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_나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배우는 지금 찍고 있는 걸 그냥 ‘현실’로 받아들이는구나. 많은 배우들은 ‘컷’ 하면 그 감정에서 못 빠져나와 겸연쩍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송강호는 그런 게 없다. 이 배우는 그저 서로 다른 수많은 현실의 집합 속에 있구나, 감독인 나도 그런 현실감각을 잃지 말아야지, 그렇게 계속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송강호라는 배우는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정말 뛰어난 현실 연기를 선보이지만, 막상 처음 모여 시나리오 리딩을 할 때는 정말 못한다. 그렇게 못할 수가 없다. (일동 대공감) 종종 신인배우들이 리딩 때 “감독님, 저 너무 못하죠. 죄송해요”라고 울상이 될 때 ‘대한민국에서 리딩 제일 못하는 배우’로 송강호의 예를 든다.
박찬욱_그 소문이 김지운 감독 때문에 다 퍼졌구나. (웃음)
송강호_그러게, 모르는 사람이 없던데. (웃음)
박찬욱_심지어 나는 리딩 시작하기 전에 ‘송강호는 원래 못하니까 너희들도 굳이 잘할 필요는 없다’고 미리 얘기까지 해둔다. (일동 웃음)
한재림_<관상> 때는 리딩 잘하셨는데.
송강호_이거 참, <관상> 리딩 끝나고 “촬영 들어가면 그렇게 안 하실 거죠?”라고 했으면서. (일동 웃음) 나는 지금껏 <관상> 리딩을 가장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김지운_그래서 송강호라는 배우는 대사가 자기 입에 붙을 때까지 그 리듬과 호흡을 어떤 과정을 거쳐 가져가는지 궁금했다. 여기 있는 감독들 모두 송강호의 뭔가 부족한 리딩과 너무 뛰어난 현장에서의 연기, 그 사이를 모르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