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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개건 627주년…‘2025년 진관사 수륙재’ 봉행
32분 전 | 서울경제
문서 검색 결과
(14)
[정치·경제·사회] 태극기 찢은 이재명 고발한다는 변호사
이재명 대통령의 '진관사 태극기 배지' 착용 의미 요약 1. 배지 착용 배경 일시 : 2025년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식 및 오찬 행사 착용 배지 : ‘진관사 태극기’를 형상화한 배지 부착자 : 우원식 국회의장 이 대통령에게 직접 달아줌 2. 배지의 상징성과 의미 항일 정신 과 국가 정체성 을 상징 우원식 의장: “지금이야말로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 때”라고 언급 이재명 대통령: “정말 의미 있는 태극기네요”라고 화답 3. 진관사 태극기란? 1919년 3·1운동 직후 사용된 것으로 추정 일장기 위에 먹으로 덧그려 그린 유일한 태극기 일반적인 태극기와는 태극·사괘 배열이 다름 모서리 훼손 등 실제 유물의 불탄 자국과 손상 흔적을 그대로 재현 2009년 서울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해체·복원 과정에서 발견됨 독립신문 등과 함께 보자기에 싸여 불단 뒤에 숨겨져 있었음 2021년 , 국가유산청이 보물로 지정 "일장기 위에 그려진 가장 오래된 항일 상징 태극기" 4. 정치적 해석 단순한 배지 장식이 아닌, 국가 정체성 회복 과 역사 인식 정립 에 방점을 두는 상징적 행보 이튿날 첫 국무회의 자리 에서도 동일 배지를 착용하며 일관된 메시지 전달
woonyon
작성일 2025-06-09
추천 77
[엽기유머] 수리남의 마약왕 조봉행
니네가뭐라고
작성일 2022-11-08
추천 7
[여행·사진] 주말에 찾기좋은 서울여행지 거주민도 잘 몰라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는 서울의 시원하고 예쁜 4대 계곡
바야흐로 휴가의 계절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땀이 주르륵 흐르는 요즘, 여름 피서지로 전국의계곡을 찾고 있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특히 멀리 휴가를 떠나지 않고도 도심 속에서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이 각광받고 있다. 거주민도 잘 모르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입소문이 나 있는 서울의 계곡 몇 곳이 있다.잠 못 드는 열대야와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줄 서울 대표계곡을 소개하니 여름이 끝나기 전에 가벼운 여행을계획하고 있다면 참고해보자. 물론 어디를 가든 방역수칙을철저히 준수해야 하는 것을 잊지 말고 말이다. 1. 도봉구에 위치한 시원한 물줄기가 인상적인 '도봉 계곡'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의 동사면을 흐르는물줄기에 의해 형성된 계곡이다.문사동 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도봉산의 3대 계곡중 하나로 꼽힌다.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롭기 때문에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계곡길을 따라 평이한 등산로가 이어져 있으며 계곡곳곳에 작은 폭포가 흐르고 계곡을 오르는 내내 시원한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2. 은평구에 위치한 발 담그기 제격인 '진관사 계곡'진관사 계곡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방면에 위치해있다.이곳은 골이 깊고 물이 넉넉해 피서하기 좋으며 인근에볼거리도 알차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북한산의 대표 계곡으로 불리는 이곳은 급한 경사를 따라이어진 암반과 풍경이 어우러져 서울 시내라고 믿기지 않는자연 풍경을 선사한다.주말과 공휴일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3. 종로구에 위치한 풍경이 아름다운 '수성동 계곡'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왕산에 있는 수성동 계곡은 '물소리가유명한 계곡'이라 하여 수성동(水聲洞)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다.이곳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여름에 모여 휴양을 즐기던 계곡으로진경산수화 대가인 겸재 정선의 작품 장동팔겹청에등장하면서 유명 장소로 자리 잡았다.계곡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인근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4. 관악구에 위치한 풀숲이 우거진 '신림 계곡'서울대 입구 옆의 관악산공원에 위차한 신림계곡은시원하고 넓은 물줄기가 인상적이다.전체적으로 사람이 적다고 하니 여유로운 피서를원한다면 방문해봐도 좋겠다.계곡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풀숲이 우거진 호수공원이있어 물과 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그런 덕분인지 연인 보다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더 많다는 후문이다.
인더파우치
작성일 2021-08-10
추천 8
[정치·경제·사회] 자유한국당 홍준표후보 봉축법요식 참석
오늘5.3(수)은 부처님 오신날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는 법요식이 오전에 서울의 조계사를 비롯해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봉행되었다.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불교종단의 전국 사찰들도 개별적으로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요식을 가졌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통령 후보는 5. 3.(수) 오전 조계사에서 개최된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요식에 참석했다. 홍준표 후보는 봉축법요식에 앞서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진제 종정은 "묘수가 있다. 좋은 기회가 온다"라고 덕담을 하셨다. 이어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접견실에서 예방했다. 한편 홍준표 후보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펼쳐지고 편안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축원했다. 홍준표 대통령후보는 대웅전 부처님 전에 헌화를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후보
쥐새도
작성일 2017-05-03
추천 0
[엽기유머] 아버지때린 패륜아
혼자서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은 94살의 심 모 씨. 지난해 10월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며 꾸짖다가 애지중지 키운 막내아들과 말싸움을 벌였습니다.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 급기야 심 씨는 아들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며칠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아들은 벌금 3백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아들에 대한 배신감이 컸던 심 씨는 오래전에 아들에게 물려준 임야 4천 제곱미터를 돌려받겠다며 소송을 냈습니다. '부모 부양과 제사봉행'을 조건으로 땅을 물려줬는데, 아들이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심 씨 아들은 땅을 증여받을 당시 그런 조건은 없었다며 맞섰습니다. 형사재판에 이어 또다시 민사법정에서 선 아들에게 재판부는 '배은망덕'함을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심 씨의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행위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심 씨의 주장을 제외하면 땅을 증여하면서 별도의 약정을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인터뷰:최진녕,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부담부 증여나 조건부 증여와 같이 계약에 관한 분쟁은 기본적으로 그 내용을 주장하는 사람이 제대로 입증해야만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법원 관계자는 공증까진 아니더라도, 간단한 서류상으로 부모 부양 등을 약속받았었다면 판결 내용이 뒤바뀔 수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요약:몸 제대로 못가누는 90대 어르신을 막내아들이 구타 요약2:아버지 빡쳐서 땅다시뺏음
늬기미좆또
작성일 2013-10-26
추천 2
[엽기유머] 펌)군대에서똥푼이야기
이런 말이 있다.군대는 한번은 가볼만 한 곳이다. 하지만 또 가리고 하면 혀를 깨물고 죽을 지언정 다시 그 짓은 못한다.지금부터 지금은 아듯한 추억이 되어버린 나의 처절한 군대시절 이야기를 털어 놓을까 한다.유난히도 비가 많이 오고 무더운 6월의 초여름...본행이 일병계급장에도 어느덧 때가 꾸질(곧 상병이 된다는..^^V)하게 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어제 밤에 장대비가 하염없이 퍼붇더니 아침이 되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하다. 잰장...C8군대 다녀오신분들은 아시겠지만 비오는 날은 근무가 없다. 물론 한참 발바닥에 불나도록 뛰어 나녀야 하는 일병말호봉에게는 별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비오는 날에는 훈련도 없고 어디 부대 구석진 곳에 짱박혀서 잠시나마 여유를 부릴 수 있기에 비오는 날이 기다려 진다. 그때의 여름은 그 기다리던 비가 너무 자주 내서서 문제였지만......그런데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군대에는 징크스가 있다.그넘의 비와 눈은 언제나 밤에만 온다. 그리고 일요일날 무척자주 온다..^^;본행이 군대에 있을때 크리스마스 이브에 엄청나게 눈이 왔다. ㅋㅋㅋ크리스마스 내내 눈치웠다...^^ 밖에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난리가 났지만 군대에서는 그것보다 비참한 것이 없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우리 부대의 화장실은 푸세식(거 믿에 뚫려서 빼지면 큰일나고 뭐 그런거..^^;)이었다.지금의 군대는 화장실들이 거의 개량화되어서 푸세식화장실을 구경도 하기 어렵지만 그당시만 해도 전방의 낙후된 부대 시설에는 푸세식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 어제 밤에 장대비가 내리더니 그 비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짜증나는 장대비가 화장실 옆에 파두었던 배수로를 묻고 화장실로 침입하여 똥덩리들과 한몸이 되어서 걸죽한 건더기들이 곧 밖으로 넘어오려고 하고 그 위에 늘 화장실에 가면 만날 수 있는노란색 꿈틀이(구더기-파리의 유츙)들이 일부는 잠수를 일부는 물위에 떠서 세상구경을 하고 있었다.본행이 부대로 막전출되었을때 정말 화장실 가는 것이 고역이었다.하지만 일병계급장에 때가 끼다가 보니 이제는 어느덧 화장실에서 꿈틀이들의 유형을 지켜보면서 초코파이를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내공까지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아무튼 전부대에 비상이 걸리고 말았다.어제 밤에 내린 비는 이미 멈췄지만 만약에 한번더 내린다면 그야말고 전부대는 똥물의 홍수에 잠기게 되고 꿈틀이들에게 점령당하고 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큰일은 화장실에서 큰일을 치를 수가 없니다는 것이었다.넘치지는 않아서 볼 수는 있지만 그 이후에 튀어오르는 후폭풍은 어찌 감당을 하리오...ㅜㅜ서울이라는 상표를 가진 모우유 광고와 같이 왕관의 형태로 튀어올라 나의 잘익은 복숭아 엉덩이를 강타하는 것이다. 윽 생각만 해도.....(나는 이 사건이후에 한동안 우유를 못먹있다. 이상하게 우유만 보면 이시건이 생가기 나서...^^;)마무튼 인사계(지금 행정보급관)님의 엄명이 떨어졌다.나이는 50정도인데 내가 보기에는 거의 울 할마버지 연세는 되어 보이는 인사계님은 하루종일 부대 주변을 빙빙 돌면서 일거리를 만들어서 애들에게 나눠준다. 아무튼 눈에 않뛰는 것이 좋지만 걸리면 별로 좋을게 없다."뒷간이 이게 뭐꼬...애래가지고 어찌 맘놓고 뒷일을 보겠나? 어찌 이래가지고 전투력이 나오겠냔 말이다..."하여간 누가 군인 아니랄까봐 모든 사건은 그분한테는 전투로 연결되었다."당장 사단에 연락해서 지원부탁하고 똘똘한넘 한 다섯만 불르그라..."무슨 전투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화장실 한번 넘치는 것 같고 전투력운운하고 먼 사단까지 지원을 요청하나 했지만 곧 지원병력이 도착했다.등허리에 큰 물탱크..아니 똥탱크를 지고 나타난 육중한 트럭과 내동생뻘 밖에 않되는 하사 하나와 상병계급장이 반질거리는 운전병하나가 얼굴에 뚱씹은 표정(직업은 못 속인다더니...얼굴에 써 있다.) 으로 내리고 있었다.그날은 토요일로 우리부대에서 지원이 요청이 없었다면 부대에서 축구나 하면서 보내면 되는데...우리 부대에서 지원요청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온 것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아무튼 그날도 난 부대에서 가장 몸으로 뛸 일병말호봉으로 전날온 비때문에 축축해진 침구와 장비를 막사지붕이여 연병장 옆 뚝방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그날은 토요일로 일과가 없는 날이라 이런 소일거리를 찾아서 해야 되는 것이 봉행의 내무반 임무였다.착출명령은 우리 소대에 떨어졌고 이유는 우리 소대 왕고가 짬밥이 않되서 였다. 이 일 이후에도 이런 눈물나는 상황은 계속됐다. 역시 군대는 줄잘서야 된다는 말이 딱 맞다.하여간 내위의 상병이 작업반장이 되고 다음에는 내 하나뿐인 동기와 나와 내 믿으로 일병 두명이 착출되었다.이등병들은 이런 고난위도의 작업에는 잘 착출을 않하는 것이 관례이다.불쌍한 넘하나는 시골에서 부모님이 과수원을 한다는 이유로 착출책임을 받는 일직병장이 "너희집 과수원 하니까 똥 많이 퍼 봤겠네..." 하면서 착출했다. 하여간 군대는 뭐 다 이런식이다.내가 부대에 막 전입을 했을때 병장하나가 "너 미대 다니다 왔다며? 일루와서 내 머리 좀 깍아봐..."나는 그날 그 병장의 휴가머리를 영구로 만들었고 그 병장은 화풀이로 내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고..ㅜㅜ 자기도 삭발을 하고 휴가를 나갔었다.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원래 똥푸는 일은 전문직 일이라 착출된 병사들은 물양동이나 길어 날라서 화장실에 부어 넣으면 그만이고 (걸죽하게 만들어야 기계가 한번에 빨아들인다. ㅋ ㅑ ~~~~ㄲ ㅓ)ㄱ사단에서 온 병력들이 기계조작이나 일은 대부분했다.그러나 어제 밤에 비로 화장실에 똥들은 이미 걸죽해 질대로 걸죽해 진 상태라 우리는 건수를 잡았다 생각하고그냥 뚝방에 않아서 놀다가 오면 된다 생각하고 화장실로 갔다.그러나 그날은 토요일 인지라 어쩔 수 없이 지원 병력이라고는 하사하나와 운전병 밖에 없었다.그래서 모든 일들이 우리들에게 맏겨졌다.그 새파란 내 동생벌도 않되는 하사는 우리들에게 똥푸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1. 먼저 물을 부어서 걸죽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어제 비로 생각되었다.)2. 긴 작데기로 휘저어서 잘 섞이게 만든다. (아마도 가끔 변비가 있는 넘들이 있어서인가 보다...)3. 잠자리채 비슷한 걸로 불순물을 제거한다. 혹시 문제가 있는 물건이 나올지 모르니 잘살펴 보아야 한다.(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혹시 군대에서 똥퍼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희안한 것들이 많이 나온다. 빵봉지, 양말, 빤주, 콜라병, 소주병,,,,가발까지....가발이 나왔을때는 누가 사람머리가 화장실에 버려졌다고 보고를 해서 헌병대에서 와서 조사를 한적도 있다. 참 가발을 누가 버렸는지...ㅋㅋㅋ)4. 그리고 용모양의 기다란 호스를 박에 넣고 빨아들인다.5. 다음 화장실을 깨끗이 물청소 한다.6. 똥차에 호스 및 차체를 깨끗하게 닦는다....으으으으으흐우리는 어린하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작업에 착수 했다.두명은 화장실 않으로 들어가서 잘 썩어주기...두명은 건대기 건지기에 투입됐다.본행은 내 동기와의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화장실 뒤로 가서 건데기 건지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일일이 내용물을 확인하여야 하기 때문에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점심은 먹을 수가 없다.작업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본행의 수확물도 점점 늘어나 콜라병, 빵봉지,,,,그리고 그날 최고의 수확물인 여자 레이스 속옷까지....그런데 고문관병장으로 통하는 김병장이 화장실에 용변을 보러 왔다.김병장은 말을 좀 더듬고 귀도 어둡고 행동이 느려서 이등병, 일병때 무척고생하다가 완전히 고문관으로 찍혀서 병장이 된 다음에도 같은 같은 병장끼리도 왕따를 당하는 병장이었다.그래서 항상 자기보다 낮은 계급애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괜히 옆에 가서 참견하기를 좋아했다.애들이 작업하고 있으면 좀 어눌하기는 했지만 소소한 일까지 설명해주고 도와줄려고 애썼다.그대는 뭐 병장이 그러냐고 흉도 많이 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자상한 면이 있는 고참이었다.아무튼 우린 작업하는 중이라 안된다고 말렸지만 계급이 깡패인지가 기여이 화장실 재일 마지막칸에 가서 큰일을 보고야 마는 것이 었다. 우리는 김병장의 그것(?)까지 섞는 작업을 동시에 할 수 밖에 없었다.김병장은 일을 마치고 막사앞 뚝방에 않아서 애들이 연병장에서 축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애들한테 또 뭐라고 열심히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인은 유명한 개(?)발로 난 김병장이 제대하는 날까지 축구를 하는 것을 한번도 못봤다.어느덧 기초작업은 거의 끝나고 마지막 클라이막스....용의 몸을 빌어서 인간의 오욕칠정의 산물인 그 것을 빨이들이는 작업이 진행되게 되었다.우리는 신기한 듯이 3명은 호스를 잡고 한명은 계속 저어주기...한명은 기계조작을 하게 되었다.기계조작은 의외로 쉬워서 레버를 on/off 조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호스를 잡고 있는 손에 전해지는 우언가 꿈틀거리는 느낌은 더렵기 보다는 소름이 끼칠 정도 였고....무엇보다는 빨아 들이는 힘은 정말 한마리 용이 아닌가 생각이 들정도로 역동적이고 힘찼다.작업이 마무리 될때 쯤....일직병장이 연락이 왔다. 기계조작을 하던 작업반장 상병에게 면회신청이 들어왔다고 면회장으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잰장....누구는 똥푸고 .....누구는 면회와서 외박가고....그런대 때마침 옆에서 축구구경하던 고문관 김병장이 자기가 기계조작을 하겠다고 해서 자원을 했다.아무튼 낄때 안낄때 다긴다고 속으로 욕을 하고 작업은 계속되었다.그런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갑자기 힘차게 인간의 오욕칠정의 잔재를 빨아먹던 호스가 갑자기 하던일을 멈추고 고요해지더니 배탈이라도 났는지 꿀룩꿀룩 꿈틀대는 것이었다. 잰장......먼가를 잘못 먹은 것이다. 이런경우에는 호수 입구에 빵봉지 등이 걸렸거나 호수 입구에 불순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두엇던 망을 떨어져 호수 안으로 들어간 경우라고 뒷짐을 지고 구경을 하던 새파란 하사가 나름대로 전문적인견해를 밝히는 것이었다.첫번째 경우라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만약....두번째 경우하면 호스의 이음새를 분해해서 긴 작대기로 시원하게 쑤셔줘야하는 아행행한 작업을 해야 한다고 똥용이 배탈이 났을때의 처방까지 가르쳐 주고 다시 축구구경에 열중을 하는 것이 었다. 재길....우리는 두번째 경우가 아니길 빌면서 조심스럽게 호스를 빼서 살펴 보았다.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입구에 커다란 비닐봉지가 막고 있는 것이 아니가? 우린 작대기로 비닐 봉지를 조심스럽게 띄어내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였다." 김병장님!!!!! 파워부탁드립니다.!!!!"정중하게 10미터 정도 떨어진 똥차옆에 서있는 김병장에게 파워를 넣어 줄것을 부탁했다.그런데 이상하게 용이 움직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김병장님!!!!! 파워부탁드립니다.!!!!" 다시 부탁을 했다."응 알았어! 걱정마!!!!"김병장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용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아~~~~~ㅜㅜ화장실 변기 입구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용이 브레스(용의 입에서 나가는 불)을 뿜에내기 사작하는것이 아닌가~~~~캑한거번에 압력이 작용하면서 갑자기 처박고 있던 머리를 치켜든 것과 동시에 너무 놀란나머지 우리는 잡고 있던용의 허리를 놓치고 만것이다.정말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 일이라 불과 2-3초만에 화장실 바닥을 초토화 시키더니 거세게 꿈틀거리면서 몇번 퉁퉁 튀어오르더니 화장실 옆에 서있던 똥차옆으로 머리를 돌려 또 다시 브레스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거 한방으로 김병장은 거의 졸도하기 일보직전의 모습으로 온몸에 똥물을 듸집에 쓰고 도망을 가버린것이다.김병장이 도망간 이후 아무도 그 용의 심장에 엑스칼리버를 박아서 용의 횡포를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본행과 본행의 전우들은 싸울 희망을 잃고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 망할넘의 똥용은 한번더 꿈들 거리더니 하늘로 치켜든 머리로 다시한번 똥프레스를 뿌리기 시작 했고...불과 몇초만에 연병장 뚝방에 널어두었던 침낭들을 초토화 시키더니 인사계님이 새로뽑았다고 매일 인사계원을 시켜서 세차를 하시던 프라이드베타를 다시한번 초토화 시켰다.온 부대는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그 누구하나도 지켜만 불뿐 감히 엄청난 파괴력의 똥프레스를 뿜어대는 똥용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혹시라도 똥용이 자기를 처다 볼가봐 엄패물 뒤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우리 속담중에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한다. 하는 속담이 있다.하지만 정말 무서웠다. 난 지금까지 살면서 똥이 그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그대 그상황을 함께 지켜보시던 인사계님이 달려오셔서 명령을 하셨다."모두 죽을각오로 호스를 잡아~~~~~~~"차라리 지뢰받에서 조깅을 하라고 명령을 하시지....ㅜㅜ하지만 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집단인것....한참 군기가 들어있을 일병말호봉~~~이 세상에 무엇이 두려우랴....똥용만빼고...ㅜㅜ본행은 똥용에게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똥차로 달리기 시작했고 나의 하나뿐인 동기는 똥용의 머리를 공격하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들었다.본행의 뛰어난 전투감각과 운동신경은 자신의 에너지 원천인 똥차를 보호하기 위하여 거대하게 뿜어대는 똥용의 똥브레스 세례를 오리조리 피하면서 똥용을 뒤로 한채 달리기 시작했다.하지만 본행이 내공이 아직 모자라 화장실에서 꿈뜰이들과 대화하면서 초코파이를 먹을 수 있는 내공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내고도 멀쩡할 수는 없는법....ㅜㅜ먼가 션한게 작업을 하기 위해서 런링셔츠만 입고 있는 나의 등짝을 강타하고 본행은 똥용의 똥브레스에 본행이 당했음을 직감하는 순간 거의 몸속의 기혈이 막힘과 동시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만 바닥에 업드릴 수 밖에 없었다.불과 똥차를 3미터 남겨두고.....하지만 나와 반대로 똥용의 또다른 약점의 하나인 똥용의 머리를 공격하러 들어간 나의 하나뿐인 동기는 나보다 용감했다. 똥용은 절대로 접근을 용서하지 않았고 나의 동기인 고일병은 엄청난 똥용의 똥브레스에 접근하자마자 그의 두발에 똥브레스를 뿜어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똥용의 브레스공격도 더욱 거세져서 이번에는 건데기가 섞인 똥브레스가 그의 복부를 강타했던 것이다.잠시 주춤하던 그는 다시 달리기 시작......마침내 똥용의 머리를 잠으려던 순간~~~~~~~!!!!!!똥용의 마지막 일격은 나의 하나뿐인 동기...죽음도 같이 나누자고 맹세한 동기의 안면을 강타한 것이다.하지만 그는 용감했다. 그 상황에서도 그는 똥용의 머리를 감싸안고 바닥에 뒹굴면서 한마디의 비명을 질렸다. 스위치 좀 재발 내려......ㅜㅜ본행은 도저히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은 몸을 일으켜 거의 날으듯 스위치를 눌렀고....똥용은 서서 몇번 굼틀거리더니 생명을 다했던 것이다.똥용의 위력은 정말 대단 하였다.불과 1분정도 밖에 않되는 시간에 대한민국 육군의 한개 부대를 초토화 시켰고....그들의 안락한 잠자기를 보장하는 침낭을 똥브레스 한방으로 날려버렸으면 핵오염과 맞먹는 위력으로 온 부대내에 똥냄새를 한달간 풍기게 만들었으면 월남전에서 배트공들과 사선을 넘나들면서 싸웠다고 자신의 무용담을 늘 입에 달고 사시던 역전의 용사 인사계님을 벌벌떨게 만들어 내무반 안으로 도망가게 만들었으며 연병장에서 뚝방에서 축구를 구경하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군대에서 대장보다도 높은 계급이라는 병장들을 단 1초의 똥브레스 한방으로 전멸시켰다.이뿐만이 아니다. 대대장님의 고상한 취미인 화단에 봉숭아와 채송화에 똥브레스를 먹여 시름시름 알다가 죽게 만들어서 다른 부대에서 몰래 파다가 심을 수 밖에 없었다.무엇보다도 가장큰 피해자인 용과 직접적인 전투를 벌인 나와 내 동기는 저승사자의 꽃이라고 불리우며 한번 감염이 되면 다른 사람의 접근조차 용납을 않한다던 똥독에 걸려서 한여름을 지독하게 고생하면서 보내야 했다.아무튼 나에게 가장 혹독하고 기억이며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똥용과의 전투는 이렇게 끝이 났다.이 사건이후에 나와 내동기는 제대하는 그날까지 똥용을 잡았다는 드레곤슬레이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좀 각색은 있었지만 제가 군생활 할때 격은 일입니다. ^^그럼 다 읽으신 분은 살포시 추천한번만 눌러주세요.....
우았밍키
작성일 2012-02-05
추천 30
[엽기유머] 오랜만에 훈훈한
부처님 오신날, 목사님이 절에 간 이유는 부처님 오신날 사월초파일. 명락사에는 꽃비가 내렸다. 망자의 명복을 비는 흰색 연등과 살아있는 사람의 성원 성취를 비는 오색 연등이 어우러져 법당 내부를 밝혔다. 대법당을 가득 메운 불자들은 합장을 위해 두 손을 가지런히 맞댔다. 10일 오전 11시 관악구 청룡동 명락사 4층에선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대법회가 열렸다. 다문화사찰로 유명한 명락사지만 이날은 법당의 문을 더 활짝 연 '다종교인과 함께하는 봉축대법회'로 봉행됐다. 명락사 주지 무원 스님은 "고행 속으로 뛰어든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봉축한다"며 법회를 시작했다. 대한불교 천태종 명락사는 2009년 다문화사찰을 선언하고 관악구에서 갈 곳 없는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왔다. 종교인평화공동체 대표로 발언한 백도웅 목사는 "자신의 종교만 존중하고 타 종교를 지탄해서는 안된다"며 "무언스님으로부터 받은 자비, 나눔, 광명으로 행복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깊이 새겨듣고 있다"고 종교인들의 화합을 빌었다. 준비 없이 강단에 오른 주낙길 천주교 글라렛선교수도회 수사는 "준비 안 했는데 갑자기 발언하러 올라왔다"며 절을 찾은 신도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이어 "수도원의 평범한 수사인 제가 부처님 오신날을 함께 경축하게 돼 영광이다"며 분위기를 이어갔다. 김대선 원불교 문화사회부 교무부장은 "대문만복래, 문을 활짝 열면 복이 들어온다"며 "이렇게 모든 종교에게 문을 열고 함께 어우러진 부처님오신날, 여러분 모두가 부처님입니다"라고 축복의 말을 전했다. 나는 무교이지만 이런게 진정 종교인 아닐까 하는...
절묘한운빨
작성일 2011-05-10
추천 4
[엽기유머] 자꾸 이러시면...
'예수 믿으라' 조계사 경내서 소란 조계사 경내에서 목사라고 신분을 밝힌 70대 노인이 "예수를 믿으라"며 일행과 소란을 피우다 경찰 조사를 받았다.11일 경찰과 조계사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20분께 정월 조상천도재를 봉행 중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목사를 자칭한 이모(78)씨와 80~90대 노인 일행 3명이 들어왔다.조계사 측은 이들이 대웅전 앞에서 메가폰을 들고는 "하나님 때문에 밥 먹고 사는 거다. 부처가 비를 (내리게 해) 주냐. 비가 와야 농사짓고 밥 먹는 거다"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또 육성으로 "중들 나와라" "예수 믿으라" "예수 안 믿으면 공산당이다"라고 소리치며 20여 분간 경내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조계사 측은 덧붙였다.조계사 종무원들이 이씨 등을 일주문 밖으로 내몰았으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들을 임의동행 형식으로 조사했다. 경찰은 "퇴거불응 혐의로 이씨를 불구속 입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종교분쟁 하려고 그러는건 절대아님... 그냥 서로서로 좋게 지내면 안돼는건가요??
절묘한운빨
작성일 2011-02-11
추천 4
[정치·경제·사회] 방패와 곤봉, 경찰력으로 지탱하는 정권 MB 시대정신은 몰염치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 권우성 명진스님 강남의 노른자위 땅에 천년고찰이 있다. 현대 아이파크와 코엑스 아셈타워, 인터콘티넨탈 호텔…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그곳에서 대형사찰 주지로는 최초로 한 노승이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900여 일이 넘게 천일기도를 하고 있다. 하루에 세 번씩 2700차례가 넘었다. 하지만 907일째 되던 날인 지난달 29일, 산문 밖으로 나선 그가 TV 카메라에 잡혀 전국으로 생중계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모습을 드러내고 불교의식을 진행한 것이다. 그의 천일기도를 알고 있는 기자는 순간 뜨악했다. 왜? '중수부 검사 출입금지'한 까닭 그 날 하루 동안, 1차례 기도를 거른 그는 다시 봉은사로 돌아가 천일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찰 일주문 앞 대로변에 노 전 대통령 49재 봉행 일정을 안내하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그냥 49재만 알린 게 아니라, 플래카드 상단에 '대한민국 검찰 중수부 소속 검사들은 봉은사 출입을 삼가 주십시오'라는 글귀를 담았다. 논란이 일 것이 자명한 상황. 그런데도 그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대검 중수부 소속 검사들의 출입을 삼가 달라는 현수막이 서울 삼성동 봉은사 일주문 앞에 내걸려 있다. ⓒ 권우성 봉은사 지난 17일 봉은사 다래헌에서 주지 명진 스님과 마주앉았다. 1년 만에 그를 만난 기자는 우선 플래카드를 내건 까닭을 물었다. 스님의 답변은 세찬 죽비소리 같았다. "비열한 방법으로 사람을 욕보이는 행태입니다.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 정보를 흘려서 상처받게 만드는 이런 수사는 참 듣도 보도 못한 수사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를 향한 발언이다. 봉은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명진 스님의 이같은 행보에 대한 입장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대부분 '힘내세요 명진 스님' '봉은사 신도인 게 자랑스럽습니다' 등 지지 글이다. 물론 사찰이 정쟁의 장으로 변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글도 더러 있다. "부처님 말씀 중에 파사현정(破邪顯正)이란 말이 있어요. 속된 것, 사악한 것을 버리고 올바른 것을 따르라는 가르침입니다. 또 '악업을 멀리하고 선업을 가까이 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수행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참된 길이 무엇인지 묻고 찾아야 합니다. 세상을 등지고 홀로 산중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진흙탕 같은 속세 속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듯 참되고 옳은 것을 구해야 합니다. 현수막을 내건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지적한 겁니다. 최소한의 의사표현이죠. 대검 중수부는 조선시대로 치면 의금부입니다. 의금부는 '어명이요'하고 정승판서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 아닙니까? 모두들 말하고 싶은 건 많지만 무서워서 말 못하고 있어요. 공권력에 대한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예의를 다하고 싶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치' 지키려고 '소신공양' ▲ 명진 스님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소신공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권우성 명진스님 그는 이어 "집요한 방법으로 가족, 친척, 친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사람들까지 샅샅이 계좌 추적을 하고, 심하게는 그가 자주 갔던 삼계탕 집까지 세무조사를 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이뤄왔던 가치를 지키고 싶었기에 목숨을 던진 것입니다, 순교라고 표현할 수 있고, 불교식으로 소신공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또다시 죽비로 세차게 내리치듯 살아있는 권력에 약한 검찰의 이중잣대를 비판했다. "공정택 같은 사람. 아주 치사한 방법으로 사설학원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는데, (검찰은) 그런 건 포괄적 뇌물죄라고 안했더라고요. 만약에 노무현 대통령 같은 식으로 한다면 김윤옥 여사의 사촌 언니가 공천을 대가로 30억을 받았잖아요. 돈을 준 사람이 김윤옥 사촌 언니를 보고 줬을까요? 그럼 그것도 포괄적 뇌물죄로 조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습니다. 공권력은 공익을 위해야 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그게 생명이죠. 사익을 추구하거나 공정성을 잃으면 그 자체로 죽음입니다." 천일기도에 정진하고 있는 수행자로서 살아있는 권력자와 세상을 향한 우려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스님들 시국선언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남의 충고를 듣지 않고 자비심이 없고 포악하면 왕이 권위를 잃고 나라에 도적이 들끓게 된다'(중일아함경)고요. 지금 일부 정치인을 보면 위장 전입이라든지 논문 표절, 세금 포탈, 병역 기피 등 도덕적으로 죄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도둑이라는 게 별게 아니죠. 세금을 포탈하기 위해서 아들딸을 위장전입시키기도 하는 데 이건 큰 문제입니다." 그는 이어 정치권의 이런 행태들이 "공권력을 무력화시킨다"면서 "그게 결국 도둑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시국선언이 나오는데 그것에 대한 심각함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우려했다.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는 서울광장 '차벽' ▲ "촛불 소년 소녀들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강조하는 명진 스님. ⓒ 권우성 명진스님 그는 또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나라라고 세계의 존경을 받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전경버스가 서울광장을 둘러싸거나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민의를 막는 것을 대한민국의 브랜드라고 여기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이게 정부가 말하는 대한민국의 국격입니까?"라고 반어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불교계가 이명박 정부의 종교차별 정책 시정을 촉구했던 지난해 6월. 명진 스님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불자들이 해방 이후 최악의 대통령을 만났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자는 명진 스님에게 당시의 발언이 아직도 유효한지를 물었다. "그때는 불자들이라고 했는데 '불자'라는 말을 빼야 되지 않나요? 그냥 '불자'라는 표현만 빼면 되겠네요." - 최근 촛불 집회에 나가면 '독재'라는 표현이 튀어나옵니다. 현 정부를 그렇게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십니까? "권력의 사유화. 정당한 공권력의 집행이 아니고 자의적 판단에 의해서, 권력자 입맛에 맞게, 고무줄처럼 법을 집행하고, 거기에 방패와 곤봉과 엄청난 숫자의 경찰력으로 나라를 지탱해 나가는 정권. '독재다' '아니다'를 굳이 이야기해야 할까요? 그냥 느끼고 있지 않나요." 하지만 명진 스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때는 군사정권, 전두환 정권이었죠. 12·12 쿠데타 정권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평가가 되지 않은 정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530만 표 차이를 두고 당선된 대통령입니다. 그야말로 합법적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저렇게 국민의 뜻을 반해서 정치를 해나가고 있어요. 투표를 통해 합법적으로 형성된 권력이어서 물러가라 소리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작년 '촛불' 때 한 이야기가 있어요. 촛불을 들고 나왔던 소년 소녀들이 투표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요. 그 아이들이 희망이라고. 국민의 가장 소중한 권리인 투표권을 잘 행사하지 않으면 정말 큰 일 나는구나. 지금 많은 이들이 뼈아프게 느끼고 있는 것 아닙니까?" 명진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청계천 복원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거 나름대로 성공했죠. 버스 중앙차로도 그렇잖아요. 즉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하느님이 힘을 주셔서 더 큰 역사를 이루게 하는구나'라는 확신이 있어 보입니다. 신앙이라고도 볼 수 있죠. 하지만 국민들의 화합이 훨씬 더 중요해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불편부당함으로 점철된 진행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람 사이에 증오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귀를 열고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쓴소리, 뼈아픈 소리,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얘기를 많이 들어야 합니다. 불교에 하심(下心)이란 말이 있는데 자신을 낮추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사람들의 얘기들 들으면 낮은 곳에 물이 모이듯 민심이 모입니다. 민심이 모이고 민심이 바라는 대로 하면 안될 일이 없습니다." 신뢰없는 사람이 하는 일은 뱀이 독을 머금은 것처럼... ▲ 지난달 29일 낮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명진스님이 불교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명진 스님은 이어 "국민들이 대운하를 원하지 않으면 안한다고 했는데, 4대강 살리기라고 이름만 바꿔서 추진하고 있고 작년 촛불집회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서 뼈저리게 반성했다'고 했는데 며칠 뒤에 경찰의 방패와 군홧발을 앞세워 가혹하게 진압을 시작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여대생이 전경의 군홧발에 걷어 차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불교 경전에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면서 "신뢰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은 뱀이 독을 머금는 일처럼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거듭하다 보면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데 권력자들은 그 거짓말을 덮기 위해 자꾸 더 나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러면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면서 "거짓말 하나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악업의 씨앗이 되어 자라기 때문에 거짓말이야말로 가장 나쁜 죄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최근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우려했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라는 것. "전쟁이 나면 한반도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보수 세력은 괜찮고 진보진영만 죽는 게 아닙니다. 전쟁을 막아야 합니다. 그게 6·15 공동선언입니다. 그런데 6·15 선언이 전 정권의 작품이라고 해서 무시하고 폐기하고…." 그는 이어 "이런 상황일수록 역지사지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개성공단의 경우 북쪽의 입장에서 보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군사 요충지를 양보한 것입니다. 군부에서 평양으로 가는 진격로를 열어준다고 반대했는데도 남북간의 화해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설득해서 된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해 버리고 '비핵하면 국민소득 삼천 불 만들어 줄게', 이런 식이거든요. 거지 동냥 주듯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존심 상하게 하는 언어를 구사하면서 하면 저쪽도 자존심이 있는데 받아들이겠어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외교, 대외정책, 남북관계가 가능하겠습니까? 그런 오만과 독선으로 지금의 상황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는 2시간여에 걸쳐 노 전 대통령 서거와 시국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현 정부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천일기도 회향을 얼마 남기지 않은 명진 스님에게 물었다. 그는 구체적인 대안보다는 화두를 던졌다.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것이지만, '경제대통령'을 선출한 국민들도 함께 곱씹어볼 내용이다. "선림보훈(禪林寶訓)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도덕이 있으면 비록 필부라도 궁색하지 않지만 도덕이 없으면 천하를 다스려도 원활하지 못하다.' 마음 씀씀이, 바로 용심(用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쓰려면 비워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자기를 낮춰야 합니다. 국정의 최고 지도자는 마음을 텅 비워놓아야 합니다. 자신만의 것으로 모두 채워놓으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자기 편한 사람, 자기 편들어주는 사람의 말만 들으면 그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되는 겁니다. 국민의 대통령이 되려면 자기 것을 버리고 비워서 그 속에 국민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명진 스님. 하지만 그의 말은 '독기'를 품고 있는 것같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불행은 국민의 불행" ▲ 천일기도를 하다가 산문 밖으로 나온 배경을 설명하는 명진 스님. ⓒ 권우성 명진스님 "이명박 대통령의 불행은 국민의 불행입니다. 제가 했던 말 중에는 듣기 싫은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덜된 중이 한 말이라고 고깝게 듣지 말고 '저런 이야기를 묵직하게 해주는 중이 고맙구나'라는 폭넓은 아량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사랑 아닙니까? 이 땅에서 그런 그리스도의 정신이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명진 스님에게 물었다. 천일기도를 하면서 중생의 업을 떨치고 번뇌의 불길을 잡으려 했던 스님은 무엇에 이끌려 잠시 산문 밖으로 나왔는지. "권양숙 여사는 봉은사에 20년 다니신 신도입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틀 전인 2월 22일에 봉은사로 와서 108배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차를 한잔 했어요. 참 많이 오고 싶었지만 5년 동안 다른 종교인들에게 위화감을 줄까봐 봉은사 출입을 못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분이 평생을 같이 했던 남편을 보냈어요. 자신의 아버지가 좌익활동을 했는데 그 때문에 비난받자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고 옹호했던 그런 남편이 죽었어요. 권 여사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봉하마을 쪽으로부터 영결식 때 불교의식을 진행해 달라는 청을 두 번이나 거절했으나, 마지막날 권양숙씨가 직접 전화를 걸어온 뒤에 산문 밖으로 나갈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명진 스님의 천일기도 회향일은 오는 8월 30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그날까지 하루 세 차례씩 3천번의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일부 신도들은 명진 스님의 기도가 2999번에 그칠 것을 아쉬워한다. 불가에서는 개인으로서도 영예스러운 일이고, 사찰로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명진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산문밖을 나가지 않고 끝까지 천일기도를 마치면 누구 말마따라 승려로서는 훈장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어찌 보면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천일기도를 시작했을 때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늦거나 하지 않고 해온 것이 저 하나 잘되겠다고 했겠습니까? 이 세상이 좀 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그 밑바탕에 있는 거예요. 그리고 기도라는 것, 수행이라는 것이 뭡니까? 법당에 가 절을 해야만 기도이고 선방에 들어앉아 참선을 해야만 수행입니까? 아닙니다. 세상과 더불어 같이 아파하고 기뻐하는 것이 기도고 수행입니다. 더군다나 뜻하지 않게 죽은 이를 천도해주십사 하는데 수행자가 그 간절한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된다는 말입니까?" 한편 명진 스님은 충남 당진 출생으로 19살 때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다. 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에는 불교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94년 조계종 종단 개혁회의 상임위원, 2005년 봉은사 선원장 등을 지냈다. ▲ 87년 6월 20일 서울 조계사앞에서 열린 6월 항쟁 집회 당시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선 백골단에 끌려가는 명진 스님(오른쪽). ⓒ 권우성 명진스님 노무현과 이명박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인물은? 명진 스님은 인터뷰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시대의 정신에 대해 비교했다. 그는 그 정신을 대표할 인물들을 꼽았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노무현 정권의 시대정신을 인물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유시민 전 의원이 국회에 처음 나올 때 하얀 바지를 입고 노타이 차림이었습니다. 그건 탈 권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에 '대통령 못해먹겠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지만 이런 거친 표현은 권위를 벗어던진 솔직한 말투예요. 그리고 한명숙 총리는 따뜻합니다. 이해찬 총리는 직설적입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아요. 저렇게 답변하면 욕 좀 먹을 텐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이렇듯 노무현 시대정신을 표현할 대표적인 세 사람들은 소통하려 하고 거짓 없이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면서 좀 거칠어 보였던 겁니다. 반면, 이명박 시대를 상징하는 사람을 보면, 우선 신영철 대법관. 후배 판사들에게 촛불 재판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회에서의 위증입니다. 대법관은 어찌보면 수행자, 성직자의 입장입니다. 명예와 존경심을 바탕으로 사는 사람인데, 거짓말을 했습니다. 후배들이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그 자리를 지킨다 이거죠. 그리고 1심, 2심에서도 유죄 판결이 났는데도 대법원까지 가는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같은 사람들. 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보를 언론에 흘린 검찰. 그렇게 해서 세상을 떠났는데 고인의 명예를 위해서 수사결과를 내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인규 중수부장 같은 사람이 이명박 시대를 상징하는 사람들이죠. 거짓말과 그게 들켰을 때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은 뻔뻔함. 몰염치하고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한 이 '3치'가 이 시대를 상징하는 이명박 정신입니다." ▲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다래헌 앞까지 나와서 취재진을 배웅하고 있다. ⓒ 권우성 명진스님 출처 : "방패와 곤봉, 경찰력으로 지탱하는 정권 MB 시대정신은 몰염치, 파렴치, 후안무치" - 오마이뉴스
행동반경1m
작성일 200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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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김신조 특수부대의 1.21 사태. 실록 -1
1967년 10월 초 朴正熙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康仁德(강인덕·북한국장,통일부 장관 역임·68) 중앙정보부 분석 과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보고서 제목은 「최근 북한의 對南침투에 관한 분석-북한의 冬季 게릴라 침투 豫想報告」. 朴대통령은 보고를 들으면서 밑줄을 치고 때때로 메모를 했다. 결론 부분에 이르자 朴대통령은 한 문장에 밑줄을 두 번이나 치고 있었다. 「북괴는 내년부터 冬季작전에 돌입하여 본격적인 인민전쟁이 시작될 것입 니다」라는 부분이었다. 북한의 동계 게릴라 침투작전을 예상한 보고가 끝 나자 朴대통령은 인터폰으로 『국방부 장관, 각 軍 참모총장들 다 들어오라고 해』라고 지시했다. 『康君, 이건 게릴라戰이라 중앙정보부 통제능력에서 벗어나는 거야. 그래서 좀 모이라고 했으니까 자네가 다시 한번 설명하게』 이날 오후 국방부 장관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및 해병대 사령관 앞에서 康과장의 설명이 끝나자 朴대통령은 『내가 조만간 全軍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 과 기관장들을 다 모아 놓고 對간첩작전 회의를 해야겠으니 자네는 이 내용 을 설명할 준비를 하게』라고 했다. 대통령은 金聖恩 국방장관에게는 『국방부에 對간첩 작전에 관한 모든 권한을 부여할 테니 준비하시오』라고 했다. 「북한의 冬季 게릴라 침투 豫想報告」는 그때까지 중앙정보부에 속했던 對간첩 작전의 권한들을 대부분 국방부로 이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康仁德 과장이 이런 보고를 하게 된 것은 1967년 1월초 휴전선을 침투해 들어온 3인조 간첩을 체포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이들은 서울 시내에서 소매치기를 하며 지내다 경찰의 불신검문에 의해 체포되었고 신원조회를 하는 과정에서 특이점이 나타나 對共수사기관에 이첩된 경우였다. 康仁德 前 통일부 장관의 회고. 『세 명은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지 않고 내려 왔습니다. 그저 서울에서 소매치기를 하며 돈을 쓰다가 신분증만 몇 개 구해서 월북하라는 것이 전부였는데, 당시로서는 특이한 경우였지요. 특히 6.25 이후 겨울에 휴전선을 통해 3인조를 내려 보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눈밭에 발자국이 남기 때문에 북한은 극력 피하던 방식이었거든요. 「왜 내려 보냈나」하는 의문을 가지고 다각도로 분석해 보니 冬季작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겁니다』 5·16 당시 康仁德 해병대 중위는 전략정보관으로 해병대 사령부에 근무하 다 중앙정보부에 차출된 경우였다. 그는 중앙정보부에서 군복을 벗고 분석국 과장, 부국장을 거쳐 1970년 12월 북한국장이 된 뒤 1978년에 퇴직했다 . 그는 매월 한 차례씩 북한 동향을 분석 보고하는 과정에서 朴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朴대통령은 1967년 9월 초 金聖恩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북한이 게릴라 부대 를 만들었다는 보고를 접했다. 金聖恩씨의 증언. 『9월 초쯤 방첩대장 尹必鏞(윤필용)이 해안으로 침투하던 공비를 생포해 심문했더니 이런 정보가 있더라면서 보고를 해 왔습니다. 「124군 부대」였 지요. 정확한 규모나 위치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북한이 군사도발을 강 화할 것이란 판단을 했습니다』 방첩대의 정보는 비교적 정확했다. 북한은 1967년 8월12일 민족보위성 정찰 국 직속의 對南 공작 특수부대를 창설했다. 「124군 부대」란 명칭을 가진 이 집단은 2400명에 이르는 부대원을 300명씩 8개 基地(기지)로 나누어 對南 유격훈련을 시작했다. 각 基地는 남한의 일 개 道를 담당했으며 제 6기 지는 경기도와 서울 지역을 담당했다. 이해 가을 제 6기지 부대원 중 정예요원 35명이 선발되어 서울 침공 계획 훈련에 돌입했다. 이 중 제1조 15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고 나머지 4개조(각 5명)가 각기 다른 목표를 동시에 타격한다는 계획이었다. 제2조는 美대사관저를 습격하여 대사와 그 가족을 살해할 동안, 제3조는 육 군본부를 폭파해 將星들을 살해하고 제4조는 서울 교도소 정문을 폭파하여 죄수들을 탈옥시키며, 제5조는 서울 서빙고동에 있는 방첩부대의 간첩수용 소를 급습하여 간첩들을 구출해 함께 월북한다는 계획이었다. 훗날 생포된 인민군 金新朝 소위는 자신이 선발되었을 때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임무가 실패하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부대원들에게는 당과 수령을 위해 죽는 것이 최대의 영광이었으니까요』 1968년 1월6일 오전 10시, 朴正熙 대통령은 특별 기동차 편으로 강원도 원주역에 도착했다. 이날 야전군 상황실인 1군사령부 회의실에서 열린 「對간 첩 非常治安회의」에는 丁一權 국무총리와 全 국무위원, 金炯旭 중앙정보부 장, 任忠植 합참의장, 3군 참모총장 및 해병대 사령관, 사단장급 이상 지휘 관, 知事, 檢事長, 경찰국장 등 173명의 각급 기관장들이 참석했다. 개식사에서 朴대통령은 『북괴 만행을 봉쇄하고 무장 간첩을 섬멸하는 데 있어 유의할 일은 軍官民이 혼연일체가 되어 상호협조체제를 확립하여 汎국민적 對간첩작전을 펴야 한다』고 강조하고, 『정부는 이를 위해 향토방위 법의 제정을 서두르고 있으며 앞으로 이 법을 잘 운용하여 지방 주민의 勝共정신을 강화하고 지역적 방위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선결문제』라고 말했다. 이 회의에 중앙정보부 康仁德 분석과장도 참석했다. 그는 석 달 전 청와대 에서 朴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참석자 전원에게 다시 한번 설명하면서 『이번 1월부터 시작될 북한의 동계 작전은 종래와 다른 대규모 게릴라 작전이 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朴대통령은 對간첩 작전시 각종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들어가며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날 특히 朴대통령은 참석한 金炯旭 부장을 향해 중앙정보부의 越權(월권)행위를 거론하며 질타했다. 『서해 바다에 간첩선이 나타나면 정보부가 해군을 지휘해서 해군 사령관 노릇을 하거나, 육지에서 공비가 나왔을 때는 해당 지역 中情 지부장이 軍 사령관 머리 꼭대기에 앉아 병력을 여기 배치하라, 저기 배치하라는 식으로 월권행사를 하는 모양인데 … 중앙정보부는 그런데 나가는 게 아니고 북괴의 정보를 수집해서 제공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거요. 앞으로 軍 작전에 정 보부는 일체 개입하지 마시오』 이날 金炯旭 中情부장은 얼굴이 벌개져 회의 내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고 한다. 金聖恩 당시 국방부 장관의 설명. 『첫째, 朴대통령은 金炯旭이 지휘하여 수사한 「동백림 사건」이 심각한 외교문제를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知識人들을 고압적으로 수사하는 정보 부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듯합니다. 두 번째는 그 날 대통령도 지적 했듯이 對간첩작전이 벌어지면 현지에서 중앙정보부의 월권행위가 하도 심해 군인들이 작전을 제대로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비 두 세명만 출몰해도 군, 경찰, 정보부, 방첩대 등이 서로 다른 명령 계통을 가지고 현지에서 대립하다 초기 대응을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공비가 나타날 경우 상황에 따라 비상경계령을 甲, 乙, 丙 세 가지로 분류하기로 했다. 甲種 비상령은 경찰력만 동원해도 되는 상황 , 乙種 비상령은 군·경찰이 합동 대응해야 하는 상황, 丙種 비상은 전적으 로 軍이 통제권을 가져야 하는 상황으로 구분했다. 대통령 특별지시사항으로 對간첩 작전 기구를 2월 초까지 구성하기로 했다 . 이 기구는 軍을 중심으로 경찰과 정보부가 협조하는 체제로 결정됐다. 朴正熙 대통령은 이날 오후 6시 회의를 마친 뒤 헬기 편으로 서울로 상경했다. 「원주회의」에 참석하고 돌아 온 康仁德 분석과장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 자신의 분석대로라면 북한의 동계침투작전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전방에서 는 아무런 기미가 없었다. 답답해진 그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 국방부에 나가 있던 정보부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야, 들어오냐?』라고 물었다. 그때 마다 『아직 별 일이 없습 니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康과장은 속이 탔다. 이 무렵 金新朝가 포함된 124군 부대 35명은 각자 임무에 따른 반복 훈련을 거듭하며 출동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1월13일, 민족보위성 정찰국장 金正泰(김정태)는 공격 목표가 너무 분산되었다면서 기존의 계획을 수정, 공 격목표를 청와대로 한정시키고 朴正熙 대통령만 살해하는 임무로 축소시켰 다. 인원도 35명에서 31명으로 줄였다. 공격시점은 1월21일 20시 정각. 공격목표와 날짜가 정해지자 청와대 내부 구조를 분석하고 주요 지점별 공 격조를 나눠 훈련에 돌입했다. 청와대 습격 D데이에 임박해서는 사리원에 있는 황해북도 인민위원회 청사를 대상으로 실전 연습을 하기도 했다. 북한의 암살목표로 결정된 朴正熙 대통령은 1월15일 오전 10시부터 11시40 분까지 청와대에서 年頭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朴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는 경제건설과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부문의 성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 사물에 대해 긍정적이고 善意的 인 관찰과 비판을 하는 것이 제2경제(경제의 윤리적 측면)의 요체』라고 말 했다. 예정시간인 1시간보다 40분이나 길어진 이날 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여 유있게 미소를 섞어가며 답변했던 朴正熙 대통령은 13개의 질문 중 꼭 한번 金正濂(김정렴) 상공부장관의 조언을 얻었을 뿐 정확한 통계수치를 들며 혼자서 답변했다. 朴대통령은 5·16 혁명 이후 4번째 공식 기자회견을 갖는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對월맹정책에 대해 서는 평소의 강경론을 다시 강조했다. 이날 오후 朴대통령은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초도 순시를 했다. 오후 4시20 분부터 6시30분까지 재무부에서는 徐奉均(서봉균) 재무부 장관이 재무행정의 9大 목표를 브리핑하는 가운데 京釜고속도로 재원 조달 방안을 보고했다. 1968년 1월16일 朴正熙 대통령이 농림부, 건설부, 상공부를 연두순시하며 특용작물의 중점 지원, 서민 주택 건설에 주력하라고 각 부별로 지시를 하 던 시각, 金新朝 일당은 한국군 26사단 마크가 부착된 국군 복장에 개머리 판을 접을 수 있는 接鐵式(접철식) AK소총과 수류탄 및 對戰車(대전차) 수 류탄으로 무장하고 황해도 연산에 주둔한 부대를 출발했다. 이들은 자정 무렵 開城에 도착, 다음날인 17일 새벽 비무장지대內 최남단 초소가 있는 연천군 매현리에 도착하여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들은 이곳 에서 야간 침투를 위한 僞裝(위장)을 했다. 이날 국방부는 「原州 회의」에서 朴대통령이 내린 특별지시에 따라 분산된 對간첩 작전을 일원화시키는 새 기구안을 마련해 국무회의에 상정했다. 새 기구안은 대통령 직속으로 對간첩작전을 총지휘하며, 정책을 마련하는 중 앙협의회와 정책을 실천하는 대책본부를 두고 대책본부는 합동참모본부에 설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1월17일 밤 8시, 무장공비들은 美 2사단 지역의 正面(정면)을 향해 포복으로 접근하기 시작, 10시 정각에 철조망이 가설된 철책선에 도착했다. 이들 은 절단기로 철조망을 제거하고 휴전선을 넘어 은밀 침투를 시작했다. 124군 부대 무장공비들은 軍 GP들이 요소 요소에 있는 휴전선 남방한계선부 터 임진강을 건너기까지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은밀 침투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는 물론 숨소리나 냄새까지 죽이며 지형의 그늘진 부분을 이용해 이동 하는 特殊戰(특수전) 기술이다. 초소나 경비병 근처에서는 땅에 납작하게 붙어 한 시간에 수 m 정도만을 이동할 정도로 인내력과 지구력이 요구된다 . 金新朝를 포함한 무장공비들은 이미 훈련과정에서 이런 능력을 배양했고 , 야간 침투중 인기척을 느꼈을 경우 부동자세로 한 시간 동안 버티는 훈련 까지 받았다고 한다. 어둠속에서 상대방이 이 쪽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하 게 하는 훈련이었다. 이들은 美 2사단 구역을 통과하여 고랑포에서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널 때까 지 약 10km의 구간을 엎드리고, 기고, 달리고, 숨고 하며 먼동이 틀 때엔 임진강을 건너 경기도 파주군과 법원리 사이의 작은 산 기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경비병이나 지뢰밭을 만난 적도 없었다. 이들이 선택한 침투로는 임진강과 휴전선이 가장 근접한 지역일 뿐 아니라 얼어붙은 임진강을 도강할 수 있는 특별한 지역이었다. 서해바다로 연결된 임진강의 중·하류가 시작되는 임진각 부근은 海水가 滿潮(만조)때마다 밀 려 올라와 얼음이 비늘처럼 솟아오르고, 얼지 않은 바닷물이 곳곳에 고여 있어 도보로 건널 수가 없는 곳이었다. 대신 고랑포 지역은 상류에 속해 海水의 영향이 없고 겨울에는 단단하게 얼어 있어 이들이 침투로로 선정할 수 밖에 없었다. 휴전선에서 고랑포에 이르는 루트가 美軍이 관할하는 지역이란 점도 고려되 었다. 미군 지역에서는 무장침투 간첩을 한국군으로 誤認(오인)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군 지역 철책이 舊型(구형) 철조망이었기 때 문이었다. 金聖恩 당시 국방장관의 증언. 『1967년은 유달리 남침 사례가 많아 휴전선 철책부터 보강하기로 했습니다 . 그때까지 휴전선 철책이란 휴전 당시 남북한 군인들이 직접 설치한 원형 철조망 서너 가닥이 전부였습니다. 새빨갛게 녹이 슬대로 슬었고, 가끔씩 보수공사를 한다고 갈아주기는 했지만 인적이 드문 비무장지대에다 예산부 족으로 改修할 생각을 못했지요. 이것을 美 국방성에 부탁해 자재를 공급받 아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철책선을 만든 겁니다. 이 공사는 그 해 겨울, 2 49km의 휴전선 全지역에서 완성을 보았습니다. 단 미군 지역 4km 정도만 제 외되었지요』 美 2사단측은 鐵柱(철주)를 박고 전기 철조망을 쳐 對敵하려는 한국군의 대 응자세를 못 미더워하면서 자신들이 보유한 전자 감응 경보기 등으로 대처 하겠노라며 공사를 거부하고 있었다. 1968년 1월18일 오전 5시, 은밀침투로 법원리 뒷산에 도착한 31명의 무장공 비들은 지쳐 있어 이날 밤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공비들은 假眠(가면)상태 로 휴식하고 있었고 5명이 교대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해 들어온 시각에 朴正熙 대통령은 연두순시에 여념이 없었다. 1월18일에는 외무부, 문교부, 공보부 에 들러 1968년도 시정방침에 관한 보고를 들었다. 1월19일, 與野 총무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국회가 2월 중순까지 空轉(공전) 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朴正熙 대통령은 법무 국무 교통 등 3개 부처를 순 시했다. 그는 국군장병의 처우개선, 호남선 複線化(복선화)계획 촉진 및 호 남지방 고속도로 계획을 수립할 것을 관계부처에 지시하고 있었다. 이때가 오후 2시경. 바로 그 시각, 파주군 초리골에 살던 禹聖濟(우성제·현 파주경찰서 보안계 장)를 포함한 네 형제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벼랑 아래에 숨어 있던 공비들의 경계병과 마주쳤다. 『국군 대위 한 명, 소위 한 명, 그리고 사병 계급장을 단 3명 등 모두 5명 이었죠. 우리 국군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신발은 검은 농구화였고 총은 개 머리판을 접을 수 있는 AK소총이었어요. 한 눈에 공비라고 알아 보았지만 도망가기엔 너무 때가 늦었습니다』 禹씨 형제를 본 공비들은 태연을 가장하고 불러 세워 담배를 권하더니 갑자 기 기관총으로 등을 밀며 벼랑 쪽으로 몰았다. 禹씨 형제들이 벼랑 밑으로 와 보니 일개 소대 병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겁을 집어먹은 禹씨 형제들에게 『너, 우리가 어떤 사람들 같아?』라고 물 었다. 『군인 같은데요』라고 하자 공비들 중 한 명이 『우린 혁명당이야』 라며 참깨 섞인 엿과 오징어를 주고 말을 붙였다. 『너 쌀밥 일년에 얼마나 먹어봤어?』 『밥은 하루에 세 번 먹잖아요』 『……』 31명의 공비들은 禹씨 형제들에게 지서의 위치와 문산 동두천 의정부로 가는 방향을 묻기도 하는 등 이런 저런 말을 붙여왔다. 金新朝(現 충남 예산 군 성결교회) 목사의 증언. 『원칙으로는 작전 도중 만나는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무조건 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대원들 중 일부가 「죽이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며 반대를 했습니다. 투표를 했는데 역시 살려두자는 의견이 많았 습니다』 禹씨 형제는 벼랑 아래 덤불 속에서 네 시간여 동안 공비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말 상대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뒤에야 풀 려날 수 있었다. 공비들 중엔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둔 손목시계를 꺼내 선물 로 주며 『만약 비밀을 지키지 않고 경찰에 신고하면 우리 후속 부대가 내 려와서 너희 마을과 가족들을 몰살시켜 버릴거야』라고 위협했다. 禹씨 형제들은 빈 지게를 지고 돌아 나오면서 자꾸만 뒤가 꺼림칙했다고 한다. 『혹시 쏘지나 않을까 겁이 났지요. 우리가 한참 걸어 나오다가 힐끗 돌아 보니 깜깜한 데 뭔가 움직임이 느껴졌어요. 이동중이란 걸 알았습니다』 형제들은 마을 입구 가로등 밑에서 미행이 없는지 살핀 뒤 언제 신고를 하 느냐를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이들은 丹陽 禹씨 종가집으로 달려가 어른들과 함께 파주군 법원리 창현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이때가 1월19일 밤 9시경. 국가간의 전투력은 戰場에서 비로소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1·21 사태는 6·25 이후 15년 만에 남북한 전투력을 비교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金新朝를 포함한 중무장한 인민군 1개 소대병력은 휴전선을 넘어 임진강을 건널 때까지 국군 초계병들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나뭇군 禹씨 형제와 우연히 부딪친 것을 제외하면 前方 거주 주민들에게 거동수상자들로 몰려 신고된 적도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對간첩 작전능력도 6·25 이후 별로 改善된 적이 없는 상태였다. 통신 계통은 특히 전근대적이었다. 金新朝와 30명의 무장공비 목격 사건은 禹씨 4형제에 의해 1월19일 밤 9시 경 파출소에 신고 접수가 되었지만, 인근 군부대에 전달된 시각은 9시30분 경이었다. 對간첩작전 대책본부가 설치될 합동참모본부에는 세 시간이 지난 자정무렵에 이 정보가 도착했다. 金新朝 목사의 회고. 『자만심 같은 게 있었어요. 훈련을 받을 때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악구보를 매일같이 하면서 교관들은 우리에게 「동무들은 세계 최강의 용사다. 국방 군들이 동무들 을 비행기로도 못 쫓아 오게 만들어 주겠다」며 혹독한 훈련 을 시켰거든요』 1월19일 오후 8시경 禹씨 형제들을 살려 보낸 뒤 거의 동시에 金新朝 일당은 법원리 뒷산을 출발, 서울을 향해 급속 산악행군을 시작했다. 급속행군 이란, 약 30㎏의 짐을 진 重무장한 군인이 시간당 10km를 주파하는 구보이 다. 당시 한국군의 경우 급속행군은 산악이 아닌 오직 도로 위에서만 가능 하다고 믿고 있었다. 한국군의 군사적 상식으로는 야간 산악행군일 경우 시 간당 4㎞를 넘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金新朝 일당은 시간당 평균 10 ㎞씩 주파하면서 법원리-미타산-앵무봉-노고산-진관사-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달리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중앙정보부 康仁德 과장은 이날도 자신의 분석이 들어맞지 않아 실망한 채 관사로 퇴근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 머리 속은 온통 북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1월20일 토요일 새벽 두 시 경, 전화 벨 소리에 선잠에 빠졌던 康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예, 강인덕 과장입니다』 『과장님, 새까맣게 들어왔습니다』 『몇 명이나 돼?』 『잘 모르겠지만 30명은 되는 것 같습니다』康仁德 과장은 「게릴라전이 시작됐다. 이젠 정치가 아닌 군사력이 대응해 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 이때 金新朝 일당은 앵무봉을 지나 경기도 구파발 부근의 노고산 능선을 타고 있었다. 새벽 4시경엔 노 고산을 주파한 뒤 서울의 경계선이자 북한산으로 접어드는 길목인 眞寬寺( 진관사)를 통과했다. 오전 6시경엔 북한산 碑峰(비봉)에 도착했다. 10시간 동안 거의 휴식없이 全力질주를 해낸 것이다. 1월20일 토요일 오전 9시, 金聖恩 국방부 장관은 청사로 출근해서야 이 사 실을 보고받았다. 오전 9시30분경, 金장관은 차를 타고 청와대로 들어가 朴正熙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朴正熙는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어디로 들어왔소?』라고 물었다. 『임진강 상류 고랑포 쪽입니다. 얼음이 얼면 건널 수가 있는 곳이지요』 『그놈들이 뭣하러 들어왔을까?』 『각하, 지난해 놈들은 이미 우리나라의 각종 기간 시설을 파괴하는 활동을 해 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지 시설 파괴나 테러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군 부대나 주요시설도 목표가 될 것 같습니다』 휴전 후 연간 最多 도발 횟수인 170회를 기록한 1967년 한해 동안 전방지역 에서는 전쟁에 준하는 북한의 군사도발이 한국군과 주한미군을 상대로 여러 차례 감행됐다. 1월19일에는 동해 휴전선 근해에서 순찰중이던 한국 해군 56함 당진호가 두 척의 북한 砲艦(포함)으로부터 피격받아 침몰했고, 4월12일에는 중부산악 지대 휴전선을 북한군 90여명이 침범해 들어와 국군 7사단과 교전을 했다. 이때 7사단의 3개 포병대대가 북한지역에 휴전 후 최초로 585발의 포격을 가하기도 했다. 4월22일에는 북한군들이 서부전선으로 침투해 미군 막사를 폭파, 두 명의 미군이 숨지고 19명이 부상하는 사건도 있었고 5월27일에는 북한 경비정이 연평도 근해에서 작업중이던 한국 어선단에 포격을 가해 한국 해군이 25분 간 엄호사격을 하기도 했다. 8월7일에는 침투한 북한군이 판문점 남방 대성동 자유의 마을 앞에서 미군 트럭을 습격해 3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사흘 뒤엔 서부전선에서 한국군 트럭이 습격당해 아군 3명이 사망했다. 8월 28일, 북한군은 판문점 동남쪽 30여m에 위치한 미군 막사를 기습, 미군 3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했다. 9월5일에는 경원선 열차 폭파사건이, 13일에는 경의선 열차 폭파사건이 있 었고 동해상에서 조업중이던 어선을 여러 차례 납치하는 등 진행속도가 완 만할 뿐 전쟁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朴正熙 대통령에게 보고하던 金聖恩 국방장관은 그 순간까지도 침투한 무장 공비들이 지난해와 유사한 작전을 펼칠 것으로 짐작했을 뿐 청와대가 목표 인 것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이날 오전 金聖恩 장관은 李世鎬 6군단장을 전화로 불러내 예비사단까지 동원해서 서울 외곽에 집중 배치토록 지시했다. 6·25 당시 해병 전투단장(여단장)으로 한국군 1사단 지역이던 문산 지역에 서 美 해병대와 연합작전을 수행했던 金聖恩 장관은 金新朝 일당이 침투해 들어오는 해당 지역의 지리를 손바닥 보듯이 꿰고 있었다. 金 前 장관은 당시 자신의 추론이 어긋나 있었음을 시인하면서 이렇게 회고했다. 『金新朝 일당이 나무꾼들을 풀어 준 지점에서 서울 眞寬外桐(진관외동)의 眞寬寺(진관사)까지 산악 코스로 행군을 하면 해병대도 이틀은 족히 걸리 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眞寬寺를 거쳐 北漢山 碑峰의 僧伽寺 (승가사) 아래까지 도착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기겁했지요. 중무장 하고 야간 산악행군으로 북한산까지 올 수 있다는건 제 군대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1968년 1월20일 토요일 오전 朴正熙 대통령은 청와대 주변의 병력배치 상황을 보기 위해 金聖恩 장관과 朴鐘圭 경호실장을 대동하고 청와대 정문까지 내려왔다. 이틀 후 월남을 방문하기 위해 전날 청와대에 들러 朴대통령에 게 보고차 인사를 했던 崔宇根(최우근·육사3기) 수경사 사령관이 청와대로 달려왔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양복 차림의 朴대통령이 정문에 서서 수경사 30대대 병력들이 배치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오후부터 朴대통령은 감기를 앓아야 했다. 崔사령관의 인사를 받은 朴대통령의 얼굴엔 긴장감 같은 것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곁에 섰던 朴鐘圭 경호실장이 『정보부 장보다 빨리 오네?』하며 농담을 했다. 오후 2시경, 6군단 예하 3개 사단과 金載圭(김재규) 중장의 6관구 병력이 동원되어 전방에서부터 서울 외곽에 이르는 수십 겹의 방어선이 구축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장공비들이 이미 통과한 다음 병력을 배치한 것이었다 . 공비들은 자신들이 놓아준 禹씨 형제들의 신고보다 빨리 포위망을 벗어난 셈이었다. 이날 청와대에서 金聖恩 장관은 李世鎬 6군단장에게 『주간에는 정밀 수색 을 실시해 흔적을 찾고 야간에는 매복을 하라』고 지시했다. 朴대통령은 金聖恩 장관과 점심을 함께 들며 『임진강이 겨울에도 얼지 않으면 좋을 텐데 말이오』라며 아쉬워 했다. 金장관은 오후 2시경, 수색대로부터 보고를 접했다. 받아 보니 북한산 북쪽 자락의 경기도 송추 유원지 부근에서 무장공비들의 것으로 보이는 실탄과 탄창 및 흘린 듯한 음식물 약간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설마 거기까지 들어왔을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철통 같 은 방어선을 펼쳤는데 하루 만에 그 지역을 통과하면서 유실물 흔적을 남겨 두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朴대통령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보분석을 함께 하고 있었지요』 이때 金聖恩 장관은 결과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결정을 내렸다.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 대통령 집무실에서 전화로 蔡元植(채원식) 치안국 장을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서울 지역에 甲種 비상을 걸도록 하고 세검정에서 정릉과 창동에 이르는 축선에 경찰 병력을 배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1월6일 「原州회의」에서 결정된 비상 경계령을 처음 적용한 것이었다. 甲種 경계령이 내려진 서울에서는 경찰들이 비상 근무에 들어갔다. 이무렵 무장간첩들은 북한산 僧伽寺 아래 기슭에 모여 휴식에 들어갔다. 계획대로라면 이날 오후에는 청와대 뒷산인 北岳山까지 가 있어야 했다. 金新朝 목사 의 증언.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4일 동안 강행군했기 때문에 지쳐버렸던 것이죠. 원래 루트는 다음날인 21일 오후까지 북악산을 지나 밤 8시경에는 세검정 쪽으로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북악산을 타려면 공격시간에 제대로 도착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허리까지 눈이 쑥쑥 빠지고 발밑은 미끄럽 고 더 이상 산을 타는 것은 무리였다고 판단해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이들은 마지막 남은 산 하나를 둔 채 휴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碑峰 에서 세검정 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날 밤 金聖恩 국방부장관 은 저녁 늦게까지 朴대통령과 환담했다. 朴대통령은 감기가 조금 심해지는 듯 밤이 깊을수록 기침을 자주 했다고 한 다. 金장관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한남동 공관으로 돌아왔다. 1월21일 일요일 오전, 金聖恩 국방장관은 청와대로 곧바로 출근해 任忠植 합참본부장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다. 朴대통령은 지도를 펴 놓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金炯旭 정보부장이 드나들었지만 對간첩 작전 권이 국방부로 이첩되고 사건 성질상 자신이 개입할 만한 것이 아니어서 별 말이 없었다는 것이 金聖恩 前 국방장관의 증언이다. 펌>>보배드림
dugue29
작성일 200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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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마하트마 간디의 나라가 망할징조7가지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라는거~~~ 1. 원칙없는 정치 (Politics without principle) 청와대의 '이메일 지침' 뭉개기는 조중동 덕분에 성공? "참 이명박 정부는 운이 좋아!" 세간에는 이런 말이 나돈다고 한다. 그런데 무얼 두고 운이 좋다고 하는 걸까?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6명이나 숨진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난 지 10일 만에 연쇄살인범 강호순씨가 잡혔고, '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으로 권력에 의한 여론조작 의혹을 받고 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걸 두고 하는 말이란다. 기자는 술자리에서 오갈 법한 이런 얘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여론의 동향에 민감한 권력이 자신들과 직접 관련 없는 사건들이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고 싶어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 자체는 물론이고 사건 직후 청와대가 보여준 태도는 그런 권력 속성의 일면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추기경 선종‘은 돌아보되 이메일 지침은 여기서 끝내자? '청와대 실세'라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19일 춘추관에 나타났다. 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이 터지고 '잠적'한 지 1주일 만이다. 본인은 "미필적 고의"라고 했지만, 누구의 평가처럼 "특유의 처세와 순발력"이 발휘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 대변인은 이메일 지침 사건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정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듯했다. 평소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를 강조해온 그는 1주일 만에 만난 기자들 앞에 이런 얘기를 툭 던졌다. "지난 1주일은 여야도, 이념의 차이도 없이 온 나라가 하나가 되어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했다. 사회통합의 분위기가 계속돼서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이 대변인은 이런 '주문'도 했다. "다음주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앞두고 있는데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 각 이해 당사자들이 나의 이해, 우리 집단의 이해를 넘어 무엇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국정조사·특검 도입은 물론이고, 한승수 국무총리를 위증 혐의로, 박형준 홍보기획관을 직권남용죄로 고발하겠다고 나선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한마디로 '정쟁은 그만하고 김수환 추기경 선종의 의미를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을 추기경 선종으로 덮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를 위한, 청와대에 의한' 사건 종결... 그리고 '조중동'의 역할 특히 이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에서 지휘책임과 관련해 "이성호 행정관이 사표를 냈으면 그것으로 사건은 끝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다소 피곤한 듯 이렇게 말했다. "그만 하자. 그만 여기서 끝내고, 정쟁하는 것은 정쟁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팩트(fact)를 가지고 얘기하자." 이 대변인은 춘추관 밖까지 따라나온 기자들에게 "다 나오지 않았냐"며 "그만하자"는 말을 몇 차례 되풀이했다. 사건의 진상은 이미 밝혀졌으니 그만 끝내자는 얘기다. 의혹들이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스스로 나서서 사건을 종결시킨 셈이다. 한마디로 '청와대에 의한, 청와대를 위한 사건 종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특히 기자의 귀를 잡아당긴 것은 이 대변인이 "대체로 알려진 사항 외에 더 나온 게 없지 않나, 언론에서도 판단하고 있을 것이고…"라고 말한 대목이다. '권력에 의한 여론조작 의혹'이 짙은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크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파문이 확산될 즈음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것도 한 요인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있지만, 기자는 거대 보수언론인 '조중동'의 '조직적 무시'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면 조중동은 어떠했을까? 조중동이 '좌파정권'이라고 불렀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비서관이나 수석이 물러날 때까지 '지독한 지면투쟁'을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사건을 단신으로 처리하는 등 '사건 축소'에 급급했다. 이 대변인이 "언론에서도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 것도, 청와대가 행정관의 사표 하나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것도, 바로 이런 '우호적 언론상황'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한 청와대 출입기자도 "이번 사건의 경우 청와대와 조중동이 서로 짜기라도 한 듯 호흡이 잘 맞았다"고 꼬집었을까? 출처 : 청와대의 '이메일 지침' 뭉개기는 조중동 덕분에 성공? - 오마이뉴스 2. 노동 없는 부 (Wealth without work) 의원 299명 아직 하루도 일 안하고 ‘6월 월급 90억’ 타간다 ‘쇠고기 정국’으로 인한 야당의 등원 거부로 국회가 개원조차 하지 못한 가운데 오는 20일 국회의원 299명의 첫 세비가 전액 지급된다. 여야 강경 대립으로 20일까지 국회 정상화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결국 하루도 제대로 일하지 않고 세비만 타가는 셈이 된다.관련기사 9면이에 따라 국회의원들의 이같은 ‘무노동 유임금’ 행태에 국회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입법기구인 국회가 법까지 어겨가며 국민 세금에서 임금을 받아 챙기는 것은 ‘무임금 무노동’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국회법에는 ‘국회의원 임기 시작일(5월 30일)로부터 7일째(5일)’에 개원식을 갖도록 규정돼 있지만, 임기 시작 후 보름 넘게 개원식은 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20일 국회의원 전원에게 6월 세비 901만여원이 지급된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지난달 30, 31일 이틀간 수당까지 포함돼 월 기본 세비 846만6400원보다는 다소 높은 금액이 책정됐다. 여기에 차량 유지비, 사무실 운영비 등 180만원이 넘는 의정활동 지원비도 지난 13일 이미 지급돼 총 11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국회의원 1인에게 돌아갔다. 국회의원을 돕는 보좌관 등 공무원 급여도 1인당 월 2300여만원이 지급될 예정이다. 의원실마다 다르긴 하지만, 의원 1인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1명, 6, 7, 9급 비서 1명씩 최다 6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결국 6월 한달 동안 의원실 한곳당 3000여만원의 비용이 투입된 셈이고 이를 국회의원 299명으로 환산하면 90억원이 넘는 세금이 열리지도 않은 6월 국회에 지급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구속 기소 중이어서 사실상 의원 활동이 정지된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이한정 의원 등 4명에게도 세비가 지급된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규정상 형이 확정돼 면직되기 전까지는 세비가 계속 나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우리 국회는 제도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18대 초선 국회의원들에게 배포된 ‘국회 종합안내’ 책자에 의하면 2008년 국회의원 연봉은 1억1303만6800원에 달하고, 연간 의정활동지원비는 8000만원이 넘는다. 연봉의 기본이 되는 일반수당은 월 520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7.5% 인상된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의 활동이 회의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는 정상개원을 못했지만 일부 의원들의 입법 활동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3일 현재 국회 법제실에 접수된 의원 법안 입안 건수만 56건에 달한다. 법제실 한 관계자는 “미개원 국회임에도 초반 입법 활동은 활발한 편”이라고 전했다. 국회가 산적한 경제·민생현안을 외면한 채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오는 20일 국회의원들에게 세비(월급)를 비롯해 의정활동비, 보좌진 인건비 등이 지급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의원들은 각종 금전적 지원 외에 입법권 등 의안발의권, 불체포특권 및 면책특권 등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각종 특권들을 누리고 있다.◆국회의원들이 누리는 각종 권한 = 의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명절 휴가비 624만원, 정근수당 520만원과 보좌진에 대한 급여 등을 모두 포함해 연간 총 4억6847만원 이상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으로 추산됐다. 월 평균 4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받는 셈이다. 또 매년 1억5000만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고, 대선이나 총선, 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는 후원금을 3억원까지 모을 수 있다. 임기 4년을 따지면, 국회에서 18억7400여만원을 지급받고 후원금 6억~9억원(2010년 지방선거, 2012년 대선·총선) 등을 합치면 총 최대 24억7400만~27억7400만원까지 사용할 수 있다.의원들은 국회회관에 25평 규모의 사무실을 제공받고 공식적으로 4급 보좌관 2명, 5·6·7·9급 등 6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또한 의원들은 관용여권이 지급돼 공항 의전실을 무료로 사용해 출국 수속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으며, 외국 방문시 주재국 공관에서 의전차량을 제공받을 수 있다. 국내 출장 시 KTX 운임료는 국회에서 지원한다. 65세 이상 전직 의원의 경우 제명이나 금고이상의 범법자를 제외한 인사 가운데, 다른 수입이 없을 때는 헌정회에서 월 100만원의 생활지원 및 품위유지비를 지원받는다.국회법(44조, 45조)에 따라 의원들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곤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나 구속되지 않는 ‘불체포 특권’과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결정에 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이 보장돼 있다. 한 전직의원은 “법률에 보장된 권한보다 정부와 지방정부, 공공기관 등에 행사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비법률적 권한이 훨씬 크다”며 “금배지의 맛은 달아본 사람만 알 것”이라고 말했다. 3. 양심 없는 쾌락 (Pleasure without conscience) 4. 인격 없는 교육 (Knowledge without character) 광주지역의 대다수 초등학교들이 현행 교육 과정 지침을 어긴 채 지필고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특히 광주지역 전체 140개 초등학교 가운데 95곳은 학생 개개인에게 성적까지 공개한 것으로 조사돼 파문이 예상된다.17일 전교조광주지부가 최근 광주시교육청이 장휘국 광주시교육위원에게 제출한 ‘초등 교육과정 평가 현황(10월 말 현재)’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광주지역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선다형 일제고사를 실시하고 있다. 중간고사의 경우 전체 140개 학교 중 118개(84.29%)가 실시했다. 기말고사는 정도가 심해 단 한 곳만을 제외한 139개(99.29%) 학교가 실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ㅇ초와 ㅂ초 등 3개교는 월말고사까지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전교조 광주지부 김대준 정책실장은 “현행 교육과정 지침에는 선다형 일변도의 지필검사를 지양하고 서술형 주관식 평가와 표현, 태도에 대한 관찰 평가를 반영해 다양한 수행평가 기법을 활용토록 하고 있다”며 “외부에서 시험지까지 구입해 실시하는 지필평가는 명백히 교육과정 지침을 어긴 것이다”고 말했다.실제로 교사가 지도한 내용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업체를 통해 문제지를 구입한 학교도 상당수였다. 전체 140개 초등학교 중 32.86%에 해당하는 46개교가 평가 문항을 구입했다. 특히 이 문제는 지난해 시교육위원회에서 이미 문제 제기가 돼 시교육청이 개선을 약속했지만 아직껏 고쳐지지 않았다.무엇보다 큰 문제는 성적공개다. 지필고사를 실시한 후 교사가 구두로 성적을 공개한 학교가 140개교 중 91개교(65%)나 됐다. 특히 ㅇ초, ㅅ초 등 4개교는 학년 평균과 개인 점수를 기입한 성적 통지표까지 배부했다. 시교육위원회 장휘국 위원은 “시교육청이 장학지도와 학교평가를 제대로 실시했으면 있을 수 없는 일로 초등학교까지 학력위주 경쟁교육이 심화되고 있다”며 “광주에서 초등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까지 발생한 만큼 성적을 공개한 학교에 대해 철저한 관리감독과 행정지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초등학생이 성적비관 자살 `충격’ [출처] 초등 성적공개 `사실’ 140개 학교 중 139개교서 기말고사 실시 91개교 성적공개…4개교는 통지표 배부|작성자 소양강 5. 도덕 없는 경제 (Commerce without morality) 국회로 간 제2롯데월드(서프라이즈 / 독고탁 / 2009-02-04)제2롯데월드에 팔아버린 대한민국 공군의 자존심 어제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제2롯데월드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재벌그룹인 롯데 측에 엄청난 특혜를 제공하는 제2롯데월드 허가 문제는 안전성의 문제, 안보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대형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어, 4대강 삽질과 더불어 미래의 재앙을 담보로 현재의 이익을 추구하는 MB표 초대형 뻘짓 정책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간 안전과 안보를 이유로 112층(555m)의 초고층 빌딩 건립에 꾸준히 반대해 왔던 ‘대한민국 공군’이 어제는 롯데와 주파수를 똑같이 맞추었습니다. 성남의 서울공항에 주둔하고 있는 공군 15혼성비행단의 박연석 단장(준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시죠. “비행안전 확보를 위해 시계 및 계기비행 보호구역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롯데가 부담하겠다고 해서 공군과 롯데 간 이견이 없어졌다.” 그랬군요. 초고층 건립반대의 이유가 오로지 돈 문제 때문이었군요. 공군과 롯데 간에 돈 문제만 합의하면 되는 거였군요. 남의 집 대문 앞에 콘크리트 말뚝을 박아 통행에 불편을 주어도 말뚝 값만 계산하면 끝나는 문제이군요. 정신나간.. 저런 작자가 대한민국 공군의 장성이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설사 ‘대형사고가 발생한다면 롯데가 전액 보상할 것을 각서하겠다’고 매달린다 해도 허가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피해예상규모(직간접적인 피해, 국가위상 추락, 국민 자존심 손상, 기회손실비용) 등을 거론하는 것조차도 부적절하리만큼. ‘대형사고가 거의 확실시 되는 공사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어린애가 된 것 같습니다. 생쥐 한 마리가 휘저으니 석학이라는 사람들도, 관료라는 사람들도, 대기업 두뇌들도, 군의 장성이란 양반들도 모두 뇌용량이 생쥐 닮아가나 봅니다. 반대의견 예비역 장성에 대한 외압논란 어제 반대의견측 진술인으로 참석기로 예정되었던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 최명상 전 비행단장과 김규 전 방공포사령관의 갑작스런 불참에 국방부와 공군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아랫 별이 윗 별을 제압한 하극상, 어차피 ‘군이 뭔지도 모르는 군 통수권자 시대’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한호 전 총장은 평소 “제2롯데월드는 전시(戰時)에 막대한 지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해 왔던 양반인데 “이미 공군이 짓는다는 전제하에 구색을 갖춘 답을 내놓았는데 전임 총장이 공개적으로 반박하면 군의 사기 저하와 국민 신뢰에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며 불참을 통고했다 합니다. 압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전 총장을 접촉하고 추천해서 어렵사리 공청회에 참석도록 역할을 했던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의 말에 의하면 ‘현역 공군 후배들이 워낙 완강하게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랍니다. 추락하는 대한민국 공군의 모습에 어제 저녁 MBC 9시 뉴스 신경민 앵커는 ‘빨간 마후라 공군이 땅에서 우습게 되었다’는 코멘트를 날립니다. 공군출신으로 반대의견을 낸 소수의 분들로 이진학 전 공군기획관리참모부장(장성출신)과 김성전 국방정책연구소장(공군중령출신)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이진학 부장은 ‘높이가 203m 이하가 돼야 항공기로부터 안전’하고 ‘제2롯데월드는 전술 운용과 항공기 운항 시 비정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비행안전장애물’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제2롯데월드, 박근혜계의 ‘불패의 검’급 히든카드 제2롯데월드 허가 건에 대해 한나라당 내 반대 목소리 앞줄에 유승민 의원이 있습니다. 매우 눈여겨보는 부분인데요, 유 의원이 나름 개인적인 소신을 갖고 제2롯데월드 허가 건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반대 주장의 수위가 예사롭지 않아 뒷배경 그림이 주목됩니다. 유승민 의원은 “만약 신축 후 항공기 사고가 나면, 누구의 책임인가”, “항공기의 항로이탈 충돌사고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가”, “2007년 군조종사 75.2%가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했는데 2년 만에 입장이 바뀐 것인가” 등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 내어 야당의원들을 무색게 했습니다. 그에 대해 특별한 호감을 갖고 있진 않지만,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의 오랜 수행과 지근거리 보좌를 통해 거의 ‘복심’으로 통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사로이 보아 넘길 일은 아닙니다. MB정권과 한나라당 당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을 초강경으로 하고 있어 단지 주장 수준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박근혜계 입장에서보면 제2롯데월드 건은 불패의 히든카드입니다. 흔들기에 명분도 충분하고, 국민적 여론도 받쳐주고 있으니 지더라도 이기는 게임이고, 만약 제2롯데월드가 무산되는 날에는 MB의 위상이 555m 고공으로부터 급속직하 추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엊그제 청와대 회동에 참석한 박근혜 의원이 MB악법 강행에 강력하게 브레이크를 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만, (윤여준 책사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걸까요)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 몇몇 사안들을 중심으로 견제구를 날리며 하나씩 명분 쌓기에 돌입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혈투를 통해 승리하든지 아니면 찢어지든지. 두 갈래 길 뿐이니까요. ⓒ 독고탁 덧글 : 롯데 측에서는 제2롯데월드 조감도 그래픽 영상을 제작하여 적극 홍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높이의 굴뚝 옆으로 민간 항공기와 전투기가 지나갈 때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몇 개 만들어 봤습니다. 즐감하시지요. 6. 희생 없는 종교 (Religion with out sacrifice) 불교계 "이명박 정부는 기독교공화국이냐" <현장> 조계사에 플래카드 내걸고 대정부 전면전 선언 서울 도심에 위치한 조계사 안팎에 1일 이명박 정부의 개신교 편향을 비난하는 수십개의 플래카드가 일제히 걸렸다. 불교계가 대정부투쟁을 선언한듯한 양상이다.서울 안국동의 조계종 총무원 입구 왼쪽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이명박 정부는 기독교 공화국?"이라는 문구의 대형현수막이 내걸렸다.조계종은 현수막에 조용기 순복음교회 목사와 어청수 경찰청장이 함께 찍은 선교포스터 사진을 비롯해, 국토해양부 대중교통정보시스템 ‘알고가’의 사찰이름 삭제, 경기여고 교장의 불교 문화재 훼손 사진 등 3건의 사진을 실은 뒤 "이명박 정부는 공직이용 종교편향 즉각 중지하라"고 주장했다.조계사 대웅전 앞마당 탑 뒤엔 불교 문화제 3점을 파묻은 공립 경기여고 교장을 규탄하며 "불교성보 문화재 파묻은 경기여고 교장 파면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조계사 일주문 앞에는 "종교편향 방치하는 교육부는 참회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또한 일주문 옆에는 "이명박 지도에는 교회 밖에 없나? 종교편향 중단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조계사를 시작으로 다른 사찰들도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질타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불교계 전체가 들고 일어나는 양상이다. 얼마전 조계사 등 전 사찰이 <조선일보>의 신정아-불교계 연관 왜곡보도를 규탄하며 <조선일보> 규탄 플래카드를 내건 데 이어 또다시 불교계가 들고 일어선 양상이다.조계종은 이처럼 플래카드를 조계사 안팎에 내거는 동시에 이날 조계사에서 오는 4일 시국법회 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투쟁 일정을 밝혔다.조계종과 승, 재가단체들로 구성된 시국법회추진위원회는 1일 경찰청과 교육부 1인 피켓 시위, 7월 2일 종교편향 관련 부처 항의방문, 7월 3일 경찰청 앞 '108배 항의법회'를 거쳐 4일 오후 5시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시국법회를 봉행하겠다고 밝혔다.불교계가 이처럼 대정부 투쟁 선언에 즈음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한승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불교계를 자극케 한 관련부처들을 뒤늦게 꾸짖은 뒤 이날 오후 2시반 조계사를 찾아 자신이 직접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겠다는 뜻을 조계종측에 전해왔다. 한 총리는 대신 오는 4일 시국법회를 취소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자, 불교계는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조계사 일주문 옆에 걸려 있는 현수막.ⓒ김혜영 기자 ◀ 조계사 대웅전 앞 나무에 걸려 있는 현수막.ⓒ김혜영 기자 ◀ 조계사 총무원 입구에 걸려있는 현수막.ⓒ김혜영 기자 ◀ 1일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스님들이 시국법회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김혜영 기자 ◀ 1일 스님과 불자들이 조계사 총무원 앞 주차장에서 현수막을 들고 종교편향을 규탄하는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김혜영 기자 <<<<<<<<<<<<<<<<<<<<<<<<<<<<<<<<<<<<<<<<<<<<<<<<<<<<<<<<<<<<<<<<<<< <<<<<<<<<<<<<<<<<<<<<<<<<<<<<<<<<<<<<<<<<<<<<<<<<<<<<<<<<<<<<<<<<<< 개신교의 광적인 범죄 (펌) 개신교 집단이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 행적을 열거해 보기로 하자.1. 단군상 훼손하기, 단군상 건립반대2. 사찰 방화, 훼불행위, 불당 난입△금산사 대적광전 방화사건(1986년)△홍은동 옥천암 석탑, 석등 파괴사건(1989년)△유형문화재 제17호 마애석불 훼불사건(1989년)△경기도 시흥시 육군번개부대 예하 전차대대 부대장 조병석중령의 영내 법당폐쇄와 불상 화형 (1993년)△탑골공원내의 국보2호 원각사 10층석탑불상 훼손(1994년)△불교도가 95%이상인 불교국가 태국에서 불상을 파괴해 목사일행이 현지 경찰에 구속(1994년)△서울 수유동 삼성암(주지 현선)과 본원정사(주지 원성)에 방화 발생,범종각과 대웅전 나한전이 전소 (1996년)△수유동의 화계사와 운가사에도 방화기도 사건(1996년)△진해 청룡사에 목사가 난입, 훼불 사건 (1996년)△도선사 일주문 앞 미소석가부처상을 훼손하려던 정모씨가 사찰관계자들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진 사건 (1996년)△대한불교법화종 산하 기도도량 수도암에 들어와 『예수님 믿고 구원 받읍시다』는 내용의 선교스티커를 부착하는 등 공격적 전도행위를 하다가 이를 말리던 불교도 김진수씨가 사망한 사건 (1996년)△기독교도 김모씨, 제주도 원명선원 불상을 훼손 (1998년)△동국대 훼불사건(2000년)△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 암자 3곳에서 잇달아 불상 파손(2000년)3. PD수첩의 대형교회 비리 고발로 인해 MBC 안보기 집단운동하기, MBC에 소송 걸기4. 김용옥씨의 논어 강좌에 대해 입막기 서명 등 집단행동5. 공공장소에서 불신지옥 예수천당 외치는 고성방가 행위6. 목사, 기독교 지도층의 신도 강간하기, 사기쳐서 신도들에게 재물 강탈하기 등 수많은 범죄 행각7. 진화론에 대한 모함, 비방. 진화론에 대항하여 창조과학회 설립8. 전국을 교회와 십자가로 뒤덮는 기이한 현상9. 민족 전통 문화를 부정10. 다른 종교와 사상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 및 배척11. 제사 지내지 말라고 시비 걸기, 이로 인한 친족, 혈육 간에 불화 조성12. 장승공원 조성, 백제 불교 문화 공원 조성 등에 대한 집단 방해 행위13. 성남 일화 축구단 몰아내기 집단 행동14. 붉은 악마 개명 압력 집단 시위, 백의 천사 만들어서 붉은 악마 응원 방해15. 경승실 철폐 요구 집단 시위16. 화폐도안변경촉구추진위원회(위원장 안상준 목사) 만들어 화폐도안 변경을 위한 서명운동 벌이기-『1만원권 지폐에 용 5마리,5천원권에 봉황새 3마리,1천원권에 열뿔을 가진 짐승이 4마리,10원짜리 동전에 불상 등이 교묘하게 새겨져 있다』며, 현재 유통 중인 화폐에 기독교에서 사탄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는 용을 비롯 봉황 열뿔짐승 등 국민화합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어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은연중에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 (1996/5/11)17. 대중 음악, 뉴에이지 음악 등을 악마와 사탄의 흉계라고 매도 >>>>>>>>>>>>>>>>>>>>>>>>>>>>>>>>>>>>>>>>>>>>>>>>>>>>>>>>>>>>>>>>>>>> >>>>>>>>>>>>>>>>>>>>>>>>>>>>>>>>>>>>>>>>>>>>>>>>>>>>>>>>>>>>>>>>>>>> 7. 인간성 없는 과학 (Science without humanity) '체세포복제연구' 3년만에 부활하나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파문 이후 국내에서 명맥이 끊겼던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가 3년 만에 재개될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5일 정오 시내 모처에서 극비리에 진행키로 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차병원이 신청한 복제배아 줄기세포 확립 연구 안건이 심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차병원이 제출한 연구 계획서의 공식 명칭은 ’파킨슨병, 뇌졸중, 척수손상, 당뇨병, 심근경색 및 근골격형성 이상을 치료하기 위한 면역적합성 인간체세포 복제배아줄기세포의 확립과 세포치료제 개발’.이는 과거 황우석 박사가 했던 연구와 사실상 같은 내용으로 국내에서는 두 번째 도전이다. 지난 2006년 3월 황 박사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논문 조작 등의 혐의로 체세포 복제 연구 승인이 취소됐으며, 이후 수차례 연구 재개를 노렸으나 결국 지난해 8월 생명윤리심의위의 결정을 수용한 보건복지가족부가 황 박사의 연구 신청을 최종 불허했다.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결정이 어떻게 내려질지에 대해선 누구도 섣부른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현재 심의위 내에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데다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폭발력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심의위는 과학계 민간위원 7명, 생명윤리계 민간위원 7명, 유관 부처 장관으로 구성된 당연직 정부위원 6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과학계는 승인 찬성, 생명윤리계는 반대 의견으로 갈린 것으로 알려졌다.표결로 갈 경우 찬성이 과반이어야 하므로 결국 정부가 과학계와 윤리계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관건인 셈이다.대통령 직속 기관인 심의위는 6개월 전 황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신청을 거부할 때 ’연구책임자의 자격’을 문제 삼았다. 비윤리적 행위로 재판까지 받고 있는 황 박사의 연구를 승인할 수 없다는 게 명분인 셈이었다.이번엔 책임연구자인 정형민 차바이오텍 대표이사가 도덕적으로 드러난 결격 사유가 없는 만큼 일단 황 박사보다는 유리한 조건인 것만은 확실하다.체세포 복제란 핵을 제거한 난자에 체세포 핵을 이식해 얻은 배아로부터 줄기세포(어떤 기관으로도 분화할 수 있는 원시세포)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면역 거부 반응이 없고 분화가 잘 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다량의 인간 난자를 사용해야 하고 인간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도 지적된다. 체세포 복제를 하려면 복지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현재까지 세계에서 아무도 체세포 복제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희귀ㆍ난치병 환자들과 체세포 복제를 찬성하는 과학자들은 백혈병과 같은 난치병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를 승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국에서 2건의 연구가 현재 진행중이고 미국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연방정부에서 연구 자금 지원을 검토중이라는 점도 찬성론자들이 즐겨 드는 사례이다.반면 종교계와 윤리계 등은 체세포 복제 연구가 난자의 다량 폐기와 같은 윤리적 문제를 낳게 되고 인간복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으므로 완벽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이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과학계 내에서도 인간의 난자를 사용하는 체세포복제 방식보다 성체줄기세포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않다. 09.02.04
아바렌쟈
작성일 2009-02-20
추천 4
[좋은글터] 대왕세종.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입니다
오늘 짱공유닷컴 여러분들께 제가 재밌게 봤던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어제부로 막을 내렸던 KBS 대하사극 <대왕세종> 인데요. 어제 보았던 마지막회가 너무나 감명깊고 한 회에 많은 것을 담고 있어 마지막회를 리뷰하겠습니다. (여기는 웃긴글터이지만 가능한 모든 이들이 보셨으면 해서 여기에 부득이하게 올립니다) <대왕세종 초반부 마지막회를 알리는 자막> 올해 1월 5일 첫 방영을 시작하여 어제까지 총 86부작의 대장정은 마침내 '마지막회' 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세종의 고뇌> 훈민정음(한글)창제 후 반포를 하기에 앞서 앞으로 있을 모든 싸움에 대해 고뇌하는 세종대왕의 모습. <흐릿한 세종의 눈> 극 중에서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직전에 당뇨 합병증에 따른 눈병으로 인해 점차 시력을 잃어가고 마침내 훈민정음 창제 후에는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는 거의 실명 직전의 위기에 처합니다. 실제로도 세종대왕님은 항상 공부만 하시고 고기 반찬을 매우 좋아한데다가 운동을 싫어하셔서 몸이 비대하고 말년엔 당뇨병으로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눈병을 앓으신것도 사실입니다. <책상에 부딪혀 넘어지는 세종> 극 중에서 세종은 자신이 실명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철저히 숨기고 있습니다. 오직 아는 이는 어의와 상선(내시), 그리고 세자와 아내 소헌왕후일 뿐입니다. 세종은 자신의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궁궐의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며 위치를 몸에 익히려고 노력합니다. (여기서 갑자기 '말할 수 없는 비밀' 에서 샤오위(계륜미)가 주걸륜을 보기 위해 눈을 감고 한발 한발 걸어가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훈민정음의 반포를 막기 위해 반대상소에 서명을 하는 집현전 학자들> 한편 조선만의 문자를 갖는 것은 오랑캐 나라들이나 하는 비루한 짓이라며 집현전 학자들은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를 필두로 세종의 문자 창제에 반기를 들고 나섭니다. 요즘 잘못 알려진 사실 중에 대부분 국민들이 훈민정음이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모여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잘못된 정보입니다. 실제 집현전에서는 훈민정음이 창제될때까지도 그 사실을 몰랐고 오로지 세종 혼자서 만들었습니다. 일부 신진 학자(신숙주,성삼문 등)들이 조금 도와주었을 뿐 사실상 한글의 창제자는 세종대왕 한 분이십니다. 이를 증명하는 사실 중 하나가 집현전의 실질적 수장이나 다름없는 부제학 '최만리' 가 반대 상소를 창제 후에 올렸다는 것입니다. <분노하는 세종> 세종은 반대 상소를 올린 집현전의 학자들과 직접 면담을 합니다. 세종은 한글을 통해 무지한 백성들을 쉽게 교화시킬 수 있을 거라 설득해보지만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천품이란 교육으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마침내 분노하고 만 세종은 이렇게 일갈합니다 '감히 어디서 과인의 백성을 능멸하고 나와! 백성의 천품이 교화될 수 없다면 니 놈이 정치는 왜 해! 단지 백성 위에서 군림하면서 권세를 누리기 위해선가?!! 그대들이 그러고도 학인이야?! 결국 그대들은 백성들과 한묶음이 되고 싶지 않은거다. 그들이 배우기 어려운 문자, 그것을 내 기득권인 양 행세를 하고 싶은거다! 백성의 마음을 헤아릴 의지가 없는 자! 또한 그들을 섬길 의사가 없는자! 모두 이 집현전을 떠나라!! '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인 압록강에 주둔한 명나라 군대> 한편 명나라(중국)에서도 조선이 조선만의 문자를 가지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압록강 국경으로 군대를 주둔시킵니다. 군사적인 협박으로 조선의 문자 창제를 막으려는 의도입니다. <명나라 황제의 칙사가 세종을 면담하면서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세종과 면담을 하게 된 명 황제의 칙사는 문자 창제를 그만두지 않으면 조선에 대한 군사적인 보복을 피할 수 없을 거라 경고합니다. 그러나 명나라에 항상 숙일 수 밖에 없었던 신생국 조선의 군주 세종은 이번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고 단호하게 맞섭니다. 조선에겐 신무기 '신기전' 이 있고 설사 자기들이 무너지더라도 제2 , 제3의 조선이 일어나 명나라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 경고합니다. 한편 최만리는 세종의 문자 창제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알고 명나라와 손을 잡고 세종을 암살하고 새로운 군주를 세우고자 합니다 (이건 명백히 픽션이고 역사왜곡이라 욕먹을 만한 부분인데요,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넣은 구성이지만 지나친 감이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최만리는 반대 상소를 올렸으나 그 전까지 세종의 충직한 신하였으며 세종 역시 그를 아껴 반대 상소를 올린 날 파직하고 하루만에 풀어주었습니다.) 최만리는 홀로 묵념에 잠기다가 지난 날 세종과 함께 했던 날들을 생각하며 깊은 갈등을 하게 됩니다. <흐릿한 세종의 눈에 비치는 누군가의 모습> 세종은 문자창제를 하느라 1년여간을 머물렀던 '진관사' 라는 암자에 돌아가 자료들을 검토합니다. 그 때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상선으로 착각한 세종> 바로 그는 최만리. 허나 세종은 앞이 보이지 않아 그가 상선(내시)인 줄 알고 상선에게 말하듯이 말을 합니다.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최만리> 세종이 앞을 못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최만리. 허나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세종을 암살하러 온 명나라 자객> <세종의 호위무사의 칼을 맞고 죽은 자객> 명나라는 자객들을 진관사로 보냈으나 사전에 조선군에게 발각이 되어 모두 사로잡혔고 단신으로 진관사에 뛰어든 자객은 세종의 호위무사와 결투를 벌이다가 죽습니다 <울며 떠나는 최만리> 최만리는 세종에게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조용히 진관사를 떠납니다. 그리고 울면서 독백합니다 '당대는 언제나 난세... 전하와 또한 소신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난세를 건너왔습니다.. 허나 소신은 끝내 당신이 만든 문자를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그 헌신만은 인정합니다.. 설령 후대와 또한 역사가 내가 옳고 당신이 틀리다 그리 판단한다 해도 오늘의 저는 당신께 집니다. 육신이 무너지고 종당엔 눈을 잃을 지경에 내몰리면서도 헌신을 멈추지 않았던 당신의 이 나라 조선에 대한 당신의 그 헌신에 지는 것입니다....' <조선왕비의 정성에 감복하는 황제> 한편 세종의 아내 소헌왕후 심씨는 아들 수양대군과 함께 직접 요동 명 황궁에 찾아가 황제를 알현하고 어미의 정성으로 만든 옷이라며 따뜻한 솜옷을 건넵니다. 이에 황제는 감복하여 눈물을 떨굽니다. <수양대군과 소헌왕후> 조선 땅으로 돌아오기 전 소헌왕후는 자신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에게 어미로써 부탁을 합니다 자신을 보필하여 명 황궁에 무사히 다녀왔던 것 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부왕과 또한 후일의 지존인 세자를 잘 보필하여 달라고... 수양대군은 약속을 꼭 지키겠노라 다짐합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그 다짐을 깨고야 맙니다. 수양대군은 후일 형인 문종이 일찍 죽고 어린 조카 단종이 즉위하자 김종서,황보인 등의 재상들을 모두 제거하고 종당에는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세조' 가 됩니다. 그리고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한다음 결국엔 사약을 내려 죽게 한 장본인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매우 씁쓸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세종이 맞춘 글자 '안해' > 시간이 흘러 1446년 세종 28년 10월. 드라마에서 직접 그리진 않고 간접적으로 그렸으나 훈민정음 반포 직전 소헌왕후는 세종보다 일찍 세상을 뜨고 맙니다. 세종은 금속활자들을 하나하나씩 맞추어 '안해('아내' 의 옛 말)' 라는 글자를 맞추어 아내 소헌왕후에 대한 그리움을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소헌왕후 심씨에 대한 조문과 반포에 대한 명나라의 허락> 명 황제의 칙사는 세종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소헌왕후에 대한 명 황제의 깊은 조의를 표하였고 , 또한 훈민정음의 반포를 지지한다는 명을 전달합니다 <알 수 없는 중국어를 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는 칙사> 세종을 알현하고 나오는 칙사는 세자 앞에서 혼잣말로 무어라 중얼거린 다음 알 수 없는 미소를 띄우고 지나갑니다. 세자가 무슨 말이냐고 통역 신숙주에게 묻자 신숙주는 해석을 합니다 '한 사람의 눈 먼 자가 만인의 눈을 뜨게 하였다'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세종> 마침내 경복궁 문무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세종은 '훈민정음' 을 반포합니다. 훈민정음 반포 서문은 너무 유명하지요 '나랏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맞지 않으니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스스로의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자가 많으니라. 이에 과인은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 조선 만백성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뿌듯해하는 영의정 '황희' > <도포를 입고 어린아이들과 어울리는 세종> 세종은 궁 밖으로 나와 잠행을 하며 어린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놀아줍니다. <장영실에게 세종의 정체가 무엇이냐 묻는 꼬마아이> 세종이 놀아주던 꼬마아이는 세종을 보필하던 장영실에게 저 할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꼬마의 물음에 대답하는 장영실> 이에 장영실은 대답한다 '이 땅에서 가장 높은 이다. 또한 가장 낮은 자이기도 하지. 단 한 명의 백성도 그에겐 하늘이고 땅이고 우주였다' <마지막 장면> 이 장면을 끝으로 대왕세종은 막을 내립니다. 지난 10여개월 동안 함께했던 대왕세종을 떠나보내는 게 쉽지가 않네요. 이 리뷰도 세종대왕님이 창제하신 한글 덕분에 쓸 수 있는 것이니 우리는 정말 복 받은 민족입니다. 세종대왕님께 큰 절 올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종대왕님.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입니다'
불멸의여해
작성일 2008-11-17
추천 67
[게임] E3 바이오해저드5 트레일러 & 플레이영상
2009년 최고의 기대작!! 액션 매니아들의 발을 동동구르게 만든 ~ 바이오해저드5의 새로운 트레일러와 플레이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역시 멋지네요, 게이머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전작 바이오해저드4의 게임방식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래도 머리터지는건 4쪽이 더 시원한것 같아요. 총조준과 칼조준이 따로 있는것 액션키등은 전작과 동일하군요. 하지만 액션모션이 다양해진것과, 팀워크, 특히 인벤을 열지 않아도 무기를 바꿀수 있다는건 게임하는데 정말 좋을것 같습니다. 애순이가 할줄 아는건 헬프미~!! 리온 ~!! 꺄~!! 이 3마디에, 주민들 가까이가면 쪼그려앉기 --;; 그런데 이번에는 NPC랑 같이 팀플레이도 할수 있군하 감동 감동 T^T 그런데 퀵턴과 반퀵턴이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겠군요, 한번써보지, 개발자가 플레이 하는것일건데 많이 초보인듯한 저 플레이는 뭥미 ;; 그리고 빵봉지 형님이 이번에는 도끼를 들고 나타나셨군요 .. 덩치는 거의 폭빵 수준인데, 움직임은 울버린보다 멍청한것 같다능 ;; 이지모드인가 보군요, 촌리 주민들이 약간 많이 멍청하네요 반응속도도 느리고 무지무지 잘죽고 (저러면 너무 쉽잖아 ~) ,프로모드의 권총 8방맞고 죽는 양촌리주민들들을 칼로 발르는 손맛 ~ 전기톱들고 날리치는 빵봉행님을 칼로바르면 완전 초긴장 ~ >_<~! 까딱 잘못하면 목이 쓰윽 ~ 아쉽다 프로모드 시연 영상이었으면 바하고수님들 상당히 열광했을듯 합니다 +_+ 할맛나겠다고 ... 흑흑 2009년 3월달 발매 예정입니다... 아 바하4를 정말 미친듯이 잼있게 했던 사람으로써, 너무 너무 기대되는 기대작입니다. 문제는 PC판 나올때까지 기다릴수 있을지 ... 그것이 문제로다 ... 발매되면 아프리카로 고수님들 플레이영상만 보면서 침만흘려야하나 하악 하악 쓰윽 ~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기록과 스피드의 WAVE 내게로와님 세계 그누구도 아무도 도전하지 않은 극악의 핸디캡 게임의 VOX님 둘중에 누가 최정상의 자리에 빨리 올라갈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_+ 나오기만 하거라 ~ P.S: 아따 ~ 크리스 팔뚝 굵다 ~ 코베 출현후 운동좀 했나?
로맨틱가이c
작성일 2008-07-26
추천 6
[좋은글터] 서울에서 전철/버스로 갈 수 있는 명소들입니다.
1. 경복궁 ~ 국립고궁박물관 ~ 광화문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유료입장)자세한 것은 여기 클릭 http://cafe.naver.com/livejob/19560 2, 종묘 -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 서울시내버스 100,160,150,260,370,140,201... (유료입장)3. 창경궁(종묘와 연결되어있음) - 종묘에서 넘어가면 됩니다. 서울시내버스 108,162,171,172,272,301.. (유료입장)4. 혜화동, 대학로지역 -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서울시내버스 140,150,160,143,161,301번 이용5. 이화장 - 이승만대통령이 살던 집 / 지하철 4호선 혜화역, 6. 동대문운동장 인근 쇼핑타운 - 지하철 2,4,5호선 동대문운동장역 7. 덕수궁 ~ 덕수궁미술관 ~ 시청앞 광장 -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유료입장, 시청앞 광장은 입장료 없음)8. 창덕궁과 후원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서울시내버스 171,172,272번 (유료입장, 5월부터 창덕궁 후원 특별관람이 시작됨)9. 여의도공원 -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여의나루역에서 도보, 160,260,262번 버스 이용, 10. 명동거리 - 지하철 4호선 명동역11. 장충단공원 ~ 수표교 -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12. 강남역 거리 -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서울시내버스 140,470,471,402,4312,4424,9400,9404,9410,971113. 낙성대(강감찬장군 사당) -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도보 1km자세한 것 여기를 클릭 http://home.megapass.net/~sealove78/travel/20040209.htm14. 인왕산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도보 / 경복궁역에서 0212,1020번버스로 자하문하차, 거기서 등산 (필히 현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볼것.. )15. 국립중앙박물관 - 지하철 1,4호선 이촌역 (유료입장)16. 올림픽공원,몽촌토성 -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17. 암사동 선사유적지 ~ 선사박물관 - 지하철 8호선 암사역 / 잠실과 강남역에서 340번버스 (유료입장)18. 선정릉 - 지하철 2호선 선능역 / 서울시내버스 472,4312,6411번 이용 (유료입장)19. 인사동거리(고미술상가, 경인미술관, 찻집..) -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 시내버스로 종로2가 하차.20. 탑골공원 - 종로3가역과 종각역 중간 / 시내버스로 종로2가 하차21. 남산타워 -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02번 버스로 타워까지 접근가능 (유료입장)22. 서대문독립공원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 서울시내버스 471,701,702,703,704,706,707,9703,9709.. (유료입장)23. 성북동 간송미술관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1111,2112번 버스로 성북초교 하차,간송미술관은 매년 2회(5월말, 10월말) 특별전 공개 전시때만 관람 가능.자세한 건 여기를 클릭 http://home.megapass.net/~sealove78/travel/20041030.htm24. 성북동 선잠단터 - 간송미술관 입구 성북초교 맞은편에 안내문과 제단 유적이 있음자세한 건 여기를 클릭 http://home.megapass.net/~sealove78/travel/20041030.htm25. 성락원 / 심우장 -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던 집으로, 간송미술관에서 성북동(삼청터널)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정표가 있음, 성락원은 성북초교 3거리에서 성락원 방면 이정표로 10분 거리.. 성락원은 조선 후기 별서 유적으로 현재 개인소유, 몰래 요령껏 관람 할 것자세한 건 여기를 클릭http://home.megapass.net/~sealove78/travel/20031025.htm 26. 육군사관학교박물관 - 청량리역과 청계천,서울역에서 202번 버스로 육사입구 하차, 들어갈때는 필히 신분증 제출27. 태강릉 - 태릉만 공개, 강릉은 비공개, 서울시내버스 202번으로 태릉 하차28. 우이동 북한산 도선사(서울에 대표적인 고찰)/ 봉황각, 우이동계곡 - 동대문운동장에서 144번 버스 / 창덕궁, 시청, 서울역에서 109번버스 /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101,120,170번 버스로 우이동 종점하차, 도보29. 북한산 진관사(서울에서 제일 산사다운 사찰 중 한곳이며 제일 시골 지역) -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진관사 들어가는 7724번(30~60분 간격)이용, 혹은 종로에서 720번버스로 기자촌에서 내려 도보 30분30. 헌인능 -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140,470,471,4421번 버스로 헌인능 하차, 종로2가에서 470,471번버스 이용31. 63빌딩 -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에서 62번버스 이용, 강남고속터미널에서 362번 버스 이용32. 삼성역 무역센터(코엑스몰) - 지하철 2호선 삼성역33. 어린이대공원 -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34. 서울숲 - 지하철 2호선 뚝섬역 / 청량리역에서 410번버스 이용35. 세검정 ~ 홍지문 ~ 보도각백불 고적답사 도보 코스 - 2호선 신촌역에서 110,170번버스로 홍지문, 상명대하차 / 경복궁역에서 0212,7016,1711번 이용자세한 건 여기를 클릭 http://home.megapass.net/~sealove78/travel2/20050820.htm36. 이태원 -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37.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돌담길 -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 시립미술관에서 현재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음38.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 -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도보 10분, 종로에서 160,161,260,720,470,471번 버스이용39. 사직공원(사직단) ~ 황학정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도보 10분, 서울역에서 706,707번 버스, 창덕궁, 창경궁에서 272번 버스,종로1가에서 606번 버스40. 전쟁기념관 -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41. 효창공원 -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에서 도보 10분42. 선유도공원 - 지하철 2호선 당산역에서 도보 20분, 한강 가운데에 떠 있는 섬43. 상암 월드컵경기장 일대 -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 종로에서 271번 버스, 시청에서 171번 버스 이용44. 북한산 삼천사, 삼천리골(서울에서 제일 깨끗한 계곡) - 구파발역, 서울역, 서울역사박물관에서 704번 버스, 삼천리골입구 하차 도보 40분. 앞에 진관사에서 도보 30분자세한건 여기를 클릭 http://home.megapass.net/~sealove78/travel2/20050515-1.htm45. 삼청동길, 삼청공원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삼청동 방면으로.. 46. 세종대왕기념관 , 영휘원, 숭인원(조선 후기 황족들의 묘) -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서 홍릉수목원 방면으로 도보 20분47. 우정총국, 조계사 - 지하철 1호선 종각역48. 노량진 사육신묘 -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 종로에서 150번 버스49. 보문사(석굴암 있는 곳) - 지하철 6호선 보문역 / 종로에서 103번 버스자세한 건 여기를 클릭 http://home.megapass.net/~sealove78/travel/20040526.htm50. 석촌호수,롯데월드 - 지하철 2,8호선 잠실역51. 신림동 호림박물관 - 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서 도보52. 국립묘지 - 지하철 4호선 동작역 / 노량진에서 360,361,363번 버스, 서울역에서 752번 버스53. 신당동 떡복기촌 - 지하철 2,6호선 신당역54. 삼성산 호압사, 한우물, 석구상 - 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서 5711번 버스, 호압사입구 하차. 등산을 좀 해야되나, 좋은 곳임..55. 북악산 백사골 백석동천 별서유적지 - 북악산 북쪽에 숨겨진 옛 별서(정원) 유적지, 서울과 완전 딴 세상인 곳..56. 수락산 벽운계곡 일대 - 수락산역 1번 출구 ~ 은빛주공아파트 ~ 벽운동계곡 ~ 덕성여대생활관 ~ 수락산 산신당(산악회뒤쪽) ~ 수락산 정상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 서울시내버스 1152,1153,1154번57. 도봉산 도봉계곡 일대 (도봉사, 도봉서원, 천축사, 조대비별장) - (유료입장)도봉산역 ~ 도봉산 141,142번종점 ~ 도봉산 등산 (도봉사 / 도봉서원 ~ 천축사 ~ 도봉산 능선)지하철 1,7호선 도봉산역서울시내버스 141,142,1127,1128번 도봉산 종점서울시내버스 100,140,150,160,161,108,107,1018,1148번 도봉산역 하차58. 도봉산 무수골 일대 (이인 신도비 / 원통암) - (등산시 유료입장)도봉역 ~ 무수골 ~ 성신여대생활관 ~ 이인 묘 신도비(서울지방문화재, 세종대왕의 아들, 느티나무집 뒤쪽 언덕에 있음) ~ 도봉산 (원통암, 도봉산 능선)창동역에서 무수골 가는 마을버스 이용,서울시내버스 141,142,140,108,150번등으로 도봉역(성황당)하차 도보 20분59. 연산군묘 (사적 362호) - 조선 제 10대 군주, 폭군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실상은 반란파에 의해 많이 왜곡된 불운의 군주..현재 묘역은 관람 불가이며, 아래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됩니다.서울시내버스 130(쌍문역,장한평역,천호역),1144번(창동역,노원역)으로 정의공주묘 하차, 정류장 기준 서남쪽 언덕에 있는 무덤이 연산군 묘역,60. 방학동 은행나무 -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로 수령이 800년을 넘어갑니다. 가을에 오면 정말 아름다운 곳.. 연산군묘역 바로 앞에 있습니다.61. 4.19국립묘지 - 1960년 4.19혁명때 죽어간 199명의 넋이 잠들어 있는 곳서울시내버스 104번(서울역,혜화역,길음역), 1119번(창동역,수유역)으로 4.19 하차63. 북한산 화계사 - 고려 초기에 세워지고 조선 중기 이후에 크게 성장한 고찰, 절 내에는 서울지방유형문화재 65호인 대웅전이 있습니다.서울시내버스 152(길음역,서울역,신림역),151(서울역, 혜화역, 미아역),1165번(미아3거리역, 수유역) 화계사(한신대)하차, 64. 정릉 - 조선 최초의 왕능으로,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묘역 (사적 208호) - 유료입장서울시내버스 110,143,170,171,7211번으로 정릉우체국이나 정릉2동사무소 하차, 도보 15분길음역에서 143,171,7211,110번 이용65. 의릉 - 조선 20대 군주인 경종의 능역 (사적 204호) - 유료입장청량리역에서 서울시내버스 147,261번 의릉입구 하차66. 살곶이다리(전환교) - 중랑천 위에 걸린 조선 초기 돌다리, (사적 160호)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 하차, 중랑천으로 도보 10분67. 불암산 학도암 - 조선시대 사찰로, 19세기에 조성된 거대한 마애석불이 있습니다.청량리역, 중화역에서 1221번버스 이용, 영신여고나 중계본동사무소에서 내려서 도보 20분, 불암산 정상까지 산행 가능68. 아차산성 - 고구려시대 산성으로 고구려시대에 조성된 여러 보루 및 군사 유적이 발견된 곳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도보, 또는 영화사(동의초교) 방면 마을버스로 영화사까지 가서 산행 시작69. 길동생태공원 - 자연학습의 장으로 유명한 곳 강동역에서 서울시내버스 300,361,370번으로 길동생태공원 하차, 70. 가양동 일대 (양천향교 ~ 소악루 ~ 양천고성터 ~ 허가바위 ~ 구암공원 사적 도보 코스) -양천향교는 서울 유일의 향교로 지금의 중등학교 , 소악루는 조선시대 누각으로 겸재 정선이 극찬을 했던 명소,양천고성터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성터 유적, 허가바위는 양천허씨(의암 허준이 대표적)의 시조와 관련된 자연 동굴, 구암공원은 허준이 살았던 곳을 사적공원화 한 곳,당산역에서 6631번버스로 구암공원 / 양천향교 하차, 신촌역에서 6712번버스로 구암공원 / 양천향교 하차71. 남산한옥마을 - 북촌(종로구의 가회동, 인사동, 삼청동, 안국동 일대)에 있던 조선 후기 한옥을 옮겨놓은 곳,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에서 도보 10분, 서울시내버스 104,507,604번 대한극장이나 극동빌딩에서 하차72. 오금공원 - 송파구 오금동에 조성된 시민 공원으로, 공원 내에는 서울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묘역 2곳이 있습니다.지하철 5호선 개농역 하차73. 신촌 봉원사 - 조선시대 사찰, 일명 새절로도 불립니다.경복궁역(적선동)에서 서울시내버스 606,272번 이용, 봉원동 하차신촌역과 독립문역에서 봉원사까지 들어가는 마을버스가 있습니다.74. 효령대군묘 - 태종의 2자인 효령대군의 묘역지하철 2호선 방배역, 방배역4거리에 있습니다.서울시내버스 142,148,641,461번 이용75. 압구정동 거리 - 일명 강남 패션의 중심거리..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서울시내버스 143,472,4312,362,410,240,148,4421번 이용76. 풍납토성 - 백제시대 토성유적, 천호대교 남단에 있습니다. 길쭉한 언덕처럼 생긴 곳지하철 5,8호선 천호역 / 서울시내버스 300,370,361,340번 이용77. 예술의전당 -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78. 낙산공원 - 서울의 영원한 좌청룡 낙산(낙타산)에 조성된 공원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 4호선 혜화역 / 6호선 창신역에서 도보79. 방이동백제고분군 (사적 270호) - 백제시대 옛 무덤을 살펴볼수 있는 곳 잠실에서 3314,3315,3220번버스 이용, 백제고분 하차, 80. 동서울터미널 옆 테크노마트 - 지하철 2호선 강변역(동서울터미널)81. 봉천동 마애미륵석불 - 17세기에 조성된 마애석불, 관악산 북쪽 자락에 숨어 있는 불상으로, 숨바꼭질하는 심정으로 한번 찾아보세요.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 낙성대 -> 인헌아파트에서 등산 시작 -> 상봉약수터 북쪽 바위에 숨어 있음82. 운현궁 - 흥선대원군의 사저, (유료입장)지하철 3호선 안국역83. 남산식물원 , 안중근의사기념관, 남산시립도서관 일대 - 광화문, 시청, 서울역, 강남역에서 402번 버스84. 손기정공원 (구 양정고등학교) -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때 받은 월계관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곳.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604,263번버스로 손기정공원(구 양정고) 하차85. 절두산성지 - 조선 후기, 천주교 신도들을 집단으로 처리하던 곳.. 당산철교 북단에 있습니다.절두산은 머리를 자른다는 뜻..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주교 박해 성지성지 부근에 구한말~왜정때 우리나라에 머물며 조선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던 외국인들의 묘역이 있습니다.지하철 2,6호선 합정역에서 도보 10분,86. 무계정사 - 세종의 3남인 안평대군의 별장이 있던 곳, 지금은 무계정사라 쓰인 암각만 남아 있습니다.경복궁역에서 서울시내버스 1711,0212,7022번 이용 부암동사무소 하차, 도보 10분87. 봉은사 - 신라시대 고찰로, 조선시대에는 성종의 능인 선릉의 원찰,얼마전에 사망한 백남준의 칠칠재(49재)를 지냈던 곳이지요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도보 10분 / 지하철 7호선 청담역에서 도보 15분서울시내버스 361,640번 봉은사 하차88. 북악산 숙정문 - 4월부터 개방되는 곳으로 성북동에서 올라갑니다.자세한 것은 아래 참조http://blog.naver.com/py1978/80023394811 기타. http://www2.visitseoul.net/culturemap_new/areaview.asp서울 문화 관광 지도입니다.여기도 참조http://blog.naver.com/salutyoon201?Redirect=Log&logNo=12002942803315일까지 여의도 벚꽃축제기간이랍니다. 봄입니다.연인들이야 뭐 말 할 것도 없겠고..쏠로부대원들은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서울 분들은 자신이 가본 곳은 얼마나 되는지, 체크도 해보시고, 자신만 아는 명소가 있으면 올려주셨으믄 싶네요서울분 아니신 분들도 각자 자신의 고장에서 명소들 올려주시는 것도 괜찮아보이고요
mom205
작성일 200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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