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가 서로 맞닿지 않고 간격을 두고 자라는 자연 현상을 '수관(樹冠) 기피' 라고 한다. 나무 꼭대기에서 뻗은 가지와 잎들이 제 구획을 벗어나지 않고 엄격히 서로 경계를 이루는 행태가 마치 왕관 모양을 닮아 '크라운 샤이니스'(crown shyness)라는 용어가 생긴 것이다.
이 현상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에서 종종 목격되는데 학자들이 1920년대부터 그 원인에 대해 연구해 왔으나 일부 수종에서 목격되는 수관 기피 현상의 생리학적 근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설명하는 많은 가설 중 하나가 잎을 갉아먹는 벌레를 방지한다거나 바람에 의한 가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본능적 행위라는 것이다. 또 가지의 끝부분이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의 양에 매우 민감해 다른 나무가 접근할 경우 생장을 멈추면서 빚어진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수관 기피는 대부분 같은 수종의 나무에서 나타나는데 수종이 다른 나무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르네오 녹나무처럼 잎에서 에탄올 성분이 방출돼 다른 나무의 접근을 막는 사례가 관찰된다. 말레이시아 용뇌향나무에도 비슷한 방어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 개체 사이의 틈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햇빛을 숲에 받아들이면서 광합성 작용과 해충·질병을 막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식물이 거리를 두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자 조화로운 생장이라는 자연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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