가로 만점이 없고 1등의 성적을 기준으로 점수가 정해지는데 1등과 2등의 격차가 크면 편차가 커져서 꼴등의 경우 F를 받을 확률이 커진다. 물론 그런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학습위원장의 경우처럼 사기캐가 등장하면 상황이 조금 애매해진다. 학생회장의 경우 교외 업무가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공부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는 조금 위험했던 건지 학생회장의 표정이 조금 좋지 않아 보였다. 익명제인지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학생회장의 심기는 불편해 보였고,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하는 모습을 잠깐 보고나선, 나도 내 강의실로 갈 길을 향했다. 이때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직접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고 사건 이후에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서 내린 이야기이다. 아직 강의가 시작되기 직전 점수를 확인한 학생회장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돌아가는 와중에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러 가는 학습위원장과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이였지만 서로는 눈빛을 교환했고 둘 사이에는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맴돌았다고 한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야 하나? 학습위원장의 표정이나 모션에서 어떤 뉘앙스가 담겼고(찰나의 순간이라 누구도 보진 못했지만 추측할 뿐) 거기에 평정심이 터져버린 학생회장의 입에서 뭔가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이 나왔었다고 한다. 추측성 발언 1. 옷도 ㅊㄴ같이 입은게… 어디서 야리냐 2. 컨닝한 주제에 어디서 잘난 척이냐(근거 없음) 3. 눈 그따위로 뜨지마라 ㅅㅂㄴㅇ 등등의 도발성 발언이 시작돼었고, 마찬가지로 한 성깔 하는 학습위원장의 입에서도 좋은 말이 나왔을 리는 만무했다 둘 중 누가 먼저 멱살을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멱살을 잡은 상태에서 손이 날아가기 일보 직전까지 상황이 대치되었다. 슬슬 상황이 커지기 시작하자 둘 사이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말리려는 사람들이 둘 사이를 에워쌌다. 그 상황에서도 입에 서로 담지도 못할 쌍욕을 날리는 와중, 학생회장이 감춰두었던 궁극기를 꺼내들었다. 키가 학습위원장보다 머리 반 개 정도는 크고 손도 왕뚜껑만큼 튼실했던 학생회장이 잡았던 멱살을 풀고 학습위원장의 목 울대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그대로 교실 앞쪽까지 밀어버린 후, 땅바닥에 패대기를 쳐버린 것이다. 프로레슬링에서도 보기 힘든 고급 기술이 시전되고 육체, 정신적으로 데미지를 입은 학습위원장은 희한한 괴성을 지르며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소싯적에 운동하면서 껌 좀 씹었던 건지 학생회장은 그 순간을 틈타 학습위원장의 긴 머리채를 움켜잡고 좌우로 귀싸대기를 후려갈겼는데 당시 그 장면을 직관했던 선배의 증언에 의하면 학생회장의 표정은 일본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오니의 표정과 흡사했었다고 했다. 강의실 분위기가 개판이 되고 다른 학년들도 이 소동을 보러 몰려들었는데(그 중에 나도 있었다) 막상 벌어진 광경은 피칠갑을 한 현장이 아닌 파운데이션 가루가 흩날리는 강의실 가운데서 복날 개패듯이 사람을 패고 있는 악귀를 말리는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였다. 그 와중에 학습위원장도 정신을 차렸는지 학생회장의 단발 머리끄덩이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머리털 뽑아져라 잡아당기며 강의실이 떠나가라 쌍욕을 시전하고 있었다. 중고딩도 아니고 20대 중반을 넘긴 성인 둘이서, 그것도 여자들이 대학교 강의실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일은 내 인생에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였고, 그 결과 역시 쇼킹이였다. 사람들이 간신히 떼어낸 그 둘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항상 단정하고 예쁘장하던 학습 위원장의 얼굴은 볼터치를 좀 과하게 찍었는지 양 볼따구가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고 살짝 웨이브졌던 단정한 머릿결 역시 땅바닥에 나뒹굴면서 자다 일어난 사자 갈기처럼 사방 천지로 뻗어있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세련되게 입었던 옷들도 땅바닥에서 몇 바퀴를 구르고 나니 반 걸레짝이 되어버렸고, 이미 소리를 지를 대로 지른 상태라 쌍욕을 내뱉어도 목소리가 갈라져서 단순히 야생 멧돼지의 절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었던 것 같다. 학생회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초반 기습을 성공적으로 거두었으나 마지막에 머리끄덩이를 잡힐 줄 생각 못했는지 항상 칼각 잡혀있던 머리채가 산발이 되었으며 땅바닥에는 뽑힌 머리털들이, 장모종 개털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깔끔하게 잠겨있던 여성용 셔츠도 립밤 흔적과 파운데이션 가루가 덕지덕지 묻혀져 있고 중간 단추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건지, 마지막에 기습을 당한게 억울한 건지 눈동자는 피구왕 통키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콧구멍은 미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묵혀놓았던 스트레스 때문이였을까, 단시 학업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이였을까… 아니면 그냥 학습위원장이 싫었던 걸까… 그건 알 수 없었지만 정말로 분한듯 씩씩거리는 학생회장의 표정을 다시 생각해보니 웃기고 재미있다는 생각보다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일단 그렇게 주위 사람들의 노력으로 두 사람을 떼어놓긴 했으나 고등학교 처럼 선생님 오시기 전까지 분위기가 전환되지는 않았고, 그 두사람은 바로 조퇴를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행히 워낙 큰 싸움이였지만 행정실이나 교육실에까지 알려지지는 않았고, 그날 당장에 경찰이 출두할 정도로 어수선하지는 않았다는게 그나마 다행이였다. 그러나 그 순간만 조용히 넘어갔다 뿐이지 그들의 치킨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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