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던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불금을 야근으로 보내버린 저는
울적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시계를 보았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훨씬 지나
토요일이 되어 있더군요.
저는 미리 시켜 둔 치맥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물 흐르듯이 리모콘을 집어 TV를 켰습니다.
TV에는 한 수사프로그램이 방영중이었습니다.
최근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정신병원 무차별 살인사건에 관련한
내용인 듯 했습니다.
정신질환을 앓던 환자가
어디서 들여왔는지 모를 식칼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본인도 자살한 사건..
현장이 너무 참혹해서
뉴스에는 온통 모자이크 투성이인 영상만
주구장창 보여줬었는데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이
이미 폐허가 된 그 곳을 다시 방문한 듯 했습니다.
화면에는 카메라맨이 제작진의 말에 따라
폐병원의 정문쪽을 크게 비춰주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건물 맨 구석에
뼈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른
한 여자가 웅크리고 앉아있는거에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지만
TV 프로그램의 흔한 픽션중 하나겠지 하며
계속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제작진 중 그 누구도
저 여자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를 않더군요.
마치 저 여자가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다는듯이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괜히 무서운 마음에
TV를 얼른 꺼버렸습니다.
근데 화면엔 그 소녀가 그대로 웅크리고
있더라구요.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저를 보고 웃었습니다.
입이 귀까지 찢어질 정도로 환하게요...